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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대선 뒷소감

장규열 한동대 교수 대선 이후 한 달이 흘렀다. 새로운 지도자를 선출한 나라와 백성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희망과 기대에 부풀어야 한다. 박빙의 힘든 싸움을 거쳤다 해도 결과를 확인한 국민은 새 리더십에 높은 기대를 건다. 이번엔 왠지 다르다. 당선 때 획득했던 지지율을 못 미치는 국정기대치가 잡힌다는 여론조사발표가 있다. 물러가는 대통령보다 당선인에게 거는 지지율이 낮다고도 한다. 대통령이 되기도 전에 민심의 지지를 얻지 못하는 게 아닌가 걱정이 된다. 선거 직전 온 국민의 마음을 졸였던 동해안 산불로 피해를 본 주민들을 당선인은 잊었을까. 지켜온 한반도의 평화는 없어도 그만일까 의아해진다. 지난 정권들이 쌓아온 선진국의 국격은 생각이나 하는가.대통령집무실 이전이 민생의 어려움에 밀려난 모양새가 아닌가. 돌려받겠다 요청한 국민이 주변엔 안 보이는데 굳이 취임식 이전에 청와대를 개방해야 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정치보복은 없다더니 진정인가 묻고 싶다. 당사자도 아닌 딸과 어미가 빠진 질곡과 멍에는 못난 대학들만 탓해야 하는가. 일본을 대하는 태도에는 분명한 매듭이 없다. 일본이 한국민들에게 가했던 상흔과 씁쓸함은 ‘파친코(Pachinko)’가 소설과 드라마로 담담하게 들려주고 있다. 일본교과서의 부당한 기술 앞에 무엇 때문에 ‘입장표명이 부적절’하였을까. 지난 정부도 소홀하여 국민이 힘들었던 ‘교육’은 아예 돌아보는 이가 보이지 않는다. 교육은 백년대계인가, 아니면 무려 부처폐지를 고려할 애물단지인가. 당선인과 인수위의 집행기준은 ‘민심과 미래’인가 아니면 당신들만의 정권탈취 축하행진인가.당선인은 선택해 준 국민들에게 겸허해야 한다. 박빙의 차이 0.7를 어떻게 해석하는가. 1963년 대선에서 박정희가 윤보선을 면도날 박빙 15만표 차이로 이겼던 기억을 되살려야 한다. 승자독식이라지만, 통합과 협치를 내세운 자신의 지난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오만과 독선으로 유신에 이르러 불행한 마감을 초래했던 역사를 돌아보아야 한다. 지지했던 국민과 함께 지지하지 않았던 표심도 돌아보는 지도자가 되었으면 한다.끝을 모르고 벌어지는 반목과 격차는 사회문화적으로도 건강하지 못하다. 나라와 국민의 분열을 걱정하였던 미국 부시 대통령이 ‘보다 친절하고 부드러운 나라(Kinder and gentler nation)’를 구현했으면 싶다. 역량과 슬기의 한민족이 품격과 관용까지 갖춘다면 손색없는 선진국이 되지 않을까.대통령이 앞장서야 한다. 나라의 격과 국민의 마음은 앞에 선 리더가 하기에 달렸다. 국민은 당신의 말을 믿고 따르는 게 아니라 당신이 실천하는 바를 보고 겪으며 마음을 결정할 터이다. 성패의 여부는 리더를 지지하지 않았던 사람들 마음의 향배에 달려있다. 그들의 마음을 돌이킬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거꾸로, 지지하던 사람들이 그에게서 멀어진다면 경고등은 이미 들어온 게 아닌가. 나라의 미래와 국민의 살림을 국정의 기준으로 삼는 대통령을 만나고 싶다.리더가 잘해야 나라가 살고, 국민이 깨어야 미래가 밝다.

2022-04-06

리뷰알바의 폐해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코로나19 대유행의 장기화에 따라 배달문화가 대중화되면서 배달의민족 등 배달전문업체들이 각광을 받으면서 자영업자들이 리뷰알바 업체들의 난립에 힘겨워하고 있다.리뷰알바업체는 SNS를 통한 영업이 대중화하면서 급격히 늘어난 업종으로, 신규로 가게를 연 업체들을 대상으로 돈을 받고 리뷰를 조작하는 ‘리뷰알바’를 전문으로 하는 업체들을 말한다. 리뷰알바 업체는 배달비와 음식값 외에 리뷰 한 건당 2천~3천원을 지급하며, 재택이 가능한 꿀 알바라는 광고로 리뷰어를 모집한다.리뷰어를 대량 모집한 업체들은 새로 개업했거나 단시간 내에 배달 건수를 끌어올리고 싶어하는 자영업자들을 상대로 영업을 한다. 이들은 자신들이 확보한 리뷰어 숫자를 과시하며, 이른 시일 안에 식당 영업을 안정시켜주겠다고 광고하니, 마음이 급한 업주 입장에선 유혹에 넘어갈 수 밖에 없다. 문제는 이들 허위 리뷰어들이 자신들을 고용한 업체에 좋은 리뷰만 써주는 것이 아니라 배달 지역이 겹치는 경쟁업체들에 악성리뷰를 쓰는 방식으로 영업한다는 데 있다.배달 앱 업체들이 인공지능(AI)을 이용한 실시간 모니터링 시스템과 전담 조직까지 만들어 대응에 나섰다. 배달의민족은 2020년 11월부터 허위·조작 리뷰를 자동 탐지하는 실시간 모니터링 시스템과 리뷰 작성자의 주문기록과 이용현황을 다각도로 분석하는 알고리즘까지 적용하며 대응하고 있다. 쿠팡이츠 역시 지난해 8월부터 전담조직을 신설하고 악성리뷰를 30일간 블라인드 처리하는 등의 대책을 시행 중이다. 하지만, 단속은 역부족이다. 다수의 리뷰어를 확보한 리뷰알바 업체들의 불법적인 영업행태는 정상적인 시장을 교란하고 업주들에게 피해를 준다. 리뷰알바의 폐해를 막으려면 자영업자스스로 불법업체를 이용하지 않아야 악순환을 끊을 수 있다.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2-04-06

지역현안 풀어갈 속 시원한 정치 아쉽다

대구의 30년 숙원이던 구미 해평취수장 공동이용이 난산 끝에 협정을 체결했으나 여전히 뒤끝이 개운치 않다. 체결장소를 세종시로 옮겨 진행해야 할만큼 구미지역 전체의 목소리를 담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구경북 최대 현안인 통합신공항 사업도 군위의 대구시 편입 문제가 걸려 한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고심을 거듭해 시도민 의견을 모아 이전부지를 확정했으나 지금 와 정치가 되레 발목을 잡고 있다. 지역 정치권이 서둘러도 제때 개항이 될 지 알 수 없는 상황에 지역 정치인이 선거구 조정을 이유로 제동을 걸고 있다. 정치권 스스로가 이를 풀어야 하나 결자해지의 모습도 없다.지금 부산은 인수위 출발을 계기로 산업은행 본점 이전을 기정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어 가덕도 신공항 예타면제가 정치권 이슈로 등장하는 등 지역발전을 위한 정치권 움직임이 발빠르다. 또 지난 4일에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산업은행 이전에 이어 수출입은행 본점의 부산 이전의 뜻도 밝혀 지금 부산은 새 정부 출범에 따른 지역발전에 대한 기대감으로 들떠 있다. 새만금 사업도 지역균형발전 특위 5대 사업에 포함되면서 발빠르게 움직인다. 새만금 개발에 대한 구체적 밑그림이 그려지고 있다.이에 반해 대구경북의 현안은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지지부진하다. 정치권의 분발이 당연히 있어야 한다. 통합신공항을 포함 지역현안에 대한 속도감 있는 해결책을 제시하는 정치력이 발휘돼야 한다. 인수위 참여와 소통을 통해 진행 과정을 확인하고 그 상황을 지역민에게 전달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윤석열 대통령 당선에 큰 힘을 보탰다는 지역민의 자부심에 대한 정치권의 보답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알다시피 대구는 GRDP 28년째 전국 꼴찌다. 지역산업에 활력을 불어넣을 정부 지원이 절실하다. 해평취수원 공동이용도 완벽한 해결을 위해 정부 차원의 통 큰 지원을 정치권이 나서 해결해야 한다.대구경북 현안 해결에는 지역정치권의 역할이 클 수밖에 없다. 새 정부가 출범하는 지금이 정치인의 역량을 과시할 좋은 기회다.

2022-04-06

단체장 인사전권이 공직자 선거개입 원인

경북도를 비롯해 전국 지방자치단체가 6·1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난 5일부터 공직사회 특별감찰에 들어갔다. 경북도는 지방선거일 전일인 5월 31일까지 일선 시·군과 함께 11개 감사반을 편성해 암행 감찰활동을 벌인다. 주된 감찰대상은 공직자가 특정 후보 선거운동에 참여하거나 SNS를 통해 지지 또는 비방하는 등 정치적 중립을 훼손하는 행위다. 금품·향응 수수와 근무지 무단이탈 등의 비위행위도 집중적으로 살핀다. 퇴직 공무원이 후보자로 등록된 지역은 취약지역으로 지정해 감찰을 강화한다. 국가공무원법 제65조(정치 운동의 금지)는 ‘공무원이 정당이나 그 밖의 정치단체 결성에 관여하거나 가입할 수 없으며, 선거에서 특정 정당 또는 특정인을 지지 또는 반대하기 위한 행위를 하여서는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법률을 위반해서 징역형이나 1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을 받으면 퇴직 조치되며, 공공기관 임직원 등 공직에도 일정기간 취임할 수 없게 된다.이같은 법적장치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공직자들의 선거개입 행위는 끊임없이 적발됐다. 근무시간에 업무용 컴퓨터를 통해 특정 정당이나 후보자를 비방하는 글을 올리거나, 공무원향우회를 비롯한 친목모임에 참석해 특정 후보 지지발언을 하고 법인카드로 식사대를 냈다가 선거법 위반 혐의로 입건된 사례도 있었다. 현 군수 개인의 사조직모임을 총괄 운영하면서 지지활동을 벌이는가 하면, 현직 단체장의 선거전략 수립에 깊숙이 개입한 공무원도 있었다.공무원들의 만성화된 선거개입 행태는 결국 선거 이후 행해지는 논공행상식 인사 때문이다. 실제로 상당수 기초자치단체에서는 누가 단체장이 되느냐에 따라 출신학교별 인사부침이 나타나는 경우가 있었다. 단체장과 출신학교가 같은 공무원들이 핵심보직을 맡거나 승진을 한 반면, 이 그룹에 끼지 못한 공무원들은 한직으로 쫓겨났다. 일선 시·군 선거에서 흔히 나타나는 이러한 선거병폐를 뿌리뽑기 위해서는 감찰활동도 중요하지만, 이에 앞서 단체장이 절대적인 권한을 행사하는 인사권을 제도적으로 분산시킬 필요가 있다.

2022-04-06

우리 집 치킨이 맛있대요

배달 라이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정말 많은 음식점들을 가게 된다. 프랜차이즈 식당부터 작은 동네 가게까지, 한식, 중식, 양식, 일식, 도시락, 빵, 커피, 아이스크림 등등 메뉴도 다양하다. 워낙 인기가 많아 하루에도 몇 번씩 가게 되는 식당들도 있다. 그런 가게는 직원들도 많고, 항상 분주하다. 음식을 가지러 매장에 도착하면 아예 배달 주문 음식들만 따로 한 곳에 수북하게 쌓인 걸 보곤 한다. 배달 기사가 알아서 주문번호를 확인해 음식을 찾아 가야 한다. 주방이며 홀이며 카운터며 워낙 바빠서 뭘 어떻게 물어볼 틈도 없다.반면 ‘파리 날리는’ 가게들도 있다. 홀에 손님은 하나도 없고, 배달 주문 전화도 좀처럼 걸려오지 않는다. 대부분 프랜차이즈가 아닌 동네 골목 식당이거나 단골 장사를 오래 해온 가게들이다. 아주머니나 아저씨 한 분이 음식 만들고, 홀 서빙하고, 계산까지 혼자 다 한다. 이런 집들에 배달하러 가면 가슴 한 구석이 먹먹해진다. 안 그래도 힘든 자영업인데, 코로나 시대에 얼마나 고달프실까. 장사가 잘 되길 진심으로 바라면서, 음식을 받아 나올 때 늘 하는 인사인 “감사합니다” 대신 “많이 파세요”라고 크게 외치곤 한다.요식업 중에도 치킨은 가장 치열한 전쟁터다. 수많은 프랜차이즈들과 동네 골목 상권이 경쟁을 벌인다. 하루가 멀다 하고 신메뉴가 등장하고, 온갖 광고와 프로모션이 넘쳐난다. ‘치맥’이 배달 음식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치킨 공화국’이다. 우리나라 식품 관련 자영업의 20퍼센트가 치킨집이라고 한다. 하지만 폐업할 확률이 높다. 코로나19가 지배한 최근 몇 년 동안은 매년 6~7천 개의 치킨집이 창업하고, 1만 개 넘는 집이 문을 닫았다고 한다. 치킨 한 마리에 2만원 시대라지만 재료비와 서비스비(배달 앱 수수료와 배달 운임)를 제외하면 매장에서 가져가는 마진은 10퍼센트, 약 2천원 정도다. 하루에 닭을 100마리 튀겨야 20만원 버는 셈이다.평촌의 오래된 아파트 상가 건물에 작은 치킨집이 하나 있다. ○○치킨. 웬만한 치킨집은 다 한번쯤 들어봤는데, ○○치킨은 정말 처음 들어본 이름이다. 가을볕이 따사로운 토요일 오후, ○○치킨을 찾아 미로 같은 아파트 상가를 좀 헤맸다. 낡은 상가 건물 지하 1층 한 구석에 자그맣게 자리 잡고 있어 찾기가 쉽지 않았다. 끼익 끽 소리를 내는 녹슨 철문을 열고 “배달이요” 외치자 연세 지긋한 노부부께서 “거의 다 됐어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하신다. ‘배민’이냐 ‘쿠팡’이냐 묻지 않으신다. 배달 주문 들어온 게 딱 한 건인 모양이다.테이블 몇 개 없는 매장 안은 한산하기 그지없다. 겹쳐놓은 치킨 박스 더미 옆에 작은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미스터 트롯’ 뽕짝 소리가 기름 끓는 소리와 어우러져 정겹다. 빈 테이블 위에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마요네즈’, ‘튀김가루’, ‘엿기름’ 등을 적어 놓은 메모지가 널브러져 있다. 아주머니가 치킨을 튀기면 아저씨가 그걸 양푼에 담아 양념 넣고 버무린다. 맛있는 소리와 냄새가 토요일 오후를 채색한다. “아이고, 세 마리나 한꺼번에 주문이 들어와서 좀 걸렸어요. 미안해요” 아주머니는 포장 박스가 닫히지도 않을 만큼 치킨을 가득 담더니 양배추 샐러드까지 용기에 꽉꽉 채워 넣으신다. 잔뜩 무거워진 비닐봉지 세 개를 건네받고는 왠지 떠나기 싫다는 생각이 든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날 늦은 저녁, 한 건만 더 하고 퇴근하려는데 마침 배달 콜이 울린다. 어라? 아까 낮에 갔던 ○○치킨이네? 반가운 마음에 금방 달려갔다. 이번에는 헤매지 않았다. 문을 열자마자 아저씨가 “빨리 오셨네. 다 됐어요” 하신다. “저 아까 낮에도 왔다 갔는데, 오늘 두 번이나 오네요” 말씀드리니 이번엔 아주머니가 주방에서 고개를 쓱 내밀면서 “그래요? 아 맞다. 아까 낮에 세 마리, 맞아 맞아” 하신다.“얼마나 맛있으면 저한테 두 번이나 콜이 들어 왔겠어요. 퇴근하고 집에 가서 먹게 양념 반 후라이드 반 하나만 포장해주세요. 이거만 배달하고서 찾으러 올게요” 낮부터 내 침샘을 자극한 소리와 냄새가 치킨집 안에 다시 가득 퍼지기 시작한다. 치킨을 건네받고 “다녀올게요” 하는 나를 보며 아주머니 아저씨가 해사하게 웃는다. “우리 집 치킨이 그렇게 맛있대요. 먹어 본 사람들이 다 맛있다고 그래.”

2022-04-05

사소하고 수월한 행복

걷기 좋은 봄이다. 서늘한 밤 목련 주우며 거니는 산책로도 좋고, 얇은 경량 패딩 하나 입고 가벼운 걸음으로 걷는 것도 즐겁다. 겨울 길거리에서 만나는 녹차호떡이나 크림 붕어빵을 파는 트럭은 보기 어려워져서 아쉽지만, 그럼에도 주머니 안쪽에 3천 원씩 품고 다녀야 하는 이유가 하나 있다.퇴사를 한 뒤 시간 여유가 많아지면서 그간 못 갔던 병원도 다니고 만나고 싶은 사람들도 만났지만 어쩐지 금방 시들해졌다. 여유 시간엔 새로운 취미생활을 갖기 위해 양말에 꽃 자수 놓는 법도 배워보고, 펀칭니들이나 썬캐쳐 만들기 등 손으로 집중할 수 있는 취미에 몰두해 보려 했지만 이 또한 쉽게 질리고 말았다.그러다 우연히 집 근처 마트 안에 있는 토이 샵에서 뽑기 기계를 발견했다. 기계 앞에 내 또래로 보이는 이들이 얼마나 많던지 순간 장난감 샵에 들어온 게 맞는지 다시금 확인 했다. 대부분 팔에 플라스틱 바구니를 끼고선 한창 뽑기에 열중하고 있었는데 인기 캐릭터를 뽑을 수 있는 기계 앞에선 줄이 길게 늘어서 있을 정도로 진귀한 풍경을 보여주었다. 직원분께 여쭈어보니 인기 캐릭터인 경우엔 매장에 입고된 지 4시간 만에 뽑기 상품이 동날 정도로 인기가 많다고 했다.호기심에 친구 주머니까지 탈탈 털어 뽑기에 시도해보았다. 동전을 차곡차곡 넣어 레버를 돌릴 때 묵직하면서도 경쾌하게 돌아가는 움직임이 어찌나 짜릿하던지! 동그랗고 매끄러운 플라스틱 케이스가 배출구로 떨어지는 소리도 유쾌한데다 형형색색의 캡슐을 쥐고 있으니, 어린 시절 문방구 앞에서 납작이 수그려 뽑곤 했던 해맑은 열정이 단숨에 기억나고 말았다.레고나 인형, 스티커나 다이어리 등 키덜트족들의 취향을 겨냥한 제품이 우후죽순 쏟아지고 있다. 어른(adult)이지만 아이(kid)시절 좋아하던 감성과 취향을 추구하고 즐기는 키덜트 족은 이미 식음료, 뷰티, 패션 업계 아울러 놀라울 만큼 커다란 시장 규모를 이루고 있었다.한국 콘텐츠진흥원의 자료를 참고해보자면 국내 키덜트 시장 규모는 지난 2014년 5000억원대에서 지난해 1조6000억원까지 성장했고 추후 최대 약 11조원까지 성장할 것이라 예측했다. 특히 뷰티나 패션 쪽에서도 큰 확장세를 보이고 있는데 뷰티 브랜드 이니스프리는 찰스 M. 슐츠의 만화 피너츠(스누피) 캐릭터와 협업하여 한정 에디션을 출시했고 의류 브랜드인 빈폴 또한 스누피 캐릭터와 콜라보한 제품을 내놓았다. 이탈리아 대표 명품 브랜드인 구찌는 2020년 쥐띠 해를 맞이하여 미키마우스X구찌 컬렉션을 선보였었으며 출시 후 완판될 정도로 상당한 인기를 누렸다.또한 밀레니얼 세대의 어린 시절 즐겨 먹던 먹거리를 다시금 재현한 포켓몬 빵 시리즈, 초등학교 문방구에서 팔던 간식 세트 등 어느새 자취를 감추었던 그때 그 시절의 추억 먹거리들이 뉴트로 트랜드 흐름에 발맞추어 반가운 모습으로 재등장 하고 있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어린 시절 소풍 필수품이었던 뿌요 소다 또한 24년 만에 재출시 되었는데, 집 근처 편의점에서 나의 첫 탄산 음료였던 뿌요소다를 발견하자마자 어찌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언제 찍혔는지도 모를 만큼 까마득한 어린 시절의 사진 한 장을 우연히 발견한 느낌이었달까.물론 강렬한 추억 여행을 하게 해준 건 뽑기였다. 뽑기 기계가 있는 마트 주위만 가도 기분이 절로 상기되는데다, 어느새 뽑기를 하러 가기 위해 산책을 할 정도였으니까. 그러다 뽑기에 한참 빠져들 때쯤 느낀점이 하나 있다. 원하는 걸 뽑기 위해 너무 많은 욕심을 부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 너무나 당연하지만 막연히 심취해 있다 보면 갖고 싶은 제품을 뽑기 위해 잔뜩 욕심이 올라 무작정 돈을 밀어 넣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결국 필요 없는 제품만 실컷 뽑다가 덩그러니 남은 씁쓸한 욕심을 마주했을 때 얼마나 민망했는지 모른다.이렇게 자제력을 잃고 낭비를 저지른 날엔 바다 깊숙이 머무르고 있는 해녀를 생각한다. 딱 자신의 숨만큼만 있다가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오르는 해녀처럼 내게 딱 주어진 몫만을 고려하여 행동할 것. 열정과 중독은 비슷한 듯 싶으면서도 분명한 한 끗 차이를 지니고 있다. 뽑기로 다시금 지혜로움을 배운다.

2022-04-05

대구시장 최우선 조건은 ‘현안해결 역량’

6·1 지방선거의 국민의힘 대구시장 예비후보 간 초반 판세는 역시 인지도가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경북매일신문이 에브리미디어에 의뢰해 지난 3월 31일부터 4월 1일까지 대구지역 유권자 1천명을 대상으로 국민의힘 대구시장 예비후보 지지도를 조사한 결과, 홍준표 의원(44%)과 김재원 전 최고위원(18.3%)이 선두권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 뒤를 이진숙 전 걸프전 종군기자(4.4%), 김형기 경북대 명예교수(2.5%) 등이 추격하는 양상이었다.2주 전 에브리미디어 조사에 비해 홍 의원은 다소 하락한 반면, 김 전 최고위원은 상승 곡선을 타는 추세지만, 지지율 격차가 워낙 커 ‘홍 의원 독주구도’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유영하 변호사가 다크호스로 등장하긴 했지만, 조사시점이 출마선언 전이라 이번 조사에서는 제외됐다. 다만 그의 출마에 대한 의견을 물어본 결과, ‘부적절하다’(59.4%)는 의견이 ‘적절하다’(23.8%)는 의견보다 2배 이상 많았다.정당지지율 조사에서 국민의힘이 67.5%로 1위를 차지했듯이, 이번 대구시장선거에서도 국민의힘 공천자가 당선될 확률이 높다. 국민의힘 공천책임이 가볍지 않다는 것이다. 대구는 지금 시대적 위기상황에 놓여있다. 17개 광역자치단체 중 대구는 사회·경제분야 각종지표에서 최하위권에 속해 있다. 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를 IT나 첨단지식산업 쪽으로 개편해야 하는데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외나 타지역 유수기업을 유치한 성적도 빈약하기 짝이 없다. 청년들은 일자리가 없어 수도권으로 빠져나가고 있다.이런 모든 현안을 차기 대구시장이 풀어야 한다. 몇 년간 행정력을 집중시킨다고 해서 성과를 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장기간의 플랜을 가지고 차근차근 대처해야 풀 수 있는 숙제다. 이번 대구시장 선거에서 유권자들은 이러한 역량을 가진 인물을 선택해야 한다. 그러려면 예비후보들의 리더십과 능력, 경력, 정책공약을 꼼꼼하게 살펴보고 지지자를 결정해야 한다.

2022-04-05

원자재값 상승 등 3중고에 시달리는 농촌

본격 영농철을 맞아 영농준비에 나서는 농가의 농업경영 상황이 농자재값 상승 등 각종 물가 인상과 인력난 등이 겹치면서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올해도 농사짓기가 만만치 않아 농사를 지어도 남는 게 없는 빈 농사가 될까 봐 걱정하는 이도 많다고 한다. 영농철이라 정부의 대책이 당장 필요하나 우크라이나 전쟁 등 국제정세가 변수로 작용해 마땅한 대책도 잘 보이지 않는다.현재 농촌지방은 코로나 사태가 3년째 되면서 인력난 문제가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다. 이런 가운데 우크라이나 사태 발발로 면세유 가격과 비료비 등 원자재 값이 폭등, 농산물 생산비에 반영되면서 영농 경영에 막대한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가 폭등에 대해 정부가 유류세 인하폭을 30%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 하나 농어민이 사용하는 면세유의 경우 지난 2012년 10월 이후 최고가격을 유지하고 있지만 정부의 별도 대책은 안 보인다. 또 지난해 10월 중국의 수출제한으로 촉발된 요소수 대란이 농촌지방에는 비료가격 상승으로 이어져 지금까지 진행 중이다. 특히 우크라이나 사태가 터지면서 전세계가 비료 대란을 우려하는 가운데 국내서 사용되는 요소비료 가격이 최근 3배 가까이 껑충 뛰었다. 염화칼슘과 암모니아 등의 가격도 급등했다. 축산농가도 비상이긴 마찬가지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밀과 옥수수 등 사료용 곡물 수급 사정이 악화돼 사료값 인상도 불가피하다.법무부는 농어촌 인력난 해소를 위해 올 상반기 중 국내에 들어올 외국인근로자 규모를 1만1천550명으로 확정해 작년보다 수를 늘렸다. 하지만 이 정도 규모론 농어촌 인력난 해소에 근본 해결책이 안된다. 경북은 12개 시군에 1천614명을 배정받았으나 보통 경북지역 농번기(4∼6월, 10∼11월) 인력 소요 규모를 23만명 정도라 보면 올해도 인력난으로 시달릴 전망이다.지금 농촌은 영농준비에 바쁜 때다. 원자재값 상승 등의 부담을 안으면서 농사를 준비하지만 일부는 영농규모도 줄일 생각을 한다고 한다. 정부와 지자체의 관심과 지원이 지금 가장 절실한 때다.

2022-04-05

자신의 진실을 ‘제대로’ 마주해야 하는 이유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드라이브 마이 카’ 절망을 극복하는 사람들에 대한 영화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소설집 ‘여자 없는 남자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는 ‘상실’의 깊이에 대해서 탐구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에서 ‘상실’은 거의 모든 작품들의 기저에 흐르는 중심이다. 부재에서 오는 혹은 결핍에서 오는 상실은 고독을 동반한다. 고독하게 상실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은 그 이유를 찾기 위해 방황하고 스스로를 괴롭힌다. 또는 고독과 상실을 잊기 위해서 특정한 것에 몰입한다. 몰입은 해소되지 않는 갈증과도 같다.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와 영화감독 하마구치 류스케는 같은 지점에서 같은 이야기로 출발했지만 과정과 결과는 다르게 흘러간다. 하루키의 소설이 현상을 통해 질문을 던지는데 반해 류스케 감독은 질문에 이어 해소된 결과로 향한다. 소설 속 행간의 의미를 되살리고 이유를 유추하며 질문을 반복한다.‘상실’의 근원으로 들어가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과정에서 하루키의 소설이 여기까지라면 류스케의 영화는 그 이유를 개인의 태도에서 답을 찾는다. 20년 전 4살된 딸을 폐렴으로 잃었던 연극 연출가이며 배우인 가후쿠는 사랑하는 아내의 갑작스런 죽음을 맞는다.러닝타임이 3시간이나 되는 영화는 프롤로그에 40여 분이 넘는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40여 분의 프롤로그는 상실과 죄책감, 두려움의 과거다. 이후 오프닝 타이틀이 나오며 2년 후 현재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떠나왔다고, 극복했다고 생각했던, 애써 외면해 온 과거의 진실이 다시 되살아 온다. 그냥 아무 일 없을 줄 알았던,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거나 해결될 줄 알았던 날카로운 진실이 마음을 핥퀸다.프롤로그에서 남았던 후회의 원인은 상처가 된다. 그 상처의 치유를 위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직시하여야 한다. 하지만 가후쿠는 또 다른 상실이 두려워 현상유지를 선택한다. 이러한 선택을 했던 그의 ‘태도’에 대한 반성에 이르는 여정을 보여준다. ‘드라이브 마이 카’는 크게 두 개의 공간으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연극무대로 영화 속 연극의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사뮈엘 베케트의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로 시작해 안톤 체홉의 ‘바냐 아저씨’로 끝난다. 영화의 이야기는 주인공 가후쿠가 ‘바냐 아저씨’를 위해 배우들 오디션을 보고 완성해서 무대에 올리는 과정이다. 연극 무대에서 시작된 영화는 연극 무대에서 끝난다. 그리고 또 하나의 중심 공간은 영화의 제목처럼 자동차 내부다. 연극 무대가 타인의 삶을 이해하고 표현해가는 열린 공간이라면 자동차 안은 온전히 자신과 마주하는 지극히 사적인 공간이다. 히로시마 예술문화극장에서 기획한 연극제의 연출직을 제안받은 가후쿠는 상주 예술가는 반드시 운전기사를 고용해야 한다는 규정에 따라 내키지 않았지만 주최 측이 추천한 운전사 미사키에게 운전대를 넘긴다. 가후쿠의 사적인 공간에 동승하게 된 미사키. 이후 영화는 연극 무대와 자동차 내부를 오간다. 연극 무대에 누가 어느 배역으로 오르는가의 문제와 가후쿠의 자동차에 어느 좌석에 누가 동승하게 되는가에 따라 ‘상실’의 두려움을 회피했던 개인의 태도라는 문제에 접근해 간다.연습이 거듭되면서 배우는 맡은 배역의 대사를 읽고 또 읽으며 그 너머의 있는 의미들을 좇는다. 자동차 안에서는 프롤로그에서부터 이어진 사건의 진실과 마주해야하는 고통의 시간이 흐른다. 그 고통은 서서히 자동차 좌석의 자리를 옮겨 다니며 다가와서 깊고 아프게 마주해야할 용기를 요구한다. 그렇게 고통을 직시할 때 상처는 아물고 삶의 다음 장으로 넘어갈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진실로 타인이 보고 싶으면 자기 자신을 깊이 똑바로 지켜볼 수밖에 없다”는 대사처럼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줄 알았던 것들에게 ‘제대로’ 안부를 묻고 스스로의 내면을 정면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을 세세한 장면들로 전달하고 있다. 아픔을 딛고, 봉인된 상처 뒤에 아름답고 행복한 삶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살아가야하고, 운명이 가져다주는 시련을 견뎌야 하는 삶이 연속될 것이라 말한다. 눈물을 흘리고 괴로워할지라도 ‘제대로’ 마주해야하는 태도를 통해 삶은 이어지고 있음을 영화는 말한다. /(주)Engine42 대표

2022-04-04

찰 영(盈)에 돌아볼 권(眷) 길 영(永)에 권세 권(權) <Ⅰ>

허 형사가 메모지에 그림을 그려가며 박 팀장에게 설명을 했다.-만약에 출발부터 다른 차를 타고 갔다면? 그럴 가능성은 없어?허 형사가 컴퓨터에 영상 하나를 띄웠다.-이게 병원 지상, 지하 주차장 CCTV 전체 영상입니다. 살펴봤는데 지상, 지하 주차장 그 많은 자리를 두고 CCTV 사각지대에 주차가 되어 있었나 봅니다.피해자 차량이 어디에 있었는지 보이지가 않아요. 여기 보시면 피해자가 보입니다. 피해자도 자기 차를 어디에 두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한참 동안 지하 2층 주차장을 돌아다니더라고요. 그러다가 여기서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이 구역에는 CCTV가 없다 하네요. 피해자가 보이지 않은 시점 후로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차량을 살폈는데 이십 분 정도 있다가 피해자 차량이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이십 분이면 좀 길지 않아?-길죠. 무슨 일을 한 건지 알 수도 없고. 주차하러 들어오고 나가는 차량이 워낙 많은 곳이라 시간대를 맞추어서 살피기는 애초에 불가능하고. 큰 회사의 회장이나 되는데 혼자 퇴원하게 둔 것도 이해가 안 되고. 일이 그렇게 되려고 하니 그렇게 된 건가 싶기도 하고.-왜 혼자 퇴원했다는데? 마우스가 왜 이래?박 팀장이 마우스로 영상을 확대하려 했으나 마우스가 말을 듣지 않았다.-아까부터 이상하더니. 건전지가 다 되었나 봅니다. 갈아놓겠습니다. 왜 혼자 퇴원하게 두었는지 물어봤지요. 인공 폐 이식 수술을 받은 후 한참 동안 입원을 했답니다.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할 상태가 되어 퇴원을 했는데 피해자가 다른 사람에게 운전대를 안 맡기는 성격이라네요. 나이가 팔십 일곱인데도 자기가 운전할 수 있다고 아무도 나오지 말라고 했답니다.담당 교수가 그러는데 마지막 회진을 돌 때 그랬답니다.혼자 퇴원해서 회사에 깜짝 출근을 할 거라고. 그래야 평소에 직원들이 어찌하고 있는지 볼 수 있다고.하나 있는 아들은 해외 출장을 갔고 사실혼 관계이던 여자는 산전 진찰을 갔었답니다. 하필 그날.-산전 진찰? 무슨 말이야? 손주 며느리도 아니고 사실혼 관계? 팔십 일곱이라 안 했어? 내가 잘못 들은 거지?-그게, 마이걸이랍니다. 마이걸. 나 같은 홀아비는 피해자 가족이나 용의자들 쫓아다니고 구십이 다 되어가는 노인은 어린 여자하고 그러고 있고. 세상이 그런 거지요, 뭐. 임신까지 시켜가면서. 임신이 가능하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이 사건 별로 재미없습니다. 나는 왜 사나 싶기도 하구요.의자에서 일어난 박 팀장은 허 형사의 등을 토닥였다. 담배나 한 대 피우러 가자며 허 형사를 끌고 밖으로 나왔다.-하여튼 이거 빨리 끝내자. 위에서 말 나왔다. 빨리 그리고 반드시 범인을 잡아내라고.허 형사는 담배 연기를 한 모금 빨았다가 뱉어냈다.-그게 재촉한다고 됩니까?박 팀장이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켰다.-서장님한테 전화가 온 모양이야. 김영권이라고. 국회의원. 있잖아, 지난번 전 국민 기본 소득 국민 투표 부결시킨 그 국회의원. 피해자와 관계가 깊었던 모양이야. 범인을 반드시, 빨리 잡아내라고 서장님에게 닦달을 했나 봐. 그 국회의원이 지금 여당 실세라며?허 형사는 담배꽁초를 종이컵 바닥에 문질렀다.-김영권요? 국민 기본 소득 부결시키고 노인 기본 소득으로 바꿔 통과 시킨 그 사람이지요? 거기도 나이가 팔십이 다 되었을 겁니다.팔십이 다 되어가는 정치가와 구십이 다 되어가는 부자라. 친할 수밖에 없겠네요. 지들이 다 해 처먹고 있으니.혼자 먹으면 심심했을 거고. 니미, 젊은 나는 똥이나 닦고 있고. 아, 갑자기 이 사건 수사하기 싫어지네. 팀장님, 이 사건 다른 팀 주면 안 됩니까? 아니면 뭉개다가 미제사건으로 처리해버리든지.박 팀장은 두 손으로 허 형사의 양쪽 어깨를 주물렀다. 김강 작가 2017년 제21회 심훈문학상 소설 부문 대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우리 언젠가 화성에 가겠지만’ ‘소비노동조합’ ‘여행시절’(공저) ‘당신의 가장 중심’(공저) 등을 썼다. -그렇지. 그래도 어쩌겠냐. 우리 일인 것을. 그러니까 빨리 끝내고 다른 사건 해결하러 가야지.허 형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박 팀장의 손을 어깨에서 내리며 대답했다.-네, 압니다. 알지요. 그냥 기분이 그렇습니다.둘은 경찰서 안으로 다시 들어왔다. 박 팀장이 앞서서 계단을 걸어 올라갔고 허 형사가 뒤를 따랐다.-팀장님, 이상한 게 또 있습니다. 굳이 왜 시신이 발견되도록 두었냐는 겁니다. 어디에 묻어버리거나, 물속에 던져버려도 될 것을 굳이 옷을 다시 입혀 차에 태웠냐는 거지요. 일부러 발견되기를 원했던 거잖아요.-그러네. 단순한 사건이 아닐 수도 있겠어. 범인을 잡으면 꼭 물어보자고.-지금 농담하는 게 아니잖습니까. 왜 그랬는지 추측이라도 해야 범인을 잡을 수 있는 거잖아요. 그리고 아들이….

2022-04-04

나무를 심는 마음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일제히 꽃망울을 터트리는 찬란한 봄이다. 길섶에 다소곳이 알거나 모르게 들꽃이 웃음짓고, 언덕이나 길가에 벚꽃이 팝콘처럼 피어나는 개화의 절정이다. 앞서거나 뒤서며 시시때때로 피어나는 꽃들은, 어쩌면 밤하늘의 별들이 땅으로 쏟아져내려 꽃의 화신으로 새롭게 빛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꽃을 보면 마음이 환해지고 별을 보듯 밝아지는 걸까? 대지에 새 옷을 입히는 풀과 별빛같이 총총한 꽃과 가지마다 연둣빛 잎새가 손짓하며 바야흐로 봄날이 깊어 가고 있다.차분하게 또는 현란하게 꽃잔치를 벌이고 나면 산과 들은 온통 잎새 잔치로 이어진다. 꽃이 피기 전부터 이미 실눈처럼 연한 움을 틔우거나, 꽃이 지고 나면 기다렸다는 듯이 앙증맞은 연초록 잎새들이 동시다발로 생명의 손을 내민다. 하루가 다르게 봉긋봉긋 돋아나며 잎차례를 벌이는 나무들은 힘찬 기지개라도 켜듯이 줄기와 가지 마디마디 연둣빛 촉을 거침없이 드러내고 있다. 이쪽저쪽 새순이 나무마다 가지마다 어김없이 돋아나기에 4월을 ‘잎새달’이라 하는 걸까?“돌아온 4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 든다/빛나는 꿈의 계절아/눈물어린 무지개 계절아//목련꽃 그늘 아래서/베르테르의 편지를 읽노라” - 박목월 시 ‘4월의 노래’ 중피어나는 꽃들과 잎새들이 부쩍 돋아나는 4월은 그야말로 빛나는 생명과 약동의 계절이다. 봄 기운이 충만하고 나비가 날아다니는 잎새달은 ‘부지깽이를 꽂아도 싹이 튼다’는 말처럼, 강인한 생장을 멈추지 않고 줄기와 이파리를 줄기차게 늘려 나간다. 그래서 나무심기 좋은 4월 5일을 식목일로 정해 조림(造林)정책과 산림녹화사업을 강화하기도 했었다. 그만큼 나무와 환경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산림육성과 보호를 실천했었기에 녹화사업의 세계적인 모범사례로 기록되기도 했었다.나무는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주기만 한다. 꽃과 잎새를 드리워 향기와 신선함을 주고, 맑은 공기와 시원한 그늘로 건강과 편안한 쉼을 누리게 해준다. 또한 양식(良識)의 보고(寶庫)인 책 종이를 만들어 주고 세찬 바람을 막아주는가 하면 팍팍한 삶의 터전을 굳건히 지켜주기도 한다. 그러한 나무에는 켜켜이 애환이 스며 있고 나이테마다 역사가 점철돼 있기도 하다. 그렇기에 우리는 자식 같고 이웃 같으며 친구 같고 스승 같은 나무와 숲을 잘 가꾸고 보전해야 한다.옛날에는 딸이 태어나면 오동나무를 심어 시집갈 때 장롱을 만들어 보냈듯이 나무는 재산의 밑천이기도 했었다. 요즘도 관공서나 기업체에서 기념식수를 하는 것은 단순히 기념식의 요식행위가 아니라, 어쩌면 봉황을 기다리는 벽오동을 심은 뜻처럼 태평성대와 지속가능한 발전을 도모하는 염원이 아닐까 싶다. 최근의 울진 산불로 송이 주산지의 소나무 70%가 소실됐다 하니 안타깝기만 하다. 예년 같은 송이 생산을 하기까지는 최소한 50년이 걸린다니, 삶의 터전을 잃고 망연자실해하는 주민들의 모습에서 녹화와 조림, 산림보호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 된다. 하늘이 차츰 맑아진다는 청명(淸明)이자 식목일인 오늘, 저마다의 반려나무를 심으며 국토와 마음의 밭을 푸르게 일궈보자.

2022-04-04

윤석열 당선인에게 드리는 고언(苦言)

변창구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 대통령 집무실 이전을 둘러싼 신(新)·구(舊)권력의 충돌은 윤석열 당선인의 앞날이 결코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협치를 통해서 통합에 노력하라는 국민의 명령을 벌써 잊어버렸는지 ‘떠오르는 별’이 ‘지는 별’과 힘겨루기 하는 모습이 참으로 안타깝다.윤 당선인이 성공한 대통령이 되려면 무엇보다 ‘열린 마음’으로 협치와 통합에 나서야 한다. ‘닫힌 마음’은 협치의 가능성을 외면하는 ‘적대적 사고방식’이다. 협치는 대화와 타협을 중시하는 민주주의 원칙이며, 여소야대(與小野大) 정국이 요구하는 현실적 조건이다. 이 원칙과 조건을 무시하고 일방통행 한다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식물대통령이 되고 말 것이다. 더욱이 빈부·이념·정당·학력·성별·세대 등의 갈등, 즉 ‘문화전쟁(culture war)’이 전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나라이니 협치와 통합은 피할 수 없는 시대적 소명이다.협치를 위해서는 패자를 포용할 수 있는 승자의 넓은 도량이 필요하다. 협치는 힘을 가진 자가 먼저 손을 내밀고 양보할 때 시작된다. 협치의 전제는 ‘다름에 대한 존중’이다. 야당의 생각이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르다’는 점을 인정하고 존중할 때 협치 할 수 있다. 독일은 ‘통합의 리더십’을 보여준 메르켈(Angela D. Merkel) 수상의 성공적인 협치 16년을 통하여 세계의 중심국이 됐다. 야당의 이념과 가치를 존중하고 그들의 합리적 주장을 수용했기 때문이다. 윤 당선인은 두 동강 난 나라의 현실과 ‘승자독식(勝者獨食)’ 정치제도의 한계를 솔직히 인정하고 ‘통섭(統攝)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측근과 공신(功臣)만 챙기는 보은인사는 결국 자신에게 독이 되어 돌아온다. 협치를 위해서는 여야를 가리지 말고 널리 인재를 구할 수 있어야 한다.통합의 정치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하는 것이다. 역대 대통령들은 모두가 통합을 역설했고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기도 했다. 하지만 구체적 행동이 뒷받침되지 못함으로써 분열만 심화시켰다. 통합을 위한 실천행동의 첫 단계는 ‘소통’이다. 대통령 집무실을 옮긴다고 해서 소통이 잘 된다는 보장은 없다. 중요한 것은 장소가 아니라 소통에 필요한 대통령의 인식과 의지다. 상명하복(上命下服)의 검찰조직 총수가 지녔던 권위적 태도로서는 소통이 어렵다. 소통은 일방통행이 아니라 쌍방통행이며,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대선 결과 0.73% 득표율 차이는 당선인을 지지하지 않았던 절반의 국민소리도 경청하라는 의미이다.이를 위해서는 당선인의 오만과 독선을 막아줄 ‘악마의 대변인(devil’s advocate)’이 필요하다. 권력 주변에는 언제나 ‘권력 불나방’들이 우굴 거린다. 당선인이 ‘예스맨(yes man)들’의 감언이설과 집단사고에 휘둘리는 순간, 교만과 독선의 늪에 빠진다. 이 늪에서 그를 구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충성스런 비판자’ 밖에 없다. 당선인의 성공 여부는 ‘내로남불’이 아니라 ‘춘풍추상(春風秋霜)’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2022-04-04

일상회복 잰걸음…빈틈없는 의료대응이 먼저

어제부터 사적모임 인원 10명, 식당·카페 등 다중이용시설의 영업시간은 밤 12시까지로 확대됐다. 정부는 코로나19 확진자가 감소세를 유지하고 의료체계가 안정적으로 관리될 경우 오는 18일부터는 실내마스크 착용 의무화 말고는 모든 방역조치 해제를 검토할 것이라 밝혔다. 2020년 3월 시작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사실상 폐지되는 수순이다.이런 분위기를 반영, 우리사회 전반에는 코로나 탈출을 위한 일상회복 조짐들이 서둘러 확산되는 양상이다. 지난 주말만 해도 보문단지 등 지역의 벚꽃 명소 등에는 나들이객 인파로 북새통을 이뤘다. 항공여행업계도 입국시 격리해제 조치가 시행되면서 여행객맞이에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일부 재택근무를 실시하던 기업들도 사무실 출근체제로 전환하고 있다.하루 60만명까지 치솟았던 오미크론 확진자는 최근 일주일 평균 20만명대로 떨어져 감소세가 확연하다. 아직은 위중증환자 1천명, 사망자 300명선을 유지하고 불안한 구석도 있지만 오미크론의 낮은 치명률을 감안하면 출구전략을 이제 모색할 때도 됐다.그러나 보건당국의 조치에 따라 일상회복의 성공 여부가 달렸다고 생각하면 당국의 대응조치는 매우 중요하고 국민의 관심이다. 과거 우리 정부는 단계적 일상회복을 시도하다 한 달만에 원점으로 되돌리는 등 코로나 방역과 관련한 시행착오를 자주 일으켰다. 섣부른 시도로 국민을 실망시킨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월스트리트저널은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먼저 엔데믹으로 이행하는 국가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2주 후면 우리는 사회변화를 가져올 중대한 결정을 해야 한다. 이런 때일수록 방역의 긴장을 높이고 빈틈없는 준비를 해야 한다.먹는 코로나 치료제 확보를 서두르고 동네병·의원의 대면진료를 원활히 하기 위한 의료체제 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위중증환자 관리에 치중해 귀중한 생명을 지키는 정부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코로나19는 언제든 새 변이 발생이 가능하다. 국민 각자의 보건의식도 중요하다. 정부의 치밀한 준비로 이번이 마지막 거리두기가 되길 바란다.

2022-04-04

포항,‘국제적인 백신허브’ 인프라 갖춘다

포항경제자유구역에 ‘K허브 사이언스 파크(KSP)’가 설립돼 국내 백신허브로서의 인프라를 구축한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KSP는 미래 감염병 팬데믹에 대비해 임종윤 한미약품 사장 주도로 만들어진 ‘케이허브(KHUB) 백신 컨소시엄’이 영국 옥스퍼드대 바이오 스타트업 등과 함께 만들어지는 공익재단이다.‘케이허브 백신 컨소시엄’은 백신 선진국인 영국에도 KSP를 설립해 글로벌 파트너십을 구축하기로 하고, 현재 영국 대사관, 영국 국제통상부 등과 재단설립에 필요한 절차를 논의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포항에 연구생산 거점을 구축하는 것이다. ‘바이오 도시’를 꿈꾸는 포항시로서는 KSP유치로 날개를 단 셈이다. 포항시는 지난 2020년 6월 한미약품 지주회사인 한미사이언스와 3천억원 규모의 투자 양해각서를 체결했으며, 이번에 그 결실을 보았다.임종윤 사장은 “KSP는 ‘교육-연구-임상-생산’에 이르는 백신 산업의 전 기능이 구현가능한 국제규격의 백신 허브로서 산학연관 협력 공공사업의 선도적 모범사례로 발전할 것이며” “국가적 난제로 대두된 지역 균형발전을 추구해 포항이 글로벌 백신 허브로 자리매김하는데 일조할 것이다”고 말했다. KSP는 비영리 공공재단이며, 연구·생산 인프라가 필요한 바이오 기업들에 연구개발 및 생산 기회를 제공할 계획이다.포항을 KSP 입지로 선택한 것은 오너의 지역균형발전에 대한 의지도 담겨 있지만, 포항에는 이미 바이오 관련기업 지원을 위한 기반이 잘 갖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포항경제자유구역에는 바이오오픈이노베이션센터, 포항지식산업센터, 세포막단백질연구소, 체인지업그라운드, 그린백신실증지원센터가 입주해 있으며, 포스텍, 방사광가속기를 비롯한 연구 개발 인프라가 국제 수준이다.이번 코로나 펜데믹 사태에서 드러났듯이, 한국은 백신 개발 경험이 부족해 실질적인 방역을 해외 바이오 기업에 의존해 왔다. KSP 설립을 계기로 앞으로 포항시가 국제적인 백신허브로 부상해서, 인재와 기업이 몰려드는 도시가 되길 기대한다.

2022-04-04

레퍼럴 마케팅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레퍼럴 마케팅’은 실시간 가상화폐 투자를 주제로 하는 인터넷 방송에서 주로 활용되고 있는 마케팅기법(Referral Marketing)으로, 제3자가 추천인 코드를 입력하고 가상화폐 거래소에 가입해 투자를 시작할 경우 코드 소유주에게 보상 명목으로 가상화폐나 수수료를 지급하는 방식을 말한다.신규 가상화폐 거래소가 유명 인터넷 방송인에게 코드를 생성해주면 방송인은 해당 거래소로 투자 방송을 진행하며, 코드를 배너 광고로 띄운다. 이때 시청자가 해당 추천인 코드를 입력하면 거래 수수료 감면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문제는 레퍼럴 마케팅을 하는 인터넷 방송은 손실 위험이 매우 큰 ‘가상화폐 선물·마진거래’등 자극적인 거래를 추구하는 경우가 많다. 즉, 시청자에게 위험한 투자를 과도하게 부추길 위험이 크다는 것. 예를 들어 향후 코인 가격을 예측해 베팅하는 ‘가상화폐 선물·마진거래’의 경우 100배가 넘는 ‘레버리지’를 투입할 수 있는데, 가상화폐 가치가 상승하는 데 베팅하면서 125배 레버리지를 투입할 경우 1% 가치 상승 시 125%의 수익을 낼 수 있다. 반면에 만약 가치가 1% 하락하면 손실액에도 역시 125%가 반영돼 막대한 손해를 떠안게 된다. 코드 소유주인 인터넷 방송인은 별도의 수수료를 받기 때문에 방송인은 자극적인 투자 방송을 하면서도 위험성을 숨기고, 최대한 많은 시청자가 거래에 나서도록 부추긴다. 또 레퍼럴 마케팅을 하는 인터넷 방송은 가상화폐 투자에 대한 관심이 높지만 투자금이 넉넉지 않은 비교적 낮은 연령대의 시청자들이 많이 본다.명심해야 할 것은 어떤 투자든 결국 본인의 판단이 가장 중요한 만큼 장·단점을 명확히 알고 투자해야 한다는 사실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2-04-04

석곡기념관 건립 의미와 과제

윤희정종합취재부장(부국장대우) 포항시가 석곡기념관 건립 계획을 발표한 지난달 20일은 시민들에게 무척 뜻깊은 날이었다.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수년간 역점을 두고 추진해온 석곡기념관의 청사진을 드디어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석곡(石谷) 이규준(1855~1923)은 포항이 낳은 근대 한의학의 선구자이자 실학자인 조선 후기의 대표적 유의(儒醫)다. 석곡기념관은 그의 역사적 업적과 남긴 모든 발자취를 조명하는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교육·문화·체험·관광자원으로의 창출을 목적으로 건립이 추진돼왔다. 하지만 지역을 바라보는 시선이 글로벌화하고 있는 변화추세에 비추어보면 아쉬운 부분이 없지 않다.내년 5월경 시민들에게 선보일 기념관은 이규준의 생애와 학문, 업적을 담은 전시공간으로서 석곡 생가가 있는 포항시 남구 동해면 임곡리 주민과 향토사학자, 석곡 제자들의 모임인 소문학회 등이 소원해온 20여 년 염원의 결실이다. 기념관은 경북도 문화재자료 제548호로 지정된 이규준의 저술 목판 364장을 보관할 수장고, 선생의 각종 유품을 전시할 상설전시관과 기획전시실을 구비한다. 또 영상관과 휴게공간인 카페테리아도 마련한다.이 같은 문화재는 지역주민에게 문화적으로 예술문화 정체성·문화생활에 도움을 주고, 사회적으로 공동체·사회통합·사회자본 형성에 기여해야 한다. 또 교육적으로 전통문화·인문정신문화·지역사회를 이해시킬 뿐 아니라 나아가 경제적으로 관광·문화경제·지역 활성화에 도움을 주면서 지역 문화진흥의 핵심 동력으로서 기능해야 한다. 특히 최근 지역 문화산업은 창조산업의 영역 확대 등 지속적, 근본적인 변화과정을 맞고 있다. 가히 패러다임의 변화를 겪고 있다고 할 수 있다.이번 석곡기념관 건립을 지역 문화산업의 패러다임 변화에 적용해 보자. 50여억 원으로 지어지는 제1종 박물관인 기념관이 과연 지역 문화산업의 글로벌화를 염두에 두었는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조금 더 시간이 걸리더라도 더 많은 예산을 확보해 기념관의 글로벌화의 확장 모드를 고려해 건립했어야 마땅했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최근 지역을 바라보는 시각은 또다시 달라지고 있다. 지역의 경쟁자는 인근이 아니라 세계 어딘가에 있는 지역과 문화 콘텐츠들이다. 이에 따라 지역의 산업정책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다양한 정책들로 방향성이 바뀌어 가고 있다.소중한 유물을 체계적으로 보전·전시하고 체험할 수 있는 박물관이 한 곳도 없는 포항에서 접근성이 좋은 석곡기념관은 민족의 앞날과 민생을 염려한 유학자의 신념을 면면히 기억하고 계승하는 또 다른 문화 콘텐츠이자 미래 세대를 위한 산 교육장이 되리라 믿는다.이제 남은 과제는 분명하다. 우선, 예산 추가확보를 통한 체험실 등 공간의 확충 노력과 함께 인근에 있는 석곡서당 및 생가 등과 연계한 석곡 문화벨트를 조성해 더 많은 콘텐츠를 제공해야 한다. 전시물을 더 발굴해 볼거리를 늘리고, 즐길 거리도 함께 제공해 유익한 교육의 산실로 만들어야 한다. 국민이 선조들의 발자취를 체험하고 문화적 자긍심을 가질 수 있을 뿐 아니라, 세계인들이 의미 있게 찾는 글로벌 메카를 지향해야 할 것이다.

2022-04-04

정치인은 얼굴이 두꺼운 게 미덕인가

김진국 고문 잘못을 인정하기는 참 어렵다. 제 눈의 들보는 보기 힘들다고 성경은 말한다. 자기 잘못을 아는 것이 어려우니 인정하는 게 더 힘들 수밖에 없다. 그보다 더 어려운 게 자기 잘못을 알면서 고백하는 일이다. 자존심이 상하고, 모욕감을 감수해야 한다. 일상에서는 자기 잘못을 몰라 우기는 이보다는 알면서도 억지를 부리는 사람이 더 많아 보인다. 몰라서 생긴 갈등이야 이야기하면 합리적으로 풀 수 있다. 알면서 우기는 사람은 대책이 없다. 풀어야 할 숙제는 제쳐놓고 엉뚱한 문제로 시비를 벌인다. 시시비비는 이미 알고 있으니 새로운 문제로 돌려 말꼬리를 잡고, 모욕한다.김정숙 여사의 옷 문제도 그렇다. 사실 대통령 부인은 공식 행사가 많다. 공무원이 아니면서도 공무를 수행한다. 옷으로 국격을 대변하는 건 아니라고 하지만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일정 정도 예산 지원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국민이 받아들일 수준 안에서다.우리 사회가 점점 더 투명해진다. 이제까지 청와대 살림이 비공개로 이루어졌다면 그것을 투명하게 만드는 것도 하나의 발전이다. 모욕을 주고, 수치심을 느끼고, 국정에 지장을 줄 정도로 소란을 피울 일은 아니다. 지나친 부분이 있다면 솔직히 털어놓고 사과하고 넘어가는 게 옳다.답답한 건 문재인 정부는 무조건 부인만 한다는 점이다. 안보를 저해하지 않고도 의전비용을 공개할 방법은 많다. 개인 비용으로 쓴 부분을 밝혀도 저절로 확인된다. 대통령 기록물로 밀봉해 법원 판결을 무효로 만드는 건 대통령이 선택할 방법이 아니다. 사실 이런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특별감찰관 제도를 만들었지만 문 대통령은 임기 내내 임명하지 않았다.20년 집권, 50년 집권을 외치던 민주당이 5년 만에 정권을 내놨다. 10년 주기도 못 채웠다. 사실 경쟁자가 뛰어나서가 아니다. 수많은 여론조사에서 확인됐지만, 민주당이 싫어서다. 믿지 못해서다. 가장 큰 원인이 ‘내로남불’이다. 핵심이 조국 사건이다. 조국 사건으로 민주당의 ‘내로남불’이 비난받고, 윤석열 후보도 만들었다. 국민이 그 사건의 희생자로 그 사건을 바로잡은 것이다.문재인 정부는 임기 내내 비슷한 행태를 보였다. 조국 사건이 불거졌다. 대선 과정에 민주당 이재명 후보도 사과했던 일이다. 배경이니, 의도니, 복잡하게 따지지 말고, 사건만 보자. 분명히 잘못한 점이 있다. ‘가붕개’(가재·붕어·개구리)는 엄두도 못 낼 일을 했다. 상류층 모두 하던 일인지, 상류층 일부만 한 일인지 몰라도 일반 국민은 피해를 봤다. 특권층이 신분 상승의 사다리를 걷어차고, 자기 자식을 대신 올려보낸 사실이 확인됐다. 그것도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외친 정부에서, 수없이 트위터로 ‘특권층의 부도덕’을 폭로해온 ‘정의의 상징’이.그때 사과하고 끝냈으면 될 일이다. 그런데 철저히 부인했다. 개인이 아니라 집단으로 히스테리를 보였다. 임기 내내 질 수밖에 없는 진실게임을 벌였다. 오히려 조국을 영웅으로 만들었다. 상대를 공격하고, 진영 결집의 계기로 삼았다. 법질서도, 상식도 부인했다. 맞는 말도 못 믿게 신뢰를 잃었다.윤미향 사건, 박원순 사건…. 돌이켜 보면 하나 같이 어이가 없다. 개인의 일탈을 진영의 도덕성으로 감쌌다. 우리 편에겐 티끌만한 잘못도 없다는 신화를 만들었다. ‘우리 ○○이는 화장실도 안 가’ 식으로 아이돌 놀이를 벌였다. ‘개딸놀이’, ‘개준스기’ 덕질로 발전했다. 정치에 즐겁게 참여하는 데는 희망이 보이지만, 나라 운명을 놀이로만 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논두렁 시계를 소환하기도 한다. 노 전 대통령은 모르는 사이 벌어진 일이고, 노발대발 바로 잡으려 했다. 그렇다고 시계가 없었던 것도, 기업인의 돈을 받지 않은 것도 아니다. 노 전 대통령이 몰랐을 뿐이다. 이제 와 없었던 일처럼 말하는 건 노 전 대통령을 욕보일 뿐이다.정치인은 얼굴이 두꺼운 게 미덕인가. 반성 없이는 발전이 없다. 그런 태도로는 극렬지지자만 뭉친다. 결국 지방선거에서도 국민의 판단을 받게 돼 있다. /김진국 본사고문

2022-04-03

유튜브 예찬론

김규종 경북대 교수 새로운 옷이나 물품이 유행하기 전에 남보다 빨리 사거나 시험해보는 사람이 있다. 반대로 가장 늦게 어쩔 수 없는 얼굴로 따라오는 사람도 있다. 우리는 그 중간 어디쯤에서 부유(浮遊)하며 살아간다. 물질적인 부나 정신적인 여유 또는 대담성이 완비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최후의 모히칸이 되기도 싫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중간자로 살아가는 일은 가장 평안하고 안전하기 때문이기도 하다.나도 언제부턴가 유튜브를 가까이하게 되었다. 오래전에 텔레비전을 두지 않았기로 저녁 시간을 넉넉하게 보낼 수 있다. 책을 읽거나 기타를 치며 노래하거나 상념에 잠기거나 명상하거나 하면서 말이다. 그러다 우연히 얻어걸린 유튜브는 새로운 세상이었다. 기계를 잘 알거나, 적극적으로 알고 싶은 기질도 없어서 최소한으로 유튜브를 만나면서도 기실 놀라운 바가 적잖다.나한테 유튜브는 명탐정 ‘셜록 홈스’ 연작이나 중단편 소설을 듣는 수단이다. 따로 시간을 내서 읽겠다는 강박증 없이 다른 일 하면서 귀만 열어두면 가능한 노릇 아닌가?! 일석이조(一石二鳥)라는 말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말이다. 한밤의 적요(寂寥)를 나직하게 깨뜨리며 들려오는 낭송자들의 정감 어린 목소리와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나의 고단한 하루를 위로해준다. 아하, 참 멋진 신세계로군! 혼잣말한다.그러다 보니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다가 돌연 알게 된 사실이 유튜브의 세력 확장이다. 정말로 많은 사람이 유튜브와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있던 터였다. 나만 모르고 있었군, 하는 자탄이 절로 나온다. 그들도 나처럼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혹은 신문과 작별하고 유튜브에 의지하여 많은 걸 얻고 있었다. 사람마다 취향과 필요에 따라서 접하는 내용만 다를 뿐, 매체 활용도와 충성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음이 드러난다.얼마 전 피천득 선생의 유명한 수필 ‘인연’을 들으며 감회에 젖는다. 꼬마 아사코와 처녀 아사코를 거쳐 일본인 2세의 아내가 된 주부 아사코와 세 번 만남으로써 인연의 실타래를 풀어가는 수필가. 마치 단편소설의 장면처럼 펼쳐지는 이야기를 듣다가 불쑥 묻고 싶어지는 것이다. “우리 이다음에 이런 집에서 살아요!” 하고 아사코가 속삭였을 때, 연두색이 고왔던 아사코의 우산을 보았을 때, 왜 그는 그녀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았을까?!더욱이 결론적으로 하는 말이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했다는 넋두리다. 그러니까 달착지근한 추억은 가슴에 간직하되, 쓰라린 작별 장면은 불요불급(不要不急)한 것이라 결론 내린 셈이다. 저런 이기주의자의 사무치는 회한과 그리움의 잠꼬대에 오랜 세월 붙들려 살았군, 하는 자책 아닌 자책이 소리 없이 흘러나오는 것이다. 그렇게 오래도록 강렬하게 아사코를 마음에 두었다면 어째서 말하지 못했을까?!식민지 조선의 유약한 서생 수필가가 인생의 황혼 무렵에 느닷없이 도달한 깨우침이란 게 저런 것이었나, 하는 걸 새삼 알려준 유튜브를 예찬하고 싶은 게다. 인연은 함부로 맺어서도, 함부로 걷어차도 아니 되는 것 아닌가?! ‘불수자성수연성’은 그래서 더욱 소중하리라.

2022-04-03

‘대구취수원 다변화’ 딜레마, 이젠 종식되길

대구취수원 다변화와 관련한 협정식이 구미지역 정치권과 시민단체의 반대로 무산될 뻔했다가, 4일 세종시에서 열리게 된 것은 다행이다. 경북도에서 불참의사를 밝히긴 했지만, 환경부가 협정식이 6월 지방선거 이후로 밀릴 경우 새로 일정을 조율하기가 쉽지않아 행사를 강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맑은 물 나눔과 상생발전에 관한 협정’이라는 이름으로 열리는 협정식에는 김부겸 국무총리와 한정애 환경부장관, 구윤철 국무조정실장, 권영진 대구시장, 장세용 구미시장, 박재현 한국수자원공사 사장 등이 참석할 예정이다. 협정서의 핵심내용은 대구 하루 낙동강 취수량 58만t 중 30만t을 해평취수장에서 공동 활용한다는 것이다. 대구시는 취수원 다변화를 하더라도 기존 문산·매곡 취수장에서 여전히 28만t을 취수해야 한다. 이외에 구미시가 조건으로 내건 낙동강수계기금 매년 100억원 지원, 구미하수처리장 시설 개선 및 중앙 하수처리장 증설, 해평습지 생태축 복원, 구미국가5산업단지 입주업종 확대, KTX구미역 신설 등이 포함돼 있다.협정서가 체결되면 대구취수원 다변화를 둘러싼 대구·구미 간 오랜 갈등이 종지부를 찍게 되지만, 구미지역 정치권과 시민단체의 반발이 만만찮아 후속조치가 난항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구미가 지역구인 구자근·김영식 의원은 지난 1일 입장문을 통해 “구미시민들의 의견은 외면하고, 상생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정부 주도로 취수원 이전을 강행하려는 대구시와 구미시의 일방적 사업 추진을 묵과할 수 없다”고 밝혔으며, 김재상 구미시의회 의장도 이날 “구미시가 아닌 다른 지역에서 협정식을 하는 것은 구미시민을 무시한 처사로 차기 대통령 당선인이 협정을 맺도록 협정서 체결을 중단하라”는 성명서를 냈다.협정식에 경북도에서는 이철우 경북도지사 대신 강성조 행정부지사가 참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협정내용은 정권이나 관련 지자체 단체장이 바뀐다고 해서 원점으로 다시 돌아가선 안 된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에도 ‘낙동강 수계 취수원 다변화, 안전한 물공급으로 먹는 물 불안 해소’가 포함돼 있다.

2022-04-03

코시국 벚꽃맞이

우정구 논설위원 온통 벚꽃 천지다. 발걸음 내딛는 곳마다 봄이 왔음을 알리는 벚꽃 만개로 즐거움이 넘친다. 지난 주말 남부지방 일대는 벚꽃을 구경하려는 사람들로 곳곳이 붐볐다. 경주 보문단지와 대구 팔공산 등 대구와 경북지역 벚꽃 군락지도 북새통이긴 마찬가지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오랫동안 짓눌렸던 나들이객의 얼굴도 만발한 벚꽃마냥 환한 웃음꽃으로 활짝 피었다.벚꽃은 보통 3월 하순에 개화해 4월 상순 꽃잎이 진다. 제주 서귀포에서 시작한 벚꽃의 개화는 4월 중순 인천에서 마지막 모습을 보인다. 짧고 화려하게 피었다가 잠시 눈 돌리는 사이 사라져버리는 벚꽃의 개화는 늘 아쉬움이 있기 마련이다. 누군가 이 모습을 보고 “우리의 삶과 무척 닮았다”고 표현했다. 새싹이 나서 꽃이 되어 떨어지는 자연의 섭리가 인생의 흐름과 다를 바 없다는 뜻이다. 벚꽃은 짧고 화려하게 피는 모습도 아름답지만 질 때 모습이 더 아름답다고 한다. 꽃잎이 얇아 하나하나 떨어지는 모습이 마치 꽃비가 내리는 듯한 모습이어서 장관이다. 낭만적 분위기를 연출하기에 아주 적합해 영화의 소재로도 자주 등장한다.지금은 벚꽃이 볼거리로 기쁨을 주지만 옛날에는 벚나무가 인쇄용 목판이나 활을 만드는 재료로도 많이 사용됐다. 고려시대 만든 팔만대장경 판의 재질 60% 이상이 산벚나무다. 조선시대 때는 활을 만드는 재료로 벚나무 껍질을 사용했다. 화피라 불렀다.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 3년째 접어든 올해도 전국의 벚꽃축제는 열리지 못했다. 축제는 열리지 않았으나 벚꽃은 이와 무관하게 그 화려함을 뽐내며 꽃잎을 피웠다. 자연의 순리 앞에 그 무엇도 방해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코시국’에 즐기는 벚꽃놀이가 이번이 마지막이면 좋겠다./우정구(논설위원)

2022-04-03

새정부, 지방분권 강화로 지역균형 이뤄야

대구와 부산 등 전국에서 지방분권 강화와 지역균형발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방자치를 실시한 지 30년이 지났으나 지방자치는 아직도 제자리걸음이기 때문이다. 수도권 중심의 일극체제에 밀려 지방은 젊은이가 떠나는 소멸이라는 벼랑 끝 위기에 몰려 있는 게 현실이다.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은 참여정부 시절부터 국가 어젠다로 제시됐으나 아직 수도권 중심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지 못하고 있다. 역대 정부가 말로는 균형발전을 외쳤지만 내용적으로는 수도권에 더 많은 사람과 기업이 몰려 있다.이러한 지역불균형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는 인수위 사상 최초로 지역균형특위를 만들어 주목을 받고 있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불균형 문제를 바로 잡겠다는 뜻으로 보여 지방분권을 열망해온 비수도권 입장에선 매우 고무적이다.지방분권과 균형발전은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가 있어야 실천적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취임 초기 연방제 수준의 지방자치 실시를 천명했으나 결과적으로 흐지부지됐다. 오히려 문 대통령의 임기 중 수도권 인구는 역사상 최초로 전체 인구의 절반을 넘었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가 더 커졌다는 말이다.반드시 실천하겠다던 2차 공공기관 지방이전도 결국은 다음 정부 과제로 떠넘기고 말았다. 지방분권은 중앙의 권한을 지방으로 대폭 이전하는 것이 주요 골자다. 지방정부 스스로가 자치력을 갖고 지역실정에 맞는 정치를 함으로써 전국을 균형있게 발전시키는 데 목적이 있다.중앙집권 체제에 익숙한 우리에게 반대여론이 클 수도 있다. 그러나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로 이 문제는 반드시 풀어야 한다. 그래야 지방소멸과 최악의 출산률, 일자리 부족 등 국가적 난제와 위기를 풀 수 있는 것이다.수도권 중심의 국정운영이 한계점에 도달했다는 인식 아래 지방분권 강화에 국정운영의 초점을 모아야 한다. 새정부의 획기적이고 지속한 국토균형발전 정책이 있기를 기대한다.

2022-04-03

일본은 우리의 적인가

이정희위덕대 교수·일본언어문화학과 ‘일본은 우리의 적인가’, 이 도발적인 제목에 끌려 책을 사고 말았다. 물론 필자는 일본을 적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저자는 과연 일본에 대해서 어떤 관점을 가지고 글을 썼을까가 궁금해서 책을 단숨에 읽어버렸다.한일 간의 갈등의 핵심에 대해서 저자는 일본의 무가(武家)사회의 칼의 윤리와 한국의 유교사회의 붓의 윤리를 비교하였다. 일본의 무가사회와 한국의 유교사회에 착목해서 차이점을 논한 연구자는 저자 이덕훈씨가 처음은 아니다. 지난 2월에 세상을 달리한 이어령씨 역시 한일문화의 이질성에 대해서 무가사회와 선비사회의 차이를 지적한 바 있다. 필자 역시 일본, 일본인, 일본문화를 연구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일본의 무가사회의 특징, 사무라이 정신 등이라고 생각한다.일본에는 사람은 사무라이, 꽃은 벚꽃이라는 말이 있다.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사무라이가 되어야 하고, 꽃 중에서는 벚꽃이 으뜸이라는 이야기다. 사무라이와 벚꽃이 지니는 상징성만 연구해도 일본인들의 사고형태를 엿볼 수 있을 것이다.그럼, 사무라이의 칼의 윤리를 살펴보기로 한다. 칼의 윤리에서 최고의 악은 지는 것이다. 이기고 지는 승패가 기준이 되는 것이다. 이기면 힘이 있고, 떳떳한 것이고, 지면 약하고 창피한 것이다. 사무라이들은 싸움에서 지면 반성하고 참회를 하는 것이 아니라, 불명예를 극복하고자 할복자살을 한다. 할복자살을 하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싸운다. 아니 죽기 위해서 싸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죽음은 때로는 모든 것을 용서받는 경우도 있다. 또한, 무가사회에서 특이한 점은 배신이 허용된다는 것이다. 실리를 위해서는 배신이 통용되는 것이다.이와는 반대로 우리의 유교사회의 붓의 윤리에서는 승패도 중요하나 선악을 중심 가치관으로 본다. 즉 우리는 모든 일에 있어서 옳고 그름을 따진다.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이겼을 경우 우리는 그 승리를 인정하지 않는다. 게다가 배신은 더더욱 허용하지 않는 사회다. 우리는 절개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다.이와 같이 칼의 윤리와 붓의 윤리는 너무나도 상반되는 차이가 있는 것이다. 이 상태라면 합일점을 찾기는 매우 힘들다. 그러나 선악의 기준은 인류 보편적인 가치 기준이다. 이 보편적인 진리를 일본인들이 깨우친다면 새로운 변화가 일 것이다.유학시절, 같은 외국인 유학생 중에 타이에서 온 친구와 필리핀에서 온 친구들과 한일관계에 대해서 논한 적이 있다. 이때 그 친구들이 “한국과 일본은 형제들끼 리 싸우는 것 같다”고 말을 해 깜짝 놀란 적이 있다. 그들 눈에는 생김새도 비슷하고 문화도 비슷하다고 본 모양이다. 정말 형제가 지독하게 싸우면 어떻게 될까. 좀처럼 화해하지 못하고, 의절을 하고 평생 안 보고 지내기도 할 것이다. 조금도 화해할 분위기가 아닐 경우 제3자가 개입을 해서 좋아질 여지가 있을 수도 있다.우리는 선악의 논리에서 대의명분보다는 실리를 추구하려고 하고, 전략적으로 제3자를 이롭게 활용하면 일본이 수그러들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2022-04-03

삶의 균형을 잡는 법

유영희 작가 인생이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톨스토이의 말처럼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문제 없어 보이는 사람도 가까이서 보면 상처투성이인 경우가 많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상처 때문에 균형을 잃고 괴로워한다.청소년 성장 소설 ‘불균형’에 나오는 두 등장인물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왕따를 당하던 중학생 소녀는 길을 가다 우연히 만난 여자를 초록아줌마로 착각하고 도움을 청한다. 초록아줌마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초록색인데, 그 아줌마의 머리와 옷을 만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해서 아이들이 만나고 싶어하는 상상 속 존재다. 하지만 그 여자는 젊고 노란 옷을 입고 있었으며, 직장에서 인정받지 못해서 회사에 몰래 해를 끼치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기우뚱거리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균형을 잡는 데 서로 도움을 준다.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에도 균형을 잃은 인물이 나온다. 남자 주인공 가후쿠는 유명한 배우이자 연극연출가다. 아내 오토와의 결혼 생활도 행복해 보이지만 사실 부부 사이에는 두꺼운 벽이 있었다. 아내가 결연한 태도로 할 말이 있다고 한 어느 날 가후쿠는 두려운 마음에 일부러 늦게 귀가했다가 쓰러져 있는 아내를 발견한다. 일찍 발견했으면 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며 아내와 추억이 많이 담긴 무대에 다시는 서지 못한다.2년 후 가후쿠는 안톤 체홉의 작품을 연출하게 되었는데, 그때 운전기사 미사키를 알게 된다. 미사키 역시 집에 불이 났을 때 평소 자신을 학대하던 엄마를 적극적으로 구조하지 않았다는 죄책감으로 겨우겨우 살아가고 있는 인물이다.그러던 중 연극 주인공 바냐 아저씨 역할을 맡은 배우에게 문제가 생겨 부득이 가후쿠가 바냐 아저씨 역을 해야 할 상황이 된다. 가후쿠가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미사키의 고향 홋카이도로 가면서 두 사람은 각자의 상처를 말하게 되고 그 후 가후쿠는 무대에 설 수 있게 된다.여기서 영화 속 두 주인공의 대화 방식이 특이하다. 상대의 감정에 대놓고 공감하지도 않고 위로하려고 애쓰지도 않는다. 연극 속 소냐가 수어로 연기하고 대사는 자막으로 나오게 한 것도 인위적인 감정 표현을 최대한 배제하기 위한 장치이다. 이런 방식이 발휘하는 치유 효과는 상상을 넘는다. 그러나 이런 문학과 영화 속의 드라마틱한 해피엔딩이 일상에서 일어나기는 쉽지 않다.우리가 노란 옷을 입었더라도 문학작품을 읽고 경험을 나누는 과정을 통해 조금씩은 치유되며 균형을 찾아갈 수 있다. 며칠 전 산문집 ‘여행하는 나무’를 같이 읽으며 알래스카의 자연 묘사에 뇌파가 안정되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우리는 여기까지 너무 빨리 걸어왔소. 마음이 우리를 찾아 여기에 도착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오.’라는 한 문장에 감당하기 어려웠던 스트레스가 슬그머니 놓여나기도 했다. 이렇게 굳이 조언을 하거나 위로하지 않고 좋은 문학작품을 천천히 읽기만 해도 삶의 균형은 슬그머니 맞춰질 수 있다.

2022-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