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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포항 해양쓰레기 발생 전국 1위 불명예 벗자

본지는 창간 34주년을 맞아 지속발전 가능한 포항의 성장을 위해 환경오염 문제와 그 해결책을 모색하는 시리즈를 연재하고 있다. 2024년 5월 31일자 1면시리즈에서는 산업화 과정에서 파생한 환경오염 및 파괴에 대한 전반적 문제를 짚는다. 특히 첫 회에서는 바다를 끼고 해양문화도시를 지향하는 포항시가 해양쓰레기 발생량 전국 1위라는 불명예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주요 테마로 강조했다. 해양쓰레기 발생 1위는 글로벌 도시를 꿈꾸는 포항의 이미지에 나쁜 영향을 줄뿐 아니라 포항시민의 자존심에도 상처를 주는 문제이기 때문이다.포항시는 여타 도시와는 달리 청어를 시어(市魚)로 삼고 있다. 바다와 수산업에 대한 비중을 높게 보고 이를 상징화한 것이다. 또 시는 일찍부터 환동해 중심도시를 목표로 시정을 펼쳐왔다. 해양관광, 해양스포츠, 해양관련 먹거리와 볼거리를 개척하고 바다를 낀 도시로서 각종 콘텐츠를 확충하는 데 주력했다.특히 청정해양도시 이미지를 알리고 관광자원을 목표로 호미곶국가해양정원 지정을 위해 노력 중이다. 해양쓰레기 발생 1위는 이런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것과 같아 하루빨리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포항의 해양쓰레기 발생은 작년 한국해양대 연구진의 논문 발표로 알려졌으나 포항시 해양쓰레기 수거 실적에서도 이를 증명한다. 포항시가 2021년부터 2023년까지 3년간 수거한 해양쓰레기는 1626t으로 2018년부터 3년간 수거한 양의 두배다. 매년 그 양이 증가하고 있어 더 문제다. 포항지역 환경단체는 이러한 문제 해결을 위해 배 위에서 해양쓰레기를 수거 처리하는 하이브리드 특수선박 기술 도입을 주장한다. 기술적인 문제는 관계당국이 검토해 좋다면 서둘러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옳다. 그와 동시에 시민들의 환경의식을 일깨우는 노력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생활 속에서 환경보전을 각자가 실천하는 것은 환경문제 해결의 출발점이다.환경오염에 대한 본지의 연재가 자극제가 돼 시민실천운동으로 번진다면 포항의 해양쓰레기 해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2024-06-02

지구당 부활 필요하지만 ‘검은돈 차단’이 관건

‘지구당 부활’이 최근 여야 정치권에서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 등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들이 지구당 부활을 주장하면서 22대 국회 초반 뜨거운 논쟁거리가 된 것이다. 입법 논의도 시작됐다. 민주당 김영배 의원은 국회 개원 첫날, 지구당 부활을 핵심으로 한 정당법 개정안을 발의했고,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지구당 설치와 후원회 모금을 가능하게 하는 정당법 개정안을 발의하겠다고 했다.여당에선 ‘취약한 원외조직’이 총선참패의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지구당 부활론에 힘이 실리고 있다. 한 전 위원장은 최근 “차떼기가 만연했던 20년 전에는 지구당 폐지가 정치개혁이었지만, 지금은 지구당을 부활하는 것이 정치개혁”이라고 밝혔다. 여당 당권 주자인 나경원·안철수·윤상현 의원이 이에 동조했고, 이해 당사자인 원외 위원장들이 지구당 부활을 요구하는 성명까지 냈다.지구당은 지역구별 위원장을 중심으로 사무실을 두고 후원금을 받을 수 있는 중앙당 하부 조직이다. 지난 2002년 대선 당시 ‘차떼기’로 불린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 사건을 계기로 2004년 들어 폐지됐다. 당시 지구당 폐지에 앞장섰던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구당은 지역토호의 비리온상이다”며 부활론에 적극 반대하고 있다. 홍준표 대구시장도 “지구당 부활 논쟁은 반(反)개혁일 뿐 아니라 여야의 정략적 접근에서 나온 말”이라며 비판하고 있다.사실 지구당은 제대로만 운영된다면 정당 민주주의에 부합하는 제도임이 분명하다. 무엇보다 지역구 사무실을 둘 수 있는 현역의원과는 달리, 편법으로 사무실을 운영해야 하는 원외 위원장의 차별해소를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국회개원 때마다 지구당 부활 논의가 반복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문제는 지구당이 ‘금권선거의 온상’이 될 우려가 아직도 크다는 점이다. 22대 국회에서 지구당 부활을 입법화하더라도 ‘돈 먹는 하마’라는 비판을 차단할 수 있는 투명성 보장 장치는 철저하게 마련돼야 한다.

2024-06-02

어서와, 구미는 처음이지

김장호 구미시장 중장년 세대라면 누구나 옛 장터에서의 정겨웠던 추억 한두 가지쯤은 갖고 있기 마련이다.필자도 어린 시절 시끌벅적한 시장을 구경하며 설레었던 기억이 아련하다. 구미역 앞에는 오랜 전통을 가진 ‘새마을중앙시장’이 자리하고 있다. 그동안 구미의 역사와 함께 부침을 겪어왔다.70∼80년대 전성기를 누리며 구미를 대표하는 전통시장으로 자리매김했지만, 시대가 변하고 지역이 쇠퇴하면서 다른 전통시장과 마찬가지로 밤에는 불이 꺼지고 점점 침체되어 갔다.그랬던 새마을중앙시장이 최근에는 주말 저녁이면 구름 인파가 몰리며,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붐비고 있다. 지난 4월 새롭게 개장한 ‘달달한 낭만야시장’의 인기 덕분이다.개장 첫 주 4만 명이 넘는 방문객이 몰렸고, 일부 가게는 평소의 6배에 달하는 판매고를 올리면서, 시작부터 대박을 터트렸다.다른 지역에서도 많이 찾고 있는데, 서울의 한 방문객은 “서울 명동과 남대문을 옮겨 놓은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그동안 구미는 산업도시로 잘 알려졌지만, 그만큼 회색도시, 노잼도시의 이미지가 강했던 것도 사실이다. 오랜 시간을 지나며 굳어진 구미의 이런 이미지를 한순간에 바꾸기란 쉽지 않았다.인식의 전환이 필요했다. 구미가 가진 고유한 특성과 가치를 최대한 활용하고, 주변의 익숙했던 것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새롭게 디자인하는 작업에 돌입했다.구미의 대표 관광지인 금오산엔 알록달록 깜찍한 의자와 예쁜 포토존을 설치하고 잔디밭 출입도 자유롭게 허용했다. 낙동강 수변공간에는 스포츠 시설을 비롯해 특색있는 휴식 공간과 산책 코스를 더해 새로운 힐링공간으로 재탄생시켰다.구미 IC를 비롯한 도심 주요 장소에는 내년 개최되는 ‘2025 아시아육상경기선수권대회’를 기념해 ‘WEICOME TO GUMI’, ‘승리의 주먹’ 등 다이내믹한 조형물을 설치하고 경관조명을 더해 이색적인 볼거리를 선보였다.뿐만 아니다. 젊은이들의 거리 ‘금리단길’은 로컬크리에이터들의 손길로 골목골목 개성을 더하고 있고, 지역특색을 살린 ‘구미푸드페스티벌’과 ‘라면축제’는 새로운 도심 축제의 성공 가능성을 알리며, 구미의 심심하고 지루했던 도시 이미지 틀을 깨부쉈다.돌이켜보면, ‘낭만야시장’도 관행으로부터의 탈피, 익숙함에서 벗어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수십 년을 이렇게 해왔는데 잘 되겠냐’는 회의적인 시선, ‘대구와 다른 도시에서 이미 하고 있는데 구미에서 성공하겠느냐’는 의구심. 극복해야 했다. 끓는 물 속에서 익숙함을 즐기는 개구리를 기다리는 것은 결국 죽음뿐이지 않은가.국내외 내로라하는 야시장을 찾아 힌트를 얻고, 수차례 난상토론을 거치며 아이디어를 구체화해 나갔다. 그저 그런 야시장으로 끝나지 않도록 전문가들의 참여를 이끌어 완성도를 높이고, 다른 곳과의 차별화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시장 상인들의 적극적인 참여 속에 대학 교수님들의 도움을 받아 조명 하나, 메뉴 개발 하나에도 세심하게 신경 썼고, 한식대가와 외식업계에도 적극적으로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이렇게 해서 ‘달달한 낭만야시장’이 탄생했고, 성공적인 첫발을 내디뎠다. 덕분에 시장 안의 국수골목, 순대골목, 족발골목 등 잊혀 가던 골목길도 오랜만에 활기를 되찾게 됐다.하지만 이제 시작일 뿐이다. 앞으로 다양한 콘텐츠를 더 보강해서 야시장의 활기찬 기운을 문화로와 금리단길을 비롯한 원도심 전역에 퍼트리고, 도시 구석구석에 구미의 새로운 색깔을 입혀나가려고 한다.익숙함 너머의 새로움을 발견하고 재창조하는 도시, 깊은 정취와 넘치는 활기로 밤에도 불빛이 꺼지지 않는 도시. 낭만도시 구미의 달달한 매력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한다.

2024-06-02

나란히 집으로 가는 길

아버지는 6·25참전 용사다. 아버지 집 대문을 지키는 ‘6·25참전 용사의 집’ 이라는 문구를 볼 때마다 나는 가슴이 뭉클해진다. 지금의 내 아들보다 더 어린 나이에 아버지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젊음과 목숨을 바쳐 싸웠다. 전쟁은 많은 상처를 남겼고 많은 것을 잃게 만들었다. 아버지가 끝내 지키고 싶었던 여동생은 지키지 못했기에 늘 가슴 한 조각이 분단된 조국처럼 떨어져 있다고 말했다.70년을 넘게 통일이 되기만을 기다리며 사신 아버지는 아직도 그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동생의 얼굴은 아버지 기억 속에 아직도 선명하다고 했다. 함께 별을 보며 냇가에서 멱을 감던 기억이나 빨래줄에 빨래를 널던 수많은 기억들이 남아 있었다. 전쟁 중 아버지는 목에 파편을 맞아 상처가 깊이 박혔지만 그 상처보다 더 깊은 것은 여동생에 대한 기억이었다.몇 해 전 아버지를 모시고 ‘고성 통일 전망대’에 다녀왔다. 조국분단의 현실을 볼 수 있는 통일전망대로 가는 내내 아버지의 얼굴은 어두웠다. 민통선 지역으로 향하며 출입국 신고서를 작성했다. 안보교육 영상도 보았다. 같은 나라 안이지만 민통선으로 가면 하지 말아야 할 말과 행동들이 많았다. 왠지 삼엄하고 무서운 느낌이 들었다.‘통일전망대 관광’이라는 출입증을 국군들에게 받아 2차선 도로를 달렸다.“이대로 금강산까지 가면 얼마나 좋을꼬”아버지는 어서 이 길이 뚫려야 한다며 도로 옆 바다해변으로 고개를 돌렸다.통일전망대 앞에 오니 계단이 있었다. 통일로 가는 계단이기를 바라며 아버지는 희망의 계단을 올랐다. 지척에 북한 땅이 보인다. 뛰어 가도 얼마 걸리지 않을 땅을 우리는 망원경을 통해 보았다. 어렴풋이 철조망도 보였다. 북한의 해금강, 낙타봉, 송도해변도 눈에 담았다. 남북을 자유로이 오가는 뻐꾸기에게 아버지는 통일의 염원을 담아 메시지를 보냈다. 뻐꾸기가 그 임무를 잘 완수해 줄 것이라 믿는다.아버지의 여동생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생사를 알 수 없다. 아버지는 동생이 살아 있다고 믿었고 북쪽 땅 어딘가에 있기 때문에 만나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언젠가는 만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놓지 않았지만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점점 멀어져가고 있다. 분단은 우리 민족의 의사와 상관이 없었다. 우리는 암울한 역사를 극복하고 정상적인 역사를 회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를 이해하고, 많은 대화로 풀어 나가야 한다. 통일은 헤어진 가족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실제 탈북자가 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는 통일을 ‘엄마’라고 정의했다. 통일이 되면 엄마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란다. 그들의 그리움과 고통은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는데 늘 걸림돌이 되었을 것이다. 아버지에게도 통일은 늘 마음의 소원이었고 동생이라 정의하는 단어였다.아버지의 슬픈 안색이 기쁜 안색으로 바뀌는 날이 와야 할 텐데 생각하니 나는 마음이 급해졌다. 많은 이산가족들이 살아계시는 동안 가족을 만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구순을 훌쩍 넘기신 아버지의 기억은 아직도 그림을 그리듯 술술 풀어낸다. 여동생을 만나서 하고 싶은 이야기와 쌓아야할 추억거리가 쌓여 있는데 꿈에서조차 한 번을 만날 수 없는 시간을 한스러워했다. 김경아 작가 분단의 슬픈 현실을 자손들에게 더 이상 물려주어서는 안 된다고 아버지는 늘 말씀하셨다. 아버지는 다시 못 올 것만 같은 북한 땅을 원 없이 바라보시다가 ‘덕순아, 덕순아 살아 있거래이’하시더니 발길을 돌렸다. 목숨 걸고 탈출한 새터민들이 늘어나고 있다. 하나 뿐인 목숨을 걸지 않고도 여행 가듯 남북을 오갈 수 있는 날이 속히 왔으면 좋겠다. 정치 이념 이런 것 다 내려놓고 그저 우리 민족이고 우리말을 쓰는 형제고 우리랑 같은 뿌리니까 쉽게 오고갈 수 있는 길이 열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통일이 되면 아버지 집 대문 앞에 ‘피양 랭면 배달’ 스티커도 함께 붙어 있겠지. 백두산 여행을 마치고 아버지와 고모가 나란히 함께 집으로 들어와 식초와 겨자를 곁들인 시원한 피양 랭면을 드시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그리운 금강산’노래를 부르지 않아도 마음먹으면 등산복 차림으로 다녀올 수 있는 그 곳이기를 바라본다. 아버지의 간절한 기다림에도 세월은 오늘도 기다려주지 않고 구름처럼 흐르고 있다.

2024-06-02

친족상도례를 보완하자

유영희 작가 가정의 달, 5월이 지났다. 가정의 달은 UN에서 정한 ‘세계 가정의 날’에 영향을 받아 2004년 ‘건강가정기본법’에 따라 법정기념일로 지정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가정의 달에 어린이날을 비롯하여 어버이날, 부부의 날까지 가족 관련 기념일이 많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가정의 달로 지정하면서까지 기념하고 의미를 되새긴다는 것은 가족 간에 화목이 당연한 것은 아니라는 증거일 것이다. 실제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더 깊은 상처를 주기도 한다.심리적 상처뿐 아니라 경제적으로 고통받는 자녀들도 많다. 5월이 되면 여지없이 부모의 착취와 학대로 고통받는 자녀들 이야기가 기사에 오른다. 올해 기사에도 딸을 여러 번 신용불량자를 만든 부모가 사위에게도 재산 피해를 주려 하자 인연을 끊고 싶다는 사연이 있었다. 나 역시 모 대학에서 어느 수강생이 부모가 자기 이름으로 대출하여 신용불량자가 되었다면서 자주 결석하다가 끝내 학기를 마치지 못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러나 자식들이 이런 피해를 당해도 친족상도례 때문에 부모를 처벌할 수 없고, 어렵게 절연을 결심하고 집을 나와도 가족에게는 주소지와 연락처가 공유되어 피해가 계속되어도 속수무책이다. 친족상도례 때문이다.친족상도례는 고대 로마에서 ‘법은 문지방을 넘지 않는다’는 관습법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와 비슷한 문화가 동양의 유교 문화에도 있었다. ‘논어’에서 공자는 아버지가 양을 훔쳤어도 아들이 고발하면 안 된다고 했고, 맹자는 순임금이라면 아버지가 사람을 죽여도 숨겨줄 것이라고 장담했다. 실제로 형법 제151조 2항에는 친족이나 동거의 가족이 죄를 지었을 때 숨겨주는 것은 형을 면한다. 다만, 이런 경우는 ‘친족간 처벌 특례 규정’이다.형법 제328조(친족간의 범행과 고소) ①항에 의하면 ‘직계혈족, 배우자, 동거친족, 동거가족 또는 그 배우자 간의 제323조의 죄는 그 형을 면제한다.’고 되어 있는데, 이것이 친족상도례이다. 그렇다고 모든 범죄에 대하여 친족상도례를 적용하는 것은 아니고, 재산죄에 적용된다. 형제라도 동거하지 않으면 친고죄로 책임을 물을 수 있지만, 직계존비속 관계는 동거하지 않아도 재산죄에 대해서는 형을 면제받는다. 그래서 방송인 박수홍의 아버지가 형이 한 횡령을 자기가 한 일이라고 주장했던 것이다. 친족상도례의 부작용은 앞으로 더 커질 것이다. 2022년 방송에서는 정치인들이 친족상도례를 수정해야 한다는 인터뷰가 있었다. 그러나 아직 개정의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정신의학과 의사 이호선은 ‘가족이라는 착각’에서, 자식은 ‘내 것’이 아니고, 부부는 ‘하나’가 아니며, 부모는 ‘어른’이 아니라면서 가족이라고 해서 모든 것을 허용해서는 안 되고, 가족 간에도 적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고 처방한다. 그러나 단순히 마음의 거리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가족에게 자신의 재산권을 완전히 위임하지도 말고, 친족상도례도 시대에 맞게 개정해야 한다. 내년 가정의 달에는 친족상도례로 고통받는 자녀들 기사가 더 이상 보이지 않기를 바란다.

2024-06-02

설비의 수명과 비용

엄주선 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사람은 나이가 들면서 노화가 진행된다. 노화는 시간의 흐름에 의한 피할 수 없는 변화로 성장기를 지난 성인은 누구나 겪는 정상적인 과정이다. 근력이 떨어지고 피로감이 커지며 장기와 기관에 작용하는 생리적인 능력과 건강 상태가 전반적으로 저하된다. 신체를 작동하는 장기와 기관에 특별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한 몸의 기능에는 이상이 없으나 성능이 저하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생애 주기에 거쳐 우리 몸을 어떻게 관리하는가에 따라 동일 한 나이 대 에서도 근력의 차가 생기고 수명이 달라지게 된다.사람이 영유아기 아동청소년기 중장년기 노년기를 거쳐 죽음에 이르는 생애 주기가 있듯이 생산 공장의 설비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도입부터 사용 열화 폐기까지 설비수명주기가 있다. 이 수명 주기를 늘리기 위해서는 초기 도입 시 공정의 생산품에 맞게 적절한 성능을 발휘하는 설비를 설계하고 적정한 비용을 투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또한 이는 생애 주기의 전체 비용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이기도 하다. 비용을 무조건 싸게 하여 성능 발휘가 안되면 설비 운영비용이 증가하고 성능이 필요 이상으로 크면 도입 비용이 커지기 때문이다.설비 도입 이후는 생산공정에서 필요로 한 때 정상적으로 가동되는 것이 중요하며 관리를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수명과 비용이 크게 달라진다. 사람의 수명도 청결한 관리로 병을 줄이고 발병 시 치료를 잘 해야 늘어나듯이 설비도 고장과 큰 연관이 있다. 설비 고장과 수명의 관계는 마치 욕조와 같은 구조를 하고 있다고 하여 욕조곡선(Bathtub curve)이라 한다. 즉 고장율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초기도입기는 높은 값이었다가 점차 감소하여 정상안정기는 일정한 값을 얼마 동안 유지한 후 시간이 지나 열화 마모가 진행되면 다시 점차로 높아진다는 것이다.설비 초기와 정상안정기 마모열화 고장을 줄여 설비 수명을 연장하는 것이 비용을 줄이는 것이며 직원 모두가 참여 해야 한다. 고장을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꾸준한 관리를 통해 고장이 안 나도록 예방하는 것이며 설비의 작동원리와 구조를 제대로 이해하고 관리 해야 할 개소를 파악하여 닦고 조이고 기름치는 활동을 꾸준히 하는 것이다. 포스코는 이를 마이 머신 활동으로 명명하고 2005년부터 전 직원이 참여하여 추진하고 있다.그리고 병들기 전에 징후를 알아차리거나 병이 날 것을 예측하여 미리 설비를 교체하고 유지 보수하여 예지보전하는 것으로 정비 직원의 주요 업무이기도 하다. 사람도 예방과 예지를 통해 병에 걸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가장 좋지만 예기치 못하는 질병에 걸리듯이 설비도 돌발적인 고장이 발생하게 되며 이때는 안전하고 신속한 조치가 필요하다.안전하고 빠른 고장 조치를 위해서는 지식과 경험이 필요한데 경험은 시간이 필요한 반면 지식은 설비의 원리와 구조를 이해하고 운영하는 학습의 영역으로 시간을 뛰어넘을 수는 있기에 더욱 필요하고 강조되는 것이다.

2024-06-02

해양쓰레기와 SRF발전선박, 그리고 바다의 날

유성찬 포항환경연대 공동대표 5월 31일은 바다의 날이다. 바다의 날은 국가마다 다르다. 우리나라는 장보고 장군이 청해진을 설치한 날로 정했다. 미국은 5월 22일, 일본은 7월 10일이다. 흥미로운 것은 바다가 없는 볼리비아에도 바다의 날이 있다는 것이다. 그 날이 3월 23일이다. 이 날은 볼리비아가 칠레에게 전쟁에서 패해서 바다를 빼앗긴 날이다. 다시 바다를 찾기 위해 온 국민이 마음을 다잡는 날이다. 이렇듯 국가에게는 영토가 중요하다. 독도는 경상북도의 땅이고, 대한민국의 영토이다.유엔(UN)에서 정한 지속가능발전목표(SDGs)가 있다. 전 세계의 빈곤 문제를 해결하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실현하기 위해 2030년까지 유엔과 국제사회가 달성해야 할 목표이다. 2015년 유엔에 의해 채택되었다. 지속가능발전 목표에는 양극화 해소, 빈곤퇴치, 성차별 종식 등 17개 목표가 있는데 그 중에 해양생물보호가 들어가 있다.세계적으로 바다를 지키고 해양생물을 보호하자는 운동이 활성화되고 있다. 그린피스가 고무보트를 타고 석유시추선, 러시아 군함, 일본 포경선에 달려드는 용감한 그린피스 투사들의 사진을 우리는 자주 보게 된다. 인간으로서 지구공동체를 온전하게 후손들에게 물려주기 위하여 빠른 속도에만 관심이 있는 인간종들과 쟁투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린피스는 후원금을 받을 만한 활동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지만 우리 모두가 그린피스처럼 살아갈 수는 없는 일. 일상생활에서 직장을 다니고, 아이들을 키우고, 이웃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지역공동체에서 사회활동, 경제적 활동을 해야 만이 우리의 생존을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일상의 시민들과 함께 할 수 있는 환경운동이 필요한 것이다. 특히 시장경제를 기반으로 하는 경제활동에서 환경산업과 환경운동이 결합해야 일반시민들의 호응을 받을 것이라고 필자는 믿고 있다.바다에는 해양쓰레기로 몸살이다. 아니 몸살을 넘어 생명에 해가 되기 시작하였다. 플라스틱 음료수 페트병이나 수산 양식에 사용되는 부표는 해양에서 제대로 수거되지 않는다면, 작은 조각으로 파편화가 진행된다. 하나의 작은 쓰레기가 바다에서는 수십만 개의 작은 오염원으로 나쁜 영향을 끼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분자화 되어가는 미세 플라스틱으로 인해 해양생태계를 넘어 우리가 먹는 식품의 안전이나 사람의 건강에도 악영향을 끼치는 범위로 넘어서게 된다.2015년에 발표되어 자주 인용되는 잠벡(Jambeck)이란 학자의 논문에서 육상에서 해양으로 유입되는 플라스틱 쓰레기양이 480만~1270만t으로 추정하였다. 또 우리나라의 해양쓰레기 연간 발생량도 2018년 기준으로 14만5000t 정도라고 한다.태평양 공해상에 떠 있는 쓰레기 지대의 총량이 7만9000t 정도라고 하고, 그 쓰레기 지대의 면적은 180만㎢로, 남한 면적의 16배 정도이다. 진짜 쓰레기양이 어머어마한 것이다.몇 년 전 세계자연기금(WWF)이 낸‘플라스틱오염이 해양생물, 생물다양성,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보고서에서 해양생물종의 88%가 플라스틱 쓰레기로 악영향을 받고 있다고 경고했다. 그리고 전체 바닷새의 90%, 바다거북의 52%가 플라스틱을 섭취한 것으로 추산되며, 인간도 매주 신용카드 1장 분량의 미세플라스틱을 먹고 있다고 밝혔다.실제로 죽은 고래 배 속에서 플라스틱 컵과 비닐봉지 등이 잔뜩 쏟아지는 사진이 찍히는 상황이 해양생태계의 현실인 것이다.포항은 해양관광도시를 지향한다. 포항의 근대화를 일으킨 산업인 철강산업에서 문화적으로 더욱 나아가, 친환경탈탄소 철강산업이 성공하고, 배터리산업, 해양관광산업으로 포항지역공동체가 발전하려면 바다에 대한 특별한 계획이 필요하다. 매년 바다로 유입되는 수십만t의 해양쓰레기, 플라스틱 쓰레기들을 선박을 이용한 SRF(고형폐기물연료) 발전소를 계획해 볼 단계가 아닌가 생각한다.필자가 알기에 국내기업 중에 선박 위에 발전소를 설치하여 노르웨이로 수출한 기업이 있다고 듣고 있다. 발전소에 사용되는 경유 대신에 해양 플라스틱쓰레기(SRF)를 사용하는 선박발전소가 건조되고, 그 발전소에서 만들어진 전기에너지를 포항의 배터리에 저장하여 육지로 갖고 올 수 있다면 해양생물, 해양생태계의 지속가능한 안전과 평화는 더욱 가까워질 것이다.

2024-05-30

정치인의 신의

홍석봉 언론인 21대 국회가 여야의 극한 대치 속에 막을 내렸다. 역대 최악이라는 오명을 남겼다. 21대 국회 후반기 2년 동안 정부 여당은 거대 야당에 질질 끌려가며 여소야대의 설움을 톡톡히 맛봐야 했다. 여야는 지난 28일 정국의 뜨거운 감자인 ‘채상병 특검법’을 표 대결 끝에 부결시켰다. 더불어민주당은 논란이 많은 민주유공자법 등 5개 쟁점법안을 단독 통과시켰다. 윤석열 대통령은 4개 법안을 통과 하루 만에 거부, 폐기시켰다. 14번째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다. 국민연금 개혁안도 차기 국회로 떠넘겼다. 우리 정치의 민낯이다. 21대 국회는 2만5830건의 법안을 발의, 이 중 36.6%인 9454건을 처리하는 데 그쳤다. 여야가 사실상 합의했거나, 이견이 없는 민생 법안들까지 줄줄이 밀려났다. 대통령을 겨냥한 특검법과 당 대표 방탄법만 반짝였다. 정쟁으로 날을 샜다. 국회의 직무유기다. 국민에 대한 신의 배반이다.윤석열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은 바닥이다. 불신받는 대통령의 현주소다. 거대 야당의 발목잡기와 몽니도 한몫했다. 민주당의 ‘채상병 특검’ 재의결도 윤 대통령 불신에서 기인했다. 젊은 병사의 희생 원인을 밝히고 유사 사태의 재발을 막는 것이 우선인데도 본말이 전도됐다. 야당은 ‘대통령 격노’만 부각시켜 윤석열 깎아내리기에 올인이다.여야 간의 신의는 일찌감치 사라졌다. 정치판의 협치는 기대하기조차 어려워졌다. 장기화하고 있는 의정갈등도 신의 상실이 그 근저에 있다. 정부와 의사집단은 서로 불신하고 있다.서울의대 교수들은 “의대 정원 증원이 지지율에 도움이 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이대로 강행한다면 대통령께서는 우리나라 의료계를 붕괴시킨 책임자로 손가락질 받게 될 것”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불신만 쌓여간다.30일 문을 연 22대 국회도 21대 국회와 판박이가 될 공산이 커졌다. 정치판엔 암운만 가득 드리워져 있다. 여야 무한대치 정국 속에 입법폭주와 대통령 거부권이 맞부딪히는 충돌 사례는 더욱 잦아질 전망이다. 민주당은 22대 국회 개원 즉시 특검법 재발의를 공언했다. 국회가 열리자마자 여야 충돌이 재연될 전망이다.진(秦)나라의 재상 상앙(商鞅)은 큰 나무를 옮기는 사람에게 상금을 약속하고 이를 지킴으로써 나라가 백성을 속이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고사성어 이목지신(移木之信)이 나온 배경이다.상앙은 법을 어긴 태자의 대부를 처형하고 태사를 형벌에 처했다. 이후 10년이 지나자, 길에 떨어진 물건은 줍지 않았고, 도적이 없어졌다. 백성의 살림은 풍족하고 나라는 부강해졌다. 상앙의 법치주의를 바탕으로 한 강력한 부국강병책은 진시황제가 천하를 통일하는 기틀이 됐다.신의는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다. 개인 간은 물론 기업과 기업 간, 나라와 나라 사이에도 신의가 있어야만 원만한 관계가 이뤄진다. 이목지신은 위정자가 국민에게 믿음을 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준다. 22대 국회에서는 윤석열 정부와 정치권이 얼마나 국민에게 믿음을 줄 수 있으려나. 통렬한 자기반성과 쇄신에 달렸다.

2024-05-30

대학병원 도산위기, 이게 무슨 의료개혁인가

대구·경북 의사회를 비롯해 각 시·도의사회가 어제 오후 전국적으로 의대증원을 규탄하는 촛불집회를 열었다. 대한의사협회는 “정부가 한국 의료에 사망선고를 했음을 국민에게 알리기 위해 전국 권역별로 집회를 열게 됐다”고 했다. 대구·경북 의사회는 대구시 중구 동성로에서 집회를 열었다. 이상호 대구시의사회 수석부회장은 지난 29일 대구아트파크에서 열린 아시아포럼21 주최 초청토론회에서 “전공의들이 SNS에 글을 쓴 것만으로 조사받는 상황이다. 만약 전공의에 대한 법적 제재가 가해질 경우 개원의들도 전면 파업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의대 증원에 반발해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난 지 100일이 넘어서면서 전공의 의존도가 높은 대학병원들이 심각한 경영위기를 맞고 있다. 대학병원 중에서도 서울 ‘빅5’와 같은 규모가 큰 병원에서는 하루에 10억원 이상 적자가 난다고 한다.대구·경북지역도 마찬가지다. 경북대병원은 최근 병원장이 내부 전산망을 통해 “의료진의 진료 공백으로 병원 경영이 상당한 어려움에 놓여 있다. 병원 기능을 유지하기 위한 운영 자금이 부족해 금융기관 차입을 고려한다”고 공지했다. 경영위기는 대구가톨릭대병원, 계명대 동산병원, 파티마병원, 영남대병원도 마찬가지로 겪고 있다. 전공의 집단이탈이 계속되면 곧 문 닫는 대형병원이 생길 것이란 얘기가 공공연히 나온다.이런 위급한 상황에서도 의료계는 의대증원 전면 백지화를 요구하고 있고, 정부는 의사들과 더 이상의 협상을 하지 않겠다는 강경입장이다. 마치 환자를 볼모로 ‘치킨게임’을 하는 모양새다. 의정갈등이 이대로 지속하면 남는 것은 ‘파국’뿐이다. 전공의 집단 이탈 사태가 석 달을 넘어 의대생들의 ‘집단 유급’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이들이 유급되면 매년 3000여 명씩 배출되던 신규 의사가 급감할 수밖에 없다. 전공의들이 수련 기간을 못 채우면 ‘전문의’ 수급도 어려워질 수 있다. 이게 무슨 의료개혁인가. 이제라도 정부와 의료계 양측은 한발씩 물러나 타협하는 방안을 찾아내야 한다.

2024-05-30

서민의 꿈 로또복권

우정구 논설위원 지난해 복권을 관리하는 기획재정부가 복권에 대한 인식조사를 한 적이 있다. 응답자의 74%가 “복권이 있어서 좋다”는 대답을 했다. 당첨 여부를 떠나 복권에 대한 국민의 인식은 대체로 긍정적이다.복권 구매 이유로는 기대와 희망, 행복과 기쁨 등이 가장 많았다. 복권 당첨자가 발표될 때까지 인생역전을 노리는 희망과 기대감으로 행복을 느끼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가 된다.지난해 우리나라 복권 판매액은 6조7000억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그중 로또복권이 83%로 5조6000억원을 차지했다. 로또복권의 경우는 10년 전보다 2배 가까이 늘어났다.경기 불황과 복권 판매는 비례한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빠듯해진 살림살이를 복권 한방으로 해결해 보자는 대중의 심리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지속되고 있는 국내 경기 불황에도 복권 판매가 역대 최대치를 갱신한 것만으로 불경기가 복권 판매를 부추겼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복권 구매자의 연령층에서 20대보다 60대가 2배가량 많다. 저소득 서민층일수록 복권에 대한 기대감이 높다는 반증이다.한국의 로또복권 당첨 확률은 814만5060분의 1이다. 3억분의 1인 미국의 로또 파워볼과 메가밀리언과는 비교가 안되지만 행운이 없이는 당첨되기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렵다.2022년 11월 미국 파워볼에서 나온 당첨금은 20억4000만 달러(약 2조8000억원)다. 길을 가다가 번개를 맞고 살아날 확률이라는 소리가 그럴 듯하다.북권 당첨 금액을 올리자는 일부 여론에 정부는 검토한 적이 없다고 했다. 팍팍한 삶 속에서 소소한 위로를 받고자 하는 복권을 무턱대고 당첨금을 올리는 것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5-30

TK 행정통합, 여론 거쳐 특별법까지 가야

대구경북 행정통합 논의가 급물살을 타는 가운데 다음달 4일 열리는 4대 기관장 간담회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부 서울청사에서 열리는 4대기관 간담회에는 홍준표 대구시장과 이철우 경북지사, 이상민 행안부장관, 우동기 지방시대위원장 등이 만나 대구경북 통합의 필요성과 추진 방향, 정부 차원의 지원 방안 등을 논의하게 될 예정이다.4대 기관장의 이날 만남은 대구경북뿐 아니라 전국 광역단체에서도 촉각을 곤두세우며 바라보고 있다. TK 행정통합의 진척 정도에 따라 전국적으로 행정통합의 바람이 일지도 모른다.4자 회동에 앞서 대구시와 경북도는 28일 도청에서 행정통합을 위한 테스크포스(TF) 2차 실무단 회의를 가졌다. 4대 기관장 회동에서 논의할 과제들을 구체적으로 사전 조율하는 자리다. 이 자리서 시도는 양적 통합을 넘어선 질적 통합과 완전한 자치형태의 광역통합을 지향하는 시도지사의 의지도 다시 확인했다고 한다.윤석열 대통령의 지원 지시로 시작된 TK 행정통합은 4대 기관 모임 후 속전속결의 분위기로 진행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실무단 회의에 참석한 김호진 경북도 기획실장은 “역사적인 대구경북 행정통합이 되도록 하겠다”고 밝혔고, 황순조 대구시 기획조정실장은 “대구경북 행정통합이 국가 균형발전의 모범적 사례가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비상한 관심 속에 시작하는 TK 행정통합은 지방소멸을 억제하고 수도권 일극체제에 대응하는 지방 생존의 대안이다. 국가와 지역의 미래를 걸고 하는 행정통합이란 점에서 사즉생의 각오가 필요하다.4년 전에도 통합을 시도했지만 시도민 여론이 뒷받침되지 못해 유야무야 된 경험이 우리에게 있다. 2026년 지방선거 때 통합 단체장 선출을 목포로 하는 것만큼 시간이 별로 없다.무엇보다 시도민의 여론 수렴이 제대로 돼야 통합의 성공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22대 국회에서 행정통합 특별법도 만들어야 한다. 지역주민의 뜻이 반영되고 법적인 제도가 만들어진다면 획기적인 통합의 그림이 나올 수 있다. 각오를 새롭게 해야한다.

2024-05-30

봄볕

윤명희 수필가 유모차를 밀고 들어오는 남자의 얼굴이 환하다. 공인중개사인 내 사무실에 그는 가끔 아이를 데리고 온다. 유모차에서 꽃무늬 원피스를 입은 아이를 내려놓자, 아이는 탐색하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본다. 나는 손녀를 바라보듯이 웃었다. 가끔 보면서도 아이는 오늘도 어김없이 아빠의 바짓가랑이 사이로 숨는다. 고개를 빼꼼히 내밀더니 아랫입술이 삐죽이 나온다. 울음보가 터지기 직전이다. 나는 얼른 손바닥으로 내 얼굴을 가렸다.물기가 그렁한 눈도 잠시, 아이가 아빠의 품에서 내려선다. 우리 사이의 낯선 시간이 짧아지고 있다. 아이는 의자를 당기더니 기저귀를 찬 엉덩이를 올린다. 금방 시들해졌는지 의자에서 내려와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걷는 걸음마다 노랑병아리 소리가 따라다닌다. 아이를 쫓아다니는 남자의 눈이 깊다. 그는 아이의 뺨에 제 얼굴을 갖다 대고는 붕어빵 같으냐고 묻는다. 그는 만날 때마다 그렇게 묻는다. 꼭 닮았다고 하자, 그가 웃었다.몇 년 전, 처음 만났을 때의 그의 모습이 떠오른다. 덤프트럭 운전을 하는 그는 한쪽 다리를 약간씩 절었다. 늘 기름때가 묻은 작업복 차림이었고, 마흔 조금 넘었을 뿐인데 쉰도 더 되어 보였다. 혼자 오래 살아왔던 그가 일이 끝나고 불 켜진 집에 들어가는 게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고 했다. 아이를 갖는 게 소원이지만 나이가 열 몇 살이나 적은 필리핀 아내는 아이를 원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더 욕심내다 이 순간마저 날아갈까 싶어 포기한다는 그가 안타까웠다.그의 집을 보러 갔을 때였다. 부스스한 모습으로 문을 연 그녀는 재봉 일을 하고 있었다. 재봉질 해 놓은 천들이 작은 방 한 가득이었다. 바닥에는 일감과 먼지가 굴러다녔고, 2인용 식탁 위에는 빈 컵라면 그릇에 빵 봉지가 구겨진 채 있었다. 개수대에는 음식물이 말라붙은 냄비와 그릇들이 포개져 있고, 그 아래에는 빨래 바구니에 미처 담기지 못한 양말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남편이 출근하면 종일 재봉틀 앞에 앉아 있는 것 같았다. 손님인 나를 보지 않고 눈길이 자꾸만 재봉틀로 가는 그녀는 주인이 아니라 잠시 일 하러 온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녀가 언젠가는 자기 고향으로 가 버릴 것 같아 며칠을 고민했다. 그의 눈치를 살피며 가진 재산이 얼마쯤 되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는 전혀 거리낌 없이 계산기를 두드리는 내 옆에 앉아 미주알고주알 통장 내역을 털었다. 두꺼비같이 헌 집 주고 새 집으로 이사하기로 했다. 우여곡절 끝에 이사 하는 날, 그녀에게 새 집에서 예쁜 아기 낳아서 잘 살라고 했다. 그녀는 그의 뒤로 숨으며 더듬거리는 말로 집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같은 동네주민이 된 그들은 종종 우리 사무실에 들어와 직접 커피를 타 마시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비닐봉지에서 사과를 꺼내 내 손에 건네주며 아내가 아기를 가졌다고 했다. 축하한다는 달뜬 내 말에 그는 ‘남들 다 낳는 데요’ 라며 쑥스러워했다. 아빠가 된다고 생각하니 쉬는 날 없이 일을 해도 전혀 힘이 들지 않는다고 했다.매화꽃이 막 필락 말락 하려던 날 저녁, 산책길에서 만난 그가 휴대폰을 쑥 내밀었다. 폰에는 아기 사진으로 가득 찼다. 나는 길가로 물러서서, 입을 오물거리는 갓난아기의 동영상까지 보고 또 보았다.“다들 날 닮았다 그래요”내 옆에 붙어 서서 아기사진을 보는 그의 눈이 빠져들 듯 했다. 그는 가끔 내게 또 다른 사진들을 보여주었고, 또 가끔은 아기를 보여주러 유모차를 끌고 왔다. 볼 때마다 아이는 부쩍 자랐다.아장거리는 걸음으로 돌아다니는 아이를 지켜보며, 그는 며칠 전에 필리핀에서 장인장모님이 다녀갔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들이 딸이 사는 걸 보고 기뻐해서 기분이 좋았다고 한다. ‘이제 둘째 낳아야지?’ 라고 하자, 그가 또 웃었다. 집사람이 얼마나 씻고 닦고 하는지 피곤하다는 말이 행복의 비명처럼 터져 나온다. 세월이 거꾸로 가고 있다. 그는 이제껏 보아 온 중에 오늘이 가장 젊어 보인다.엄마가 기다리겠다는 그의 말에 아이가 먼저 문을 열고 나간다. 앞만 보고 걷던 아이가 뒤돌아서서, 내게 뽀얀 손을 흔든다. 햇살 같은 웃음을 보여주고는 종종 걸음을 이어간다. 빈 유모차가 바삐 따라간다. 나는 그들이 건물 모퉁이를 돌아 갈 때까지 마주 흔들던 손을 내리지 못하고 한참 서 있다. 딸을 앞세우고 가는 그의 등에 봄볕이 앉았다.

2024-05-29

삼삼오오 모여, 대구 오오극장

오오극장은 올해로 아홉 살 된 독립예술영화관이다. 이 극장은 위치를 정확히 모르면 어느새 지나쳐 버릴지도 모를 정도로 간판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55라는 숫자가 적힌 간판이 제법 크게 걸려있음에도 불구하고 혹은 눈앞에 두고도 찾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다. 그러나 영화를 사랑하고 따스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이곳을 놓칠 수 없다. 어느 순간 은은한 그 분위기가 삼삼하여 오오극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멈추지 못하기 때문이다.오오극장의 ‘오오’는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영화가 장면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 작품 하나가 완성되어 가듯이 ‘오오’는 삼삼오오의 ‘오오’이기도 하고, 55석의 ‘오오’이기도 하다. 하나에서 열까지 전부 다 좋다는 감탄사 ‘오오’라 해도 괜찮다. 또는 어서오라는 뜻으로 ‘오오’라 쓰인 듯도 하다. 인터뷰 자료에 따르면, 층고가 높은 공간에 맞게 좌석을 배치하려다 보니 55석이 나왔고, 이를 극장 이름으로 삼았다고 한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매우 정감 있는 이름이 붙여진 셈이다.이름만큼이나 오오극장은 따스한 분위기가 맴돈다. 건물 입구에 들어서면 여느 극장처럼 상영 영화의 포스터가 벽면에 나란히 붙여져 있다. 무심하게도 툭 걸려있는 영화포스터가 낯선 방문객을 반기는 듯하다. 통유리로 된 1층의 외관은 탁 트여 있지만 사실 안은 잘 보이지 않는다. 유리창에 빼곡하게 적힌 하얀 방명록이 은은하게 안과 밖의 공간을 구분해주기 때문이다. 하얀 글씨로 적힌 수많은 방명록 중에는 오래도록 제자리에서 이어가기를 바라는 문구가 제법 많다. 입구를 들어서면 오른쪽은 잘 꾸며진 서재처럼 영화와 이에 관한 책자들로 즐비하다. 서재의 중앙에는 작은 스크린이 놓여 여러 독립예술영화와 오오극장에 대한 광고 영상이 흘러나온다. 특별작품 설명이나 독립영화에 대한 정보 등 다양한 영화 소식이 은은한 불빛과 함께 따스하게 전해진다. 멀티플렉스의 공격적인 마케팅 화면과는 꽤 대조적인 분위기다.왼쪽에는 예매소와 다방을 함께 운영하는 삼삼다방이 자리하고 있다. 삼삼오오 모여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고 차를 마시며 소통하는 공간으로 친근한 북카페처럼 보이기도 한다. 예술과 관련된 여러 발행물도 놓여있어 영화 대기 시간에 홀로 즐기기에도 제법 괜찮다. 더불어 마스코트 길고양이 ‘오우삼’의 애옹애옹 울음소리도 오오극장의 정감 있는 분위기를 한층 끌어올린다. 실질 상영관은 입구의 정면에서 보면 제일 안쪽에 있다. 상영관은 스크린과 좌석들이 매우 가깝게 배치된 아담한 곳으로 55석 중 앞의 4좌석은 휠체어를 위한 공간으로 마련되어 있다. 상영관의 안까지 턱없이 들어올 수 있도록 동선에도 신경 쓴 흔적이 엿보인다.1990년대 이전만 해도 한국 영화관은 지금 멀티플렉스처럼 크지 않았다. 대부분 오오극장보다는 규모가 있었으나 단관극장이 많았다. 영화 상영도 서울의 영화관부터 시작하여 지방으로 배급되는 형태였다. 더구나 당시 한국영화는 인기가 많은 편은 아니어서 외국영화가 상영되지 않는 기간에 상영되었다고 한다. 1998년 4월 ‘CGV강변 11’이 개관되면서 여러 편이 동시에 상영되는 다관극장(멀티플렉스)이 등장한다. 또한 상업적 논리와 더불어 한국영화시장이 전면 개방되면서 국내영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커졌다. 1999년 2월 영화진흥법이 개정되고, 외국영화에 비해 상업성이 부족했던 한국영화를 지원하는 제도가 마련되었다. 당시만 해도 많은 한국영화들이 이에 속했었다. 이후 한국영화는 점점 좋은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2001년에는 ‘와이키키 브라더스’·‘라이방’·‘나미’·‘고양이를 부탁해’의 앞글자를 딴 ‘와라나고’운동이 일어난다. 이는 상영시장에서 위기에 놓인 한국예술영화를 지키기 위한 관객들의 자발적 관람 운동이었다. 이에 발맞춰 최소한의 상영 기회를 보장한다는 목표로 지원 정책이 이뤄지며, 2007년 서울의 ‘인디스페이스’가 설립된다.이후 지역에서는 최초로 대구의 ‘오오극장’이 들어섰다. 그러나 2014년 이후 지원 정책의 변화와 축소, 코로나19 팬대믹의 영향, OTT 시장의 확장 등으로 인해 독립예술영화관들은 경영 위기로 휘청거리게 된다. 실질적으로 OTT 재택관람이 대세를 이루고, 영화관에서 보는 영화는 예전에 비해 급격하게 감소했다. 멀티플렉스도 관람객이 줄어드는 상황에 독립예술영화관을 찾는 발걸음은 더욱 뜸할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때로는 작은 영화관이기에, 독립예술영화가 주를 이루기에 찾아드는 사람들도 있다. 화려하진 않지만 작은 것에 부여된 의미가 마음에 파장을 일으키고, 독특한 색을 전달하기도 한다. 오오극장은 대구 지역에 기반한 독립영화인과 시민들이 뜻을 모아 만들어진 만큼 처음의 색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관객과의 소통을 위한 홈피와 SNS 운영, 문화적 다양성과 확대라는 극장의 역할, ‘수성못’·‘맥북이면 다 되지요’ 등 대구의 독립영화 상영, 대구영화학교나 다양한 모임 장소 등. 은은한 온기를 품은 오오극장은 방명록으로 남겨진 유리창의 하얀 문장들처럼 오늘도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최정화 스토리텔러◇ 최정화 스토리텔러 약력 ·2020 고양시 관광스토리텔링 대상 ·2020 낙동강 어울림스토리텔링 대상 등 수상

2024-05-29

22대 국회도 ‘특검정국’으로 얼룩지나

22대 국회가 오늘 개원하지만, 입법폭주와 정쟁으로 일관됐던 21대 국회의 ‘적대적 대치’가 재연될 것으로 예상된다. 의석 192석을 차지한 거대 야권이 윤석열 정부 레임덕을 겨냥해 각종 특검을 남발하며 정국을 아노미 상태로 몰아갈 개연성이 다분하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 탄핵을 겨냥하는 ‘채상병 특검법’은 지난 28일 21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최종 부결됐다. 국민의힘에서 찬성의사를 밝힌 의원이 5명 있었지만, 재의결 기준을 충족시킬 만큼의 반란표는 나오지 않았다. 야권은 이날 ‘운동권 셀프 특혜법’으로 불리는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안’과 ‘세월호 참사피해 지원법’ 등 야당 주도로 본회의에 직회부한 법안 4개를 단독 처리했다. 국민의힘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유도하려는 전략”이라고 반발하며 표결에 불참했다. 민주유공자법은 4·19혁명과 5·18민주화운동 이외의 민주화운동 관련자와 가족에게까지 지원을 확대하는 법이고, 세월호지원법은 세월호 피해자의 의료비 지원 기한을 5년 연장하는 법이다.여야의 극심한 정쟁으로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1만6359개의 법안들은 심사도 받지 못한 채 폐기됐다. 이중에는 양육 의무를 다하지 못한 친부모가 자녀유산을 상속하지 못하도록 제한한 ‘구하라법’과 원자력발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용후핵연료의 관리 및 처분 내용을 담은 ‘고준위 특별법’도 포함됐다. 경주 월성원전의 경우, 원전 내 사용후핵연료 임시 저장소가 포화되면 원전 가동을 멈춰야 하는 상황까지 올 수 있다. 국민실생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법안까지 정쟁의 도구가 돼 폐기된 것이다.민주당은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및 재의결 무산으로 폐기된 채상병 특검법과 ‘김건희 여사 특검법’의 재추진은 물론,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 술자리 회유 의혹 특검법’ 등도 발의할 방침이다. 조국혁신당은 ‘한동훈 특검법’을 오늘 1호 법안으로 발의한다고 한다. 각종 특검을 둘러싼 여야의 전운(戰雲)이 22대 국회 들어 더욱 짙어지는 것 같아 걱정이다.

2024-05-29

환경위기, 지구위기, 인간위기

장규열 고문 백년 전, 미국은 기회의 땅이었다. 주로 유럽으로부터 이민자들이 몰려왔으며 그 가운데는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인들도 섞여있었다. 거친 바다를 건너 뉴욕에 도착한 이민자들이 처음 만나야 하는 일은 입국심사와 함께 부여된 소독과 방역. 화생방훈련이라도 하듯이 검역관이 쏘아대는 디디티(DDT) 연기를 뒤집어써야 했다. 새로운 삶을 꿈꾸며 도착한 첫날, 화학살충제의 짙은 연기를 만나야 했다. 그런 연기의 폐해를 고발한 사람이 있었다.레이철 카슨(Rachel Carson)이 1962년에 저서 ‘침묵의봄(Silent Spring)’을 발간하였다. 살충제 속에 들어있는 화학물질이 곤충과 조류, 어류와 포유동물에게까지 해로운 영향을 끼치는 점을 고발하였다. 먹이사슬을 통해 동식물체 생태환경에 축적되어 결국은 지구환경과 인간생태계가 무너질 것이라 경고하였다. 그런 결과, 이민국에서 DDT 사용을 방역과정에 사용하지 않게 되었으며, 사회적으로 광범위한 환경의식이 싹트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새들이 사라지고 들판이 황폐하여 동식물은 물론 사람도 살 수 없는 무섭게 삭막한 봄이 찾아올 터이라고 예고하였다. 카슨은 그야말로 선각자(先覺者)였다.오늘 우리는 어떤가. 산업화와 도시화를 겪으며 지구를 해치고 자연을 훼손하는 일은 중단없이 지속적으로 발생한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위기에 경고음이 떠오른 지도 십수년이 되었지만 뾰족한 해결책은 제시되지 않는다. 일상생활 가운데 플라스틱 제품과 일회용 편의품의 사용도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사회경제적 배경을 둔 인구고령화와 저출산현상과 연합하여 인류의 전성기는 지구상에서 저물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현실 정치는 그들만의 리그에 심취하여 정쟁을 반복하느라 지구와 환경 따위는 우선순위에 올라오지 않는다. 60년 전 세상은 그래도 양심바른 저자의 책 한 권에 마음을 돌렸었는데, 21세기 세상은 오늘 코앞의 이익 말고는 생각이 가 닿지 않는다.6월 5일은 유엔이 선포한 ‘세계 환경의 날(World Environment Day)’이다. 올해 주제는 ‘세대회복(Generation Restoration)’이다. 환경을 긍정적으로 돌이켜 무너져 내리는 세대를 회복하자는 게 목표라고 한다. 즉, 환경회복을 통하여 인구위기의 돌파구까지 모색하자는 것이다. 땅의 힘을 회복하게 하고, 지구표면의 사막화를 방지하며 가뭄을 극복하는 데 일차적인 전략목표를 둔다고 한다. 농업을 지속가능한 산업으로 육성하고 식수자원과 해양환경을 보호하며 도시개발에 있어 자연환경을 균형있게 보존하는 데 역점을 둔다고 한다. 지구환경을 위한 경각심을 전 지구적으로 일으키기 위하여 세계 각국이 재정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기로 권하겠다고 한다.우리 정부는 어떤가. 자연환경과 지구자원을 보호하여 자연생태계와 인간문명의 균형적인 상호작용을 확보하고 사람이 살기 좋은 환경을 되찾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새소리와 물소리로 가득하여 자연과 인간이 함께 숨쉬며 조화롭게 살아가는 지구를 만들어야 한다. 지구는 하나 밖에 없다.

2024-05-29

저출생 대책 특별법 제정, 지금 서둘러도 늦다

경북도가 저출생 문제 해결을 위해 기존의 틀을 뛰어넘는 대책들을 만들기 위해 저출생 대책 특별법의 제정을 정부에 건의했다. 이철우 경북지사는 이와 관련, “저출생은 국가 존립이 걸린 문제로 일반적 대응으로는 안 되고 특별법을 통해 사활을 걸고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북이 먼저 정책을 실험해 모델을 만들고 전국에 확산시킬 수 있도록 정부 지원을 요청했다. 저출생과의 전쟁을 선포한 경북도는 저출생 극복에 여타 도시보다 많은 노력을 쏟고 있다. 저출생 대책본부를 신설하고 저출생 극복 100대 과제도 발표했다. 저출생 극복에 1조2000억원의 예산도 쓰겠다고 했다.그러나 경북도가 구상하는 정책들이 구체적으로 실행되기 위해선 법적 뒷받침이 있어야 속도감 있게 추진할 수 있다. 도청 신도시에 설치할 돌봄 특구만 해도 공감하는 정책임에도 법적 근거가 없으면 실행까지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정부가 15년 동안 280조원의 예산을 붓고도 저출생 문제가 제자리에 머물고 있는 것은 복합적인 이유가 있겠지만 중구난방식의 정책이 펼쳐진 게 큰 원인이다. 법적 근거로 종합적이고 체계적이며 통일된 정책이 시행됐다면 조금이라도 달라졌을지 모른다. 저출생이 국가적 문제로 야기된 것이 20년 가까이 됐다. 지금 특별법을 만들어도 빠르지 않다. 특별법에 담을 내용을 정부와 정치권이 논의해 신속히 법 제정에 나서야 한다.28일 발표된 통계청의 장래인구 추계에 따르면 30년 후 대구 인구는 2022년 대비 24.3%가 감소하고 2045년부터는 200만명 선도 붕괴된다. 30년 후 경북의 고령인구 비중은 49.4%로 전체의 절반이다. 이는 대구경북의 문제가 아니고 전국적 현상이다. 인구문제를 한 세대를 기준으로 본다면 저출생 대책 특별법의 제정이 다음 국회에서 가장 먼저 다뤄져야 할 사안이다. 시간이 없다.민생법안을 뒤로 한 채 정쟁에 몰두하는 정치권을 보면 걱정이 되는 바 크다. 하지만 저출생 문제 대응에 여야가 다툴 이유가 없다. 정부와 정치권은 저출생 특별법 제정 요구에 적극 부응해주길 바란다.

2024-05-29

봄은 가고 여름이 오건만…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조선의 농부들은 24개의 절기(節氣)로 계절을 구분하며 살았다. 국가 경제의 중심이자 핵심축이던 농사 준비도 그에 따랐다.풍부하고 넉넉한 햇살 아래 세상 만물이 무럭무럭 자란다는 소만(小滿·음력 4월)은 이미 지났고, 벼 같이 수염이 있는 까끄라기 곡식의 종자를 뿌리기에 적당한 시기라는 의미를 가진 망종(芒種·음력 5월)이 바로 눈앞으로 닥쳤다.동서양 불문 시간의 흐름과 계절의 변화를 막을 수 있는 존재는 지구 위에 없다. 지난 수천 년간이 그랬고, 앞으로의 수천 년 또한 그럴 터.소만과 망종이 있는 양력 5월 말과 6월 초 사이는 갖가지 나물 맛있고 나들이하기 더없이 좋은 봄이 서서히 막을 내리고, 황경 75도에 다다른 뜨거운 태양 아래 푸른 바다가 청춘들을 유혹하는 여름의 들머리다. 춥지도 않고 크게 덥지도 않기에 옛사람들은 이 시기를 ‘계절의 여왕’이라 부르곤 했다.헌데 세상사는 ‘여왕’이라 불러도 좋은 이 시절과는 무관한 모양이다. 2024년 망종 직전의 이 나라 정치·경제·사회적 풍경은 여왕이 아닌 ‘여비(女婢)’라 불러야 할 지경이다.온갖 특검법을 ‘해야 한다, 말아야 한다’로 정치권이 악머구리처럼 시끄럽고, 월급쟁이와 소상공인 모두가 ‘IMF 때보다 더 힘들다’고 입을 모은다. 진보와 보수로 갈라져 서로를 철천지원수인양 헐뜯는 세태도 지난 정권과 크게 다를 바 없고.망종 다음의 절기는 하지(夏至)다. 지구의 가장 북쪽에서 내려쬐는 햇볕이 세상을 환하고 뜨겁게 밝히는 시절이 목전인 것. 한국의 모든 갈등과 반목이 그 햇볕에 아이스크림처럼 스르르 녹아 화해와 화합으로 양질전화(量質轉化)했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05-29

아이들 건강관리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어른들과 달리 대부분의 아이들은 큰 병이 없다. 선천적인 질병만 없다면 태어나고 자라는 시기라 오장육부와 정신이 깨끗하다. 오염되지 않은 물과 같다고 보면 된다. 어른들처럼 술과 담배 안 좋은 음식과 과식 스트레스 등으로 몸이 혹사당하지 않은 상태라 대부분의 아이는 큰 병이 없이 자란다. 병이 없다고 해서 건강하다는 건 아니다. 오히려 요즘 아이들은 뛰어 놀아야 할 시기에 뛰어 놀지 못하고 학업 스트레스와 고열량의 음식 섭취로 예전 보다 건강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한의원에 오는 아이들은 밥을 먹지 않는 아이, 감기에 자주 걸리고 낫지 않는 아이, 알러지가 있는 아이 등이 있다. 이 모두 동시에 가진 경우도 있고 하나만 있는 경우도 있으나 보통은 위의 증상과 또 다른 여러 가지 증상이 겹쳐 있다. 그렇다고 이런 경우를 병이 있다고 표현하진 않고 아이가 약하다라고 많이 한다.아이들은 쉬지 않고 움직여야 건강하다. 매일 에너지가 넘쳐나야 건강하고 그 에너지를 방출을 시켜야 한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은 밖에서 노는게 줄어들어 활동량이 부족하다. 에너지를 방출을 못하고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스트레스가 누적된다. 다들 하기 싫은 공부를 억지로 한다고 앉아 있어 봤을 때의 생각을 하면 된다. 어른이든 아이든 스트레스를 받으면 밖으로 풀어야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풀지 못한 에너지와 스트레스 누적은 아이에 따라 입맛 저하와 면역력 저하로 이어진다.잘 먹지 않는 아이는 잘 먹게 만들어 줘야 한다. 운동을 시키고 바깥 활동을 늘려야 한다. 학업 스트레스가 심하다 싶으면 공부를 하는 학원 한 두개를 줄이고 집에서 쉬게 하거나 음악이나 미술 관련 혹은 본인이 좋아하는 취미 활동으로 한 두개 바꾸는 것이 좋다. 잘 먹지 않는 아이는 한의원에서 쓰는 한약이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대부분 한약을 먹으면 입맛도 돌고 힘이 나서 전보단 활동적이 된다. 이때 쓰는 한약은 우리가 먹는 음식과 다르지 않을 정도로 순한 약재들만 들어가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 건강기능식품보다 효과도 좋고 안전하다.감기에 자주 걸리고 잘 낫지 않는 아이는 면역력이 저하되어 있는 경우가 많은데 원래 아이가 약하게 태어난 경우가 있고 다른 하나는 아이가 아플 때마다 병원에 데려가서 약과 항생제를 먹인 경우가 있다. 아이가 아프면 병원에 가고 상태에 따라 약을 써야 하나 심하지 않은 경우는 집에서 관리를 하는 것이 아이 건강과 면역엔 더 도움이 된다. 당장 아이가 힘들어 하는 것을 보기 힘들다고 아플 때마다 바로 약을 써버리면 아이가 싸울 힘을 잃게 만들어 자라면서 면역력이 올라오지 않는다. 한번은 아파야지 다음엔 덜 아프게 자란다. 부모의 걱정이 도리어 아이 건강을 안좋게 하는 경우도 되니 증상에 따라 집에서 관리를 할 수 있으면 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도 마찬가지로 한의원에서 면역을 높이는 한약을 먹이면 감기 횟수가 줄고 감기에 걸려도 심하지 않게 지내는 것을 볼 수 있다. 한약을 먹고 몸이 좋아지면 감기에 걸렸을 때 집에서 하는 관리는 훨씬 수월해진다.

2024-05-29

뿌리와 날개(下)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독일의 문학가 괴테는 식물을 유심히 관찰했다. 식물이 서로 반대인 두 방향으로 성장한다. 한쪽은 중력에 이끌려 땅 속으로 파고들며, 다른 한쪽은 반중력으로 허공으로 치뻗는다는 것을 신비롭다고 했다. 괴테라고 하면 우리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파우스트’를 쓴 독일의 대문호로 기억한다. 그러나 그의 직업은 이보다 훨씬 더 많고 다양하다. 시인, 극작가, 소설가, 연극감독, 철학자는 물론, 자연 과학자였으며, 바이마르공국의 재상이었으니 정치가이기도 하였다.괴테는 식물들을 세심히 관찰하고 날마다 스케치하면서 꽃과 잎과 뿌리가 변화하는 것을 발견했다. 그런 점에서 괴테는 디테일의 끝판왕인 셈이다. 그 결과 자연과학자였으며 미술가이기도 하였다. 세밀하게 식물을 스케치하여 관찰한 결과를 ‘식물변형론’으로 썼고, 이탈리아 여행에서 기행문 ‘이탈리아 여행’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자연의 색을 감탄한 나머지 ‘색채론’을 집필했다. 그런데 이렇게 자연과학자로 끝나면 괴테가 아니다. 식물을 깊이 관찰한 결과를 조상과, 가정과, 아이들의 교육에까지 생각을 확장했다. 그래서 남긴 그의 명언이 있다.‘우리가 아이에게 줄 유산은 단 두 가지뿐이다. 하나는 뿌리이고 다른 하나는 날개이다.’뿌리는 식물의 밑동으로서 보통 땅속에 묻히거나 물체에 박혀 수분과 양분을 줄기를 지탱하는 작용을 하는 기관이다. 사물이나 현상의 근본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의미로 쓰는 단어이기도 하다. 괴테와 같은 맥락으로 이해되는 ‘뿌리론’이 우리나라 문학작품에도 있었다. 조선 초기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하고 집현전 학자들에게 지시하여 창작한 한글시가인 용비어천가의 2장이다. “뿌리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으니 꽃 피고 열매가 많으니라.” 깊은 뿌리를 내린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지 않듯 기초가 튼튼한 나라여야 꽃 피고 열매 맺듯 안정되고 번창할 것이라는 비유의 절창이다. 영원무궁한 조선의 미래 발전을 위해서는 나무의 깊은 뿌리같이 조선의 초석이 튼튼해야 한다는 노래이다. 뿌리가 튼튼해야 줄기가 힘차고 튼실할 것이고, 꽃이 탐스럽고 향기로울 것이며, 단단하고 풍성한 열매를 맺을 것이 자명하다. 아이들에게 뿌리는 조상이자, 부모이자, 가정일 터. 그러니 조상과 부모와 가정의 역할은 튼튼한 뿌리가 되어 아이들이 스스로 힘차고 올곧게 자랄 수 있도록 해 줄 뿐이다.그러면 날개는 무엇일까. 날개는 새나 곤충처럼 허공을 나는 동물의 양쪽에 붙어있는 기관이다. 이는 땅 속에서 땅속으로 내리뻗는 뿌리와 다르게 기댈 곳 없는 공중을 날기 위해 생긴 것이다. 또한 날개는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성장하면서 돋거나 자라는 것이니, 뿌리와 달리 스스로의 힘으로 생기는 것이다. 조상과 부모가 날개를 준다는 것은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을 때까지 격려와 지원과 응원을 아낌없이 주면 되는 것이다. 괴테는 식물을 깊이 관찰하면서 동시에 성찰하는 교육철학자가 되었다. 역시 괴테는 괴테다.

2024-05-29

저, 고요하디 고요한 태풍 직전의 세계

나쓰메 소세키는 1905년, 대학 시절 친구였던 마사오카 시키가 창간하고, 그의 사후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던 하이쿠 잡지 ‘호토토기스’의 한 구석을 빌려 연재했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의도치 않은 성공으로, 그야말로 당시 문단에 충격을 던지며 데뷔했다. 이전까지 그는 단지 영문학자로 학교에서 영문학을 가르치는 선생에 불과했지만,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예기치 않은 성공 이후, 쉬지 않고 창작에 몰두해서 결코 길다고는 할 수 없는 10년여의 창작 생활을 통해 과거의 소설과는 다른 새로운 근대적 소설의 한 시작점을 열었다.정치소설이나 가정소설 등 굵직한 스토리와 드라마가 주류였던 메이지 시대의 소설계에서 나쓰메 소세키 특유의 관점과 인간 심리에 대한 통찰은 글쓰기가 창조해낸 세계가 독자에게 특정한 감각이나 감정을 일으키고, 나아가 어떤 생각의 변화에까지 이를 수 있도록 한다는 예술로서의 소설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해도 좋다.단지 흥미 있는 읽을거리로서의 의미에서 벗어나 문학이 자연주의나 상징주의 등, 미술의 예술적 사조를 본떠 예술적 창작을 지향하기 시작했던 그 시기 문학계의 가장 중요한 지분을 그가 차지하고 있다.그리 많다고도 적다고도 하기 어려운 작품들 중에서도 ‘태풍’(1907)은 유독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에 해당한다. ‘도련님’의 다음이자, ‘산시로’를 시작으로 한 3부작의 이전이어서 그런지, 언제나 사건보다는 내면을 오가는 미묘한 심리가 주류가 되는 그의 작품들 중에서도 유독 이렇다 할 사건이 존재하지 않아서 그런지, 알 수 없다. 분명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와 ‘도련님’에서 들려오는 와글거리는 소리가 사그라들고 난 뒤, ‘산시로’와 ‘그후’ 등에서 마음속에서 파문처럼 일어나는 새로운 인상으로 넘어가기 전, 머뭇거림이 읽힌다. 인간이 자신이 영위해왔던 어떤 일관된 태도를 바꾸고 새로운 길로 나아가기로 결심했는지 아닌지 알 수 없는 그때, 어쩔 수 없는 머뭇거림을 읽어낼 때, 나는 한 없는 인간다움을 읽어낸다. 인간이 행하는 일에 확신 같은 것은 가질 수 없다. 반드시 맞을 수밖에 없다는 신념을 가지고 내딛는 발걸음이야말로 우리를 전혀 인간답지 않은 어딘가로 이끈다.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태풍’의 세계는 고요하다. 애초에 그 세계 속에는 도무지 소리가 존재하지 않는다. 학자인 시라이 도야와 좌충우돌하는 학생 다카바야시는 사실은 별개의 목소리를 가진 존재가 아니라 소세키 자신의 각각 다른 두 개의 자아이다. 본래 하나였던 두 개의 자아가 만나 어떤 스펙터클한 사건을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태풍’의 세계는 분열한 두 자아가 아직 각자의 정체성을 갖지 못하고 서로 마주쳐 어색하게 예의를 차리는 세계다.아직은 내면이라고도, 균열된 자아들의 싸움이라고도 할 수 없는 태풍 직전의 고요함이 지배한다. 그리고 그러한 세계 한 가운데를 “현대 청년에게 고함” 같은 사회주의의 구호가 가로지르고 있다. 이는 분명 무정부주의자인 오스기 사카에가 번역했던 크로포트킨의 ‘청년에 고함’을 가리키는 것이리라. ‘사회’를 향한 주의가 어떤 형태여야 하는가 하는 것조차 아직 명확하지 않았던 시대의 풍경화 같은 것이다.글쓰기 같은 새김의 도구나, 서사 같은 언어 나열의 방식이나, 소설 같은 문학의 한 형식들은 본래 하나로 정해진 것이 아니라 인간이 다른 인간에 대해 전달하는 외침이기도 하고, 언어를 통해 타인에게 보여주는 정교한 그림이기도 하고, 타인의 마음속을 해부하는 해부학이기도 하고, 그 모두이기도 하다.새로운 시대에 글쓰기가, 서사가, 소설이 예전과 같은 의미는 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앞을 향해 내디딜 때 머뭇거리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한, 글쓰기는 여전히 의미를 가질 것이라고, 저 고요하디 고요한 ‘태풍’의 세계가 보여주고 있다./송민호 홍익대 교수

2024-05-28

물에 관한 단상

어릴 적엔 자주 앞 거랑에서 놀았다. 물가에 핀 꽃을 따서 소꿉놀이도 하고 징검다리에 앉아 찰방거리며 물장구를 치기도 했다. 신나게 노느라 신발 한 짝을 떠내려 보내고 쫓아가서 잡으려다 옷만 몽땅 버린 날도 더러 있다. 그런 날은 아버지께 어김없이 혼쭐이 나기도 했지만 거랑은 일급 놀이터에 변함이 없었다. 빨래하는 어머니 옆에서 해진 걸레를 놓고 나무방망이를 두드리는 일도 재미났다. 물수제비뜨기는 좀체 실력이 늘지 않았지만 물풀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버들치는 신기한 구경거리였다.좀 더 자라서는 집에서 멀리 떨어진 넓은 거랑에서 여름을 났다. 헤엄치는 방법을 배우느라 자갈이 깔린 바닥을 수도 없이 짚어서 손바닥이 얼얼해도 좋았다. 어쩌다 아이들이 놀고 있는 곁으로 풀숲에 쉬고 있던 물뱀이 지나가기도 했다. 혼비백산한 아이들이 괴성을 지르며 흩어졌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물에 들어가 놀았다. 아이들 중 하나가 물뱀은 독이 없다고 말한 때문이었다. 해가 기울 무렵에야 퉁퉁 불어 허옇게 된 손발을 하고 물에서 나왔다. 집으로 오는 길엔 귀속에 들어간 물을 빼느라 머리를 양쪽으로 기울이며 노래를 불렀다.“강물이 많나, 바닷물이 많나”집 뒤 좁은 농수로에서는 주로 물고기를 잡으며 놀았다. 겨우 잡은 미꾸라지가 매끄러운 몸짓을 뽐내며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갈 때의 허전함은 세상을 다 잃은 것 같은 아쉬움을 주기도 했다. 운이 좋아 몇 마리의 물고기를 잡은 날은 고무신에 담아 집으로 가져왔다. 물가에 가지 않고도 가까이 두고 바라보고 싶었다. 어항 같은 건 꿈도 꾸기 어려운 시절이었으므로 우물 가까이에 흙구덩이를 파고 거기에 넣었다.희한한 일이었다. 한 두레박의 물을 붓고 얼마 지나지 않으면 물은 까무룩 사라지고 물고기만 남아 팔딱거렸다. 또다시 부어줘도 마찬가지였다. 물은 바짝 마른 마당을 온전히 다 적시고야 고인다는 걸 어릴 적 그때는 알 수 없었다. 논과 밭의 쓰임이 다르다는 걸 알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렸다.한여름 밤이 되면 마을 뒤 거랑은 아낙들 차지였다. 아낙들은 사람들 눈을 피해 캄캄한 밤이 되어서야 땀에 젖은 몸을 씻었다. 달빛도 없는 거랑에서는 아낙들이 서로의 등을 밀어주며 도타운 정을 쌓았다. 낮에 일어난 자잘한 소문도 밤의 거랑에서는 재미난 얘깃거리였다. 물속에서 그들이 나누는 즐거운 수다가 오래오래 여름밤을 적셨다. 그 속엔 어쩌다 우리 어머니도 있었다. 밤 마실 나간 아내를 기다리는 아버지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머니는 모처럼 소리 내어 웃고 있었다. 거랑은 며느리와, 아내와, 엄마로 사느라 지친 아낙들의 마음을 달래기에 마침맞은 곳이었다.열두어 살 될 무렵이었든가. 거랑은 더 이상 아이들의 놀이터도 아낙들의 수다 장소도 아니었다. 윗마을에 염색공장이 대규모로 들어서면서 거랑은 맑은 물 대신 이상한 냄새가 나는 탁한 물이 흘렀다.얼마 지나지 않아 집집마다 있던 맑은 우물마저 뿌옇게 변했고 소독약 냄새 진동하는 수돗물이 식수를 대신했다. 언제든 달려가 안길 수 있는 요람 같은 곳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반짝이는 물가에 철마다 다른 꽃이 피는 꿈결 같은 곳을 잃었을 때 사람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국가의 뜻에 반하는 행위는 그 무엇도 허용되지 않던 시절이었다. 어릴 적 낙원을 잃어버린 나는 추억 속에서만 옛 거랑을 만난다.그 시절에서 멀어진 지 오랜 시간이 흘렀다. 나는 논과 밭이 사라지고 모든 거랑은 복개되어 버린 고향을 떠나 산골 깊숙이 들어와 살고 있다. 맑은 거랑물이 흐르는 사철 아름다운 곳이다. 자연이 들려주는 감미로운 노래를 들으며 새로운 낙원에 묻혀 지낸다.하지만 십여 년 전 처음 정착했을 때와 달리 벼농사를 짓던 논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대부분 고소득 작물이라는 사과밭으로 변해서 무논은 찾아보기 힘들다. 논고동이며 소금쟁이, 물방개 따위와 온갖 물풀을 품고 있어 생물의 다양성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하던 무논이 사라진다는 건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더구나 무논은 공기 중의 습도를 머금고 있어 산불예방에도 적잖은 도움을 준다. 박월수 수필가 주일 미사 시간, 앞들 몇 남지 않은 무논에서 개구리 소리 요란하다. 신부님 강론시간에 왁자하게 끼어들어도 누구 하나 싫은 표정을 짓는 이 없다. 마침 신부님 강론도 생태이야기로 접어든다. 들 가운데 새치처럼 남아있는 무논이 완전히 사라지면 목청껏 울어쌓는 개구리 소리도 따라 없어질까 두렵다.점차 줄어드는 논도 걱정이지만 양서류를 위한 이동통로가 마련되지 않은 것도 개구리를 위협한다. 장마철에 운전을 하다보면 도로를 건너다 죽음을 맞는 개구리를 숱하게 만난다. 성가대 노래 속에 귀한 개구리 합창이 함께 하는데 나는 자꾸 생태계가 무너지는 소리 들리는 것 같다.집으로 오는 길, 논둑에 핀 찔레꽃이 무논에 담긴다. 빠르게 지나던 구름이 그 속에 잠시 머문다. 예전에 앞 거랑 물을 떠다가 장을 담그고 논에서 잡은 미꾸라지로 추어탕을 끓여 몸보신했다는 어르신이 전동차를 세우더니 개구리 소리를 감상한다. 사라질 풍경은 다 아름답다.◇ 박월수 수필가 약력 ·2022년 대구수필가협회 문학상·2022년 경북문협 작가상 등 수상·수필집 ‘숨, 들이다’·청송문인협회장 /박월수 수필가

2024-05-28

수능 6월 모의평가, ‘의대블랙홀’ 序幕 열었다

202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두고 치러지는 6월 모의평가에 ‘N수생’(재수생 이상)이 대입사상 가장 많이 응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입시업계는 27년 만의 대규모 의대정원 확대가 영향을 끼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내년도 의대 정원은 카이스트와 포스텍 등 5개 이공계 특수대학 모집정원 1600명과 비슷한 숫자(1509명)로 늘어난다. 성적이 상위권인 자연계열 출신이면 누구나 의대진학 욕심을 낼 수 있는 인원이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따르면, 6월 모의평가에 지원한 수험생은 47만4133명으로 작년보다 1만458명 증가했다. 재학생이 81.3%이며, 검정고시생을 포함한 ‘졸업생 등’이 18.7%를 차지하고 있다. ‘졸업생 등’ 응시자 수는 공식 통계가 있는 2011년 이후 가장 많은 숫자다.대학에 다니면서 다시 입시를 준비하는 ‘반수생’은 1학기 기말고사를 앞둔 시점이라 6월 모의평가에는 보통 응시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9월 모의평가와 본수능에서는 N수생 비율이 폭발적으로 증가할 수 있다.N수생 급증을 예상한 대형 입시학원들은 이미 대대적인 ‘의대 마케팅’에 들어갔다. 지난 2월 서울 종로학원이 개최(온·오프라인)한 ‘의대 정원 확대 발표에 따른 긴급 재수, 반수 전략 설명회’에는 학부모와 수험생 4120명이 몰렸다. 학원들은 의대 정원이 한꺼번에 늘면서 상위권 대학생뿐 아니라 직장인까지 대거 의대 준비에 뛰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과학·산업계는 인재들이 너도나도 의사가 되기를 희망하면 연구인력을 어디서 구할지 걱정이고, 재학생들의 대규모 자퇴가 예상되는 이공계 대학들도 뒤숭숭하다.지난해 우리나라 초중고 학생들의 사교육비는 27조1000억원에 달하면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올해부터는 ‘의대 광풍’까지 불면서 사교육비는 천문학적으로 늘 조짐이다. 학원들만 신나게 생겼다. 대규모 의대증원이 몰고 올 부작용을 충분히 예측하고도 정책을 강행한 정부가 ‘의대블랙홀’에 어떻게 대처할지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

2024-05-28

반도체 인력 완성한 대구, 기업유치에 총력을

산자부가 주관하는 첨단산업 특성화 대학원 공모에서 지역소재 경북대와 포항공대가 선정됨으로써 대구는 비수도권에서는 최대 규모 반도체 인력을 양성할 수 있는 곳이 됐다. 특히 대구가 고교-대학-대학원으로 이어지는 반도체 인력양성 체계를 완성함으로써 타지역과는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추게 된 것은 의미있는 결과다. 또 대량의 전문인력을 배출함으로써 반도체 관련 기업의 지역유치에도 청신호가 켜졌다고 할 수 있다.반도체 산업은 세계 경제를 이끌 핵심산업으로 주요국마다 관련산업 육성에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분야다. 한·미정상회담 때 한국을 찾은 바이든 대통령의 첫 방문지가 반도체공장이 있는 평택이었다는 사실만으로 반도체 산업의 중요성을 잘 알 수 있다.윤석열 정부 정책의 1순위도 반도체 산업 육성이다. 최근 정부가 반도체산업 육성을 위해 26조원을 지원하기로 한 것은 반도체산업 육성에 국가가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는 뜻이다.대구시도 홍준표 시장 취임 후 시스템 반도체 분야를 중심으로 반도체 산업 생태계 구축에 힘쓰고 있다. 특히 이번에 경북대 등이 반도체 특성화대학원 공모에 선정됨으로써 석박사 30명을 포함 대구에서만 1750명의 반도체 인력이 매년 배출되게 된 것은 반도체 기업의 지역 유입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대구시 관계자도 “이를 토대로 반도체 기업 유치에 적극 나서겠다”고 밝혔다. 인력양성의 이점을 활용해 반도체 관련기업의 지역유치를 얼마나 성사시키느냐 하는 것이 앞으로의 관건이다. 대구시의 분발이 필요한 때다.홍 시장 취임 후 대구는 첨단산업 도시로 산업구조를 바꾸고 있다. 반도체 분야에서는 국내 반도체 팹리스(설계전문기업) 1위 기업인 텔레칩스 등 팹리스 4곳을 유치했고, 하반기에는 지능형 반도체개발지원센터 개소도 앞두고 있다.반도체 인력의 단계별 양성체계 구축은 지역에 반도체 관련기업을 불러들일 수 있는 절대적 호재다. 대구시 등 관련기관은 대구시 산업의 얼굴을 확실히 바꾼다는 각오로 기업유치에 총력을 쏟아야 할 것이다.

2024-05-28

백해무익의 담배

우정구 논설위원 5월 31일은 세계 금연의 날이다. 세계보건기구가 1987년 흡연의 해로움과 흡연으로 인한 사망 및 질병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해 제정한 날이다.백해무익(百害無益)하다는 말과 가장 잘 어울리는 것으로는 담배가 으뜸으로 꼽힌다. 담배에는 4000여 가지의 화학물질이 들어있다. 그 중 70가지 이상은 암을 유발할 수 있는 물질로 형성돼 있다고 한다. 담배로 매년 800만명 이상의 사람이 죽는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에게는 당연히 나쁘고 담배 연기만 맡아도 고혈압, 당뇨병 같은 질병 발생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담배는 처음 고대 마야인들이 종교의식으로 사용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유럽 등지로 전파된 것은 1492년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면서 부터다. 당시 원주민들 사이 사용되던 담배는 유럽을 통해 전세계로 빠르게 전파됐다.우리나라는 임진왜란 이후 왜군들에 의해 넘어온 것으로 전해진다. 조선시대에는 남령초(南靈草)란 이름으로 불렸다. 남쪽 국가에서 온 신령스런 풀이라는 뜻이다. 이후 남초에서 연초로 바뀌었다고 한다.재미있는 것은 양반은 담배대가 긴 장죽을 물고, 돈 없는 양민과 노비는 담배대가 짧은 곰방대를 물어 담배대를 쥔 모습만 보아도 신분을 구별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우리나라에 담배가 들어온 것이 벌써 500년 가깝다. 돌이켜보면 영문도 모르고 기호품으로 즐겼던 시절부터 멋과 낭만으로 담배를 피우던 시절을 지나 지금은 담배가 인류 건강의 적으로 통하는 시대가 됐다.작심삼일에 그치지 말고 이번 금연의 날에는 담배를 끊어보는 것도 해봄직하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5-28

포항시민사회의 ‘담론문화 확산’ 응원한다

심충택 논설위원 포항환경연대가 지난주 수소환원제철소 건립을 어젠다로 하는 지역사회 포럼 결성을 제안한 것에 대해 개인적으로 많이 놀랐다. 포럼 의제에 우선 공감이 갔지만, 토론문화가 거의 실종되다시피한 대구경북(TK) 지역에서 어떻게 이런 담론을 제기할 결정을 했을까라는 생각 때문이다.포항지역, 나아가서는 TK지역 발전에 꼭 필요한 개방성·다양성 확보를 위해서는 포항환경연대 같은 시민단체의 담론문화 확산이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포스코그룹의 수소환원제철소 건립문제는 포항제철소가 포항에 남을지 떠날지를 결정하는 중대한 이슈이기 때문에, 포항뿐 아니라 TK지역사회 전체가 적극 나서서 해결해야 할 숙제다. 포항환경연대가 언급한 것처럼, 산·학·연과 시민사회, 노동계, 언론계 등 각계가 참여하는 포럼이 하루빨리 결성돼 수소환원 제철 프로젝트 추진과 관련한 다양한 해법이 나오길 기대한다. 포럼을 통한 시민사회의 제안은 정부나 포스코 그룹의 프로젝트 추진속도, 의사결정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수소환원제철 프로젝트가 로드맵대로 진행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우선 포항지역 일부 시민단체가 “바다를 메우면 해양생태계가 오염된다”며 반대하고 있고, 비용도 큰 부담이다. 해외 주요 철강강국들은 정부차원에서 수소환원제철 프로젝트에 천문학적인 지원을 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생색내기용 지원에 그치고 있다. ‘수소환원제철 포럼’은 이런 이슈를 심도 있게 토론하고,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TK지역에서 경험하기 힘든 것들 중의 하나는 토론문화다. 대신 이 지역은 계취문화와 저녁모임이 발달해 있다. 도시는 커졌지만 사회문화는 여전히 전통적인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도시에서는 보편화된 조찬기도회나 조찬세미나도 이 지역에선 찾아보기가 어렵다. 대신 동창회다 향우회다 해서 끼리끼리 모이는 저녁모임은 많다. 사적모임을 선호하는 이런 경향은 담론문화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온라인 속에서도 TK지역은 폐쇄적이다.박한우 영남대 교수(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는 “대구경북 사람들이 스스로를 강자인 줄 알고 있지만, 온라인 속에서는 약자”라고 진단하고 있다. 온라인 공간을 만들어 낸 인터넷은 수평적이고 진보적이어서 위계적이고 보수적인 TK지역과는 화학적으로 잘 맞지 않다는 주장이다. 박 교수는 특히 이러한 온라인속의 폐쇄성이 지역경제에도 타격을 준다는 분석을 했다. 정치·사회·경제·문화 모든 분야에서 개방적이지 못한 지역이 외면당하는 것은 만고의 진리다.TK지역이 개방적이고 매력적인 도시가 되려면, 지역 현안을 다루는 ‘수소환원제철 포럼’ 같은 담론문화가 온·오프라인에서 활발하게 꽃을 피워야 한다. 그래야 사회전체가 폐쇄성에서 벗어나 광장처럼 열릴 수 있다. 한 가지 제언하고 싶은 것은 곧 출범할 ‘수소환원제철 포럼’에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참여시켜야 한다는 점이다. 예를들어 포럼 멤버 중에 수소환원제철소 건립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어야 건강한 담론이 형성될 수 있다.

2024-05-28

잊혀져 가는 것들의 되새김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5월의 햇살과 바람이 참 좋다. 따사로운 햇볕을 받아 만물이 점차 생장하고, 부드러운 바람 결에 연록의 잎새들이 나날이 짙어가며 녹음을 드리우고 있다. 만물이 생장의 기운으로 가득 찬다는 소만(小滿)이 지나자 본격적인 여름날이 시작된 듯 잎새들은 미풍에 가볍게 흔들리고, 들판의 작물들은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고른 햇살과 때 맞춰 내리는 비를 맞아 만물이 성장과 윤기를 더해가듯이, 보살핌과 가르침의 은혜로 사랑과 감사가 녹음처럼 두터워지는 푸른달이 막바지로 향하고 있다.봄인가 싶더니 어느새 여름날이 시작되고 문득문득 시간의 타래는 슬렁슬렁 잘도 감겨지고 있다. 예전에 비해 확연히 짧아진 듯한 봄날의 기온도 여름날 못지않게 불쑥불쑥 오르고 있으니, 세월의 갈퀴 속에 모든 것이 조금씩 변하고 달라지면서 세상이 소리 없이 굴러가고 있다. 시간이 지나가거나 물이 흐른다는 것은 영속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시간의 더께가 쌓이게 되면 만물은 빛이 바래거나 퇴색의 갈피를 면할 수 없고, 물과 바람의 철썩임에 자연물도 마멸과 희석의 과정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사람의 기억이나 생각도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시간의 흐름에 반비례하여 차츰 희미해지거나 잊혀지기 마련이다. 따라서 생각이나 경험에서 비롯되는 사상이나 감정, 지식 따위도 어느 경계를 지나게 되면 망각의 강으로 흘러가 버리기에 애써 기록으로 남기고 그림이나 형상 등으로 그려 놓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옛부터 전해 내려오는 동굴 속의 그림이나 기호, 바위벽에 새겨진 문자 등의 각인물도 좀 더 뭔가를 표현하고 소통하며 오래도록 남겨서 전하려는 바람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으리라고 본다.이러한 측면에서 나무나 바위 등에 새겨진 글자나 시문 등도 우리의 선조들이 남긴 소중한 문화유산이기에 서사적(書史的)인 측면에서도 상당히 중요한 의의를 갖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필적이나 서체연구의 매개가 되어 당대의 풍습이나 문화, 명필의 유행 서체 등을 유추, 분석해볼 수 있는 결정적인 단서가 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자연물에 드러난 대부분의 각자(刻字)는 현재 환경적인 관점에서의 자연 훼손물(?)로 간주돼 일반인들의 관심이나 학계의 연구대상에서 멀어진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 보니 바위 글자엔 풍상과 세월의 이끼가 더해져 점차 등한시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게 된다.그럼에도 최근 포항지역의 한 서예단체에서는 서예문화유적 답사를 겸한 학술조사로, 포항시 북구 기북면의 유서 깊은 덕동문화마을의 명승 덕연구곡(德淵九曲)의 제2경인 ‘막애대(邈埃臺)’ 바위에 새겨진 글자의 탁본작업을 실시해 고무적으로 여겨진다. 막애대는 덕동마을 앞을 흐르는 용계천 한켠의 거북 형상을 한 ‘속세를 멀리한 너른 바위’라는 뜻으로, 막애대 위에 앉아서 흐르는 물을 보며 심신수양을 했던 곳이라 한다.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었던 막애대 바위가 이번의 탁본작업으로 재조명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무심해졌던 것들에 대한 따스한 시선으로 전통문화와 필적이 깃든 자연물에 대한 관심과 되새김이 필요해 보인다고 본다.

2024-05-28

상상경영의 남이섬이야기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상상경영은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사고를 통해 기존의 틀을 벗어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나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경영 방식을 의미한다. 기업이 경쟁력을 유지하고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한 중요한 일이다. 전통적인 경영방식에서 벗어나 창의성과 혁신을 중시하는 접근법이다. 상상경영을 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성하고 이를 실현 가능한 형태로 변환하는 능력이 있어야 하고, 기존의 제품, 서비스, 프로세스를 개선하거나 완전히 새로운 것을 도입하여 시장에서 경쟁우위를 확보하는 일이다.필자는 모처럼 서울에서 경춘선을 타고 강원도 가평에 위치한 남이섬을 방문했다. 남이섬은 1990년대 버려진 섬을 가꾼 것이지만 만년 적자에 취객이 흥청거리는 지저분한 유원지였다. 2000년 아들과 놀러 왔다가 연봉 100원에 사장이 된 강우현 CEO는 남이섬을 먹고 마시는 유원지에서 문화예술과 자연생태가 어우러진 대표적 관광지로 탈바꿈시켰다. 성공비결은 상상기술이다. ‘국내외 수많은 관광객이 비좁은 공간에서 웃으며 사진 찍는 모습’을 상상하며 미래를 그리고 실행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돈과 사람이 없었던 섬 동네에 주변 사람들을 취업시켜 환경을 가꾸고 실직 위기에 처한 70대 도자기 공을 도자기를 굽게 하고 체험 학습 공간도 만들어 가족이 참여하는 스토리가 있는 섬으로 즐거움을 더하게 했다. 나이보다 할 수 있는 일을 중시하고 활용한 것이다. 공원 내 차량은 전기차로 친환경체제를 갖추었고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공연과 무슬림교 관광객을 위한 기도실도 꾸려 놓는 등 국내외 손님에게 세심한 배려가 있었다. 지역과 함께 성장하는 기업, 정년이 없는 기업을 추구하며 자부심에서 나오는 밝은 표정과 손끝 서비스로 이어지는 문화가 형성되어 있었다. 응용미술과 디자인을 전공한 강 대표는 그림 미술작가답게 ‘구성원의 상상력 수준에 따라 가정, 회사, 국가의 미래 운명이 달라진다’고 했다.여의도의 5분의 1 정도의 면적에 연간 30만에서 185만이 방문하는 관광지로 만들었던 CEO 생각은 상상에는 불가능이 없고 상상을 현실로 만들면 된다. 안 된다고 생각하면 되는 것이 없고 가능성을 믿으면 상상이 현실이 된다. 상상한 것들을 해보라. 쾌적한 환경을 상상했다면 지저분한 것은 치우고, 없으면 만들고 안 되면 다시 하고’라는 생각으로 상상의 정원을 가꾸어 왔다.기업에서 상상경영은 미래의 바람직한 모습을 그려놓고 현재 수준에서 부족한 영역에 대한 전략을 수립하고 목표와 계획을 실행하는 것에 있다. 상상경영의 조건은 개방적이고 창의적인 기업문화를 조성하고 직원들이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실험할 수 있도록 하는 환경이 필요하며 리더의 역할이 중요하다. 성공을 논하는 이론가나 평론가 보다 역 발상으로 ‘배운 것 버리고 가진 것 뒤집으면 아이디어가 생겨난다’. 상상으로 놀이하고 상상으로 경영하고 남이 안 된다는 사고의 관점을 바꾸어 보면 실패의 늪에서 성공의 길로 거듭나는 것이다. 한 사람의 상상력과 리더십이 세상을 바꾼다.

2024-05-28

김준태, 목숨을 걸고 쓴 시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아아, 광주여 무등산이여/죽음과 죽음 사이에/피눈물을 흘리는/우리들의 영원한 청춘의 도시여//우리들의 아버지는 어디로 갔나/우리들의 어머니는 어디서 쓰러졌나/우리들의 아들은/어디에서 죽어 어디에 파묻혔나…(후략)’1980년 5월 27일. 전남도청에서 마지막까지 저항하던 시민군이 계엄군에 의해 진압된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수백 명의 희생자를 남기고 비극적으로 끝났다. 그날 광주 전체엔 숨죽인 울음이 가득했다.당시 32세의 전남고등학교 교사 김준태 시인 역시 평생 안고 갈 트라우마가 생겼다. 동료의 아내가 만삭인 상태에서 계엄군에 의해 죽었고, 며칠 전엔 도청 앞에서 10여 명의 사람이 총에 맞아 피 흘리며 쓰러지는 걸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본 것.김 시인은 팔척장신에 형형한 눈빛이 범을 닮은 강골이다. 하지만, 인간 보편이 느끼는 공포가 그라고 왜 없었을까? 1980년 한국을 지배하던 신군부 앞에서 ‘5월 광주’에 관해 잘못 말했다간 체포와 투옥, 고문을 각오해야 했다. 그런 시절이었다. 그러나, 김준태는 ‘양심을 가진 지식인으로서의 시인’이 되는 길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랬기에 광주 거리 곳곳에 피 냄새가 채 가시기도 전인 1980년 6월 2일 전남매일신문에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라는 109행의 시가 실릴 수 있었다.모든 것을 걸고 하는 인간의 행위는 숭엄하다. 앞서 언급된 시는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목숨까지 걸고 쓴 것이니 더 이상 무슨 말을 보태랴. 이젠 일흔여섯의 할아버지가 된 김준태 시인이 편찮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목숨 걸고’ 시를 쓸 수 있는 몹시 드문 시인인 그가 5월 광주정신과 함께 앞으로도 오래 건재하길 빈다./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05-27

지옥에서 극락을 만들라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 까마득한 후배 교수와 같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교정을 거닐었다. 봄은 무르익었고, 오가는 사람들은 무심하거나 행복해 보였다.그러나 나는 혼자 근심을 짊어진 사람처럼 어둠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세상은 곳곳이 모두 잘못되지 않은 것이 없건만, 제대로 된 쪽으로 미래 삶의 방향을 틀려 할 때마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과 싸움을 벌여야 하는 힘든 길을 걸어온 것이다.내가 소설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답함’에서 하루키의 논리에 대항하고자 했던 것이 쓸데없는 만용이었던 것 같은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하루키는 말했다.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동안 세 가지 네 가지 문제들이 발생할텐데, 왜 하나뿐인 귀중한 인생을 그렇듯 사회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허비한단 말인가.그때 나는 어떻게든 하루키가 옳지 못하다고 말하고 싶었고, 그의 허무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찾아내고 싶었다. 오죽하면 하와이에서 하루키가 낭독회를 연다는 소식을 접하고 하루키와 주인공이 만나는 한 장면을 쓰기 위해 왕복 250만원이 드는 난생 처음의 하와이 여행을 계획했더란 말인가.이 소설을 쓴 후, 얼추 십년이 흐른 것 같다. 나의 노력은 결실을 맺지 못했고, 나는 더 많은 문제들에 휩쓸려 있다. 나는 하루키가 비난했던, 나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일들에 시간을 바쳐 왔다. 남은 것이 없었다.내 이야기를 들은 젊은 후배가 나를 위해 하나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만해 한용운이 삼일운동으로 감옥에 가서 2년 6개월인가를 살았더란다. 수감되었던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는 정확하게 듣지 못했다. 검색으로 확인해보고 싶지만 지금 그럴만한 힘도 없다. 아무튼 긴 시간이다. 감옥에서 나오니, 세상은 지옥과도 같았다고 한다. 그때 만해가 깊이 생각한 끝에 얻은 경구가 하나 있다고 한다.“지옥에서 극락을 만들라.”나는 이 말을 듣고 몸에 전류가 흐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고작해야 스물한 살 때 겨우 한 달을 유치장, 구치소, 교도소를 속성으로 졸업한 내가 아니던가. 만해가 겪은 고통의 크기는 실로 헤아릴 수가 없다.그리고 감옥에서 나와서 본 세상은 이광수의 ‘재생’이나 현진건의 ‘적도’에 나오는 현실처럼 끔찍했을 것이 아닌가. 그런데 지옥을 극락으로 만들겠다니, 이런 의지의 정신력은 과연 어디서 솟아나는 것인가.만 하루가 지난 후 나는 하루종일 집에 틀어박혀 외솔 최현배의 시조에 나타난 ‘님’에 대해 쓰고 있었다. 만해에게만 ‘님’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외솔에게도 ‘님’은 있었다.캄캄한 밤이 되었다. 알고리즘 때문인지 내가 일을 하면서 틀어놓은 유튜브에서 어떤 연세드신 선생 한 분이 성경 강의를 하신다. 열왕기였는지 요한계시록이었는지 생각나지 않는다. 한마디 말만이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고통을 영광으로 만들라.”옛사람들은 인생이 얼마나 힘든지 진정한 것을 구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2024-05-27

대기업 유통업체의 지역상생, 더 확대되길

대구시가 지난 2012년 전국 처음으로 실시한 대기업 유통업체의 지역기여도 조사가 10년 넘게 시행되고 있다.자본력과 대형매장을 앞세운 대기업 유통업체의 지역시장 잠식을 견제하고 지역과의 상생경제를 도모하자는 취지의 이 제도는 이제 어느 정도 정착단계에 접어들었다.특히 대구시는 전국 최초로 대형마트의 의무 휴일을 일요일에서 평일로 전환하는 파격적 조치를 취했고, 이로 인해 전국 최초로 대형마트와 지역경제가 상생 길을 찾는 선도도시로 주목을 받는다.대구에는 백화점, 대형마트 등 8개 대형유통업체에서 26개 점포가 운영되고 있다. 이들 업소는 대구시의 지역기여도 가이드라인에 따라 매년 10개 항목에 걸쳐 심사를 받는다. 주요 내용은 지역제품, 지역금융기관 이용, 물가관리, 지방세 납부 등으로 대기업이 지역과의 상생경제에 얼마나 기여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지난해는 백화점 ‘더 현대 대구’가 지역기여도 부분에서 최고 평가를 받아 2년 연속 베스트업체로 선정됐다. 더 현대 대구는 지역금융 이용, 용역서비스 지역발주, 지역인력 고용, 지역상설매장 설치, 영업이익 환원 등에서 만점을 받았다. 현대는 “앞으로 전통시장과의 상생활동 및 문화예술 분야에도 새로운 사업을 기획한다”고 밝혀 대기업으로서 상생경제에 모범을 보일 예정이다.지금 우리경제는 고물가, 고금리 등으로 어려운 처지에 있다. 시장상인을 비롯 소상공인 상당수가 점포 문을 닫아야할지 모르는 고민에 빠져 있다. 대기업에서 작은 일감이라도 받을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소중한 기회는 없을 것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상생경제는 경제가 어려울수록 더 절실하다.수도권 집중으로 야기되는 지방경제의 붕괴를 막기 위해서도 지역에 진출한 대기업 유통업체의 지역경제 기여는 매우 중요하다. 국가가 추진하는 지역균형 발전에도 기여하는 방법이다.대구지역에 진출한 대형유통업체들이 지역에서 번 돈을 지역인력 고용이나 지역상품 구매, 지역사회 환원 방식으로 되돌린다면 그것이 곧 지역경제 상생효과다. 대기업 유통업체의 더 많은 분발이 있길 바란다.

2024-0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