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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련한 옛 이야기 길섶마다 도란거리는 봉화 ‘닭실마을’로 가을 산책 어때요?

류중천 시민기자
등록일 2024-09-26 18:04 게재일 2024-09-27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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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암정의 고풍스런 경치.

가을은 떠나는 계절이라고 한다. 청명한 하늘은 먼 풍광까지 즐길 수 있게 하고 오곡백과의 풍요로움이 마음의 여유를 갖게 하는 사색의 계절. 누렇게 고개 숙인 벼가 익어가는 들판 너머로 멋스러운 청암정과 중후한 자태의 고택과 돌담길이 보인다.

고향마을은 아니어도 호젓한 시골 풍경 속에서 옛 모습을 다시 보고 싶어지는 계절. 가을에 더 아름답고 정겨운 여기는 봉화 닭실마을이다. 보물 2182호 청암정이 있고 석천계곡과 함께 명승지로 지정된 곳이다. 석천계곡에서 닭실마을로 이어지는 길에는 울창한 송림과 아름다운 너럭바위가 조화를 이루고, 가지런하게 익어가는 논 사잇길로 고향 냄새가 유혹한다. 유별나게 덥고 길었던 여름을 보내고 하늘이 높아진 가을 길 따라 ‘선비의 고을 봉화’ 그중에서도 닭실마을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기에 제격이다.

닭실마을은 ‘택리지’를 쓴 이중환이 안동 내앞마을과 하회마을, 경주 양동마을과 함께 영남 4대 길지로 꼽았다. 마을 앞뒤를 감싼 나지막한 구릉이 아늑한 느낌을 준다. 닭이 알을 품고 있는 ‘금계포란’의 명당으로 알려져 있으며, ‘닭실’이라는 지명도 여기에서 유래했다. 조선 전기의 관료이자 사림의 모범이었던 충재 권벌 선생이 1520년 이곳에 이주해온 후 안동 권씨 충정공파 후손들이 500여 년 동안 살아온 마을이다. 충재종택과 청암정, 석천정사, 삼계서원, 사설당, 송암정, 갱장각 등이 있으며 충재유물전시관에는 보물 482여 점을 포함해 고서, 고문서 등 5000여 점의 유물이 소장돼 있다.

닭실마을은 한과로도 유명하다. 제사상에 올리기 위해 만들었던 한과가 상품화되어 명성을 얻고 있다. 48시간 반죽을 늘여 튀기고 조청을 발라 튀밥옷을 입혀 완성하기까진 꼬박 사흘이 걸린다.

영남의 최고 정자라고 평가받고 있는 청암정은 충재 권벌이 기묘사화로 낙향 후 1526년 지은 것이다. 거북 모양의 너럭바위 위에 세워진 청암정에 오르려면 외돌다리를 건너야 하며 연못 속에 섬처럼 거북바위가 있고 그 등에 정자가 올라앉아 있다. 아직은 이르지만, 단풍이 들면 정자의 운치를 더해주고 왕버들숲이 청암정을 수놓아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다. 청암정에서 석천정사로 가는 길에는 황금빛으로 익어가는 벼와 코스모스가 반긴다. 석천정 아래 물속에 책상처럼 돌출한 바위인 사자석, 사자석 오른쪽 암벽에 있는 청하굴은 옛날에 신선이 살았다고 전해진다. 천하동천이라는 글귀가 있는데 신선이 사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석천정 위쪽 비룡폭포는 바위 사이로 힘찬 물줄기가 용트림하듯 흐르고, 폭포 주위에는 수많은 바위가 장관을 이룬다.

세월의 무게와 이야기를 품은 아름다운 닭실마을의 가을 산책은 멋과 맛이 어우러져 느긋한 여유로움이 있다. 아련한 옛이야기 길섶마다 도란거리고, 역사의 향기가 보이는 고향 같은 닭실마을 길을 여유롭게 걸어보길 바란다.

/류중천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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