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해부터인가 수국의 계절이 오면 기림사를 찾았다. 요즘은 유행처럼 대단지 꽃밭을 조성해 꽃구경 나설 곳이 많아졌다. 그에 비해 기림사는 이미 오래전부터 수국이 아름답기로 알려져 있다. 주먹밥처럼 둥글게 모양 지어 핀 수국들은 너무 거창해 절 풍경을 거스르지 않되 존재감을 드러낼 만큼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수국이 줄지어 나란히 피어있는 종무소엔 귀여운 강아지가 그려진 벽화가 있다. 통상 십우도가 그려진 것에 비해 이색적이다. 곱게 핀 꽃들을 보며 대적광전에 이르렀다. 지혜의 빛으로 세상을 비춘다는 비로자나불을 모시는 법당이다. 내부엔 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이 온화한 미소로 자리잡고 있다. 가운데 비로자나불을 두고 왼쪽에 노사나불, 오른쪽은 석가모니불이 위치해 있다.
화려한 단청을 하지 않아서일까 세밀하게 만들어진 꽃창살이 더 도드라져 보인다. 대적광전에서는 조선 후기의 대표전인 불전 양식을 볼 수 있다. 선덕여왕 12년에 지어져 이후 1786년 6차 중창까지 여섯 차례 고쳐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림사는 신라시대 인도에서 온 승려 광유가 세운 사찰로 임정사라 불렸다. 이후 원효 대사가 중창하여 머물면서 기림사가 되었다. 석가모니가 머무른 기원정사 숲이 기림이라고 하며 그로부터 이름이 지어졌다 한다. 임진왜란 당시에는 전략적 요충지로 의병과 승병의 군사지휘소로 사용되었다.
천왕문을 지나 대적광전, 약사전, 응진전, 진남루, 관음전, 삼천불전, 삼성각, 명부전, 매월당 김시습 영당, 성보박물관으로 이어진다. 현재 보물 5건, 시유형문화재 2건, 문화재자료 3건을 보유하고 있다.
보물 415호 건칠보살좌상과 불상에서 발견된 고려시대 사경을 포함한 유물들은 기림사 박물관인 성보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으며 월요일은 휴무다.
기림사에서 또 하나 재밌는 것은 오정수다. 입구에 적힌 바로는 차를 달이는 다섯 가지 물이라고 한다.
기골이 장대해진다는 중방 장군수, 까마귀가 쪼아 판 샘인 동방 오탁수, 마시면 눈이 맑아진다는 남방 명안수, 폐의 기운을 다스려 마시면 마음이 편해진다는 화정수, 차수 중 제일로 꼽힌다는 북방 감로수다. 방문 당시 중방 장군수와 서방 화정수만이 사용 가능한 상태였다. 화정수는 화정당 옆에 위치하고 있는데 설명을 읽던 관광객이 바로 바가지에 물을 받아 들이켰다. 효과가 궁금하다.
박물관을 끝으로 담백하지만 힘이 넘치는 건물들, 보면 볼수록 찬찬히 볼수록 더 아름다운 정원을 뒤로하고 내리막길을 조심히 내려왔다.
다음 계절을 기약하며 기림사에서의 산책은 여기에서 마친다.
/박선유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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