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문 회원은 목월 백일장 1회부터 참여했다가 지금은 심사위원이 되었다. 행사에 축사를 담당한 도의원도 어릴 적 선생님과 함께 목월백일장에 참가해 최우수상을 받았었다고 기억을 나누었다. 그때의 추억이 이 자리까지 오게 하는 힘이 되었다고 참가자들을 격려하기도 했다.
시제는 초등 저학년은 강아지 또는 우산, 고학년은 엄마손과 봄비 중에 선택한다. 중학생은 달력과 사춘기, 고등학생은 보름달과 돌다리, 대학 일반부는 계단과 회오리였다. 원고지를 받아 든 참가자들이 숲 여기저기로 흩어졌다. 텐트와 글을 쓰려고 앉은뱅이 탁자를 들고 오기도 하고, 소풍 나온 것처럼 돗자리를 깔고 두런두런 시제에 대해 가족이 머리를 맞대고 애를 쓰기 시작했다. 낮 12시까지 본부석에 제출해야 하니 모두 마음이 바빠 보였다.
사람들을 이렇게 시를 쓰게 만드는 사람은 박목월 시인이다. 얼마 전 그가 생전 써놓았던 미발표 육필 원고 166편을 아들 박동규 교수가 공개했다. 1936년부터 1970년대까지 집필된 시인의 작품이 세상에 처음 빛을 보게 된 것이다. 미발표작이 출간되기까지는 굴곡이 적지 않았다. 박목월 시인의 아내 유익순 여사는 남편이 습작하다 휴지통에 버린 메모까지 허투루 버리지 않았다.
“6·25 전쟁 때는 천장 위에 숨겨놨고 이후 장농 밑에, 모기장 밑에 보자기로 싸서 쟁여놨던 작품들”이라고 박동규 교수는 회고했다.
누렇게 바랜 페이지마다 박목월 시인 특유의 꼼꼼함이 묻어 나온다. 시어와 행·연을 바꿀 때마다 그는 육필로 다시 썼는데, 토씨 하나만 바꿔도 개작(改作) 과정을 모두 노트에 적어놨다.
박 교수는 “어떤 시는 발표하기 싫으셔서 안 내신 게 아닌가 싶어 이번 공개를 망설였던 것도 사실”이라며 “하지만 미발표작에 더 실험적인 작품도 많다. 한 시인의 생애를 살피는 데 아니할 수도 없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미발표작 공개는 우정권 단국대 교수가 작년 4월 박동규 교수에게 노트 열람을 요청하면서 이뤄졌다. 이후 유성호 한양대 교수와 방민호 서울대 교수, 박덕규 단국대 명예교수, 전소영 홍익대 초빙교수 등이 ‘박목월 노트’를 디지털화한 뒤 전수 분석했다.
새롭게 발굴된 박목월의 작품들은 전집과 평전 형태로 올해 6월 전에 독자를 다시 찾을 예정이다. 경주시는 박목월유작품발간위원회의 협조를 얻어 미발표 작품들을 동리목월문학관에서 전시할 예정이다.
낮 12시에 마감한 작품들을 경주문협 회원들이 나눠 심사했다. 챗GTP에 입력만 하면 글을 써 주는 시절이라 백일장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며 걱정하지만, 팀별로 100명이 넘는 참가자의 작품을 찬찬히 읽고 평가했다. 부분별로 장원을 뽑고 검색했다. 장원, 우수, 장려, 가작을 가려 뽑고 시상식을 했다.
지금은 시를 읽지 않아 시가 사라진 시대라 한다. 중학교 선생님이 아이들이 규칙을 어길 때 시 한 편 읽게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오늘 백일장에 참가한 이들의 머리 위에 시 한 편 얹고 황성공원을 빠져나가는 모습을 보니, 아직 시는 우리 곁에서 작은 역할을 담당하는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김순희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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