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도시 솔뱅에 갔네/ 이백십여 년 전 세워진 산타 아이네스 성당에 들어가/ 잠시 묵주기도를 드리고 마당에 나오니/ 뜨락 한쪽 양귀비꽃이 나를 환히 반겨주었네/ 내가 이곳에 도착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별빛과 안개를 털어냈을까/ 몇 광년의 바람을 온몸으로 받아냈을까/ 양귀비꽃은 나의 볼에 입을 맞추어주었네/ 은은한 감촉이 촉촉했네/ 나는 눈을 감았네/ 이 눈물겨운 만남의 신비를 어찌할까/ 사랑이여/ 잠시나마 그대와 함께 있기 위하여/ 칠십 평생이 걸렸구나”(허형만 시‘양귀비꽃’)
이국땅에서 만난 가녀린 꽃 한 송이에서 시인은 이 우주의 비밀을 눈치챈다. 눈을 감을 수밖에 없는 만남의 감격이 오롯이 문장마다 전해온다. 양귀비꽃을 통해 전해지는 신의 말씀을 시인은 떨면서 받아 적는다. 양귀비 꽃잎의 촉촉한 감촉에서 꽉 짜여진 우주의 질서와 인연의 고리를 절실히 느낀다. 나를 만나는 이 순간을 위해 별빛을 털어내고 바람을 받아내며 기다려온 절실함에 어찌 눈물이 나지 않을까. 한 송이 꽃이 이러할진대 한 사람을 만나 사랑하는 일의 위대함이야말로 말해서 무엇하리. 그대를 만나기 위해 평생이 걸렸다는 시인의 고백에 내 마음도 촉촉해진다. 오늘 여기 살기 위해, 그리고 당신을 만나기 위해 우린 그 오랜 세월을 인내하며 기다려온 것이다.
꽃향기로 다가왔던 오월도 한참이 지나 어느새 유월이다. 그사이 모란은 뚝뚝 떨어져 내렸고 하얀 아카시아 꽃잎도 빛을 잃었다. 만나고 헤어지고 만나고 헤어지는 날의 속도가 갈수록 빨라짐을 느낀다. 그만큼 나도 나이를 먹었나 보다. 이제 봄도 보내야 하리라. 잡는다고 잡히지 않는 것이 계절이지만 짧은 봄이 아쉽다. 곧 여름이 성큼 다가올 것이다. 꽃 한 송이가 나를 만나기 위해 피어났듯이 봄이 떠나는 것 또한 다시 만나기 위한 이별이리라. 오늘이 가고 내일이 오는 것, 꽃이 피고 지는 것, 봄이 가고 여름이 오는 것, 이 당연한 듯한 일상이 바로 기적임을 마음에 꼭꼭 적어두는 날들이 되길 바라본다. /엄다경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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