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한 의견 가지면 동조 넘어 ‘집단 극화’로… <br/> 부디 군중의 심리가 나라의 평안함에 힘 실리길
‘군중심리’의 사전적 정의는 많은 사람이 모였을 때, 자제력을 잃고 쉽사리 흥분하거나 다른 사람의 언동에 따라 움직이는 일시적이고 특수한 심리상태를 말한다. 솔로몬 애쉬(Solomon Asch)의 동조 실험에서는 피험자들이 명백히 틀린 답마저 다수의 의견에 동조하며 선택한다. 특정 제품이 인기를 끌면 ‘많은 사람이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그 제품을 더 선호하게 되고, 정치적 토론에서는 비슷한 의견을 가지면 동조를 넘어 집단 극화 현상이 일어나기도 한다.
필자가 정확한 검증 없이 이규보의 ‘와이로’를 우리말이라고 믿었던 것도 결국 군중심리의 일원이다. 이규보 문집에 실렸다는 구성 탄탄한 우화가 있다. 까마귀와 꾀꼬리의 노래 대결에 심판은 백로. 꾀꼬리가 더 아름다운 소리를 위해 노력하는 동안 까마귀는 열심히 개구리를 잡아서 백로에게 바친다. 당연히 승리는 까마귀 몫이고 여기에서 ‘뇌물’을 뜻하는 와이로(蛙利鷺)가 생겨난다. 개구리 와(蛙), 이로울 리(利), 백로 로(鷺)로 이루어진 ‘와이로’는 단순 우화에 실존인물인 고려의 문신 이규보가 등장하며 사실적인 이야기로 바뀌어 사람들의 믿음에 확신을 준다. 급기야 뇌물을 뜻하는 일본말 와이로(わいろ)의 어원이 우리말 와이로(蛙利鷺)였나? 하는 의심을 넘어 우리말이라 단정 짓는다.
신분차별과 매관매직이 극심했던 고려시대. 어릴 때부터 신동소리를 들으며 자랐던 이규보(李奎報)는 번번이 과거에 낙방을 하자 세상을 등지고 초야에 묻혀 책만 읽는다. ‘나는 있는데 개구리가 없는 것이 인생의 한’이라는 ‘유아무와 인생지한(有我無蛙 人生之恨)’을 써서 대문에 붙여 둔다. 당시 임금이었던 명종이 미복을 하고 민심을 살피던 중, 깊은 산중 민가 대문에 적힌 이 글이 너무 궁금하여 주인을 만나 ‘와이로(蛙利鷺)’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고 이에 임금은 임시과거 정보를 흘리고는 궁궐로 돌아와 임시과거를 열 것을 명한다. 임시과거 시제는 ‘유아무와 인생지한’이었고 장원급제한 이규보는 고려의 유명한 학자가 된다.
이야기 구성이 우화와 더불어 많은 사람이 믿을 만큼 탄탄하다. 필자도 일본어 와이로(わいろ)가 우리 옛글 구결(口訣)과 닮았다는 생각에 와이로(蛙利鷺)가 우리말이라 확신했다. 그러나 우리말 사전 어디에도 ‘와이로(蛙利鷺)’는 검색되지 않는다. 국립국어원에서는 일본어인 ‘와이로’ 대신 우리말 ‘뇌물’을 쓰도록 권장한다. 알고 보면, 사전만 찾아봐도 허구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2016년 10월 24일로 돌아가 보자. 한 언론사에서 태블릿PC를 운운하며 최순실에 대한 단독 뉴스를 띄운다. 뇌물에 분노하며 순식간에 대한민국이 발칵 뒤집힌다. 누구도 정확한 정황 보도를 기다릴 생각을 않은 채 뒤따르는 온갖 루머까지 집어삼키며 군중의 몸집은 커져간다. 촛불집회와 중학생까지 동참한 시국선언은 거침없이 탄핵으로 이어지고, 몸집 키운 군중은 원하는 걸 얻은 뒤에야 흩어진다. 군중심리로 뭉쳐진 군중은 무서울 게 없다.
권력다툼은 동서고금 인류가 존재하는 한 함께한다. 인간광우병, 사드 사태, 태극기부대 등등도 군중심리에서 자유롭지 않다. 맹자는 인간이 갖춰야 할 네 가지 덕목에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시비지심(是非之心)’을 말했다. 나라가 평온하길 바라는 마음은 누구나 같지만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이 가을, 꽃망울 터트리고 싶어 아우성인 국화를 보며 부디 군중의 심리가 나라의 평안함에 힘이 실리기를 바라본다. /박귀상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