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문화

세종은 왜 운동을 멀리했을까 역사적 인물 10인의 질병 추적

우리 역사상 최고의 리더이자 다재다능했던 세종대왕은 왜 운동만은 멀리했을까? 천상의 건축가 가우디는 왜 하필 해골 집을 짓는 데 집착했을까? 세계적인 대문호 도스토옙스키는 어쩌다 도박꾼이 되었을까? 인상파의 거장 모네의 말년 화풍은 왜 추상화처럼 변했을까?정형외과 전문의인 이지환 씨는 ‘세종의 허리 가우디의 뼈’(부키)에서 그 해답은 이 천재들이 각기 앓았던 질병 속에 있다고 말한다.저자는 사서(史書) 등을 추적해 총 10명의 역사 속 인물의 다양한 질병을 탐구했다.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 건축가 가우디, 소설가 도스토옙스키, 작곡가 모차르트, 철학자 니체, 과학자 마리 퀴리, 화가 모네와 로트레크와 프리다 칼로, 가수 밥 말리가 그 주인공이다.이 책에서 저자는 당시 시대상과 의학 수준, 발병 과정, 외관상 병증을 파악할 수 있는 각종 역사 문헌과 기록, 사진 자료와 초상화, 국내외 의학 논문을 참고해 마치 한 편의 추리 소설처럼 펼치고 있다. 심지어 저자가 직접 논문을 쓰기도 했는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강직성 척추염 사례로서 세종을 소개하기도 했다. 이는 SCIE급 이상 국제 학술지에서 세종을 다룬 첫 논문이기도 하다.△조선 최고의 리더 세종은 왜 운동을 멀리했을까?최고의 성군이자 천재 중 한 명이었던 세종. 하지만 그는 ‘고기를 좋아하고 운동을 싫어해서 결국 비만해진 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세종의 건강과 관련한 조선왕조실록 기록을 보면 눈병 12번, 허리통증 6번, 무릎 통증 3번, 목마름 증상 2번, 살 빠지는 증상 1번이 언급돼 있다. 나이대별로 분석하면 허리통증은 20대 초반에 발생해 30대 때 심해졌다가 낫기를 반복했다. 눈 통증은 40대부터 악화했다가 역시 좋아지다가 악화하기를 반복했다.그러나 정확히 어떤 병을 앓았는지는 불투명하다. 일각에서는 세종이 피부병이나 임질(현대적 의미로는 방광염)에 걸렸다거나 당뇨 합병증을 앓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천상의 건축가 가우디는 왜 해골 집을 지었을까?가우디는 수많은 해외관광객을 불러들이며 스페인 바르셀로나를 먹여 살린다는 이야기를 만들어 낸 건축가다. 그의 건축물들은 묘한 공통점이 있다. 건물 곳곳에서 발견되는 뼈와 해골 형상이 그것이다. 평론가들의 혹평과 주민들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그는 해골 집 짓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 이유는 어렸을 때부터 심한 관절염을 앓았기 때문이다.그는 종종 형의 등에 업히거나 나귀를 타고 등교해야 했을 정도로 관절통이 심했다. 병약으로 친구를 사귀지 못해 외로운 학창 시절을 보냈다. 평생 2겹의 양말과 푹신한 신발을 신고 다닌 것도 그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그의 관절염은 결국 죽음의 씨앗이 되고 말았다.△세계적인 대문호 도스토옙스키가 도박꾼이 된 사연도스토옙스키는 못 말리는 도박꾼이었다. 원고료를 모두 날린 것은 예사였고 원정 도박에 나섰다가 돌아올 경비까지 잃고 쩔쩔매기 일쑤였다. 오죽했으면 독일의 비스바덴 쿠어하우스 카지노가 ‘기념할 만한 호구’라며 그의 이름을 딴 홀을 만들고 흉상을 세웠을 정도다.도스토옙스키가 이처럼 유산까지도 다 날릴 만큼 지독하게 도박에 중독된 이유는 간질 발작 환자였기 때문이다. 자기 결혼식 피로연에서 2번이나 발작을 일으킬 정도였던 그는 언제 어디서 발작이 자신을 덮칠지 몰라 평생 전전긍긍했다. 간질 발작 환자는 흥분 신경 전달 물질이 많은데, 흥분 물질이 많으면 도박이 주는 자극에 취약하다. 그래서였을까? 그의 작품에는 간질 발작을 일으키는 주인공이 많이 등장한다.△실존 철학의 선구자 니체는 어쩌다 정신 병원에 입원했을까?학창 시절 “사원에 숨은 열두 살짜리 예수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니체는 추천사만으로 대학교수에 임용되고, 1년 만에 여러 저작을 집필했으며, “신은 죽었다”고 당당하게 선언할 만큼 자신만만하고 탁월한 철학자였다. 하지만 그는 어렸을 때부터 심한 두통과 불면에 시달렸으며, 나이가 들어서는 성격마저 괴팍하고 폭력적으로 변해 버렸다. 자신의 소변을 마시는 등 기이한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 결국 1899년 친구의 손에 의해 정신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다음 해 퇴원한 후 그는 누구도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고 살아 있는 시체처럼 무기력하게 지낼 뿐이었다. 니체는 결국 1900년 폐렴으로 사망한다. 그의 뇌와 영혼을 파괴한 질병은 무엇일까? 당시 니체는 신경 매독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극심한 두통, 불면증, 발작, 성격 변화를 한꺼번에 설명할 수 있는 질병은 바로 뇌종양이다. 커다란 종양이 니체의 머릿속에서 천천히 자라면서 뇌와 신경을 압박했을 것이다. /윤희정기자

2021-09-30

여성 작가 마르그리트 뒤라스와의 인터뷰

소설 ‘연인’으로 널리 알려진 프랑스의 여성 작가 마르그리트 뒤라스(1914~1996)의 인터뷰집 ‘뒤라스의 말’(마음산책)이 출간됐다.뒤라스의 말년 1987년부터 1989년까지 이탈리아 저널리스트인 레오폴디나 팔로타 델라 토레와 이뤄진 인터뷰를 토대로 엮은 ‘뒤라스의 말’은 유년시절부터 인터뷰가 이뤄진 시점까지 연대순으로 작가의 삶을 통과하며 그의 작품 활동을 엿볼 수 있다.소설의 선형적인 흐름이나 사건 전개식 구성을 배제하고, 인물의 심리 표출을 극도로 절제하면서도 감정을 고스란히 전달해온 뒤라스는 때로는 ‘누보로망’ 작가로, 때로는 ‘여성적 글쓰기’의 전범으로 꼽히지만 스스로는 특정 사조에 갇히길 거부하며 자신만의 문학적 영토를 개척하는 데 충실해왔다. 또한 영화와 연극, 드라마 등 장르를 넘나들며 활동 영역을 확장해왔기에 현대 문화사에 남긴 족적도 적지 않다.1931년 프랑스로 이주하기 이전 식민지 베트남에서 험난한 어린시절을 보냈던 뒤라스는 18년 동안그곳에서 소외감과 고독감을 깊이 느끼게 되고 이는 뒤라쓰 글쓰기의 지속적인 모티브가 된다.책은 칸 영화제 수상작 ‘인디안 송’을 연출하는 등 영화 시나리오 작업 및 연출로도 주목받았고, 2차 세계대전 중 적극 참여했던 레지스탕스 활동, 38세 연하의 연인과의 사랑, 알코올 중독 등에 대한 이야기도 풀어놓는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1-09-30

근현대 한국불교 선승 ‘백성욱 박사 전집’ 출간… 총 6권 구성

독립운동가이자 근현대 한국불교의 선지식으로 꼽히는 백성욱 박사(1897~1981)의 깨달음과 그 가르침이 담겨 있는 ‘백성욱 박사 전집’(김영사)이 출간됐다. 김영사가 전 6권으로 출간한 ‘백성욱 박사 전집’은 그의 강의, 강설, 법문, 글과 함께 생전에 그를 만나 교유했거나 가르침을 받은 22명의 회고와 전기 등을 망라했다. 1권 ‘백성욱 박사의 금강경 강화’(강설집)를 시작으로 ‘불법으로 본 인류 문화사 강의’ ‘분별이 반가울 때가 해탈이다’(법문집) ‘백성욱 박사 문집’ ‘금강산 호랑이, 내가 만난 백성욱 박사’ ‘응작여여시관’(전기) 등으로 구성돼 있다.전집은 그의 제자인 김강유 김영사 회장이 고인과 인연이 있던 사람들을 수소문해 강의와 법문 녹음을 정리하고, 관련 인물 인터뷰와 취재 등을 통해 2년9개월 만에 완성했다.출판사 측에 따르면 백성욱 박사는 3세에 아버지, 5세에 어머니를 여의고서 12세에 출가한 승려였다. 1920년대 독일 뷔르츠부르크 대학원 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한국 최초의 독일 철학박사이자 불교학자이기도 했다. 1929년 불교전수학교(동국대 전신) 철학과 강사를 그만두고서 금강산에 입산해 10년을 정진한 수행자였다. 한국전쟁 뒤로는 동국대 총장을 지냈고, 1962년 경기 부천에 ‘백성목장’을 열어 20년 가까이 한국불교의 소의경전인 금강경을 강의했다. 치열하고 극적인 삶을 살았던 그는 태어난 날인 음력 8월 19일 입적했다.김영사 측은 “한 사람의 삶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극적인 변화와 기록들, 비범한 통찰과 다채로운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전집은, 현대를 살아가는 지금, 이 순간의 독자들에게도 의미있는 지침이 돼줄 것”이라고 일독을 권했다. /윤희정기자

2021-09-30

자식에게 기대던 시대는 갔다… 셀프부양 시대 대처법

평균 수명이 연장되고 사회구조의 변화에 따라 어느 때보다 노후 대비의 필요성이 증대되고 있다. 노후 설계 전문가인 강창희씨와 자산운영 연구자인 고재량씨는 공저인 ‘오십부터는 노후 걱정 없이 살아야 한다’(포레스트북스)에서 풍요로운 노후를 준비하기 위해선 일찍부터 마인드를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저자들은 가장 확실한 노후 대비가 평생현역이라는 정체성과 역할 확보라면서 퇴직 후 12만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 창직의 사례를 들어 일러준다. 이와 함께 저성장, 저금리시대에 금융자산은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 생애주기별 포트폴리오 짜는 방법을 가르쳐주며, 재테크보다 더 중요한 3층연금 쌓는 방법과 노후대비 상품으로 활용이 가능한 퇴직연금 등의 활용법도 설명한다.3층 연금이란 1층에 국민연금, 2층에 퇴직연금, 3층에 개인연금을 쌓아 연금을 마련해 두라는 것이다. 선진국은 노후의 주요 수입원으로 60% 이상이 이런 연금인데, 우리나라는 아직 10% 대에 머물고 있다고 지적한다. 매달 현금 흐름이 나오는 연금을 준비해 놓지 않고 노후를 대비했다고 얘기할 수 없다는 것. 무엇보다 ‘나의 노후를 책임질 사람은 바로 나뿐이다’는 인식의 전환이란다. 나이 들어 가장 중요한 게 경제적 자립 능력이다. 돈이 없으면 노후의 5대 리스크(장수, 건강, 자녀, 자산관리, 저금리)를 대비할 수 없기 때문. 저자들은 자식에게 기대던 시대는 이미 갔다면서 자신을 부양하는 셀프부양의 시대에 맞게 적극적으로 대처하라고 거듭 역설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1-09-23

자본주의 미국서 부활하는 ‘사회주의’

“세계 자본주의의 최전선에 있는 나라, 미국에서 사회주의 인기가 높다.”좌파잡지 ‘자코뱅’의 창립자인 바스카 선카라는 ‘미국의 사회주의 선언’(미래를소유한사람들)에서 이제 미국에선 ‘사회주의자’라고 해도 더는 ‘미친놈’으로 취급받지 않는다고 말한다. 특히 전후 매카시즘과 1990년대 공산주의 붕괴역사로부터 자유로워진 젊은이들의 사회주의 호감도가 높다고 주장한다. 최근에 이뤄진 조사에 따르면 18~34세 미국인 중 58%는 사회주의를 바람직한 것으로 여기는 것으로 나타났다.‘미국의 사회주의 선언’은 맑스와 엥겔스의 시대부터 미국의 버니 샌더스, 영국 노동당의 지도자 제레미 코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회주의 정치 운동의 역사를 검토하고, 미국에서 ‘사회주의 운동’이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한다.매카시즘 논란 이래 미국에서 ‘사회주의’만큼 불온한 단어는 없었다. 미국에서 사회주의 정치나 운동은 유럽이나 제3세계와 달리 매우 주변적이었다. 100여 년 전 베르너 좀바르트는 ‘왜 미국에는 사회주의가 없는가?’라는 질문에 미국 노동자들이 사회주의 선동에 현혹되기에는 경제의 번영으로 ‘로스트비프와 애플파이’를 너무 많이 먹기 때문이라는 답을 찾았다.그의 답은 오랫동안 정확한 것으로 여겨졌다.그런데 1990년대 초 소련이 해체되면서 세계사적으로 사망 선고를 받은 사회주의가 21세기에 들어선 지 20년이 더 지난 시점에 미국에서 부활하고 있다.2018년의 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의 30세 이하 젊은이들 가운데 35%는 사회주의를 매우 선호했고, 그렇지 않은 비중은 26%에 그쳤다. 최근의 조사에서는 젊은 미국인 중 58%가 사회주의에 대해 긍정적인 답변을 내놨다.버니 샌더스 민주당 상원 의원은 ‘민주적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며 2016년과 2020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각각 43%, 27%의 높은 지지를 받았다. 미국 사회주의 운동을 주도하는 미국 민주사회주의자(Democratic Socialists of America)의 성원인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 전 하원 의원은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정치인이다. 그녀의 트위터 팔로워는 자그마치 400만 명에 이른다.이러한 인식 변화의 한 가지 이유는 ‘사회주의가 갖는 이미지’의 변화다.한 조사에 따르면 사회주의에 대해 미국 젊은층의 58%는 덴마크 같은 노르딕 국가로 이해한 반면, 65세 이상의 고령층은 소비에트 시스템과 동일한 것으로 간주했다.서론 격인 제1장에서 저자는 여러 한계가 있음에도 스웨덴에서 실현됐던 ‘사회민주주의’를 앞으로 실현해야 할 ‘민주적 사회주의’에 가장 가까운 현실로 제시한다.제2장에서는 맑스는 20세기의 복지 국가나 일반 노동자들이 가난에서 벗어나 사치품의 소비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내다보지는 못했지만, 자본주의는 위기에 취약하고 지배와 착취 위에 서 있으며 사회적, 환경적 파괴로 사회 전체적 비합리성을 양산한다고 평가한다.제3장과 제4장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을 전후한 시기에 사회주의가 가장 활력 있는 시기를 맞이하였으나, 사회주의가 러시아의 가혹한 조건 속에 고립되면서 피로 얼룩진 피투성이의 집단주의로 전락한 사연을 다루고 있다.제5장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사회민주주의가 복지 국가라는 역사적 진보를 이뤄냈음에도 신자유주의의 등장으로 후퇴하게 되는 과정을 살피고 있다.제6장에서는 사회주의가 민족 해방 투쟁의 이념으로 기능한 역사를 살피고, 제7장에서는 미국 역사에서 그동안 실체가 가려진 채로 면면히 이어져 온 사회주의 운동의 전통을 소개하고 있다.마지막 제8장~제10장에서는 미국과 영국에서 현재 진행되는 사회주의 운동의 현실을 소개하고, 앞으로 ‘민주적 사회주의’는 사회민주주의의 성취를 기반으로 노동자들의 계급투쟁과 결합해 나갈 때 비로소 성취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점에서 ‘계급투쟁 사회민주주의’라는 비전을 제시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1-09-23

세계적 신경과학자 연구 ‘인간의 신체와 마음’

‘데카르트의 오류’‘스피노자의 뇌’로 일반인들에게도 잘 알려진 베스트셀러 저자이자 감정의 의사결정에 미치는 영향 연구로 세계 뇌과학 분야의 선두주자인 안토니오 다마지오(77)의 최근작 ‘느끼고 아는 존재’(흐름출판)가 출간됐다. 안토니오 다마지오는 인간의 ‘정서’와 ‘느낌’이 의사결정에 미치는 영향과 자아 형성에 기여한 역할을 연구했으며, 인간의 마음이 단순히 뇌의 작용만으로 환원할 수 없는 문제임을 고찰해냈다.그는 생명의 탄생에서부터 인간 문명의 발전에 이르는 긴 진화적 과정 동안 느낌과 감정이 생명 유지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고 말한다.세상에서 가장 풀기 어려운 문제 중 하나인 의식의 비밀에 한층 더 가까이 다가가고자 했던 다마지오는 인간의 감정과 의식에 대한 자신의 아이디어를 세상에 설명해왔다. 다마지오는 ‘느끼고 아는 존재’에서 그동안 자신이 의식의 문제에 천착해온 결과를 갈무리하고 최근 연구 성과를 덧붙였다.이 책에는 인간의 신체와 마음의 작용에 대한 다마지오의 통합적 관점이 그 어떤 책보다도 간결하고 포괄적으로 설명돼 있다. 책은 △제1장 존재에 관하여 △제2장 마음과 표상이라는 새로운 기술에 관하여 △제3장 느낌에 관하여 △제4장 의식과 앎에 관하여 총 4장으로 구성돼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1-09-23

완벽할 수 없는 우리 생애를 감싸안는 따스한 희망 담아

대산문학상, 이효석문학상, 신동엽문학상 등을 수상한 조해진의 신작 소설 ‘완벽한 생애’(창비)가 출간됐다. 창비 출판사의 젊은 경장편 시리즈 ‘소설Q’의 열한 번째 작품이다.직장에서 참을 수 없는 모욕을 당하고 직장을 그만 둔 윤주, 윤주의 제주 생활 동안 그의 방을 빌리며 한국여행을 하게 된 시징, 꿈을 접고 신념을 작게 쪼개기 위해 제주로 이주한 미정의 이야기가 다정히 주고받는 편지처럼 이어진다.삶에서 잠깐 스쳐갈 뿐인 타인에게 ‘방’을 내어주고 기꺼이 자리를 마련해주며 “필연적으로, 그렇지만 그림자처럼 은근한 방식으로”(발문 최진영) 연결되는 인물들의 모습을 통해, 불완전하게 흔들리는 세계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살아 있음’의 증인”(작가의 말)이 돼줄 수도 있겠다는 단단하고 따스한 희망을 품게 하는 소설이다. 조해진은 작가의 말에서 “신념을 따르고 사랑에 진심일수록 상처받고 방황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또 “생애는 완벽할 수 없고 완벽할 필요도 없다”면서 “언제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고 어디로 가는지도 확신하지 못하는 이 생애의 한가운데서 우리가 서로에게 ‘살아 있음’의 증인이 되어주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윤희정기자

2021-09-23

대사상가 다석 류영모의 삶·사상 45개 주제로 엮은 ‘저녁의 참사람’

‘저녁의 참사람’(메디치미디어)은 한국의 정신가치와 삶의 의미를 일깨운 대사상가 다석(多夕) 류영모(1890~1981)의 평전이다. 씨알사상을 주장한 함석헌의 스승인 류영모의 생애와 사상을 정리했다. 아주경제 논설실장인 저자이상국씨가 신문에 쓴 글을 모아 단행본으로 펴냈다. 책은 하루에 저녁 한 끼만 먹고 살았다는 다석의 삶과 사상을 45개의 소주제를 통해 재조명하고 있다.‘하루 한 끼, 일일 일식’ ‘이승훈의 오산학교와 만나다’ ‘톨스토이와 천로역정’ ‘불경스런 사내, 우치무라 간조’ ‘한글 속에 있는 하느님, 우리 말글의 성자’ ‘없이 계시는 신-몸과 성령’ ‘예수의 길과 다석의 길’ ‘부처·노자·공자가 모두 하느님을 가리키고 있다’ 등 다석 사상을 두루 살펴볼 수 있는 주제를 포함하고 있다.서울에서 13형제 중 맏이로 태어난 류영모는 연동교회를 다니며 기독교를 접했고, 평북 정주 오산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이후 북한산 아래에서 은거하며 농사를 짓기도 하고, 광복 이후에는 은평면 자치위원장으로 활동했다.저자는 류영모 사상이 기독교를 본령으로 하면서도 동양 사유체계와 철학적 관점을 결합해 동서가 회통(會通)하는 것이 특징이라고 설명한다.이어 신앙의 개별성과 자율성을 부각한 ‘얼나사상’과 죽음을 신과 귀일하는 것으로 이해한 ‘얼삶사상’ 등을 소개하고, 류영모의 주체적 사상이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으며 저평가됐다고 강조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1-09-09

불평등한 복지국가 한국, 근본적 과제를 논하다

복지와 정치·경제를 통합적으로 연구하며 실천적 대안을 모색해온 한국의 대표적 사회복지학자 윤홍식 인하대 교수가 ‘선진국 한국의 다음 과제를 짚는’ 신간 ‘이상한 성공’(한겨레출판)을 출간했다. ‘한국은 왜 불평등한 복지국가가 되었을까?’라는 대(大)질문에서 시작하는 이 책은 ‘왜 우리는 성공했으나(부유한 선진국이 되었으나) 불행한가?’ ‘왜 한국의 청년들은 기후위기와 세계평화를 고민할 여유조차 허락받지 못하는가?’ ‘어쩌다 한국의 복지제도는 정규직만을 위한 복지제도가 되었나?’ 등 착잡한 현실을 꼬집는 중대한 질문들을 이어가며 명쾌하게 답한다.윤홍식 교수는 일제강점기부터 지난 100여 년의 시간을 돌아보며 “우리의 성공이 오히려 우리를 불행하게 만든 덫이 됐다. 지금의 불행은 역설적이게도 실패의 결과가 아니라 성공의 결과다”고 단언한다.책은 한국이 GDP 9위의 선진국이 됐는데도 불구하고, 왜 10명 중 6명은 ‘울분에 가득 찬’ 극도로 불안한 나라가 됐는지, 복지지출을 매년 늘리는데도 왜 자살률 1위라는 오명을 수년째 벗지 못하는지 등을 경제, 정치, 역사, 사회복지 측면에서 탄탄하게 분석한다.1장 ‘성공의 덫’에서는 한국의 청년들과 다른 신자유주의 국가 청년들의 모습을 비교하며, 우리 사회에 만연한 정치, 사회, 경제적 현안들을 지적한다. ‘86세대가 불평등의 원흉인가?’라는 팽배한 세대 담론부터 ‘청년의 절반 이상이 계층상승에 대한 기대감조차 갖지 못하게 된 배경’ 등을 부의 세습, 능력주의 관점에서 설명한다.2장 ‘성공, 그 놀라움’에서는 한국이 얼마나 대단한 성취를 이뤘는지를 사회 전방위적 측면에서 다룬다. 해방 후 성장의 역사와 지금의 ‘불평등한 기회, 불공정한 과정, 부정의한 결과’를 대비해 보여주면서 우리를 성찰하게 하는 동시에, 마음만 먹으면 현재의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음을 깨닫게 한다.3장 ‘성공의 이유’에서는 1960년대 농지개혁부터 국가가 주도한 산업화 과정, 국민의 인내와 대기업의 노력으로 경제성장을 이루기까지의 과정을 자세하게 톺아본다. 이 장에선 특별히 ‘한국의 성공 방식과 이면’을 10~20년 단위로 치밀하게 분석했다.4장 ‘성공이 덫이 된 이유’에선 바로 이 성공 방식이 어떤 문제를 야기했는지 낱낱이 분석한다. ‘열심히 사는데, 왜 우리의 형편은 그대로인지’, ‘복지지출은 매년 증가하는데 왜 불평등은 날로 심해지는지’, ‘어쩌다 정규직만을 위한 복지제도가 되었는지’ 그 이유를 밝힌다. 마지막으로 5장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에선 한국 사회가 성공의 덫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가야만 하는 길을 모색한다. ‘소득 간 평화로운 공존이 가능하려면 증세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국민이 행복한 선진국이 되려면 국가는 무얼 변화시켜야 하는지’ 등에 대한 답을 제시한다.윤홍식 교수는 “국민은 국가의 역할이 다시 경제를 살리는 것이라고 생각해왔지만, 성장이 불평등과 빈곤을 완화하는 ‘그런 놀라운 기적’은 이미 1990년대부터 일어나지 않았다”고 밝힌다. 그리고 국가가 운영하는 사회보험보다 부동산, 민간금융상품이 더욱 신뢰받는 상황에서 국민에게 ‘공적 부조’에 대한 믿음을 심어줄 수 있는 방법과 통찰들을 조목조목 설파한다. 핵심은 ‘복지’에 대한 개념을 다시 세우는 것이다. 저자는 단순히 입고, 먹고, 몸을 누이는 생존에 직결된 복지만으론 불평등을 해소할 수 없음을 구체적 논증으로 피력한다. 그리고 양질의 일자리, 돌봄 노동 해소를 통한 노동시장 참여, 실패해도 괜찮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갖가지 실천적 방법들을 제시함으로써 자신의 주장을 설득력 있게 마무리한다./윤희정기자

2021-09-09

한강이 소설에 담은 ‘제주 4·3 사건’

2016년 ‘채식주의자’로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한 한강(51) 작가가 5년 만에 신작 장편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문학동네)를 펴냈다. 신작은 1947~1954년 제주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 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제주 4·3 사건을 다룬다. 본래 2015년 황순원문학상을 받은 단편 ‘눈 한송이가 녹는 동안’, 2018년 김유정문학상 수상작 ‘작별’에 이은 ‘눈 3부작’ 마지막 작품으로 구상됐지만 그 자체 완결된 작품으로 나왔다.‘소년이 온다‘, ‘흰’, ‘눈’연작 등 근작들을 통해 어둠 속에서도 한줄기 빛을 향해 나아가는 인간의 고투와 존엄을 그려온 한강 문학이 다다른 눈부신 현재를 또렷한 모습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됐다. 한 작가는 ‘소년이 온다’를 통해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의 상황과 그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바 있다. ‘작별하지 않는다’에는 잡지사 기자 출신 작가 경하를 내세워 제주 4·3 학살 이후 실종된 가족을 찾기 위한 생존자들의 길고 고요한 투쟁 서사를 시적으로 담았다.문학동네 측은 “오래지 않은 비극적 역사의 기억으로부터 길어올린, 그럼에도 인간을 끝내 인간이게 하는 간절하고 지극한 사랑의 이야기가 눈이 시리도록 선연한 이미지와 유려하고 시적인 문장에 실려 압도적인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고 전했다. 한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기를 빈다”고 했다. 또 그는 ‘작별하지 않는다’의 의미에 대해 “작별하지 않겠다는 각오라고 생각했다”며 “어떤 것도 종결하지 않겠다는 그것이, 사랑이든 애도든 끝내지 않고 끝까지 끌어안고 가겠다는 결의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윤희정기자

2021-09-09

인공지능의 가능성과 위험에 대하여

“첫째도 AI, 둘째도 AI, 셋째도 AI”라는 말마따나 인공지능 기술은 너무나도 중요하다. 미래 산업은 물론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하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엔 어떤 가능성과 한계가 있으며, 인류가 대비해야 할 위험은 무엇일까. 만만치 않은 질문이지만, 꼭 대답을 찾아 나가야 할 인류의 숙제이기도 하다. ‘인공지능은 무엇이 되려 하는가’(프시케의숲)에 이름을 올린 필자 25인은 저마다의 분야에서 탁월한 통찰력을 보여준 과학사상가들로, ‘거대한 기술’ 인공지능을 철저히 파헤치기에 합당한 지적 거인들이다. 파괴력 있는 저작으로 화제를 몰고 다니는 하버드대의 심리학 석학인 스티븐 핑커는 물론, 인공지능의 미래를 여러 매체에서 웅장한 시야로 조망해온 맥스 테그마크, 인류의 인공지능 통제 문제를 줄곧 제기해온 스튜어트 러셀 등이 눈에 띈다. 또한 프랭크 윌첵이나 벤키 라마크리슈난 등 노벨상을 수상한 석학도 명쾌하고 우아한 관점으로 인공지능을 바라본다. 인상 깊은 저작을 통해 한국의 지식 독자들에게도 친숙한 대니얼 데닛, 톰 그리피스 등도 집필에 합류했다.특징적인 것은 이 책이 인공지능 전반을 다룬다는 점이다. 현재 각광받는 ‘딥러닝’ 인공지능은 물론, 앞으로 도래할 ‘초지능’ 인공지능까지 아우른다. 또 오늘날 이만큼 도달하기까지의 여정, 즉 폰 노이만과 클로드 섀넌에서부터 시작되는 초기 역사부터 인공지능 기술을 짚어나간다.이 책에는 25명이라는 필자의 수만큼이나 다양한 관점이 담겨 있다. 섣불리 낙관도, 비관도 할 수 없을 만큼 팽팽한 논의가 펼쳐진다. 단 하나 공통되는 것은 논의의 출발점이다. 엮은이 존 브록만은 일찍이 사이버네틱스라는 용어를 제시하고 그 위험성을 강력하게 경고한 인물인 ‘노버트 위너’를 화두로 제시했다. 사이버네틱스는 오늘날의 인공지능 개념을 선취했으며, 더욱이 노버트 위너는 마치 핵폭탄을 우려하듯 사이버네틱스의 지배를 두려워했다. 이것을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아 집필자들이 자유롭게 생각을 펼치는 것이 이 책의 탄생 배경이다.어떤 필자는 그러한 인공지능에 대한 두려움에 동조하고, 어떤 필자는 디스토피아적 상상을 선호하는 인류의 고질적인 습성이라며 그러한 두려움을 일축한다. 또 다수의 필자는 그러한 찬반 구도와 상관없이 자신만의 매혹적인 인공지능론을 펼쳐나간다. 그렇게 마련된 25개의 조각들로 독자들은 저마다의 모자이크 그림을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지식의 지휘자’라는 별명을 얻고 있는 엮은이 존 브록만은 집필진을 과학자, 프로그래머, 공학자, 사상가, 예술가 등 다채로운 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해 인류가 가진 AI 지식의 전모를 밝히고 그 통섭을 통해 새로운 관점과 영감이 열리길 도모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1-09-02

‘언어의 온도’ 이기주 작가의 마음·사랑·사람 탐구

‘언어의 온도’, ‘말의 품격’으로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오른 이기주 작가가 신작 산문집 ‘마음의 주인’(말글터)을 펴냈다.250만 독자의 마음을 두드린 이기주 작가는 이번엔 ‘마음에 관한 탐색’을 시도한다. 일상을 비집고 들어가 포착한 시간과 공간에서 마음의 본질과 실체를 마주하고 그것을 여백 위에 잔잔한 문장으로 그려냈다.책은 “우리 삶의 많은 문제가 마음을 잃어버리는 데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라는 화두를 내던지며 시작한다. 마음, 사랑, 생애, 사람이란 주제를 통해 그 답변을 찾아가는 여정을 담았다.다만 이기주 작가는 마음을 향해 떠난 여정에서 딱 떨어지는 정답에 다가가려 애쓰기보다 길 닿는 대로 돌아다니면서 자신만의 답을 주워 담았다. 그렇게 끌어모은 마음에 관한 생각을 책 곳곳에 심어놓았다.저자는 “모든 일이 잘될 거야”라는 식으로 함부로 위로의 말을 건네지 않고, “내가 그리 특출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으며 균형 잡힌 시각으로 세상의 흐름과 마음의 상태를 바라볼 것을 권유한다.또한 살다 보면 무턱대고 다가가기보다는 관심과 무관심 사이, 그 어디쯤에서 인내심을 갖고, 누군가를 기다려줘야 하는 순간이 있다고 말한다.그는 “어떤 면에서 인생은 내가 그리 특출 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틈틈이 깨닫는 과정인지도 모른다”라든지, “보이는 것이든 보이지 않는 것이든 단면으로만 이루어진 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하면서, 균형 잡힌 시각으로 세상의 흐름과 마음의 상태를 바라볼 것을 권유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1-09-02

화를 내는 것은 본능일까?… 분노를 해석하는 12가지 담론

화를 내는 것을 의미하는 ‘분노’(憤怒). 세상에는 수많은 분노의 원인이 존재한다. 그중 어떤 것들은 당장 화를 내야 한다고 외치고, 어떤 것들은 화를 참아야 한다고 말한다. 때로는 화를 내서 욕을 먹고 때로는 화를 안 내서 욕을 먹는다. 이렇게 분노의 가치가 뒤죽박죽 뒤섞인 상황이다 보니 분노가 우리 삶에 어떤 의미가 있고 또 앞으로 어떤 의미를 지니게 될지, 한 걸음 뒤로 물러나 깊이 숙고할 필요가 있다.사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가 언제 화를 내는지 안다고 생각하며 다른 이의 분노 역시 알아볼 수 있다고 꽤 확신한다. 그러나 이런 생각들은 진실과는 아주 거리가 멀다. 우리의 분노 안에는 온갖 의미의 영역이 전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분노란 무엇인가’(타인의사유·원제 ‘Anger’)는 분노를 이야기하는 담론 12가지를 기반으로, 수많은 결의 분노와 이를 대하는 다양한 태도를 소개한다.감정의 역사를 연구해 온 저자 바버라 H. 로젠와인 미국 시카고 로욜라대학교 명예교수는 이 책에서 방대한 자료를 토대로 분노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크게 세 가지 계보 속에서 나눠진다고 설명한다.분노를 피하거나 없애야 한다고 보는 계보, 때에 따라 악덕과 미덕 사이를 오간다고 보는 계보,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능이라고 보는 계보가 있다.이런 세 가지 카테고리에서 세네카, 아리스토텔레스, 데카르트, 폴 에크만, 리사 펠드먼 배럿, 마사 누스바움 등 학문을 넘나들며 여러 학자들의 주장을 살펴본다.미얀마 군부와 불교도에 의한 로힝야족 무슬림 탄압이나 최근 미국 전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반(反)인종차별 캠페인 BLM 운동과 같은 사회적 맥락에서의 분노 개념도 함께 돌아본다.저자는 현재의 분노 담론이 과거에 뿌리를 두고 있기는 하지만 우리의 명예가 모욕과 비방을 당했다는 느낌이 커다란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말한다. 내쫓기고, 무시되고, 경멸받는 명예, 한마디로 ‘디스’되는 명예에 대한 감각이 널리 퍼져있다는 것이다. 그럴수록 모두가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으며, 자신들이 옳고, 정의롭다고 믿는다. 저마다 자신의 관심사를, 그리고 분노 해소 방식에 관한 생각을 다른 모든 이에게 주입하고 싶어 한다.하지만 저자는 이럴수록 분노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분노가 단지 어떤 하나의 ‘것’이 아님을 인정하고 오늘날 존재하는 많은 분노의 가치와 뿌리를 이해할 때 이런 극단적이고 대립적인 사회 전반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고 제안하고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1-09-02

초상화 속 인물은 왜 웃지 않을까… 대중 눈높이 맞춘 미술 이야기

다양한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며 미술사를 풀어내는 우리나라 최고의 미술 안내자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미술에 대한 우리의 오래된 고정관념을 환기하며 미술작품을 통한 사유와 감성의 확대를 모색한 책 ‘벌거벗은 미술관’(창비)이 출간됐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아우르는 미술의 장구한 역사를 인류 문명사적 관점에서 연구하는 미술사학자이자 ‘인문학의 꽃’으로 불리는 미술사를 대중화하는 데 노력해온 양 교수는 오랫동안 미술작품을 마주할 때마다 고민해오던 문제들을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집요하면서도 자상하게 풀어낸다.‘미술은 왜 끊임없이 과거로 되돌아가려는 속성을 보여주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고전미술의 신화화 과정을 파헤치고, 미술관에 들어설 때마다 느끼던 무게감을 초상화의 무표정성이라는 관점에서 분석한다. 이 밖에도 박물관과 시민사회의 함수관계, 화려한 미술 속에 담긴 질병의 그림자 등을 통해 인간이 미라는 추상적인 관념을 어떻게 시각적으로 구축했는가를 살핌으로써 독자들을 미술에 대한 다각적인 성찰로 이끈다. 과거와 현재, 서구와 한국을 넘나들면서 펼쳐지는 설명은 직관적이고도 유려해서 저자의 치열한 문제의식을 부담 없이 따라갈 수 있다.4개 장으로 구성된 이번 책은 강연을 바탕으로 썼다. 문명과 표정에 앞서 첫 장에서는 고전미술의 허상을 말한다. 석고상 그리기가 미술교육의 기본이 된 역사, 군국주의적이고 남성중심적인 문화 속에서 탄생한 그리스 조각이 서구에서 수천년 동안 아름다움의 기준이 된 과정을 살핀다. 3장과 4장에서는 각각 미술관과 박물관을 둘러싼 격동의 역사, 코로나19 사태와 미술을 다룬다. 각 장이 직접적으로 연결되지는 않지만 큰 틀에서 미술과 인간이라는 주제로 만난다. 미술의 역사를 통해 저자는 ‘인간에게 미술이란 무엇인가’라는 문제에 다가간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1-08-26

전 세계 대표 지성 134인과 사유의 시간을

이 시대와 사회를 만들어낸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경제, 문화, 사회, 정치 등을 우리 외부에 존재하는 현상으로 간주하지만 사실 그것들은 우리의 ‘생각’, 즉 인식 활동의 소산이다. “우리의 생각이 곧 우리 자신이다. 모든 것은 우리의 생각과 함께 발생한다. 따라서 우리의 생각이 이 세상을 형성한다”라는 붓다의 말처럼, 우리의 생각이 씨줄과 날줄로 엮이며 이 시대와 사회를 만들어냈다.기업가이자 사회활동가인 비카스 샤의 ‘생각을 바꾸는 생각들’(인플루엔셜)은 이 같은 사실에 착안해 금세기 커다란 영향을 미친 인문들의 생각을 인터뷰해 공유하는 프로젝트 ‘생각 경제학 프로젝트’를 한 권의 책으로 엮은 것이다.책은 정체성을 시작으로 문화, 리더십, 기업가정신, 차별, 갈등, 민주주의까지 총 7개의 대주제를 다루고 있다. 이 주제들은 전 영역에 걸쳐 불안정성과 불투명성이 높아진 이 시대에 올바른 삶의 방향을 가늠하게 하는 중요한 화두들이다. ‘정체성은 우리를 어떻게 규정하는가’ ‘문화예술은 우리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 ‘이 시대에 필요한 리더십은 무엇인가’ ‘차별과 갈등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오늘날 민주주의는 어떤 위기에 처해 있는가’ 등 우리 시대에 가장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 전 세계 대표 지성 134인에게 질문하고 그들의 생각을 듣는다. 유발 하라리, 조던 피터슨, 제인 구달, 마야 안젤루, 무하마드 유누스, 리처드 브랜슨, 셰릴 샌드버그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선도적인 위치에 오른 인물들의 위대한 생각들이 독자들을 깊이 있는 사유의 장으로 안내한다.한 예로 심리학자이자 ‘질서 너머’의 저자 조던 피터슨은 “어떤 인생을 살아야 잘 살았다고 할 수 있는가”라는 비카스 샤의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변한다.“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이렇게 말할 수 있겠네요. ‘만일 이 세상의 문제들, 즉 자신과 가족을 비롯해 사회의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꺼이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괜찮은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다’라고요. 누구나 주변에서 뭔가 잘못되었음을 느끼거나 고통을 겪는 사람을 보면 심적으로 동요되기 마련입니다. 인간으로서 피하기 어려운 이러한 도덕적 부담을 덜어낼 유일한 방법은 그 문제에 맞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41쪽(‘살아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중에서)‘사피엔스’를 통해 인류의 정체성과 관련된 커다란 변화를 예고한 유발 하라리는 “앞으로 미래의 인류는 어떤 변화를 겪게 될 것인가”라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자신의 생각을 피력했다.“장차 인간은 기술을 사용해 신의 영역으로 간주했던 능력들을 습득하게 될 것입니다. 비유법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의 의미입니다. 조만간 인간은 각자 취향대로 생명체를 설계해서 창조하고, 머릿속과 직접 연결된 가상현실을 넘나들고, 수명을 과감히 연장하고, 원하는 대로 자신의 육체와 정신을 개조할 것입니다. (중략) 미래 기술의 혁신적인 잠재력은 우리 몸과 마음을 포함한 호모 사피엔스 자체의 탈바꿈에서 나타날 거예요. 미래의 가장 신기한 기술은 우주선이 아니라 우주선에 타고 있는 생명체가 될 거란 의미입니다.”-59~60쪽(‘인간은 동물보다 우월한가’ 중에서)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우리 대부분은 밥벌이에 치중한 생존 문제에 몰입해 의식 없이 살아간다. 그러나 ‘세상에 널린 갈등과 혐오를 우리는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와 같은 삶의 근간을 흔드는 실존적인 질문들을 마주할 때, 잠자던 우리의 의식은 깨어나고 삶을 대하는 태도 역시 변화한다. “모든 사람이 아침에 일어나면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 스스로 질문을 던져야 한다”라는 행위예술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말처럼 ‘생각을 바꾸는 생각들’은 근본적인 가치가 뿌리째 흔들리는 오늘날, 진정한 인생에 대해 자문해보고 삶의 방향을 재정비할 수 있게 도와준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1-08-26

정신과 의사·긍정심리학 전문가가 알려주는 건강한 상호의존 방법

태곳적부터 인간은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도왔다. 하지만 경쟁이 점차 심해지고 자유와 독립의 가치가 지나치게 강조되면서 우리는 고립된 채 외로움을 감수하며 살아가는 존재가 돼버렸다.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는 인간다운 삶의 모습은 무엇일까?‘나를 살리는 관계’(위즈덤하우스)는 ‘나라서 참 다행이다’ ‘불안을 넘어설 용기’ 등 프랑스에서 다수 베스트셀러를 펴낸 정신과 의사 크리스토프 앙드레와 긍정심리학 전문가 레베카 샹클랑이 함께 쓴 책이다. 지난 50년 동안 다양한 연구자들이 관계를 공부하고 연구해온 결과를 바탕으로 애착과 상호의존이 왜 중요한지 과학적으로 설명해주고, 우리가 실생활에서 어떻게 해야 긍정적이고 지속 가능한 관계를 고양할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제안한다.내 곁에 있는 사람 때문에, 나를 둘러싼 온갖 관계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는가? 관계를 싹둑 끊어내는 편이 일견 쉽고 마음 편해 보이지만 그것은 결코 좋은 해결책이 아니다. 끊어진 줄은 결코 감쪽같이 다시 이을 수 없다. 얽히고설킨 관계를 현명하게 풀어내고 건강한 상호의존을 구축하는 데 이 책은 크나큰 도움이 돼 줄 것이다.“관계는 우리가 숨 쉬는 공기와도 같다. 관계는 우리 삶에 항상 있고 결코 없어서는 안 되지만 우리가 늘 의식하면서 살지는 않는다. 명상을 하면서 자기 호흡을 의식하고, 따라가고, 있는 그대로 느껴보는 것이야말로 평정심과 분별력으로 나아가는 가장 간단하고 효과적인 훈련이다. 일상에서 시시때때로 상호의존을 의식하고 마음 깊이 챙기며 그 양상을 관찰하고 온전히 누리는 것 또한 간단하면서도 썩 유익한 훈련이다. 이 훈련이 우리의 인간다움을 여실히 깨닫고 행복과 연대감을 느끼게 한다.-‘맺음말’ 중에서 /윤희정기자

2021-08-19

“민족의 입맛, 철조망도 못 갈라놔”

(사)아태평화교류협회(대표 안부수·이하 아태협)가 지난해 12월 “누군가에게 평화의 텃밭이나 주말농장이 되기를 바란다”는 취지를 내걸고 창간호를 펴낸 계간 ‘평화친구’ 제3호(아시아)가 최근 광복 76주년을 맞아 2021년 여름 호로 발행됐다.이번 호의 주목할 내용은 아태협이 주도한 ‘옥류관 평양 물랭면’과 ‘옥류관 평양 고기만두’ 출시에 즈음한 안부수 대표의 권두 인터뷰,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와 류영재 서양화가 그리고 김동환 부엉이영화사 대표가 참여한 특집 ‘명작의 평화, 평화의 명작’, 광복절에 더욱 각별한 기획으로 마련된 안부수 대표의 ‘일제 강제동원 희생자 유골 발굴과 조국 봉환 현장을 가다: 일본(日本) 스미토모(住友) 광산 조사 및 강제동원 현장 실태조사’와 이경재 숭실대 국문과 교수의 ‘한국문학에 남은 일제 강점의 상처: 유진오의 기차 안’ 등이다.또 1909년 평양에서 태어나 20대에 5년간 미국 유학을 하고 삶의 전반기는 평양에서, 해방 후 삶의 후반기는 포항에서 살아간 한흑구 작가의 생애와 문학에 대한 연재를 시작해 첫 회에 작가소개와 함께 1930년 미국 시카고에서 발표한 시 3편과 1956년 포랑에서 발표한 명작 수필 ‘나무’를 감상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고정 지면인 ‘내 안의 평화’에는 김용국 시인의 시편, 포항에 거주하는 소설가 김강, 수필가 권정숙, 차성환 씨의 근작 수필을 싣고 있다.옥류관 평양 물랭면 출시에 대해 안부수 대표는 “민족의 입맛은 휴전선 철조망도 갈라놓을 수 없으니 무엇보다도 우리 협회의 노력과 정성이 남과 북의 민간교류에 온기를 불어넣고 평화의 시대를 위한 밀알과 같은 평화친구가 되기를 소망한다”고 밝혔다.방민호 교수의 ‘지나간 30년 전쟁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는 영국에 거주하는 일본계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의 노벨문학상 수상 장편소설인 ‘남아 있는 나날’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보여주고 있다.류영재 서양화가의 ‘빛의 마술사 렘브란트의 탕자의 귀환’은 세계 3대 미술관의 하나로 꼽히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주 미술관에 소장된 렘브란트의 ‘탕자의 귀환’에 얽힌 에피소드를 흥미롭게 풀어내면서 평화와 예술의 힘을 생각하게 만들어준다.이란주재미국대사관 직원들의 탈출기를 다룬 김동환 대표의 영화 ‘아미고’에 대한 해설과 제작 뒷얘기는 때마침 터져 나온 아프가니스탄 탈출 러시를 지켜봐야 하는 독자들에게 평화의 참된 의미와 평화를 지키고 누리는 일상의 삶에 새삼 사색할 계기를 제공해준다.인간은 전쟁에서 놓여날 수 없는 것인가? 우리나라는 남북 평화시대를 만들 수 없는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가장 근원적인 대답의 하나를 ‘평화친구’ 이번 호는 권두에 초대한 ‘앵콜 평화엽신’에 담긴 두 베트남 작가의 대화를 통해 들려주고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1-08-19

위대한 패배자 8인을 통해 보는 리더의 길

오늘날 모든 조직은 리더십의 위기를 겪고 있다. 정해진 답이 없는 시대에 올바른 답을 찾기 위한 결단을 내리는 한편으로 MZ세대로 대표되는 자기중심의 세계관을 지닌 세대들을 문화적, 조직적 충돌 없이 이끌어야 한다. 섬기는 리더십, 카리스마 리더십, 질문하는 리더십 등 다양한 해법이 제시되고 있지만, 막상 현실에 도입하면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 힘들 따름이다. ‘위대한 패배자들’(흐름출판)은 인생의 성패를 떠나 오롯이 자신의 길을 걸었던 위대한 패배자 8인의 철학, 전략 그리고 그들의 삶을 동서양의 고전과 역사적 사건 등을 통해 재해석한다.경영학자인 저자 유필화 성균관대 경영전문대학원 원장은 무기 없이 싸우는 전쟁터로 불리는 현대의 기업 경영에서 30년간 때론 이론가로, 때론 조언자나 참여자로 활동하면서 “왜 누군가는 승자가 되고, 누군가는 사라지는가?”란 의문을 갖게 됐다. 이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역사적 인물과 동서양의 고전을 연구하고 통섭하는 작업을 해왔다.지금까지 리더에 관련된 책들이 승자의 전략과 그들의 삶을 다뤘다면 이번 책은 조금 다르다. 저자는 이번 책에서 아테네의 파괴적 혁신가 테미스토클레스, 송의 마지막 방패 악비, 소련 혁명의 수호자 트로츠키, 사막의 여우 롬멜, 세기의 혁명가 고르바초프, 한국전쟁의 진정한 영웅 리지웨이, 명나라를 세운 떠돌이 승려 주원장, 지금의 중국을 만든 한 무제 등 격변의 시기에 등장해 시대를 바꿔내는 리더십을 발휘했으나 결국 패배자, 잊힌 승자로 기억된 역사적 인물 8인을 통해 리더가 갖춰야 할 강인함, 통찰력, 책임감과 신뢰, 가치를 탐구한다.그러나 ‘위대한 패배자들’은 위대한 패배자 8명을 덮어놓고 롤모델로 치켜세우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들을 신돈, 카이사르, 비스마르크, 이순신, 이병철, 이나모리 가즈오 등 동서양, 근현대의 리더들과 비교 분석해 각각의 리더십 유형의 장단점을 파악할 수 있도록 구성하고 있다.예를 들면, 송나라의 마지막 방패로 불리며 조국을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구해냈지만 결국 황제에게 배신당한 악비를 특유의 정치력으로 황제를 움직여 독일 통일을 이뤄낸 비스마르크와 비교하며 나아감과 물러남에 대해 다각도로 조명하고 있다.페르시아라는 강대한 적의 침입과 귀족 중심의 기득권 세력의 반대 속에서 아테네의 근본을 해양 국가로 탈바꿈시킨 테미스토클레스. 그는 옳다고 생각된다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을 이뤄냈다. 비록 말년에 자신이 쓴 방법으로 조국에서 밀려났지만, 전쟁터에서 정치에서 그리고 국가경영에서 뜻한 바를 이뤄내고 만 그의 치밀한 전략 전술은 ‘손자병법’의 현신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아프리카 전선에서 처칠에게 처절한 패배감에 안겨주며 현대 전쟁사의 한 획을 그은 ‘사막의 여우’ 롬멜. 그는 적들마저 존경심을 가질 만큼 과감하고 창의적인 전술을 현실에 성공시킨 리더다. 그러나 히틀러의 암살에 소극적인 가담을 하며 전략적 차원에서 우유부단한 결정을 내렸고 결국 나치에 의해 자살 당하고 만다. 전술에서 이기고도 전략에 지고만 전쟁 영웅을 통해 리더의 안목에 대해 분석한다.‘운칠기삼’. 성공은 운이 칠, 노력이 삼이 결정한다는 말이 있다. 이 말처럼 성공과 실패는 인간의 노력과 재능을 벗어난 영역의 이야기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는 지금도 승자의 이야기와 그들의 방법론만을 배우려고 한다. 그러나 ‘위대한 패배자들’은 조금 다르게 볼 것을 제안한다. 이 책의 많은 부분은 기회를 봤고 그것을 잡으려고 했던 지도자들, 이기려고 했고 운이 따랐으면 승리할 수 있었던 장군들, 삶의 여정에서 한때 승자로 불렸으나 종국에는 패자가 되고만 잊힌 승자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한마디로 말해 그들은 비극적으로, 특히 극적으로 패배한 지도자들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전략과 리더십, 그리고 실패의 경험은 승자들은 결코 줄 수 없는 귀중한 시사점을 준다. /윤희정기자

2021-08-19

사소한 장면 속에 숨겨진 삶의 아름다움

“초여름 하오 산책길/ 오늘 내게 놀라운 사태事態는/ 연 이파리 위/ 소리 물고 파닥이는 물방울을 보는 일// 제 몸에 똬릴 트는/ 하늘도 해도 털어 내며/ 굴러 내리는 맨얼굴의 말 알아듣는 일(….)// 머물던 세상, 손 탈탈 털고/ 한 방울 바다의/ 중심으로 뛰어드는 일// 밀어라 밀어라 바람아/ 전율하는 이 가슴을/ 수평선을 기울였다 펴는/ 세상 가장 아찔한 상쾌 속으로!”- 손진은 시 ‘물방울 속으로’ 부분경주 출신의 중진 시인 손진은의 네 번째 시집 ‘그 눈들을 밤의 창이라 부른다’가 걷는사람 시인선의 44번째 시집으로 출간됐다. ‘걷는사람 시인선’은 시류에 굴하지 않고 자신만의 세계를 견고히 해가는 좋은 시인들과 시를 발굴하고 그로써 오늘날 우리 문학장이 간과하고 있는 가치를 일깨운다.198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손진은 시인의 이번 새 시집은 10년 만의 출판이다. 시인은 이번 시집을 통해 “과묵했던 문학 소년을 길러낸 고향의 정경과 일상의 자잘한 사건들을 내 ‘몫’의 말들로 풀어낸 시편들을 선보이고자 했다”고 말한다.10년 만에 펴낸 시집인 만큼 시적 사유의 힘이 탁월한 시편들이 시집을 가득 메우고 있다.시집에 담긴 51편의 작품 속에서 시인이 그려낸 인간 삶의 비극적인 단면, 자연의 이치와 아름다움, 사물의 본질 등은 결국 하나의 메시지로 귀결된다. 무참한 현실 세계 속에서 인간을 인간답게 구원하는 것은 과학적 세계관이나 거대 담론이 아니라 세상에 대한 경외(敬畏)와 자신을 돌아볼 줄 아는 근신(謹愼)의 마음이라는 것. 시집을 펼친 독자들은 시인이 직조해 낸 다채로운 신화적 세계를 체험함으로써 진정한 삶의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발견하게 될 것이다.김기택 시인은 손 시인의 이번 시집에 대해 “그의 시선이 닿으면 보잘것없는 것들은 극적인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긴장감으로 무장한다. 그의 상상력은 별 볼 일 없는 사물이나 흔해 빠진 장면을 마법적으로 변화시키면서 놀라운 광경을 우리 앞에 펼쳐 놓는다”고 평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1-08-12

소크라테스부터 노자까지… 철학자 54인의 지혜 전달

‘나를 살리는 철학’(클레이하우스)은 독일의 철학 컨설턴트 알베르트 키츨러가 삶의 지혜를 전하는 책이다. 저자는 삶의 중요하고 어려운 문제에 봉착할 때마다 고대 철학에서 답을 찾았고, 그 지혜를 철학은 하나도 모르는 사람들의 일상에도 적용하는 일에 자신의 삶을 바쳤다.예를 들어 그는 ‘다른 사람들의 행동에 자꾸 짜증과 분노가 일어난다’는 내담자에게 로마제국의 황제이자 스토아 철학자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가르침을 처방한다. ‘다른 사람의 실수에 화가 난다면 즉시 자신을 돌아보고 비슷한 실수가 없는지 생각해보라. 그의 충동적인 행동에서 내 모습을 발견한다면 금세 화가 가라앉을 것이다.’ 이처럼 ‘나를 살리는 철학’에는 소크라테스와 에피쿠로스부터 노자와 샹카라까지 동서양을 망라한 고대 철학자 54인의 지혜가 가득하다.다음은 저자가 소개하는 스토아 철학이 말하는 12가지 인생의 법칙.△법칙 1. 걸음을 멈춰라나의 마음을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일상에서 차분히 자기 자신을 성찰하는 시간을 마련해야 한다.△법칙 2. 내면의 정원을 가꿔라각자는 자기 마음의 정원을 가꾸는 정원사이고, 행복은 정원에서 피워내는 열매와 꽃이다.△법칙 3. 너 자신을 알라자기 자신을 잘 아는 사람은 무엇이 자신에게 좋고 좋지 않은지 알고 있다. 자기기만이 최악이다.△법칙 4. 마음을 훈련하라나에게 도움이 되는 생각이 나의 내적 태도로 자리를 잡을 때 진정한 변화가 가능하다.△법칙 5. 자기다움을 찾아라내가 누군지 아는 건 어렵지만, 나답지 않다는 느낌과 그 원인을 찾아내는 건 생각보다 쉽다.△법칙 6. 타인의 결점을 이해하라나를 향한 어떤 공격도 그 근거가 내 안에 있지 않음을 명확히 인식하라.△법칙 7. 베풂으로써 느끼는 행복을 인지하라사람들은 보통 자신이 먼저 베풀어 타인의 행복에 기여할 때 행복을 느낀다.△법칙 8.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라내게 호의적이지 않은 적도 친절하게 다가가면 친구로 만들 수 있다. 관대함도 연습한 만큼 는다.△법칙 9. 운명을 스스로 조각하라나의 성격은 나의 운명이다. 모든 게 내 손 안에 있다.△법칙 10. 죽음과 가까운 친구가 돼라죽음과 끝이 없다면 삶은 무미건조하고 지루할 테고, 행복도 느낄 수 없을 것이다.△법칙 11. 내려놓고 놓아주어라내려놓을 줄 알면 자유로워진다. 마음을 외부의 것들과 상황에 집착하도록 방치하지 말자.△법칙 12. 마음의 중심을 강화하라균형 잡힌 마음을 갖게 되면 나의 중심은 무한한 행복을 만드는 에너지의 원천이 된다. /윤희정기자

2021-08-12

일과 윤리, 위대함과 정직함에 대한 심오한 통찰

2017년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의 대표작 ‘남아 있는 나날’(민음사)이 번역 출간됐다. ‘남아 있는 나날’은 대를 이어 집사라는 직업에 헌신해 온 ‘스티븐스’라는 인물을 통해 양차 세계 대전 사이 영국 격변기의 모습과 여행길에서 바라본 1950년대 영국의 사회상을 교차한 작품이다. 출간과 동시에 “마술에 가까운”(뉴욕 타임스) 작품이라는 찬사를 받은 이 소설은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는 단순한 구조 속에 구시대와 신시대의 충돌, 일과 윤리, 위대함과 정직함에 대한 심오한 통찰을 담았다. 스티븐스가 ‘위대한 집사’가 되기 위해 외면할 수밖에 없었던 사랑하는 여인과 아버지, 그리고 삼십 년 넘게 모셔 온 달링턴 경에 관한 이야기를 축으로, 이 작품은 우리 인생에서 정말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넌지시 말해준다.때는 1956년 여름, 달링턴 홀의 집사로서 평생을 보낸 스티븐스는 생애 첫 여행을 떠나고, ‘위대한 집사’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온 지난날을 회고한다. 그가 무려 35년간 모셨던 신사 달링턴 경은 밀실에서 비공식 회담을 주재하고 외교 정책을 좌우하던 사교계의 중심인물로, 스티븐스는 그림자처럼 그를 돕는 집사의 직무를 통해 세상의 중심축에 닿아 있다는 내밀한 만족감을 느꼈다.하지만 그러던 어느 날, 세간의 존경을 받던 달링턴 경이 나치 지지자라는 오명을 쓴 채 사회적으로 추락하면서 스티븐스의 경력에도 금이 가기 시작한다. 이미 주인에 대한 존경을 넘어 맹목적인 헌신을 자처하던 스티븐스는 달링턴 경이 완벽한 도덕관을 가졌다는 믿음을 놓지 못한다. 평생 집사의 업무에만 매달린 탓에 아버지의 임종도 지키지 못하고 사랑하는 여인마저 떠나보내야 했던 그에게 달링턴 홀이 상징하는 세계는 단지 ‘일’이 아닌 ‘삶’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윤희정기자

2021-08-12

반드시 지켜나가야 할 ‘바다의 위대함’

최근 인류의 최대 이슈 중 하나인 해양오염 문제를 가장 적극적으로 제기하고 있는 세계적인 해양생물학자 프라우케 바구쉐 박사의 ‘바다 생물 콘서트’(흐름출판)가 나왔다. 저자는 책을 통해 바닷속 놀라운 세계에 관한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생명체와 가장 거대한 생명체가 공존하고 있는 바다의 공존공생 법칙부터 우리가 해안가를 걸으면 맡게 되는 오묘한 바다 냄새는 어디에서 생겨나는 것인지, 그리고 밤이 되면 수면 위를 아름답게 물들이는 발광현상은 어떤 이유로 발생하는지 등을 쉽고 재미있게 설명한다. 또한 바다에 가면 인간의 감정이 요동치는 이유가 무엇인지, 인간의 감정뿐 아니라, 인간의 운명과 생존, 더 나아가 지구의 생존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바다의 위대함에 대해 전하기도 한다.이 책에 소개된 바다에 대한 설명은 책에서 배운 것뿐만이 아니다. 저자가 바다 위에서 혹은 속에서 생활하며 체험하고 직접 경험한 생생한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해양생태계에 대한 최신 연구결과들과 과학적 탐사의 결과들 그리고 저자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들이 어우러져 바다와 바닷속 동물들, 해양생태계 전반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하는 가장 완벽하면서도 흥미로운 책이라는 평가다.“어디에 있건, 우리는 바다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우리가 숨 쉬고 생활하는 모든 일상이 바다로 향하고 바다로부터 온다”고 말하는 저자의 말처럼 이 책은 지구의 모든 생명체가 서로 순환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깨닫게 하며, 우리가 왜 바다를 사랑하고 지켜야 하는지 그 분명한 이유 를 알려준다.이 책의 핵심 가치는 세네갈 출신의 환경 운동가 바바 디오움이 1968년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총회에서 연설한 내용과 일맥상통한다.“인간들은 오직 우리가 사랑하는 것만을 보호한다. 우리는 오직 우리 자신이 이해하는 것만을 사랑하며, 우리가 배운 것만을 이해한다.” 저자 바구쉐 박사는 이 책을 통해 “내가 느낀 바다에 대한 사랑과 이 유일무이한 세계를 보호하려는 소망을 수많은 독자들의 마음속에서도 일깨울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서문에 적었다. 이 책은 더 많은 사람이 바다에 대해 알게 될수록 인간이 바다의 재생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고, 다음 세대가 살아갈 이 땅을 위해 지금 무엇에 주목해야 하는지를 확인하도록 돕기 위해 출간됐다.‘바다 생물 콘서트’에서 저자는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작은 동물인 플랑크톤에서부터 바다거북, 해달, 펭귄, 대왕고래, 심해 문어 그리고 각종 해조류와 산호에 이르기까지 바닷속 생태계를 이루고 있는 주요 생물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한다. 해양생물에 대한 최신의 데이터가 담겨 있는 책답게 한국어로는 명칭조차 만들어지지 않은 낯선 생물들도 다수 등장한다. 또한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해양생물에 대한 정보까지 다채롭게 담겨 있다.평생을 바다에서 살아오면서 더 많은 사람에게서 바다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내고 싶어하는 저자의 집필 의도에 걸맞게 조금도 어렵거나 복잡하지 않게 해양생태계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쉽고 알기 쉽게 전달하고 있는 게 이 책의 또 다른 장점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1-08-05

우리 삶에 꼭 필요한 힘과 태도 ‘사랑’

태어나고 떠날 때까지, 우리는 참 많은 일들을 겪는다. 이 많은 일들 속에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어떤 노력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우리 삶에 꼭 필요한 힘과 태도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고찬근 신부는 우리가 건강한 사회에서 서로 사랑하며 평화롭게 살기 위해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마음가짐과 태도에 대해 끊임없이 깨닫고자 한다. 온유함이 가득한 세상을 바라며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그 단상을 ‘우리의 사랑은 온유한가’(달)에 묶었다.겸손의 진정한 의미, 고통과 행복을 받아들이는 방법, 미움보다 용서가 좋은 이유, 배려의 기쁨, 타인을 챙기는 지혜로움, 타인을 통해 자신을 알아가는 깨달음, 그렇게 타인과 자신을 사랑하는 일들에 대해 적었다.이 책에서 고 신부는 삶의 여정에서 꼭 알아야 할 것들을 가벼이 여기지 말라고 강조한다. 힘, 건강, 지식, 돈, 권력…. 이 모든 것들이 ‘사랑과 평화를 위한 도구’임을 알아야 한다고 전한다. 사랑의 힘, 진리를 섬기는 힘이 있을 때에 사회에 물과 공기와 햇빛이 차고 넘친다는 사실을 우리는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온갖 어려움이 가득한 시대에 그래도 살아가게 만드는 힘을 상기시켜준다. 고 신부는 사랑을 강조하는 이유는 사랑만이 자신을 ‘자신답게’ 만들기 때문이라고 전한다. 그리하여, 자신을 알아가는 기쁨과 권리를 누릴 필요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이는 곧 오늘 하루를 평화롭게 살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려운 일을 두려워하지 않고 견디는 힘, 슬픔의 크기를 작게 하는 힘, 용감히 반대할 줄 아는 힘, 타인을 용서하는 힘을 기른다면 오늘 하루는 자신을 사랑하며 평화로이 지낼 수 있게 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1-0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