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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소설가 김홍신이 전하는 삶의 주인으로 서는 지혜

‘잃은 뒤에 안다, 그것이 참 소중한 걸. 이별하면 안다, 그이가 천사인 걸. 지나보면 안다, 고통이 추억인 걸. 불행해지면 안다, 아주 작은 게 행복인 걸.죽음이 닥치면 안다, 내가 세상의 주인인 걸.’ 짧지만 큰 울림을 주는 이 글은 베스트셀러 ‘인간시장’ ‘인생사용설명서’의 작가로 수많은 독자에게 사랑받아 온 소설가 김홍신이 인생을 살아가며 수없이 경험하고 깨달은 삶의 소회다. 한 TV 프로그램에서 낭송됐고, 이후 50초 남짓한 영상으로 만들어져 각종 소셜 미디어에서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며 큰 화제를 모았다.김홍신 작가의 신작 ‘겪어보면 안다’(해냄출판사)는 위 열 줄의 짧은 글에 담지 못한 생의 이야기들을 풀어낸 작품으로, 작가의 139번째 출간작이자 4년 만에 선보이는 산문집이다. 부제는 ‘김홍신의 인생 수업’이다.‘아프고, 잃고, 떠나보낸 뒤 비로소 깨달은 인생의 참된 행복’을 주제로 40여 편의 이야기들을 정리했다. 김홍신 작가가 세상과 사람에 대한 변함없는 관심과 애정을 드러낸 정다운 산문집이자, 삶의 조난자들을 희망의 길로 인도하는 인생 안내서다. 숱한 시행착오 끝에 김홍신 작가는 후회 없는 삶을 위해 어떠한 상황에서도 ‘지금 이 순간’ 오롯이 머무르기를, 이를 위해 비교와 계산으로 복잡해진 생각의 창고를 비워야 함을 강조한다. 작가는 “생각을 비틀면 소박하고 자잘하고 가볍고 가까이에 있는 행복을 잡을 수 있다”고 말한다.최인호 작가, 신성일 배우 등 작가와 깊은 우정을 나눴던 지인들과의 추억을 비롯해 삶의 곳곳에서 소환한 다양한 일화들을 통해 특유의 경쾌하면서도 따뜻한 통찰을 전한다. 본문 곳곳에 글의 내용과 어울리는 산뜻한 일러스트를 넣어 읽는 재미를 더했다. /윤희정기자

2024-08-01

‘인터넷 권력 재편’ 위력 가진 블록체인의 미래는…

인터넷은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발명품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초기의 인터넷은 누구나 무엇을 만들었든 만든 사람이 온전히 소유했다. 그러나 구글, 애플, 메타와 같은 빅테크 기업이 등장하면서 디지털 권력은 급격히 중앙화됐다. 그들은 사용자에게서 디지털 세계의 ‘소유권’을 빼앗기 시작했다. 사용자의 정보로 막대한 수익을 창출하지만 분배할 생각이 없다. 그야말로 빅테크가 인터넷을 죽이고 있다.세계적 벤처캐피털 앤드리슨 호로위츠의 제너럴 파트너이자 암호화폐 및 블록체인 투자기업 ‘a16z 크립토’ 설립자인 크리스 딕슨은 첫 책 ‘읽고 쓰고 소유하다(Read Write Own)’(어크로스)에서 ‘블록체인’이 이러한 모순을 해결하고 당초 인터넷이 지향했던 자유와 분권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유일한 기술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이 존재하기 전부터 인터넷을 어떻게 탈중앙화하고 개방된 네트워크로 되돌릴 수 있을지 꾸준히 고민해왔으며, 블록체인 관련 산업에서 가장 큰 규모의 투자금을 움직이는 상징적인 인물이다. 크리스 딕슨은 이 책에서 블록체인이 어떻게 기업뿐 아니라 사용자 커뮤니티에 권한과 경제적 혜택을 부여하는 ‘웹3’라고도 불리는 ‘읽기-쓰기-소유하기 시대’를 맞이할 수 있게 했는지 설명하며 인터넷의 다음 시대에 관한 구체적 전망을 제시한다. 이 책은 출간 전부터 비즈니스·기술 혁신 분야의 주목도서로 많은 이들에게 언급됐고, 샘 올트먼(오픈AI CEO), 무스타파 술레이만(딥마인드 공동창업자) 등 IT 구루의 찬사를 받았으며 출간 즉시 ‘뉴욕타임스’베스트셀러에 올랐다.크리스 딕슨은 ‘왜 블록체인이어야만 하는가?’라는 사람들의 질문에 답하며 블록체인 네트워크가 다른 네트워크 유형에 비해 경쟁력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려준다. 블록체인의 투명성과 신뢰성, 소프트웨어의 ‘조합성’과 낮은 수수료율의 특징, 광범위한 이해관계자에게 ‘토큰’을 통해 보상을 약속할 수 있는 기술적·경제적 메커니즘을 알기 쉽게 정리한다. “블록체인은 기존 컴퓨터에서 해결할 수 없었던 새로운 응용을 가능하게 만드는 일종의 빈 캔버스다. 네트워크 권력을 독점하고 있던 빅테크 기업의 힘은 상상 이상으로 축소될 것이며, 디지털 권력 이동은 필연적으로 수익 모델의 변화, 산업의 구조적 변화, 나아가 사회 체제의 변화를 수반해 기존의 질서가 작동하지 않는 새로운 인터넷의 시대를 열게 될 것이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4-08-01

경외심은 어떻게 내 삶을 일으키고 지탱해주나

경외심(敬畏心·공경하면서 두려워하는 마음)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어떤 거대한 신비를 마주했을 때 경험하는 정서다. 아이가 태어나며 울음을 터뜨릴 때, 영화를 보면서 알 수 없는 환희에 휩싸일 때, 음악을 들으며 고양된 감정에 벅차오를 때, 우리는 경외감을 느낀다.수십 년 전만 해도 심리학자들은 공포나 혐오처럼 인간 생존에 반드시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감정만 연구했다. 그런데 혁명적 사고의 전환이 일어나며 우리가 어떻게 사회적 기본욕구를 채울 수 있도록 진화했는지에 관심이 쏠렸다. 우리는 협력하고 공동체를 꾸리고 공유된 정체감을 강화하는 문화를 창조하는 능력 덕분에 지금껏 살아남았다. 그리고 이 모든 행동은 바로 경외심에 의해 촉발되고 확장된다.미국의 심리학자인 대커 켈트너 UC버클리대 심리학과 교수는 영화 ‘인사이드 아웃’ 제작에 자문 역할을 하고 페이스북 이모티콘 개발에 참여하는 등 인간 정서 연구 전문가로 꼽힌다. 대커 켈트너는 최근 펴낸 ‘경외심’(위즈덤하우스)에서 그동안 베일에 싸여 있던 경외심에 대한 연구 결과들을 선보인다.20여 년 전, 심리학자 대커 켈트너가 조너선 하이트와 함께 경외심이란 무엇이며 그것이 우리의 도덕적·영적·미적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설명하는 논문을 쓰기 전까지는 ‘경외심’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은 존재하지 않았다. 대커 켈트너는 15년 이상 경외심을 과학적으로 연구해왔다.수십 년 전만 해도 심리학자들은 인간 생존에 반드시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몇 가지 감정만 연구했다. 그런데 혁명적 사고의 전환이 일어나면서 우리가 어떻게 사회적 기본욕구를 채울 수 있도록 진화했는지에 관심이 쏠렸다. 협력하고 공동체를 꾸리고 공유된 정체감을 강화하는 모든 행동은 바로 경외심에 의해 촉발되고 확장된다. 대커 켈트너는 이 책에서 경외심이 다양한 사회와 역사와 문화 속에서, 개인의 삶 속에서 어떤 형태로 나타나는지, 우리 뇌와 신체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살펴본다. 그리고 일상 속 경외심의 경험을 쌓음으로써 어떻게 인간 본성 가운데 가장 인도적 측면의 가치를 알아볼 수 있는지를 밝혀낸다.“경외심이란 흔히들 삶을 즐기고 ‘문화’를 누릴 충분한 부(富)를 가진 자들만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이 관념은 틀렸다. 재소자들의 반응이 이를 증명한다. 최신 실증적 연구 결과들 역시 이를 뒷받침한다. 한 연구에서는 자산이 적은 사람들이 하루 중 더 빈번하게 경외심을 느끼며 일상 주변 환경에서 경이를 더 많이 발견한다고 보고했다. 보통은 재산이 많으면 호화로운 주택이나 VIP들만 사용 가능한 값비싼 리조트, 최고급 소비재 등을 누릴 수 있으니 경외심도 더 많이 느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현실은 오히려 정반대다. 부가 일상 속 경외심의 가치를 평가 절하하고 다른 사람들이 가진 심적인 아름다움, 대자연의 경이, 음악이나 예술의 숭엄미를 알아볼 수 있는 능력을 떨어뜨리는 것으로 보인다. 경외심 경험은 부에 의존하지 않는다. 일상에서 경외심을 느끼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기본욕구이기 때문이다.” (130쪽)/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4-08-01

그림책으로 전하는 생명사랑 메시지

포항 문화예술계의 원로이자 ‘지역사 박물관’이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로 포항에 많은 발자취를 남긴 박이득(82) 작가가 신간 ‘복실이 꽃신’(학교앞거북이·사진)을 펴냈다.‘복실이 꽃신’은 소년과 떠돌이 강아지의 애틋한 우정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으로 박이득 작가가 글을 쓰고 정미솔 작가가 그림을 그렸다.‘복실이 꽃신’은 떠돌이 강아지가 한 가족으로 받아들여지는 과정을 그리고 있으며 어린이들과 가족들에게 한 생명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를 잘 보여주는 동화다.또한 사람만이 사람의 친구가 될 수 있는 게 아니라 지구에서 함께 살아가는 모든 생명이 친구가 될 수 있음을 넌지시 말해 주고 있다. 독자들은 준배와 복실이가 나누는 우정과 복실이를 지키려는 준배의 따뜻한 마음에 공감하며, 준배가 복실이의 마음이 되고, 복실이가 준배의 마음을 읽을 때 한 가족이 행복해지는 것을 이 그림책을 통해 알게 될 것이다.특히 후반부에 이르러 준배가 복실이의 마음을 알아채면서 행하는 작은 반전은 재미와 함께 이 책의 주제가 우정을 넘어 생명 사랑이라는 큰 주제로 나아갈 수 있게 한다.박이득 작가는 포항에서 교사, 신문, 방송 기자로 활동하면서 지역사회의 문화, 역사, 교육에 관한 글을 많이 써 왔다. 이로 인해 ‘지역사 박물관’이라는 별명까지 갖게 됐다.포항문화원 창립, 포항문인협회, 포항예총 창립 등에 참여했으며, 포항예총 회장, 최세윤 의병장 기념사업회장, 포항문화연구소장 등을 맡아 활동했다.또한 포항시사를 비롯해 지역 관련 도서 집필에 참여하는 등 향토사 기록 사업에도 업적을 남겼다.‘복실이 꽃신’은 1981년 ‘포항문학’ 창간호에 발표했던 작품이다. 세상에 나온 지 40년이 넘어서 책으로 나오게 된 것이다. 많은 기억과 기록으로 포항 지역 문화 발전을 위해 평생을 바쳤지만, 박이득 작가가 결국 마지막에 깃을 내린 곳은 동화다. 동심을 가지고 어린이처럼 살아온 작가가 이 땅의 어린이와 그 가족들에게 남기고자 했던 말이 ‘가족 사랑’, ‘생명 사랑’임을 이 동화는 보여주고 있다. 정미솔 그림작가는 현재 포항에서 화가, 삽화가, 일러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지역 청년 인재다. 정 그림작가는 유기견보호소 홈페이지를 보며 강아지 복실이의 캐릭터를 구상했고, 실제로 강아지를 키우며 경험했던 것을 토대로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또한 “아이의 눈으로 보는 시각과 강아지의 눈으로 보는 시각을 생각하면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는 시간이었고, 강아지와 함께 보내는 시간 속에서 변화하는 가족들, 그리고 준배의 내면적인 성장을 응원하며 그림을 그렸다. 언어가 통하는 것이 아님에도 마음으로 느껴지는 준배와 복실이 사이의 유대감을 이 그림책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경험해보셨으면 좋겠다”고 전했다.김일광 동화작가는 ‘복실이 꽃신’에 대해 “가장 사랑하는 이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다. 안데르센은 동화를 환상의 세계를 보여주는 ‘놀라운 이야기’라고 하였고, 그림 형제는 ‘어린이와 가족을 위한 이야기’라고 했다. 그 말에 꼭 맞는 동화가 ‘복실이 꽃신’이라고 할 수 있다. 떠돌이 강아지와 함께 엮어가는 한 가족의 애틋한 생명 사랑 이야기. 가족이 함께 읽기 딱 좋은 동화”라고 평가했다. /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24-07-09

시 속의 ‘나’는 내가 되고…

시에 관심이 많은 독자라면 한 번쯤, 시에서는 왜 사건이나 인물이 구체적이지 않을까, 시에서는 왜 주로 현재시제만을 사용할까, 시에 나오는 ‘나’는 왜 독자와 쉽게 동일시되는 걸까 등의 질문을 던져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런 질문은 시에 관한 일반적인 질문일 수 있지만, 쉽게 답할 수 없는, 상당히 까다로운 물음들이다.시인이자 시학(詩學) 이론 전문가인 박현수 경북대 교수(국어국문학과·사진)가 이런 일반적이지만, 시학의 핵심을 겨냥하고 있는 근원적인 질문에 명쾌하게 답을 내놓은 책 ‘시학 개념의 새로운 이해’(울력출판사)를 출간했다.저자는 199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 ‘세한도’로 등단한 시인이다. 하지만 시인인 그도 이런 질문에 쉽게 답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학 연구자로서 새로운 발걸음을 내디뎠는데, 이 책은 시학 연구자로서 그가 이뤄낸 시학 연구의 결과물이다. 전문적인 지식을 다루고 있지만, 결코 어렵지 않다. 전문적인 용어를 잘 설명하고 있으며, 차근차근 시의 심연으로 친절하게 안내하고 있어서 독자들이 시의 비밀을 하나씩 알아 가는 희열을 느낄 수 있게 한다.시에서는 왜 사건이나 인물이 구체적이지 않을까? 이 책은 먼저 이 질문부터 다룬다. 저자는 구체적인 지명과 풍경, 그리고 시인의 경험을 다루고 있는 듯한, 서안나 시인의 ‘애월 혹은’이라는 작품을 예로 들고 있다.“애월(涯月)에선 취한 밤도 문장이다 팽나무 아래서 당신과 백년 동안 술잔을 기울이고 싶었다 서쪽을 보는 당신의 먼 눈(….)”‘애월’은 제주도 서쪽에 있는 아름다운 해변 마을, 특히 한담해변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애월’이 ‘바닷가’라는 사실조차 유추하기 어렵다. 그뿐 아니라 ‘나’와 ‘당신’의 정체도 알기 어렵다. 이것은 시적 상황이 외적 맥락으로부터 완전히 배제돼 있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다. 저자는 시의 이런 특성을 ‘범맥락화(pan-contextualization)’라고 부른다. 시는 이런 범맥락화를 시의 기본적인 방법론으로 사용하고 있기에, 시의 내용이 구체성을 잃은 듯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시는 그런 범맥락화 상태에 도달할 때 좋은 작품이 될 수 있는 것이다.시에서는 왜 현재시제를 주로 사용할까? 이 책의 두 번째 질문이다. 저자는 시에서 사용되는 현재시제를 ‘서정시제’라 부르며, 시인 97명의 시 700여 편을 실은 시선집을 분석해 전체 시의 95.3%가 현재시제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그리고 이런 서정시제로 인해 무시간성, 숭고성 같은 시간 감각을 초월한 시적 분위기를 만드는 데 현재형이 적절하기에 현재시제가 사용된다는 점을 발견한다.이 책의 세 번째 질문, 시적 화자와 독자의 일치감, 즉 독자가 시를 읽으면서 시적 화자 ‘나’에게 손쉽게 자신을 이입하게 되는 현상에 대한 의문도 바로 범맥락성이라는 특성 때문이다. 시적 시공간과 사건, 인물 등에 어떠한 현실적인 정보가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어디에도 적용 가능한 보편적 존재가 되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텅 빈 주체’라고 부른다. 시적 화자가 이렇게 제한적인 특수성으로부터 벗어나 있기에, 독자는 시 속의 ‘나’와 자신을 쉽게 동일시할 수 있는 것이다.그러나 이런 설명에도 불구하고, 앞의 질문은 근원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저자는 그 근원적인 특성을 ‘가상적 연행성’에서 찾는다. 이것은 ‘시 내용의 기준 시점을 시가 공연될 미래의 어느 시점으로 삼는 시적 규범(혹은 관례)’을 말한다. 시는 노래에서 왔으며, 그래서 시는 노래가 지닌 연행성(공연성), 즉 청중(타인이나 자기 자신)을 앞에 두고 노래하는 상황을 고려할 수밖에 없는 장르적 DNA를 갖고 있다. 이런 시적 특성은 현재 노래 가사에서도 여전히 공유되고 있는 특성이다.저자는 이외에도 리듬, 서정적 동일시(서정성), 이미지, 비유, 숭고의 문제도 다루며, 시가 지닌 특성을 설득력 있게 풀어내고 있다. 전반부에서는 주로 형식적인 특성을 다루고, 후반부에서는 내용적인 특성을 다루고 있다. 전반부의 특성을 장악하고 있는 지배적 특성이 ‘가상적 연행성’이라면, 후반부를 장악하고 있는 특성은 ‘초월 감각’이다. 시는 바로 이 두 가지 특성의 정밀한 교직(交織)으로 이뤄지는 훌륭한 직물, 즉 ‘텍스트’라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4-07-03

지구 그 위, 모든 존재를 향한 마음

포항 지역 출판사인 도서출판 득수(대표 김강)는 환경·에너지·기후 변화 등 인류 위기를 소재로 7명의 작가가 소설적 상상력으로 풀어낸 환경앤솔로지 ‘최소한의 나’를 출간했다.하서찬, 이준희, 이경란, 안리준, 박지음, 김도일, 권제훈 작가가 쓴 7편의 소설 안에는 ‘몸속의 미세플라스틱마저 사랑하는 사람’(‘플라스티 베이비’, 권제훈)과 ‘손자를 위해 원전반대 시위를 7년째 하고 있는 할머니’(‘붉은 물고기 되기’, 박지음)가 있고 ‘무분별한 개발로 메마른 대지가 평원 밖으로 밀려났던 옛 주인을 불러 들’(‘아웃빌리지’, 안리준)이기도 ‘농어촌 전형 때문에 시골로 이사 간 k-고딩이 정신 나간 k-부장과 함께 지구 멸망을 맞이’(‘상자’, 하서찬)하기도 한다. 그렇게 ‘자본이 사회를 어떻게 통제’(‘은혜로운’, 김도일)하고 ‘자연을 둘러싼 인간의 욕망과 이기심’(‘소리의 길’, 이준희)이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 보여주며 ‘지구를 파괴하는 우리를 고발’(‘최소한의 나’, 이경란) 한다.이경란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우리는 왜 소비에 목숨이라도 걸 것처럼 살고 있는가. 쓰레기로 지구를 망가뜨리기로는 인간이 유일할 것”이라며 이토록 절망적인 현실에서 희망이 있다고 믿어도 될지 반문한다. 안리준 작가도 ‘아웃빌리지’에서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기에 다시 일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하지만 자연은 망각을 모른다. 개발과 파괴의 역사 속에서 무엇도 잊지 않은 채 가만히 ‘우리’를 응시하는 자연”에 대해 독자들에게 물음을 던진다.이 소설집에 대해 구모룡 문학평론가는 “잉여를 만들지 않는 ‘최소한’의 삶을 추구하지 않는 한 지구의 엔트로피는 파국에 이를 수밖에 없다. 자연과 인간이 서로 감응하고 공생하는 지혜를 배우는 일이 그만큼 중요하다”며 “‘최소한의 나’ 속의 일곱 편 소설은 그 감응과 지혜의 길 위에 있다”라고 말한다.한편, 도서출판 득수는 오는 8월 31일까지 도서 ‘최소한의 나’를 읽고 ‘독서감상화 그리기’ 공모전을 시행한다. 전국 청소년 및 일반인을 대상으로 순수미술과 디지털드로잉 형식으로 진행될 이번 독서감상화 공모전은 도서출판 득수 홈페이지에서 자세한 사항을 확인할 수 있다./윤희정기자

2024-07-02

역사와 반복의 궤적서 자유롭지 않은 사상들

“근현대문학사의 거봉인 춘원 이광수에서 ‘칼의 노래’, ‘남한산성’ 등 굵직한 명작으로 이름난 김훈까지 한국현대문학 작품의 기저에 깔려 있는 사상을 탐구한 책입니다.”경북매일신문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는 이경재(48·사진) 숭실대(국어국문학과) 교수가 학술서 ‘한국현대문학과 사상의 사계’(도서출판 역락)를 발간했다. 이 교수는 왕성한 연구 활동과 평론으로 널리 알려진 문학평론가다.학술서는 이광수, 신채호, 한설아, 임화, 이효석, 김사량, 손장순, 이민진, 남광우, 이병주, 이창준, 김훈 등 우리 문학사의 빛나는 작가들의 문학 사상에 관한 깊이 있는 사색을 담고 있다. 혼돈의 시대에 광대한 문학적 볼륨을 보여준 작가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연구해 새로운 인식을 갖게 하는 논의들도 눈길을 끈다.저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번 학술서의 내용을 간추려 본다.-이번이 20번째 단독 저서이지요.△네. 이번에 책이 나오고 난 이후 20번째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별다른 이유도 없이 아이 때부터 읽고 쓰는 삶을 동경했습니다. 당연히 제 이름이 박힌 책을 쓰는 것은 가장 큰 꿈이었는데요. 하루하루 쓰다 보니 어느새 스무 권의 책이 나왔습니다. 책을 내는 일은 첫 번째나 스무 번째나 설레고 두렵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시간의 파괴력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책, 독자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책을 쓰기 위해 앞으로도 분발하고 싶습니다.-학술서 제목이 특이하던데요.△‘한국현대문학과 사상의 사계’는 ‘역사와 반복’이라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제목입니다. 신화적 세계관이나 종교적 감각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는 직선적 역사의식을 대표하는 헤겔이나 마르크스 등도 역사의 반복이라는 문제에 주목한 바 있습니다. 물론 이때의 반복이 나름의 차이를 동반한 것이라 할지라도, 반복이라는 구조적 속성이 폐기되는 것은 아닙니다. 역사와 삶을 바탕으로 하여 형성된 사상 역시도 반복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한국현대문학과 사상의 사계’를 짧게 소개하면.△한국현대문학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사상의 모습을 사계절에 비유해 네 개의 장으로 구성해봤습니다. 각각의 장을 대략적으로 말씀드리자면, 한국현대문학에서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는 민족주의, 사회주의, 유토피아주의, 보수주의에 해당하는 작가나 작품에 대해 살펴본 것입니다. 한국현대문학을 모두 아우르기에는 턱없이 모자라지만, 앞으로의 본격적인 작업을 위한 하나의 시론으로 여기고 싶습니다.-이 중 마음에 드는 장이 있다면.△모든 글이 머리를 쥐어짜며 간신히 써낸 것들입니다. 굳이 답변해야 한다면, 1장의 ‘근대주의자의 시선에서 바라본 이광수’일 것입니다. 김윤식 선생님의 명저 ‘이광수와 그의 시대’를 살펴본 글인데요. 이광수와 김윤식이라는 두 정신적 거인이 맞부딪쳐 내는 불꽃과 폭음은 가히 장관이라 해도 과장이 아니었습니다. 얼마나 제대로 제가 논의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로서는 공부하고 쓰는 내내 굉장히 흥분했던 기억이 납니다.-가장 많이 읽고 분석한 자료나 잡지가 있었는지.△논의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작가나 작품에 관련된 자료는 가능한 모두 놓치지 않고 살펴보려고 노력했습니다.-좋은 문학은 무엇일까요.△일단 문학은 감동을 줘야 계몽이든 혁명이든 혁신이든 할 수 있는 것 같아요.-한국문학의 위기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은데 어떻게 전망하는지.△문단에 처음 나왔을 때부터, 한국문학의 위기라는 말은 귀가 따갑도록 듣던 말인데요. 요즘 저의 관심을 끄는 것은 오히려 문학보다도 이 세계의 위기입니다. 아직 6월인데도. 밤에는 더워서 잠을 잘 수 없고, 동해안에는 예전처럼 오징어가 잡히지 않는다고 합니다. 모두가 지구 온난화 때문인데요. 모든 전문가가 이렇게 가다 보면 몇 년 안에 임계점을 넘어 파멸이 확정적이라지만, 별다른 움직임이 보이지 않습니다. 또한 작금의 한국 정치에 과연 도가 있는지 의문이 듭니다. 나아가 서로 안 좋은 것들만 주고받는 남북이나 여전히 계속 되는 세계 도처의 전쟁 등을 생각하다 보면, 문학의 위기는 차라리 엄살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윤희정기자

2024-06-30

오만의 격변기를 살아온 세 자매

‘천체:세 자매 이야기’(서랍의 날씨)는 아랍 작가로는 최초로 영국 맨부커 인터내셔널 부문(2019)을 수상한 오만 여성 작가인 조카 알하르티의 두 번째 소설이다. 오만 최초로 영어로 번역된 작품으로 2019년 부커상 인터내셔널 수상의 영예를 안으면서 세계적으로 큰 호평과 찬사를 받았다. ‘천체(Celestial Bodies)’는 1960년대에 산유국이 되면서 부유해진 오만인들의 가치관과 사회 전체가 변화하는 과정을 면밀하게 추적한 소설이다. 오만의 격변기를 살아온 세 자매 이야기를 중심으로, 두 가문의 삼대에 걸친 서사를 다루고 있다.급격한 사회변화와 20세기, 그중에서도 특히 1960년대 이후로 산유국이 되면서 부유해진 오만인들의 가치관이 변화되는 과정을 면밀하게 추적한다. 아랍 세계에서 소설의 하부 장르 중 하나인 역사 소설이 급격히 늘어난 가운데 등장한 이 작품은 독자들을 환기하는 역사를 배경으로 삼아 이야기를 서술한다.‘천체’의 중심에는 오만의 한 상류층 가족이 있다. 이들은 전통적인 방식을 유지하면서 사회적 변화는 잠정적으로 그리고 아주 미세하게 수정한 사회적 행동만을 받아들일 것을 요구받는다. 하지만 사회적 변화가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을 통제하려고 애를 쓰는 이 가족은 주인과 노예의 관계로 이뤄진, 말로 표현하지 못한 역사를 숨기지 못한다.우리는 베두인 여성과 사랑에 빠지는 한 유부남 가장이 혼인 관계를 파탄 내는 모습을 목격한다. 전통적인 가부장제의 고루한 가치들을 고수하는 그의 아내는 손녀가 자신보다 낮은 신분의 남자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관계를 맺는 식으로 전통적인 가치에 도전하자 그 관계 자체를 부인하는 식으로 자신의 권위를 세우려 노력한다.이 소설에 나오는 세 딸은 급격한 사회적·경제적 과도기에 사회가 제시하는 이상적인 여성성에 다양한 방식으로 대응한다. 조카 알하르티. /조카 알하르티 공식 홈페이지 큰 딸인 마야는 부모에게 대들고 싶지 않아서 부유한 상인의 아들이 한 청혼을 묵묵히 받아들인다. 둘째 딸인 아스마는 배움을 추구하고, 화가지만 친척이라서 그런대로 괜찮은 사람과 결혼한다. 막내인 칼라는 어렸을 때 너는 나의 신부가 될 거라고 계속 말한, 캐나다로 이주한 사촌을 기다리겠다고 고집을 피운다.마야의 남편 압달라가 해설자처럼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전개되는 이 소설은 아랍 비평가들에게서 각 등장인물의 섬세하고 촘촘한 묘사, 역사적 깊이와 예리한 묘사, 독창적인 서술 구조로 찬사를 받았다.조카 알하르티는 영어로 번역된 소설을 쓴 첫 오만 여성 작가다. 2016년 소설 ‘나린자’로 문화, 예술, 문학 부문 술탄 카부스 상을 받았다. 에든버러대학에서 고전 아랍 시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무스카트에 있는 술탄 카부스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오는 29일 열리는 서울국제도서전에 참가해 한국 독자들을 만날 예정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4-06-27

격동의 시대, 전쟁 같은 사랑 이야기

1차대전 직전 유럽의 문화사·정신사를 독특한 필치로 담아낸 ‘1913년 세기의 여름’으로 세계적 격찬을 받았던 독일 언론인이자 작가인 플로리안 일리스의 ‘증오의 시대, 광기의 사랑’(문학동네)이 출간됐다. 전작이 “우리가 현재라고 부르는 시간의 시작점”인 1913년으로 되돌아가 모더니즘의 찬란한 태동을 생동감 있게 보여줬다면, 이번 신작에선 제1차세계대전~제2차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 1929~1939년까지의 10년의 기간을 다룬다. 플로리안 일리스는 일기, 편지, 잡지, 신문, 그림, 사진 등 수많은 자료를 바탕으로 이 격동의 10년을 문화사적으로도 중요한 인물들의 사랑 이야기를 통해 풀어냈다.사르트르와 보부아르, 헤밍웨이, 스콧 피츠제럴드와 젤다 피츠제럴드,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와 같은 소설가들, 파블로 피카소, 살바도르 달리, 오토 딕스 같은 화가, 한나 아렌트와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과 아인슈타인 같은 철학자와 과학자, 마를레네 디트리히나 레니 리펜슈탈과 같은 영화계 인물, 요제프 괴벨스와 콘라트 아데나워와 같은 정치인 등 다채로운 인물들의 사랑 이야기가 마치 영화처럼 눈앞에 펼쳐진다.여러 인물들이 보여주는 사랑은 말 그대로 ‘전쟁 같은 사랑’이다. 자유연애를 선언한 사르트르의 끝없는 바람기 때문에 보부아르는 남몰래 괴로워하고,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 F. 스콧 피츠제럴드는 아내 젤다가 동성의 연인과 사랑에 빠진 사이 알코올에 빠지고, 이뤄질 수 없는 사랑에 미쳐버린 젤다는 정신병원을 전전한다. 배우, 예술가, 정치인 등 수많은 명사들의 이성애, 동성애, 양성애, 근친애, 지고지순한 사랑, 이기적인 사랑, 불같은 사랑, 권태로운 사랑 얘기는 잿빛 과거에서 생생한 현재로 데려다주는 흥미진진한 시간 여행을 제공한다.1920~30년대를 대표하는 오스트리아 작가 로베르토 무질의 “세계의 역사는 적어도 그 절반은 사랑의 역사”는 참으로 적확하다. 자기중심적인 사랑, 상대의 재능 때문에 빠져든 사랑, 식어가는 사랑, 너무 뜨거운 사랑, 은은한 사랑, 미칠 것 같은 사랑, 심연보다 깊은 자녀에 대한 사랑 등 사랑의 종류는 다양하고 이야기는 깊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4-06-27

자연과 함께하는 소박한 삶…소로의 일기: 영원한 여름편’ 출간

“단순하게 살고 번거로움을 피하는 것이 단단해지는 비결이다. 특별한 혜택을 누리지 못한다는 것, 그것이 내게는 가장 큰 혜택이다. 사람들이 나의 약점으로 여기는 것이 내게는 강점이다.”-‘소로의 일기: 영원한 여름편’ 본문에서생태주의 철학의 기반을 세운 미국의 사상가이자 시인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1817∼1862)가 1855∼1857년 3년간 쓴 일기를 선별해 묶은 책 ‘소로의 일기: 영원한 여름편’(갈라파고스)이 나왔다.생태주의적 삶의 ‘바이블’인 ‘월든(walden)’을 집필한 소로는 한평생 삶과 자연에 대한 깨달음을 일기로 남겼고, 그의 일기는 100년이 넘도록 살아남아 꾸준한 사랑을 받아왔다. 그는 “일기는 좋았던 일이나 그럴듯한 말을 담는 그릇이 아니라 경험과 성장을 적는 그릇”이라고 여겼다.소로는 20대 때부터 매사추세츠주 콩코드에 위치한 월든 호숫가에 혼자 힘으로 집을 짓고 세상과 떨어져 살 정도로 ‘단순하게 살아야 한다’는 자신의 신념에 충실했다. 월든 호숫가를 떠나 마을로 돌아온 후에도 매일의 일상을 관찰하며 단단한 삶을 꾸려가는 법을 일기에 기록했다. 하버드 대학을 나온 지식인이었지만 마을 곳곳에서 푼돈을 받고 허드렛일을 하며 생계를 꾸렸고, 손수 텃밭에 감자 따위의 먹을 것을 키우고 옷을 지었다.일기 속 소로의 온갖 자잘한 노동과 소박한 생활방식을 따라가다 보면 거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정직한 리듬을 만끽하게 된다. 놀랍게도 소로는 어수선하고 복잡한 생활 양식을 권하는 현 사회 시스템은 오직 무딘 사람들만 좋아할 뿐, 사실 다수는 그렇게 사는 것을 내키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사람이라면 더 많은 부, 더 많은 편리함을 소유하길 원하며 그것이 사람의 본성이라는 통념이 만연한 세상에서 이러한 발언은 통쾌함과 해방감을 안겨준다. 소로는 노예처럼 사는 데 지쳤을 뿐 아니라 인간의 진정한 조건에 대해 의구심을 품게 된 우리 내면을 누구보다 정확히 꿰뚫어 본 사람이었다.그에겐 단순하게 살고 번거로움을 피하는 것이 단단해지는 방법이었다. 일기에 “적막함이나 가난함이라고 세상에서 부르는 것들이 내게는 단순함일 뿐이다”라고 밝혔고, 자신을 살찌우지도 못하는 값비싼 무언가를 추구하기보다는 평범한 매일의 생활에서 영감과 즐거움을 얻기를 바랐다. 과연 그의 말대로 와인과 브랜디의 맛 때문에 물맛을 잃게 된다면, 우리는 삶이 얼마나 불행해질지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다.그의 일기를 읽으면 비가 오건 눈이 오건 숲, 들, 늪지 등을 쏘다니는 산책자 소로의 부지런함과 왕성한 호기심에 감탄하게 된다. 그는 근심 대부분이 우리가 실내에서 살기에 생겨난다면서 ‘실내 생활 반대 운동’을 펼치고 싶다고 적었다. 안개비가 내리는 날에 산책하면 맑은 날보다 시야가 좁아지고 사방이 고요해져서 “생산적인 생각이 꼬리를 물게” 된다고도 읊조린다.소로는 “돈을 들이지 않고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면 그 사람이 가장 큰 부자다”라고 주장한다. 채도 높고 풍성한 그의 자연관찰 기록에서는 즐거움과 호기심이 퍼져 나와 매번 읽는 이의 마음을 크게 뒤흔든다. 자연을 다각도에서 관찰하며 발견의 기쁨을 누리는 소로의 눈을 통해 독자 또한 자연과 일상에서 새로운 영감을 얻는 방법을 체득하게 된다.‘소로의 일기: 영원한 여름편’은 소로의 글솜씨가 최고조에 올랐지만 건강을 많이 잃고 여러 우정의 위기를 겪은 1855년~1857년 사이에 쓰였다. 어쩌면 그의 인생에서 겨울에 해당하는 시기였다고 추측할 수도 있으나, 소로는 겨울의 아름다움을 찬미하며 겨울 속에 “영원한 여름이 있다”고 말한다. 그는 눈과 얼음의 세계에서도 그 세계만이 가진 미와 미덕을 봤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4-06-27

황제와 교황의 갈등… 진짜 원인은 ‘돈’이었다

‘로마를 통일한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서기 313년 기독교를 공인한 배경에는 재정난이 있었다. 당시 로마제국은 재정 악화로 국가 통치마저 어려울 지경이었다. 황제는 기독교에 수익의 10분의 1을 내는 ‘십일조’의 전통이 있음을 눈여겨보고 기독교를 받아들여 세제 개혁을 이뤘다.’‘인류 역사를 통틀어 종교, 이념, 민족, 지역을 초월했던 유일한 매개체는 돈이다. 부(富)에 대한 갈망이 인류를 움직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신간 ‘역사는 돈이다’(잇콘)는 저자인 강승준 서울과학기술대 교수(한국은행 감사·전 기획재정부 재정관리관)가 돈이라는 동력을 축으로 삼아 세계사의 여러 장면을 해설하는 책이다.강 교수는 1077년 신성로마제국의 하인리히 4세가 자신을 파문한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에게 용서를 구한 ‘카노사의 굴욕’ 등 역사적 사건 56가지를 돈의 관점으로 분석하면서 명분과 위선으로 포장된 역사의 진짜 의도를 꿰뚫어 보지 못하면 미래는 존재할 수 없다고 경고한다.책은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사 여러 사건의 이면을 들여다본다.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의 오랜 악연은 무엇에서 비롯됐을까?, ‘하멜표류기’는 조선과 일본의 역사를 어떻게 뒤바꿔 놓았을까?, ‘카노사의 굴욕’, ‘아비뇽 유수’ 등 황제와 교황의 갈등, 환전상에서 유래한 ‘은행’의 어원, ‘성전’(聖戰)을 내세웠지만 ‘성전’(聖錢)을 위해 변질한 십자군 전쟁 등에서 공통점을 찾아내며 정치, 민족, 종교, 사상 등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진짜 원인은 바로 ‘돈’이었다고 주장한다.부(富)에 대한 갈망이 인류를 움직였다는 주장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 범위는 우리의 생각을 훨씬 뛰어넘을 만큼 폭넓고, 그중에는 절대 아닐 것 같은 숭고한 사건도 많다. 아직 순진한 인류애를 품은 독자라면 이 책을 읽고 경악하게 될지도 모른다.잇콘 출판사 측은 “대한민국은 거대한 돈의 역사에 희생된 약소국 중 하나였고, 지금도 소용돌이 한가운데 서 있는 위태로운 국가다. 역사는 반드시 반복된다. 명분과 위선으로 포장된 진짜 의도를 꿰뚫어 보지 못하면 미래는 존재할 수 없다. 이 책은 그러한 통찰력을 키우기 위한 오답 노트가 되어줄 것”이라고 전했다.저자는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경제적 동기가 어떻게 역사를 바꿨는지 고찰하고서 이권에 따라 움직이는 국제사회의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하라고 촉구한다.“내가 이 책에서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세계사는 힘의 논리로 흘러왔고, 그 힘이 작동하게끔 한 동인은 ‘돈’이라는 것이다. (중략) 아무리 좋은 이념이나 명분도 자국의 이익에 도움이 안 되면 가차 없이 버리는 것이 승자의 습성이다.”(540쪽)/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4-06-20

‘너와 세상 사이의 싸움에서’ 카프카 100주기 잠언·일기집

환상문학의 대가인 체코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1883∼1924)가 쓴 일기와 잠언을 한데 엮은 ‘프란츠 카프카 잠언·일기집-너와 세상 사이의 싸움에서’가 민음사 문고판 ‘쏜살 문고’시리즈로 출간됐다. 카프카 100주기를 맞아 펴냈다. 이 책은 카프카가 1909년부터 1922년까지 쓴 일기의 일부와 1920년에 친구인 작가 막스 브로트가 발간한 잠언집 ‘죄, 고뇌, 희망과 참된 길에 대한 성찰’에 수록된 잠언의 일부가 포함됐다. 또한 자전적 성찰, 글쓰기에 대한 카프카 자신의 견해뿐만 아니라 소설 초안과 단편들도 포함돼 있다.카프카는 1917년부터 1918년 봄 사이에 걸쳐 8절지 노트에 자신의 사상, 세계관, 종교관을 담은 아포리즘을 기록했는데, ‘프란츠 카프카 잠언·일기집-너와 세상 사이의 싸움에서’에서는 모두를 수록하지 않고, 카프카를 이해하는 데 핵심이 될 만한 내용을 중심으로 발췌했다.그의 일기를 통해 카프카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은 흥미로우면서도 고통스럽다.카프카가 남긴 일기의 키워드는 ‘불안’이다. 병에 대한 불안뿐만 아니라 고향을 상실한 유대인으로서의 불안, 형이상학적인 삶의 불안 등이다.카프카의 잠언과 일기를 통해 독자는 카프카의 전체적인 실제 모습을 그려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흔히 알려진 카프카의 인상과는 다른 면모를 알 수 있게 된다. 특히 일기에서는 카프카의 작품들에서 느껴지는 기괴하고 부조리해 종잡을 수 없는 모습 대신 진지하면서도 낭만적이고 서정적이며 열정적인 사랑꾼의 모습을 볼 수 있다.1883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보헤미아(현 체코)의 프라하에서 태어난 카프카는 어릴 때부터 작가를 꿈꿔 1904년 ‘어느 투쟁의 기록’, 1906년 ‘시골의 결혼 준비’를 집필했고, 1908년 노동자상해보험공사에 취직한 이후로도 14년 동안 직장생활과 글쓰기 작업을 병행했다. 인간 운명의 부조리성과 인간 존재의 근원적 불안에 대한 통찰로 사르트르와 카뮈에 의해 실존주의 문학의 선구자로 평가받았다. 1917년 폐결핵 진단을 받아 여러 요양원을 전전한 끝에 병이 악화돼 1924년 빈 근교의 한 요양원에서 사망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4-06-20

“다시 눕혀진들 어떠리!” 86세 원로시인의 말

시력(詩歷) 66년의 황동규(86) 시인이 새 시집 ‘봄비를 맞다’(문학과지성사)를 펴냈다.1958년 미당 서정주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에 ‘시월’, ‘동백나무’, ‘즐거운 편지’를 차례로 발표하며 등단한 황동규는 묶어낸 시집마다 특유의 감수성과 지성이 함께 숨 쉬는 시의 진경은 물론 ‘거듭남의 미학’으로 스스로의 시적 갱신을 궁구하며 한국 서정시의 새로운 현재를 증거해 왔다. 미수(米壽)를 두 해 앞두고 펴낸 열여덟 번째 시집은 쉼 없는 시적 자아와의 긴장과 대화 속에서 일궈낸 삶의 깨달음을 시로 형상화하고 있다.2020년 10월 ‘오늘 하루만이라도’가 선보였으니 근 4년 만에 다시 새 시집으로 독자들을 찾은 셈이다. 전작에 이어 이번 시집 역시 그간 꾸준히 쓰고 발표한 시 59편과 함께 시 편 편의 주요한 처소(處所)이자 생의 후반 이십 년 가까이 시인의 발걸음과 감각을 붙잡아두고 진한 즐거움을 안겨준 공간에 대한 소회를 담은 산문(‘사당3동 별곡’) 한 편을 더했다.이번 시집에서 황동규는 녹록지 않은 노년의 삶을 이어가는 노정에도 여전히 시적 자아와 현실 속 자아가 주고받는 대화를 포기하지 않고 생의 의미와 시의 운명을 함께 묻고 답하는 데 전력을 다한다. “걸으리,/ 가다 서다 하는 내 걸음 참고 함께 걷다/ 길이 이제 그만 바닥을 지울 때까지”-(‘그날 저녁’), “다시 눕혀”지더라도 “늙음의 바닥을 짚고 일어나”-(‘시인의 말’) 이어가는 것이 자신의 삶임을 명료하게 의식하는 그의 시는 누구나 열망하나 쉬이 넘볼 수 없는 여유와 온기와 다감함 역시 잊지 않는다. “끄트머리가 확 돋보이는 시”-(‘사월 어느 날’)를 향한 한결같은 열정과 함께, 삶에 대한 유쾌하면서도 진지한 긍정의 진술이 가닿는 환한 깨달음, “그렇다, 지금을 반기며 사는 것”-(‘겨울나기’)이란 시인의 다짐을 거듭 곱씹게 된다.영하의 겨울, 아파트 발코니에 사이좋게 세를 든 소철과 알로에, 문주란의 바랜 색과 빛을 우두커니 바라보며 적적해하던 심중도 잠시, 붉게 움튼 제라늄 몇 송이와 고사할 줄로만 알았던 고무나무가 석양을 향해 번쩍 쳐든 잎들의 광경에서 시인은 “지금을 반기며 사는” 삶의 태도(‘겨울나기’), 그 아름답고도 절실한 생의 의미를 환기한다.이번 시집의 서시로 자리한 ‘오색 빛으로’는 시집을 통틀어서 유일한 미발표작이다. 시인이 공들여 벼린 가장 최신의 작품으로 전복 껍데기의 이미지와 운명에 빗댄 시론으로도 읽히는데, 그 시적 사유와 삶의 통찰이 깊고 눈부시기만 하다. 황동규 시인 황동규 시 특유의 극서정시(劇抒情詩)는 고목의 속삭임으로도 그 진면모를 드러낸다. “‘이런 일 다 집어치우고 싶지만/봄비가 속삭이듯 불러내자/미처 못 나간 것들이 마저 나가는데/어떻게 막겠나?’” 그렇다. 별것 아닌 사소한 삶의 전경은 살아 숨 쉬는 시인의 열정으로, 삶의 경이(驚異)로 이어진다. 맞다. “늙음의 바닥을 짚고 일어나 다시 링 위에 서는 (다시 눕혀진들 어떠리!) 한 인간의 기록이”-(‘시인의 말’) 숭고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황동규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4년 전 시집 ‘오늘 하루만이라도’를 상재할 때 앞으로는 좀 건성건성 살아도 되겠구나, 했지만 코로나바이러스가 그렇게 놔두지 않았다. 늙음이 코로나 글러브를 끼고 삶을 링 위에 눕혀버린 것이다. 이 시집의 시 태반이 늙음의 바닥을 짚고 일어나 다시 링 위에 서는 (다시 눕혀진들 어떠리!) 한 인간의 기록”이라고 적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4-06-20

방언학자가 수집한 맛깔난 문학작품들

이상규 경북대학교 명예교수(전 국립국어원장·사진)가 최근 저서 ‘문학방언’(한국문화사)을 출간했다.국어학자이자 방언학자, 또한 시인으로서 국립국어원장을 지낸 이 명예교수는 40여 년 넘게 방언 수집과 연구에 매진해 왔다.이 교수는 우리나라 시문학사에서 토속적인 언어를 선호했던 시학 발전을 새롭게 정리해 책에 담았다. ‘우리말의 곡진한 결, 방언으로 쓴 문예’라는 부제가 붙은 해당 도서는 100여 명이 넘는 전국 각 도별 시인들의 작품을 소개하고 방언의 문학적 효과와 시사적 의미를 분석한다. 이 교수의 그간의 방언 자료와 기록을 총집결한 성과물이라는 점에서 사계의 관심을 받고 있다. 저자의 오랜 연구와 노력 끝에 나온 책으로서 독자들은 각 지역의 토속적인 언어를 녹여낸 문학 작품을 통해 국어의 다양성과 지역 고유의 특성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고, 방언 연구자들에게는 더없이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다.이 책은 총 3장과 부록인 참고문헌으로 구성돼 있다.1부 ‘시의 행간에 둥지를 튼 방언’은 시 작품에 방언의 옷을 입히다, 방언은 한국전통 예술미학의 뿌리, 방언 시의 미학이 포함돼 있다.2부 ‘문학 방언의 풍경’은 정원에 한 가지 꽃만 피어 있다면, 시 그릇에 방언을 담아낸다, 이상화의 시에서 방언의 해독, 대구방언으로 걸쭉하게 쓴 상희구의 시 등 4장으로 구성돼 있다.3부 ‘방언고고학’은 방언과 우리들의 삶, 방언은 토착 지식의 창고, AI 시대에 제주어 연구 확장과 보전이 포함돼 있다.저자는 머리말에 “돌이켜 보면 내 삶의 거의 대부분 시간을 우리말의 곡진한 결을 가진 방언 수집과 연구에 공을 들였다”며 “방언 자료조사와 정리 그리고 해석이라는 연구 목표와 이러한 연구가 갖는 철학적 함의로서 언어의 다양성과 다원공존이라는 한 시대를 꿰뚫는 사유에 깊이 천착하였던 시절을 돌이켜 본다”고 적었다.한편, 이상규 교수는 1979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개원에 발맞춘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적 방언조사 사업에 조사연구원으로 첫 발을 디딘 후에 일본 동경대 객원연구교수로 방언지도 연구를 통해 컴퓨터를 활용한 K-mapmaker라는 방언지도제작시스템을 우리나라 최초로 구축한 바 있다. 국립국어원장 재직(2006~2009년) 중에는 폐쇄적인 표준어 정책의 깊이와 폭을 확장하기 위해 남북방언조사사업을 비롯한 일상생활전문용어 조사사업 추진과 더불어 한국시인협회를 통해 전국 방언으로 쓴 시집 간행을 도와 ‘시인 101명, 내 고향말로 시를 쓰다’라는 부제를 단 방언시집 ‘요 엄창 큰 비바리야 냉바리야’가 출간됐다. 올 초부터는 본지에 ‘이상규의 시와 방언 이야기’를 연재 중이며, 몇몇 칼럼은 이번에 간행된 ‘문학방언’에도 게재됐다.대표 저서로는 ‘방언학 개설’, ‘방언의 미학’, ‘국어방언학’, ‘문학 속의 경상 방언’, ‘경주지역의 삶과 언어’, ‘위반의 주술’, ‘시와 방언’, ‘시어방언사전’ 등이 있다. 지난해 말 출판한 ‘프네우마 시편’ 등 다수의 시집도 펴낸 바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4-06-19

한국 수필 선구자, 한흑구의 문학적 일대기

‘모란봉에 모란꽃 피면 평양 가겠네’ 표지 ‘단 한 편의 친일문장도 쓰지 않은 영광된 작가’로서 20세기 한반도와 대공황기 미주대륙에 새겨진 ‘한흑구의 문학과 삶’을, 그의 문학적 일대기를 93편의 이야기들로 엮어낸 책이 나왔다. 포항 출신의 중진 이대환(66) 작가가 최근 펴낸 ‘모란봉에 모란꽃 피면 평양 가겠네’다. ‘Han’s Aria 한흑구 아리아’라는 부제가 붙었다. 매 편에 인용한 한흑구의 작품과 그 상황을 통찰한 저자의 안내를 따라가면서 마치 해설을 곁들인 아리아 93곡을 감상하듯이 읽을 수 있다.1950년 8월 15일, 광복 5주년에 41세 한흑구는 아내와 같이 어린 자녀 넷을 데리고 포항에서 출발해 꼬박 한 주일을 걸어 부산의 동래 다리 밑에 닿았다. 곧바로 수영비행장에 주둔한 미군 지휘부의 통역관이 되어 공초 오상순, 조지훈, 청마 유치환 등 종군 문인들의 저녁 술자리를 책임지는 임무에 충실히 나선다. 그해 10월 국군과 유엔군이 평양을 수복하고 문인 대표들도 평양으로 날아가게 되자 조지훈은 평양 토박이 한흑구에게 동행을 강권한다. 그러나 한흑구는 이렇게 사양했다. “나는 모란봉에 모란꽃이 피면 평양에 가겠네.” 책 제목으로 삼은 이 장면이 첫 번째 아리아 애인보다 가까운 조지훈과 함께/다시 모란봉에 올라보고 싶지만이다.두 번째 아리아 아버지는 창끝에 찔려 넘어졌고/나와 동무는 도망하여 나왔노라는 한흑구가 열 살 때(1919년) 경험한 3·1운동을 24세의 미국 유학생이 돼 1933년 3월 9일 ‘신한민보’에 발표한 시 ‘3월 1일’을 인용하고 있다. 세 번째 아리아는 ‘함박눈 내리는 날 지게꾼이 오고/어머니는 소리 없이 울었네’로, 한흑구가 일곱 살이었던 어느 날에 아버지(한승곤)가 중국(상하이)을 거쳐 미국으로 망명 떠나는 장면이다. 이후로는 그의 유년 시절부터 1979년 11월 그의 임종과 장례를 담은 아흔세 번째 아리아 흰 갈매기의 울음소리를 들으러/검은 갈매기는 영일만 바닷가 흙 속으로까지가 시계열에 어긋남 없이 그의 작품을 현장의 증언처럼 인용하면서 정연하게 이어진다.서른아홉 번째 아리아 식민지 조국에 돌아와/문학의 길로 정진하겠다는 한흑구의 자화상까지는 주로 그의 시를 인용하고, 마흔 번째 아리아 ‘헐어지는 집’에 돌아와 휘트먼을 호출하고/16만 평양시민의 종합지 ‘대평양’을 창간하다부터 마지막(아흔세 번째)까지는 주로 그의 산문을 인용한다. 쉰아홉 번째 아리아 문학의 장르로서 수필의 독자적 가치와 양식을/한국문학사에 개척하고 정립하다에서는 영미 에세이의 역사와 작품들을 일목요연하게 통찰한 지식을 바탕으로 단단한 ‘수필문학론’을 피력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일제강점기 한국 수필문학의 선구자로서 한흑구의 진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해방된 평양이 ‘붉은 도시’로 돌변하자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탈출해 서울 문단에 합류하고 미군정청 통역관을 지냈던 한흑구가 1948년 늦가을에 세속적 명리를 멀리하고 낯선 땅 포항에 출현하는 모습은 예순한 번째 아리아 포항시 남빈동의 낡은 집을 둥지로 삼는/검은 갈매기에 담겨 있다. 포항에 정착한 그는 월트 휘트먼, 칼 샌드버그, 랭스튼 휴즈 등 미국 대표 시인들의 시를 번역해 번역시집 ‘현대미국시선’을 펴내고, 세계적 음악가로 ‘애국가’와 ‘코리아 판타지’를 작곡한 안익태를 가형처럼 도와주며 함께 지냈던 필라델피아 템플대학 유학 시절을 A와 K라는 주인공으로 내세운 장편소설 ‘젊은 예술가’도 발표하지만, 1955년 4월 18일 동아일보에 발표한 시적 수필의 명작 ‘보리’가 보여주듯이 문학적 정혼을 수필 창작에 기울이며 동아일보 조선일보 매일신문 영남일보 현대문학 시문학 수필문학 등 다양한 여러 매체에 많은 수필을 발표했다.마흔 살을 앞두고 솔가해 포항에 정착한 한흑구는 ‘향수’에 휘둘리지 않는 모습으로 일관했다.전후 폐허의 포항을 재건할 때는 미군의 도움을 불러오는 일을 조용히 해내고, 다시 일어서는 포항의 기상을 전국에 알리는 글을 쓰는가 하면, 포항수산대학 교수로서 후학을 길러내며 이명석, 김대정, 박영달, 최성소, 김녹촌, 손춘익 등 지역 문화예술인들과 함께 ‘흐름회’를 조직해 문학운동의 활기를 불어넣었다.그러나 70세에 다가서며 생의 종점을 예감하는 한흑구는 가슴 깊이 봉인해둔 향수 주머니의 실밥이 터져 버린다. 이대환 작가 그래서 글로 만든 ‘평양 안내지도’라 불러도 손색없을 ‘모란봉의 봄’ 같은 수필을 쓴다. 아흔 번째 아리아 꽁꽁 봉인해둔 침묵의 향수(鄕愁)에/속절없이 그만 실밥이 터지고다. 1979년 11월 지상의 마지막 음식으로 냉면을 맛보고 나서 자택에서 숨을 거둔 그는 영일만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포항시 죽천리 언덕에 묻혔다. 아흔세 번째 아리아 흰 갈매기의 울음소리를 들으러/검은 갈매기는 영일만 바닷가 흙 속으로다.이대환 작가는 “포항 육거리에서 서울까지 363킬로미터고 백두산까지래야 두 배도 못 되는 672킬로미터인데, 언젠가 평양 사람들이 포항에 와서 선생을 기억해주고 남녘 사람들이 모란봉에 올라가 선생을 추억해 주는 그날이 올 것이라 믿고 기다리며 이 책을 선생의 영전에 바친다”고 말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4-06-17

소설가 함정임의 유럽 묘지 순례기

소설가 함정임(60) 씨가 유럽 묘지 순례기 ‘모든 것이 거기 있었다’(현암사)를 펴냈다. 함 씨가 지난 2020년 등단 30주년을 맞아 펴낸 아홉 번째 소설집 ‘사랑을 사랑하는 것’(문학동네) 이후 4년 만에 선보이는 저작이다.이번 책은 작가 특유의 유목민적 상상력, 애도의 글쓰기를 고스란히 이어간다는 점에서는 친근하지만 묘지를 순례하는 형식으로 쓰였기에 완전히 새롭다.스무 살 때부터 저자를 사로잡았던, 유럽의 시인, 소설가, 화가, 음악가, 극작가, 영화감독들이 생전에 살던 곳과 영면에 든 공간을 찾아간 문학적 묘지 순례기다.파리 몽파르나스 묘지의 장 폴 사르트르와 시몬 드 보부아르의 합장묘, 200만 명의 군중이 모인 가운데 개선문에서 장례식을 치렀던 프랑스의 국민적 영웅 빅토르 위고가 묻힌 국립묘지 팡테옹, 묘석도 비석도 없이 묘를 사이에 두고 가느다란 길만 나 있는 톨스토이 묘 등을 찾은 저자는 문학과 예술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들이 살았던 시대와 역사, 삶과 예술을 문학적 단상들과 함께 들려준다. 저자가 직접 찍은 다채로운 풍경과 여행 사진도 실렸다.그는 작가의 말에서 “지중해 바닷가 언덕, 폴 발레리의 해변의 묘지에 다시 갔다. 스무 살 때 처음 그곳 꿈을 꾸었고, 스물여덟 살 때 꿈을 실현했고, 32년 만에 그 앞에 다시 선 것이었다. 이런 행위, 이런 삶은 무엇일까. 설렘도 황홀도 슬픔도 덧없음도 한갓 한순간. 무엇을 붙잡으려 했던 것일까. 이것이 문학, 순정인가. 돌아와서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고 적었다.함 씨는 1990년 등단한 이래 ‘호모 비아토르(Homo Viator·여행하는 인간) 작가’라는 수식어를 달고 활발한 작품 활동을 했다. 그간 소설집 아홉 권, 장편 네 권, 중편 한 권을 냈고 여러 산문집과 동화, 번역서도 펴냈다. 현재 동아대 한국어문학과에서 연구·강의와 소설 창작을 병행하고 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4-06-13

데뷔 60주년 남진, 그의 인생을 책으로 만난다

가요계를 대표하는 트로트 레전드 남진(80)의 가요계 데뷔 60주년을 맞아 그의 인생 전반 이야기를 담은 책이 출간됐다.상상출판은 1960년대부터 시작해 현재까지 이어지는 남진의 음악 인생과 파란만장한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오빠, 남진’을 최근 출간했다. 책은 ‘원조 오빠에서 영원한 오빠로’란 부제가 붙었다.전남 목포 출신으로 지난 1965년 ‘서울 플레이보이’로 데뷔한 남진은 1967년 작곡가 박춘석의 ‘가슴 아프게’로 대히트를 치며 20대 초반 나이에 스타덤에 올랐다. 이듬해에는 당대 최고의 배우인 문희와 신영균이 주연한 ‘미워도 다시 한번’이 한국 영화 역대 최다 관객을 불러 모으면서 영화 주제곡을 부른 남진은 뜨거운 인기를 얻는다. 해병대에 자원입대한 남진이 베트남 참전을 자청해 해병 2여단 청룡부대 일원으로 월남으로 출병할 때는 많은 국민이 거리로 몰려나와 눈물을 흘리며 무운을 빌 정도로 큰 관심을 끌었다. 베트남에서 3년 복무를 마치고 월남에서 돌아온 남진은 ‘한국의 엘비스 프레슬리’라는 애칭까지 얻으며 인기 절정을 구가했다. 흡인력 있는 외모와 박력 있는 목소리, 하반신을 흔드는 현란한 춤동작 등 여러모로 프레슬리와 닮았기 때문이었다.뜨거운 인기를 얻은 슈퍼스타 남진은 1970년대 한국 가요계의 아이콘으로서 라이벌인 가수 나훈아와 함께 한 시대를 풍미했다. 발라드풍의 독특한 트로트 히트곡 ‘마음이 고와야지’, ‘님과 함께’, ‘목화 아가씨’, ‘빈 잔’, ‘둥지’ ‘당신이 좋아’ 등 수많은 히트곡을 발표하며 각종 시상식을 휩쓸었던 그는 국민 가수이자 60여 편의 영화에도 출연한 영화배우이기도 하다.책은 남진의 데뷔부터 영화배우로서의 활동, 해병대로 월남전 파병, 도미, 대한민국 톱스타에 이르기까지 그 화려했던 시대를 차례로 정리한다. 남진의 가수 인생을 통해 한국 대중음악 100년사를 함께 조망하고 있다.직접 작사와 작곡에 참여하며 노래를 만들어갔던 과정, 영화배우로 활동할 때의 에피소드 등 이제껏 풀지 않았던 국민가수 ‘남진’의 이야기들이 △프롤로그-왜 이제 와서 ‘남진’인가 △1장 오빠는 풍각쟁이-한국 대중음악의 태동…. △14장 제2의 전성기와 트로트 열풍 부활 △15장 가수 남진과 인간 남진 △에필로그-남진의 마지막 무대는 등 총 15장에 나뉘어 고스란히 담겼다.남진은 에필로그를 통해 “시간이 갈수록 음악은 내 인생의 전부인 것 같아요. 예전에도 음악을 좋아하긴 했지만, 너무 바빠서 절반쯤만 몸을 담갔다면, 지금은 노랫말 한 소절 한 소절에 몸 전체를 푹 담그고 싶어요. 그래야 후회 없이 떠날 수 있을 것 같아요”라고 전했다.상상출판 측은 “남진의 음악 인생은 우리 가요사와 그대로 겹친다. 가수 남진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과정은 대한민국 대중음악사를 탐구하는 일이기도 했다”고 밝혔다. /윤희정기자

2024-06-13

극한으로 몰아붙이는 폭염의 참상 낱낱이 기록

신간 ‘폭염 살인’(웅진지식하우스)은 미국의 기후과학전문기자 제프 구델이 ‘열국 열차’를 타고 한 바퀴 돌아본 달궈진 지구의 모습에 대한 폭염 르포르타주다. 대폭염 시대를 맞아 세계 방방곡곡이 해마다 ‘역대급 더위’를 경신하는 가운데 지구는 점점 더 빠르고 더 뜨거운 멸종을 향해가고 있다. 20년간 기후 저널리스트로 활동해 온 저자는 지구촌 곳곳의 폭염 실태를 토대로 기후 변화가 몰고 오는 파국적인 결과를 경고한다. 원제목이 ‘더위는 당신을 먼저 죽일 것이다’(The heat will kill you first)인 책은 기후 변화의 영향은 점진적인 것이 아니라 살인적인 폭염으로 이미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운다.이 책은 산업혁명 이후 가장 더운 해로 기록된 2023년을 예견한 책으로 미국 사회에서 큰 화제를 일으키며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저자는 평균기온 45도를 웃도는 파키스탄부터 시카고, 사라져가는 남극에서 파리까지 가로지르며, 우리 일상과 신체, 사회 시스템을 극한으로 몰아붙이는 폭염의 참상을 낱낱이 기록한다.2019년 기준 48만9000명에 달하는 전 세계 폭염 사망자는 허리케인과 태풍, 수해 등 모든 자연재해로 인한 사망자의 합계를 훨씬 웃돈다. 그중 자신이 ‘더워서’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 상상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저자는 폭염이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쉽고 빠르게 우리를 죽이고 있다고 경고한다.저자는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이 ‘더위’가 여름의 낭만이 아니라 지구를 끓어오르게 만드는 ‘열’ 그 자체라는 점에 주목한다. 대기와 해류뿐 아니라 인간을 비롯한 지구의 모든 생명체는 일종의 ‘열 관리 시스템’이며 열역학의 원칙에 따라 열은 사라지지 않고 다른 형태로 변환된다. 열을 내는 유기체인 인간의 몸은 한계치인 습구온도 35도를 넘으면 고체온증을 겪다가 순식간에 열경련과 열사병으로 치닫는다.열은 우리의 사회 시스템마저 붕괴시킨다. 통계에 따르면 지구 기온이 1도 올라갈 때마다 자살과 유산(abortion)이 늘어난다. 혐오 발언과 강간 사건을 비롯한 각종 강력범죄 빈도가 높아진다. 저자는 지구상 모든 존재의 생존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정치 경제적 문제가 골딜록스 존(Goldilocks zone), 즉 생존 가능 영역 밖으로 한 발짝 내디뎠다며 우리의 폭염 불감증에 경종을 울린다.저자는 한때 풍요의 땅이었으나 이제는 죽음의 땅으로 변모한 ‘매직 밸리(Magic Valley)’, 리오그란데 계곡과 수확량이 절반으로 줄어버린 텍사스 옥수수 경작지를 찾아가 절망하는 농부들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전한다.우리가 받아든 폭염이라는 청구서에 자비는 없다. 이 책에 따르면, 평균기온 1도씩 상승할 때마다 미국의 GDP의 약 1퍼센트인 3000억 달러(약 4조 원)가 증발한다. 이 손실액은 2050년 5000억 달러까지 증가할 것으로 추산된다.더위를 피하기 위한 야생의 대탈출도 벌어지고 있다. 육상 동물들은 현재 10년마다 약 20킬로미터씩 북상하고 있으며, 대서양대구의 경우 같은 기간 동안 160킬로미터, 산호마저도 매년 약 32킬로미터씩 북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따뜻해진 해류로 해수면이 상승하며 해안 도시의 주민들도 집을 버리고 이주를 택한다. 인천, 부산 등 한국의 해안 도시들도 전 지구적 기후 이주 대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저자가 만난 수많은 기후과학자가 입을 모아 말하는 것은 지구 열탕화의 원인이 ‘화석연료 사용’에 있다는 사실이다. 전 세계 화석연료 사용 비중은 2024년 현재 82%로 여전히 증가세다. 2023년 미국의 주요 석유 및 가스 생산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사실은 충분히 절망적이다. 저자는 특히 폭염을 피할 수 없다면 그 위험을 적극적으로 알리기 위해 허리케인 ‘카트리나’처럼 폭염에 이름을 붙이고 이미지화하는 ‘브랜딩’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불과 20년 뒤면 전 세계 인구 70%가 살게 될 도시의 모습에도 리모델링이 필요하다.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강철 그리고 실외기로 가득 찬 도시는 열을 가두는 찜통 그 자체다. 뉴욕시는 100만 그루의 나무를 심어 도시에 그늘을 만들었고, 세비야는 지하수로 기술을 활용해 도시를 식혔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4-06-13

빛바랜 그대로… 박목월 미발표 육필 詩 노트 출간

경주 출신의 한국을 대표하는 서정시인 박목월(1915~1978)의 미발표 육필 시(詩) 166편이 종이책 10권으로 출판됐다. 책 총 10권의 제목은 각각 ‘생활’, ‘사람’, ‘신앙’, ‘가족’, ‘기념’, ‘제주(경주 외)’, ‘사랑’, ‘자연’, ‘동심’, ‘시인’등이다. 시인이 등단한 1938년 초부터 타계한 1978년 3월까지 활동하던 40년의 창작 생애가 담겨 있다.박목월유작품발간위원회 우정권(단국대 교수) 위원장은 “독자들의 요청으로 종이 책까지 출판하게 됐다”며 “박목월 시인의 미공개 시 노트 80권에 있는 400여 편의 작품 중 엄선한 166편을 감성 주제별로 1종 10권으로 구성했다”고 밝혔다.우 위원장은 “실제 노트에 있었던 것과 같도록 노트의 색이 바래지고 찢어진 흔적들을 원형 그대로 복원했다”며 “독자들이 실제 노트를 보는 듯한 느낌을 갖기 위해 활자본이 아닌 육필로 된 복각본으로 출판했다”고 설명했다.앞서 박목월유작품발간위원회는 지난달 박목월 시인의 미발표 친필 노트 80권(총 400여 편)에 담긴 166편을 원본 이미지와 낭송 음성 등이 결합한 디지털북을 발간했다. 위원회는 저작권 보호를 위해 플랫폼 ‘피카펜’도 출범시켰다.각각의 작품에는 수록작을 선정한 박목월육필시발간위원(박덕규 단국대 명예교수, 우정권 단국대 교수, 방민호 서울대 교수, 유성호 한양대 교수, 전소영 홍익대 초빙교수)들의 해설이 모두 실렸다.디지털북은 피카펜에서, 종이책은 일반 서점에서 구매해 볼 수 있다.한편 피카펜은 이번에 박목월의 개인 첫 시집 ‘산도화’도 1955년 초판본 형태로 복원해 디지털북과 복각본으로 각각 발행했다.‘산도화’는 박목월 시인의 대표작인 ‘나그네’를 비롯해 ‘윤사월’, ‘청노루’, ‘산도화’ 등이 수록된 한국 서정 시문학을 대표하는 작품집이다. 자연친화적 서정의 절정을 보여주는 시들로 구성돼 있다. 1940년대부터 1950년대 초기 목월 시의 집대성이자, 그 시기 모국어로 도달할 수 있는 한국 서정시의 절정을 보여준다.한편 박목월은 ‘나그네’를 비롯한 수작을 남긴 한국의 대표적 서정시인으로, 조지훈·박두진과 함께 청록파로 불렸다. 경남 고성에서 태어나 경북 경주에서 자랐고 대구를 거쳐 서울에서 오래 살았다./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24-06-12

한진욱 ‘어머니의 참깨밭’ 시집 출간

한진욱 시인. “풀 뽑고 이랑 세우다 거칠어진 고운 손손톱 밑 검은 때 씻을 틈 없이솔가지 연기 피워 차려낸저녁상 한 모서리에밤하늘 깨알 같은 별들이내려앉았다하얀 꽃 갈바람에 흩어져 가고참깨 씨앗 저리도 여물었는데울 엄마 지친 몸은 병이 깊어져문풍지 바람에 우는 겨울 어느 날내 마음도 바람 따라 함께 울었다” - 한진욱 시‘어머니의 참깨 밭’ 중에서. 포항의 한진욱(62) 시인이 첫 시집 ‘어머니의 참깨밭’(생각나눔)을 출간했다.시집에는 1부 ‘길’, 2부 ‘세월’, ‘풍경’, 4부 ‘먼산’으로 나눠 모두 66편의 주옥같은 시들이 담겼다.‘어머니의 참깨밭’,‘코스모스 들녘’, ‘봄비’, ‘나의 살던 고향’, ‘산사의 밤’, ‘유월의 아버지’ 등의 시편은 고향, 향수, 정 등 어릴 적 살던 고향에 대한 향수와 부모님의 정 등 들풀 같은 사람의 이야기를 간절하고 순정한 눈빛으로 형상화했다는 평을 듣는다.표제작 ‘어머니의 참깨밭’은 깨 농사를 지으며 손이 거칠어지고 손톱 및 검은 때 씻을 틈 없이 힘들고 가난한 시기를 지나온 어머니에 대한 애잔한 마음을 섬세한 감각으로 그려내고 있다.시인 강대환(자필문학회장)은 서평에서 “‘어머니의 참깨밭’ 시는 서정이 유유히 흐르고 있는 강가에 노을이 물들어 가고 있는 것처럼 맑고 깨끗하다. 시인은 그리움의 전형, 그리움의 화산이다. 사유와 사색이 가물거리는 기억의 끝을 붙잡고 사색의 통로를 개척해 나가는 그 모습은 물질만능화로 자칫 사장될 수 있는 휴머니티를 꽃피우는 위대한 힘을 지니고 있다”고 평했다.‘마로산성’에서는 백제 시대에 축성된 전남 광양의 4대 석성 마로산성에 대해,‘아버지의 마당’은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애잔함에 대해, ‘다시 찾은 학교 길’은 어렸을 때 다녔던 초등학교, 꿈을 키웠던 공간에 관해 이야기했다. ‘어머니의 참깨밭’시집 표지. “살아도 살아도 낯선 도시의 불빛/ 흐느낄 수조차 없는 고달픔이 밀려올 때/ 기억 속에 어둑한 강둑길 찾아가면/ 달빛 물든 코스모스 어서 오라 손짓하였다….”-‘코스모스 들녘’. 그밖에 ‘달맞이꽃’, ‘능소화’ 등에서는 젊은 시절 힘들었던 시인의 마음을 고향처럼 위로해 줬던 꽃들에 대한 추억을 노래했다. 한진욱 시인은 “모두가 힘들고 가난한 시기였지만 자라고 성장하는 동안 세상은 넓은 황금빛 들녘과 푸른 강, 그리고 맑고 높은 하늘이 어우러진 아름답고, 사람들 사이에는 정이 넘쳤다. 그러다 보니 어른이 된 후에도 마음속에는 늘 그런 풍경들이 잔상으로 남아 있었고, 시의 방향성도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향하고 있었다”며 “물밀듯 밀려드는 말들, 다 소화하지 못해 밀리고 밀리다가 내 서랍에 갇혀 있던 말들을 이제야 세상에 내보낸다”고 출간 소감을 밝혔다.한 시인은 경주에서 태어나 포스텍 대학원을 졸업한 뒤 포스코 니켈 법인 SNNC 전무, 포스코 EC 전무로 재직하다가 지난 1월 퇴직했다. 현재는 포스코 EC 자문위원으로 있다. 2017년 ‘어머니의 참깨밭’으로 ‘지필문학상’ 신인상을 수상, 등단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4-06-10

이도국 작가 ‘영남좌도 인물 문중 풍습으로 보는 우리 역사 조선의 얼굴’ 발간

역사연구가 이도국 작가가 ‘영남좌도 인물 문중 풍습으로 보는 우리 역사 조선의 얼굴’(학이사)을 펴냈다.조선시대 영남지방의 인물, 문중, 역사, 풍습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우리 조상의 정신과 씨족의 미담을 보여준다.작가는 역사의 한 축인 씨족을 소재로 삼아 스토리를 펼친다. 씨족의 구심체이자, 중심인 종가를 ‘조선의 얼굴’이라 표현하며 의미를 부여한다.스토리의 주 무대는 영남 좌도다. 좌도는 낙동강 동쪽을 이르는 말로 안동 영주 봉화 영양 등을 말한다. 이 책에서는 좌도의 인물을 중심으로 우리 역사 전반을 알기 쉽게 펼쳐간다.영남 좌도에는 문집과 목판, 비문, 왕조실록과 내방가사 등 위대한 기록 유산을 한문, 이두, 언문, 한글로 기록한 이들이 있었다.이들의 기록을 따라 독자들은 ‘독립의 별이 된 여인들’, ‘영의정과 대제학’, ‘제주의 전설이 된 영남 목민관’ 등 조상들의 행적을 더듬어 간다.작가는 역사의 한 축인 씨족의 중심, 종가를 ‘조선의 얼굴’이라 말한다. 왕조멸망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번화한 한양과 그 인근에 거주하던 경화사족(京華士族)은 급격히 사라졌지만 세거지 중심으로 농토를 넓히며 깊게 뿌리내린 영남 재지사족(在地士族)은 굳건히 살아남았다는 것이다.작가는 “역사는 거창하거나 대단한 것이 아니다.우리들의 이야기이다. 과거는 먼저 온 오늘이요 조상은 앞서 산 우리들이다.”라며 이 책을 통해 생활 속에서 낮은 자세로 역사를 마주할 것을 강조한다.◆저자 이도국은 경북 청도에서 태어났다. 영남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KB은행원으로 일했다. 조상의 삶을 깊이 있게 알기 위해 국내외 오지로 역사 현장을 찾아 탐구하면서 자연스럽게 여행작가, 역사연구가로 활동했다. 2020년 10월부터 2023년 11월까지 3년 2개월간 영남일보에 ‘이도국의 영남좌도 역사산책’을 연재했으며, 현재 ‘뉴스로’에 역사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히말라야 언저리를 맴돌다’, ‘영남좌도 역사산책’ 등이 있다./한상갑기자 arira6@kbmaeil.com

2024-05-23

목조건축물 30년 수리경험 ‘목업’에 담다

한국 전통 목조 건축물 수리 기능자인 신효선 도편수가 자신의 30년간 문화재 수리현장에서 체득한 관련 지식과 기술을 엮은 책 ‘목업(木業·궁편책 刊)’이 나왔다.전통건축사무소 ‘예조’ 대표이자 도편수인 신 씨는 업계에서 괴짜라고 불린다. 한국 전통 목조 건축물을 제대로 고치는 일에 30여 년을 쏟아부은 문화유산 수리 기능자인 그는 그동안 보물 제1746호 논산 노강서원 강당 등 수많은 문화유산을 보수했다.이 책은 충북 괴산군 감물면에 거주하며 목수 일을 가업으로 하는 집안에서 성장한 신 씨가 1997년 11월 본격적으로 ‘목업’에 발을 들여놓은 뒤 30여 년간 종사한 과정을 상세히 담았다.신 씨가 보유한 전통 건축 관련 특허 기법과 수리현장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빠짐없이 들려준다. 신 씨는 제천 청풍 한벽루(보물 제528호)를 비롯한 열네 채의 목조 건물을 도편수로서 해체하고 수리, 조립했다. ‘목업(木業)’ 표지. 논산 노강서원 강당(보물 제1746호)의 복구, 석조 배흘림기둥을 사용해 팔작집 다포계 양식의 일주문과 육각형 다포계 양식의 종각을 시공했다. 해당 문화재 수리는 석조 기둥을 사용한 국내 최초의 사례로 전해진다. 그는 2017년 자신이 보유한 특허 기법인 H빔을 활용해 신개념의 한옥을 건축하기도 했다.신 씨의 작업 방식은 다른 도편수들과 차이를 보인다. 추녀 작도법의 경우 조선 후기 이승업 도편수의 방법을 찾아내기 위한 6년의 연구 끝에 완성해 연목을 시공하는 데 활용했다. 이 과정에서 신 공법을 창안해 수리에 적용하는 등 전통기법에만 머무르지 않고 새롭게 시도한 독특한 도편수로 알려져 있다. 전통 목조 건축물의 해체와 보수에 대한 개념조차 정립돼 있지 않은 지금,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전례 없던 기준점을 만들었다. 책에는 조사 주기표와 분류 야장 등 소중한 자료들이 수록돼 있다.신 씨는 저자의 말에서 “이 책을 사용하는 당신께 제 경험과 지식을 드립니다”며 “누구도 관심 갖지 않고 즐거워하지 않는 일이기에 홀로 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세대와 세대를 넘어 대화를 나누어 보고 싶다. 이 책이 그 창구가 되어 주기를 기대한다”고 적었다.궁편책 측은 “목업을 생업이자 3대째 가업, 조상의 유업, 민족의 과업으로 삼은 그는 현시대와 함께 호흡하는 전통 건축을 꿈꾼다. 저자가 자신이 보유하고 출원 중인 전통 건축 관련 특허 기법까지, 그 모든 현장의 기록을 본서에 남긴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전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4-05-21

법정 스님의 인생 살아가는 지혜를 담다

신간 ‘진짜 나를 찾아라’(샘터)는 ‘무소유’로 널리 알려진 법정 스님(1932∼2010)이 197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전국 각지에서 강연한 내용을 엮은 책이다.법정 스님이 1994년 만든 사단법인 ‘맑고 향기롭게’ 창립 30주년을 기념해 미출간 강연 자료를 발굴해 소개한다. 법정 스님은 책에서 고독이 필요한 이유, 차에 담긴 의미, 공덕을 쌓는 삶, 인간관계를 맺고 소통하는 방법 등 여러 가지 주제를 알기 쉽게 들려준다.“사람이 산다는 것은 어떤 추상적인 시간이나 공간에서 살아가는 게 아니고 지금 이 순간, 바로 이 자리에서, 이렇게 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지금 하고 있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이어야 합니다. 그 일에 열의를 가지고 몰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일을 사랑하라’ 중에서과거나 미래가 아니라 현재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법정 스님은 한 번뿐인 인생 후회 없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우선 자기 존재에 대한 자각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아 성찰을 위한 고독의 필요성과 그 의미에 대해서도 중요한 가르침을 준다.“흔히 고립과 고독을 혼동하기도 합니다만, 고립이 아니라 고독의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사람은 저마다 특성과 재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걸 깨우려면 자신을 엄격하고 철저하게 응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신만의 깊은 고독에 빠져 보아야 합니다.”- ‘진정한 고독에 이르는 길’ 중에서또 “얼굴은 이력서”라며 내면의 아름다움을 가꿔 좋은 얼굴을 만들라고 당부한다. “우리는 종종 외모나 외적인 특징에만 집중하여 사람을 판단하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아름다움은 내면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너그러움과 선량함이 그런 것들입니다. 그리고 지혜로움이 내면에서 발산되어 밝아질 때 아름다운 얼굴이 됩니다.”“맛있는 음식을 대할 때 가족이나 친구를 생각하십시오. 좋은 책을 읽었을 때도 그렇게 하세요. 이웃과 함께 나누는 것은 기쁨입니다. 인연이고 또 맺음입니다.”- ‘부처님과 같은 공덕을 이루려면’ 중에서이 책에는 인생을 살아가는 바른길을 알려주는 법정 스님의 가르침들로 가득하다. “행복의 척도를 소유에 두지 마십시오”, “무소유는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 것입니다” 등 무소유와 행복의 관계에 대해 말하기도 하고, “대화를 하십시오”, “칭찬과 격려의 말을 아끼지 마세요” 등 대화의 필요성과 구체적인 대화 방법을 일러주기도 한다. 또한 “우리가 절제하지 않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생태계가 망가지고 있는 거 아닙니까?”라는 일침으로 환경 문제를 거론하기도 한다. 당연히 옳다고 그렇게 해야 한다고 알고 있지만 바쁘고 힘들다는 핑계로 외면하고 있는 우리에게 법정 스님의 말씀은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죽비로 다가온다. 그 죽비는 우리의 영혼을 맑고 향기롭게 바꿔줄 것이다. /윤희정기자

2024-05-16

우리가 동물의 꿈을 볼 수 있다면

동물도 인간처럼 꿈을 꿀까? 이 흥미로운 궁금증은 오랜 시간 우리를 사로잡은 게 아니다. 사람들은 오직 인간만이 꿈을 꾼다고 믿었으니까. 인류는 다윈의 ‘종의 기원’ 이후에야 그간 인간만 가졌다고 여겼던 여러 정신 능력을 동물도 가졌을 거라고 비로소 생각하기 시작했다.신간 ‘우리가 동물의 꿈을 볼 수 있다면’(위즈덤하우스·사진)의 저자 데이비드 M.페냐구즈만(미국 샌프란시스코주립대 인문교양학부 부교수)은 이 책에서 다양한 사례를 들며 동물도 인간처럼 꿈을 꾸는 존재인지를 추적한다.저자는 동물이 꿈을 꾼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그간의 다양한 과학 실험을 전기생리학, 행동학, 신경해부학 등 세 개의 범주로 나눠 보여준다. 깨어있는 상태에서 노래를 부를 때 보여주는 뇌 활동 패턴이 수면 상태에서 일정 기간 보이는 패턴과 완벽히 일치한다는 것을 알려준 금화조 연구나 잠을 자면서 손동작을 통해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여줬던 수화를 배운 침팬지의 이야기, 또 REM 수면 중에 ‘꿈을 실제로 보여주느라’ 앞발을 휘두르거나 귀를 뒤로 젖히는 등의 움직임을 보여준 뇌교가 손상된 고양이의 실험 등 동물이 꿈을 꾼다는 것을 부정하기 힘든 과학적 증거를 보여준다.사실 다윈 이후 ‘동물의 꿈’이란 주제에 대해 과학적인 논의가 본격적으로 진행된 만큼 19세기부터 이를 증명하는 실험 결과는 적지 않았다. 그동안 그것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던 이유를 저자는 ‘인류학적 자만심’이라고 꼬집고, 역사 속 우리의 ‘실수’도 진중히 되짚는다.동물이 잠자는 동안 꿈을 꾼다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사실을 말해주는지를 저자는 투명한 장벽 너머에 있는 쌀알을 본 미로 안의 쥐 실험으로 그 답을 알려준다. 깨어있는 상태에서 쌀알을 봤을 때와 이후 낮잠을 잘 때 쥐의 똑같은 해마 세포가 활성화된 것이다. 심지어 활성 순서까지 동일한 패턴을 보였다. 이 결과는 쥐가 쌀알이라는 보상으로 경험한 감정(저자는 이를 ‘정서적 의식’이라고 한다)의 환경 자체를 ‘기억’하고, 이를 꿈속에서 미래 경험으로서 적극적으로 ‘상상’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이는 꿈을 꾸면서 의식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 즉 꿈을 꾸는 것은 의식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어미의 엄니가 잘리는 모습을 본 아기코끼리와 어린 시절 어미가 ‘나쁜 사람들에게 죽임을 당한’ 고릴라가 시간이 한참 지나서도 악몽을 꾼다는 연구 보고는 저자가 말하는 꿈과 의식의 관계를 더욱 공고히 한다.꿈은 의식으로 가는 관문이며, 꿈을 꾸는 주체는 의식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 의식을 통해 주체적으로 세상을 받아들이고 살아간다. 그렇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동물은 꿈을 꾼다. 고로 존재한다.’그렇다면, 우리는 의식의 존재 여부에 왜 관심을 가져야 할까. 저자는 이것이 도덕적 지위의 여부에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외에도 아리스토텔레스, 소로, 로리 그루언 등 여러 철학자, 사상가, 동물윤리학자의 의견을 바탕으로, 저자는 의식의 표현인 꿈은 ‘도덕적 힘’을 품고 있으며 생물의 도덕적 지위의 기반이 된다는 주장을 펼친다. 동물은 ‘꿈을 꾸기 때문에’ 도덕 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정받아야 하고, 위엄과 존경심을 갖고 대해야 마땅한 동료 생물인 것이다.저자는 “동물이 꿈을 꾼다면, 그들은 결코 인간의 하위 버전이 아니다. 동물은 각각 “생명의 주체”다. 어쩌면 새의 꿈은 보이는 게 아니라 들리는 것일 수도 있고, 개의 꿈은 시각적이 아니라 후각적일 수 있다. 동물은 우리는 알 수 없을 ‘그들다움’을 갖춘 세상의 구성원이며, 그렇기에 인간은 그들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4-05-16

‘경제위기 극복책’ 긴축, 누구를 위한 정책인가

국민연금 개혁안이 21대 국회 임기 내 처리가 불발됐다. “노후 소득보장을 고려해야 한다”는 ‘소득보장론’과 “기금 소진을 늦추는데 중점을 둬야 한다”는 ‘재정안정론’ 사이에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경제가 위기일 때마다 정부는 허리띠를 졸라매는 방법만이 난관을 헤쳐나갈 길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긴축이 정말 우리를 구원해줄 유일한 정책일까? 미국의 진보 성향 대학 더뉴스쿨의 경제학 교수인 클라라 E 마테이는 신간 ‘자본 질서’(21세기북스)에서 “긴축이 우리 모두를 위한 경제정책이라는 말은 헛소리다”라고 비판한다. 긴축 정책에 부정적인 근거는 국민 고통, 부채감소·성장촉진 효과의 불확실성, 그리고 그 배후에 숨어있는 자본주의 체제 수호를 위한 불평등 유발이라는 세 가지 이유에서다.인플레이션과 고금리, 정부 부채 증가, 주가 폭락, 부동산 경기 침체, 경제성장률 저하. 경제에 문외한인 사람이 얼핏 들어도 경제 위기 상황을 나타내는 용어들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정부와 기업, 경제 전문가들은 경제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어떤 해결책을 제시할까? 바로 긴축이다. 공공을 위한 예산을 삭감하고, 약자에게 배정된 복지를 축소하고, 노동자의 임금을 삭감해야 나라가 다시 잘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식의 인위적인 절약으로 모인 돈을 기업에 먼저 투자한다면 이를 통해 고용 안정화가 이루어지고 낙수효과가 작동해 모두가 부자가 될 수 있다고 그들은 강조한다.그러나 저자는 긴축 재정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은 소수의 기득권이 만들어 낸 거짓말과 같다고 주장한다. 긴축으로 이익을 보는 자는 대체 누구인가? 저자는 정치와 권력이 만나는 지점에서 긴축이 탄생했다고 주장한다. “긴축이란 정부와 엘리트층의 실수와 책임을 다수에게 전가하는 책임 회피이며, 소수의 부유층만을 위한 정책”이라는 것이다.저자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자본주의와 파시즘의 역사를 추적하고서 긴축의 의미를 살펴본 끝에 ‘긴축’이란 정부가 폭력을 사용하지 않고, 경제를 장악하고, 시민들을 통제하기 위해 고안해낸 방법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긴축은 거시적이면서 동시에 미시적이다. 긴축을 알지 못하면 경제의 흐름을 파악하지 못하고, 서서히 우리의 숨통을 조이는 이 ‘나쁜’ 정책의 이면을 제대로 들여다볼 수 없다”고 말하는 저자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영국의 재무부와 이탈리아의 파시즘에서 본격적으로 긴축의 역사가 시작됐다고 밝힌다.저자에 따르면 소득이 낮은 사람이 상대적으로 높은 세금을 부담하는 ‘역진적 조세 정책’ 탓에 공공재 비용 부담은 오랫동안 불평등하게 돌아갔다.또, 사회 전 계층이 부담하는 소비세가 세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커지는 가운데 상위 소득 계층에 대해 수십 년간 어마어마한 규모의 감세가 이뤄졌다. 미국 아이젠하워 대통령 재임기(1953~1961년) 동안 91%였던 상위 소득세율은 2021년에 37%로 크게 줄었다. 법인세율은 1970년대 50%였는데 트럼프 행정부 시절에는 21%로 뚝 떨어졌다. /윤희정기자

2024-05-16

젖은 눈으로 세계를 보는… 강미정 시인 다섯 번째 시집

“갑자기 그것이 펼쳐졌다/오므린 꽃봉오리가 꽃잎을 쫘악 펼치는 동영상처럼/소복이 쌓인 눈 사르르 녹은 자리//찬바람 맞아 거뭇거뭇 타들어 간 민들레꽃에 앉아/날개도 접지 않고 절명한 나비 한 마리//….//가녀린 꽃대 아래 드리워진 검은 그림자/하얗게 지워 준 눈/아직도 해끗해끗 담 그늘에 남았다….”- 강미정 시 ‘조막만 한 고요’ 일부1994년 월간 시전문지 ‘시문학’으로 등단한 강미정(경주시 안강읍) 시인이 지난 2008년 출간한 네 번째 시집 ‘그 사이에 대해 생각할 때’ 이후 16년 만에 다섯 번째 시집 ‘검은 잉크로 쓴 분홍’(도서출판 북인)을 출간했다.강 시인은 젖은 눈으로 세계를 본다. 그녀는 복잡다단한 세계를 눈물로 약호화한다. 그녀의 젖은 눈은 주로 가난한 것, 힘든 것, 죽어가는 것, 슬픈 것, 불쌍한 것들의 뒷모습을 향해 있다. 그녀는 그런 세상의 슬픈 뒷꼭지를 보고 운다. 진짜 울음은 슬픔으로 그치지 않는다. 진정한 울음은 사유이고 통로이며 대안이다.강 시인은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니고 산다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가는”(‘기꺼이 다른 것이 되어가고 있는 중’) 일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그녀는 시 속에 거대 서사나 환상의 세계가 들어올 자리를 만들지 않으며, 대신 삶에서 쪼개져 나온 소소한 하루들이 오글거리도록 한다. 아버지와 엄마로부터 생겨난 피붙이들과 낯 모르는 사람의 식솔들까지 안부를 챙기고 섬겨서 시집에 살게 한다.그녀의 감성과 상상력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들은 이토록 사소한 생활, 새들한 감정이지만, 시로 빚어진 그것은 무한히 자라나는 삶의 모습들이라는 점에서 아릿하게 따뜻하고 갸륵하다. 또한 천성적으로 그녀는 약하고 버려진 것들을 거둬 마음으로 먹이고 입히는 사람인데, 이런 태도는 시의 어조와 어법에 그대로 스며 사랑하라는 속삭임이 시의 저 뒤편에서 들려온다. 묵묵한 견딤의 시간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다면, 한 사람이 다른 이를 위해 해낸 최대의 선량을 보고 싶다면 이 시집이 그 대답을 줄 것이다.오민석 문학평론가는 ‘젖은 눈의 글쓰기’라는 해설에서 “강미정은 젖은 눈으로 세상을 읽되 감상에 빠지지 않고, 인간과 세계의 고통을 이야기하되 과장하지 않는다. 눈물의 코드로 세계를 읽으면서도 그는 비개성의 시학을 실천하듯 센티멘털리즘과 거리를 둔다. 그녀는 슬픔을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사람을 울릴 줄 아는 기술의 소유자다”라고 평했다.강미정 시인은 경남 김해 출신으로, 1994년 월간 ‘시문학’에 ‘어머님의 품’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타오르는 생’, ‘물속 마을’, ‘상처가 스민다는 것’, ‘그 사이에 대해 생각할 때’ 등 네 권을 출간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4-05-13

문화예술 경영인으로 느낀 소감 잔잔한 에세이로

“예술적 힘의 근원은 예술에 대한 깊은 사랑과 예술가에 대한 존경에서 나옵니다. 예술가들을 돕고 그들을 위한 기회를 만들어 가기 위해선 예술경영인만이 아니라 예술을 소비하는 이들의 관심과 지지가 필요합니다.” 김형국 전 대구문화예술회관장이 문화예술 이야기를 담은 수필집 ‘춤추는 조르바’(학이사)를 펴냈다. 성악가의 길에서 물러나 문화예술 경영인으로 일하며 느낀 점을 예술행위·여행·영화·책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풀어냈다. 작가는 여러 가지 소재와 예화(例話)를 다루고 있지만 방향은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다. 문화예술이라는 큰 흐름을 유지하고 전반에서 긍정적 자세를 견지한다. 저자는 풍부한 배경 지식과 뒷이야기를 동원해 공연장의 문턱을 낮추고 독자들이 공연을 더 풍부하게 즐길 수 있도록 도와준다. 책 행간에는 지역 예술경영인으로 지내며 느낀 고민도 묻어있다. ‘예술경영자는 어떠해야 하는가?’ ‘지역 예술가의 성장 발판이 되기 위해서 어떤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는가’에 대해 끊임없이 자문하며 대안을 모색한다. 저자는 성악과와 대학원, 이탈리아 Liceo Musicale ‘G·B·Viotti’를 졸업하고 20여 편의 오페라에 주역으로 출연했다. 5백여 회의 음악회에 출연했으며, 국내외 유명 오케스트라와도 100여 회 협연했다. 한편 오는 17일 몬스터즈크래프트비어(대구 중구 종로)에서는 이번 책 출간을 기념한 저자 사인회와 북토크가 열린다./한상갑기자arira6@kbmaeil.com

2024-05-13

18~20세기 영미 대표 장편소설 ‘한 권에’

영미 장편소설은 읽고 싶지만 어떤 작품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한 독자들, 평소 영미 장편소설에 관심이 많은 학생, 교사들을 위한 책 ‘강의실 밖으로 나온 영미소설’(도서출판 득수)이 출간됐다.이 책은 30년 가까이 대학 강단에서 영문학 강의를 한 저자 여국현이 강단 밖 일반 독자들의 눈높이에 맞춰 대표적인 영미 장편소설의 주요 내용과 본문을 함께 접할 수 있도록 소개해 놓은 저작이다. 18세기 다니엘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에서 20세기 버지니아 울프의 ‘등대로’에 이르는 대표적인 영국 장편소설 11편과 제임스 페니모어 쿠퍼의 ‘마지막 모히칸’에서 존 스타인벡의 ‘에덴의 동쪽’을 포함하는 10편의 미국 장편소설 등 모두 21편을 한 권에 담아냈다.독자들은 저자의 강의를 듣는 것처럼 꼼꼼하게 소개된 장편소설의 플롯을 따라가며 작품과 연관된 중요한 요소들, 작품에서 특히 주목할 점, 작품에 반영된 비평적 요소들에 대해서도 읽을 수 있다. 또한 소설 속 중요 본문의 경우 번역문을 제시하고, 원문은 해당 작품의 맨 끝에 첨부함으로써 원문과 번역문을 대조하며 읽어볼 수 있는 재미 또한 느낄 수 있을 것이다.저자 여국현은 “번역은 가능한 원문에 충실하되, 문학 작품이라는 점을 고려하여 문학적 분위기를 전하는 것을 놓치지 않기 위해 최대한 자연스러운 문장으로 옮겼다. 각 작품의 마지막에는 작가의 초상화와 작가 소개에 대한 간략한 정보도 함께 덧붙였다”며 “한 작품을 다양한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는 책을 독자들에게 선보이고 싶었다”고 말했다.김미옥 문예비평가는 서평에서 “이번 책이 우리에게 삶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문학의 본질에 다가가는 이들을 안내하는 친절한 이정표가 되어줄 것”이라고 평했다.저자 여국현은 포항 출신으로서 중앙대에서 영문학 전공(문화연구)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2018 ‘푸른사상’신인상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새벽에 깨어’, ‘들리나요’, 전자시집 ‘우리 생의 어느 때가 되면’이 있다.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 ‘종소리’와 케이트 쇼팽의 단편 선집 ‘셀레스틴 부인의 이혼’, ‘그녀의 편지’를 번역했으며 다수의 영문학 전공 교양서적을 공동 집필했다. 올해 ‘강의실 밖으로 나온 영시 1, 2’를 썼다. 현재 대학에서 영문학강의를 하고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4-05-02

허구의 자아… 생각할수록 불행해 진다?

부처님이 도를 깨친 것은 사유(思惟)에 의해서였다. ‘왜?’라는 끊임없는 질문의 끝에서 얻은 깨달음이다. 무아(無我)라는 진리도 무상함에서 유추한 결론이다. 실체가 없으므로 고정된 ‘나’라는 존재도 없다는 것이다. 힘든 일상 속 ‘나는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으로 나를 돌아보게 만드는 책 2권을 소개한다.△그레고리 번스 ‘나라는 착각’미국의 세계적인 신격과학자심리학자이자 정신과 의사인 저자 그레고리 번스는 ‘나라는 착각-뇌는 어떻게 인간의 정체성을 발명하는가’(흐름 출판)에서 자아란 게 무엇이고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설명하고자 한다.저자는 뇌과학과 심리학, FMRI(기능적 자기공명영상) 실험 등을 활용해 뇌 속에서 기억이 어떻게 저장되고, 현재의 정보가 어떻게 처리되며, 그것이 어떻게 통합되는지, 그래서 자아 정체성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보여준다.책에서 그는 신경과학, 심리학, 사회학 등 다양한 학문을 넘나들며 ‘자아 정체성’이란 개념이 실은 뇌가 만들어낸 허구라고 주장한다. 인간은 있는 그대로 기억을 재생할 수 없다. 복잡하고 모순된 과거 기억들은 선별돼 뇌에 저장되기 때문이다.저자는 자아를 ‘수많은 사건 중에서 특정한 부분을 편집하고 맥락을 이어 붙인 기억의 집합’이라고 정의한다. 즉, 내가 나와 세상에 들려주는 ‘나에 대한 편집된 이야기’가 자아의 실체이기 때문에 자아는 태생적으로 허구일 수밖에 없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자아가 생성되는 뇌의 메커니즘을 알면 ‘내가 원하는 나’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우리는 누구의 말을 듣고, 어떤 책을 읽고, 어떤 미디어를 보는가에 대해 어느 정도의 통제력을 가지고 있다. 정보의 측면에서 보면, 내가 먹는 것이 곧 내가 된다.”△닉 트렌턴 ‘생각 중독’‘생각 중독-불안과 후회를 끊어내고 오늘을 사는 법’(갤리온)의 저자인 미국의 심리학자인 저자 닉 트렌턴은 현대인이 과도하게 머리를 쓰면서 산다고 진단한다. 저자는 과거를 되새김질하며 끝없이 후회하는 사람, 아주 작은 일에도 거대한 걱정으로 내닫는 사람, 밀려드는 업무에 압도돼 정작 미루기만 하는 사람 등의 생각 과잉은 유전과 자라온 환경이 원인이 되곤 하지만 부정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성향도 한몫한다고 지적한다.책은 개인 삶의 악영향을 끼치며 스스로를 가두기에 이르는 현대 병인의 생각 과잉에 대한 해법을 제시한다. 생각 과잉으로 인한 불안이 일상을 잠식하지 않도록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방법에 초점을 맞췄다.저자는 생각 과잉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당장 생각의 패턴을 바꾸라고 조언한다. 저자는 그 방법으로 할 수 없는 일이 아니라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기, 갖지 못한 것이 아니라 가진 것에 집중하기, 과거와 미래가 아닌 현재에 집중하기, 원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것에 집중하기 등을 제시한다. /윤희정기자

2024-05-02

김사인에겐 어떤 매력이 있길래…

김사인은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으로 손꼽힌다. 김사인 시인은 1982년 동인지 ‘시와 경제’의 창간 동인으로 참여하며 시 쓰기를 시작했고, 시집으로는 ‘밤에 쓰는 편지’, ‘밤에 쓰는 편지’, ‘가만히 좋아하는’, ‘어린 당나귀 곁에서’와 산문집 ‘따뜻한 밥 한 그릇’을 펴냈다.시인 김사인에게는 어떤 매력이 있기에 아낌없는 찬사가 쏟아지는 걸까? ‘김사인 함께 읽기’(모악)는 동료이면서 선후배이기도 한 53명의 문인·학자들이 그의 작품에 대한 친절한 해석과 함께 내밀한 인연을 곁들인 책이다. “백석 ‘사슴’ 이후의 절창”(장석주, 시인·문학평론가)이라는 평가를 받는 김사인의 문학세계와 작가적 면모를 오롯이 알아볼 수 있다.유용주 시인은 “김사인의 시를 읽으면 무릎 꿇고 용서를 빌고 싶어진다. 착하고 선하다. 부러운 것은 한결같은 그의 마음이다. 어떻게, 그렇게, 곡진하게 시를 쓸 수 있나”하고 감탄했다. 천양희 시인은 “사람 좋기로 치면, 김사인만큼 배려 깊은 사람도 드물 테지만, 김사인만큼 내강외유한 시인도 드물 것”이라면서 “사람의 심장은 하루에 십만 번을 뛴다는데 김사인의 시는 그 두 배를 뛰게 한다”고 상찬했다.정명교 문학평론가는 “김사인 시의 형식상의 단정함은 무수히 들끓는 감각의 반란을 통제하기 위한 시인의 혹독한 극기의 산물이다. 그의 시는 시인의 마음속에 들이닥쳐 마음을 들쑤시고 뒤집으며 저희끼리 엉키고 싸우는 감정물들을 이성적으로 진압하였을 때에야 겨우 한 편 나온다. 그리고 그때, 그 시는 엄격하고 단정한 얼굴을 갖지 않을 수 없다.”(48쪽)고 썼다.박명규 서울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김사인은 조용히 다가와 있어 주고 함께 떨면서 만물의 인연과 존재의 오묘함을 깨우치게 하는 매력적인 인간이다. 그는 누구보다 올곧은 인품을 지녔지만 자신을 과시하거나 그걸로 남을 다그치는 법이 없다. 삼라만상의 모든 모습을 말없이 품는 풍경과도 같은 사람이다.”(128쪽)라고 평했다.천양희 시인은 “사람의 심장은 하루에 십만 번 뛴다는데 김사인의 시는 그 두 배를 뛰게 한다”고 감탄했다.박연준 시인은 “김사인의 시에는 금 간 백자, 집에서 가장 후미진 곳, 그곳을 기어가는 늙은 거미, 몽당비, 시의 오래된 얼굴, 옛사람의 손금, 냇물의 리듬, 그리고 사랑이 들어 있다”고 했다.책은 동덕여대 문예창작학과 교수이던 시인의 정년퇴임을 기념해 오랜 벗인 영문학자 이종민 전북대 명예교수의 제안으로 3년에 걸쳐 완성됐다.크게 다섯 부분으로 이뤄진 책의 1~3부는 시인이 펴낸 세 권의 시집에 수록된 작품에 관한 글 모음이다. 대부분 새로 쓴 글이지만 임우기, 장석주, 정명교, 정지창, 최원식의 원고는 이미 발표한 글을 취지에 맞게 정리했다. 3부에는 세 시집에 없는 작품에 관한 글과 최근에 발표한 김지하 시인 추모시에 대한 조용호 작가의 원고가 포함돼 있다.네 번째 부분은 김사인의 시 세계 전반에 관한 총론적 평론이다. 평소 김사인 시작품에 대한 꼼꼼한 읽기를 꾸준히 해온 이숭원 평론가에게 특별히 부탁했다. 부록 형식의 다섯 번째 부분에는 김사인 시인의 연보를 대신한 글과 세 권의 시집에 실린 ‘시인의 말’, 시선집의 ‘책머리에’, 문학상 수상소감 등을 연대순으로 수록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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