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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의 음덕을 기리는 풍성한 한가위

엄다경 시민기자
등록일 2024-09-12 18:59 게재일 2024-09-13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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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맞아 되새기는 부모님 사랑
조상의 음덕을 기리는 차례상 모습.

옛 어른들은 은행에 대한 개념이 적었다. 돈이란 자신이 알아서 어딘가 은밀한 곳에 꽁꽁 숨겨두어야만 안전하다고 여겼다. 궁색한 시골 살림에 한 푼 두 푼 모은 돈을 베갯 속 아니면 이불 속 그도 아니면 장판 밑에 넣어 두고 가끔씩 들여다 보는 것을 삶의 낙으로 여겼다. 그 용도야 말할 것도 자식을 위해서였다. 자신 잘 먹고 잘 입자고 돈을 꽁꽁 숨겨둔 분은 별로 본 적이 없다.

평생을 자식들 잘 되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살아오신 분들. 결혼 전 시골 농협에 근무할 때였다. 어느 날 한 할머니가 장판 밑에 오래 넣어 두어 누릇누릇 눌어버린 지폐를 한 무더기 가져오셨다. 지폐계수기도 없이 손으로 돈을 세던 시절이라 난감하기 그지 없었다. 오랜 열기에 삭아서 세어지지조차 않던 지폐들. 찌든 냄새에다 곰팡이마저 슬어 있었다. 햇병아리 직원이었던 내가 아무리 “할머니 장판 밑에 돈 넣어 두시면 안 돼요 이렇게 망가지면 교환 못 해드려요”말해 보았자 소용없었다. 할머니는 그저 고개만 끄덕이며 자신의 소중한 보물을 흐뭇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그때를 떠올리며 시 한 편을 읽어본다.

“어머니는 입버릇처럼 식구들 몰래 내게만/ 이불 속에 칠백만원을 넣어두셨다 하셨지/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 이불 속에 꿰매두었다는 칠백만원이 생각났지/ 어머니는 돈을 늘 어딘가에 꿰매놓았지/ 대학 등록금도 속곳에 꿰매고/ 시골에서 올라왔지/ 수명이 다한 형광등 불빛이 깜박거리는 자취방에서/ 어머니는 꿰맨 속곳의 실을 풀면서/ 제대로 된 자식이 없다고 우셨지/ 어머니 기일에/ 이제 내가 이불에 꿰매놓은 칠백만원 얘기를/ 식구들에게 하며 운다네/ 어디로 갔을까 어머니가 이불 속에 꿰매놓은 칠백만원/ 내 사십 줄의 마지막에/ 장가 밑천으로 어머니가 숨겨놓은 내 칠백만원/ 시골집 장롱을 다 뒤져도 나오지 않는/ 이불 속에서 슬프게 칙칙해져갈 만원짜리 칠백 장”

우리의 부모님들은 이렇게 오로지 자식을 위해서 돈을 모았다. 그 돈이 쌓여 자식들의 방값이 되고 등록금이 되고 결혼자금이 되었을 것이다. 칙칙하고 냄새 날 때까지 소중하게 아무도 몰래 숨겨 두던 귀한 돈. 자신은 안 입고 안 먹고 안 쓰면서 모은 그 한 푼 두 푼 덕으로 우리는 지금 이만큼 풍족하게 산다. 하지만 제 생활에 바빠 자주 그 고마움을 잊고 살고는 한다. 폭염으로 몸살을 앓던 세상도 이젠 아침 저녁으로는 가을로 모습을 바꾼다. 들판이 매일매일 색을 바꾼다. 곧 추석이다. 장판 밑에 이불 속에 자식들을 위해 쌈짓돈을 모으며 그 돈이 다 삭는 줄도 모르고 기도를 멈추지 않던 부모님의 은혜를 다시금 떠올려 본다.

/엄다경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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