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리뷰 영천 시안미술관 - ‘전해지지 않은 문장들:여기에 그림자가 있다’전 17기 입주작가 9명의 작품 사회적 소외와 비가시성 등 동시대 문제 ‘그림자’로 풀어 관람객에 인식의 전환 제안
영천 시안미술관(관장 변숙희)은 오는 8월 24일까지 본관 1, 2, 3전시실에서 2025년 하반기 특별기획전 ‘전해지지 않은 문장들: 여기에 그림자가 있다’를 열고 있다.
이번 전시는 지난 1월 영천예술창작스튜디오에 입주해 오는 12월까지 1년간 이곳에 머무르며 작품활동을 펼치는 제17기 입주작가 9명의 작품을 선보이며, 사회적 소외와 타자화, 비가시성 등 동시대적 문제를 ‘그림자’라는 상징으로 풀어낸다.
김동훈, 김정애, 노연이, 손주왕, 양은영, 이체린, 이향희, 전영경, 최은희 등 9명의 작가는 회화·사진·설치 작품 총 70여 점을 통해 각자의 창작적 시선으로 구조적 소외와 타자화의 문제를 탐구한다.
이번 전시는 사회적 기준에서 밀려난 이들의 목소리를 예술로 소환해 관람객에게 새로운 인식의 전환을 제안한다. 참여 작가들은 보이지 않던 것들, 낙인찍힌 것들, 경계에 선 것들을 드러내며 중심과 주변의 위계를 흐리고 새로운 감각의 장으로 관객을 초대한다.
김동훈 작가는 자신의 감정 상태와 태도를 중심으로 작업하며, 완벽함에 대한 강박을 내려놓고 ‘결함’을 탐구함으로써 자신을 이해하고 긍정적 변화를 추구한다.
김정애 작가의 ‘낯선 환희’ 시리즈는 일상 속 평범하거나 소외된 공간(자연 속 비닐하우스, 도시의 낡은 옥상)에서 발견한 독특한 아름다움과 감정을 예술적 재구성을 통해 새로운 조형언어로 탐구한다.
노연이 작가의 작품은 자아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상징계와 실재계라는 철학적 개념을 통해, 현실과 환상이 교차하는 환상 회화로 형상화하며, 불완전한 현실을 마주하고 적응해가는 과정을 탐구한다.
손주왕 작가의 ‘분출하는 몸’은 개인의 정신적, 신체적 변화를 통해 몸의 경계가 흐려지며, 이는 몸이 외부 세계로 확장되고 자유로워지는 과정을 상징한다.
양은영 작가는 사회적 이분법(인간/비인간, 정상/비정상)으로 타자화된 존재들(황소개구리, 성노동자 등)을 파편화된 이미지로 재구성하고, 고정되지 않은 다층적 시점을 통해 위계적 시선을 해체하며, 혐오와 배제의 구조 속에서 소외된 존재들의 일상적 가치와 생명력을 예술적으로 재조명한다.
이체린 작가의 작품은 일상적 자극과 공간의 관계성을 탐구하며, 인간의 정서와 기억을 회화로 표현하고, 이를 통해 공간의 의미를 재정립하고 새로운 내러티브를 창출한다.
이향희 작가는 포항 바다 풍경을 시간의 역순으로 재구성한 20폭의 흑연 작품에서 유동적 기억과 장소적 상징(포스코 포항제철소)을 통해 개인적 서사를 보편적 정서로 확장하며, 관람자의 기억과의 만남을 유도한다.
전영경 작가의 ‘파노라마 판타지’는 환경 오염과 생태계 파괴로 이상 기후가 만연한 현실 속에서, 매혹적이지만 불편한 산업적 풍경을 파노라마적 시선으로 포착해 인간 존재의 모순을 드러낸다.
최은희 작가는 자본주의적 구조 속에서 소외된 개인들의 사적 삶과 사회적 모순을 포착하고, 노숙인의 언어 ‘Hello, Please’를 통해 삶의 아포리아를 은유하며, 반전된 텍스트와 파편적 이미지로 인간 물화에 대한 자본주의적 도구화의 문제를 비판적 시선으로 시각화한다.
이번 전시는 “사회가 세운 ‘중심’의 허구성을 질문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MBTI 같은 분류 체계가 개인의 다층적 경험을 단순화하듯, 편견이 낯섦을 고착화한다는 비판적 시각을 담았다. 관람객은 익숙함에 가려진 그림자 속 숨겨진 서사를 발견하며, 공존을 위한 새로운 경계를 상상하게 될 것이다.
박천 시안미술관 큐레이터는 “영천시의 ‘향토작가 전시지원사업’에 따라 추진됨으로써 지역 미술 생태계의 흐름을 소개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서 “레지던시 프로그램의 성과를 지역사회와 공유하고, 동시대적 문제를 예술 언어로 풀어내는 소통의 장을 마련하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