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국의 민심을 움직이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 중 하나가 ‘프레임 씌우기’인 것 같다. 프레임(frame)은 원래 틀이나 구조 등 가치중립적인 말이지만, 요즘은 주로 굴레나 낙인 같은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쓰인다. 그런 프레임은 그 진위 여부와 상관없이 사람들 사고의 틀을 고정하고, 감정의 방향을 정하며, 여론과 제도까지 바꾸어 막강한 정치적 무기가 될 수도 있다. 프레임 씌우기는 일거에 폭력적으로 사태변혁을 노리는 개인이나 집단에 의해 흔히 자행되는 수단이다. 중세 가톨릭의 마녀재판, 히틀러 나치의 유대인 학살, 스탈린 소련의 대숙청 등. 일단 프레임을 씌어 명분을 만들어 주면 일말의 죄책감이나 망설임도 없이 잔혹해질 수 있는 것이 인간이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난 수십 년간 주로 좌파 진영에서 프레임 씌우기를 투쟁과 선동의 기본 전략으로 삼아왔다. 독재 프레임, 친일 프레임, 국정농단 프레임, 세월호 프레임, 광우병 프레임, 민주화운동 프레임, 촛불혁명 프레임, 극우 프레임, 후쿠시마 핵오염수 프레임에서 내란 프레임까지. 이러한 도식화된 선전 전술은 일반 국민들의 정서와 양심을 자극해 상대 진영을 악마화 하고 자신들은 정의의 대변자로 포장하는 데 크게 성공해왔다. 그래서 손쉽게 우파 대통령들을 탄핵하고 정권을 장악할 수 있었다.
지금 대한민국 정치권은 물론 언론, 학계, 문화예술계, 시민단체에 이르기까지 특정 진영의 프레임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거나 확대·재생산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특히 이념에 경도된 식자층과 문화 권력자들이 진영논리의 나팔수가 되어 자신들이 만든 프레임에 스스로 갇혀버리는 모순적 현실이 심화되고 있다. 프레임 씌우기의 가장 큰 문제는 그것이 진실을 가리고, 생각의 자유와 토론의 공간을 봉쇄한다는 점이다. 하나의 사건도 다양한 해석과 복합적인 배경이 있을 수 있는데, 프레임은 그 모든 가능성을 제거하고, 흑백논리와 감정적 구호로 사태를 단순화한다. 그 결과 복잡한 사회현상은 이해와 공존이 아닌 증오와 편가르기의 소재가 되고, 민주주의의 기본인 다양성과 상호존중은 설 자리를 잃는다.
더 심각한 것은 이런 프레임 정치가 권력을 쥔 자들의 면죄부로 악용된다는 것이다. 정권의 비리나 정책실패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면, 그것을 ‘반민주’, ‘극우’, ‘가짜뉴스’ 등의 프레임으로 되치기하면서 논점을 흐리고, 비판자에게는 사회적 낙인을 찍는다. 국민의 알 권리는 말살되고, 언론은 자기 검열에 빠지며, 야당은 의회민주주의의 역할을 상실하게 된다. 프레임 씌우기는 일종의 정신적 폭력이다. 그것은 대중의 감정을 인질로 삼아 비판적 사고를 억압하고, 이견을 범죄시하며, 합리적 토론 대신 선동과 감정몰이로 사회 전체를 병들게 한다. 이런 방식이 반복될수록 국민은 피로감을 느끼고, 결국 정치 혐오로 이어져 민주주의의 기반 자체가 붕괴된다. 프레임 씌우기 같은 선동과 폭거로 탈취한 권력은 결국 패망하고 만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그 과정에 엄청난 희생이 따른다는 것도.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