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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을 건너가는 그녀들

김순희 시민기자
등록일 2024-09-03 18:19 게재일 2024-09-04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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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파랑길 16코스를 걷는 네명의 친구들.

아침 윤슬이 곱다. 포항은 물고기 비늘처럼 반짝이는 아침 윤슬을 보기 위해 도시 중심에서 바닷가까지 어디나 10분이면 충분하다. 산과 바다를 동시에 소유한 도시라 복이 많다고 놀러 온 지인들이 모두 부러워한다. 부산에서 고성까지 걷는 해파랑길 중에서 13~18코스가 포항을 지난다. 다섯 코스를 보유한 도시가 흔치 않다. 해안선이 어느 도시보다 긴 포항이기에 가능하다.

전국에 흩어져 있던 네 명이 한 달에 한 번 해파랑길에서 만나 함께 걷는 분들이 이번에는 흥환보건진료소에서 송도해수욕장까지(16코스)를 지난다고 해서 만나러 갔다. 부산 오륙도에서 출발, 매월 토요일 한주 선택해서 해파랑길 한 코스씩 걷기로 약속했다고 한다. 시작한 날은 2022년 3월 19일이니 벌써 2년이 넘도록 걸었다. 이상하게 모임 할 때마다 비가 와 비도 모임의 일원인가 했더니, 첫날에도 여지없이 비가 왔다. 비와 함께 걸으니 풍경이 더 아름다웠다고 했다. 그래서 우산과 비옷은 항상 챙겨 다닌다.

이들은 20대에 다음카페 산악 동호회에서 만난 사이로 나이도 다르지만 5년 넘게 활동하며 지리산 종주까지 함께한 친구들이다. 결혼 후 1년에 한 번 정도 만나며 관계를 이어가다가 그중에 한 친구가 해파랑길을 완주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모두 걷는 것을 좋아하지만 체력상 등산은 부담스럽고 함께 뭔가를 할 수 있는 게 없을까 하다가 해파랑길을 걷기로 하고 시작해서 포항에 이르렀다.

가장 기억에 남는 길은 굶주림에 허덕였던 6코스. 그전까지는 먹거리가 풍족했었는데 이 코스는 산길이어서 배 속을 달래 줄 먹거리가 없었다. 하필, 다들 간식도 챙겨오지 않은 상황이라서 배고픔에 시달려야 했다. 6시간을 물 한 병으로 버텼다. 이 코스를 계기로 한두 가지씩 먹을 걸 챙겨 다니게 되었으니 이젠 쉬는 시간이 즐겁다.

가장 아름다운 곳이 어디냐는 질문에 시작점이던 부산 오륙도가 그렇게 멋진 줄 몰랐다고 한다. 사진 찍느라 멈춰 서는 일이 많았는데 해안을 계속 걸으니 바다 풍경 사진은 덜 찍게 되더란다. 지나는 동네 구석까지 걷게 하는 길 구성이 좋았고, 힌남노 이후 코스가 바뀐 곳도 있더라고 먼저 걸어본 친구가 알려주었다.

가방에 챙겨가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지난해 하루 쉬며 제주 여행 가서 뿔소라 축제 진행요원들 비옷이 예뻐 동문시장에서 사 가방에 넣어 다니고, 우산, 비 올 때 운동화를 감싸는 것, 믹스커피, 차가운 물, 뜨거운 물 따로 텀블러 두 개, 사탕 육포 등등 많이도 챙겼다. 가장 특이한 건 안성탕면이었다. 끓여 먹으려는 게 아니라 걸으며 과자처럼 먹는다고 했다.

걸으며 변한 것이 있을까, 생각이나 몸이나 뭐든 궁금했다. 걷다 보면 분명히 아는 장소였는데 걸으며 보니 달라서 가족들 데리고 다시 찾아가 본다고 했다. 몸도 마음도 지쳐 있을 때 시작하게 되어 걱정스러웠는데 우리나라를 이렇게 천천히 느낄 수 있게 하는 해파랑길이다. 차를 달리며 안 보이던 것이 자전거를 타면 보이고, 그보다 느리게 걸으면서 보이는 것들이 더 많았다. 그리고 아주아주 길어질 수도 있겠지만 이런 긴 여정을 함께 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게 참 든든하다.

대장정을 위해 평소에 따로 하는 게 있냐고 물으니 평소 산악회 다니는 분, 동네 산 오르기, 매달 빠지지 않고 걷기로 해서 수영을 등록하기도 했단다. 물론 평소 생활하는 걸로 충분하다고 하는 분도 있었다. 기본 강단이 있어 보였다. 이 길을 다 걷고 나면 제주 올레길(27코스)과 남파랑길, 서해랑길까지 접수하고, 따로 신청해야 걸을 수 있는 DMZ 평화의 길도 걷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김순희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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