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인 화 풀어주려 나선 경주 데이트길<br/>전시회 초청 전화 걸려와 여행 더 풍성
보문호 근방에서 식사 후 호수 물결이 바로 보이는 카페에서 차를 한잔하고 호수 둘레길을 함께 걸었다. 둘레길을 걷는 데 전화가 온다. 확인하니 경주에 사시는 지인의 전화다. 내가 경주에 온 것을 아는듯해서 고맙다. 경주예술의전당에서 ‘모네에서 앤디워홀까지’라는 주제로 미술 특별전시회를 하고 있는데 표가 있으니 같이 가자는 전화다. 대면할 수 없는 사람과의 소통할 수 있는 편리한 휴대전화가 고맙다. 아내나 나 나 미술에는 문외한이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서양 미술사 대강의 흐름을 알 수 있어 좋았고 이른바 여자들의 명절 증후군 해소와 다소 틀어진 아내 심사를 원만케 해주는 기회여서 좋았다.
요즘 들어 걸려 오는 전화가 부쩍 많아졌다. 관람 중인데도 진동으로 둔 전화기가 주머니 속에서 혼자 드르륵드르륵 울고 있다. 짜증이 일어나지만, 모른 체 한다. 주인의 짜증을 알 턱이 없는 전화기는 끝까지 울다가 제풀에 지쳐 만다. 모르는 번호이지만 받아보면 거짓말 잘하는 사람처럼 자기 할 말만 빠르게 하고 끊는 뒤끝을 허심하게 만드는 전화다. 관람 중에도 3통이나 들어와 있다. 국회의원 예비후보자들의 문자이거나 전화다.
그래도 제때 못 받은 것을 미안해해 본 적도 있다. 그들은 우리를 위해 열심히 일해보겠다는 선량(選良)을 자처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대개가 녹음된 음성의 일방적 발언이거나 문자들이기는 하나 그런 일방 소통을 그렇게 나쁘게만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들의 그런 일방적인 소통이라도 들어야 하는 현실이니까 말이다.
그래도 생각해 보면 선량이라 함은 모름지기 자신이 내세우는 정책공약도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인간적인 면과 도덕적인 소양이 검증되고 주위로부터 인정받았느냐가 더 중요해야 한다고 보는데 일면식도 없이 느닷없는 전화는 앞서 생각한 것을 무색게 하여 슬프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서 국민 편익을 위한 입법과 살림을 맡아야 하므로 지지를 부탁하는 몰염치는 또 무엇인가, 우리는 알아야 한다. 공동선을 위한 금전의 유혹에 당당하고 결백할 것인지, 자기보다 센 권력 앞에 비굴해지지 않을 용기는 있는지, 사욕에 변질하지 않을 의지가 있는 선량인지, 그런 분을 기다리며 찾아야 하고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4월이면 국회의원 선거를 한다. 곧 있을 선거에 앞서 멀리 로마 시대의 얘기를 좀 해보자. 그들은 선출직 공직 입후보자들을 라틴어로 칸디다투스(candidatus)라 불렀다고 한다. 그 어원을 따라 요즘도 선출할 입후보자를 캔디디트(candidate)라 부르고 있다. 이 말의 근원은 고대 로마 시대의 공직 선거에 입후보한 사람들의 복장이 깨끗함을 상징하는 흰색의 겉옷(toga)을 입었기 때문이란다. 그 흰색의 의미가 깨끗함과 솔직함과의 궤를 같이하기에 오늘의 우리 선거에도 그런 깨끗하고 솔직한 후보가 나오기를 바라며 선거 홍보 내지 지지 부탁 전화에 대해 유감이 있다.
선거철이 되면 홍수처럼 걸려 오는 문자나 전화는 일상생활에서 이미 공해 수준이다. 어떻게 내 전화번호를 알아 나에게 연락이 올까, 라는 의문이 들지만 견뎌 받아낸다. 왜, 우리는 선량을 뽑아야 하니까 말이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선량이 되겠다고 자처하시는 분들께 바란다. 우리 유권자의 전화번호를 이러 이러한 경로로 얻게 되어 감사하게 생각한다는 일언반구의 예의라도 갖추고 난 후 자신을 지지해 달라는 뜻을 전하는 솔직한 후보를 기다린다. 그런 그에게 나의 한 표를 보내고 싶다.
/박효조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