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복지간에는 입술에 묻은 밥알도 무겁다’라는 속담이 있다. 삼복지간(三伏之間)이란 초복에서 말복까지를 말한다. 예나 지금이나 여름철 가마솥더위를 이겨내기란 쉽지 않다. 연일 계속되는 폭염 예보에 시원한 계곡과 바다가 간절하다. 에어컨 바람이 숨통을 틔우나 싶지만 실외기에서 뿜어내는 열기가 외려 더 숨통을 조이고 또 다른 고통으로 냉방병이 생겨났다.
한여름의 따가운 햇살은 논이 비좁도록 벼 포기를 빽빽이 늘이며 거침없이 무럭무럭 자라게 한다. 그러나 부지런한 농부는 그 햇살이 버티기가 힘들다. 예로부터 여름철의 습하고 무더운 날씨로 인해 떨어진 기력을 보충하고자 영양소가 풍부하고 열량이 높은 보양식을 삼복기간에 챙겨 먹었다. 나고 자라고 거두고 감추는 순리에 따라 모든 생물이 무섭도록 자라는 무더운 여름철에 농부가 힘을 내어 부지런을 떨어야 거두어들이는 가을 추수가 풍성해진다. 초복, 중복, 말복의 삼복은 풍습으로 내려오는 속절(俗節)로서 15일 간격으로 태양력을 따르는 24절기와는 성격이 다르다. 초복은 낮이 가장 길다는 절기인 하지로부터 세 번째 경일(庚日), 중복은 하지로부터 네 번째 경일, 말복은 가을이 시작된다는 입추로부터 첫 번째 경일이 된다. 옛사람들은 날짜를 육십갑자로 꼽았다. 초복에서 말복까지 기간은 30일이다. 올해 초, 중, 말복이 7월 15일(庚辰), 7월 25일(庚寅), 8월 14일(庚戌)로 초복과 중복은 10일, 중복과 말복은 20일 간격이다. 기간이 길어진 말복을 월복(越伏)’이라고도 한다.
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초복은 대개 절기상 소서(小暑)와 대서(大暑) 사이로 7월 중순경이다. 중복은 장마가 마무리 되는 7월 말로 습하고 무더운 기운이 한층 더 해 여름휴가와 맞물려 산과 바다로 피서객이 몰리기도 한다. 절기상 입추가 지나 맞이하는 말복도 8월 중순경이지만 여전히 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삼복 기간이 여름철 중 가장 덥다.
삼복은 삼경일(三庚日)이라고도 하는데 삼복이 굳이 경(庚)일인 이유는 무엇일까?
동아시아 전통 역학 원리 중 하나인 천간(天干)은 갑(甲), 을(乙), 병(丙), 정(丁), 무(戊), 기(己), 경(庚), 신(辛), 임(壬), 계(癸) 십간으로 구성된다. 이때 일곱 번째 천간인 ‘庚’은 ‘성숙해진 만물이 그 모습을 바꾼다.’라는 의미를 지니며 木, 火, 水, 金, 土 오행 중 ‘금(金)’을 나타낸다. 金은 가을을 뜻하며 만물의 기운이 팽창에서 수축으로 바뀌어 견고하게 열매가 여문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을의 쌀쌀한 金 기운은 찬 서리를 내려 여름내 자란 초목을 엄숙히 죽이며 천지의 숙살지권(肅殺之權)을 장악한다. 庚金은 양(陽)의 기운이다. 이렇듯 경일로 정해진 복날은 뜨거운 여름의 기운과 서늘한 가을의 金 기운이 한판 승부를 벌이게 된다.
삼복(三伏)의 복(伏)은 가을의 서늘한 기운이 여름의 더운 기운을 이기지 못하고 세 번 엎드려(伏) 굴복했다는 설도 있고, 사람이 여름철 더운 기운을 이기지 못해 개처럼 엎드려(伏) 있는 날이라는 설도 있다.
사마천의 ‘사기’에 따르면 기원전 676년 진덕공 2년에 처음으로 삼복 제사를 지내며 개를 잡아 충재(蟲災·해충으로 인한 농작물 피해)를 방지하고 개고기를 먹으며 열독을 다스렸다고 한다. 개고기 먹는 풍습은 이때부터 생겨났다. 그러나 2027년부터 시행될 ‘개식용 금지법’으로 보신탕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삼계탕, 장어, 염소탕 등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다가오는 말복에도 조상들의 지혜를 이어받아 이열치열의 뜨거운 보양식을 먹으며 무더운 여름을 이겨내고 강건한 모습으로 가을을 맞이해야겠다. /박귀상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