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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에 밴 수많은 사연들 짧고 간결한 시어로

백소애 시민기자
등록일 2024-06-06 19:10 게재일 2024-06-07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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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영숙 시인 디카시집 ‘의자들’
‘의자들’을 출간한 문영숙 시인. /촬영 정경희
‘진작 문 닫았지/ 우리 집 양반은 재작년에 돌아가셨어/ 췌장암 진단 받고 3개월을 못 버티고 가버렸어/ 너무 열심히 살지 마/ 몸 상해.’ - 문영숙 디카시 ‘바다식당’

디지털 시대에 ‘디카시’의 탄생은 필연이었을까. 이 생경한 용어를 국립국어원 우리말샘에서 찾아봤다. ‘디카시’란 ‘디지털카메라로 자연이나 사물에서 시적 형상을 포착하여 찍은 영상과 함께 문자로 표현한 시’이며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문학 장르로, 언어 예술이라는 기존 시의 범주를 확장하여 영상과 문자를 하나의 텍스트로 결합한 멀티 언어 예술’이라 정의하고 있다.


문영숙 시인의 디카시집 ‘의자들’(도서출판 애지)이 나왔다. 여기엔 수많은 의자와 사연이 함께한다. 의자는 골목길에, 처마 아래, 다리 아래, 시장 모퉁이에서 홀로 녹슬고 쓸쓸히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과 시를 함께 놔두고 보니 의미 전달이 배가 되는 느낌이 든다. 문영숙의 사진에는 채도가 낮은 처연함이 깃들어 있다. 그 느낌은 시를 만나 확장되고 서사가 깊어진다.


“평소 사진을 많이 찍어두는 편이에요. 어느 날 보니 의자 사진이 유독 많은 거예요. 그 사진을 보고 있자니 사진이 말을 거는 거 같았어요.”


시인은 어린 시절 그림을 곧잘 그렸다. 시를 쓰게 되면서 굳이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지 않고 시로도 그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작년 6월부터 봉정사 아래 카페 꼬따지에서 시를 써내려 가기 시작했다. 오래된 탭북 하나 들고 한없이 고요한 풍경을 앞에 두고 ‘의자들’과 마주했다.


사진작가 이재는 그의 이번 시집을 두고 “소외받는 대상들에 대해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어조로 써내려간 그녀의 잔잔한 언어와 따스한 시선은 저녁을 수긍하고 아침을 받아들이는 깨달음과 담담한 위안이 되어 우리 옆에 자리잡는다”고 평했다.


의자에 앉은 이가 연상되는 시어들 사이로 생활밀착형 사진과 시가 합체돼 ‘의자들’의 삶과 세월을 노래한다. 한 가지 소재로 밀어붙이며 점층적으로 확장되다 마지막 시 ‘의자에게 의자를’로 마무리한다. 시인의 야무진 시선이 돋보인다.


용어는 다소 어색하지만 ‘디카시’는 시대의 변화와 함께 새롭게 향유되는 문화가 될 것 같다. 일본의 하이쿠가 일정한 음절로 구성되어 있다면 디카시는 별다른 형식이 없다. 형식을 뛰어넘을 시인의 다음 시집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백소애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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