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게소에서 맛있는 김밥으로 첫 끼니를 챙긴다. 주말이면 누구라고 할 것 없이 꽃구경을 나올 테니 느지막하게 나가면 사람 몸살을 앓기 마련이다. 4월의 해는 아침 6시에 떠서 저녁 7시까지 서성이니 나들이하기에 안성맞춤이다. 그러니 조금 일찍 서둘러 집을 나서는 게 좋다. 9시에 나섰는데도 죽장 휴게소 김밥집에 줄이 길다. 한 팀이 열 줄씩 사려 하니 김밥 싸는 할머니 손이 잠시도 쉬지 못한다.
죽장 휴게소를 나서자마자 좌회전을 급하게 하면 영천 자양댐으로 가는 길이다. 이 길을 ‘벚꽃 백리길’이라 부른다. 벚나무가 터널을 만들어 그 밑을 지나는 자동차의 속도를 저절로 늦추게 만든다. 왼쪽은 자주 내린 봄비로 호수에 물이 가득하다. 그 물에 산 그림자, 벚꽃 터널, 늦게 핀 개나리, 그늘진 곳에 진달래까지 비친다. 물이 가까이 있어 꽃이 더 고운가, 유난히 더 빛나는 백 리 벚꽃길이다.
자양면의 망향공원에 잠시 차를 내렸다. 이곳에 물이 차기 전 살았던 사람들이 고향이 그리울 때 찾도록 만든 전시관이다. 오래전에 사용하던 풍금, 농사에 사용하던 풍로 같은 것을 기증받아 전시했다. 전시관에서 내려다보는 물빛이 실향민들에게는 더 애틋하다. 전시관 앞 과수원에 배꽃과 자두꽃이 한창이다. 그 사이로 걸으니 꽃 향이 진하다. 꿀단지 뚜껑을 열어놓았나 싶다.
자양면 행정복지센터 앞길부터는 산책로가 있어서 벚나무 아래를 거닐 수 있다. 이 길은 댐을 돌고 돌아 ‘영천댐 공원’까지 이어진다. 휠체어에 몸이 불편한 부모님을 태우고 함께 걷는 가족, 친구와 단체 사진을 찍느라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고, 애완견과 함께 꽃길을 만끽하는 사람, 차보다 천천히 즐기는 자전거 행렬, 부릉부릉 오토바이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사람들로 길이 가득 차 속도는 점점 느려진다. 그래도 어차피 꽃구경이니 느릴수록 좋다.
쉬엄쉬엄 달리다 보니 임고서원이다. 여기는 하얀 벚꽃에다 분홍빛 복사꽃이 더해져 눈이 더 즐겁다. 서원 앞을 흐르는 자호천 주변까지 벚꽃 가로수이다. ‘벚꽃 예쁜길’이라 이름 붙였다. 벚꽃을 즐기기 위해 이 기간에는 차량은 통제하고 사람만 걸을 수 있다. 바람이 살랑 불어서 걷는 사람들은 더 상쾌해진다. 벚꽃 터널 끝까지 다녀오니 6천 보를 채웠다.
다시 포항으로 가는 길은 오래된 헌 길을 택했다. 평천초등학교를 지나자 길 양쪽은 복사꽃이 한창이다. 농번기라 길에는 경운기가 흙을 뿌리기도 한다. 마실에서 마실로 이어지는 노인보호구역이라 속도는 시속 30킬로미터 유지하며 달린다. 구불구불 달리다 사 2리 회관 앞에 다다랐다. 이곳 버스정류장이 봄에 가장 어여쁘기 때문이다. 비를 피하도록 지붕에 유리로 바람도 막아주고 앉아서 시간차를 기다릴 수 있게 벤치도 놓였다. 유리창 너머로 개나리가 환하다. 동네 주민처럼 앉아 사진 한 장을 찍었다. 개나리처럼 노란 행복이 묻어나는 인증샷을 건졌다.
또 달려 고개를 넘으면 영천은 끝이 나고 포항 기계면 봉계리에 접어든다. 벚꽃을 보며 백 리나 달렸더니 눈이 시릴 지경이다. 주중에 가면 좀 더 조용히 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애완견과 함께라면 배변 봉투 꼭 챙겨서 가길 바란다. /김순희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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