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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생태 전환 교육과 환경 지혜 교육(上)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 2021년 12월을 맞이하는 태도가 자연과 인간이 너무 대조적이다. 늘 그랬듯이 2021년의 모든 것을 틀어낸 자연은 언제나 겸손, 차분하다. 하지만 미련, 아집, 집착, 욕심, 이기로 가득한 사람 사회는 해가 갈수록 혼란과 혼돈의 정도가 최절정을 경신한다.특히 2021년 연말은 코로나도 코로나지만 자기만 옳다고 떠드는 대선(大選) 사공들로 나라가 산으로 가고 있다. 지금까지 모든 이가 그랬다. 자기만이 정답이고, 자기가 대선에 이기면 좋은 나라가 될 것이라고. 그들 말처럼 되었다면, 나라 꼴이 암흑천지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곧 거리마다 불법 가로펼침막들이 걸릴 것이다. 국민은 대선 소음(騷音)에 엄청난 피로감과 분노를 느낄 것이다. 이런 국민의 대선 감정과 상관없이 대선 후보를 낸 정당들은 지금까지 모든 선거가 그랬던 것처럼 국민을 자신들의 정당이 이기기 위한 선거 도구로 이용할 것이다.국민이 주인인 나라는 정말 교과서에만 나오는 나라다. 단언컨대 이 나라에서는 이 말이 단 한 번도 실현된 적이 없다. 누군가가 필자에게 그럼 이 나라의 주인이 누구냐고 물으면 필자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말할 것이다. “이 나라의 주인은 선거다.”선거 이야기를 하고자 한 것은 아니었는데, 이야기가 이 나라 선거판처럼 산으로 갔다. 나라가 산으로 갈 때마다 나라를 바로 세운 것은 교육이었다고 말하고 싶지만, 도저히 양심상 삼척동자도 다 아는 그런 거짓말은 못 하겠다. 교육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는 말이 우리 교육 현장에서도 통하면 얼마나 좋을까! 이 말을 믿고 오로지 학생과 나라를 생각하며 모든 것을 헌신하는 교사들이 정말 많지만 안타깝게도 이 나라 교육은 기울어져 가는 나라를 더 기울게 만들고 있다. 나라와 교육의 공도동망이 현실이 될 날도 이제 멀지 않았다.그래도 교육계에서는 이런 비극적인 결말을 막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노력을 보여주기 위해 때가 되면 ‘개정 교육과정’이라는 것을 발표한다. 역시 이번에도 마찬가지이다. ‘2022 개정 교육과정’ 교육과정과 대선(大選)과의 공통점은 밑도 끝도 없는 화려한 말잔치다. 물론 던져놓고 보는 그 말잔치에는 책임감 따위는 없다.그나마 다행인 것은 실행이 되든 안 되든 교육과정은 시대 현실을 반영한다는 것이다.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 가장 눈에 띄는 말은 “생태전환교육”이다. 다음은 교육부 보도자료다.“(주요 추진 과제 中에서) 인간과 환경의 공존,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생태전환교육, 기후환경변화 등에 대응하는 생태환경 교육을 교육목표와 전(全) 교과의 내용 요소에 반영한다.”생태환경 교육!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지금 시대에 가장 필요한 교육이다. 이 교육의 성공을 위해 한 가지 제언한다. 지금까지 교육이 망한 것은 모든 교과가 지식 교육에 치우쳤기 때문이다. 환경 교육 또한 환경 지식 교육으로 가면 분명 망한다. 지구가 살기 위해서는 환경 지식 교육이 아닌 환경 지혜 교육으로 가야 한다.

2021-12-08

대선 판세에 영향을 미치는 돌발 변수

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벌써 대선 90일 전, 여야 대선 후보의 여론 조사 결과는 공교롭게 접전을 벌이고 있다. 지난 주 KBS와 한국 갤럽의 두 후보의 지지도는 공교롭게 36% 동률로 조사되었다. 윤석열 후보가 줄곧 앞서던 여론은 이재명 후보에 추격당하는 추세이다. 여야는 선대위를 구성하고 본격적인 득표전을 시작했다. 3개월 후인 내년 3월 9일 저녁이면 둘 중 한 명이 승자가 될 것은 확실하다. 선거 전문 분석가들은 이번 대선은 5% 내외로 승자가 결정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누가 최후의 승자가 될지 예측하기 어렵지만 승패를 좌우할 변수부터 점검해보자.이번 대선은 초반부터 후보의 비리 의혹이 선거의 주요 쟁점이 되었다. 이재명 후보는 ‘대장동 부동산 투기’의혹, 윤석열 후보는 총장 재임 시의 ‘사법 사주’의혹이 문제가 되었다. 선거 초반 이재명 후보의 대장동 의혹의 리스크가 훨씬 큰 듯했으나 윤석열 후보는 본인 뿐 아니라 장모와 부인의 의혹까지 더해져 리스크의 총량은 비슷해 보인다. 검찰이나 공수처의 수사나 재판에서 후보의 혐의가 명백히 드러난다면 선거 판세는 요동칠 것이다. 그러나 선거일까지 사법적 판단은 확정되기 어렵고 후보의 비리 의혹은 대선 종반까지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이번 대선의 박빙 구도에서 중도층 확보 경쟁은 선거의 승패를 좌우할 핵심 변수이다. 이번 선거 역시 여야 핵심지지층의 표심은 이미 정해져 있다. 최근 여론 조사에서도 현재 지지하는 후보를 끝까지 지지하겠다는 반응이 60∼70%를 점하고 있다. 문제는 아직 표심을 확정하지 않은 25∼30%의 중도 부동층 확보는 대선의 당락을 좌우할 결정적 변수이다. 확고한 보수도 진보도 아닌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는 스윙보터(swing voter)의 표심을 말한다. 이번 선거는 지역 변수 보다 20∼30대 청년 세대 변수가 선거에 더욱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선거의 종반전으로 갈수록 정책을 논하는 TV토론이 표심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이다. 대체로 시대정신을 간파한 후보의 적실성 있는 정책비전이 부동층의 표심을 움직이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야당의 ‘정권 교체론’이 여당의 ‘정권 유지나 재창출론’보다 우세하다. 이재명 후보는 ‘성장을 통한 경제 발전론’, 윤석열 후보는 반문재인 정부를 앞세운 ‘정상국가 건설론’을 표방하고 있다. 앞으로 여러 차례의 TV 토론은 후보의 자질과 내공이 표출되고 그것이 유권자의 선택기준이 될 것이다. 여야 모두 선대위의 구성을 마쳤지만 아직도 결속력 있는 선대위는 작동치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예측할 수 없는 돌발변수가 오히려 선거의 판세를 흔들 가능성도 있다.대선 후보의 알지 못한 비리 폭로, 대통령의 지지율 급락, 현 정권의 측근 비리 노출, 군소 정당의 선거연합의 성공, 코로나 사태의 악화 등은 선거에 영향을 미칠 돌발 변수이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이러한 돌발 변수를 예측하기는 어렵다. 청년층 표심 잡기와 인재 영입 노력이 선거 판세에도 다소 영향을 미칠 것이다. 앞으로 펼쳐질 3개월의 선거의 과정을 예의 주시해 보자.

2021-12-08

우산 수선

정미영 수필가 아파트 앞 양지바른 곳에 트럭이 왔다. ‘우산 수선’이라는 현수막을 붙인 차를 보니 처음에는 뜬금없었다. 입동이 한참 지난 탓에 제법 기온이 쌀쌀했기 때문이다. 며칠 전 비가 내리기는 했어도 우산을 고쳐 쓰기에 어울리는 시기는 왠지 장마철을 앞둔 시점일 것 같았다.하지만 나만의 편견이었다. 비는 지금껏 봄여름가을겨울 내렸고 눈이 올 때도 우산을 쓰는 사람이 있지 않은가. 마침 내게도 우산 살대가 부러지고 손잡이가 끈적거려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 있었기에 서둘러 챙겨 들고 나왔다.노인이 우산을 고치고 있었다. 노인은 손 때 묻은 도구들을 바꿔가며 부러진 살, 휘어진 대, 찢어진 천을 깁고 펴고 이어놓았다. 정성스레 깁는 모습에 믿음이 갔다. 시간이 걸릴 것 같다며 볼 일을 보고 오라는 말에, 구경해도 되느냐고 말하며 앉은뱅이 의자에 내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우산 고치는 분을 만나기가 어려워요.”노인은 우산 고치던 손길을 잠시 멈추고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요즘은 우산을 고쳐 쓰는 사람보다는 버리는 사람이 더 많은 시대가 아닌가? 처연한 웃음을 지으며 오히려 나에게 반문했다.“그럼, 어르신은 왜 우산 고치는 일을 하세요?”내가 어줍지 않은 말투로 묻자,“나야, 할 줄 아는 재주가 이것밖에 없으니까.”그러고는 다시 일에 집중했다.내가 맡긴 우산의 차례가 되었다. 우산 고치는 모습을 지켜보니 오랜 세월 한 가지 일에 몰두한 장인의 손길이 느껴졌다. 부러진 살대를 교환하고 실로 이어놓는 손길이 제법 꼼꼼하면서 자신이 하는 일에 자부심이 느껴졌다. 이제 손질이 끝나면 우리 집에 있는 다른 우산들처럼 비 오는 날에 요긴하게 쓰일 것이다.학창 시절, 교실 입구까지 색 고운 우산을 들고 오는 친구엄마를 보면 부러웠다. 우리 엄마는 가게 일로 항상 바쁘셨기에, 갑작스럽게 비가 내려 우산을 챙겨가지 못한 날이면 나는 비에 젖어 집에 오기 일쑤였다. 몸과 마음이 흠뻑 젖은 채로 걷고 뛰기를 반복해 집에 오면 엄마는 미안하다며 수건으로 내 머리칼을 닦아주며 책가방을 받아 내렸다.어렸을 때의 기억 때문에 자식에게는 우산을 꼭 챙겨주고 싶었다. 그런데 올해 중학생이 된 딸아이는 우산을 잘 챙겨가지 않는다. 등교 전 일기예보를 보고 비가 온다는 소식이 있으면 접는 우산을 책가방에 넣어두지만, 나중에 보면 슬그머니 책상 위에 빼놓고 갈 때가 많다. 감기 걸리면 어떡해? 걱정스런 눈길로 물어보면 괜찮다, 라는 대답만 무심하게 돌아올 뿐이었다.노인이 우산을 다 고쳤다며 나를 불렀다. 우산에 대한 과거 속에 빠져 있던 나는 기억의 편린들을 바람결 따라 허공으로 날려 보냈다. 우산을 받아들고 손잡이를 살펴보고 살대도 잘 고쳐졌는지, 접었다 펴기를 반복해 보았다. 손잡이가 끈적임 없이 매끈하고 우산 살대도 마무리가 튼튼하게 되어 있었다. 만족스러워 하는 내 얼굴을 보자, 노인의 얼굴에도 수선을 마친 사람의 흡족한 미소가 떠올랐다.우산을 집에 들고 와서 다시 한 번 펼쳐보았다. 그러다가 문득 내 언행과 습관이 잘못되었을 때에도 우산을 고치듯 제때에 수정하고 보완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오면서 말과 행동의 실수로 후회하는 일이 많았고, 잘못된 습관은 나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여간해서는 잘 고쳐지지 않는다는 것을 순간순간 체득했다.지나간 삶은 우산처럼 수선해서 쓸 수 없다. 우산을 더 이상 고쳐 쓸 수 없을 때 새로 장만해서 사용하는 것처럼, 다시 돈을 주고 살 수 없다. 그러므로 내 마음속을 수시로 점검하고 수선하면 좋을 것 같다. 마음의 무엇이 부서져 있는지, 내 생각의 어디가 고장이 나 있는지, 자주 들여다볼 일이다. 그러면 앞으로 다가오는 생활 속에서 폭풍우가 쏟아져 감당하기 힘들거나 마음에 희뿌연 안개비가 내려 울고 싶을 때, 잘 견뎌낼 수 있으리라.

2021-12-08

회화나무의 힘을 느끼다

울긋불긋 잘 익은 계절, 그 이파리들이 바람에 흩날린다. 드높이 푸르던 하늘이 낮아지고 하늘 바탕을 수놓던 구름의 수채화도 슬그머니 사라졌다. 수시로 보았던 산은 붉게, 노랑으로 채색한 것들을 마지막 빛깔을 내려놓는다.11월의 마지막 날, 영천시 자천면 오리장림을 걷는다. 산책로가 자그마한 숲길이다. 입구에는 수령이 백 오십 년이 지난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다. 숲이 있어 홍수로부터 안전할 수 있었고, 대책 없이 불어오는 강한 바람에도 숲이 있어 견딜 수 있었다. 숲은 자천리 일대 좌우 오리에 걸쳐 뻗어 있다고 해서 오리장림(五里長林)이라 부른다. 지금은 국토 확장 공사로 많이 잘려 사라지고 자천마을 앞 군락지 몇 군데만 남아있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1999년 4월에 천연 기념 제404호로 지정되었다.우리나라에서 보기 힘든 단층 혼유림이다. 숲에는 낙엽 활엽수인 은행나무, 왕버들, 굴참나무, 느티나무, 팽나무, 풍개나무, 회화나무, 말채나무가 어울려 살고 있다. 상록침엽수로는 소나무, 해송, 개잎갈나무가 자라고 있다. 나무는 도로 가까이 제 뿌리를 내리고 몸피는 살짝 뒤틀려 있고, 가지들은 숲을 향해 휘어져 있다. 도로에서 나는 시끄러운 소리가 싫은지, 모두 숲을 향하고 있다. 경주시 안강읍 육통마을 회화나무. 나무의 성질은 그 종류대로 자라는 게 다르다. 그런데 이곳의 나무들은 수백 년 동안 어찌 한세월같이 했을까. 옆 지기 나무가 쑥쑥 자라는 것에 더러는 제 키를 키우지 못할 것 같고, 더러는 말라 죽기도 했을 텐데, 숲길에 들고 보니 특별한 나무가 눈에 띄지 않고 같이 살고 있다. 느티나무는 느티나무대로, 회화나무는 회화나무대로 그렇게 숲을 이룬다.숲에는 회화나무와 느티나무의 연리목이 있다. 연리목은 대부분 같은 종류의 나무가 가까이 있을 때 생기는 별난 현상인데 이곳의 회화나무와 느티나무는 함께 자라고 있어 더 신비롭다. 수백 년 동안 어우렁더우렁 서로를 부둥켜안으며 살고 있기에 계절이 깊어가는 이때도 오히려 더 다정해 보인다.회화나무는 학자 나무라고 한다. 옛 선비들은 마을 입구에 회화나무를 심어 ‘학문을 게을리하지 않는 선비가 사는 곳’임을 알렸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의 유교 관련 유적지에서 회화나무를 많이 볼 수 있다. 도산서원이 배경인 천 원짜리 지폐 뒷면의 무성하게 그린 나무, 고산 윤선도가 거처한 해남의 녹우당, 안강 옥산서원 입구, 성주의 한개마을에 회화나무가 있다. 이순혜 ​​​​​​​수필가 회화나무는 귀신이 피해 가는 나무라 여기기도 했다. 안강읍 육통리에 있는 회화나무는 마을회관 옆에서 주민들과 함께 세월을 보냈다. 고려 공민왕 때 마을에 살던 젊은이가 외적(外敵)을 물리치기 위해 전쟁터로 나가면서 이 나무를 심어놓고 부모님께 자식처럼 키워 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그 후 젊은이는 장렬하게 전사하였고 부모는 아들의 뜻대로 이 나무를 자식같이 여기며 가꾸어 오늘의 모습에 이르렀다고 한다. 정월 보름날이 되면 온 마을 사람들이 이 나무 앞에 모여 동제를 지내며 새해의 행운을 빌어 왔는데 마을 사람 중에서 지난 한 해 동안 아무 사고 없이 깨끗이 지내온 사람 한 사람을 뽑아서 제주로 삼는다고 한다.안강읍 육통리의 회화나무는 무탈한지, 가는 길이 옛 정취를 그대로 풍긴다. 회화나무 길을 따라가면 그리 어렵지 않게 회화나무를 만날 수 있다. 마을 가운데 있는 나무는 마을에 사는 주민들과 아직도 함께하고 있음을 몸으로 느낄 수 있다. 바람 한 자락 불지 않고, 마주치는 사람 한 명 없어도 왠지 ‘따로 또 같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나무를 둘러본다. 가지를 보아도 몸피를 보아도 나무의 숱한 이야기가 거기에 새겨져 있음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육백 년 동안 마을의 안녕과 한 젊은이의 애국충절이 한 줄 기록되어 있다. 마을의 큰 나무는 수호목이다. 마을의 역사를 지켜본 나무는 기억한다. 옆집 순이는 서울로 시집가 아들, 딸 낳고 잘 살고, 뒷집 돌이는 손재주가 남 달아 손대는 것마다 승승장구하고 있다는 것을. 앞집 노부부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생을 마감하는 것을 묵묵히 지켜본 증인이다.나는 백 년도 못 살고 나무는 천 년을 산다. 나무는 천년을 살아도 백 년 사는 것처럼 함께 어울려 숲을 이룬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은 천년을 살 것처럼 가쁜 숨 몰아쉬며 높은 곳에 오르려 한다. 회화나무 아래서 잠시라도 욕심의 찌꺼기를 덜어내니 마음이 가볍다.

2021-12-08

영일만대교 건설 더 이상 늦춰선 안 된다

경북도와 포항시가 내년 국가 예산에 영일만대교 설계비 180억원을 요구했지만 예산심의 과정에서 타당성 조사비 20억만 반영됐다. 타당성 예산 20억원은 2016년 처음 반영된 이후 벌써 6년째다.포항시민 숙원인 영일만대교는 매번 선거 때마다 정치권이 지역대표 사업으로 선정, 공약을 했지만 아직도 타당성 조사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016년 포항∼울산간 고속도로 개통에 이어 2023년 포항∼영덕간 고속도로가 완공된다고 해도 영일만대교 사업이 확정되지 않으면 동해안고속도로는 여전히 미완성으로 남는다.1992년 영일만대교 사업이 처음 구상된 이후 30년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아직도 결론을 못낸 상태다. 2008년 정부의 광역경제권 선도사업으로도 선정됐으나 총사업비 협의 과정에서 제외됐고, 2019년 1월 발표된 정부의 예타면제 사업 대상에서도 빠졌다.전국에는 35개의 해상교량이 있지만 경북에는 단 한 군데도 없다. 수 조원이 투입된 호남지역의 여러 대교건설 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된 것과 비교하면 억울한 측면이 없지 않다. 내년도 예산에 20억원이 반영돼 사업의 연속성은 살렸으나 타당성 조사결과에 따라 운명이 갈려지게 될 처지다.1조6천억원이 소요되는 영일만대교 건설은 매번 예비타당성 조사에서 사업비가 과도하고 경제성이 낮다는 이유로 배제됐다. 그러나 지금은 평가대상 환경이 많이 달라졌다. 국토균형 발전의 명분도 커졌고 동해안권 발전의 핵심 인프라이란 점이 간과돼선 안 된다는 것이다. 이 사업은 동해안 유일의 국제 컨테이너항만인 영일만항의 발전을 위한 마지막 단추이자 환동해 시대 북방교역의 교두보 역할이 기대되는 것이다.무엇보다 2023년 포항-영덕간 고속도로 개통에 앞서 이 사업의 조기 확정이 필요하다. 현재 포항을 둘러가는 우회도로의 교통량도 숨찰 만큼 꽉 차 있다. 영덕을 잇는 고속도로가 완공되면 교통대란과 물류비 증가 등 사회경제적 손실도 상당할 것이 예상된다.포항시민의 오랜 숙원인 영일만대교 건설사업은 이제 당위성이 충분히 쌓였다. 대교 건설이 실현 되게끔 지역 정치권의 분발과 정부의 전향적 자세가 필요하다.

2021-12-08

디지털 장의사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이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되면서 디지털 장의사란 새로운 직업이 주목받고 있다. 디지털 장의사는 디지털 기록을 지우는 작업을 통해 원치 않는 정보로 고통받는 피해자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희망을 주는 비즈니스다.불법 촬영물과 비동의 유포(보복성 음란물), 사적인 이미지와 정보 유출 그리고 오래전 남긴 SNS 게시물이나 댓글 등 원치 않는 디지털 기록을 삭제한다. 숨기고 싶은 SNS 게시글이나 ‘흑역사’ 사진, 비방글, 악성 댓글, 욕설과 고객 문의 게시판에 남긴 개인정보 등도 포함된다.우리나라에는 2020년말 기준 디지털 장의사 업체 20여 개가 활동하고 있다. 작업 과정은 일단 의뢰인과의 상담 후 빅데이터 프로그램을 이용해 의뢰인의 데이터를 수집해 긍정적인 게시물과 부정적인 게시물로 분류하고, 악성 내용과 허위사실을 파악한다. 이 내용을 의뢰인과 공유해 삭제 요청 여부를 논의하고, 위임장을 받아 각 사이트에 기록 삭제 요청을 진행한다. 삭제가 완료된 후에는 1년간 모니터링한다.디지털 장의사는 공간 임대나 고가의 장비가 필요하지 않아 1인 창업으로 시작하기에 알맞고, 나이와 성별, 경력이 요구되지 않는 직업이다. 대신 하루에 100개가 넘는 게시물을 읽으며 삭제 여부를 판단하고, 말의 뉘앙스에 따라 비판인지 비방인지 판단을 내려야 하므로 높은 분석력이 요구된다.현재 국내 디지털 장의사 자격증은 국가 공인이 아닌 민간자격증으로, 한국직업능률개발원, 한국디지털평판관리협회 등에서 발급하는 디지털 장의사 자격증이 있다. 의뢰인당 30만원부터 많게는 200만원 정도를 받으며, 업체당 연간 의뢰 문의만 해도 수천 건에 이른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유망 직업이란 말이 실감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12-08

새롭게 변신하는 동해안 어촌마을 기대된다

요즘 경북도내 동해안 어촌마을을 가보면 곳곳에서 어항시설을 현대화하고 아름다운 해변산책로를 만드는 사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다. 해양수산부가 2년 전부터 추진하고 있는 ‘어촌뉴딜 300사업’ 대상지에 지도에도 잘 나오지 않는 동해안 어촌마을이 상당수 포함됐기 때문이다. 내년에 계속되는 공모사업에도 경북도내에서는 포항 방석리항과 경주 척사항, 영덕 사진3항, 울진 직산항, 울릉 학포항이 선정됐다. 해양수산부는 지난 2019년부터 오는 2024년까지 전국 300개 어촌마을을 뉴딜 사업지로 선정해서 새로운 관광마을로 재생시킨다는 계획이다. 전국적으로 3조원이 투입되는 이 사업 공모에 선정되면 어항시설을 현대화하는 한편, 어촌지역의 다양한 자연·문화 자원을 활용해서 마을별로 특색있는 사업을 추진한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관광사업들을 보면, 체험휴양마을센터조성, 돌미역공동작업장 및 유통센터, 해안레저산책로, 낚시광장, 족욕쉼터, 해변마실길, 해녀체험관 등이다.경북도내에서는 2019년 포항 신창2리항, 경주 수렴항, 영덕 석리항, 울진 석천항, 울릉 천부항 등 5개 마을, 2020년에는 포항 삼정리항, 포항 영암1리항, 포항 오도2리항, 경주 나정항, 경주 연동항, 영덕 백석항, 영덕 부흥항, 울진항, 울진 기성항, 울릉 태하항, 울릉 웅포항 등 11개 마을이 선정돼 현재 재생사업이 추진되고 있다.정부가 진행중인 어촌뉴딜사업의 후속으로 ‘포스트 어촌뉴딜사업’도 추진한다니 기대가 된다. 포스트 뉴딜 사업은 어촌의 생활수준을 높이고, 일자리를 창출해서 신규인구를 유치하는 게 목표다. 내년에 전국 4개 어촌마을을 시범마을로 선정해서 사업을 시작한다고 한다. 포스트 뉴딜 공모사업에 경북도내에서 많은 어촌마을이 선정될 수 있도록 사전준비를 철저히 할 필요가 있겠다.사실 동해안이든 서해안이든, 전국 해안에 있는 작은 어촌마을 가보면 대부분 우수한 자연경관과 문화유산, 지역특산물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인구가 줄어들어 소멸위기에 처한 곳이 많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뉴딜사업을 통해 어촌마을의 자원을 발굴하고 생활인프라를 개선해서 어촌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사업을 계속 추진하는 것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2021-12-08

국민은 목이 메인다

장규열 한동대 교수 고구마를 입에 문 느낌이다. 석 달 남짓 남았는데 내일이 보이지 않는다. 흠집내기와 인신공격이 날아다닐 뿐 뭘 어찌 하겠다는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처음 듣는 이름들에 무거운 직책이 걸리지만 그를 통해 무엇이 바뀔 까 아는 사람이 없다. 곁에서 도울 사람들마저 매서운 칼바람에 흩어져 버리면, 오래된 이름 낯익은 얼굴들은 기득권 정치인들뿐. 애꿎은 신기술이 소환되어 인공지능과 가상현실로 선거판에 임한다니 본격적인 4차산업혁명은 정치권에서 실천할 것인지. 검증이란 이름으로 사람의 뒤를 캐느라 정작 중요한 건 수다하게 놓치는 오늘. 소중한 하루하루가 속절없이 떠내려가도 그가 정작 무엇을 할 것인지 아무도 묻지 않는다. 언론은 몰려다니며 그 옛날 주간지가 생각나는 글들만 써대는지.석 달이다. 시간이 없다. 나라의 미래를 조망하고 국민의 일상을 챙겨야 한다. 이럭저럭 하다가 또한번 잘못 뽑았다는 후회와 소동에 휩싸이지 않으려면 오늘 모두 정신을 차려야 한다. 직시해야 한다. 우리가 처한 오늘의 세상을. 왠지 모두 혼이 나가고 약에 취한 듯 가짜뉴스와 유튜브에 흔들리는 오늘을 바로 보아야 한다. 나라를 건지고 국민을 일으키는 비전을 세워야 한다. 공적인 미래 기능과 사적인 과거 흔적 사이에서 경중과 우선순위를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과거에 매몰되어 가능성을 잘못 짚어도 문제지만, 내일만 바라보느라 건너온 공과를 놓쳐도 안 된다. 그런 와중에 그래도 가장 중요한 건, 후보 자신의 생각과 계획을 국민이 분명히 듣고 판단하는 일이 아닐까.정치권과 언론은 후보들 간에 담론과 토론이 무르익도록 이끌어야 한다. 풍성한 대화와 소통 가운데 국민도 함께 생각하고 고민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완벽한 후보는 없다. 견주고 비교하면서 나아가야 한다. 더 나은 내일을 향하여 국민이 결정 과정에 의미있게 참여하도록 판을 짜야 한다. 정치인 몇 사람이 정계를 주무르는 일은 이제 사라져야 한다. 집단지성이 작동해야 하고 공동체의식이 살아나야 한다. 누구든 언론을 장악하여 비틀고 왜곡하는 일도 공적담론의 장이 열리면 잠이 들 터이다. 익숙하지 않아도 후보에겐 숙명이 아닌가. 나라와 국민 앞에 자신의 모습과 생각을 내어놓고 판단하게 하는 일은 민주주의와 선거에서 요체이자 기본이다. 일방적 주장과 상대없는 외침은 민주적 결정과정을 혼란케만 할 뿐이다.대선전은 이미 무르익었다. 본선에 임박한 시점에 법으로 정한 토론이 있겠지만, 국민은 그를 기다릴 여유가 없다. 오늘처럼 어려운 시점에 운명처럼 다가온 대선을 분노와 혐오에만 근거하여 치를 수는 없다. 불꽃같은 관찰과 칼날같은 판단으로 시대와 세상이 요청하고 기대하는 결과를 빚어내야 한다. 고구마를 한가득 입에 물은 듯 답답한 국민이 이제는 현명한 선택이 가능하게끔 선거판이 돌아갔으면 한다. 토론과 담론이 무르익는 대선전은 국민이 기꺼이 참여하고 함께 고민하는 한바탕 축제의 장이 되어야 한다.

2021-12-08

안양 사고 현장을 지나며

12월의 첫날, 경기도 안양에서 끔찍한 사고가 있었다. 도로 포장 작업을 하던 근로자 세 명이 도로다짐용 중장비 롤러에 깔려 목숨을 잃었다. 롤러 운전기사가 작업에 방해되는 라바콘을 치우려고 장비에서 내린 순간 조작 기어봉에 옷이 걸리면서 롤러가 움직였다고 한다. 시동을 끄지 않은 상태로 기어를 중립 위치에만 둔 채 장비에서 내린 게 화근이었다. 희생자 세 분 다 60대로 누군가의 부모이자 자상한 할아버지 할머니였을 것이다.롤러와 같은 중장비의 경우 운전석이 높은 곳에 있어 시야가 완벽하게 확보될 수 없기에 반드시 신호수의 도움이 필요하다. 하지만 사고 당일 현장에는 신호수가 없었다. 신호수가 없더라도 장비를 멈출 때 시동을 끄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안전불감증에 의한 인재라는 사실이 너무 안타깝고 허망하다. 운전기사는 베테랑이었을 것이다. 수십 년 동안 해온 일이라서, 매일 하는 작업이라서 누구보다도 자신 있었을 것이다. 옷이 기어봉에 걸리는 희박한 우연을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을 것이다. 사망한 근로자들 역시 롤러가 등 뒤에서 덮치리라는 걸 상상조차 하지 못했으리라.안전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라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도로 위에서 사고 현장과 유사한 형태의 작업들이 이루어지는 중이다. 공사 책임자는 매일 작업 시작 전 안전수칙 교육을 실시하고, 작업자들은 귀에 못이 박혀 다 아는 내용이라 하더라도 0.1퍼센트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반복 학습해야 한다. 안전수칙이 철저하게 지켜진다 하더라도 사람이 하는 일이기에, 사람이 만든 기계로 하는 일이기에 돌발적인 위험이 발생할 수 있다. 그 돌발적 위험을 방지하는 최후의 안전장치가 바로 작업 감시자와 신호수다. 이번 사고는 안전수칙이 지켜지지 않은 데다 작업 감시자와 신호수마저 부재한 상태에서 벌어진 비극이다. 도대체 이런 일들이 왜 끊이지 않는 걸까?고용노동부가 7월부터 10월까지 넉 달 동안 전국 2만4백여 개 사업장의 안전조치 상태를 점검한 결과 64퍼센트에 달하는 1만3천여 개 사업장이 안전조치를 위반해 시정 조치를 받았다. 내년부터 시행되는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인 50인 이상 사업장의 위반 사례는 크게 줄어든 반면 50인 미만 사업장의 위반율은 증가했다. 안양 사고 현장에는 채 열 명이 되지 않는 근로자들이 작업하고 있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반쪽짜리 법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효과적 제재라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사소한 안전조치가 이행되지 않아 근로자들이 목숨을 잃는 현장은 대개 소규모 작업장인만큼 중대재해처벌법은 50인 미만 사업장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만 한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사고가 난 안양여고 사거리는 매일 지나다니는 길이다. 배달대행 아르바이트를 하며 스쿠터를 타고 지나거나 산책을 하며 오간다. 사고 다음날, 야권 대선후보가 현장을 찾아 추모했다. 상당수의 산업재해가 작업자의 부주의에서 비롯되므로 작업자 개인 잘못이라는 뉘앙스의 발언이 문제가 됐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작업자의 부주의’를 야기하는, 또 이미 발생한 부주의를 결국 인명사고로 이어지게 하는 허술한 안전관리 시스템을 성토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논했어야 한다.정치인들이 다녀간 후, 진눈깨비가 흩뿌리는 죽음의 현장을 천천히 지나가보았다. 늘 다니는 길이지만 갈까 말까 한참을 망설여야 했다. 채 다져지지 못하고 봉분처럼 쌓여 있는 아스콘 앞에 시민들이 국화꽃과 담배를 올려두었다. 세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롤러는 자신이 무슨 일을 벌였는지 모르는듯 그저 고요하게 서 있을 뿐이었다. 롤러 바퀴에 기댄 국화꽃 뒤로 ‘가꿈’이라는 가게 간판과 ‘행복한 사람들’이라는 빌라가 대비되는 풍경을 차마 오래 바라보지 못했다. 라바콘으로 통제해놓은 현장 주변에서 배달대행 스쿠터가 불법 유턴을 하고, 코로나 불황을 이겨내지 못한 몇 곳의 상점들에는 ‘임대문의’ 현수막이 내걸려 있었다. 눈에 들어오는 모든 장면들이 다 슬펐다.날이 어둑해지고, 가로등 불빛이 하나 둘 켜질 무렵, 진눈깨비가 세차게 내리는데 한 중년의 남성이 아스콘 앞에 국화꽃을 헌화하고 무릎을 꿇어 두 번 절했다. 현장에 세워진 나무합판에는 시민들이 적어놓은 추모 메시지가 가득했다. 돌아가신 분들도, 사고를 낸 분도 다 안타깝다. 추운 겨울밤, 가족이 기다리는 집으로 가지 못하고 길 위에서 목숨을 잃은 분들의 명복을 빈다. 안양이라는 지명은 불교의 안양정토에서 왔다. 그곳은 괴로움이 없는 안락한 세상이다.

2021-12-07

혼자도 잘 삽니다

부모님에게 전화가 걸려오면 외면하던 때가 있다. 대학 졸업을 막 앞둔 시점, 마땅히 취업할 곳이 정해지지 않은데다 졸업 후 부모님이 생각하는 ‘응당 그래야만 하는 성과나 길’이 희미하던 때였다.나도 부모의 입장에서 뚜렷한 성과 없이 갈팡질팡하는 자식을 본다면 걱정이 들 게 분명하지만, 인생에 있어 누구나 방황하는 시점이 오기 마련이고 그러니 다시 중심을 찾을 수 있도록 묵묵히 기다려주시길 내심 바랐다.결국 졸업 직후 직장을 구할 때까진 아르바이트 생활을 하며 살아보기로 했다. 간간이 하던 아르바이트를 직원 스케줄로 바꾸어 하루 9시간씩 근무했다. 동시에 대학원에 등록하기도 하고, 자격증을 위한 여러 학원과 센터를 다녔다. 아주 가끔 청탁이 오면 시를 썼고, 시집 제의를 받았을 땐 시집을 묶기 위한 창작자의 삶도 잠깐 살았다.그렇게 창작자와 생활노동자를 오가는 동안에도 늘 취업의 문을 두드렸다. 오십 통이 넘는 곳에 이력서를 넣었고 열 곳 정도 면접을 보러 다녔지만 정말 쉽지 않았다. 나 말고도 많은 이들이 취업난속에서 길을 해매고 있단 현실이 씁쓸했다.끊임없이 나아가고 있었지만 늘 그대로 머무르는 듯 보였는지, 앞서 사회 경험을 겪은 이들의 조언을 맞닥뜨리는 상황이 빈번이 생겼다. 낮엔 음식점에서 일하고 퇴근 후 시를 쓰는 날 보며 내 재능이 아깝다며 안타깝게 보는 이도 있었고 어린 나이에 왜 굳이 글을 쓰냐며 이해할 수 없다던 이도 있었다.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어서 다른 길을 찾아보라는 조언은 늘 끊이질 않았는데, 그럴 때마다 늘 궁금했다. 저 사람들은 무엇을 부정하고 있는가?약 3년 동안 아르바이트 일을 하며 예상치 못한 일을 매일 마주했다. 다양한 사람을 정말 많이 만났고, 그들의 생각과 취향을 어떠한 이익이나 목표 없이 시시콜콜 나누어 즐거웠다.시도조차 해 볼 생각 없었던 암벽 타기를 하고, 런닝하는 재미를 알게 되었고, 낯선 향신료 때문에 진입 장벽이 높았던 베트남 쌀국수와 맵고 얼얼한 마라탕의 맛에 눈을 뜬 건 그때의 경험을 통해 알게 된 것이다.다양한 방식으로 나의 세계를 확장시키는 동안 자기 객관화와 확신에 대해 알게 됐다고 해야 할까. 초중고교와 대학교를 나오며 늘 무한 경쟁과 성적 편가르기에 예민해져 있던 나는 학교 졸업과 동시에 자유로워졌다. 타인의 세계를 어떠한 조건 없이 기웃거려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기에 행복의 기준을 확고히 세우게 되었다,최근 비혼을 주장하는 20-30세대가 증가함에 따라 이를 보며 자폭 세대라 부른단 사실을 알았다. 결혼도 안하고 아이도 낳지 않아 출산율이 심각해지고 있으니 마치 2030세대가 자폭하려는 듯 보여서 였을까.그런데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비혼을 주장하는 이들에게 책임을 묻는 건 잘못된 생각이 아닌가. 내 집 마련이 힘겨운 현실에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육아를 한다는 건 판타지적인 사치에 가깝다. 청소년 자살률 세계 1위, 청년 취업난이 극심한 현실에서 나는 내가 낳은 아이를 온전히 지켜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낳기 좋은 현실이 마련되어 있지 않으니, 이 잔혹한 되물림을 굳이 반복해야 하나 싶은 것이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많은 2030세대는 의무나 목표로써 출산을 택하지 않길 희망한다. 결혼은 내 인생의 업적과 성공률을 지표하지 않는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애초부터 모든 걸 포기하고 살아가야하는 세대에겐 출산과 결혼은 주어지지 않은 선택지다. 더는 노력만으로 되는 게 아님을 뼈저리게 학습해왔기 때문이다.이러니 결국 남은 딱 한 가지의 선택지인 개인의 행복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 나에겐 일과 취미가 그렇다. 사회에서 인정받으며 내 몸 하나 잘 건사하는 건강한 어른으로 지내고 싶다. 나의 선택에 확실한 책임감을 지니고 있으면서 자유롭고도 자주적인 삶을 산다면 충분히 만족스럽다.하지만 결혼과 출산을 외면하거나 도피한단 뜻은 아니다. 형식에 벗어나서 비혼도 행복을 추구하며 안정된 삶을 살 수 있도록, 또는 결혼을 희망하는 예비부부와 아이를 낳기 희망하는 이들에게 더 살기 좋은 세상이 오도록 정치와 법률적 제도에 꾸준히 관심을 가질 것이다. 누구의 잘못을 꼬집기보단 각 세대가 머리를 맞대어 미래 세대가 살기 좋은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

2021-12-07

강자(强者)의 철학

김규종 경북대 교수 도스토예프스키의 장편소설 ‘죄와 벌’(1866)의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는 니체의 ‘초인(超人·Uebermensch)’을 선행한다. 법대 휴학생인 라스콜리니코프는 전당포 노파 알료나 이바노브나를 ‘이’라고 생각한다. 가난한 사람들이 저당으로 잡은 물건으로 사욕을 채우는 버러지 같은 인간으로 그녀를 본 것이다. 노파가 가진 재산을 훔쳐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되돌려주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고 그는 생각한다.치밀한 계산과 사전답사를 마친 그는 완전범죄를 실행하기 직전 노파의 여동생 리자베타와 마주치게 된다. 그는 불가피하게 두 번째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하지만 그의 흉중에는 자신감이 있다. 나폴레옹은 수십만 수백만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 갔지만, 누구도 그를 살인자라 하지 않는다. 외려 그를 영웅이라 부르고 숭배하기도 한다. 벌레 같은 노파와 누이동생을 죽인 것이 무슨 문제란 말인가?!그의 사상적 배경은 강자에게는 모든 것이 허용된다는 ‘강자의 철학’이다. 그의 심리에는 자신을 강자의 반열에 올려놓고 싶은 소영웅주의가 있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우연히 거리의 여자 소냐를 알게 되고 나서 흔들리기 시작한다. 자신처럼 인간적인 한계를 뛰어넘은 순교자 소냐의 형상에 크게 동요하는 라스콜리니코프. 소냐의 또 다른 변용은 스비드리가일로프다.라스콜리니코프는 루소가 ‘에밀’에서 갈파한 ‘양심의 가책’이 보낸 ‘섬망에 시달린다.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란 확신을 뒤집어버리는 섬망과 저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목소리. 점점 강력하게 조여오는 소냐의 자수 권유. 그가 한낮에 더러운 센나야 광장에 키스하고, 포르피리가 기다리고 있는 사무실로 올라가는 장면은 기막히다. 뒤에서 그를 따르면서 모든 것을 보고 있는 소냐.‘죄와 벌’과 라스콜리니코프를 거명한 데에는 까닭이 있을 터. 요즘 한국 사회에 유령처럼 떠돌고 있는 ‘돈’과 ‘권력’을 향한 강박 때문이다. 잘 사는 18개 나라 국민의 의식을 조사한 결과가 참혹하다. 다수가 가족을 가장 소중한 첫 번째 가치로 꼽았지만, 유독 한국인들은 ‘돈’을 맨 앞자리에 올려놓았다. 자나 깨나 ‘돈 돈 돈!’인 것이다. 아, 아직도 돈을 향한 처절한 갈망이 기갈(飢渴)처럼 해소되지 않았구나, 하는 허망함!깜냥도 되지 못하는 자들의 대권 놀음에 언론사들의 지면이 하루가 멀다 않고 누렇게 시들어간다. 권력을 향한 그들의 탐욕과 그들을 향한 민중의 분노가 상충하는 양상이다. 그들 가운데 누가 21세기 20년대 대한민국을 이끌어나갈 적임자인가?! 사회-경제적 불평등으로 인한 극심한 정치적-문화적 양극화, 상상을 뛰어넘는 세대 갈등과 남녀갈등, 뿌리 깊은 분단 문제 극복 같은 당면한 난제를 누가 풀어낼 수 있단 말인가?!그저 돈과 권력만을 탐하는 무리 때문에 골수까지 병들어가는 이 나라 민초(民草)들의 고단한 삶을 보듬어줄 정치가와 정치세력의 도래를 기대한다. 돈과 권력을 움켜쥔 강자들만을 위한 정치가 아니라, 세상 모두가 상생하는 정치와 정치가를 소망한다.

2021-12-07

야당 선대위 합류 TK 인사들 역할 크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 선거대책위원회가 그저께(6일) 출범했다.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과의 갈등, 이준석 대표의 잠행 소동 등으로 진통을 겪던 ‘윤석열 호(號)’가 후보선출 한 달 만에 닻을 올린 것이다. 윤 후보는 이날 연설에서 “아흔아홉가지가 달라도 정권교체 뜻 하나만 같다면 힘을 합쳐야 한다”며 야권통합을 특히 강조했다. 국민의힘을 비롯한 야권전체 구성원들을 향해 정권교체를 위해서는 모두 일체가 돼 외연확장에 나서야 한다는 것을 간절하게 호소한 것으로 읽힌다.출범식에 홍준표 의원과 유승민 전 의원은 불참했지만, 선대위에 대구·경북(TK)출신 전·현직 국회의원들이 대거 합류해 시·도민들의 기대가 크다.대구수성갑 출신 중진인 주호영 의원은 선거 캠페인의 핵심인 조직총괄본부장을 맡았다. 지역별 본부와 시민사회단체, 재외국민, 여성·청년 등 대선 활동과 연관된 모든 공·사 조직을 총괄하는 자리다. 홍준표 캠프 총괄본부장을 맡았던 3선의 강석호 전 의원은 선대위 직속 국민통합위원장을 맡았다. 야권통합에 민감한 윤 후보와 밀접하게 접촉하면서 외연확장에 총력을 쏟는 자리다. 윤재옥(대구 달서을) 의원은 후보전략자문위원장을 맡아 선거 판세나 민심 분석을 통해 선거전략을 자문하는 역할을 한다. 김재원 최고위원은 중앙선대위소속 클린선거전략본부장을 맡아 상대후보의 네거티브 공세를 방어한다.이외에도 대구·경북 출신 대부분 국회의원들과 청년 정치인들이 선대위의 주요 보직을 맡았다. 사실 윤 후보가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데는 이 지역의 역할이 컸다. 윤 후보 자신도 경선 당시 “대구경북 정치인과 당원들이 물불 안 가리고 지지해 주고 격려해 줘 앞을 향해 뚜벅뚜벅 갈 수 있었다”고 밝힌 적이 있다.선대위에 참여한 TK인사들은 우선 정권교체라는 목표를 위해 총력을 쏟아야겠지만, 정책 공약 결정 과정에서는 이 지역 민심을 후보에게 정확하게 전달해 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특히 경북도가 당면하고 있는 지방소멸 문제는 청년들의 취업과 결혼, 출산 문제에 직결돼 있기 때문에 차기 대통령이 국정과제 1순위로 삼아야 한다.

2021-12-07

수도권 집중으로 지방대학 절반 사라진다

지방소재 대학의 25년 후 생존율이 50%에도 못미칠 것이란 연구보고서가 나와 충격을 주고 있다. 전국에 따라 편차는 있으나 지금으로부터 25년 후 대구에는 현재의 절반 정도의 대학이 문을 닫고 경북은 37% 대학만이 생존할 것이란 예상이다.지방소멸 위기감에 빠져 있는 지역 입장에서는 어느 정도 예상을 한 문제지만 불과 5년 후부터 대학이 하나둘씩 문을 닫는다고 생각하면 끔찍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이동규 동아대교수(기업재난관리학과)가 최근 발표한 인구변동과 미래전망(지방대학분야) 보고서에 의하면 국내 2·4년제 대학 386곳 가운데 2046년에는 49.2%인 190곳만 살아남을 것으로 예측됐다. 전국 17개 시도 중 대학 생존율이 70% 이상인 곳은 서울과 세종, 인천 세 곳뿐이다.이 조사는 통계청의 장래인구 변동 요인과 주요 연령계층별 추계인구, 대학 알리미의 신입생 충원현황 등을 근거로 한 추정치여서 결과적으로 대학의 존폐는 지역의 인구감소와 직접적 관련이 있다. 특히 보고서는 수도권과 비수도권 대학의 격차가 심각하게 드러나고 있음을 보여줘 수도권의 인구 집중이 지방소멸을 재촉하고 지방소재 대학의 생존까지 압박하는 것으로 분석됐다.보고서에 나타난 생존율을 보면 전남(19%), 울산(20%), 경남(21.7%), 전북(30%), 부산(30.4%), 경북(37.1%), 대전(41.2%) 등으로 나타나 서울과 거리가 멀수록 생존율이 낮아지고 있다. 사람과 자본이 몰리는 수도권 과밀화 문제에 대한 정부 차원의 획기적 대책이 없으면 지방에서 나타나고 있는 공동화 현상은 더 빨리 진행될 수도 있다.지방소재 대학은 지역사회의 교육을 전적으로 맡고 있을 뿐아니라 대학이 지역사회에 미치는 경제적 효과도 엄청나다. 대학생 1명의 월 경제유발효과가 100만원이라 하지 않는가. 대학 하나가 빠져나가거나 폐교가 되면 지역사회가 가지는 손실은 막중한 것이다.지금 지방의 도시들은 지방소멸 극복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현재의 추세로 가면 머지않아 없어지는 농촌 도시가 곳곳에 생겨날 것이다. 지방대학의 생존율이 떨어진 것은 이런 지방소멸에 대한 경고에 불과하다. 국가적으로도 불행한 일이다. 대학의 자구 노력과 범정부적인 대응이 시급하다.

2021-12-07

울릉도 뱃길

고려말 왜구의 침입으로 무인도가 되었던 울릉도는 조선초 이래로 육지에서 사람이 건너가 살기 시작했다. 자료에 의하면 1911년 울릉도의 인구는 8천73명(1천414가구) 정도였다고 한다.울릉주민의 가장 큰 숙원은 육지를 오가는 뱃길 확보다. 해방 전까지 일본 화물선을 이용해 육지를 오가기도 했으나 그나마 기회 잡기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려웠다. 섬주민의 육지 나들이는 꿈같은 이야기다. ‘동해 절해고도 울릉도’라는 표현이 딱 맞는 말이다.해방후 대한해운공사의 여객선이 부산∼울릉도를 운행하기 시작했지만 한국전쟁 발발로 중단됐다. 전쟁 이후 150t 화객선 금파호가 취항, 부산∼포항∼울릉을 월 3∼4회 운항한 것이 정기선 운항의 시초다.1963년에는 380t급 철선 청룡호가 정기운항 했으나 울릉과 포항간 운항시간이 12시간이나 소요됐다. 기상에 따라 더 많은 시간이 걸리기도 했다. 1977년 도동항의 접안시설이 완공되면서 여객선 한일1호 등이 투입되고 운항시간은 6시간대로 줄었다. 일일생활권이란 말이 이때 처음 나왔다.이후 카페리호의 취항으로 울릉∼포항간 3시간대 주파가 가능해지고 관광 성수기에는 하루 두차례 왕복운항도 가능했다. 새로운 울릉도 관광시대가 열렸던 것이다.지난 9월 울릉크루즈 ‘신독도 진주호’ 취항 이후 울릉도를 찾는 관광객이 급격히 늘었다는 소식이다. 11월 중 울릉도를 찾은 관광객만 2만3천여명으로 울릉군이 관광객을 집계한 이후 가장 많다고 한다. 1만9천t급, 승객 정원 1천200명의 역대급 크루즈 여객선 취항 덕분이라 한다. 이철우 지사도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울릉도가 이제 육지가 됐다”고 언급했다. 2025년 비행장 완공을 앞둔 울릉도의 변신이 기대된다./우정구(논설위원)

2021-12-07

자원무기화 시대의 국가 전략

변창구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 세계는 지금 자원을 둘러싼 총성 없는 전쟁 중이다. 첨단산업에 필수적인 희귀자원의 무기화는 경제안보에 치명적 영향을 미친다. 미·중 패권경쟁은 글로벌 공급망 주도권경쟁으로 확산됨으로써 자원무기화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G2가 영향력 확대의 수단으로 자원을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최근 일어난 요소수 파동은 우리가 강대국의 자원무기화에 얼마나 취약한가를 보여준다. 한국은 에너지의 96%, 광물자원의 90% 이상을 해외에 의존하고 있는 세계 4위의 자원 수입국이다. 특히 4차 산업의 핵심광물로 꼽히는 니켈·코발트·희토류 등을 거의 대부분(98%∼100%)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원자재 수입을 시작으로 상품의 생산 및 수출로 이어지는 우리의 경제구조에서 ‘자원의 안정적 확보’를 위한 국가전략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우리의 자원안보전략은 국내 및 국제적 차원에서 동시에 추진되어야 한다. 국내적 차원에서는 자원강대국의 수출통제로 인한 전략품목의 공급망 리스크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신속히 대응하기 위한 ‘컨트롤 타워(control tower)’를 구축해야 하며, 주요 소재와 부품의 국산화 및 대체품 개발로 자급률을 시급히 제고시켜야 한다. 이번 요소수 사태에서 정부는 중국이 수출을 규제한지 3주가 지난 뒤에 비로소 대책회의를 열었을 정도로 자원안보에 둔감했다. 우리에게 있어서 자원은 경제적 가치를 넘어 생존과 직결된 안보문제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국제적 차원에서는 자원외교의 다변화와 해외자원개발이 절실하다. 무역협회 발표에 따르면 금년 1월부터 9월까지의 수입품목 1만2천586개 중 3천941 픔목(31.3%)이 중국·미국·일본 등 특정국가 의존도가 80%를 넘었으며, 이 가운데 중국에서 수입하는 품목이 1천850개로서 전체의 47%를 차지하고 있다. 이처럼 특정국에 대한 수입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은 실정이니 자원무기화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특히 미·중 패권경쟁 속에서 일어난 중국의 요소수 수출통제는 한국에 대한 영향력 확대의 일환이라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따라서 강대국의 자원무기화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수입노선을 다변화해야 한다. 우리에게 필수적인 전략품목들은 가격경쟁력이라는 경제논리로만 다루어져서는 안 되며, 안전한 공급망의 확보라는 안보적 차원이 더욱 중시되어야 한다. 또한 중장기적 관점에서 해외자원 개발전략을 수립, 추진함으로써 필요한 자원을 해외에서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일본이 해외자원개발을 통해서 석유·가스·구리·아연 등의 자원 확보율을 크게 제고시켰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자원이 부족한 한국이 국제분업의 경제적 효율성만 추구한다면 자원 강국의 자원무기화로 언제든지 위험에 처할 수 있다. 2019년 일본의 한국에 대한 반도체 소재의 수출 규제라는 뼈아픈 경험을 했으면서도 학습효과가 없었으니 2021년의 요소수 파동은 사필귀정(事必歸正)이었다. 역사적 경험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면 동일한 실수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2021-12-06

역대급 대구·경북 국비 예산 내실있게 집행해야

대구시와 경북도의 내년도 국비 예산이 사상 최대 규모로 확보됐다. 대구시는 국비 4조원, 경북도는 국비 10조원 시대를 열었다. 금액별로는 대구시는 4조133억원으로 지난해 국비 예산 3조4천756억원보다 15.4%가 늘었으며 경북은 10조175억원으로 지난해 국비보다 3.1%가 늘었다.대구시와 경북도의 국비 예산이 이처럼 늘어난 것은 내년도 국가 예산이 사상 처음으로 600조원을 돌파한 슈퍼급 예산으로 짜여지면서 지방자치단체의 예산도 그만큼 늘어난 탓이다. 부산시가 8조원, 경남도가 7조원, 전북과 강원도가 각각 8조원을 돌파하는 등 전국 광역단체들은 역대급 국비 확보로 반가워하고 있다.정부는 내년도 예산을 역대급 규모로 계획하면서 경제활력 제고와 미래혁신 투자, 코로나 극복을 위한 방역 강화 및 재난지원금 확보에 초점을 두었다. 국가 예산이나 지방자치단체 예산이나 국민의 세금으로 조성된 예산인 만큼 알뜰하게 쓰여져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특히 이번에 지방자치단체에 배정된 국비 예산은 지역발전에 도움이 되도록 쓰이게 자치단체 차원의 지혜로운 전략을 준비해야 한다.경북도내 시군이 올해 반납하는 국비가 1천500억원에 이른다. 최근 6년간 시군이 5천억원에 가까운 국비를 반납했다는 것은 예산 집행의 효율성이나 전략이 부족했던 탓이다. 국비예산 확보를 위해 불철주야 뛰어다닌 공무원과 정치권의 노력을 헛되게 하는 일은 없어야 하는 것이다.권영진 대구시장은 “핵심 신분야와 경제회복의 도약을 위해 꼭 필요한 사업이 예산에 반영돼 기대가 크다”고 했고,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어렵게 확보한 예산을 알뜰하게 집행해 소기의 성과를 내겠다”고 말했다.내년은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가 있고 2년 연속 이어져 온 코로나 위기 극복이라는 막중한 과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특히 코로나로 인해 어려워진 경제를 회복하는 문제는 서민의 살림살이와 관련해 매우 시급한 과제다. 배정된 국가 예산을 얼마나 알뜰하고 짜임새 있게 쓸 것인지 자치단체의 전략적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배정된 국가 예산이 지역경제 활력과 민생경제를 살리는 마중물이 되도록 잘 써야 할 것이다.

2021-12-06

공정경제의 모범 ‘상생결제’

공정경제의 모범사례로 ‘상생결제’가 주목받고 있다. 상생결제는 협력업체가 결제일에 현금지금을 보장받고, 결제일 전에도 대기업 등이 지급한 외상매출채권을 대기업의 신용으로 은행에서 현금화할 수 있는 결제 제도를 말한다.연쇄 부도의 위험이 높은 어음 결제 대신 중소기업의 사업 안정성을 위해 도입된 제도다. 기업들이 흔히 사용하는 어음의 경우 상환청구권으로 어음 부도 시 연쇄 부도 위험에 처할 수 있고, 결제일 장기화로 자금난을 초래할 수 있다. 반면 상생결제는 납품대금이 상생결제 예치계좌에 보관됐다가 하위 거래기업에 직접 지급되기 때문에 원청업체가 부도나도 압류 및 가압류를 할 수 없어 연쇄 부도 위험이 높은 어음보다 안전한 결제수단이다.또 만기일 전 대기업 신용의 저금리 할인으로 금융 비용이 절감된다. 이 제도는 지난 2018년 9월 21일부터 시행된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 개정안’, 일명 ‘상생협력법’에 따라 시행되고 있다. 올해 상생결제 확산 모범사례로는 LG전자가 선정됐다. LG전자는 최근 공정거래위원회, 중소벤처기업부, 고용노동부 등 5개 관계부처가 정부서울청사 별관서 개최한 ‘공정경제 성과 보고대회’에서 상생결제를 공정경제 모범사례로 발표했다. LG전자는 지난 해 1차 협력사에 상생결제 방식으로 7조1484억원의 대금을 지급했으며, 이 중 5천314억원이 2차 협력사에 지급됐다. 상생결제를 통한 낙수율(대기업이 1차 협력사에 지급한 물품 대금이 2차 이하 협력사까지 전달되는 비율)이 국내 대기업 가운데 가장 높은 7.4%를 기록했다.공정경제의 모범인 상생결제를 적용하는 대기업에 대한 인센티브를 더욱 늘려야 한다. 상생결제의 보편화가 공정경제의 첫걸음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12-06

지방선거 180일전…‘불법 현수막’부터 단속을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선관위가 지난주부터 선거법 위반 단속에 들어갔지만 대구·경북 도심 곳곳에는 여전히 불법 정치 현수막이 눈에 띄고 있다. 대구·경북 선관위는 내년 지방선거 180일 전인 지난 3일부터 선거법 위반행위에 대한 예방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선거일 6개월 전부터는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하기 위해 간판·현수막 등의 광고물을 설치·게시하는 행위, 표찰 등 표시물을 착용 또는 배부하는 행위가 금지된다.선관위의 단속에도 불구하고 포항시내의 경우 각급 학교 앞이나 시민 눈에 잘 띄는 횡단도로변 곳곳에는 아직도 내년 지방선거 출마희망자들이 내건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 있다. 포항시 각 구청에 따르면, 수능 일주일 전인 지난달 11일 이후부터 수능과 관련된 정치인들의 현수막 민원 접수가 끊이지 않고 있다고 한다. 대구에서도 지난달 수능을 전후해 정치인들의 응원 현수막이 주요 길목마다 걸려 시민들이 의아해했다.현재는 거의 철거됐지만 당시에는 횡단보도 신호등과 가로수 사이사이에 지자체 단체장과 지방의원 출마 희망자들이 걸어둔 현수막들이 빼곡했다. 수능관련 현수막이 올해 갑자기 등장한 것은 내년 지방선거부터 투표권이 주어지는 만 18세 이상 고교생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다. 정치인들이 수능 응원을 핑계로 교묘히 사전선거운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포항시 남·북구와 각 읍·면·동에서는 자체 정비관이나 불법광고물 제거 인력을 임시로 채용해서 불법 현수막 철거작업을 벌이고 있다. 철거 관계자들은 “현수막을 걸고도 직접 회수해간 정치인을 한 명도 보지 못했다”며 불만을 터트리고 있다. 불법 현수막이 행정력과 재정 낭비를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수능응원이나 명절 인사, 정책 홍보를 이유로 정치인이 내거는 현수막은 지자체 신고를 거치지 않는 한 모두 불법이다. 미신고 정치 현수막은 근본적으로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사전선거운동인데다, 너도나도 무분별하게 게시하기 때문에 행인을 불편하게 하고 거리미관도 해친다.현수막 선거법 위반에 대해서는 고발이 있어야 수사를 하는 게 수사기관의 관행이라는 소리가 들리는데 이해를 할 수 없다. 정치인들의 불법선거운동은 경중을 가리지 않고 엄중하게 처벌해야 한다.

2021-12-06

1500년 전 잠든 말 갑옷, 쪽샘에서 깨어나다

쪽샘 고분 유적은 4~6세기 축조된 신라 왕경인들의 집단 무덤군이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2007년부터 쪽샘 유적에 대한 발굴을 추진하고 있다. 2009년 4월 우리나라 고고학계에 놀라운 사건이 일어났다. 쪽샘 유적 내 C-10호라고 부르는 무덤에서 거의 완벽한 형태의 말과 장수의 철제갑옷이 동시에 발굴된 것이다.1600년 전 신라시대 갑옷이 출토된 것만으로도 드문 일인데, 말과 장수의 두 갑옷이 거의 완벽한 형태로 발굴되었다는 것에 당시 학계나 관련연구자, 그리고 언론에서 주목했었다. 두 갑옷은 비늘 모양의 작은 쇠 조각(小札)을 엮어 만든, 소위 찰갑(札甲)으로 부르는 형태였다. 이러한 찰갑은 넓은 쇠판으로 제작한 판갑(板甲)보다 발전된 기술로 이동성에 있어 훨씬 용이하다. 이러한 완벽한 형태의 찰갑, 그것도 말과 장수의 갑옷이 동시에 발굴된 것은 동아시아에서 최초의 사례이다.발굴 당시 말 갑옷은 목·가슴-몸통-엉덩이를 가리는 한 벌이 펼쳐져있고, 말 몸통 갑옷 위에 장수의 갑옷 일부가 깔려있었다. 주변에는 장수가 착용한 것으로 보이는 투구, 목가리개와 긴 칼 등이 놓여있고, 말 얼굴을 보호하는 갑옷 부분(馬5191)은 별도의 나무곽(副槨)에 넣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발굴된 말 갑옷은 당시 부식 상태가 심각해 긴급하게 현장에서 보존처리를 진행했다. 하지만 흙 속에 묻혀 있던 말 갑옷이 노출되면서 상태변화로 인해 손상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이러한 손상을 줄이기 위해서는 발굴 현장보다는 안전한 환경으로 이동하는 것이 더 좋을 것으로 판단했다. 이후 발굴 현장에서 연구소 보존과학실로 이동해 오래시간 동안 정밀 보존처리가 이뤄졌다.말 갑옷에 대한 본격적인 보존처리는 발굴된 유물을 별도 마련된 처리실로 옮기는 것부터 시작되었다. 발굴된 원형대로 말 갑옷을 이동하는 것이 국내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였기 때문에 안전한 이송을 위해 먼저 국내·외 유사 사례에 대한 조사를 실시했다. 아울러 모의실험을 통해 안전성을 확인한 후, 이동계획이 수립되었다.먼저 말 갑옷이 부서지거나 흐트러지는 것을 최소화하기 위해 강화제를 도포하여 임시 강화처리를 하고, 충진재가 직접 닿지 않도록 한지를 덮고 석고붕대로 드레싱을 한 후 우레탄폼으로 유물(갑옷)을 보호했다. 말 갑옷 아래쪽은 흙을 깊게 파고 바닥과 주변에 목재프레임으로 벽을 세운 후 빈곳을 우레탄폼으로 채워 보강하고 크레인을 이용하여 들어 올려 이송하였다. 즉, 발굴된 갑옷만 수습한 것이 아니라, 갑옷에 고착된 흙을 비롯해 주변 흙을 통째로 이동한 것이다. 작은 철판 하나하나가 부식이 심해, 하나씩 수습하는 것은 유물에 피해를 줄 수 있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유물에 대한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서는 시간과 공력이 많이 들더라도 주변 흙을 통째로 떠서 원형대로 이동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보존실로 옮겨온 말 갑옷은 현장에서 포장한 방법과 반대로 포장재를 해체하는 작업부터 실시했고, 이후 갑옷의 내면부터 보존처리를 진행했다. 이송 중 파손을 줄이기 위해 보강된 우레탄폼, 임시강화제 등을 제거하고, 에어브러시브를 이용해 표면의 이물질과 부식화합물 등을 클리닝했다.분리가 가능한 편들은 X-ray 촬영을 실시하고 가죽, 목질, 섬유 등 남아있는 유기질에 대한 자료 등을 기록했다. 이물질 제거 후 파손되거나 결실된 부분은 접착제로 접합하고 복원재로 결실부를 제작했고 아크릴 물감으로 색을 입혀 실제 유물과 어울리도록 복원했다. 그리고 더 이상 부식이 진행되지 않도록 내면에 불소계 수지(V-flon 10%)를 2차에 걸쳐 도포하여 전면을 코팅했다.내면 처리가 완료된 후 외면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유물을 다시 뒤집어야 했다. 말 갑옷은 약 740매의 작은 철판이 이어져 있기 때문에 뒤집을 시 각각의 철판이 움직이거나 유동이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사전에 유물의 유동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한 여러 보호 장치를 설치해야 했다. 먼저 말 갑옷 주변부에 유토를 사용해 높이를 맞추고, 그 위에 한지를 덮었다. 말 갑옷 표면에는 얇은 주석박지를 밀착시켜 다시 보호한 후 유리섬유, 거즈 등을 덮고 실리콘으로 도포했다. 그 위에 우레탄폼으로 1차로 층을 만들고 목재 격자프레임을 설치한 후 격자 안에 2차로 우레탄폼을 다시 채웠다. 전체 중량 때문에 혹시라도 휘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알루미늄으로 제작한 벌집형구조체를 덮어 보강했다. 전상은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연구원 안전하게 말 갑옷을 뒤집은 후 우레탄폼과 한지 및 강화제, 흙, 자갈 등을 차례로 제거한 후 말 갑옷 표면에 남아있는 이물질을 에어브러시브로 클리닝 해주었다. 내면과 마찬가지로 표면에 수착된 가죽, 목재 등 유기질에 대한 정보를 기록하고, X-ray촬영도 함께 했다. 이후 이동이나 뒤집기 과정에서 파손된 편을 접착제로 접합하고, 결실된 부분은 주변부와 이질감이 없도록 복원했다. 기타 부가적인 처리작업은 내면과 같은 방식으로 처리되었고, 말 갑옷은 발굴되었을 때와 가장 유사한 모습으로 새롭게 탄생했다.‘문화재 보존처리’는 발굴된 유물에 묻어 있는 흙과 먼지를 털어내고, 때로는 깨지고 부서진 부분은 다시 수리하고 복원하는 기술이다. 문화재 보존처리는 오랜 시간과 공력이 필요한 작업이며, 각 분야 전문가의 세밀한 손길이 필요한 부분이다. 박물관 유리장 안에 화려하게 전시된 문화재 역시 대부분 이러한 보존처리 과정을 거친 유물들이다. 지난해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와 국립경주박물관이 공동으로 개최한 특별전시 ‘말, 갑옷을 입다’에 출품된 말 갑옷은 이러한 지난한 문화재 보존처리의 과정과 수고가 있었기에 전시가 가능했다.

2021-12-06

예술과 기술에 대한 미술사적 고찰(上)

예술, 기술, 주술, 마술은 역사 속에서 기묘한 관계를 맺어 왔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미술을 테크네(τ03ADχνη)라 불렀다. 테크네는 기술, 기교를 뜻하는 테크닉의 어원이기도 하다. 테크네는 인간이 기술적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행위 전체를 가리키며 여기에는 미술도 포함된다. 그리스어 테크네를 고대 로마인들의 라틴어로 옮긴 것이 아르스(ars)이다. 오늘날 우리가 예술 혹은 미술을 가리킬 때 사용하는 단어 아트(art)가 여기서 왔다. 예술의 어원은 예술이 기술과 떼려야 땔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을 보여준다. 음악가들은 오랜 시간의 연습과 훈련을 통해 악기를 능숙하게 다루는 수준에 도달하게 된다. 무용수들 역시 동작을 익히고 유연성과 표현력을 높이기 위해 계속해서 몸을 단련한다. 미술가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리는 기법을 익히는 것은 물론이고 사용하는 재료, 필요한 도구를 만들고 다루는 기술을 마스터한 후에 자신의 이름을 걸고 미술가로 활동할 수 있었다. 적어도 도제식 교육을 받던 르네상스 시대까지는 그랬다.대부분의 예술 장르에서 기술은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기교나 기술적 완벽함이 음악가를 평가하는 유일한 기준은 아니지만 탁월한 음악가에게 기술적 완성도는 기본적으로 전제되어 있다.무용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현대미술은 형편이 많이 다르다. 미술사학에서는 대체적으로 현대미술의 태동 시점을 19세기 중반으로 본다. 이전 미술이 따르고 쫓았던 규칙, 원리, 규범, 가치를 부정하면서 현대미술이 태어났다. 15세기 르네상스부터 현대미술 태동기까지 서양미술의 근간은 모방과 재현이었다. 잘 모방하고 잘 재현하기 위해서는 숙련된 기술이 필요했다. 르네상스 이전 고대나 중세 까지만 하더라도 미술가는 기술자였다. 육체노동을 천시했기 때문에 미술가의 사회적 지위는 높지 않았다. 르네상스 미술가들은 미술창작이 몸을 쓰는 육체노동에 그치지 않고 고대의 시인들처럼 고도의 정신작용이라는 것을 증명하고자 했다. 미술가들은 기술을 익혀야 했음은 물론이고 기술로 구현될 그림이나 조각에 정신적 가치를 담아야 했다. 그렇게 등장한 것이 르네상스의 만능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와 같은 거장들이다.그렇다면 마네, 모네, 세잔 등을 비롯한 이른바 현대미술의 선구자들은 무슨 이유 때문에 앞선 미술에 반기를 들고 규칙과 규범들을 깨트렸던 것일까? 이유는 분명하다. 미술이 권력화 되어 권위적이고 배타적이며 폐쇄적이고 경직되었기 때문이다. 자유로이 사유하고, 자유로이 탐구하고, 자유로이 창작하던 르네상스 미술정신이 어떻게 그토록 변질되어 버린 것일까? 이와 관련해 여러 요인들이 제시될 수 있겠지만 가장 결정적인 것은 1648년 프랑스 왕립미술학교의 설립이다.1517년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이 일어나면서 로마 가톨릭의 교세가 급격히 위축되었다. 종교개혁자들에 맞서 가톨릭교회는 반종교개혁의 움직임을 형성했고 그 과정에서 나타난 것이 바로크미술이다. 장식성이 강한 바로크 미술은 화려하다. 앞선 르네상스 미술이 비례, 균형, 조화, 통일을 추구했다면 바로크에서는 비례와 균형이 무너지고 조화나 통일성 대신 스펙터클이 펼쳐졌다. 로마에서 바로크가 발달할 때 까지만 하더라도 서양미술의 중심지는 이탈리아, 그중에서도 로마였다. 그런데 루이14세가 프랑스의 왕으로 즉위한 17세기 중반으로 넘어가면서 미술사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된다.자신을 ‘태양 왕’으로 신격화한 절대왕정의 루이14세는 국가의 모든 권력을 자신에게 집중시키는 정책들을 폈다. 절대적 권력의 상징이 되는 곳이 베르사유 궁전이다. 늪지를 메워 상상을 초월하는 궁전을 세우고 35㎞ 떨어진 센 강으로부터 파이프로 물을 끌어와 화려한 분수로 장식된 어마어마한 정원을 조성했다. 미술은 오랫동안 권력의 불편한 동행자였다. 권력은 선전도구로서 미술을 활용했고, 미술은 기꺼이 그 필요를 충족시켜 주었다. 절대왕정을 위한 미술가를 양성하기 위해 1648년 서양미술사 최초로 국립미술교육기관 ‘왕립미술학교’가 설립되었다. /미술사학자

2021-12-06

장수 기업의 비밀, 득심 경영

장광일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12월이 되면 늘 찾아오는 단골집의 반가운 카카오 톡이 있다. 직접 잡은 싱싱하고 살이 꽉 찬 대게가 들어왔다는 연락이다. 그러면 우리 가족은 어김없이 그 집을 찾아가서 맛있는 대게를 먹고 오곤 하였다.아마도 스스로 애주가나 미식가로 자부한다면, 믿고 갈만한 단골집 한 두 곳 쯤은 두었을 것이다.단골이란 ‘일주일에 몇 번이나 간다’는 단순한 산술적 통계에서 나온 결론이 아니라 손님과 주인이 어우러져 같이 추억을 만들어나가는 동반 관계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진정한 단골을 만들고 싶다면 그 곳을 찾는 손님 각각의 취향을 잘 알아야하고, 그 취향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하여, 그 손님의 마음을 얻어야 할 것이다.이번에는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아 단골이 많기로 소문난 ‘호시료칸’의 장수 비법을 배워보고자 한다.호시료칸은 한국인에 의해 설립된 건축 회사 ‘콩고구미’를 제외하고, 세계에서 두번째로 오래된 기업이다. 일본 이시카와현에 위치해 있고, 718년에 세워진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여관이며, ‘천년 기업’을 이미 오래전 뛰어넘은 1300년된 일본 장수 기업이다.호시료칸은 단골 손님이 많고,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호시료칸의 정신은 일기일회(一基一會)이다. 이는 “한 번 만날 때 이번 만남이 마지막이며 평생 단 한번의 만남이라고 여겨 온 힘을 쏟는다.”는 말이다.이로 인해 고객의 마음을 얻는 ‘득심(得心) 경영’이 성공하였기에 지금의 장수 기업이 되었다고 필자는 본다.이 기업의 ‘득심 경영’ 특징 세가지로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첫째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고객과 종업원을 1:1로 매칭(Matching)하여 맞춤형 서비스를 추진하였다. 이는 고객에 대한 세심하고 섬세한 서비스를 할 수 있었다는 것, 둘째 고객이 최고의 휴식을 즐길 수 있도록 온천수의 수질 관리와 식사에 만전을 기하여 항상 고객이 최고의 품질로 대접받는 느낌을 받도록 하였다는 것, 셋째 고객이 남들에게 말 못할 일이 있을 때, 이 곳에 와서 차 한잔, 술 한잔 마시며 가슴속 이야기를 털어 놓을 수 있는 곳이었다는 것이다.이로 인해 고객 개인에게 ‘나에게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해 줄 것이다’라는 믿음을 전해 주었고, 이는 한번 온 고객은 다시 찾게 되는 단골이 되었을 것이다.많은 기업들이 무수한 별처럼 나타났다가 소리없이 사라지는 것은 기업들이 소비자에게 존경받지 못하고, 고객의 마음을 얻지 못하는 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올해 통계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기업의 평균 수명은 11년으로 생존율은 30%가 채 되지 않는다고 한다. 즉 70%가 창업과 동시에 폐업한다는 의미이다. 100년 이상 장수 기업은 두산, 동화약품, 몽고 식품 단 3곳 뿐이다.변화의 속도가 빠른 이 시대에 제조업이든 서비스업이든 결국 ‘사람의 마음’을 얻는 ‘득심 경영’을 통해 존경받는 장수 기업으로 성장하길 기대해 본다.

2021-12-06

세 번째 스무살, 살맛나는 멋~!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수묵빛 세월의 흐름도 뉘엿뉘엿 세모(歲暮)의 긴 그림자를 드리워가고 있다. 요동치는 코로나의 난국에 살얼음판 걷듯이 불안하고 조바심을 태우며 앞만 보고 달려온 듯한데, 일월의 바퀴는 또 한 겹의 나이테를 물레처럼 감는듯 굴러가고 있다. 뒤돌아보면 책장같이 빼곡한 한 해 하루하루 일상들이 모이고 쌓여 이제 한 권의 책처럼 편철해야 하는 마무리 시점이라고나 할까?대나 갈대, 나무 따위의 줄기에서 생기는 마디는 세월과 사람에게도 있기 마련이다. 이를테면 무던한 세월은 무심치 않아 시간의 마디 같은 연륜을 쌓고 있고, 사람은 10대나 20대 등 나이대를 통칭해서 세대의 마디 같은 전환의 시기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다른 방향이나 상태로 바뀌거나 바꾸는 것을 뜻하는 전환(轉換)은 상황이나 여건에 따라 상당한 의미를 내포한다. 용기와 도전으로 변화를 시도하고 낯선 설레임으로 새로움을 추구하는 중요한 변곡점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세번째 스무살’ 프로그램은 삶에 대한 인식전환으로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려는 취지에서 비롯됐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경상북도가 주최하고, 경북문화재단과 경북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에서 주관하는 100% 국비 지원의 신중년 생애전환 특화사업이다. 2021년 경북 생애전환 문화예술학교 지원사업 ‘세번째 스무살’은 경북지역 신중년 세대를 대상으로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스스로를 관찰하고 발견하며 청년시절 꿈꾸었던 숨은 열정을 다시 일깨워 삶을 전환하고자 기획됐다. 즉, 공모사업 신청자가 하고싶은 사업과 테마를 직접 선정하고 강사 초빙, 운영, 평가, 정산 등 일련의 과정을 참여자들이 자체 기획, 진행, 결과물 정리 등 일반 문화예술교육과는 확연히 차별성이 있는 참여 발굴형 문화예술 진흥사업이다. 이러한 시범사업의 운영으로 생애주기별 문화예술교육 실현의 기반을 마련하고, 경북 내 23개 시·군 지역 간 문화격차 해소와 창의적 문화예술 체험활동의 장려를 권장하고 있다.필자는 포항지역에 거주하는 시낭송가와 동화구연가 등과 함께 ‘살 맛나는 멋’ 팀명으로 ‘나를 노래하고 세상을 노래한다’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데, 갈수록 흥미와 재미가 쏠쏠하다. 투박하지만 나를 닮은 토기를 빚고 20대에 즐겨 외웠던 시를 자연 속에서 낭송하는가 하면, 아무런 생각없이 장작불 불멍을 때리며 심신을 이완시키기도 하면서 별 바라보기와 나에게 편지쓰기 등으로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을 마련, 몰입과 자각으로 내 마음을 풀며 새로운 나의 발견과 전환의 의미를 되새겨가고 있다. 그렇게 따로 또는 같이 먹고 살고 놀고 즐기면서 붓과 시낭송으로 세상과 소통하며 노래할 수 있으니, 정말 살맛나는 멋이 아닐 수 없다.거의 한 달 내내 축제같고 선물같은 나날을 보내면서 낯선 것들과의 만남을 통해 나를 좀더 차분하게 넓혀가는 계기가 되는 듯하다. 나를 위한 쓰임에 한땀 한땀 생각과 마음을 담아 있는 그대로의 자기 인생과 마주하며 세번째 스무살을 충만하고 충분하게 정성껏 살기로 다짐해본다.

2021-12-06

최우선의 덕목은 ‘청렴’이다

서숙희시인·포항문인협회 회장 내년 2022년은 월드컵이 열린지 꼭 20년이 되는 해이다. 다소 뜬금없지만 2022년이 얼핏 2002년과 겹쳐 보인다. 2002와 2022는 시각적인 착각을 불러올 정도로 일치하는 숫자가 많다. 새삼 그때의 감동이 상기되면서 월드컵이 열리기 1년 전인 2001년에 우리는 어땠는가를 생각해 본다. 온 국민이 우리나라의 승리를 간절히 바라고 기대하면서, 혹은 우승 국가를 점치면서 얼마나 설레고 또 얼마나 흥분했던가.그로부터 꼭 20년 후, 2002라는 숫자가 주는 이미지가 비슷한 2022년은 바야흐로 선거의 해다. 대선을 비롯하여 4대 지방선거까지 열리는, 선거에 선거를 거듭하는 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선거는 축제라고 했던가.선거라는 축제를 1년 앞둔 지금 우리는 축구 축제인 월드컵을 1년 앞둔 그때처럼 한마음으로 설레면서 그날을 기다리는가.나라의 지도자를 뽑고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을 이끌어나갈 지도자를 뽑는 일, 당연히 즐거워야 하고 설레야할 터인데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이미 막이 오른 대선판도 그렇지만 몇 달 후면 지역은 지역대로 지자체 단체장과 지방의원 선거에 어수선함을 넘어 혼란의 소용돌이를 겪을 것 같아 생각만 해도 편치 않다.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첫 번째 자질과 덕목은 무엇일까. 200 년도 더 된 고전, 목민심서를 21세기에 다시 소환해 본다. 목민관의 자세와 도리를 밝힌 목민심서의 키워드는 ‘청렴’이다. 200 년 전의 말이 여전히 유효하고 여전히 강조되어야 함은 무슨 의미일까.다산은 청렴함에서 위엄이 나오고 신뢰도 나온다고 하였다. 청렴은 단순히 부정한 뇌물을 받지 않는다는 것 이상이다. 청렴하다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 먼저 정직하고 공정하여 스스로 당당하다는 것이다.며칠 전 한 일간지의 설문조사 내용 중, 나라를 이끌 지도자가 갖추어야 자질로 ‘도덕성’과 ‘미래비전’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왔다. 이는 지역을 이끌 지도자로 해석해도 틀린 것은 아닐 것이다. 설문조사를 전적으로 신뢰할 것은 아니겠지만 국민들이 바라는 지도자상이 무엇인지는 분명한 것 같다.그것을 뒤집어 해석하면 그만큼 우리의 지도자들이 지금까지 도덕적이지 않았고 미래비전에 약했다는 말이 아닐까.도덕성은 곧 청렴이다. 청렴의 바탕 위에서 비로소 다스리는 행위가 시작되는 것이니 모든 것의 근본이요 바탕이다. 논어에서 말한 회사후소(繪事後素)처럼 말이다. 청렴에 더해서 “서로 다른 것을 한데 묶어 새로운 것을 잡는다”는 의미를 지닌 통섭의 사고와 지혜를 지닌 지도자이면 더 좋겠다. 눈앞의 단편적인 생각에 묶여, 혹은 사소한 감정에 에너지를 소비하는 일이 없는 품이 넉넉하고 품격을 갖춘 사람이어야 하겠다.우리 지역의 지도자에게 바라는 또 하나를 덧붙이자면, 문화예술에 대한 이해가 좀 더 깊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문화예술, 예술문화가 사회를 변화시키는 데는 긴 시간을 필요로 한다.그 가치나 효과가 당장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수치로 나타낼 수 있는 것 또한 아니기에 다른 분야에 비해 후순위가 되는 것 같아 많이 안타깝다.우리의 지도자가 어디서 백마 탄 초인 같이 홀연히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그래도 초인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내년 선거에서 훌륭한 지도자가 가려지기를 바란다. 그런 지도자를 선출하는 선거가 20년 전 2002년 월드컵처럼 모두에게 즐거움을 주는 축제가 되고, 거기서 뽑힐 지도자를 지금 가슴 설레며 기다리는 시간이면 좋겠다. 선하고 깨끗한 품성에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을 가진 사람, 거기에 시와 음악과 미술의 가치를 아는 문화적 감성을 가진 사람이 우리의 지도자로 오면 참 좋겠다.

2021-12-05

붉은 등을 켰다

가을이 겨울을 위해 붉은 등을 켰다. 동네가 환하다. 수백 년 전부터 바알갛게 불을 밝힌 만 그루의 나무 곁에 십만 그루가 가로등처럼 꽃불을 켜서 마을 전체가 환하다. 의성 사곡면 화전리로 들어서는 순간 어찌나 동네가 붉은지 ‘산수유 마을’이란 별칭이 꼭 맞아떨어진다. 지난봄, 입구에서부터 버스 정류장에도 산자락에도 어김없이 산수유꽃이 노랗더니 지금은 붉은 물감을 칠해 새로운 겨울 축제를 열었나 싶다. ‘영원불변한 사랑’이라는 꽃말처럼 300년 넘게 오래도록 마을을 밝힌다.산책로에 들어서니 발밑에 빨간 열매가 떨어졌다. 학창시절 국어책에 실렸던 김종길 시인의 성탄제(聖誕祭)가 저절로 떠오른다. 어두운 방 안엔 바알간 숯불이 피고, 애처롭게 잦아드는 어린 목숨을 지키려고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 오신 그 붉은 산수유 열매, 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 열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고, 서러운 서른 살 나의 이마에 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 눈 속에 따 오신 산수유 붉은 알알이 아직도 내 혈액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 하며 끝맺던 시.그 시절 나는 산수유를 알지 못했다. 꽃의 색깔뿐만 아니라 모양도, 시에 등장하는 빨갛다는 열매가 콩알만 한지 사과만 한지도 궁금했다. 지금은 얼른 핸드폰을 열어 검색 찬스를 쓰면 되지만, 그때는 국어 선생님께 여쭤보았다. 손톱만 한 작은 열매라고 하셔서 앵두 같겠거니 했는데 발아래 산수유는 투명한 다홍 색의 타원형 보석 같다. 그때 이 어여쁜 모양을 알았더라면 시가 더 내 몸속에 알알이 새겨져 흘렀을 것이다.혹여 시인은 산수유 마을을 겨울의 길목에 다녀갔을지도 모른다. 본관이 의성이고 안동에서 태어나셨으니 이곳 사곡면 화전리에 와서 골짜기를 따라 흐르는 산수유 붉은 물결을 눈에 넣고 시를 썼을 것이다. 시 전체에 산수유 빛깔이 흩뿌려져 있다. 바알간 숯불로 시작해 열로 상기한 볼, 불현듯 느끼는, 마지막 구절에 산수유 알이 박혀 흐르는 혈액을 보면 동네에 내를 따라 늘어진 붉은 산수유 가지들을 보고 부리나케 시상을 떠올렸을 것이다.물이 흐르는 곳으로 작은 돌계단을 따라 내려섰다. 골짜기 가득 붉은 산수유 이불을 덮어놓았다. 찾아간 시간이 해거름 녘이라 물가에 늘어진 가지 뒤에 붉은 조명을 비추는 듯해 더 환상적인 풍경을 만들었다. 잎은 하나 없이 온통 붉게 상기된 얼굴을 냇물에 비추니 물빛도 산수유를 꼭 닮아 버렸다. 넋 놓고 올려다보노라니 나도 덩달아 달아올랐다.가만히 열매를 생각하니 꽃이 피었다 지고, 또 열매가 익기까지 시간이 참 오래도 걸렸다 싶다. 가장 일찍 눈을 떠 봄소식을 전하는 전령사 노릇을 하는 녀석이 여름에 붉게 익어도 될 터인데 뒤에 핀 사과꽃도 열매 다 익혀 시장으로 마트로 팔려갔는데, 더 늦게 핀 감꽃도 주황색 까치밥만 남겨둔 지금, 이렇게 활짝 붉은 꽃 잔치를 느지막하게 열었다. 누구보다 많은 계절을 담기 위해 봄 여름 갈 겨울을 기다린 녀석들이다. 성격 급한 나로선 따라 하기 힘들다.노란 산수유 꽃이 필 때는 동네가 사람들로 넘쳤었다. 산책로를 따라 사진을 찍으면 꽃만큼 사람도 찍혔더랬다. 붉은 산수유 꽃이 핀 지금은 우리뿐이다. 꽃등 아래 흐르는 냇물 소리만 가득하다. 봄에 기념사진 찍으려고 줄을 서서 기다렸던 그 자리가 오로지 내 차지다. 뒷사람 눈치 보지 않고 남편이 하라는 대로 포즈를 취하며 붉은 내음새를 가득 카메라에 담았다. 그러고선 폰을 내려놓고 눈으로도 한참 바라보았다. 마음에 알알이 새겨넣었다.산수유 마을은 가로등 모양도 산수유다. 사람이 자연을 따라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순리를 따르는 일이다. 거스르며 사는 일이 힘들다는 것을 산수유 마을 사람들은 300년 전에 알았다. 골짜기 깊은 곳이라 해가 일찍 졌다. 기둥 끝에 빨간 열매 두 개가 부리나케 불을 켰다. 불현듯 성탄이 가까웠다는 게 떠올랐다. 집에도 산수유 닮은 불빛 몇 개 내 걸어야겠다. /김순희(수필가)

2021-1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