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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울진주민 산불 트라우마에도 대책을

울진 주민 사이에 산불 트라우마가 확산되고 있다. 지난 3월 발생한 역대급 산불 피해로 많은 주민이 산불 공포를 경험한 지 얼마되지 않아 또다시 대형 산불이 발생하면서 주민 상당수가 산불에 대한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는 것이다. 28일 발생한 산불은 23시간만에 진화돼 마을회관으로 대피했던 주민들이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지만 행여 집을 잃을까 하며 가슴을 쓸어내린 주민이 한둘 아니다. 잦은 산불 발생으로 이른바 산불 트라우마가 울진 주민 삶 속에 조금씩 스며들고 있다.지난 3월 4일 북면 두천리 야산에서 일어난 산불은 213시간이나 이어지고 울진지역에서만 1만8천ha의 산림을 불태웠다. 주택과 축사 등 300여채가 불 타고 수 백명이 집을 잃고 임시 피난시설에서 지내야 했다. 두 달 만에 또다시 대형 산불이 일어나자 울진지역 주민 상당수가 산불 이야기만 나와도 깜짝 놀랄 정도로 트라우마에 시달린다고 말한다. 경우는 다르지만 2017년 포항지진으로 포항시민 상당수가 지진 발생 이후 4년 넘도록 정신적 후유증에 시달렸던 점을 생각하면 울진 주민의 산불 트라우마도 가볍게 볼 일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재난 피해로 겪는 트라우마는 쉽게 치유되지 않아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근본적으로 울진에서 산불이 발생하지 않도록 항구적 대책이 있어야겠지만 주민 트라우마에 대해서도 세심한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산불은 예고 없이 일어나고 한번 일어난 산불은 산림훼손 뿐 아니라 주민의 생계기반을 송두리째 앗아가버리기도 한다. 산불 예방에 각별한 관심을 강조하지만 매번 되풀이되는 산불에 대한 우리의 대응력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울진은 금강송 군락지와 송이 주산지 등 풍부한 산림 및 임산자원을 가지고 있다. 또 울진원전과 같은 주요 국기기관 시설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산불로부터 이같은 중요 자원과 주민 재산을 보호해야겠지만 주민이 입은 정신적 피해도 보호하는 것이 올바른 보상이다. 주민 트라우마에 대한 당국의 관심은 산불 예방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2022-05-30

지나침의 폐해(弊害)

강성태시조시인·서예가 강바람을 가르며 자전거를 타는 기분은 상쾌하기만 하다. 강둑 언저리에 줄지어 핀 금계국이 노란 웃음으로 손 흔들어 반기고, 듬성듬성 키 자랑하듯 빨간 나팔처럼 흔들리는 접시꽃의 환호를 받으며 강변을 달리다 보면, 바람마저 등 뒤에서 불어와 정말 자전거 바퀴가 저절로 굴러가는 듯하다. 윤슬로 얼비치는 잔잔한 수면엔 오리떼가 한가로이 유영하고, 간간이 왜가리가 끼룩대며 날아오르는 풍경을 접하는 자전거 출퇴근길은 언제나 가뿐하고 넉넉하기만 하다.그렇게 8km 정도를 달리다가 나머지 2.3km 구간은 최소한 도보나 뜀박질로 사무실 위치까지 가야 하다 보니 거의 ‘철인 2종’이나 다름없는 출퇴근길이 되고 말았다. 그렇게 몇 달간 자전거를 타다가 걷거나 뛰어서 출퇴근을 하다 보니 동료들은 필자더러 아예 형산강까지 헤엄쳐서 건너 ‘철인3종 출퇴근’을 하는게 어떻겠냐며 부러움반 시기 반(?)으로 얘기하곤 한다. 하지만 필자는 전혀 그에 개의치 않고 나름의 보법으로 완급을 조절하며 적당히 생활 속의 운동을 실천하고 있었다.그런데 정말 문제가 생겼다. 자전거 통행이 안되는 구간을 걷거나 뛰어서 가다가 하루는 몸의 컨디션이 마냥 좋은 듯해 퇴근길에 거의 단번에 주파했었는데, 자고 일어나니 왼쪽 무릎부위가 통통 붓고 걸음을 제대로 걸을 수 없을 정도로 통증이 심해진 것이다. 병원의 진찰은 좌슬부의 좌상, 염좌 증상으로 5주 이상 안정을 취해야 한다는 진단이었다. 마음은 청춘이지만 몸이 따라주지 못함을 짐짓 깨달으며 치료와 안정에 전념할 수밖에 없었다.본의 아니게 부상상태로 근 2개월간 가료하면서 새삼 깨우친 것은 과유불급(過猶不及)이었다. 아침의 출근길부터 무리하지 않고 살살 걸어서 간다거나 퇴근길의 여유로움으로 무한질주(?)를 피했어야 했는데, 어느 순간 넘치는 자신감과 과도한 움직임으로 몸이 여지없이 반응한 것이다.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말은 익히 알고 들었지만, 실천하기가 만만찮은 것이 사실이다. 개인적인 사소한 일에서부터 공인이나 위정자의 언행 등에 이르기까지 실로 지나침의 폐단이 빚은 피해와 망신은 부지기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개인의 욕심이나 욕망에서 비롯되는 욕구의 과잉현상은 적당한 제어나 조절이 지극히 어렵기 때문이다.사람 사는 세상에는 자연의 이치나 순리가 당연하면서도 철저하게 적용되게 마련이다. ‘화무십일홍’이요 ‘권불십년’이라는 말처럼, 높이 올라갈수록 내려올 것을 생각하고(居高思墜), 가득 찰수록 넘치는 것을 경계하라(持滿戒溢)는 구절도 있다. 높은 곳에 있을 때 더욱 겸손하고 조심하라는 가르침으로, 무엇이든지 지나치거나 가득 차서 넘치게 되면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40여년 전 필자의 서예 입문시절에 당(唐) 해서의 전범으로 즐겨 쓰던 구성궁예천명의 글귀가 마침 전국지방동시선거에 즈음해서 떠오른 것은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닐 것이다. 지나친 과욕으로 마음이 동요되어 정신마저 피곤하게 되는(心動神疲) 우를 범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2022-05-30

생산현장의 3現의 실천 그리고 개선

엄주선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최근 스마트 기기와 디지털 기술이 발전하면서 현장을 직접 가지 않고도 실시간으로 현장 상황을 모니터를 통해 알 수 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멀리 유럽에서 일어나고 있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 상황까지도 인터넷에 접속만 하면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화면에 보이는 것은 현재 일어나고 있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일 뿐 그 너머에 있는 진실까지는 알 수 없다.개선은 진정한 사실 파악이 전제조건이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가공의 사실을 진실로 착각할 때가 많다. 대표적인 가공의 사실에는 추측이 있다. 추측이란 경험의 연장선상에서 사실을 상상으로 인식하는 것을 말한다. 현장에서 오래 근무하고 경험이 많아지면 과거 경험의 연장선상에서 사실이 있다고 생각하고 추측하게 된다. 그리고 그 추측의 적중 확률이 실험에 의하면 80% 이상으로 우리는 점차 추측을 신뢰하게 된다고 한다. 그러나 추측은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 20% 확률은 적중하지 않는다.특히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생산현장은 화면에 보이는 사실만으로 그 너머에 있는 진실을 더욱 파악하기 어렵다. 그래서 제조현장(現場)에서는 현물(現物)을 보고 현실(現實)을 인식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3현(現)이 꼭 필요하다. 3현은 일본 혼다자동차의 창업자 혼다 소이치로가 회사의 기본이념으로 채택하면서 유명해졌다. 우리나라에서는 포스코를 비롯하여 현대자동차와 LG디스플레이 등 많은 제조 현장에서 활용하고 있다.제조현장은 고객의 주문량에 따라 이를 생산하기 위한 재료, 설비, 인력, 생산 및 운전 방법 등 주변 여건이 수시로 변하기 때문에 현장에서 현물로 변화를 확인하지 않으면 사실을 정확하게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우리는 경험이 많아지면 현장에 가지 않고 상황을 경험에 비추어 추측하여 판단하는 경향이 있으며 큰 실수로 이어지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3현이 제대로 제조현장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첫째 경영진이 현장에서 현물로 보고받는 문화를 강조하고 실천하여야 하며 둘째는 현장에서 현물을 보고 이상 증상을 판단할 수 있도록 눈으로 보는 관리를 추진하고, 셋째는 이를 지속적으로 실천하는 것이다. 어느 회사든 좋은 제도나 방법을 한시적으로 도입은 잘 하지만 지속하기는 쉽지 않다. 그만큼 꾸준하게 실행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최근 많은 회사의 인력구조를 보면 퇴직이 임박한 고근속 직원들과 경험이 적은 젊은 직원들로 구성되어 중간층이 부족한 인력구조가 많다. 이런 구조에서는 3현을 실천하기 더욱 어려울 수 있다.퇴직이 임박한 선배들은 ‘이 나이에 내가 하리’하면서 몸을 사리고 젊은 층은 영상을 보는 것에 익숙하다 보니 3현을 소홀히 하기 쉽다. 3현을 실행하지 않으면 현장의 변화는 없으며 결과는 생산성과 품질의 저하로 나타나고 조치에 더 많은 자원과 노력이 필요하게 되므로 꾸준한 3현의 실행이 꼭 필요한 시점이다.

2022-05-30

학교급식

홍택정 문명중·고등학교 이사장 학교는 학생들에 대해 교육을 하는 곳이다. 교육이라면 그 범위가 광범위해 어디까지 라고 구분하기가 어렵다.하지만 교사가 교과서를 위주로 한 학습을 통해 지식을 습득하는 정도로 규정해야 될 것 같다. 말하자면 공교육이다.그런데 옛날부터 가정교육이라 하여 부모나 가족들로부터 배우게 되는 언어나 습관 등 각종 행실을 종합한 것을 말한다.보통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교육을 받게 되지만, 요즘은 유아 적부터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거쳐 한글은 물론 외국어인 영어까지 깨쳐서 오기도 한다.이렇게 지식습득에는 열광인 부모들이 가정교육에는 자못 소홀한 점이 많은 것을 발견하게 된다.자식들에게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자신이 직접 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 이것도 저것도 부모가 대신해 준다. 자식이 원하는 건 거의 들어준다.애들은 원하기만 하면 거의 다 가질 수 있다는 보호본능에 젖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그 중 밥 먹는 일이다. 학교급식으로 밥까지 학교에서 먹여야 한다. 초등은 하루 한 끼지만, 중·고등학교는 2끼가 기본이다. 기숙사라도 있으면 세끼를 다 챙겨야 한다.한데 아이들은 이미 가정의 식습관에 길들여진 상태다. 극심한 편식습관으로 학교의 식사교육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다.공부는 다음에 보충해서 할 수 있지만, 식사는 매끼로서 끝난다. 어릴 적 부터의 편식이나 인스턴트 선호로 인해 소아비만에서부터 각종 소아 성인병까지 다양한 질병을 앓고 있는 애들이 많다.학교는 밥상머리 교육을 통해서 식습관을 고치려고 노력하지만, 아이들의 입맛은 바뀌기가 어렵다.이 과정에서 여러 가지 충돌과 부적응 등 문제가 발생한다. 그래도 평생의 건강을 좌우하는 건전한 식습관 즉 골고루 먹고, 꼭꼭 씹어서 먹기, 잔반 남기지 말기 등을 가르친다.부모로부터 배우게 되는 가정교육은 좀 더 엄격해야 한다. 그중 식습관은 평생의 건강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버릇이자 습관이다.학교의 노력에 적극적인 이해와 협조로 건전하고 균형 있는 학교급식 문화가 정착될 것이다.

2022-05-30

독주하려는 게 아니라면 합의 지켜야

김진국 고문 어제 박병석 국회의장 임기가 끝났다. 지난주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국회의장단을 초청해 위로 만찬을 베풀었다. 전반기 의장단의 역할이 끝났다는 말이다. 그러나 후반기 원 구성은 보류다. 여야 협상에 진전이 없다. 민주당은 지난 24일 김진표 의원과 김영주 의원을 국회의장과 부의장 후보로 선출했다. 그러나 여야 합의는 쉽지 않아 보인다. 민주당이 합의를 번복해 법사위원장을 넘기지 않겠다고 버티고 있다. 전반기 원 구성을 하던 행태를 보면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수도 있다. 국회의장이 되면 민주당 당적을 버려야 하는 김진표 의원은 “내 몸에는 민주당 피가 흐른다”라고 주장했다. 중립성을 지키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다. 지방 선거에서 역풍을 맞을까 두려워 미뤄두고 있을 뿐, 선거만 끝나면 큰 소리가 날 수 있다.1988년 13대 원 구성부터 국회 상임위는 여야가 의석 비례로 나누어왔다. 그 이전에는 제1당이 모두 가졌다. 노태우 정부 때 처음으로 여소야대가 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다수결로 하면 야 3당이 국회의장과 상임위원장을 모두 가져갈 형편이었다. 이 바람에 의석 비례로 의장단과 상임위원장을 나누어 맡기로 합의한 것이다. 김대중 당시 평민당 총재가 적극적으로 주장한 대로다.국회 법사위원장은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이 국회에서 탄핵 소추되면서 주목받았다. 탄핵소추의 검사 역할을 김기춘 법사위원장이 맡았다. 법사위는 그 밖에도 법원·헌법재판소와 법무부·법제처·감사원·공수처 등 사법 관련 정부 기관은 물론 다른 상임위에서 만든 법률의 체계·형식·자구를 심사하는 권한도 갖고 있다. 다른 상임위에서 통과한 법안을 법사위에서 붙들고 있거나, 수정하는 일도 빈번하다. 그러다 보니 다른 상임위의 상전, 상원 역할을 해왔다.2004년 총선에서는 탄핵 후폭풍으로 노무현 대통령의 열린우리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했다. 그렇지만 국회의장과 법사위원장을 제1당과 제2당이 나누어 맡는 관행을 만들어 다수당의 입법 폭주를 막을 최소한의 장치를 보장했다. 행정부 견제가 아니라 다수당의 독주를 견제하기 위해서다. 문제는 2020년 4월, 21대 총선에서 민주당이 176석의 절대다수 의석을 차지하면서 생겼다. 민주당이 ‘검수완박’ 법안 등을 국민의힘과 합의 없이 처리할 수 있도록 법사위원장까지 차지하겠다고 버텼다. 이 바람에 합의가 어려워졌고, 민주당은 그 핑계로 국회의장과 18개 상임위원장을 몽땅 독식해버렸다.지난해 7월에서야 국민의힘에 7개 상임위원장을 넘겨주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법사위원장은 올해 후반기 원 구성할 때 넘겨주겠다고 미뤘다. 이제 그 약속마저 뒤집겠다는 것이다.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하기 일주일 전 2차 ‘검수완박’ 관련 법률을 민주당이 단독 처리했다. 법사위원장을 넘겨주지 않으려는 의도가 드러난 셈이다. 후반기도 의장과 법사위원장을 모두 차지해 합의와 상관없이 국회를 운영하려는 것이라고 해석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군다나 법사위원장은 검찰 수사와 대통령의 탄핵소추까지 담당하고 있다.윤 대통령의 독주를 견제하려면 국회의장으로 충분하다. 민주당이 절대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어 국민의힘이 국회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법사위원장을 가져봐야 다수당의 전횡에 저항하는 방어적 역할이다. 법사위원장이 국회의장의 직권 상정까지 막을 수는 없다. 결국 대통령 견제보다 국회 독주를 위한 독식이라고 해석하는 게 합리적이다.국회에서 다수결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말도 옳다. 그렇지만 오랫동안 합의제 운영의 전통을 쌓아왔다. 민주당의 대부인 김대중 전 대통령이 앞장서 세운 전통이다. 모든 책임을 제1당이 지는 완전 다수결로 돌아가려는 게 아니라면 중요 길목을 나누어 맡는 전통은 살려야 한다. 다수결로 밀어붙이면 협상이 필요 없다. 소수 의견은 무시되고, 다수의 독재가 된다. 독주에는 역풍이 따른다. 대선 결과에 불복하고 대통령 탄핵을 도모하려는 게 아니라면 법사위원장을 넘기겠다는 합의는 지키는 게 옳다. /본사 고문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중앙SUNDAY 고문,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2-05-29

삶을 바꾸는 가족정책 기대한다

도근희 구미시가족센터장 시대의 변화를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예능 프로그램의 트랜드일 것이다. 국민 다수의 관심사가 아니라면 냉혹한 시청률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하기 때문이다. 가족의 변화도 예외 없이 프로그램으로 변환되어 왔다. 핵가족이 일반화되고 맞벌이 가족이 증가하면서 가정 내 돌봄 기능의 약화에 대한 우려와 남성의 양육 참여가 이슈가 되던 시기 아버지의 육아 참여 또는 자녀와의 여행 등이 국민 예능으로 떠올랐다. 뒤를 이어 1인 가구에 대한 관찰 예능, 이혼 가족 등 다양한 가족들의 이야기들이 등장하더니 최근에는 한 케이블 채널에서 ‘조립식 가족’이라는 예능을 선보였다.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가족이란 주로 부부를 중심으로 한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이라고 한다. 건강가정기본법에서 ‘가족이라 함은 혼인·혈연·입양으로 이루어진 사회의 기본단위로, 가정은 가족 구성원이 생계 또는 주거를 함께 하는 생활공동체’로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혈연관계가 아닌 사람들이 혼자의 삶도 결혼이라는 방식도 채택하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관찰하는 예능이 ‘조립식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 것이다. 필요에 따라 가족도 장난감처럼 끼웠다 뺐다 조립이 가능하다는 설정은 전통적·법적인 개념에서는 파격적이지만 예능에서만 가능한 독특한 설정은 아니다. 이미 국민들의 인식에서는 일반화된 가족의 모습이기 때문에 예능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고 보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가족의 변화는 산업화 이후 꾸준히 얘기되었지만 최근 가족의 형태와 가치관의 변화는 이전과는 다른 속도를 보이고 있다.우리나라 1인 가구는 2010년 23.9%에서 2019년에는 30.2%로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는 반면 전형적 가족으로 인식되었던 부부와 미혼자녀 가구는 2010년 37.0%에서 2019년 29.8%로 감소했다. 가족 규모의 축소도 눈에 띄는 변화로 2인 이하인 가구는 2019년 58.0%이며 만혼이 보편화되어 평균 초혼은 남녀 모두 30세를 넘어섰다.구조적 변화 뿐만 아니라 가치관의 변화도 두드러지고 있다. 여성가족부에서 시행한 제 4차 가족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약 65%는 혼인과 혈연 관계가 아니더라도 생계와 주거를 공유하면 가족이라는 것에 동의하고 있다. 조립식 가족이라는 예능은 이런 국민들의 공감대 속에서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 다른 변화는 가족 중심의 문화에서 개인의 권리와 행복이 매우 중요한 가치로 부각되었다는 점이다. 노부모에 대한 부양과 돌봄에 대한 동의는 지속적으로 낮아지고 있으며 자녀 양육에 대해서는 경제적·신체적 부담 인식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으며 가정 내 전통적인 성역할에 대한 인식은 낮아지고 있지만 평등한 가족 문화에 대한 요구는 높아지고 있다.현재 가족의 모습을 진단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것에서 가족 정책의 방향성을 찾아볼 수 있다.우선 보편적 복지라는 관점에서 가족 정책의 확대가 필요하다. 지금까지 가족에 대해서 사적 영역으로 인식해서 가족의 약화된 돌봄기능을 보완하는 방식으로 정책 방향이 제한되거나 소관없이 가족소득수준을 반영한 선별적 가족을 대상으로 측면이 있었다. 하지만 가족의 삶은 소득 수준, 구성원의 수나 형태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일이며 삶의 영역도 경제 활동과 주거 문화, 양육과 교육, 문화, 일 생활 균형, 가족 구성원의 생애주기, 가족 형태 등을 모두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포괄적이고 보편적인 측면에서 가족 정책이 수립될 필요가 있다.두 번째 일반적 가족 형태로 자리 잡은 1인 가구에 대한 정책적 지원이다. 1인 가구로 통칭되지만 연령, 형성 배경, 자발적 또는 비자발적인지 등에 따라 필요로 하는 정책은 매우 다르다. 생애 주기별로 1인 가구에 대한 체계적 정책을 개발함으로써 1인 가구의 사회적 고립감을 예방하고 지역 사회와 소통하는 통로를 제공하여야 한다.세 번째 다양한 가족에 대한 맞춤형 지원과 다양한 가족에 대한 감수성이 우리 사회에 확산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한부모 가족, 맞벌이 가족, 조손가족, 장애인 가족, 다문화가족에 대한 맞춤형 지원과 더불어 차별받지 않는 여건을 마련하여야 할 것이다.네 번째는 다양한 돌봄이 실현되도록 할 필요가 있다. 소득 수준에 상관없이 돌봄이 필요한 아동들이 돌봄을 받을 수 있는 것이 하나의 축이라면 노부모 대한 공적 부양 체계를 강화하는 것이 또 다른 축이다.다섯 번째는 가족 정책도 개별화 또는 개인화에 대응할 필요가 있다. 가족의 형태도 다양해지고 있지만 개별 구성원의 욕구도 다양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규모 교육보다 개별 컨설팅, 상담 등으로 개인의 욕구가 잘 실현될 수 있고 접근하기 쉽고 참여하고 싶은 정책이어야 한다.새롭게 출발한 중앙정부, 그리고 다가오는 6월 선출될 새로운 지방정부에서 가족 정책은 선언이나 선포가 아니라 생활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서 삶이 바뀌는 정책이 되기를 기대한다.

2022-05-29

보리야 보리밥 먹자

분황사 앞마당에 보리가 누렇다. 작물이 자라서 약간의 곡식이 여무는 때인 소만이다. 낮에는 뻐꾸기 울음소리를 듣고 줄기마다 꽃을 준비하고, 밤에는 소쩍새가 ‘너그 집에는 모내기했나?’하고 인사를 건넨다. 논에 물이 그득하고 어린 모가 바람에 허리를 흔들며 여름이 오는지 내다본다.소만은 24절기의 여덟 번째 절기로 입하와 망종 사이다. 양력 5월 21일께부터 보름간으로 만물이 점차 생장하여 가득 찬다는 뜻이다. 이 무렵에는 모내기 준비에 바빠진다. 보리 베기에 이어 밭농사의 김매기들이 줄을 잇는다. 초후에는 씀바귀가 뻗어 오르고, 중후에는 냉이가 누렇게 죽어 가며, 말후에는 보리가 익는다고 했다.진아씨와 점심 먹기로 하고 죽도시장에서 만났다. 이밥 반 보리밥 반 섞어서, 딸려 나온 나물 반찬 넣고 된장찌개 두어 숟갈 흩뿌려 비벼 먹는 집이다. 비빈 밥을 상추에 싸서 입안 가득 우물거리다 보면 요 며칠 시름 정도는 잊기도 한다. 속이 허할 때 늘 찾아가는 단골 식당이다.골목이 헷갈려서 내 나름의 이정표를 따라 좌회전 우회전을 하다 보면 나타난다. 정오 즈음엔 줄을 서는 집이니 아점을 먹으면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예전엔 가자미를 껍질이 바싹하게 구워 주더니 최근엔 고등어가 자주 상에 오른다. 집안에 비린내 베는 게 싫어서 생선을 거의 굽지 않는 나에게 주는 과자 선물 같기도 하다. 밥 인심이 좋아 대접에 가득 나와 우리는 늘 조금만 달라고 부탁을 하지만, 그래도 넉넉히 담아 내온다. 철 따라 반찬이 바뀐다. 오늘은 쪄서 양념을 입힌 꽈리고추 무침이 맛있어서 한 접시 더 달라고 하니 처음 보다 두 배로 담았다. 성의가 고마워 꼭꼭 씹어 비우고 풋고추도 리필 했다.나와 친구들은 보릿고개를 넘어보지 않은 세대다. 쌀 한 톨 섞이지 않은 꽁보리밥만 먹어서 질릴 일도 없었다. 부모님 세대까지는 보리를 추수하기 전까지 소나무 속껍질 벗겨서 만든 송기떡과 개떡으로 배고픈 봄을 이어갔다. 보리등겨를 섞으면 보리개떡, 곤드레를 추가하면 곤드레개떡, 쑥을 넣으면 쑥개떡이었다. 지금은 건강식이자 별미 음식이다.초등학교 다니던 때, 4교시가 끝나는 종이 울리면 매일은 아니어도 가끔 선생님은 도시락 검사를 했다. 혼분식을 장려하던 시절이었다. 하얀 쌀밥 사이에 콩이나 배에 줄이 선명한 보리가 뜨문뜨문 섞여야 통과였다. 깜빡하고 이밥만 싸 온 날엔 친구에게 보리 알 몇 개 빌려 박아넣었다. 분단과 분단 사이를 오가며 살피거나 아이들에게 도시락을 열어 들게 한 후 앞에 서서 휙 둘러보기도 했다. 장려라기보다 강요였다.그땐 도시락 검사만 한 게 아니다. 용의 검사라고 손등에 때가 있는지 손톱은 짧게 깎았는지 보고 혼을 내고 까마귀가 형님 하겠다고 놀리기도 했다. 월요일에 할 거라고 예고를 하면, 주말에 가마솥에 군불 지펴 데워서 커다란 다라이에 찬물 섞어서 씻었다. 오래 묵은 때를 한참이나 불려 돌로 문질러 때를 억지로 벗겨내야만 했다. 참, 여러 검사가 우리의 학창 시절을 지나갔다.학교에서 집까지 한 시간이 더 걸리는 친구들은 도시락을 반만 먹었다고 한다. 반은 남겨서 중간에 고추장 한 숟갈 넣어 도시락을 흔들면, 서로 달라붙어서 섞이지 않는 쌀밥과 달리 보리는 미끌미끌해서 금방 빨갛게 간이 스며 먹기 좋았다. 먹거리가 귀한 시절 주식이자 간식이었던 보리밥이었다. 지금은 압력밥솥으로 간단하게 익히지만, 예전에는 보리를 먼저 삶아 시렁 위에 두었다가 쌀 위에 앉혔다. 번거로운 과정을 매일 했을 어머니들의 수고가 우리 도시락을 채웠었다.그제 친정에 갔더니 엄마가 보리 순을 키우고 계셨다. 가위로 슥슥 잘라 주며 가져가서 샐러드나 전을 부쳐 먹으란다. 엄마는 보리 순을 키우고 나는 보리를 키운다. 종일 노란 털을 고르느라 바쁜 우리 집 막둥이다. 2년 전 보리누름에 우연히 찾아온 녀석이라 보리라고 불렀다. 코로나로 힘든 하루를 보내고 집에 돌아올 때 문 앞에 마중 나오는 보리가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보리 덕분에 보릿고개를 넘는다. /김순희(수필가)끝

2022-05-29

‘바다나다’

이원만 맏뫼골놀이마당 한터울 대표 5월 31일은 바다의 날이다. 21세기 신해양시대를 맞아 세계적인 해양 강국으로 부상하기 위해 1996년 제정한 법정 기념일이다.매년 5월 31일을 바다의 날로 정한 것은 통일신라시대 장보고(張保皐) 대사(大使)가 청해진(淸海鎭)을 설치한 날을 기념하는 의미가 담겼다고 한다.바다의 날이 가까워지면 ‘표면의 73%가 바다인 지구는 ‘땅으로 된 구슬’ 地球가 아니라 ‘바다로 된 구슬’ 海球로 불러야 하지 않을까’는 생각을 하며 ‘구글어스’를 통해서라도 지구 곳곳의 바다를 찾아본다.달에서 지구의 사진을 찍었을 때에도 인류는 바다에 사는 고래의 온전한 사진 한 장 가지지 못했다.우주에 대해 아는 정보보다 바다에 대해 아는 정보는 그 정도로 보잘 것 없다. 인류에게 바다는 아직도 신비의 영역으로 남아있다.우리가 사는 지구행성의 모든 생물체(물속 생물은 물론이고 육지 생물들까지)들은 몸속에 바다를 지니고 있다.혈액, 알, 세포를 감싸는 액체는 모두 바닷물과 비슷한 비율을 가진 염분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인간을 포함한 많은 생물들이 바다에서 육지로 올라왔다. 지구의 기획자인 바다를 기념하는 날의 취지와 여러 행사를 살펴보면 우리는 여전히 바다를 수산자원을 제공하는 산업의 관점으로만 바라본다.바다의 무수한 생물들과 함께 사용하는 공동의 삶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우리가 늘 우리 땅으로 주장하는 독도의 강치들은 학살이라는 말이 부족할 정도로 단기간에 잔인하게 멸종되었다.역사적인 자료를 보면 일본어부들의 만행도 있었지만 한국의 어민들도 강치학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독도를 우리 땅이라 주장하기 전에 ‘강치멸종사’를 통해 우리 인간성의 멸종을 성찰해야한다.그리고 인간성의 멸종으로 인해 훼손된 바다를 돌아봐야한다. 바다가 자꾸만 텅텅 비어간다고 전 세계의 바닷가 사람들이 아우성이다.포크로 젓가락으로 고래를, 바다생물을 먹어치우는 우리 인간의 일생은 ‘아름다운 바다를 망치기에 충분한 시간’이 아닐까!바다는 벽이 없음을, 바다는 누구의 것도 아니며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공동의 삶터임을, 우리가 바다를 어떻게 만나야 하는가를 생각할 때다.바다는 세상의 모든 물을 받아들인다.그래서 바다다.그런 바다이기에 우리가 함부로 버린 플라스틱도 받아들이고 지구온난화의 열기도 탄소도 다 받아들이며 지금까지 인류의 삶을 지탱해왔다.그런 바다는 인간의 무분별할 해양생물 남획과 폐플라스틱, 폐비닐, 폐어구 등 각종 쓰레기의 해양 무단 투기, 지구온난화에 따른 해수온 상승 등으로 고통받고 있다. 바다에 많은 것으로 의존하고 있는 인간들에게 바다의 고통은 커다란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열을 머금은 바다의 변화가 예측불허다.죽은 고래의 뱃속에서 플라스틱이 쏟아져 나오고 고래 고기를 먹은 알래스카 원주민의 모유에서 플라스틱성분이 검출되고 있다. 덩치가 큰 고래는 해양오염물들의 축적장소인 것이다.해양에 대한 교육이 학교의 정규교육과정에 포함되고 해양교육센터와 해양문화관련 부서들이 생겨나고 있다. 차츰 해양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포항지역의 예술가들도 ‘바다나다’라는 공공예술 프로젝트를 계획 중이다.‘내가 바다다’는 뜻의 ‘바다나다’를 주제로 얼마 전 쓰레기 매립장에 묻힌 참고래의 죽음을 애도하고 고래의 바다, 경해(鯨海)로 불린 동해바다에 다시 고래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곳이 되는 것을 염원하는 콘서트와 퍼포먼스행사를 벌일 계획이라고 한다.‘개발과 훼손’이 아니라 ‘생명과 평화가 가득한 삶의 영역’으로, 공생의 바다로 동해를 호출하고자 하는 것이다.용왕의 사신 거북이에게 쓰레기를 대접해서는 안 된다.참고래에게 플라스틱쓰레기를 먹게 해놓고 보호한답시고 죽은 시체를 쓰레기 매립장에 묻는 것으로는 부족하다.제돌이라는 돌고래가 있다.제돌이는 제주 바다에서 불법으로 포획된 뒤 서울대공원 동물원에서 돌고래 쇼를 하다가 야생 방류된 남방 큰 돌고래다.7년이 지난 지금 제주 앞바다에서 무리들과 헤엄치는 모습을 보러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사람들은 제돌이의 활발한 모습에서 ‘우리가 바다와 저렇게 만나야 한다’라는 희망을 본다.바다의 날을 맞아 바다는 ‘우리가 사는 곳이다’는 생각을 가지는 이들이 많아져 동해바다가 아니, 세상의 모든 바다가 인간과 바다생물들이 평화롭게 사는 공생의 삶터가 되었으면 한다.바다는 영원히 바다의 것이고 우리는 잠시 빌려 쓸 수 있을 뿐이다.

2022-05-29

왜 선진국형 절전이 어려울까

위현복(사)한국혁신연구원 이사장 지난 3월 14일 자 시사포커스에서 우리나라의 NDC(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 대해 설명을 했었다. NDC는 2018년 기준 7억 2천210만 t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오는 2030년까지 40% 줄인다는 계획이다. 특히 이산화탄소 배출의 37%(2억6천717만 t)를 차지하는 에너지의 경우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리는 방식으로 44.4%까지 줄여 1억 5천여만 t을 배출한다는 것이다.신·재생에너지만으로 대체해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어려움이 따른다는 의견에는 모두가 공감하고 있다.또 지난 4월 18일 자 글에서 전기의 경우 30%까지 절감할 수 있다고 했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1990년대부터 에너지 절감사업이 아주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세계적인 에너지 석학들도 현실적으로 가장 최선의 대안은 에너지의 효율을 높이고 전기를 아끼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에너지 절감은 5천만 국민 누구나 할 수 있다. 최첨단 기업에서부터 가장 낙후된 산업분야까지 어디서든 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너지 절감이 왜 쉽지 않을까?첫째는 대부분 국민이 전기에 대해 잘 모른다는 점이다. 일반 시민들은 전기에 대해 긍정적인 기능보다 감전, 누전, 사고 위험 등 부정적인 이미지를 훨씬 많이 가지고 있다. 전기를 전기 전공자 또는 전기 관련 산업 종사자들의 전유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전기에 대해서 무지하기 때문에 에너지 절감, 효율성 제고, 다양한 전기 생산 방법 등에 대해 아예 생각하는 것조차 꺼리는 것이다.둘째는 전기가 가계 생활비, 기업 운영비, 사무실 유지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낮기 때문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점이다. 하버드 공중보건대학원에서 ‘건강한 건물’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조지프 앨런 교수에 따르면, 많은 기업의 운영비에서 전기, 가스, 수도요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0.5%를 넘지 않는다고 한다.지난해 우리나라 국민 총소득은 1조 8천200만 달러인데 전기 요금(한전 매출)은 2.7%인 60조 원 정도였다. 이산화탄소 급증으로 인한 지구 온난화와 기후변화라는 문제에서 보면 에너지 절감, 에너지 전환이 아주 중요한 문제이지만 많은 기업의 지출에서는 에너지 비중이 단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 때문에 에너지 절약이라는 어젠다가 시민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조지프 앨런 교수는 그의 저서 ‘건강한 건물’에서 냉·난방기를 가동하면서, 1시간에 10분씩 환기를 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생산성 측면에서 자주 환기를 하는 것이 전기세 아끼는 것보다 3배 이상 생산성이 높다는 것이다. 에너지 절감과 효율화를 단순히 금전적인 절약 문제로만 접근해서는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는 얘기다.대신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한 전 세계적 과업에 개인적인 차원에서 전기절약이라는 방법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가치 부여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오래전 필자가 경영하던 회사에서 직원들에게 점심 식사 때는 가급적 컴퓨터를 끄고 가라고 했더니 직원들이 엄청 싫어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그 뒤로도 말은 하지 않았지만 월요일 일찍 출근해서 사무실을 둘러보면 꺼지지 않은 컴퓨터, 복사기, 전열기, 전등이 쉽게 눈에 띄었다.이 때문에 퀼컴과 같은 IT 다국적 기업은 본사에 7천500여개의 센서를 설치해서 일정 기간 사용하지 않는 사무기기(컴퓨터, 전자기기, 전열기)에 대해 자동 차단되도록 했다. 필자는 일반 시민의 전기절약에 대한 인식 전환 없이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셋째는 법적, 제도적 장치가 미비해 절전이 어렵다는 것이다. 몇 년 전 기회가 있어 국방부 기획조정실장과 에너지 절감에 대한 의견을 나눈 적이 있는데, 국방부의 1년 전기 요금이 1조 원 이상이라는 말을 들었다.한국도로공사의 경우도 전기 요금이 한해 1조 원 정도 된다. 고속철도와 모든 도시의 전철(지하철)에 사용되는 전기 요금은 7천억 원 정도 된다.당시 국방부 기획조정실장은 “어느 한 공공기관에서라도 전기 요금 30% 절감된 사례를 가져오면 당장 국방부에서 채택해서 국방부 예산 3천억 원을 절감하겠다”라고 말했다.그 후 지방정부 고위공직자와 도시철도공사 등 공공기관 관계자들을 만나 전기절약 방안에 대해 협의를 했지만 별 성과를 내지 못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법적, 제도적인 장치가 정비되지 않아 공공기관에서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에너지 절감 대책을 추진하기는 아직 시기 상조라는 점을 절감했다.미국과 유럽 각국의 경우, 에너지 절감을 전문적으로 하는 기업이 많다. 이 기업들이 다양한 방식을 통해 특정 기관의 에너지 사용량을 절감해 주면, 그 성과 부분의 일정 비율을 기업에서 가져가는 ‘성과배분 방식’이라는 시스템이다. 이러한 ‘성과배분 방식’이 우리나라에서는 제도적으로 마련돼 있지 않아 공적 영역에서는 에너지 절감 사업이 발붙일 여지가 없는 것이다.

2022-05-29

의병의 날

김규종 경북대 교수 6월 1일은 ‘의병의 날’이다. 국가의 위기에 자발적으로 일어선 백성들의 조직을 가리켜 의병이라 한다. 누란지위(累卵之危)의 국가와 민중을 위해 궐기한 의병을 기리는 날이 의병의 날이다. 임진왜란과 구한말에 거병(擧兵)한 의병이 가장 많았다고 역사는 전한다. 의병 하면 암군(暗君) 선조가 때려죽인 김덕령과 수도 진공 작전의 총대장 이인영이 떠오른다.김덕령(1568∼1596)은 광주 출신 의병장이다. 그는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24살의 나이에 형과 함께 의병을 일으킨다. 그는 호남과 영남 곳곳에서 왜군을 격파하여 공을 세우지만, 1596년 이몽학의 반란에 연루되었다는 모함을 받는다. 김훈은 ‘칼의 노래’에서 김덕령이 선조에게 국문(鞫問)을 당한 끝에 장형(杖刑) 130대를 맞고 순절한 장면을 그려낸다.용렬한 선조는 자리를 보존하고자 김덕령을 희생제물로 삼는다. 파스테르나크가 ‘지바고 의사’에서 그려낸 러시아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와 암군 선조는 닮은 꼴이다. 소심함과 연약함으로 신료들을 처형하고 구속하며 용서하는 전제군주들의 양상은 어찌 그리 똑같은가?! 맨손으로 호랑이를 때려잡았다는 김덕령은 허망하게 세상과 작별한다. 광주의 충장사와 충장로가 그를 기리는 공간이며, 그가 지은 시조 ‘춘산곡(春山曲)’이 오늘까지 전한다.“춘산에 불이 나니 못다 핀 꽃 다 붙는다/ 저 뫼 저 불은 끌 물이나 있거니와/ 이 몸에 내 없은 불이 나니 끌 물 없어 하노라”이런 서정과 춘심을 가진 장수 김덕령을 때려죽이고도 오랜 세월 옥좌에 앉아 자리보전한 암군을 찬양하는 일부 사학자들은 광대놀음의 주역이다.이인영(1867∼1909)은 색다른 교훈을 주는 인물이다. 1895년 을미사변과 단발령으로 궐기한 그는 1907년 고종의 강제 퇴위와 군대해산으로 일어난 정미의병에 합류한다. 같은 해 11월 전국에서 모여든 13도 창의군 총대장이 된 이인영은 수도 진공 작전을 기획하다 아버지의 죽음을 맞는다. 동료와 부하들의 만류에도 그는 삼년상(三年喪)을 고집하다가 1909년 일본군에 잡혀 경성 감옥에서 생을 마감한다. 일본군의 눈에 이인영은 아주 기인한 인물로 보였다. 국가를 위해 일어난 의병 총대장이 삼년상을 위해 자리를 내놓고 돌아갔다는 사실이 낯설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것은 일본과 청나라에서 강조한 ‘충경(忠經)’ 대신 조선에서는 ‘효경(孝經)’만 읽게 한 결과였다고 생각한다. 충효가 본디 다르지 않지만, 충의 뿌리를 효에서 본 조선 사대부의 생각이 이인영에서 구현된 것이다.이것은 일본과 청나라가 국가를 최우선으로 생각했다면, 조선 지배층은 가문을 중시(重視)했다는 증거가 아닐 수 없다. 이와 같은 자세는 뿌리 깊게 남아서 우리 사회를 어둡게 한다. 나라의 운명과 민중의 삶이 어찌 되든 나와 집안만 생각하는 자들이 적잖다.의병의 날을 맞아 가족과 가문만을 생각하는 전근대적 사고에서 벗어나는 계기를 만들었으면 한다.

2022-05-29

미친 물가

런치(lunch)와 인플레이션(inflation)을 합친 런치플레이션이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코로나19 이후 나타난 물가상승으로 직장인의 점심값 부담이 크게 늘어난 상황을 빗댄 표현이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폭등한 점심값 부담을 호소하는 직장인의 글들이 속출하고 있다. 편의점 가는 직장인이 늘어나는가 하면 일부 직장인은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한다고도 한다.인플레이션으로 인한 고물가 현상이 각 나라 경제를 괴롭히고 있다. 미국과 영국의 물가상승률이 40년만에 최고로 치솟았고 주요국의 물가 상승률이 무려 8∼9%에 이른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통계청은 4월중 우리나라 물가상승률이 글로벌금융위기인 2008년 이후 13년 반만에 4.8%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특히 서민층의 생활필수품인 쌀, 라면, 달걀 등으로 구성된 생활물가지수는 전년보다 5.7%가 올랐다.지난주 한국은행은 수정경제 전망을 하면서 올해 소비자 물가상승률을 4.5%로 잡았다. 실질적으로 5%대 상승을 정부가 공식화한 것이다. 물가는 그 사회의 상품가치를 총체적으로 평가한 수치다.경제학자들은 물가가 서서히 올라가는 것은 경제가 상승세를 탄다는 긍정적 신호로 본다. 반면에 물가가 급등하면 돈의 가치가 떨어져 국민 모두가 힘들어진다고 설명한다. 그렇다고 물가가 지속적으로 내려가면 올라가는 것보다 경제가 더 나빠 지옥 상태에 이른다고 한다. 나라 경제가 잘되려면 물가를 적정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뜻이다.냉면값이 1만원을 넘었다. 삼겹살은 값이 너무 올라 금겹살이라 부른다. 미친듯 오르는 물가를 잡아야 서민경제가 살고 국민이 편하다. 새 정부 경제팀의 역량 평가가 미친 물가 손에 달렸다./우정구(논설위원)

2022-05-29

대구 사전투표율 꼴찌… ‘뻔한 선거’가 이유

지난 27~28일 양일간 실시된 6·1 지방선거 사전투표율이 20.62%를 기록하면서 지방선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 기록은 모든 전국단위 선거 중에서도 네 번째로 랭크되는 높은 투표율이다. 이번 지방선거가 지난 대선의 연장전 같은 ‘미니대선’ 의미가 더해지면서 지지층 결집 현상이 이뤄진데다, 사전투표가 일반화되는 경향 때문으로 분석된다. 유권자들이 이제 편리한 시간에 주변 주민센터에 가서 투표를 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추세가 반영된 결과다. 전국 단위 선거에서 사전투표율이 점차 높아지는 추세와는 달리 대구는 이번에 사전투표율 꼴찌를 기록했다. 투표율이 가장 높은 지역은 전남(31.04%)이었고 이어 강원(25.20%), 전북(24.41%), 경북(23.19%) 등이 뒤를 이었다. 대구는 14.80%를 기록해, 전남 투표율의 절반수준에도 못 미쳤다. 대구의 사전투표율이 이렇게 저조한 것은 한마디로 ‘뻔한 선거결과’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과거와 마찬가지로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대구·경북지역에서는 국민의힘 공천작업이 끝나자마자 대부분 선거구에서 선거캠페인이 파장 분위기로 흘렀다. 기초단체장과 광역의원의 경우, 무투표 당선 지역구도 속출했다. 이미 당선이 확정됐거나, 아니면 누가 당선될지 예측할 수 있는 상태에서 유권자들이 애써 투표장에 나올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대구와는 달리 경북지역은 기초단체장 선거에서 국민의힘 후보와 무소속 후보 간의 접전지역이 더러 있어서인지 사전투표율이 비교적 높았다. 이제 선거일이 이틀 남았다. 대구·경북지역 유권자들에게 꼭 당부하고 싶은 말은 지방선거에서는 정당만 보고 표를 찍는 ‘묻지마 투표’를 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투표를 하러 가기 전에 최소한 후보들이 어떤 경력을 가진 인물들인지, 어떤 정책과 공약을 내걸었는지 정도는 파악하고 가야 한다. 지방선거에 당선되는 사람들은 나와 내 자식들의 삶과 바로 연결돼 있다. 지방정부와 지방의회의 수준을 결정하는 것은 특정 정당이나 후보가 아니라 유권자의 손에서 결정된다는 의미다.

2022-05-29

포스코 등 대기업 투자, 지방경제도 살려야

포스코 그룹이 2026년까지 국내 33조원을 포함 모두 53조원 규모의 글로벌 신규 투자를 벌인다. 포스코 그룹은 그린철강과 이차전지 소재 및 수소 등 친환경 미래소재, 미래기술 등에 중점 투자하며 이번 투자로 2만5천여명의 직원도 직접 고용한다. 친환경 설비 도입과 철강제품 기술력 강화 등에 약 20조원을 투입하며 이차전지 소재, 리튬, 니켈, 에너지, 건축 인프라 등 그룹 7대 핵심사업의 기업 가치를 현재의 3배 이상 높인다는 계획이다.포스코 이외에도 삼성, SK, LG 등 국내 대기업이 새 정부 출범에 맞춰 1천조원이 넘는 국내외 투자 계획을 잇달아 밝혔다. 이에 따라 국가산업의 경쟁력 강화는 물론 산업구조의 재편과 신규 일자리 창출 등 산업계 전반에 대대적 변화가 예상된다. 특히 우리지역은 대기업 신규 투자가 지역경제에 미칠 파장에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보고 있다. 대기업 투자에 따라 지방의 산업구조가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자체는 당연히 대기업 유치를 최대 관심사로 삼아야 한다.그러나 대기업의 투자가 지방으로 얼마나 손을 내밀지는 미지수다. 이미 기반이 조성된 수도권에 대기업의 신규투자가 또다시 집중된다면 지방의 발전은 요원한 문제가 되고 만다.윤석열 정부는 지방시대를 여는 정부로 지역균형발전을 국정의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지방이 살아야 국가가 산다는 생각이 맞다면 대기업의 투자가 지방으로 흘러갈 수 있도록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 문재인 정부는 2차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 등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국가적 시책을 실기하거나 소홀히 해 문 대통령 임기 중 지역간 불균형은 더 심화됐다는 평가를 받았다.국가균형발전을 위한 지방화 전략을 이제는 더 미룰 수 없다. 대기업의 투자가 지방으로 잘 스며들 수 있도록 국가가 정책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소멸위기에 직면한 지방경제도 살리는 길이다. 지자체도 대기업 투자유치를 위해 친기업적 구조를 조성하는 등 온갖 노력을 다해야 한다. 지역 정치권과 지도자 등 지역사회의 집중된 노력만이 지역 발전을 이뤄낼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2022-05-29

꺼삐딴 리는 악덕인가

유영희 작가 선거철이 되면 공직 후보자들의 재산이 공개된다. 수십억, 수백 억대의 재산을 가진 후보자들을 보면 감정이 복잡해진다. 내각에 추천된 인물들 역시 흠결이 넘쳐나다 보니,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시선이 좋을 수가 없다. 이런 현실을 보고 있자니 꺼삐딴 리가 떠오른다.전광용의 1962년 작품 ‘꺼삐딴 리’는 중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어서 모르는 이가 별로 없다. 학교에서는 이 작품을 이인국을 교활한 처세술을 가진 기회주의자라고 가르친다. 왠지 이인국의 삶은 요즘 뉴스에 오르내리는 정치인들의 처세술과 겹쳐 보인다.이인국은 동경제국대학 의학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능력자다. 창씨개명 등 일제의 정책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면서 돈 있는 사람만 치료해주고 자신의 안전을 위해 독립군으로 보이는 남자의 입원을 거절한다. 해방이 돼 친일파로 체포되었을 때는 소련 장교의 얼굴 혹을 제거해주어 최고라는 의미의 ‘꺼삐딴 리’라는 별명도 얻게 되고, 아들을 소련으로 유학 보낼 만큼 신임도 얻는다. 한국 전쟁이 일어나자 가방 하나 들고 월남해서 수술도 잘하고 병원 운영도 잘해서 곧 큰 병원을 내고 잘산다. 어떤 세상이 와도 이인국은 안전한 삶을 누린다.이 작품이, 어떤 세상이 와도 이인국이 잘사는 삶을 풍자하면서 소신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고 말하려는 것인지, 그 당시는 능력 있는 사람이라도 자기 생존만을 추구했다는 시대상을 보여주려는 것인지 불분명하지만, 어느 쪽이든 학교에서는 이인국의 삶을 부정적으로 가르친다. 하지만 교육 당국의 기대와는 다르게 요즘 학생들은 이인국을 비판하기는커녕 부러워한다.따지고 보면, 이인국의 악덕이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다. 창씨개명에 적극 협조했지만 그것은 당시 거의 모든 조선 사람이 따랐던 일이다. 독립군의 입원은 거절했지만 응급치료는 해주었고, 해방 후 공산군에게 체포되었을 때도 감옥 안에서 이질에 걸린 사람들을 치료해주었다. 그렇다고 감방에 버려져 있는 러시아 어 교본으로 열심히 공부해서 소련군과 대화를 나눌 정도가 된 것을 ‘교활한’ 처세술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게다가 미국 다녀온 젊은 의사들에게 밀리자 자기도 미국에서 경력을 만들어 오려고 떠날 준비를 하는 모습은, 거짓 이력으로 행세하는 유명인들에 비하면 차라리 정직해 보이기까지 한다.이렇게 이인국에 대한 평가가 호의적으로 변한 데는 지금 상황이 한몫했을 것이다.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다는 3포를 넘어서 집과 경력까지 포기해야 하는 세대에게, 어떤 세상에서도 안전하게 살아간 이인국의 생존력은 젊은이들에게 롤모델로 다가왔을 것이다. 물론 이시영 이회영 가족처럼 전 재산을 팔아 독립운동에 헌신한 사람도 있으니, 이인국의 삶이 훌륭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사회지도층의 편법과 불법의 규모가 상상을 초월하다 보니, 학생들이 이인국을 부러워한다고 나무라기도 어렵다. 교육자들이 교과서에서만 이인국을 비판하는 것이 무책임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냥 이인국만큼이라도 하라고 말하고 싶다.

2022-05-29

빼앗긴 넥타이

오낙률시인·국악인 어느새 오월도 며칠 남지 않았다. 그렇게도 현란한 꽃 잔치가 끝나고 시골 길가나 한적한 밭둑에서는 찔레꽃이 봄을 마무리하고 있다. 바야흐로 신록의 유월이 싱그럽고도 신선한 호흡으로 우리 곁에 다가오는 것이다.몇 년에 한 번씩 선거가 있는 해이면 동네 담장이며 도롯가 전봇대에도 푸른 잎이 나고 희고 붉고 노란 꽃이 핀다. 평소에는 듣지도 보지도 못하던 얼굴과 이름들이 전봇대며 담장에 꽃처럼 나 붓고 그 꽃들의 당당함에 밀린 탓일까? 찔레꽃이며 아카시아꽃, 층층나무꽃, 인동꽃 등은 봄꽃의 마지막 주자로 피었다가 소문 없이 떠난다. 그리고 오직 신록만이 우리네 산천에 남아 인간의 마음을 희망의 빛으로 물들이는 것이다.유월의 신록은 애써 가꾸지 않아도 충분하게 싱그럽다. 그러나 자연이 아름다운 시기는 늘 농번기에 해당하는 시기라서, 안타깝게도 농촌에서의 생활은 자연의 풍광을 즐길 시간적 여유가 없다. 그래서 그런지 내게 오는 유월은 해마다 특별히 설레며 다가온다. 아마도 농사일의 분주함에서 점차 안정을 찾아가는 시기라서 그런지 그렇게 유월의 신록은 해마다 촌부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것 같다.세상 모든 자연물의 모습은 저마다의 색깔을 지니고 있다. 주역의 오행론으로 생각하면 목, 화, 토, 금, 수, 에 해당하는 청, 홍, 황, 백, 흑의 다섯 가지 기본 색깔이 있는데 그 다섯 가지 색깔은 자연이라는 화가가 즐겨 사용하는 기본색이 아닐까 싶다. 그 다섯 가지 색깔 중에서 모든 자연물은 저마다 에게 알맞은 색깔을 골라 입고서 그 존재감을 나타내는 것이다. 따라서 색깔이라는 것은, 지상 모든 자연물이 각자의 필요에 따라 언제든 갈아입고 그 존재감을 표현하는 대자연의 공유물에 해당하는 것이다.인간이 자신의 몸치장에 이용하는 색깔 중에 가장 다양하고 호화로운 색으로 표현되는 부분은 넥타이가 아닌가 싶다. 넥타이의 배색은 가히 수꿩의 모가지에 그려진 깃털처럼 그 색상이 다양하고 호화롭다. 수꿩이란 놈은 그의 볼품없이 밋밋하고 기다란 모가지에다 알록달록한 색상의 넥타이를 매고서부터 그 조그만 대가리 하며 까만 눈동자가 더욱 빛나고 돋보였을 것이다. 한갓 날짐승도 제 몸치장에 자연이 준 색상을 최대한 이용 하는데, 우리나라 국민은 넥타이를 정치권에 빼앗겼다. 우리는 그 다섯 가지 색상 중에서 세 가지의 색상을 정치권에 빼앗기고 이웃집 잔치라도 갈라치면 넥타이 색 고르기가 만만치 않다. 어느 특정 정당인으로 오해받지 않으려면 흰색이나 검정 넥타이를 매야 한다는 뜻이다. 그것도 흰색은 무소속출마자께서 이용하신다.며칠 전 출범한 새 정부의 국정과제 중 하나가 ‘국민 통합’으로 알고 있다. 넥타이 색깔만으로도 보수와 진보라는 정치적 성향을 뚜렷이 구분할 수 있는 현금의 우리나라 정치사회에서 정치인의 목에 상징물처럼 매고 있는 특정 색깔의 넥타이를 풀게 하는 입법이라도 했으면 좋겠다. 해서, 붉은색, 푸른색 넥타이를 국민에게 되돌려준다면 그것 또한 국민 통합이라는 국정과제를 완수하는데 한 걸음 다가서는 일이 되지 않을까도 싶다.

2022-05-29

외래관광객 유치마케팅에 시동 건 경북도

경북도와 경북문화관광공사가 다음 달부터 외국인 관광객 대상 비자발급이 재개됨에 따라, 본격적인 관광 마케팅에 들어가 성과가 기대된다. 경북문화관광공사는 지난 24, 25일 양일간 문경에서 국외전담 여행사 관계자들을 초청해 1박 2일 체험형 상품개발 답사를 했다. 문경새재, 짚라인, 족욕카페 등을 소개하며, 지역 특산물인 오미자를 활용한 와인 체험과 수제맥주 공장 투어도 진행했다. 경북도와 공사는 이에앞서 지난 9일 동대구역 회의실에서 해외 5개국 홍보사무소 직원들과 함께 국가별 관광객 유치를 위한 마케팅전략을 공유했다. 경북도는 지난 2019년 일본, 베트남 2개국을 시작으로 2022년 현재 중국, 대만, 일본, 베트남, 태국 등에 해외 현지 홍보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홍보사무소는 △현지의 유관기관 네트워크 구축 △경북 상품 개발 유도를 위한 현지 여행사 대상 경북관광 설명회 개최 △현지 오프라인 박람회 참가 △현지 관광트렌드를 반영한 경북도 관광상품 개발 등의 업무를 하고 있다. 경북도와 공사는 지난달에는 서울 용산 시티타워에서 경북 외래 관광객 유치업무를 전담하는 10개 여행사 대표들과 상생협력 간담회를 열었다.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전인 2019년, 우리나라 외래 관광객은 1천750만 명을 넘어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러나 코로나가 대유행한 지난해 한국을 방문한 외래객은 97만명 수준으로, 1970년대 후반 수준으로 급감했다. 중국·일본·대만 등 인바운드 3대 주력시장이 아직 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경북도는 한국의 대표적인 역사문화와 생태자원의 보고(寶庫)다. 신라, 유교, 가야 등 3대 문화권을 보유해 우리나라 최대의 역사문화 보유지역으로서의 이미지를 확보하고 있다. 경북도와 경북문화관광공사가 급변하는 관광트렌드에 대응하기 위해 해외홍보사무소 등을 통해 선도적으로 관광마케팅을 펼치는 것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국내도 마찬가지지만, 해외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마케팅은 현장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면서 전략을 마련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2022-05-26

경주 국제회의복합지구 지정, 지금도 늦다

경주시가 경주 화백컨벤션센터(하이코)와 함께 국제회의복합지구 지정을 문화체육관광부에 신청할 예정이다. 신라 천년 고도의 역사문화관광 도시 기반 위에 국제회의와 전시컨벤션을 특화시킴으로써 도시의 경쟁력 향상은 물론 국제관광 도시로서 위상을 높이고자 하는 데 목적이 있다.국제회의복합지구는 국제회의 시설과 숙박, 판매, 공연 등의 시설을 활성화하는데 필요한 시설들이 집중된 곳이다. 복합지구로 지정되면 중앙정부로부터 각종 부담금 감면과 재정적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된다. 특히 문체부의 관광진흥개발기금 지원과 영업제한 규제 제외 등의 혜택이 주어짐으로써 사실상 관광특구 수준의 혜택도 입게 된다.마이스(MICE)산업은 고용창출과 경제적 파급효과가 커 많은 국가와 도시들이 관심을 기울이는 분야다. 우리나라도 각 도시마다 전시컨벤션산업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다. 현재 대구 엑스코, 인천 송도, 부산 벡스코 등 전국에 5곳이 국제회의복합지구로 지정돼 있으며 글로벌 시대에 발맞춰 각 도시마다 복합지구 지정을 희망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경주는 우리나라 최고(最古)이자 최대 문화유산과 관광자원이 있는 곳이다. 신라 천년의 역사와 함께 국보급 문화재와 유적이 즐비하다. 또 유네스코 지정의 세계문화유산도시로서 국제적으로도 그 명성이 잘 알려져 있다.2012년 APEC 교육장관회의와 2015년 세계 물포럼, 2017년 세계유산도시기구 세계총회 등 굵직한 국제행사를 이미 경험한 바 있어 국제행사 운영도 낯설지 않다. 현재 2024년 완공을 목표로 238억원을 들여 하이코 전시장을 증축 중에 있어 국제행사 유치도 한결 좋아진다.우리나라 최대의 문화유적지이자 관광지인 경주가 국제회의복합도시로 지정되지 않을 이유가 별로 없다. 지역 간 균형발전을 촉진하고 지방도시의 활로를 열어주는 의미에서 경주의 국제회의복합도시 지정은 권장할 만한 일이다. 천년고도 경주를 국제적 수준의 관광도시로 육성하기 위해서는 국제적 행사가 자주 열릴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경주는 그런 점에서 충분한 자격을 갖추고 있다.

2022-05-26

대구근대골목길

우정구 논설위원 역사학자 에드워드 카가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로 규정했듯이 역사란 항상 과거와의 연결점에 있다. 우리가 지금 이 시간 만나는 역사의 현장이 신비롭기도 하고 흥미로운 것은 다시 되돌아갈 수 없는 과거에 머물러 있기 때문일 것이다.대구근대골목은 대구시 중구 일대에 조성된 테마 골목길이자 관광코스다.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 대구시내에 세워졌던 건물과 흔적 등을 관광 상품화한 것이다. 서문시장과 약전골목, 계산성당, 제일교회, 3·1 만세운동길, 대구 최초의 근대백화점인 무영당 등을 중심으로 골목골목마다 숨겨져 있던 당시의 모습과 이야기들을 들춰내 재미있게 엮은 관광코스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공간이다.2008년부터 시작해 지금은 다섯가지 코스로 역사 탐방길을 만들었다. 한국관광 100선에도 여러 번 선정됐다.특히 투어 길마다 이 지역을 대표하는 인물들이 거쳐갔던 장소와 그들의 정신과 흔적을 볼 수 있게 꾸민 것도 재미를 더해준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민족시인 이상화 고택 그리고 국채보상운동의 주역 서상돈 선생의 고택도 만날 수 있다. 대구가 낳은 천재화가 이인성이 계산성당을 배경으로 그린 100년 된 이인성 나무(감나무)도 현장에서 마주한다.‘동무생각’을 작곡한 박태준의 사랑 이야기가 담겨있는 청라언덕과 삼성그룹 창업자인 이병철이 살던 고택과 그가 설립한 삼성상회의 옛터도 관광 중에 만난다.‘세계가스총회’에 참석했던 윤석열 대통령이 일정에 없던 대구근대골목길을 찾았다. 옛 추억이 있던 대구에서의 향수를 느끼며 다녀간 그 길은 현직 대통령의 발길이 닿음으로써 또 하나의 역사적 의미가 더해졌다./우정구(논설위원)

2022-05-26

빅브라더 논란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여의도 정치판에 빅브라더가 소환됐다. 빅브라더는 1949년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에 등장하는 ‘감시자’를 지칭하는 용어에서 비롯된 말로, 일반 정보를 독점함으로써 사회를 감시·통제하는 관리권력 또는 사회체계를 일컫는 말이다.이 소설에서 빅브라더는 텔레스크린, 도청장치를 이용해 대중에게 이데올로기를 강요한다. 소설은 빅브라더에 의해 자행되는 감시와 통제의 위험성을 극단적으로 잘 묘사했다. 문명이 발달함에 따라 빅브라더가 활개칠 위험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우리 정치판에서 빅브라더 논란을 전격 소환한 주인공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다. 박 원내대표는 법무부가 ‘인사정보관리단’을 신설하고 공직자 인사 검증을 하겠다고 밝히자 “한동훈 법무부가 21세기 빅브라더가 되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검찰의 직접수사권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인사검증까지 하게 되면 정보가 법무부로 집중되고, 이렇게 되면 윤석열 정부 인사는 복두규 인사기획관이 추천하고 한동훈 장관의 검증을 거쳐 이시원 공직기강비서관을 통해 검찰출신 대통령에게 보고될 것이라고 지적했다.즉, 검찰에서 손발이 닳도록 합을 맞춘 인사들이 (윤석열 정부의 인사를) 좌우하는 것이라고 우려한 것이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은 ‘인재 추천→세평→검증’으로 이어지는 인사시스템에서 세평 수집과 검증의 상당 역할을 내각으로 이전해 다각도로 검증하고, 최종적으로는 대통령실 인사기획관이 검증 자료를 토대로 종합 자료를 만들어 대통령에게 보고해 최종 낙점이 이뤄지는 인사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입장이다.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때 가장 큰 관심사가 바로 인사문제다. ‘인사가 만사’란 말처럼 정권의 성공과 실패를 담보하는 것도 어떤 인사를 등용하느냐에 달렸다.야당의 지적처럼 윤 대통령의 최측근인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검찰 인사권과 정부 공직자 인사 검증 권한을 모두 갖게 되면 사실상 민정수석 역할까지 맡게돼 ‘국가 사정 컨트롤타워’역할을 하게 될 수 있다는 우려에도 일리는 있다.하지만 이번 인사검증시스템이 미국의 선진적인 인사 검증 시스템을 따른 것이란 대통령실의 설명에 무게가 실린다. 미국의 경우 백악관 법률고문실에서 공직 후보자에 대한 검증을 개시한 후 미 법무부 산하 FBI(연방수사국)에 1차 검증을 의뢰한다. 이후 FBI가 1차 검증 결과를 통보하면 이를 토대로 법률고문실이 다시 종합 판단을 내리는 시스템이라는 것이다.이 설명대로라면 법무부에 신설될 인사정보관리단은 대통령실과 독립된 위치에서 공직 후보자에 대한 객관적 자료를 바탕으로 1차 검증을 담당하는 FBI의 역할을 맡게 된다.더구나 법무부는 인사정보관리단의 객관적·중립적 업무 수행을 위해 장관은 검증 결과만을 보고받고, 인사정보관리단 사무실도 외부에 별도로 설치해 법무부내 타 부서와는 철저히 분리·운영할 계획이라니 좀 더 지켜볼 일이다. 야당이 무작정 ‘비판을 위한 비판’에만 매몰돼 있을 경우 국민으로부터 외면당할 수 밖에 없다.

2022-05-26

선거 홍보용 폐기물

윤영대 수필가 6월 1일 실시되는 전국동시 지방선거 투표안내문과 선거공보물이 불룩하게 넣어진 우편 봉투가 배달되어 왔다. 봉투 겉면에 ‘은닉·훼손하거나 무단으로 가지고 갈 경우 공직선거법 또는 관련 법률에 따라 처벌 받게 된다’고 되어 있다. 뜯어보니 고급 용지에 후보자들의 얼굴과 이름, 공약 등이 인쇄된 책자형 선거공보물이다.선거구마다 후보가 다르겠지만 우리 선거구에는 도지사 2명, 시장 2명, 교육감 3명과 함께 도의원 2명, 시의원 5명이다. 그리고 도의원과 시의원 비례대표 홍보물 8건도 있어 전체 78장이나 된다. 칼라 인쇄된 책 한 권인 셈인데 이번 선거에는 2천324개 선거구에 4천132명을 선출해야 하니 가정마다 1개씩 보내면 그 수량도 엄청나서 5억 부가 넘는다고 한다. 첫 장을 넘기면 ‘후보자 정보공개 자료’가 있어 읽어 보았다. 인적사항, 재산 및 병력, 세금납부 현황이 있지만 그 작은 글씨를 다 읽어 볼 마음도 없다. 인터넷 ‘정책·공약 마당(policy.nec.go.kr)’에서도 확인 가능하다고 한다.인쇄물은 재활용도 어렵고, 올해에는 두 번의 선거로 그 폐기물만으로 약 2만8천여 톤의 온실가스를 배출할 거라고 녹색연합 등 환경단체에서 예측하는데, 이들 종이 1t 생산에 30년생 나무 17그루가 베어져야 한다며 온라인 홍보, 재생 종이 사용, 규격과 수량 제한 등을 주장하고 있다.어디 이뿐이랴. 길거리마다 어지럽게 걸린 선거용 현수막은 문제가 더 심각하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만 약 13만8천여 장의 현수막이 걸릴 것이라는데 1장 크기를 10㎡ 이하로 제한하고 있으나 재질 또한 천이 아니고 폴리에스터 성분의 화학섬유이며 소각 시 1급 발암물질인 다이옥신과 미세 플라스틱을 발생시킨다.더구나 2018년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읍면동 당 현수막도 1개에서 2개로 변경되었고, 선거 후 지체 없이 철거해야 하니 이 막대한 선거폐기물을 처리할 방안도 강구돼야 한다. 행정안전부에서는 ‘폐현수막 재활용 지원사업’을 실시해 각 지자체는 사업체를 선정하고 친환경 가방(에코백), 시멘트 소성용 연료, 우산 등을 만들어 ‘새활용’이라는 업사이클링(up-cycling)을 시도하고 있으나 환경단체 조사로는 약 24% 정도 재활용하고 나머지는 소각 처리되고 있다는 것이다. 환경부 자료에는 21대 총선 후 발생한 전국 1천739t의 폐현수막 재활용율을 보면 경북은 4.8%로 최하위권이다.이 밖에 선거운동원들의 선거복과 어깨띠는 선거 후 입게 되면 정당명과 후보 번호가 있어 선거법 위반이라고 한다. 또 코로나 방역을 위해 투표 시 사용된 비닐장갑을 쌓으면 63빌딩 7개 높이라니 폐기물 없애자는 ‘제로웨이스트(zero waste)’가 거론될 만하다.나라를 위해 일하려는 사람의 홍보를 위해 선거축제를 하듯 현수막은 필요하겠지만 한번 쓰고 버려질 종이나 천의 사용은 막대한 경비와 환경오염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대책이 필요하다. 온라인 매체를 이용하여 홍보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다.

2022-05-26

청와대 개방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윤석열 대통령이 용산에 새 집무실을 마련하고 청와대를 국민들에게 개방했다. 멀쩡한 청와대를 두고 왜 돈과 수고를 들여가며 집무실을 옮기려고 하느냐는 반대여론이 많았음에도 후보시절의 공약을 관철한 것이다. 오랜 세월 권위의 상징이자 금단의 성역이었던 곳이 활짝 열려 일반 시민들의 구경거리가 되고 휴식공간이 된 것은 실로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내부를 공개하는 텔레비전 화면을 보니 그 규모나 시설이 과연 현대판 구중궁궐이라는 말이 나올 만했다.윤 대통령이 청와대 입주를 한사코 거부한 것은, ‘제왕적 대통령’의 권위를 내려놓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라고 한다. 그게 집무실을 바꾼다고 될 일이냐는 부정적 시각도 있지만, 청와대라는 상당한 혜택을 포기하는 단호한 결단력에서 그 가능성을 보는 사람도 적지 않은 것 같다. 사실 취임한 지 2주일 남짓 된 지금까지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다. 우선은 날마다 사가(私家)에서 집무실로 출퇴근을 하면서 대통령의 거동이 수시로 노출된다는 점이다. 출근길에 기자들과 일문일답을 하는 모습도 전에는 보지 못한 광경이었다. 윤 대통령이 인용한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는 말도 있지만, 청와대라는 구중심처로 들어가 버렸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우리나라는 집권자에게 많은 권력이 부여된 대통령중심제이다. 대통령이 그 권력을 함부로 휘두르면 삼권분립을 무력화하고 법치를 파괴하는 독재도 가능하다는 걸 지난 정권이 잘 보여주었다. 더구나 편향된 이념에 사로잡혀 그릇된 방향으로 가게 되면 나라를 망칠 수 있다는 것도 실감했다. 지도자가 올바른 가치관과 역사관을 가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오만이나 권위의식에 빠지는 것도 못지않게 나라를 위태롭게 하는 요인이 된다. 온갖 국정과제를 대할 때마다 겸허하게 눈과 귀와 마음을 열어놓고 사안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최선책을 찾아야 과오를 방지할 수 있는 것이다.높은 자리에 오르면 사람이 달라진다는 말을 흔하게 듣는다. 그것을 인지상정이라고 당연시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실지로 심리학적인 실험이나 생리학적인 측면에서도 그런 현상이 나타난다는 연구 결과도 나와 있다. ‘승자의 뇌’라는 책을 쓴 뇌신경 심리학자 이안 로버트슨은 “성공하면 사람이 변한다고들 하는데 맞는 말이다. 권력을 잡게 되면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 분출을 촉진해 보상 네트워크를 움직인다. 그래서 사람을 더 과감하고, 모든 일에 긍정적이며, 심한 스트레스를 견디게 한다. 또한, 권력은 코카인과 같은 작용을 한다. 중독된다는 얘기다. 다른 사람에게 공감하지 않고 오만하게 만든다. 권력은 시야를 좁게 만든다. 권력은 다른 사람의 시각에서 나를 바라보기 어렵게 만든다”고 했다.사람은 권력이 많아지면 오만해지고 공감능력이 떨어지며 타인을 자신과 차별화하는 경향이 있다는 게 학자들의 견해다. 거기다가 구중궁궐 같은 곳에 거주하다보면 점점 더 민심과는 괴리될 수밖에 없을 터이다. 아무튼 일제 때부터 100여 년간 권력의 상징이었던 곳이 개방되는 것을 계기로 새로운 시대가 열리기를 기대한다.

2022-05-26

탄소중립도시 만들기에 대구가 앞장서야

대구 엑스코에서 열린 ‘2022 세계가스총회’ 개회식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은 “원자력 발전과 재생에너지, 천연가스 등을 합리적으로 믹스해 나가야 하며 한국은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책임과 역할을 다할 것”이라 말했다.탄소중립이란 온실가스 배출을 최대한 줄이고 남은 온실가스는 산림조성 등으로 흡수 제거해 실질 배출량이 제로 상태가 되는 개념이다. 국제사회는 날로 심각해지는 기후변화에 대응코자 2015년 파리협정을 체결하고 지구 평균온도 상승률을 산업화 이전대비 2℃ 아래로 유지키로 뜻을 모았다. 지구 온도가 2℃ 이상 상승하면 폭염, 폭설, 산불 등 인류가 감당할 수 없는 자연재해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간협의체(IPCC)는 2100년까지 지구 평균 온도상승폭을 1.5℃ 이내로 제한하기 위해 전 지구적으로 203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10년 대비 최소 45% 이상 감축해야 하며 2050년에는 탄소중립을 달성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가스총회에 참석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연설에서 “인류가 기후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한다면 궁극적으로 지구에서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 경고했다. 지금 세계는 탄소저감이나 탄소재활용을 위한 노력에 사활을 걸고 있다. 한 나라가 아무리 좋은 과학기술을 가져도 탄소중립을 이루지 못하면 국제사회에서 그 경쟁력을 인정받을 수 없게 된다. 탄소중립은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들며 인류의 삶을 존속케 하는 유일한 수단이 되는 것이다.기후문제에 대응하고 에너지산업의 발전을 논의하는 세계가스총회가 대구에서 열리고 있다. 이를 계기로 대구가 탄소중립 실천의 선도도시로 나아갈 수 있다면 도시의 품격은 한층 더 높아질 수 있다. 대구시는 작년 이미 탄소중립 선도도시를 선포한 바 있어 이 문제 실천이 자연스럽다. 대구시는 기후변화의 중요성을 다시 시민에게 알리고 탄소중립 정책을 고도화하는데 앞장서야 한다. 이는 가스총회 개최를 통해 부가적 가치를 더 창출할 뿐 아니라 도시로서 품격도 유지할 수 있어 일석이조의 기회가 된다.

2022-05-25

뻔한 판세…‘지방선거 무용론’까지 나온다

지방선거 사전투표일(27·28일)이 하루 앞으로 다가오면서 선거전이 종반전으로 치닫고 있다. 다른 지역과는 달리 대구·경북에서는 정당간 판세를 분석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국민의힘의 일방적인 우세로 선거 캠페인이 진행되고 있다. 역대 최대의 ‘긴장감 없는 선거’라는 소리도 나온다. 타지역에서는 선거홍보전화나 문자메시지가 쇄도해 공해수준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지만, 이 지역에선 남의 나라 얘기 같다. 국민의힘 공천자가 결정된 이후부터는 선거가 치러지는지를 의식할 수 없을 정도로 거리가 조용하다.이미 대구·경북지역 단체장·광역의원 선거구에서 37명의 무투표 당선자를 확정한 국민의힘은 ‘전체 선거구 석권’을 장담하고 있을 정도다. 반면, 제1당인 민주당은 정권견제론으로 맞서고 있지만 눈에 띄는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은 이번 대구·경북지역 지방선거에서 후보자를 30%정도 내는데 그쳤다. 지방선거의 꽃인 기초단체장의 선거의 경우 전체 31개 선거구에서 2018년에는 16명이 출마했지만, 이번에는 7명만 출마했다.그나마 일부지역 기초단체장 선거가 국민의힘과 무소속 후보 간 박빙 승부전이 펼쳐지고 있는 것은 다행이다. 현직 단체장들이 무소속으로 출마한 영천과 군위, 의성을 비롯해 무소속 단일후보가 나선 달성군과 경산시에서는 선거전이 박진감 있게 치러지고 있다. 여론조사결과 이들 선거구에서 상당수 무소속 후보가 국민의힘 후보를 앞서는 것으로 드러났다.선거일이 이제 5일 남았다. 모든 후보들은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길 바란다. 주민들의 입에서 지방선거 무용론이 나오는 건 후보들 책임이 크다. 대부분 여론조사에서 부동층이 아직 상당한 만큼 승부를 예단해선 안 된다. 유권자들이 후보자의 얼굴과 공약도 모른 채 투표를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유권자들도 지방선거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야 한다. 아직 각 가정에 배달된 선거공보물이 아파트 우편물함에 그대로 들어있는 곳이 수두룩하다는 소리도 들린다. 우리가 내는 세금으로 대신 살림을 사는 지역일꾼을 제대로 뽑으려면 유권자들이 선거에 무관심해선 곤란하다.

2022-05-25

열섬현상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지구온난화가 전 세계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되고 있는 가운데 5월 대구의 한낮 기온이 33℃까지 올라가는 열섬현상이 화제다.열섬 현상은 인구의 증가·각종 인공 시설물의 증가·콘크리트 피복의 증가·자동차 통행의 증가·인공열의 방출·온실 효과 등의 영향으로 도시 중심부의 기온이 주변 지역보다 현저하게 높게 나타나는 현상을 말한다.도심의 기후가 주변지역과 다른 독특한 현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은, 1927년 오스트리아의 기상학자 W. 슈미트가 수도 빈의 기온분포를 조사해 도심으로 갈수록 온도가 높아진다는 사실을 확인한 이후부터다. 도심을 중심으로 동심원상의 기온 분포를 나타내며, 열섬의 강도는 여름보다 겨울에, 낮보다는 밤에 현저하게 나타난다.기상청에 따르면 올여름 한반도에서는 4가지 요인에 따라 열섬현상이 더욱 강하게 나타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첫째 평년보다 강력한 티베트 고기압이다. 티베트 고원의 눈이 많이 녹아서 땅이 가열되고 있는데, 이 열기가 열돔을 강화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두번째는 동태평양의 수온이 평년보다 차가워지는 라니냐현상이다. 라니냐는 서태평양 아열대 지역에 비구름을 집중시키는 반면, 우리나라 주변에서는 북태평양 고기압을 강화해 열기를 더한다.세번째와 네번째 요인은 인도를 강타하고 있는 강력한 폭우구름과 북대서양에 나타난 변칙적인 수온이다. 현재 인도 북동부에는 강력한 폭우구름이 발달하고 있으며, 수천Km 떨어진 한반도의 폭염을 강화하고 있다.열섬현상을 유발하는 지구온난화 문제는 한반도뿐 아니라 전 지구적으로 공동대처해야 할 과제라는 사실을 다시한번 명심해야 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2-05-25

정치와 욕망

최병구경상국립대 교수 다시, 선거철이 돌아왔다. 지난 대선에서 승리를 거머쥔 여당은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뒷받침하기 위해, 패배한 야당은 칼날을 갈며 재기를 모색하기 위해 지방 선거에 임하고 있다. 대선 패배 이후 ‘검수완박’ 법안 통과에 열을 올린 민주당과 대한민국에서 특권 계급 세습의 도구로 전락한 교육 시스템의 모습을 확인시켜 준 국민의힘의 행태를 보고 있자니, 현실 정치가 과연 평범한 우리의 일상에 얼마나 와 닿을 수 있을지 의구심만 가득하다.우리는 누구나 정치를 하며 살고 있다. 어느 집단에나 정치를 잘해서 탄탄대로를 걷는 사람이 존재하는 반면, 정치를 못해서 고립된 채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보통의 사람은 처세에 익숙해지기 위해 노력한다. 그것이 나의 성공을 이룰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꼭 사람과의 관계에서 벌어지는 정치가 아니라도 더 좋은 대학에 진학하고 더 좋은 직장을 얻으려는 욕망도 현실 정치와 경제로부터 형성된다는 점에서, 삶 자체가 정치·경제적 선택의 연속이라고 하겠다.우리는 어떤 정치·경제적 욕망을 품고 있지만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인적·물적 네트워크가 부족하다. 그래서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자기의 욕망을 실현하는 특권 계급에 대한 평범한 사람들의 비판은 일견 당연한 것으로 보인다. 현실 정치는 대중들의 욕망을 대리한다. 더 높은 계급을 향한 대중들의 공통된 욕망을 현실 정치는 외면하기 어렵다. 이런 점에서 양당 정치 체제에서 두 정당이 품고 있는 전략과 시각의 유사성은 우연이 아니다. 올해 5월을 계기로 광주는 더이상 이른바 진보 진영의 전유물이 아니게 되었으며, 자기 계급의 영속성을 위해 교육 시스템을 악용한 사례는 두 정당이 공유하는 욕망 중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투자’와 ‘투기’의 경계에서 방황하는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명확히 알고 있다. 뉴스에 등장하는 정치인들의 모습을 비난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그런 사람에 대한 부러움이 존재하지 않나? 바로 이런 양가성은 특권 계급만이 아니라 평범한 우리도 21세기 신 계급사회의 출현에 연루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현실 정치가 우리 삶을 변화시켜줄 수 있을까? 대중들의 욕망이 변해야 현실 정치도 변한다. 뉴스에 등장하는 정치인들의 자식 사랑을 비난하면서 나는 그런 욕망과 거리가 먼 사람이란 인식을 하고 있지는 않나? 나의 양가성을 직시하고 응시할 때 변화를 만들 가능성이 생겨난다. 나아가 익숙한 생각의 패턴을 바꾸어야 한다. 얼마 전 연세대학교에서 청소 노동자의 파업에 재학생이 수업권 침해를 이유로 노동자를 고소하는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 청소 노동자의 외침을 수업권 침해로 사고할 것이 아니라 학내 구성원이 고통 받는 이유를 질문하는 계기로 삼을 수는 없을까.지방 선거에서는 당이나 특정 정치인의 이미지가 아니라 익숙한 생각의 패턴을 낯설게 만드는 후보에 투표하려고 한다. 내가 찍은 후보가 당선되지는 못하겠지만, 새로운 생각의 패턴이 양가적 현실 인식의 간극을 좁힐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2022-05-25

다람쥐, 간이 커지다

양태순수필가 산에서 다람쥐를 만났다. 대부분의 다람쥐는 사람의 인기척이 들리면 부리나케 숨거나 달아난다. 그런데 도망가지 않고 뒷다리로 서서 입을 오물거리며 나와 눈을 맞추고 있다. 황당하기도 하고 어찌 나올지 궁금하기도 해서 땅에 앉아 지켜본다. 다람쥐는 나와의 눈싸움에서 결코 피하지 않고 볼록한 볼을 움직이며 태연하다. 마치 너는 나를 잡을 수 없다는 당당한 눈빛이다. 내가 어이가 없어 발을 쿵 굴리며 잡을 듯한 자세를 취하자 그제야 나무 사이로 사라진다.다람쥐의 간 큰 행동이 하루아침에 나오지는 않는다. 처음 낯선 소리를 들었을 때는 앞뒤 가리지 않고 숨기에 바빴을 것이다. 숨이 팔딱거려서 기절할 정도였지 싶다. 몇 번을 경험하고 나서는 호기심에 숨어서 콩닥거리는 심장을 달래며 주위를 살폈고, 그런 행동을 반복하다 보니 저에게 해코지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는가 보다. 발소리에 서서히 적응하여 환경을 받아들인 반응이다.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무엇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어렵다. 변화하는 환경에 나름 적응을 잘 한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들 키우는 문제만큼은 쉽지 않았다. 내가 원하는 대로 자라주지 않는 자식 때문에 골머리를 앓은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서로에게 적응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필요로 한다. 내가 아이들의 한계를 인정하고 아이들이 내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기까지는 결코 쉽지 않았다. 눈 앞에서 아이의 방문이 수없이 닫히고 내 입에서 독이 든 말들을 폭포수처럼 쏟아냈다. 씩씩거리며 냉수를 마신 뒤에도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려 하기보다 부족한 부분만 도드라져 보인 적이 많았다. 밤이 깊어 혼자만의 시간이 되면 아이의 자는 모습을 몰래 들여다보며 공부가 뭐라고 이리 안달복달하는지 반성을 하곤 했다. 아이의 좋은 점만 봐야지, 굳게 마음을 먹었다.사람마다 환겅의 적응 방법이 다르다. 내가 아이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성적보다 인간성, 사교성을 우선이라고 생각을 바꾸었다. 아이는 엄마의 잔소리에 토를 달기보다 “알았어요, 알았어.”하며 반성하는 척 했다. 그렇게 나는 나대로 성적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면서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고 아이는 아이대로 순간을 모면하기 위한 방법을 찾았다.산에서 만난 다람쥐도 이런 과정을 겪었기에 저리 태평한가 보다. 그러나 아직 사람 가까이 다가와서 재롱을 부리지 않는 것을 보니 조금의 경계심은 있다. 만에 하나 저를 해치려는 의도가 보이면 단숨에 사라지겠다는 긴장을 유지하고 있는 듯해서 안심이다. 환경에 백 프로 적응보다는 나만의 색깔을 지키겠다는 의지가 보이는 듯해서 대견하다.간이 큰 다람쥐를 만나고 온 나는 자꾸 입꼬리가 실룩거린다. 사람을 보고 도망가지 않은 것이 기특해서다. 다람쥐 세계에서 반항아로 찍힐 만큼 용기 있는 행동이다. 그의 산경험이 친구들에게 틀림없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어떤 것이든 두려움을 극복하려는 노력 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없지 않은가.주변의 환경은 늘 변화한다. 아침이면 새로운 소식이 쌓여있고 지구촌 어디에서는 전쟁이 일어나는 상황이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세계가 놀란 가슴이 되기도 하는, 속도의 경쟁이기도 하다. 또 어제 멀쩡하던 전화기가 고장이 나서 연락처가 다 날아가서 당황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런 크고 작은 사건들이 우리가 살아가는데 많은 영향을 준다.그러나 변화의 중심은 늘 사람이라고 믿는다. 사람이 어떻게 반응하고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내가 살아갈 세상이 달라질 수 있다. 무작정 두려워하는 것보다 개개인의 소중한 재능과 능력을 발휘하여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다람쥐는 자신의 영역만 고집하지 않았다. 조금씩 사람과의 거리를 좁히려고 한 걸음씩 앞으로 내딛는 노력을 했다. 가끔 발소리를 듣고 놀라기는 하지만 무작정 도망가지 않고 서로 눈짓을 교환할 정도가 된 것이다. 그 작은 생명체가 덩치가 큰 사람을 받아들이는 자세는 배울 점이기도 하다.서로를 향한 조금의 배려와 존중이 삶의 가치를 향상시킨다. 다람쥐는 조금 더 간이 커지고 사람은 더 큰 품으로 안아줄 수 있으면 좋겠다. 부족한 대로 어울려서 채워가는 세상, 큰 그림을 꿈꾼다.

2022-05-25

류대창의 명리인문학… 임신(壬申)

육십갑자 중 아홉 번째 임신(壬申)이다. 천간(天干)은 임수(壬水), 지지(地支)는 신금(申金)이다.임수(壬水)는 넓은 호수, 바다로 표현한다. 넓은 호수와 바다는 작은 물줄기도 가리지 않은 자세 덕분에 속이 깊어 내면의 심리를 알기 어렵고, 바다와 같이 넓은 까닭에 모든 것을 수용하는 덕이 있다. 물처럼 유연하고 총명함을 타고 났기에 박식함이 넘쳐 언변이 청산유수인 자가 많다.사주에 임수가 있으면 모든 것을 수용하는 능력이 있어 재물이 마르지 않는 것과 같아 대체적으로 부자가 많다.인간이 살아가면서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 ‘돈’으로 해결 되지 않는 것이 거의 없을 정도다.어떤 마을에 매우 가난한 사람이 살고 있었다. 아침을 먹으면서 저녁에 무엇을 먹을지, 먹을 것이 생기기나 할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가난했다. 어느 날 우연히 달걀을 하나 얻게 되었다. 뛸 듯이 기뻐하며 집에 돌아온 그는 아내에게 “나는 오늘 큰 재산을 얻었네”라고 말했다, 아내가 “큰 재산은 어디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달걀을 아내에게 내어 보이며 “이거지. 그렇지만 십 년쯤 기다려야 될 걸세”라고 말했다. 그래서 아내와 함께 셈을 해보게 되었다.“내가 옆집 주인에게 부탁하여, 그 집의 어미 닭에게 이 달걀을 함께 품도록 하여 병아리로 만들고 좀 클 때까지 기다렸다가 찾아와야지. 그 병아리는 곧 닭이 되어 알을 낳게 되고, 한 달에 열다섯 개는 낳겠지. 그것들을 다시 품게 해서 알을 까면 병아리가 열다섯 마리가 되지. 그렇게 두 해만 지나면 닭이 알을 낳고, 알이 닭으로 되어서 닭이 삼백 마리는 족히 될 것이고, 그것을 팔면 은 덩어리 열 개는 될 거야. 그 은 덩어리 열 개를 가지고 암소 다섯 마리는 살 수 있지. 암소가 또 암소를 낳으면서 삼년만 지나면 암소가 스물다섯 마리가 되지. 또 송아지가 크면서 새끼를 낳을 것까지 계산하면 삼년 만에 일백오십 마리는 될 거야. 그것을 팔면 은 덩어리 삼백 개는 되지 않겠소. 그 은 삼백 개를 가지고 빚 놀이를 하면, 또 삼 년 이내에 오백 개로 늘어나겠지. 그 가운데에서 삼분의 이는 밭을 사고 집을 짓고, 삼분의 일로는 집안일을 잘 할 아주머니를 두도록 하지. 나와 자네는 행복하게 늘그막을 살아가지. 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아내는 집안일을 하는 아주머니를 둔다는 말을 듣자, “이 화근 덩어리를 남겨 두어서는 안 되겠군”하며 그 달걀을 땅에 던져 버렸다. ‘설도소설(雪濤小說)’ (중국 명나라 신종 때 강영과가 지은 소설)에 나오는 이야기다.먹고 살기 힘든 서민은 그 날 그 날 살기 위해 재물에 매달린다. 만약 부(富)를 구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비록 말채찍을 잡는 마부가 될지라도 나 또한 할 것이다. 그러나 만일 구할 수 없는 것이라면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좇을 것이다.신금(申金)은 초가을처럼 맑고 결실을 맺는 시기며, 동물로는 원숭이다. 원숭이 원(猿)이 아니고, 원숭이 신(申)이다. 원숭이는 경계심이 강하고, 이해타산이 심하며 잔꾀가 많다. 자기 재주만 믿고 행동하다가 낭패를 보기도 한다. 그만큼 똑똑하고 재주가 많다.진요자(‘송사’(宋史)에 실려 있는 강숙공)는 활을 매우 잘 쏘았다. 그와 겨룰 만한 사람이라곤 없었다. 그는 스스로 언제나 자기가 활을 제일 잘 쏜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그가 활을 쏘고 있는데 참기름을 파는 노인이 어깨에 메었던 짐을 내려놓고 활 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그 노인은 진요자가 쏘는 화살 열 개 가운데 아홉 개가 과녁의 한가운데에 맞는 것을 보고서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끄덕였다. 진요자가 “당신도 활을 쏠 줄 아십니까? 나의 솜씨가 참으로 훌륭하지 않습니까?”라고 물었다. 노인이 “뭐 별로 특별한 비결이 있지는 않군요. 그저 손에 푹 익었을 뿐이군요!”라고 대답하였다. 진요자가 화가 나서 “어찌 겁도 없이 나의 활 쏘는 실력을 가볍게 본단 말이오!”라고 말했다.노인이 “내가 참기름을 병에 부어 본 경험이 있어 그러한 이치를 알지요”라고 대답하였다. 말을 마치더니 호리병처럼 생긴 참기름병을 하나 꺼내서 땅 위에 내려놓고, 엽전으로 병 아가리를 덮더니 국자로 참기름을 떠서 병 속에 넣었다. 참기름이 엽전의 가운데에 뚫려 있는 조그만 구멍 속으로 들어가는데, 엽전에는 조금도 참기름이 묻지 않았다.그러고는 노인이 “나도 뭐 별난 비결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고, 그저 손에 푹 익었을 따름입니다.”라고 말했다. 진요자가 웃으면서 참기름을 파는 노인에게 “많이 파시오”라고 말하며 배웅해 주었다. ‘귀전록(歸田錄)’(북송 때 구양수가 쓴 산문집)에 나온다. 류대창 명리연구자 참기름 파는 노인과 장자에 나오는 소를 잡아서 고기를 발라내는 포정(庖丁)이라는 사람이나 수레바퀴를 쪼아 만드는 윤편(輪扁)이라는 사람이 무엇이 다를 바가 있는가?한 분야에 달인이라며 지나치게 재주를 과시하면 상대방에게 눈살을 찌푸리게 할 수 있다. 자랑보다 겸손의 미덕도 필요하다.‘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는 말이 있다. 원숭이를 일명 ‘잔나비’라고 하는데, 하는 짓이 경망스러워 붙여진 이름이다.임신(壬申)은 뜻이 다르지만 임신(妊娠)과 음(音)은 같다. 임신(妊娠)은 ‘아이를 배다’이다. 즉, 지상의 모든 생명의 어머니와 같은 역할을 한다. 임신일주(壬申日柱)는 성욕이 왕성한 대표적인 일주(日柱) 중 하나이다. 그렇기 때문에 매사에 추진력이 있고, 다재다능하여 자기 재능을 십분 발휘하여 사회에 기여하여 선망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때로는 너무 잘난척하는 행동으로 오해받을 소지가 있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2022-05-25

그렇게 어른이 된다

나에게는 중학교 때부터 항상 붙어 다닌 세 명의 친구가 있다. 좋은 일도 슬픈 일도, 바보같은 짓도 함께 하며 울고 웃었던 친구들. 서로의 경조사를 항상 함께하며 힘들 땐 위로가, 기쁠 땐 함께 웃어준 누구보다 소중한 친구들.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웃기다고, 우리도 서로 얼굴만 봐도 자꾸 웃게 된다. 다들 밖에서는 존중받고 또 신뢰받으며 살아가는 친구들이지만, 왜인지 모르게 우리끼리 있을 때면 한없이 바보 같고 실없어진다. 나는 친구들의 그런 모습이 서로에 대한 신뢰처럼 느껴지곤 해, 바보 같은 소리를 하며 농담 따먹기를 하는 순간들이 더없이 소중하고 사랑스럽게 느껴진다.우리는 모두 서울 은평구에 살았었다. 둘씩 둘씩 아주 어려서부터 친구였다가, 중학교에서 서로 만나게 되었다. 그때부터 우린 마치 그보다 훨씬 전부터 넷이 하나였던 것처럼 붙어 다녔고, 서로 싸우기도 하고 한없이 의지하기도 하며 20년을 함께 지내왔다. 하지만 나이를 먹고, 교대로 군대를 다녀오고, 이사를 가고 하면서, 이제는 모두 은평구를 떠나고 말았다. 같은 동네를 살 땐 몰랐다. 가까운 거리에 네가, 밤이면 우리가 함께 모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이고 축복이었는지 말이다. 이렇게 다들 다른 지역에서 살아가게 되니, 그와 같은 인연이 얼마나 기적 같은 일이었는지 새삼 느낀다.그렇게 우리는 30대가 되었고, 하나 둘 결혼을 하며 가정을 이뤄가고 있다. 이제 우리는 철없는 아이가 아니라, 누군가의 동반자로서, 누군가의 아빠로서 살아가게 되었다. 이제는 마냥 실없는 짓만 할 수는 없게 된 친구들의 모습에 때로는 서운하기도 하고 때로는 질투가 나기도 하지만, 그래도 한편으론 그렇게 변해가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 너무나도 기쁘다.저번 토요일의 일이다. 우리는 넷 중 가장 일찍 결혼해 어느새 한 아이의 아빠가 된 친구의 집에 모였다. 보다 일찍 아이도 보고, 녀석의 사는 모습도 보고 싶었지만, 코로나 시국에 갓난아기를 보러 간다는 게 마음이 편치 않아 미뤄진 자리였다. 그 사이 아이는 어느새 무럭무럭 자라 걷고, 뛰고, 토끼나 아빠, 속닥, 똑딱 같은 간단한 단어를 말할 정도로 커 있었다. 나는 그게 신기해 한참을 보고만 있었다. 너무나 작고, 너무나 부드럽고, 그래서 금방이라도 부서지거나 사라질 것만 같아 조금은 슬퍼지는 행복한 기분이었다.사실 나는 아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해할 수 없는 말과 행동을 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내가 어떻게 행동해 주는 게 옳은 건지 알 수 없어 불안하고 무서운 마음이 든다. 하지만 녀석의 딸을 보는 건 조금 다른 기분이었다. 아마 나에게 소중한 사람의, 자신보다 더 소중한 존재이기에 그런 기분이 들었던 것 같다. 신기하다는 말 말고는 어떻게도 표현할 수 없는, 그런 느낌. 하지만 보다 신기했던 건, 그런 아이의 모습보다도 더 신기했던 건, 아이를 시종일관 바라보며 눈을 떼지 못하는 내 친구의 모습이었다. 어느새 녀석은 함께 바보 같은 짓을 하고 밤새 함께 술을 먹고는 부스스한 얼굴로 인사하던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세상의 모든 위험으로부터 아이를 지켜주겠다고 각오한, 이 세상이 위험하고 험한 곳이지만 그곳에 절대 너를 혼자 두지 않겠다고 각오한 남자가 되어 있었다. 녀석은 어느새, 어른이 되어 있었다.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사실 난 좀 건방지고 오만한 구석이 있어, 내가 세상에서 제일 생각이 깊고 마음이 넓다고 생각할 때가 자주 있었다. 어려서부터 나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성숙한 아이인 것처럼 굴었고, 세상 모든 슬픔과 고통을 미리 경험한 사람인 것처럼, 혹은 전생의 슬픔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는 사람인 것처럼 살아왔다. 하지만 나는 어렸고, 어리석었다. 단지 어리고 어리석어 타인은커녕 스스로도 감당하지 못했을 따름이었다. 아이를 바라보는 친구의 모습을 보며, 나는 내가 정말로 그런 사람이 아니라 단지 한없이 어리광을 부리고 있었을 따름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는커녕, 스스로의 마음도 감당하지 못하는 어른아이.그렇게 어른이 된 친구의 집을 나오며 나도 모르게 존경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던 것을, 너는 알까. 네가 이미 누군가를 지킬 수 있는 힘을 가졌으며, 세상을 향해 인도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에, 내가 너를 얼마나 자랑스럽다 생각했는지, 너는 모를 것이다. 처음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너와 같은 어른이 되고 싶다고. 진심으로 존경하는, 너와 같은 어른이. 아마 너는 아직 모를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은 알아주길. 너에게는 너의 힘듦을 함께하고 너의 아이를 함께 지켜줄 소중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너의 행복을 지켜줄 친구들이 너의 곁에 항상 함께 있다는 사실 말이다.

2022-05-24

복수, 그 수상함에 관한 단상

얼마 전 학생들과 함께 권여선 작가의 ‘친구’라는 작품을 읽었다. 해옥이라는 여자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소설은 짧은 분량이지만 우리의 현실을 완벽하게 그려내며 문학으로 획득할 수 있는 강렬한 페이소스를 보여준다.해옥은 “하루하루에 기쁨이랄 것”이 없이 살아가는 인물이다. 그런 그녀에게는 아무도 모를 두 가지의 기쁨이 있는데 하나는 매일 새벽마다 감사기도를 드리는 신이며 또 다른 하나는 보물과도 같은 아들 민수다. 평소와 다름없이 지난한 일상을 살던 해옥은 담임에게서 아들인 민수가 학교폭력을 당했다는 사실을 듣게 된다. 그간 해옥이 민수의 친구라고 알고 있던 아이들이 민수를 집요하게 괴롭히고 폭력까지 휘두른 것이었다. 무엇보다 소설에서 마음 아프게 다가오는 부분은 해옥과 민수가 폭력을 폭력이라고 인지하지 못하는 상황이며 더 나아가 아들인 민수는 자신을 괴롭힌 가해자들을 친구라는 미명으로 감싸는 모습까지 보인다.텍스트를 읽은 학생들은 저마다의 생각을 내어놓았다. 우리와 맞닿은 현실을 언어적으로 구현했다는 놀라움과 인물의 심리를 날카롭게 응시하는 작가의 시선에 감탄했으며 소설 속 인물인 해옥에 완전히 이입하다 못해 더 나아가 이토록 답답한 상황에 분개하는 학생도 있었다. ‘사이다’ 없이 ‘고구마’로만 끝났다는 것이었다. 해옥과 민수가 받은 폭력을 갚아주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제도적 장치로서 문제를 해결했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어떤 것도 해결하지 못한 채로 이야기의 막을 내린 것은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허구의 상황을 보여주고자 했던 작가의 의도였을 것이다. 이 이야기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다뤄볼 수도 있겠다. 해옥의 내면에서 부글거리는 분노의 감정에 초점을 맞춘다면 선하게 살아가는 모자에게 닥친 위기 상황이 종국에는 복수극으로 전환되어 독자로 하여금 일종의 만족감을 선사했을지도 모른다.사실상 ‘복수’라는 키워드는 유구한 역사 동안 다양하게 소비되어 왔다. 서양 최초의 서사시라 일컬어지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역시 아킬레우스의 분노와 아가멤논을 향한 복수심으로 시작된다. 일일이 나열할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작품이 복수의 서사를 사용하면서 법과 규제의 테두리 안에서 만족할 수 없는 인간의 내밀한 감정적 지점을 건드린다.그러나 이러한 복수극의 플롯이 어쩐지 수상하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솟아오르는 감정에 사로잡혀 자기 인생을 내걸고 타인을 파멸시키는 것이 삶의 목적이 되며 결국 자신의 존엄까지 해치는 인물에게 공감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못해 당연해진 시대가 되어버린 것이다. 피해 보는 인생을 살 바엔 차라리 추악함을 택하겠다는 마음도 만연하다. 복수의 무서운 점은 자신이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되는 것이다. ‘잘 살아라. 그것이 최고의 복수다.’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자기 삶의 정확성을 가지는 일조차 누군가를 향한 분노로 추동하고 있지 않은가.그렇다고 해서 사랑과 용서를 설파하기엔 결코 아름답지 않은 세상이다. 세상에 만연한 추악함을 덮을 수 있는 것이 막연한 사랑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이청준의 ‘벌레 이야기’에서도 드러나는 문제의식이다. 용서하는 행동이 자신을 구원할 것이라는 종교적 믿음을 붙잡았지만 전지전능하고 공평한 신은 살인자의 마음마저 어루만지며 그를 용서하지 않았는가. 그러니 차라리 자기 손으로 살인자의 목을 조르는 편이 낫겠다고 소리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그런 지점에서 ‘친구’의 해옥은 얼마나 답답한가. 자신의 별 볼 일 없는 삶을 신의 뜻이라고 치부하며 폭력에 노출된 아들을 보면서도 그럴 리 없다고 고개를 젓는다. 그러나 우리는 선량하고 착한 사람들이 획득하게 되는 어떠한 지점에 관해 알아야 한다. 올바르고 완벽한 정답을 인지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이야말로 그들에게는 일상을 지탱하는 큰 힘이다. 세계의 끔찍함을 완벽하게 응시하는 순간 분노할 수밖에 없고 그 감정에 잡아먹히는 것은 오히려 더 큰 불행을 초래한다. 그러므로 이 모든 상황이 오히려 전지전능한 누군가의 뜻이라고 믿으면서 살아갈 뿐이다.이런 인물들을 그저 답답하다고 치부하기엔 마음 한편이 아려오는 것이다. 어떠한 일의 판단과 결정은 오롯이 그들의 몫이며 무엇도 정답이 될 순 없다. 그래서 우리는 문학 작품을 읽는다. 불합리한 상황에 분노하는 일. 타인의 감정까지 지평을 넓히는 일. 그렇지만 어떤 행동도 하지 못하고 시간이 흘러가게 두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라고 믿는 인물 또한 세계에 존재한다는 것을 인지하는 일로 나아가기 위함인 것이다.

2022-05-24

대통령이 직접 ‘지방시대’ 주도하라

심충택 논설위원 윤석열 대통령이 내일(26일) 정부 세종청사에서 첫 정식 국무회의를 개최한다.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첫 국무회의를 세종청사에서 하겠다”고 약속했었다. 새 정부는 올 연말 입주 예정인 세종청사 중앙동 내에 대통령 집무실도 마련한다. 윤 대통령의 이러한 ‘탈(脫) 서울’ 행보는 비수도권지역에 사는 주민들에게 신선감을 준다. 대통령의 지역균형발전에 대한 의지를 강하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사실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사회 양극화와 불평등, 지역 간 갈등, 저출산 문제 등은 수도권 일극주의에서 비롯된 측면이 강하다. 수도권에 정치·경제·사회·문화 전 분야의 자산, 권력, 인재가 몰려 있기 때문에 국가기능이 균형 있게 작동할 수가 없는 것이다.수도권에 국가 주요사업과 예산이 집중돼 있으니까 6·1 지방선거도 서울, 경기, 인천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는 듯하다. 전 국민적 관심을 모으고 있는 경기도지사 선거와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는 1기 신도시 건설과 재건축, 광역급행철도(GTX) 신설·연장, 군 공항 이전 및 국제공항 건설 등 후보들의 굵직한 개발 공약이 넘쳐나고 있다. 이 공약에 따라 해당 지역의 부동산값은 천정부지로 뛰어오르고, 이에 비례해 비수도권지역 주민들의 박탈감은 커지기만 한다.비수도권 모든 지자체가 수도권에 집중돼 있는 기업 하나라도 유치하기 위해 올인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경기도지사 후보들은 ‘수도권 공장 총량제 규제 완화’를 공약으로 내걸고 있다. 국민의힘 김은혜 경기도지사 후보는 수도권 공장총량제를 ‘대못 규제’라고 비난하면서 경기도 이전 기업에 대해 과감한 인센티브를 주겠다고 약속하고 다닌다.지역균형발전이 제대로 되려면 수도권에 집중되는 국가자산(일자리·교육·의료·교통·문화)을 규제하지 않고는 달리 방법이 없다. 출산유도를 위해 아이 낳는 가정에 현금을 지급하고, 여기저기 도로를 넓히는 식의 대증적 요법으로는 지역균형발전은 요원하다. 정치·경제·사회·문화 전 분야를 균형적으로 배분하는 종합 대책이 필요하다. 수도권규제를 완화하면서 비수도권 균형발전을 도모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애초에 불가능하다.이런 측면에서 새 정부가 현재 대통령 직속으로 있는 국가균형발전위원회와는 별도로 윤 대통령의 지역균형발전 공약을 챙길 새로운 조직을 구성하기로 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국가균형발전위원회에는 문재인 정부 출신 인사들이 대거 남아있어 새 정부의 ‘지방시대 국정과제’를 적극적으로 챙기기는 어려울 것으로 짐작된다. 이와 관련, 김병준 전 인수위 균형발전특위 위원장은 “윤 대통령이 자신도 적극적으로 참여할테니 지역균형발전이 국민의 관심사가 될 수 있도록 외부포럼이나 학회가 적극적으로 연계해서 활동하라고 했다”며 대통령의 말을 전했다.지역균형발전을 범정부적 현안으로 추진하려면 특정기구에 맡길 것이 아니라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공론화작업을 하는 것이 맞다. 지방소멸 어젠다는 청년들의 취업과 결혼·출산 문제에 직결돼 있기 때문에 새 정부는 반드시 이 문제를 국정과제 1순위로 삼아야 한다.

2022-0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