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때, 매 학기 폐지를 가지고 오는 날, 아나바다 바자회를 하는 날이 있었다. 엄마 친구 아들 딸의 옷을 물려 입고 학용품을 물려받고 물려주기도 했다. 학교에서는 아나바다 운동을 배우고 실천했고 물 부족에 대한 교육을 학생들의 귀가 닳도록 했다. 덕분에 지금 물건을 아껴 쓰지 않고 낭비한다면 미래에 후손들이 우리를 원망하고 심각하면 지구가 멸망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항상 머리로 생각하고 마음으로 느끼고 자랐다.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그 결과가 이렇게 빨리 찾아올지를….
매일 매일이 날씨를 예상하기 힘든 날이 되었고, 봄과 가을은 어디로 납치되었는지 알 수 없어졌다. 불시에 내리는 소나기는 마른하늘에 날벼락 수준이었고, 우산을 준비할 시간조차 주지 않아 비 맞은 생쥐 꼴이 되는 사람들을 많이 만들었다. 매년 여름마다 최대치를 갱신하는 무더위는 몸이 약한 노인들을 죽음으로 내몬다.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들 대신 하늘을 나르는 비행기만 반짝이고, 맑은 하늘을 볼 수 있는 날은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 두어야 하는 날이 되었다. 여름휴가 때 몸을 담그고 싶은 푸르른 바다와 맑은 계곡은 어디였지 싶을 만큼 줄어들었다.
기후 위기는 이미 닥쳐왔고 지금도 진행 중이며 앞으로 더 심해질 것이 분명하다. 이미 이렇게 된 거 더 이상 막을 수도 없는데 나도 막 쓰고 막 버리고 편하게 살겠다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한다고 죄를 짓는 것도 법적 처벌을 받는 것도 아니다. ‘나 하나쯤이야’ 생각할 수 있고, 하나가 그렇게 행동한다고 해서 나쁜 효과를 크게 주지 않을 수도 있다.
세계 미인대회인 미스어스 2022에서 마지막 질문이 있었다. ‘이 세상에서 바꾸고 싶은 것이 하나 있다면 무엇이고, 어떻게 그것을 바꿀 것이냐’ 최종까지 남은 4명의 참가자는 모두 자연보호에 대해 이야기한다. 최종 1등을 한 대한민국의 최미나수는 대답했다. 우리에게 ‘공감’이 필요하다고.
인간관계에서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고 그 입장이 되어서 이해해보고 내가 그 사람이면 어땠을지 가정해보는 다소 귀찮고 성가신 작업을 해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 ‘공감’이다. 우리가 자연을 공감하려면 어떤 과정이 필요할까? 먼저 자연이 생명임을 인식하고 자연을 느끼고 생각하는 시간을 일상에서 가지고 자연과 내가 하나임을 깨닫고 나를 지키듯 자연을 지키자는 생각을 가지고 실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당연히 이 또한 인간관계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 귀찮고 성가신 과정이다.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기후 위기’를 주제로 가르치는 때가 종종 있다. 그때마다 어린 시절 보았던 밤하늘의 별 이야기를 해준다. 아이들은 대체로 그 말을 믿지 않는다. 그렇게 짧은 시간 동안 이렇게 큰 변화가 있었다는 사실이 믿기 어려운 것이다. 나 또한 믿기 어렵다. 가끔 생각한다.
지금보다 조금 더 미래가 될 나의 자녀가 나에게 하늘이 원래 이랬는지 나에게 질문하는 날, 나는 무엇이라 대답해야 할까. 그 어떤 말도 그 질문의 답으로 적절하지 않다. 그저 내 자녀에게 미안하고 부끄러울 뿐일 것이다. ‘나 하나쯤이야, 내가 노력한다고 뭐가 변하겠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한마디만 전해주고 싶다. ‘당신의 자녀가 엄마 아빠! 엄마 아빠가 어릴 때도 하늘이 이런 색이었어?’라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해주겠느냐’고.
/김소라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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