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오피니언

새벽 외에 문장들

배문경 수필가 오징어의 한계선이 자꾸 서해안으로 올라간다. 위로 올라가는 그만큼 점점 몸값이 비싸지기도 했다. 그래서 새벽시장이다. 조금이라도 지출을 줄이기 위한 몸부림이다.시장으로 들어서니 경매인의 손으로 건너온 문어가 큰 다라이에서 미끄럼을 탄다. 작은놈 큰 놈 할 것 없이 지구인과는 다른 종처럼 보인다. 그런 얼굴로 제사상에 늘 올라앉는 품목이다. 집안 큰일에 삶아서 올리면 다리 한 부분 둥글게 쩍쩍 달라붙는 문어야말로 비싸지만 제대로 몸값을 한다. 이제 시가에 팔린 문어는 커다란 솥으로 직행해서 삶겨 또 갈고리에 걸릴 것이다. 문어가 첫 문장을 쓴다.활어야말로 시장의 생동감을 그대로 느끼게 한다. 물속에서 제대로 날고뛰던 놈들이 죽은 듯이 엎드리지 않는다. 지느러미와 꼬리로 한 번씩 물을 쳐올리며 퍼덕이던 삶의 막장을 쓴다.늘 동사, 의태어였던 그들은 머지않은 시간 시퍼런 바닷물에서 유영하던 것들이 좁은 수족관에 갇혀 삶의 종착역에 다다른다. 뜰채에 의해 무게가 결정되면 아낌없이 아줌마들의 날렵한 칼날 앞에 앞뒷면이 해체된다. 바다의 향기는 순식간에 한 점의 젓가락에 잡혀 올라가고 시퍼런 꿈들은 이미 사라진 후다. 흥정으로 철썩철썩 바다 향기가 진하게 두 번째 줄을 칠한다.아무리 싸도 갈치는 갈치다. 은비늘 반짝이며 미끈한 몸매를 과시하는 생선 앞에서 아낙들은 쉬 지갑을 열지 못한다. 아이 손바닥만 하게 동강 내서 굽거나 찌지면 그 맛이 비린내로 등천해도 어떤 맛인지 안다. 바다낚시로 잡힌 갈치의 은비늘은 한 톨의 구김 없이 빛을 발한다. 한두 바퀴 돌다 제일 값이 맞는 곳이라야 흥정에 값 치르고 대가리를 떼고 유영하던 지느러미를 과감히 날리고 긴 꼬리까지 길이에 맞게 자른다. 노릇노릇 식탁에서 밥값 톡톡히 할 갈치가 장바구니에 담기며 중심 문장을 쓴다.전복 한 마리를 넣고 라면을 끓여 대박이 난 식당이 있다. 전복이 갖는 위력이다. 병약해진 가족을 위해 접착력 강한 삶의 이면으로 강하게 붙어있는 전복을 크기에 맞게 그날 시세로 팔려나간다. 죽을 끓여도 좋고 해물탕에 넣어도 좋다. 전복불고기는 말해 무엇하랴. 담백하고 졸깃졸깃한 맛 또한 일품이다. 어디에 내놓아도 그 이름값을 한다. 큰 놈을 사겠다고 줄 서는 사람들은 원기 회복하고 열심히 살아갈 사람들이다. 전복에게는 바다와 해초 향이 그득 담겨 바다 속의 풍경을 연상케 한다. 바다의 은유다.어시장 한 켠에는 얇게 저며진 독특한 향의 고래고기가 입맛을 다시게 한다. 포경선이 사라지고 사람들은 쳐둔 거물에 걸려 올라오는 밍크고래를 끌어올려 수육을 팔아 나갔다. 소금장에 찍어 먹으며 소주 한잔을 걸치는 사람들의 얼굴이 밝다.옛 고향 마을에도 오일장이 서면 좌판에 펼쳐둔 고래고기는 특미였다. 사내들은 기름이 가득한 고기를 씹으며 소주에 취해 파장쯤에는 인사불성이 되곤 했다. 그러나 우리 집 밥상에는 고래는 오늘도 건너뛴다. 식구 많은 우리 집 밥상에 값나가는 고래는 사족이다.한 무더기씩 쌓인 고동이며 새우며 뼈 없는 종족들이 모여 있다. 싱싱한 고동을 삶아 이쑤시개로 마지막 내장까지 꺼내 초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맛나다. 먼 바다를 향해 둥글게 말아 감은 고동의 소리가 한껏 고조된다. 옆에 잔 새우는 볶거나 국물 내기에 더없이 좋고 큰 새우는 튀김에서 단연 최고다. 껍질을 까고 이곳저곳 다양하게 새우를 넣으면 품격이 높아진다. 탄력 있는 새우가 오늘 좌판에서 수염을 길게 늘어뜨리고 지나는 이를 향해 아련한 눈길을 보낸다. 접속사 같은 녀석들을 한 방구리씩 주워 담아 시장을 나선다.새벽을 걷어낸 햇살의 팔다리가 길게 발치에 뻗친다. 장바구니에 담긴 바다가 식기 전에 집으로 달려간다.후다닥 저미고 굽고 졸이고 튀겨낸 수필 한 상 차려 가족들의 배를 든든히 채워 세상으로 내보낸다. 오늘 하루를 무사히 건너가라 등을 떠민다. 현관에 가족들이 벗어둔 관용어를 쓸어 담아 수납장에 포갠다. 또 찾아올 새벽을 위해.

2024-06-12

이명박 전 대통령 방문을 포항 발전의 계기로

공원식 포항지역발전협의회장 지난달 16일 이명박 전 대통령이 고향인 포항을 방문했다. 이 전 대통령은 고향마을 방문에 이어 지역 경제인들과의 오찬 간담회도 가졌다. 오찬에 앞서 지역경제인들로부터 포항영일신항만 개항 등에 따른 감사패를 받았다.이 전 대통령은 지역민들과 만난 자리에서 포항은 그동안 많이 발전했지만, 의과대학과 종합병원이 들어서야 더 발전할 것이라고 했다.최근 포항시와 정치권에서도 연구중심의과대학을 유치하기 위해 시민 서명운동 등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그동안 포스텍, 산기연, 테크노파크, 지능로봇연구소, 제3세대가속기 등 바이오산업의 기반을 다져 왔다.이 전 대통령 재임 당시 규모가 축소된 영일만항 건설 사업은 여객선부두가 있는 15선석으로 확대되고, 영일만항 인입도로 및 철도, 국제 컨테이너 부두 조성 등 영일만항 산업단지의 인프라가 크게 개선됐다.더욱이 대부분 국가산업단지 조성이 취소되는 시점에서 300만평 규모의 포항블루밸리 국가산업단지와 포항융합기술산업지구(경제자유구역), 영일만3·4산업단지를 조성했다.이뿐만 아니라 KTX포항직결노선 신설, 포항삼척간 고속도로, 포항울산간 고속도로, 포항울산간 광역전철복선화, 울산삼척간 동해중부선철도 건설 등 포항의 장래를 위한 대형 프로젝트들이 대거 성사됐다.특히 세계 3번째로 구축된 꿈의 기술이라 불리는 방사광가속기는 포스텍이 연구중심대학으로 자리를 매김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 한미사이언스, 세포막연구소, 지능로봇 연구 인프라 등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바이오산업을 꿈꾸는데도 결정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그동안 포항은 철강산업으로 먹고살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철강산업이 지난 10여 년 간 성장이 둔화되는 가운데 블루밸리 국가산업 단지와 영일만 3, 4단지를 토대로 이차전지 특화단지가 지정됐고, 이를 통해 제2의 영일만기적을 준비하고 있다. 여기에 포항시의 역점사업인 바이오산업은 더욱 부가가치가 높아 모든 자치단체의 선망의 대상이다. 포스텍에 연구중심 의과대학을 유치토록 하고 있는 것은 연구중심 의과대학이 바이오산업의 구심체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소위 국가나 자치단체를 만들고 이를 제도화해 좀 더 나은 삶을 기원한다. 지방자치는 그 지역이 갖고 있는 특성과 차별화된 전략이 핵심이라 할 것이다.굳이 국가가 직접 할 수 있는 것을 자치화하는 것은 풀뿌리 민주주의의 실천의 장이기도 하지만 그 단체의 특징을 차별화해서 좀 더 나은 주민들의 공공복리를 추구하는데 그 의미가 있다.국가나 자치단체에는 독자적인 권능이 부여되어 있다. 지도자의 역량에 따라 발전이 달라지기도 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우리 포항이 낳은 세계적 지도자였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고향 방문을 계기로 포항이 낳은 훌륭한 지도자들과 시민들이 함께 힘을 모아 포항 발전의 전기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2024-06-11

철강업의 빛과 그림자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옛부터 철을 생산하는 나라가 강한 나라가 되었고 ‘철은 국가’라 일컬어지기도 했다. 철은 인간 생활의 기초인 동시에 국가 방위, 침략의 기반이기도 하고 우주산업과 로켓 개발 등 미래 경제의 뿌리로서 개량된 강재로 산업구조 생태계의 주춧돌 역할을 한다. 경제 강국 독일, 일본은 19세기부터 제철업이 시작되었고 앞선 철의 기술로 1, 2차 세계 전쟁을 주도하는 국가가 되기도 했다. 모든 움직이는 생명체는 생물이다. 생물은 수명 사이클이 있게 마련이다. 철강업에도 대내외 변화에 따라 성장과 쇠락의 길을 걷게 되는 데 경영자의 인식 오류가 판단 오류를 낳아 베들레헴 제철소처럼 기업을 멈추게도 한다.일본 철강산업을 보면, 경제성장과 함께 1960~70년대 고도 성장기를 거쳐 연간 1억2000만t 생산하던 시절이 있었다. 1980년대 일본 경제는 여전히 강세였지만 한국, 중국 등 신흥 철강 생산국들의 부상으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둔화되기 시작했고 1990년대 들어 거품 경제 붕괴 후 장기적인 경기침체기에 빠지면서 철강업도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2002년 10월 일본 철강사 3, 4위였던 가와사키와 NKK를 합병하여 JFE가 탄생하고, 2012년에는 1, 2위였던 신일본제철과 스미토모 금속의 합병으로 지금의 일본제철이 탄생하기에 이르고 최근에는 US스틸을 합병한다. 생존하기 위해 규모의 경쟁력을 확보하고 기술혁신과 고급강 생산으로 미래를 대비해가고 있다.최근 일본 철강 동향을 보면, 동경 건물들이 50년 넘어 리모델링 하는 시기가 왔고 강재 수요량이 800조엔 규모로 예측되고, 전체 제철소 투자대비 수익성을 고려했을 때 전략적 규모로 8500만t 생산체제를 만들어 가고 있다고 한다. 일본 철강업의 흥망성쇠를 지켜보며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 우리는 어떻게 상황분석하고 지속가능 경영과 생존을 위해 대비할 것인지 혁신관점에서 생각해 본다.기업의 혁신은 생산, 조직 및 인사, 마케팅, RD, IT 기술 등 다양하지만 근간이 되는 것은 제조 혁신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제철업에서는 거대 장치산업으로서 좋은 제품, 원가 경쟁력을 확보하는 길은 생산, 품질의 70% 영향을 미치는 설비를 안정화시키고 고급강 생산조건을 확보해가는 것이다.필자가 10여 년째 컨설팅 하고 있는 포스코는 안전관리에서 제조 조건의 근간인 설비 경쟁력 갖추기에 초점을 두고 구체적인 방안을 모색해 나가고 있다. 설비 수명사이클은 전문가 진단을 통해 예측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개선을 통해 설비 수명을 늘리고 고급강 생산 조건을 확보해 가는 일과 설비를 움직이는 운전원이 설비 속까지 알고 조업하는 것이다.‘아는 만큼 보이고 경험한 만큼 능력을 발휘한다’라고 했듯이 내가 다루는 설비의 구조와 작동원리, 정상 조건, 고장 이력 등을 학습하여 예지 조업이 가능하게 해나가면 장애를 줄이고 생산성을 높여 갈 수 있다. 제조 경쟁력과 기업 수명은 경영자의 인식, 최적의 설비 조건과 작업자의 설비를 아는 수준에서 가름 된다.

2024-06-11

별빛 같은 선율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아침부터 숲에서 들려오던 새소리가 저녁 때 무논에는 개구리 울음소리로 왁자하다. 논배미 여기저기서 개굴개굴하다가 멀거나 가까이서 쉴 새 없이 왕왕거리니, 자연의 합창이 따로 없을 정도다. 모처럼 교외로 가서 듣게 되는 개구리 울음소리는 청아하고 정겨울 것 같은데, 논 가까이에 사는 시골사람들에게는 매일같이 귓전을 맴돌며 요란하게 자극하니 혼절할 듯한(?) 소음으로 여길 정도라 한다.어설픈 듯 줄기차게 외쳐대는 개구리 울음소리가 서막으로 깔리고 서녘 하늘에 노을이 필 무렵, 청하지역의 어느 마당 넓은 집에서는 삼삼오오 마실 가듯이 이웃집의 사람들이 모여들어 만찬을 즐기고 있었다. 이윽고 박모(薄暮)의 하늘에 한, 두 점 별빛이 뜨고 서늘한 바람 결에 악기의 연주음이 울리며 감미로운 노래의 가락이 흐르기 시작했다. 환호 속에 손뼉 치고 기타 치며 노래하니, 흥겨움이 절로 일고 어깨가 들썩이며 신명나는 음악의 향연이 막을 올린 것이다.‘바람 따라 마음 따라 선율 따라 별빛 따라/음악이 피어나고 시가 흐르는 밤/흥겹게 어울리니 도탑고 넉넉하여/지나가던 바람도 설레어 멈춰 서고/별빛마저 서둘러 마당에 내려앉네//더불어 함께 하니 정겹고 아름다워라//마실 가듯 이웃과 소통하며 오고 가고/만나고 나누고 베푸는 인정 속에/잔잔하고 멋스럽게 하모니가 이뤄져/공감의 종이 울리고/상생의 화음이 청하벌에 울려 퍼지네’ -졸시 ‘마음 따라 선율 따라’중이러한 선율이 흐르는 정경은 ‘맑고 푸른 청하’ 고을의 언덕배기 한 켠에 10여 년째 터를 잡고 보금자리를 일궈가는 어느 지인의 잔디마당에서 지난 주 열린 ‘이레정(庭) 네번째 별빛음악제’의 한 부분이다. 즉, 청하읍내와 들판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의 집에서 별빛이 내려앉는 초여름날 초저녁에 ‘청하로 220번길’ 주민들과 지인들을 집으로 초대해 간단한 음식을 대접하고, 음악과 시낭송 등으로 문화적인 소통을 하며 어울림의 시간을 함께 보내는 작은 음악회인 셈이다.이러한 음악회의 출연진은 대부분 가족이나 친구·이웃주민·동료 등으로, 자율적인 참여와 재능기부로 함께 만들어가는 음악회 콘서트를 스스로 즐기고 누리면서 참석자들에게 즐거움과 문화향유의 기회를 제공하는 컨셉으로 지난 2019년부터 거의 매년 열리고 있다. 특히 올해는 음악회 타이틀을 마당에서 즉석 서예 퍼포먼스로 펼치면서 붓으로 멋스럽게 썼는가 하면, 해녀를 주제로 해녀복장과 망사리 등의 물질 소품을 활용한 시극공연과 애절한 듯 구성지게 노래한 시창(詩唱)까지 더하면서 한결 다채롭고 흥미롭게 열려 갈채와 눈길을 끌었다.한적한 청하지역의 주민들과 어우러져 음악과 시를 나누는 문화적인 프로그램으로 일상에 지친 마음을 위로하고 치유하며, 이웃과 하나되는 만남의 정을 다독일 수 있어서 참으로 고무적인 일로 여겨진다. 도시화와 급속한 정보화로 점차 개인화, 고립화돼가는 현대인의 가슴에 별빛이 흐르고 문화예술의 향기를 피어나게 한다면 한결 정서적인 위안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음악과 시의 선율로 밤하늘의 초롱초롱한 별빛을 가슴 속에 스며들도록 하는 별빛음악제가 청하의 새로운 문화콘텐츠로 자리매김해 끊임없이 빛나고 이어지기를 내심 기대해본다.

2024-06-11

민주당의 ‘입법독재’에 맞설 세력은 民心뿐

민주당이 그저께(10일) 여당이 불참한 가운데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운영위·법사위를 비롯한 18개 상임위원회 중 11개 위원회 위원장을 자기 당 의원으로 선출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우원식 국회의장이 여당의원 108명을 18개 상임위 위원으로 강제 배정하고 본회의를 진행하자 전원 상임위원 사임계를 내고 본회의에 불참했다. 야당이 국회의장에 이어 운영위·법사위 위원장을 독식한 것은 헌정 사상 처음이다. 국회관례상 제1당은 국회의장, 2당은 법사위원장을 맡아왔고 운영위원장은 의석수에 관계없이 여당 몫이었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본회의 직전 ‘법사위원장을 여당에 주면 운영위·과방위 위원장을 포기하겠다’는 협상안을 민주당에 제안했지만 거절당했다고 한다. 추 원내대표로선 엄청난 굴욕감을 느꼈을 것으로 짐작된다. 민주당이 그동안 필수 상임위로 강조했던 법사위원장과 운영위원장, 과방위원장을 비롯해 지역 예산이나 사업을 확보하는 데 유리한 국토위·문화체육위·교육위 위원장 등 ‘알짜 상임위’ 위원장은 모두 민주당이 차지했다.민주당은 나머지 상임위원장 7자리도 이번 주 중 선출한다. 그러나 국민의힘이 모든 상임위 활동을 전면 거부할 방침이어서, 민주당이 18개 상임위원장 모두를 싹쓸이할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은 원 구성 후 곧바로 ‘채상병 특검법’과 ‘김건희 특검법’, ‘이화영 특검법’ 등을 통과시키고, 상임위 차원의 청문회와 국정조사로 윤석열 정부에 대한 전방위 공세를 진행한다는 계획이다.국회가 완전히 ‘민주당 세상’이 됐다. 여당에 비판적인 유승민 전 의원조차 “총선에 압승한 민주당이 ‘이재명 유신독재’로 타락하고 있다”고 언급할 정도다. 여당으로선 민주당이 어떤 무리한 입법권을 행사하든 대응할 수단이 거의 없다. 국민의힘 초선의원들의 경우 22대 국회 본회의가 2차례 열렸지만, 아직 본회의장에 들어가지도 못했다. 본회의가 열릴 때마다 회의장 밖에서 규탄대회를 열었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입법독재에 맞설 세력은 이제 ‘민심’뿐이다.

2024-06-11

염치없는 세상

우정구 논설위원 염치(廉恥)란 체면을 차릴 줄 알고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다.사람으로서 누구나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어야 하는 마음의 자세를 이르는 말이다. 우리는 상대에게 정중히 부탁을 할 때 염치불고(廉恥不顧)라는 표현을 쓰는데, 이는 염치를 돌아보지 않고 부탁을 드린다는 뜻이다.염치가 없는 상태를 몰염치(沒廉恥) 또는 파렴치(破廉恥)라 부른다. 후안무치(厚顔無恥)는 낯가죽이 두꺼워 뻔뻔하고 부끄러움이 없다는 말이다. ‘염치 있는 척하다’의 축약된 말은 얌체다.관포지교(管鮑之交)의 주인공인 관중(管仲)은 나라를 버티게 하는 네 가지 덕목으로 예의염치(禮義廉恥)를 들었다. 그는 예의염치 중 하나가 없으면 나라가 기울고, 둘이 없으면 위태롭게 되고, 셋이 없으면 뒤집어 진다고 했다. 또 모두가 없으면 나라는 파멸하게 된다고 말했다.춘추전국시대 순자는 염치없는 자는 엄히 다스려야 하며 “염치 모르는 사람은 음식만 축내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고대부터 염치는 사람의 됨됨이를 판단하는 기준이었음을 알 수 있다.우리는 흔히 부끄러워서 대할 낯이 없을 때 ‘얼굴과 눈이 없다’는 뜻의 “면목 없다”는 말을 쓴다. 염치와 같이 사람이 남에게 폐를 끼치게 됐을 때는 부끄러워하고 미안해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기본이라는 뜻이다.우리 정치에서 염치가 사라지고 있다. 정치는 국민을 위한 것인데 정작 국민에 대한 염치는 없고 정치인 스스로를 위한 목소리만 요란하다.우리 사회가 염치없는 세상으로 바뀌어가는 게 하나 둘이 아니다. 정치의 영향이 크다. 의사들의 집단 휴진 선언 또한 집단이기주의에 빠진 염치없는 행태의 다름 아니다. /우정구(논설위원)

2024-06-11

3권분립 뒤흔드는 ‘여의도 권력’

심충택 논설위원 포항 앞바다 가스·유전 개발을 위한 시추가 민주당에 의해 제동이 걸렸다. 국회 동의 없는 시추예산 집행이 절대 불가하다는 게 민주당 주장이다. 이를 놓고 한 여당 의원은 “국민 1인당 25만 원씩 나눠주는 돈으로 시추 130번을 할 수 있다”고 비꼬았다. 민주당은 “20% 성공률은 액트지오의 주장일 뿐”이라며, 정부자료를 검토한 뒤 투입 예산의 적절성 여부를 판단하겠다고 했다. 미국 액트지오사의 아브레우 대표는 “유전 가능성은 국가의 큰 경사인데, 한국처럼 논쟁이 뜨거운 것은 처음 본다”고 한탄했다.우리나라가 ‘산유국’이 될 수 있는 확률이 20%가 된다는 것은 축배를 들어야 할 일이다. 특히 포항을 비롯한 대구·경북 지역민들은 영일만 근해에서 ‘유전 대박’이 터지길 학수고대하고 있다. 그런데 유독 민주당만은 액티지오사에 대한 의혹을 확산시키며 윤석열 정부의 유전 개발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정쟁’ 앞에선 국익도 걸림돌이 되는 모양이다.국회권력을 장악한 민주당은 최근 민주주의의 근간인 ‘3권분립’을 위협하는 행위를 서슴없이 하고 있다. 전직 검사장 출신들이 주도하는 각종 특검법안을 만들어 행정부는 물론 사법부까지 뒤흔들고 있다. 이제는 ‘판사탄핵’을 언급하는 단계까지 왔다.민주당은 행정부 장악을 위해 22대 국회 개원과 동시에 ‘채상병 특검법’과 ‘김건희 종합 특검법’을 발의했다. 행정부 수반인 윤 대통령과 영부인의 사법처리를 정조준하고 있는 법이다. 채상병 특검법은 대통령 격노설·이종섭 전 장관의 출국 과정·대통령실 직무 유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김건희 특검법에서는 민주당 입맛대로 검사와 판사를 임명해 수사·재판을 하겠다는 것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민주당은 이와함께 쌍방울그룹의 불법 대북송금에 관여한 혐의로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1심에서 중형을 선고받자, “검찰의 조작 수사”라며 ‘대북송금 관련 검찰 조작 특검법’ 처리를 당론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만약 윤 대통령이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하면 관련 검사들의 탄핵소추를 추진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한다.민주당은 행정·입법·사법부에 이어 ‘제4부’로 불리는 언론장악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김홍일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한 탄핵을 추진하는 것이 주요 사례다. 만약 탄핵소추가 이루어지면 김 위원장은 헌법재판소 결정이 내려질 때까지 직무가 정지되며, 방통위는 의사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사실상 식물 상태가 된다.민주당은 KBS·MBC·EBS 등 공영방송 사장과 이사회 이사진 추천권을 친야 성향 단체로 대폭 확대하는 내용의 ‘방송 3법’도 추진하고 있다.이번 국회에서는 두 번의 큰 선거를 치르게 된다. 2026년에 지방선거, 2027년에 대선이 있다. 민주당이 가속페달을 밟는 특검정국에 선거까지 겹치게 되면 정쟁은 더욱 격화될 것이다. 민주당은 ‘총선승리의 민의’를 정권타도나 대통령 탄핵으로 오해해선 안 된다. 국가적 과제인 민생을 외면하고 3권분립까지 뒤흔드는 입법권력에 집착하면 반드시 민심의 역풍을 맞게 된다.

2024-06-11

대구 보행자 우선도로 효과성, 정책 반영해야

도로교통공단 발표에 의하면 대구의 교통안전지수는 전국 평균에 미달한다. 2023년 기준 전국 평균은 78.68이나 대구는 76.67이다. 전국 특·광역시 중 최하위권이다. 2022년 기준 인구 10만명당 교통사고 건수는 광주에 이어 가장 높다.그러나 교통사고 사망자는 2015년 이후 꾸준히 줄고 있다. 2015년 158명이던 교통사고 사망자가 2023년에는 66명으로 절반 이하로 줄었다. 특히 어린이 교통사고 사망자는 2018년 이후 6년간 한 명도 없다. 이는 대구시가 2016년부터 추진한 교통사고 30% 줄이기 특별대책의 결과로 풀이된다. 전체적으로 대구는 교통사고 사망자는 줄고, 교통사고로 인한 인적·물적 피해는 여전히 많다최근 대구시가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보행자의 통행 우선권이 보장되는 보행자 우선도로에서의 사고가 31%나 준 것으로 나타났다. 보행자 우선도로는 차도와 보도가 분리되지 않은 도로로 이곳에서는 보행자의 안전을 위해 보행자 통행이 차량통행보다 우선되는 곳이다. 보행자가 도로 전부분을 보행할 수 있고, 운전자는 보행자와 안전거리를 유지하고 보행자의 통행에 방해가 될 경우 서행하거나 일시 정지해야 한다.대구에는 모두 10군데의 보행자 우선도로가 있다. 대구시는 보행자 우선도로에 대해서는 사업비를 투입해 도로포장과 과속방지 시설, 표지판 등을 새롭게 설치해 운전자의 경각심을 높이고 있다.교통사고 발생은 관계당국의 노력과 운전자의 안전의식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 교통시설의 개보수와 교통안전에 대한 지속적인 홍보가 필요하다. 보행자 우선도로에서의 사고율 격감을 교훈 삼아 현재 추진하는 교통사고 줄이기 캠페인을 지속하고 안전한 도로를 위한 당국의 세밀한 정책도 지속 마련돼야 한다.교통사고가 많으면 사회적 비용이 늘어 시민들 개개인의 부담도 증가할 수 밖에 없다. 보행자 우선도로에서 확인했듯이 교통사고는 노력한 만큼 효과가 나온다. 대구가 전국 최고의 교통안전도시로 거듭나게 당국의 대책과 시민들의 교통의식이 높아져야겠다.

2024-06-11

세계라는 말의 의미

‘오키쿠와 세계’ 포스터. 임진왜란에서 패배한 일본은 막강한 권력이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죽음과 함께 혼란의 정국으로 빠져든다.이 시기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지금의 도쿄인 에도를 본거지로 에도 막부를 설립하고 일본의 최고 권력자로 떠오른다. 수많은 정적을 숙청하고, 지방의 영주격인 다이묘와의 적대와 친화 속에서 최고 권력자인 쇼군에 오르게 되면서 마침내 에도 막부는 안정을 취하게 된다. 이후 1603년부터 1868년까지 약 250여 년 동안 평화와 안정의 시기를 거친다. 해외 무역 장려와 함께 농업생산력을 끌어올리고, 상업을 장려하면서 세계적인 경제 수준을 보이며 호황을 누리게 된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극심한 빈부격차로 인해 나라는 부강했지만 평민들의 생활수준은 가혹한 세금으로 인해 열악한 수준이었다. 에도시대 말기에 이르면 그간 축적되었던 내부의 갈등과 구체제에 대한 도전이 파열음을 일으키고 근대화의 바람을 타고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하는 의지의 기운이 밖으로부터, 위에서부터 일어나기 시작한다. 이렇게 새로운 세계가 충돌을 예고하는 에도 막부 말기의 1858년, ‘서장 : 에도의 똥은 어디로?’라는 소제목으로 영화 ‘오키쿠의 세계’는 시작된다. 영화는 똥 얘기로 가득 차 있다. 에도를 돌며 똥을 퍼와 채소밭 농부에게 거름으로 파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두 청년 야스케와 츄지, 몰락한 사무라이 가문의 외동딸 오키쿠와의 이야기다. 비천하고 비루한 직업의 두 청년과 오키쿠는 똥으로 엮이게 되고 똥 같은 상황과 똥 같은 세상을 살아간다.절간의 화장실에서 똥을 푸는 모습에서 시작해 영화는 시종일관 공동주택의 변소와 똥을 퍼다 나르는 모습과 그것을 밭에다 뿌리는 일과 그것을 손으로 만지고 뒤집어 쓰는 장면들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불쾌할 수도 있는 장면에서 활력과 싱그러움이 일어난다. 가장 낮은 곳에서 냄새와 파리가 들끓는 그곳, 한 평의 변소라는 협소한 세계 속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세 청년들의 만남이 이루어지면서 또 다른 세계에 가닿는다.“세계라는 말을 아나. 이 하늘 끝이 어딘지 아나. 끝 같은 건 없어. 그게 세계지.” 결전을 앞둔 사무라이 오키쿠의 아버지가 공동변소에서 볼 일을 보며 똥을 푸러 온 츄지한테 하는 말이다. 똥과 엮인 세계는 가난과 차별, 폭력과 죽음이 만연한 19세기다. 이러한 세계 속에서 순수하고 소박한 감정들이 일어난다. “요새 나라가 어수선한 건 그걸 이제 알아서야.” 혼란한 세상 속에서, 곧이어 닥칠 격동의 시대, 광활한 세계 속에서 어김없이 똥을 거름으로 삼아 피어나는 채소들처럼 청춘의 마음들이 싹튼다.“사랑하는 여자가 생기면 이 세계에서 당신이 제일 좋다고 말해줘. 그보다 더 좋은 말은 없어. 그게 제일 좋은 말이야.” 하나의 세계가 닫히고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시기. 19세기는 내가 알던 세계보다 더 큰 세계가 물리적으로 존재함을 알게 되는 시기며, 나를 둘러싼 세계관이 파열음을 일으키며 새로운 세계관이 밀려드는 시기다. 경계지점에서 변화의 시기에도 흔들림없이 이어지는 것들의 자잘한 요소들이 영화의 행간을 메워 나간다. 말을 할 수 없는 여자와 글을 읽고 쓸 줄 모르는 남자의 사랑 고백이 위와 같을 때 그 표현은 처절하다. 그리고 때마침 눈이 내리고 온통 하얗게 쌓일 때까지 고백은 이어진다.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1858년부터 1861년까지다. 총 9개의 장으로 구성된 영화는 ‘세계의 오키쿠’에 이어 ‘오키쿠와 세계’로 끝을 맺는다. 그 속에서 똥에 대한 리얼한 시각과 생생한 청각까지 더해져 그곳에서 한바탕 뒹굴다 나온 느낌이 든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부터 그러한 감정은 뒤로 밀려나고 영화를 관람하는 우리들까지 평온하고 담백한 감정에 빠져든다.시종일관 심각한 냄새로부터 시작해 맑고 상큼한 청춘의 향기를 내뿜는 것이 이 영화의 매력이다. 세계의 밑바닥 가장 더러운 곳에서 세계의 가장 아름다운 사랑을 퍼올린다. 다행히 영화는 흑백이지만 그 흑백의 질감 속에서 자잘하게 반짝이는 색감들이 빛을 발한다. 9개의 장이 끝나는 지점에 짧게 컬러의 장면이 삽입되어 있는데, 안도의 한숨과 함께 깊게 여운을 남긴다. /김규형 (주)Engine42 대표

2024-06-11

사 먹는 물

“너희들이 어른이 되면 가게에서 물을 사 먹는 시대가 올 것이다.”초등 사 학년 때였다. 중년의 담임선생님은 반 아이들에게 얼토당토않은 예언을 했다. 아이들은 너무나 황당해서 아무도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 무렵은 거의 집집마다 맑은 우물이 있어 언제든 필요한 만큼의 물을 그저 길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물은 또한 수박이나 김치를 담갔다 꺼내 먹을 수 있는 냉장고 구실도 했다.동네에 한 두 개씩 있는 공동우물은 식수원일 뿐 아니라 사교의 장이기도 했는데 그런 공짜 우물을 두고 누가 굳이 돈을 주고 사 먹는단 말인가. 선생님은 ‘사 먹는 물’ 이야기 외에도 교실마다 텔레비전을 설치해서 그걸 보며 공부를 하게 될 거라는 말씀도 하셨다. 선생님의 표정은 평소와 다르게 진지해서 우리를 놀리려고 하는 말은 아닌 것 같았으므로 아이들은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다.수요일이면 학교에서 멀리 떨어진 야산으로 도시락을 싸들고 현장 학습을 갔다. 현장학습이래야 전교생이 나무젓가락과 빈 통조림 깡통을 들고 낮은 소나무에 앉은 송충이를 잡는 일이 전부였다. 송충이를 잡다가 목이 마르면 준비해 간 물통의 물을 마시며 선생님이 하신 말씀을 떠올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물을 사 먹는 시대는 오지 않을 것 같았다.점심때가 되어 아이들이 한 자리에 모이면 선생님은 나를 따로 불러서는 가방에 뭐가 있느냐고 물었다. 어머니는 현장 학습 가는 날이면 내 가방 깊숙이 선생님께 드릴 담배며 삶은 계란을 챙겨 주곤 했기 때문이다.그럴 때의 선생님 얼굴에선 물을 사 먹게 되리라고 예견하던 진지함 따위는 찾을 수가 없었는데 머릿속에 한 번 각인된 예언은 언제까지나 지워지지 않았다.신혼의 어느 날이었다. 손님을 대접하려고 닭죽을 끓였는데 죽에서 이상한 냄새가 났다. 혹시나 싶어 한 입 넣었다가 진저리 치며 뱉어버렸다.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재료에 문제가 있나 보다 싶어 아까운 걸 다 버렸다. 저녁이 되어 텔레비전 뉴스를 보고서야 수돗물에서 악취가 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날은 마침 장 담그는 날이어서 장을 못 쓰게 되었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며칠 후 악취의 원인이 낙동강에 버려진 독성 페놀 때문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전국은 떠들썩한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가까이 지내던 이웃은 페놀 수돗물 탓에 임신한 아이를 유산하게 되었다며 서럽게 울었다. 페놀 수돗물로 인한 피해는 예상외로 컸으며 두 번에 걸친 페놀 사태는 전 국민의 이슈가 되어 오랫동안 오르내렸다. 페놀 사태로 인한 수돗물에 대한 불신은 결국 삼 년 후 국내 생수 판매 허용이라는 결과를 가져왔다. 물을 사 먹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어릴 적 선생님의 말씀은 예언이 아니라 자료에 의한 것임을 알고도 여전히 믿기지 않았다. 공허한 울림 같았다. 오랜 기간 내 뇌리를 채우고 있던 일이 실제로 이루어진 것을 보며 그분의 예언이 적중하기라도 한 것처럼 놀라웠다. 운동장에서든, 공원에서든 사람들은 생수를 필요로 했다. 단체가 모이는 곳에는 생수가 필수품처럼 여겨질 정도가 되었다.언제 어디서든 물을 사서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은 사람들 생활에 편리함을 가져다주었다. 뿐만 아니라 돈을 주고 사 먹는 생수병을 국내에서 보게 되었으니 잘 사는 나라가 된 듯 뿌듯함마저 든다는 이들도 꽤 있었다.하지만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페트병으로 인해 환경오염 역시 가속화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 생수가 시판된 지 올해로 꼭 30년이 되었다. 그동안 생산된 생수병은 다 어디로 갔을까. 재활용된 병은 얼마나 되었는지 정확한 근거가 없다.그린피스의 발표를 보면 2017년 기준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생수 소비량은 연간 96병에 달한다고 한다. 생수병을 포함하여 우리나라에서 1년에 소비되는 페트병은 2021년 현재 약 49억 개라는 집계가 나와 있다. 페트병은 생산부터 폐기까지 모든 단계에서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재활용을 염두에 두더라도 지구별을 위협하는 엄청난 양임에는 틀림없다.페트병을 종이팩으로 전환한다면 탄소발자국을 줄이는데 많은 도움이 될 테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요즘은 시골에서도 수돗물을 식수로 쓰는 집은 찾아보기 힘들다. 박월수 수필가 대부분 생수를 주로 배달시켜 먹거나 정수기를 사용한다. 예전처럼 보리차로 끓여 먹거나 하는 집은 찾아보기 쉽지 않다. 수돗물은 생활용수로나 쓴다는 인식이 강한 때문이다. 왜 수돗물을 식수로 사용하지 않느냐고 물어보면 안전한지 믿을 수도 없거니와 일일이 끓여 먹기 성가시다는 대답이 돌아온다.생수병 속에 든 미세플라스틱은 우리 몸을 망칠 수도 있다는 보고가 최근 들어 속속 발표되고 있다. 생수병에 들어있는 엄청난 수의 미세플라스틱 입자가 우리 인체에 들어가 축적된다면 어떤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지 알 수 없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페트병의 폐해를 생각한다면 정수기 사용까진 말릴 필요야 없겠지만 생수 사용은 깊이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내 어릴 적 담임 선생님은 사 먹는 물이 건강을 망치고 나아가 지구를 병들게 할 수도 있다는 걸 짐작이나 하셨을까. 우물물 먹던 시절이 갈수록 간절하지만 돌이킬 수 없는 일이다.◇ 박월수 수필가 약력 ·2022년 대구수필가협회 문학상·2022년 경북문협 작가상 등 수상·수필집 ‘숨, 들이다’·청송문인협회장/ 박월수 수필가

2024-06-11

서른여덟 살의 기타 유망주

서른여덟에 기타 선수를 꿈꾸는 필자. 요즘 나의 낙은 기타 레슨을 받는 것이다. 싱어송라이터로서 첫 앨범을 낸 것이 2010년. 벌써 데뷔한지 14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음악은 새로운 부분들이 많다. 블루스 기타 솔로 연주를 중점적으로 배우다보니 내가 사용하지 않는 음들을 만나게 되기도 하고, 다소 틀에 박혀 있다고 느꼈던 나의 멜로디가 자유롭게 요동치는 것을 느끼기도 한다. 나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고 있는 선생님은 우연히 알게 된 후배 뮤지션 남경운. 그는 나보다 13살이나 어리고 음악 경력도 짧지만 기타 연주 하나만큼은 기가 막히게 해내는 발군의 연주자이며 재능 넘치는 싱어송라이터이다. 서른여덟 살의 내가 스물다섯 살의 그에게 기타 연주를 가르쳐달라고 말하는 것이 조금은 쑥스러웠지만 용기를 내어 부탁을 했고, 그것은 최근에 내가 한 일 중에 가장 잘 한 일이 되었다.사실 음악을 더 배워야겠다고 마음먹을 수 있었던 것은 형준이 형 덕분이기도 하다. 그는 같이 활동하던 뮤지션 중 한 명이었는데, 음악만큼 사랑하는 일이 바로 복싱이었다. 어느 날 그가 다니던 복싱 체육관의 관장님께서 노환으로 별세하시고, 그가 체육관을 인수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오랫동안 복싱을 해온 터라 누군가를 가르칠 실력은 충분했으나 복싱선수로서의 타이틀이 없었던 형준이 형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프로복싱 신인왕전에 원서를 넣었고 결국 신인왕 타이틀을 거머쥐기에 이르렀다. 그 때 형의 나이가 마흔이 넘은 시점이었다. 지금까지 불혹의 복서로서 2전 2승 1KO라는 성적을 올리고 있는 그를 보며 나는 강한 자극을 받았다.사실 삼십 대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나는 내가 더 이상 무언가를 배워서 늘 수 있는 가능성이 몹시 줄어들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특히 어느 정도 숙련도를 가지고 있는 음악이나 문학의 분야에서 만큼은 지금의 기량을 유지하는 정도를 목표로 해야지, 지금보다 실력이 나아질 수 있는 가능성은 닫아놓고 있었다. 그런데 형은 마흔에 신인으로 데뷔를 하였고 꾸준히 실력을 연마해 더 높은 랭킹으로 올라가고 있는 중이라니. 내겐 놀라운 일이었다.또 어느 날은 TV를 보는데 가수 이효리씨가 나왔다. 이효리씨는 요즘 들어 보컬 레슨을 받고 있다고 했다. 사실 뛰어난 보컬을 지녔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이미 1990년대와 2000년대, 2010년대, 2020년대에 차트 1위를 경험한 유일무이한 가수가 된 그다. 충분히 많은 것을 이룬 그가 데뷔 26년차에 자신의 보컬에 부족함을 느끼고 일주일에 세 번씩 학원에 다니고 있다니. 그 열정과 용기가 존경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실제로 최근에 들은 그의 라이브는 예전보다 훨씬 훌륭해져 있었다.돌아가신 작은할아버지 생각도 났다. 나의 이름을 지어주시기도 하셨던 작은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 러시아문학과 인공어인 에스페란토를 공부하고 싶어 하셨다고 한다. 그러나 형이자 가장이었던 우리 할아버지께서 시대적인 이유로 공산권의 언어를 공부하는 것을 반대하시는 바람에 포기하고 교사 생활을 하셨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은퇴를 하신 뒤에 60대의 나이로 노어노문학과 대학원에 석사과정으로 입학을 하셨고 기어이 학위를 받아내시고 말았다.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돌아가셨지만, 본격적으로 하고 싶은 공부를 하시고부터 돌아가시기까지의 그 시간이 아마 작은할아버지께서 가장 행복하셨던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강백수 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 배움에는 나이가 없다는 말이 있다. 실제로 그것을 증명하는 이들이 이렇게나 많고 이들 말고도 얼마든지 있다. 그런데 고작 마흔도 안 된 내가 스스로 가능성을 차단하고 이제는 더 나아질 수 없다며 징징대고 있었다니. 부끄러운 일이다. 최근 공연에서는 노래와 노래 사이의 간주에 다른 연주자에게 맡기곤 했던 기타 솔로 연주를 한 두 곡 정도는 내가 시도해보기도 한다. 빼어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유명한 기타리스트들처럼 지판 위를 날아다니듯 테크닉을 뽐낼 줄도 모르지만, 그럭저럭 다른 기타리스트들이 하는 솔로 플레이 비슷하게는 소리를 내는 나 자신을 보며 흡족한 미소를 짓기도 한다.한 분야에서 배움을 얻고 성장하는 자신을 발견하고나니 또 다른 도전들이 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음악 영역에서도 여태껏 내 분야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분야들에 발을 담가보고 싶어졌고, 문학적으로도 여태 해 보지 않았던 것들을 해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렇게 나는 더 도전적으로 이것저것 시도하며 살아보려 한다. 그래, 그런 게 없다면 남은 인생이 너무 지루하지.

2024-06-10

경쾌하게 지내기

며칠 전 친구와 긴 통화를 했다. 서로의 근황을 나누다가 요즘 나를 성가시게 하는 일들에 대해 토로하게 됐다. 가만히 듣던 친구가 넌지시 물었다. 그게 너의 평화를 방해할 만큼 큰일이야? 곰곰이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 정도는 아니야. 그렇게 말하니 거추장스럽던 고민이 한순간에 사소한 것으로 변했다. 신기한 일이었다. 통화를 마치면서 친구가 덧붙였다. 은강아, 괜히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 가볍고 경쾌하게 지내자.그 순간 내 안에 중요한 무언가가 흘러 들어오는 것을 느꼈는데 그것은 마치 더운 여름날 살얼음이 낀 맥주를 들이켜는 감각과 비슷했다. 눈물이 찔끔 날 만큼 시원하면서 따끔한 기분. 친구는 오랫동안 내가 바라던 상태를 딱 들어맞는 언어로 짚어준 것이다.사실 ‘경쾌하다’는 말은 내가 평소에도 자주 사용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러닝머신 위에서 경쾌하게 달려보겠다는 다짐으로 발을 구르고 학생들의 작품을 첨삭하며 조금 더 경쾌하게 진행해 보라는 조언을 내어놓는다. ‘경쾌하다’고 중얼거리면 어쩐지 꽉 막힌 것들이 시원하게 해결될 것만 같다. 그럭저럭 괜찮은 상태가 아니라 좀 더 상쾌하게 쭉 뻗어가는 느낌이랄까. 힘차게 전진하는 쾌속 열차처럼, 천진한 아이의 쾌활한 웃음처럼.‘경쾌하게 지내기’란 언뜻 들었을 때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꽤 어려운 일이다. 물속을 헤엄치는 사람과도 비슷하다. 수중에서 제대로 이동하기 위해선 몸의 정렬을 깨지 않고 올바른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 적당하게 힘을 빼는 것도 중요하고 물을 두려워해서도 안 된다. 멀리서 보면 우아하고 민첩해 보이나 사실 상당한 체력과 노력이 요구된다. 어떤 준비도 없이 물에 뛰어드는 건 위험하다. 요동치는 감정에 휩쓸리는 순간 허우적대다 가라앉을 수도 있다.부정적인 생각은 물먹은 솜과 같다. 나는 왜 이렇게 되는 일이 없을까? 그때 그 사람은 내게 왜 그런 말을 했지? 난 항상 최악의 선택만 하는 것 같아. 생각은 생각을 먹고 더욱 불어난다. 눈에 보이지 않으니 억지로 구겨서 폐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경쾌하게 나아가기 위해선 먼저 몸과 마음이 가벼워져야 한다.최근 나는 삶을 가볍게 살아가는 방식에 관해 골몰하고 있다. ‘뭐 해 먹고살지?’보다 ‘어떤 자세가 편안하지?’라는 질문에 무게를 두고서. 물론 나는 아직 젊은 나이고 주렁주렁 매달린 고민과 불안이 당연하다는 걸 안다. 그러나 젊다고 해서 괜한 것을 짊어질 이유는 없다. 필요한 물건 대신 무거운 돌을 가방에 넣는 건 그야말로 무의미한 일이니까.때론 복잡하고 부조리한 세계가 나의 다짐을 방해한다.집 앞 새로 생긴 카페의 레몬 케이크, 너무 맛있어! 일상에서 즐거운 일이 생기면 호된 꾸짖음이 들려오는 것 같다. 네가 지금 케이크에 기뻐할 때니? 오늘도 혐오에 기반을 둔 끔찍한 범죄가 벌어졌고 지구 반대편에선 총성이 울려 퍼지고 있어. 그뿐이면 다행스럽게? 자본의 논리 속에 약자는 희생당하기 마련이고 환경오염으로 인한 이상 기온으로 생태계가 엉망이라고.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이것은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는 마음을 주저앉히기에 효과적이다. 요즘처럼 마음이 편안할 수가 없다고 흐뭇해하기가 무섭게 곧 예기치 않은 불행이 닥쳐올 것이라는 악담이 끼어드는 식이다. 이러한 속삭임은 타인의 언어라기보다 내 안에서 작동되는 장치에 가깝다. 그러니 해결할 수 있는 건 나밖에 없다. 나의 괴로움이 세계의 운명을 바꾸는 것도 아닐 테니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개인이 가져야 할 사회적 책임을 방기 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단지 세상을 헤쳐 나가는 하나의 방식일 뿐이다.인생이라는 바다를 헤엄쳐야만 하는 숙명을 타고난 우리 앞에 거친 파도는 다가오거나 다가오지 않거나 둘 중 하나다. 그것은 내가 어찌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만큼은 경쾌하게 지내는 편이 좋지 않을까. 수면 위를 둥둥 떠다니며 햇살과 바람을 느끼고 살랑대는 보사노바에 맞춰 몸을 흔드는 게 나쁜 일은 아니니까. 진한 맥주 한 잔 곁들어도 좋겠지. 그렇게 태평하게 굴다간 무시무시한 태풍에 잡아먹힐지도 몰라. 그런 목소리가 들리면 이렇게 대꾸하고 싶다. 알겠어요. 우선 여기 이 레몬 케이크를 먹어봐요. 정말 맛있다고요.

2024-06-10

마무리 큐시

강길수 수필가 뭔가 다르다. 평소에 안 나던 소리가 차 뒤 트렁크 쪽에서 들린다. 어떤 울림 같은 소리다.“차 소리가 이상한데….?”하고 함께 탄 아내에게 말했다. 그녀는 별다른 말은 안 했다. 짐을 잘못 실었겠지, 싶어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텃밭까지 갔다. 두어 시간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불과 300m 정도 달렸는데, 차 뒤 오른쪽 바퀴에서 바람 빠진 소리가 났다. 차를 세우고 살폈다. 타이어 공기가 다 빠졌다. 제법 큰 쇳덩이가 타이어에 박힌 것도 보였다.농로 중간이라 차 세울 자리가 마땅찮아 200m 정도 더 가 차량 통행에 방해되지 않게 세웠다. 비로소 박힌 쇳덩이를 자세히 보았다. 건설공사에서 콘크리트 벽을 칠 때, 쓰는 마감재 부착용 연결쇠였다. 공사 관련자가 길에 떨어뜨린 게 공교롭게 내차 뒷타이어에 박혔다. 앞바퀴였다면 사고를 당할 수도 있었지 않은가. 어이없다.공사 앞뒤 처리를 말끔히 안 해 엉뚱한 내 차가 피해당했다고 생각하니, 황당하고 분하기도 했다. 일단, 스페어타이어를 끼려 시도했으나 어려워 보험 서비스를 불렀다. 전화하는 내 손이 잠시 떨리기도 했다. 보험 출동 기사는 이런 게 박히는 사례가 제법 있다며 때울 수 없으니, 새 타이어로 바꾸라고 권했다. 결국, 타이어를 앞당겨 바꾸는 불편과 비용을 감수해야 했다.지난 7, 80년대 산업화 시기를 실험실에 근무했다. 당시 대부분의 실험기기 장치는 외국산이었다. 어느 날, 국산 전기 건조기가 처음 들어왔다. 검수하고 옮기는 과정에서 이상하게도 손에 상처가 났다. 모서리 처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날카로운 금속 돌출부에 손을 베인 것이다. 그때의 실망감과 이 타이어 펑크 사고의 황당함이 궤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실험실에서 품질관리 활동을 하던 때, 미팅에서 한 부서장이 했던 말이 불현듯 떠올랐다. ‘품질관리는 마무리 큐시(QC·Quality Control)를 잘해야 해.’라고…. 나는 국산 건조기 생각이 나며 그 의미를 바로 알아들었었다. 오늘은‘사람의 활동은 마무리 큐시에 유종의 미가 달렸다’하는 마음이 짙게 다시 들었다. 소비자가 만족하는 제품과 용역을 내주는 일이 바로 마무리 큐시니까.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의 붕괴, 가스누출 사고, 세월호 침몰 같은 끔찍한 대형 사고에서부터 오늘 타이어 펑크처럼 사소한 일까지 원인은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근본적 요인은 마무리 큐시가 제대로 안 된 탓일 터. 실무자, 감독자, 감리자 등 관련자가 자기 일을 온전히 해냈다면 즉, 마무리 큐시를 제대로 했더라면 큰 사고란 불행은 닥치지 않았을 것이다.우리 사회는 전 분야가 마무리 큐시를 덜 하거나 오롯이 안 하는 것만 같다. 정치인, 공직자, 언론 등이 말로는 ‘국민, 국민’하지만 속은 제 잇속 챙기기 바쁜 비양심적 행태가 뻔히 보이니 말이다. 또, 담배꽁초 처리 같은 기초질서를 제대로 안 지키는 국민도 마찬가지다. 이제부터라도 사회 온 구성원이 마무리 큐시를 잘 해내도록 이끌고 가르쳐 국민이 안전하고 복된 나라로 바꿔나가기를 간절히 빈다.

2024-06-10

교육 현장의 모순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2024년 상반기 대학가의 뜨거운 이슈 중 하나는 ‘무학과 단일전공’의 실시 여부였다. 의대 정원 확대와 다르게 무학과 단일전공은 대학 관계자 사이에서나 관심의 대상이 되었지만, 대학 교육의 근간을 바꾸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것이다.무학과 단일전공은 테크놀로지의 발전으로 인한 급변하는 사회현실에서 대학생의 선택권 보장과 융합 교육의 필요성을 기치로 내걸며 20년 전에도 시행된 바 있으며, 여러 가지 이유로 실패한 정책임이 증명되었지만, 결국 다시 내년부터 시행될 예정이다.대입 수험생이 매년 줄어드는 현실에서 의대 입학 정원 확대나 무학과 단일전공 시행이 학생들의 특정 전공 쏠림을 가속화 시킨다는 사실과 의대 입시를 위한 사교육 시장이 사회 문제가 될 것이라는 점이 비판적으로 제기되었지만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이미 모든 정책이 법적 절차를 통과한 상황에서 더 이상 논란을 만들기보다는 정책이 자리를 잡아서 학생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는 것이 현명한 행동일 수 있다.하지만 현재로서는 바뀐 정책이 정말 학생들을 위한 것일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학기에 교대 입시를 준비하다가 우리 학과로 입학한 학생을 만났다. 그 학생은 고등학교 3학년 때 발생한 서이초 사건으로 꿈을 포기한 것을 다소 후회하고 있었다. 고등학교 3년 동안 생활기록부에 ‘교사’라고 적은 꿈에 대한 아쉬움이 컸다. 그런데 학생과 이야기하며 고등학교 1학년 때 ‘교대 입시반’이 있었고 선생님들이 1학년부터 진로를 결정하길 권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생활기록부에 일관된 기록이 있는 것이 해당 학과 선택에 중요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그때야 알 수 있었다. 나 역시도 입학사정관으로 활동하며 3년 동안 일관되게 국어국문학과 진로를 희망한 학생에게 높은 점수를 준 행동이 사실은 큰 문제가 있다는 점을 말이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자신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는 학생이 얼마나 될까? 중ㆍ고등학교의 입시 위주의 교육 시스템에서 선택할 수 있는 꿈이 얼마나 다양할까? 결국 나는 이 모든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편의적으로 생각한 것이다.무학과 단일전공의 시행은 학생들이 다양한 경험을 하며 자신에게 맞는 전공을 고민할 시간을 주기 위한 것이다. 취지만 보면 동의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반대의 목소리가 컸다. 이상과 현실의 좁힐 수 없는 격차 때문이다.대학 진학을 위해 직업 선택을 강요하는 고등학교와 다양한 경험을 하며 천천히 진로를 생각하라는 대학의 모순을 학생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나는 다시 입학사정관으로 활동한다면 다른 기준으로 학생을 평가할 수 있을까?입시를 위해 하루빨리 진로를 결정하는 고등학교 교육과 다양한 경험을 한 후에 천천히 진로를 정하라는 대학의 모순을 정확히 인식해야 한다. 비단 교육 현장의 모순은 이것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알지 못한다. 다만 문제를 인식하는 것이 해결을 위한 첫걸음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 따름이다.

2024-06-10

무서운 아이들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 작가이자 시인 이상의 최후의 소설 ‘실화’에서 ‘주인공 나’는 진실한 사랑에의 믿음을 잃고 일본 도쿄에 와 버렸다. 이 도쿄 간다(神田)의 하숙방에서 ‘나’는 독백한다.“여기는 동경이다. 나는 어쩔 작정으로 여기 왔나? …. 콕토가 그랬느니라. 재주 없는 예술가야. 부질없이 네 빈곤을 내세우지 말라고.….”여기 등장하는 장 콕토는 ‘무서운 아이들(Les enfants terribles·앙팡 테리블)’을 쓴 작가였다. 이상 소설 덕분에 나는 결국 장 콕토의 ‘무서운 아이들’을 찾아 읽게 된다.누군가 알라딘 서평에 이 소설에 대해서 이렇게 쓴 게 있다. “사회에 철저한 무관심으로 일관하며 스스로 만들어 놓은 세계의 규칙과 자기 안으로 침잠에 들어가는 인물들의 이야기로, 동성애, 근친상간, 자살 등의 소재가 다뤄진다.”이 ‘무서운 아이들’은 그후 세간에서 새롭게 성장하는, 나타나는 기린아를 표현할 때 자주 애용되었다. 늘 그렇게 쓰여 왔다. 그러나 나는 이 글에서 이 ‘무서운 아이들’의 새로운 용법을 제안하고자 한다.나는 이 ‘무서운 아이들’이 이미 십 년 전에 우리 사회에 다른 방식으로 출현했다고 믿는다. 이들은 사회에 무관심하다기보다 오히려 철저히 사회에 순치된 존재들이다. 그 방식이 역설적이다. 그들은 이 사회체계 안에서 적응과 성공과 출세를 꿈꾼다. 이를 위해서라면 어떤 올바름도 속으로 버릴 태세가 되어 있다. 원한과 적대감을 품은, 욕망 덩어리 존재들은 자신을 아직 아이로 착각하며 가차없이 자기 욕망을 추구한다.기성세대를 향해 원한과 적대를 품은 이 아이들은 자신들이 ‘빈곤’하다고, 제대로 된 자리를 갖지 못하고 있다고 외친다. 무서운 사실은 이 아이들이 올바름을 가장한다는 사실이며, 그러면서 윗세대뿐 아니라 자신들의 세대 내에서도 온갖 모략과 술수로 무한 투쟁을 추구한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자신들보다 약한 자를 사정없이 짓밟을 수 있는 역설적인 윤리적 우월감으로 스스로 무장해 있다.이 40 전후의 ‘무서운 아이들’은 어떻게 해서 만들어진 것일까? 나는 나 자신이 속한 586세대가 비민주적 체제에는 저항했지만 그 사회적, 경제적 체제에는 철저히 순응했고 그후 그 반쪽짜리 이상을 정당화하며 살아왔다고 생각한다.‘무서운 아이들’은 586세대의 다음다음 세대에 해당한다. 세대를 거듭하며 악은 진화했고 번성했다. ‘무서운 아이들’의 세대에 이르러 노동, 여성, 정치적 올바름은 도구화, 수단화되는 양상을 나타낸다. 늘 정치적으로 올바르다고 외치지만 그 올바름은 마키아벨리즘적인 속성을 보인다.물론 언제나 그렇듯 이 진단과 표현은 세대 전체가 아니라 세대의 어떤 전형적인 일부를 가리킨다. 그러나 어느 세대든 두드러진 일군의 무리가 사회에 깊은 영향력을 행사한다.그리고 중요한 것은 앞으로 이들이 주도할 한국 사회의 미래가 그다지 밝지도 따뜻하지도 않을 것 같다는 점이다. 또, 불쌍한 것은 이 ‘무서운 아이들’의 아래 세대들이다. 그들, 지금의 이십대 후반, 삼십대 전반기의 젊은이들, 이들은 ‘무서운 아이들’ 아래서 힘들게 생존해 가야 한다.

2024-06-10

밀양 여중생 성폭행… ‘죄와 벌’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지금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흐릿하게 남았지만, 사건 당시의 놀라움과 대중의 분노는 크고 높았다.2004년. 밀양 지역 남자 고교생들이 여중생 한 명을 성폭행했다. 후안무치한 범죄에 가담한 학생들이 자그마치 44명이라는 사실은 더 큰 충격이었다.18세였던 성폭행 가해자들은 밀양의 여러 고교에 재학 중이었다. 범죄의 잔인성 탓에 밀양이라는 도시 자체가 여론의 돌팔매를 맞았다.14세에 불과한 어린 여학생을 유인해 돌아가며 성폭력을 저지른 건 물론, 때리고 협박했으며, 돈까지 뺏은 고교생들의 인면수심(人面獸心)은 당연지사 엄한 벌로 이어져야 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죄를 저지른 고교생 중 10명만이 기소됐고, 20명은 소년부 송치로 마무리됐다. 13명은 피해자와 합의했다는 이유로 ‘공소권 없음’ 결론이 났다. 수사 결과를 접한 이들은 “참을 수 없는 솜방망이 처벌”이라며 분노했다.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 사건은 잊혀져갔다. 가해자들은 18세 고교생에서 38세 성인이 됐다. 결혼을 하고 자식도 낳았다. 그들이 최근 두려움에 떨고 있다. 한 유튜버가 “밀양 성폭행 가해자 44명의 신상을 인터넷에 공개하겠다”고 선언했기 때문. 이미 몇 명의 신상이 알려졌고, 얼굴과 직업이 공개된 가해자가 다니던 인기 좋은 식당은 문을 닫았고, 직장도 이들의 퇴출 수순을 밟고 있다.‘공적 처벌이 아닌 사적인 단죄 방식은 옳지 않다’는 견해가 있으나, ‘그때 제대로 받지 않은 벌을 지금이라도 받아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다.라스콜리니코프가 주인공인 소설 ‘죄와 벌’그리고, “하늘에 죄를 지으면 숨을 곳이 없다”는 공자의 말이 떠오르는 오늘이다./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06-10

‘의료계 총파업’…얻을 게 별로 없다

개원의가 주축인 대한의사협회가 오는 18일 하루 전면 휴진(총파업)을 하기로 결의했다. 의협이 총파업 찬반투표를 한 결과, 5만명이 넘는 개원의들이 단체행동에 동참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에 앞서 서울대 의대·병원 교수들도 17일부터 무기한 휴진에 들어가겠다는 선언을 했고, 의대교수 비대위도 휴진에 동참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넉 달째 이어지는 의정갈등이 더 심화하고 있지만, 정부는 여전히 “진료거부 행위는 불법”이라며 강경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의료계 집단행동은 지난 2000년 의약 분업과 2014년 비대면 의료 도입, 2020년 의대 증원 추진 당시에 이어 4번째다.지난 2월 시작된 의정갈등이 아무런 해법도 찾지 못한 채 오히려 더 격화되는 것 같아 걱정이다. 정부가 의료계의 요구를 받아들여 국립대 의대 전임교원 1000명 충원, 의료사고 소송 부담을 덜어주는 ‘의료사고 처리 특례법’ 제정 등을 약속했지만, 의료계는 의대증원 철회만 고수하는 답답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현재 전국 대학병원들은 전공의(1만여 명) 이탈 이후 의대교수들의 헌신으로 가까스로 버티고 있는데, 교수들마저 휴진에 들어갈 경우 의료대란은 피할 수 없다.의대교수들이 휴진에 동참하게 되면, 우선 수술을 못하는 진료과가 대거 발생할 수 있어 중환자 치료시스템이 망가질 수 있다. 대학병원의 경우 상당수 진료과는 교수 한 명만 빠져도 중환자 수술을 감당하기 어려워진다. 개원의들은 휴진에 따른 경제적 손실을 감당하기 어려워 파업 참여율이 저조할 것으로 예상된다.문제는 의사들의 집단행동에도 정부가 수습책으로 꺼내 들 카드가 없다는 점이다. 이미 의대증원 계획은 대학별로 확정돼 입시요강까지 발표됐다. 이를 취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금은 정부와 협상테이블에 앉아 2026년 이후의 의대증원 정책에 대해 논의를 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다. 의대교수를 포함한 선배의사들이 할 일은 파업이 아니라 전공의와 의대생들이 하루빨리 병원과 학교에 복귀하도록 설득하는 작업이다.

2024-06-10

포퓰리즘 비판에도 늘어나는 입영지원금

구미시의회가 군에 입대하는 병역의무자에 대해 입영지원금을 주기로 조례를 만들자 제도의 적절성 여부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구미시의회는 지난 4일 ‘구미시 입영지원금 지급 조례안’을 기획행정위에서 가결해 이르면 내년부터 입영지원금을 지원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구미시의회는 현재 시에 1년 이상 거주하면서 현역, 보충역, 대체역으로 입영하는 사람에게 1회에 한해 구미사랑상품권 10만원을 지급하는 것으로 했다. 조례안이 가결되자 지역사회 일각에서는 지방재정 악화로 중단되는 사례가 있는 등 실효성 측면에서 검토돼야 할 문제가 많다며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는 견해들을 내놓고 있다. 경기도 의정부시는 2022년부터 시행하던 입영지원금을 지난해 12월 지급을 중단했다. 국가건전재정 유지, 부동산경기 침체 등 재원 부족이 주된 이유였다고 한다.입영지원금은 2022년 경기도 구리시가 지방자치단체로서 최초 도입하면서 지방선거를 앞둔 선심행정이라는 비판을 받았으나 이후 전국적으로 점차 확대 시행 중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그러나 의정부시 사례처럼 지자체 재정 사정에 따라 지속성이 결여될 수 있는 여지가 많은 데다 유권자 계층을 대상으로 한다는 면에서 포퓰리즘 성격이 짙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학자들은 “국방에 참여하는 것에 대한 보상이라면 정부가 할 일”이라며 지방정부 재정 사정에 따라 지역간 불균형 문제도 발생할 수 있어 제도 시행에 대한 신중론을 거론하고 있다. 또 용인시 등 일부 지자체는 제도가 상정됐으나 의회에서 부결된 사례도 있다. 입영지원금보다 사회 정착을 돕기 위해 제대 후 지원하는 전역지원금이 낫다는 의견도 나와 제도 시행에 앞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우리나라 지자체 대부분은 재정자립도가 낮다. 지금처럼 국가 차원의 긴축재정이 시행될 때는 재정지출의 우선순위 결정에 매우 신중해야 한다. 구미시가 경북도내 지자체 가운데 재정사정이 낫다고는 하나 자립도만 보면 27% 수준으로 낮다. 행정의 신뢰도를 고려해 새 제도 도입에는 신중을 기하는 것이 좋다.

2024-06-10

문인수의 ‘내 마음의 유민들, 사투리’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오늘 내가 좋아하던 경북 성주에 살던 문인수 시인이 파랑새처럼 하늘로 날라 갔다고 한다. 늘 불그스레한 황혼빛 웃음으로 사람들을 대하던 아름다운 시인 한 분이 세상을 떠났다.”지난 어느 날의 내 일기장에서 눈에 띈 짧은 글이다. 지금 생각해도 참 쓸쓸하고 마음이 무겁다. 시인과는 고등학교 선배라는 인연도 있지만 그와는 상관없이 그는 항상 따뜻했다. 마침표도 없이 앞뒤로 이어지는 시 화법을 구사한 그의 상상력은 따라잡기 난해한 부조리한 시어 문법의 폭력이 난무하는 시대, 편하게 가슴에 다가선다.‘나는 지금 이곳이 아니다’(창비, 2015)는 시집 제목부터 문법 일탈이다. 이 생뚱맞은 제목 자체가 독자를 곧 바로 긴장으로 몰아넣는다. 내가 지금 머물고 있는 이곳은 내가 존재할 곳이 못 된다는 말이다.‘굵직굵직한 골목들’의 “작고 초라한 집들이 거친 파도 소리에도 와르르 쏟아지지 않는다. 복잡하게 얽혀 고부라진 골목의 팔심 덕분인 것 같다.”에서는 파도에 의지한 가파른 언덕 섬마을의 모습, 금방 쏟아져 내릴 듯 언덕배기 섬마을을 버티게 해주는 꼬불꼬불한 길을 “질긴 팔심”에 비유한다.시인은 스스로 평범한 존재가 아니라 비범한 시인이라는 꼿꼿함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실제로 문인수 시인이 범속한 인간이 아닌 건 아니다. “굵직굵직한 동아줄의 기나긴 골목”에서 한국어 조사 ‘-의’의 위력은 얼마나 대단한가? ‘-의’는 ‘-와 같은’과 동일한 직유의 기능을 하고 있다. 가파른 섬 언덕에 조개껍질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는 붉은 슬레이트 지붕 사이로 난 골목길을 질긴 팔뚝과 동아줄로 유추한 비유는 탁월한 시적 상상이다.“해풍의 저 근육질은 오랜 가난이 절이고 삭힌 마음인데”에서는 잠시도 멈추지 않고 거칠게 불어오는 바람을 해풍의 근육질로 비유한다. 시인은 철부지 순수한 어린 아이처럼 변덕도 심하다. 골목길을 질긴 팔로, 또 동아줄로 비유하다가 이젠 끊임없이 세로로 일어서는 해풍의 강한 근육질로 눈길이 옮아간다. 이러한 자연의 긴장감, 팽팽히 당겨진 인력은 곧바로 그 섬마을에 삶의 거처를 둔 섬사람들의 끈질긴 생을 이야기하는데 성공한다.문인수 시인에게 사투리는 한 시절의 추억이 유적이 되어 쓸쓸히 서녘 서방정토에 묻혀 있다.‘내 마음의 유민들, 사투리’(‘요엄창큰비바리야냉바리야’, 서정시학, 2007)에는 경상도 사투리가 자동기술적으로 튀어오른다. “낫살이나 먹은 사람들의 몸엔 묵은 된장냄새 같은 말씨가 숨어 있다./귀에 쟁쟁, 목구멍 속에 오소리길처럼 파묻힌 말뜻이 있다.”라고 했다.방언은 시인의 인식 내부 깊숙이 냄새, 소리, 목구멍으로 숨어 있 있다. 방언이 시학의 미적 가치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그의 시에는 또 다른 액면 구성의 방식으로 시인의 목소리이면서도 마치 타자화한 토박이 방언인 듯 경상도 방언이 실려 있다.“약삐야 덕삐야 살 꺼 없다. 디비가미 애믹이다. 심청머리. 곡식을 까부리다. 아망시다. 양발궂다. 모지락시럽다. 해찰궂다. 까리적다. 야무락지다. 자부럽다. 건성시럽다. 메메 문때다. 짜매다. 허퍼. 개얀타. 쌔비릿다. 넌 갓따리다. 잘 까바지다. 글마가 절마가. 알아서 미미이 잘할까. 각중에. 먹보. 얌새이 시염이다. 통시이. 여불떼기. 수굼포. 호메이. 깨이. 후치이. 써리. 그케. 뺀대기 쌔리다. 가릇부치다.” 이렇게 값진 방언 시어들이 시의 궤적에서는 전혀 일탈되지 않으면서도 정답게 시의 행간을 빼곡하게 차지하고 있다.문인수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이 말투들은 거칠지만 얍삽하지 않다. 양단간에 곧잘 앗사리 뿔랐뿐다.”라고 방언시에 사용된 방언 낱말의 정의를 바로 내린다.낮은 여항의 일상의 말씨가 결이 곱지는 않지만 솔직한 유민들의 심정을 전해주는 말이라고 했다. ‘혹가다’(우연찮게) 머리에 떠오르는 모어가 아니라 연속의 불연속, 불연속의 연속으로 방언으로만 쓴 시의 한계치를 뛰어넘는다.울림일까 주문일까? 그러나 경상도 사람 외에는 독해할 수 없는 배타성을 감추기 위해 메시지는 철저하게 감춘다. 이해해 달라는 의미일까? 시인 문인수는 뛰어난 서정 시인이다.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직관력과 순간순간 변하는 눈길로 풀어놓은 변덕스러운 시적 긴장감이 시의 맛깔을 한껏 돋운다.

2024-06-10

니가타항을 떠난 사람들

2024년 2월 23일 니가타현립대학에서 한국근대문학에 대한 여러 가지 발표와 토론으로 녹초가 되다시피 한 저희 일행은, 저녁에 니가타 시내로 이동하여 만찬에 참석했습니다. 이날의 만찬은 이광수 연구의 권위자인 하타노 세츠코 선생님이 주최하신 것인데요. 니가타 전통 요리를 파는 그곳의 음식은 하나같이 정성스럽고 맛있는 것들이었습니다. 한밤중까지 이어진 심포지엄 뒷담화로 2월 23일의 밤은 그렇게 조용히 저물어 갔습니다.24일은 오전 11시에 비즈니스 호텔 로비에서 만나 해산하는 것이 유일한 일정일 정도로, 여유로운 날이었는데요. 아침 일찍 조식을 먹은 저는 니가타 시내와 바닷가를 산책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마침 연구년을 맞아 도쿄의 센슈대학에 와 있는 K대학의 A교수가 저의 길동무가 되어 주었는데요. 저희는 일본에서 가장 긴 강인 시나노가와의 강변을 걷기도 하고, 그 강 위에 놓인 아치 여섯 개의 아름다운 반다이바시를 건너기도 했습니다.니가타가 한국문학 전공자에게 문제적으로 다가오는 대목 중의 하나는, 니가타가 북·일간의 교류에 있어 일본측 창구였다는 사실입니다. 재일교포 북송사업 당시 수많은 재일교포들이 ‘지상낙원의 부푼 꿈’을 안고 북송선을 탔던 곳이 바로 니가타입니다. 오늘날 북송사업은 사회주의 체제의 우월성을 선전하고 부족한 노동력을 보충하려던 북한의 이해와, 재일교포를 부담스러워하던 일본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결과로 널리 알려져 있지요. 그러나 2006년 7월 북한의 장거리 로켓 시험 발사를 이유로 북한 선박의 일본 입항이 금지된 이후에는,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니가타항과 북한을 오고 가는 배는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그래서일까요? 북송사업의 현장지휘소 역할을 하던 조총련 니가타현 본부 및 조국왕래기념관을 찾아갔을 때, 그곳은 셔터가 내려진 채 거의 폐건물이 되어 있었습니다. 을씨년스러운 그 풍경은 현재 북·일간의 삭막한 관계를 대변하는 듯 보였는데요. 1959년부터 시작된 북송사업은 1984년까지 총 186차례에 걸쳐 9만3340명이 이주한 그야말로 대사업이었습니다. 과연 ‘사회주의 조국 건설’에 이바지하겠다는 벅찬 꿈을 안고, 니가타항을 떠났던 그 수많은 사람들이 겪었던 북한에서의 삶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이경재 숭실대 교수 한국작가회의 이사장을 역임한 이경자의 장편 ‘세번째 집’(문학동네, 2013)은 북송교포들의 후일담을 전해주는 귀한 작품입니다. 이 소설은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김성옥으로 이어지는 김씨 3대의 이야기를 통해, 지난 100여 년에 걸친 한민족 디아스포라를 펼쳐낸 역작인데요. 할아버지(정남), 아버지(대건), 성옥의 삶을 대표하는 단어는 각각 ‘조센징’, ‘귀국자’, ‘탈북자’입니다. 정남은 징용을 당해 후쿠오카 탄광에 보내졌는데요. 해방 이후 일본에 남아 가정을 이뤄 대건을 낳습니다. 대건(가네다 다이켄)은 와세다대까지 졸업한 엘리트지만 일본 사회가 부과한 ‘조센징’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결국 새로운 삶의 희망을 찾아 1967년 니가타항에서 북송선을 타는데요. 안타깝게도 김대건은 북한에서 ‘조센징’이라는 굴레를 벗는 대신 ‘귀국자’라는 새로운 굴레를 뒤집어쓰고 맙니다. 대건의 딸로 북한에서 태어난 성옥은,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고 탈북하여 남한에서 ‘탈북자’로 살아갑니다.‘세번째 집’에서는 성옥 가족이 “자본주의와 자유주의의 콧김을 쐰 경험”을 의미하는 ‘귀국자’라는 신분으로 인해, 북한 사회에서 받는 고통과 차별이 생생하게 펼쳐집니다. 실수로 동네에 불이 났을 때도, 성옥은 보위부에 끌려가 “토대가 나빠서, 성분이 안 좋아서 어린아이가 남의 소먹이를 다 태운 거”라는 얼토당토 한 이야기를 들어야 할 정도입니다. 성옥은 “귀국자라는 말이 얼마나 지독한 덫인가를” 인민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뼈저리게 느끼기 시작하고, 나중에는 ‘귀국자’라는 말만 들어도 지겨울 지경에 이릅니다.대건은 평소에 “오리는 오리끼리 만나야 한다”며, 성옥에게 연애 상대로 “귀국자를 만나라”는 말을 습관처럼 해왔는데요. 실제로 보위부장의 아들인 철이와 성옥은 연애 감정을 느끼게 되지만, 결국 철이 부모의 반대로 둘의 사랑은 결실을 맺지 못합니다. 이후에도 성옥은 도자기 공장 작업반에 다닐 때, 아버지가 비행군관학교 교수인 토대 좋은 남자의 청혼을 받기도 하는데요. 결혼을 허락해 달라고 찾아온 남자에게 대건은 “자네 아버지에게 허락받고 와. 그럼 내가 허락해주지”라고 냉소적으로 대답합니다. 대건의 예상대로 그 남자의 아버지는 “귀국자에 비당원의 자녀와는 혼인할 수 없다”며 성옥과의 결혼을 분명하게 반대하는군요. 결국 북한에 온 초기에는 ‘사회주의 조국 건설’을 위해 성실하게 생활하던 대건도, 귀국자에 대한 차별로 인하여 술만 찾는 냉소적인 인물로 변하고 맙니다. 물론 대건과 그 가족의 삶이 10만 여명에 이르는 모든 북송교포들의 삶을 대변하는 것은 아닐 겁니다. 그럼에도 오늘날 수많은 자료와 증언들은 북송교포들의 삶이 결코 만만치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000여 명의 동포를 싣고 북한의 청진항을 향해 니가타항을 떠났던 1959년 12월 14일의 바다는 무척이나 소란스러웠을 테지만, 그로부터 65년이 지난 이날의 바다는 너무나 조용하여 쓸쓸하기까지 했습니다.글·사진=이경재(숭실대 교수)

2024-06-10

임시 청도읍사무소의 근무환경 개선 필요

심한식 경북부 지난 2020년 12월부터 시작한 청도읍사무소의 더부살이가 앞으로 수년을 지속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나 임시 청도읍사무소에 근무하는 공직자들을 위한 환경개선이 요구된다.지난 1977년에 준공돼 지역민에게 행정서비스를 제공하던 청화로 137번지 청도읍사무소는 군이 추진한 도시재생 뉴딜사업을 위한 생활혁신센터를 위해 2021년 3월 철거됐다.군은 청도읍 주민을 위해 청도 신기길 83-7, 구 둥지웨딩 건물 1~2층으로 청도읍사무소를 임시 이전했다.하지만, 청도읍사무소를 비롯해 공용 지하 주차장, LH 공공임대주택(행복주택), 어울림·영상미디어·건강증진센터 등이 입주할 생활혁신센터가 착공도 못하고 있다. 지난해 6월 시공을 맡았던 J건설이 자재 원가 상승 등을 이유로 사업을 포기하면서 사업부지는 임시 주차장으로 활용되고 있다.생활혁신센터의 사업 주체인 LH는 직접 시공으로 가닥을 잡고 원가 상승에 따른 부담을 줄이고자 행복주택을 축소하는 등의 설계 변경안을 마련해 도시재생 뉴딜사업의 책임부서인 국토교통부의 승인을 요청키로 했다.이러한 연유로 아무리 빨라도 12월쯤에야 생활혁신센터의 착공이 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연간 1억여 원이 넘는 임차료로 지급하며 사용하고 있는 임시 청도읍사무소는 애초의 건물이 예식장으로 설계돼 층높이는 높으나 일부만 개폐되는 프로젝트 창문 구조로 원활한 공기의 흐름을 기대하기 어렵다.1억여 원의 임차료는 2025년 8월이면 다시 갱신해야 해 물가 상승의 요인으로 임차료가 상승할 가능성도 있어 지지부진한 청도혁신센터의 착공은 곧바로 청도군의 혈세 낭비로 이어지고 있다.그럼에도 청도읍사무소 직원 27명이 근무하고 있는 1층 사무공간의 넓이는 341㎡ 정도에 근무자들은 문서고 등 부대시설과 가까운 곳은 1m 남짓에 그치며 6대의 공기청정기로 공기의 흐름을 유도하고 있어 활기 넘치는 행정서비스 제공을 기대하기는 어렵다.애초 생활혁신센터의 준공이 2023년 말로 예정돼 임시방편으로 마련된 청도읍사무소이지만 앞으로 수년간 행정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근무자들, 스스로 불평을 토로할 수 없는 공직자의 속 사정을 헤아리는 군정 추진도 필요하다./심한식기자 shs1127@kbmaeil.com

2024-06-10

이러고도 나라가 제대로 굴러갈까

김진국 고문 민주당이 국회의장과 부의장을 단독으로 선출했다. 야당이 단독으로 의장을 선출한 것은 의회 사상 처음이다. 11개 상임위원장도 10일 단독으로 선출하겠다고 한다. 국민의힘과 논란을 벌인 법사위원장, 운영위원장,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은 모두 민주당이 차지하겠다고 한다.국민의힘이 합의를 거부하지만 일사천리다. 국회의장에 이어 법사위원장까지 뺏기면 국민의힘은 견제할 수단이 없어진다. 두 가지를 나눠서 맡는 게 관행이었다. 국회 의석 비율이 비슷했던 21대에서도 후반기에는 법사위를 국민의힘에 돌려줬다. 관행을 인정한 셈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협상할 생각이 아예 없다. 대통령실을 담당하는 운영위도 양보할 생각이 없다.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말 21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통과된 법안 4개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전세사기특별법, 민주유공자법…. 임기 2년 만에 벌써 일곱 번째, 법안으로는 14번째 거부권 행사다. 현행 헌법이 개정된 1987년 이후 가장 많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7번, 노무현 전 대통령이 4번으로 모두 여소야대(與小野大)였다. 이승만 대통령이 45건으로 가장 많다. 그때는 건국 초기와 전쟁의 혼란이 있어 그렇다 해도, 윤 대통령은 다르다. 물론 그 책임을 윤 대통령이 혼자 떠안을 순 없다. 민주당도 협상이나 타협 가능성에 문을 닫아걸었다. 22대 국회가 시작하기도 전부터 ‘탄핵’을 떠드는 형편이다. 국회가 열리자마자 특검법만 줄줄이 내밀었다. 그것도 윤 대통령 내외를 겨냥한 특검법이다. 결국 대통령 흔들기나 궁극적으로 탄핵을 겨냥한 게 아니냐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국회는 제1당이 폭주하고, 대통령은 방치하다 거부권을 휘두른다. 양쪽 모두 합의하려는 노력을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 국회의장 선출은 국민의힘이 반대할 이유가 없는데도 단독으로 밀어붙였다. 이재명 대표는 “법대로 하자”라고 말했다. ‘어차피 합의는 어렵다. 시간을 끌지 않고 밀어붙이겠다’라는 것이다. 오죽하면 ‘여의도 대통령’이란 별명이 붙었겠는가. 민주당은 밀어붙이고, 윤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하고…. 22대 국회는 이런 외통수 정치를 반복할 게 뻔하다.다수결이 민주주의 원리다. 그렇지만 다수결에만 의존하면 민주주의가 죽는다. 다수의 횡포 속에 다양한 의견들이 다 죽는다. 오직 하나의 의견만 존중받는 사회가 전체주의 사회다. 대화하고, 토론하고, 타협, 협상하는 숙성 과정이 필요하다. 소수파의 의견을 끌어안는 포용 정신이 있어야 한다. 서구 민주주의의 기초가 다원주의인 이유다.윤 대통령도 외골수다. 총선 직후 이재명 대표를 만나고는 끝이다. 대통령은 권력자다. 그런데도 야당을 설득하지도, 국민을 이해시키려 하지도 않는다. 다시 총선 전의 모습이다. 심지어 국민의힘 초선의원들에게는 대통령 거부권을 협상카드로 써먹으라고 말했다. 대통령도, 제1야당도, 대결만 생각한다. 지지세력만 믿고 정치한다. 무슨 일을 해도, 지지하는 팬덤 정치다. 선거 때마다 ‘비호감’ 경쟁을 벌이는 이유다.민주당은 의사 증원을 주장해 왔다. 국민의힘이 자기 지지기반인 의사들의 기득권을 허물고 개혁하는 것이다. 민주당이 적극 지원할 만하다. 하지만 힘을 실어주지 않는다. 윤 대통령은 야당 협조를 고려도 안 했다. 선거에 이용한다는 오해만 불렀다. 초당 외교는 불문율이다. 요즘은 완전히 어깃장이다. 주변 강대국에 줄을 댄 대신들이 서로 싸우던 구한말을 보는 것 같다. 어떤 때는 정말 저 정치인이 저런 생각이었는지, 경쟁 정당에 반대하기 위해 저런 말을 하는지 헷갈릴 때가 있다.이런 상황에서 국정이 제대로 굴러갈 수 있을까. 국정 표류의 책임을 상대에 떠넘긴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국가 지도자로서 최소한의 책임감이라도 있다면 하기 싫은 일도 하고, 양보하고, 설득해야 마땅하다. 국정의 최종 책임자는 대통령이다. 무조건 양보가 능사는 아니지만 일이 되도록 할 책임이 있다. 야당도 국정에 대한 책임감을 보여주는 것이 더 많은 국민의 신뢰를 얻는 길이다. 정치를 왜 하는가. 명분과 염치를 팽개쳐서는 안 된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06-09

지방소멸 위기 대응할 지역활력타운

박남서 영주시장 영주시에 지방소멸 위기에 대응할 지역활력타운이 들어선다.2024년 지역지역활력타운 조성 공모사업에 선정됐기 때문이다.영주시는 최근 국가산단 최종 승인과 영주댐 준공에 따라 산업, 문화, 레저 등 다양한 부분에 성장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이는 영주시의 미래를 밝게하는 청신호다. 전국 240여개의 지방자치단체들 중 광역 및 인구밀집 도시 일부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지자체는 비슷한 환경의 농축수산업과 지역 문화, 관광자원, 산업기반, 교육 자원을 갖고 있다.각 지자체는 지역 발전을 위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시책으로 적극 추진하지만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하는 것도 현실이다.그러나 이번 영주시의 2024년 지역활력타운 조성 공모사업 선정은 영주시가 한층 더 발전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다.지역활력타운은 행정안전부, 국토교통부, 문화체육관광부 등 8개 중앙부처가 합동으로 청년층·은퇴자 등의 지역 정착을 지원하는 사업으로 주거·문화·복지·일자리 등을 복합 지원해 살기 좋은 주거단지를 조성하는 사업이다. 앞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영주시는 최근 국가산단과 영주댐 준공에 따른 산업, 문화, 관광 레저 기반이 확충되면서 이를 뒷받침 할 정주여견 등 대도시 수준의 생활서비스의 필요성과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이런 가운데 지역활력타운 선정은 영주시로서는 미래 성장 예측의 가능성을 높여주는 성과물이라 할수 있다. 지방자치단체를 성공적으로 이끌어내는 것은 지역민들과 자치단체 공무원, 자치단체장, 의회 등 다양한 기관들의 협조와 협력이 필요하다. 성장 조건이 형성되더라도 지역에 맞는 미래 성장 가능한 부분을 어떻게 지역특성과 행정에 접목시키느냐는 것도 중요한 부분이다. 영주시의 미래 성장동력으로 지역활력타운이 부각 되는 것은 지난해 준공된 영주댐과 첨단베어링국가산업단지 최종 승인과 맞불려 있다는 점이다.이번 지역활력타운 조성사업은 주거, 생활인프라, 생활서비스가 연계된 인구유입 활력 플랫폼을 구축, 영주의 새로운 생활거점을 조성해 지방소멸 위기에 대응하고 필수 생활 서비스를 통합적으로 지원하는 신거점으로 만들어 나가게 된다.지역활력타운은 총사업비 693억원을 투입해 하망동 514번지 일원 4만3088㎡에 청년·신혼부부를 위한 연립형 타운하우스 70세대 주거단지 조성과 복합커뮤니티센터, 실내스포츠복합시설, 열린공원 등 다양한 기반시설을 조성한다.이를 통해 영주첨단베어링 국가산업단지 조성과 지역 대기업 SK스페셜티의 대규모 추가 투자 등으로 유입되는 청년 근로자의 지역정착을 유인하고 구도심 권역에 거점 인프라를 조성, 대도시 수준의 생활서비스를 제공을 위해 영주시의 행정력을 집중할 계획이다.영주시의 미래를 위해 청년층의 안정적 정착을 위한 지역의 정주 여건 개선과 낙후된 구도심 발전을 위한 획기적 계기 마련, 현재 지역에서 추진 중인 대규모 사업들과 더불어 지역을 떠난 청년들을 유입해 도시 활력을 높일 수 있는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는 등 영주 발전을 전략적으로 실현해 나갈 것이다. 이번 지역활력타운 조성사업은 영주시가 구상하고 있는 지역 균형 발전과 세대간 원활한 교류를 바탕으로한 사회적·문화적 소통의 장을 조기에 실현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영주시는 지역의 정체성인 선비정신을 바탕으로 과거와 현대가 공존하는 도시로서의 경쟁력과 차별화된 면모를 갖추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나갈 방침이다. 지방자치시대가 되면서 주민들의 요구와 그 다양성도 전문화되고 있다. 또한 지역주민의 동시다발적인 숙원사업의 요구도 늘어가고 있다. 이러한 주민 요구는 지방재정으로는 해결하지 못하는 난제이기도 하다.그러나 주민들의 다양한 요구에 대한 해소책은 생산성 있는 지역의 발전 기반이 마련돼야 한다.우리 시는 사업의 연계성과 종합적인 성과를 도출하고자 시민과의 소통을 통한 현장 요구 해소를 위해 유연한 사고를 바탕으로 사업을 추진해 나갈 것이다. 조속한 사업의 완료보다 끈기 있고 어떤 상황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고 진중하게 바라보는 행정 중심을 이끌어 내기 위한 노력을 경주할 것이다. 과거를 이해하고 현재를 경험하며 성장하는 도시, 미래를 준비하는 영주시로서의 면모를 갖추어 나갈 것이다.미래를 꿈꾸는 영주시, 열정적인 영주시, 적극적인 사고의 영주시가 되도록 더욱 정진할 것이다.

2024-06-09

이따위, 종이쪽지에도

물이 스미지 않을 적엔 스스럼없이쉽게 떨어졌지만그 몸에 물기가 점점 번져들자 종이 두 장은마주 달라붙어, 서로를 견인하게 되었다축축해진 두 몸이 혼신으로 밀착하여한 쪽을 떼어내자면 또 다른 한 쪽이사생결단,먼저 자신을 찢어놓으라는 것이다.이따위 종이쪽지에도 이별은고통 없이는 없나 보다.- 이수익, ‘이따위, 라고 말하는 것들에게도’전문 (‘꽃나무 아래의 키스’, 천년의 시작) 이희정 시인 아프다, 지극히 감상적이고 개인적인 낭만을 종이 두 장이 견인하고 있다. 이 시는 시인의 구체적 체험을 재현한 서술 한 줄 없이 흡사 뼈와 근육만으로 이뤄진 것처럼 사건의 이미지에만 힘을 주고 있다. 마치 그들이 어떻게 찢어지는가를 두 눈 똑바로 뜨고서 보라고 하는 듯하다.그러니까 이별은 사랑이라는 마술적 전제에서 비롯된다. 그 마술은 꼭 그 사람이어야 할 필요가 없는 우연을‘물’이 스밈으로써 반드시 그 사람이어야 하는 운명으로 바꿔버렸다. 혹은 반대의 방향으로 작용할 때 연인들은 가볍게 해체될 것이다.이 시에서 종이 두 장은 이별의 분위기에 더없이 어울리는 오브제다. 여기에 담긴 것은, 왜 어떤 연인들이 절박한 이별에 직면하는지에 대한 존재론적인 질문을 담고 있다. 좋은 러브스토리는 가장 유별난 연애담을 다루는 듯 보여도 실은 지극히 사소한 장면으로 확인됨으로써 현대의 그 많은 연인의 사랑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다시 말하면 모든 이별은 그 자체로 운명적이면서 예외 없이 허망하다.인간의 정신적 자유와 평화가 욕망과 집착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는 진술은 새롭지 않다. 너무도 자주 반복되었기에. 하지만 그런 삶의 지혜는 이수익 시인이 말하는‘이따위’라는 사소하고 흔한 장소에서 발견되기도 한다.“우리 주변에서 ‘이따위 것’으로 불리는 대상은 대체로 하찮고 비루한 것들이기 십상이다. 시인이 묵도한 풍경은 하찮은 종이쪽지 두 장이 우연히 물기에 젖어 달라붙어 있는 풍경이다. 회자정리, 생자필멸이라는 삶의 기본 원리를 떠올리면 문득 경건한 마음마저 든다.”(평론가 장영우) 함부로가 넘쳐나는 세상이지 않은가. 너무 쉽게 버려지고 너무 쉽게 잊히는 풍속 가운데 시인은“이따위 종이쪽지”의 붙음과 떨어짐의 사건에서 집착과 이별이 초래하는 삶의 근원적 비애를 읽고 있다.그렇다면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는 어떠할까. “이별에 미련을 남기지 않으려면 뒤통수를 치고 떠나야 한다”는 어느 드라마의 대사는 현대인의 가벼운 세태를 조롱하고 있는 듯하다. 뒤통수란 곧 어느 한쪽의 잔인한 배신을 떠올리게도 한다. 그것은 실연한 사람의 기억에 따른 것일 가능성이 크다. 그에 반해 이별 후에 남는 것이 뒷모습이라면 로맨스에 가까울 것이고, 결국 로맨티시즘과 리얼리즘의 줄다리기가 연인들의 영원한 숙제임을 보여준다. 결국 이 시가 다루는 것은 연애라는 알고리즘, 사랑의 생과 멸 그 자체다.그리고 무엇보다 ‘몸’이 있다. 이 시에 나오는 두 장의 몸은 단지 이별의 정조를 만드는 피사체로만 기능하지 않고, 몸과 몸이 이끄는 사랑의 현재 위치를 가장 적실하게 지시하는 좌표 역할을 한다. 몸과 몸이 사랑의 심리를 긴밀하고도 절박하게 교직하는 시인의 재현이 놀랍다. 계절의 변화를 거부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나의 시간이 끝난다고 삶이 멈추는 것은 아니다, 모든 이별에는 그들만의 아름다움이 있다.“마주 달라붙어, 서로를 견인하게 되었다”고, “축축해진 두 몸이 혼신으로 밀착하여” 있어 “떼어내자면 사생결단 먼저 자신을 찢어놓으라는”것이다.이따위, 라고 말하는 것들은 슬프다. 견딜 수 없이 서늘한 정도로 성숙한 존재들이다. 매우 감성적이면서도 놀랍도록 철학적이다. 만일 이 시가 아무렇지 않다면 당신은 어쩌면 진정한 러브스토리를 가져보지 못했거나 사랑 자체를 믿지 않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이따위 종이쪽지에도 이별은 고통 없이는 없나 보다.”

2024-06-09

장의차를 보다가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퇴직 이후 융합 전공이나 교양 교과목을 강의하는 시간강사 노릇을 하게 되었다. 배운 도둑질이 오직 책을 읽고, 생각을 정리하여 글을 쓰고, 그것을 대중과 공유하는 한 가지였으니 그럴 법도 하다. 일주일에 두 번 출강하여 학생들과 대면함은 유쾌하기도 하고, 나의 청춘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도 하니 일석이조(一石二鳥)다. 고마울 따름이다.얼마 전 이른 아침에 가창 인근 사거리에서 장의차가 느릿느릿 장지(葬地)로 나아가는 장면이 눈에 밟힌다. 적절한 햇살과 바람과 기온을 보면서 ‘참 좋은 때 가셨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찾아든다. 지상에 오는 일과 마찬가지로 가는 일 또한 우리의 의지나 바람과 무관하다. 인연생(因緣生) 인연멸(因緣滅)이니 새삼 무슨 말을 덧붙이겠는가?!장의차가 달리는 거리에는 이팝나무의 화사한 꽃이 모두 떨어지고, 작은 열매가 앙증맞게 매달려 있다. 봄꽃은 다 사라져 천지에 자취 하나 찾을 수 없다. 하기야 청도 누옥(陋屋)의 마당에도 붓꽃과 작약, 튤립은 전부 사라지고, 낮분홍달맞이꽃과 자주달개비 정도가 한여름을 맞고 있다. 이 모든 게 시간의 유장한 흐름과 어우러져 있는 것이다.장의차를 보노라니 오래전에 맞이했던 친구 어머니의 죽음이 떠오른다. 예기치 못한 사고로 속절없이 세상을 버려야 했던 황망한 죽음과 장지의 낯선 풍경이 환각처럼 다가온다. 그 후로 이런저런 죽음과 마주하면서 생의 허무함 혹은 느닷없음에 적잖게 괴로워했다. 그렇지만 시간은 주저하지 않고 앞으로 달려 오늘에 이른 것이니, 아득한 세월이 지나간 셈이다.가로수의 녹음이 짙어지면 매미가 모습을 드러낼 것이고, 한여름의 불청객(不請客) 모기가 인간의 혈액을 탐하게 되리라. 하지만 꽃이 진 자리에 하나둘 열매가 들어서고, 거기서 생명의 이어달리기가 진행될 터다. 하나의 소멸이 다른 생명의 문을 여는 것이니, 생과 사의 거리는 그리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열두 살 먹은 고타마 싯다르타는 ‘농경제’에 나갔다가 농부의 삽날에 반토막으로 잘린 벌레와 그것을 낚아채 가는 새와 그 새를 커다란 발톱으로 움켜잡고 날아가는 독수리를 보며 경악했다고 전한다. 다정다감한 소년 싯다르타는 비정한 ‘먹이 사슬 구조’에 전율하고 깊이 괴로워한다. 이것이 어쩌면 훗날 그의 출가를 결정하는 계기였는지 모른다.자연계의 순환구조를 약육강식의 인식으로 수용한 소년의 맑은 영혼이 손에 잡힐 듯하다. 우리가 항용(恒用) 일용할 양식으로 수용하는 온갖 먹을거리의 가혹한 운명을 돌이키면 유구무언이다. 30년 수명의 닭이 각종 항생제와 성장 호르몬으로 범벅되어 고작 3주 만에 식탁에 오르는 게 현실이고 보면 가공(可恐)할 세상에서 우리는 살아가는 셈이다.장의차에 실려 어딘가로 옮아가는 고인의 명복을 빌면서 언젠가 나 역시 저 길을 따라간다고 생각하니 망연해진다. 고작 100년 인생을 천년만년 살 것처럼 갖가지 행악질하면서 권력과 돈에 탐닉하는 군상을 돌이키매 눈앞이 아득해진다. 하늘이여, 유한한 삶에 큰 빛을 내리소서!

2024-06-09

야당만의 국회는 ‘국민대의기관’이 아니다

민주당이 오늘(10일) 국회 본회의를 열어 자당 몫으로 발표한 11개 상임위원장 선출안을 통과시킬 가능성이 크다. 소수 여당인 국민의힘이 본회의 보이콧 방침을 세웠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법사·운영위원장을 양보하지 않으면 본회의에 참석하지 않는다는 계획이다. 당 정책위 산하에 15개 특위를 구성한 국민의힘은 앞으로 국회 파행에 대비해 특위를 중심으로 민생 현안을 챙기겠다는 구상이다.그동안 국회는 의석수를 기준으로 상임위원장을 배분하는 게 관례였다. 민주당이 주장하는 것처럼 ‘법대로’(다수결) 국회 운영이 이뤄질 경우 승자독식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법안통과의 관문역할을 하는 법사위원장은 다수당의 입법 독주를 막기위해 제2당이 맡아왔다. 대통령실을 피감기관으로 두는 운영위원장도 집권당이 맡는 게 상식이었다.민주당이 법사위원장을 고집하는 것은 법사위가 검찰·법원을 견제할 뿐 아니라 탄핵소추를 관할하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22대 국회가 문을 열자마자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겨냥한 ‘채상병 특검법’과 ‘김건희 여사 종합특검법’을 발의했다. 지난 3일에는 ‘쌍방울 대북 송금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을 수사하겠다는 특검법까지 발의했다. 검찰수사를 수사하겠다는 특검법은 지금까지 듣도 보도 못했다. 조국혁신당은 한동훈 국민의힘 전 비상대책위원장 자제를 겨냥한 특검법까지 발의했다. 야권이 이를 일사천리로 통과시키기 위해서는 법사위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민주당은 21대 국회 전반기에도 상임위원장을 싹쓸이해 ‘반(反)민주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주요 상임위원장을 거대 야당이 독식하겠다고 하는 것은 ‘의회독재’를 하겠다는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이러니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여의도 대통령으로 군림하려 한다’는 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4·10 총선에서 국민이 민주당에 175석을 준 것은 ‘입맛대로 국회를 운영해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소수의견을 존중하며, 대화와 협상을 통해 국회를 운영하는 것이 ‘의회주의’의 근본정신이다.

2024-06-09

경북도 행복기동대

우정구 논설위원 일본에서는 고독사, 자살, 살인사건 등으로 사망자가 나온 집을 ‘사고물건’이라 부른다. 고령화와 1인 가구 증가 등으로 이런 사고물건이 늘면서 사고물건만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부동산 업체까지 생겼다고 한다. 사고물건은 시세보다 10∼50%까지 낮춰 팔고 있으나 선뜻 나서는 이가 많지 않다고 한다.고독사라는 말은 1990년대 일본에서 나홀로 죽음이 급증하면서 생긴 신조어다. 우리나라도 저출산, 고령화, 이혼율 증가 등 복잡한 사회적 요인에 의해 고독사 숫자가 늘고 있다. 2017년 2412명이던 고독사가 2021년에는 3378명으로 1000명 가까이 늘었다. 그중 50∼60대가 60%를 차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마처 세대’라는 신조어는 부모를 부양하는 마지막 세대이자 자녀에게 부양을 받지 못하는 처음 세대라는 뜻이다. 우리나라에선 1960년대생(55∼64세)을 이르는 말로도 쓰인다. 한 복지단체의 설문조사에 의하면 ‘마처 세대’ 3명 중 1명은 자기 자신이 고독사 할 것을 우려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와 있다.우리나라 1인 가구는 이제 1000만 가구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혼자 살아도 전혀 이상하지 않는 시대의 흐름 속에 외부와 단절된 집에서 고독사하는 일이 더 빈번해질 것 같다. 노년층의 고독사뿐 아니라 장기불황에 의한 실업과 SNS를 통해 느껴지는 상대적 박탈감 등으로 청년층에서의 고독사도 증가세에 있다.고독사는 이제 가정의 문제가 아닌 사회 문제로 번지고 있다. 정책적 지원과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다. 경북도가 고독사 예방 활동을 하는 행복기동대를 발족했다. 지역사회 활동가 등으로 조직한 인적네트워크다. 맹활약을 기대한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6-09

대구 新川의 변신, 시민 삶의 질도 높인다

대구 신천은 대구시민에게는 가장 친숙한 수변 공간이다. 연간 600만명 이상이 이곳을 찾아 산책과 운동을 하며 여가를 즐기는 곳이다. 대구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에서 발원한 신천 물은 27km 유로를 거쳐 금호강으로 합류한다. 대구 도심을 남북으로 길게 가로질러 흐르기 때문에 하천이지만 대구시민의 사랑을 듬뿍 받는 곳이다.신천 양쪽에는 산책로와 체육시설 등이 조성돼 있다. 계절별로 수영장과 스케이트장도 가변적으로 설치 운영된다.홍준표 대구시장 취임 후 신천의 모습이 크게 달라지고 있다. 대구 신천 숲공원 조성사업이란 이름으로 1000억원이 넘는 예산이 투입돼 신천의 모습을 바꾸고 있다. 작년 10월부터 대구시는 신천둔치에 총 3000그루의 나무를 심는 푸른 신천숲 조성사업에 나서고 있다. 시민들이 이곳에서 숲길을 걷고 물소리를 들으며 일상 속에서나마 잠시 휴식을 즐기게 한다는 구상이다.또 신천의 경관을 조망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도 만들고 계절별로 가변적으로 운영하던 물놀이장과 스케이트장 사철을 고정식 시설로 바꾼다. 올 여름에는 전국 최초로 이곳 수영장서 시민들은 파도풀 수영을 즐길 수 있게 된다. 신천 양쪽 보행로도 폭을 넓히는 등 대폭 정비했다.신천 숲공원 조성사업은 홍 시장의 주요 시책 중의 하나다. 홍 시장은 신천을 전국적 명소로 만들어 시민들이 생활속 체육과 여가를 즐기는 동시에 관광자원화하는 생각도 가지고 있다.7일 홍 시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대구 신천공원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이곳에 수상테크를 설치, 전국의 선남선녀들이 이곳에 와서 프러포즈를 할 수 있는 프러포즈 명소를 만들겠다고 했다. 프랑스 세느강의 퐁네프 다리가 프러포즈 명소로 유명한 것과 같이 신천도 프러포즈 명소로 하겠다는 생각이다.대구 신천이 바뀌어 전국적 명소가 된다면 도시 이미지에도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신천의 명소화는 시민들의 자긍심을 높이고 삶의 질을 더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반길 일이다.

2024-06-09

상식과 절차를 지키는 정부를 원한다

유영희 작가 지난 2월, 지자체에서 공모한 독서동아리 활동비 지원 사업에 신청서를 제출했다. 올해 뇌과학책 독서동아리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에는 도서관에서 30만 원을 받아 뇌과학 박사를 초청해서 특강을 들었다. 전문가 역량에 비해 강사료를 너무 적게 드려서 민망하던 차에 올해는 지자체에서 50만 원을 지원하는 사업이 있다기에 신청한 것이다.두 달이 지난 4월 말, 높은 경쟁률을 뚫고 채택되었다는 통지를 받았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도서관에서 집행하는 30만 원은 사서가 처리해주었는데, 지자체 보조금 사업은 동아리 대표가 보탬e이라는 사이트에 사업 내용을 다 등록하고 영수증 처리 내용도 올리고 세금까지 직접 세무서에 납부해야 한다고 한다.올해부터 등록 방식이 더 복잡해졌다며 담당 공무원이 친절하게 알려주었지만, 너무 어려워서 결국 노트북을 들고 두 번이나 공무원을 찾아가서 해결했다. 집행 방식은 더 복잡해서 결국 담당자가 동아리 대표들을 소집하여 교육을 해주었다. 예산 변경은 반드시 사전에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하며 여러 주의사항을 일러준다. 너무 번거로워서 내년에는 지원 안 하고 싶은 생각도 들지만, 세금이 허투루 쓰이지 않도록 철저하게 관리하는 행정 기관에 믿음이 갔다.그런데 정부에서 엄청난 세금이 들어가는 사업은 이렇게 공식적인 절차를 거치고 있는지 의문이다. 국민 세금 최소 5000억 원이 드는 시추 사업 분석 업체 선정에 절차를 제대로 지켰는지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바로 경북 포항 영일만 심해 석유와 가스 매장 가능성을 분석한 액트지오와의 계약이다. 정부 발표에 의하면, 액트지오는 세계 최고 수준의 심해기술평가 전문기업이라고 한다. 문제는 액트지오는 2017년에 설립한 후 2019년 1월부터 2023년 3월까지 법인 자격 박탈 상태였으며, 대표의 거주지를 회사로 사용하고 있을 정도로 영세한 기업이라는 것이다. 더 문제는 이 업체를 선정하는 절차이다. 50만 원 지원금 사업에도 집행하기 석 달 전에 공고하고 서류 내고 두 달 동안 심사를 거쳐서 합격자를 발표했다. 관공서에서 시설 공사를 계약해도 4억 원이 넘으면 경쟁 입찰을 해야 한다. 그런데 엄청난 세금이 드는 시추 사업 분석에 경쟁 입찰은 했는지, 누가 입찰에 참여했는지 깜깜이다.액트지오가 매장 가능성을 언급한 지역은, 이미 세계적인 석유개발 회사 우드사이드가 15여 년간 조사하고 시추까지 하고서도 미래가치 가능성이 없다고 작년 3월에 철수한 곳이다. 그런데 우드사이드 철수와 거의 동시에 액트지오를 경쟁 입찰 과정을 거쳐 선정했다는 것은 시간상 불가능에 가깝다. 우드사이드 철수 후 나왔다는 한국석유공사의 추가 자료라는 것은 무엇인지도 밝혀야 한다.정부는 액트지오와 주고받은 공문서가 모두 기밀이라면서 공개를 거부하고 있다. 의대 증원 근거가 확실하다고 주장했지만 회의록도 없었던 것이 엊그제 일이다. 정부는 경쟁 입찰 과정과 액트지오 전문성이 세계 최고라는 근거를 밝혀야 한다. 이것이 세금 쓰는 상식적 절차다.

2024-06-09

올바른 직장인의 삶, 가치관

장광일 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인디언 부족이 ‘원숭이를 잡는 법’이란 영상이 있다. 인디언은 원숭이가 자주 다니는 길목에 손이 들어갈 만한 조그만 굴을 파서 그 안에 볶은 콩을 넣어 두고 주변에서 기다리고 있다. 지나가던 원숭이가 그 굴에 손을 넣어 음식을 집을 때 인디언은 그 원숭이를 잡으러 간다.그런데 원숭이는 자신을 잡으러 오는 것을 보고도 도망가지 못하고 잡히고 만다. 그 이유는 손에는 볶은 콩을 꽉 움켜잡고 있었기 그 때문에 그 굴에서 손을 빼지 못했기 때문이다.우리의 직장 생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눈앞에 작은 것에 얽매여 미래의 더 큰 것을 놓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직장인이 현재 자신만의 편안함을 위해 ‘기본의 실천’을 하지 않으므로 큰 사고가 발생하여 모두의 불편함을 겪는 사례를 현장에서 종종 본다.내가 근무하는 직장에서 더욱 큰 그림을 그리고, 그 모습을 달성하기 위해 꾸준하게 노력하는 것이 바로 조직 경쟁력이고 이를 위해서는 현재 꽉 움켜쥐고 있는 작은 편안함을 펴야 할 때라고 본다. 항아리에 모래, 자갈, 큰 돌을 넣어야 한다면 무엇부터 넣어야 하는가. 물론 큰 돌을 넣고, 자갈을 넣고 모래를 넣아야 큰 돌의 작은 공간을 채워 가능한 한 많이 넣을 수 있다. 큰 돌을 우선 채우기 위해서는 바른 가치관(價値觀)으로 넓게 보아야 한다.가치관이란 어떤 행위가 옳고 어떤 행위가 틀린 것이냐 하는 판단과 어떠한 상태가 행복하고 어떠한 상태가 불행한가를 판단하는 것으로 판단가치에 대한 관점 또는 의식이라 한다.관(觀)자는 96B9(새추)자 위에 큰 눈과 눈썹을 그린 것으로 96DA(관)자는 황새를 표현한 글자이다. 이렇게 관(觀)자에 見(견)자를 결합한 관(觀)자는 나무 위에 올라가서 황새처럼 넓게 ‘보다’라는 뜻이 있다. 즉, 가치를 넓게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로 보면 개인에서의 가치관은 자아실현을 위해 ‘오늘보다는 내일, 올해보다는 내년에 조금씩 성장하기 위해 학습하는 삶이다.” 조직에서의 가치관은 “안전하고 깨끗한 행복한 현장 만들기를 위해 끊임없이 개선하고 실천하는 삶이다.”교육학자 브라멜드(Brameld)는 사회 속에서 자신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발휘하는 것이 자아실현이라 했다. 이를 실천하듯 훌륭한 경영인은 직원 개개인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프로젝트(Project)를 부여하여 자아실현의 장을 마련해 주고 성과에 대한 경제적인 포상과 더불어 칭찬과 격려를 통해 프로젝트에 대한 만족감과 성취감을 느끼게 한다.사람은 저마다 가치 있는 삶을 추구하면 살고 있다. 내가 무엇을 위해 사는지, 내가 무엇 덕분에 행복한지, 내가 관심 있는 것이 무엇이며, 시간과 돈과 에너지를 어디에 많이 쓰고 있는지 관심이 적을 수는 있어도, 가치가 없는 것에 시간과 돈과 에너지를 쓰는 것은 낭비라 생각한다. 바른 가치관은 우리의 삶을 이끄는 나침반과 같다. 어떤 결정을 내릴 때, 어떤 관계를 맺을 때, 어떤 목표를 세울 때, 바른 가치관이 있는 사람은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다. 이 기회에 다시 한번 볶은 콩 한 줌을 못 놓은 원숭이처럼 우리가 작은 것에 집착하여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고민해 보길 바란다.

2024-06-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