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함께 의성 고운사서 명상 수행
밤낮을 그치지 않고 흐르는 물은 발원지를 떠나 낮은 곳으로 흐른다. 구덩이를 만나면 채운 뒤 가고 바위를 만나면 돌아서 가고, 서두르지 않아 흘러감에 선두를 다투지 않으며 고요히 큰 바다에 이른다. 세상에 순응하는 물을 맹자는 학문에 비유했지만 나는 인생에 비유해 본다. 인생의 전환점에서 만난 바위 앞에서 웅크리고만 있기보다 순리를 따르는 물처럼 그렇게 고요히 돌아서 가자. 그래서 떠났다. 남편과 함께. 템플스테이의 테마는 ‘휴(休)’였다.
경북 의성군 등운산에 위치한 고운사로 가는 날, 아침부터 비가 내린다. 비가 오면 오는 대로 그 또한 즐겨보자. 고운사 도착 전 ‘최치원 문학관’이 먼저 눈에 들어선다. 마침 시간이 여유로워 잠시 들렀더니 최치원의 일대기가 순차적으로 전시되어 있었다. 신라 말기 골품제의 신분제도에 한계를 느낀 그는 12세에 당나라로 유학하여 18세에 장원급제를 한다. 그 유명한 ‘격황소서(檄黃巢書)’로 칼 보다 강한 붓의 힘을 보여주며 문장가로 이름도 떨친다. 그러나 신라로 돌아와 골품제도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시무책을 올렸으나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아 미련 없이 관직을 버리고 전국을 방랑한다. 천재로 태어났던 그는 골품제도의 희생양이 되어 자연과 더불어 신선처럼 살다가 떠났다.
고운사에 도착해 사찰복을 받아들고 방을 배정 받으며 템플스테이는 시작되었다. 고운사(孤雲寺)는 통일신라 신문왕 원년에 승려 의상이 창건한 사찰로 이후 최치원이 머물면서 가운루와 우화루를 건립하며 더욱 아름다운 사찰이 되었다. 구름 위에 떠 있는 누각이라는 뜻을 지닌 가운루는 올해 7월 17일 유형문화유산에서 국가유산 보물로 승격되었다. 우화루의 유명한 호랑이 벽화는 용맹과 사나움을 상징하기보다 자신을 잘 다스려 고요하고 평화로운 삶의 영위를 위해 그려졌다고 한다. 창건 당시 ‘高雲寺’였으나 두 아름다운 누각의 건립을 기념하며 최치원의 호를 따 ‘孤雲寺’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 밖에도 조선 고종황제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어첩이 보관된 연수전과 궁궐 형태의 솟을삼문 만세문이 격식과 권위로 연수전을 지키고 있는데 이는 우리나라 사찰에서 유일하게 고운사에서만 볼 수 있는 경내 왕실 건물들이다.
새벽 4시에 종각이 울리며 템플스테이의 하루가 시작된다. 4시 30분 새벽 예불, 6시 아침 공양, 6시 30분 등운 스님과 차담, 낮 12시 점심공양, 저녁 6시 저녁예불로 짜인 일과표에 참여 여부는 자유였다. 도반끼리 체험 왔다는 광주에서 오신 네 분과 함께 고요히 일정을 소화했다. 아름드리 천년숲길에 맨발걷기를 위해 잘 다져놓은 황톳길도 걸으며 사찰에 머무는 동안 고운과 함께 호흡하듯 했다.
천재였던 최치원도, 우둔한 나에게도 인생의 여로에 크고 작은 희로애락은 스스로가 감당해야 할 몫으로 주어진다. 어떻게 다스리는가는 본인 몫이다. 종교의 힘을 빌리든 여행을 떠나든 책을 읽든 친구와 수다를 떨든 침묵수행을 하든 나름의 방식으로 평온을 찾아가는 것이 인생이다. 고운사 들어설 때 저울추만큼 무거웠던 침묵이 고운사를 나설 때 침묵은 깃털처럼 가벼워져 있었다. /박귀상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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