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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항공모함 보유국의 꿈

우정구 논설위원 항공모함의 등장은 해군의 역사를 바꾸어 놓는 계기가 된다. 항공기를 탑재하고 이착륙시키는 항공모함은 이동성과 확장성 면에서 과거 해군의 전투력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우수하기 때문이다.세계 어느 곳이든 투입이 가능하고 항공기, 헬기 등 다양한 군사적 자원을 탑재할 수 있어 항모 보유 수만으로 그 나라 군사력은 높게 평가받는다. 떠다니는 군사기지라 부르는 이유다.세계는 8개국이 22척의 항공모함을 보유하고 있다. 그 중 절반인 11척은 미국 소유다. 2022년 중국이 세 번째 항공모함을 취역함으로써 세계에서 두 번째 많은 항공모함 보유국이 됐다. 중국은 2035년까지 6척의 항공모함을 보유할 계획이라 한다.항공모함의 건조 비용은 대략 7조원 정도 든다. 국가의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항공모함 보유는 사실상 힘들다.1986년 만들어진 미국 해군 항공모함 시어도어 루스벨트호가 22일 부산항에 입항했다. 이달 말 열릴 예정인 한국, 미국, 일본의 첫 다영역 군사훈련인 프리덤 에지에 참여할 목적이라 한다.10만t급 핵추진 잠수함인 루스벨트호는 축구장 3배 크기의 비행갑판을 갖추고 있다. 미 해군 전투기 FA-18 슈퍼호넷, 공중 조기경보기, 헬기 등 총 80여 대의 항공기를 탑재할 수 있다. 승조원 수만 6000명에 달하니 웬만한 나라의 공군력과 맞먹는 규모다.최근 북한은 핵위협과 함께 러시아 푸틴 대통령의 북한 방문을 계기로 북러간 결속력을 과시하고 있다. 군사 합동훈련으로 한미일간의 결속력을 보여주고 있지만 세계 6위의 한국군사력을 보강할 항공모함이 없는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6-23

“TK통합과 영일만시대에 대비하겠습니다”

경북매일신문이 창간 34주년을 맞았습니다. 1990년 6월 23일 ‘맑고 정직한 신문’을 사시(社是)로 창간한 후 오늘 지령 9241호를 내게 됐습니다. 그동안 본지 임직원들은 ‘종이신문’의 위기 등 언론 환경이 급변하는 가운데서도 독자들의 식견을 넓히는 뉴스 서비스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해왔습니다. 균형 잡힌 시각으로 지역사회의 현안을 제시하고, 공론화를 통해 그 해법도 제시해 왔다고 자부합니다.우리는 대구경북(TK) 지역민과 같은 길을 가는 동반자임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지역의 위기는 반드시 지역신문의 위기로 이어집니다. 잘 알다시피, TK지역은 지금 심각한 인구소멸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매년 이 지역 청년들이 취업이나 대학진학을 위해 수도권으로 떠나가 하루가 다르게 인구가 감소하고 있습니다. 지난 한 해 대구와 경북에서 수도권으로 떠난 청년(19~39세)은 1만4000명이 넘습니다. TK지역 기업유치의 최대 위협요인은 인구감소입니다. 삼성·현대 같은 대기업들이 공장입지를 정할 때 해당지역의 인구구조를 우선시하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인구규모가 경제성장 잠재력과 동일시되는 것입니다.TK통합 성사되면 자급자족도시 가능인구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비수도권 자치단체들은 모두 비상이 걸려 있습니다. 홍준표 대구시장과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TK행정통합 추진에 올인하고 있는 것도 인구소멸 위기에 쫓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언론도 청년들이 이 지역에서 마음 편하게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있는 정치·경제·사회·문화적 환경을 만들기 위해 행정기관과 호흡을 같이해야 합니다.한국사회 인구위기의 직접적인 원인은 수도권 집중 때문입니다. 좋은 직장과 학교를 비롯한 모든 주요 자원이 수도권에 몰려 있으니까 너도나도 서울로 향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수도권에서는 과도한 경쟁시스템이 유발되고, 청년들이 결혼과 출산을 아예 포기하는 것입니다. 윤석열 정부도 역대정부와 마찬가지로 지역균형발전을 우선시하겠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수도권 일극(一極)주의를 강화하고 있습니다.TK행정통합이 예정(2026년 7월)대로 성사되면 대구경북은 인구 500만의 도시가 됩니다. 지금은 서로 갈라져 각자도생을 하고 있지만, 인구 500만명으로 뭉쳐지면 작은 국가처럼 자급자족할 수 있습니다. 대구경북은 미래 도시성장을 좌우할 첨단산업 유치에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반도체·AI·이차전지 산업에는 풍부한 전력과 수자원, 그리고 인재가 필요한데 TK는 합쳐지면 이 모든 것을 보유한 도시가 됩니다. 2030년 군위에 TK통합신공항이 개항하면 그야말로 날개를 달게 됩니다.다양한 플랫폼으로 지역언론 사명 완성 최근 포항 근해에 막대한 양의 가스와 석유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물리탐사 결과가 나와, 지역민들은 ‘산유국의 꿈’에 부풀어 있습니다. 만약 영일만에서 석유·가스가 나오면 ‘동해안 시대’가 펼쳐지게 됩니다. 영일만은 국제적인 항구가 될 것이고, TK는 국제해상 무역의 중심지가 될 것입니다. 포항시가 최근 ‘해양수산국’을 신설하기로 한 것도 동해안 시대에 대비하려는 것입니다. 한국석유공사는 영일만 일대에 석유·가스가 35억 배럴이상 매장됐을 가능성이 90%에 이르며, 이를 국제 메이저 석유회사인 엑슨모빌이 검증했다고 합니다.본지는 창간 34주년을 맞아 앞으로 ‘TK 통합시대’를 차근차근 준비하겠습니다. 행정통합과 통합신공항 건설, 영일만 유전개발 같은 비중있는 의제는 ‘세계속의 TK’라는 거시적 시각에서 다루어야 할 뉴스입니다. 우리는 종이 신문은 물론이지만, 유튜브(TK방송)나 ‘AI TV’ 등 다양한 플랫폼으로 지역언론의 사명을 다하겠습니다. 수도권언론과 차별화되는 지역의제 취재를 위해 TK지역민과의 소통도 강화하겠습니다. 본지는 지금도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독자들이 신문제작에 직접 참여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아낌없는 성원으로 경북매일신문의 역량을 한층 더 키워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2024-06-23

기업의 위기극복은 공감과 소통으로

신일철 포스코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GE(General Electric)는 미국의 대표적인 기업 중 하나로, 전구와 기관차, 그리고 항공기 엔진 등으로 산업화 시대를 이끈 기업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최근 GE는 경영상태가 나빠져 참담한 몰락을 겪고 있다. 주력 사업들은 매각되었고 주가는 크게 하락하고 있다. 급기야 세계경제의 흐름을 알려주는 대표 지수인 다우지수에서 GE는 2018년 6월에 사라졌다. 이로써 111년만에 다우지수에서 퇴출된 것이다.1990년대 GE는 21세기형 기업혁신모델로 인정받았으며, CEO인 잭웰치의 리더십을 전 세계 유수의 기업들이 앞다투어 벤치마킹하였다. 국내에서도 삼성과 LG 그리고 포스코와 수많은 중견기업들이 GE형 6시그마 혁신모델을 도입하고 혁신을 추진하여 성과를 올렸다.워크아웃 타운 홀 미팅으로도 유명하다. 구성원들이 회사를 떠나 별도의 장소에서 전원참가하여 브레인스토밍방식으로 자유분방하게 토론하고 문제점과 개선방안을 도출하였다. 홀 미팅 최종단계에서 리더가 의사결정하여 즉각 실행할 사항과 중요 프로젝트로 구분하고 조직 내 문제를 즉시 해결하였다. 중요한 프로젝트에는 문제해결역량을 갖춘 직원들의 참여와 지혜를 발휘하고 개선하였다. 위대한 기업의 롤모델로써, 이렇게 차별화된 일하는 방식으로 무장했던 GE가 오늘날 역사 속에서 잊혀지는 이유는 무엇인가?먼저 지속 가능한 기업을 지향하면서 혁신활동을 도입하고 추진했던 기업이 초심을 잃어버렸다. 에디슨의 발명품인 백열전구사업으로 1882년 창립된 GE는 제조업으로 출발하였다. 그러나 그룹의 모태인 제조업보다는 금융업에 집중하면서 눈앞의 성과에 집중하였다. 주주가치의 극대화를 목표로 1등이 아닌 기업은 구조조정의 대상으로 기업을 매각하고 인력을 해고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제조 중심의 기업가 정신과 그 DNA를 상실하였다.다음으로는 기업의 장기적인 성장가능성보다 성과 추구와 사업부 간 경쟁심을 촉진하였다. 지속 가능한 경영시스템 보다 수익창출을 위한 단기적 성과를 추구한 것이다. 특히 제조업 기반성장은 중단되거나 후퇴하였다. 고객지향적 프로세스를 기반으로 재무적 성과와 인재양성을 추진하지 못한 채 지속가능성과 위기극복의 역량을 상실한 것이다.변화 관리의 대가로 알려진 짐 콜린스는 수많은 기업들 가운데 지속성장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기업을 자세히 살펴보고 그 특징을 역설했다. 기업이 지속적인 성장을 해나가기 위하여 창의성과 혁신성을 존중하는 기업문화를 만드는 것, 고객과의 지속적인 소통으로 고객 요구를 비즈니스에 반영하는 것, 그리고 기업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한 개선 노력과 이를 위한 인재의 육성을 강조하고 있다.기업은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일하고 있는 삶의 터전, 곧 일터이다. 한 사람의 천재적인 발상보다 협의하고 토론해서 합의된 집단지성에 의한 결정이 휠씬 효과적인 것으로 여러 연구논문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조직은 이를 얼마나 잘 이끌어내는지가 시너지를 극대화하는 지름길이다. 기업은 위기의식을 가지고 경영층과 직원이 공감하고 소통하면서 성장과 혁신을 도모해야 한다.

2024-06-23

늘봄교실 확대가 저출생 대책이어서는 안 된다

유영희 작가 2024년 한국의 출생률이 0.68을 기록할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3대가 지나면 인구가 소멸할 것이라고도 한다. 어느 보고서를 보니, 2023년 남한의 0-4세 아이 비율이 북한의 절반이라고 한다. 북한의 0-4세는 1천763만 명이고 남한의 0-4세는 1천611만 명이라 숫자는 비슷하지만, 남한 인구가 북한의 두 배이기 때문이다.그래서인지 지난 6월 9일 윤석열 대통령은 ‘저출생 추세 반전을 위한 대책’을 주재하는 자리에서 인구 국가비상사태를 공식 선언하고, 이미 신설하기로 한 ‘저출생대응기획부’의 이름을 ‘인구전략기획부’로 변경하겠다고 발표했다. 최근 출산 장려 정책으로 쪼이기 댄스 장려나 정관 복원 수술비 지원들이 비웃음을 샀고, 여자의 발달이 빠르니 결혼 적령기에 남녀가 성적 매력을 느낄 수 있도록 여학생을 1년 일찍 입학시키는 방법을 언급한 재정포럼 5월호의 연구 논문 역시 조롱을 받은 상황이라 이번에는 효과적인 정책이 나올까 기대했지만, 19일 발표한 내용을 보면 전혀 기대에 못 미친다.설문 조사 결과를 보면 결혼 기피와 저출생의 가장 큰 이유는 주거 불안과 경력 단절 걱정이다. 이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안정적인 일자리 확보만이 답이라는 연구도 많다. 그러나 이번에 발표된 정부 정책을 보면, 문제 해결과는 거리가 멀다. 소득 보장이 안 된 상태에서 대출을 확대하는 것은 신혼부부를 빚더미에 올려놓거나 그림의 떡인 발상일 뿐이고, 주택을 보유한 남녀가 결혼하면 세금 깎아주는 기간을 늘린다는 정책은 청년 대다수가 무주택자라는 현실을 간과하고 빈부 격차만 심화시킬 수 있는 대책이다. 학·석·박사 과정 통합하여 일찍 사회에 나가게 한다는 방안도 어처구니 없지만, 늘봄교실 보육시간을 오후 8시까지로 늘린다는 정책은 무자비하기까지 하다.지금까지 초등생이 이용하는 돌봄교실은 오후 5시까지만 운영하기 때문에 맞벌이 부부가 이용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런 현실을 감안해서 앞으로는 오후 8시까지 맡아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처음 늘봄 정책이 나왔을 때도 부모와 자식이 ‘늘못봄’이 되는 정책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는데, 한술 더 떠서 초등 1, 2학년생을, 점차 6학년까지 오후 8시까지 교실에서 지내게 한다는 정책이 어떻게 나왔는지 의문이다. 저녁 늦게까지 교실에서만 지내면 그 아이들은 도대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감각을 가질 수 있게 될지 눈앞이 캄캄해진다. 늘봄교실에 오후 8시까지 맡기면서 마음 편할 부모도 없을 것이다. 이번 저출생 대책 어디에도 부모가 자녀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아이들은 교실에 보관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아이는 부모가 늘 대기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야 안정적으로 자랄 수 있다. 부모 역시 그런 시간이 확보되어야 마음 놓고 아이를 낳을 수 있다. 아무리 한국의 인구밀도가 높아서 저출생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해도 지금의 출생률 저하 속도는 한국 사회의 위기다. 부모가 자녀를 제대로 보호하면서 키울 수 있는 장기적인 정책 제안이 시급하다.

2024-06-23

깨어진다는 말

파란 유리병은 ‘퍽’하며 깨어진다 한낮에 깨어진유리 조각에 어울리지 않는 소리이다 노란 유리병은깨어질 때 ‘퍽’하는 소리를 낸다 한밤중 평상심이높은 별빛 소리를 다독이는 낮은 달빛 소리이다빨간 유리병은 ‘퍽’하는 소리를 내며 깨어진다그것은 아닌 밤중에 새벽 구병산이 벌떡 일어나 제가슴을 두드리는 소리 같기도 하다6·25가 터지자 대포소리가 자주 구병산을 흔들곤하였다 놀란 가슴이 자주 ‘퍽’하고 깨어졌다부슬비에 부슬부슬 부서지는 모래밭저 여린 유리병 깨어지는 소리가 ‘퍽’하며 제 고향 먼 바다를 엎지르다니!―강현국,‘퍽, 하며 깨어진다’ 전문(‘구병산 저 너머’, 시와반시)‘깨어진다’를 생각한다. 깨어진다는 동사 하나로 수렴되는 모든 것을 생각한다.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반인반수의 괴물 중 목신 판(pan)이 있다. 헤르메스는 어머니에게 버림받은 판을 올림포스산으로 데려갔고, 모든 신이 판을 환대했다. 여기서 그리스어 판에는 ‘모든’이라는 뜻이 생겨났다고 한다.판은 물의 요정 님프를 사랑했는데 그녀는 판을 보자마자 도망치고 말았다. 숲에 살던 판은 기분이 나빠지면 괴성을 질렀고 이 소리를 들은 인간이나 짐승은 공포에 떨었다고 한다 ‘극심한 공포’나‘ 공황 상태’를 의미하는 영어의 패닉(Panic)이 바로 판이 지른 괴성이다.강현국 시인의‘깨어진다’에는 판의 공포가 숨어 있다. ‘퍽’소리를 내며 깨어진 경험은 시인이 기억하는 모든 것의 그늘이고 구석일지도 모르겠다. 깨어지는 유리병에는 평화가, 사람이, 넘어진 무릎이, 못 지킨 의자가 있다.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유용하거나 무용하거나 채우거나 비우거나 모두 ‘깨어진다’하나로 통성한다. 무엇보다 깨어진다는 말은 고통이 낳은 상처의 언어라는 사실이다.강현국 시인에게 깨어짐의 경험은 패닉이다. “파란 유리병이 깨어진 소리” ‘퍽’의 유리 조각은 한낮의 소리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야말로 마른 하늘의 날벼락 같은 시인의 한낮을 뒤흔들고만‘퍽’에는 은닉된 패턴이 있다. 사물이든 사람이든 하나의 습성일 수도 있고 잔인한 플롯일 수도 있다. 색을 보고 놀란 가슴은 붉은 것만 보아도 놀라고, 이름 한 글자에도 놀란다. 거기에 잔혹한 가시마저 있다면 말할 것도 없다. 어쩌면 아우렐리우스의 말처럼 그 아픔은 그 일 자체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에서 온 것이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시인은 누구나 한 생을 살면서 지옥의 한 철을 만난다고 했다. 세월이 흐른다 해도 망각이란 이름으로 지워지거나 추억이란 말로 쉬이 봉합될 수 없는 아픈 상처의 한 철을 만나다고. 상처의 출처는 실존의 번뇌로부터일 수도 있고, 이념과 진영의 대립으로부터일 수도 있고, 안팎 현실과의 불화로부터일 수도 있다고. (강현국, ‘먼 곳으로부터 먼 곳까지’) 이희정 시인 그런 시인에게 올림포스산이 있다. 아홉 폭 병풍이 첩첩 에워싸인 밤이면 노란 치자꽃 향기 번지는 그리움의 거처 구병산은 늘 거기 그렇게 있다고. 어머니 매달려 석 달 열흘 기도하던. 머리 위로 포성이 지나도 은하수 흘러가고 별똥별이 져도, 어느 날 궁금해서 찾아간 뒤에도.그런 구병산에 “빨간 유리병은 ‘퍽’하는 소리를 내며 깨어진다 / 그것은 아닌 밤중에 새벽 구병산이 벌떡 일어나 제 가슴을 두드리는 소리 같기도 하다”“노란 유리병은 깨어질 때‘퍽’하는 소리” “한밤중 평상심이 높은 별빛 소리를 다독이는 낮은 달빛 소리” 먼 곳은 먼 곳이어서 닿을 수 없다고 했다.해서 시인은 그리움을 노래한다. 마치 목신 판이 사랑하는 연인 갈대가 된 님프를 악기 팬플루트로 만들어 불렀듯이 말이다. 좋은 시가 그렇듯이 “부슬비에 부슬부슬 부서지는 모래밭” 시인 속에는 넘칠 듯 말 듯 조용한 그리움이 천리를 가듯 지극한 마음을 엎지르며 간다. “저 여린 유리병 깨어지는 소리가‘퍽’하며 제 고향 먼 바다를 엎지르다니!

2024-06-23

포항 발전의 새로운 도약대, POEX 건립

이강덕 포항시장 마이스(MICE)산업은 큰 규모의 회의장과 전시장 등 전문시설을 갖추고 국제적인 회의나 기업의 포상관광, 전시회 등을 유치해 지역과 국가 경제에 도움을 주는 고부가가치의 신산업을 뜻한다.숙박과 관광, 쇼핑과 교통 등 연관 산업과 유기적으로 결합해 발생하는 파급 효과로 인해 ‘굴뚝 없는 황금산업’으로 불리며 미래 신성장동력으로 주목받고 있다.스위스의 작은 도시 다보스는 세계 유수의 경제·정치·기업인들이 참여하는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을 매년 개최하면서 국제적인 도시로 명성을 얻었다.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는 150여 개국에서 4천개가 넘는 기업과 기관, 10만 명 이상이 참여하는 세계 최대 기술전시회 CES(세계가전박람회)등이 열리며 ‘컨벤션도시’로 위상을 높이고 있다.국제 규모의 회의·전시회가 지역을 넘어 국가 브랜드의 가치를 높이고 지역 경제에 커다란 활력을 불어 넣는 등 긍정적인 효과 거둔 이들 사례는 마이스산업의 대표적인 성공 케이스로 평가받는다.우리시도 마이스산업이 커 나갈 충분한 잠재력과 경쟁력을 갖고 있다. 아름다운 바다를 활용해 환동해 중심 해양관광도시로 발돋움하고 있고, 주력 철강 산업에 이은 이차전지와 수소·바이오 등 신산업이 기업혁신파크, 기회발전특구 지정 등을 계기로 성장에 탄력을 받으면서 산업 박람회와 같은 국제 규모 행사 수요가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포스코, 에코프로 등 글로벌 기업과 포스텍, 가속기연구소 등 세계 수준의 산학연 인프라에서 매년 200회 이상의 컨퍼런스와 심포지엄이 개최되고 있지만 이를 수용할 전문적인 시설은 그동안 없었다.체계적인 준비와 노력 끝에 지역 마이스산업의 구심점이자 비약적인 도시 발전의 도약대가 될 포항국제전시컨벤션센터(POEX)가 장성동 옛 캠프리비 부지에 내달 드디어 착공한다.도심 해변인 영일대해수욕장에 인접해 시원한 바다뷰를 조망할 수 있고, 방문객 이동이 편리하다는 입지적 장점까지 갖춘 곳이다.POEX는 오는 2026년 말 1단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연면적 6만3818㎡, 전시면적 7183㎡ 공간에 지하 1층, 지상 5층 규모로 지어지며 컨벤션홀, 중·소회의실, 주차장, 2개의 키테넌트를 비롯해 다양한 부대시설로 구성된다.이어 비슷한 규모로 추진되는 2단계 시설에는 오디토리움, 다목적 홀, 숙박·상업·레저시설이 자리하며, 2단계 확장까지 완료되면 부산 벡스코(BEXCO)에 버금가는 규모를 갖춰 우리나라에서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컨벤션센터로 우뚝 서게 된다.POEX건립에 발맞춰 포항만의 마이스산업 생태계 육성과 안정적인 센터 운영이 중요한 만큼, 전담 조직을 확대 개편해 컨벤션 건립과 지역에 특화된 마이스 행사 및 관광콘텐츠 개발 등 빈틈없는 준비에 속도를 내고 있다.특히 철강과 이차전지 등 지역 특화 산업과 연계한 융·복합 전시회를 개발해 지역과 기업이 동반 성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무엇보다 ‘한국형 다보스포럼’을 꿈꾸며 탄소중립 등 글로벌 아젠다를 선도하고 도시를 대표하는 브랜드로써 포항의 위상을 드높일 국제 규모의 행사가 개최될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POEX는 시민들이 평소 쉽게 찾을 수 있는 ‘시민 친화적인’ 커뮤니티 공간으로 조성해 또 다른 차별성을 두고자한다. 시민, 관광객이 가족 단위로 방문해 여가를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한 부대시설과 행사를 마련해 문턱을 낮출 계획이다.아울러 해양레저와 쇼핑, 숙박과 연계해 국제행사 개최 시 파급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POEX 일대를 ‘국제회의 복합지구’로 지정을 추진하는 등 포항을 다시 찾고 머무를 수 있는 여건을 계속 마련해 가고자 한다.이같은 노력들이 하나 둘 쌓여 건립될 포항국제전시컨벤션센터가 지속 발전이 가능한 환동해 중심도시라 우리의 꿈이 구현되는 새로운 랜드마크이자 미래 신산업 활성화의 장, 시민들의 화합의 장으로 소중하게 자리매김하길 희망한다.

2024-06-23

대구의 퐁네프

우정구 논설위원 1991년 제작된 프랑스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은 파리의 센강을 가로지르는 퐁네프 다리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두 남녀의 치열한 사랑 이야기가 주제다. 세계적 흥행을 이끌며 이듬해 우리나라에도 들어왔다. 우리나라서도 뜨거운 흥행을 기록하며 프랑스 영화의 붐을 일으킨다.파리의 남쪽에서 북쪽을 연결하는 퐁네프 다리가 세계적 유명 명소로 알려진 것은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 덕분이다. 퐁(Pont)은 프랑스어로 다리고 네프(Neuf)는 새롭다는 뜻이다.1570년 프랑스 앙리 3세 때 다리를 짓기 시작해 1607년 앙리 4세 때 완성된 다리다. 새로운 다리라는 뜻의 이름과는 달리 프랑스 센강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다.다리는 흰색 돌을 주로 사용해 만들었고 아치 형태의 기둥이 받치고 있다. 다리 중간에는 말을 타고 있는 앙리 4세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영화 속에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들이 세계인들의 뇌리에 박히면서 파리에서는 젊은 연인들이 즐겨 찾는 최고의 데이터 코스로 등장했다. 또 다리 중간 중간에 설치된 둥근 석조 테라스에 앉아 바라보는 석양의 아름다움 때문에 이후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명소로도 유명해졌다.대구시가 작년부터 신천을 고품격 수변공원으로 만들기 위해 상당한 고심 속 투자를 하고 있다. 특히 홍준표 대구시장은 파리 센강의 퐁네프 다리처럼 젊은이들이 즐겨 찾을 수 있는 프러포즈 명소로 만들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프러포즈 명소의 대략적인 디자인도 나왔다.대외적으로 내세울 게 크게 없는 대구에 퐁네프같은 명소가 생긴다면 대구시민의 자부심 고취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대구의 명소 퐁네프 탄생을 기대한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6-20

사드 엔딩

홍석봉 언론인 경북 성주 초전면 소성리 마을에서 ‘사드 반대’ 집회를 주도하던 상징이 자취를 감췄다. 주민들이 시위 지휘부가 사용하던 천막을 자진 철거한 것. 사실상 사드 반대 운동의 종언을 고한 것이나 다름없다. 지난 7년 동안 소성리 마을엔 사드반대 구호가 넘치고 플래카드와 깃발이 넘실대며 살풍경했다. 전자파 괴담은 괴물이 되어 성주와 김천을 휘저었다. 진압 경찰과 시위대의 함성과 몸싸움으로 치열했던 시골 마을 회관 앞 도로가 이제 일상을 되찾았다. 2017년 4월 소성리 마을 인근 골프장 부지에 사드(고고도미사일)가 배치된 지 7년 만이다.2016년 정부는 성주에 사드를 배치한다고 발표했다. 이후 소성리 마을 회관 앞은 사드 반대 집회의 중심지가 됐다. 이곳에서 성주투쟁위, 사드반대 김천시민대책위 등이 수시로 반대 집회를 열었다. 초기에는 집회참가자만 수천 명에 달하는 등 위세가 대단했다. 인구 4만2000명의 조그마한 농촌 마을 성주가 한순간 언론의 머리기사를 장식했다.민주당과 좌파 단체들은 “사드 전자파가 참외까지 오염시킨다”며 전자파 괴담을 퍼뜨렸다. 주민들은 사드 장비와 물품 반입을 막았다. 주민과 반대단체들은 거의 매일 소성리 마을회관 앞에서 시위에 나섰다. 최근엔 반대 집회도 잦아들고 참석자가 10여 명 수준에 그치는 등 열기가 식었다고 한다. 규모는 줄었지만, 시위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현재까지 600회 이상 집회를 했다. 지친 주민들은 하나 둘 시위에서 빠져나왔다. 반대 단체들은 시위를 멈출 생각이 없다. 진보의 집요한 면모를 잘 보여준다.사드 반대시위는 이젠 힘을 잃었다. 지난해 사드 전자파가 인체에 유해하지 않다는 환경영향평가 결과가 나왔다. 지난 3월엔 헌법재판소에 낸 헌법소원도 각하됐다. 반대 명분이 없어졌다.사드 사태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는가. 사드 배치의 본질은 국가 방위였다. 하지만, 우리는 전자파 괴담으로 안보는 뒷전인 채 자중지란을 일으켰다. 국론은 분열되고 지역 민심은 찢어졌다. 주민과 반대 단체의 집회 및 시위가 장기간 이어졌다. 대규모 경찰력이 동원됐고 시위대와 충돌, 인적·물적 손실을 끼쳤다. 주민과 시위주동자는 전과자가 됐다. 철석같았던 한미 동맹에도 금이 갔다. 우리 사회가 듣도 보도 못한 전자파라는 괴물과의 싸움에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지출해야 했다. 얻은 것이라곤 진보의 선동과 악한 영향력을 재확인했다는 점이다. 진보의 선동은 나라를 공황상태로 몰아넣었다. 그래놓고도 진보는 사과 한마디 없다. 국가 안보를 위해서는 어느 정도 희생은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는 자성의 계기가 됐다.우리 사회는 그간 ‘광우병 파동’, ‘세월호 사고’, ‘이태원 참사’ 등 심한 성장통을 앓았다. 사드앓이는 또 하나의 성장통이었다. 쉬 아물지 못할 상처를 안은 소성리가 하루빨리 평온과 안정을 되찾길 바란다. 국가와 지방정부가 도와야 한다. 북한 김정은의 도발이 자못 심각하다. 핵을 머리에 이고 사는 우리는 불안하기 짝이 없다. 느슨해진 안보의식을 다잡아야 할 때다.

2024-06-20

영일만대로·경주 SMR산단 건설 속도낸다

경북도의 현안인 포항 영일만 횡단고속도로(영일만대교) 건설과 경주 소형모듈원자로(SMR) 국가산업단지 조성사업이 속도를 낼 수 있게 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어제 경산 영남대에서 열린 26번째 민생토론회에서 영일만대교 건설과 경주 SMR 국가산단 조성을 적극 지원하겠다는 의지를 밝혔기 때문이다.영일만대교는 동해안 고속도로 중 포항 북구 흥해읍과 남구 동해면 일대 바다를 연결하는 18km 구간이다. 모두 3조4000억원이 투입될 이 사업은 올해 실시설계에 들어가지만, 앞으로 사업계획 적정성 재검토, 정부와의 총사업비 협의 등 넘어야 할 관문이 많다. 그리고 지난해 3월 SMR 국가산단 최종 후보지로 선정된 경주시는 오는 2030년까지 문무대왕면 일원에 150만㎡ 규모의 국가산단을 조성한다. 정부가 SMR 분야 혁신제작기술과 공정연구 분야에 국제경쟁력을 가지게 되면 경주시는 세계 SMR 시장에서 날개를 달 수 있다.울진 원자력 수소 국가산단 조성사업과 구미 반도체 소재산업도 앞날이 밝다. 윤 대통령은 이날 토론회에서 경북을 ‘수소산업의 허브’로 키우겠다는 약속과 함께 구미산단을 반도체 소재부품의 생산 거점으로 육성하겠다고 했다. 울진 원자력·수소 국가산단 조성 사업은 정부의 예비타당성조사가 면제되면 사업을 신속하게 추진할 수 있다. 그리고 실리콘웨이퍼, 쿼츠웨어 등 반도체 소부장의 핵심 공급기지인 구미시는 정부가 소부장 기술개발 및 사업화를 적극 지원할 경우 국제경쟁력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다.4·10 총선 이후 서울에 이어 두 번째로 재개된 ‘민생토론회 시즌2’는 윤 대통령이 민생을 챙기고 국민과의 소통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로 열리고 있다. 경북도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윤 대통령이 약속한 정책과제들은 대부분 법안 정비와 국회 예산심의가 전제돼야 하는 사안이다. 야당의 협조 없이는 상당수 약속이 흐지부지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토론회에서 제기된 과제들이 실행력을 가지려면 정부와 경북도, 그리고 정치권이 야당을 설득할 협상력을 우선 갖춰야 한다.

2024-06-20

‘지역균형발전’ 빠진 저출산 해법 효과 있겠나

그저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회의를 주재한 윤석열 대통령이 “저출생문제를 극복하는 날까지 범국가적 총력 대응체계를 가동하겠다”며 ‘인구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대통령이 직접 저출산 위원회 전체회의를 연 건 지난해 3월에 이어 1년 3개월 만이다. 저출산위원회는 이날 2030년 출산율을 1명대로 높이는 게 목표라고 했다. 이를 위해 일·가정 양립, 교육·돌봄, 주거·결혼·출산·양육 등 세 분야 15대 핵심정책을 내놨다. 구체적으론 단기 육아휴직제 도입, 육아휴직 급여 확대, 신혼·출산 가구에 대한 주택 공급 확대, 결혼 특별세액공제 도입 등이다.그동안 저출산 문제는 수많은 전문가가 매달려 해법을 찾았지만,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여기에 투입된 정부 예산만 해도 지난 20년간 380조원에 달했다. 그러나 합계출산율은 계속 내리막길을 달리고 있다. 윤 대통령이 이날 회의에서 인구감소로 멸망했다고 전해지는 고대 스파르타의 사례를 제시한 것은 한국 인구위기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것을 말해준다.정부가 이날 저출산 대책을 다양하게 내놓았지만, 지역균형발전 정책을 제외한 것은 아쉽다. 오히려 “수도권 그린벨트를 해제해 공공주택 1만4000호를 짓겠다”면서 ‘수도권 인구집중’정책을 대책으로 발표한 것은 이해할 수가 없다. 윤 대통령은 올해 신년사에서 “저출산의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불필요한 과잉 경쟁을 개선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면서 “이를 위해 지방균형발전 정책을 확실하게 추진해 나가겠다”고 했다. 저출산 문제를 지역균형발전 정책으로 풀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그런데 이날 발표한 저출산 대책에서는 지역균형발전을 통해 망국적 저출산 문제를 극복하겠다는 신년 약속은 찾아볼 수가 없다.지금 대구·경북만 해도 청년 유출현상이 심각하다. 지난 한 해 동안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떠난 청년이 1만4000명에 이른다. 윤 대통령도 언급했듯이, 저출산 문제는 인구의 수도권집중 탓이 큰 만큼 지역균형발전 정책과 함께 풀어나가야 한다.

2024-06-20

6월의 이른 폭염

윤영대전 포항대 교수 하지(夏至),‘여름에 이르다’는 절기다. 태양은 가장 높이 떠서 그림자가 가장 짧고, 낮의 길이가 가장 길고 밤이 가장 짧아서 태양의 에너지를 길게 받아 본격적으로 농작물이 성장하는 시기이다. 이 열기가 쌓여 한 달 후에는 가장 덥다는 대서(大暑)가 오는데, 19일 오전, 기상청은 66년 만에 가장 무더운 6월이 될 것이라고 폭염주의보를 발표했다. 체감온도 33도 이상이 이틀 이상 이어질 것이 예상될 때 내리는 주의보인데, 벌써 92개 지역에 폭염특보가 내려진 상태다.서울은 35.8도로 75년 만에 6월 최고 온도를 기록했고 가까운 경주도 37.7도를 넘었으며 경산 하양읍은 자동 기상관측장비(AWS)가 39도를 찍었다. 우리나라 전국의 한낮 기온이 35도 안팎으로 기온분포 영상을 보면 거의 붉은 색이다. 청명한 날씨에 남서풍의 영향을 받은 탓이다. 인체 온도보다 높은 날씨에는 온열질환을 조심하는 것이 중요하며, 오후 2~4시 사이에는 야외 작업을 중단하는 것이 좋다. 그런데 장맛비가 시작되었다. ‘하지에 비 오면 풍년 든다’하였으니 농촌에는 조금은 기다리는 마음으로 모내기를 마쳤을 것이다.이번 6월 폭염은 전 지구적인 기후 현상이라고 소식통은 전하고 있다. 미국은 중서부와 북동부에 열돔(Heat Dome) 현상이 발생하여 38도 이상 치솟아 대부분 지역에 주의보를 발령했고, 중국은 지표면이 75도가 넘는 곳도 발생하였으며, 인도는 폭염 사망자가 160명 이상이 된다고 한다. 사우디에서는 성지순례기간 동안 52도의 열기 속에 550여 명이 사망했고 40도가 넘는 그리스에서는 1주일 사이에 관광객 3명이 현지에서 죽었다는 것이다.엘니뇨와 라니냐의 영향으로 해수면 온도가 상승하여 근래 세계 온도는 산업혁명 전보다 1.3도 상승했다는데 앞으로의 지구환경이 심히 걱정된다. 이러한 열파(熱波)로 올해 7월에 치러질 파리 올림픽도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가뭄, 산불, 홍수 등의 기상이변도 심해지고 있으니 지구 곳곳이 난리다.그러나 이른 폭염에 너무 겁내지 말고 주변을 정리하고 마음을 시원하게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 6월에 모심기가 끝나면 창포물에 머리를 감는 풍습이 있다. 땀내 나는 머리카락을 잘 다듬고 제철 음식인 감자와 옥수수, 참외를 먹는 즐거움도 가져보자. 감자는 열을 내려주는 효능이 있고 옥수수는 이뇨 작용이 탁월하다 하니 잘 삶아서 닭백숙과 같이 먹으면 뜨거운 하짓날 열기를 식힐 수도 있겠다. 그리고 민물 장어와 다슬기로 단백질을 보충하여 6월 찜통더위를 잘 이겨 나가보자.그런데 국회는 자기들만의 열기에 막혀있다. 22대 국회가 개원한 지 20여 일이 지나고 있는데도 전반기 원구성도 못한 채 여·야 대치 국면이 장기화하고 있으니 국민은 찜통 같은 답답함에 온몸에 땀이 흐를 지경이다.답답한 마음에 반바지 차림으로 밤바다로 나가 모래밭을 맨발로 걸으며 영일만을 멀리 바라보니, 머릿속에 무언가 빤짝이는 영상이 떠오르는 듯하다. 석유 시추탑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발표한 140억 배럴의 석유와 가스, 매장 가능성이 10%라고는 하지만 우리의 꿈 ‘산유국’이 현실이 되길 빌어본다.

2024-06-20

입법독재(立法獨裁)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하여 노력하며, 국가이익을 우선으로 하여 국회의원의 직무를 양심에 따라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선거에 당선되어 임기를 시작하는 국회에서 국회의원들이 하는 선서다.국회의원들은 국민의 대표로서 각계각층의 의견을 반영해야 하고, 다수결의 원칙을 따르되 소수 의견도 충분히 존중하고 반영하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 모든 의사결정 과정은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하며, 모든 법안과 의제는 공평하게 심의되어야 하고, 특정 집단이나 개인의 이익을 우선시해서는 안 된다. 국회는 정당이나 외부 세력의 부당한 압력을 배제하고 독립적으로 운영되어야 하며, 입법부로서 행정부와 사법부의 권력분립을 지키고, 상호 견제와 균형을 유지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헌법에 명시된 국회의 역할과 책임에 대한 요약이다.다수의석을 차지한 야당이 입법독재를 하고 있다는 원성이 높다. 삼권분립 제도를 채택한 국가에서 야당이 입법독재를 자행한다는 것은 헌정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그것은 위에 열거한 국회의 임무와 역할에 위배되는 일일 뿐 아니라 헌정질서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일이다. 그럼에도 만행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입법 폭주를 일삼는 것은 오로지 저들이 안고 있는 사법리스크를 모면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걸 대다수 국민들은 알고 있다.국회 다수당의 폭주가 시작된 것은 문재인 정권 후기부터다. 적폐청산을 명목으로 특검을 발족해서 박근혜 정권 관련 인사들을 대거 사법처리할 때까지는 박수를 보내다가, 막상 검찰의 칼끝이 자신들을 향하자 토사구팽으로 검찰해체에 나서면서 국회가 폭거에 나섰다. 검찰무력화의 일환으로 소위 ‘검수완박’법을 제정한 것도 모자라 옥상옥으로 일컬어지는 ‘공수처법’까지 편법을 써가면서 밀어붙였다. 그래놓고 이제는 공수처도 못 믿으니 특검을 하자고 한다.하지만 대선에 패배해 정권이 바뀌자 야당이 된 다수당은 어떻게든 정권에 흠집을 내고 타격을 가하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 일단은 국회의장을 비롯해 주요 상임위원장을 독식하고, 그 무소불위의 힘으로 특검과 탄핵 결의를 남발해 정권의 발목을 잡고 검찰과 사법부와 언론을 겁박하고 장악하려는 시도를 서슴지 않는다. 단독으로 ‘방송3법’을 통과시켜 언론장악을 노골화하고, 사법리스크 모면책으로 검사와 판사를 탄핵하겠다는 것도 모자라 아예 검찰청을 없애버리는 법안을 발의하자는 말도 나오고 있다.국회는 민의를 대변하는 기관이다. 국회의원 각자는 개인이 아니라 지역주민과 지지자들의 대리인 자격을 갖는다. 그래서 국회는 가장 민주적으로 운영되어야 하고 소수의 의견도 충분히 고려하고 반영해야 한다. 그런데도 다수의석을 앞세운 야당의 파행과 폭주는 반민주적이고 반법치적인 만행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입법독재의 횡포를 막기 위해서는 우선 행정부와 사법부가 제 구실을 해야 하고 민심이 선거로 심판하는 수밖에 없다.

2024-06-20

탄탄이 만난 두 거장, 이문열과 박명재

얼마 전 남천주(南川州 옛 이천의 지명) 설봉산자락 마장면 장암리의 ‘부악문원’으로 발길을 향했던 적이 있다.  문원은 우리시대의 대 문호이시며 서울장안의 지대를 '황금종이'로 탈바꿈 하는데 혁혁한 공로를 하시고, 이 시대의 진정한 이야기꾼, 초명(初名)은 이열(李烈)이신 이문열 대문호(작가)께서 인세로 장만하여 자신의 집필실부터 창작인을 위한 객사까지 겸비한 곳이다. 후학도 양성하고 있어 일명 ‘이문열 학숙(學塾)으로 부르기도 한다. 주말엔 고속도로가 늘 저속도로 되어 대형 주차장이 된 듯 한 도로에서 거의 긴급한 시간을 초조하게 허비하다가 약속시간 보다 30분을 넘게 지체하여 도착을 했으니, 도로 탓으로 돌리기에도 영 체면이 서지를 않았지만, 몇 달 전부터 굳게 한 약속을 속수무책으로 준비성이 없었음에 안면이 제대로 서질 않았다. 도를 넘는 실례를 범한 것이니 멋쩍었다.  여하튼, 정원에는 참 붕어 몇 마리가 노니는 아담한 연못이며 그림 같은 낙락장송 몇 구루가 우뚝하니 서 있었고, 이미 문장으로 일가를 크게 이룬 자타공인하고 남은 두 대가이신 이문열 선생님과 영일만이 낳은 수재 동천東天 박명재 대감을 30분 넘도록 기다리게 한 위인이 바로 이 몸이었다.  동천 선생과의 지중한 인연은 예전 포항 영일만 최고봉의 암자로 소원 한 가지는 꼭 들어준다는 '기도 영험처'로 경향 각지에 널리 알려져 있었으며 원효성사와 자장율사께서 머물던 천 년 전의 초막인 자장암에서였다. 이곳에서 잠시 머물던 때에 전례 없던 전염병이 창궐하여 지구촌에 돌았던 근자의 지난시절, 일기도 고르지 않던 날 한 치의 앞도 구분키 어려워 가랑비가 줄기차게 내리고 가물가물 물안개가 자욱했던 그날, 예측불허의 인생길속 같은 운제산 자락 구비구비 벼랑 끝의 암자에, 급작스럽게 지나간 한 시절엔 이름 꽤 높은 고관으로 명예롭게 예편하시고 늘 나랏일에 바쁜 현직 국회의원께서 간당간당 떨어지기 직전 제비집처럼 매어달려 아슬아슬하고 험했던 험한 길을 방문하겠다니, 그 때의 순간 부족한 이 사람은 하필 그 좋은 날 제치시고 이런 시기에 이곳을 오시어야하나 하는 오지랖 염려도 없지를 않았으나, 예전 같으면 당상관인 이조판서(제9대 행정자치부 장관)를 지내고 대제학(대학총장)까지 역임한, 일흔에 다다른 현역 국회의원이 지나는 길에 들르겠다는데, 이를 마다하는 것도 크게 예의를 벗어나는 것 같아 엉거주춤하며 맞이했던 분이 동천東天 박명재 대감이었다. 그 때의 쉼 없는 폭포수 같은 지혜의 명철대오를 각인케 해주는 감로설법에 매료되어 지금까지도 그 인연이 이어져오고 계시는 분이시다.  이 시대의 거두들인 두 어르신의 당당한 존재감을 보여주듯이 문원 푸른 정원 앞마당에는 그 사계절 푸르른 낙락송이 마치 두 분 인 양 우뚝 서있었고, 한때 박 대감이 행정자치부 장관시절 인사과장직의 중요 요직에 발탁한 여장부로 현 이천시통령이 지불한 쌀 맛, 밥맛의 질이 전국에서 내놔라하는 널리 알려진 집에서 이문열 대문호와 박명재 대감을 모시고 이밥에 질긴 나물(?)로 배를 불렸던 그럭저럭 행복한 하루였다. 또 젊은 시절 만나 평생을 교류하고 있는 두 분의 대화 속에서 진정한 우정이 어떤가를 되새겨 본 시간이기도 했다.   다시 부악문원 수 만권의 서책 앞에 눈이 휘둥그레하여 있던 찰나에 이 선생 댁 여사님께서 지나는 말씀으로 "아끼고 귀중한 물건, 그러니 이보다 양질의 책은 경상도 땅인 영양 석보면 원리리 두들마을 광산문학관에 내려 보냈는데 근자에 이르러 화마에 모두 다 타버렸다"고 하셨다. 관련 인사들의 용심부족 탓이든, 관리 소홀 탓이든 간에 이를 듣고 있으려니 울화가 치밀어 올라 터지는 듯 했다.   문원을 한 바퀴 돈 후 이문열 선생님으로부터 이런저런 내심을 들었는데 그 중 하나는 낙향이었다. 이 대문호께서야 고향으로 내려가 말년을 유유자적하며 인생을 마무리하심도 한 생을 깔끔하게 정리하는 방법일 수 있다. 그러나 수도권 인구에게는 아직도 이문열 선생의 고전적이고 인문주의적이며 그가 발간한 오랜 책의 그 향내가 그저 그립다. 또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그윽하기만 한 문체를 만나고 싶고, 일필휘지 그의 글을 통해 이 퍽퍽하기만 한 디지털 세상에선 볼 수 없는 인간 속마음을 통찰해 봤으면 한다. 주변을 둘러보면 아직 그의 글을 바라고 기다리는 이들이 적잖다. 그러니 이 대문호께서 심호흡 한 번 크게 하시고 우리 속 심금을 시원하게 울려주길 빌고 또 빌어본다.    수도권 과밀화는,'재화가 수도권으로만 집중한 현상'도 있겠지만, 서울이 '문화공화국'이라는 것에도 기인한다. 기실, 정책의 부족함과 소홀히 만든 결과일터다. 그 문화공화국도 지금 진보 진영이 죄다 장악했다. 그들의 일방적이고 배타적 편견과 곡해로 인해 이 시대의 진정한 이야기꾼으로 자리매김한, 이미 대가 중에 대가인 선생도 수시로 상처가 났다. 제대로 평가하지 않는 이 세상, 그리고 평가받지도 못하는 이 사회가 지랄 같다. 사람은 누구든 일생을 통해 꼭 하고 싶은 얘기, 그러니까 평소에는 오히려 더 가슴 깊이 묻어 두게 되는 하나의 얘기를 지니고 있다고 하던데, 좀 어눌한 듯 하지만서도 이 선생께서 내뱉은 속내 한마디가 또박또박 아직도 귓전을 맴돈다. 감각적이고 즉흥적이고 일도양단 식으로 우리 편 네 편 나누어 이전투구 하듯 흑백논리만 무성한 그 ‘SNS 문체’로 어찌 우리시대의 진정한 이야기꾼의 '웅장미학'을 당해낼 재간이 있을까. 1980년대 우리 세대는 책은 좀 덜 읽고 데모만 해 인문학적 사고가 다소 부족했었음을 자인한다. 근데 그 모자람은 평생 갔다. 그렇다면, 2024년 지금은 어떤가. 책은 온데간데없고 여길 보나 저길 보나 온통 SNS 광풍이 휩쓸고 있을 뿐이다. 그곳에서 나불거리기만을 거듭하며 편이나 가르는 인간들이 사는 세상, 그리고 어느 새 그들이 주인공이 되가는 시대가 됐다.  이 사람이 구닥다리여서일까. 근래 들어 인문학적 사고를 사회에 접목시킬 수 있는 방법을 간혹 생각한다. 인문학이 좀 더 밝고 건전한 세상을 만들 수도 있을 것 같아서다. 하나 더 욕심낸다면, 그 인문학의 영역 확장 역할을 수고스럽지만 이 대문호께서 좀 해주시면 더없이 좋으련만.  아 참, 솔직히 국보 같은 아니 국보 그자체인 국민작가에게 그에 걸 맞는 대접도 좀 해주라. 우리 시절에 그이 덕분에 사색의 위대함을 이토록 깨닫지를 않았는가. 이문열 선생님께서 그날 부악문원을 떠나는 이 사람에게 들려주신 천둥소리가 지금도 쟁쟁하게 들린다. "죽으면 죽으리라". /탄탄 (전)불교중앙박물관장·현 동국대(와이즈캠퍼스) 출강

2024-06-20

대통령과 술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유대인들의 지혜를 담은 책 ‘탈무드’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술을 처음 마시기 시작할 땐 양같이 온순하지만, 조금 더 마시면 사자처럼 사납게 되고, 거기서 더 마시며 원숭이처럼 춤을 추고, 폭주하면 토하고 뒹구는 돼지가 된다.”술에 관한 비유 중 이처럼 적절한 걸 찾아보기 쉽지 않다. 선현들은 술을 마실 때도 자제력을 잃지 않으려 애썼다. 오죽하면 주도(酒道)란 말까지 있을까. 과하면 도리를 벗어나게 만드는 게 술이다.한국인의 ‘술 사랑’은 유명하다. 필부필부부터 대통령까지 신분에 상관없이 많은 양이건 적은 양이건 술을 즐겨왔다. 김영삼과 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은 비교적 나이가 많아 집권했으니, 술을 크게 즐기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반면 40대에 대통령이 된 박정희와 전두환은 주량이 상당했다고 한다. 박정희의 경우 촌로들과 막걸리를 즐겨 마셨고, 동시에 청와대 인근 안가에선 위스키 시바스 리갈을 즐겼다.보스 기질 다분했던 전두환은 부하 장교들과 호방한 술판을 벌이는 게 여러 영화에서 묘사된 바 있다. 1980년대 청와대에서 가족 행사를 끝낸 전두환이 취한 모습으로 동생의 부축을 받는 영상도 남아있다.현직 윤석열 대통령 또한 애주가의 면모를 드러내는 경우가 흔했다. 막걸리병 뚜껑을 여는 방법을 알려주는 모습이 방송을 통해 보여졌고, 전통시장을 찾았을 땐 해산물을 가리키며 “이런 안주엔 소주 한잔이…”라며 웃기도 했다.다 좋다. 대통령이건 회사원이건 기호품으로서의 술을 즐기는 걸 누가 탓하랴. 다만 ‘유주무량 불급난’(唯酒無量 不及亂·마시는 양에 한정을 두지 않되 정신이 혼미해져서는 안 된다)이란 ‘논어’ 구절을 먼저 새겨야 할 터다./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06-19

거짓과 진심

장규열 고문 6·25가 다가온다. 74년 전 대한민국은 꺼져가는 등불이었다. 북의 기습남침 이틀 만에 대통령은 힘차게 방송하였다. “정부는 대통령 이하 전원이 평소와 같이 중앙청에서 집무하고, 국회도 수도 서울을 사수하기로 결정하였으며, 일선에서 용감무쌍한 국군이 한결같이 싸워 이겨 마침내 의정부를 탈환하고 물러가는 적을 추격 중이니, 국민은 군과 정부를 믿고 조금도 동요함이 없이 직장을 사수하라.” 거짓말이었다. 이를 듣고 안심했던 피난민들이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필자의 선친 삼남매는 그렇게 서울에 갇혔다고 했다. 대통령과 각료들은 이미 서울 이남으로 피신한 후였던 데다, 한강 다리마저 폭격으로 끊어진 서울에서 시민들은 독 안의 쥐가 되었다. 서울 수복까지 지옥같았을 서울 생활을 상상할 수 있는가.정치인들에게서 진심을 읽을 수 있을까. 우리에게 그들은 진실을 말하고 있는가. 나라와 국민을 마음으로 생각하는 정치가 보이는가. 술수와 정략으로 겨우 피하기만 하는 말싸움의 아수라가 아닌가. 그만하면 보일만도 한데, 국민이 만난 어려운 상황과 고단한 일상은 누구도 헤아리지 않는다. 물가가 뛰고 이자가 천정에 닿으며 환율이 고공행진을 해도 정치판은 오히려 움직이지 않는다. 이런 판에 자기들끼리 치고받는 일이 무에 그리 급한지 알 길이 없다. 어려운 고개를 넘으며 하루하루를 사는 국민은 답답하다. 누구도 돕지 않는 막막한 날들을 2024년에도 만나고 있다니! 도대체 무엇으로 어떤 세상을 바꾼다는 것인지, 누구를 위하여 그들은 정치를 하고 있는지. 최소한 당신 자신의 영달을 위함이 아니었음은 증명해야 하지 않을까.역사는 앞으로 나아가는가, 아니면 때때로는 거꾸로 흐르는가. 국민을 말로만 주워담는 정치는 신물이 난다. 당신들이 ‘국민’을 들먹여도 눈치빠른 국민은 그 마음을 이미 읽는다. 공천과 당선에만 관심이 있으며 자신의 안위에만 전전긍긍한다는 걸. 아니라면 당신들 하는 일에 공감과 배려가 보여야 한다. 국민의 어깨가 한 치라도 가벼워져야 한다. 국민은 억장이 무너지는데, 이제는 사이다 발언에도 한숨만 나온다. 국회는 무엇 하는가. 한껏 기대하며 표를 모아 국회로 보냈더니 문도 다 못 열었다. 학생과 회사원에게 교실과 사무실이 제 자리이듯 국회의원에게는 국회가 자신의 자리가 아닌가. 수많은 나라의 법과 제도, 그리고 쉽지 않은 과제들에 지혜를 모아 만들고 풀어내라며 국민이 쉽지 않은 표심을 보태어 보내주지 않았는가. 경제가 어렵고 공동체에 병이 깊은데 나랏일은 뒷전이란 말인가. 논의든 투쟁이든 국회 안에서 실력과 기량을 발휘해 주시라.레이건(Ronald Reagan)은 ‘의회 의원에게 가장 무거운 책임은 국민을 보호하는 일’이라 하였다. 그 국민이 어렵다. 어려움을 만난 국민을 돌아보아 주시라. 명분과 실리도 국민을 놓고 보면 실마리가 보인다. 국민을 위하는 명분 말고 당신에게 더 급한 명분은 없으며, 국민이 행복해지는 실리 외에 당신에게 다른 실리는 없어야 한다. 정치가 거짓을 지워야 한다. 정치가 진심을 세워야 한다.

2024-06-19

與 당권주자 ‘빅2’의 대결, 흥행요소 될 수 있다

국민의힘 차기 지도부 선출을 위한 ‘7·23 전당대회’가 일단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과 나경원 의원 ‘빅2’의 대결로 시작되는 모양새다. 한 전 위원장은 후보 등록 직전인 23일 출마를 선언할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는 최고위원, 청년최고위원 러닝메이트를 조율하는 과정에 있다고 한다. 비대위시절 함께 한 장동혁·김예지·한지아 의원과 박정훈 의원 등이 러닝메이트로 거론된다. 보수 지지층에게 압도적 지지를 받는 한 전 위원장은 ‘어대한’이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유리한 고지에 있다.한 전 위원장과 맞설 주자로 꼽히는 나경원 의원은 오늘(20일) 출마 선언을 할 예정이다. 친윤(윤석열)계에서 나 의원을 민다는 소문이 자자하다. 친윤계 의원들은 최근 나 의원을 포함해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과 윤상현 의원 등 3명을 지원 후보군으로 검토한 결과, 5선 중진인 나 의원을 지지하기로 했다고 한다. 나 의원은 자신이 친윤계로 비치는 것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만약 친윤계가 나 의원을 지원할 경우 최고위원 러닝메이트로는 신동욱·조지연·김민전 의원 등이 거론된다.현재 윤상현·김재섭 의원도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지만, 7·23 전당대회가 한동훈·나경원 ‘빅2’의 대결로 치러질 경우 흥행 측면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 국민의힘은 4·10 총선이 끝난 지 두 달이 넘었으나 아직까지 무기력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번 전당대회를 계기로 국민에게 변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책임 있는 집권 여당의 자세도 찾아야 한다. 그러려면 새 대표는 강력하고 혁신적인 리더십을 가져야 한다. 서슴없이 3권분립을 무시하고 입법독재를 하는 거대 야당에 맞서려면 지금처럼 우유부단하게 집권당을 운영해선 안 된다. ‘여당 국회의원 전원사퇴’ 같은 사생결단식 카드도 꺼낼 수 있을 정도의 강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그리고 용산 대통령실과는 평소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야겠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다른 목소리를 과감하게 낼 수 있는 강단도 가져야 한다.

2024-06-19

공무원 치킨집 갑질 의혹, 모럴 해저드 아닌가

대구 중구 한 치킨집에서 구청 공무원의 갑질 의혹이 제기되자 구청장 이름의 사과문을 내는 일이 벌어졌다.사건의 발단은 지난 13일 자영업자들의 온라인 커뮤니티 “아프니까 사장이다”에 중구에서 치킨집을 운영하는 한 주인이 “마음이 힘드네요”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면서부터 시작됐다.주인이 작성한 글에 따르면 지난 7일 40∼50대로 추정되는 남성 4명이 자신이 운영하는 치킨집으로 찾아와 맥주와 치킨을 주문했고, 얼마 뒤 바닥에 맥주가 쏟아져 있어 이를 치우는 과정에서 이들의 고성과 폭언이 있었다는 것이다. 일행 중 한 사람은 구청 직원임을 밝히고 “바로 장사 망하게 해주겠다”는 협박까지 했다고 한다.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구청 전자민원 게시판에는 해당 직원 공개 및 처벌을 요구하는 게시물이 올라오는 등 논란을 빚었다. 이에 중구청은 사과문을 게시하고 철저한 조사를 통해 진상을 규명하고 그 결과에 따른 행정적 조치를 취하겠다며 수습에 나섰던 것이다.공무원이 일반인과 다른 것은 국민의 봉사자로서 책무가 부여돼 있다는 점이다. 물론 공무를 수행하는 과정에 친절하고 공정하게 업무를 처리해야 되겠지만 그것이 반드시 공무가 아니더라도 국민을 대하는 마음 자세는 올바르게 가져야 하는 게 도리다. 공무원 규정에도 공무원은 직무의 내외를 불문하고 그 품위가 손상되는 행위를 해선 안 된다고 적시하고 있다.특히 사과 과정에서 밝혔듯이 소상공인은 구청이 보호해야 할 대상이다. 최근 불경기가 지속되면서 많은 소상공인들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공직자들의 따뜻한 말 한 마디가 위안이 될텐데 갑질 논란이 인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공무원들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음주운전이나 시간외 수당의 부정 수령 등은 심심찮게 등장하는 모럴 해저드다. 이번 사건을 보고 아직도 공무원이 시민 위에 존재하는 특권층으로 착각하는 이가 많은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공직사회의 신뢰 회복을 위해서라도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 상응하는 조치가 있어야 한다.

2024-06-19

자율신경 실조증과 치료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자율신경 실조증이란 교감 신경의 균형이 깨져 인체의 항상성 유지 기능이 떨어지게 되어 여러 가지 질병이 발생되는 경우를 말한다. 사실 많은 현대인들이 겪고 있는 질환이고 병원에서도 특정한 병이다라고 할 수 없는 증상이다. 그러나 환자는 다양한 증상으로 인해서 고통 받고 있는 질환이다.예를 들면 사람들 앞에 서면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다거나 가슴이 답답하고 두근거린다. 잠들기 힘들고 꿈이 많다. 잠을 자주 깨는데 깨고 나면 더 못잔다. 잠을 자도 피로하다. 몸이 항상 피로하고 힘이 없다. 눈이 피곤하고 시력저하가 있다. 어지럽고 갑자기 일어날 때 현기증이 온다. 매년 환절기마다 감기에 걸리고 오래 간다. 몸이 차거나 더위를 남보다 많이 탄다. 기분이 우울하고 짜증이 난다. 머리가 무겁고 두통이 자주 발생한다. 속이 미식거리고 식욕이 없고 구역질과 트림이 잘나고 배에 가스가 차는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최근엔 양방에서는 이러한 증상들을 통칭하여 자율신경 실조증이라고 부르고 다양한 치료를 하고 있다. 한방에선 예전부터 이런 증상들을 화병이나 비기허증 등으로 부르며 치료를 해왔다. 자율신경 관련 질환은 예전부터 한방이 큰 강점이 있었고 지금도 그렇다. 이런 증상들은 대부분 신체 기능이상이라 한약으로 치료를 한다. 한약치료의 원칙은 현재 환자가 호소하는 증상에 맞춰 원인을 파악하고 거기 맞는 약재를 조합하여 처방을 하게 된다. 갱년기나 화병 증상이 많으면 치자 황련 시호 등의 약물을 조합하고 위장쪽 질환을 주로 호소하면 반하 당삼 건강 등의 약재를 조합하여 처방을 한다. 특별한 원인이 없이 몸이 피로하고 다양한 증상으로 고통 받는 경우는 이렇게 한약 치료를 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은 첫 번째는 운동이다. 하루 40분 정도 걷거나 가볍게 뛰어주고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운동을 해주면 된다. 두 번째는 음식조절이다. 적게 먹는 것이 기본이고 맵고 짠 것은 먹지 않는다. 천천히 100번씩 음식을 씹어서 섭취한다. 처음에는 힘들지만 익숙해지면 그렇게 힘들지 않다. 세 번째는 편안한 마음을 갖는 것이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거울을 보고 웃는다던지 쉬는 시간에 눈을 감고 5분 정도 가만히 있는 것도 좋다. 자율신경 실조증은 말 그대로 교감 부교감 신경 조절이 잘 안 되는 것이고 이는 내가 만든 생활습관이 만든 것이니 열심히 운동하고 적게 꼭꼭 오래 씹어 먹고 맘을 편하게 하면 도움이 된다.최근 과학의 발달로 좀 더 정확한 치료를 할 수도 있다. 교감신경의 관문이라고 할 수 있는 성상신경절에 약침을 놓는 것이다. 이 신경은 경동맥 밑에 위치를 해 그동안은 직접적으로 치료가 힘든 부위였다. 그러나 성상신경절에 정확히 약침을 주입만 하면 교감신경 항진이나 자율신경 실조로 인한 다양한 증상들이 좋아진다. 초음파로 정확하게 성상신경을 찾아서 직접 보면서 안전하게 시술을 할 수 있다.본인의 노력과 적합한 치료를 하면 그동안의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2024-06-19

걷고 보고 듣다 독일 여행기(上)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퇴직하자마자 곧바로 독일을 중심으로 한 유럽여행을 계획했으나 코로나가 발목을 잡았다. 코로나 끝날 무렵엔 2년간 유치원을 다니는 연년생 손자와 손녀의 등하원을 돕느라 또 미뤘다. 지난 3월로 막내 린이가 학교에 가게 되자 이젠 나의 ‘은퇴 후 버킷리스트’ 제일 위쪽에 있는 이 여행을 감행할 수 있게 되었다.독일에 외사촌 동생이 살고 있었다. 20년도 훨씬 전에 음악공부를 위해 유학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음악치료를 더 공부해서 직장을 다니고 있는 동생이다. 휴가 때마다 귀국하면 반드시 만나서 웃음과 즐거움을 함께 하는 친동생 같이 살가운 사이다. ‘네가 있을 때 독일살이 하고 싶다.’며 만날 때마다 버릇처럼 말했더니, 반색을 하며 오라고 했는데, 앞서의 사정으로 미뤄진 지 4년이나 지났다. 동생은 해마다 휴가계획을 잡으면서 나의 독일행을 먼저 확인하곤 했다. 이번 여행은 작년 11월에 동생이 2024년 휴가 계획을 세우며 잡은 일정이었다. 더는 미룰 수가 없다에 합의하면서 우리는 신나게 여행계획을 잡기 시작했다. 여러 곳을 점찍듯 둘러보는 패키지여행은 싫다. 대신 며칠씩 한곳에 머물기. 이왕지사 먼 길 가는데 독일만 가기는 좀 아까우니, 주변국가의 도시도 몇 군데 둘러보기. 우리 내외 나이가 있으니 너무 많이 걷지는 말자. 이상이 나의 요구 조건. 남편은 독일의 시인과 문학과 철학에 관심을 갖고 관련 책을 사서 탐독하더니, 그들의 흔적들을 찾고 싶단다. 동생은 음악 전공자다운 이벤트를 제안했고 나도 대찬성. 두 편의 오페라와 한 번의 연주회가 추가되었다. 우리의 요구와 동생의 제안으로 세상에 둘도 없을 멋진 일정이 되었다. 2주를 훌쩍 넘는 비교적 긴 일정이었다.동생이 사는 독일 남부의 작은 도시 튀빙겐에서 며칠을 머물며 독일살이를 하는 것으로 우리의 일정이 시작되었다. 동생은 아파트를 빌려놓았고, 되도록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위해 나와 남편의 교통카드까지 발급해 두었다.걷지 말기는 애시당초 제외였다. 또한 걸어야 보였다. 우리는 하루 평균 1만5000보 이상 걸었다. 2만6000보까지 걸었던 날도 있었다. 매일 만보기의 기록개신을 확인하면서 놀라고 대견해 했다. 밤이면 잠에 골아 떨어졌고 이튿날 또 멀쩡해졌다. 스스로 회복탄력성이 있다고 믿었던 나는 즐겁게 걸었다. 남편은 좀 힘들어했지만 잘 참아주었다. 덕분에 우린 도착한 날 밤에 딱 한 번만 택시를 탔을 뿐이었고, 모두 뿌듯해했다.독일, 오스트리아, 헝가리 대부분의 도시는 고풍스러운 언덕 위의 성, 서양 미술양식의 성당과 교회, 그리고 아름다운 마을 풍경으로 이루어져 있다. 시간에 쫓기지 않으니 자세히 보고 즐기며 만끽했다.또 하나, 동생이 추천한 음악 프로그램은 충만했고, 여운은 길었다. 뮌헨오케스트라의 ‘토스카’와 비엔나오케스트라의 ‘투란토트’, 비엔나모차르트오케스트라의 연주회를 내가 직접 보고 듣게 되다니, 기대 이상 상상 이상의 귀호강이었다.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가 생각난다. 나의 이번 여행은 ‘걷고 보고 들어라’였다.

2024-06-19

번데기, 추억을 소환하다

정미영 수필가 햇살이 씨줄날줄 엮여 고르게 쏟아지는 화창한 날이었다. 경주시 전통명주전시관에 다녀왔다. 우리 일행은 명주 제조 과정을 직접 보기 위해 일부러 일정을 맞췄다. 시연은 매주 화, 목, 토, 일요일 오전 10시에 한다.솥에 고치를 넣고 삶아 실을 빼내었다. 누에가 성충이 되려면 고치를 뚫고 나와야 하는데, 우화시킨 뒤에 남은 고치로 실을 얻으면 중간에 계속 끊어진다고 했다. 그래서 우수한 품질의 견직물을 얻기 위해 번데기째 삶는단다.점심때가 되어 식당에 갔다. 일행 중 한 분이 학창 시절 추억담을 풀어놓으셨다. 산에 가서 뽕잎을 따다가 누에를 기르는 것은 본인의 몫이었고, 명주실을 뽑아 베틀에서 베를 짜 옷을 만드는 것은 어머님의 몫이었다며 눈시울을 붉히셨다.모두가 경험담에 몰입해 있던 순간, 밑반찬으로 번데기가 나왔다. 스스럼없이 먹는 내 모습을 보고, 번데기를 먹을 줄 아느냐며 몇몇 일행이 깜짝 놀라셨다. 평소 나의 식성을 아는 분들이라 의외였던 것이다. 번데기를 입에 넣으니 입 안 가득 짭짤한 맛이 나며 고소한 냄새가 퍼졌다.그 냄새는 오랫동안 마음속에 저장되어 있던 낯익은 것이었다. 그리움이었다. 나에게 있어 추억이 그리움이 되려면 내면의 심상이 따뜻해야 한다. 번데기를 보는 순간, 내 그리움의 심연 깊이 드리워져 있던 아버지에 대한 따뜻한 기억이 윤슬처럼 반짝였다.나는 대여섯 살 무렵부터 아버지의 손을 잡고 시내 영화관에 다녔다. 영화 광고 전단지가 덕지덕지 붙은 길모퉁이를 돌아서면 영화관이 우뚝 서 있었다. 주위 건물에 비해 컸으므로 그것이 영화관이라는 것은 멀리서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시각이 아닌 후각으로 먼저 느꼈다. 골목길에 흠씬 배어 풍겨오는 번데기 삶는 냄새 때문에 영화관에 도착했다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내가 어렸을 적에는 영화관 앞 노점상에서 번데기를 팔았다. 찌그러진 양푼에 수북이 담긴 번데기는 모락모락 김을 내며 간식거리를 찾는 이들의 군침을 돌게 했다. 번데기는 그 어떤 그릇에 담아 먹는 것보다 돌돌 말린 소라 모양의 신문지에 먹는 맛이 최고였다. 종이 속 가득 담겨 있던 번데기는 신문지 냄새와 섞여 내 코를 자극했던 것 같다. 아니, 모처럼 함께 한 아버지와의 나들이 길에 꼬깃꼬깃 접혀진 비상금으로 사주신 군것질감이라 더 감칠맛 났던 것이리라.요즘 영화관에서 팝콘을 먹듯 그 시절에는 번데기를 먹었다. 불 꺼진 영화관에 앉아 모두가 화면을 응시할 때, 조심스럽게 번데기를 먹었던 그 맛을 아직도 나는 잊을 수 없다. 꿀꺽 소리가 옆 사람에게 들릴까 봐 눈치를 보며 천천히 삼켰던 일은 나에게 영화의 긴장감 못지않았다.성룡의 ‘취권’과 숀 코넬리, 로저 무어의 ‘007 시리즈’를 보면서도 번데기를 먹었고, 시한부 인생을 그린 ‘스잔나’를 보면서 울고 웃는 가운데에서도 내 손은 번데기를 집어 입 안에 넣고 있었다. 그것이 나에게 영화를 더 재미나게 볼 수 있는 조미료가 되어 주었던 것 같다.프루스트 효과라는 말이 있다. 프랑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유래한 명칭이다. 특정한 냄새, 소리, 이미지 또는 다른 감각적 자극을 통해 과거의 기억과 감정이 생생하게 떠오르는 현상을 뜻한다. 번데기를 보고 어린 시절에 갔던 영화관과 돌아가신 아버지와의 추억이 떠올랐으니, 나에게도 프루스트 효과가 적용된 셈이다.지금, 누에의 한살이를 생각해 본다. 누에는 자기의 모든 것을 내주는 존재다. 고치 속에서 날고 싶다는 꿈을 꾸었을 텐데도 사람들에게 실을 주고 식용이 된다. 나는 왠지 누에가 아낌없이 나눠 준다는 점에서 부성애가 강한 내 주변의 아버지들과 닮은 것 같다. 자식을 위해 늘 헌신하는 아버지들. 내 아버지도, 아버지의 꿈이 있었을 텐데 나를 위해 매순간 가슴으로 삭혔을 것이다.아버지가 무던히도 그리운 날이다.

2024-06-19

악성 우륵의 악기, 가야금

음악은 다양한 사람들이 어떠한 제약도 없이 함께 즐길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옛 가야국에서 만든 가야금(伽倻琴)은 신라가 영역을 확장하던 시기에 통합되지 못하던 가야를 아우르기 위해서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가야국의 금(琴), 가야금은 옛 문헌에서는 한글 표기로 ‘가얏고’라 불리던 현악기였다. 주로 긴 오동나무로 만든 공명판 위에 명주실로 꼬아 만든 12개의 줄을 걸고 줄마다 그 줄을 받치는 작은 안족을 두었다. 가야금의 둥근 윗판은 하늘을, 평평한 아랫판은 땅을, 공명통인 가운데가 빈 것은 천지와 사방을, 12줄과 12개의 안족은 12개월을 상징한다. 또한 악기의 몸체는 천지음양을, 3치 높이의 안족은 천지인을 나타내어 동양의 우주관과 자연의 운행 원리를 담아내었다.가야금은 대체로 수령이 30년 이상인 오동나무를 5~7년 통풍이 잘되고 그늘진 곳에서 자연건조하여 만든다. 대개의 악기가 그렇듯 둥근 형태로 깎아서 모양을 잡고, 앞판과 뒷판을 이어 붙여 울림통을 만든다. 습기를 제거하고 오랫동안 변질이 되지 않도록 불에 달군 인두로 울림통을 지지는 것도 중요한 과정 중 하나다. 안족 중앙에 줄의 굵기에 맞는 홈을 파고, 가야금에 실을 걸면 완성이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가야금은 공명판의 오른쪽 끝을 연주자의 무릎에 얹고 오른손으로는 줄을 뜯거나 튕기며 왼손으로는 줄을 떨거나 누르면서 연주한다. 곧 청명한 음색이 들려온다.대가야 가실왕(嘉實王)은 우륵(于勒)에게 가야금을 제작하고, 지역에 따라 다른 가야의 특색을 모아 작곡하도록 하였다. ‘신라고기(新羅古記)’의 기록을 보면, “가실왕은 ‘여러 나라의 방언(方言)이 각각 다른데 그 성음(聲音)이 어찌 같을 수 있겠는가?’라면서, 악사 성열현(省熱縣) 출신 우륵에게 명하여 12곡을 만들게 하였다.”라고 밝히고 있다. 그리하여 우륵이 지은 12곡에는 당시 가야의 지명이 담겨 있다. ‘삼국사기’에는 12곡으로 하가라도(下加羅都)·상가라도(上加羅都)·달기(達已)·사물(思勿)·물혜(勿慧)·하기물(下奇物)·상기물(上奇物)·거열(居烈)·사팔혜(沙八兮)·이사(爾赦)·보기(寶伎)·사자기(師子伎)를 언급한다. 이 중 10곡의 곡명이 당시 낙동강 주변의 옛 가야 지방의 명칭이다. 하가라도는 신라 법흥왕 때의 아라가야(아시랑국) 지역으로 현재의 경남 함안이며, 상가라도는 신라 진흥왕 때 멸망하여 대가야군이 되었던 지역으로 현재의 경북 고령군이다. 우륵이 가야금을 만들고 익힌 성열현은 고령에 있다. 달기는 경북 예천 다인현으로 본래는 달기현 또는 다기라 불리던 곳이고, 사물은 사수현 또는 사물현으로 지금의 경남 사천이다. 물혜는 경남 함양군 이안으로 이안현 또는 마리현이었던 곳이고, 하기물은 옛 감문소국이 있던 곳으로 금물현 또는 음달이라 불렸으며, 지금의 경북 금릉 아랫개경에 해당된다. 상기물은 경북 금릉의 웃개령이고, 거열은 거열군이라 불리던 경남 거창이다. 사팔혜는 팔혜현·초팔혜현·초혜현으로 불리던 경남 합천군 초계 지방의 옛 지명이고, 이사는 지금의 경남 의령군 부림면 일대이다. 보기와 사자기는 현재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다. 이렇게 널리 분포되어 있던 가야는 지역마다 전통과 문화가 달랐고, 독자적으로 세력을 구성했다. 그러나 신라의 영역 확장은 가야의 존폐 위기를 초래했으며, 대가야의 가실왕은 가야가 통합되는 하나의 방법으로 음악을 선택했다. 우륵으로 하여금 가야금을 만들고, 각 지역색을 담은 곡을 작곡하게 한 것이다.‘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서는 “고령현 고적조 금곡(琴谷)에서 가야국 가실왕의 악사 우륵이 중국의 진쟁(秦箏)을 본떠서 거문고를 만들어 가야금이라고 불렀다. 우륵이 공인(工人)을 거느리고 거문고를 익힌 곳”이라 전한다. 현재 고령 대가야읍 쾌빈리 일대로 보는데, 가야금 연주 소리가 산골에 정정하게 울렸다고 하여 예전에는 정정골이라 불렸다고 한다. 또한 동구뱅이라 지칭되기도 했다. ‘환상’이란 뜻의 고령 방언 동구와 ‘방’이란 뜻의 뱅이가 만나 ‘환상이 보이는 곳’이란 뜻이다. 가야금의 골짜기라 하여 금곡(琴谷)이라 불렸다고도 한다. 우륵이 이곳에서 연주하면 그 소리를 듣고 감동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고 전해진다. 고기(古記)에 따르면, 우륵은 평생 185곡이나 만들었다고 하는데 현재 남아있는 것은 이 정정골에서 12곡을 작곡했다는 기록뿐이다. 가야국이 망하자 우륵은 제자 이문과 같이 신라에 투항했고, 가야금은 신라에 전수되었다. 우륵은 신라 진흥왕에게 가야금의 예술성을 인정받고 신임받았다. 계고, 법지, 만덕이란 세 명의 제자를 두어 가야금과 노래, 춤을 전수하고자 했으나 가야의 음악을 망국지음(亡國之音)으로 치부한 이들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진흥왕은 음악에는 죄가 없다며, 세 제자를 설득했고, 우륵은 비로소 전수할 수 있었다. 이후 가야금 음악은 신라의 대악으로 채택된다. 신라의 대악은 아정한 음악, 바른 음악을 지칭하는 것으로 한국음악의 근본이 된다.정정골의 동산 위에 우뚝 솟은 우륵기념탑은 우륵의 업적을 기리고 지역문화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건립되었으며, 대가야축제 추모행사가 이뤄지는 장소이다. 우륵의 집은 아담하고 소박한 곳으로 2009년 건립되었다. 우륵박물관은 가야금과 우륵에 대한 세계를 5개의 테마로 나눠 설명한다. 시원한 산책로를 따라 가얏고 마을을 걷고, 가야금을 만들어 보고, 작은 연주도 할 수 있는 가얏고 마을을 둘러보며 옛 우륵의 자취와 우리 악기의 소중함을 느껴본다. 가야금의 아름다운 선율이 귓가에 맴도는 듯하다. /최정화 스토리텔러◇ 최정화 스토리텔러 약력 ·2020 고양시 관광스토리텔링 대상 ·2020 낙동강 어울림스토리텔링 대상 등 수상

2024-06-19

이준석과 ‘보수 정체성’

심충택 논설위원 3권분립을 뿌리째 흔드는 민주당의 각종 특검법안이 대통령 거부권 행사에도 불구하고 국회에서 재의결 될지가 22대 국회 최대 관심사다. 민주당은 지난주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폐기된 ‘김건희 특검법’과 ‘방송 3법’ 등 22개 법안을 이번 국회에서 중점 추진하기로 결의했다. 현재 사분오열된 국민의힘 상황으로 봤을 땐 ‘정쟁(政爭) 대상’인 법안 상당수는 재의결 될 소지가 다분하다.여권은 다음달 전당대회를 앞두고 주류인 친한(친한동훈)계를 비롯해 친윤(윤석열)·비윤·반윤계, 중진모임, 소장파모임(첫목회) 등으로 분열돼 있다. 일부 의원이 당론과는 달리 쟁점법안에 찬성표를 던지거나 아예 본회의에 불참하면 재의결에 필요한 정족수(재석의원 3분의 2)가 채워질 수 있다. 이미 조경태·안철수·김재섭·한지아(비례대표) 의원 등은 ‘채상병 특검법’에 찬성한다는 견해를 밝혔고, 당권도전이 유력한 김재섭 의원은 ‘김건희 특검법’에도 찬성하고 있다.최근에는 야권 6개 정당이 공동교섭단체 구성을 추진하고 있어 국민의힘으로선 상황이 더 나빠졌다. 6개 정당 의석수는 조국혁신당 12석, 개혁신당·진보당 각각 3석, 새로운미래·새진보연합·사회민주당이 각각 1석이다. 의석수가 20석을 넘으면 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다. 교섭단체를 구성하면 국회 의사일정 조정·상임위원회 구성 등 국회 전반의 활동에 관여할 수 있게 돼 의사 개진이 한층 폭넓어진다. 공동교섭단체 구성과 관련해서 내가 주목하는 것은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의 선택이다. 이 의원이 만약 교섭단체라는 눈앞의 이익에 매몰돼 조국혁신당과 손을 잡을 경우 그의 정치적 기반인 보수 지지세력과는 영원히 같이할 수 없는 결과를 낳는다.이 의원이 앞으로 폭넓은 국민지지를 받으려면 어떤 정체성을 가지느냐가 중요하다. 1차 시험대는 지방선거다. 그가 언급한 대로 개혁신당이 정치적 소수자인 청년인재, 경력단절 여성 등을 중심으로 공천해서 광역·기초단체장을 배출할 경우, 정치적 위상이 한순간에 올라갈 수 있다. 이 의원은 지난 2021년 6·11 전당대회 당시 30대에 당대표에 당선된 성공경험도 있기 때문에 좋은 성적표를 낼 가능성이 있다. 다만, 공천과정에서 드러날 그의 정체성이 주요변수가 될 것이다. 이준석의 정치적 후견자인 김종인씨는 총선 당시 ‘이준석 대구 출마론’을 언급한 적이 있다. 이 의원이 보수텃밭인 TK(대구경북)의 정체성을 대변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개혁신당은 지난달 25일 야권이 서울도심에서 연 ‘채상병 특검 촉구 장외집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리고 최근에는 수석대변인 논평을 통해 ‘이재명 대표가 너무 착하다’고 했던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에게 “악질 범죄 혐의로 재판을 받는 사람에 대해 눈살 찌푸리는 아첨을 그만두라”고 질타하기도 했다. 나는 이런 일련의 개혁신당 언행이 이준석의 ‘보수정체성 콘텐츠’를 채워나간다고 본다. 이 의원은 4·10총선 과정에서 이낙연의 새로운미래 정당과 ‘빅텐트’를 쳤다가 실패한 악몽을 절대 잊어선 안 된다.

2024-06-18

발표만 남은 APEC 개최지, 경주에 희망을

20년 만에 한국에서 다시 열리는 2025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 EC) 정상회의 개최지가 이달 중 결정될 전망이다.기초자치단체로서 유일하게 유치 경쟁에 뛰어든 경주시는 그간 모든 역량을 쏟아붓고 진인사대천명(盡人事 待天命)의 심정으로 개최지 선정의 희소식을 기다린다. 지난달 20일 APEC 개최도시 선정위원회가 현지 실사 차 경주를 방문한 데 이어 이달 7일에는 유치 희망도시의 현장발표도 있었다. 선정과정에 필요한 모든 절차가 끝나고 지금은 발표만 남은 셈이다.제주도, 인천시와 경쟁을 벌이는 경주는 APEC의 정신인 포용적 성장에 맞는 도시로서 자부심을 갖고 막판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경주시는 개최지로 도전한 이유를 세 가지 들었다. △지방시대 균형발전 시작을 알리는 계기로 삼자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도시 △146만명이 서명한 개최지로서 열정을 꼽았다.경주가 비록 기초단체지만 유치 경쟁에 나설 수 있었던 배경은 지방시대 정신이다. 윤석열 정부도 균형발전을 통해 전국의 지방이 골고루 잘사는 지방시대를 열겠다는 것을 국정 과제로 삼고 있다. 경주가 지속 가능성을 가진 지방도시로서 시대정신을 살리는 모범적 선례를 남기겠다는 뜻이다.여기에 경주는 유네스코가 인정한 세계문화도시라는 특정점이 있다. 2024년 APEC 개최국 페루는 안데스산맥에 위치한 쿠스코를 선택했는데, 이곳은 마추픽추가 있는 대표적 역사문화도시다. 우리도 참고할만한 개최지가 아닌가 싶다.APEC은 21개국 정상이 참여하는 세계적 행사다. 회원국의 인구가 전 세계 인구의 40%다. 총교역량도 50%나 된다. APEC 행사 개최로 1∼2조원의 경제적 효과가 기대된다 한다.경주로서는 10년 정도 도시발전을 앞당길 수 있는 기회다. 정부가 지방 소도시의 발전을 획기적으로 앞당길 기회를 마다할 이유는 없다.김석기 의원은 영남권 국회의원 58인이 서명한 APEC 정상회의 경주유치 지지성명서를 선정위에 전달했다. 개최지로서 열정도 뒤질 게 없다. 경주는 이제 낭보만 기다릴 뿐이다.

2024-06-18

포항, ‘국제 크루즈 관광도시’로 거듭난다

포항시가 코로나19로 중단됐던 국제 크루즈관광 활성화에 나섰다. 시 기구로 크루즈산업 전담조직을 가동하는 한편, 영일만항과 죽도시장, 영일대해수욕장을 연결하는 셔틀버스도 개통하기로 했다. 크루즈산업을 의료산업과 연계하는 방안도 추진중이다. 영일만항이 대형 국제 크루즈선의 모항(母港) 또는 기항(寄港)지가 되면 해외관광객 유치와 크루즈 전문인력 양성, 승무원 해외선사 취업 등 연관산업발전에 크게 도움을 줄 수 있다.그저께(17일) 크루즈 관광객 연간 100만 명 시대를 열겠다고 발표한 정부도 포항을 비롯해 7대 크루즈 기항지(제주, 부산, 여수, 속초, 인천, 서산)별로 테마브랜드를 부여하고, 관광도시 이미지 홍보에 나섰다. 포항시 브랜드는 ‘신라~근·현대 역사가 공존하는 도시’다. 정부는 크루즈산업이 수도권에 집중되는 관광객을 해안도시로 분산시킬 수 있는 해법으로 여기고 있다. 대형 크루즈가 한번만 포항에 들러도 4000~5000명 규모의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다.포항시는 오는 12월쯤 이탈리아 크루즈선인 코스타세레나호를 유치할 계획이다. 코스타세레나호는 11만4000t급으로 지난해 6월 영일만항을 다녀간 적이 있다. 승무원 수만 1100명에 이르고 3780명의 승객이 탑승할 수 있다. 객실 1500개와 대극장, 수영장 4개와 스파, 카지노, 면세점 등의 부대시설을 갖추고 있다.포항시는 지난달 16일 도쿄에서 일본 크루즈 선사를 대상으로 영일만항의 크루즈 인프라와 주요 관광지 등을 설명하는 행사를 가진데 이어, 지난 3~4일에는 서울에서 열린 한국테마관광박람회에 참석해 해외 크루즈 선사들과 접촉했다.포항시는 환동해권(한국·러시아·일본) 항로의 길목을 차지하고 있고, 경주 등 매력적인 관광자원을 배후에 두고 있다. 영일만항에 크루즈전용 부두도 있어 크루즈 산업에 대한 경쟁력을 비교적 잘 갖춘 도시다. 앞으로 배후관광지와의 교통편과 숙박시설, 쇼핑시설 등을 확충하면 국제 크루즈선의 필수 기항지, 나아가서는 모항지가 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2024-06-18

경북 총각이 결혼하기 불리한 이유

우정구 논설위원 인구학에서 사람의 성비(性比)는 여성 100당 남성 수로 계산한다. 성비가 높다는 것은 남성의 수가 여성의 수보다 더 많다는 뜻이다.자연적인 출생 성비는 보통 105대 100 정도로 본다. 출생시만 보면 남자아이가 여자아이보다 더 많이 태어난다. 하지만 남자의 사망률이 높고 여자보다 평균 수명이 짧아 고령에 이르면 여초 현상이 생긴다.세계적으로 보아도 남성의 성비가 높다. 대륙별로는 아시아는 남성의 성비가 높으나 유럽과 중남미는 여성의 성비가 높은 편이다.남녀 성비 구성에 결정적 영향을 주는 사건으로는 전쟁을 들 수 있다. 전쟁에서 희생된 남성이 월등히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성비의 불균형도 세대가 지나면 자연스럽게 100대 100으로 맞춰진다.동물의 암수 성비가 1:1에 근접하고 있는 것을 진화생물학에서는 피셔의 원리라 부른다. 성 생식을 통해 자손을 번식하는 인간의 성비도 자연의 법칙과 다르지 않다.최근 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우리나라 남녀 성비에 관한 연구결과가 흥미롭다. 결혼 연령층에 든 미혼남자와 미혼여성의 성비 불균형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이다.전국적으로 미혼남자가 미혼여자보다 19.6%가 더 많다고 한다. 이는 남아선호 사상이 존재한 시대적 배경과 남녀 성별 구분이 가능한 의료기술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분석이 된다.더 큰 문제는 지역별 차이가 훨씬 크다는 사실이다. 서울은 미혼남녀의 성비 차이가 2.5%에 불과하다. 그러나 경북(34.95), 경남(33.2%), 충북(31.7%) 등 지방도시는 30%가 넘는다. 중앙과 지방의 격차가 하나 둘이 아님이 또 한번 드러난 셈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6-18

제복입은 불멸의 호국영웅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때이른 더위가 한여름을 방불케 한다. 수년 전부터 봄과 여름의 경계가 모호해져서, 꽃들이 일제히 피면서 봄인가 싶더니 어느새 여름날인가 싶을 정도로 무더위가 찾아들어 계절의 구분을 다시 책정해야 할듯하다. 그만큼 지구온난화나 기후변화에 따른 현상이겠지만, 갈수록 한반도도 차츰 열대성기후로 바뀌면서 기상이변과 자연재난에 노출되지는 않을까 염려스럽기만 하다. 기후와 세월을 이기는 장사가 없겠지만, 아무리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달라져도 잊혀지거나 변해서는 안 될 불멸의 가치가 있다. 바로 호국보훈의 의식과 예우이다.해마다 찾아오는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지만, 호국의 일념과 보훈의 마음이 어찌 6월에만 국한되랴. 지정학적인 측면도 있었겠지만 유난히 외세침입이 많았고, 한반도를 피로 물들였던 6·25한국전쟁이 근·현대 들어 가장 뼈저린 상처와 엄청난 피해를 가져와 현재까지도 분단과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호국보훈은 전쟁의 비극을 잊지 않고, 국가와 국민의 안위와 평화를 위해 헌신한 이들을 기리고, 그들의 희생과 헌신에 감사하며 숭고한 뜻과 훈공에 보답한다는 측면에서 깊이 되새기고 이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리라고 본다.보훈 없는 호국은 없듯이, 공로와 은혜에 보답하는 보훈의 정신이 무너지면 나라를 지키는 호국을 기대할 수 없다. 그러한 관점에서 2023년 7월 6·25 전쟁 정전 70주년을 맞아 6·25 전쟁 참전유공자에게 국민적 존경과 감사를 담은 새로운 제복과 넥타이를 국가보훈처에서 맞춰드린 것은 의미있는 일로 여겨진다. 이른바 ‘제복의 영웅들’이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국민들이 6·25 참전용사를 대할 때 인식개선이 필요한 기존 조끼형태의 여름 약복의 디자인을 새롭게 해서 참전용사에 대한 예우를 표하고 영웅을 존경하는 사회적 인식을 증진시키고자 참전용사를 위한 제복을 제작한 것이다.그렇게 제작된 베이지색의 산뜻한 제복은 전국의 생존 참전유공자 5만8000여 분께 단계적으로 지급됐다. 포항지역에는 300여 분께 지급됐으며, 그 중 30여 분께는 최근 포스코 사진봉사단이 포항시보훈회관을 찾아 6·25전쟁 참전 유공자의 늠름한 모습의 제복영웅사진과 편안한 장수사진, 노병들의 단체사진 등을 촬영해 드려서 의의를 더했다. 그러한 광경은 흔히 볼 수 있는 일이 아니며, 위기에 처한 나라를 위해 헌신한 호국영웅들을 예우하며 존경과 숭고한 뜻을 기리는 봉사자들의 낯빛이 진지하고 역력했었다고나 할까?기억은 기록이나 사진을 통해서 더 또렷해지고 오래 남게 된다. 영웅을 기억하며 새로운 제복을 만들어준 정부도 감사하고, 참전용사들의 영예로운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내는 봉사단의 활동도 고무적이다. 제복을 입고 거수경례를 하는 모습을 촬영하면서 호국영웅들이 6·25전쟁 때부터 겪었을 험난한 삶의 여정과 희생을 조금씩 알아가는 과정이 된 것 같아 뭉클할 정도였다.나라를 지켜낸 6·25전쟁 영웅들의 숭고한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가 평범하면서도 행복한 일상을 편안히 살아갈 수 있다. 6·25전쟁 영웅 뿐 아니라 국가유공자 분들께 나라사랑 정신을 기리고 명예를 드높이며 호국영웅들을 예우하는 많은 노력과 지원이 있어야 진정한 보훈의 의미가 빛날 것이다.

2024-06-18

삶과 자기경영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자기경영(Self-Management)은 개인이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계획하고 관리하는 능력을 말한다.자신의 꿈을 정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목표를 설정하고,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며, 시간과 에너지를 효과적으로 분배하여 원하는 결과를 이루기 위한 체계적인 방법과 전략을 포함한다. 자기경영은 개인의 자기인식, 자기통제, 자기동기부여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자기경영의 6가지 조건은 첫째, 자기인식(Self-Awareness)이다.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파악하고 가치와 신념을 명확히 이해하는 능력이다. 자신이 어떤 상황에서 스트레스를 받는지, 어떤 방식으로 일할 때 가장 효율적인지를 이해하는 것이다. 둘째, 목표 설정(Goal Setting)이다.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는 능력이다. 예컨대, 마음의 양식을 얻기 위한 매년 12권의 책 읽기 등 목표 설정이다. 셋째, 시간 관리(Time-Management)이다. 평소 나쁜 습관이나 단점을 찾아서 과감하게 버리는 일을 먼저 하고, 중요한 일과 덜 중요한 일을 구분하고 효율적으로 시간을 분배하여 활용하는 능력이다. 넷째, 자기통제(Self-Control)이다. 감정이나 충동을 통제하고 지속적으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능력이다. 주변 유혹을 이겨내고 필요한 일에 집중하는 것이다. 다섯째, 동기부여(Motivation)이다. 스스로 격려하고 목표 달성을 위해 꿈을 벽에 걸고 되뇌이며 지속적으로 노력하는 것이다. 여섯째, 자기계발(Self-Developm ent)이다. 끊임없이 자신의 능력을 향상시키고 새로운 기술이나 지식을 습득하는 노력이다. 예를 들면, 세계여행이 꿈이면 해당 언어를 매일 30분씩 공부하는 것이다.필자가 기업 혁신 컨설팅 하는 것은 개인의 성장과 조직의 발전을 위해 지속적인 변화관리를 하는 일이다. 직원 교육시 직책자, 중견 사원이나 신입 사원도 개인의 꿈을 먼저 물어보곤 한다. 개인의 성장과 변화의 단초는 미래의 꿈 설정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포스코 Top이 생산 현장의 개선활동에 대한 포상과 격려 방문 때 대화의 장에서 신입 사원의 꿈을 물어 본다. 꿈이 없거나 구체적이지 않으면 기술명장에 도전하도록 권유하기도 한다. 모든 것은 개인이 선택하고 도전하는 것이지만 행복하게 산다는 바람보다 시간이 걸린 꿈 설정이 자기경영의 시작이 되는 것이다. 자기경영으로 성공한 대표적인 인물은 스티브 잡스다. 애플의 공동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는 자신의 비전과 목표를 명확히 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 인물로 유명하다. 자신의 강점을 활용하여 미래를 설계하고 신제품을 개발하여 경쟁력을 확보하고 오늘날 애플을 만든 것이다.인생에서 보면, 100세 시대에 후회하지 않는 삶을 영위해 나가는 길은 자기인식, 자기통제, 자기 동기부여 등의 자기경영이다. 자신의 생명인 시간의 소중함을 인지하고 목표 달성을 위한 시간 드라이브를 걸어야 한다. 목표를 향한 인생 시간을 잘 운영하면 꿈은 이루어지며, 더 만족스럽고 성취감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

2024-06-18

‘짧지만 긴 여운 …’ 소설가 김강의 엽편소설 사람들은 그저 무심했다

K가 A의 의도를 알고 있었고 그로 인한 결과를 예측했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해 판단해야 했다. 참고인으로 소환했으나 수사기관에서는 K를 어떤 방식으로 대할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다. 한쪽에서는 굳이 수사 대상을 확대하여 일을 번거롭게 만들 필요가 없지 않느냐, K는 단순히 사익을 취한 판매자일 뿐 A의 행위와 그로 인한 결과에 대해 책임을 져야할 어떠한 이유도 없다는 입장이었고 다른 쪽에서는 K가 A의 행위에 관련된 제반 상황에 대해 충분히 파악하고 있었고 자신이 A에게 제공한 도구가 어떤 방식으로 사용될 지와 그 결과에 대해 분명히 알고 있었기에 책임의 범위가 어디까지인가가 문제이지 책임의 유무는 이미 판단 대상이 아니라는 태도를 견지했다.참고인으로 소환된 K가 A4용지 10매에 달하는 진술서를 제출했으나 그 내용은 대부분 사건과는 관련이 적은 K 과거에 대한 회상이었다. 진술서 중간 중간에 A와 피해자들 사이에 전개되었던 저간의 사정들을 써놓기는 했지만 그것은 이미 수사기관이 확보한 내용과 다르지 않은 ‘사실’을 서술한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K의 과거에 대한 회상 부분은 이번 사건에서 K의 위치에 대해 말해주지 않았다. 단지 진술서의 페이지를 늘리려는 얄팍한 수로 보였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K가 이번 사건과 관련한 법적 책임을 져야하는 위치에 있지 않다면 비난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K 스스로가 이번 사건을 계기로 과거를 돌아본 기록은 다른 사람은 공감할 수 없고 진위 여부를 따질 수 없는 그저 개인의 회상이었으니.일부에서는 진술서에 서술된 내용만으로도 K가 이번 사건의 전개와 결과에 대해 예측할 수 있었다는 주장을 했지만 그 주장은 반대측을 설득하지 못했다. 다만 진술서 끝부분, K가 그날 취한 이득으로 자신의 가족들과 함께 취했던 행동들에 대해서는 비난 받아 마땅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수사기관 대부분의 구성원이 동의했다. 하지만 도덕적인 비난이 법적 책임을 뜻하는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도덕적인 비난마저도 할 수 없다는 의견을 견지하는 일부의 구성원도 있었다.사실 K에 관한 것은 그저 지나갈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범죄자가 범행에 사용한 도구를 어디서 구했는지에 대한 객관적인 기술 몇 문장이면 충분한 것이었다. 문제를 확대시킨 것은 수사관 김이었다. 그는 범죄의 발생을 사전에 막았을 수 있는 몇 가지 단계에 대해서 깊이 고민했다. 그가 평소 일상의 모든 측면을 문장으로 나누어 기술하고 문장들 사이의 관계와 앞 문장이 뒤 문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반복적으로 사고 실험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아는 이라면 당연히 수사관 김은 그렇게 할 사람이라고 고개를 끄덕였겠지만 대부분의 동료들은 그가 하루를 마무리하며 노트에 정리하는 문장들을 보며 단순히 일기 같은 것이라 생각했고, 일기 같은 귀찮은 작업을 해내는 수사관 김을 좋게 보면 독특하고 나쁘게 보면 정상적이지 않은 별종이라 취급했기 때문에 수사관 김의 문제 제기에 대해 짜증을 냈다. 쉽게 말해 빨리 정리하고 다른 사건으로 넘어갈 수 있는 것을 이상한 놈이 이상한 방식으로 건드려 모호하고 덩치가 큰 사건, 상황으로 만들어 놓았다는 것이었다. 물론 수사기관 상부에서도 그렇게 생각했다면 수사관 김의 문제 제기는 없던 일, 존재하지 않았던 것으로 넘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수사기관 상부는 이 문제 제기에 흥미를 보였다. 수사관 김의 문제 제기에 대한 결론이 자신들의 평판과 행보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수사관 김이 문제 제기를 한 다음날 바로 어느 정도 입증되었는데 김과 친한 기자 한 명이 김의 문제 제기에 대한 기사를 썼고 무척 지루해 보이는 내용이었음에도 대중의 호응이 제법 있었다. 김이 제기한 문제는 댓글의 수와 공유의 횟수가 평소 범죄 기사의 서너 배를 넘었고, SNS상에서 주요한 토론 주제가 되었다. 토론의 제목은 이랬다.‘범죄행위에 사용된 도구의 제조 및 판매자의 법적, 도덕적 책임에 관하여.’인기 있는 토론 주제 순위를 매기는 한 사이트에서는 ‘K방산, 경제를 살리는 또 하나의 효자 종목, 어디까지 가능한가?’를 누르고 9위에 랭크되었다. 실수와 무능으로 관심을 받는 것이 아니라 신선한 문제 제기와 그 해결의 방향으로 관심을 받는다는 사실이 수사기관 상부의 의식과 의지를 고양시켰다. 수사기관 상부는 특별히 이 문제에 대한 팀을 구성했고 수사관 김을 전권을 가진 책임자로 지명했다. 김은 사전에 자신이 작성했던 노트를 팀원들과 공유했고 그것을 기반으로 수사를 진행했다.범죄의 발생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었던 몇 가지 단계에 대한 수사관 김의 기술은 아래와 같았다.1. 주차장에서 발생한 사건·세발자전거를 타던 아이를 시야에서 놓쳐버린 피해자의 실수와 그에 대한 A의 반응.2. 이후 발생한 A와 피해자 가족들 사이의 사소한(아파트 동 현관 입구에 자전거 따위의 물건을 놓아두는 것에서부터 잘못 배달된 택배의 소재를 따지는 것, 현관 청소를 한 물이 서로에게 흘러들어오는 등등) 다툼과 이를 둘러싼 이웃들의 자세.3. A가 아파트 동 현관 앞 잔디밭에 조성한 텃밭과 이에 대한 피해자 가족의 이의 제기, 관리사무소의 해결 방안과 그에 대한 A의 대응.4. A가 K의 가게로 와 얇고 뾰족한, 비교적 긴 칼을 요구했을 때 K의 판단과 행동.김은 각 번호의 문장 뒤에 볼펜으로 자신의 의견을 덧붙여 놓았다.1. 주차장에서 발생한 사건·세발자전거를 타던 아이를 시야에서 놓쳐버린 피해자의 실수와 그에 대한 A의 반응.-작은 그러나 위험했던 해프닝에 대한 당사자들 각각의 대응에 아쉬움이 많다. 그러나 이들은 이후 발생한 사건의 가해자와 피해자로 각각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감당한 것으로 판단한다.2. A와 피해자 가족들 사이의 사소한(아파트 동 현관 입구에 자전거 따위의 물건을 놓아두는 것에서부터 잘못 배달된 택배의 소재를 따지는 것, 현관 청소를 한 물이 서로에게 흘러들어오는 등등) 다툼과 이를 둘러싼 이웃들의 자세.-사소해 보이지만 당사자들의 감정의 악화를 불러일으킨 사안들이다. 여타의 정황과 이웃들의 진술을 종합할 때 이웃들은 그들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합리적인 중재를 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도 핵심은 당사자들인데 당사자 간 묵은 감정을 점진적 혹은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계기가 없었다는 것이 아쉽다. 그러나 당사자들이 아닌 이웃들에게 법적, 도덕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은 명확하다.3. A가 아파트 동 현관 앞 잔디밭에 조성한 텃밭과 이에 대한 피해자 가족의 이의 제기, 관리사무소의 해결 방안과 그에 대한 A의 대응.-당사자들, 특히 A의 분노발작을 유도한, 가해자로서 A를 있게 한 사건이다. 통념으로 보았을 때 이것은 전적으로 A의 잘못이다. 그러나 이의 제기를 당사자 중 한 쪽인 피해자가 했다는 점이 아쉽다. 피해자가 아닌 제3자 혹은 관리사무소에서 선제적인 제지, 혹은 해결 방안을 강구했다면 A의 분노가 피해자를 향하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역시 이것을 가해자가 아닌 누군가의 책임으로 돌릴 수는 없다.4. A가 K의 가게로 와 얇고 뾰족한, 비교적 긴 칼을 요구했을 때 K의 판단과 행동.-수사관이 보았을 때 이번 사건의 가장 결정적인 지점이다. K는 A와 피해자 사이에 있었던 저간의 상황을 모두 알고 있었다. 또한 K의 진술서를 참고하자면 K는 어렴풋이 혹은 명확하게 A의 의도에 대해 짐작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안이한 판단, 사적인 이해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범죄에 사용된 결정적인 도구를 A에게 제공했다. 판매를 거부했다거나 혹은 판매 후 피해자와 경찰에 연락을 취했더라면 끔찍한 결과를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K는 그러지 않았다. 심지어 판매 대금을 사용하여 자신의 가족과 여유로운 일상을 즐겼다. 도덕적인 책임은 당연히 면할 수 없으며 법적인 책임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검토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수사관 김의 확고한 의지에 의해 K는 주요한 조력자 혹은 방관자로 지목되었고 그에 따라 법적인 검토의 대상이 되어갔다. 다시 한 번 수사기관으로 불려가 이전에는 받지 않았던 심문 과정을 거쳤고 두 번째 진술서를 작성했다. 과거의 이야기는 쓰지 말 것과 이번 사건에 대해서만 기술할 것을 요구 받았고 K는 충실히 따랐다. 그는 자신의 무고함을 설명하게 위해 최선을 다했으나 김과 그의 논리에 따라 심문하는 수사관들의 추궁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물론 구속 수사까지는 이르지 않았다.김의 팀이 결론을 내고 K에 대한 기소 의견을 정리할 즈음 여론의 변화가 있었다. 조력자 혹은 방관자로서 K를 향했던 비난 여론은 주요 일간지 중 한 신문에 실린 사설-그렇다면 K방산은 칼이고 대한민국은 A인가, 미래 먹을거리 이렇게 날려버리나-이 나온 이후 방향을 바꿨다. 김강 소설가·내과의 ‘수사기관의 논리에 따른다면 지구 각지의 현실적, 잠재적 분쟁지역을 중심으로 판매 대상을 넓혀가고 있는, 가격과 성능 면에서 다른 나라를 압도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수출 효자 K방산은 전쟁으로 인한 살인과 피해의 조력자, 방관자가 되는 것이 아닌가? 도덕적인 잣대로 모든 문제를 바라본다면 죄인이 아닌 자가 어디 있단 말인가?-중략-별개의 문제라 말하지 말라. 이것은 우리 사회의 가치에 대한 문제다. 자영업자의 합법적 행위, 생계와 부의 축적을 위해 물건을 파는 행위는 우리 사회의 근본이 아닌가? 그 결과까지 책임지게 할 수는 없다. 그것은 자유대한을 부정하는 행위와 같다. 무리하고 부당한 수사를 멈추라’는 내용이었다. 이것은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수사기관 상부는 대통령실과 국회로부터 전화가 오기 전 이미 방침을 바꿨다. 그저 일개 범죄 수사로 생각했던 사안이 국가의 가치관에 대한 문제로 확대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런 관심은 자신들의 행보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결국 김의 수사팀은 해체되었다. 김이 끝까지 항변해 보았지만 조직 내의 결정을 바꾸지는 못했다. K는 혐의 없음이라는 통보를 받았고 수사기관 상부는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그날 K방산은 모 국가와 1조5천억 원 상당의 판매 계약을 했고 언론들은 일제히 대서특필을 했다. 정치권은 앞다투어 환영의 논평을 내어놓았고 사람들은 그저 무심했다.    끝 김강(52)은 소설가인 동시에 내과의사고, 포항에서 ‘도서출판 득수’를 운영하는 출판사 대표이기도 하다. 2017년 단편 ‘우리 아빠’로 심훈문학대상을 받으며 등단했고, 단편집 ‘우리 언젠가 화성에 가겠지만’ ‘소비노동조합’을 썼다. 지난해엔 장편 ‘그래스프 리플렉스’를 펴내 문단과 독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2024-06-18

전윤호의 기억 속의 고향 정선 방언시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전윤호 시인은 강원도 정선에서 출생했다. 1991년 현대문학에 시로 등단하여 작품 활동을 시작한다. 2002년 시와시학 젊은 시인상을 수상한 후 많은 작품을 발표하였다. 현대시인협회에서 간행한 방언시집 ‘요엄창큰비바리야냉바리야’(서정시학, 2007)에는 강원도 정선 방언으로 쓴 시‘마바리’를 발표하였다. “머이 우태 내게 사랑이란 건/ 마카 뺑때에 걸린 골낭구처럼/ 춥고 적적해서/ 단최 가까이하기 어렵드라/ 니는 당장에야 나가 좋다고/ 착착 달라붙지만/ 까마구 얼어 죽는 겨울이 지나면 / 갱물도 풀려 흘러가는 법/”(전윤호‘마바리’)와 같이 입에 착착 달라붙는 정선방언이 쏟아진다. ‘마바리(멍청이)’, ‘마이 우태(결국)’, ‘뺑때(절벽)’와 같은 방언 낱말의 맛깔은 강원도 사람이면 다들 머리 끄덕이며 발화하고 싶은 강원도 토박이말이다. 뿐만 아니라 “등신처럼 울어 쳐대는 나를 떠나”와 같은 구절에는 정선아리랑의 가락이 실려 있다. 그의 9번째 시집‘정선’에는 오직 시인의 고향인 정선만을 을 주제로 한 60여 편의 시가 고향을 노래하고 있다. 시인의 고향 정선에 대한 그리움과 추억과 사랑이 오롯하게 녹아 있다.시에서 방언이 힘을 발휘하는 이유는 고향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또한 시인을 비롯, 모든 이들이 꿈꾸는 이상향이요, 모두가 그리워하는 기억 속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지나간 시간과 공간의 교점에 남아있는 존재들은 이미 사라졌거나 아니면 희미한 기억 속에 묻혀버린다. 객체의 소멸과 함께 주체 역시 그리움을 남겨두고 사라지고 있다. 지난 시간과 공간의 기억을 호명하는 열쇠는 그 시공간에 유통하던 언어 곧 방언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 삶은 시간과 공간 속에 이루어지는 만남으로 구성되나 그 삶은 유한하다. 유한하기 때문에 인간들은 과거로 향한 시간과 공간에 대한 그리움과 향수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만난 사람들의 관계를 희미한 기억 속에서 꺼내고 반추하면서 영원히 간직하려 한다.전윤호 시인은 ‘고향’이라는 시로 시작해 ‘정선을 떠나며’라는 시로 마무리한다. 그 공간과 시간 속에 나누었던 기억들의 별빛이 바로 향토색 짙은 언어들이다. ‘아우라지, 곤드레, 아라리, 여량, 동강할미꽃, 정암사, 구절리, 운탄고도, 민둥산, 화암약수, 만항재, 정선시장, 용마소, 수리취떡, 용소’ 등 고향 주변의 장소와 사물과 음식들은 시인의 기억 속에 간직되었다가 시라는 배경으로, 그림으로, 냄새로 그대로 그려져 나온다. 전 시인의 문학의 산실은 바로 고향인 정선일 수밖에 없다고 할 수 있다.시인의 동료이자 선배인 최준 시인은 시집의 발문을 통해 “이 시집은 이별과 서러움과 같은 전통적인 정한(情恨)의 정서가 전편을 누비지만, 들풀처럼 무성한 그의 고향 사랑이 행간마다 절절하게 녹아들어 있다”고 평가했다.고향을 떠난다는 것은 더 넓은 장소로 그리고 다 빠른 시간성을 경험하는 것이다. 그럴수록 지난 시간 속에 잠겨 있는 고향의 전경은 더욱 그리워진다. 문명의 빛이 더디게 쪼이는 미명의 두메산골이지만 그 삶의 공간이 아름답게만 느껴지는 이유가 뭘까? 남이야 뭐라고 하든 ‘마바리’같이 일에만 죽자고 매달린 삶인 ‘일바보’이자 ‘밥장군’인 초부의 삶에 매달린 이유는 자유다. 세상의 끄나풀에 엮이지 않고 어느 누구가 관심을 두지 않아도 그냥 내버려둬도 오순도순 잘 살 이상향이다. “정선은 사람 수보다 산봉우리 수가 많은 곳”이라고 했지만 그곳은 귀한 사람이 제대로 대접받을 수 있는 공간이다. “영하 십칠 도의 아침/ 29억 톤짜리 악모에서 깨어/ 서리꽃 핀 산을 바라본다/ 123미터도 부족한가/ 평생을 가둬놓기엔 자갈과 모래로 다진 530미터 벽 아래/ 여전히 얼지 않는 저 거대한 슬픔/ 강으로 흘리는 눈물 천 리를 가는데/ 후회로 묶여 흔들리는 배 한 척/ 이제는 알겠다 사랑하는 사람이여/ 평생을 돌아오지 못한다 해도/ 슬픔도 깊으면 힘이 세진다.”(전윤호 ‘소양댐’) 고립된 정선의 경관 속에서는 외로우니까 더욱 슬퍼지고 슬퍼지니 더욱 힘이 세어진다는 역설의 시편들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전윤호 시인은 ‘슬픔도 깊으면 힘이 세진다’라는 시집을 출간하고 또 그 시집으로 제30회 조병화 문학상도 수상하였다.고향 정선을 떠나 대처인 춘천으로 떠난 시절에 쓴 시이다. 거주 장소의 이동은 추억어린 감성을 그 근원적인 장소로 쏠리게 한다.

2024-06-17

‘검은 새의 들녘’ 세르비아 민족 성지 코소보

불과 3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세기의 화약고라 불리던 발칸반도다. 그만큼 민족과 종교와 역사가 뒤엉킨 땅이란 뜻이다. 그 중심에 세르비아 민족주의가 있다. 특히 세르비아의 성지 코소보에 이민족이 나라를 세운다니? 세르비아로서는 절대로 묵과할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중세의 걸출한 영웅이자, 세르비아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를 이룬 스테판 듀산, 그는 지금의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마케도니아, 알바니아는 물론 코소보까지 넓은 영역을 지배하고 있었다. 1331년에는 발칸을 넘어 유럽 전역의 강자로 거듭났다. 후세 역사가들은 스테판 듀산 앞에 ‘강자(强者)’라는 별칭을 붙여 이미지를 상승시켰다.듀산의 공포에 동로마 비잔티움제국은 호시탐탐 발칸반도를 노리고 있던 오스만제국에 SOS를 타전하고 말았다. 이 잘못된 판단이 세르비아 네만야 왕조의 멸망과 함께 천년을 이어오던 비잔티움제국의 종말을 앞당기게 된다. 오스만으로선 기다렸던 바였다.1386년에 불가리아를 함락한 이슬람은 1389년 6월 28일, 오늘날 세르비아 민족 성지인 ‘검은 새의 들녘’으로 불리는 코소보 대평원에서 세르비아 군대와 마주했다. 세르비아 수호신이자 성자 성 비투스의 날,(1914년 가브릴로 프린치프가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를 암살한 그날도 성 비투스의 날이었다) 운명을 건 결전이 시작된다.세르비아 군을 중심으로 자칭 십자연합군 10만, 오스만 6만이 진을 쳤다. 세르비아 농민들까지 동원된, 그야말로 세르비아인의 신화가 탄생하는 역사적인 날이 시작된 것이다.세르비아에서는 라자르가 선두에서 지휘를 맡았다. 오스만은 중앙군에 무라트 1세가 지휘봉을 휘둘렀고, 오른쪽에는 큰아들이자 ‘번개왕’으로 등극하는 바예지드가, 왼쪽 날개는 작은아들 야쿠브가 지휘했다.라자르 신호와 함께 세르비아군 선공으로 전투가 시작되었다. 이렇게 시작된 전투는 밀고 밀리기를 반복하며 꼬박 하루를 넘기며 이어졌다. 세르비아 역사상 이토록 치열하게 전개된 전투는 일찍이 없었다. 점차 세르비아 왼쪽 진영이 무너지면서 전세가 이슬람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세르비아군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러나 역부족이었다. 세르비아군 최후의 한 명까지 영웅적인 죽음을 맞았고 오스만튀르크제국이 승리했다. 그러나 이 전투에서 오스만 무라트 1세도 목숨을 잃어야 했다. 후세에 와서 이 전투가 세르비아 민족주의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사건으로, 세르비아인 가슴에 화석처럼 각인된다. 누구의 도움 없이 발칸반도에서 이슬람 제국에 마지막까지, 최후의 일인까지 항전했던 역사적 사실은 전무후무했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세르비아의 영원한 영웅 밀로슈 오빌리치의 신화가 탄생되면서 세르비아인 가슴을 덥혔다. 세르비아 선봉대장 오빌리치는 짐짓 거짓 항복을 해 무라트 1세의 환심을 산다. 그리고 품속에 무기를 숨기고 들어가 무라트 1세의 가슴에 칼을 꽂아 넣는데 성공하고, 그 역시 오스만 군사들에 의해 장렬하게 죽음을 맞는다. 그러나 진실은 무라트 1세가 전장을 돌아보다 전사자 속에 누워있던 오빌리치가 일어나 심장에 칼을 꽂았다는 것이 팩트다.아들 바예지드는 군사를 물리기는커녕 슬픔을 뒤로 한 채 아버지의 복수를 다짐하고 전술을 가다듬었다. 결국 농민군까지 끌어모아 항전했던 라자르는 바예지드에게 사로잡히는 몸이 되고 만다. 바예지드는 라자르의 목을 자르며 하늘을 향해 울부짖었다.그리고 1453년 메메트 2세에 의해 비잔티움제국마저 멸망하면서 발칸반도는 무려 400년 동안 오스만트루크제국 압제 아래 들어가야 했다. ‘검은 새의 들녘-코소보 전투’는 ‘코소보의 처녀’라는 또 하나의 사연을 탄생시켰다.“오 불쌍한 이여, 악마가 그대의 운명이구려! 불쌍한 당신이 푸른 소나무를 잡는다면 그 마저 시들어 버릴 것이니!”세르비아 사람들은 오스만제국의 압제 아래서 이 노래를 부르며 살았다. 가슴에는 의기가 충만하고, 민족혼이 가슴을 쿵쿵 쳤다. 그렇게 코소보는 세르비아인 민족의 성지로 굳어지고 있었다.훗날 세르비아 희대의 살인마 밀로셰비치가 길들인 민간 무장단체 ‘아르칸의 호랑이’에 의해 코소보는 20세기 가장 추악한 전쟁터로 변했다. 자신들이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던 민족의 성지 ‘검은새의 들녘’에 알바니아 무슬림들이 몰려와 살면서 나라를 세우겠다니? 어쩌면 세르비아로서는 도무지 묵과할 수 없는 사연인지도 모른다.그러나 6세기 이전 로마제국의 발칸반도 진출에 끝까지 애를 먹였던 민족, 마지막까지 로마제국과 발칸반도에서 전쟁을 이어갔던 민족이 알바니아 조상 격인 일리리안이었다.돌고 도는 것이 역사다. 어느 한 부분을 뚝 잘라 내 것이라 주장한다면, 폭력에서 영원히 자유로울 수 없다. 고구려 광개토대왕이 호령했던 땅이 대한민국의 영토라고 주장한다면 중국과의 전쟁을 피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스토리텔링 작가

2024-0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