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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총로에 핀 능소화

김순희 시민기자
등록일 2024-07-02 19:44 게재일 2024-07-03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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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해코지로 죽은 능소화<br/>경산시 노력으로 옛모습 되찾아
새로 옮겨 심은 능소화에 영양제를 주며 잘 보살피는 경산시.
경산시 자인면에 능소화가 만발했다. 장마가 시작되면 후두둑 떨어질까 봐 그전에 찾아갔다. 낡은 적산 가옥의 벽을 구불구불 타고 올라 여름을 화려하게 밝혀주던 능소화를 보러 사진에 진심인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누군가 밑동을 잘라버렸고, 아직도 사건이 해결되지 않았다.

‘능소화 테러’로 그림 같은 풍경을 잃었던 ‘자인 능소화 적산 가옥’에 새로운 능소화가 피었다. 경산시는 수령이 30년 정도 된 비슷한 크기의 능소화나무를 구해 지난해 4월 적산 가옥 앞에 옮겨 심었는데 다행히 올해도 풍성한 꽃을 피웠다. 2010년쯤 사진 동호인 사이에서 출사지로 유명했던 이 적산 가옥은 2018년 SNS를 통해 전국적으로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2022년 초 누군가가 능소화나무 밑동을 잘라내 나무가 말라 죽었다. 당시 집주인은 그해 5월쯤 나무가 절단된 사실을 확인하고 경찰에 신고했지만 정확한 범행 시기를 특정할 수 없어 미제사건으로 남았다. 이후 경산시는 지역 묘목단지에서 수령이 30년 정도 된 비슷한 크기의 나무를 구해 지난해 옮겨 심었다. 기존 나무줄기는 새 나무가 지지대로 사용할 수 있도록 남겨뒀다. 사진을 찍고 즐거워하는 사람들을 위해 애쓴 경산시의 배려에 고마움을 느끼며 내비게이션에 자인면 설총로 941이라고 찍고 찾아갔다.


가다 보니 ‘일연로’도 보이고, 근처에 ‘원효로’도 있었다. 하필 왜 설총로일까 동행한 역사 교사에게 물으니 설총이 경산 출신이라고 했다. 자료를 찾아보니 원효와 일연도 같은 경산 출신이라 경산시는 이들을 3명의 성현, 삼성현의 고장이라 부른다. 설총의 아버지는 원효대사이다. 어머니는 태종 무열왕의 딸 요석공주이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원효가 해골물을 먹고 당나라 유학을 포기한 뒤에 노래를 지어 불법을 전했는데 갑자기 그가 “누가 자루 빠진 도끼를 줄 것인가 내가 하늘을 받치는 기둥을 지을 텐데”라는 노래를 부르고 다녔다고 한다. 아무도 원효가 부르는 노래의 의미를 알지 못하던 중, 태종 무열왕이 이를 듣고서는 “원효가 자기한테 여자를 주면 뛰어난 현자를 낳게 하겠다라는 거로구나”라고 하고선 원효를 자신의 과부 된 딸인 요석공주와 맺어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왜 원효의 아들인데 설총이지 했더니 원효는 법명이고 본명은 ‘설서당’이다.


흔히 문자 이두를 만든 사람이 오랫동안 설총으로 알려져 있지만 국문학자들의 연구로는 이미 설총 이전부터 우리 말을 한자로 표기하는 이두나 향찰식의 표기가 있었다고 하며, 돌에 새긴 금석문을 통해 설총 시대 이전에도 정통 중국식 한문이 아닌 이두식 문장을 쓴 정황이 발견되고 있다. 설총은 한글 이전 고대 한국어의 표기법인 이두를 집대성했으며 신라에 유교를 확립시킨 뛰어난 유학자였다.


설총로 능소화 앞에 섰다. 담장에 능소화 그림을 보태서 사진 찍기에 더 좋은 장소였다. 우리 앞에 어르신을 모시고 온 일행들이 꽃 아래에 서서 한참을 서성거렸다. 이 아름다운 풍경을 누가 또 시기해 망치진 않을까 걱정이 앞섰다. 부산의 태종대에 수국으로 유명한 분홍집의 수국도 누군가에 의해 올해 꽃이 거의 못 폈다.


꽃 한그루가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사람들이 줄을 서서 사진 찍느라 수런거린다. 조용하던 골목이 수런거리는 게 못마땅한 누군가가 몇십 년 한자리에서 향기를 풍기던 꽃에게 해코지를 하고 말았다. 다행히 경산시의 노력은 2~3년만 지나면 능소화의 예전 모습을 찾을 것이다. 더 이상 전국의 꽃자리가 테러의 위협에 사라지지 않길 바라며 능소화 아래서 인증샷을 한껏 찍었다. 돌아오는 길, 먼 산에 뿌옇게 비구름이 몰려왔다. 밤새 능소화 꽃잎이 떨어질 것이다. 내일 아침엔 떨어진 자리도 아름다울 것이다. /김순희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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