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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 중 밤이 가장 긴 날 ‘동지’

박귀상 시민기자
등록일 2024-12-26 18:08 게재일 2024-12-27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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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들 중요하게 여겨온 절기<br/>집집마다 팥죽 쑤며 액운 쫓아<br/>동지 기점으로 낮 길어지듯이<br/>나라에도 밝은 기운 비춰지길
지난 21일 포항시 남구 대송면 장동2리 장화사 공양간에서 공양주들이 팥죽을 끓이고 있다.

지난 21일은 일 년 중 밤이 가장 길다는 동지였다. 태양력을 따르는 24절기 중 22번째 절기로 ‘겨울이 정점에 이르렀다’는 의미를 지닌다. 24절기 중 춘분·하지·추분·동지 네 절기는 다른 절기와 달리 천문학적 의미를 함께 가진다. 태양의 남중고도가 가장 낮아지는, 태양이 지구의 적도에서 남반구 쪽으로 가장 멀리 떨어지는 시점을 동지점(冬至點)이라 한다. 태양이 이 동지점에 이르는 시간이 2024년은 12월 21일 18시 20분 33초였다. 해마다 다소의 차이를 보이는 이 시간에 당하는 날이 ‘동짓날’이다.

보통 동지는 12월 22일 또는 23일에 발생하지만 4년마다 돌아오는 윤년으로 올 2월이 하루가 추가되어 29일이었으므로 천문학적으로 태양이 동지점에 이르는 시간도 평년보다 하루 앞당겨진 21일이 된다. 애동지가 보통 윤달 든 해에 들듯이 윤년 든 해의 동지는 21일이 된다.

동지는 반드시 음력 11월에 들므로 음력 11월을 동짓달이라고도 한다. 초순에 들면 애동지(애冬至, 아기동지), 중순에 들면 중동지(中冬至), 하순에 들면 노동지(老冬至)라 한다. 올해 동지는 음력 11월 21일에 들므로 노동지다.

태양이 지구에서 멀어질수록 기온은 낮아지고 낮은 짧고 밤이 길어진다. 그러나 정점에 이른 동지를 기점으로 짧아지던 낮이 점차 길어지며 음(陰)의 기운이 가라앉고 양(陽)의 기운이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이렇게 새로운 기운이 시작되는 동지를 작은설이라 부르며 서당의 시작을 동짓날부터 하기도 했다.

동지는 우리 선조들이 중히 여겨 온 절기 중 하나다. 이 날은 집집마다 새알심을 빚어 팥죽을 쑨다. 팥죽의 붉은색은 태양과 양기를 상징하며 어둠을 물리친다. 새알심은 달을, 흰 쌀은 별을 나타내어 우주의 조화를 팥죽에 담는다. 동지 팥죽은 단순 음식이 아니다. 팥은 예부터 악귀를 물리치는 힘이 있다고 믿어 태양이 동지점에 이르는 시간이 되면 팥죽을 집안 구석구석에 뿌려 액운을 쫓고 팥죽을 먹으며 가족의 건강과 복을 빌었다.

음의 기운이 사그라지고 양의 기운이 스멀거리는 동지를 기점으로 농사를 준비하며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는 중요한 전환점으로 삼는다. 동짓날 팥죽을 쑤어 집안 곳곳에 놓아 나쁜 기운을 쫓는 벽사(<8F9F>邪)의 풍습은 선조들의 지혜와 소망이 담긴 우리 문화이다.

달라진 세상, 동짓날 팥죽이 생각나 포항시 남구 대송면 장동2리에 위치한 아담하고 소박한 장화사를 찾는다. 공양주들이 공양 간에서 분주히 팥죽을 쑤고 있다. 법당 들러 동지기도를 올리고 절을 찾은 신도들과 함께 새알심 듬뿍 든 팥죽을 나눠 먹으며 연세 지긋하신 어른께 옛날 동지 때는 어떻게 하셨냐고 물으니 “그때는 집집이 팥죽 쒀가 집안 구석구석 뿌리며 액운도 쫓고 가족들 무사태평을 빌고 그랬제. 요즘이사 누가 집에서 쑤나?” 하시더니 뜬금없이 나라 걱정을 하신다. 동지기도 올릴 때, 가족들 건강을 빌면서 모진 세월 보내고 맞이한 이 좋은 세상을 자식도 손자도 아무 탈 없이 세세토록 누리게 해 달라고도 빌었다고 하신다. 맛있는 팥죽을 드시면서도 뒤숭숭한 나라 걱정으로 우리는 살만큼 살았다는 어르신의 걱정 섞인 한숨이 맘을 짠하게 한다.

지구에서 멀어진 태양은 열기 없는 겨울 햇살을 거실 깊숙이까지 밀어 넣는다. 이제 동지가 지났으니 열기 더해가는 밝은 햇살로 가족 평안과 더불어 나라 구석구석의 어둠을 몰아내고 상서로운 기운이 온 나라에 감돌기를 그 어르신과 한 마음으로 염원해본다.

/박귀상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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