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 정상에 자리한 마을과 풍차전망대서 보는 군위댐·군위호 장관<br/>울창한 숲과 작은 호수를 지나 만나는 미완의 城 화산산성도 ‘눈길’
우리는 군위군 삼국유사면과 영천시의 경계에 자리한 화산으로 향했다. 해발 828m로,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고로면의 산 중에 크기가 가장 큰 산이다. 신녕IC에서 내려서니 화산을 오르는 길은 가파르고 좁은 길이라 차의 속도를 늦췄다. 오르는 내내 급하게 구불거려 조심조심 운전해야만 한다. 길 바로 옆은 낭떠러지라 아찔하다.
하지만 구불거리는 길 덕분에 풍광은 그저 그만이다. 밤새 내린 비가 금방 꺼낸 떡시루에서 김이 나는 것처럼 하얗게 산 위로 기어오르며 능선을 넘어간다. 그 아래 멀리 옹기종기 산밑에 엎드린 동네가 장난감 같다. 정상 가까이 갈수록 산밑 마을엔 벌써 져버린 벚꽃, 개나리가 아직 반쯤 꽃잎을 남겨뒀다.
정상에 다다르자 마을이 나타났다. 이렇게 높은 곳에 사람이 산다는 게 신기할 정도다. 고랭지 채소가 주 농작물인데 비탈의 과수원에는 하얗게 사과꽃이 피었다. 화산마을에 사람이 들어와 살기 시작한 것은 1962년부터다. 정부가 주도한 산지 개간 정책으로 180가구가 이주하여 재건한 개간촌이다. 대부분 자기 땅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산 아래에서부터 7.6㎞ 마을까지 길을 만들고, 농토와 집 사이 길을 열었다. 세월이 흐르며 인구가 감소하여 20여 가구로 줄었다가 화산마을의 풍광과 아름다움에 반한 이들이 하나둘씩 이주하기 시작하여 지금은 60여 가구가 살고 있다.
정착민과 귀촌인이 힘을 합쳐 마을 경관 단지와 풍차 전망대를 조성하면서 마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풍차전망대에서 사진을 찍으면 빨간 풍차를 배경으로 2010년 준공된 군위댐과 군위호가 한 장면에 나오는 사진은 관광객을 불러들이기에 충분하다. 조금 더 올라간 곳에 자리한 하늘 전망대에서는 풍차 전망대를 멀리서 볼 수 있다. 화산 정상부 능선에 풍력발전기도 돌아간다. ‘누가 화산에 밭을 구하려 하는가/신선의 근원이 여기에서 비롯되었는데/여보게 구름다리를 나에게 빌려주구려/옥정에 가을바람 불면 푸른 연못 피리로다’. 서애 유성룡이 지은 시 ‘옥정영원’을 전망대 옆 바위에 새겨놓았다.
이제 화산산성을 볼 차례다. 마을에서 옆으로 난 외길을 조금만 가면 기암괴석으로 이뤄진 울창한 숲과 작은 호수가 보인다. 차를 세우고 100미터를 걸으면 아름다운 반월형의 홍례문이 모습을 드러낸다. 깊은 숲에 돌로 만든 성문이라니, 그것만으로도 신비하다. 지방기념물인 화산산성이다.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1709년(숙종 35) 윤숙이 천연의 요새인 화산에 병영을 건설하고자 4문의 기초공사를 시작하여 홍예문을 짓고 혜휘, 두청 스님에게 군수 물자를 비축해 두기 위한 사찰을 짓게 하였다. 국가의 지원을 받지 않고 윤숙의 재산과 승려들의 시주에 의해 시작된 공사는 성을 축조하던 중 심한 흉년과 질병으로 인하여 공사가 중단되었는데, 윤숙마저 전라도 병마절도사로 전출되고 20년간 후임자가 없어 공사가 헛되이 끝나버리고 말았다. 지금은 홍례문과 수구문이 남아 있으며 산성 안에는 옥정영원이라는 샘물이 있는데 지름 5m의 바위구멍에서 솟는 석간수이다.
북문 터는 안팎의 아치문을 무사석과 부형 무사석으로 만든 수법과 내·외 겹축의 성벽을 내탁의 방법을 이용하려던 모습이, 수구문 터는 조선 중기 이후 유행한 2층 수구로 축조하려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어 조선시대의 축성 기법과 공사 순서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이다. /김순희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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