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떡 차리고 풍물놀이로 마을 들썩
이날은 풋굿(풋구), 초연, 호미씻이, 농부의 날이라고도 하며, 1년 농사 중 가장 힘든 농번기가 끝나고 한숨 돌리는 시기인 음력 7월 중순 무렵이다. 농사일을 잠시 쉬고 머슴에게 하루를 즐기게 했으므로 ‘머슴 날’이라고도 했다.
호미씻이는 논밭에 김을 다 매어 호미를 씻어두고 놀기 때문에 생긴 단어다. 땅 지주는 세벌 김매기가 끝날 때 날을 잡아 머슴들에게 술과 음식을 마련해 위로잔치를 하는 데에서 시작됐다.
주인은 머슴에게 새 옷과 술, 음식을 내어주고, 씨름이나 팔씨름 등 힘자랑을 하고, 징·꽹과리·날라리·북·장구 등 농악기를 울리면서 질탕하게 하루를 즐긴다.
봄부터 일한 농부들에게 7월과 8월은 힘을 충전하고 가을을 준비하는 때다. 예전 풋굿날에는 술을 빚고, 떡을 하고 각자 집에서 음식을 가지고 나와 함께 먹었다. 풍물패는 집집마다 방문해 지신밟기를 했다. 이제 젊은 사람들이 빠져나간 농촌은 풋굿날 행사도 힘겹다.
봉화는 아직도 양력 8월 15경이면 어김없이 풋굿날에 마을 사람들이 모여 식사를 하는 게 이어지고 있으나, 음식을 장만하고 풍물놀이 하는 건 찾기 보기 힘들다. 어느 마을은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하고, 조금 여유 있는 마을은 생선회를 마련하는 것으로 풍습이 바뀌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마을 구성원들이 대부분 노인들이고, 젊은 부녀회원도 없어 힘들게 음식 장만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전엔 봉화의 모든 마을이 풋굿날을 맞아 행사를 치렀으나, 농촌사회의 변화와 인구 노령화로 요즈음은 경로당에서 한 끼 식사로 대신하거나, 윷놀이와 마을 노래자랑 정도로 바뀌었다.
‘풋굿’이란 풀밭에서 풍년과 안녕을 기원하는 굿을 하기에 붙여진 이름이며, 초연은 풀밭에서 잔치를 벌이기 때문에 붙은 명칭. 풋굿은 한자로 초연(草宴)이라고 하지만 봉화에서는 풋굿, 푸꾸, 풋구 먹는 날이라 부르는 게 보편적이다.
고문헌에는 세서연(洗鋤宴), 즉 호미를 씻는 연회라는 이름으로 기록돼 있다. 봄부터 사용한 호미를 잘 씻어 걸어 놓는 날이라는 의미다. 옛날부터 음력 7월 보름께에 각 농가에서 제각기 음식을 내어 함께 하거나, 돼지를 잡아 마을잔치를 하던 풍습은 사라지고 생활방식과 시대의 변화에 따라 마을회관이나, 경로당에서 하는 것으로 변화했다.
최근 찾은 봉화군 춘양면 황터마을에서는 뷔페식사에 노래방 기계를 느티나무 그늘에 설치하고 흥 좋은 몇 사람이 즐기는 모습이다. 전국의 풋굿은 거의 사라져 가고 있지만, 봉화에서는 8월 중순이면 예전 같지는 않아도, 풀 베고 점심을 함께 먹는 전통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두레가 사라진 농촌은 이웃간 소통의 기회가 많이 줄어들었다. 한마을에 살아도 다니는 길이 다르면 풋굿 같은 행사 때나 얼굴을 마주하는 사람들이 많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 귀농·귀촌과 다문화가정의 증가로 농촌 지역의 주민 구성이 다양해지면서 이웃간 관계도 많이 달라졌다.
조상과 가족·전통문화를 존중하고 고향을 사랑하던 미풍양속까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든다. 풋굿날 같은 세시풍속과 전통이 이어져야 마을공동체의 삶이 회복되고, 마음 넉넉한 사람들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농촌마을로 이어질 것이다. /류중천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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