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간송미술관 개관기념 ‘여세동보 국보·보물전’ <br/>훈민정음 해례본’·신윤복의 ‘미인도’ 등 97점 전시
‘여세동보(與世同寶)’. ‘세상과 더불어 보물을 함께하다’라는 뜻으로 보화각 머릿돌에 새겨진 글이다. 간송의 스승 오세창이 제자가 수집한 ‘한국의 보배를 국민과 함께 누리자’라는 의지로 썼다. 대구간송미술관 개관기념 전시 슬로건도 ‘與世同寶’다.
지형 그대로를 살리며 자연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대구간송미술관 입구에는 우리의 문화유산을 지키기 위한 간송의 숭고한 신념을 대신하듯 11개의 아름드리 소나무 기둥이 굳건한 모습으로 당당히 서있다. 미술관의 광장에서 바라본 멋스런 소나무와 내려다보이던 대구 시가지의 모습도 더없이 아름답다. 무엇보다 설레는 것은 대구에서 간송 컬렉션의 진품들을 만난다는 것이다. 대구간송미술관은 ‘간송미술관’의 유일한 상설 전시공간으로 탄생했다.
가장 어려웠던 시기에 우리 것을 지키고자 노력했던 간송의 문화보국(文化報國) 정신을 기려 국채보상운동의 시작점이자 한국 근대미술의 발상지인 대구에서 ‘간송미술관’이 새롭게 출발했다. 개관을 기념하는 ‘여세동보(與世同寶) 국보·보물전’이 지난 9월 3일을 시작으로 12월 1일까지 열린다. 전시품들은 하나같이 귀중한 가치를 지닌, 교과서에서 먼저 만나게 되는 보물들이다.
‘훈민정음 해례본’, 신윤복의 ‘미인도’, 추사의 ‘대팽고회’, 심사정의 ‘촉잔도권’등 귀한 국보와 보물 97점을 한 자리에 전시해 한 번에 볼 수 있다는 것은 전례 없던 것으로 이런 행운은 대구간송미술관이 개관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전시실은 다섯 공간으로 나뉘어져 있다. 많은 관람객으로 전시실마다 길게 늘어선 줄은 짜증보다 진품을 만난다는 설렘이 주는 기다림으로 외려 즐겁다.
추사는 생애 마지막 해인 1856년, 가족과 지내는 평범한 일상이 가장 행복하다는 걸 깨닫고 ‘진수성찬은 두부 오이 생강 채소이고 가장 좋은 모임은 부부와 아들 딸 손자와 함께하는 것이다(大烹豆腐瓜薑菜, 高會夫妻兒女孫)’라는 작품을 남긴다. 이 작품의 진품을 보게 될 줄이야! 마치 추사를 만난 듯하다.
목숨 걸고 지켰던 ‘훈민정음 해례본’은 우리 글 한글이 최고 수준의 언어학적, 음성학적, 철학적인 이론을 적용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극비리에 해례본을 소장하게 된 1940년 7월은 우리말이 말살되고 한글학자들이 탄압받던 일제강점기로 ‘한글은 한국 고유의 창살 문양에서 창제되었다’는 것이 당시 일반적인 설이었다. ‘훈민정음 해례본’을 지켜 낸 것은 우리민족의 얼과 혼을 지켜 낸 것이다. 진품을 보았을 때 나도 모르게 심장이 뛰었다.
‘청자삼감운학문매병’은 일본 상인이 소장하고 있던 도자기를 당시 서울의 기와집 20채 값에 해당하는 2만원에 구매했고 이후 그 상인이 산값의 두 배에 되팔기를 권했지만 간송은 “이보다 더 좋은 물건을 가져오면 그것은 제값을 주고 사고 이 매병은 2만원에 다시 드리겠소”라며 정중히 거절한다. 간송에게 있어 보물이나 골동품은 재물의 가치를 따져 소유하는 ‘문화재’가 아니라 우리 것을 지켜야한다는 신념으로 소장한 우리의 ‘문화유산’이었다.
전시 된 작품 하나하나가 값을 따질 수 없는 보물들이지만 무엇보다 소중한 보물은 우리 문화유산을 지켜서 우리 국민들과 함께 나누고자 했던 간송의 ‘숭고한 정신’이 아닐까 싶다. 돌아오는 길,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이 결코 부럽지 않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박귀상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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