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문화

30여년 판사경험 바탕 현직 법조인이 말하는 ‘한국 법정 이야기’

‘판사에게는 당연하지만 시민에게는 낯선 법의 진심.’30여 년 동안 법복을 입고 재판을 해온 박형남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법정에서 못다 한 이야기’(휴머니스트)라는 제목의 재판 관련서를 펴내 화제다.지난 2017년 세상에 드러난 사법농단 사태와 ‘화천대유 50억 클럽’ 의혹을 받는 권순일 전 대법관 문제 등 최근 국민의 사법부에 대한 부정여론이 높은 가운데 발간된, 일반인을 위한 현직 부장판사의 책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끌고 있다.전북 전주 출신으로 서울대 법대를 졸업해 1988년 서울형사지방법원 판사로 임관한 이래 각급 법원에서 다양한 재판 업무를 두루 담당해 온 박 부장판사는 이 책에서 일반인은 잘 알지 못하는 판사들의 사고방식과 법정 이야기를 친절하게 소개한다.저자는 ‘판사는 왜 시민과 다르게 생각하는가’라는 머리말에서 “몇 년 전 ‘사법 농단’과 직접 관여되지는 않았으나 오랫동안 재판만 한 사람으로서 무엇이 잘못되었고 어디서부터 풀어야 하는지 찬찬히 생각하고 또 고민했다. 이 책은 이런 생각과 고민의 결과이다. 법률 개념과 법리에 대한 전문적 설명은 필요한 경우만 적고 실제 재판 사례나 역사적 사실을 많이 알리려고 노력했다”고 적었다.책은 30여 년의 시간 동안 한 사람의 재판관이 인문학적 성찰과 사회과학적 분석을 통해 법의 마음과 눈물을 하나씩 살핀 성장 기록이기도 하다.형사재판과 민사재판을 두루 거치며 바라본 재판의 풍경, 재판 과정에서 울고 웃는 사람들의 얼굴, 법률가로서 읽고 쓰고 생각해온 법의 인문학, 특별해 보이지만 지극히 평범한 판사의 일상까지, 보통의 시민들이 알고 싶어 하는 법정의 뒷모습을 차분하고 성실하게 풀어준다. 책 마지막에는 박형남 판사와 법철학자 김현섭 교수의 대담 ‘시인의 마음으로 공감하는 판사가 좋은 재판을 한다’를 실었다.억울한 사람의 눈물에 공감하며 보다 엄정하면서도 인간적인 재판을 기대하는 일반인에게 이 책은 판사의 냉철한 정신과 따뜻한 마음을, 더 나아가 법의 진심을 알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1-11-18

빛나는 생명의 무늬를 읽다

“우리는 모두 계절의 국경을 넘어가는 쓸쓸한 시간여행자/ 출입증 같은 빵 하나씩 들고 사람들은 조금씩 겨울이 되어가는 걸까”- 최귀희 시 ‘국화빵이 피는 계절’ 중포항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최귀희(70) 시인이 최근 시·동시집 ‘국화빵이 피는 계절’(아르코)을 펴냈다.이번 시집에는 71편의 시·동시와 김만수 시인의 해설이 실렸다. 시들은 존재의 근원을 향한 모색과 내밀한 성찰을 통해 올곧은 삶의 길이 어떠해야 하는지 탐색하고 궁구한다. 또한 오래 묵어서 고즈넉하고 향기로우며 편편마다 고졸한 정취가 배어있다.시들을 통해 시인의 넉넉한 인간미와 진솔한 심성, 신실한 신앙인으로서의 종교적 지향과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올곧은 시인 정신을 만나볼 수 있다.김만수 시인은 “최귀희 시인에게는 인생을 읽는 깊은 눈이 간직되어 있음을 본다. 일상에서 건져 올린 사소한 것들의 특별함이 시의 주류를 이루고 시대정신을 옹호하고 지키며 불구화(不具化) 되고, 부조리(不條理)가 만연한 현실에 맞춰 당당히 맞서는 강당진 목소리를 들려주고 있다”고 평했다.최귀희 시인은 경주 출신으로 2002년 ‘포항문학’을 통해 등단했으며 최근 ‘월간문학’에 동시 부문 신인상을 수상했다. 이번 시집은 2021 문화도시조성사업의 일환으로 발간됐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1-11-14

기후변화 위기 극복 위한 희망미래 30년

신간 ‘미래의 지구’(교유서가)는 기후 저널리스트이자 기상학자인 에릭 홀트하우스가 선보이는 기후위기에 관한 한 희망을 이야기하는 최초의 책이다. 그간의 기후변화 관련 책이 인류의 위기를 경고하는 데 집중했다면, 이 책은 2020년부터 2050년까지 10년 단위로 인류가 기후위기를 극복해나가는 희망의 30년 서사를 담고 있다. 기후변화의 주요 원인으로 꼽히는 탄소 배출과 해수면 상승, 더욱 강력해진 허리케인, 심각한 홍수, 극심한 가뭄과 산불 등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현장을 생생하게 보여주면서도, 종말론적인 시선에 그치지 않고 미래학자·기후학자·생물학자·경제학자·기후변화 운동가와 나눈 인터뷰를 통해 지구와 인간이 공존할 수 있는 ‘미래의 지구’를 보여준다. 저자는 “개개인의 행동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말이 기후와 관련된 가장 커다란 거짓말이며, 지속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모든 사람이 존중받는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것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런 맥락에서 에필로그의 ‘애도 훈련’, ‘상상 훈련’은 지위, 계급, 젠더와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할 수 있는 역할을 상상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 책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단순히 과학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닌, 우리가 다시 서로를 돌보는 법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가 힘을 합쳐 변화를 이뤄냈을 때 어떤 모습일지를 그려낸다.제1부에서는 인간이 초래한 ‘지속적 비상사태’인 지구온난화를 압축적으로 훌륭하게 묘사한다. 지구온난화는 더 이상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 돼버렸고, 앞으로 손쓸 수 없을 정도로 지구가 망가지기 전에 우리가 살아온 삶의 방식을 바꿔야만 한다고 설파한다.제2부에서는 희망의 시나리오가 펼쳐진다. 2020년대·2030년대·2040년대, 3개의 장으로 구성되는데, 각 장에서 미래를 간단히 소개하고 안정적인 기후 유지를 위해 과학적으로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수준의 획기적 변화가 어떤 모습이고 어떤 느낌인지 들려준다. ‘2020∼2030년: 극적인 성공’에서는 세계적으로 수백만 명의 사람이 거리로 나와 기후위기에 대응할 것을 촉구한다. 기후운동가들은 그린뉴딜정책을 출발점으로 한 강력한 변화를 산업계와 사회에 요구한다.정책 입안자들은 화석연료 보조금을 없애고 사회기반시설을 공공화한다. 홍수와 화재로 인한 기후 난민들에게 해외에서 영구적으로 살 수 있는 거주지가 마련된다.‘2030∼2040년: 획기적 관리’에서는 혁명적 변화의 단계를 끌어올려 ‘관리 경제(stewardship economy)’로의 전환을 이야기한다. 이는 생산자-소비자에서 공동창조 및 공유로의 사고 전환을 뜻하는데, 2030년대에 이르게 되면 후기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불평등, 인종차별, 빈곤이 더욱 악화함으로써 자본주의가 오직 소수의 이익을 위해 설계된 시스템임이 모든 이들에게 자명해지는 시기이기 때문에 새로운 경제체제로 전환된 것이다.‘2040∼2050년: 새로운 기술과 새로운 영성’에서는 탄소 배출이 2040년대에 이르러 최고점을 찍고 나서 비로소 세계적으로 탄소 중립 사회가 탄생한다. 더 나아가 ‘네거티브 배출 기술’을 이용해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빨아들이기까지 한다. 이는 지리공학 연구자 홀리 진 벅의 실제 아이디어를 차용한 것으로, 그는 현재 거의 파산 직전인 화석연료 기업들을 탄소를 없애는 공기업으로 전환해 대기 중 탄소를 흡수해 지질학적으로 안정된 고체와 액체로 변환시킬 것을 주장한다.에필로그에는 ‘애도 훈련’과 ‘상상 훈련’을 담고 있다. 현재에도 실현 가능한 행동과 가이드라인은 현실에서 우리 삶의 방식을 바꿀 수 있도록 ‘온난화 시대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전해준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1-11-11

악독하기 이를데 없는 식물들의 세계… 놀라운 사실들

미국의 원예 칼럼니스트인 에이미 스튜어트는 ‘사악한 식물들’(글항아리)에서 악독하기 이를 데 없는 식물들의 세계를 전한다. 원예가를 자처하는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각종 식물들, 심지어 아름다워서 정원수나 실내 인테리어로 인기가 많은 아름다운 원예 품종들까지 알고 보면 사람을 해칠 수도 있는 사악한 본성을 감추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밝힌다.저자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던 식물들을 포함해 독성이 강하다는 투구꽃에서부터 소크라테스를 죽인 독당근, 에이브러햄 링컨의 어머니를 죽음의 늪으로 이끈 풀, 심지어 마약의 원료인 코카나무와 담배, 대마 같은 식물들마저 ‘식물계 범죄 왕국’ 유명한 범죄자임을 여러 가지 역사적 일화와 세상에 이런 일이 다 있을까 하는 사연과 함께 흥미롭게 서술한다.이 책에서는 역사에 길이길이 남는 일화를 가진 독초들도 나온다. 이 독초들은 모두 한 번쯤 어디선가 들어봤을 정도로 유명한 독성 알칼로이드를 갖고 있기에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살인 행위에 사용됐다. 우리에게 아주까리라는 이름으로 더 익숙한 피마자는 ‘우산 살인사건’으로 유명한 BBC 기자 게오르기 마르코프 살인사건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다. 버스정류장에 서서 버스를 기다리던 그의 허벅지를 누군가가 우산 끝으로 푹 찌르고 달아났는데, 곧 그는 피를 토하며 죽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고 부검을 하니 그 상처에서 피마자의 유독성 추출물 리신이 나왔다. 처형 도구로 애용됐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유명한 식물도 있다. 바로 칼라바르콩이다. 이 콩은 일명 시련재판, 그러니까 중세에 죄를 지었는가 아닌가 그 판별에 사용됐는데, 당시에는 콩을 삼키면 바로 나타나는 몸 상태로 판결을 내렸다. 신경 교란 및 소화 기관의 통제력을 상실하게 하는 무서운 독이 있는 콩을 삼켜야 하니 죄가 있건 없건 그 결과는 참혹하기만 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1-11-11

5G·와이파이·스마트폰의 숨겨진 위험… 건강보호 위한 방법들

건강에 대한 오래된 상식을 뒤흔드는 연구로 각광받는 의학자인 조셉 머콜라 박사가 5G, 와이파이, 스마트폰의 숨겨진 위험성을 고발하고 그로부터 우리 몸을 보호하는 법을 알려 주는 ‘5G의 역습’(판미동)이 출간됐다. 저자는 초고속·초고용량 서비스 구현으로 문명의 이기를 안겨 주는 5G가 왜 우리 몸을 망가뜨린다고 호소하는 것일까? 이 책은 5G가 기존의 전자기장과는 전혀 다른 스펙트럼을 이용하는 새로운 창조물이라고 이야기한다. 이로 인해 우리는 기하급수적인 전자기장에 노출되는데, 주목할 만한 것은 5G가 건강에 미치는 장기적인 효과가 검증되지 않았다는 데 있다.저자는 전 세계에 발표된 500여 편 이상의 논문을 근거로 현대에 급속도로 증가하는 수면장애, 우울증부터 심장 질환, 알츠하이머병, 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질환들이 스마트폰과 어떤 연관 관계가 있는지 생물학적 기전을 밝히며 5G와 우리 몸의 상관관계를 이야기한다.기존 관점과는 달리 5G의 ‘역습’에 주목하는 이 책은 아마존 베스트셀러 건강 부문 1위를 차지하며 미국 전역의 화제를 몰고 왔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왜 미국 각주를 비롯한 독일, 스위스 등 선진국이 기술적 혜택을 마다하고 5G를 거부하고 저항하는지 파악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빠르게 발전하는 5G, 와이파이 상용화 기술 속에서 주체적으로 우리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1-11-11

세계 울트라 러너 심재덕의 삶과 달리기

이십 대 중반의 나이에 죽음을 거부하고 달리기 시작해 마라톤을 넘어 울트라 러닝까지 쉼 없이 달려온 세계 정상급 울트라 러너 심재덕(52) 씨가 최근 자신의 달리기 삶을 되돌아본 책 ‘나는 울트라 러너다’(여름언덕)를 펴냈다. 부제는 ‘한계는 내가 정한다’.울트라 러닝은 달리기의 정점을 상징하는 마라톤을 넘어 인간의 한계와 더불어 삶 자체를 보여준다고 일컬어지는 운동이다.그는 대우조선해양에서 34년째 일하고 있는 현장 노동자다. 지난 1992년 숨을 쉬기가 어려워서 병원을 찾았다가 난치성 호흡기 질환인 기관지확장증 진단을 받고 난 뒤 달리기를 시작하면서 삶이 바뀌었다.사내 체육대회 우승에서 시작된 그의 달리기는 42.195킬로미터의 마라톤 풀코스를 3시간 이내에 완주하는 서브 스리(sub-3)를 대한민국 최초로 100회 달성했다. 지금은 무려 300회를 넘어섰다. 그동안 그의 달리기는 트레일 러닝과 울트라 러닝으로 계속 뻗어 나갔다.심재덕은 미국의 MMT 100마일과 웨스턴 스테이츠 100, 일본의 하세쓰네 산악 마라톤 대회과 노베야마 고원 울트라 마라톤 대회, 프랑스의 UTMB, 이탈리아의 토르 데 지앙 등 세계적인 울트라 트레일 러닝 대회를 수없이 경험하며 우승과 분루를 번갈아 맛봤다.그의 실력과 명성은 울트라 트레일 러닝의 저변이 넓고 역사가 깊은 미국이나 일본 등 해외에서 더 빛난다. 싱가포르 국제마라톤 대회에서 카메라에 포착된, 결승선을 통과하는 환희에 찬 모습은 다음 해 같은 대회의 대표 홍보 이미지가 됐다. 일본 울트라 러너들의 성지라는 하세쓰네 산악 마라톤 대회에서는 마의 8시간 벽을 깨며 대회 최고 기록을 경신했고, 노베야마 고원 울트라 마라톤에서도 유력 일본인 우승 후보들을 제치고 당당히 우승을 차지했다.2006년 미국 MMT 100마일 대회에서 당시 세계 최고의 울트라 러너인 칼 멜처를 제치고 이룬 우승은 그의 이력 중에서도 백미다. 그를 인터뷰하기 위해 뉴욕 타임스와 BBC에서는 멀리 거제까지 직접 찾아오기도 했다.그러나 항상 승리와 영광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부상을 입은 발을 질질 끌며 겨우 결승점을 통과했던 2006년 미국의 웨스턴 스테이츠 100도 있고, ‘다시는 울트라 같은 건 안 한다’며 마지막 구간에서 완주도 포기한 채 살아서 돌아가기만을 바랐던 2011년 이탈리아의 토르 데 지앙도 있다. 아쉬움 가득한 실패담까지 솔직하게 털어놓으면서 왜 사람들이 세속적인 대가도 없이 엄청난 고통을 기꺼이 감수하며 울트라 러닝에 도전하는지를 설명한다. 그는 50대 중반을 바라보는 나이에 여전히 우승 후보에 이름을 올리며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마지막 장인 ‘트레일 러닝의 맥’에서는 트레일 러닝을 위해 필요한 마음가짐, 기본자세, 각종 장비, 영양 보충제 등을 별도로 정리해서 지침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심재덕의 트레일 러닝 레슨인 셈이다. 여기서 말하는 여러 가지 정보는 스포츠 이론서가 아니라 저자의 직접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기에 어떤 과학적 논리보다 설득력 있다. 100km의 거리, 누적 고도 8천m라는 무시무시한 숫자 앞에서도 기죽지 않는 챔피언만의 노하우까지도 전수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1-11-04

“누가 누구를 대변해야 하는가”… 한국 민주주의 진단

한국의 민주주의를 연구해온 문우진 아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의 신작 ‘누가 누구를 대표할 것인가’(후마니타스)가 출간됐다. 정치 비전공자를 위한 민주주의 설명서를 표방하고 있는 이 책에서 문 교수는 한국 민주주의의 현 주소를 진단한다.‘정치란 무엇인가’, ‘한국에서는 어떤 정치적 균열이 형성됐는가’, ‘지역 투표는 어떻게 나타났는가’, ‘한국 정당은 어떤 정당 모형과 가까운가’, ‘한국 민주주의가 극복해야 할 문제와 해법은 무엇인가’ 등 질문 40개를 제시하고 답변하는 식으로 집필했다.책은 다음과 같은 주장을 제시한다. 첫째, 대의 민주주의는 정치의 시장 거래화 및 대리인 문제라는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둘째, 한국의 협애한 정당 체제와 소선거구 중심의 선거제도는 한국 민주주의의 고질적인 문제들을 야기한다. 셋째, 시민사회 집단들에 의한 상향식 당내 후보 선발 방식과 부분 개방형 명부 비례대표 선거제도는 정치의 시장 거래화와 대리인 문제를 억제한다. 넷째, 이 책이 제안한 선거제도와 다수결 입법 규칙 그리고 대통령제가 조합된 정치체제는 다수의 크기에 따라 다수와 소수의 이익 균형을 효율적으로 조정하고 의원들의 정책 경쟁 동기를 촉진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1-11-04

프랑수아즈 사강의 마지막 작품… 미발표 유작 국내 첫 번역

프랑스 현대문학의 아이콘으로 꼽히는 프랑수아즈 사강(1935∼2004)의 미발표 유작 ‘마음의 심연’(민음사)이 국내 최초로 번역돼 나왔다.사강은 열아홉에 발표한 ‘슬픔이여 안녕’, 대표작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등 사랑을 앞에 둔 남녀 간의 미묘한 심리를 그려 낸 작품들로 프랑스 문단의 총아로 떠올랐다. 엄청난 양의 독서와 특유의 재기를 바탕으로 이십여 편의 소설, 에세이, 희곡, 시나리오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발표했고, 사랑에 대한 설득력 있는 심리 지도를 완성했다. 섬세한 문체, 내밀한 심리 묘사로 특유의 문학 세계를 구축해 반세기에 걸쳐 ‘사강 신드롬’을 유지해 왔다.사강의 어느 작품들보다 더 파격적이고 생생한 사랑을 그려 낸 ‘마음의 심연’은 열린 결말의 미완성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사강스러운’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마음의 심연’은 사강의 아들인 드니 웨스토프가 2004년 사강의 사망 이후 발견한 원고를 십여 년간 스스로 엮고 다듬어 지난 2019년 나온 작품이다. 출간 당시 파리 책방 앞에 길게 줄이 늘어설 정도로 큰 관심을 받았다고 한다.‘마음의 심연’은 프랑스 지방 재력가인 앙리 크레송의 저택 ‘라 크레소나드’를 배경으로 한다. 이 작품은 사강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생생하고 신랄한 풍자, 재기 넘치는 대화 속에서 피어나는 사랑의 갈등과 고뇌로 이뤄져 있다. 삼각관계와 나이차가 많은 연상 연하의 사랑을 다뤘다는 점에서‘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연상하게 한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1-11-04

토끼·고양이 등… 동물 친구들의 흥미진진 이야기

포항에서 30년 넘게 동화와 시, 수필을 쓰며 문학 활동을 꾸준히 해온 서가숙 작가가 최근 네 번째 동화집 ‘우리가 친구 맞니’(책먹는고래)를 펴냈다.동화집은 표제가 된 동화 ‘우리가 친구 맞니’를 비롯해 ‘못된 고양이’, ‘알 낳기 싫어’ 등 총 세 편의 작품으로 구성됐으며 모두 동물들의 이야기이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뛰어난 창의력으로 미래세대에게 꿈과 희망을 전해온 작가는 “고통과 외로움을 삶의 조건으로 받아들여야 하며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편은 사랑”이라고 이야기한다.표제작 ‘우리가 친구 맞니’는 사는 환경이 다르고, 먹이도 다르고, 생각도 다른 토끼와 바다거북, 독수리가 친구가 되는 과정을 다룬 이야기다. 서가숙 작가. 서 작가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동물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이야기를 펼쳐냄으로써 몰입과 흥미를 키워주고 싶었다”며 “세편의 이야기를 통해 아이들이 타인에 대해 배려하는 마음이 생겼으면 한다”고 밝혔다.서가숙 작가는 포항 형산문화제에서 시 장원과 수필 우수상을 받아 등단했으며 백산전국여성백일장에서 시 장원·우수상, 종합문예지 ‘문예감성’ 동화 부문 신인 문학상을 받았다. 동화 ‘내 마음을 공개합니다’, ‘도깨비들의 사람체험학습’, ‘학교를 끊을 거예요’를 비롯해 수필집 ‘행복해 지는 법’ ‘숨은 행복 찾기’, 역사장편 소설 ‘내 사랑 부용공주 1·2’, 성인동화 ‘복수의 화신 변학도’ 등을 썼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1-11-04

경북 문단 중진 진용숙 시인 두번째 시집 ‘물고기와 시’ 출간

‘물고기와 시’ 표지. “시는 파닥파닥 숨 쉬는 물고기공연히 퇴고한다고지느러미 자르지 마라바다로 갈 수 없는물고기는 죽은 시다악마의 뿔처럼 교활하지 않아도시와 물고기는바다를 먹고 사는 동업자이다”(진용숙 시 ‘물고기와 詩’전문)경북 문단의 중진 진용숙 시인이 최근 두 번째 시집 ‘물고기와 시’를 출간했다. 도서출판 책만드는집 간(刊).지난해 펴낸 첫 작품집‘늦은 나들이’에 이은 두 번째 작품집이다. 작품집은 1부 ‘물고기와 시’, 2부 ‘모래시계’, 3부 ‘첫눈’, 4부 ‘욕망에 대하여’, 5부 ‘생명의 서’로 나뉘어 75편의 시가 실려 있다. 작품집의 전체 주제는 이웃과 함께하는 자연물과의 상관관계.작품들은 생활 주변에서 일어나는 실존적 삶의 애증과 함께하는 사랑과 고통, 나아가 죽음에 이르기까지를 그냥 묵과하지 않고 성찰이란 정제된 통과의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향토성과 서정성을 저변에 깔고 있으면서도 인생의 관조가 느껴진다. 비교적 짧은 행으로 이뤄진 시들은 새로운 인간성 회복 구현을 염두에 두고 있다.“어디로 가느냐고 꼭 묻지는 마라지금은 바람도 가끔 길을 잃는다가을이 꼭 슬픈 것만도 아니잖아어느 날 길 잃은 바람이우리 가슴에 새 씨앗을 뿌려줄지잘 사느냐 어떠냐고도 묻지 마라꿈 없는 사람 어디에도 없다새들이 저녁 해지는 곳으로길을 내는 것도 슬퍼하지 마라 진용숙 시인 거긴 따뜻한 둥지가 기다리나니”(진용숙 시 ‘묻지 마라 적멸은 없다’ 전문)진 시인은 이번 시집의 출간 의도에 대해 “항간에 발표되는 자유시가 그 난해성으로 인해 서정의 원형을 이탈하고 있음이 안타까워 좀 더 쉽고 정제된 표현으로 독자에게 접근할 수 없을까를 고민했다”고 말한다.경주 출신으로 포항에 살고 있는 진용숙 시인은 1993년 문학세계를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해 (사)한국문인협회 경북지회장, 경북여성문화예술인연합회장, 포항여성예술인연합회장 등을 역임했다. 경상북도 문학상, 경주문협상, 호미문화예술상(문학), 포항시양성평등상, 선덕여왕 대상을 수상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1-11-02

“사회현상을 사물처럼, 선입견을 버려라”

오늘날 복잡하고 다양한 사회현상을 분석하기 위해 데이터와 통계에 기반한 과학적 접근은 보편화된 연구방식이다. 120여 년 전, 프랑스의 거장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1858~1917)은 일찍이 경험과학으로서의 사회학을 주장하며 그 일단의 방법론을 선구적으로 제시함으로써 지금 시대에도 깊은 통찰을 던져주고 있다. 흔히 뒤르켐은 마르크스, 베버와 함께 근대 사회학의 기초를 놓은 3대 학자로 꼽히는데, 그가 두 사람과 비교할 때 사회학자로서의 정체성이 가장 강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에밀 뒤르켐의 4대 주저 가운데 하나로, 바로 그의 사상이 집약된 개념인 ‘사회적 사실’(fait social)을 정의하고 논의한 책 ‘사회학적 방법의 규칙들’(이른비)이 최근 번역 출간됐다.특히 이번 책은 영역이나 중역본이 아닌 프랑스어 원전을 처음으로 한국말로 옮긴 의미가 남다른 출판물이다.“가장 중요한 첫 번째 규칙, 사회적 사실을 사물처럼 여기라”(79쪽). 뒤르켐은 이 선언적 명제로 대담하고 선명하고 논쟁적인 사회학 방법론을 제시했으며, 나머지 주저에도 이를 적용해 연구 틀로 삼았다. 즉, 분업이라는 사회적 사실을 연구한 것이 ‘사회분업론’이고, 자살이라는 사회적 사실을 연구한 것이 ‘자살론’이며, 종교라는 사회적 사실을 연구한 것이 ‘종교생활의 원초적 형태’다. 그만큼 ‘사회학적 방법의 규칙들’은 뒤르켐 사상을 이해하는 데 바탕이 되는 매우 중요한 이론적 저작이다.뒤르켐 당시까지 사회학자들이 사회현상을 설명하는 방식은 목적론적이고 심리학적 설명이었다. 사회학의 선배 격인 콩트는 진보라는 목적이 사회현상을 이끌어왔다고 했고, 스펜서는 사회의 형성이 개인의 본성을 실현하는 방향으로 나간다고 했다. 이러한 방식의 설명은 진보 또는 인간 본성의 실현과 같은,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형이상학적 명제 위에 서 있다는 것이다. 사회학적 현상의 본질적인 특성은 외부에서 개인의식에 압력을 행사하는 그 힘(즉 사회적 사실)이다.사회학적 현상은 개인들의 의식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사회학은 심리학의 파생 명제가 아니다. 인간 개개인이 배제돼도 사회는 남는다. 그러므로 사회 자체의 본질 안에서 사회생활에 대한 설명을 찾아야 한다.사회를 구성하는 요소가 인간 개개인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그러나 전체는 부분들의 총합과 다르다. 전체의 속성은 전체를 이루는 부분들의 속성과는 다르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이 결합이다. 개인이 결합돼 사회를 이룬다. 개인들의 결합 속에 사회의 고유한 특성이 들어 있다.뒤르켐은 일찍이 사회학의 고유방법론을 확립하는 데 기여했고, 이를 바탕으로 분업, 자살, 가족, 국가, 사회정의 등 당시 서구사회가 직면한 사회적 문제의 본질을 밝히는데 주력했다. 뒤르켐은 당대에 오귀스트 콩트, 막스 베버와 더불어 세계적인 사회학자의 반열에 올랐으며 그의 사회학 방법론에 따른 뒤르켐 학파의 선구자가 됐다.뒤르켐은 “가장 중요한 첫 번째 규칙”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서 사회현상을 사물처럼, 즉 자연현상처럼 여기고 관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상생활이 무엇인가를 말하기보다는 인간 행위의 통계치를 연구하고, 유행에 대해 모호한 논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의상을 분석하는 것과 같이 사회 현상을 사물처럼 대해야 한다는 것이다.그러려면 선입견을 철저히 버려야 하고, 사물들을 정확히 정의해야 한다고 뒤르켐은 주장한다. 아울러, 관찰하는 인간의 감각이 늘 주관성에 빠지는 일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1-10-28

세계 지성 7인이 말하는 ‘내일’… 미래인류 생존전략 제시

‘내일의 세계’(메디치출판사)는 재미 저널리스트 안희경 씨가 우리 문명의 좌표를 조망하기 위해 4년여에 걸쳐 ‘세계의 지성’이라 불리는 석학 7인을 만나 인터뷰한 내용을 엮은 책이다. ‘지금 여기, 인류 문명의 10년 생존 전략을 말하다’를 부제로 한 책에서 저자는 재러드 다이아몬드, 케이트 레이워스, 다니엘 코엔,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대니얼 마코비츠, 조한혜정, 사티시 쿠마르, 이 7인과 인터뷰를 통해 정치와 경제, 사회와 환경, 삶의 결을 이루는 다양한 문화 의제를 논의했고 인류 문명의 ‘지금 여기’를 진단하고 인류 생존을 위한 전략을 제시한다.또 위기의 시대를 사는 우리가 무엇을 중심으로 돌파해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올바른 방향도 제안한다.여기에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이자 실질적인 통치자인 달라이 라마의 전언과 함께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는 채로 파국으로 향하는 현대 문명의 위기와 문제점을 짚어내는 지성들의 통찰을 촘촘히 담아낸다.달라이 라마는 “우리는 역경과 시련이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발판이라는 것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현재 벌어진 일로 인해 두려움에 떨거나 좌절하기보다 오늘의 삶에 더 충실히 이 순간을 가치 있게, 착하게 살아나갑시다. 오늘날, 인간으로 태어난 기회를 헛되이 하지 않도록 의미 있게 행동합시다”라고 경고한다. 안 씨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7인의 지성들이 말하는 위기와 선택, 변화 속에 ‘내일의 세계’, 10년 후의 미래를 만들어갈 단서가 숨어 있다”며 “세계 지성들의 메시지를 통해 현 상황에 관한 깨달음을 얻고, 인류가 생존할 수 있는 방향으로 우리가 함께 나아가기를 바란다”고 희망했다. 안 씨는 1995∼2002년 BBS(불교방송) PD로 일하다가 결혼과 함께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크라멘토시에 이민했다. 서구에 부는 성찰적 기운과 대안 활동을 소개하는 글을 써왔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1-10-28

평범하고 소소한 우리의 삶… 일상 속 소중함 꺼내다

평범하고 소소한 것들의 소중함을 일깨우며 우리에게 삶의 의미를 다시금 곱씹게 하는 프랑스 작가 필리프 들레름의 에세이 ‘크루아상 사러 가는 아침’(문학과지성사)이 출간됐다. 책은 우리의 평범한 삶에 깃들어 있는 작지만 보편적인 기쁨들에 대한 찬사를 담고 있다.겨울 아침의 새벽 거리에서 먹는 갓 구운 크루아상, 맥주 첫 모금의 짜릿한 느낌, 바닷가에서 책 읽기, 땅거미 질 무렵 자전거 바퀴가 돌아가며 내는 부드러운 소리, 지하 저장고에서 익어가는 사과 냄새, 자동차 안에서 뉴스 듣기 등 저자 들레름은 우리 삶에서 가장 평범하고 소소한 서른네 개의 사물이나 습관, 순간들을 길어 올려 가만가만 살며시 그것들의 가치를 살핀다.유쾌하고도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삶에 대한 깊은 음미를 섬세하게 담아내고 있는 이 책은 인생을 살 만한 것으로 만드는 반짝이는 행복의 순간들은 작고 대수롭지 않은 사건들, 하찮고 보잘것없는 일상 속에 숨어 있음을 우리에게 새삼 깨우쳐준다.이 책은 1997년 프랑스에서 처음 출간된 이래 51주간 종합 베스트 1위에 올랐다. 20여 개국에서 번역 출간돼 누적 판매 부수가 200만 부를 넘었다고 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1-10-28

헨리 나우웬 서거 25주년 기념, 그의 지혜를 나누다

20세기 대표적 기독교 영성가 헨리 나우웬(1932∼1996) 서거 25주년을 기념하는 책 ‘삶이 묻고 나우웬이 답하다’(엘페이지)가 나왔다. ‘상처 받은 치유자’라는 별칭을 가진 나우웬은 인간이 받는 상처에 주목하고 이 상처를 통해 타자를 대면하고, 하나님의 뜻을 헤아린다. 자신이 남긴 지적 유산으로 기독교계의 출중한 교육자, 저술가, 영적인 안내자의 반열에 올랐다. 나우웬은 40여 권의 영적 삶을 다룬 책을 썼고, 강연 초청이 끊이지 않은 인기 높은 강사였으며, 편지로 전 세계 수천 명과 소통하며 그들의 멘토 역할을 했다.하지만 그의 글과 말만큼이나 그의 삶도 우리에게 명료한 메시지를 전했다. 강렬한 기쁨만이 아니라 치열한 괴로움의 몸부림이 함께 어우러진 삶이었다. 기쁨과 괴로움은 그의 인생 여정에서 가장 돋보이는 역설이었다.나우웬은 묵상과 기도를 통해 자신의 내면에서 들리는 고뇌와 기쁨의 상반된 목소리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자신의 영적인 발견과 통찰을 다른 사람들에게 아주 편안하고 설득력 있게 전달할 수 있었다. 그가 이 세상에 남긴 선물은 그리스도인의 영적인 삶에 대한 그의 통찰과 가르침이다. 그 가르침은 깊이 있고 독특하면서도 단순해서 누구나 이해하기 쉽다.‘삶이 묻고 나우웬이 답하다’는 그의 대표 저서에서 발췌한 메시지를 묶었다. 목회자인 저자들이 그의 지혜를 좀 더 많은 사람과 나누며 영적인 성장을 돕기 위해 이 책을 펴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1-10-28

포항문화원, ‘포항 지리지’ 발간 지역 문화·역사적 변천 과정 ‘한눈에’

‘포항지리지’. /포항문화원 제공흩어져 있던 포항 관련 기록들을 한 권의 책으로 살펴볼 수 있게 됐다. 포항문화원(원장 박승대)이 해마다 발간하는 포항의 역사와 문화를 담은 향토지 ‘일월문화’시리즈의 일환으로 올해는 ‘포항지리지’를 펴냈다.포항문화원 부설 포항문화연구소(소장 김삼일)는 문화원의 명실상부한 싱크탱크로서 잊혀져가는 문화재를 발굴하고 연구활동을 진행하며 포항의 고전과 문화연구서들을 꾸준히 발간하고 있다.그동안 출간된 책자들은 ‘죽장입암시가산책’, ‘영일유배문학산책’, ‘다산 장기유배문학산책’, ‘내연산과 보경사’, ‘벗님이 새집을 지으셨으니’, ‘포항의 3·1운동사‘, ‘선정비 시대의 속내’, ‘포항의 기인 권달삼 이야기’, ‘포항의 서원의 어제와 오늘’, ‘포항문화재’ 등이다.포항문화연구소 권용호 위원이 역주한 이번 ‘포항지리지’는 삼국사기지리지, 고려사지리지, 경상도지리지, 세종실록지리지, 경상도속찬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여지도서, 여도비지, 대동지지 등 총 9권의 역대지리지 중 포항에 관련된 내용을 정리해 포항 지역의 역사적 변천과정을 한 눈에 알 수 있게 했다.옛날 버전의 포항시사라고 할 수 있는 ‘포항지리지’에는 단순히 산과 하천 같은 지리적 내용만 나와 있는 것이 아니라 고을의 유래와 변천, 인구, 물산의 종류, 명승지, 지역을 대표하는 인물과 효자, 명승을 읊은 시문등 한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다양한 내용이 담겨있다.무엇보다 한문으로 된 역대지리지들을 모두 살펴보려면 작업이 만만치 않은데 이번에 흩어진 내용들을 한데 모아 역주해 한 눈에 쉽게 볼 수 있도록 정리를 한 것이 큰 성과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박승대 포항문화원장은 “지역의 인문학적 배경과 전통문화를 포괄하는 ‘포항지리지’ 발간을 통해 포항문화의 정체성 확립에 일조하고 후세대들에게 유익한 교재로 귀중히 활용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1-10-24

기후위기의 지구,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기후 비상’으로까지 치닫고 있는 기후위기에 대처하기 위해서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을 일깨우는 책이 나왔다. 기후과학자인 남성현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새 책 ‘2도가 오르기 전에’(애플북스)를 통해 기후위기를 이겨내기 위해선 먼저 기후에 대해 정확히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라는 말처럼 상황을 정확히, 그리고 냉정히 파악해야 위태로움을 이겨낼 수 있다는 얘기다.지구 곳곳에서 들려오는 기후변화로 인한 기후재난 소식이 심상치가 않다. 평소 겨울철에도 포근하던 미국 텍사스주에서는 올해 초 기록적인 한파와 폭설로 수십 명이 사망하고 대규모 정전 사태가 잇따르면서 난방과 식수 공급이 끊겨 수백만 명이 피해를 겪었다. 반면에 북극해에서는 얼음이 계속 녹아내려 북극점 이정표가 언제 사라질지 모를 위기에 놓여 있다. 기후변화는 외국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지난해 우리나라도 최장기간 동안 장마가 이어지며 홍수와 산사태 등의 피해를 겪은 적이 있다.기후변화로 시작된 경고는 기후위기를 넘어 이제는 기후 비상으로까지 넘어왔다. 과학자들은 지구온난화로 인류가 멸망할 시점이 수십 수백 년 후가 아니라 당장 우리 눈앞에 와있다고 말한다. 전 세계인 모두가 기후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지금, 우리는 기후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남 교수는 ‘2도가 오르기 전에’를 통해 기후위기를 이겨내기 위해선 먼저 기후에 대해 정확히 아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기후변화 이전의 지구가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알아야 기후변화의 징조도 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지구의 환경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그 안에서 구체적인 실천 방법을 모색할 수 있다.이 책에서는 기후의 개념부터 지구와 기후에 대해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질문들을 ‘하늘’, ‘땅’, ‘바다’ 그리고 ‘얼음’으로 나눠 과학적 자료와 함께 설명해준다. 각 부분별로 지구생태계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배우다 보면 결국 이 모든 것들이 모여서 톱니바퀴 굴러가듯 맞물려 지구를 구성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인간이 땅에서 만든 쓰레기가 바다로 흘러 들어가 바다 환경을 변화시키고, 환경이 변한 바다에선 해류의 흐름이 바뀌어 전 지구적 생태계의 흐름이 바뀌는 것을 보면 지구 환경에 인간이 미치고 있는 영향을 알 수 있다.5장 ‘기후위기의 대응과 노력’ 편에서는 이를 바탕으로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 현재 인류가 하고 있는 노력들과 우리가 할 수 있는 노력들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남 교수는 “기후위기는 결코 먼 훗날의 일이 아니다. 당장 10년 후, 우리는 한반도에서 사과나무도, 사과나무를 심을 땅조차도 찾아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지구는 우리가 살아가야 할 터전이다. 먼 미래에는 모르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는 지구를 떠날 수 없기에 우리는 지구를 아끼고 사랑하며 변화에 예의주시해야 한다”는 집필 이유를 밝힌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1-10-21

당신은 ‘어른’ 인가?… 어른의 조건은 무엇인가

사람은 나이를 먹으면 자연히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생물학적 성인과 인간으로서 어른은 별개의 존재다. 자연히 될 수 없다면, 어른이 되기 위해 사람은 무엇을 배워야 할까. ‘어른의 조건’(글항아리)은 실제 한 학기 동안 도쿄대에서 이뤄진 교양 수업의 기록이다.수업을 기획한 두 저자 일본 도쿄대 교양학부 명예교수를 역임한 이시이 요지로와 도쿄대학 부학장 후지가키 유코는 각각 과학자와 문학자로, 분야가 다른 만큼 가지고 있는 배경지식도 사고하는 방식도 다르다. 교수 두 명에 역시 각기 분야가 다른 조교 두 명 그리고 다양한 학과의 학생들이 “쉽게 답할 수 없는 질문”을 두고 논의하는 형태로 매 강의가 이뤄진다.이 특별한 한 권의 수업이 제공하는 것은 단련의 기회다. 자기 머리로 생각하고 의견을 내는 법, 타인의 관점을 통해 사고를 확장하는 법, 정답 없는 질문 속에서 자신만의 해답을 도출하는 법을 경험으로 알게 한다. 생각의 근육을 키우는 교양을 통해 사람은 ‘나’라는 한계를 넘어 어른이 된다.“저 사람 정말 어른스럽다.” 우리는 어떤 사람에게 이런 말을 할까? 흔히 ‘어른’이라고 하면 무모하게 일을 치지 않고 타인과의 관계가 원만한 사람, 주관이 있지만 고집은 없고 자기 언행에 책임을 지는 사람의 이미지를 떠올릴 것이다. 저명한 학자라 해도 평소 기분대로 행동하고 어딜 가든 분위기를 해친다면 외골수에 아이 같다는 평을 듣기 마련이며,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마음 넓고 온화한 사람이라도 매사에 스스로 판단할 줄 모른다면 믿음직스럽지 못할 따름이다. 때문에 학자이자 교육자로서 저자들은 말한다.“어른은 전문가인 동시에 교양인이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훈련이 필요하다. /윤희정기자

2021-10-21

獨 역사상 최초 여성 총리 메르켈, 그녀의 리더십 비결은?

신간 ‘메르켈 리더십: 합의에 이르는 힘’(모비딕북스)은 16년의 임기 끝에 다음달 퇴임을 앞둔 앙겔라 메르켈(67) 독일 총리의 리더십이 어떻게 세상과의 교감을 통해 발아하고 성장하고 더 단단해졌는지를 치열하게 추적한다. 메르켈은 독일과 위기에 처한 EU를 안정적으로 이끌며 존경받는 리더십을 구축했다. 재임기간 중 그리스 경제 위기와 우크라이나 분쟁, 시리아 난민 문제를 해결했다. 포브스는 2006년부터 2015년까지 메르켈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위’(2010년 제외)에 선정했다.정작 독일 국민들은 메르켈을 ‘무티(Mutti·엄마)’라고 부른다. 엄마처럼 아주 친숙한 지도자라는 얘기다. 독일 역사상 최초의 여성 총리에게 보내는 국민들의 신뢰는 그만큼 두텁다.헝가리 출신의 미국 저널리스트인 저자 케이티 마튼은 독일 주재 미국대사를 지낸 남편을 통해 메르켈 총리와 인연을 맺고 20년 동안 관계를 유지해왔다. 책은 그녀가 메르켈 총리를 직접 취재하고 주변 인물들을 인터뷰해 펴낸 다큐멘터리다.저자는 오랜 세월 메르켈의 본질에 다다르기 위해 백수십 명을 만났다. 헨리 키신저, 힐러리 클린턴, 조지프 스티글리츠, 요아힘 가우크, 로저 코언, 폴커 슐렌도르프 등 서구 정치계의 거물들과 관료, 학자들이 이 책에 풍성한 정보와 영감을 불어넣었다.저자는 메르켈 리더십의 가장 위대한 점은 ‘합의’를 향한 열망과 그 과정을 치밀하고 담대하게 직조하는 힘에 있다고 전한다. “그는 욕망하는 결과물을 얻으려고 애쓰는 과정에서 자존심을 거듭 제쳐뒀다. 협상은 참을성을 시험대에 올리는 고된 과정이다. (….) 관심과 칭찬은 메르켈이 바라는 보상 중 가장 하찮은 것이다. 그가 추구하는 단 하나의 목표는 결과물이다.”메르켈은 과학자 출신의 미덕(분석, 논리, 연역적 사고방식)을 정치에 이식했다. 합리적인 목표를 설정한 후 엄청난 자료를 통해 그 가능성을 분석하고, 판단이 서면 협상 대상자를 최선을 다해 설득하는 것이다. 남유럽 재정위기, EU 금융 위기, 브렉시트로 인한 유럽연합 위기, 난민 위기, 그리고 최근의 코로나 위기까지, 그는 ‘힘의 논리’를 배격하고 포기를 모르는 외교적 협상으로 파고를 넘어섰다. 무엇보다 돋보인 건 2015년 시리아 난민 100만 명을 끌어안은 것이다. 합의를 이끌어내는 메르켈의 힘이 포용의 차원으로 승화된 순간이다. 메르켈은 독일의 과거를 아파했다. 결코 이 과거를 반복할 수 없다는 그의 신념이 독일 국민을 움직였고 결국 세계를 끌어안은 것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1-10-21

생각도 거리두기가 필요하다?

2021년 아마존 최고의 책으로, BBC CNN USA Today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면서 세계적 열풍을 일으킨 ‘채터 당신 안의 훼방꾼’(원제 Chatter·김영사)이 번역 출간됐다. 이 책의 저자 이선 크로스 교수는 ‘마시멜로 실험’으로 유명한 성격 이론의 대부 월터 미셸의 연구를 이어받은 제자로, ‘벽에 붙은 파리 효과(Fly-on-the-wall-effect)’라는 심리기법을 창안한 심리학자이자 뇌과학자다. 그는 인간이 내면에서 나누는 대화에 주목하고, 우리가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이유는 무엇이며, 그런 대화를 어떻게 통제하고 이용하면 더 행복하고 건강하며 생산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지 ‘심리 실험과 뇌 메커니즘’을 통해 살펴본다. 여기에 흥미로운 사례를 접목시켜 부정적 생각과 감정에 휘말리지 않고 내 안의 목소리와 잘 지내는 방법을 펼쳐 낸다.내면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자신의 감정을 더 잘 이해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똑같이 내면에 초점을 맞추면서도 힘없이 무너지는 사람이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스트레스에 짓눌렸을 때 어떻게 하면 현명하게 판단할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말하는 데도 옳고 그른 방법이 있을까? 우리가 염려하는 사람들과 어떤 식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그들의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을 부추기지 않고 그들에 대한 우리 감정도 격해지지 않을까? 소셜 미디어에서 맞닥뜨리는 사람들의 무수한 ‘목소리’가 우리 마음속 목소리에 영향을 미칠까? 이런 의문을 엄밀하고 철저하게 연구한 끝에 놀라운 결과를 얻었고 답을 찾았다.저자는 21세기에 팽배한 문화적 주문인 ‘현재를 살아라’는 주문이 인간의 생물학적 특성에 역행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인간은 현재에 충실할 수 없는 존재다. 뇌가 그렇게 하도록 진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뇌의 작동 방식을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인간의 마음은 시시때때로 현재에서 빠져나와 마음속에 존재하는 내면의 세계에 빠져든다. 현재에서 벗어나면 우리는 혼자 자문자답하고 자기 자신에게 말하는 것을 귀담아듣는다.인간은 뇌의 ‘작업 기억’ 덕분에 내면의 대화를 지속하면서도 일상을 유지한다. 작업 기억이 언어적 신경 연결로를 계속 열어두기 때문에 우리는 내면의 대화를 지속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을 상대하며 생산적으로 기능할 수 있다. 또한, 마음속 언어적 사고의 흐름은 과거를 조각하고 미래를 상상하며, 자서전적 추론을 통해 의미 있는 이야기를 꾸며낸다.타인을 관찰할 때처럼 객관적으로 자신을 바라보지 못하는 인간 정신의 특성인 비대칭적 사고로 인해 내면의 목소리는 종종 못되고 집요한 수다쟁이 ‘채터’로 변한다. 한번 부정적 감정에 휩싸이면 내면의 목소리는 눈앞에 닥친 장애에만 정신을 집중하도록 제한하며 문제의 다른 대안을 생각할 겨를을 주지 않는다.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채터는 사회적 삶, 경력 심지어 신체 건강까지 파괴한다.그렇다면 어떻게 부정적인 ‘채터’를 통제하고 이를 생산적으로 이용할 수 있을까? 저자는 ‘거리두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객관적으로 한 걸음 물러나 자신의 문제를 규정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방법이다.‘채터’는 우리가 ‘몰입자’가 돼 고민거리를 가까이 끌고 와서 확대할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벽에 붙은 파리처럼 초연한 관찰자, 외부자가 돼 고민거리를 바라보라고 저자는 제안한다.아울러 고민거리를 생각할 때 주어를 ‘나’보다는 ‘자신의 이름’으로 삼으라고 말한다. 자신의 이름을 사용하는 동시에 이인칭, 삼인칭 대명사를 사용하면 자신에게 말할 때도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에 정서적 거리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이런 방법은 나에게만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라 인간에게 일어나는 보편적인 사건임을 깨닫는 데 도움이 된다고 저자는 설명한다.저자는 이 밖에도 SNS를 이용할 때도 거리 두기에 유념하고, 플라세보(위약) 효과를 볼 수 있는 걱정 인형과 같은 물건을 활용하라고 조언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1-10-14

가을엔 詩를… 라틴아메리카 문학 거장 바예호의 첫 시집

“사노라면 겪는 고통, 너무나 지독한…. 모르겠어!신의 증오 같은 고통. 그 앞에선 가슴 아린지난날이 밀물이 되어 온통영혼에 고이는 듯…. 모르겠어!”―‘검은 전령’, 세사르 바예호 ‘조금밖에 죽지 않은 오후’에서‘조금밖에 죽지 않은 오후’(민음사)는 20세기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거장 세사르 바예호의 대표 시집이다.시인이자 극작가, 소설가, 저널리스트였던 바예호는 칠레의 파블로 네루다, 멕시코의 옥타비오 파스와 더불어 20세기 라틴아메리카 문단을 대표한다.바예호의 시에는 상징이나 전원적 이미지로 감정을 표현하는 인디오 특유의 상징주의적 요소 외에도 표현주의,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등 다양한 요소들이 풍부하게 구현된다. 바예호 시의 고유성은 시인이 자신의 서정을 그려냄에 있어 라틴아메리카 시 세계의 언어를 새로이 창조했다는 점에 있다.바예호의 시들은 그의 파란만장한 생애와 닮았다. 바예호는 경제적 어려움으로 학업을 여러 차례 중단하고 생업에 종사해야 했으며, 20대 후반에는 정치적 소요에 휘말려 투옥됐고, 석방된 후에는 평생을 파리에서 궁핍하게 살았다. ‘조금밖에 죽지 않은 오후’는 바예호의 첫 시집으로 삶의 고통과 좌절, 실존의 그늘을 토로한다. 이렇듯 굴곡진 삶은 그의 시에도 반영돼 작품 전반에 우울하고 어두운 정서가 깔려 있다.평생 가난과 고통 속에 살았던 시인은 “사노라면 겪는 고통, 너무나 지독한…. 모르겠어!”라며 삶에 대한 좌절감과 염세주의적 태도를 보인다. 하지만 시인은 나르시시즘적인 허무주의에 빠지지 않는다. 자신의 고통에 비춰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애정 어린 시선을 보내며, 타인의 고단한 삶에 대한 책임감을 고백하기도 한다.시인의 사랑은 타인에 대한 연민과 공감을 넘어 신성(神性)에까지 미친다. 자신의 고통스러운 삶을 바라보는 신 역시 창조주로서 탄식하며 마음 아파할 것을 짐작해 시에 녹여냈다. 바예호는 사회의 부조리와 고통을 개인적 차원에서 ‘우리’의 차원까지 확장한 시인이었다.바예호의 시는 인간에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위로와 용기를 준다. 그래서 바예호의 시는 혁명가가 힘의 논리에만 휘둘리지 않고 휴머니스트로서 남아 있도록 잡아 준다. /윤희정기자

2021-10-14

플라톤부터 존 롤스까지, 철학자들의 정치적 사유 탐구

독일 출신의 저명한 정치학자인 오트프리트 회페는 ‘정치철학사’(길)에서 정치와 관련, 우리 시대를 ‘위기의 시대’라고 진단하면서 이를 해결할 방법으로서 ‘정치적인 것’의 귀환을 요구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정치적인 것’에 대한 중요한 정치철학자 20여 명을 소개하는데, 단순히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의 상황 및 문제의식과의 연관관계 속에서, 그리고 시대를 초월하는 특정한 보편성을 읽어내는 방식으로 기술하고 있다. 저자가 철학자들의 정치적 사유를 탐구하는 이유는 현실정치가 철학적 사유와 상관없이 진행되는 듯하지만, 사실 사회발전과 정치발전이 이들의 사유를 비판하거나 모방하거나 주석을 다는 방식으로, 말하자면 정치적 사유가 현실정치에 현실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판단에 근거한다. 저자는 정치를 단순히 경제의 상부구조나 권력의 문제라고 해명하는 철학자들에게서조차 정치가 인간의 공존을 위한, 즉 ‘보다 좋은 사회적·정치적 세계를 기획’하는 ‘비전’의 영역으로 자리하고 있음을 강조한다.책은 저자가 2015년 튀빙겐대에서 한 강의를 바탕으로 펴낸 단행본. 고대 그리스 철학자인 플라톤부터 ‘정의론’으로 유명한 존 롤스까지 서양 인물의 정치철학 사상을 20개 주제로 요약해 소개했다. /윤희정기자

2021-10-14

박태준 10주기… 되짚어보는 거인의 삶

“철강산업을 일으켜 국가건설의 초석이 되겠다. 그것이 내가 이 땅에 태어난 뜻이다.”“우리 세대는 다음 세대를 위해 순교자적으로 희생하는 세대다.”“교육이 일본에 앞서야 일본을 이길 수 있다.”고(故) 박태준(1927∼2011) 포스코 창업회장의 어록에 나오는 말이다. 그의 정신과 신념이 함축돼 있다.포항의 시민단체인 (사)포항지역사회연구소(대표 이재섭·이하 포사연)가 박태준 서거 10주기를 앞두고 추모도서 ‘박태준 생각’(아시아)을 펴냈다.‘박태준 생각’ 편찬위원들은 “박태준 선생이 남긴 공적의 탑은 생각과 말과 행동의 삼일치가 만든 위업이다. 그러나 공적보다 더 중요한 가치는 그것을 성취하게 만들었던 선생의 정신, 고뇌, 투쟁이다. 이 무형의 가치를 제대로 알아봐야 하는데, 그것을 어떤 실체로 세우려는 출간 취지에 그 의미가 담겨 있다”고 말했다.또한 포사연은 “지리적으로든 시대적으로든 가까운 거리에서 박태준 선생에 대한 정당한 칭송과 합당한 비판에 게으르지 않았던 우리가 이렇게 어지러운 세상에서 선생의 10주기를 기리는 일들에 나서는 것이 마땅한 도리이고 예의인데, 물론 ‘박태준 생각’이 전국적으로 널리 읽히게 되는 노력을 기울이겠지만, 지난 9월 14일부터 내년 1월 9일까지 열리는 포항시립미술관의 ‘신화를 담다―꺼지지 않는 불꽃’ 전시를 찾아오는 관람객들이 이 책을 기념으로 오래 간직할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뜻도 밝혔다.‘박태준 생각’은 3부로 짜였다. 1부 ‘사진과 행적으로 만나는 박태준의 생애와 정신’은 출생부터 서거까지 일대기 전체를 66개 소제목으로 나누고 관련 사진 103장과 함께 행적과 어록을 간추려 연대기적으로 재구성하면서 이대환 작가의 ‘박태준 평전’에서 해당 시기에 대한 비평적 관찰을 발췌해 곁들였다. 2부 ‘황혼기의 연설에서 박태준정신을 되새기다’에는 김호길 포스텍 총장 10주기 추모사, 한일국교정상화 40주년 국제학술대회 기조연설, 국립하노이대학 특별강연, 그리고 마지막 연설로 남은 ‘퇴직 직원들과 19년 만의 재회’ 인사말 등을 실었다. ‘박태준 생각’을 따라가면서 ‘박태준 생각’과 진지하게 교감할 수 있는 기회다.3부 ‘학자의 눈, 작가의 눈으로 박태준정신을 탐구하다’에서는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사회학)의 논문 ‘특수성으로서의 태준이즘 연구’와 이대환 작가의 에세이 ‘천하위공의 길, 박태준의 길’을 통해 박태준정신의 진수를 확인할 수 있다.한편, ‘박태준 생각’을 펴낸 아시아 측은 ‘2011년 12월 13일 향년 84세로 서거한 박태준은 41세(1968년)부터 65세(1992년)까지 사반세기 동안 언행일치와 솔선수범의 리더십으로 포스코를 세계 최고 철강기업으로 우뚝 세우는 가운데 국내 최고 수준의 14개 유·초·중·고교와 세계적 연구중심대학 포스텍을 설립·육성함으로써 생전에 자신의 말을 실체적 위업(偉業)으로 이룩했다. 그의 삶에서 필생의 사상적 두 축이 되었던 ‘제철보국’과 ‘교육보국’을 실현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윤희정기자

2021-10-11

혼돈의 시대, 민중은 왜 교회로 몰려갔나

“어찌 보면 인간은 각자 남에게 말할 수 없는 아픔과 고통이 있다는 점에서 평등한지도 모릅니다. 인간은 그렇게 아파하고 신음하고, 때로는 자신의 실패와 마주함으로써 성장합니다.”베스트셀러 ‘라틴어 수업’의 저자 한동일 작가의 신작 에세이 ‘믿는 인간에 대하여’(흐름출판)가 출간됐다. ‘믿는 인간에 대하여’는 한 명의 신앙인이자 오랜 시간 법학을 공부해온 저자가 유럽의 역사 속에서 드러난 인간의 믿음과 종교에 대해 탐구하고 얻어낸 결과물이며, 불완전한 한 인간으로서 성찰하고 얻은 깨달음을 담은 책이다.저자는 “인간의 유구한 역사에서 종교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부분이다. 법과 정치가 종교와 분리된 것은 불과 몇 세기에 지나지 않았고, 10세기 초반 유럽의 혼란한 시대적 상황에 불안에 떨던 민중은 교회로 몰려와 신의 보호와 자비를 청하기도 했다”고 말하며, 역사 속 종교와 인간이 걸어온 흔적은 오늘날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분석한다.저자는 특히 흑사병과 기근 등으로 고통의 시기를 겪었던 중세의 모습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으로 혼란을 겪고 있는 오늘날을 비춰보며, 과거 인류가 중세를 거쳐 어떻게 오늘날에 이르렀고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질문을 던지고 있는지 생각해보자고 제안한다. 흑사병으로 인해 유럽 인구의 3분의 1이 사라졌으나 그것을 계기로 의학이 어떻게 종교로부터 독립된 학문이 됐고, 역사 속에서 종교가 어떻게 정치적으로 이용돼왔으며 정치로부터 분리될 수 있었는지, 그것이 사회적으로 미친 영향은 무엇인지를 살핀다.또 그 과정에서 끊임없이 불거졌던 ‘종교의 자유’를 언급하며, 오늘날 팬데믹으로 인해 대면 종교행사나 각종 집회가 금지되는 중에 몇몇 종교 공동체가 내세운 ‘종교의 자유’는 과연 합당한가 하는 문제를 법학자의 시선으로 짚어낸다.이 책에는 저자가 그리스도교, 이슬람, 유대교의 성지가 모두 모여 있는 종교의 도시 예루살렘에서 한 달 동안 머물렀던 경험도 담겨 있다. 저자는 그곳에서 각자의 종교와 신앙을 지키기 위해 분리장벽을 세우고 전쟁도 불사하는 인간의 모습을 마주하며 신의 존재와 신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고민한다.베드로 회개성당으로 알려진 ‘닭 울음 성당’을 방문한 저자는 스승 예수를 배반한 베드로와 유다가 한 사람은 살고 한 사람은 자결을 택한 이유에 대해 ‘실패’를 대하는 태도의 차이를 생각하고, 구 시가지에 위치한 ‘십자가의 길’ 초입에 새겨진 “오, 길을 지나는 모든 사람이여, 나의 고통과 같은 아픔이 있다면 주의를 기울여 보십시오”라는 문구를 되새기며 인간으로서 ‘같은 아픔’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 고민한다. 그밖에도 모든 종교가 천국과 지옥을 말하지만, 그 둘을 가르는 차이는 인간 존재의 태도에 있지 않은가라는 물음이나, 인간의 고통은 신이 아닌 인간 사회가 만들어온 구조적인 문제에서 더 크게 비롯된다는 지적도 우리가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저자는 이 책의 서문에 “오늘의 아픔과 절망을 바꿀 수 있는 내일이 있다면 인간은 그 아픔과 고통이 아무리 크더라도 그것을 견디고 넘어설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라고 적고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1-10-07

예고 없이 찾아온 ‘늙음’ 앞에서 나를 돌아보다

‘내가 늙어버린 여름’(김영사)은 프랑스 출신의 미국 작가이자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교수를 역임한 이자벨 드 쿠르티브롱이 쓴 노화에 대한 쓸쓸한 에세이다.프랑스에서 태어나 이혼한 어머니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간 저자는 어릴 적 향유했던 거대 문학세계를 본격적으로 탐구하며 이중 문화 문학과 여성 문학, 페미니즘 학자로 미국 유수 대학의 교수로 활동했고 특히 MIT에서 그녀의 이름을 딴 상을 제정해 매년 문학에 재능이 있는 학생에게 상을 수여할 정도로 인정받는 학자였다.그러나 어느 여름 ‘늙음’이라는 거대 변화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면서 엄청난 신체적, 심리적 변화를 마주하게 된다.일생 고독이나 외로움, 추억을 회상하는 일 따위는 없는 꼿꼿한 삶을 살았던 그녀는 이 역사적 사건을 계기로 과거 딸로, 아내로, 운동가로, 잘나가던 학자로 살던 여러 가지 나를 만나 그때의 내가 앓았던 결핍마다 따뜻한 위로를 전한다.저자는 ‘늙음’을 ‘재난’에 비유하며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사회와 관계로부터 배제되는 일상에 분노와 서운함, 자괴감을 느낀다.하지만 이 위기마저도 인생의 유일한 친구인 문학에 기대어 ‘어떻게 나답게 늙음을 돌파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모두가 ‘어떻게 늙을 것인가’에 집중할 때 몹시 현실적인 태세로 ‘늙은이’가 돼버린 나를 거침없이 폭로하면서 시종일관 시적이고 우아한 태도를 잃지 않는다.남부러울 것 없는 성공적인 삶을 살았던 한 여성이 통제할 수 없는 변화를 맞닥뜨리고 어떻게 변화하고, 어떤 존재로 자신을 정의하게 되는지 스물두 편의 거침없는 자기 성찰을 통해 엿볼 수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1-10-07

감정, 관계, 집을 잘 파는 능력까지… 체온조절에 달렸다?

프랑스 그르노블알프대학교 사회심리학과 교수인 사회심리학자 한스 이저맨은 ‘따뜻한 인간의 탄생’(머스트리드북)에서 인간은 체온을 따뜻하게 유지하기 위해 오랫동안 서로에게 의존해왔으며, 이런 사회적 체온 조절 본능은 사회와 문화를 형성하고 지탱하는 버팀목이 됐다는 해석을 내놓는다. 그는 진화론적 관점에서 체온 조절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다각도로 탐색해 감정, 관계, 건강, 언어, 심지어 집을 잘 파는 능력까지 얼마나 많은 것이 주변 온도에 또 체온에 따라 달라지는지 보여준다. 거의 모든 것이 디지털로 연결돼 물리적 접촉이 사라져가는 시대에 인간이라는 종의 본성에 대한 긍정적이고 놀라운 메시지를 던진다.따뜻한 사람은 너그럽고 사교성이 뛰어나며 성품이 훌륭한 사람으로 비치고, 차가운 사람은 인색하고 무정하며 비열한 사람으로 간주한다. 심지어 차가운 커피보다는 따뜻한 커피를 들고 있는 사람에게 인간은 한층 더 친근감을 느낀다고 한다.이렇게 따뜻함에 인간이 집착하는 이유는 다른 사람과 접촉해 온기를 나누며 체온을 조절하는 사회적 체온 조절이 인간의 생존과 번영에 꼭 필요한 조건이기 때문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1-1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