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스 씨에 들어섰다. 너른 정원에 물안개가 피어오른다. 사내아이 둘이 기다렸다는 듯 뿌연 안개를 휘젓고 다닌다. 함께 그 속에 뒹굴고 싶어 우리도 그 속으로 들어가 그림이 된다.
전시실로 발길을 옮기니 입구의 차규선 작가의 귀향 전시 포스터가 벽면 가득한 크기로 붙었다. GOING BACK HOME, 경주가 고향인 작가가 고향의 언덕을 그려 펼쳐놓은 화려한 귀향이다. 2001년, 서른셋의 차규선은 호암미술관에서 본 분청사기에 반해 그 제작기법과 이미지를 반영하여 흙을 고착 안료와 섞어 캔버스 표면에 바르고 백색의 아크릴 물감으로 전면을 칠한 후 물감이 굳기 전에 나무 주걱이나 나뭇가지 등으로 풍경의 형상을 그리거나 긁어냈다. 분청 회화의 시작이었다.
그림 앞에 서니 자꾸만 그릇처럼 질감을 만져보고 싶게 만든다. 가까이 가서 눈으로라도 만져보려 자세히 살폈다. 초코케이크 위에 생크림을 올려놓은 듯하다. 손으로 쓰윽 찍어 맛보고 싶다.
소나무 가득한 그림 속에서 작가의 고향 집이 있나 살핀다. 그는 고등학교 때까지 경주 남산 근처에서 살았다. 태어나서부터 어른이 될 때까지 굽고 휘어진 소나무 숲에서 하루 종일 뛰어다니거나 누워있기도 했다. 솔숲을 가로질러 학교로 걸어가기도 했다. 그림의 소재가 경주의 소나무가 되는 것은 필연일 것이다.
그는 고등학교 때부터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렸다. 어떻게 하면 소나무를 제대로 그릴 수 있을까, 그의 이런 생각이 작업실의 수백 장 삼릉의 소나무 사진을 보면 짐작이 간다. 전시회장 창가에 커다란 백자 항아리가 앉았다. 차규선 작가의 그림 속의 푹하게 내린 하얀 눈 색을 닮아 잘 어울렸다.
이번 전시에 차규선 작가의 아버지, 경주 가는 길 등 작가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는 그림도 있다. 이 길은 어디쯤일까 상상하며 길 속으로 걸어가 본다. 길 그림 맞은편에는 불빛 아래에서 수런거리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한곳에 특별히 환한 조명을 비춘 풍경은 프란시스 고야의 1808년 5월 3일 마드리드 방어군의 처형을 떠올리게 한다.
2019년부터 차규선의 풍경 작업은 꽃밭이다. 모퉁이를 돌아 또 다른 방에 들어서자 분홍빛이 지천이다. 돌산인 남산을 이른 봄에 올라 본 사람은 보았을 것이다, 흐드러지게 핀 진달래 무리를. 작가의 마음속 오솔길을 오르던 관람객이 가쁜 숨을 고르며 잠시 진달래색에 취해 본다. 그 옆에 산수유, 또 고개를 돌리면 매화 정원이다. 그 향에 취해 어린아이처럼 사뿐거리며 그림 속을 뛰어다녔다. 검은 바탕에 수선화가 그득한 그림 앞에서는 작가의 마음을 느끼려 다소곳해진다.
마지막 방은 꽃이 별처럼 박혔다. 작가의 과잉과 절제를 동시에 품은 그의 최신작이다. 꽃과 나무의 형상 대신 우주의 팽창 같다. 작가의 그림의 영역이 어디까지 퍼져갈지 기대된다. 방을 나오며 작가의 그림을 보는 관람객을 그린 그림을 본다. 작은 액자 속에 작은 사람이 내가 되는 순간이다.
경주 플레이스 씨는 지난 문봉선의 먹 바람 전시도 그렇고 이번 차규선 작가까지 경주를 그린 작가들을 찾아낸다. 하지만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전시장을 찾는 이가 적다. 황리단길에 사람들이 북적이는 것에 비하면 초라하기까지 하다. 커피값이나 비슷한 입장료가 아깝다는 이도 있다. 경주가 문화로 풍성하길 바라며 플레이스 씨를 공개한 주인장의 뜻을 경주 사람들조차 모른다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초기작부터 최근작까지 차규선 작가의 작품 변천사를 담았고 고향 사람들에 대한 일종의 보고회 성격도 띠는 이번 전시회는 오는 12월 15일까지 열리니 경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찾아가 주길 바란다. /김순희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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