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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곡(霞谷)마을 은행나무

박귀상 시민기자
등록일 2024-11-21 18:18 게재일 2024-11-22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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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안강읍 하곡리 마을입구<br/>황금빛 물든 웅장한 은행나무<br/>늦가을 나들이객 발길 줄이어
지난 15일 오후 시민들이 노랗게 물든 경주 하곡마을 은행나무 아래서 늦은 가을을 즐기고 있다.

샛노란 은행잎은 국화만큼이나 가을의 대명사다. 땅도 나무도 황금빛으로 물들이는 은행나무 단풍은 아름다움에 기품을 더한다. ‘너무 보고 싶어서’ 가을이면 꼭 찾아가는 은행나무가 있다. 절정을 놓칠세라 주말마다 가기도 한다. 보고 있으면 마음이 절로 설렌다.

경주시 안강읍 하곡리 마을입구를 지키는 이 은행나무는 1982년 10월 29일 보호수로 지정될 당시 300년으로 추정되었다. 서원이나 재실이 아닌 하곡마을을 지키는 수호목이다. 굳이 노랗게 물들지 않아도 위엄 있는 웅장함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운치가 있어 가을이 아니어도 마음이 어지러울 때면 종종 찾아간다. 올 가을 단풍도 변함없이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많이 알려지지 않아 호젓하게 즐기는 맛이 있었는데 올해 부쩍 찾는 이가 많아진 듯하다.

황금빛 은행잎을 즐기며 가을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은 우리지역 주변에도 많이 있다. 하곡마을 외에도 덕동마을, 도리마을, 운곡서원, 통일전 거리, 용담정 가는 길 등등에서 늦어진 가을이 아직 진행 중이다. 운곡서원은 주차할 곳이 없어 돌아갈 정도로 많은 사람이 찾는다. 인물로만 따지면 운곡서원 보다 하곡마을의 은행나무가 훨씬 잘생겼지만 터 잡은 곳의 기운이 인기도를 달리 한다.

바닥이 온통 황금색으로 물든 하곡 은행나무 쉼터에 앉아 오후를 즐기시던 마을 어르신이 “내가 처음 시집왔을 때는 지금보다 더 잘생겼었지. 세월을 보내며 가지도 부러지고 하면서 지금은 외려 더 못나졌어.” 라고 하셨지만 6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을을 지키며 여린 인간을 품어주는 그 너른 품은 그대로인 듯하다.

은행나무는 천적이 없어 병충해에 강한데다 불에 잘 타지 않아 3000년을 두고 살아간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나무는 1100살로 경기도 용문사에서 천수를 누리고 있다.

공자 나이 30에 ‘이립(而立)’이후 은행나무의 단 위에서 제자를 가르쳤다는 설이 있어 조선 중기 동지성균관사로 임명된 대사성 윤탁(尹倬)이 성균관 명륜당 뜰에 은행나무 두 그루를 마주보게 심는다.

그는 이들을 ‘문행(文杏)’이라 부르며 배우는 자를 경계하여 “뿌리가 깊으면 가지와 잎이 반드시 무성하게 된다”라고 말한다. 이후 지방의 향교와 서원들도 따라서 심기 시작한다.

그러나 행단(杏壇)의 나무가 살구나무라는 주장도 강하다. 조선후기 실학자 이규경이 ‘행단변증설’에서 그 주장을 일축한 듯 했지만 여전히 은행나무와 살구나무는 시비(是非) 중이다.

그러나 명륜당 뜰에 은행나무가 심겨진 이후 보편적으로 우리나라에서의 행단은 은행나무로 인지되며 유교를 상징한다.

논어를 펼치면 첫 문장이 ‘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이다. ‘배우고 그것을 때때로 익히면 기쁘지 아니 한가’라는 뜻으로, 배우고 익히는 것이 익숙해지면 가슴속이 충만해지고 그 가운데 절로 희열이 느껴진다. 배움으로 마음에 호연지기를 기르다보면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더라도 서운해 하지 않는 군자’가 되는 것이다.

하곡마을을 지키는 아름답고 위엄 있는 그 은행나무 그늘에 서면 웅장하도록 너른 그 품이 묵직한 침묵으로 행단 위에서의 공자 가르침을 대변해 주는 듯하다. 며칠 전 다녀온 가을빛 찬란하던 하곡의 은행나무가 벌써 그립다. /박귀상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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