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이른 폭염의 기세가 만만찮다. 초복은 고사하고 소서마저 코앞인데 한여름을 방불케하는 무더위가 연일 대지를 후끈 달구고 있다. 장마가 주춤하는 틈새를 타고 잽싸게 파고드는 더위에 벌써부터 열대야가 나타나고 매미소리가 들리면서 올 여름의 폭서를 예고하는 듯하다.
암록(暗綠) 속에 붉은 등을 밝히듯 능소화가 처연하게 피어나는 어느 뜨락에서는 때 이른 무더위가 무색할 정도로 진지함의 열기가 피어나고 있었다. 담쟁이 넝쿨이 늘어지고 감나무와 모과나무 잎새가 반겨 맞는 뒤뜰에서는 악기의 잔잔한 선율이 흐르고 시낭송의 목소리가 다소곳이 피어나며 간간이 웃음과 환호, 박수 소리가 터지면서 정겹고 흥겨운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도심 속의 작은 쉼터 같은 그곳에서는 사람과 문학이 만나고, 예술과 정담이 이어지며 어울리고 교감하는 낭만의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이른바 ‘詩뜨락(시가 흐르는 뜨락)’으로 일컬어지는 시낭송 문화마당이 누리달 끝자락에 소담스레 펼쳐진 것이다. ‘시뜨락’은 시와 시인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경향의 문인을 작은 뜨락으로 초대해 시낭송회를 열고, 시에 대한 이야기와 문학의 삶을 나누며 독자와 소통하는 시낭송 북콘서트이다. 즉, 활자로 된 시를 목소리와 음향을 곁들인 소리예술로 풀어내면서 시에 담긴 은유와 감동을 더해주고, 초대시인과의 대화를 통해 문학과 예술적의 삶을 공감하고 소통하며 새로운 시낭송 문화를 일궈가는 작은 발돋움이라 할 수 있다.
‘시의 행간에 목소리가 스며들어/그림을 그리듯 날개를 달아주니/비로소 시의 꿈이 피고 맵시마저 곱구나//···.//꿈결같은 시가 흐르는 뜨락에는/바람의 몸짓으로 시흥(詩興)이 어우러져/새로운 문화의 요람 향기 짙게 울리네’ -拙시조 ‘시가 흐르는 뜨락’ 중
그러한 ‘시뜨락’ 북콘서트가 벌써 열번째를 맞아 다양한 레퍼토리로 풍성하게 열렸다. 특히 올해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집, 김소월의 ‘진달래꽃’ 발간 100주년을 맞아 시인의 삶과 시 세계를 재조명하고 시낭송·시극·시노래·우정 시낭송 등으로 다채롭게 펼쳐졌다. 특히 어린이 출연진과 기타·아코디언 반주를 곁들인 소월 시노래를 관객들과 함께 부르며 교감하고, 100년 전의 ‘진달래꽃’ 시를 초판 그대로 충청도·전라도·함경도·경상도 사투리 버전으로 낭송하며 시극 퍼포먼스를 펼쳐 보일 때는 청중의 탄성과 환호가 연발했다.
그리고 시낭송 출연진들이 일일이 붓으로 쓴 시화작품을 뒤뜰의 소나무~감나무 사이의 줄에 매달아 바람 결에 살랑거리고, 또한 소월 시와 초대시인의 시를 붓글씨로 활달하게 시서(詩書)작품을 길거리에 미니 전시해 이색적인 시회(詩會) 분위기를 물씬 자아냈다. 그야말로 한국 현대시를 기적처럼 꽃 피운 김소월의 ‘진달래꽃’이 시뜨락에 그득해지며 청중들에게 문학과 음악, 예술이 어우러지는 감동을 선사하기에 충분했었다고나 할까?
문학과 문화는 이렇게 독자와 청중이 교감하고 호흡하며 다양한 테마로 새로운 시도를 보일 때, 지속가능한 힘과 생명력을 얻을 수 있다. 책으로 엮은 시를 복합적인 콘텐츠로 살아 숨쉬게 하는 ‘詩뜨락 북콘서트’가 지역의 새로운 문화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해 장족의 발전을 거듭하길 기원해 본다.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