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슬하지 말라”는 유훈 현재까지 따르며<br/> 농사 짓고 후학 양성 힘쓰는 선비 삶 살아
조선 초기 김균의 아버지 김용석은 당시 정국이 어지러워지는 걸 보고 안동 풍산 구담으로 내려왔고 “벼슬하지 말라”는 부친의 뜻에 따라 아예 벼슬이 나지 않을 자리 봉화군 봉화읍 거촌으로 들어왔다.
그로부터 500년이 흐른 현재 18대손 종손 김두순(92)씨에 이르기까지 이 유훈을 따르며 직접 농사 짓고 후학 양성에 힘쓰는 선비의 삶을 살아오고 있다.
봉화 거촌에 뿌리내린 김균의 둘째아들 쌍벽당 김언구는 생원시에 합격하고 학문에 조예가 깊었으나 조부의 유지를 받들어 벼슬길을 접고 살았다.
김언구는 선조의 뜻을 이어받아 벼슬에 나가지 않고 산이나 빈터에 나무 심기를 권장했다. 뜰에는 푸른 지조를 바꾸지 않는 소나무와 대나무를 심고, 날마다 이곳을 거닐며 자신을 의탁해 쌍벽이라 호를 지었고, 수양과 후학 양성에 힘을 쏟았다.
현재 쌍벽당을 지키고 있는 18대 종손 김두순씨는 젊은 날 외교관을 꿈꾸며 한국외대 영어과를 졸업했지만, 종손의 숙명을 받아들이고 후학을 가르치는 교직에 종사하며 국가중요민속자료 제170호 쌍벽당 종택과 정자를 지키며 살고 있다.
쌍벽당 안채는 1450년 김균이 건립했고, 솟을대문 행랑채, 안채, 사랑채, 중문채로 이뤄졌다.
본채와 마당의 좌측에는 2칸 규모의 아래채와 쌍벽당 정자, 사당 등이 있어 전형적인 조선시대 양반 가옥의 모습이다.
‘벼슬하지 말라’는 유지를 받들어 관직 출사보다 치산 재가를 위해 넓은 육간대청과 굵고 높은 원주 기둥으로 안채를 강조했고, 원주 기둥은 일반 전통가옥과 다른 쌍벽당만의 특징을 가졌다. 쌍벽당 정자는 1556년 창건, 정면 4칸·측면 2칸의 단층 팔각 기와집으로 전면에 계자난간을 둘렀다.
아주 오래된 집 기와에는 검버섯이 피었고 와송이 자라고 있다, 기둥, 서까래, 마루, 창호에는 세월의 먹물이 스며들었다. 오래된 집과 한 몸이 돼 살아가는 김두순씨의 삶에서 지켜야 할 가치를 본다.
김씨는 나를 주장하기보다 조상의 유훈에 따라 살았고, 주름진 모습이 흡사 쌍벽당 오래된 집과 닮아 보였다. 양반의 고장이자 선비의 고장인 봉화 쌍벽당 정자에서 영남 선비의 꼿꼿한 자존을 보았다. 오래된 집 곳곳에서 곱게 나이 들어가는 묵직한 아름다움도 본다.
쌍벽당을 지키고 있는 김두순 종손은 “쌍벽당을 관리하는 게 많이 힘들지만 찾아주는 내방객은 항상 반갑다”고 말한다.
“벼슬하지 말라”는 이 한마디에 쌍벽당의 역사가 시작되었고, 500년 역사 동안 이름난 조상은 없지만, 농사짓는 선비로 본분을 지키며 욕심을 멀리하고 절제하며 살아왔기에 쌍벽당의 오늘이 있었다고 김두순씨는 말한다.
/류중천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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