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집을 나섰다. 태화강 역에서 강릉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서였다. 서울과 세종, 천안 등 각지에 흩어져 사는 친구들이 강릉에서 만나기로 한 것이다. 4시간 이상 가야하는 것보다 친구들을 만난다는 기쁨과 해변을 끼고 달릴 기차의 운치에 대한 기대가 마음을 흔들었다.
작년 12월부터 운행을 시작한 이 기차는 좌석 간의 거리도 넓고 쾌적했다. 여행의 기대치가 올라가고 있었다. 서너 명의 중년 남녀가 열차에 올랐다. 친숙한 사이인지 서로 농담을 주고 받으며 자리에 앉았다. 오전 10시 경 출발해 오후 2시 넘어 도착하니 다들 점심이 걱정인가 보다. 서로 음식을 갖고 왔냐고 물으며 커피와 과일을 나눈다. 정겹다.
SRT와 KTX의 도입은 시간의 단축과 함께 열차 안의 풍경을 바꾸었다. 거기에 코로나는 그 모습을 더욱 빠르게 정착시켰다. 그 시기에는 기차 안에서 마스크를 써야 했고 음식을 먹을 수 없었기에 숨죽인 침묵이 자리했었다. 자거나 휴대폰을 보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지금은 열차에서 음식을 섭취해도 된다고 하지만 어느새 우리는 새로운 문화에 젖어들었다.
기차 안에서 소리내지 않고 조용히 침묵을 지키며 가는 것을 나는 개인적으로 좋아한다. 조용히 앉아 옆의 사람과는 눈길조차 주고 받지 않은 채 휴대폰에만 눈길을 주거나 눈감고 자는 것이 편하게 느껴졌었다. 타인에게 방해가 되지 않게 조용히 가는 것이 상대에 대한 배려이며 문화인이라 생각해왔다. 그래서 바뀐 풍속도가 그 때까지 마음에 든 것도 사실이었다.
강릉 가는 열차도 ktx-이음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긴 시간의 여행이어선지 여기저기서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가 들렸다. 어느 누구에게도 그 소리가 시끄럽게 들리지는 않는 것 같았다. 승무원도 조용히 하라고 제지하지 않았다. 심지어 옆의 모르는 사람에게 먹을 것을 권하는 소리도 들렸다.
어린 시절 가끔 탔던 열차의 풍경과 오버랩되는 순간이다. 김밥을 싸오고 삶은 달걀과 사이다, 과일을 먹으며 가족들, 친구들과 담화를 나누던 그 시절의 기차 안 풍경을 조금 나이 든 사람들은 기억하고 있으리라. 긴 시간의 여행에 그런 것은 즐거운 일이었을 것이다.
열차는 계속 푸른 풍경을 뒤로 보내며 열심히 달리고 있었다. 바다가 보이지 않는 아쉬움에 생각은 과거로 흘러간다. 아이들과 함께 공부했던 ‘배우며 생각하며’라는 책이 생각났다. 사고의 확장을 위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들어 있어서 초등학생들과 토론하기에 좋은 교재였다. 그 중에 한 이야기가 생각났다.
문명인들이 먼 오지의 원주민들을 찾아갔다. 그들의 열악한 환경과 시설을 보며 이들에게 더 나은 삶을 위한 각종 문명의 이기들을 가져다주었다. 의무감에 사로잡힌 사람들에게 원주민들의 생각은 중요치 않았다. 기계를 사용하면 원주민들이 더 행복할 것이라 생각했다.
문명의 발달이 문화의 발달과 꼭 비례하는 것은 아니며 문명인들의 삶이 더 낫다고 판단하면 안 된다는 것을 그들은 몰랐다.
강릉 가는 차안에서 서로 이야기와 음식을 나누는 모습을 보면서 저런 모습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품앗이와 두레로 서로의 품을 나누고 정을 쌓던 것이 우리였는데···. 조금은 수선스러워도 그 안에 넘치는 정이 담겨 있는 그 모습이 마음에 다가오는 것은 잃어가고 있는 것에 대한 동경일지도 모르겠다. 정담을 나누며 가는 것이 비문화인의 모습은 아니니까.
옆 자리에 앉은 사람의 옆모습을 처음으로 가만히 쳐다본다. 점심을 전혀 먹지 않던데. 가지고 있던 샌드위치라도 나눌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쑥스러움이 손길을 눌렀다. 정동진이 가까워오니 이야기를 나누던 일행들과 옆자리의 아저씨가 내릴 준비를 한다. 그들의 여행이 따뜻하고 즐겁기를 바란다. 다음엔 샌드위치를 나눌 수 있는 용기가 솟아나기를 또한 바라본다.
정동진을 지난 열차 차창 밖으로 동해의 바다가 비로소 시원하게 가슴을 파고 든다. 이번 역이 이 열차의 마지막 종착지입니다라는 안내 방송을 들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먼저 도착해서 강릉역에서 기다리고 있을 친구들 생각에 마음이 부푼다.
/전영숙 시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