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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기업 소통의 바람직한 매개체, 혁신활동

장광일​​​​​​​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지난 칼럼에서 소개한 ‘소통으로 완성되는 기업의 문화’를 근간으로 이번 칼럼에서는 ‘어떻게 하면 바람직한 기업 소통 환경을 만들 수 있는가’에 대하여 소개하고자 한다.우선 경영진이 소통을 잘 하고 싶다면 직원들의 건의사항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직원들의 소통은 단지 윗사람이 자신의 소리를 잘 들어주길 바라는 것이다. 또한 직원의 입장에서 경영진과 소통을 잘하려면 경영진이 관심있는 과제에 대해서 스스로 참여해야 한다. 내가 일하고 있는 현장에서 경영진이 관심있는 부분에 대해 성공사례를 만든다면 경영진은 그 직원들의 말에 반드시 귀 기울일 것이다.일반적으로 경영진은 일상적인 루틴(routine)한 업무에 대해서는 관심이 적다. 어떻게 하면 안전하고 깨끗한 현장을 만들 것인가, 어떻게 하면 고장 없고 불량 없는 현장을 만들 것인가, 어떻게 하면 돈 되는 현장을 만들 것인가에 관심이 높다. 따라서 직원이 힘을 모아 베스트 프랙티스(Best Practice) 현장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혁신활동을 통한 소통 성공 사례로는 포스코를 빼놓을 수가 없다. 포스코의 QSS(Quick Six Sigma) 혁신활동으로 쌍방향 소통을 실천하였다. QSS활동 전 직원들은 경영진이 현장 방문에 모두 숨었다. 괜히 잘못 걸려서 좋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QSS활동을 하고 난 후 경영진이 현장을 방문하면 모두 나와서 자신이 개선한 것을 자랑하게 되었다. 변명보다 무용담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신바람나는 조직 문화가 된 것이다. 이 QSS활동에는 솔선활동, 격려활동이라는 강력한 소통 무기가 있기 때문에 더욱 활성화 된다. 솔선활동은 경영진이 QSS활동을 먼저 체험하여 전원참여를 이끌어 내고, 가야할 방향을 제시하며, 격려활동은 경영진이 주기적으로 현장을 방문하여 직원들의 혁신활동 내용에 대한 칭찬, 격려, 대화를 통해 직원들과 공감대를 형성한다.경영진의 소통 목적과 직원들의 소통 목적은 다르다. 목적이 다르기 때문에 소통이 안된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본다. 윗사람이 직원들에게 전달하는 소통 전달율은 90% 수준으로 높지만 반대로 직원들이 경영진에게 전달하고픈 소통 전달율은 10%수준 밖에 안된다고 한다. 따라서 쌍방향 소통으로는 QSS혁신활동 만한 것이 없다.소통의 지속성을 위해서는 위 사례에서 소개한 포스코의 QSS처럼 소통창구 역할을 하는 시스템이 반드시 필요하고 이 시스템에 대한 상호 신뢰도가 높을수록 소통이 잘되는 조직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기업의 좋은 문화는 진정한 소통으로 완성된다고 본다. 진정한 소통은 혈구지도(7D5C矩之道)에서 답(答)을 찾아보고자 한다. 이는 공자의 가르침에서 비롯되어 대학(大學)에 나오는 말로 “윗사람이 내게 해서 싫은 것을 아랫사람에게 하지 말고, 아랫사람이 내게 해서 싫은 것을 윗사람에게 하지 않는 것이 바로 혈구지도라고 하는 것이다” 라고 하였다. 이처럼 자신을 척도로 삼아 남을 생각하고 사례 깊게 배려하는 마음으로 한사람의 직원이라도 마음의 문을 스스로 열고 나올 수 있도록 혈구지도를 나부터 실천하길 바란다.

2022-10-04

洪시장이 화두로 던진 ‘대구의 폐쇄성’

심충택 논설위원 홍준표 대구시장이 지난 주말 국민의힘 대구시당 당원들을 대상으로 한 특강에서 대구사회의 폐쇄성과 기득권 카르텔을 언급해 주목받고 있다. 여론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민선 대구시장이 대구사회의 주류집단과 시민의식을 정면으로 비판한 것은 이례적이다.홍 시장은 취임 이후 대구의 GRDP가 전국에서 꼴찌고, 시민소득이 울산의 3분의 1에 그칠 정도로 쇠락한 것에 대해 안타깝다는 말은 더러 해 왔지만, 공식석상에서 그 원인이 대구시민의 폐쇄성 때문이라고 지적한 것은 처음인 것 같다. 홍 시장은 이날 “대구는 인재를 받아들이지 않고 기업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대구에 와서 성공했다는 인재가 없고, 대구에 와서 성공했다는 사업가가 없다”고 했다. 아마 홍 시장의 이 말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대구는 오래전부터 ‘굴러온 돌을 경계’하는 도시문화 때문에 중앙부처 공무원들이 인사에서 가장 기피하는 도시로까지 지목돼 왔다.사실 대구는 도시규모만 커졌지 사회문화는 여전히 전통사회다. 대구에서 처음 근무하는 공공기관 임원들을 만나보면, 대구시내 유명호텔에 조찬모임이 거의 없다는 것에 대해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다른 대도시 호텔과는 달리 손님과 아침을 먹기 위해 예약을 해 보면 대부분 조찬영업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 대구시민들도 그 흔한 조찬기도회나 조찬세미나를 경험하기가 힘들다. 반면 동창회다 향우회다 해서 끼리끼리 모이는 저녁모임은 많아 도심 곳곳이 불야성을 이룬다. 그만큼 대구사회가 외부세계와 단절돼 있다는 방증이다. 홍 시장은 “심지어 대구는 TK에서 자라나서 서울에 올라간 사람도 ‘서울 TK’라고 하며, ‘대구 TK’와 분리해서 대접을 한다”고 했다.대구시민들은 자라나는 세대를 위해서도 ‘코이의 법칙’을 가슴에 새기며 ‘열린 도시’를 추구해야 한다. 코이는 비단잉어다. 어항에서 키우면 10cm이상 크지 않고, 연못에서 키우면 30cm이상 크지 않는다. 그러나 강이나 호수에서 자라면 120cm까지 큰다. 같은 물고기지만 사는 곳에 따라 크기가 엄청난 차이가 난다는 법칙이다. ‘한국의 시간’이라는 베스트셀러를 쓴 김태유 박사는 “자라는 아이에게 새총을 주면 산에 가서 참새를 많이 잡는 꿈을 꿀 것이고, 엽총을 주면 호랑이나 사자 같은 맹수를 사냥하는 꿈을 꾼다”고 했다.우리 자녀들이 살아가는 대구의 사회환경을 바꿔주는 역할은 사회지도층이 중심이 돼서 해야 한다. 그러나 홍 시장도 언급했듯이, 대구를 이끌어온 기득권 세력들은 학맥, 인맥으로 카르텔을 형성해 자기들끼리 먹고 사는 도시를 만들고 있다는 비판을 많이 받아왔다.‘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실리콘밸리에서 사는 아이와 기득권세력이 카르텔을 형성한 폐쇄적 도시에서 사는 아이가 한평생 누리는 행복수준은 같을 수가 없다. 대구시장이 공개석상에서 대구의 폐쇄성과 기득권 카르텔을 비판한 것을 계기로 해서, 지금부터라도 대구는 열린도시를 지향하며 4차 산업혁명시대를 준비했으면 한다.

2022-10-04

경제·안보 위기속에서 政爭만 일삼는 국회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처음 열리는 국회 국정감사가 국가 모든 현안을 ‘정쟁(政爭)’으로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고 있다. 여야는 한목소리로 서민경제 지원과 정책개발에 국감 역량을 쏟겠다고 밝혔지만, 어제(4일) 처음 열린 국정감사장부터 소모적 정쟁의 장으로 변질됐다.이번 국감에서 국민의힘은 문재인 정부의 서해 공무원 피살사건과 탈원전 정책을 집중 감사하면서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부인 김혜경 씨의 다양한 범죄의혹에 대해서도 공세를 펼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 해외 순방 논란을 비롯해 부인 김건희 여사의 논문 표절 및 주가조작 등에 대해 감사역량을 쏟을 전망이다. 대구·경북에서도 오는 12일 대구지방고용노동청을 시작으로 17일까지 행정·공공기관에 대한 감사가 진행돼 여야 정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우선 서해 공무원 피격사망사건과 관련해 여야가 정면충돌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감사원의 서면조사를 거부하면서 “대단히 무례한 짓”이라는 반응을 보인 것과 관련해 국민의힘은 “전직 대통령이라고 해서 법 위에 설 수 없다”고 했고, 윤 대통령도 4일 “감사원은 헌법기관이고 대통령실과 독립적으로 운영된다”며 여당 주장에 힘을 실었다. 민주당은 격앙된 반응을 보이며 감사원을 공수처에 고발하기로 했다.여야는 이번 국감에서 150여명에 이르는 기업인들도 출석시켜 정쟁소재로 활용하고 있다. 어제 열린 행안위 국감에서 포항제철소 태풍피해 원인을 캐겠다며 최정우 포스코 회장을 증인으로 부른 것이 대표적이다. 모든 기업들이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총력을 쏟는 마당에 국회가 지원하지는 못할망정, 밥그릇을 깨려고 한다는 비난이 나오고 있다.우리나라는 지금 경제위기뿐만 아니라 심각한 안보위기도 겪고 있다. 북한은 어제도 동쪽으로 중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국회가 이달 내내 공직자와 주요 기업인들을 국감장에서 불러놓고 정쟁에 몰두할 경우, 우리는 눈앞에 닥쳐온 복합적인 위기를 견뎌낼 수 없다. 여야가 정쟁을 벗어나서 민생경제와 국익을 위한 협치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2022-10-04

영천 경마공원 착공, 경북의 랜드마크 되길

10여년 동안 질질 끌어왔던 영천 경마공원이 지난달 30일 드디어 기공식을 가졌다. 2009년 후보지로 선정된 이후 13년만이다. 영천시 금호읍. 청통면 일대 경마공원 예정지에서 있은 이날 기공식에는 경마공원을 함께 이끌고 갈 경북도, 영천시, 한국마사회 등의 주요 관계자가 모두 참석했다.총 1천857억원이 투입되는 영천 경마공원은 2026년 개장이 목표다. 서울, 부산·경남, 제주에 이어 전국 네 번째 경마공원으로 조성되는 사업이다. 20만 평 부지에 8종의 경주코스가 만들어지며 안전성을 고려, 2면의 경주로와 관람 편의 기능도 대폭 높였다고 한다. 또 영천 경마공원 일대의 자연 친화적 환경과 잘 조화시키고 수변공원도 함께 조성한다.영천시의 경마공원 조성이 갖는 의미는 크다. 지역균형발전을 촉진하고 일자리 창출, 레저문화 확대 공급과 관광객 유치, 세수확대로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게 된다. 특히 영천이 경마공원 도시로 알려지면 도시 브랜드 가치 증대로 인한 상승효과는 기대 이상 클 것으로 보인다.지난해 대구도시철도 1호선의 영천 경마공원 연장이 제4차 국가철도망 계획에 반영된 것 또한 큰 호재다. 대구시와의 접근성을 앞당길 수 있어 영천시 발전에도 큰 기폭제 역할을 할 전망이다.최기문 영천시장은 연간 200만명 이상이 영천 경마공원을 방문할 것으로 보고 있어 경마공원 조성이 가져올 사회 경제적 효과에 대해 지역민의 관심이 적지 않다. 이와 함께 경북도도 영천을 말 산업 특구로 육성할 계획에 있어 경북지역 농축산업 발전에도 새로운 전기를 제공할 것으로 짐작이 된다. 말 산업과 관련 각종 인프라가 늘고, 공공·민간 승마장 설치, 전문인력 양성 등의 사업이 새롭게 추진될 전망이다.다만 경마공원 조성에 대한 일각의 부정적 인식도 있으나 이를 잘 불식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경마공원을 관광산업의 중요 축으로 발전시켜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당국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 영천 경마공원 조성이 경북과 영천 발전에 기폭제가 되도록 완공이 될 때까지 행·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2022-10-04

자주국방

우정구 논설위원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 처음 맞는 국군의 날 기념식이 국군의 심장부인 계룡대에서 6년 만에 처음 열린 것과 괴물 미사일을 비롯 첨단무기 등이 공개된 것은 전 정부와는 대조되는 기념식 모습이다.특히 영상 공개된 이른바 괴물 미사일로 알려진 현무-5는 많은 사람의 시선을 끌었다. 탄두 9t의 세계 최대급 탄두 중량미사일로, 핵무기가 없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강력한 재래식 무기로 소개됐다. 유사시 평양 주석궁과 지하 100m 이하에 있는 김정은 벙커를 단 1발로 초토화할 수 있다고 한다.세계 각국의 단거리 탄도미사일 탄두 중량이 500kg∼1t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현무-5의 위력은 괴물이라 할 수 있다.이보다 앞서 우리 군이 개발한 현무-4는 자탄을 살포하는 확산탄을 쓰면 축구장 200개 면적을 초토화할 수 있다고 소개된 바 있다. 괴물 미사일은 중량을 줄이면 3천km 이상을 날아가는 중거리 탄도미사일로 전환할 수도 있다고 한다. 군사 소식통은 북한의 도발은 물론 중국 등 주변 강국의 도발에 대응하기 위한 한국형 무기라는 설명을 했다.국군의 날 기념식은 우리 군의 위용과 전투력을 대외에 알리고 국군장병의 사기를 높이는 행사다. 지금 세계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로 나라마다 안보 불안감이 높아지는 분위기다.자주국방이란 자국 안보를 스스로 지키는 국방력을 말한다. 그러나 각국 간 이해가 복잡한 국제정세를 보면 자국 국방력만으로 안심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집단안전보장체제의 필요성이 각별히 관심을 끈다. 한미나 한미일 공조체제가 바로 그것이다.국가와 국민을 지키는 튼튼한 국방력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다. 유비무환 정신만이 국가와 국민을 지킬 수 있다./우정구(논설위원)

2022-10-04

바닥에는 검은 진흙이 <Ⅲ>

영산시는 노인 복지에 있어서는 항상 다른 지역보다 한발 앞서 있었다. 노인들의 의료보험 본인 부담금을 지자체가 모두 부담하는 정책, 노인 전용 무료 급식 식당의 개설, 노인용품 바우처 제도 등의 정책이 전국에서 가장 먼저 시작된 곳이었다. 영산시에서 먼저 정책을 시행하면 주위의 다른 시에 사는 노인들이 볼멘소리를 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주위의 다른 시에서도 영산시에서 하고 있는 정책을 흉내 냈다.영산시에서 인호는 영권의 대리인이었다. 인호는 영권을 대신해서 영산시장을 만나고 정책을 건의하고 관철시켰다. 영산시에서만 다섯 번 국회의원을 하고 있는 영권의 아들, 인호의 건의는 영산시장에게는 명령과 같았다. 시장이 인호의 건의를 거부할 명분도, 필요도 없었다. 예산이 부족합니다. 시장이 이야기하면 인호는 영권을 통해 해결해 주었다. 다른 시의 시장이나 국회의원이 영권을 찾아와 왜 영산시만 그렇게 혼자 튀려고 하느냐. 혼자 가지 말고 협의해서 같이 가야 하는 것 아니냐, 불평을 하는 날이면 영권은 인호에게 전화를 걸어 수고했다, 칭찬을 했다.영산시에서는 노인과 관련된 행사가 끊이지 않았다. 가로등과 현수막 거치대에는 거의 매일 행사를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있었고, 주말이면 문화회관이나 운동장의 주차장에서는 빈자리를 찾을 수 없었다. 실버 건강 걷기 대회부터 실버 마라톤, 실버 문학 대전, 실버 음악 대전, 실버 미술 대전, 실버 사진 대전, 실버 연극제, 실버 예술 주간, 실버 체전까지. 그리고 이 모든 행사들을 총 정리하는 실버 대제전까지. 모르는 이가 보았다면 도시 이름이 실버라 생각했을 것이다.영산시는 노년의 행복한 삶이 보장되는 곳이었다. 노인들은 생업에서 자유로워진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을 찾아다녔다.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산책을, 아침 식사를 한 뒤 텃밭에 물을 주고 탁구장이나 배드민턴 코트에 들러 운동을 하는 것. 노인 급식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오후에는 집에서 쉬거나 작업을, 저녁은 동호회 활동을 하는 것이 그들의 하루 일과였다. 주말에는 동호회에서 만난 지인들의 다른 행사를 찾아 응원을 하고, 행사가 없는 날은 찻집에 모여 담소를 나누거나 문학기행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억지로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이제야 살맛나는 세상이라 생각했다. 건강한 노인들의 이야기였다.건강하지 못한 노인들의 삶도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정기적인 병원 방문과 약물의 복용을 도와주는 도우미들이 있었다. 그들은 병원이나 약물 복용뿐만 아니라 병을 앓고 있는 노인과 독거노인들의 식사나 잠자리 등을 살펴 주었다. 남아 있는 약의 개수를 살펴 규칙적으로 약을 복용했는지 살폈고, 냉장고의 내용물과 부식의 잔량으로 노인의 식사를 확인했다. 정기적인 산책과 일조 시간의 확보 등도 도우미들의 중요한 업무 중 하나였다. 일시적인 질환, 예를 들면 장염이라든가, 가벼운 감기라 하더라도 신청만 하면 단기로 도우미들이 배정되어 서비스를 제공했다. 영산시에서 모든 경비를 감당했다.더욱 힘든 노인들, 거동이 힘든 노인들은 시에서 운영하는 요양병원 혹은 만성 질환자 관리 병원에 입원을 시켜서 치료했다. 질병의 치료만 담당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노년을 관리했다. 병원 내에서도 병원 밖과 마찬가지의 활동들, 기본적인 인간관계가 유지될 수 있도록 노력했고 죽음에 이르는 과정과 죽음의 순간을 함께 했다.건강한 노인이든 건강하지 않은 노인이든, 노인들의 활동은 지역 경제에도 도움이 되었다. 병원의 운영과 도우미들, 각종 행사를 위한 기반 시설의 운영 등 공공기관을 통한 고용의 증대와 각종 행사의 개최, 각종 단체에 대한 지원금, 질환의 치료, 약물 및 입원비용의 지급 등 공공기관의 지출 증가는 결국 지역민의 소득으로 이어졌다. 사적으로는 노인들이 각종 동호회에서 배우는 각 분야에 필요한 용품들, 행사를 치르기 위한 장소들, 식사 및 뒤풀이 등. 하다못해 축하 꽃다발까지. 노인들이 움직이는 모든 지점에서 소비가 있었다. 이 모든 소비에 내가 있지. 인호는 그렇게 생각했다.중앙 정가에서 활동하는 영권과는 달리 인호는 지역사회에 밀착하려 했다. 몇몇 동호회에 가입하여 활동을 한 것 뿐 아니라 시에서 주최한 각종 강좌에 개인 자격으로 신청을 해 수강을 했다. 다른 수강생과 똑같이 연단에 나가 자기소개를 하고 수업을 듣고 질문을 하고 뒤풀이에 참석했다.그중 인문학 교실은 그가 처음부터 기획을 하고 사람을 모아 십칠 년째 유지해오고 있는 모임이었다. 주제 선정부터 강사 섭외까지 인호가 직접 했다. 졸업생이 사백여 명이 되었으니 작은 모임은 아니었다. 인호는 노인뿐만 아니라 젊은 사람들도 함께 하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생각했다. 틈 날 때마다 젊은 사람 어디 없냐며 모임에 참석한 노인들에게 진담 반 농담 반 섞어 이야기했다.그러게. 이, 삼십 년 전만 해도 이런 모임에 와서 자리를 둘러보면 군데군데 젊은 사람이나 가정주부들이 보였었는데 말이야. 나만 해도 그렇지. 그때는 가정주부였으니까. 아무리 바빠도 수요일 저녁은 나의 시간 이렇게 정해놓았었지. 남편한테 애들 맡기고 강의 들으러 쫓아다녔었는데. 요즘에는 이런 자리에서 애 엄마들 보기가 하늘에 별 따기라니까./김강 소설가

2022-10-03

첫사랑이란 아련함

가을이 되면, 우리는 언제나 팔꿈치 옆으로 불어오는 바람의 차가움으로 계절이 변화하는 기색을 알아채게 된다. 에어컨이 만드는 인공의 바람을 제외하고는 도통 바람의 시원함이라는 것을 경험하기 어려운 무더운 여름을 이제 막 지나고 난 뒤여서인지, 그렇게 선뜻 불어오는 바람이라는 것은 늘 반갑게 마련이다. 하지만, 서서히 열기가 올라가는 봄, 여름 사이의 시간과는 달리, 무더움에서 선선함으로 바뀌는 가을이라는 계절의 시작에서는 늘 시간의 변화가 느껴져 무언가 조금 아쉬운 기분이 되곤 한다. 가을이라고 해서 특별한 계절은 아니겠지만, 그 계절의 분위기를 유독 사색이라든가 기억과 관련해 말하는 것은 어쩌면 일 년 가운데 가장 극적인 변화를 담고 있는 계절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요즘에야 사랑의 경험이라는 것이 그렇게 절대적인 것은 아닐지 모르지만, 한때 어떤 사람이 가진 ‘첫사랑’의 기억이란 늘 가을과 함께 찾아오는, 가장 강렬한 기억이라고 해도 좋은 것이었다. 첫사랑이란 언제나 그것이 가진 일회성 때문에, 그리고 서툰 청춘기에 늘 실패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늘 깊은 상처와 같이 각인되고 남는다. 때로 시대가 변해서 이 첫사랑에 담긴 절대적인 의미 역시 변해간다고 하더라도, 첫사랑이라는 경험은 어느 시대건 인간에게 본질적인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닐까. 다만 그 감정이 드나드는 것을 알아채지 못하거나, 기억의 형태로 향유되거나 기록된 글의 형태로 퍼지지 않는 것일 뿐, 우리는 모두 어느 순간 사랑의 열병에 빠지고 서툴 수밖에 없는 청춘의 시기에 그 사랑에 실패하고 만다. 첫사랑이 그처럼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게 되는 것은 사랑이라는 경험의 존재 형식 때문이 아니라 인간이 어린 시절 당연히 갖지 않을 수밖에 없는 서툴기 그지 없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 자기 자신에 대한 기억과 밀착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떤 대상에 대한 가장 강렬한 매혹의 경험과, 어떻게든 다가가려고 해도 실패할 수밖에 없는 말과 행동, 그것 때문에 계속 어긋나기만 하는 감정들은, 오랜 시간을 두고서도 늘 한 인간의 마음속에 각인되듯 남는다.이반 투르게네프의 소설 ‘첫사랑’(1860)은 바로 그렇게 누군가의 기억의 창고에 항상 남아 있게 마련인 그 첫사랑의 기억에서 시작된다. 어떤 귀족의 응접실에 모인 사람들은 이미 자정이 넘어가는 시간에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여섯 살 때 보모에게 느꼈던 첫사랑을 말하며 그 이후 자신의 사랑은 모두 두 번째가 되었다고 하면서 더 말하지 않는다. 기억에도 남아 있지 않은 사랑이 뒤에 다가올 사랑의 순서를 규정할 만큼의 의미가 있지만, 그것은 언어로 바뀔 수 없다. 우리의 첫사랑의 기억이 보통 그렇듯이.응접실의 주인으로부터 첫사랑의 이야기를 요청받은 블라디미르 페트로비치는 좀 더 시간을 요청하고, 2주 뒤에 나타나 수첩 속에 빼곡하게 적어놓은 이야기를 자신의 첫사랑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첫사랑이라는 감정이 언어화되기 위해서는 그 기억과 마주할 만한 약간의 시간과 작가가 되어 그것을 언어로 옮기는 지난한 과정을 필요로 한다. 그가 열여섯이던 때, 모스크바의 자기 별장 옆으로 이사온 몰락한 공작의 스물 한 살의 딸 지나이다와 만나 그에게 열정적으로 빠져든다. 사랑에 빠진 그는 지나이다의 작은 행동 하나하나에도 얽매이는 사랑의 노예가 되지만, 지나이다는 결코 그의 마음을 온전히 받아주지 않는다. 지나이다에게서 연적의 흔적을 발견하고 그를 죽이려고 하지만, 그 연적은 바로 자신의 아버지였고, 블라디미르의 첫사랑의 기억은 그렇게 파탄이 나고 만다.이미 마흔 살이 된 블라디미르의 첫사랑은 그렇게 파탄이 되어 끝난다. 다만, 그 기억은 투르게네프 자신의 소설이 되어 남아 읽힌다. 불어오는 가을 바람과 함께./송민호 홍익대 교수

2022-10-03

유병장수(有病長壽), 무병장수, 무병단수(短壽)

이명균 창원대 명예교수 죽음에 대한 얘기를 예전엔 금기로 여겼지만 요즘엔 많이 달라진 것 같다. 그렇더라도 칠십을 조금 넘긴 필자가 죽음에 대한 생각을 얘기한다면 나이 드신 분들은 무엄하다할지도 모르겠다. 어느 보험회사의 TV광고에서 ‘유병장수’라는 어휘를 보았을 때 병든 노인에게 저주를 보내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필자는 돌아가신 어머님의 별세에 대해 가끔 생각하곤 한다. 당신께서는 잠을 주무시다 조용히 세상을 뜨시겠다고 생전에 자주 말씀하셨다. 사람이 죽는 순간엔 목숨을 편안하고 쉽게 거두어야 된다며 예순이 지난 뒤부터는 보약이나 건강식품 같은 것을 일체 드시지 않으셨으며, 간혹 선물로 받으신 건강식품은 자녀들이나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주셨다. 그 이유는 나이든 사람이 보약이나 건강식품 같은 것을 먹어봤자, 새롭게 힘이 많이 솟아나지도 않을뿐더러, 그냥 목숨만 더 오래 유지되게 할뿐이라는 것이었다. 당신께서는 9년 전 만 82세로 세상을 뜨셨는데 평소 말씀대로 밤에 혼자 주무시다 돌아가셨기에 6남매 자녀들 중 아무도 임종을 못하였다. 시골집 텃밭에 심어놓은 고구마를 가을이 되면 수확하여 우리 형제들에게 보내주겠다고 하시던 어머님이랑 전화통화를 했던 동생이 그 다음날 오전 약속시간에 맞춰 어머님을 찾아갔을 땐 이미 숨을 거두신 뒤였다. 일반적으로는 자식으로서 부모의 마지막 임종을 못하면 불효라고 여길지 모르겠으나 필자는 솔직히 말해서, 그러한 죄책감은 전혀 없었다. 당신 생전에 장례절차, 49제를 지낼 절, 화장한 유골 모실 곳(가족 자연장지)까지 직접 방문하시며 필자와 함께 모든 의논을 다 해놓은 터였다.필자는 15년 전 대학병원에 시신기증을 하였으며 얼마 전엔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도 하였고, 현재는 어떤 건강보험에도 가입하지 않은 상태이며 암이나 중병에 걸려도 항암치료나 연명치료 등은 일체 하지 않기로 하였다. 미소 짓는 나의 모습의 영정사진도 마련해놓았다. 사람의 생명을 인위적으로 끊어서도 안 되지만 의료기술에 의지해 억지로 연장하는 것도 자연이치에 어긋난다고 본다. 신체와 의식이 건강하면서도 타인이나 사회에 조금이라도 이로운 일을 할 수 있거나 적어도 부담은 주지 않는 정도에서 세상을 살다 떠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통상적 기준으로 세상을 살만큼 살았다면 언제 어디서 쓰러져 죽더라도 전혀 아쉬움이나 문제가 없도록 생전에 모든 조치를 다 해두어야 할 것이다. 오래 살면서 나이 많은 것을 무슨 큰 훈장처럼 자랑하며 내세우거나 그렇게 비친다면 보기 좋은 모습이 결코 아닐 것이다. 유병장수가 가족이나 사회에 대해 어떤 형태로든 짐이 될 수밖에 없을 뿐 아니라 무병장수도 자칫하면 누군가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 젊은 사람들은 질병치료와 건강관리를 적극적으로 하여야 마땅하다. 그러나 죽음이 본인과 가족들의 고통과 부담을 없애주는 좋은 수단으로 여기고 자신의 생각, 활동, 주변 등을 잘 정리하면서 노년을 보내는 것이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까. 필자에게 무병장수와 무병단수 중 선택하라 한다면 단연코 후자를 택할 것이다.

2022-10-03

경부고속도로에 출구가 수백 개 생긴다면

권영철 영남대 명예교수 우리나라 고속도로 체계는 가두리 식이다. 우선 출구가 일정 규모의 큰 도시 위주로 되어있고, 통행료 징수체제이다. 이러다 보니 휴게소도 사람들을 가두어 놓는 식이다.이에 반해 미국 고속도로는 원칙적으로 무료이다. 물론 대도시 위주로 다리를 건너가거나 민자의 경우 유료도 있다. 출구(Exit)는 동네마다 있다. 만일 Exit 10 다음에 Exit 13이라면 3mile(마일) 후에 출구가 있다는 뜻이다. 물론 출구가 1mile 단위로 있는 곳도 허다하다. 그리고 출구 근처 Rest Area로 불리는 휴게지역에는 반드시 주유소, 햄버거 레스토랑, 편의점 등이 있고 조금 큰 동네나 근처 명소가 있을 경우에는 모텔 등 숙박 시설이 구비되어 있다.미국은 워낙 면적이 넓다 보니 동네 출구 휴게지역 내 업소에 일하는 사람들은 거의 지역 주민들로 채워진다. 시골 같은 지역은 경제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예컨대 미국의 서부 태평양에서 동부 대서양까지 잇는 US 하이웨이 80번 총거리는 우리나라 경부고속도로 10배인 46만6천636km인데, 거의 모든 출구마다 통행료가 없다.이에 반해 우리나라 사정은 어떠한가? 출구가 일정 규모 도시 위주로 되어 있고 휴게소도 원칙적으로 25km마다 제한되어 있는 독점적 구조이다.이러니 사람들이 붐비고 음식이나 서비스 질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휴게소에 쓰는 돈은 지역 경제와는 무관하다. 휴게소 운영업체나 임대해 주는 한국도로공사에 귀속된다. 또한 지역 동네나 근처 명소에 갈 때도 바로 빠져 나가지 못하고 대도시 출구에서 빠져 나가 우회해서 가야만 한다. 시간적으로 경제적으로 얼마나 낭비인지 아닐 수 없다. 그야말로 동맥경화에 걸린 것 같다.1970년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되고 몇 년 지난 1975년 당시 우리나라 차량 등록대수는 20만대 정도였으나, 2022년 현재 2천500만대에 이른다. 125배 증가한 것이다. 이런데도 가두리 식으로 가두어 놓으니 주말, 휴가철 및 명절 연휴에는 고속도로 정체가 지옥처럼 변한다. 미국처럼 동네마다 수시로 빠져나가게 하면 고속도로 정체 문제도 어느 정도 해결 될 것이다.또한 대도시 위주 출구에서 빠져나와 소도시나 시골 동네 목적지로 다시 우회에서 가다보니 기름 한 방울 안 나는 나라에서 얼마나 에너지 낭비란 말인가?물론 미국처럼 프리웨이 식으로 변경하려면 통행료 수입이 줄어들어 국가 재정에 큰 부담이 될 것이다. 또한 도로 정비에도 막대한 국가 예산이 투입되어야 할 것이다.그러나 경부고속도로를 비롯해 오랜 된 고속도로는 이미 투자대비 회수율을 훨씬 넘긴 상태다. 이젠 고속도로 정체 해소, 빠른 접근성, 에너지 절감, 그리고 지역 활성화 측면에서 단기적으로는 동네마다 출구를 만들고, 장기적으로는 투자 대비 회수율을 넘긴 고속도로부터 미국 프리웨이 식으로 바꾸어 나가도 우리나라 경제력으로 충분히 감내할 수준에 이르렀다고 본다.

2022-10-03

전기·가스료 인상, 에너지 과소비부터 줄이자

이달부터 주택용과 산업용, 일반용 전기요금이 kwh당 2.5원 인상된다. 주택용 도시가스 요금도 15.9%가 오른다. 4인가족 기준 전기료는 2천271원, 가스료는 5천400원 올라 한달 기준 전기·가스요금 부담이 약 7천670원 늘어난다.국제에너지 가격 급등과 한전의 적자누적 등 대내외적 요인 때문에 에너지 가격 인상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가뜩이나 높은 소비자 물가상승 분위기에 에너지 가격까지 올라 경제에 미칠 파장이 심상찮다. 특히 고물가, 고환율, 고금리 등에 시달리는 기업과 서민층이 안게 될 부담이 걱정이다.이번 에너지 가격 인상은 역대 정부가 여론을 의식해 요금을 제때 올리지 않아 누적된 부분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탈원전 정책을 내세우면서 “전기료 인상은 없다”는 공약을 지키기 위해 전기료 인상을 억제하다 한전이 지난해 6조원의 경영손실을 냈다. 한전의 적자가 올해는 30조원으로 예상된다고 하니 전기료 인상이 이번 한번에 그칠 것 같지 않아 더 걱정이다.우리나라 전기요금은 OECD국가 중 네 번째로 저렴하다. 그러면서 1인당 전기 사용량도 세계 3위다. 비용이 저렴해 소비가 많다는 분석이다. 과소비 측면이 강하다는 뜻이다. 정부의 전기료 조정 기능에 문제가 있다. 전력 사용이 많은 외국기업이 저렴한 전기요금 때문에 한국진출을 타진한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다.한국전력에 의하면 전력소비를 10% 줄이면 연간 에너지 수입액이 15조원 감소하고 무역수지 적자도 60%가량 개선할 수 있다고 한다. 올해 우리나라는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6개월 연속 무역수지 적자를 냈다. 우크라니아 전쟁후 석유, 석탄, 가스 등 3대 에너지 수입액이 전년 대비 81.2% 증가해 무역수지를 더 악화시켰다.정부가 “오일쇼크에 버금가는 비상상황”이라며 올 겨울 에너지 사용량 10% 줄이기에 나선다고 한다. 에너지 위기는 세계적 문제다. 우리도 비상한 각오가 필요하다. 가장 좋은 방법은 국민 스스로가 에너지 위기의식을 갖고 과소비를 줄여나가는 것이다.

2022-10-03

‘정치적 부족주의’에서 벗어나라

변창구​​​​​​​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21세기의 문명국가, 대한민국에서 ‘정치적 부족전쟁’이 한창이다. 부족전쟁을 이끌고 있는 각 진영의 지도자는 물론, 그 진영에 소속감을 가지고 있는 부족 구성원들 간의 대립도 심각하다. 전선(戰線)은 내정과 외교를 가리지 않는다. 정부여당은 전 정권에 대한 ‘신 적폐청산’을 명분으로, 그리고 야당은 현 정권의 ‘편파적 수사’를 이유로 부족의 사활을 걸고 전쟁 중이다.예일대 에이미 추아(Amy Chua) 교수는 ‘정치적 부족주의(political tribalism)’에서 “부족본능은 소속본능인 동시에 배제본능”으로서 “부족주의자들이 위기감을 느끼게 되면 똘똘 뭉치고 더욱 폐쇄적·방어적·징벌적이 되며 ‘우리 대 저들’의 관점으로 생각하게 된다.”고 했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패거리 부족주의, 그리고 그 패거리의 이익을 위해서 내로남불·유체이탈·자가당착 등 온갖 꼴불견 행태를 보이면서도 부끄러운 줄을 모른다. 부족주의에 노예가 된 한국정치의 비극이다.부족주의 정치는 ‘좀비정치’다. 좀비정치는 ‘우리는 선’, ‘저들은 악’으로 규정하고, ‘다름’을 ‘틀림’으로 인식해서 상대를 공격하고 물어뜯는 정치다. 분노와 증오의 부족주의 정치는 ‘이성이 아니라 감성’이 지배하고 있으며, 부족의식이 강한 사람일수록 정치행태는 폭력적이고 적대적이다. 그들은 상대를 죽여야 내가 산다고 생각한다. 팬덤(fandom)정치가 위험한 이유는 편향된 인식과 과격한 행태가 결국 ‘좀비정치화’되기 때문이다.정치적 부족주의는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추아가 지적했듯이 “부족주의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집단의 목표에 유리한 방식으로 세상을 보게 만들어서 현실을 왜곡”하기 때문이다. 정치적 부족은 ‘상대를 악마화’하여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는 ‘이익공동체’이며, 역지사지(易地思之) 능력을 상실하여 민주정치가 요구하는 대화와 타협을 어렵게 한다. 특히 대통령이 정치적 부족주의에 매몰되면 ‘국민의 리더(leader)’가 아니라 ‘진영의 보스(boss)’로 전락함으로써 나라는 갈등과 분열로 망국의 길을 가게 된다.부족주의 좀비정치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상대방에 대한 선입견을 버리고 대화에 필요한 ‘균형의 힘’을 키워야 한다. 모든 인간은 ‘천사’와 ‘악마’의 두 가지 속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능력도 매우 제한적이라는 사실을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완벽할 수 없는 인간이 완벽한 신의 흉내를 내는 것은 잘못이다. 이것은 어떤 정치권력이나 정치적 부족도 예외일 수 없다.따라서 정치적 인간의 한계를 깨닫고 독선과 아집을 버려야 한다.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자세로 ‘보수는 진보의 충고’를, 그리고 ‘진보는 보수의 고언(苦言)’을 경청해야 한다. 특히 부족 내부의 문제에 대한 자기성찰, 즉 ‘보수는 보수를 비판’하고 ‘진보는 진보를 비판’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정치적 부족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 때 지식인과 언론의 공평무사(公平無私)한 역할이 중요함은 물론, 국민들도 늘 깨어있어야 한다.

2022-10-03

재해복구 지휘관을 국감장에 왜 부르나

국회가 오늘(4일)부터 열리는 국정감사장(행정안전위)에 이강덕 포항시장과 최정우 포스코 회장을 증인으로 출석시켰다. 포항시민과 포스코 직원들은 국회의원들이 태풍피해 복구에 동참하지는 못할망정, 수해로 인해 자리를 비울 틈이 없는 두 사람을 국회에 불러 뭘 따지겠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포항시와 포스코는 행정안전위 의원들을 상대로 재해복구 현장상황을 설명하며, 증인출석 재고를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두 기관은 그동안 태풍피해복구 작업과는 별도로 국감준비에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행정안전위 소속 여야 의원들은 포항시와 포스코를 상대로 2000년대 이후 태풍 홍수 피해내역, 포항제철소 피해내용 등 많은 자료를 요구한 것으로 전해지고 한다. 이 시장은 민주당 김교흥 의원이, 최 회장은 국민의힘 이만희(영천 청도)·조은희(서울 서초갑) 의원이 증인으로 채택했다. 국회법상 증인은 출석하지 않으면 동행 명령을 받거나 고발당할 수 있어 출석을 거부하기가 쉽지 않다.국민의힘은 오늘 최 회장을 상대로 포항제철소가 막대한 태풍피해를 본 부분과 그동안의 경영 전반에 걸쳐 질의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민주당은 국민의힘 소속인 이 시장을 상대로 포항시 책임론을 거론하며 포스코 최 회장을 두둔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려되는 점은 각기 다른 정치적 의도를 가진 여야 의원들의 질의 과정에서 이 시장과 최 회장이 수해원인을 두고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포항제철소 침수 피해 원인과 관련해, 포스코 측은 “포항제철소 인근에 있는 냉천 범람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포항시는 “49년 전 포항제철소가 들어서며 냉천 물길이 틀어지고 폭이 이미 좁아졌다”고 주장하고 있다.이 시장과 최 회장은 그동안 포스코 지주사 서울설립 문제로 갈등관계를 지속해오다, 태풍피해 복구과정에서 화해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그런데 난데없이 정치권에서 태풍피해 책임소재를 따지겠다며 두 사람을 국회에 불러 또다시 갈등관계를 유발시키고 있으니, 포항시와 포스코 측의 걱정이 커지지 않을 수 없다.

2022-10-03

KBS 수신료

홍석봉정치에디터 한전은 지난해 4만8천114건의 TV 수신료 관련 민원을 접수했다. 이중 상당수가 환불요구다. TV 수신료에 대한 국민 불만이 팽배해 있다.한전이 지난달 한 법무법인에 TV 수신료 분리징수 관련 법률자문을 요청했다. 한전이 국민 여론 악화에 따라 KBS 수신료 분리징수를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는 것이다.한전은 KBS와 위·수탁 계약에 따라 1994년부터 전기요금과 TV 수신료를 통합징수하고 있다. 현 계약기간은 2024년 말 끝난다.한전은 수신료 징수액의 6.15%인 연 419억원을 위탁 수수료로 받는다. 적잖은 액수지만 지난해 5조8천억원의 적자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한전이 TV 수신료를 받지 않더라도 한전 경영에는 별다른 영향이 없다.반면 KBS 부담은 큰 폭 늘어난다. 그동안 정권의 나팔수 역할을 하며 공영방송의 임무를 방기한 KBS의 자업자득이다. KBS는 자체 생존 방안을 찾아야 한다.한덕수 국무총리도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수신료 통합징수는 편법이라고 했다. 정치권도 민주노총 언론노조가 장악한 KBS 편파 방송 해결 방안으로 수신료 분리 징수안을 강력하게 추진하겠다고 했다.국민 여론도 아주 나쁘다. 2천500원에서 3천800원으로 올리는 KBS 수신료 인상안에 대해 국민 10명 중 8명(84.1%)이 반대했다. 2019년에는 KBS 수신료 분리징수 청와대 국민청원이 청와대 답변 기준인 20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기도 했다.정부는 불만이 쏟아지고 있는 KBS 수신료 분리징수 요구를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 정치권도 KBS를 이용할 생각은 말아야 한다./홍석봉(정치에디터)

2022-10-03

‘김영광 가요제’ 포항의 대표 문화콘텐츠

장재권 (사)경북장애인권익협회장 잘있거라 나는 간다/이별의 말도 없이 강승모 ‘무정부르스’마음약해서 잡지 못했네/돌아서는 그사람/짜라짜짜짜짜 들고양이 ‘마음약해서’잠깐만/잠깐만/그발길을 다시 멈춰요 주현미 ‘잠깐만’미안미안해 미안미안해/너를 두고 여길 떠나가니 미안해 태진아 ‘미안미안해’30대 이상이라면 누구라도 한번 쯤은 들어봤을 법한 귀에 익은 추억의 노래가사이다. 이 노래들은 모두 포항이 낳은 천재 작곡가인 김영광(81)씨가 손수 작곡한 대표곡들이다.하지만, 이를 포항사람이 지었다고 알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포항시민들도 노래는 아는데 김영광씨가 누구지(?)라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더 많으니 말이다.실제 김영광씨의 이력은 정말 화려하다. 나훈아, 남진, 이미자, 윤수일, 조용필, 주현미, 태진아 등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가수들과 함께 2천600여곡의 노래를 제작해왔고 1990년 MBC 10대가수 가요제 최고인기가요 작품상, 2003년 제10회 대한민국 연예예술대상(대통령상)을 수상했다. 그야말로 한시대를 풍미한 대한민국 최고의 작곡가로 대중음악계에 큰 획은 그은 인물이다.최근에는 고향 포항을 위한 ‘선창가에서’와 남진의 최신곡을 작곡하는 등 팔순이 넘은 나이에도 아직도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이런 그가 지난해부터 고향 포항을 위해 ‘김영광가요제’를 열고 있고 올해로 2번째 대회가 오는 10월 1일 펼쳐지게 된다.그는 일본과 부산에서 가요제 요청이 있었지만 고향인 포항에서 본인의 이름을 딴 가요제를 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고, 결국 영광문화예술진흥회(회장 김상욱, 히아 영광진흥회)와 손잡고 2년째 ‘김영광가요제’를 이어가고 있다.가요제는 그의 유명세에도 불구하고 지자체 등의 예산지원 한푼 없이 추진위원들과 자문위원, 운영위원, 자원봉사자들의 자비와 일반인, 학생들의 자발적 후원으로 치러지고 있다.이런 가운데 일부에서 옛 구성원들의 정치적 색깔을 논하며 뒷담화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얘기가 들리고 있다. 참 안타까운 부분이다.이런 우려 때문에 영광진흥회측도 정치적 색깔을 드러내고 있는 구성원은 올 초 모두 배제했으며 순수 가요제를 위한 사람들로만 새로 추진위원회 모임을 결성했다.일반인들이 십시일반 모아 어렵게 가요제를 이끌어 나가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오해는 참으로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김영광씨는 우리나라는 대표하는 작곡가이고 그의 고향이 포항에서 그런 그를 기리는 가요제를 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포항의 경우 ‘철강도시’ 이미지가 너무나 강한 나머지 제대로 된 문화콘텐츠를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이런 가운데 ‘김영광가요제’는 문화콘텐츠에 목말라 있는 포항시민들에게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할 수 있다.목포시의 선례에서 알 수 있듯이 ‘목포의 눈물’로 유명한 가수 이난영씨를 추모하는 ‘난영가요제’는 1968년 이후 목포에서 꾸준히 열리고 있고 이는 목포시의 대표적 문화콘텐츠로 자리잡고 있다.이렇듯 문화콘텐츠는 한 도시에서 상당히 중요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이제 포항도 ‘김영광가요제’를 통해 문화도시 포항, 콘텐츠가 살아숨쉬는 도시로 만들어 보자. 순수한 가요제에 엉뚱한 뒷담화는 없애고 말이다.

2022-09-29

울릉도 공항건설 대표적 전시행정 유감

김두한경북부·울릉 “울릉도공항건설은 대표적 전시행정이자 예산낭비다.”김두관 더불어 민주당 국회의원이 지난 28일 국회교통위원회에서 이렇게 지적했다는 것이다. 김 의원의 지적은 유감이다. 물론 김 의원이 지적한 내용 중 울릉공항 활주로가 짧아 소형항공기 취항이 어렵다는 지적은 맞다. 본 기자도 지적했다. 하지만, 대표적 전시 행정, 예산낭비라는 지적은 유감이다.울릉도는 러시아, 중국, 북한, 일본의 해안을 아우르는 우리나라 최대 안보요충지다. 주민 1만 명인 울릉도는 일본이 호시탐탐 노리는 독도를 지키는 섬이자 공항이 건설되면 연간 100만 명이 다녀갈 우리나라 대표관광지다.울릉공항건설은 박근혜 정부때 시작, 문재인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착공을 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전시행정이라면 문재인 정부의 정책이 잘못됐다는 의미가 아닌가. 문재인 정부때 전시행정이라고 지적했어야 옳았다.그리고 김 의원의 지적대로 무용지물이 될 수 있는 울릉공항을 요긴하게 이용하도록 조치를 취해야 했다. 이제 야당이 됐다고 강 건너 불 보듯 전시 행정이라면 그 전시행정을 김 의원이 여당이던 시절 문재인 정부가 한 셈이 된다.본지도 울릉공항건설에 대해 몇 차례 걸쳐 예산을 조금만 추가로 투자하면 수십 배의 효과를 볼 수 있다고 기사를 썼고 반드시 활주로길이를 늘려야 한다고 지적했다.따라서 그런 점은 김 의원의 지적에 대해 동감한다. 하지만, 같은 말이라도 울릉공항의 활주로 길이가 1천200m인데 이대로 준공하기보다 활주로 길이를 1천300~1천 400m로 늘려야 한다고 지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대표적인 전시행정, 예산낭비라면 울릉도 공항을 쓸데없이 건설하고 있다는 말과 같다. 이 말에는 동의를 할 수 없다. 김 의원이 여당의원이었다면 전시행정이라고 말했을까 의문이다.김 의원은 여당시절에는 울릉공항 활주로 길이가 문제없고 야당이 되니 문제가 있다는 것으로 밖에 들리지 않게 된다. 동해 유일한 섬 울릉도 주민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말이다.김 의원은 울릉도를 다녀갔고 울릉도에 대해서 잘 아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울릉공항건설을 헐뜯으려고 한 말은 아닌 것으로 믿고 싶다.국토부가 2015년 기본 계획 수립 당시 검토한 기종은 ATR-42이다. 현재 해당 기종을 운용하는 항공사는 없다. 운용기종을 통일해 수익성을 높이는 저비용 항공사(LCC)로서도 국내 도입은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또 국토부는 소형항공사 ‘하이에어’가 취항 가능하다고 주장하지만 하이에어의 운용기종은 국토부가 기본 계획에서 검토한 ATR-42가 아닌 ATR-72이다. 가장 큰 문제는 ATR-72가 이륙하기 위한 조건조차도 기관마다 제각각이란 점이다고 했다, 모두 맞는 말이다.따라서 울릉공항의 활주로는 분명히 늘려야 한다. ‘울릉공항은 대표적인 전시행정이자 예산낭비 사례’라는 말은 철회해 주길 바란다. /kimdh@kbmaeil.com

2022-09-29

노인의 날

우정구 논설위원 윤석열 대통령이 저출산 정책의 전면 개편을 지시했다고 한다. 지난 16년동안 280조원의 예산을 쏟아붓고도 올해 2분기 출산율이 0.75명으로 떨어진 것을 보고 개탄해서 한 말이다. 국가 출산율 제고는 역대 대통령마다 야심차게 밀어붙여 왔으나 결과는 늘 허탕이었다. 해가 갈수록 되레 출산율이 떨어져 예산 투입 대비 효율은 제로도 아닌 마이너스다.통계청의 인구전망 추계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2070년이면 총인구가 3천800만명으로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금보다 1천200만명 가량이 줄어드는 대신 60세 이상 노인인구는 전체 인구의 절반에 가까운 46.4%까지 늘어난다는 조사다.초고령사회란 65세 이상의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 이상인 경우를 말한다. 통계청은 우리나라도 2025년이면 초고령사회로 진입할 것으로 전망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보면 일본(29.4%)과 이탈리아(24.2%) 등 20여개국이 초고령사회에 진입해 있다. 10년내 15개국이 초고령사회로 진입할 것이란 UN측 전망이다.10월 2일은 노인의 날이다. 1997년 경로효친사상을 앙양하고 전통문화를 계승 발전시켜온 노인들에 대한 감사를 표하기 위해 제정한 날이다. 그해 노인의 날에 100세가 되는 노인에게는 1년생 풀인 명아주의 줄기로 만든 청려장을 정부가 준다. 가볍고 단단해 장수의 상징으로 알려진 청려장을 받는 노인들이 매년 늘고 있으니 반가운 소식이다.삼국사기 등에 의하면 통일 신라시대부터 나라에서 노인들에게 장수 지팡이를 주었다는 기록이 있다. 경로정신이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이다. 장수 노인도 늘고 출생아도 느는 노인의 날이 오길 학수고대해 본다./우정구(논설위원)

2022-09-29

구미시, K-방산 허브 도시 꿈꾼다

국내 최대 전자 반도체 수출단지로 명성을 알린 구미시가 K-방산 허브도시를 꿈꾼다. 삼성과 LG 등 대기업이 수도권으로 이전하며 전자 수출단지로서 옛 명성이 많이 퇴색했지만 전자산업 기술의 굳건한 기반을 바탕으로 방위산업을 신 성장동력으로 끌어들이고 있는 것이다.구미 국가산업단지에는 국내 대표 방산업체인 LIG 넥스원과 한화시스템 등이 포진하고 있으며, 방위산업 관련 업체만 200여 군데에 이른다. 특히 경북도에 따르면 구미국가산단 제조기업 3천여 군데 가운데 방산 진입이 가능한 기업이 1천300여 군데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고 한다. 지난 1월 LG 넥스원과 한화시스템이 4조원이 넘는 중거리 미사일인 천궁-Ⅱ를 UAE와 수출계약을 함으로써 구미지역의 방위산업은 이제 한 단계 도약하는 전기를 맞고 있다. 천궁-Ⅱ는 최첨단 기술이 적용된 미사일로 전 세계적으로도 일부 국가에서만 개발되는 무기다. 향후 글로벌시장 공략에 구미시가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지난 28일 구미시와 LIG 넥스원이 투자양해 각서를 체결한 것도 반가운 일이다. LIG 넥스원이 2025년까지 구미지역에 1천100억원 규모 신규투자를 약속해 구미지역 방산의 미래를 밝게한 것이다. 또 한화시스템도 한화 구미사업장을 인수키로 함으로써 구미 방위산업이 바야흐로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김장호 구미시장이 “구미를 K-방산 허브 도시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은 구미의 이같은 방산 인프라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이지만 그보다 구미산단이 오랫동안 집적해 온 전자분야에 대한 첨단기술이 방위산업과 접목이 잘된다는 점도 충분히 감안한 것이다. 또 구미 소재 3개 대학에 방산 관련학과가 있어 인력 수급에도 구미는 유리하다.구미시가 정부가 공모하는 방산혁신클러스터에 도전해 두 번 고배를 마셨다. 그러나 최근 조성되는 방산 인프라를 결집하면 내년도 방산혁신클러스터 유치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방산혁신클러스터 유치에 반드시 성공해 구미가 방산 허브도시로 성장하여 전국 최고 산업도시로서 명성을 되찾길 기대한다.

2022-09-29

철강산업 위기, 그야말로 ‘선제대응’이 중요

태풍 피해복구가 한창 진행중인 포항시를 ‘산업위기 선제대응지역’으로 지정하는 것을 검토하기 위해 정부실사단이 그저께(28일) 포항을 방문했다. 경북도와 포항시가 산업부에 신청서를 낸 지 4일 만에 실사일정이 확정된 것은 정부가 포항의 태풍피해 심각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실사단은 “산업위기 선제대응지역 선포는 법률 지정 후 처음 있는 일이다. 그만큼 국가 기반산업의 위기를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했다.산업위기 선제대응지역은 서면검토와 현장실사를 거쳐 산업부 장관이 주재하는 산업위기 대응심의위원회에서 지정 여부를 의결한다. 산업부와 산업연구원, 관계부처 관계자들로 구성된 합동실사단은 이날 포항시 손정호 일자리경제국장으로부터 피해현황을 들은 뒤, 포항제철소 압연공장과 철강산단 피해기업을 둘러보며 피해 상황과 복구 현황을 조사했다.포스코는 50년전인 지난 1973년 쇳물을 생산한 이래 이번 태풍으로 사상 처음 조업이 중단되는 불행한 사태를 겪고 있다. 포항제철소 압연공정(열·압력을 가해 용도에 맞게 철을 가공하는 작업)은 연말이 돼야 조업 정상화가 가능할 것으로 보여, 포스코는 물론 철강산업단지에 입주해 있는 협력업체와 중소기업들은 지금 심각한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포항에서는 이번 태풍으로 400여 개 기업이 침수돼 큰 피해를 봤다. 국가재난관리시스템(NDMS) 기준 피해 신고는 간접피해를 제외하고 1조348억원에 이른다. 포항시는 일단 철강산업 회복력 강화와 철강산업 구조전환 촉진, 철강산업 신산업화를 위해서는 1조4천억원의 정부 지원이 필요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산업위기 선제대응지역은 예상치 못한 재해로 지역 산업 악화가 예상되는 경우 범정부 지원을 통해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화하는 제도다. 이강덕 포항시장도 밝혔듯이, 포항지역 산업의 절대비중을 차지하는 철강산업 붕괴를 차단하려면 초기 대응이 매우 중요하다. 신속한 국비 투입을 위해 하루라도 빨리 포항을 선제대응지역으로 지정해서 국가 기간산업이 흔들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2022-09-29

홍준표의 ‘시간’

홍석봉 정치에디터 홍준표 대구시장이 취임 3개월이 됐다. 그간 대구 시정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쾌도난마식 일처리는 시민들을 시원하게 했다. 느슨했던 공직사회에 긴장감이 감돈다. 언제 홍 시장의 불호령이 떨어질지 전전긍긍이다. 언론과 의회, 시민단체가 일방통행식 행정을 비난하지만 오불관언이다. 기득권 카르텔을 깨는 것이 대구의 영광을 재현하는 출발이라며 밀어붙인다.K2 부지를 팔아 통합신공항을 이전하겠다는 기부 대 양여 방식을 특별법을 제정, 국비로 건설하겠다는 발표에 시민들이 환호한다. 정부보다 한발 앞선 공기업 구조조정엔 박수가 쏟아졌다. 대구시취수원을 안동댐 물을 끌어다 쓰겠다며 껄끄럽던 구미시를 걷어차 당혹케 했다. 발상의 전환이다. 홍 시장의 안목과 문제 해결 방식이 빛을 발했다.거침 없는 행보에 파열음도 적지않다. 공약이기도 한 제2대구의료원 건립은 의료현장 상황을 보고 판단하겠다며 사실상 무산시켰다. ‘공공의료 파괴’라며 시민단체가 반발했다.대구형 트램(노면전차)은 백지화했다. 대구 교통환경에 부적합하다는 판단에서다. 전임 시장의 역점 계획을 가차 없이 폐기했다.홍준표 시장의 행보를 대구시의회가 제동을 걸었다. 대구시가 ‘채무 제로’ 이행을 위해 추진하는 각종 기금 폐지 조례안들이 의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홍 시장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채무 제로’ 정책을 시의원들이 거부했다. 해당 기금을 없애면 재정 운영이 불안정해질 것이란 판단에서다. 한시 기구 설치 조례안 심사도 상임위서 보류됐다. 충분히 검토되지 않았다는 이유다. 이면엔 홍 시장의 일방통행에 대한 불만이 자리하고 있다.언론과의 관계도 매끄럽지 않다. 비판기사를 쓴 한 언론의 대구시 예산을 삭감한 이후 언론은 홍보 및 광고 예산을 건드리지 않을까 숨죽여 지켜보고 있다. 기자실을 잘 찾지 않는다는 불만도 나온다.경남지사 시절에도 의회·언론과 대립각을 보였다. 단체장과 의회·언론은 어느 정도 긴장관계가 필요하다. 행정과 주민들에게도 도움이 된다. 홍 시장은 의회와 언론의 역할을 인정하고 품어야 한다. 꼬이고 있는 경북도와의 관계도 풀어야 한다. 상생이 경쟁이 되어선 곤란하다.홍 시장의 SNS 정치는 빛을 발한다. 정치 상황에 맞춰 그때그때 쏟아내는 메시지는 청량제다. 메시지의 무게감도 남다르다. 거물급 정치인으로서의 경륜과 안목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지지자들은 환호한다. 정치인 중에 단연 돋보인다. 여기에 힘입어 각종 여론 조사에서 차기 대선후보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과유불급이라고 했다. 홍 시장의 SNS 정치는 어느 정도 자제가 필요해 보인다. 적절한 시기에 한번씩 던지는 절제와 완급조절이 요구된다. 시정에 전념해야 한다. 나머지는 자연스레 따라온다.정치권 일각에서 4년 후에 떠날 사람이 너무 일을 벌인다는 우려가 나온다. 소통은 없고 오만과 독선만 있다는 비판이 더이상 나와서는 안 된다.큰 그림을 그리고, 홍준표의 길을 가려면 소통이 우선이다. 대구시민 앞에도 자주 나서길 바란다.

2022-09-29

코스모스 가을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초가을 들녘에 코스모스 꽃이 한창이다. 철없이 서둘러 핀 것도 있었지만 지금부터가 제철이다. 누기 일부러 심고 가꾼 것이 아니라 저절로 나고 자라 꽃피운 야생화다. 요즘은 하도 예초기로 자르거나 제초제를 쳐대는 바람에 들판 한가운데는 논둑에 풀이 자랄 새가 없는데, 용케도 살아남아 꽃을 피웠으니 더 반가운 일이다. 물론 코스모스 혼자서 초가을을 펼치는 역할을 맡은 건 아니다. 이삭이 팬 억새도 있고 쇠어가는 쑥대와 망초도 있다. 도랑가의 여뀌와 물옥잠도 한 몫을 한다. 그것들의 배경으로 높푸른 하늘과 누렇게 벼들이 익어가는 들판이 있어 한 폭의 초가을 풍경을 완성한다.코스모스 꽃이 곱게 핀 초가을 들길을 걸으면서 나는 한 이름 꽃다발을 받아 안은 기분이다. 사람들은 특별히 좋아하거나 존경하는 표시로 꽃다발을 선사하지 않는가. 그것을 받아든 사람은 물론 존경받고 대접 받았다는 생각에 흐뭇하고 행복해지는 것이고. 이 가을 들녘 한복판에서 나는 뿌듯한 행복감과 존재감을 느낀다. 높푸른 하늘과 황금빛 들판, 온갖 풀꽃들이 나를 둘러싸고 환영하고 축복하는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림없는 소리라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내가 그렇다는데 구태여 누가 말리는가.‘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도 있지만, 대자연의 일부가 된다는 건 더없이 마음 편한 일이다. 혼자서 아등바등 할 것 없이 자연의 섭리에 맡기면 되는 것이다. 복잡다단한 세상사에서 받은 스트레스와 소외감으로 괴로워하던 사람들이 자연의 품에서 위안과 활력을 얻게 되는 것은 그래서이다. 사람의 의지나 욕심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 자연이다. 그것을 벗어나려는 노력은 어리석은 일이고 절망하고 괴로워하는 것도 부질없는 일이다. 이것은 결코 무기력한 비관주의가 아니다. 자연에는 풀 한 포기 벌레 한 마리도 비관하거나 절망하는 법이 없다.이 가을, 삼라만상이 모두 제자리에서 제 역할을 하는데 유독 사람들만 정처가 없는 것 같다. 한 떨기 풀꽃이나 벌레 한 마리, 단풍잎 하나에 비해 나는 과연 무엇이고 어떤 모습인가. 사람을 사람에게 물어서는 정확한 답을 들을 수가 없을 터이다. 자연에서 멀어진 만큼 핑계와 구실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 가을 들판 한가운데서 높푸른 하늘과 풀꽃들에게 물어보는 나가 참 나일 것이다.반성하지 않은 삶은 살 가치가 없다는 말이 있지만, 반성의 주체인 자아조차 상실한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 돈이든 권세든 탐욕을 쫓아가다 자신을 잃어버린 군상이 우글거리는 세상이다. 특히나 정치꾼들은 거의 예외가 없는 것 같다. 어떻게 그렇게까지 비열하고 파렴치할 수 있는지 경악을 금할 수 없다. 일말의 자존감이라도 있다면 그렇게 자신을 거짓과 사악의 구렁텅이에 팽개칠 수는 없는 일이다. 자신을 존중하는 사람은 함부로 처신하지 않는다. 불의나 탐욕에 빠져들 수 없는 것은 그것이 자신을 더럽히고 모욕하는 일이기 때문이다.가을 들길의 코스모스가 일러준다. 너는 이 세상에 하나뿐인 소중한 존재이니 반드시 제몫을 해야 되는 거라고.

2022-09-29

성범죄 처벌의 현주소

윤영대수필가 요즘 스토킹 범죄가 늘어나며 뉴스의 초점이 되고 있다. 지난 14일 오후 서울지하철 신당역 화장실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은 서울교통공사 입사 동기였던 사이였는데 피의자가 작년 10월부터 협박하고 계속 따라다니면서 스토킹을 하여 피해자가 2차례나 고소했으나 법원에서 ‘도주와 증거인멸 우려가 없음’으로 기각된 사건이었지만 결국 보복살인으로 이어진 것이다.지난 7일에는 40대 남성이 같은 아파트에 사는 10대 여학생을 승강기 안에서 흉기로 위협하며 납치를 시도하다가 붙잡혀서 구속영장이 신청되었는데도 이 또한 ‘재범의 우려가 없다’고 기각되었다. 이에 법원의 판단에 문제가 있다는 논란이 일자 불법촬영 혐의를 추가하여 구속영장을 다시 신청했다는데 일사부재리(一事不再理)의 원칙에는 위배되지는 않는지….어린이 성폭행 범죄로는 2008년 ‘조두순 사건’이 잘 알려져 있다. 교회 안 화장실에서 만8세 여아를 강간 폭행한 사건으로 15년 형을 선고받았는데 나이 많고 술 취한 상태 즉, 심신미약이 참작되어 12년으로 감형받았다. 그러나 피해자와 그 가족들은 평생 지울 수 없는 심각한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안고 살아갈 텐데 안타깝다.여성 스토킹 행위로 접근금지 조치를 받은 남성이 4개월 후 재범을 한 사건, ‘그만 만나자’는 통보를 받고 협박을 하며 흉기를 휘두른 30대 남자에게 경고는 했지만 입건하지 않은 사건 등 2021년 10월 ‘스토킹 처벌법’이 시행된 후 지난 8월 말까지 입건된 7천152명 중 구속된 것은 254명이라는 통계도 있다. 물론 법상 스토킹 범죄는 ‘피해자가 처벌을 바라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하면 처벌할 수 없다’는 ‘반의사 불벌죄 규정’이 있다. 그러나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은 진정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는 말은 아닐 테고 그 집요한 접근이 다음에 더 큰 폭력이 될 것이라는 염려를 한 때문일 것이다.스토킹도 ‘형사적 처벌 대상’인 범죄로 규정하고 있고, 성폭력은 지속적 또는 반복적으로 상대방 의사에 반하여 접근 또는 연락하여 불쾌감, 굴욕감 등을 주는 행위 즉, 성희롱, 성추행, 성폭행 등 모두를 포함한다. 이렇듯 성범죄 행위는 일반 형사 사건과 많이 달라 심리분석과 아울러 초기대응이 중요하며, 구속수사 원칙 등 법원의 판단도 좀 더 숙고해야 한다고 본다.군 내부에서의 여군 성폭력 사건 등 성 관련 위반사항이 연간 1천 건을 넘고 있고, 직장 내에서의 성범죄도 사회를 혼탁하게 만든다. 그동안 사회적 물질적 풍요로움만 추구하여 오면서 인간성 교육이 멀어진 탓이리라. 사랑의 표현은 모두 다를 수 있지만 서로를 배려하며 진정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랑이라야 된다.어릴 때 동네 여동생을 툭 쳐서 ‘오빠, 왜 때려!’하고 울먹이면 ‘너를 좋아하기 때문이야.’라고 하던 기억들이 비정상적으로 성장하여 성폭력의 씨앗이 되지는 않았을까? 성 윤리에 대한 새로운 시민교육이 절실하다.

2022-09-29

통합신공항 건설, 우물쭈물할 시간 없어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건설사업이 군위군의 대구시 편입 문제로 전체 일정에 차질이 빚어질까 봐 시도민의 우려가 크다.최근 국방부가 밝힌 통합신공항 청사진에서 신공항은 당초보다 2년 늦은 2030년 개항하는 것으로 드러나 더 이상 늦추는 일은 곤란하다. 대구경북의 미래를 위해 공항 개항은 빠를수록 좋다.그러나 국민의힘 일부 경북 의원 중심으로 군위 편입의 근거가 될 경북도와 대구시간 관할구역 변경에 관한 법률안의 국회 상정을 머뭇거리고 있어 자칫하면 연내 편입이 불발될 우려도 없지 않다. 군위군의 대구시 편입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군위군민의 반발 등으로 신공항 건설은 사실상 표류할 가능성도 있다.지난 27일 열린 경북도와 국민의힘 경북 의원간 예산정책협의회에서도 군위의 대구시 편입이 화두로 떠올랐지만 향후 추진 일정에 대해선 정치권의 명확한 입장이 나오지 않았다. 군위 지역구의 김희국 의원이 대구시 편입에 대해 조건없는 약속이행을 강조했으나 관련 법률안의 상정에 대해선 경북도당 위원장인 임이자 의원도 “노코멘트”로 일관했다.군위의 대구시 편입은 통합신공항 건설을 위한 전제조건이자 지역 정치권 모두의 약속이다. 군위군의 협조없이 신공항 건설은 어렵다. 이같은 사실을 알면서도 일부 국회의원들이 소극적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은 군위 편입으로 경북지역 국회의원 정수가 줄어들 것을 우려한 정치적 계산 탓으로 짐작이 된다. 그러나 그런 정치적 이해득실보다 대구경북의 미래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 지역출신 정치인의 도리다. 지역구 정수조정은 대응책을 별도 마련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일부 의원들의 생각대로 착공 후 군위편입 문제를 다룬다면 신공항 건설의 골든타임을 놓치게 되고 신공항 건설로 인한 경제적 상승효과도 크게 반감될 수밖에 없다. 대구경북 경제발전에 치명적일 수도 있다. 정치는 지역민의 뜻에 따르는 것이 기본이다. 지역민과의 신뢰가 무너지면 정치인으로서 존재감은 없다. 지역 정치권은 이번 국회에서 군위편입 법률안이 반드시 통과할 수 있도록 단결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2022-09-28

경북도, ‘파도 힘’ 이용해 재생에너지 만든다

‘2050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 우리나라에서도 다양한 신재생에너지 개발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경북도가 동해안 어항에 파도의 힘(波力)을 이용한 발전 시스템 구축을 시도하고 있다. 아직 경제성 문제가 입증되진 않았지만, 경북도의 연구용역 조사 결과 파도를 이용한 에너지는 충분한 것으로 분석돼 상용화(常用化)가 주목된다.경북도는 지난 27일 포항시 북구 동부청사에서 열린 ‘경북 동해안 파력발전 기획연구 용역’ 최종보고회에서 울릉군과 포항시 해안 3곳(울릉 태하포구, 울릉 현포항·남양항, 포항 영일만항)이 파력발전 후보지로 적절하다고 발표했다. 경북도는 신재생에너지를 확보하기 위해 3천700만원의 예산을 들여 이번 연구용역을 의뢰했다. 경북도는 파력발전에 유리한 포구·항만을 선정해서 타당성조사를 거친 후, 국가연구개발사업지로 지정해 줄 것을 정부에 건의할 방침이다. 정부 탄소중립위원회는 오는 205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전체 설비용량 중 파력발전으로 일정부분 충족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으며, 국내에서는 해양수산부 주관으로 제주도 추자도에서 파력발전 실증시험이 이뤄지고 있다.파력발전은 파도의 운동·위치에너지를 이용해 전기를 생산한다. 태양광, 풍력 등 주요 재생에너지가 밤이나 바람이 없는 날에는 발전이 불가능한 것과는 달리 24시간 작동하는 것이 장점이다. 현재까지는 미국, 영국과 유럽 일부 국가만 관련 기술을 확보하고 있다.다양한 신재생에너지를 이용한 ‘탄소배출 제로(0)’ 실천은 이제 전세계 기업의 최대현안이 됐다. 수출입 대기업과 공급망(협력업체 포함)이 배출하는 탄소배출량이 ‘신무역장벽’으로 가시화됐기 때문이다. 유럽의회는 지난 6월 탄소국경조정제도(탄소국경세) 도입 법안을 통과시켰다. 탄소 배출량이 많은 기업이나 국가에서 생산·수입되는 제품에 추가 관세를 부과한다는 내용이다. 미국도 탄소국경세 도입을 추진중에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경북도가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파력발전소 건설을 추진하겠다는 발상은 시의적절하다.

2022-09-28

사라질 것인가, 살아남을 것인가

장규열 한동대 교수 디지털세상이다. 사이버와 온라인, 인공지능과 4차산업혁명은 세상을 바꾸어 놓는다. 어떤 세계가 펼쳐질 것인지 사뭇 궁금하다. 상상과 추측을 해 보지만 그리 선명하게 보이지도 않는다. 어느 사회설문조사에서 10년 내에 사라질 직업으로 번역가, 경리직원, 공장근로자, 비서 등을 꼽으면서, 앞으로도 생존할 직종으로 연예인, 작가, 영화감독, 운동선수, 화가, 조각가 등을 선정했다 한다. 실제로 그럴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이들 직업군에는 나름 관통하는 유사점이 있다. 단순하고 반복적인 일들은 기계가 대신하게 되고 누구도 흉내내기 어려운 일들은 살아남을 것이라는 예측이 아닌가. 산업화의 물결 속에 넘치듯 부족했던 인적요소를 앞으로는 대체로 인공지능이 대신하게 될 것이라는 예견이다.인공지능은 법률, 의료, 회계 등의 전문직에도 도전한다. 과정의 정교화와 예측의 최적화가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예측도 빗나가는 셈이다. 아무리 복잡하다 해도 수학적으로 모델링이 가능할 인간의 모든 활동은 인공지능이 잠식할 터이다. 살아남으려면 상상을 뛰어넘는 변칙과 변화를 담았거나 누구도 생각하지 못할 나만의 그 무엇이 가능해야 한다. 그러니, 4차산업혁명의 물살에도 든든하게 생존할 직군으로 ‘문화’와 관련된 일들만 떠오르는 게 아닐까. 하기야, 창의와 상상조차 인공지능의 앨고리즘이 곧 따라올 것이라 한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일전도 이미 보지 않았는가. 상상을 초월하는 상상력과 창의는 넘는 창의가 필요한 셈이다. 그런 상상과 창의는 놀랍게도 ‘사람다움’을 회복하는 데서 찾아야 한다.나만의 이야기를 찾아야 한다. 우리만의 이야기, 즉 우리 문화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스토리를 찾아야 한다. 드라마 ‘오징어게임’에 등장하는 놀이문화는 향수어린 우리만의 옛 기억을 오늘의 좌절과 느낌에 절묘하게 연결하였다. 문화원형이란 그런 게 아닐까. 우리에게만 그리고 내게만 있는 모습과 이야기를 세상이 공감할 스토리로 끌어낼 때 함께 공유하는 성공으로 이어져 간다. 생각해 보면, ‘미나리’도 그랬고 ‘기생충’도 그랬다. 나만 품고 있었을 이야기 줄거리를 남들과 나눌만한 주제와 연결시키는 능력, 스토리텔링의 힘이 아닌가.‘디지털’을 극복하는 힘은 놀랍게도 ‘아날로그’에서 나온다. 일과 일,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만들고 발전적으로 관리해 가는 일이 인공지능에게 가능할까? 기계적이며 디지털적인 분석과 예측, 작업과 진행이 가능하다 해도 ‘관계’를 개발하고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일을 기계가 할 수가 없다. 기계가 절대로 따라올 수 없는 부분을 적극적으로 개발하여 새로운 콘텐츠를 만드는 일이야말로 4차산업혁명시대에 살아남는 길이 아닐까.디지털환경에도 잘 적응하면서 아날로그적 감수성과 인간적 관계형성능력에 주목하면서 새로운 수준의 창의와 혁신을 만들어야 한다. 전통적인 산업직군들이 인공지능의 심대한 도전에 직면하고, ‘문화’ 관련 영역들이 새로운 조명을 받고 있다. 문화로 강한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한다. 사라지는 것들과 살아남을 것들을 잘 구분해야 할 터이다. 문화가 강해야 모두가 산다.

2022-09-28

군위 대구 편입과 선거구 조정

홍석봉 정치에디터 군위군의 대구 편입이 벽에 부딪혔다. 우여곡절 끝에 경북도의회 문턱을 넘고 국회 상임위 상정을 앞뒀었다. 그러나 국회의원 숫자가 줄 것을 우려한 경북 국회의원의 거부로 상정조차 못했다.국회는 22대 총선을 앞두고 선거구 획정 작업에 들어갔다. 선거구 획정은 행정 및 생활구역, 교통 등을 종합, 고려해야 해 고차방정식을 푸는 것과 다름없다. 그 중 중요한 것이 인구다. 인구 편차가 지나치게 크면 평등선거 원칙에 어긋나 헌법소원의 대상이 된다. 여야는 매번 자당에 유리한 선거구 조정을 위해 안간힘을 쓴다. 선거구 획정은 정당과 해당 지역 정치인에게는 사활이 걸린 문제다. 선거구를 어떻게 결정하느냐에 따라 당락이 좌우되기 때문이다.차기 총선에서도 지역구 획정은 관심사다. 군위군의 대구 편입시 선거구 조정은 불가피하다. 경북지역의 경우 인구수 기준으로 선거구를 조정하다 보면 자칫 국회의원 숫자가 1명 줄어들 수 있다는 점이다. 의원 수 축소는 지역 영향력 감소를 의미한다. 지난 총선 때는 선거구가 기존 상주시와 군위·의성·청송군에서 군위·의성·청송·영덕군으로 변경됐다. 경북도내 중·북부 시군 대부분 선거구가 조정됐다.문제는 인구수 기준으로 조정하다 보면 대구는 군위군이 편입돼도 의원 수가 늘지 않는 반면, 경북은 최악의 경우 의원 수가 준다. 준 만큼 경기도 등 인구가 많은 곳에서 혜택을 본다. 지역 의원들은 이 같은 사태를 우려, 군위군 편입을 차기 총선 이후로 미룰 것을 바란다.이 경우 군위 편입을 전제로 한 통합신공항 건설은 물 건너간다. 군위군민들은 군위 편입이 안 되면 통합신공항도 없다는 입장이다. 군위군민 설득이 과제다./홍석봉(정치에디터)

2022-09-28

지방에서 산다는 것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내가 사는 혁신도시는 전형적인 계획도시의 모습을 하고 있다. 전체 지역이 아파트 단지별로 구획되고 단지와 맞닿는 상가에는 마트와 음식점, 병원들이 즐비하다. 하지만 차로 10분만 나가면 거짓말처럼 넓은 들판과 산이 펼쳐진다. 젊은 사람들은 혁신도시에서 살려고 하지만 혁신도시의 아파트 가격은 2년 만에 100%가 급등해버려서 이제는 쉽지 않은 일이 되어 버렸다.분할된 공간은 도시의 경제 양극화를 의미한다. 혁신도시에는 (수도권에 비하면 한참 저렴한 가격이지만) 호가 10억이 넘는 아파트에 살며 외제 차를 운전하는 사람을 쉽게 볼 수 있지만, 구도심에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 규모의 아파트도 많다. 지금, 이 순간에도 도시의 비어 있는 공간에 아파트를 올리는 작업이 진행 중이고, 그 아파트가 완공되면 경제 양극화는 더욱 심화 될 것이다.올해 여름 아이들을 데리고 잠자리를 잡으러 다녔다. 근처의 어느 공원을 가도 잠자리 떼를 쉽게 발견할 수 있으니 아이들도 잠자리 잡기가 어렵지 않은 환경이다. 매달 보름달을 마치 망원경으로 당겨온 듯한 크기로 관찰하는 즐거움도 여전하다. 내년에는 시에서 텃밭 분양을 받을 계획도 세웠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아이들을 언제 서울로 유학 보낼지 고민하고 있다. 지방의 30만 도시에서 아이 키우기에 대한 불안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중학생이 되자 엄마와 함께 수도권으로 올라가서 주말 부부가 된 동료 교수들의 이야기도 들려온다. 나 같은 수도권 출신들에게는 공간의 분할만이 아니라 마음의 분할도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다.지난 24일 서울에서 ‘기후정의 행진’이 있었다. 주최 측 추산 3만5천명이 운집한 집회에는 청년, 노동, 장애, 농민 등의 단체가 동참했다. 한때 ‘자연보호’라는 추상적 명제로 기후위기를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기후위기는 불평등과 착취의 문제로 우리의 삶에 깃들어 있다. 지난 8월 기록적인 폭우로 반지하에 살던 사람들이 안타까운 죽음을 맞았던 것처럼 기후위기는 사회의 가장 약한 사람들을 먼저 공격한다.기후위기가 일국적인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적인 위기라는 사실이 분명해지고 있다. 불과 1년 전 대홍수로 큰 위기를 겪었던 유럽은 올해에는 전례 없는 폭염을 견뎌야 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파키스탄에서는 40일간 비가 멈추지 않고 내려서 국토의 절반 이상이 물에 잠기고 1천5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기후위기는 경제 성장 중심의 정책을 펼쳐 온 국가 권력과 나의 신체와 욕망을 물질을 좇는 것으로 귀속시킨 주체에 대한 경고이다. 기후위기는 효율성과 편리성, 그리고 자산 증식만을 추구했던 우리 삶에 대한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 기후위기가 포괄하는 삶의 습성을 인식하고 변화의 필요성을 공유하는 것이 당장 필요하다. 지방에서 산다는 것은, 자기 분열의 메커니즘을 뚜렷이 인식하는 과정이다. 이 분열을 어떻게 봉합할 것인가? 기후위기가 삶에 파고든 시점에서 실체 있는 고민을 해야 한다. 무엇보다 우리의 아이들을 위해 말이다.

2022-09-28

이상한 선택과 집중

김규인수필가 재수 열풍이 분다. 대학 도서관에는 재수하는 학생들이 자리를 채우고 신문에는 재수에 관한 기사가 지면을 메운다. 우리 사회는 지금 의과대학과 SKY 대학을 선택한다. 그 선택을 통하여 젊은이들은 1년이라는 시간과 막대한 돈을 들여가며 힘든 시간을 보낸다.재수를 위해 자퇴하는 학생들이 해마다 늘고 대학의 중도 탈락율이 높다. 지방대학교의 중도 탈락 비율은 더 높다. 경북대, 부산대 등 9개 지방국립대학교의 중도 탈락 비율이 평균 4.3%에 달한다. 서울의 대학이 3%대인데 비하여 훨씬 높다. 자퇴로 인하여 해당 학교의 운영도 어려워지고 우리 사회의 사회적 비용 또한 늘어난다.대학 정원은 줄지 않는데 인구 감소로 고3 수험생은 줄어든다. 이것이 재수하는 학생들이 시간과 돈을 써 가면서 선택하는 요소 중에 하나다. 원하는 학과에 들어가기 유리하기 때문이다. 재수를 선택하는 것은 학생의 문제이지만 사회적인 틀을 만드는 것은 국가가 한다. 사회적으로 이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젊은 사람들의 서울 집중이 심하다. 취업이 될만한 대학은 수도권에 많고, 대학에 갈 때도 웬만한 서울의 대학이면 지방의 역사 깊은 국립대학보다 합격선이 더 높다. 이 합격선은 단순한 점수 차이가 아니다. 서울로의 집중의 정도를 나타낸다.선택과 집중은 경영전략 학자 마이클 포터가 확립한 경영전략이다. 특정한 한 분야를 선택하고, 거기에 자원을 집중시키는 경영전략을 말한다. 기업 경영과 국가 경영을 포함하여 개인의 자기개발이나 자산 관리도 적용할 수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막대한 비용을 들여가며 수도권에 몰린 의과대학이나 SKY 대학 진학을 선택하고 결과적으로 서울로 집중하는 현상이 심하게 일어난다.우리는 세계 최저 출산율에 따른 인구절벽을 맞고 있다. 인구절벽 시기에 사람들의 서울 쏠림은 더 크게 느껴진다. 국가의 중요 수출 품목인 반도체 관련학과의 신입생 정원이 늘어나는 대학은 수도권의 대학들이다. 서울로의 집중을 바라보는 비수도권의 입장은 참담하다. 하루하루 조여드는 도시 소멸의 위기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젊은이들이 수도권을 선호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각종 문화시설이 즐비하고 우수한 대기업들도 수도권에 몰려 있다. 지방에서는 돈을 벌기도 문화를 누릴 시설도 부족하다고 말한다. 이러한 현실에도 정부의 정책은 수도권 중심이다. 고 이병철 회장의 미술관이나 각종 문화시설은 이런저런 이유로 수도권에 배치한다. 정부가 실시한 실질적인 공기업의 지방 이전은 얼마나 이루어졌는지. 저녁이면 퇴근 버스에 올라 서울의 집으로 향하는 사람들을 마주할 때면 지방에 사는 것이 유배당하는 느낌이다.지하철 역세권이라 외치는 수도권 아파트 분양 광고 문구를 접하면서 사람들이 스스로 찾아오는 지방을 만드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느낀다. 편의 시설이 잘된 서울로만 가려는 사람들을 나무랄 수 없다. 하지만 국가의 균형 발전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중요시설의 지방 분산을 위한 정부의 노력이 절실함을 이상한 선택과 집중을 보면서 뼈저리게 느낄 뿐이다.

2022-09-28

식혜

정미영 수필가 식혜를 만들기 위해 무명 자루를 꺼냈다. 엿기름을 흘리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주둥이를 꽉 조여 맸다. 따뜻한 물에 담가 조물조물 만져 보니 감촉이 좋았다. 우러나온 물이 뽀얀 젖빛이었다.나는 아기를 낳으면 모유를 먹이고 싶었다. 아기를 보듬어 안고 눈을 맞추는 엄마의 모습, 실컷 먹고 활짝 웃는 아기의 얼굴, 얼마나 행복할까 기대했다. 아기의 작은 몸짓조차 흘려버리지 않으려면 엄마와 아기가 교감해야 된다고 믿었다. 그 첫걸음이 모유를 먹이는 일이라고 생각했다.내가 바라는 대로 되지 않았다. 첫아이를 낳고 산후조리원에서 몸조리를 했다. 환경이 낯설었는지 입맛이 없었다. 산모가 잘 먹어야 젖이 나온다고 했지만 미역국조차 먹기 힘들었다. 결국 초유마저 나오지 않았다. 아이가 배고파 보채는 게 안타까워 분유를 먹였다.조리원에 있던 산모 중에 나만 모유를 먹이지 못했다. 첫 출산이라 내가 유독 예민했는지, 아니면 체질 때문이었는지, 모유를 먹이는 엄마들이 부러웠다. 때때로 나 자신에게 서운했다. 다른 엄마들의 모유 먹이는 모습은 왜 그리도 당당하고 쉬워 보였는지. 남들은 잘도 젖을 물리는데 나는 왜 내 아이에게 못해 줄까. 안타깝고 미안했다. 모유를 못 먹이는 것이 마치 자식 사랑이 부족해 그런 것만 같아 자꾸만 스스로를 괴롭혔다.미안함 때문일까? 엿기름을 물에 담가 우리다보면 젖먹이를 둔 엄마처럼 가슴이 찌르르해진다. 뽀얀 엿기름물이 마치 모유처럼 보인다. 그래서인지 엿기름물을 받아 식혜를 만들어 내 아이에게 먹이는 일이 즐겁다. 엄마 젖을 먹이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처음 식혜를 만든 것은 아이의 돌 무렵이었다. 어느 날 아이가 고열에 시달렸다. 마침 시어머니께서 전화를 하셨다. 해열제를 먹여도 열이 잘 떨어지지 않는다고 말씀드렸다. 어머니는 나에게 식혜를 만들어 보라고 하셨다. 엿기름의 찬 성질이 열을 금방 떨어뜨린다며 만드는 법을 대강 알려 주셨다.제대로 만들 수 있을까,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아이가 나을 수 있다는 말에 귀가 솔깃했다. 곧바로 엿기름을 사다가 어머니가 일러준 대로 해 보았다. 아이가 빨리 낫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했다. 다음 날 아침, 밥솥을 열었다. 여섯 시간 정도 지나면 밥알이 서너 개 떠오른다고 했는데 밥알과 함께 엿기름이 빼곡히 떠 있었다.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다.“어머니, 밥알 아닌 것도 많이 떠있어요!”“밥알 말고 떠 있는 게 뭐꼬, 밥솥에 엿질금 물만 넣었제?”“엿질금도 깨끗이 씻어서 같이 넣었는데요.”어머니의 커다란 웃음소리가 전화선을 타고 흘렀다. 아차, 싶었다. 나는 어머니의 설명을 잘못 이해한 것이었다. 깨끗이 씻은 엿기름을 버리기가 아까워 쌀 안치듯이 물과 함께 밥통에 넣었다. 곡진하게 삭을 줄 알았다.결국 다시 식혜를 만들었다. 두 번째는 성공이었다. 그 걸 먹고 아이의 열이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나을 때가 되어서 그랬는지, 엄마의 서툰 솜씨가 안쓰러웠는지, 아무튼 나았으니 다행이었다. 그 때 맛을 본 탓인지 아들은 음료 중에 식혜를 가장 좋아한다.아이가 식혜를 좋아하니 자주 만든다. 시장에 갈 때면 아예 엿기름을 서너 봉지씩 사다 놓는다. 아이에게 먹일 것이므로 엿기름을 사면서 꼼꼼히 따져본다. 어디에서 만들었는지, 제조일자는 최근인지. 요즈음은 봉지에 만든 사람의 얼굴 사진까지 박아 놓는 경우도 있다. 믿고 사라는 말일 테다.예전에는 집집마다 엿기름을 직접 만들었다고 한다. 엿기름을 만들 때 싹을 내기 위해 시루에 보리를 넣고 물을 주며 길렀는데, 기른다고 해서 ‘기름’이라 불렀단다. 집집마다 만들었으니 장맛이 다르듯 엿기름에 따라 식혜 맛도 달랐으리라. 그래서 이왕이면 엿기름 봉지를 고를 때 손맛 좋게 보이고 연륜이 묻어나는, 할머니 사진이 찍힌 것으로 고른다. 식혜 맛을 내기 위한 나름의 묘책이다.식혜가 알맞게 식었다. 단내가 은은하다. 아들이 연신 입술을 달싹인다. 엿기름으로 빚은 내 마음의 모유, 한 그릇 넘치게 퍼 담는다.

2022-09-28

신사(辛巳)

육십갑자 중 열여덟 번째에 해당하는 신사(辛巳)다. 천간(天干)은 신금(辛金)이요, 지지(地支)는 사화(巳火)다. 신금(辛金)은 음간의 금(金)이다. 다이아몬드처럼 예리하고 빤짝이는 것으로, 원석덩어리 경금(庚金)과는 완전히 다르다. 사화(巳火)를 만나서 불빛이 보석을 비쳐주니 아름다운 형국이다.신사일주(辛巳日柱)는 합리적이며 성실하고 품격이 넘치는, 말 그대로 신사(紳士) 숙녀(淑女)다. 사회의 법과 질서, 규칙을 잘 지키려고 하는 깔끔한 스타일이다. 남녀 공히 반짝이는 보석같은 존재로, 흠집이 나는 것을 제일 싫어하고 남의 시선을 많이 인식하기 때문에 체면이 구겨지거나 자신의 품위가 손상되지 않으려고 노력을 한다.일지(日支) 신사(辛巳)는 정관(正官)으로 반듯한 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올바른 사고와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여자는 배우자 궁으로 정관이 남편에 해당되므로 제대로 자리를 잡고 있기에 자신도 반듯하고 남편도 올바르고 좋은 성품의 남편을 만나니 좋은 일지다. 다이아몬드처럼 빛나기 때문에 콧대가 높고, 외모적으로는 미인들이 많은 일주에 해당된다.60갑자 중 정관(正官)에 해당하는 일주는 신사, 정해, 경오, 병자. 네 가지 밖에 없다. 물론 일주만 보고 말하기 때문에 다른 년주, 월주, 시지에 따라 달라지기는 하지만 여성에게는 참으로 행운의 일주이기도 하다.옛날에 결혼 적령기의 딸을 가진 제(齊)나라 사람에게 두 집안으로부터 동시에 청혼이 들어왔다. 동쪽에 있는 집의 아들은 못생겼으나 돈이 많고, 서쪽에 있는 집의 아들은 잘생겼지만 매우 가난하였다.부모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딸에게 스스로 결정하라고 하면서 “만약 누구라고 분명하게 이름을 밝히기 거북스러우면 한 쪽 팔소매를 걷어 올려라. 그러면 우리가 알아차리겠다”라고 말했다.그러자 잠시 망설이는 딸이 두 팔의 소매를 모두 걷어 올렸다. 부모들은 이상해 하며 “그것이 무슨 뜻이냐”라고 물었다. 딸이 “저는 밥을 동쪽 집에 가서 먹고, 잠은 서쪽 집에서 자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풍속통의 ‘예문유취’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아무리 미인이라지만 자기 스스로에 도취되어 사리분별을 하지 못한 결과이다. 인생에서 불가피하게 양자택일 할 경우를 평소에 대비해야 하는 것이다.신사일주(辛巳日柱)는 대기업, 공기업처럼 안정적인 직장생활에 잘 맞고, 어딘가에 소속되어 일을 할 때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여 인정을 받는다. 자영업이나 사업은 잘 맞지 않는다. 육체적인 일보다는 좋은 머리를 이용하여 정신적인 일을 하는 것이 좋다.신사일주(辛巳日柱)에 신금(辛金)은 방위로는 서쪽이요, 색깔로는 흰색이다. 일명 백사(白蛇)라고 한다. 사화(巳火)는 권력의지가 강하다. 활동적이며 정열적이다. 개성이 뚜렷하나, 끈기가 약한 편이다. 간교한 지혜로 남을 모함할 수 있으며, 그 때문에 혼자 괴로워하는 경향이 많다. 여성은 자식에 대한 집착이 강한 면을 보인다. 신금의 날카로움은 대인관계에 있어 갈등을 일으킬 여지가 많다. 진정한 용기는 관용이다.중국 작가 루쉰(1881∼1936)의 잡문 ‘뇌봉탑이 무너진 데 대하여’에서 백사(白蛇) 이야기가 나온다. 허선이라는 사람이 푸른 뱀과 흰 뱀, 두 마리를 구해주었다. 나중에 흰 뱀은 여인으로 변하여 은혜를 갚으려고 허선에게 시집을 왔고, 푸른 뱀은 여복(女僕)으로 변하여 함께 따라왔다.법해선사라는 득도한 스님이 허선의 얼굴에 요사한 기운이 도는 것을 보고, 허선을 금산사의 불상 뒤에 숨겨 두었다. 백사 낭자는 남편을 찾으러 오자, 마침내 법해의 계책에 말려들어 자그마한 바리때 속에 갇히고 말았다. 바리때를 땅 속에 묻고 그 위에 짓누르는 탑을 하나 세우니 그것이 바로 뇌봉탑이다.루쉰은 생각한다. 스님이라면 제 염불이나 하면 될 일이다. 흰 뱀이 스스로 허선에게 반했고, 허선은 스스로 요괴를 아내로 맞이했는데, 다른 사람과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스님이 기어이 불경을 버려두고 공연히 시비만 일으켰으니 아마도 질투심을 품었기 때문일 것이다. 류대창명리연구자 나중에 옥황상제도 법해가 쓸데없는 짓을 했고, 무고하게 생명을 해쳤다고 나무라면서 법해를 처벌하려 했다. 법해는 이리저리 도망 다니다가 마침내 게 껍질 속으로 숨어서 화를 면하게 되었는데, 감히 나오지 못하고 그렇게 지낸다고 한다. 루쉰은 옥황상제가 한 일 가운데 마음 속으로 불만을 품은 것이 매우 많았지만, 오직 이 일만은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뇌봉탑(벽돌 탑)이 무너진 까닭은 시골 사람들이 미신에 따라 그 탑의 벽돌을 자기 집에 가져다 놓으면 모든 일이 평안하고 뜻대로 되며, 흉조가 길조로 바뀐다고 믿고서 너도나도 파가는 바람에 무너졌다. 나라의 초석을 몰래 파가는 사람들이 지금도 얼마나 되는지 모를 일이다.지금 중국 절강성 성도 항주에 경치가 아름답기로 이름난 서호(西湖)에는 무너진 뇌봉탑 잔해 위에 새롭게 7층탑으로 복원되어 있다.인생의 성공이나 실패는 운에 따르는 것이 아니다. 운은 단지 부수적인 요소일 뿐이다. 단순한 행운이 아니라, 노력이 따르는 탁월한 행동이 성공과 행복을 가져다준다. 요행만 바라는 행동은 불행을 불러올 것이다. 인간의 미덕 가운데 꾸준히 행동하는 미덕만큼 안정성을 갖는 것도 없을 것이다.

2022-09-28

일단 제철소 먼저 살려 놓고…

정종식 전 포항시의원 포항이 인구 5만의 작은 어촌에 불과할 당시 포항종합제철이 태동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 주변에는 가로림만, 울산, 아산, 영덕 등 포항 이외의 도시를 적극 추천하는 인사들이 있었다. 지역차원에서 대대적인 유치 활동을 펼친 결과 종합제철소가 포항에서 탄생하게 됐다. 초기 늘어나는 철강재를 적기에 공급하고자 일면 건설 일면 조업의 돌관 비상 작업이 한창 진행될 때 지역사회 주민들은 두 팔을 걷어 적극 도왔다.지역사회와 지역기업의 공동운명체 의식은 90년대까지 지속적으로 자리를 잡아왔고, 한 때 포항 지역 경제산출액은 전국 평균의 두 배 가까이 되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던 중에 어느 지역 정치인이 자신의 선거 전략으로 종합제철과 지역사회를 대립 구조로 몰아간 적이 있었고, 그때부터 선거철만 되면 지역사회와 기업이 마찰을 일으키는 모양새가 연출되기도 했다. 최근에도 포항시 전역에 현수막이 걸려 시민들을 안타깝게 만든 일이 있었다.고대 전쟁사를 보더라도 상대국에 전염병이 돌거나 흉년이 들거나 천재지변이 있을 때는 잠시 휴전하고 먼저 재난 극복에 힘을 쏟은 사례가 있다. 지금 포항이 그런 경우다. 포스코 경영을 둘러싸고 이런 저런 얘기들이 있긴 하지만 지금 일단 제철소부터 살려 놓고 보자는 의견들이 많다.최근 포항 대표적인 시민단체에서는 ‘그간 포항의 긴급한 현안이 있을 때마다 앞장서서 극복해 왔는데, 이번 제철소 침수 복구 사태에도 현명한 대안을 모색하며 불필요한 포스코 때리기는 잠시 중단하는 게 마땅하다’는 논의가 있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시내 곳곳에 포스코 수해 조기 복구를 기원하고 철강 산단, 지역사회 간 협력에 대한 현수막을 걸기도 했다.이와 함께, 포항제철소 수해 복구에 오랜 친구들이 나섰다는 보도가 있었다. 포스코와 10년 넘게 인연을 맺어 온 지역 자매마을 주민들이 떡, 삶은 계란, 생수 등을 실어온 훈훈한 이야기가 들려왔고, 타 도시에서도 온정의 손길이 이어졌다.전통적으로 투쟁의 DNA를 자랑하는 화물연대도 제철소 복구에 힘을 보태고 있다. 항운 노조에서도 도울 일이 있는지 의사를 밝혀 왔다고 한다. 거의 전 영역에서 제철소 살리기에 힘을 보태고 있다.이번 기회에 지역사회와 기업이 다시 화합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지역사회는 글로벌 기업 경영의 특성을 이해하고 기업은 지역사회 경제 활성화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방안을 모색하는 그야말로 상생 협력의 전환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무엇보다 먼저 제철소부터 살려 놓고 따지고 논의할 것은 추후에 해도 늦지 않다.

2022-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