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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관찰사가 공무를 집행하던 경상감영

경북매일
등록일 2025-05-18 18:41 게재일 2025-05-19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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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대구 경상감영공원으로 탈바꿈
역사의 흔적 고스란히… 시민 쉼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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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사의 처소였던 징청각

대구시 중구 중앙로역에서 만경관 쪽으로 가는 길에 위치한 경상감영공원. 지금은 공원으로 조성돼 있지만 조선시대 때는 지금의 도청격인 경상감영이 있던 자리다. 감영(監營)은 조선시대 각 도 8곳에 설치돼 있었다. 경상감영은 초기에는 경주, 상주, 안동 등 여러 지역으로 옮겨 다니다가 17세기 초에 이르러 이곳에 안착했다.

경상감영은 조선 선조 34년(1601) 대구로 옮겨 왔고, 지금의 자리 중구 포정동 21에 자리를 잡았다. 경상감영은 대구의 도심 중앙에 위치하며 대구도시철도 1호선 중앙로역에서 500여 미터 거리에 있어 누구나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곳이다. 대구시민의 휴식처이자 대구의 역사가 스며든 장소라 하겠다.

경상감영은 1896년(고종 33)에 지방 행정을 13도제로 개편한 이후에도 줄곧 경상북도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본래 경상의 이름은 경주와 상주에서 따왔다. 1910년부터 1965년까지 경상북도청사로 사용하였다가 청사가 산격동으로 이전되고 난후 대구시에서 1970년 중앙공원으로 개장하였다가 1997년 경상감영공원으로 다시 명칭을 바꾸었다.

 

경상감영공원은 넓이가 1만6600㎡다. 1997년 도시 미관을 위해 담장을 허물고 전체를 공원으로 조성하였고 대구의 역사를 교육하는 역사문화공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곳에 있는 관찰사의 집무실인 선화당(대구시유형문화재 제1호)은 1601년 경상감영이 대구로 옮겨올 때 건립됐다. 이후 1670년, 1730년, 1806년 세 차례의 화재로 소실되고 지금 건물은 1807년 관찰사 윤광안이 지은 것이 남아 있다. 현존하는 관아 건축이 별로 없어 귀한 역사적 가치를 지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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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사 이하는 모두 내려서 걸어오라는 하마비.

관찰사의 처소로 사용한 징청각(대구시유형문화재 제2호)은 관찰사의 안채, 즉 내아 관사로, 초창기 공원을 조성할 때 보수되었다. 징청각(澄淸閣)은 1601년에 지어졌으나 선화당과 함께 세 차례 화재로 소실되고 지금 건물은 1807년 다시 지었다. 앞면 8칸 옆면 4칸 팔작지붕이다.

그 밖에도 조국통일을 기원하는 통일의 종이 있으며 그리고 관찰사의 치적이 담긴 선정비 29기를 모은 비림, 하마비, 측우대, 도로원표, 등이 있다. 그러나 경상감영의 옥이나 객사의 모습은 볼 수 없어 안타깝다.

/안영선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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