여행을 좋아하고, 특히 옛길 드라이브를 즐기는 나로서는 사실 터널을 통해서 빠르게 이동하는게 그다지 반갑지가 않다. 예전처럼 산길을 돌아서 강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진 옛길의 운치를 즐기고 싶은 까닭이다. 산허리를 끼고 몇 구비를 돌다보면 어느새 펼쳐지는 숨은 비경에 탄성이 절로 터진다. 그야말로 옛길 여행의 백미다.
그 길에서 우리는 엄청난 위용의 바위산도 만날 수 있고 강을 따라 병풍처럼 펼쳐지는 절경도 만날 수 있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한국의 아름다운 길로 소개된 경주의 감포가도는 오래 전부터 내가 즐겨 다녔던 옛길이다. 경주 덕동댐을 지나서 계곡을 따라 산길 정취를 만끽하며 추령에 오른다. 쉼터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산길을 휘돌아 내려와 바다를 향해서 강변길을 달린다. 감은사로 이어지는 너른 들을 지나서 동해바다에 이르면 세찬 파도에도 끄떡없는 문무대왕 암을 마주할 수 있다.
내비게이션은 더 이상 그 때의 옛길로 안내하지 않는다. 산을 허물어 터널을 만들고 고가다리를 놓아 생긴 빠른 길로 날 안내한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감포가도를 달려서 동해에 간다. 지도를 더듬어 애써 옛길을 찾아다닌다. 그 길에서 만나게 되는 가슴 떨리는 서정을 어떻게 포기할 수 있겠는가.
지금의 한반도는 도시의 높은 스카이 라인을 뽐내며 우후죽순처럼 지어놓은 아파트와 빌딩으로 인해 콘크리트공화국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다. 오랫동안 다져온 도로 개발산업의 영향으로 사통팔달 쭉쭉 뻗은 고속도로가 이젠 반나절이면 전국 어디든 가 닿게 한다. 그럼에도 시골 구석까지 자연을 훼손 해서 터널을 만들어야 하는지 우리 모두는 한번쯤 생각해 봐야하지 않을까.
다행히 이제는 생태 축 복원사업으로 아스팔트를 걷어내고 옛 흙길을 드러내는 옛길 복원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충주에서 문경으로 이어지는 옛 하늘재 고갯길은 작년에 일부 구간 사업을 마쳤다고 한다. 하늘재는 문헌상 가장 먼저 등장하는 고갯길이다. 그 복원에 막대한 비용이 들었다고 하지만, 늦게나마 역사와 자연을 보존하겠다는 맥락에서 바람직한 사업인 것 같다. 오랫동안 산업화가 진행 되면서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산을 뚫고 다리를 놓으며 숨가쁘게 달려왔으니, 이제는 개발보다는 보존에 좀 더 무게를 가져야 하지 않을까.
이번 주말에는 속도와 성과의 압박에서 잠시 벗어나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옛길 여행을 떠나 보는 건 어떨까? 그 길에서 당신은 당신이 만난 겨울 강과 겨울나무로부터 삶의 지혜와 여유로움을 배우게 될지도 모르겠다.
/서영희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