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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졸이는 봄날

손정희 시민기자
등록일 2024-04-18 19:51 게재일 2024-04-19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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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화 시기 이상 기온이나 긴 장마<br/>수확기엔 태풍과 지루한 비까지 <br/>해마다  농사 망칠까 속타는 농심
청송 중뜰마을 풍경.
지난 3월 중순 어느 날, SNS에 서설이 내렸다며 좋은 징조이기를 바란다는 남편의 글이 농장 사진과 함께 올라왔다. 초봄 날씨에 민감한 농부가 걱정스러운 마음을 에둘러 표현한 것으로 보였다. 아직 주말부부로 살고 있기에 청송의 날씨를 모르는 나는, 글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곧바로 전화했다. 아침에 서설은 내렸으나 다행히 오전 중에 다 녹아서 괜찮다는 말을 듣고 안도의 숨을 쉬었다. 자신도 불안한 마음일 텐데 아내를 안심시키는 농부가 안쓰러웠다.

농부의 아내로 날씨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데 뭐가 바쁜지, 며칠 챙기지 못했다. 해마다 3, 4월이면 날씨에 민감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나날이 조심스럽다. 꽃 필 시기의 기상 상태가 한 해 농사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집중호우와 냉해, 긴 장마로 농사를 망쳐 모든 농가가 피해를 보았다. 우리 낙원농장도 예외가 아니었다. 해마다 수확기에 태풍이나 잦은 비로 다 된 열매를 제대로 수확한 일이 한 번도 없었다. 개화 시기의 이상 기온이나 긴 장마, 자두 수확기인 9월에는 어김없이 태풍과 지루한 비가 찾아온다. 귀농 후 매년 같은 일을 겪으면서 100% 성공적인 수확한 해가 없었다. 그래도 작년과 같이 허무한 피해는 없었다. 예년의 30%도 안 되는 수확에 하늘이 하는 일이라며 눈물을 삼켜야 했다. 재해보험에 가입하였기에 안심이 되었다.


지난해 집중호우와 냉해로 직격탄을 맞은 사과 농가에 ‘농작물 재해보험’에서 지급된 돈이 전년 대비 두 배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는 기사를 보았다. 농작물 재해보험은 자연재해 등으로 손해를 입은 농가의 소득을 보전해 주는 제도이다. 농작물 재해보험에 가입하는 비용도 정부 예산으로 지원한다. 가입자가 늘면서 매년 예산 규모가 늘어나는 추세다. 일부에서는 농가 소득 보전을 위해 정부가 예산을 너무 많이 쓰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지난해 잦은 재해가 발생했음에도 농작물재해보험 보험금 지급과 직불금 확대 등으로 농가 소득은 늘어났다는 모 신문의 농업 현장의 현실을 모르는 기사에 은근히 화가 났다.


지난가을 냉해 피해와 잦은 비로 인한 착과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나마 잘 익은 자두를 보면서 위로받으며 수확 일을 기다리고 있었다. 막 자두를 딸 시기에 태풍이 올라왔다. 연일 거센 바람과 비는 탐스럽게 익은 자두를 거세게 흔들어 무참히 떨어트렸다. 나무에서 썩고, 멀쩡하다 싶으면 꼭지 쪽이 터져있었다. 상품이 되는 열매가 손꼽을 정도였다. 우리는 조심스러워 서로 입 밖으로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속은 시커멓게 타들어 갔다.


착과기와 수확기 두 차례 손해사정인이 피해 조사를 나왔다. 예년의 30%도 안 되는 수확에 마지막으로 기대했던 보상액은 너무나 동떨어진 금액이었다. 손해사정인의 현장 조사는 적기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조사에 대해 ‘착과 조사의 표본 축출이 적절했는가?, 일일이 낙과 수를 조사한 것을 제대로 적용했는가?’라는 의문을 가졌다. 그들이 농민의 피해에 진심으로 안타까운 마음을 가졌다면 이런 결과가 있을 수 없다 싶었다.


해마다 재해보험을 꼭 가입했다. 혹시 모를 피해에 피해액의 보전을 기대하면서 매년 넣었다.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이 있어도 자부담 10% 남짓한 보험료는 적은 금액이 아니었다. 적은 피해에 보상을 받게 되면 정작 큰 피해에 영향을 미칠까 웬만한 피해는 보험 청구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작년 같은 엄청난 재해에 보상액은 턱없이 적었다. 화가 난 남편은 농협 직원의 거듭된 권유에도 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다. 올해는 재해보험도 넣지 않아 더 걱정이다.


조심스러운 4월을 무사히 넘길 수 있도록 기도하면서 매일 날씨를 살핀다. 올가을엔 우리 농장과 전국의 모든 농가가 환하게 웃을 수 있는 대풍을 이루도록, 하늘이 도와주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봄날 마음 놓고 꽃놀이를 즐기고 아기 솜털 같은 신록에 마음껏 기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손정희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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