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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대구경북 공약 국정과제 반영, 도약 轉機로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등 대구시와 경북도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측에 제안한 지역공약들이 새 정부 국정과제에 포함됐다. 대통령직인수위 지역균형발전특위가 27일 발표한 지역균형발전 비전 및 국정과제에 이같은 내용이 확인되며 대구경북 대선공약 이행에 청신호가 켜졌다.대구가 제안한 7대공약 15대 과제는 통합신공항 조속추진과 5+1 미래신사업 육성, 낙동강 수계 취수원 다변화 등이 있고, 미래 디지털데이터산업 거점도시 조성 등 세부과제로 46개가 있다. 또 경북도는 통합신공항 조기건설을 포함 광역교통망 확충, 신한울 3.4호기 건설, 백신바이오산업 육성 등의 7대공약 15대 과제를 제안했다. 특히 대구와 경북의 공통과제이자 핵심사업인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조기건설은 지역균형발전특위가 제시한 15대 국정과제 76개 실천과제에 포함됨으로써 통합신공항 건설에 대한 추동력을 확보하게 됐다.문제는 대구경북 통합신공항의 경제성을 높이고 조기에 완공하느냐 하는 과제가 남아있다. 부산 가덕도신공항이 국책사업으로 확정되면서 대구경북 통합신공항과의 경쟁이 불가피하게 된 이상 가덕도신공항에 뒤지지 않는 공항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지역사회가 주력해야 한다. 가덕도 신공항은 2035년 개항으로 설계돼 있으나 통합신공항은 2028년 개항이 목표다. 통합신공항이 공항 활성화 등을 통해 선점효과를 낼 수 있다면 규모면에서 불리하더라도 경쟁력 있는 공항은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공항 개항에 따른 신공항 주변 경제활성화 등 지역경제를 끌고 가는 새로운 먹거리로서 신공항을 육성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새 정부는 지역균형발전을 위해 중앙정부 주도 정책을 지방자치단체 중심으로 패러다임을 바꾸겠다고 발표했다. 지방을 살리고 국가균형발전을 통해 국가 성장을 이끌겠다는 계획이다. 이번 대구경북 대선공약이 국정과제에 반영되는 것을 계기로 대구시와 경북도는 과거와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지역발전을 선도해야 한다. 정부의 적극적 협조가 가능한 분위기에서 지역의 혁신적 아이디어가 뒷받침된다면 소멸위기에 빠진 지역에도 희망이 있다. 윤 정부 출범과 더불어 지역의 성공적 도약을 반드시 이뤄야 한다.

2022-04-28

행복의 비결

우정구 논설위원 인간이 추구하는 궁극적 목표가 행복이라는데 이의를 달 사람은 별로 없다. 행복해지고 싶어 하는 욕망의 크기에 따라 행복의 만족도는 개인별로 큰 차이가 날 수 있다.사상가 벤담이 말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은 되도록 많은 사람이 행복을 누리는 사회를 뜻한다. 모든 사람에게 공평한 민주주의도 많은 사람이 행복을 누리도록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행복은 인간이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다.그러나 누구나 행복을 갈구하지만 스스로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많지가 않다. 행복해지는 비결을 모르는 탓일지도 모른다. 세계적 대문호 톨스토이는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 다른 이유로 불행하다”는 말을 했다.국가마다 국민이 느끼는 행복의 정도도 천차만별이다. 미국이나 영국, 일본 등 경제적 부국이라고 반드시 행복지수가 높은 것은 아니다. 국민이 행복할 수 있는 요소는 나라의 전통과 문화, 국민성 등 수많은 요소며 이로인해 완성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얼마 전 유엔산하 자문기관인 지속발전가능해법 네트워크가 각국의 행복지수를 조사해 보니 핀란드가 5년 연속 세계 1위를 차지했다. 특히 눈길을 끈 대목은 복지국가로 일컬어지는 북유럽국가들이 대체로 상위그룹으로 포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 16위, 영국 17위, 프랑스는 20위로 조사됐고 한국은 146개국 중 59위였다.북유럽국가의 행복지수가 높은 비결에 대해 전문가들은 높은 사회적 신뢰를 먼저 손꼽았다. 정직한 국민성과 낯선 사람에 대한 믿음과 배려, 국가와 국민과의 상호신뢰가 복지사회와 연결되고 있다는 것이다.대립과 갈등, 반목이 반복되는 우리나라가 배울 점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2-04-28

폐기물의 재활용

윤영대수필가 봄은 이사 철이다. 대단지 아파트에는 하루에도 몇 건씩 대형 크레인이 설치되고 이삿짐센터 트럭이 와서 이삿짐을 싣고 내린다. 이사 후, 쓰레기장에는 값비싼 장롱부터 탁자, 침대와 가전제품들이 수북이 쌓여있다. 언뜻 보면 모두 쓸만한 것들인데 다 폐기되는 것이다. 그것도 그냥 버리고 가는 것이 아니라 돈을 주고 산 폐기물 딱지를 붙여둔다. 버릴 때 돈도 들지만 중요한 것은 분리배출이다. 나무 금속 등은 재가공 처리되어 중고품이 되고 종이와 비닐류는 재활용될 수 있다.국내 폐기물발생량은 연간 약 1억9천5백만 톤, 그중에서 사업장 폐기물이 약 2천만 톤이고 건설폐기물은 약 1천만 톤이다. 이들 대부분은 소각하거나 매립하겠지만 이제 소각시설도 지역 주민들의 반대가 심하고 대도시 인근 매립장은 소각 후 남은 재만 선별하여 묻어야 한다. 따라서 폐기물 재활용방안이 여러 분야에서 연구 시행되고 있는데, 예를 들면 시멘트산업 분야에서 생산원료인 석회석을 제외한 부원료와 연료에 폐기물 680만 톤을 재활용하는 등 순환율은 23%를 이루었다지만 독일 68%, 유럽연합(EU) 46%에 비하면 아직도 적은 수치다.‘폐기물관리법’이 1986년에 제정되어 사회의 변화에 따라 개정되어 오면서 폐기물 발생을 억제하고 친환경적으로 처리하여 환경보전과 국민 생활의 질적 향상을 꾀하고 있는데 국민의 생활의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생활 쓰레기 중 가장 골칫거리가 플라스틱과 비닐류 물품들이다. 플라스틱은 석유 추출 고분자 화합물인 합성수지이며 염산과 황산에도 녹지 않고 5백 년간 썩지도 않는다니 재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좋겠다. 매년 세계적으로 수천만 톤이 생산되는 폴리에틸렌은 투명도와 단열성으로 현재 가장 널리 사용되는 플라스틱이며 아무렇게나 버린 조각들이 바다를 떠돌며 전 세계 거북이들의 반 이상이 삼키고 있다는 소식에 안타깝다.우리의 실생활에서 무심히 버리고 있는 쓰레기 중 조금만 신경을 쓰면 재활용될 수 있는 것이 페트(PET)병과 종이컵이다. 페트병은 생수병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며 페트병 환급제도를 위한 조사보고서에는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수거율이 85%이지만 재활용률은 10% 이하라고 하니 버릴 때 다른 플라스틱 폐기물과 혼합되지 않도록 하고 이물질도 씻어내고 부착물도 떼어내어 재활용이 쉽도록 해야 한다.1회용 컵도 마찬가지이다. ‘컵 보증금제’라는 제도를 마련하여 커피 열풍으로 엄청나게 소비하는 종이컵도 함부로 버리지 말고 회수하여 재활용할 수 있도록 실시할 예정이다. 연평균 230억 개가 사용된다고 추정되는데 그 회수율은 1.5%에 불과한 것은 재활용 방법의 홍보가 미흡한 탓일까? 종이컵은 안쪽이 비닐 코팅이 되어 있어 종이가 아니다. 플라스틱 뚜껑과 분리하고 모아서 버리면 휴지의 원료로 재탄생하는 자원이 될 수 있으며 소각할 때보다 온실가스를 66%로 감소시킨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2022-04-28

법치를 파괴하는 정치모리배들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온갖 수단과 방법으로 자신의 이익만을 꾀하는 사람이나 무리’를 모리배(謀利輩)라 한다. 지금 대한민국 정치판에는 이런 모리배들이 득실거린다. 이들은 자신의 안위와 이득을 위해서는 민주주의의 기본 틀인 법치(法治)를 파괴하는 행위도 서슴지 않는다. 문재인 정권 5년 동안 삼권분립은 무너지고, 입법·사법·행정부가 좌경이념의 진영논리로 한 덩어리가 되어 법치와 국가 체제를 심각하게 훼손했다.소위 ‘검수완박’을 놓고 온 나라가 뒤끓고 있다. 며칠 전 국회의장의 중재안을 여·야 원내대표가 받아들여 합의를 하더니, 대다수 국민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야당이 합의를 번복하는 촌극을 빚기도 했다. 검찰의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위헌의 소지가 있는 국기문란에 해당한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그것이 과연 문재인 정권이 추구하는 정의로운 검찰개혁이라면 당연히 정권 초기부터 공론화하고 입법절차를 밟아야 했다. 검찰이 지난 정권을 적폐로 몰아 수천 명을 수사하고 수백 명을 기소할 때는 박수를 쳐놓고 이제 저들의 적폐가 도마에 오르자 서둘러서 검찰의 수사권을 박탈하겠다는 것은 파렴치하고 후안무치한 법치파괴가 아닐 수 없다.좌파정권에 국회 다수의석을 몰아준 것은 망나니에게 칼자루를 쥐어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의 기본 취지인 토의나 협상 따위는 안중에도 없고 망나니의 칼춤을 방불케 하는 전횡으로 법치를 누더기로 만들어 버렸다. 걸핏하면 수적 우세를 내세워 저들의 입맛에 맞게 법조문을 뜯어고치거나 위헌의 소지가 있는 법안을 밀어부치는 만행을 저질렀다. 흔히들 민주주의는 다수결에 의한 제도라고 하지만, 히틀러의 나치가 그랬듯이 다수에 의한 결정이라고 해서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국회의 다수의석으로 밀어부친 입법권의 횡포가 어떻게 민주주의와 법치를 훼손할 수 있는가를 역력히 보여주는 현실이다.영국에서 비롯된 법치주의는 절대군주의 권력을 견제하여 군주의 자의적인 통치를 막고,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에서 제정된 법률에 의해서만 통치하게 하려는 데 그 의의가 있었다. 그러나 통치를 법에 의한다는 것만으로는 권력자의 자의를 통제하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데 충분하지가 않다. 지금처럼 여당이 국회의 다수의석을 차지하고 정권이 사법부를 장악한 경우엔 법치가 오히려 권력의 전횡을 합법화하는 도구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실질적 법치주의’라는 개념이다. 국가권력을 단순히 형식적인 법치가 아닌 헌법의 실질적인 가치에 귀속시키는 원리다. 즉, 모든 국가권력은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보호할 의무를 지게 되고, 모든 법률은 이 헌법의 최고 가치를 실현할 때에만 법률로서의 효력을 가질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아무튼 검찰의 수사권을 박탈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헌정질서를 훼손한 폭거로 역사에 남을 일이다. 자의로 법을 고쳐 형법체계의 근간을 파괴하는 짓을 공청회나 여론수렴은 물론 국회토론 등의 충분한 과정과 절차를 거치지 않고 날치기로 의결한다면, 그 불의한 행위에 대한 법적 책임도 반드시 물어야 할 것이다.

2022-04-28

‘단체장 컷오프’를 왜 무등록회사에 맡겼나

국민의힘 경북도당이 최근 공천 관련 여론조사를 하면서 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에 등록하지 않은 업체에 의뢰한 것으로 알려져 정당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사고 있다. 선관위에 따르면 이번에 3선에 도전하는 경북도내 시장·군수의 교체지수를 조사한 서울의 모 업체는 공표용 선거여론조사는 할 수 없는 무등록 회사인 것으로 전해졌다.현재 공표용 선거여론조사는 선거관리위원회 등록신청 후 실사를 거쳐, 최종 승인을 받은 업체만 하도록 규정돼 있다. 승인조건은 연매출 5천만원 이상, 영업기간 1년 이상, 상주직원 3명 이상(사회조사분석 2급이상 소지자) 등으로 상당히 까다롭다. 여론조사심의위에 등록되지 않은 업체도 여론조사는 할 수 있지만, 결과를 공개하지는 못한다. 시장·군수 단체장 예비후보들의 운명을 가를 여론조사를 자격이 의심되는 무등록업체에 맡긴 배경이 궁금하다.교체대상으로 지목된 현역단체장들은 “여론조사심의위에 등록된 여론조사기관이 무려 90여 개에 달하는데도 굳이 신뢰할 수 없는 기관을 선택한 이유가 수상하다”며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상태다. 이강덕 포항시장 예비후보 등은 여론조사 가처분 신청과 함께 김정재 경북도당 공관위원장 등을 사법당국에 고발한다는 방침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공천이 곧 당선’으로 여겨지는 경북지역 국민의힘 후보 경선과정에서 결정적 변수가 될 여론조사가 아무런 법적 기준 없이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국민의힘은 지방선거에서 여론조사로 경선을 대체하기 때문에 여론조사가 선거에 미치는 영향은 절대적이다.중앙선관위는 선거여론조사의 공정성을 기하고 여론조작을 방지하기 위해 선거법 제108조에 여론조사결과 발표 및 보도에 제한을 두고, 선거법 제8조8에 의거 여론조사의 객관성과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 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를 설치해 두고 있다. 이러한 법적 장치에도 불구하고 현역 단체장들을 공천에서 배제하는 중요한 여론조사를 무등록업체에 맡겨도 결과공개만 하지 않으면 법적으로 문제 되지 않는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2022-04-27

카플레이션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카플레이션(Carflation·자동차와 인플레이션을 합친 용어)이 심화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자동차 제조에 필요한 각종 원자재 가격이 폭등하고 있기 때문이다.우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중국 코로나 봉쇄 등 국제 정세 악화가 주요 요인이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도 카플레이션 영향을 미치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완성차업계에 따르면 차량 가격은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을 거치며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현대자동차의 지난해 승용 모델 평균 가격은 4천759만원으로 전년 대비 13.8% 올랐다. 기아의 지난해 레저용차량(RV) 가격도 4천130만원으로 전년 대비 13.9% 상승했다. 국내 차량의 대당 평균가격도 4천416만원으로 처음으로 4천만원선을 돌파했다.카플레이션은 올해 하반기까지 지속될 전망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중국의 코로나 봉쇄 등으로 각종 원자재 가격이 폭등하고 있기 때문이다.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바로 차량용 강판가격 인상이다. 철강과 완성차업계는 최근 강판 가격을 톤(t)당 15만원 가량 인상하기로 잠정합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철강 가격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로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실제 철광석 가격은 지난 23일 기준 t당 150.5달러(약 19만원)로 연초에 비해 22.5% 올랐다. 이외에도 전기자동차의 핵심으로 꼽히는 배터리 생산 원자재인 니켈·코발트를 비롯해 자동차 경량화 필수 소재인 알루미늄 등 원자재 가격이 오르고 있다.완성차업계는 개별소비세 인하 폭 확대 등 정부 차원의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사치품이 아닌 자동차의 개별소비세 폐지에 점차 힘이 실린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2-04-27

내려가는 길에 미끄러지지 않도록

장규열한동대 교수 긴 터널이었다. 마스크와 함께 두 해를 훌쩍 넘겼다. 스산한 거리를 만나 소상공인들은 얼마나 힘들었는지. 학생이 사라진 강의실은 쓸쓸하였다. 손님이 없는 극장은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학교 운동장이 공터가 되었고 도시의 빌딩 숲까지 한산하였다. 일일 감염자 숫자에 때로 예민했지만, 기승을 부리는 코로나19에 온 세상이 잠식당했다.이제는 끝이 보이는지 급격하게 숫자가 내려간다. 급격한 하락세에 코로나19는 감염병 등급마저 2급으로 강등되었다. 확연한 내림세를 의학계는 ‘안정적 감소세’라 부르고 팬데믹(Pandemic)이 엔데믹(Endemic)으로 바뀌어간다고 표현한다. 무서운 전염병이 아니라, 늘 존재하는 풍토병 정도로 보겠다 한다. 사회적 거리두기도 막을 내렸고 학교들이 전면 대면수업에 돌입하였다.기세가 꺾인 건 분명하지만, 끝나지는 않았다. 대한의사협회가 ‘코로나 종식이 아니며 마스크 착용의무조치를 해제하기에는 시기상조’라고 경고한다. 돌이켜 보면, 코로나가 시작되던 첫 해의 봄을 넘기며 한 차례 긴장이 느슨해 지기도 하였다. 스러진듯 하지만 사라지지 않았다. 아직도 하루에 몇만씩 신규감염이 발생한다.등산을 즐긴다면, 사고는 올라갈 때 보다 늘 내려오는 길에 만난다. 사회통계에 따르면, 교통사고도 하루 중 귀가 길에 더 많이 발생한다는 게 아닌가. 비행기는 이륙보다 착륙이 어렵다고 한다. 만날 때 보다 헤어질 때 좋게 마무리하는 게 어디 쉬운가. 제러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가 ‘총,균,쇠’에서 ‘질병이 인류의 문명에 변화를 초래할 것’이라는 경고는 여전히 유효하다.빌게이츠(Bill Gates)가 수년 전부터 팬데믹의 도래를 예견했을 뿐 아니라, 코로나19 이후에도 유사한 바이러스의 습격이 인류를 덮칠 것을 경고한다. 생활 속에서 적정거리를 유지해야 하고 배려있는 소통과 교류에 익숙해야 한다.포스트코로나의 뉴노멀(New normal)을 다시 정리해 보아야 하며 새로운 환경과 질서를 만들어가야 한다. 디지털과 온라인 소통을 다시 들여다 보아야 하고, 소비문화와 레저환경도 바뀌어 가야 한다. 급격하게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갈 듯한 환상은 버려야 하고, 차분하게 새로운 질서를 생각해야 한다. 경제를 다시 일으켜야 하지만, 급하게 모든 문을 열 수 있을지는 생각해 보아야 한다. 빠져나가는 터널의 끄트머리에 또 어떤 복병이 기다리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할 게 분명하다면 새롭게 만날 세상을 사려깊게 준비해야 한다. 방역과 의료체계, 소통과 협력의 양태, 국가와 시민사회의 역할, 사람 간 관계형성과 유지방식, 과학문명과 세계질서의 변화 등 헤아려야 할 과제가 차고 넘친다.이럴수록 차분히 신중하게 정비하여 내일을 준비해야 한다. 반갑지만 찬찬히 헤아려야 한다. 흥분하여 옛 모습으로 달려가기 보다 차분하게 포스트코로나를 맞아야 한다. 어려웠던 시간을 함께 견뎌준 모두에게 고마운 마음이다. 마지막 언덕을 아름답게 넘었으면 한다.

2022-04-27

국비사업 결정 난 가덕도…갈길 먼 통합신공항

지난 26일 부산 가덕도신공항 건설추진 계획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 추진계획에 따르면 가덕도신공항은 총사업비 13조7천억원이 투입되고 국내 최초의 해상공항으로 건설돼 2035년 개항된다.당초보다 사업비 규모나 개항시기 등이 크게 달라졌으나 국가정책사업 결정으로 가덕도신공항은 앞으로 기본계획 및 설계 등의 단계를 거치면서 사업의 윤곽이 더 구체화 될 전망이다.부산은 가덕도신공항 국책사업 결정을 환영하며 이제는 2029년 조기개항에 힘을 모으고 있다. 2030년 개최되는 부산월드엑스포에 앞서 개항이 돼야 월드엑스포를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다는 의도다.20년 끌었던 동남권 신공항건설 논란이 가덕도신공항 국책사업으로 종지부를 찍은 것 같아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사업을 추진하는 지역의 입장에서는 뭔가 아쉬운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특히 임기가 보름도 남지 않은 현 정부가 예타면제까지 생각하며 서둘러 가덕도신공항 사업을 국가사업으로 결정한 것은 문재인 대통령의 고향인 부산에 대한 정치적 특혜를 베풀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국토부가 경제성 등 가덕도신공항의 문제에 대해 국토균형발전 차원에서 판단했다고 밝혔으나 가덕도신공항이 대구경북의 균형발전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의문이다.가덕도신공항 건설은 당초 부산월드엑스포 개최의 성공을 위해 필수조건으로 요구했으나 개항시기가 미뤄졌고 비용도 7조5천억원이나 더 늘어 정치공항이라는 비판을 받아도 변명하기 어려워졌다.이에 반해 대구경북 통합신공항은 국비없이 기부대 양여방식으로 추진된다. 군공항 이전과는 별개로 민간공항 이전이 추진되나 정부 여당은 특별법 제정이나 지원에 대한 그 어떤 구체적 답변이 없다. 부산 가덕도와 비교하면 특혜 차원을 넘어 지역에 대한 차별이라는 비난이 나올만한 일이다.지역 정치권의 역량도 문제이나 현 정부의 정책적 차별에 분노마저 느껴지는 대목이다. 통합신공항의 성공은 새 정부의 몫으로 넘어가지만 경제물류 공항으로 성공하지 못하면 지역의 앞날은 어두울 수 밖에 없다.

2022-04-27

내나무

정미영수필가 봄기운이 완연한 내연산 수목원을 걷는다.싱그러운 나뭇가지들이 연초록 바람을 일으키며 눈인사를 건넨다. 나뭇잎 속에 담겨 있는 바람의 지문을 열심히 정독하는데, 묘목을 심느라 애썼던 어릴 적 추억이 찰랑거리는 바람결에 실려 온다.초등학교 오 학년 때였다. 집 가까이 신축 학교가 들어섰기에 친구들과 그곳으로 등교했다. 전에 다녔던 학교까지는 강둑을 걸어 꼬박 한 시간이 걸렸다. 나는 늘 뭉쳐 있던 다리를 만지며, 앞으로 다리 고생은 줄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다리 대신에 손 고생이 시작되었다. 새로 지은 학교 운동장에는 돌이 많았다. 매주 월요일 조회 때나 체육 시간은 물론, 틈만 나면 돌을 주워 화단 한쪽에 돌무더기를 쌓았다.선생님들께서 돌 줍기를 시키신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학생들이 운동장에서 뛰다가 넘어졌을 때 돌이 있으면 다칠 가능성이 높았다. 또 돌과 시멘트를 섞어 건물 뒤편 구석진 곳에 낮은 울타리를 만들었다. 그곳에서 서너 마리의 토끼를 풀어놓고 키웠다.어느 날, 담임선생님은 우리 반만의 추억 만들기를 하자고 하셨다. 집에서 꽃씨나 묘목을 가지고 오라고 당부하셨다. 친구들 대부분은 구하기 쉬운 꽃씨를 가지고 왔다. 우리 집에는 마침 아버지가 마당에 심으려고 했던 동백 묘목이 있었다. 나는 신문지에 뿌리를 둘둘 말고는 비닐봉지에 넣어 조심스레 들고 갔다. 나무를 가지고 온 아이는 나밖에 없었다.친구들은 나무에 관심을 보였다. 심을 장소를 물색하고 학교 창고에서 삽이며 호미를 들고 와 구덩이를 팠다. 선생님의 지시대로 땅은 알맞은 깊이로 파였는지 삼십 센티미터 자로 재어보는 개구쟁이도 있었다. 나는 뿌리가 상하지 않게 손으로 흙을 덮고 발로 다지며 잘 자라기를 빌었다.추억 만들기는 선생님의 나직한 가르침이었다. 선생님은 평소에 우리가 주워 나른 돌멩이를 가지고, 일정한 간격으로 나무를 빙 둘러쌌다. 그러고는 이제 묘목은 장대비에도 끄떡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 동안 쓸모없다고 생각했던 돌들이 고마웠다. 짜증스럽던 돌 줍기가 보람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선생님은 나에게 이름표를 만들라고 하셨다. 나는 나무 이름과 소망하는 것을 빼곡히 적었다. 내가 만든 이름표를 보고 선생님은 빙그레 웃으셨다.동백나무가 ‘내나무’라고 말씀하시며, 내나무에 얽힌 이야기를 해주셨다.우리 조상들은 예부터 아이가 태어나면 나무를 심는 풍속이 있었다. 아이를 족보에 올리면서 집 주위나 논두렁에 몇 그루의 나무를 심었다. 딸 앞으로는 오동나무를 심고, 아들을 위해서는 소나무와 잣나무를 심었다. 딸이 커서 시집갈 날을 받으면 그 나무로 장롱을 만들어 주었다. 아들의 경우는 관을 짜는 데 사용되었다.‘내나무, 내나무’ 입 안에서 굴려보았다. 부를 때마다 동백나무는 소중한 의미로 마음에 담겼다. 날마다 키 재기를 했다. 자주 들여다보며 물을 주고 말을 걸었다. 걱정이 있거나 비밀이 있을 때 친구들 몰래 찾아가 내 속마음을 내비치기도 했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지끈거렸던 머릿속이 한결 나아졌다.나만의 작은 나무가 있어 생활이 즐거웠다.학교는 점점 신나는 곳이 되었다. 나는 누구보다 일찍 학교에 갔다. 무릎을 굽히고 내 키를 낮춰 악수하듯 이슬 맺힌 동백나무를 살며시 잡으며 속삭였다. 꽃망울을 맺어주어 고맙다고.시간이 흘러 꽃송이가 붉게 터졌다. 꽃봉오리에 코를 박고 한참을 머물러 있으면 가슴이 찌르르 떨렸다. 지금 생각해도 그 때의 감동이 전해지는 것만 같아 기분이 벅차다. 투덜이 여학생이 긍정적인 소녀로 바뀐 것은 모두 내나무 덕분이었다.나무 계단을 올라 수목원 전망대에 오른다. 드넓게 펼쳐진 숲이 바다가 되어 일렁인다. 초록 물결이 출렁대자, 어릴 적 교정에 심었던 내나무가 떠밀려와 품에 안긴다. 동백나무와의 추억들이 열심히 여물어 간다.

2022-04-27

ESG경영과 해조류

햇수로 9년 전 일이다. 출산예정일이 6일 지난 날, 터질 듯한 배를 안고 황급히 병원을 찾았다. 진통 없이 양수가 터진 상황으로 의사는 보호자를 대동한 입원을 권했다. 가족을 불러야 했지만 공공제대혈 은행에 먼저 연락을 취했다. 출산 전 연락이 닿아야 의약품 전담 특수차량이 제때 도착할 수 있다는 전언 때문. 물론 아이와 함께 하는 ‘생애 첫 기부’를 성공하고 싶은 마음도 컸다.다행히 아이는 건강하게 태어났고 제대혈 채취도 문제없이 진행됐다. 한 달 뒤 은행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제대혈 성분 결과 연구와 기증이 가능하다는 것. 곧 의미 있게 사용될 것이라고 했다. 순간 조혈모세포 이식을 기다리는 골수병 아이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뭉클한 순간, 새근거리며 자는 아이를 바라보자 벅찬 마음에 눈물이 쏟아졌다. 우리가 한 작은 기부가 또 다른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사실, 온 우주가 감동받는 기분이었다.그 이후 찾아온 엄마라는 극한 직업은 내 삶을 통째로 바꿔놓았다. 물론 거창한 것은 아니다. 플라스틱 장난감을 사주고 종이 기저귀를 사용하면서 스치는 생각. 이렇게 쓰다보면 내 아이와 그 아이의 아이는 어떤 환경을 마주하게 될까. 출산 전에는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고민이었다. 그 후 소비와 구매에 ESG 평가 지표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작지만 소중한 우리 가족만의 환경사랑 실천방식이 됐다.잘 알다시피 ESG경영은 환경(Environment)과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 등 기업의 비재무적인 요소를 기업경영에 반영하는 것을 의미한다. 흔히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가늠하는 잣대로 쓰인다. 미세먼지로 아픈 횟수가 늘고, 바닷가 산책에서 쓰레기더미를 만날수록 기후변화와 탄소배출, 생태계와 생물다양성 등에 관심을 갖게 됐다. 종이 빨대를 사용하는 기업의 커피를 마시고, 지속가능성을 인증 받은 수산물을 구매했다. 특히 세계자연기금(WWF)과 네덜란드 지속가능한 무역(IDH)이 공동 설립한 국제 인증인 MSC에코라벨을 알고 난 후 제품 선택의 기준이 더 까다로워졌다. MSC(해양관리협의회)에코라벨은 생산과정에서 해양환경 훼손을 최소화했다는 인증으로 수산업 분야의 친환경인증마크다.최근에는 탄소배출을 줄이는 아이디어를 가진 스타트업 기업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해조류를 이용한 친환경기업이다. 해조류의 효용가치는 그동안 꾸준히 발표되어 왔다. 먼저 해조류는 화석연료를 대체할 바이오에너지로 손꼽힌다. 현재도 많은 기업들이 기술개발 및 양산에 나서고 있다. 최근엔 이산화탄소 흡수율이 높아 탄소중립을 실현시킬 대체재로 떠오르기도 했다. 식품으로 소비하기 위해 양식하는 해조류 양이 늘어날수록 지구를 살린다는 개념이다.여기에 더해 신소재로도 개발되고 있다. 미국 스타트업 롤리웨어(LOLIWARE)는 해조류로 식기를 개발해 폐기물 문제의 새로운 대안을 제시했다. 한국의 스타트업 기업도 미역귀와 우뭇가사리 등으로 친환경 종이컵과 달걀 담는 용기를 개발해 국제대회에서 수상하기도 했다.해양수산부가 주최하는 창업 콘테스트에서는 해조류를 이용한 기술 발굴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대회에서는 유망 창업 아이디어로 ‘해조류를 이용한 화장품’과 ‘해조류 사료’가 대상을 수상했다. 해조류 사료의 경우 소의 헛배 부름을 막아 트름과 방귀에서 나오는 메탄가스를 획기적으로 줄인다고 한다. 실제 메탄가스는 지구온난화에 미치는 영향력이 이산화탄소보다 84배나 높다. 탄소중립의 대안으로 해조류가 떠오르는 이유다. 해조류가 지구를 살리고 가축의 건강까지 챙기는 역할을 하는 셈이다. 정현미작가 해조류의 영양학적 가치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식이섬유와 단백질, 비타민, 미네랄 등이 풍부해 대표적인 건강식으로 꼽힌다. 사실 미역국에 톳나물 반찬으로 식사를 하고, 간식으로 다시마 부각을 먹는 민족은 한국 등 동아시아에 집중된 편이다. 미국과 유럽에서 해조류가 각광받으면서 한국의 식문화가 자세히 소개되기도 했다. 요즘엔 미국의 아이들도 스낵으로 조미김을 먹는다고 한다.오는 5월 10일은 바다 식목일이다. 바다 속에 해조류를 심어 바다 숲을 살리는 등 바다 생태계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제정된 날이다. 바다사막화를 의미하는 갯녹음 현상이 급속히 퍼지자 이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바다 숲을 되살리자는 의미라고 한다. 해조류의 효용성이 주목받는 동시에 한 쪽에서는 파괴되어 가는 해조류 숲을 살리는 운동이 벌어지는 아이러니다. 해조류는 바다 숲을 이루는 근간이자 바다 생태계를 지탱하는 힘이다. 해조류가 기후변화를 감지하는 바로미터 역할을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기후변화는 내 아이의 먼 미래가 아닌, 지금 당장 내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금 당장의 실천이 필요하다.

2022-04-27

거짓으로 피는 꽃

오낙률시인·국악인 살면서 그리움 하나쯤 가슴에 묻고 살지 않은 이가 있을까?봄을 맞아 산이나 들판 혹은 공원 등에서 이름조차도 너무나 아름다운 수많은 생명이 다투어 인연의 실타래를 풀어 헤치고 있다. 팬데믹으로 고통받던 우리네 인간도 거리두기 제한이 풀렸으니 저 대자연의 대열에 끼어 아름답게 피어날 그리움의 씨앗들을 사방에 뿌리며 실로 몇 년 만에 봄 다운 봄을 즐기게 될 것이다. 직장인, 소상공인, 예술인 등 많은 국민의 가슴 가슴에 지금쯤은 작고도 큰 희망의 꽃송이가 봄꽃 터지듯 번지지지 않을까 싶다. 바야흐로 움츠려져 좀처럼 피어나지 못하던 인간의 꽃 무리가 다발로 모여 피는 야생화 군락처럼 여기저기서 수도 없이 피어날 것이다.꽃이 가짜로 필 수 있다면 꽃의 존재가 우리 인간에게 어떻게 느껴졌을까? 만약에 눈속임으로 예쁘게 피는 꽃이 있다면 그건 아름답기에 앞서 신기한 것이거나 대단한 능력을 지닌 꽃임은 분명하지만 적어도 그 꽃을 두고 아름답다거나 예쁘다는 찬사는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아름답다는 말 대신에 현혹이라거나 유혹이라는 말이 그 꽃에 매겨지는 기본 이미지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면서 가끔은 그 꽃이 두렵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을 것이다.인간의 웃음을 꽃의 반열에 올려놓고 보면, 앞에서 말한 ‘거짓으로 피는 꽃’을 인간의 꽃밭에서 종종 만날 수 있다는 현실에 마음이 좀 그렇다. 지천으로 피어나는 4월의 꽃밭에서 가슴 한쪽에 작고도 시린 그늘을 느끼게 되는 이유가 봄이면 딜레마처럼 생각나는, 인간의 원죄 같은, 거짓으로 피는 사람의 꽃 때문이라 생각하면 마음이 좀 아리다. 특히 선거를 앞둔 이맘때면 그렇게 거짓으로 피는 꽃이 무리 지어서 피는 것 같아 씁쓸하다.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시신에서 떠나는 영혼은 그냥 떠나는 게 아니라 탈출하는 것이다. 그렇듯 사람에게 주었던 사람의 마음이 떠난다는 것 또한 참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사람에게서 사람의 마음이 떠난다는 것처럼 슬프고 어쩔 수 없는 일이 우리네 인간사 중에 과연 몇이나 될까?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운명처럼 몇 번은 만나야 하는 꽃이 가짜로 피는 인간의 꽃이라면 그것이 어쩌면 우리 인간이 이렇게 찬란한 봄에 저렇게 온 대지를 뒤덮으며 거짓 없이 피어나는 식물들의 꽃을 보며 치유와 위안을 더 크게 얻게 되는 까닭인지도 모를 일이다.꽃이란 그리움 그 자체이다. 꽃은 세상 아름다운 것의 대표이며 핵심이다. 그리고 그립다는 것은 아름답다는 표현의 역설이다. 나를 낳아준 부모님과 조상님이 그립고, 가고 없는 배우자가 그립고 나를 즐겁게 해주던 어느 날의 이성이나 정답게 지내던 형제며 친구가 그리운 것은 모두 과거 그들과 맺어 놓은 인연이 꽃처럼 아름답기 때문이다. 해서 우리 인간은 그리운 꽃만 피울 일이다. 훗날에 누군가가 나를 사무치게 그리워할 그런 꽃만 피울 일이다, 그래서 인간의 얼굴에서 피는 꽃이, 오늘 같은 봄날에도 한치 부끄럼 없이 대자연에 녹아들어 대자연의 꽃처럼 아름다워야 할 일이다.

2022-04-27

꿈이란 무엇인가?

최병구경상국립대 교수 요즘 많은 대학에서 학부생 진로 상담은 교수의 의무이다. 우리 대학도 매 학기 학생들과 꿈과 미래를 주제로 상담을 해야 한다. 내가 대학에 다닐 때 학과 교수와 진로 상담은 당연히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진로란 자신의 관심사에 맞춰 각자 설계하고 노력하는 과정 정도로 생각했었다. 이런 분위기 때문인지, 학부생 진로 상담 제도가 시행되고도 꽤 오랫동안 형식적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시대가 바뀌면 제도와 사람들의 인식도 변한다. 이제 대학은 학생의 입학부터 졸업 후 진로까지 시스템으로 관리하는 공간이 되었다. 대학이 ‘소비자 만족도 조사 1위’라는 타이틀을 자랑스러워하는 시대이며, 수업에서 ‘가성비’를 따지는 학생들의 모습을 찾기란 어렵지 않다. 대학이 취업사관학교가 되었다는 자조가 들려 온 지도 어림잡아 10년이니, 이제 학부생 진로 상담은 꽤나 신경이 쓰이는 일이 되었다. 당연히 문제가 없을 수 없지만, 우리 학과 학생들의 고민을 알게 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면도 분명히 존재한다.보통 처음 만나는 학생들에게는 꿈이 무엇인지 혹은 어떤 이유로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했는지를 묻는다. 그럼 여지없이 돌아오는 대답은 교사, 작가, 공무원 등과 같은 특정 직업이다. 그럼 다시 물어본다. 가령 왜 선생님이 되려고 하니? 라고 묻는 것이다. 두 번째 질문에는 많은 학생이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한다. 안정적인 직업이라서 되고 싶다는 경우가 다수이고 일부 학생이 학창시절 기억에 남는 선생님을 추억하며 그런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한다.사실 꿈을 질문하며 내가 기대한 답변은 ‘가치’였다. 좀 더 정확히는 어떤 가치를 평생 진력을 다해 실현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그 가치를 구체화시키기 위한 현실적 수단이 바로 직업이다. 직업 안정성만 보고 교사가 된 사람보다 윤리라는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이 더 좋은 선생님이 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고난이 찾아왔을 때 이를 극복할 가능성이 크다고는 말할 수 있다. 왜 그럴까? 안정성이 가장 중요한 가치인 사람은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그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지만, 윤리적 올바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불안정성을 즐길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지난주 신입생들의 학창시절 고민이 담겨 있는 작문에서 성적으로 학생을 차별하는 행동과 같은 비상식적 모습을 가진 선생님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여전히 고등학교에서는 우·열반이 존재한다고 한다. 그분들도 한때는 좋은 선생님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가치를 잊어버리는 순간 인간은 순식간에 괴물이 되고 만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조급함을 버리는 일이 필요하다. 당장 어떤 직업으로 진로를 결정하기보다는 어떤 가치를 추구할 것인지를 천천히 고민하자.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많은 경험을 쌓는 과정에서 올바른 가치 추구라는 문제를 풀어낼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 과정은 평생 반복되어야 한다는 점이다.꿈은 내가 생각하는 올바른 가치를 쫓는 과정에서 느끼는 설렘이다. 이번 주말에는 내 꿈에 대해 오랜만에 다시 생각해 보아야 겠다.

2022-04-27

야만의 도시, 포항

허명환 한국재정투자평가원장 사람은 기본적으로 식물이 아닌 동물에 속한다. 동물의 속성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는 곳이 아프리카 세렝게티 초원이다. 누, 가젤, 얼룩말, 치타, 사자, 하이에나 등이 평화롭게 사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처절하고 치열하다. 죽으려 하지 않는 상대를 잡아먹어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공통적인 속성은 죽음 회피 그리고 먹기와 번식이다. 만물의 영장이라 하는 인간 역시 동물이기에 그 속성을 벗어날 수 없다. 하지만 인간이 짐승과 다른 점은 옳고 그름을 안다는 것이다. 옳은 일을 하면 명예롭고 그릇된 일을 하면 부끄러움을 느끼기 때문에 인간이 짐승과는 다르게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다.인간은 공동체 생활을 한다.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동물적 속성이 견제되지 않는다면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되어버릴 것이다. 각자가 동물적 속성을 충족하면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방법을 인류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찾아내었다. 법이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는 사실이다. 동물적 속성을 충족하면서도 공동체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법이 고안된 것이다. 이때 법이란 법률만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도덕과 관습도 포함한다. 즉 인간은 누구나 정해진 법에 따라 행동할 때 진정 자유로워지고, 우리는 그것을 바로 법치라 하는 것이다.그 법을 어겨도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고, 그 법을 내가 권세를 지녔다고 내 마음대로 정하고 강요하는 것을 독재라 한다. 그런 경우 법과 정의란 강자의 이익일 뿐 약자들이 믿고 의지할 수단이 되지 못한다. 껍데기만 민주주의 운운하지 세렝게티 초원의 야만생활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그런 나라는 스페인처럼 한 때 융성했더라도 결국은 쇠락한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포항에서 정치를 하면 남녀노소 불문하고 다양하게 시민들과 접촉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포항시민들이 어떻게 세월을 살아가는지 윤곽을 그릴 수 있다. 포항시민 역시 동물적 속성을 유지한다. 죽음을 회피하니 자동차도 조심해서 몰고, 코로나 방역조치에 협조를 한다. 먹고 살기 위해 죽도시장이든 비학산이든 연일들이든 직장에서든 열심히 일을 한다. 그러면서 결혼도 하고 가정을 꾸리며 후손을 키워가고 있는 것이다.대부분 포항시민의 소득원은 크게 두 가지로 포스코와 포항시청이다. 포스코는 정권이 바뀌면 새로운 권력이 기존의 밥그릇 체계를 바꾸지 않을까 신경을 곤두세운다. 포항시장 선거 역시 마찬가지다. 선거 때만 되면 어느 줄에 설지 잘 판단해야 나중에 먹고 사는데 편해진다. 수많은 관변단체, 협회, 인쇄, 광고, 꽃집, 식당, 납품, 건설 등등 사업자들이 안테나를 높이고 줄을 댄다. 먹이가 우선이라 평상시 인간관계는 한 줌 가치도 없다. 우리 편이 아니면 아래 위도 없이 물어뜯어 댄다. 세렝게티 초원의 야만성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이다.인간의 동물적 속성상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것은 당연하다. 아담 스미스는 우리가 저녁식사를 기대하는 것은 푸줏간, 술집, 빵집 주인의 자비심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이해에 대한 욕심 때문이라 했다. 그러기에 법을 지키면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주의 나라라면 오히려 권할 일이다.3선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나 새 인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나 다 자기들 주장일 뿐이다. 각자의 주장을 목소리만 높인다면 포항은 세렝게티 초원이 될 것이다. 그렇기에 공천은 정치관행이 중요하다. 법과 원칙이 안정되어야 잠재적인 입후보자들의 예측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것이다. 시장 개인에 대한 지지도와 당에 대한 지지도 차이를 이용한 교체지수를 4년 전에 적용 않다가 이번에 적용하거나, 일부 시군에만 적용하면 관행에 맞지 않다. 정해진 규칙에 따라야지, 권세 쥐었다고 그 때 그 때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만 적용하면 법이란 강자의 이익에 불과하다. 힘 있는 곳에 붙어야 먹고 산다며 민초들을 야만의 세계로 인도하는 꼴이다.진정한 포항의 지도자들이란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할 줄 알고, 명예와 수치를 알며, 자신이 손해를 보더라도 옳음을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 공직은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라 일시 담임을 할 뿐이다. 선출직 권력이 천년만년 갈 듯 옳음보다 이익만 쫓고 그것에 빨대 꽂아 단물 빨아대는 기생세력이 기세등등 하는 한 포항은 세렝게티 초원이 된다. 항상 양지바른 곳만 찾는 해바라기가 득세하는 한 포항은 쇠락하는 야만의 도시가 될 뿐이다.

2022-04-26

그 많던 꿀벌은 어디로 갔을까

영화감독 M.나이트 샤말란은 초현실적인 요소를 바탕으로 현실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독특한 개성을 지닌 감독이다. 많은 이들에게 알려진 ‘식스 센스’에서부터, ‘싸인’, ‘언브레이커블’ 3부작, ‘데블’, ‘비지트’, 최근의 ‘올드’에 이르기까지, 감독은 하나의 이상 현상을 전제한 후 이로 인해 벌어지는 일상의 뒤틀림을 예민하게 포착한다. 이상 현상을 영화의 주된 장치로 활용한다는 점에서, 샤말란 감독의 영화가 포착하는 세계란 이해할 수 없고 저항할 수 없는 현실로 인해 느끼는 공포가 어떤 것인가를 극대화시킨 세계라 할 수 있다.그렇기에 샤말란 감독의 영화는 ‘코즈믹 호러’와 닮아있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인간이 감히 대적하거나 지각할 수 없는 거대한 미지’로 인해 촉발되는 공포다. 오로라나 거대한 협곡, 인간의 인지를 아득히 뛰어넘는 크기의 현상을 마주할 때 느끼는 경이로움과 숭고함과 같은 부류의 공포감이라 할 수 있다. 예컨대 영혼이나 악령 혹은 초능력자나 시간 가속과 같은 비일상적이며 불가해한 사건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반응할까. 샤말란 감독의 영화에 등장하는 초현실적인 장치란 그러한 질문을 던지기 위한 전제라 할 수 있다.그런 샤말란 감독의 영화들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해프닝’이다. 여기에서 등장하는 것은 인간의 이유 없는 ‘자살’이다. 어느 날 사람들은 아무런 이유 없이 스스로의 목숨을 끊기 시작한다. 문제는 이와 같은 현상이 특정한 개인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인류 전체에게 발생한다는 점이다. 산책을 하던 사람이, 책을 읽던 학생이, 일을 하던 인부가 갑작스레 스스로의 목숨을 끊는다. 그러나 인간은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지 이해하지 못한다.때문에 사람들은 그러한 현상을 해석하고자 여러 가지의 가설을 내놓기 시작하고, 독가스 테러일 것이라 가정한다. 때문에 영화에서 사람들은 이와 같은 가정에 초점을 맞춰 살아남기 위한 행로를 결정하지만, 그와 같은 가정과 가설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만다. 대도시를 중심으로 한 테러일 것이라는 예측에 그들은 한적한 교외로 향하지만, 그곳에서도 마찬가지의 사건이 벌어지며 사람들은 패닉에 빠져버리고 만다.이유를 알 수 없는, 그러나 계속해서 벌어지는 ‘해프닝’ 앞에서, 인간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진다. 이유를 알 수도, 그렇기에 저항할 수도 없는 불명확한 대상 앞에서 인간은 전능한 존재가 아니라 한없이 무력한 존재에 불과할 뿐이다.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영화가 으레 그렇듯, 이 영화 또한 우연의 우연이 중첩되며 가까스로 사태는 진정되지만 공포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상 현상이 사실은 자연이 인간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낸 방어 기제로 인해 만들어진 독소로 인한 것이었으며, 때문에 언제든 사태는 반복될 수 있다는 암시가 남기 때문이다.물론 이와 같은 가정은 비과학적이며 극단적인 사례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를 쉽사리 무시하고 지나칠 수 없는 것은 영화의 초반부에 제시되는 하나의 설정 때문이다. 그것은 꿀벌의 실종이다. 갑작스럽게 시체도 없이 사라져버리는 꿀벌들은 왜, 그리고 어떻게 사라지는 것인가. 이것은 단지 영화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지금 경험하고 있는 현실이기에 더욱 섬뜩할 수밖에 없다. 현실에서도 꿀벌의 실종에 대해 여러 가설을 내놓고 있지만, 그 이유를 완전하게 해명하지는 못하고 있다.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이와 같은 현실을 과연 ‘해프닝’으로 치부할 수 있을까? 영화에서 꿀벌의 실종이 인간의 집단 자살 현상이라는 파국적인 결말의 전조로 설정되어 있었던 것을 떠올려보자면, 현실의 이와 같은 사건 또한 더 큰 비극과 파국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리는 전조일지도 모른다. 지구 온난화를 비롯한 환경오염으로 인해 초래될 비극의 전조 말이다.우리가 지구 온난화와 환경오염의 문제를 더 이상 쉽사리 여겨서는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인간은 자연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으며 이를 통제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인간은 눈앞에 벌어지는 자연 현상에 대해 전지전능하지 않다. 이해할 수 없는 사례들을 단지 ‘해프닝’으로 치부함으로써, 우리가 자연을 충분히 이해하고 통제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러나 이것은 견고한 환상에 불과하다. 우리의 무지와 환상의 대가는 언제 어떤 형태로 우리에게 닥쳐올지 모른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샤말란 감독의 영화 속에 들어와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을 알지 못하는 것은 우리 자신뿐인 채로.

2022-04-26

사랑하는 일

설레는 순간을 경험해본 적 있을 것이다. 커피를 몇 잔이나 들이켠 것처럼 심장이 자꾸만 뛰고. 늦은 밤 침대에 누워도 잠은 쉽게 오지 않고. 양 발이 허공에 붕 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따금 우리는 이러한 상태를 사랑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그러다보면 흔히 사랑의 반대편에 있는 말로 외로움과 고독을 떠올리기도 한다. 외로움과 고독은 모든 것을 무자비하게 집어 삼키는 괴물처럼 성큼성큼 다가온다.그것은 인식할수록 선명해지는 것이라서 무엇보다 인간이 혼자 있을 때 더욱 거세게 문을 두드린다. 우리는 이 괴물이 두려워서 타인을 찾아가기도 한다.누군가가 곁에 있어주면 외로움과 고독은 완전히 소멸된 것처럼 느껴지고 일종의 안심 상태에 빠지기 때문이다. 괴물은 언제고 다시 찾아올 수 있으므로 불안한 마음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자신을 구원해줄 미지의 상대를 간절히 기다리기도 한다.불안과 고독을 다스리는 것이야말로 사랑을 찾기 위한 첫 번째 걸음이 아닐까.혼자서 무시무시한 괴물을 물리치는 법을 익혀야 하는 것이다. 처음부터 그 일을 완벽하게 해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분명 몇 번이고 무너질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스스로를 먼저 보살피는 것이며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다.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쓸모없게 느껴지고 아름답지 않은 부분까지도 감싸 안을 수 있는 너른 포용력이 필요하다. 불완전한 존재인 자신을 이해하고 그 마음을 신뢰하게 되었을 때,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어렴풋하게 느끼게 된다. 자신을 사랑하는 일은 결국 타인을 사랑하는 일까지 나아가게 된다.불가해한 타인을 사랑한다는 건 문자 그대로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까다로운 일을 번번이 해내는 이상한 존재들이다.사랑에 빠진 사람은 아름답다는 말이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아름다움은 겉으로 보기에만 예쁘고 반짝이는 모습이 아니다. 무언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오히려 괴로운 일에 가깝다. 대상을 사랑하는 일은 영원할 수 없다. 언젠가는 상실될 수밖에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언제나 이별은 힘겹다. 사랑했기 때문에 더욱 괴롭다. 이럴 거였으면 차라리 사랑하지 않았으면 더 좋았겠다고 외치고 싶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랑을 한다. 설레고 기쁘고 즐거운 것을 넘어서서 아픔과 고통까지도 감내한다. 그러니 사랑은 슬픔까지도 기어이 껴안고야 마는 행위이며 이는 무엇과도 비견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사랑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세계를 만나고자 하는 노력의 영역이다. 인간은 평생 오직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어떤 것이 좋거나 싫다고 결정하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밖에 할 수 없는 일이다. 사랑은 타인의 눈으로 세상을 보게 한다. 혼자였다면 결코 맛보지 않았을 음식의 맛을 느끼게 되고, 묻지 않았던 질문에 관한 답을 찾게 되며, 그동안 자신이 아니라고 믿어왔던 것을 긍정하게 되는 일을 경험하게 된다. 누군가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가 바라보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지 의문하게 되며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고 이해하게 된다.사랑하는 대상이 많아질수록 자기에게 갇혀 있던 시야는 계속해서 넓어지게 된다. 상대의 어려움을 고민하고 인간을 넘어선 생명의 영역에 대해 생각한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아스팔트 사이로 아무렇게나 피어난 들꽃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은 일상의 아주 작은 영역까지도 사랑하는 사람이다. 사랑은 자기 반경을 무한히 넓히는 일이며 끊임없는 성장을 하게끔 하는 놀라운 힘이 있다.세상의 모든 언어를 쥔다고 해도 사랑이라는 감정을 완전하게 표현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온갖 감정들이 차곡차곡 쌓여가고 놀라운 형식으로 발현될 때 우리는 어렴풋하게 그것이 사랑은 아닐까 하고 생각할 뿐이다.‘자기 앞의 생’의 마지막 구절은 ‘사랑해야 한다’고 외치면서 끝난다. 그렇다. 우리는 사랑해야 한다. 끊임없는 자기모순을 경험하면서도 종국에는 자기 자신을 긍정하게 되는 일. 마주해야만 하는 현실의 고통을 감내하면서도 타인을 신뢰하게 되는 일. 영원히 함께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에 지금 이 순간을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을 가지는 일. 슬픔까지 기꺼이 껴안으면서도 이토록 복잡한 세계까지 이해하게 일. 일말의 가능성을 믿는 일. 이 모든 것이 우리가 끝끝내 해내야만 하고 자신도 모르게 이행하고 있는 신비한 사랑의 영역이다.

2022-04-26

대구 망월지 두꺼비 보호대책 서둘러라

전국 최대 두꺼비 집단 서식지인 대구 욱수동 망월지에서 두꺼비 올챙이가 떼죽음을 당했다. 관할 수성구청은 지주 등으로 구성된 망월지 수리계가 저수지 수질 개선을 위해 펄을 청소한다는 이유로 수문을 개방한 탓으로 보고 있다. 정확한 원인이 나오면 적절한 대응도 준비 중이라 한다. 구청은 현재 양수기 등을 동원해 저수지에 물을 공급하는 등 올챙이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지만 수백만 마리 두꺼비 올챙이의 상당수는 수초에 걸려 말라 죽는 큰 피해를 본 것으로 전해진다.망월지는 해마다 인근 욱수산에서 1천여 마리의 성체 두꺼비가 이곳으로 내려와 산란을 하는 곳이다. 암컷 한 마리당 1만여 개의 알을 낳고 알에서 깨어난 올챙이는 물속에서 60∼70일을 보내 새끼 두꺼비로 자란다. 매년 5월쯤이면 이들 새끼 두꺼비가 욱수산으로 이동하기 시작하는데, 이때 보이는 자연생태적 현상이 장관이어서 전국적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다.구청은 두꺼비 집단서식지로 확인된 망월동 일대를 수년전부터 생태공원으로 조성하기 위해 생태경관보전지역 지정을 추진 중에 있다. 그러나 인근 토지 소유주들은 재산권 침해를 이유로 반대해 법정 소송이 벌어지는 등 지금도 논란 중이다.이번 두꺼비 올챙이 떼죽음과 관련, 구청은 수리계의 의도된 부분은 없는지 정확한 원인조사에 들어가는 한편 환경부에 생태경관보전지역 지정을 서둘러 줄 것도 촉구할 방침이다. 도심 속에서 두꺼비 산란기 과정이 자연스럽게 노출되는 모습은 쉽지가 않은 자연현상이다. 매년 두꺼비 산란과 이동을 지켜본 시민의 입장에서 올챙이 떼죽음이 행여나 자연생태계 파괴로 이어질까 걱정이다.구청이 계획한 생태경관보호지역 지정 등 두꺼비 보호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지주들과의 원만한 협의도 서둘러 대구 망월지가 자연생태보존의 모범 사례로 남도록 해야 한다. 대규모 아파트개발로 사라질뻔한 청주 원흥이 마을을 생태공원으로 조성한 성공사례를 살펴보고 주민과 관이 공동의 지혜를 모아야 한다. 날로 확대되는 도시화로 삭막해지는 도시환경을 살리는 것이 자연보호며 우리가 할 일이다. 망월지 보호도 그 중의 하나다.

2022-04-26

‘고무줄 공천룰’이 지방선거 공천파동 원인

대구시 수성구 국민의힘 경북도당 앞에서는 지난 25일 포항, 김천, 영주, 군위, 의성, 청송 등 경북 곳곳에서 찾아온 지방선거 공천탈락 후보자와 지지자들의 항의사태로 온종일 어수선했다. 이강덕 포항시장과 장욱현 영주시장, 김영만 군위군수 지지자들은 본경선도 치르지 못하고 컷오프된 현역 시장·군수들의 공천심사를 중앙당 공관위에서 직접 해달라고 요구했고, 김천과 의성, 청송에서 온 각 후보 지지자들은 현직 군수와의 경선결정에 문제가 있다며 재심을 요구했다.경북도당 공관위는 이처럼 공천방식에 대한 반발이 확산하자 결국 문제가 된 교체지수 적용 설문조사 문항을 다듬은 뒤 컷오프된 현직 단체장(포항·영주·군위)에 대한 여론조사를 다시 하기로 했다. 김주수 의성군수와 이희진 영덕군수는 컷오프를 통과했으나 경쟁 후보자들이 현직 군수와의 경선을 거부하며 재심을 요구해 재조사하기로 했다.지방선거 때마다 경북지역에서 국민의힘 공천 파동이 재연되고 있는 것은 중앙당 공관위가 지역별 특성에 맞춰 공천룰을 별도로 정할 수 있도록 배려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도당 공관위와 지역구 국회의원의 영향력이 강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 지역구 국회의원들의 경우 지방선거를 치르고 곧바로 다음 총선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단체장과 지방의원을 공천할 때 사심이 작용할 수 있다. 특히 3선 단체장 후보들은 잠재적인 도전자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공천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생길 수 있다. 이번에 교체지수를 통해 컷오프된 이강덕 포항시장과 장욱현 영주시장, 김영만 군위군수 후보도 이러한 맥락에서 공천배제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김병욱 의원(포항 남구·울릉군)은 최근 자신의 SNS에 “교체지수는 ‘교체’ 되어야한다. 정의롭지도 과학적이지도 않다”고 말해 현역단체장 공천배제 파동의 핵심을 짚은 것으로 여겨진다. 국민의힘이 공천파동의 고리를 끊으려면 공천룰을 당헌·당규에 확실하게 명시해 두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선거 때마다 공천룰이 달라지니까 공천 파동의 악순환이 되풀이되는 것이다.

2022-04-26

신공항 특별법, 대구시장선거가 기회다

심충택 논설위원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인 홍준표 의원은 지난 19일 열린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경선 토론회에서 “대구 50년 미래번영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대구통합신공항 건설과 동촌후적지의 성공적인 개발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공항산단 200만 평을 조성해 대기업과 첨단산업을 유치하고, 대구 동촌 이전터는 첨단관광상업지구로 개발하며 아파트는 짓지 않겠다”고 했다.TV토론회를 지켜보면서 홍 의원의 이 공약에 귀를 기울인 사람이 많을 것이다. 대구는 말할 것도 없고 비수도권 대도시의 가장 큰 현안은 대학을 졸업한 청년들이 취업할 만한 일자리를 많이 마련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대기업을 유치해야 한다. 국내에 있는 대기업이든, 해외에서 국내로 다시 리턴하는 대기업이든, 지자체가 깜짝 놀랄만한 인센티브를 제공하거나 정부가 압력을 넣는다고 해서 지방도시로 선뜻 이전해 오지 않는다.대기업을 움직이려면 반드시 국제사회와 24시간 연결돼 있는 관문공항이 있어야 한다. 홍 의원은 평소에도 기자들과 만나면 “대기업들이 수도권 입지를 선호하는 것은 항공화물의 거의 100%를 인천공항에서 처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해왔다. 지방도시가 인근에 하늘길을 열어 기업 물류비를 줄여주고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한다면 땅값이 비싼 수도권을 선호할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문제는 국비지원을 받아 통합신공항을 건설하려면 국회에서 특별법이 제정돼야 한다는 것이다. 신공항 건설의 제1관문인 예비타당성조사 면제와 국가 재정지원을 받으려면 홍 의원이 이미 국회에 발의한 특별법 제정이 선행돼야 한다. 다행인 것은 윤석열 당선인이 지난 2월 15일 동대구역 대선 유세에서 통합신공항 건설을 위해 확실히 협력과 지원을 하겠다고 약속했다는 것이다. 대통령직 인수위에서도 신공항 국책사업화를 위한 관련 TF가 꾸려지고, TF 첫 간담회에서 그동안의 최대현안이었던 국비 지원과 공공기관 개발참여가 긍정적으로 검토됐다.차기 정부가 특별법 제정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칼자루를 쥔 측은 국회 다수의석을 가지고 있는 민주당이다. 민주당은 지난해 2월 대구경북신공항 특별법은 보류한 채 가덕도 특별법만 통과시킨 전례가 있다. 부산과 대구의 갈등을 유발시켜 정치적 이익을 도모한 것이다.밉든 곱든 지금으로선 대구경북신공항 특별법이 제정되려면 민주당이 찬성하지 않고는 달리 길이 없다. 민주당을 설득시키기 위해서는 1차적으로 이번 대구시장 선거에 출마한 여야 후보들이 특별법 제정에 대해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현재 민주당에서는 서재헌 전 대구 동구갑 지역위원장, 정의당에서는 한민정 대구시당위원장이 출마 의사를 밝힌 상태다. 선거운동 기간 중 여야후보들이 TV토론회 등을 통해 특별법 제정 촉구결의에 대한 합의안을 만들어 각 정당으로 하여금 당론으로 채택하게 하는 방법이 있다. 홍 의원이든 서 위원장이든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제안을 하면 지방선거를 특별법 제정의 기회로 만들 수 있다.

2022-04-26

정치 양극화

우정구 논설위원 내가 좋아하는 정치인이 있다고 가정하자. 나와 친한 친구가 내가 좋아하는 정치인을 반드시 좋아한다는 보장은 없다. 경우에 따라 그 정치인을 싫어할 수도 있는 것이 유권자의 정치적 호불호다.이런 사례는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이것이 극단적 사례로 발전하는 경우가 있다. 동일 사안인데도 불구, 여당 지지자의 80%는 반대를 하고 야당 지지자의 80%는 찬성하는 경우다. 사안의 중요성보다 지지 정당의 호불호에 따라 지지자의 뜻이 반영되는 결과다.정치가 타협과 수용을 전제로 한다지만 이 정도쯤 되면 타협의 여지는 거의 없다.더 문제는 해결점을 찾겠다는 노력보다 서로를 악마시하는 상황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정당을 지지한다는 이유만으로 절친의 관계가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지금 한국적 정치 상황이 이 지경이다.특히 대선 결과가 극소한 격차로 승부가 남에 따라 여야는 서로의 존재감에서 밀리지 않는 분위기다. 검수완박을 둘러싼 극한 대립도 이런 정치적 배경을 안고 다툼을 벌이는 양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얼마 전 한국행정연구원(KIPA)이 대통령의 국정수행 긍정평가 비율을 추적 분석한 결과, 여야 지지자간의 격차가 해마다 심화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김영삼 정부 당시 39% 포인트였던 여야 지지자간 대통령 지지율 격차가 문재인 정부에 와서는 84% 포인트까지 벌어졌다고 했다. 민주화 이후 최악이라는 평가도 나왔다.정치의 양극화는 구조적으로 정치분열을 초래한다. 당연히 민주주의 발전에도 나쁘다. 새 대통령의 임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지금 우리 정치권은 극심한 대립 국면에 빠져있다. 국민 입장에서는 불행한 일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2-04-26

마이걸 <Ⅰ>

안나는 헬스트레이너였다. 상류층을 대상으로 하는 스포츠센터 소속으로 일하던 중 만식의 집으로 출장을 갔다. 만식을 담당하던 트레이너가 교통사고로 자리를 비웠을 때였다. 트레이닝을 받은 지 두 달이 되었을 때 만식이 안나에게 제안을 했다. 스포츠센터 그만 두고 내 개인 트레이너가 되는 게 어때? 원한다면 지낼 방도 마련해주지. 충분한 급여와 기대 이상의 자유 시간, 조건이 나쁘지 않았다. 안나는 만식의 개인 트레이너가 되었다. 그래도 남잔데, 한 번 더 생각해봐. 안나의 어미가 말했었다. 아빠보다 더 나이 든 할아버지니 걱정 마. 안나는 여행 가방에 속옷을 넣으며 대답했다. 아들이 하나 있다는데 같이 사는 것은 아니니 그것도 걱정할 것은 아니라 했다.사귀던 남자가 반대했다. 안나는 그 남자와 헤어졌다. 자신을 믿지 못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만식의 집으로 짐을 옮기던 날 안나는 자신을 위해 준비된 방에서 만식이 직접 골랐다는 침대에 앉았다. 차라리 잘 되었어. 헤어질 이유가 필요했어. 엉덩이로 매트리스의 쿠션을 확인하며 혼잣말을 했다.만식은 건강한 남자였다. 규칙적인 트레이닝과 의료진의 정기적인 관리 그리고 인공 장기들이 만식의 건강을 지키고 있었다. 트레이닝 중 만식의 옆구리에 안나의 손이 스쳤을 때, 안나의 가슴이 만식의 등에 닿았을 때, 안나가 허리를 숙여 시범이라도 보일 때면 만식의 몸은 뻣뻣해졌고 얼굴은 붉어졌다. 잠시 동안은 숨을 쉴 수 없었고 어지러웠다. 인공 심장만이 아무 일 없는 듯 규칙적으로 뛰었다. 저 나이에도? 안나는 놀랐다. 그리고 궁금했다. 일부러 몸을 대어 보기도 했고 몸매가 드러나는 운동복을 입고 만식의 눈앞에서 이리저리 몸을 흔들었다. 만식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주저앉거나 몸을 돌려 허공을 보면서도 힐끔거렸다. 안나는 만식의 반응이 재미있었다. 안나와 만식의 운동시간은 놀이 시간이 되었다. 놀이는 둘 사이를 친근하게 만들었고 친근함은 둘의 나이를 잊게 만들었다.건강과 재산을 가진 수컷들이 다음으로 관심을 가질 것은 뻔했다. 권력, 그리고 여자. 젊은 여자를 두고 젊은 남자와 늙은 남자가 경쟁하기 시작했다. 늙었지만 육체적으로 밀리지 않고 충분한 부를 가지고 있다면 젊은 남자와 겨루어 볼 만했다. 젊은 여자의 입장에서는 둘 사이를 견줄 만했다. 암컷에게 수컷의 건강함이란 자신과 자식들을 잘 보살필 수 있는가의 문제이기도 했다. 가죽 자켓을 입은 백발의 노인이 빨간 오픈카의 운전석에 앉아 경적을 울리고, 길을 걷던 젊은 남자가 놀라 몸을 피하고, 운전석 옆자리의 젊은 여자가 젊은 남자를 아래위로 훑어보며 입꼬리를 올리는 장면은 티브이 광고 속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안나도 그랬다. 미래를 알 수 없는 젊은 남자와 사귀며 그의 집에서 지내는 것보다 전 부인과 사별한 돈 많은 늙은 남자와 사귀며 그의 집에서 지내는 것이 더 나아 보였다. 만식과 잠자리를 같이 하면서도 안나는 자신이 몸을 팔고 있다 생각하지 않았다. 서로 주고받은 감정에서 우러난 자연스러운 것이라 여겼다. 상대가 젊은 남자가 아니라는 것? 그게 어때서? 그 뿐이었다. 사람들은 안나와 같은 여자를 마이걸이라 불렀다.안나는 가끔 스스로에게 물었다. 사랑은? 사랑? 사랑이야 언제든. 나는 아직 젊잖아. 대답에 망설임은 없었다.만식은 안나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다음 날 필립에게 안나를 소개했다.-내 아이를 가졌다. 너의 동생인 셈이지. 새엄마라 부르라 하지 않겠다. 하지만 네 아버지의 여자고 네 동생의 엄마다. 기본적인 예의는 갖추어 주었으면 좋겠다.안나는 만식의 곁에 붙어 앉은 채 필립을 보았다.-그 헬스트레이너?필립이 물었다.-그렇게 되었다.만식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애들 엄마에게서 여자 트레이너가 상주한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습니다만 이런 것도 하시는 줄은 몰랐네요. 그게 가능하다니. 아버지도 대단하십니다. 옆에 계신 분도 대단하시고. 아들 불러 자랑하실만하네요. 요즘 말하는 마이걸, 뭐 그런 겁니까? 아이고, 부러워라. 부럽습니다, 진정.-그런 것이 아니다. 비꼬지 말거라.만식의 곁에 꼭 붙어 앉아있던 안나가 자리를 고쳐 앉았다.-축하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 부르셨습니까? 손녀 보기 부끄럽지 않으십니까? 하긴, 잘 되었네요. 언젠가 아버지 손녀가 삼촌이든 고모든 하나 있었으면 좋을 텐데 하고 아쉬워한 적 있었거든요. 아버지의 손녀에게 꼭 전해드리겠습니다. 삼촌이 될지 고모가 될지 알 수 없지만 할아버지가 널 위해 선물 하나 만드셨다고. 너하고 나이가 비슷한 할머니도 한 분 생겼다고.의자의 손잡이를 딛고 일어서려는 만식의 손을 안나가 잡았다. 안나가 필립에게 말했다./ 김강 소설가

2022-04-25

聖(성), 俗(속), 권력의 긴장감은 어디서 오는가

영화 ‘베네데타’는 세 가지의 층위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는 성스러운 종교의 층위로 신의 증명에 대한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종교가 세상의 중심이었던 17세기 중세의 속, 욕망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 두 가지 층위를 둘러싼 권력에 대한 것이다.주인공 베네데타는 이탈리아 벨라노 출신으로 8세 무렵에 토스카나의 작은 도시 페샤의 수녀원으로 들어간다. 당시 수녀가 되는 것은 가문의 영광으로 여겨지며, 상당한 금액의 지참금을 지불해야 수녀가 될 수 있었다. 여기서 거래가 시작된다. 가장 성스러운 길로 들어서는 초입에 ‘주님의 신부가 되기 위해서’ 흥정이 오간다. “과일과 포도주를 25년간 수녀원에 전하도록 하겠다”는 말에 “지참금은 얼마나 내겠냐”는 수녀원장의 질문이 이어진다. 금액이 제시되고 적어도 얼마 이상은 되어야 한다는 가이드라인이 정해진다. ‘매년 주님을 따르려는 소녀들’은 넘쳐나고 그 관문을 통과하는 것은 성스러운 영역이 아닌 지극히 세속적인 금전적 가치로 결정된다.신에게로 향하는 길에 들어설 수 있는 자격이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결정되고, 그 지불금액의 높고 낮음에 따라 신심이 결정되던 시기. 1517년 마틴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비텐베르크성 교회 대문에 대자보를 내건지 100여 년이 지난 시점이다. 공고했던 신의 세상, 신의 관념으로 살고자 했던 세상에 균열이 일어나며 불길이 일어나기 직전의 시대이다.오랫동안 세계의 질서를 유지하고 인간의 삶에 지침이 되었던 종교는 수도원과 수녀원을 중심으로 매관매직과 부정부패가 극에 달했고, 신성이라는 장막 속에서 성적 일탈이 다반사로 벌어지던 시기. 14세기 시작된 흑사병이 유럽 전역을 휩쓸고 마지막 단계에 이르렀던 시기에 영화가 위치한다.성스러움과 세속의 욕망, 권력의 세 가지 층위를 모두 가지고 있으며, 이 세 가지의 경계지점을 아슬아슬하게 오고가면서 영화가 진행된다. 성령의 증거와 증명, 세속의 욕망이 어떻게 종교적으로 해석되고 판단되는가. 성령으로 주어지는 권력의 달콤하고 위험한 줄타기를 주인공 베네데타를 통해 보여준다. 베네데타는 이 세 가지를 한 몸에 지니고 있으며, 성과 욕망과 권력의 일체를 오간다.종교가 타락해갈수록 반대급부로 종교는 형식적 엄숙을 더해가면서 높고 견고한 장벽을 구축한다. 엄격하고 잔인한 잣대로 가짜 성인을 가려내는데 힘을 기울였던 시대에 베네데타를 둘러싼 실체는 쉽게 판단되지 않는다. ‘어쩌면’이라는 반문 속에서 성녀인지 악녀인지는 시대 상황과 맞물리며 두 시간이 넘는 동안 진위는 숨바꼭질을 한다.베네데타의 실체에 대한 암시는 기저에 깔고 있지만 영화는 그것의 중요성보다는 그것을 통한 한 시대의 논란이 되었던 사실을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 다른 지점에 있음을 말한다. 성녀인가 사기꾼인가. 이 문제를 통해 한 시대를 지배했던 문제점들을 드러내며 그 시대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새로이 돋아나는 기운에 대해서 말한다.환상과 현실을 오가는 베네데타를 통해 성과 욕망, 권력의 자리를 오가며 실체에 대한 판단 근거들을 영화 곳곳에 배치하고 있지만 그것은 참고사항일 뿐 명확한 판단을 내리기에 모호한 지점으로 이끌고 간다. 진실인가 거짓인가가 두 시간 동안 이 영화를 끌고가는 원동력이 되고 있지만 어느 쪽을 결정짓고 영화를 보더라도 결말에 이르러 남게되는 감정은 동일할 것이다.수백년 간 유럽을 휩쓸었던 흑사병과 종교적 타락의 끝지점에서 견고했던 내부로부터 무너지는 것들의 원인이 대한 진단과 사례를 종교재판을 통해 보여준다. 레즈비언이라는 단어조차 존재하지 않았던 시대에 종교재판은 낱낱의 것들을 기록하고 상세하게 묘사해 기록에 남겼다.그 기록을 바탕으로 영화는 ‘주님의 신부’로서 “주님의 사랑과 보호 아래 수치심이란 없다”라는 당당함으로 나아간다. 신의 믿음을 빙자한 부조리가 만연하던 시대에 신의 이름으로 육체적 관계를 통해 ‘사랑’을 알게됐다는 베네데타의 대사는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는 것인가. 17세기 페샤의 수녀원에서 일어난 실제 사건을 실화를 기록한 ‘수녀원 스캔들 : 르네상스 이탈리아의 한 레즈비언 수녀의 삶’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주)Engine42 대표 김규형

2022-04-25

‘제로 웨이스트’

남광현 대구경북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나날이 심해지는 기후재난에 대응하여 전 지구적으로 2050탄소중립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2030년까지 2018년 배출량 대비 40%나 되는 감축을 국제사회에 약속하였다.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온실가스 배출율이 37%로 가장 높은 전환부분(주로 발전분야)은 44.4%로 40%이상 감축을 계획하였으나 전환분야 다음으로 배출율이 높은 산업(36%)부문은 14.5%에 불과하며, 수송(13%)과 건물(7%) 부문도 각각 37.8%와 32.8%로 40%에 미치지 못한다.이로 인해 배출율이 2.4%에 불과한 폐기물부문에서 폐기물 감량이나 재활용, 바이오가스 생산 등 다양한 수단을 총동원하여 무려 46.8%의 감축을 계획하고 있다. 즉, 2050탄소중립에 20년 앞서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40%의 감축을 달성하기 위해 폐기물부문에서의 감축 약속의 강도가 가장 높다.이를 위해 국민은 일상생활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쓰레기를 완벽하게 재활용하여 배출을 ‘0(Zero)’에 가깝게 최소화해야 한다.탄소중립을 위해 RE100 프로젝트 등의 전개로 신재생에너지 사용 비율을 비약적으로 높이고 에너지이용 효율을 극대화하여도 산업이나 농축수산 부문 등에서 물질이용은 불가피하며, 온실가스는 필연적으로 배출될 수밖에 없다. 즉 2050탄소중립을 위해서는 산업, 농축수산, 폐기물 등 각 부문에서 물질순환 비율을 최대한 높이고, 폐기물배출을 극소화하는 순환경제 시스템의 도입이 시급하다. 이 순환경제 시스템이 정착되어 2050탄소중립을 확실히 실현하기 위해서 국민은 이제부터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 라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하루라도 빨리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현실에서 제로 웨이스트는 모든 제품, 포장 및 자재를 태우지 않고, 환경이나 인간의 건강을 위협할 수 있는 토지, 해양, 공기로 배출하지 않으며, 책임 있는 생산, 소비, 재사용 및 회수를 통해 모든 자원을 보존하는 것으로 인식되어야 한다.미국의 제로 웨이스트 운동가 비 존슨(Bea Johnson)은 ‘5R 운동’을 제안하였는데, Refuse(거절하기), Reduce(줄이기), Reuse(재사용하기), Recycle(재활용하기), Rot(썩히기) 등이 그것이다. 이 중에서 Refuse(거절하기)는 아무것도 사지 않는 날(Buy Nothing Day) 캠페인을 전개하는 것이 하나의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며, Rot(썩히기)는 음식물쓰레기를 퇴비화하여 농업에 재활용하는 것이 하나의 사례이다.최근의 대구통계를 살펴보면 1일 쓰레기 배출량은 2014년에 1만2천489t에서 2019년에 1만5천757t으로 급격히 증가하였다. 이에 대응하여 재활용량이 크게 증가하였으나 매립과 소각 등 최종 처분량도 동시에 증가하고 있어 폐기물부문 탄소배출량은 계속 늘고 있고 2050탄소중립에 역행하고 있다. 이와중에 지난 3월말에 대구시와 대구녹색소비자연대가 제로 웨이스트 운동에 적극 동참하는 ‘아까와 가게’ 38곳을 선정한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2022-04-25

엔데믹 시대의 과제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전히 해제되고 25일부터는 주요 교통수단을 비롯해 영화관, 실내 공연장 등에서도 취식이 허용되는 등 엔데믹 시대가 본격화하고 있다.전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는 현재 팬데믹 감염병으로 지정돼 있다.팬데믹은 세계보건기구가 지정한 감염병 최고등급으로, 전 세계적으로 감염병이 대유행하는 상태를 의미한다.이제 세계 각국이 코로나19를 엔데믹으로 감염등급을 하향조정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엔데믹이란 특정지역에 사는 주민들에게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질병을 의미하며, 대표적인 예가 말라리아, 뎅기열, 장티푸스 등이 여기에 속한다.엔데믹 시대의 도래에 따라 코로나로 옥죄었던 일상이 빠르게 원상으로 돌아가고 있고, 침체됐던 밑바닥 경제도 활기를 되찾을 전망이다. 다만, 사회 곳곳에서 코로나 팬데믹 후유증이 남아있다.특히 외식업계는 영업시간 제한이 풀렸음에도 정작 함께 일할 직원들을 다시 구하기가 쉽지 않아 몸살을 앓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이전에 일하던 외국인 종업원들은 이미 다 대한민국을 빠져나갔고 국내 인력은 임금을 더 준다고 해도 일할 사람이 없다.유흥업계에서 인력난은 더욱 심각하다. 쉬는 기간 종업원들이 다른 일자리를 찾거나 그만둔 경우가 많아 2년 전 인력의 절반도 못 채우고 있다. 인력난에 시달리는 곳은 외식업계뿐만 아니라 호텔업계와 서비스업 등 산업 전반에 나타나고 있다.무엇보다 코로나 유행 이후 일상에서 우울감 등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코로나19로 인한 일상생활 제약으로 혼란을 겪고, 또 다시 일상회복이라는 변화로 생활 패턴 변화의 조짐을 보이면서 우울감과 혼란을 느끼는 현대인들이 많아진 것이다. ‘엔데믹 블루’, 엔데믹 시대의 과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2-04-25

인수위 우려하는 감염병 조정 서둘 이유 있나

어제부터 코로나19의 감염병 등급이 최고단계인 1급에서 2급으로 하향조정됐다. 지난주 전면 해제한 거리두기에 이은 후속 조치다. 정부가 코로나19 유행이 풍토병 단계로 가고 있다고 보고 일상회복을 본격화하겠다는 뜻이다.코로나가 2등급으로 낮아지면 홍역이나 수두, 결핵과 같이 코로나 감염병도 동네 병의원에서 진료를 받게된다. 7일 간의 의무격리가 없어지고 정부 지원이 없어 치료비가 건강보험 수가에 적용돼 환자의 부담도 발생한다. 의료기관의 환자 즉시 신고 의무도 없어진다.다만 정부는 충분한 준비를 위해 앞으로 4주간 이행기를 거치기로 했다. 4주 동안은 지금과 같은 코로나19 진단검사 체계를 유지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임기가 다 된 정부가 성과를 의식해 지나치게 서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대통령직인수위도 정부의 이런 결정에 “상당히 성급한 접근”이라 우려를 표했다. 다음달 10일 새 정부 출범 후 지금의 방침이 변경될 가능성도 있어 오히려 혼란을 초래할 수도 있다. 거리두기가 해제된 이후 처음 맞은 지난 주말은 유원지와 다중이용시설 등 곳곳에 수많은 인파가 몰렸다. 마치 코로나 팬데믹 이전상태로 돌아간 듯한 분위기가 감지됐다.코로나19 확진자가 10만명대 아래로 떨어져 거리두기 완화를 위한 조치가 필요해졌지만 아직은 경계할 변수가 많다. 수만명의 확진자가 엄연히 발생하고 오미크론 변이도 발견되고 있다. 감염병 등급이 낮아지면 쉬지 못하고 출근해야 하는 일이 빈번해져 유행 확산을 막는데 큰 구멍이 생길 수 있다. 당국이 안착기를 갖는다고 하지만 아직은 의료대응체계가 불안하다.어렵사리 맞은 포스트 오미크론 기회를 성공적으로 안착시켜야 한다. 코로나 감염병의 성공적 안착을 위해선 현 정부와 새 정부가 충분한 교감을 갖고 공동대응 해야 한다. 어느 정부의 공로라기보다는 국민의 안전에 목적을 둔 정책이 펼쳐져야 한다. 정책의 연계성을 위한 공동대응이 필요하다. 실외마스크 벗기도 이런 차원에서 현 정부와 인수위가 함께 고민하는 것이 국민을 위한 선택이 될 것이다.

2022-04-25

국민의힘 지방선거 공천, 투명성이 생명

국민의힘 경북도당이 6·1지방선거 기초단체장 공천파동으로 혼란에 빠졌다. 단체장 공천과정에 해당 지역구 국회의원들이 깊이 개입했다는 의혹과 함께 ‘사천논란’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포항에서는 이강덕 예비후보가 교체지수가 높다는 이유로 본경선에 참여하지도 못하고 컷오프(공천배제)되자 지지자들이 경북도당 공관위원장인 김정재 국회의원(포항 북구)의 사무실 앞에서 삭발식을 하며 강하게 항의하고 있다.국민의힘 중앙당에서는 지난 23일 경북도당의 현역 재선단체장 경선 컷오프 결정에 불복하며 재심을 요구한 이강덕 포항시장과 장욱현 영주시장, 김영만 군위군수 예비후보의 청구를 받아들여 안건을 다시 경북도당에 돌려보냈다. 중앙당 공관위는 경북도당이 비공개 여론조사로 실시한 교체지수 설문항목에 문제가 있었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북도당이 재선 단체장만을 대상으로 교체지수 조사를 한 이유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경북도당은 이번 주 중 재심을 진행해 결과를 발표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와관련 이강덕 포항시장은 25일 기자회견을 열고 “포항시장 본경선 후보결정은 중앙당에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포항 남구(김병욱 의원)와 북구 당협위원장의 입장이 다르고, 정치적 이해당사자는 제척사유에 해당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포항시장 공천을 둘러싼 파행은 김정재 의원과 이강덕 예비후보 간 쌓인 갈등 탓이 크다. 두 사람은 얼마 전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포항을 방문했을 때 ‘현역시장 패싱’ 논란에 휘말렸다. 당시 김 의원이 이 시장의 영일만대교 브리핑 기회를 사전 차단했다는 말이 나왔다. 두 사람은 앞서 포스코지주사 본사 소재지를 포항으로 이전하는 문제를 놓고도 신경전을 펼쳤다.두 사람 간의 충돌은 반드시 후폭풍이 생기게 마련이다. 이러한 모습은 현안이 산적한 포항의 미래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이번 공천파동의 일차적 책임은 경북도당 공천관리위원회에 있는 만큼, 김 의원은 이번 주 실시되는 재심 경선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 또다시 뒷말이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

2022-04-25

물꼬 트는 나눔활동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꽃피고 새가 울며 잎새들이 싱그럽다. 화창한 날씨에 부드러운 바람이 불고 초목은 생명의 잔치를 벌이는 듯 푸르고 싱싱하다. 3년째 발목 잡던 코로나19의 아귀에서 벗어나려는 사람들의 봄을 즐기는 발걸음도 잦아들며 차츰 활기를 더해가는 것 같다. 아직은 여전히 마스크 너머의 세상이지만, 그간 멀어졌던 몸의 거리두기를 없애고 마음의 거리를 좁히며 아쉬움을 달래는 표정들이 사뭇 밝고 넉넉하기만 하다.만물이 생기를 더해가는 때, 마침내 코로나의 안개도 서서히 걷히는 듯하니 날씨마저 청량하고 산천은 한껏 푸르름으로 일렁이고 있다. 전염병 확산 방지를 위해 취해졌던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되고 가공(可恐)의 코로나19도 홍역, 수두와 같은 2급 감염병으로 조정돼, 일종의 엔데믹(풍토병)으로 가는 대응체계 전환과 일상회복의 길이 열리고 있어서 안도와 다행스럽기만 하다. 그에 따라 최근 한강변의 나들이객이 부쩍 늘었는가 하면 전국 곳곳에서는 3년째 미뤄왔던 축제를 재개한다는 소식 등으로 확연히 달라지고 생기를 되찾아가는 모습들이 역력하다.그에 발맞춰 한동안 뜸해졌던 나눔과 봉사활동도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어서 반갑고 고무적이다. 곧 개방할 경로당이나 무료급식소를 대청소하고 방역작업을 실시하는가 하면, 야외시설에 대한 일제점검 보수와 묵은때 제거, 칙칙한 골목길 담벼락의 벽화 도색, 바닷가와 산책로 주변의 환경정화, 어르신들의 건강과 장수를 기원하는 장수사진 촬영 등의 다양한 자원봉사활동이 물꼬 트이듯이 동시다발로 전개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봉사활동은 포스코 직원과 가족들이 각 부서 자매마을이나 재능봉사단 등을 통해 펼치는 새봄맞이 사랑의 손길, 희망의 나눔활동이다.포스코는 이와 같은 봉사활동을 포함, 임직원들의 자발적인 기부금을 활용해 운영되는 1%나눔재단의 고유한 사회공헌 활동으로 정착시켜 2013년부터 다양한 나눔 사업을 적극적, 지속적으로 진행해왔다. 지역별 소외되거나 취약해진 계층에 대한 맞춤형 나눔, 지원사업은 물론, 아동·청소년, 다문화 가정, 홀몸어르신 등을 중심으로 1%나눔사업을 강화하고, 태풍, 화재 등 자연재난을 입은 지역사회에 임직원들의 봉사활동과 연계시켜 피해복구지원과 상생협력을 도모하는 사회공헌 및 기업시민 나눔활동의 가치를 부각시키고 있다.관심과 사랑에서 비롯되는 나눔활동은 많은 것들을 변화, 발전시킬 수 있다. 작은 나눔의 손길이 큰 희망의 씨앗이 되고 한, 두발 내딛는 나눔의 발걸음이 큰 세상을 움직이는 기틀이 된다. 나눌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있고, 함께 나누는 마음들이 자라고 있음은 따스하고 넉넉한 일이다. 배려의 마음으로 이어지는 온정의 나눔 속에 보람이 싹트고 기쁨과 감사의 꽃이 피어나게 될 것이다.찬란한 햇볕도 나누어 가지고 싱그러운 꽃밭도 함께 뛰놀면 언제나 기쁨이 넘쳐 흐르지 않을까? 코로나로 가뜩이나 메마르고 성글어진 마음 밭에 나눔의 새순들이 신록처럼 움트고 잎새처럼 무성해지면 좋겠다. 나눔과 베풂으로 밝고 아름다운 세상을 함께 만들어 가면 어떨까?

2022-04-25

경쟁력의 조건, 기본의 실천

김종찬 포스코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관성의 법칙이란 게 있다. 과학이라는 과목에서 손을 뗀 지 수십 년도 훨씬 더 된 내게 남아있는 기억으로는 가려던 것은 진행 방향으로 계속 이동하려 하는 속성이 있다는 것 정도의 의미다.묘한 건 이 ‘관성의 법칙’이란 게 물체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우리의 일 속에서도 작용한다는 것이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회의, 동일한 시간과 동일한 동선으로 움직이는 출퇴근, 우리의 생활은 같은 패턴을 반복하고,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냥 가던 방향으로 흘러가고자 한다.무엇을 시작할 때는 장밋빛 희망으로 넘실대고 혁신적이며 각종 다짐들로 다이어리가 가득 차다 못해 넘쳐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일이든 취미든 익숙해지는 순간 또 관성의 지배를 받게 된다. 관성의 지배를 받는다는 건 안정을 보장받는 것과도 같기 때문이다.그 틀을 벗어나지 않는 한 커다란 위험은 없을 거라는 본능적인 선택, 무의식적으로 반복되는 일상에 진저리를 치면서도 그 안에 남아있을 수밖에 없는 건 그런 안도감이 주는 달콤함 때문인지도 모른다.개인이든 기업이든 관성의 법칙에 안주해 있다면 그 생명은 정점에서 이미 내려가고 있는 것이다. 관성의 법칙에서 벗어나 개인이나 기업이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기본의 실천’이 필요하다.논어에서도 ‘본립도생(本立道生)’이라 하여 ‘기본이 바로 서면 나아갈 길이 생긴다’ 했다. 기본은 무엇을 하고자 할 때 반드시 내 것으로 갖추어야 할 자질이기도 하고 결코 건너뛸 수 없는 절차이다. 기본의 실천은 사람이나 기업이 경쟁력을 갖추어 치열한 시장에 들어설 수 있는 관문을 통과하는 것과 같다.우리는 기계도 학습하는 상상이 현실이 된 시대에 살고 있다. 딥러닝(Deep Learning)을 통해 다양한 데이터들의 상관관계를 분석하고, 거의 무한대의 변수를 고려한 최적화된 조건으로 제어되어 불량은 줄어들면서 생산성은 최상으로 유지되는 결과를 얻고 있지만 그것의 전제조건은 기본에 있다. 그 기본이 되는 3가지를 제안하고자 한다.첫째, ‘데이터 신뢰성’ 확보이다. 데이터 신뢰성은 ‘부품의 신뢰성’이며 부품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기능이 열화 되지 않도록 습도나 온도를 관리하고 최적의 기능을 발휘하도록 해야 한다.둘째, 완전한 점검이 돼야 한다. 점검은 자투리 시간에 한다는 생각으로 시기를 놓치게 되면 부품의 기능이 열화 되고 ‘데이터 신뢰성’에 영향을 주게 된다.완전한 점검이 되기 위해서는 스킬(Skill)을 갖추는 학습, 점검이 ‘가치 있는 일’이라는 생각, 관리자는 점검이 가능한 여건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마지막으로, 설비관리체계의 바닥을 다지는 일이다. 거기에는 이론이 아니라 실용이며, 말이 아니라 축적이 필요하다. 새것처럼 닦고, 느슨한 것은 조이고, 마찰되는 곳은 기름 치며 기본을 실천할 때 설비는 고장이 없는 강건함으로 보답을 할 것이며 그 보답은 ‘데이터 신뢰성’에 의한 강건한 경쟁력이 될 것이다.

2022-04-25

대나무에 관하여

김규종 경북대 교수 누구나 좋아하는 꽃과 나무가 있다. 나는 이팝나무꽃과 작약꽃 그리고 배꽃을 특히 좋아한다. 이팝나무꽃의 하얗고 풍성하며 우아하고 여유로운 자태와 그윽한 향기. 작약꽃의 은은하고 새침하며 깔끔한 자태. 배꽃의 화사하고 조화로우며 미끈한 형상이 정말 멋지다. 조선 시대 선비들은 복숭아꽃과 배꽃을 천시하고 구박했는데, 그것은 꽃에도 인문적인 의미와 가치를 부여했던 유자(儒者)들의 유난함 때문이었다.나무 가운데서는 느티나무와 단풍나무 그리고 대나무를 좋아한다. 가정집에서 느티나무를 키우는 일은 격에 어긋나는 일이어서 단풍나무를 기른다.화분에서 키우던 오죽(烏竹) 몇 그루와 산죽(山竹)을 마당에 옮겨 심었다. 단풍나무는 길이와 부피생장이 느긋한 편이다. 반면에 대나무는 감추고 있던 본성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것이었다. 아, 저런 일이?!어째서 사람들이 ‘쑥대밭’이라는 말을 쓰는지 알게 되는 참사(慘事)가 일어났다. 어디서 날아온 지 모르게 마당 일부를 점령하여 세를 키워나가는 쑥과 오른쪽 모퉁이에서 시작하여 마당 전체를 접수할 요량으로 번지는 대나무의 위세는 파죽지세(破竹之勢)였다. 쑥대밭에 가깝게 번지는 녀석들의 기세는 실로 대단했다. 그들과 대적(對敵)하면서 ‘방아쇠 손가락’ 증후군까지 경험해야 했으니, 이쯤이면 전쟁이 따로 없었다.올해도 쑥과 대나무는 푸릇푸릇하게 존재감을 발휘한다. 서책에서 조선의 선비들이 대나무 그림을 즐겨 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선비의 절개를 상징하는 사군자인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는 춘하추동과 결부된다. 눈 속에서 피어나는 설중매, 여름의 무더위와 비바람을 견디는 난초, 서리를 이겨내고 피어나는 국화도 대단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사군자 가운데 으뜸은 역시 대나무라고 한다.곧게 자라는 강직함과 속이 빈 겸허함 그리고 백절불굴(百折不屈)의 지조와 절개를 선보이는 대나무야말로 선비의 표상으로 최고였기 때문이다.국가가 경영하는 ‘도화서’의 화원을 선발하는 과거시험인 ‘취재(取才)’에 대나무, 산수, 인물, 영모(翎毛), 화초의 다섯 가지 종목이 있었는데, 대나무가 그 가운데서 으뜸이었다고 한다. 대나무는 선비사회에서도, 화원 집단에서도 가장 사랑받은 묘사 대상이었다.조선 시대에 대나무 그림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은 탄은(灘隱) 이정(1554∼1626)이었다. 세종의 고손자 이정은 왕족 출신 화가였다. 더욱이 그는 임진왜란 당시 오른팔에 왜놈의 칼을 맞아 치명상을 입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이정은 굴하지 않고 대나무 그림을 계속 그렸다. 그가 남긴 ‘풍죽도(風竹圖)’는 그야말로 대나무 그림의 압권이다. 바람에 휘날리는 대나무의 형상화가 최고도로 발현되어 있기 때문이다.이정의 그림은 바람이 균질하게 불지 않음까지도 포착하고 있다. 아, 저런 시선과 손길을 가진 화가가 실존했구나, 하는 크나큰 즐거움이 몰려온다. 그래도 마당에서 번성하는 대나무는 근절해야 한다는 다짐을 재삼재사 확인하는 시절이다.

2022-04-24

정치적 파국 위기를 반복할 건가

위태위태하다. 정치가 다시 살아날 수 있을지 걱정이다. 흔히 허니문 기간이라고 하는 인수위 단계에 선거 기간보다 더 격렬하게 정치권이 부딪쳤다. 주고받는 말도 협상 파트너의 대화가 아니다. 육탄전을 벌이는 병사를 연상시킨다.겨우 지난 22일 박병석 국회의장의 중재로 급한 불은 껐다. 하지만 ‘검수완박’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검사의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한다’(검수완박)는 구호를 검찰총장 출신인 대통령 당선인과의 전쟁으로 생각한다.사실 경찰이건 중수처(중대범죄수사처)건 윤석열 대통령이 지휘한다. 검찰보다 더 독립적인 기구를 만들기도 쉽지 않다. 윤석열 검찰총장에서 독립적인 수사 가능성을 봤다. 1차 ‘검수완박’을 제대로 해보지도 않았다. 그런데 왜 위장 탈당하는 무리수까지 두면서 서두르는지 알 수 없다.여야 지도부가 정치력이 없다. 그저 ‘돌격 앞으로’만 외친다. 이건 정치가 아니다. 중재안이 적절한지는 차치하고, 중재안 없이 벌어졌을 일을 생각하면 파국이다. 보이지 않는 길을 만드는 게 정치다. 그런데 왜 국회의장이 나설 때까지 그런 시도도 하지 않았나.정치의 주도권을 정치 팬덤에게 빼앗겼다. 이번 사태도 팬덤 정치 탓이다. 팬덤에 편승만 할 뿐 설득할 리더십이 없다. 팬덤 정치는 타협이 없다. 타협은 내 것을 내줘야 한다. 그런데 팬덤은 아무것도 내놓지 않으려 한다. 그래서는 협상할 수 없다.팬덤 정치의 싹은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다. 지금도 봉하마을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지역주의에 번번이 무너지던 ‘바보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든 최대의 공로자들이다. 이전 정치인들의 지지 모임과는 다른 팬덤 현상을 보였다. 그래서 만들어진 이름이 ‘노빠’다.노 전 대통령은 그들에게 끌려다니지 않았다. 필요하면 설득했다. 임기 중 이라크 파병, 강정기지, 한미FTA 등 지지층의 여론과 일치하지 않는 결단도 내렸다. 국익을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지지자를 설득했다.그 이후로 정치인들에게 그런 결단력이 보이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은 “586에 얹혀 간다”는 비난을 들을 정도다. 정치인만 달라진 게 아니다. 지지자들도 변했다. ‘노빠’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켜주지 못했다고 후회했다. 노 전 대통령은 “나를 버리고 가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그를 공세로부터 지켜주지 못해 비극을 겪었다는 생각이다.그 반성이 ‘노빠’를 ‘문빠’로 만들었다. ‘대깨문’(대가리가 깨져도 문재인)이라는 이름은 시시비비에 대한 팬덤의 태도를 명징하게 보여준다. ‘우리 이니(문재인) 하고 싶은 것 다 해’라는 말도 무조건 지지하겠다는 표시다. 정치적 아젠다를 아이돌을 좋아하는 팬덤들의 놀이처럼 다루어가는 양상을 보여준다. 비속어가 자주 등장하는 것도 합리성과 자제를 포기하고, 전투력을 끌어올리려는 의도로 보인다.팬덤 현상이 정치 참여를 끌어올리는 것은 바람직하다. 문제는 전체주의적 성향이다. 경쟁자를 인정하지 않고, 타도 대상으로 삼는다. 내부에서도 이견을 용납하지 않는다. 여야 의원 중에 이런 극단적인 대결 양상을 걱정하는 이들이 있다. 합리적 접근보다 승리 지상주의에 매몰돼 간다고 말한다. 하지만 문자 폭탄이 겁나 공개적으로 말하지 못한다. 나치나 중국 문화대혁명기에 경험했던 실패를 반복하는 것 같다. 민주주의가 발붙일 여지가 없다.대선 결과 심각한 여소야대에 직면했다. 13대 국회의 여소야대와도 다르다. 그때는 4당 체제였다. 합종연횡할 수 있었다. 각당의 리더십도 확실했다. 지금은 그 반대다. 따라서 그 어느 때보다 국민통합, 협치가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이 입을 모은다. 그러나 ‘개딸’(개혁의 딸들) 등 민주당 팬덤은 선거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다. 24만 표 차만 생각한다. 새 정부는 경험이 부족하다. 정치력도 없으면서 국회를 우회해 돌진하려 한다. 서로 상대를 정당한 경쟁자로 인정하지 않는다. 각자 가진 제도적 힘을 자제해야 한다. 팬덤을 무서워하면 정치를 할 수 없다.위기는 기회다. 극단적인 여소야대는 잘못된 선거제도 탓이다. 이참에 대화와 타협을 할 수 있는 정치제도를 고민해야 한다. 김진국 고문 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중앙SUNDAY 고문,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본사 고문

2022-0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