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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표리부동

사람에게 표리부동(表裏不同)하다는 평가는 매우 인격 모독적 발언이 된다. 표리부동이란 사람의 마음이 겉과 속이 같지 않다는 말인데, 말과 행동이 따로 노는 사람을 신뢰할 사람은 없다. 표리부동한 사람으로 낙인이 찍히면 그 사람은 인격적으로도 치명상을 입는다.표리부동과 비슷한 말로 구밀복검(口蜜腹劍)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입으로는 달콤한 말을 하면서 배속에는 칼을 지녔다”는 뜻이다. “겉으로 순종하는 척하고 속으로 딴 마음”을 먹는 면종복배(面從腹背)나 “양 머리를 걸어 놓고 개고기를 판다”는 뜻의 양두구육(羊頭狗肉)도 비슷한 말이다.표리부동은 거짓말을 하거나 남을 속이는 좋지 않은 일이나 사람에게 쓰이는 용어다. 인격적으로도 매우 모욕적이지만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라고 평가를 받는 순간부터 그 사람의 인간관계도 점차 나빠진다. 사람은 사회적 관계로 살아가기에 표리부동적 행동보다는 언행이 일치하는 행동을 보이는 게 매우 중요하다.공자는 논어에서“말 재주가 교묘하고 표정을 보기 좋게 꾸미는 사람 중에 어진 사람이 없다”고 했다. 사람이 말을 하는 데에는 뛰어난 웅변술보다는 진심을 전달하는 마음가짐이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북한원전 추진 문건을 둘러싸고 여야 정치권의 공방이 치열하다. 만약 야당의 주장대로 정부가 북한에 원전을 지어주려 했다면 국내적으로 탈원전을 선언한 정부의 태도는 그야말로 표리부동한 행동이다.야당의 공격에 대해 청와대는 혹세무민한 정치 발언으로 북풍 수준의 무책임한 태도라고 쏘아붙였다.산자부가 급기야 관련문건을 공개하고 나섰지만 진실공방은 여전히 베일 속이다. 표리부동이냐 아니냐 국민의 이목이 쏠린 큰 사건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1-02-02

‘시인보호구역’

김규종 경북대 교수2020년 10월 5일부터 대구 문화방송국에서 ‘시인의 저녁’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언뜻 들으면 생뚱맞을지도 모르겠다. 요즘 세상에 누가 시를 읽는다고 ‘시인의 저녁’이란 말인가?! 하지만 그것은 ‘시사와 인문학이 있는 저녁’의 줄임말이다. 대략 40분 남짓한 시간 앞부분에는 시사를, 뒷부분에서는 인문학을 다룬다. 다채로운 손님을 모셔다 여러 가지 세상 이야기를 주고 받는 시간이어서 호응도 제법 좋은 편이다.지난주에는 인문-예술공동체 ‘시인보호구역’의 대표인 정훈교 시인과 함께 대구와 경북의 인문학, 특히 시를 둘러싼 문제를 함께 생각해보았다. 요즘에는 신춘문예나 문예지를 통해 등단한 시인뿐 아니라, 자가 출판한 사람도 시인으로 인정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등단 여부와 무관하게 시인으로 인정받고 활동하는 사람이 늘었다는 의미다. 문제는 시를 읽는 사람들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는 사실이다.그나마 소설은 어느 정도 호응이 있지만, 시나 희곡 분야는 그야말로 설한풍(雪寒風)이 불고 있다 한다. 하기야 나 같은 사람도 시집을 산 지가 꽤 오래전 일이니까 문자 그대로 유구무언이다. 나는 우리나라 독자들이 시를 읽지 않는 데에는 까닭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하나는 문학 전반에 관한 독자들의 처절할 정도의 무관심과 냉소일 것이다. 대학입시에 필요한 정도의 독서가 끝나면 책과 멀어지는 염량세태가 사태의 본질 가운데 하나다.다수 대중은 말도 안 된다고 하면서도 텔레비전의 ‘막장드라마’와 철 지난 트로트 열풍에 휩쓸린다. 왜냐면 단순하되 재미있고, 시간 보내기에 안성맞춤이며, 화제로 삼기에 이것보다 더 좋은 질료(質料)가 없기 때문이다. 화제가 궁한 사람들에게 그야말로 무궁무진한 이야깃거리를 제공하는 가볍고 유쾌하며 부담 없는 오락 프로그램 아닌가.그에 비하면 문학, 특히 요즘의 시는 난해하기 이를 데 없다.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지 도통 알아먹을 수가 없다. 명색이 문학 교수라는 나도 이해할 수 없는 구절과 문맥과 사유와 감성이 차고 넘치는데, 누가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하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 친구 안사람이 시인으로 등단해서 상까지 받았다고 해서 기꺼운 마음으로 몇 편 읽다가 던져버렸다. 내가 한국인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윤동주와 이육사, 김소월과 한용운의 시편 가운데 정말 이해되지 않는 시가 있는가?! 한국의 독자들이 시를 외면하는 두 번째 이유는 시인 스스로가 자초한 것이다. 일찍이 ‘장한가(長恨歌)’의 시인 백거이는 ‘노구능해’라는 전범을 선보였다. 뒷집에 사는 늙고 문맹인 노파가 이해할 때까지 퇴고를 거듭했다는 백거이. 그런 자세를 진즉에 잃어버린 한국 시인들의 자승자박 자업자득 사필귀정이 독자의 상실이리라.그러나 21세기에도 시인은 존중받고 사랑받아야 마땅한 귀한 사람들이다. 그들이 소멸하면 인간세(人間世)도 끝장이다. 자연 생태계의 깃대종처럼 시인은 저잣거리의 난잡함과 번다함을 저지하는 최후의 보루일 것이다. 시인을 ‘시인보호구역’에서 해방할 그 날을 고대한다.

2021-02-02

가덕도 공항, 정치가 절차적 정당성 뭉갰다

가덕도 신공항 건설에 어정쩡한 입장이던 국민의 힘이 적극 지원으로 입장을 바꿨다. 김종인 국민의 힘 비대위원장은 부산을 방문한 자리에서 “신공항 특별법이 여야 합의 하에 처리되도록 노력할 것”을 약속했다. 당 차원에서 가덕도 공항에 대해 공식적 입장을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가덕도 공항 하나로 부산경제가 확 달라지지 않는다”며 부정적 의견을 내놓았던 김 위원장이다. 갑자기 태도를 바꿨다. 가덕도 여건에 변화가 생긴 건 아니다. 4월 부산시장 보선을 앞두고 부산 민심이 가덕도 공항을 열렬히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가덕도 특별법을 2월 중 국회 통과로 밀어붙이면서 부산 민심이 들썩이자 야당도 가덕도 신공항 적극 지지 쪽으로 선회한 것이다. 선거에서 이겨야 하는 정당정치의 속성상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 하지만 정부의 국책사업을 정치가 뒤엎는 결과여서 우려도 많다. 선거 때가 되면 제2 제3의 가덕도가 나오지 말라는 법도 없다.가덕도 신공항은 대구와 경북이 포함된 영남권 5개 광역단체장이 오랜 논란 끝에 합의한 김해신공항안을 백지화한 것이다. 김해신공항안을 백지화하려면 대구경북의 의견을 듣는 것은 당연한 순서다. 국토부의 절차적 과정도 거쳐야 한다. 그럼에도 대구경북 의견 청취는 고사하고 10조원의 국책사업이 정치권 말 한마디로 뒤집힌 것이다.공항 문제를 다루는 국토부가 해야 할 일을 정치권이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마음대로 정한 것이다. 가덕도는 5년전 김해신공항 확장안으로 결론날 때 경제성 등에서 가장 입지가 나쁜 곳으로 평가된 곳이다. 공항을 건설하려면 주변도로와 배후시설 등 여러 가지 고려해야 할 문제가 많은데도 해당부처 의견은 반영되지 않고 일사천리로 진행된다.절차적 정당성이 정치권에 의해 뭉개져 향후에 이 문제가 재론될 소지도 있다. 무엇보다 법적 절차에 따라 통합신공항 사업을 착실히 추진해온 대구경북의 입장이 곤혹스럽다. 이가 통합신공항 건설에 미칠 파장도 이만저만 아니다.선거용으로 전락한 기덕도 신공항을 현실적으로 막을 방법도 없다. 이제 가덕도 신공항은 선거를 앞세워 빠르게 추진될 것이다. 대구와 경북이 어떤 스탠스를 취할지 심각히 고민할 때다. 지역정치권의 대응에 시도민의 관심이 모아질 수밖에 없다.

2021-02-02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

김현욱 시인정재찬 교수와 정재승 교수를 착각하여 지난 글에 정재승 교수의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이라고 오기를 했다. 정재찬으로 정정한다. 정재찬 교수는 ‘시를 잊은 그대에게’라는 베스트셀러가 있다.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은 2020년 2월에 출간했다.책은 ‘밥벌이’, ‘돌봄’, ‘건강’, ‘배움’, ‘사랑’, ‘관계’, ‘소유’로 나누어 모두 7장으로 쓰여졌다. 정재찬 교수가 생각하는 ‘인생이라 부를 만한 것들’의 목록이다. ‘토요일의 인천공항’이 재미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SNS 속 텍스트에 나타난 감정 어휘를 위치 기반 정보에 입각해 분석해보면, 언제나 행복도가 가장 높게 나오는 특정 지역이 있다고 한다. 바로 인천국제공항. 토요일의 인천공항은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곳이다. 그러면서 김훈의 ‘밥벌이의 지겨움’이라는 글을 곁들인다. 밥벌이의 비애와 토요일의 인천공항이라니. 토요일의 인천공항은 일상에서 가장 멀어진 시공간이 된다. 먹고살기 위해 매일같이 일하는 일상이 없다면, 토요일의 인천공항 같은 특별한 시공간도 별다른 의미가 없을 것이다. 인천공항이 밥벌이의 터전인 사람들도 수 천명은 될 테니까.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은 학생들에게 “의술, 법률, 사업, 기술, 이 모두가 고귀한 일이고 생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일이지만, 시, 아름다움, 낭만, 사랑, 이런 것들이야말로 우리가 살아가는 목적”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정재찬 교수는 “우리의 꿈은 명사가 아니라 형용사이어야 할지 모릅니다. 우리는 누구나 ‘무엇인가’가 되고 싶어 합니다. 그 무엇은 명사겠지요. 의사, 교사, 공무원, 회사원 같은 것들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 가령 명사 ‘교사’는 이삼십 대 안에 되든지 안 되든지가 결정이 납니다. 하지만 가령 형용사 ‘존경스러운’ 교사는 정년까지도, 아니 평생토록 이루기 힘듭니다. 생의 목표는 그런 게 되어야 하지 않을는지요.”라고 조용히 일러준다. 우리 인생의 목표가 시, 낭만, 아름다움, 사랑이 넘치는 삶이기를 바라는 것이다.인생은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라고 찰리 채플린이 말했다. 원문을 직역하면, “인생은 클로즈업으로 보면 비극이지만, 롱숏으로 보면 희극이다.”가 된다. 느낌이 달라진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삶을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나만 빼고 모두 행복한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누구나 각각의 사연으로 아픔을 품고 산다. 누구나 소소한 기쁨으로 삶을 살아간다. 정재찬 교수는 행복하려면 자기 자신을 약간 떨어진 자리에서, 좀 더 객관적 시점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대상에 대한 적당한 거리와 시간의 간격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목표가 이끄는 삶처럼 거창할 필요는 없다. 소소한 행복의 즐거움과 삶의 감사함을 아는 일상을 사는 것이 어쩌면 진정한 행복의 비밀인지 모른다. 마음만 바꿔먹으면 일상이 토요일의 인천국제공항이 될 수 있는 것처럼. 꽉 막힌 퇴근길, 차창 밖 노을이 한 편의 근사한 미술작품이 될 수 있는 것처럼.

2021-02-02

포항 연구의 이정표가 될 두 권의 책

김도형'THE OCEAN'편집위원한때 책 만드는 일에 종사했고, 그후로도 책과 관련된 일을 소소하게 이어온 터라 출판 동향에 대해 관심을 접을 수 없었다.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처지여서 지역과 관련된 책에 눈이 더 가기 마련인데, 근래 만난 두 권의 책은 각별히 반가웠다.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이 낸 ‘일제의 특별한 식민지 포항’(글항아리, 2020)은 1935년 10월 발간된 ‘포항지’를 번역하고 해설과 주석을 덧붙인 것은 물론, 일제강점기 포항의 발자취를 다룬 다양한 사료를 담아냈다. 일제강점기 포항의 성장 과정을 본격적으로 다룬 책이 거의 전무한 상황에서 이 책의 발간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김진홍 부국장이 서문에 밝혔다시피 이 책은 일제의 식민정책 성과를 과시하는 수단이자 포항에 정착한 일본인들의 성공담이다. 하지만 당시 한반도에서 발생한 주요 사건과 역사·설화·산업·언론·의료·관광 등의 분야별로 시대상을 살펴볼 수 있도록 정리된 ‘지방 종합지’로서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다. 1930년대 일본어로 된 책을 번역하는 것도 쉽지 않거늘 해설과 주석, 관련 자료를 덧붙인 것은 김진홍 부국장이 포항사 연구에 얼마나 열정적으로 몰두해 왔는지를 입증한다. 특히 수도산 저수조에 새겨진 ‘수덕무강(水德無疆)’이라는 휘호를 누가 남겼는지를 조사한 결과, 당시 총독 사이토 마코토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밝혀낸 대목에서는 무릎을 치게 한다.‘조선수산개발사’(민속원, 2019)는 1954년 일본학자 요시다 케이이치가 낸 책을 박호원, 김수희 두 분이 번역했다. 김수희 박사가 해제에서 밝힌 대로 이 책은 일제강점기 일본의 조선어장 개발 ‘대성공’을 축하하고 총독부의 노력을 기념해 출판했기에 식민사관에 입각해 있다. 하지만 한국 수산업사 연구에 참고할 내용이 분명히 있고, 특히 수산업이 전통적인 주요 산업인 포항에서는 면밀히 살펴봐야 할 가치가 있다.포항과 구룡포에 축항이 이뤄진 배경, 세계적으로 발전한 정어리 어업, 수산시험조사기관의 설치 등은 눈여겨봐야 할 내용이다. 뿐만 아니라, 포항은 청일전쟁 이전부터 잠수기 어업의 근거지였고, 1903년 돗토리현의 한 형제가 지예망(地曳網)으로 포항에 온 이래 이주자가 증가했으며, 1904년 사가현의 이주 어촌이 학산동에 조성되었다는 것을 이 책은 밝히고 있다. 또한 포항은 1917년부터 운반선이 내항해 급속히 발전했고, 1923년 이래 청어 제조의 중심지였으며, 정어리 어업의 발전으로 동해안 굴지의 어항이 되었다. 요컨대 이 책에는 포항이 일제강점기에 수산을 중심으로 어떻게 성장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가 담겨 있다.두 권의 책은 포항과 포항의 본질인 수산을 이해하고 연구하는 데 이정표가 될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이 책의 발간을 계기로 포항사와 수산업사 연구가 더 활기를 띠게 되기를 바라며, 포항에 귀한 선물을 안겨준 두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2021-02-02

게임스톱 사태의 본질

미국 주식시장에서 벌어진 게임스톱 사태의 본질은 공매도 세력과 개미투자자들간의 한판 승부다. 1차전은 미국의 개미투자자, 일명 ‘로빈후드’가 이겼다. 사태의 전말은 이렇다.게임스톱은 가정용 콘솔게임기 프로그램을 파는 소규모 점포들의 체인 스토어로, 미국내에 약 6천여곳의 점포를 갖고있다. 미국인 대부분이 알 만큼 친숙하지만 사양업종에 해당하는 이 업체는 우리나라에서 책 대여점이 사라졌듯 경영이 악화돼 주가가 2~4달러 까지 떨어졌다. 첫 출발 테이프는 미국의 커뮤니티사이트인 ‘월스트리트 뱃’이란 게시판 이용자들이 끊었다. 추억의 장소인 게임스톱 주식이 앞으로 온라인방식으로 전환하니까 주가가 많이 오를 것이라고 매수를 독려하면서부터였다.약 2달전 10달러이던 주가가 40달러까지 올랐다. 주가가 크게 오르자 공매도 세력들이 이유없는 주가상승이라며 곧 반값으로 떨어질 거라고 예고하며 공매도에 나섰다. 그러자, 개미투자자들이 똘똘 뭉쳐서 공격적인 매수에 나서 주식가격을 500달러까지 올려버렸다. 실제로 이번에 공매도세력이 개미투자자들의 반격으로 입은 피해는 22조원에 이른다. 공매도는 주식을 빌려서 주식을 판 다음에 나중에 주식을 사서 되갚아야 하기에 주가가 아무리 많이 올라도 강제적으로 사야되는 ‘숏스퀴즈’상황이 벌어진다. 개미투자자들이 뭉쳐서 계속 주가를 끌어올려 공매도세력이 숏스퀴즈 상황에 몰리게 한 게 바로 게임스톱 사태의 내막이다.우리나라에서도 공매도 잔고 1위인 셀트리온이 1일 현재 약 15% 가까이 폭등해 한국판 ‘게임스톱’이 아니냐며 관심이 쏠리고 있다. 게임스톱 사태는 기관투자가들을 중심으로 한 공매도 세력이 개미투자자들에게 패배한 증시 역사상 초유의 사태여서 항후 여파가 궁금해진다.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02-01

설 연휴까지 거리두기 연장…이번이 마지막이길

정부가 설 연휴 마지막 날인 이달 14일까지 사회적 거리두기(수도권 2.5단계, 비수도권 2단계)를 2주간 더 연장했다. 이에 따라 5인 이상 사적 모임 금지도 같은기간 만큼 연장된다. 식당과 카페 등 다중이용시설의 9시 이후 영업시간 제한조치도 현행대로 유지된다. 대구와 경북도 정부 지침에 맞춰 똑같은 사회적 거리두기가 설 연휴까지 유지된다. 특히 이번 설 명절에는 직계가족이라도 거주지가 다르면 4인까지만 모임이 허용돼 고향방문이나 친지와 가족간 모임도 사실상 어려워질 전망이다. 설 명절임에도 불구하고 가족 친지간 만남이 제한되는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매우 위중한 분위기여서 불가피한 조치라 여겨지나 부모자식간의 만남조차 제약된다 생각하니 기가 막힌 상황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다.지난해 12월 8일부터 시작된 현행 사회적 거리두기가 두 달 가까이 지속되면서 국민적 피로감도 높은 상태다. 무엇보다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등이 받은 경제적 충격은 실로 엄청나다. 상당수 자영업자가 점포 문을 닫거나 임대료를 내지 못해 사지에 몰려 있다. 설 명절 대목을 기대했던 상인들도 이번 사회적 거리두기의 연장조치에 좌절감을 표시하고 있다. 이젠 더 이상 버틸 여력이 없다고 호소한다.정부도 이런 점 때문에 “이번 결정이 쉽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전국 곳곳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하고 있다. 확산세가 꺾였다고 보기가 일러 다시한번 거리두기를 연장한 것이다. 특히 대규모 이동이 예상되는 설 명절이 코앞에 닥쳐있고 이달 말에는 백신접종이 시작될 예정으로 있어 일정에 차질이 빚어질 일이 생기면 안 된다. 또 3월이면 초중고교가 개학을 해야 한다. 정부는 이 모든 일정에 앞서 확실한 코로나19 확산세를 잡아야만 4차 대유행을 막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정부의 이번 조치로 국민은 또 한번 일상의 불편과 불이익을 감내해야 한다. 누구보다 파산 위기에 직면한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등은 제 살을 깎는 고통의 시간을 맞아야 한다. 정부의 이번 조치가 불가피하다 하나 너무 오랜 시간 끌고 온 데 대한 반작용도 만만치 않다. 이제는 거리두기가 빠르게 성과를 내야 한다. 이번이 마지막이길 바란다.

2021-02-01

물아일체는 없다

유영희인문글쓰기 강사·작가나이가 들어가다 보니 삶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진다. 단순히 학문적 호기심이 아니라 삶의 진정한 평화를 구하는 마음이 간절해지기 때문이다. 동양사상에서는 ‘물아일체’라고 하여 내가 대상에 몰입하여 나를 잊어서 나와 대상의 경계가 사라진 경지를 진정한 평화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선인들은 자연의 풍광 속에 흠뻑 빠져 자신을 잊은 경지를 노래했다. 그러나 그런 경지는 잠깐 동안의 흥취일 뿐 언제나 몸은 여기에 있고 자연은 저기에 있을 뿐이다.대상과 내가 구분된다는 것을 그림으로 보여준 화가는 현대미술의 아버지로 불리는 세잔이다. 파리에서 고향으로 돌아온 세잔은 ‘생트 빅투아르 산’을 반복해서 수십 점 그렸다. 리얼리즘을 추구한다던 세잔은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사과가 있는 정물을 그릴 때도 사과 배치에 몇 시간씩 걸리고, 붓질 한 번 하고 몇 시간씩 관찰하느라 그 사과가 썩을 만큼 시간이 오랜 시간 걸렸다고 한다. 그러니 생트 빅투아르 산을 그리는 데 얼마나 많은 힘을 쏟았을지는 상상하기도 힘들다.그런 세잔이 ‘나 자신은 생트 빅투아르산의 의식이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이 말을 ‘나는 생트 빅투아르 산이다’라고 해석하고 산과 합일되기를 추구한다면, 그것은 물아일체 사상의 흔적일 것이다. 그렇게 자의적으로 ‘의식’이라는 단어를 생략해서는 안 된다.‘세잔의 사과’는 현대 여섯 사상가들이 세잔을 해석한 책이다. 그저 ‘빨간 조끼를 입은 소년’ 이나 ‘사과가 있는 정물’ 정도의 그림만 알고 있다가 세잔에 대한 심리학적, 정신분석학적 분석과 그의 작품에 담긴 풍부한 의미를 보니, 세잔에 대한 인식뿐만 아니라 사물을 보는 눈이 한 꺼풀 벗겨지는 느낌이 든다.이 책에 메를로 퐁티가 빠질 수 없는데, 그는 세잔의 그림을 탐색하며 자신의 철학을 만들어간 인물이기 때문이다. 메를로 퐁티 역시 “풍경이 내 안에서 그 자체를 생각하고, 나는 그것의 의식이다”라고 했다고 한다. 이 말이 위 세잔의 말을 부연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메를로 퐁티의 이 말을 참고하여 세잔의 말을 해석하면, ‘외부 세계는 나와 독립적으로 존재하고 나는 생트 빅투아르 산에 대한 의식으로 존재한다.’라는 뜻이다. 여기서 ‘나 자신은 생트 빅투아르 산에 대한 의식’이라는 말의 의미는, 세잔이라는 존재는 생트 빅투아르 산에 대한 의식 현상이라는 말이다. 세잔은 산과의 합일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생트 빅투아르 산의 본질을 화폭에 담기 위해 노력했다.이렇게 ‘인간은 어떻게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 세잔은 인간은 의식이라는 현상으로 존재하며 그렇기에 사물의 본질을 탐구하는 존재라고 답하는 듯하다. 그렇게 완성된 산은 잡힐 듯하지만 잡히지 않는 존재로 저 멀리에 우뚝 서 있다.처음에는 털끝 하나만큼 빗나가도 나중에는 천리만큼 멀어진다는 말이 있다. 인간은 어떻게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 무엇이 정답이다 단정할 수는 없지만, 세잔에게서 그 단서를 조금이라도 얻고 싶다면 단어 하나라도 허투루 지나칠 일은 아니다.

2021-02-01

한미, 전작권 전환·연합훈련 ‘엇박자’ 안돼

미국의 조 바이든 행정부가 전 정부와는 다른 기조로 대북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힌 가운데, 우리 정부는 결이 다소 다른 의지를 피력하고 있다. 전시작전권(전작권) 전환, 한미연합훈련 등에 대해서도 서로 아귀가 맞지 않는 듯한 발언들이 이어진다. 특히 한미연합훈련에 대해서 문재인 대통령에 이어서 서욱 국방부 장관마저 “북한과의 협의”를 거론해 국민을 어리둥절하게 한다. 격변기에 한미가 이렇게 엇박자를 연출하는 것은 곤란하다.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미국민과 동맹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새로운 전략을 채택할 것”이라고 강조해 북핵에 대해 새로운 전략을 추구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미 국방부는 “전작권 전환은 한·미 양국이 서로 합의한 조건이 완전히 충족될 때 이뤄질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그러나 서욱 국방장관은 신년기자간담회에서 “전작권 전환을 위해 진전된 성과를 내겠다”며 서두르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한미연합훈련 실시 여부를 북한과 협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서 이인영 통일부 장관도 연합훈련에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다.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사령관은 최근 전직 정부 고위관계자를 만나 “연합훈련이 컴퓨터 게임이 돼가는 것은 곤란하다”며 “실전 상황이 닥치면 (연합군) 군인들은 혼비백산할 것”이라고 우려를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매년 두 차례 열리던 한미연합훈련은 2018년 2월부터 시작된 화해 분위기와 미북정상회담 추진 등으로 실병력 동원 규모를 대폭 축소하고 거의 컴퓨터 시뮬레이션 위주의 지휘소연습(CPX)으로 대체했다. 2019년부터 키리졸브(KR)·독수리훈련(FE)·을지프리덤가디언(UFG)은 아예 사라졌다.전시작전권 전환은 작전권을 한국이 보유해도 국가안보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사실이 확인될 때 가능한 일이다. 한미연합훈련은 전작권 전환과 연계돼 있다. 전작권 전환을 서두르는 정권이 연합훈련을 축소하거나 없애려고 하는 것은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모순적 행태다. 더구나 훈련 실시 여부를 ‘북한’에 물어보겠다니, 참으로 기막힌 노릇 아닌가. 이건 정말 아니다.

2021-02-01

대인관계에도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조금 야박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새해 들어 나는 대인관계의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조금 더 친절히 이야기 하자면 이제 내가 진정으로 보고 싶은 사람과 나를 정말로 보고 싶어 하는 사람만 만날 것이라는 거다. 안본지 너무 오래됐으니까, 볼 때 되었으니까, 이러다 영영 안 보고 지내게 될까봐 누굴 만나는 건 이제 그만 둘 생각이다. 그동안 친구와 지인 사이를 애매하게 부유하는 관계들에 에너지를 너무 많이 쏟았다. 사람을 잃는 것이 두려워서 의무감에 전화를 걸고 밥을 먹고 술을 먹느라 청춘의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이제 그 노력을 그만 둘 생각이다. 이러한 선언을 하게 된 것은 문득 내가 애매한 관계들을 챙기느라 나 자신과, 내게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사람들에게 충분히 나의 삶을 내어주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불현듯 스쳤기 때문이다.삶이 유한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있는 것과 피부로 느끼는 것은 다른 문제인가보다. 서른을 훌쩍 넘긴 이 시점에서 나는 이십 대 때에는 무한할 것 같던 것들이 사실은 유한한 것이었다는 걸 조금씩 깨닫고 있다. 몸이야 아직 쌩쌩하긴 하지만 작년만큼은 아니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여전히 술을 좋아하지만 이십대 때 만큼 잘 마시지는 못 하게 되었다. 무한할 것 같았던 많은 것들을 떠나보내며, 제 인생도 언젠가는 끝날 것이라는 사실을 이제야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나와 동갑인 축구선수 리오넬 메시와 두 살 많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도 신체능력이 하락세에 접어들었다고 들었다. 밥 먹고 운동만 하는 그들도 그런데 하물며 맨날 앉아서 글이나 쓰는 나야 오죽할까. 그들은 효율적이고 영리한 플레이로 여전히 정상의 기량을 유지하고 있다. 나도 이제 그것을 참고 해 보려고 한다. 효율적이고, 영리한 플레이.단지 신체적인 한계만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갈수록 책임져야 할 것들도 많아진다. 책임질 게 많아진 동시에, 진작에 느껴야 했을 책임감을 뒤늦게 느끼고 있는 것인지는 모른다. 정신적 에너지와 시간은 한정적인데 책임이 늘어나고 있으니 당연히 이제는 절약을 해야 한다.효율성 있게 체력과 시간과 정신을 절약하며 살기 위해서는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카톡이나 이메일로 절연장을 날릴 정도로 나는 냉정하지 못하다. 그래서 내가 택한 방법은 노력을 그만두는 것이다. 애써 연락하지 않으면 만나지지 않는 사람, 그렇게 만나지 않으면 멀어지고 마는 사람, 붙잡지 않으면 관계가 끊어지고 마는 모든 사람들을 더 이상 붙잡지 않으려고 마음먹었다.강백수 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실오라기처럼 위태롭던 관계에 빨간 불이 켜졌을 때 말고 정말로 누군가 보고 싶을 때, 아니면 누군가 나를 진실로 보고 싶어 할 때 만남을 시도할 거다. 아마 그 빈도가 현저히 줄어들겠지. 새로운 만남에도 신중을 기해야 한다. ‘언젠가 읽겠지’하는 막연한 마음으로 책장에 꽂아둔 오래된 새 책 같은 사람들을 더 이상 늘리지 않으려 한다. 딱히 내키지 않는 이에게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라며 함부로 다음 만남을 약속하지 않겠다는 이야기이다. 그렇게 절약된 에너지는 나 자신에게 사용하고, 절약된 시간은 자주 봐도 또 보고 싶은 소중한 이들과 함께하는 데 사용할 거다.이 글을 읽게 될 나의 지인들에게도 부탁하고 싶다. 우리가 볼 때가 되었는데 안 보고 있다거나, 단지 멀어진 것 같다는 이유로 내게 애쓰지 않기를. 그렇게 멀어지면 멀어지는대로 두다가, 어느 날 뜻밖에 진정으로 보고 싶어진다면 그때 부담 없이 서로의 안부를 물으면 되는 것이다. 그때까지 서로의 소중한 사람들, 그리고 누구보다 소중한 자신에게 에너지와 시간을 쏟을 수 있기를 바란다.

2021-02-01

세상을 보는 창 혹은 창으로 보는 세상

집에 있는 날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스마트폰에 의존하는 시간 역시 길어졌다. 친구와의 대화는 통화나 문자로 하고 얼굴이 그리우면 영상으로 마주 보는 것도 가능하다. 직접 만나지 못해 답답하고 서운하지만 동시에 이렇게 다양한 비대면 만남이 가능하다니, 참 발전된 세상이구나, 하는 새삼스러운 감탄도 인다. 어린 시절 공상 만화에서 보았던 최첨단 미래 기술이 바로 지금 실현되고 있는 기분이다.인터넷에는 그야말로 모든 것이 다 있다. 밖으로 나가야만 할 수 있었던 많은 일이 네모반듯한 스마트폰 하나면 충분하다. 이 작은 화면을 통해 친구들을 만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고 좋아하는 가수의 음악을 듣는다. 배가 고프거나 카페인이 필요하면 클릭 한 번으로 음식과 커피를 시켜 먹는다. 푹신한 침대에 누워 워런 버핏의 인터뷰를 시청하고 프리먼 다이슨의 저서를 읽는다. 세상에는 늘 새로운 사건사고가 벌어진다. 세계 각국의 사람들과 일련의 사건에 함께 공감하고 분노하다 보면 어느덧 하루가 저물어있다. 이 모든 것이 집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아도 가능하다. 그러니 스마트폰 화면은 세상을 보는 창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이렇듯 삶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인터넷 때문에 우리는 때때로 지식을 장악하고 있다는 오만에 빠지기도 한다. 나부터가 그렇다. 궁금한 것이 생기면 스스로 생각하기에 앞서 검색창부터 연다. 손가락 몇 번만 움직이면 원하는 정보가 와르르 쏟아진다. 인터넷은 맞춤옷처럼 내게 딱 맞는 답을 선사한다. 가끔은 인터넷이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럴 수밖에. 내가 그 정보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선택당하고 있기 때문이다.‘에코 체임버(Echo Chamber) 효과’가 그 대표적인 예다. 에코 체임버는 방송이나 녹음 시 닫힌 방 안에서 인공적으로 메아리를 만드는 기계를 뜻한다. 이러한 효과가 현재의 우리 삶에도 적용되고 있다. 내 의견에 동조하는 의견이 메아리처럼 반복되면서 그것이 세상의 전부인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특히 소셜미디어의 알고리즘은 이러한 에코 체임버 효과를 잘 보여주고 있다.우리는 페이스북에서 내가 원하는 사람들을 팔로우한다. 그들은 내 심기를 거스르는 말을 하지 않는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손쉽게 끊어낼 수 있다. 정치적 성향이 맞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또는 그런 기사나 댓글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지! 내가 옳을 줄 알았어! 강력한 확신과 동시에 자기 의심은 공기 중으로 흩어진다.유튜브 역시 마찬가지다. 유튜브는 실행과 동시에 가장 먼저 내가 원하는 콘텐츠를 보여준다. 보기 싫은 것을 볼 필요가 없다. 알고리즘이 알아서 필터링해주기 때문이다. 언젠가 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은 광고로 상영된다. 엊그제 최저가를 검색했던 보디로션, 수면 잠옷, 강아지 사료까지. 우리는 이렇게 작은 화면에 갇힌 상태에서 더 넓은 시야를 확장하지 못하고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다.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나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중에서 ‘라푼젤’의 서사를 가장 좋아한다. 높고 좁은 탑에 갇혀 있던 여성이 안온함을 박차고 세상 밖으로 나오는 이야기라는 점이 무척이나 매력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라푼젤이 작은 창으로 내려다본 세상은 닿을 수 없는 비밀로 가득 차 있다. 그녀의 계모는 밖은 온통 위험한 것뿐이며 탑에 머무는 지금이 가장 안전한 방식이라고 속삭인다. 그러나 그녀는 기꺼이 현실과 마주한다. 두려움과 슬픔, 상실의 감정을 만나며 좌절에 빠지기도 하지만 멀리서 관조했던 빛의 풍경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아름답다는 것을 알게 된다.창문으로 보는 풍경이 세계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사회의 안전을 위해 좁은 탑에 갇혀 있어야만 하는 요즘이다. 이런 때일수록 화면 너머에 존재하는 삶을 기억하고 다양한 사람들의 시선을 존중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2021-02-01

미술에 던지는 ‘질문 위의 질문’

현상(現狀)의 근원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을 ‘메타적 물음’이라고 한다. ‘정의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역사란 무엇인가?’등의 질문이 메타적 물음에 속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것은 개별 현상이다. 주운 물건의 주인을 찾아주면 뿌듯함을 느끼고, 타인을 도와주면 정의를 실천한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이는 정의에 대한 일상적 경험이다. 메타적 물음은 관점을 전혀 달리하며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남을 도와야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왜 우리는 양심에 따라 행동해야하는가?’ 더 나아가, ‘정의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일까?’ 이것은 미술에도 적용된다.미술가들은 개별적인 미술작품을 창작하며, 감상자들이 경험하는 것은 개별 미술작품이다. 어떤 작품은 아름답게 보이고, 그렇지 않은 작품도 분명히 있다. 미술의 일상적 경험은 시각적 자극이지만, 메타 차원에서의 질문은 ‘무엇이 미술을 미술이게끔 하는가?’, ‘아름답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미술은 무엇인가?’ 등과 같이 근원과 본질에 닿아 있다. 그래서 메타적 물음을 ‘질문 위의 질문’이라고 한다.미술가는 물론 감상자들 역시 미술을 메타적 층위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 본질을 놓치지 않을 수 있다. 메타 질문을 던질 때는 성급히 답을 얻겠다는 기대를 버려야 한다. 명확한 답이 없으면 말장난에 불과하거나 무의미한 것으로 취급을 당한다. 그런데 결코 그렇지 않다. 메타 성격의 질문은 하나의 답에 이르기 위해 던지는 질문이 아니다. 인식의 폭을 넓히기 위해 던지는 질문이 메타 질문이다.사전은 미술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공간 및 시각의 미를 표현하는 예술로 그림, 조각, 건축, 공예, 서예 등을 가리키며, 공간 예술 혹은 조형 예술 등으로 불린다.” 이런 식의 사전적 개념정리는 피상적인 설명에 불과하다. 미술에 대한 포괄적 이해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다른 방식의 접근이 필요하다. 예컨대 미술은 자기를 표현하고 무언가를 창작하려는 인간의 본능적 욕구와 관계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의 본능적 욕구들은 대부분 생존을 위해 발달되었다. 그런데 미술은 생존과 직결되어 있지 않은 미적 유희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미술 행위는 본능적 욕구이기는 하지만 생존과는 무관한 순수한 유희인가?’하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혹은 다른 입장을 취해 미술 행위 역시 생존을 위한 본능일 수 있다는 반론도 가능할 것 같다. 다산을 기원하며 제작했던 조각상이나, 풍요로운 사냥을 기원하며 동굴 벽에 그린 동물 그림 등을 그 근거로 제시할 수 있다. 또한 집을 짓는 행위도 생존을 위한 본능적 행위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사람이 집을 짓는 행위와 새들이 둥지를 짓는 행위 사이에 차이는 무엇인지 물음이 생긴다. 사람과 동물 모두 생존을 위해 본능적으로 집을 짓는다. 그렇다면 생존을 위해 집 짓는 행위는 인간 고유의 창작 활동이 아닐 수 있다는 또 다른 의문에 도달한다.문제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어쩌면 미술을 인간 고유의 창작 행위로 본다는 전제 자체가 잘못 된 것은 아닐까? 한때 그림 그리는 침팬지가 미술계를 떠들썩하게 한 일이 있었고, 지금은 AI가 거장들의 화풍을 학습해 그림을 그린다? 인간만이 미술을 할 수 있고 인간의 창작 행위만이 미술로 불릴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일까? 미술가가 그린 그림과 침팬지가 그린 그림 혹은 AI가 그린 그림들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이렇게 메타 질문은 하나의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통해 관점과 관점을 넘나드는 사고훈련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질문들을 계속 이어가다보면 어느 순간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거대한 지식 덩어리가 형성된다. 이것이 메타 질문을 통한 인식의 확장이다. 메타 질문을 던지다 보면 미술의 문제가 미술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거의 대부분의 문제들은 메타적 차원에서 만나게 되어 있다. 관찰되는 현상은 다를지 몰라도 본질은 매우 밀접하게 닿아 있기 때이다. /미술사학자 김석모

2021-02-01

신라 이전의 역사, 사로국 2

중국 삼국지(위촉오 삼국사, 184~280년)는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유명한 역사다. 역사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조조, 유비, 손권이 세운 삼국뿐만 아니라 혜성같이 잠깐 스쳐 지나간 여러 나라와 인물들도 대부분 기억할지도 모른다.그런데 위나라가 낙랑군, 대방군을 통해 삼한의 여러 국들에게 인수(관직이 표시된 도장과 끈 장식)를 전해줬다거나 교역 대상을 임의로 바꾼 탓에 전쟁이 벌어졌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지금 말하는 기록은 역사 소설인 ‘삼국지연의’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정사 기록 ‘삼국지’에 실려 있는 같은 시대 우리나라 역사이다.사로국이 건립된 지 200여 년이 지날 무렵부터 동북아시아의 정세는 다시 요동치기 시작했다. ‘한, 예가 강성해져서 군현이 능히 통제하지 못하자 백성들이 삼한으로 이탈해 나간다.’ 위 기사는 중국 후한 말기(147~189년)의 기록으로 혼란스러운 중국의 상황과 사로국을 포함한 삼한 사회의 성장을 전해준다.이 시기부터 삼한 사회에서는 ‘목관묘’(널무덤)를 대신해 ‘목곽묘’(덧널무덤)를 무덤 구조로 채용하여 넓어진 부장 공간에 훨씬 많고 희귀한 유물들을 매납한다.이전 시기보다 풍족해진 경제적 기반이 무덤 구조에 반영되고, 사회 전반적으로 부(富)를 과시하는 현상이 유행할 만큼 당시의 상황이 변했던 것이다.급변하는 상황 속에서 사로국은 또 다른 과감한 선택을 감행한다.진한 교역망에서 낙랑군, 대방군으로부터 선진 문물을 입수하는 비중을 줄이는 대신, 사로국 브랜드의 철기 제품을 주변 국들에게 집중적으로 유통하면서 빠져나올 수 없는 소비 구조를 구축해 나간 것이다.이런 조치는 교통망에 유리한 자연적 조건과 흔들리지 않는 진한 맹주국의 사회적 지위가 뒷받침된 결과였다. 진한 연맹체에서 사로국을 통하지 않고서는 동해안 해로와 내륙 육로를 이용할 수 없었고, 의존적인 철 공급 시장에서 특화된 철기로 패권을 장악한 사로국에게 반기를 들 수 없었다.최근, 가야가 철의 왕국이라고 선전되지만, 그 원조는 사로국이라 할 수 있다.사로국은 영역 경계에 있던 달천 광산으로부터 원료를 공급받고, 중심지 주변의 황성동 유적 등지에서 철기를 생산했다.한반도 남부에서 대규모로 손꼽히는 철광석 산지가 사로국 수중에 있었으며, 발달된 제철 기술과 전문적 운영 시스템도 갖췄다고 볼 수 있었다.발굴 조사된 황성동 유적은 요즘으로 치면 포스코의 1차 하청 업체로 추정되는데 고도로 전문화되고 분업화된 구조로서 대량 생산에 적합하도록 설계됐다.시간이 흘러, 사로국의 철은 실용적 용도와 경제적 가치를 넘어 사회 통합의 상징으로 활용되기에 이른다.사로국으로부터 철을 공급받는 주변국들은 점차 무덤 구조와 장례 절차를 사로국의 기준에 맞추게 된다.장기명학예연구사당시 특징적인 사로국의 장례 풍습은 시신이 안치되는 목관 바닥에 철창을 비롯한 다양한 철기들을 빈틈없이 배치하는 것이었다. 이런 장례 의식은 유례없이 많은 철기가 요구됐음에도 주변국의 상류 사회에서 경쟁적으로 채택되고 공유된다.사실, 철기를 과소비하는 사회 현상은 우연한 유행이라기보다 주변국들을 ‘신라’라는 영역 국가로 통합하기 위해 기획된 노림수의 결과였다. 사로국은 진한 연맹체의 맹주로서 주변 들과 힘의 우열 차이는 뚜렷했지만, 기존 질서를 무시한 급진적 무력 복속을 택하지 않았다. 주변국들이 오랫동안 유지한 독립적, 자치적인 내부 구조를 단기간에 깨뜨릴 수 없다는 것은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대신에 기울어진 진한 교역망을 통해 경제적, 사회적 압박을 가중시키는 한편, 상류 사회가 사로국의 장례 의식을 통해 일반 구성원과 차별되어 내부 분열이 일어나도록 유도했다.결국, 진한 사회에서는 사로국을 중심으로 ‘철’이 매개된 공동 이데올로기를 이끌어냈고, 경제적 위기에 빠진 주변국들은 내부 분열을 거듭한 채 헤어 나오지 못했다.설상가상으로 신흥 강국으로 등장한 고구려가 낙랑군, 대방군을 몰아내고 한반도 북부를 장악했다는 국제 소식이 들려왔다. 기존의 무역 체제는 무너졌고, 외부의 위협에 대항하기 위한 내부적 단합이 필요했다. 역사적 순간은 점점 다가왔다. 드디어 사로국이 이끌던 진한 연맹체는 역사 무대 뒤로 퇴장했고, 고대 국가 ‘신라’가 탄생했다.

2021-02-01

예술가는 무엇으로 사는가

류영재포항예총 회장구랍 13일 밤늦은 시간까지 포항중앙아트홀 전시실에는 훤하게 불이 밝혀져 있었다.화가로서 절정의 기량을 꽃피울 무렵 안타깝게도 우리 곁을 떠난 이병우의 유작전(遺作展) 설치작업이 늦게까지 이어진 것이다. 밤 10시가 훌쩍 지난 늦은 시간이었지만 의미 있는 전시회를 정성껏 준비하던 포항미술협회장을 비롯한 회원 친구들이 디스플레이를 마치고 흐뭇한 마음으로 전시장을 한 바퀴 휘돌아 보던 중 포항문화재단 관계자로부터 전시장 폐쇄 통보를 받았다. 코로나 감염의 재확산으로 사회적 거리두기 적용 단계의 전국적인 격상이 발표된 까닭이다. 그의 작품들은 그로부터 한 달이 넘는 기간 동안 불 꺼진 전시장의 컴컴한 벽면에 매달린 채 사랑하는 가족이며 친구, 선후배, 관람객들을 기다려왔다.생전의 그는 늘 웃음 가득한 모습으로 주변의 어려움을 살피는 다정다감한 이웃이었고, 사랑으로 가르치는 멋쟁이 선생님이었으며, 미술협회장을 맡아서는 성심껏 봉사하는 사람으로 우리들의 가슴에 각인되어 있다. 동빈항과 죽도시장 등 지역의 소재를 화두로 독특한 작품세계를 펼쳐온 화가로 50년을 불꽃처럼 살다간 예술가이기도 하였던 그가 떠난 지 벌써 4년의 세월이 지났다. 병상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던 그가 불귀의 길을 떠나기 며칠 전, 통증이 몹시 심하였을 상황에서도 그는 본인의 아픔이나 먼 길 떠날 걱정보다는 필자에게 포항 미술계의 미래를 염려하는 말을 하였다. 그와의 생애 마지막 약속, 이제 그를 작품으로 만나게 된다. 과연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긴 것일까.‘등대처럼 살다간 화가 이병우’라는 타이틀이 붙은 유작전이 포항중앙아트홀에서 열리고 있다. 포항문화재단이 매년 지역의 우수작가를 선정하여 전시회 개최를 지원하고 있는데, 작고 화가의 전시기획은 이번이 처음이다. 코로나 사태의 확산으로 폐쇄되었던 전시장이 조건부로 개관이 허용되어 다시 열리게 된 것이다. 미망인은 이번 전시를 통해 큰 작품들은 공공기관에 기증하겠다는 의향을 밝혀왔다. 생전에도 그는 아내와 협의해 포항교육청에 여러 작품을 기증한 바 있다. 참 감사한 일이다. 이 전람회가 화가 이병우의 삶과 예술을 제대로 조명하는 계기가 되고, 그의 소중한 유작들이 고인과 미망인의 뜻대로 의미 있는 장소에 잘 보존되어 각박한 세상을 밝히는 부표가 되고 등대가 되기를 소망한다.예술가들은 자존을 먹고 산다. 벌써 일 년이 훌쩍 지나버린 코로나사태는 여전히 앞날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생업조차 내려놓은 소상공인들과 자영업자들의 아픔에 비하면 문화 예술계의 어려움은 상대적으로 절박함이 덜할 것이라 생각하면 인식의 오류다. 예술인들은 예술활동이 바로 생업이며 예술이라는 ‘정신’과 생업이라는 ‘물질’의 간격 때문에 상공인들이 호황을 누릴 때도 어려움을 감내하여왔고, 지금은 더욱 절박하다. 다만 어려움의 눈물을 삼키고 내면에 천착하여 예술적 깊이를 더하며 인내할 뿐이다.화가 이병우가 남긴 유작을 망라한 이번 전람회가 성황리에 개최되어 예술가들의 자존을 밝히는 또 하나의 등대가 되기를 바란다.

2021-02-01

입춘별곡

강성태시조시인·서예가내일이 새해의 첫 절기인 입춘이다. 여전히 매서운 추위와 성가신 코로나19 감염증의 재확산으로 요원할 것 같은 봄날이 이날부터 서막을 알리게 된다. 동안거에 들었던 풀과 나무들이 움을 준비하고 세상이 동토의 잠에서 서서히 깨어나는 때, 남녘에선 벌써 때이른 홍매화 개화 소식도 있지만 진정한 마음의 봄은 어느 날에나 오려는지 몹시도 기다려진다. 입춘이 되면 농경의례와 기복적(祈福的)인 의미로 입춘방(立春榜)을 대문이나 문설주 등에 붙인다. 춘축(春祝)·입춘서·입춘첩이라고도 하는 입춘방은 한 해의 행운과 건강을 기원하며 봄을 송축하는 글귀다. 주로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 등의 한문을 세로형태의 화선지에 붓으로 쓰지만, 요즘은 순 우리말로 ‘들봄 한볕, 기쁨 가득’ 등의 문구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캘리그래피 서체에 색채를 가미하거나 삽화를 곁들여 다양하게 쓰고 그리기도 한다.필자는 매년 입춘에 즈음해 입춘첩을 붓으로 써서 이웃과 지인들에게 나눠주고 현관문 입구에 붙이곤 한다. 설날이 다가오면 연하장도 정성껏 써서 함께 전해주곤 했는데, 외곬스러울지 몰라도 그렇게 해온 지 벌써 이십 수년이나 됐다. 그래서 어떤 친구는 해마다 당연한듯이(?) 연하장이나 입춘첩을 기다리기도 하고, 어떤 지인은 연례적으로 받은 연하장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가지런히 간직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오기도 한다. 크게 대수로운 일도 아닌데 주위의 기다림과 소중한 챙김을 생각하고 자락(自樂)으로 삼으며, 지금까지 거르지 않고 쓰고 보내고 나눠왔는지도 모른다.그러한 습성으로 올해도 어김없이 연하장을 쓰고 입춘첩을 나눴다. 어서 빨리 악질의 코로나 바이러스가 물러가고(疫病消滅), 나라가 태평하고 국민이 편안하며(國泰民安), 만복이 구름처럼 흥해지기를(萬福雲興) 바라는 마음을 차곡차곡 담아 열성을 다해 썼다. 입춘첩은 특히 입춘이 드는 절입시간에 붙여야 적실(適實)하다기에 최소한 입춘 1~2일 전에 전달해줘야 하는 시의성이 있어야 한다. 그렇기에 연하장이나 입춘방을 쓰는 것도 그렇지만 나눠주고 보내주는 것도 만만찮은 일이다. 그러나 친분과 받는 이의 표정을 떠올리면 주저없이 연락을 하거나 우편물로 보내게 된다. 비대면으로 소원해진 때지만 미미한 소통이나마 반가움과 미더움으로 피어날 수 있지 않을까?입춘이라지만 바로 봄이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계절의 변화는 기운의 변화이다. 겨울의 찬 기운이 가시지 않았다 하더라도 땅 속에서는 새 생명이 움트고 있으니 봄의 기운이 서서히 온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몇 차례의 꽃샘추위와 잎샘추위가 지나가야 비로소 봄이 오는 것이다. 멀지 않아 오게 될 봄날을 기다리는 것도 새로운 희망의 기운과 다시 시작하는 설레임이 있기 때문이다. 혹독한 추위와 시련의 고통을 이겨낸 뒤에 맞이하는 봄날이 한결 환해지지 않을까 싶다.봄은 많이 보라고 봄이라 했던가. 이곳저곳 주변을 자세히 바라보면 정말 어느새 조금씩 달라지고 눈에 띄게 보이는 것들이 많다. 풀과 싹이 흙을 간지럽히고 홍매화 등걸에 망울이 맺히듯 차츰 봄날이 부스스 실눈을 뜨며 입춘별곡을 노래하는 듯하다.

2021-02-01

3D 바이오프린팅을 활용한 맞춤형 인공장기

김도영포항테크노파크 첨단바이오융합센터장3D 프린팅 기술을 활용해 심장, 간, 피부, 각막, 혈관 등을 생성해 인간에게 이식하는 기술을 3D 바이오 프린팅이라고 부른다.기존의 3D 프린팅이 치과 보철, 의족·의수 등 신체를 지지하는 인공 보철물 제작에 그쳤다면 바이오 프린팅은 줄기세포를 이용해 장기와 같은 체내 이식물까지도 맞춤형으로 제작할 수 있어 국내·외에서 3D 바이오 프린팅을 통해 인공장기를 개발하려는 연구가 매우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최초의 바이오프린팅 기술은 2008년 일본 도야마 대학의 마코토 나카무라 교수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잉크젯 프린터의 입자 크기가 사람 세포의 크기와 비슷하다는 점에 착안해 인체 조직이나 장기를 만드는 3D 바이오프린터를 개발했다.2013년 미국의 바이오벤처기업 오가노보(Organovo)에서는 수만 개의 세포로 구성된 바이오잉크를 사용해 1㎝ 크기의 인공 간을 제작했으며 제약회사에 판매되어 신약개발 과정에서 발생하는 약물 독성시험 검사에 쓰이고 있다.2016년 중국의 레보텍사에서는 원숭이의 지방층에서 추출한 줄기세포로 인공혈관을 제작해 원숭이에게 이식했는데 이는 영장류에 대한 최초의 바이오프린팅 성공사례이다.같은 해 미국의 웨이크 포레스트의대 재생의학연구소의 앤서니 아탈라 교수 연구진은 3D 프린터로 만든 귀를 쥐에게 이식해 내부로 혈관이 자라는 것을 확인했다.2018년 영국 뉴캐슬대 연구진은 사람들에게 기증받은 각막 줄기세포와 알긴산염(Alginate), 콜라겐(Collagen)을 혼합하는 방식으로 바이오 잉크를 만들어 사람의 인공각막을 제작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그리고 2019년 이스라엘 텔아비브대 연구팀은 세계 최초로 환자 세포를 이용하여 세포, 혈관, 심실 등을 모두 갖추고 있는 체리 1개 크기의 인공심장을 3D 프린터로 출력하는 데 성공했다.3D 바이오프린팅에서 잉크로 사용되는 물질은 일반적인 3D 프린팅의 재료와 완전히 다르다. 장기를 출력하는 3D 바이오프린팅 기술은 살아있는 세포를 사용하여 세포를 원하는 형상이나 패턴으로 적층해 인체의 조직이나 장기를 제작하는 것이다. 이처럼 세포를 활용하는 3D 바이오프린팅 기술은 의학계의 엄청난 변화를 가져다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인공장기를 환자에게 이식했을 때 장기가 제 기능을 해야 하고, 면역거부반응 등 환자에게 치명적인 부작용이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 3D 바이오프린팅 기술을 활용한 인공장기는 실제 환자 본인의 세포로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부작용이 적고, 환자 몸의 일부로 생착해 성장할 수 있기 때문에 장기 이식이 가진 수많은 단점과 위험성을 극복할 수 있다.바이오프린팅 시장은 최근 급격하게 성장하고 있다. 세계 바이오프린팅 시장규모는 2019년 3억 620만 달러에서 연평균 복합 성장률(CAGR) 35.4%로 확대되어 2024년에는 14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BCC Research, 2019). 최근에는 대기업들의 참여로 상용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미국의 존슨엔드존슨(Johnson Johnson)과 같은 글로벌 헬스케어 기업뿐만 아니라 프랑스의 화장품 회사인 로레알(LOREAL), 미국 생활용품 기업인 프록터갬블(PG), 독일 화학회사 바스프(BASF) 등은 화장품이나 화학물질을 시험할 피부를 개발하는 연구를 하고 있어 많은 과학자들은 5년 내 인체 대상 임상시험이 가능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2020년 8월 정부 관계부처 합동으로 ‘제2차 3D 프린팅산업 진흥 기본계획(2020~ 2022)’을 수립하고 3D프린팅 글로벌 5대 강국을 달성하기 위한 비전과 추진과제를 제시하였다. 이를 통해 2018년 0.4조원 규모의 국내시장을 확대하여 2022년 1조원 달성(연평균 27% 성장)을 실현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으며, 중소제조기업의 지속적 혁신성장 지원을 통해 2022년까지 연매출 100억 이상 글로벌 기업을 10개사 육성한다는 계획이다. 또한 산업현장과 기업을 연계할 수 있는 3D 프린팅 실증지원센터와 같은 실증기반을 구축할 계획이다.국내에서도 3D 바이오프린팅 기술을 활용한 인공장기 개발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으며 특히 포스텍 조동우 교수 연구진은 바이오프린팅 기술을 활용한 인공장기 개발 분야의 선두주자로 손꼽힌다.2016년 세계 최초로 3D 세포 프린트를 이용하여 인공 근육을 제작했으며 2018년에는 포항방사광가속기를 활용하여 세포배양기판을 제작하며 체내 근육과 더욱 비슷한 인공 근육 재생기술을 개발했다. 포스텍과 한동대학교 등 지역의 대학에는 줄기세포와 오가노이드(organoid) 분야의 핵심기술을 보유한 연구진들이 다수 포진하고 있어 향후 포항을 중심으로 바이오프린팅 기반 인공장기 산업을 선점할 수 있을 것이다.아직은 대학과 공공 연구기관 주도로 연구가 이뤄지고 있지만 3D 바이오프린팅 인공장기 제품개발과 세계시장 선점을 위해서는 산학연병간의 컨소시엄을 통한 상용화 기술 조기 확보와 중소벤처기업 지원을 위한 실증지원센터 등의 인프라 구축, 산업 밀착형 선도인재 육성, 법·제도 재정비 등 다각적으로 추진돼야 할 것이다.

2021-01-31

수도권집중, 이대로 괜찮나

윤대식영남대 교수·도시공학과얼마 전 모 일간지에서 ‘서울 도심 집값 세계 2위, 홍콩 다음으로 비싸다’라는 기사를 읽었다.그리고 최근 몇 년 사이 언론을 통해 접한 기사들을 보면 서울시민들의 통근소요시간이 지나치게 길다는 기사는 물론이고, 서울의 비즈니스 비용이 세계적인 대도시들 가운데 매우 상위권에 속한다는 내용까지 다양하다.모두 서울과 수도권의 과밀로 인한 문제점을 적시한 내용들이다. 이러한 언론보도를 볼 때마다 전 인구의 50%가 몰려 살고 경제력 집중이 심각한 수도권집중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함을 새롭게 느낀다.오래 전부터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해 수도권집중이 필요하다는 주장과 수도권집중은 국가균형발전을 저해하고 수도권의 과밀로 인한 사회적 비용의 증가로 수도권의 경쟁력마저 저하시킬 것이라는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하여 있다.수도권집중의 당위성을 강조하는 논자들은 수확체증(increasing returns to scale)의 원리로부터 경제성장의 동인(動因)을 찾는다. 그리고 밀도가 높고 경제활동의 근접성이 있으면서 집적이 많이 이뤄져 있으면 수확체증이 발생한다고 강조한다. 그들은 국가경쟁력 향상을 위한 공간정책의 방향은 수확체증현상을 감안한 경제원리에 역행하지 않아야 함을 강조하면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공간영역으로 수도권을 육성해야 함을 강조한다. 물론 이러한 주장은 일리가 있으며, 수도권을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대도시권으로 육성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그러나 수도권집중의 바람직한 수준은 수도권집중으로 인한 과밀의 사회적 비용(주거 및 교통 혼잡비용)이 집적이익(agglomeration economies)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한정된다.현재와 같이 수도권에 산업과 인구가 집중하는 현상은 시장원리의 산물이라고 많은 논자들이 주장하고 있지만, 사실은 중앙정부가 주도해온 관치경제의 산물이라는 표현이 더욱 적절하다. 특히 수확체증현상은 고급기술이나 지식을 많이 이용하는 산업에서 발생하는데, 수도권의 경우 지금까지 중앙정부가 주도해온 관치경제(官治經濟)에 의해 고급기술이나 지식이 많이 축적되어 왔다고 볼 수 있다.지리적 공간상에서 나타나는 4가지 흐름은 인구이동, 자본이동, 의사결정, 혁신의 확산이고, 이들은 상호 밀접한 영향을 미친다.우리 나라의 경우 개발연대를 거치면서 권력(의사결정)이 집중되는 곳에 자본과 인구도 함께 집중함으로써 수도권집중이 나타났고, 이러한 집중현상이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관성(慣性)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기업의 입지요인으로 생산요소(원료와 노동력), 시장, 집적경제(agglomeration economies), 환경요인, 정부의 영향력 등이 있는데, 이 가운데 우리나라의 경우는 지금까지 중앙정부의 영향력이 강하게 작용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따라서 이제부터라도 관치경제의 요소를 걷어내고 수도권의 선발이익(initial advantages)이 사라진다면 산업생산 공간으로서 수도권의 입지적 장점이 계속 존재할까 의문이다.그러나 선진국의 경우는 다르다. 미국의 예를 보면, 첨단산업의 입지요인으로 권력에의 접근성이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은 워싱턴 D.C. 주변에 첨단산업이 집중하지 않는 사실로부터 알 수 있다. 오히려 미국의 첨단산업은 명문대학과 국립연구소에의 접근성 및 기후 등의 환경적 요인이 중요한 입지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러한 입지경향이야말로 시장원리의 결과로 볼 수 있다.재화 및 서비스의 생산비용뿐만 아니라 현재 수도권에서 볼 수 있는 주거 및 교통 혼잡비용까지 고려할 경우 일극(一極) 집중의 공간적 독점이 아닌 다극(多極) 집중의 공간적 구조를 만드는 것이 국가 전체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도 바람직하다. 한 국가 내에서 일극 집중이 심각할 경우 공간적 독점으로 인해 성장의 한계가 존재할 것이라는 사실은 충분히 짐작이 가능하다. 한 국가 내에서 특정 도시 혹은 지역이 산업생산 혹은 삶의 공간으로서 경쟁상대가 없을 때, 국내 도시 혹은 지역 간에 질적인 경쟁이 가능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수도권이 오직 규모의 경제로 인해 경쟁력을 가질 때 수도권의 질적 성장이 지속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과 이렇게 될 때 외국 대도시와의 경쟁력이 지속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경제원리를 따른다면, 한계생산성이 높은 지역에 대한 지원과 투자가 바람직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지금이야말로 수도권의 한계생산성이 지속적으로 증가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에 대해 진지한 성찰과 분석이 필요한 시점이다.이제 경제적 효율성이 높을 것으로 판단되는 지방 대도시의 육성과 이들 도시를 중심으로 하는 초광역경제권의 형성과 경쟁력 강화를 위한 투자가 우선되어야 한다.이렇게 될 때 국가 전체의 경쟁력 향상도 가능할 것이다.수도권문제의 인식과 대안의 선택은 글로벌 경제의 관점에서 조망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바로 눈앞의 경제적 득실이 아니라 먼 장래의 국토공간구조와 국가경쟁력을 바라보는 중장기적 시각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국가 백년대계(百年大計)를 고려한 중앙정부의 구체적인 정책수립과 실천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2021-01-31

‘판관(判官)’들의 수난

안재휘 논설위원1952년, 자신을 살해하려는 육군 대위를 사살한 야당의 맹장 서민호(徐珉濠) 의원에 대해 1심 재판부가 ‘정당방위’를 인정해 무죄를 선고하고 국회가 석방결의안을 통과시켰음에도 이승만 정권은 막무가내였다. 이때 안윤출(安潤出) 부장판사가 ‘구속집행정지’ 결정으로 서 의원을 석방한다. 그러자 ‘백골단’, ‘땃벌떼’ 등 정체불명의 단체가 법원으로 몰려와 “안윤출을 죽이라”며 난장판을 벌인다.안윤출 판사는 그 후 3개월간 경기도 지방의 처가로 피신해 있었다. 대신 배석 판사들이 특무대로 끌려가 곤욕을 치렀다. 이승만 정권은 기어이, 1958년부터 안윤출을 비롯한 연임 대상자의 4분의 1 이상인 20여 법관들을 잘라냈다. 4·19혁명 직전의 풍경이었다.지난해 21대 총선에서 국회 의석 절대다수를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의 힘자랑이 그 끝을 알 수 없도록 점입가경이다. 아무래도 거대 여당은 다수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지 다 해볼 기세다. 이번에는 헌정사상 최초로, 국회가 현직 판사들을 ‘탄핵’ 위기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그 첫 번째 타깃이 된 인물은 임성근 부산고등법원 부장판사다. 임 판사는 박근혜 전 대통령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됐던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재판에서 담당 재판장에게 유죄가 선고될 수 있도록 재판 진행을 지시하고 판결문을 미리 받아 직접 수정했다는 혐의를 받는다.직권남용 혐의의 재판에서 1심 재판부는 임 판사에게 재판개입은 인정되지만, 형사책임을 묻긴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지금은 2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임 판사 탄핵을 추진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문제 삼고 있는 것은 1심 판결문에 6차례 등장하는 ‘위헌적 행위’라는 대목이다.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재판이 끝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친여 인사들에 대해 한사코 ‘법적으로 무죄’라고 우겨오던 지금까지의 주장과 배치되기 때문이다. 아무리 들여다봐도, 또 다른 아시타비(我是他非)로밖에 읽히지 않는다.임 판사가 죄를 지었다면, 굳이 그를 두둔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야당의 비판대로 만약 민주당이 지지층 결집을 위한 하나의 정략으로서 이 일을 벌인다면 심각한 문제다.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 집행정지 인용, 정경심 동양대 교수 징역 4년, 열린민주당 최강욱 대표 의원직 상실형 선고 등 여권에 불리한 법원의 판결이 이어지던 끝이다. 행여라도 사법부를 겁박해 길들이겠다는 의도의 불장난이라면 이는 보통 위험한 일이 아니다.가뜩이나 ‘협치’·‘소수의견 존중’ 등 민주주의의 참다운 미덕이 모조리 사라져가는 시대에 ‘삼권분립’이라는 대들보마저 흔들리지 않을까 걱정스럽기 짝이 없다. 민주당은 이제 ‘할 수 있는 일’만 들여다보지 말고 ‘하지 말아야 할 일’도 더 살펴보기를 바란다. 이승만 정권의 폭압에도 굴하지 않고 야당의 맹장 서민호 의원을 용감하게 풀어준 안윤출 판사는 “나는 석방 결정에 도장을 찍을 때 죽음을 각오했다”고 회고했었다.

2021-01-31

北 원전문건 충돌… 불법적 ‘삭제’ 이유부터 밝혀야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들이 무단삭제한 월성 원전 1호기 감사 관련 파일 목록 중에 ‘북한 원전 건설’ 관련 파일이 포함된 것을 두고 여야정치권이 정면충돌 양상이다.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이를 ‘이적행위’로 표현한 데 대해 청와대와 여권은 ‘북풍 공작’·‘보궐선거용’이라고 맞받아치고 있다. 공무원들이 야밤에 몰래 문건을 무더기로 삭제한 이유가 더 궁금해졌다. 문제가 없는 문건이라면 도대체 왜 지웠는지 그 국민적 의문부터 풀어야 한다. 공개된 검찰의 공소장을 보면 산업부 공무원들이 지난 2019년 12월 감사원의 ‘월성1호기 조기폐쇄’ 관련 감사 직전 삭제한 530개 파일 목록에 북한 원전 건설 관련 문건이 10여 건 포함돼 있다. 문건 작성일(2018년 5월 2~15일)이 1, 2차 남북한 정상회담 사이의 기간이고, 관련 폴더 이름이 핀란드어로 ‘북쪽’을 뜻하는 ‘뽀요이스(pohjois)’로 붙여진 것도 의심스러운 대목이다.김 비대위원장은 “극비리에 북한에 원전을 지어주려 했다면 충격적인 이적행위”라는 입장을 냈다. 강민석 청와대대변인은 “도저히 믿기지 않는 혹세무민 발언”이라면서 “법적 조치를 포함해 강력히 대응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놨다.윤준병 민주당 의원은 “북한 원전 건설 추진과 관련해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이 삭제한 자료는 박근혜 정부부터 검토한 내부자료”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청와대와 민주당의 반박을 “제1 야당 대표의 입을 틀어막는 공포정치”라거나, ‘원전 게이트’라고 되받아치고 있다.정부 여당의 주장이 사실이라고 해도, 왜 산업부 직원들이 운명을 걸고서 그 많은 문서를 불법적으로 삭제했느냐 하는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지금 청와대나 여당 어느 곳에서도 이 의문에 납득할 만한 답변이나 설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국내에선 탈(脫)원전을 밀어붙인 정부가 벌인 이런 모순적 행태 논란에 국민은 큰 혼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법적 조치’를 벼르고 나선 청와대는 불가피한 사법기관의 조사를 다 수용할 용의가 있다는 뜻인가, 아니면 다급해서 내놓은 또 하나의 자충수인가도 궁금한 대목이다.

2021-01-31

사격장 훈련 재개, 주민 협의가 먼저다

포항시 장기면 수성사격장 폐쇄와 관련, 주민과 군간의 갈등이 또다시 증폭될 전망이다. 주민들의 사격훈련 중단 요구에 대해 협의를 통해 사태 해결에 나서겠다던 국방부가 최근 갑자기 태도를 바꿔 사격 재개 움직임에 나서자 주민이 반발에 나섰다는 것이다. 수성사격장 반대대책위 주장에 따르면 지난달 27일 국방부 관계자가 전화를 걸어와 “정찰 비행을 하겠다. 2월 초에는 아파치헬기 사격훈련 날짜도 잡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해 왔다고 한다.지난해 11월 “주민과 민관군 협의체를 구성해 사태를 해결하겠다”던 국방부가 갑자기 사격 훈련쪽으로 태도를 바꿨다는 것이다. 주민의 입장에서는 황당하고 화가 날 일이다. 그동안 국방부 차관을 비롯해 많은 국방부 관계자가 찾아와 “협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겠다” “주민의 승낙 없이 사격 훈련은 않겠다”고 말해 놓고 이제와 일방적 훈련재개를 통보하니 주민의 반발이야 당연하다.한미연합 훈련상 훈련일수 보장 등 주한미군측과의 협정 때문에 “국방부로서 어쩔 수 없다”는 변명으로 이제와서 주민의 이해를 구하겠다면 그것은 오산이다. 불과 한달여 전에 주민과 약속한 일을 국가기관이 일방 파기한 것은 국민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국가기관이 할 일이 아니다. 국가기관으로서 절차나 진행과정에 미숙함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주민과의 약속을 도외시한 행동은 비판받아도 마땅하다.주민들이 물리적 행동에 나서더라도 국방부가 이를 막을 명분조차 약해진 것이다. 주민들은 마을에서 불과 1km 떨어진 사격장에서 발생한 불발탄, 유탄, 소음과 화재 등으로 60여년을 시달려 왔다. 국방과 안보를 위해 오랫동안 희생을 감내해 온 주민이다. 국방부가 주민 희생만 일방적으로 강요해선 안 된다. 특히 국방부는 지난해 7월 경기도 포천의 한 사격장에서 실시되던 아파치헬기 사격훈련을 주민 반발에 부딪혀 포항시 수성사격장으로 옮겨오는 과정에서도 주민동의를 구하지 않았다. 주민과의 갈등을 국방부 스스로가 자초했다.지난달 주민들은 국민권익위를 찾아 수성사격장 폐쇄와 관련한 고충민원을 신청했으나 권익위의 중재도 엉거주춤한 상태라 한다. 권익위가 나서든지 국방부가 지금이라도 주민과 대화에 적극 나서 문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지금 상태라면 또다른 물리적 충돌은 불가피하다.

2021-01-31

묵식(默食)

“침묵은 금”이라는 것은 말을 많이 하면 실언을 할 수 있으니 신중히 하라는 뜻이다. “말 한마다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우리 속담처럼 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격언이다.말은 말하는 사람의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어서 그 사람의 교양과 인격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잘못된 말 한마디로 망신을 당하는 일도 흔하게 발생한다. 말을 잘못함으로써 상대에게 상처를 주고 때로는 그 말로 인해 명예가 훼손돼 법적 다툼도 한다.불교에서는 말로 짓는 죄를 반성한다 하여 묵언수행을 한다. 아무런 말도 않고 참선하여 스스로의 마음을 정화하는 불가에서 행하는 수행 중 하나다. 마음속으로 묵묵히 기도하는 것을 묵상이라고 표현한다.말을 신중히 해야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요즘처럼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세상에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밝혀야 할 때가 있는데, 무조건 말을 아낀다고 다 좋은 것도 아니다.특히 식사문화는 음식을 먹는 것과 동시에 상대방과의 대화를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생활양식이다. 대화없는 음식문화는 앙꼬 없는 찐빵과 비슷하다. 음식을 사이에 두고 주고받는 대화만큼 훈훈한 분위기도 잘 없다.코로나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일본에서는 묵식식당이 등장했다. 코로나로 고객이 감소한 식당 주인이 감염병 예방 차원에서 고안한 고육지책이다. 식사 도중 침방울이 튀는 것을 막고 고객의 보건 안전을 최대한 보장하겠다는 의도다.말을 못해 불편할 것 같았던 묵식식당이 의외로 고객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한다. 관광협회가 홈피에 묵식 안내문을 올리고 식당마다에 권장도 한다. 코로나가 많은 분야에서 우리의 일상을 바꾸고 있지만 말않고 먹는 묵식의 등장은 충격이다. 말 없는 식사문화는 비정상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1-01-31

코로나 줄서기

윤영대수필가코로나19가 국내에 번지기 시작한 지 벌써 1년이 흘렀다. 지난해 최대 고비를 넘기며 모범적인 K-방역으로 주춤하더니 또 재확산이 우려된다. 확진자 수는 매일 400명대를 오르내리고 누적 7만7천 명을 넘었다. 방역 2.5단계로 비대면과 5명 이상 모임 금지가 이제는 일상이다,빠른 백신 접종으로 국민의 걱정도 덜어주어야 한다. 그러나 아직 그 시행이 늦어지고 있는 이때 포항시에서는 전국 최초로 ‘1가구당 1명 이상’ 의무진단 행정명령을 내리고 1월 26일부터 약 18만 명을 대상으로 인구밀도가 낮은 면 지역을 제외한 20개소에 선별검사소를 설치하였었다.첫날은 몰랐다. 포항사랑 상품권을 구하려고 동네 농협을 찾아가서 줄을 섰다가 길게 늘어선 사람들 때문에 매진된다기에 다른 곳으로 가는 도중 두호동 옛 미군부대 주차장에 사람들이 웅성대기에 알아보니 코로나 선별검사를 한다는 것이었다. 인근의 신협 등 여러 곳을 기웃거려도 상품권을 구하지 못해 포기하고, 검사나 할까 하고 그곳으로 가보았더니 이미 길게 줄서기를 하고 있어 단념했다.다음날 정오쯤에 갔더니 더 길었다. 뒷줄에 물어보니 2시간 넘게 기다렸다고 하고 일찍 한 사람은 오전 8시 이전에도 왔었다고 한다. 가까이 있는 북구보건소로 가보니 골목엔 이미 주차할 곳이 없고 줄서기는 역시 길게 구불구불 이어져 있었다. 내친김에 장량동 행정복지센터에도 가봤으나 입구부터 요원들이 길 정리를 하고 있었고, 한 바퀴 둘러 양덕동 한마음체육관으로 갔는데 이곳은 드라이브스루 하는 곳이라 차들이 1km 정도 길게 줄지어 있고 네거리에는 경찰이 수고하고 있었다. 놀라운 광경이다.사흘째 오후, 마음을 단단히 먹고 멀리 주차하고 걸어 가보았더니 100명도 안 되어 이상했다. 어제까지의 불만을 들었음인지 2월 4일까지 연기하고 다섯 개 대형병원도 검사에 참여했단다. 잘됐다 싶어 30여 분 줄 서서 검사를 받았다. 그곳은 주차장이라 바닥에 주차선이 있어 거리 두기가 정확하게 실시되고 있어 다행이었다.끝내고 나오니 때마침 세찬 바람에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드라이브스루는 이날도 길게 이어져 있었다. 바깥에 줄 서서 추위에 떠는 것보다 따뜻한 차 안이 좋겠지만 장시간 엔진을 켜고 있으면 연료도 많이 소모되겠다. 죽천 바닷가에 가서 시원한 바닷바람을 코로 들어 마시니 마음이 후련하다.다음날 강풍 및 한파 주의보와 포항시청 안내문자가 떴다. “별도 통보를 받으신 분 외에는 전부 음성입니다.” 다행이다. 그러나 무증상자 25명을 찾아냈다니 포항시의 특단조치에 박수를 보낸다. 이제 검사소도 25곳으로 늘었고 팀도 73개로 증원했다니 이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야외에서 수고하시는 공무원과 봉사자분들께도 감사한 마음을 드리고 싶다. 그리고 비와 찬바람 속에서도 질서를 지키며 찬찬히 검사를 받는 공공질서 의식으로 우리 모두 선진사회의 시민임을 알리고 있음은 코로나19의 어려움 속에서 느낀 뿌듯함이다. 마스크 사려고 줄 서고 상품권 구하려고 줄 서고, 또 선별검사로 줄 서보니 때와 장소를 가려서 줄을 서는 일이 참 어렵다고 생각된다.

2021-01-31

우리는 함께한다 고로 행복하다

문가인참마음심리상담센터 원장코로나19 바이러스가 온 세계를 떠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의 입과 손발을 묶어둔 지, 약 1년이 되어간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람들은 과학기술이 가져다준 문명의 이기를 활용하여, 여기저기 참 많이도 돌아다녔다. 북구에서 남극까지, 바다에서 하늘까지 사람들이 가지 못하고 만나지 못하는 사람이 없었다.코로나19 바이러스가 그 모든 이동, 만남을 중지시킨 지 1년이 되어간다.자연의 재앙 앞에서 인간은 한없이 나약해지면서 홀로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그 홀로 있는 시간에 어떤 이는 공부를 시작하고, 어떤 이는 사랑을 하고, 어떤 이는 기도와 명상을 했으리라. 그러나 혹 어떤 이는 잠을 너무 많이 자거나 못 자기도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었을 수도 있었으리라. 즉, 생각에 또 생각을 더 하며 생각의 꼬리를 자르지 못했을 수도 있으리라. 생각이 너무 많아져서 생각 속에 빠져서 허우적대며 현실과 자신의 본성을 잊어가기 시작했을지도 모른다.요즘 눈이 오는 날, 비가 오는 날, 바람 부는 날 나의 상담실에 와서 사람들은 말한다.“생각이 멈추지 않아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요. 벗어날 수가 없어요. 이러다가 이상한 사람이 되는 것 아닐까요?”이런 생각 과다로 인한 심리적 고통의 호소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사람들과 만남을 못 하게 하고, 혼자 있도록 한 이후 좀 더 많이 나타나는 현상이 아닌가 생각된다.홍자성의 ‘채근담’에는‘마음과 몸이 밝으면 어두운 곳에서도 푸른 하늘이 있고, 생각하는 머리가 어둡고 우매하면 환한 대낮에도 도깨비가 나온다.’라는 구절이 있다. 이 도깨비라는 것은 정신건강 용어로 ‘환청, 환시 등 환각을 말한다. 이 환각이란 조현병을 특징짓는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이며, 심리적 부적응의 종착지에서 겪게 된다.즉, 혼자 있고 생각이 많아지면 우울, 불안해지고, 더 심해지면 강박증이 되고, 조현병도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증상들에 한 번도 노출된 적도 없고, 주변에 물어볼 정신건강전문가도 없는 경우, 그 충격은 상당히 클 수 있다. 실제 증상의 위험성에 비해 그 후폭풍이 더 커서 지혜로운 판단을 못 하게 된다면, 삶이 돌이킬 수 없는 방향으로도 흘러갈 수도 있다.철학자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말로 생각의 중요성을 설파했지만, 그는 혼자 있으면서 생각을 너무 많이 한 결과로, 마음의 병이 올 수도 있음을 간과하지 않았는가 생각된다.홀로 있는 사색의 시간도 필요하지만 어쩔 수 없이 그 시간이 길어지는 요즈음, 정신건강의 적신호가 켜지고 있다. 사람들의 정신건강의 회복을 위해서라도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잦아들고 백신이 보급되어, 혼자가 아닌 둘이, 셋이 아닌 여럿이 함께 일하고, 밥 먹고, 노래하고, 춤추기를 바래본다.‘우리는 여기 그리고 지금 함께한다. 고로 행복하다.’

2021-01-31

아우슈비츠에서 날아온 희망의 메시지

윤경희 청송군수우리의 역사에서 1930년대는 극심한 고난의 시간이었다. 누군가에게 내 땅을 빼앗기고, 온몸을 짓밟힌 고통의 터널. 그런데 그 즈음 우리처럼 엄청난 핍박 속에서 대량 학살을 당한 민족이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바로 나치에게 희생된 유대인이었다. 유대인을 가장 많이 수용한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서는 400만 명으로 추정되는 천문학적 숫자의 안타까운 목숨이 끊어졌다.코로나가 시작된 지 1년이 지났다. 2021년 1월 말까지 통계된 전 세계의 코로나 사망자 수는 200만 명을 넘어섰다. 독가스만 살포되지 않았지 지난 1년여 간 전 세계는 아우슈비츠처럼 공포와 아비규환의 연속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좀 잠잠해지는가 싶던 확진자 수가 겨울이 오고부터 폭증하면서 또다시 살벌한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전국은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를 승격시키며, 또 연장하면서 방역에 열을 올리고 있다.우리 청송도 마찬가지로 코로나와의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매일같이 다중이용시설을 꼼꼼하게 방역하고 5인 이상 집합 금지 행정명령과 사회적 거리두기 수칙도 열심히 홍보하면서 군민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여념이 없다.지난해 12월 지역에서 확진자가 발생하기 시작하면서 청송군은 대규모 선제적 진단검사를 실시한 바 있다. 그 결과 확진 환자를 조기에 찾아 N차 감염을 차단하는데 성공했고, 그 성과를 인정받아 코로나19 대응 특별교부세를 확보하기도 했다. 또 설 연휴가 코앞으로 다가왔는데, 코로나 전파의 최대 고비가 될 것으로 예상하여 방역 강화를 위해 전 군민에게 기부 3매를 포함한 방역마스크 8매씩을 무료로 배부했다. 특히 경기침체로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소상공인들을 위해 올해 들어 경북도내에서는 최초로 소상공인 재난지원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하고, 설 연휴전 지급을 목표로 적극 추진 중이다.덕분인지 몰라도 우리 지역은 비교적 안정적인 분위기를 이어가고 있다. 이 모든 상황은 각자의 자리에서 맡은 바 역할을 충실히 해주고 있는 의료진과 관계자들 덕분이다. 이 분들의 노고와 희생정신이 없었다면 감히 지금의 안정세를 이어갈 수 없었을지도 모를 일이다.숨은 곳에서 자신의 소임을 묵묵히 지키며 군민들의 건강을 책임져준 이들에게 진심으로 찬사와 경의를 표한다. 이 분들 이외에도 코로나 방역을 위해 각종 봉사활동에 애써준 분들도 많다. ‘나’보다는 ‘남’을 먼저 생각하는 그들의 노고가 있었으므로 지금의 안전한 청송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절감한다. 이에 머리 숙여 감사의 말을 전하며, 앞으로도 청송은 적극적인 방역 활동으로 군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힘들지만 이 위기를 지혜롭게 이겨나갈 수 있도록 모두 동참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인생에서 가장 의미 없이 보낸 날은 웃지 않고 보낸 날들이다. 그러나 우리의 지난 1년은 뜻하지 않았지만 웃음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두려웠다. 다시 웃을 수 없을까봐. 하지만 삶이 있는 한 희망은 있고, 희망은 어둠 속에서 시작된다. 정녕 마지막인 것만 같은 순간에 새로운 희망이 움튼다. 삶이란 그런 것이다. 일어나 옳은 일을 하려 할 때, 고집스런 희망이 시작된다.끔찍한 고문과 생체실험, 매일매일 죽음이 엄습하는 그곳 아우슈비츠에도 희망은 있었을 것이다. 노역에 찌들다가도 겨울이 지나고 어디선가 불어온 봄바람에 수용자는 엷은 미소를 띠었을 것이며, 안네 프랑크는 숨어서도 희망이 깃든 일기를 써내려갔다. 수많은 전쟁이 인류를 위협했지만 인류는 살아남았듯, 우리에게 닥친 이 시련을 반드시 이겨낼 거라고 믿는다.그러니 희망을 포기하지 말라. 머잖아 당도할 봄처럼 아우슈비츠에서 문득 날아온 메시지를 곱씹어본다.

2021-01-31

신춘 음악회

봄 마중을 나갔다. 온화해진 햇살이 걷기에 좋은 날씨라며 수목원으로 발길을 이끌었다. 산 정상에 위치한 경북수목원을 향해 구불구불 길을 오르며 한 구비 돌아설 때마다 겨울 나목의 가지 끝이 물을 가득 올려놓았는지 발그레하다. 입구에 들어서자 차에 몇 명이 탔는지 확인을 했고, 주차 후에는 열 체크와 방명록도 적어야 입장이 가능했다. 주말이 아닌 평일 오후라 우리 말고 서너 명의 산책자들을 넓은 숲에 흩어놓으니 조용했다. 습지원에 들어서니 침입자가 나타났다고 바삐 지저귀는 새소리가 요란하다. 새소리 사이로 가만가만 피아노소리가 들렸다. 조지 윈스턴의 ‘디셈버’였다.(사실 익숙한듯하나 작곡가도 제목도 몰라 검색찬스 썼다는 건 비밀!)겨울 숲은 잎을 발밑으로 일찌감치 보내고 난 가지뿐이라 속이 훤히 드러난다. 습지 사이를 연결한 다리 난간에 십이지신상 조각이 앉아있는 것도 오늘 처음 알아챘다. 꽃과 잎이 풍성한 계절에만 찾아와 꽃과 향기에만 취했었던 탓이다. 휑한 가지뿐인 나무의 발치에 써 놓은 이름표가 눈에 띄었다. 만첩빈도리, 화살나무, 곰의말채나무를 떠듬거리며 가로수원으로 발길을 옮겼다.그사이 들려오는 가락이 경쾌하게 곡을 바꿨다. 비발디의 사계 중 한 곡인데 ‘봄’인지 ‘가을’인지 헷갈렸다. 스마트폰이 식물학자이자 음악선생이다. ‘가을’이 아니라 ‘봄’이라고 짚어주었다. 버드나무는 비발디 곡에 취해 가지 끝이 노르스름해졌고 뾰족한 봉오리를 가득 달고서 ‘나 목련이오.’하는 백목련이 키를 높이고 있다. 이름을 들어봄직한 나무들이 있는 유실수원을 지나니 경상북도 시군별 나무와 꽃을 모아놓은 동산이 나타났다. 주로 소나무와 은행나무가 시군목 이었고 꽃은 장미가 많았다. 3월에는 산수유가 시화인 의성군에 갔다가, 안동시의 매화와 예천군의 목련까지 한꺼번에 보고 와야겠다.연구동 근처로 가니 비닐하우스 안에서 무엇을 키우는지 물소리가 졸졸졸 흘렀다. 그때 알람브라궁전의 추억이 타레가의 스페니쉬기타 연주로 물소리에 섞여들었다. 타레가가 알람브라궁전의 수많은 분수가 만들어낸 물소리를 기타로 표현했다는 그 곡이 오늘의 숲에서 연주되니 좋은 선곡이었다.엘가의 사랑의 인사를 들으며 무궁화원으로 들어섰다. 예전에 처음 이 곳을 방문했을 때 키 낮은 묘목이던 것이 이젠 우리키를 훨씬 넘어서 의젓한 나무의 모습을 하고 그늘을 만들 정도로 자라있었다. 한 그루에는 새집도 한 채 들여놨다. 연못을 지나 손님을 기다리는 데크들을 지나니 옴나무, 황금, 지모, 여로, 세잎양지꽃, 이런 이름의 나무와 꽃도 있었구나 싶어 받아 적었다. 딸을 낳으면 심었다던 벽오동, 몸피가 특이한 복자기, 사람주나무, 죽단화, 낙상홍을 지나 눈을 맞고 섰던 기자 이름 같기도 한 박태기나무, 갯사상자, 수크령, 윷놀이가 아니라 윤노리나무, 열대우림에 자랄 것 같은 정글나무도 있었고, 포도는 학명이 그레이프가 아니란 걸 알게 되었다. 뜰보리수는 자태가 우아해 우리 집 뜰에 옮겨 심고 싶었고, 여느 소나무보다 잎이 통통한 잎인 금송, 어떤 꽃이 필까 궁금해지는 팥꽃나무(찾아보니 꽃 색깔이 팥 색이라 붙여졌다고 한다.), 토끼와 친구였던 계수나무, 덜꿩나무는 꿩하고 인연이 있는 거 아닐까 궁금해하다보니 산을 내려왔다.김순희수필가숨고르기 하며 거닐었던 길은 늘씬한 몸매의 메타세콰이아가 파란 하늘이 더 높아보이게 만들었다. 길에는 마사토가 깔려 있어 밟는 소리가 음악소리이다. 사박사박 사람들이 겨우내 밟지 않아서인지 더 폭신했다. 구름을 가득 품었던 연못은 얼음으로 덮여 있어서, 연못 가운데 있는 독도는 인공섬이 아니라 육지와 연결되어 한 계절은 외롭지 않았다.겨울이 숲에게 주는 휴식 시간 겨울, 꽃 사진 찍느라 바빴던 다른 계절에 들리지 않았던 클래식 연주가 잔잔히 들려 숲을 감상하기에 더 좋았다. 숲의 속내를 들여다본 산책이었다. 화가 모네가 같은 장소를 시간에 따라 연작으로 그렸던 이유를 어렴풋하게 알려준 겨울 수목원이었다.

2021-01-31

구미시의회, 실망을 넘어 절망으로

김락현 경북부구미시의회가 2021년 첫 임시회를 동료 시의원에 대한 징계안으로 시작하면서 시민들에게 실망감을 넘어 절망감을 안겨주고 있다.그동안 제8대 구미시의회의 행보는 역대 최악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가. 더불어민주당 시의원이 역대 가장 많은 9명 등원해 기대가 컸지만, 불법 공천 헌금 혐의를 받은 마주희(비례대표) 시의원이 자진사퇴한 데 이어 김택호, 심문식 의원이 당으로부터 제명당했다. 국민의힘 권기만 시의원도 미래통합당 시절 도로 개설 특혜 의혹으로 자진사퇴했다.특히 더불어민주당 이선우 시의원은 시립예술단 단원 선발 자격요건이 충족되지 않는 데도 두 차례나 심사장에 포함됐다. 이 밖에도 구미시장에게 시립무용단 안무자 해촉을 공개적으로 요구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엄연히 구미시의회 행동강령 위반사항이었지만, 시의원 누구도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 최근에는 더불어민주당 홍난이 의원이 불교계와 마찰을 빚어 장세용 구미시장이 직접 중재에 나서기도 했다. 앞서 지난 2019년에는 시의원 5명이 징계받는 등 구미시의회 사상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내부에서 반성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한다.김재상 의장과 안주찬 부의장은 임시회를 통해 “시민들이 그만 싸움을 멈추고 지역 경제가 회복되는 데 힘을 모아주길 바라고 있다”면서 “더는 동료 시의원에 대한 제명이나 징계안을 올리는 일 없이 서로 합심해 구미 발전에 노력하자”고 말했다. 의장단의 반성하는 목소리가 한참이나 늦은 감이 있지만, 한낱 희망일지라도 기대하고 싶다. 코로나19로 지친 구미시민들에게 무거운 짐을 더하는 게 아니라 작은 짐이나마 덜어주는 시의회가 되길 바란다. /kimrh@kbmaeil.com

2021-01-28

준비 소홀로 시민 대혼란 야기한 코로나 의무검사

가구당 1명 이상 코로나19 진단검사를 받도록 행정명령을 내린 포항시가 준비 부족을 인정하고 검사 기간을 사흘 연장하는 등 보완책을 마련했다.전 가구를 대상으로 한 포항시의 코로나 의무검사는 당초부터 준비가 부족했고 무리한 행정명령의 발동이라는 비판을 받았으나 막상 시행에 들어가자 곳곳에서 원성과 대혼란이 벌어졌다. 선별검사소에는 아침부터 검사를 받으려는 사람으로 장사진을 이루면서 온종일 포항시의 졸속행정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끊이질 않았다.선별검사소와 인력의 부족으로 행정당국이 정한 6일내 검사 완료가 불가능한 데다 검사 이후 행동지침도 제때 내려오지 않아 시민들이 우왕좌왕하는 혼란도 겪었다. 코로나 의무검사 행정명령을 철회해 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등장했으니 포항시의 행정명령이 시민과의 교감 없이 얼마나 졸속으로 진행됐을까 짐작이 간다.이강덕 포항시장의 사과와 검사기간 3일 연장, 선별검사소 추가 설치 등 포항시의 보완책 발표와 함께 시가 수습에 들어갔으나 행정편의적 발상이 빚은 주민불편과 대혼란에 대한 행정의 책임은 면할 수 없다.시민 20만명을 대상으로 진단검사를 시행하겠다면서 시민에 대한 사전 홍보도, 시의회와의 사전조율도 없었다는 것은 납득이 안 간다. 시민의 불편이나 반응은 애초부터 고려치 않고 의욕이 앞선 탁상공론식 발상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포항지역의 코로나19 발생이 위중하고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을 막아야 하는 엄중한 상황이라 하지만 사전준비가 완벽해야 명분도 지킬 수 있다. 명분이 앞선다고 시민들의 소중한 일상과 시간을 함부로 희생할 수는 없는 것이다.포항시가 준비 소홀을 인정하고 뒤늦게 추가 보완책을 내놓았으니 남은 기간이라도 주민들의 불편을 최소화하고 세심한 배려 속에 진단검사를 마무리 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특히 이번 의무진단검사 대혼란은 그동안 행정기관이 자주 비판을 받았던 권위적 발생과 행정편의적 업무처리에 큰 경종을 주었다. 공직사회가 업무를 결정하는 과정이 얼마나 신중하고 세심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었다.포항시로서는 이번 대혼란이 가슴 아픈 일로 기억되겠지만 반면교사 삼고 코로나가 종결될 때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2021-01-28

데드크로스 시대

우리나라 인구는 작년말 기준으로 사망자 수가 출생자 수를 처음으로 앞질렀다. 이른바 인구의 데드크로스 현상이 나타났다. 우리나라 인구가 자연감소를 시작했다는 뜻이다.한국의 출산율은 세계 187개국 중 꼴찌다. 인구를 국가 경제력의 상징으로 계산한다면 우리나라 경제는 이제 위험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보아야 한다.데드크로스(Dead Cross)는 주식시장 장세의 흐름을 가늠하는 지표다. 주가의 단기이동 평균선이 중장기 이동평균선 아래로 뚫리는 현상이다. 장세가 나빠짐을 예고하는 지표다. 이와 반대되는 현상을 골든크로스라 부른다.선거판에서 1.2위 후보자의 지지율이 역전되는 상황도 골든크로스 또는 데드크로스라 부른다. 대통령의 지지율이 부정평가가 긍정평가를 앞서면 데드크로스고 그 반대면 골든크로스다. 요즘 우리 사회는 데드크로스 현상이 부쩍 많아졌다. 대학이 학생 수 감소로 전전긍긍이다. 대학교의 신입생 정원보다 대학 지원자 수가 적어져 신입생 데드크로스 현상이 생기고 있다. 아파트도 공급이 수요를 못 따라가 집값이 폭등 하는 아파트의 데드크로스 현상도 걱정이다.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율도 데드크로스 선상에 있다.코로나19가 극성을 부린 지난해 우리나라 경제성장율이 -1%다.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성적표다. 마이너스 성장이란 중소기업인, 소상공인 등 수많은 경제 주체의 노력이 성과를 못냈다는 뜻이다. 그들의 고통과 눈물이 컸다는 의미도 있다. 코로나 속에 이 또한 데드크로스적 현상이다.정부가 우리 경제의 역성장 폭이 선진국보다 낮아 선방했다는 표현을 썼다. 적절치 않다. 꿈보다 해몽이 좋다. 지금은 자랑보단 경계심을 높일 때다. /우정구(논설위원)

2021-01-28

바이든에 거는 기대

서의호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조 바이든이 미국의 제46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상원의원 36년, 부통령 8년을 지낸 화려한 경력의 직업 정치인이지만 오랜 인생의 역경을 극복하고 대통령 선거에 세 번째 도전 끝에 초강대국 미국의 대통령 자리에 오르며 바이든 시대의 개막을 알린 것이다.트럼프 전 대통령의 선거불복, 의사당 난입에 이어 사상 유례없는 트럼프의 2번의 하원에서의 탄핵 등으로 인해 어수선한 취임식이었다.더구나 미국의 오랜 전통인 전임 대통령의 취임식 참석이 없는 적개심이 남아있는 이상한 취임식이 되었다.지금 트럼프 정책에서 허덕였던 각 국가와 한국도 바이든에 거는 기대가 크다. 각국은 자국 손익계산을 위해 계산기를 두드리기 바쁘다.노선과 정책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대척점에 서 있는 바이든은 전임 행정부와 철저히 단절하며 미국 안팎의 새 질서 구축에 나설 것으로 보여 국제사회에도 상당한 변화를 몰고 올 전망이다.이미 수십 개의 트럼프 정책을 뒤집는 행정 명령(Executive Order)에 서명했다고 한다. 트럼프의 몽니로 탈퇴하였던 각종 세계 기구에도 복귀하고 있다.바이든은 기본적으로 경제를 재건하고 환경을 보호하면서 동맹과의 협력을 통해 자유주의의 가치와 미국의 리더십을 재건하겠다는 깃발을 내걸었다.중국과의 관계는 여전히 안개 속이다.패권주의가 깔린 미국에서 의회와 안보 관련 기관의 대중국 매파의 세력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중국과의 무역으로 입은 상처에 대한 분노와 더불어 북한 문제로 동북아 정세는 여전히 안개 속에 중국과의 대립을 정리하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세계는 미국이 유럽을 비롯한 동맹국과의 긴장을 완화하고, 협력을 통하여 중국을 합리적으로 견제하면서 세계무역 질서를 복원하기를 기대하고 있다.바이든 대통령에게는 미국판 ‘인동초’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 바이든은 변호사 출신으로 만 29세의 나이로 상대와 1% p 차, 극적인 대역전극을 펼치면서 단숨에 정계의 주목을 받았다. 최연소 상원의원, 탄탄대로가 펼쳐지는 듯 보였으나, 큰 교통사고로 부인과 딸을 잃었다. 그리고 최근에는 아들마저 잃었다. 그런 그가 내리 6선에 성공하고, 대통령에 세 번 도전 끝에 성공한다.우리는 바이든이 보여준 이러한 인동초 같은 불굴의 정신으로 미국, 세계를 안정시키고 한국에 밝은 미래를 가져오길 기대해 본다.우리는 그의 한국 정책에 특히 주목한다. 자국 위주의 경제정책에서 세계 경제를 함께하는 정책, 외국기업을 아우르는 정책, 글로벌 경영의 토대를 세울 것을 기대해 본다.주한미군의 안정된 주둔과 대북 정책에서 힘을 기반으로 하는 정책에서 한국의 현 정부를 설득할 것도 기대해 본다. 대중국 정책도 강한 힘으로 중국을 다스리면서도 세계평화라는 관점에서 유연성을 호소해 본다. 한국 정부는 대북한 굴욕외교에서 벗어나 바이든 정부와 호흡을 같이하며 품격있는 외교, 국방 정책을 조율해야 할 것이다. 바이든에 기대한다.

2021-01-28

헌재, ‘공수처 합헌’ 결정…국민감시 중요성 높아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설립과 운영 근거를 정한 법률이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의 ‘합헌’ 결정이 나왔다. 헌재는 28일 공수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이 권력분립 원칙에 반한다는 헌법소원심판에서 일부는 기각하고 나머지에 대해서는 적법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며 각하했다. 공수처법에 대한 또 다른 법적 심리과정이 남아 있긴 하지만, 이제 공수처는 그 중립성에 대한 국민의 관심과 집중적인 감시가 더욱 절실하게 됐다. 헌재 전원합의부는 이날 재판에서 “행정 각부에 속하지 않는 독립된 형태의 행정기관을 설치하는 것이 헌법상 금지된다고 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또 “여러 기관으로부터의 통제가 이루어질 수 있으므로, 수사처가 독립된 형태로 설치되었다는 이유만으로 권력분립 원칙에 위반된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공수처의 성격에 대해서는 “행정부에 소속되고, 그 관할권의 범위가 전국에 미치는 중앙행정기관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정했다. 헌재는 이와 함께 고위 공직자의 가족이나 퇴직자를 수사대상으로 한 것에 대한 평등권 침해 여부에 대해서도 “불합리한 차별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공수처에 대한 헌법소원이 ‘위헌’ 결론을 내릴 것이라고 짐작한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이 중대하고 시급한 재판을 1년간이나 끌어오는 모습을 보면서 대개의 법률가들이 ‘합헌’ 결정을 예측하고 있었던 게 사실이다. 일부에서는 헌재가 자주 써온 방법대로 헌법소원 청구인적격이 없다는 이유로 각하할 가능성도 있다는 전망도 나왔었다. 현 정부 들어 보여준 헌재의 성향만으로도 ‘위헌’ 결정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예상이 다수였다.공수처에 대한 헌재의 ‘합헌’ 결정은 존중돼야 할 것이다. 다만 근간 우리 국민이 분명하게 알 수 있었던 것이 검·판사들마저도 패거리 정치의 폐해에 종속되어 ‘편 먹기’ 의식에 빠져 있다는 진실이었던 만큼 논란은 이어질 것 같다. 분명한 것은 이제 거침없을 공수처가 대통령을 비롯한 권력의 괴물 친위조직이 되지 못하도록 제대로 감시하고 차단해나가야 할 국민의 사명이 훨씬 더 깊어졌다는 사실이다.

2021-0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