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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부재와 소멸을 생의 일부로… 미완을 긍정하며…

“상처 많은 삶이라도애써 별일 아닌 듯 상처들을 살다 가게 했다.이젠 내보일 만한 상처 하나 흠집 하나 남아 있지 않다고?두 손으로 무릎을 탁 치게.”황동규 시 `무릎` 부분원로 시인 황동규(78) 시인의 열여섯번째 시집`연옥의 봄`(문학과지성사)이 출간됐다.시인은 1958년 `현대문학`추천으로 등단한 이래 지난 58년간 존재와 예술, 세계를 향해 질문하는 절실하고 독한 시 창작 여정을 계속해왔다. 미당문학상·대산문학상·호암상 등 국내 굴지의 문학상을 수상한 이력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최초의 현대적인 사랑 노래”로 꼽히는 `즐거운 편지``조그만 사랑 노래` 등의 시로 알려진 대표적 서정시인이다.이번 시집에서는 `연옥의 봄`연작 네 편을 포함한 총 77편의 시가 묶였다. 직전 시집 `사는 기쁨`에서 꺼져가는 삶도 생명의 진행 과정에 있음을, 살아 있는 한 생명이 다 하는 날까지 “아픔의 환한 맛”을 달게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삶의 숭고를 표현했다면, 이번 시집에서는 일상적인 부재와 소멸의 `사소함`을 생의 일부로 수용하고, 삶과 죽음을 아우르는 `기다림의 자세에 대한 생각`을 심화해간다. 미완을 스스럼없이 긍정하며, 시 안에 살아 숨 쉬는 인간과 삶의 미묘한 섬광을 담아내고자 꾸준히 들여다보고 사유해나가는 황동규 시인의 열정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잔눈 맞고 밟으며 왔다.어느 결에 눈이 그치고달도 별도 없는 바닷가파도도 물소리도 없다.먼 데서 울던 밤새 소리도 없다.어둠 속에서 혼자 불빛 비추고 있는 등대나무 몇만 사는 조그만 섬도 길 잃은 배도 없는수평선마저 없는 바다를 천천히 훑고 있다.더 없는 것은 없냐? 반복해 훑고 있다.가만, 마음에 모여 있던 생각들 다 어디 갔지,자취 하나 남기지 않고?순간 가슴 한끝이 짜릿해진다.이 짜릿함 마음의 어느 함에 넣을까?”황동규 시 `바가텔(Bagatelle)`전문눈이 그친 밤 바닷가, 달도 별도, 물소리도 새소리도 없는 이곳은 “없는 것”들의 세상이다. 수평선마저 없는 바다 멀리 어둠 속에서 혼자 빛나고 있는 등대만 오롯하다. “더 없는 것은 없냐?”는 시인의 물음은 현재의 `나`의 실존이 “없는 것들”(부재)에 의해 지탱되는 역설을 피력하며, 문득 심중의 생각으로 눈을 돌리게 한다. “마음에 모여 있던 생각들”이 사라졌음을 깨닫는 순간의 “짜릿함”, 이 `텅 빈 감각의 카타르시스`는 존재를 유지하고 운동하게 하는 부재라는 근본 조건에 대한 이해를 관통한다. 여기서, 이 시의 제목 `바가텔 (bagatelle)`이 `하찮은 것, 사소한 일`을 의미한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이번 시집의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김수이는 이 `사소함`의 기표를 이렇게 분석한다.▲ 황동규시인“황동규는 없음과 사라짐 앞에서 안타까움과 슬픔 등의 감정적 반응에 충실하지도, 의미 부여의 가공 작업에 매진하지도 않는다.한 인간으로서 피할 수 없는 감정과 물음들을 보존하면서도, 없음과 사라짐 자체를 향유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에 몰두한다. 그가 부재와 소멸을 존재가 수시로 겪는 바가텔로 명명한 것은 그것이 정말 사소해서가 아니라, 사소함의 빈도로 부재와 소멸을 살아내야 하는 것이 유한한 존재의 필연적이며 불가역적인 삶의 원리이기 때문이다.”(해설 `연옥의 봄에 눈이 내린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6-12-02

만연하므로 느끼지 못한 소외·공포

제한적이지만 열광적인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는 로베르트 발저(1878~1956)는 기이한 노벨레의 작가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와 초현실적 사실주의 작가 프란츠 카프카의 중간쯤에 위치하는 신비스러운 존재다. 일찍이 그는 헤르만 헤세, 쿠르트 투홀스키, 로베르트 무질, 프란츠 카프카, 발터 벤야민 등으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당대의 대중에게는 그리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었다. 오늘날에는 어느 누구보다도 선구적인, 20세기 초반의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인정받고 있다.20세기 문학의 새로운 영토를 개척한 수수께끼 같은 작가, 로베르트 발저의 작품집 `산책: 로베르트 발저 작품집`(민음사)이 출간됐다.수전 손택의 말처럼 “카프카가 보여 준 문학에 먼저 가닿았던” 로베르트 발저는 찬란한 문명과 무한한 진보가 약속하는 미래의 환상에 가려 미처 보이지 않았던 `소수자`, `소외당한 개인`, `도구처럼 소모되는 인간 존재`의 모습을 문학 속에 펼쳐 보였다. 게다가 그는 전통적인 서사 구조를 거부하면서 완벽히`새로운 문학의 영토`를 열어젖혔고, 단어를 선택하거나 시제를 사용하는 데에 있어서도 상식을 파괴했다.`산책: 로베르트 발저 작품집`에는 발저의 산문 작품 중에서도 가장 널리 읽히며 나날이 더욱 중요해지는 `산책`을 필두로 작가 본인의 예술관을 결정적으로 보여 주는 `툰의 클라이스트`,`시인`, `작가`와 대표작 `벤야멘타 하인 학교`의 모티프와 주제 의식을 뚜렷하게 살펴볼 수 있는 `어느 학생의 일기`, `그것이면 된다` 등 11편의 다채로운 작품들을 두루 만나 볼 수 있다. 특히 표제작 `산책`은 로베르트 발저의 뛰어난 문학적 성취를 결정적으로 보여 주는 매우 귀중한 작품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6-12-02

방황하는 이 시대 청춘들에게 내미는 이정표

연합뉴스와 수림문화재단(이사장 하정웅)이 신진 작가 발굴을 위해 공동 제정한 제4회 수림문학상 수상작인 김혜나(34) 장편소설 `나의 골드스타 전화기`(광화문글방)가 출간됐다.문학은 시대와 사회상을 그대로 반영하는 거울이기에 청춘의 초상은 최근 출간되는 한국 소설의 단골 메뉴 중 하나다. 주로 젊은 작가의 단편소설을 묶은 소설집에서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장편소설로 이 시대 청춘의 고민과 내면을 깊이 파고든 작품은 찾아보기 어려웠는데,`나의 골드스타 전화기`는 그런 점에서 수작으로 평가되면서 문단의 주목을 받고 있다.`나의 골드스타 전화기`는 김혜나 작가가 2010년 민음사의 신인작가 공모전 `오늘의 작가상`에 당선돼 등단한 후 5년 이상 다져온 필력을 자신의 20대 시절 분투기에 맞춰 과감하고 도발적인 문체로 완성한 작품이다.`나의 골드스타 전화기`는 명문대 대학원에서 연구 보조 아르바이트를 하는 스물다섯 살 작가 지망생 혜정의 이야기다. 질풍노도의 10대 시절을 거쳐 뒤늦게 대학에 진학해 문학을 공부하며 소설가의 꿈을 키워가는 화자의 성장기에 작가의 자전적 경험을 녹여냈다.`나의 골드스타 전화기`의 주인공 혜정은 지방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한 뒤 소설가가 되겠다는 각오로 취업은 하지 않고, 패스트푸드점, 식당, 주점, 사무보조, 경리 등 온갖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꿈을 향해 살아간다. 그러던 중 온라인 소설 창작 동호회에서 만난 공대 교수를 통해 대학원 연구실에 업무 보조 일을 하게 되지만 전화를 돌려 학회 참석 여부를 일일이 확인하고 행사를 준비하는 일은 막상 해보니 만만찮았다. 게다가 같은 연구실 대학원생에게 빌려준 소설책이 논문집 사이에서 아무렇게나 나뒹구는 모습은 충격으로 다가온다. 집안 형편 때문에 학비가 안 드는 카이스트를 나와 명문대에 자리를 잡은 교수가 이제라도 즐기면서 살아야겠다고 한탄하는 모습은 오히려 불쌍하고 초라해 보인다. 아르바이트 일이 끝나자 자신이 소설을 쓰며 이런 삶을 계속 이어갈 수 있을 지 회의에 빠진다.젊은 작가 지망생의 답답한 현실과 불투명한 미래가 소설의 큰 주제다.소설은 혜정을 통해 냉정하고 치열한 삶에 지친 외로운 청춘을 위로하고, 고민과 갈등 속에서 성장해 가는 과정을 공감할 수 있도록 세심한 리얼리티로 과거와 현재를 그리고 있다.또 현실 그대로를 바라보면서 쉽게 들뜨거나 절망하지 않고 남들과 비교해 쓸데없는 우월감이나 열등감에 빠지지 않으며 자신의 길을 가는 주인공의 모습은 젊은 독자에게는 든든한 위로를, 기성세대에게는 진지한 성찰의 여지를 준다. 특히 혜정의 모습은 시간이 지나도 여전치 현재진행형인 우리 시대 청춘들의 고민과 맞닿아 있다.▲ 김혜나 작가작가는 무한 경쟁을 해야 하는 냉혹한 현실과 마주한 젊은 세대의 내면을 짜임새 있게 들춰낸다.저자는 좋은 스펙을 가지는 것 외에 다른 길이 없을 것이라고 애써 외면하는 우리 시대의 청춘들에게 `또 다른 길`로 가는 이정표를 제시한다.김혜나 작가는 “저와 함께 이 땅에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청년이 눈에는 보이지 않는 자기 안의 이야기를 찾아가기 바라는 마음으로 쓰고 또 썼다”며 “자신이 원하는 것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찾아가는 이 소설의 주인공처럼 독자들도 소설을 읽으며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6-11-25

여자이기 때문에 받아왔던 부당함대한민국은 과연 진보하고 있는가

엄마를 뜻하는 `맘(Mom)`과 벌레를 뜻하는 `충(蟲)`의 합성어인 `맘충`은 제 아이만 싸고도는 일부 몰상식한 엄마를 가리키는 용어다. 그러나 `맘충`이란 호칭은 육아하는 엄마 대부분에게 무차별적으로 사용되며 많은 여성들에게 공포심을 주고 상처를 안겼다. 뿐만 아니라 이 표현은 육아가 마치 여성의 일인 것처럼 인식되게 함으로써 성차별적 시선을 고착화하는 데도 일조해 논란의 대상이 됐다. 조남주 장편소설 `82년생 김지영`은 2014년 말 촉발된 `맘충이` 사건을 목격한 작가가 여성, 특히 육아하는 여성에 대한 사회의 폭력적인 시선에 충격 받아 쓰기 시작한 소설이다. 소설을 쓸 당시 작가는 유치원 다니는 자녀를 둔 전업주부였다. 온라인상에서 사실 관계도 확인되지 않은 상황만 놓고 엄마들을 비하하는 태도에 문제의식을 느낀 작가는 지금 한국을 살아가는 여성들의 삶이 과거에서 얼마나 더 진보했는지, 혹은 그렇지 않은지 질문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기로 했다.슬하에 딸을 두고 있는 서른네 살 김지영씨가 어느 날 갑자기 이상 증세를 보인다. 시댁 식구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친정 엄마로 빙의해 속말을 뱉어 내는 통에 시댁 식구들을 아연실색하게 만드는가 하면 남편의 결혼 전 애인으로 빙의해 그를 식겁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남편이 김지영씨의 정신 상담을 주선하고, 지영씨는 정기적으로 의사를 찾아가 자신의 삶을 이야기한다.소설은 김지영씨의 이야기를 들은 담당 의사가 그녀의 인생을 재구성해 기록한 리포트 형식이다. 리포트에 기록된 김지영씨의 기억은 `여성`이라는 젠더적 기준으로 선별된 에피소드로 구성된다. 발화의 기회가 주어졌을 때 그녀가 선택한 이야기들이 바로 일생에 거쳐 `여자이기 때문에 받아 왔던 부당한 일들`이기 때문이다.이러한 개인의 고백은 1999년 남녀차별을 금지하는 법안이 제정되고 이후 여성부가 출범함으로써 성평등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된 이후, 즉 제도적 차별이 사라진 시대에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존재하는 내면화된 성차별적 요소가 작동하는 방식을 보여 준다. 지나온 삶을 거슬러 올라가며 미처 못다 한 말을 찾는 이 과정은 지영씨를 알 수 없는 증상으로부터 회복시켜 줄 수 있을까?상담은 자기 고백 형식으로 이뤄진다. 이 소설의 백미도 김지영씨의 자기 고백을 중심으로 드러나는 세밀한 심리 묘사다. `그때 그 상황`에서는 차마 말하지 못했던 것들을 차분히 쏟아 내는 그녀의 말들은 `김지영`을 이 시대 여성의 대변자로 삼기에 충분할 정도로 자세하고 보편적이다. 더욱이 김지영의 이름은 이 시대 젊은 여성들의 삶을 보편적으로 그리기 위한 작가의 전략적 선택이기도 하다. 실제로 1982년에 태어난 여아 중 가장 많이 등록된 이름이 `지영`이기 때문이다. 김지영이라는 개인의 고백을 30대 여성, 나아가 이 시대 여성들의 고백으로 볼 수 있는 이유다.조남주 작가는 2011년 지적 장애가 있는 한 소년의 재능이 발견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통해 삶의 부조리를 현실적이면서도 따뜻하게 그려낸 작품 `귀를 귀울이면`으로 `문학동네소설상`을 받으며 데뷔했다. 신작 `82년생 김지영`에서 30대를 살고 있는 한국 여성들의 보편적인 일상을 완벽하게 재현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6-11-25

현대인의 딜레마는 이성과 믿음의 혼동으로부터…

인간의 의식 수준을 계량화한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책으로 펴내 화제를 모았던 미국의 과학자이자 정신의학자인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미국 정신과 학회의 평생회원이었던 그는 1973년 노벨상 수상자 라이너스 폴링과 함께 펴낸 `분자교정 정신의학`은 이후 수많은 정신과학 연구자들에게 자극을 주는 기념비적 저서가 됐다. 신체운동학 이론을 바탕으로 한 의식 지도의 탄생 과정과 그 의의를 담고 있는 저서 `의식 혁명`을 시작으로 `나의 눈`, `호모 스피리투스`, `진실 대 거짓`, `내 안의 참나를 만나다`, `의식 수준을 넘어서` 등의 저서를 연이어 출간하며 세계적인 영적 스승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2012년 9월 19일 호킨스 박사는 행복과 사랑, 환희, 성공, 건강 나아가 궁극적으로는 깨달음에 이르는 여정이 좀 더 수월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놓아 버림`을 마지막으로 애리조나 주 세도나에 있는 자택에서 눈을 감았다.데이비드 호킨스 박사가 현대 사회의 복잡다단한 지형을 의식 지도로 한눈에 그려내며 올바른 의식 성장의 구체적인 길을 제시하는 책 `현대인의 의식 지도`(판미동)가 출간됐다.`현대인의 의식 지도`는 `내 안의 참나를 만나다`를 시작으로 `의식 혁명`, `놓아 버림`등 국내에 소개돼 온 호킨스 박사의 `의식 연구 시리즈(총 9권)`의 대미를 장식하는 책이다. 특히 이 책에서는 오늘날의 첨예한 정치적·과학적·종교적 쟁점들을 인간의 의식 수준과 마찬가지로 1부터 1천까지 수치화 해 전체적인 담론 및 문화 지형도를 명쾌하게 보여준다.저자는 오늘날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삶이 과거 어느 때보다 더 혼란스러울 수 있다고 전제한다. 과학기술은 나날이 더 많은 정보와 편리한 일상을 제공했지만, 인간의 존재론적 문제들은 여전히 그대로 남아 오히려 더 복잡해졌다는 것이다. 그 근본적인 이유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진실과 거짓을 가르는 기준을 알지 못하고 사실과 의견, 실재와 환상, 본질과 외관을 구분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 여기에 과학을 중심으로 교육받은 현대인의 딜레마로서 이성과 믿음이라는 두 층위의 진실을 혼동하는 양상이 덧붙여진다.저자는 이를 진단하면서 무신론자와 신자, 이슬람 대 기독교 등 소위 `문명의 충돌`은 서로 다른 의식 수준의 차이에서 야기된다고 말한다. 이 책은 테러리즘, 연쇄살인, 악에 대한 신격화, 거짓된 정치적 프로파간다를 비롯해 전 세계의 독재, 내전 등 쟁쟁한 문제들을 폭넓게 다루며 역사적·문화적 차이를 가진 다양한 담론과 사회 현상들을 새롭게 바라보도록 이끈다.오늘날 과학과 믿음의 문제는 이제 더 이상 법적인 문제로 불거지지 않지만, 여전히 시원하게 풀리지 않는 매듭으로 남아 있다. 저자는 이러한 `종교로부터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를 둘러싸고 이성과 믿음을 통합하지 못하는 문제를 지적하면서, 이것이 현대인들을 회의주의나 상대주의에 빠지게 하거나 학문·정치·종교적인 사회 문제들로까지 비화된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이 책은 신앙 안에서의 믿음과 세속적 비신앙에 대한 믿음의 문제가 `갈등`이 아니라는 점을 알려주기 위해 쓰였다. 과학과 종교, 영성은 애초에 대립하지 않으며, 맥락을 확장시키면 저절로 해소되는 문제라는 것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6-11-25

정지용 문학 섬세한 아름다움 만끽

“넓은 벌 동쪽 끝으로옛 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얼룩백이 황소가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중략)”- 정지용 시`향수`부분`현대시의 아버지`라 불리는 정지용(1902~1950) 시인의 `향수`는 많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시다. 교과서에 수록된 것은 물론 노래로도 만들어 굳이 외우려 하지 않아도 싯구를 읊을 수 있는 그런 시다.정지용은 현대시의 가장 기념비적인 서정 시인이며, 청록파 시인들을 비롯한 수많은 시인을 발굴해낸 문인이다. 그의 시는 섬세한 언어 감각과 감정의 절제를 통한 생동감 있는 이미지의 창출로 한국 현대시의 기원으로 평가받고 있다.정지용의 작품들을 한데 모은 전집 `정지용 전집`(민음사)가 새로 완간됐다.시, 산문, 미수록 작품 총 3권으로 구성된 이번 전집은 국문학자 권영민 교수가 과거 정본의 오류를 바로잡고, 이후 발굴된 작품을 추가해 정지용의 문학 세계를 총망라했다.정지용은 생전 `정지용 시집`, `백록담`, `지용시선` 등 모두 세 권의 시집과 `문학 독본`, `산문` 등 두 권의 산문집을 펴냈는데, 이들 수록작을 기본으로 신문·잡지에 발표한 원문을 찾아 함께 수록했다.`정지용 전집 1 시`의 경우 각 작품의 원문을 현대어로 표기하고, 발표된 모든 원문을 정밀히 대조, 풍부한 주석을 붙여 나란히 배열해 독자가 정지용 시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면서도 원문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왔다.`정지용 전집 2 산문`에는 정지용의 문단적 위상을 가늠할 수 있는 문학사적으로 중요한 글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정지용 전집 3 미수록 작품`에는 정지용이 자신의 시집이나 산문집에 수록하지 않은 작품들과 최근까지 새로 발굴된 작품을 총망라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6-11-18

다문화 엄마 36인이 말하는 한국인의 삶과 행복

개인마다 삶의 모습은 각기 다르겠지만,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인생의 목표는 `행복한 삶`일 것이다. 행복은 개인적 측면들, 요컨대 가치관이나`마음 비우기`같은 수양에서 비롯되기도 하지만 개인이 살아가고 있는 시대의 사회적 환경이 행복에 미치는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어쩌면 사회적 존재인 인간에게는 사회적 영향이 더 클지도 모른다.이러한 맥락에서 포스텍 박태준미래전략연구소는 올해 실사구시적인 미래전략연구 주제의 하나로서 `더 행복한 한국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가장 중요한 과제가 무엇인가`를 선정했다.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환경에 초점을 맞추고, 조금 더 나은 사회적 환경을 건설하기 위한 방안에 대해 모색하기 위해서다. 구체적으로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이`불행하다`고 느끼게 만드는 다양한 정치·사회·경제적 문제들을 직시하고 고찰하고자 했다.박태준미래전략연구소(소장 김병현)가 `미래전략연구` 시리즈로 기획한 네 번째 단행본 `대한민국 행복지도`(아시아)는 러시아, 인도, 네덜란드, 베트남, 중국, 미국, 일본 등 한국에 살고 있는 21개국 외국인·다문화 엄마 36명이 경험을 통해 한국인의 삶을 진단했다.유학생, 회사원, 강사, 방송인, 기자, 교수, 사장, 연구원, 작가, 칼럼니스트, 번역가, 통역가, 이주공동체 대표, 다문화활동가, 관광해설사 등 다양한 직업군에 있는 이들의 목소리에는 다정한 질책과 실용적인 제안, 따끔한 충고가 고루 담겨 있다.`대한민국 행복지도`는 제1부 `어떻게 쉴까요?`, 제2부 `무엇을 내려놓나요?`, 제3부 `다문화 엄마들이 말해요`등 총 3부로 구성됐다.제1부는 정치, 경제, 문화, 사회의 다방면에 걸쳐 행복과 쉼에 대한 다양한 목소리를 담았다. 케냐, 아프가니스탄, 러시아, 에스토니아, 우즈베키스탄, 루마니아, 스페인, 인도, 네덜란드, 베트남, 중국, 부탄에서 온 이들의 목소리다. 유학생, 회사원, 강사, 방송인, 기자 등 다양한 직업군 중 유학생의 비중이 가장 높았다. 한국으로 공부를 하러 온 이들에게서 `행복한 한국사회`의 이면을 듣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제2부는 행복한 사회가 되기 위해 바꾸고 내려놓아야 할 것들을 이야기한다. 미국,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북한, 독일, 우즈베키스탄, 중국, 일본에서 온 이들의 이야기이다. 교수, 사장, 기자, 연구원, 작가, 칼럼니스트, 번역가, 강사, 이주공동체 대표 등 다양한 직업군을 가진 가운데 교수의 비중이 가장 높았다. 시대를 이끄는 지식인들의 격조 높은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다.제3부는 대한민국 행복에 대한 다문화 엄마들의 생각을 꺼내 놓았다. 네팔, 중국, 베트남, 필리핀, 몽골에서 온`엄마`들의 생각이다. 협동조합 임원, 강사, 통역사, 번역가, 이주공동체 대표, 다문화활동가, 기자, 관광해설사 등이 주를 이룬 가운데 통번역 프리랜서가 가장 많았다. 1, 2부와는 조금 결을 달리하는, 직접 겪은 생생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김병현 박태준미래전략연구소장은 “`대한민국 행복지도`는 한국을 사랑하는 외국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어 `행복한 한국사회`로 가기 위한 가장 중요한 과제와 해결책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면서 “무엇보다 국가와 사회의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미래 사회를 조망하고 대응전략을 연구해 사회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적격의 기회를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6-11-18

`의도적 일 미루기`는 당신을 여유롭게 한다

하루 24시간, 우리는 누구에게나 같은 시간이 주어진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조금만 더 있다면….”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 이들에게`시간을 2배로 늘려 사는 비결`(문학사상사)의 저자 로리 베이든은 자신만의 시간배가법으로 하루 24시간을 하루 48시간으로 늘려 사는 비결을 소개한다. 세계적인 자기계발 전략가이자 국제적인 교육 기업 사우스웨스턴 컨설팅의 공동 창립자인 로리 베이든은 자기계발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다. 그의`미루는 습관을 극복하고 생산성을 향상하는 데 대한 독특한 통찰`은 오프라 라디오와 폭스 뉴스뿐만 아니라 월스트리트 저널, 석세스 등의 잡지를 통해서도 널리 소개된 바 있다.이 책의 원제는 `Procrastinate on Purpose`이다. 우리말로 옮기면 `의도적인 일 미루기` 정도가 될 것이다. 저자 로리 베이든은 만성적인 과잉성취자(overachiever)는 언젠가 `우선순위 약화` 문제를 꼭 겪게 된다고 말한다. 이들은 엄청난 양의 일들을 빠르게 해치우면서 성공할 수는 있지만 점점 책임져야 하는 일이 많아질수록 당장에 급한 일을 먼저 하느라 정작 중요한 일을 뒤로 제쳐두게 되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이때 필요한 것이 `의도적인 일 미루기`라는 것이다.로리 베이든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통해 해야 할 일을 하나하나 따진 뒤에 우선순위를 정하라고 조언한다.이 일은 △제거할 수 있는가? △자동화할 수 있는가? △위임할 수 있는가? △나중에 해도 되는가? △집중해도 되는가?진짜 우수한 성취자는 오늘보다 미래에 커다란 성공을 가져다 줄 의미 있는 일에 주목한다. 양보다 질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얘기다.로리 베이든은 중요한 사안을 식별하고 거기에 초점을 맞추는 방법을 위해 다양한 접근법을 제시한다. 그는 달력이나 체크리스트 혹은 전자기기를 늘리는 대신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우리가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지 못하는 감정적 원인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리고 일상생활에서 여유를 더욱 많이 만들어내면서 더 나은 결과를 얻기 위해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줄 수 있는 다섯 가지 새로운 시간관리 개념 즉, 다섯 가지 `허용사항`을 밝힌다.△일과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우선사항들을 식별하는 법△결과를 희생시키지 않고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할 시간을 더욱 많이 만들어내는 법△중요하지 않은 일에는 “No”라고 말하고 중요한 일에는 “Yes”라고 말하는 법△내일의 시간을 오늘보다 더욱 늘려줄 시스템을 실행하는 법△`멀티플라이어식 사고방식`을 채택함으로써 삶의 통제권과 마음의 평화를 얻는 법/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6-11-18

20살 코피노 주인공의 사랑·가족 발견 이야기

2016년 계간 `창작과비평`창간 50주년 기념 장편소설 특별공모의 당선작인 금태현 작가의 `망고스퀘어에서 우리는`(창비)이 출간됐다.`망고스퀘어에서 우리는`은 필리핀과 일본을 배경으로 갓 스무살이 된 코피노 주인공이 사랑과 가족을 발견하는 이야기로, 한국소설의 참신한 상상력과 힘 있는 서사를 발굴하기 위해 제정된 창비장편소설상이 2년 만에 선정한 수상작이다.“이야기를 잇고 끊는 고유한 리듬을 조성하며 담담한 듯 노련하게 서사를 이끈 점이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은 소설은 경계 위에서의 삶을 이례 없이 담백하게 다루면서 새로운 형태의 사랑과 가족애를 설득력 있게 풀어냈다.`망고스퀘어에서 우리는`의 주인공은 한국인 남성과 필리핀 현지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인 코피노다. 주인공 하퍼의 한국인 아버지는 도망친 것이 아니라 필리핀에서 어머니와 삼겹살 가게를 하다가 병으로 죽었고, 어머니는 일본에서 재혼해 후쿠오카에 살고 있다. 어머니를 만나러 일본에 간 주인공은 소매치기와 불법 영상 업로드 등으로 생계를 이어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새로운 가족이 꾸려진다`망고스퀘어에서 우리는`의 인물들 특유의 상큼하고 담백한 모습과 삶의 방식 덕분에 혈연으로 엮이지 않은 사람, 죽은 사람까지 모두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은 설득력 있게 전개된다.강영숙 평론가는 “작가가 세련된 감수성과 놀라운 장악력을 발휘해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는 쪽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한다”고 평했다./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6-11-18

주역 이해로 나아가는 가장 믿음직한 길 제시

주역은 논어 노자와 함께 중국 고전으로 꼽힌다. 본래 이론서가 아니라 각종 시공간적 상황을 설정해 그것에 알맞게 처사하는 지혜를 일러주는 책이다. 중국에서 고문헌학·고문자학·고고학 등 `3고의 대가`라 불리는 리링(68) 베이징대 중문과 교수의`리링의 주역 강의`(글항아리)는 그의 수년간 주역 강의록을 모은 책이다.주역은 서주시대부터 있었던 역경과 이를 후대에 해설한 역전으로 이뤄진다. 흔히 `경`은 점술을 말하고 `전`은 철학을 말했다고도 하지만, 이 둘은 결코 분리될 수도 분리된 적도 없다. 주역은 경과 전의 관계가 특히 긴밀해, 전을 버리고 경만 읽는다면 아무 맛이 나지 않는다.하지만 그렇다고 해서`역전`의 해석이 주역의 본뜻에 부합하는지 여부는 또 다른 문제다.`경`의 판본부터가 다양해 해석이 분분한데, 리링 교수는 경문의 본뜻에 가까이 가는 길잡이를 제시하고 있다.이 책에서 리링 교수는 왕필본을 저본 삼고, 출토본별 차이를 밝히면서 역경 본문을 해설한다. 수천 년 역학사에 대한 단단한 이해와 문자학·음운학 지식을 바탕으로, 한위당송(漢魏唐宋)의 방대한 주와 근현대 연구가들의 해석을 비교 분별하며 주역 이해로 나아가는`가장 믿음직한 길`을 보여주고 있다.`주역`은 상하(上下)의 두 경(經)과 십익(十翼)으로 이뤄진 책이다. 두 경은 괘효(卦爻) 및 괘사(卦辭)와 효사(爻辭)로 구성돼 있다.8괘(八卦)는 전설상의 인물인 복희씨(伏羲氏)가 점을 치기 위한 수단으로 만들었고, 문왕이 그것들을 중첩시켜(8×8=64) 64괘로 발전시키고는 거기에 담긴 상징적 의미를 글(괘사 또는 단사(彖辭))로 덧붙였으며, 문왕의 아들인 주공이 384개의 효(爻, 하나의 괘는 여섯 효로 이뤄져 있으므로 64×6=384가 된다.) 각각에 역시 글(효사)을 달았다는 것이다.십익이란 「단전(彖傳) 상하(上下), 「상전(象傳)」 상하, 「계사전(繫辭傳)」 상하, 「문언전(文言傳)」, 「설괘전(說卦傳)」, 「서괘전(序卦傳)」, 「잡괘전(雜卦傳)」을 통틀어 일컫는 말로, 괘효의 원리와 순서, 그 철학적 함축 등을 밝힌 공자의 작품으로 알려져 왔는데, 오늘날 학자들은 그것을 후인들의 가필로 간주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6-11-11

`실존과 도덕` 피로 얼룩진 이스라엘 현대사

800만 인구, 한국의 3분의 1 면적의 `소국`에서 역경을 헤쳐 강소국으로 떠오른 나라.2000년 동안 지구상에서 사라졌다 다시 생긴 유일한 나라. 1인당 GDP 2만8천700달러, 인구가 건국 당시보다 13배 늘었고 최대도시인 텔아비브는 미국 다음으로 많은 수의 정보기술(IT) 회사들이 신기술을 실험하고 있다. 바로 이스라엘이다.하지만 올해 건국 68주년을 맞은 이스라엘은 기로에 서있다. 주변에 수많은 적을 둔 태생적 환경 탓에 팔레스타인 문제 등에서 자국 안보 이기주의에 너무 몰입해 보편적 정의를 등지는 길을 걸어왔다는 비판이 높아졌다.최근 출간된 `약속의 땅 이스라엘`(글항아리)은 이스라엘의 저명한 언론인인 아리 샤비트가 자신의 조국에 대해 진솔하고 균형 잡힌 시각을 제시한다.1950년 이후의 역사 중 굵직굵직한 장면을 뽑아 소개하면서 이스라엘과 유대인이 생존을 위해 피로 얼룩진 길을 걸어왔다고 자평한다.그는 자신의 증조부가 영국에서 배를 타고 이스라엘로 건너와 정착한 1897년부터 미국과 이란이 핵 협상을 타결한 2015년까지 약 120년간의 역사를 시간순으로 돌아본다. 저자의 가족사뿐만 아니라 심층 면담, 일기와 편지, 각종 문헌 등 개인적 사건들을 통해 현대사를 재구성한다.저자는 현상황을 새롭게 바라보기 위해 인터뷰, 개인 경험, 사료 등 다양한 자료를 활용해 과거를 조명한다. 이스라엘의 구조적 복잡성과 모순을 진단하며 `실존적 공포`와 `도덕적 분노`의 이중성을 고발한다. 샤빗은 주변국의 침략에 취약한 현실을 직시하는 동시에 1948년 수많은 팔레스타인들을 몰아낸 역사에 도덕적으로 분노한다. 그는 이스라엘의 존재 근거가 된 점령에 대해 “우리 민족, 나 자신, 내 가족을 살리기 위해 했던 더러운 일이었다”고 말한다.이 책은 전쟁과 핵개발, 문화, 종교적 광신, 인구변화 등 이스라엘의 다양한 면모를 다뤘다. 저자는 이스라엘의 평화와 장래에 대해 낙관적이지도 비관적이지도 않다. 이처럼 긴박한 벼랑 끝 삶을 살아가는 것이 이스라엘의 현실이라 그는 결론짓는다.전례가 없을 정도로 대내외적 압력에 직면한 이스라엘은 지금 존재론적인 위기에 처해 있다. 저자는 그래서 자신의 가족사를 서곡으로 삼고 개인적 경험뿐만 아니라 심층 면담, 역사 문헌, 일기와 편지들을 밑바탕 삼아, 개체(부분)의 합보다 더 클 수밖에 없는 이스라엘 전체 역사의 매혹적인 파노라마를 묘사하기 위해, 개인적이면서도 사회적이고 또한 극히 인간적이면서도 역사적 연원이 깊은 시오니스트 국가의 결정적 순간들을 조명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6-11-11

군웅할거 대한민국…`치세의 능신` 등장할까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최순실 국정농단`파문이 연일 이어지는 요즘, 누구나 한번 쯤은 내년 대선이 하루빨리 왔으면 하는 생각을 했을 지도 모른다. 더욱이 시민사회나 잠룡급 대권주자들이 박 대통령에게 더 이상 국정운영을 맡겨선 안 된다고 탄핵·하야를 주저하지 않고 얘기하고 있어 국민들의 마음은 동요되고 걱정스러운 심정으로 이번 사태를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김재욱 고려대 한자한문연구소 연구교수가 최근 펴낸 `군웅할거 대한민국 삼국지`(투데이펍)는 2017 대선을 앞두고 정권을 바꿀 능력이 있는 `야권 정치인`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특히 사실에 근거한 이들의 행적과 삼국지등장인물들의 일화를 절묘하게 비교해 마치 옛날과 지금의 인물이 거울을 대하고 보는 듯해 흥미를 일으키게 된다. 아울러 군데군데에 서려 있는 작가의 신랄하고 진정어린 쓴 소리도 재미를 더하는 요소가 된다.저자 김재욱 교수는 “현재 대한민국 정치 상황은 많은 영웅들이 각각 한 지방에 웅거(雄據)해세력을 과시하며 서로 다투는 이른바 `군웅할거의 시대`다. `난세의 간웅`과 `치세의 능신`의 등장이 절실할 때”라면서 “대중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소설 삼국지 등장인물에 현재 대한민국 정치인을 비유해 향후 대선에 승리의 동남풍이 어디로 불지 예측해보고, 바람직한 정치 사회상과 `치세의 능신`, `난세의 간웅`이 누구일지 독자로 하여금 판단하게 하는 책”이라고 소개했다.또 그는 머리말에서 “나는 지난 10년 간 `보수`를 자임하는 정치세력이 `보수`라는 말이 부끄러울 만큼 우리나라 정치 수준을 떨어뜨렸고, 역사를 퇴행시켰다고 보고 있다.아울러 이들은 다수의 서민의 삶을 하루하루 파탄지경으로 몰아가고 있으면서 그 잘못을 모두 `야당`과 `개인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 현재 정치권에는 `친박`, `비박`, `친문`, `비문` 등으로 불리는 계파가 존재한다.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조직해 유권자의 분열을 획책하고, 판단을 흐리게 하며, 더 나아가 정치혐오를 조장하려는 의도로 만들어 진 것이라고 하더라도 실제 이와 같은 명칭을 지녔는지는 모르겠으나, 계파가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할 것이다. 어찌 보면 정치권에 계파가 없는 것이 오히려 비정상적이지 않은가. 그러나 나는 오늘을`기록`하는 사람으로서 이를 그대로 인정하되, 특정 계파의 시각으로 인물의 삶을 조망하지 않았으니 이점 독자여러분께서 살펴주시기 부탁드린다”고 말한다.이 책에는 대한민국 대표 정치인 20명이 등장한다. 저자는 `유언`에 박원순, `유표`에 문재인, `원소`에 안철수, `공융`에 유승민, `조자룡`에 표창원, `손권`에 안희정을 매칭했다.이 책은 `소설`을 기반으로 삼고, 필요에 따라 `정사`의 내용을 첨가하는 방식으로 삼국지 등장인물의 이야기를 재구성했다. `정사`의 내용은 김원중씨가 옮긴 `정사 삼국지`(민음사)를 참고했고, 필요에 따라 작가가 원문을 번역하기도 했다. 주요한 장면을 위주로 서술하면서도 독자가 해당인물의 생애를 알 수 있도록 노력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6-11-11

기괴하고 뒤틀린 인간 본성을 마주하다

201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조수경 작가의 첫 소설집 `모두가 부서진`(문학과지성사)이 출간됐다.조수경 작가는 그간 발표한 소설들로 호기심을 자극하는 강력한 서사를 구사하는 데 탁월함을 보여줬으며, 인간 사회의 어둡고 추한 민얼굴에 주목하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아왔다. 성인용품 판매점에서 일하는 고독한 장애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 등단작 `젤리피시`는 “단순한 유행 감각의 소산이 아니다. 이 작가는 인간의 깊은 내부 세계를 들여다보는 안목을 갖췄다. 또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묘사 능력도 탁월했다”(문학평론가 방민호·소설가 성석제)라는 평을 받기도 했다. 이번 소설집에서 작가는 아무렇지 않은 듯 보이지만 모두가 조금씩 부서진 채로 살아가는 우리 일상의 면면, 그 안에 도사린 등골 서늘한 균열들에 집중한다.`모두가 부서진`의 수록작 여덟 편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도시 속에서 각자의 부서짐을 치열하게 경험해 간다.이는 하반신 마비(`젤리피시`)처럼 눈에 보이는 장애에서부터, 눈앞에 직면한 이혼(`유리`), 아버지의 외도에서 기인한 강박적 순결 콤플렉스(`마르첼리노, 마리안느`), 부모에게 버려진 뒤 방향을 잃어버린 청춘(`떨어지다`), 거짓으로 유지된 연인 관계의 파경(`할로윈―런, 런, 런`), 임신 문제를 둘러싼 고부 갈등(`지느러미`) 등 다양한 방식으로 구현된다.사소한 균열은 점차 뚜렷한 붕괴가 되고 이내 걷잡을 수 없이 일상을 망가뜨린다. 결말에 이르러 인간 본성에 존재하는 기괴하고 뒤틀린 면모를 마주하게 한다는 점은 조수경 소설의 특장이다. 특히 작가는 소설 도입부에 종종 꿈을 배치함으로써 이 불쾌한 진실을 고지하곤 하는데, 일반적인 도피처로서의 꿈이 아닌 지독한 악몽을 통해 어떤 각성을 이끌어낸다.문학과지성사 측은 “조수경이 들여다보는 삶의 진실은 왜곡된 욕망에 이끌려 약한 사람이 더 약한 이에게 폭력을 가하고 타인의 불행을 집요하게 캐내며 균열을 은폐해가는 방식으로만 생이 유지될 수밖에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작가는 악몽이야말로 우리가 살아내야 하는 현실임을 분명히 보여주고, 누군가는 완벽한 고독 속에서 이미 분절돼 버린 몸을 다시 잇는 재생의 꿈을 꾸도록 한다. 모두 쉽게 눈감고 합리화함으로써 왜곡된 진실이 세계를 지배하게 된 우리의 오늘에 각성의 안경을 건네준다”고 전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6-11-11

통치의 종말…인간회복의 정치

`말하는 입과 먹는 입`,`제국일본의 사상`의 저자이자, 조르조 아감벤의 `예외상태`, 카를 슈미트의 `정치신학`등 다양한 책들을 번역·소개해온 연세대 국학연구원 김항 교수의 신작 `종말론 사무소`(문학과지성사)가 출간됐다.이 책은 조르조 아감벤, 발터 벤야민, 미셸 푸코, 카를 슈미트, 위르겐 하버마스 등 다양한 방식으로 서로에 응답하거나 대립했던 위대한 사상가들 간의 논쟁을 교차시키며 분석한다. 그를 통해 근대 통치질서의 실체를 밝히고, 인간의 삶을 `벌거벗은 생명`으로 치환해 통치의 대상으로 삼는 `오이코노미아-생명정치`의 패러다임에 맞서 인간이 스스로를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행위인 `정치`의 가능성을 타진한다.저자는 20세기 이후 서양 정치철학의 근저에 흐르는 종말론적 사유를 들여다본다. 조르조 아감벤은 질서정연한 관리, 즉 오이코노미아(oikonomia)의 통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기 위해 벤야민을 끌어들인다. 종말론은 인간을 대상화해 권력과 법의 지배를 집행하는`통치`로부터 인간을 존립하게 만드는 고유한 행위인 `정치`를 분리해낸다.이 책은 `종말론 사무소` 이외에도, 벤야민과 슈미트 사이의 숨겨진 논쟁을 논제로 삼아 예외상태를 둘러싼 서구 정치사상의 근원적 대립을 분석하기도 하고, `적`이라는 개념에 대한 칼 슈미트, 레오 스트라우스, 프로이트의 논의를 검토하고 이를 통해 `정치적인 것`의 재구성을 향한 20세기적 상상력의 전용 방향을 제시하는 등 다양한 층위에서 `정치`의 문제에 접근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6-11-04

읽는 이를 아름답게 만드는 힘

박정대(51) 시인의 여덟번째 시집 `그녀에서 영원까지`(문학동네)가 출간됐다.총 43편의 시가 총 200페이지에 담겨 있는데 앞서 출간된 시인의 시집들처럼 읽는 우리를 아름답게 만드는 힘을 갖고 있다. 시라는 형식의 모양새가 있다면 그 틀을 깨고자 태어난 박정대 시인의 언어들은 때론 덩어리로 때론 파편으로 뭉쳤다가 흐트러졌다가 제 안의 제 음악에 이끌려 제 몸을 부리면서 `자유`를 말한다. “카자흐스탄에서는 말을 타고 검독수리로 사냥하는 사람을 자유라 부른다지// 카자흐스탄의 언어적 관점으로 보면 나는 자유”(`자유`)라고 노래한 시인은 “그게 누구든 그게 무엇이든 자유를 노래하는 건 그들의 자유/ 스스로 꿈꾸고 스스로 노래하는 자유는 만인의 의무”(앞선 시)라며 이 한 권의 시집 속 절제절명의 `멋`을 그 `자유` 안에서 맘껏 부린다. 그와 동시에 읽는 우리로 하여금 `자유`를 온몸으로 통과해보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 시집은 접기보다 밑줄 긋기를 능하게 만드는 재주를 갖고 있다. 한 줄 한 줄 감해 접어가며 읽기도 가능하겠지만, 한 문장 한 문장 무너져 밑줄 그어가며 읽을 때 그 탄복의 푸른 멍은 거기 더 오래 배일 것이다. 말을 좇지 않고 그 말들을 제 뒤로 좇게 만드는 힘, 그건 억지로 부릴 수 있는 완력이 아니다. 쓰는 자와 부르는 자의 묵묵함이 읽는 자와 듣는 자의 심장을 건드릴 때 그건 완벽한 시이자 노래일 터, 주저 없이 그를 베가본드(vagabond)라 칭해본다. 그는 이렇게도 여전히도 청춘의 심벌이다. 그는 이렇게도 여전히도 시가 전부인 사람이다.강원도 정선 출신인 박정대 시인은 올해 등단 26년차를 맞았으며 김달진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대산문학상 등 그간 주요 문학상을 휩쓸었다. 현재 무가당 담배 클럽 동인, 인터내셔널 포에트리 급진 오랑캐 밴드 멤버로 활동중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6-11-04

길과 거리, 그리고 그 안에 담겨 있는 우리의 삶

국내의 내로라는 토목공학 전문가이자, 다수의 교량과 터널 공사에 참여한 김재성 동명기술공단 부사장이 `본격 인문학`이라고 할 수 있는 책을 두 번째로 펴냈다. 지난해 초 나온 `문명과 지하공간`(문화체육관광부 세종도서)이 땅 밑 공간의 확장은 어떻게 문명을 이끌었는가를 역사적으로 살폈다면, 이번에 선보이는 `미로(美路), 길의 인문학`은 `길`을 사유의 대상으로 삼아 역사 속 이야기와 사색을 구불구불 펼쳐내고 있다. 집 나오면 길이라는 말이 있듯, 인간에게 길처럼 평생의 동반자도 없을 것이다. 집에서 자고 길에서 걷는 인간은 산을 깎고 바다를 메워 길을 만들어왔으며, 땅 밑에도 하늘에도 길을 냈다. 출퇴근길도 길이지만 하늘을 나는 새의 길도 길이고, 지하수가 흐르는 길도 길이며, 카톡을 주고받는 비트의 길도 길이다. 그 길의 네트워크를 머릿속에서 한번 그려볼라치면 이 얽혀 있는 난마와도 같은 길이 카르마로 다가오기도 하고,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는 해묵은 명제를 헤아리게 되기도 한다.저자는 이 아득한 길의 교차로에서 우리를 본능적으로 이끄는 매력적인 길을 골라서 총 6부의 목차에 담아냈다. 제1부에서 그 첫 자리에 오는 것은 `생각의 길`이다. 모든 현실적 길이 `생각`이라는 실타래에서 풀려나왔듯이 저자는 길의 시초를 생각에서 찾고 있다. 그리고 그 생각이 모여 있는 공간으로 도서관의 역사를 탐험한다. 바벨의 도서관에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성 카타리나 수도원 도서관에 잠들어 있는 고대의 생각들을 깨우고, 금서의 역사, 책을 불태운 인간들,`장미의 이름 `속 이야기 등을 통해 `생각과 책과 도서관이 만들어내는 미로`속을 거닌다.사유는 이어져 유년의 숲길에 해당하는`동화` 속 길을 다루고 신화 속의 미로의 세계를 엿보기도 한다. 낯선 곳을 향한 생명의 의지가 만들어내는 여러 가지 현상을 길의 원동력으로 살핀`낯선 길을 찾아서`에서는 모나코 나비의 여로, 빙하가 만든 피요르드, 생명에 깃든 정교한 길은 혈관과 신경망을 언급함으로써 길의 지평에 대한 상상력을 촉발시키기도 한다.길을 화두로 삼아 집필을 시작한 저자의 행로는 제2부에서는 `나를 찾아 떠나는 길`을 통해 순례와 종교적 세계에서의 길을 다루고, 제3부에서 `유랑`이라는 인류사의 시원부터 현재까지 인간의 변치 않는 숙명과도 연결된다. 제4부에서 6부까지는 수로와 운하와 옛길을 살피면서 문명화 과정의 실제 역사에서 길이 분화되어온 경로를 더듬는다. 여기서 터널은 길의 경계를 허물고, 다리는 길의 틈을 잇는다.“무언가를 잃어버렸을 때 그것을 찾으려는 첫째 조건은 망각에 대한 기억이다. 잃어버린 것이 무언지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오래 우리가 잃어버린 것에 대해 무관심했다. 나는 인간이 만들어온 길과 거리에 대해 말할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 담겨 있던 우리의 삶에 대해서도 말할 것이다. 무엇보다 아름다움과 정겨움에 대하여 느린 소의 걸음으로 이야기할 것이다. 이 글은 생각을 달리하는 글과 조율하거나 동조하면서 조금씩 아름다운 길은 무엇인가라는 문제에 접근해 갈 것이다. 그 모든 관점과 사색이 글을 읽는 사람의 생각과 동조되면서 도시를 마땅히 있어야 할 곳으로 이끌고 갈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기를 희망한다.” (프롤로그)/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6-11-04

`인간에게 일은 무엇인가`에 대한 전환적 사유

사람은 평생동안 일을 하며 살아간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사람은 지친다.`일철학`(판미동)은 이처럼 살아가면서 피할 수 없는 `일`이란 행위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기술이나 처세의 측면이 아닌 새로운 패러다임을 보여주는 책이다.저자 박병원씨는 그 실마리를 서양의 철학이나 이론이 아닌, `중론`을 비롯한 불교의 가르침에서 찾는다. “일이란 단순히 잡(job)이나 `워크`(work)가 아닌, 세상 속에서 사람이 임하는 일종의 액션(action)”이라고 규정하고, “일은 우리 삶의 구체적인 좌표이자 `사람과 세상`을 이어주는 다리이며, 모두가 다 즐기며 피안에 이르는 뗏목”이라고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인공지능(AI)의 등장으로 인간의 본성과 능력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에 직면하고 있는 오늘날, 앞으로의 인간의 일은 무엇이고 그 일을 어떻게 해 나가야 하는지 자각하고, 그에 맞는 자세를 갖추기 위한 실질적 기준을 제시한다.30년 가까이 다양한 현장에서 역동적으로 일하며 독자적인 학문체계를 쌓아 온 `현장(現場) 철학자`인 저자의 날카로운 문제제기, 묵직한 철학적 사유, 미래 지향적인 비전이 담겼다.특히 직업적 의식이나 경제적 가치로 국한되는 일뿐만 아니라 `사회역사적 관계 맺기로서의 일`에 주목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사람과 세상을 잇는 다리로서, 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관계`임을 밝히고, `일자리 창출`보다 시급한 것은`일의 본래 가치 회복`임을 천명하며, 일을 일답게 정립해 사회역사적 건강성을 담아 낼 수 있는 새로운 공론의 장을 함께 고민해 나간다.취업활동이나 효율적인 일의 기술, 직장에서의 처세 등에 매몰돼 정작 내가 지금 하고 있는`일`자체에 대해선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이 책은, 일이란 무엇인지 근본적으로 고민해 보며 좀 더 인간다운 삶으로 이끄는 성찰과 변화의 기회를 제공해 줄 것이다.저자 박병원씨는 이 책에서 “일의 속성은 사람의 존재속성도 아니고, 그렇다고 세계속성도 아닌, 존재와 세계가 소통하는 그 원리를 대변하는 현상적 표상”이라고 말하며, 사람과 세상을 잇는 매개 개념으로서 일의 영역을 정의한다. 이는 철학 일반에서 쓰이는, 무가치한 요소들까지 포괄적으로 포함되는`행위(行爲)`라는 개념과는 다르다. 여기서 `일`이란 사람과 세상 모두에 유의미한 가치를 창출하는 통로가 될 때에만 성립된다. 개인의 행위이지만 동시에 사회적 행위가 될 수 있는, 즉 개인의 욕구가 사회적 합리로 결합되고 승화될 수 있는 구체적이고 보편타당한 행위가 `일`이며, 궁극적으로 그 일을 하는 모든 사람들이 `자아실현`을 하고, `사회성`을 획득하며, `역사성`을 만들어 갈 수 있을 때 비로소 일다워진다는 것이다.1부 `고(苦)- 세상의 고통`에서는 저성장, 일자리 대란, 신계급사회, 관료의식 등 우리가 당면한 시대적·사회적 현실의 고통을 진단하고, 2부 `집(集) - 고통의 뿌리`에서는 인간의 내면에 초점을 맞춰 `관계의 상실(무명)·기준의 상실(애욕)·목적의 상실(집착)` 등 개인의 고통이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낱낱이 해부한다. 3부 `멸(滅) - 일철학 선언`에서는 관계를 관계답게(무잉여 선언), 가치를 가치답게(타당성 선언), 존재를 존재답게(투명성 선언) 복원하자고 선언하고, 4부 `도(道)-시절의 물결`에서는 기존의`직업적 인간`을 넘어서는 `일이있는 인간`이라는 새로운 인간 유형이 미래사회의 핵심 구성원으로 등장할 것을 예견하며, 앞으로 지향해야 할 구체적인 대안으로 공공, 품류, 체계화 등을 제시한다.저자는 기성의 관습적 조직 생리, 직업적 행태에서 벗어나 개인 스스로 사람과 세상과 일을 근본적으로 재사유하고 깊이 있게 성찰해야 함을 책 전반에 걸쳐 강조한다. 나아가 사고와 인지 능력을 기반으로 나 자신에서부터 모든 행위를 출발하는 `생각하는 인간(호모 사피엔스)`의 시대는 저물고, 앞으로 사회역사적 건강성을 지닌 `일이 있는 인간`의 시대가 다가올 것으로 전망한다. 기능, 스펙, 직무를 중요하게 다루던 과거의 낡은 집단성에 속한 `직업적 인간`을 넘어 이전 조직 사회에서는 보지 못했던 성숙된 개별자들, 즉 `일이 있는 인간`들이 만들어 갈 새로운 집단성(체계화)에 주목하자는 것이다./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6-11-04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강은 흐르고… 파리의 사랑과 낭만을 흠뻑 느끼다

“미라보 다리 아래 센 강은 흐르고 우리의 사랑도 흘러내린다.내 마음 깊이 아로새기리기쁨은 늘 고통 뒤에 온다는 것을.밤이여 오라, 종아 울려라세월은 가고 나는 남는다.손에 손을 맞잡고 얼굴을 마주보자우리 팔 아래 다리 밑으로영원의 눈길을 한 지친 물결이저렇듯 천천히 흐르는 동안.밤이여 오라, 종아 울려라세월은 가고 나는 남는다.”`프랑스 현대시의 심장`이라 불렸던 기욤 아폴리네르(1880~1918) 의 시 `미라보 다리`다.그가 미라보 다리를 걷다가 연인 마리 로랑생(1883~1956)과의 사랑을 회상하며 썼다는 이 시는 초현실주의 시인이었던 그의 대표작으로 샹송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화가인 마리 로랑생과의 사랑이 파국을 맞은 뒤에 지은 이 시는 고통스러운 추억을 되새기며 사랑의 종말을 노래한 절창. 기욤 아폴리네르 연구로 고려대 불문학과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황현산 문학평론가가 기욤 아폴리네르 대표시를 가려 뽑은 시 선집 `사랑받지 못한 사내의 노래`(민음사)가 출간됐다.황현산 문학평론가는 아폴리네르를 중심으로 상징주의와 초현실주의로 대표되는 프랑스 현대시를 연구해 왔다. 이 선집에 수록된 작품들은 `신호탄`, `도시와 심장` 외 네 편을 제외하고는 모두 `알코올`과 `상형시집`에서 뽑은 것이다. 대표 시집 `알코올`에서는 자유시의 모범작을 중심으로 시를 선택했으며, `상형시집`에서는 전위적 시론으로서의 시와 잘 만들어진 상형시를 뽑아내 번역했다. 3부 `기타 시편`에서는 최근 프랑스 애니메이션학교에서 아폴리네르의 시편을 바탕으로 제작한 동영상의 원작들을 번역 수록했다. 모든 시에는 치밀한 주석을 덧붙여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도왔다.표제 시 `사랑받지 못한 사내의 노래`는 약 300 행으로 구성된 장시다. 스물한살 나이에 동료 가정교사인 애니 플레이든과 사랑에 빠져 문학성 높은 작품으로 승화시켰다.“잘 가거라 멀어져 가는 여자와지난해 독일에서내 잃어버리고이제는 다시 못 볼 그녀와한데 얼린 거짓 사랑아”―`사랑받지 못한 사내의 노래`에서(25쪽)/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6-10-28

세종로·국회의사당, 왜 열린공간이 되지 못하는가

`건축이 건네는 말`(아트북스)은 건축가 최준석이 길 위에서 건축물을 만나며 폭넓은 상상력과 감수성으로 감응해온 이야기를 직업인으로서, 예술 애호가로서, 생활인으로서 풀어낸 에세이다. 지난 2010년에 `어떤 건축`이라는 제목으로 처음 세상에 나온 이 책은 이후 집을 증·개축하듯 변화한 시대에 맞춰 부족한 부분은 보강하고 덜어낼 부분은 과감히 덜어내고 필요한 부분은 추가해 새롭게 완성했다.지은이는 선유도 공원, 쌈지길, 종로타워,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등 현대적인 도시의 명소에서부터 추사고택, 소쇄원, 선교장 등 전통적인 고택과 구엘 공원, 롱샹 성당,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에펠탑 등 이미 전설이 된 해외 건축가들의 걸작에 이르기까지 총 30곳, 다양한 건축의 세계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그는 어려운 용어를 사용하는 법 없이 건물과 그것이 세워진 지역의 역사를 짚어내고, 건축가의 건축 철학을 들려주며, 예술과 함께 건축물을 바라보며 상상력을 펼치고 장소에 의미를 부여한다. 여기에 `리노베이션` `계단` `마천루`라는 키워드로 엮어낸 세 개의 건축 이야기에서는 풍부하고 흥미로운 해외 사례를 들려주며 국내 건축의 방향을 모색하기도 한다.저자는 글을 왜 쓰냐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 그의 말처럼, 이 책은 건축가가 건축물에 대해 쓴 `조금 다른 이야기`다. 그는 건축에 대해 말하지만, 이야기는 `건축물 안`에만 머무르지 않는다.저자가 건축 이야기로 독자를 안내할 때 가장 즐겨 불러내는 `조수`는 단연 예술이다. 미니멀리즘 건축 기법이 사용된 `김옥길 기념관` 문을 열기에 앞서, 지은이는 도널드 저드의 `무제` 시리즈와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인체 조각을 소환한다. 앙상하게 뼈대만 남은 듯한 자코메티의 인체가 독자의 눈앞에 불러낸 이미지와 함께, 그의 건축 이야기가 시작된다.건축가인 저자가 삶의 현장으로서 집중하는 곳은 `도시`다. 아파트를 비롯해 도시인들의 삶을 구성하는 건물들에, 저자는 각별히 주의를 기울인다. 1958년 처음 세워진 종암아파트에서 시작해 롯데월드타워가 준공된 잠실 개발까지로 흘러가는 서울의 `아파트 역사`는 작은 생활사라 불러도 좋을 정도로 흥미진진하다.또한 그는 종로타워, 아이파크 사옥, 서초 삼성타운 등의 거대한 건물이 도시에 불어넣는 감상과 풍경 변화에 촉각을 세운다. 이러한 관심은 자연스럽게 공공공간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 오랜 역사를 지닌 세종로가 여러 시도에도 불구하고 시민을 위한 열린 공간으로 거듭나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독재의 흔적을 간직한 국회의사당에는 새로운 쓰임새가 필요하다고 말하기도 한다./윤희정기자

2016-10-28

역사와 문화가 흐르는 중국 고대도시를 가다

중국 고대 도시는 정치·역사·지리 조건 등에 따라 다양한 유형으로 나눠 볼 수 있다. 행정·군사·문화 중심 등 기능에 따라서는 도(都)·부(府)·주(州)·현(縣), 상업도시·수공업도시·방어도시·항구도시 등으로, 형태에 따라서는 방형·원형·자유형·연하곡대형(沿河谷帶形)·산성(山城)·이중성(雙重城)·조합성(組合城) 등으로 나눌 수 있다. 고대 도시 이름의 유래와 명칭 변화는 중국 역사 문화의 두터움을 드러낸다. 대부분 오늘날까지 쭉 이어져오고 있는 지명들을 연구하고 정리하는 일은 도시 건설의 역사 및 특징 연구에도 유익한 일이다. 한 권으로 살펴보는 중국 도시의 다채로운 면면. 도시는 역사 문화가 펼쳐지는 커다란 무대이자 역사 문화의 메신저다. 도시계획과 건설의 측면에서 중국 고대 도시의 뛰어난 성취는, 오랫동안 쇠하지 않고 흥성한 중국의 찬란한 문화를 증명해준다.`고대 도시로 떠나는 여행- 중국 고대 도시 20강`(글항아리)은 다채로운 중국 고대 도시의 면면을 펼쳐 보이면서 그 전체적인 윤곽을 체계적으로 잡아준다.한 권에 압축적으로 많은 내용을 담아내다보니 좀더 자세한 설명이 아쉬운 부분도 있다고 느낀 옮긴이는 독자들을 위해 최대한 자세히 옮긴이 주를 달았다.제1강과 제2강은 고대 도시의 유형과 명칭에 대한 개괄이다. 제3강부터 제9강까지는 특정 도시를 다룬다. 제10강은 강남의 수향 마을을 포괄적으로 설명한다. 제11강부터 제20강까지는 거주 구역, 시장, 도로 시스템, 사원, 궁전, 명절, 원림 등 고대 도시의 다양한 측면을 개괄하고 있다.중국의 이른 시기의 도시 명칭들은 대부분 별다른 뜻 없이 오로지 그 지역을 의미하는 고유 명칭이었다. 때로는 산천과의 상대적 위치에 따라 이름이 지어지기도 했다. 특히 산 남쪽과 강 북쪽을 `양`, 그 반대를 `음`이라 하해 생겨난 이름이 낙양, 하양(河陽), 한양, 강음(江陰), 회음 등이다. 또 장안(長安)·무위(無爲)·상숙(常熟)·안길(安吉)·만전(萬全)·대동(大同) 등의 이름에는 평안을 바라는 소망이 직접적으로 드러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6-10-28

애정없는 어른과 팽개쳐진 아이들

2011년 `세계의 문학`신인상으로 등단한 소설가 김봄의 첫 번째 소설집 `아오리를 먹는 오후`(민음사)가 출간됐다.김봄은 십 대 폭주족 이야기를 다룬 작품 `내 이름은 나나`로 미성년 `루저`들의 그늘과 좌절에 대해 말한다는 평을 받으며 등단했다. 작가는 줄곧 어린 청춘들에게 시선을 두고 있다. 이때 작가가 포착하는`청춘`의 성질은 풋풋하고 싱그러운 것이 아닌 풋사과를 씹었을 때의 떫고 아린 맛에 가깝다. 나이 어린 인물들이 벌이는 사건사고를 따라가는 이야기를 통해 작가는 애정 없는 어른과 그들에 의해 팽개쳐진 아이들이 주고받는 폭력의 현장을 보여준다.소설집 `아오리를 먹는 오후`에는 사회가 만들어 놓은 정상 궤도를 자꾸만 이탈하는 존재들이 등장한다. 그들의 나이는 대부분 십 대로, 어른의 입장에서 `문제아`, `비행 청소년`이라고 편하게 묶어 부르는 존재들이다. 어른들은 그런 아이들을 두려워하기보다는 골치 아파하고, 이해하려고 하기보다 치워 두고 싶어 한다. 무자비하게 속도를 즐기는 오토바이 폭주족부터(`내 이름은 나나`),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을 강간하는 히키코모리 소년(`문틈`), 조건 만남으로 돈을 벌고 파트너를 돌려 가며 섹스하는 가출 청소년 집단(`절대온도`)까지, 작가는 영리하고 예쁜 아이들만 보고 싶어 하는 세상에 소년 범죄자들의 만행을 핍진하게 기록한다./윤희정기자

2016-10-21

“밑도 끝도 없는 적개심과 사악함이 도처에 출몰한다”

▲ 도종환 시인서정과 현실을 아우르는 섬세하고 부드러우면서도 곧은 언어로 삶의 상처를 위무하고 세상의 아픔을 달래는 서정의 세계를 펼쳐온 도종환(62) 시인의 시집`사월 바다`(창비)가 출간됐다.신작 시집으로는 2011년 여름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 이후 5년 만이다.사별한 아내를 그리며 쓴 시`접시꽃 당신`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더불어민주당 재선 국회의원으로 활동 중인 시인인 이번 시집에서“밑도 끝도 없는 적개심과 사악함이 도처에 출몰하는 견탁의 세상에 산다”(`서유기 3`)며 볼품없는 현실 세계를 있는 그대로 내보인다.“정치공학만 난무하는 오늘날 한국의 정치판에서 겪은 내상의 흔적들”(최원식, 발문)로, 지난 4년간 “고통과 절규와 슬픔과 궁핍과 몸부림의 현실” 속에서 “온몸에 흙을 묻히고,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시인의 말) 불의한 시대에 맞서 아름다운 세상을 일구고자 하는 간절한 심정으로 써내려간 견결한 시편들이 뭉클한 감동을 자아낸다. “서정의 깊이와 격과 감동”이 어우러진 가운데 슬픔을 희망으로 바꾸는 “사무치는 위로가 있는 매혹적인 시집”(박성우, 추천사)이다.“산짐승은 몸에 병이 들면 가만히 웅크리고 있는다/숲이 내려보내는 바람 소리에 귀를 세우고/제 혀로 상처를 핥으며/아픈 시간이 몸을 지나가길 기다린다//나도 가만히 있자”(`병든 짐승`전문)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치욕스러운 고통 속에서도 시인은 “내게 오는 운명을 사랑하리라”며 “쓰러질 때까지” 끊임없이 “선택하고 뉘우치고 또 나아”(`아모르파티`)간다. “사람에게서 위로보다는 상처를 더 많이 받”(`해장국`)으면서도 절망에 잠기거나 포기하는 대신 “불가능한 것을 꿈꾸”(`별을 향한 변명`)며 사랑을 실천하는 길을 걷고자 한다. “그날은 오지 않을지 모른다/누구에게든 그날은 잠시 머물다 가고/회한과 실망과 배신감만이 길게 남을지 모른다/그래도 그날을 향해 또 가야 한다는 생각에/마음이 아팠다/어느 시대에도 그날은 오지 않았는지 모른다/그날이 우리 곁에 왔다고 말하던 시절에도/내 하루의 삶이 그날로 채워져 있지 않았으므로/다시 그날을 기다려야 했다/일상이 그날인 그날까지 다시 가야 한다고/나를 다독이며 마음 아렸다”(`그날`부분)특별히 이`사월 바다`는 시낭송 오디오북을 무료로 써비스하는 `더책 특별판`으로 제작돼 도종환 시인이 직접 고르고 낭송한 열두편의 시편들과 시인의 말 등을 시인의 목소리뿐 아니라 영상으로도 감상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또한 이번 시집에 실린 `화인`이라는 시에 싱어송라이터 백자가 곡을 입힌 동명의 노래를 같이 감상할 수 있도록 뮤직비디오도 수록했다. 시인의 육성으로 직접 듣는 시편들에는 시인의 호흡과 느낌이 그대로 실려 있어 시의 감동을 더 실감할 수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6-10-21

갑오농민전쟁부터 세월호까지 절절한 `위령`

▲ 고은 시인“구글 알파고에게 없는 것/그것이 나에게 있다//슬픔 그리고 마음//집에 돌아와 신발을 벗고 뉘우친다/내 슬픔은 얼마나 슬픔인가/내 마음은/얼마나 몹쓸 마음 아닌가//등불을 껐다”(고은 시 `최근` 전문)`한국이 낳은 세계적 시인`이라는 호칭 그대로 한국문학의 한 봉우리를 넘어 명실공히 세계 시단의 중심에 우뚝 서 있는 고은(83) 시인의 신작 시집`초혼`(창비)이 출간됐다`무제 시편`이후 3년 만에 내놓는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때`와 `곳`에 얽매이지 않는 `자가자무(自歌自舞)`의 분방한 시정신으로 우주와 소통하는 대자유의 세계를 펼친다. 이 시집은 한마디로,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삶을 아우르는 우주적 상상력과 세상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예리한 통찰력, 인간 존재와 인생에 대한 심오한 예지가 돌올한 “불멸의 시학의 완성”(조재룡, 해설)이다. 팔순을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끊임없는 탐구와 모색과 고뇌가 깃든 뜨거운 심장을 간직한 채 역사와 시대를 온몸으로 껴안으며 어둠속에서 미지의 꿈과 희망을 노래하는 시인에게 또 한번 감탄할 따름이다. 제1부에 102편의 시와 제2부에 미발표시`초혼`을 실었다.“인류 각위 그대들이 끝내 지켜야 할 것/아래와 같다//내 발가락부터/내 손가락부터 이미 특수성일 것//내 별 볼일 없는 얼굴로 하여금/그 누구의 보편성 아닐 것//태풍 뒤 무지개이거나/태풍 뒤 무지개 없거나/오늘이/내일의 보편성 아닐 것”(`유언에 대하여` 전문)시인은 특정한 날, 특정한 곳을 노래하지 않는다. “어느날/어느 곳/어느 넋이 와 말하”(`하늘 높이 오르는 노래들`)듯, 어제와 오늘과 내일의 `어느날`이 시 쓰는 날이고, 안과 밖의 구분이 없는 `어느 곳`이 시 쓰는 곳이다. 또한 시인은 특정한 화자의 발화에 기대지 않는다. 그의 시에서 개인은 개별적인 단독자가 아니라 우주의 일부이자 전부인 “입자이자 파동”(`내 조상`)으로서 역사와 사회를 감당하는 공동체적이고 특수한 개인이다. 시인은 “온 길도/갈 길도 다 새로 태어나”(`신발 한 켤레`)리니 “미래여 옛날이여 여기 오라”(`나의 행복`)고 말한다. 삶과 죽음, 여기와 저기, 자아와 타자의 구분을 넘어선 곳, “다른 곳을 모르는 곳”과 “다른 곳이 모르는 곳”(`두만강 어귀에서`)에 이르러 시인은 “비유가 아니시기를/비유가 싸가지없는 사기로 되는/서글픈 밤들이 아니시기를”(`손님`) 바라는 마음으로 미지의 행복을 추구해나간다. 제2부의 `장편 굿시` `초혼`은 원고지 130매 분량(63쪽)에 달하는 회심의 역작이다. 김소월의 시를 차용한 시에서 시인은 갑오농민전쟁부터 6·25 전쟁, 광주항쟁 그리고 최근의 세월호 침몰에 이르기까지 이 땅에서 억울하게 죽어간 혼령을 불러내 어루만지고 있다.“나 돌아가지 않으리라/나 하늘로/나 도솔천/나 용궁 심청/나 천제의 하늘/나 환인의 하늘/그곳으로 돌아가지 않으리라//나 소월의 초혼 신 내려/이 고려강토/이 고려산천 도처마다 떠돌며/신방울 울려/신북 치며/신피리 불며/내 비록 맺힌 소리나마/이 소리로 소리제사 소리공양 내내 올리며/이 땅의 반만년 원혼 혼령 위무하며/살아가고저”(`초혼`부분)/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6-10-21

꾸역꾸역 살다 마주치는 어떤 사람

2014년 `투명인간`으로, 한국 현대사를 온몸으로 살아낸 보통 사람의 이야기를 숨 돌릴 틈 없는 서사에 담아냈던 이야기꾼 성석제(56)가 신작소설집을 출간하며 돌아왔다. 제목이 묘하다. `믜리??괴리도 업시`(문학동네).`믜리??괴리도 업시`는 고려가요`청산별곡`에서 인용한 것으로,“미워할 이도 사랑할 이도 없이”라는 뜻이다. 고려시대 때 “믜리??괴리도 업시 마자셔 우니노라”라고 한탄하며 청산으로 숨어들길 소망했던 어느 가여운 이가 있었다면, 2016년 성석제의 소설 속에는 “미워할 이도 사랑할 이도 없이”, 그 어떤 대단한 환희나 통렬한 절망도 없이 꾸역꾸역 살아가다가, 어떤 “사건” 혹은 “사람”과 맞닥뜨리는 인물들이 있다.이 책은 2013년 12월부터 2016년까지 성석제가 집필한 여덟 편의 단편소설을 묶은 책이자, 작가가 1996년 첫 단편소설집`내 인생의 마지막 4.5초`(출간 당시 제목`새가 되었네`)를 출간한 지 꼭 20년이 되는 해에 펴내는 새로운 소설집이다. 표제작`믜리??괴리도 업시`는`동성애`를 다룬 단편소설이다. 소설 속에서 `너`로 지칭되는 인물은 동성애자다.`나`와 같은 고향에서 자란 그는 어린 시절 읍내의 큰 주물공장 사장 아들로 한때 귀공자 대접을 받았지만, 공장에서 큰 사고와 화재가 잇따라 아버지 사업이 폭삭 망하면서 거지 신세로 전락하고 주변의 멸시를 받는다. 여러 고난을 극복하고 나와 같은 대학에 들어오게 된 그는 나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이고, 나는 그를 무시하려 하지만 자꾸 신경이 쓰인다. 프랑스에서 유명한 미술가로 성공한 그는 몇 년 만에 동성애인과 함께 나타난다.이 책을 열면 처음으로 만나게 되는 소설`블랙박스`에도 모래처럼 허물어져가는 일상을 견디다가 돌연 나와는 너무 다른 인물을 만나 전기를 맞는 인물이 있다. `블랙박스`는 계간`문학동네` 창간 20주년 기념호에 발표됐을 때부터 `미친 소설이 나타났다!`는 소문이 자자했던, 폭발하는 에너지로 가득한 작품이다./윤희정기자 jyun@kbmaeil.com

2016-10-21

우리가 쉬지않고 기별의 기척을 건네는 이유

시인 허수경(52)은 우리말의 유장한 리듬에 대한 탁월한 감각, 물기 어린 마음이 빚은 비옥한 여성성의 언어로 우리 내면 깊숙한 곳의 허기와 슬픔을 노래해 왔다. 그녀의 여섯번째 시집`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문학과지성사)는 2011년에 나온`빌어먹을, 차가운 심장`이후 5년 만의 시집이다. 아주 오래전,“내가 무엇을 하든 결국은 시로 가기 위한 길일 거야. 그럴 거야.”(`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 2001)라고 했던 그의 말을 새삼스레 떠올려보게도 되는, 산문도 소설도 아닌 다시 시집으로 만나는, 마디마디 가뭇없이 사라지기 전 가슴 깊이 파고들어 먹먹하기만 한 시 62편이 이번 시집에 담겼다. “시간이 날 때마다 터미널로 나가돌아오지 않는 가방을 기다렸다술냄새가 나는 오래된 날씨를 누군가매일매일 택배로 보내왔다마침내 터미널에서불가능과 비슷한 온도를 가진우동 국물을 넘겼다가방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예감 때문이었다그 예감은 참, 무참히 돌이킬 수 없었다”―`돌이킬 수 없었다` 부분이방인의 운명을 타지에서의 실존의 삶으로 이어가는 시인에게 모국어만큼이나 절실하고 그래서 의지하게 되는 것이 모국의 존재였을 것이다. 때문에 세월호의 유가족들, 정권의 폭력에 희생된 시민들, 하루하루 알바를 전전하며 불안한 미생의 삶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국가의 보호는커녕 하루아침에 `해충`으로, `불순 세력`으로 전락하고 고국 안에서 또 다른`이방인`으로 내몰리는 모습들은 그야말로 삶의 기반을 뒤흔드는 충격이 되고 말았다. 이는 마치 이국의 거리에 선 그가 눈앞에서 목도하는 풍경, 전쟁과 종교 근본주의자들의 무자비한 폭력을 피해 중부 유럽으로 향하는 난민들의 행렬과 그들 앞에 국경의 빗장을 내건 유럽국가의 모습과 다를 바 없었던 것이다. 이 “이상하고도 불안한 날씨” 속을 걸어가는 시인이 살아남은 우리만이라도 쉬지 않고 `기별의 기척`을 건네자 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윤희정기자

2016-10-14

언제라도 그 넓은 품을 내어주신 어머니

산수(傘壽·여든살)의 나이를 눈앞에 둔 소설가 한승원(78)씨는 지난 5월 영국의 문학상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을 받은 소설가 한강씨의 아버지로 올 들어 큰 주목을 받았지만, 그 이전에 이미 독보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한 한국문학의 거장이다. 전남 장흥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는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에서 김동리에게 문학을 배웠다. 1966년 단편 `가증스런 바다`로 신아일보 신춘문예에 입선하고 1968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단편`목선`이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첫 작품 `가증스런 바다`를 기준으로 따지면 올해 등단 50주년을 맞았다. 그동안 그는 30여 편의 장편소설과 80여 편의 중단편소설, 6권의 시집과 10여 권의 산문집을 내며 쉼 없이 창작열을 불태웠다. 고향인 장흥을 중심으로 한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끈질기게 추적함으로써 그들의 삶이 결코 평범한 것이 아닌 한 시대를 온전히 살아낸 자들만이 남길 수 있는 위대한 발자취임을 증명하는 데 천착해왔다. 특히 장편소설 `아제아제 바라아제`는 임권택 감독의 동명 영화로 만들어진 바 있다.그가 지난 12일 펴낸 또 한 권의 장편소설 `달개비꽃 엄마`(문학동네)는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다. 2년 전 돌아가신 고(故) 박점옹 여사를 강인한 생명력과 다산성의 `달개비 풀꽃`으로 비유했다.반세기 가까이 자신만의 소설 영토를 확고하게 구축해오며 한국문단에서 의미있는 위치를 지키고 있는 작가의 오랜 집념은 자신의 어머니의 삶을 오롯이 그려낸 이 소설에 가장 잘 드러나 있다. 십일 남매를 온전히 키워내는 일에 자신의 삶을 고스란히 바쳤지만, 그것조차 시대의 저항에 막혀 버거워했던 어머니의 삶을 절절하고 생명력 있는 언어들로 담아냈다.“오냐, 오냐, 니 쓰라린 속, 이 어메가 다 안다, 내가 다 안다.울어야 풀리겄으면 얼마든지 실컷 울어버려라.”섬 처녀인 점옹은 무엇이든 똑 부러지게 해내는 다부진 성격으로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줄곧 “우리 일등짜리”란 말을 듣는다. 특히 여성들이 교육받을 기회가 몹시 적었던 당시로서는 드물게 학교에 다니며, 학생들을 대표해 학교를 홍보하는 연설까지 할 정도로 당찬 인물이다. 게다가 재취 자리라는 주변의 수군거림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선생이자 `아담`같은 숙명의 상대인 한웅기와 결혼한다. 그 사이에서 십일 남매를 낳지만 그들의 삶은 점옹처럼 당차거나 다부진 것이 되지 못한다. 유일하게 둘째 아들인 승원만이 “우리 집안의 기둥”이 돼 형제들을 건사해가며 삶을 꾸려간다. 승원의 삶 역시 소설을 발표해 받는 쥐꼬리만한 원고료와 학생들을 가르치며 버는 박봉만으로는 버텨내기 힘든 것이었지만, 그때마다 어머니라는 존재가 삶의 균형을 맞춰주는`하늘 저울`이 돼 승원을 지켜낸다.▲ 소설가 한승원작가 자신이 동명의 등장인물로 분한 이 소설은 어머니에 대한 `깊이 읽기`인 동시에 한씨 자신의 삶과 문학 인생을 반추하는 자전적인 작품이다. 소설쓰기에 매진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을 쪼개 학생들을 가르치고, 형제들을 훌륭하게 건사해내며 비로소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완성해낼 수 있었던 것은, 역설적이지만 `소설` 때문이었다. 한승원은 지난해 출간한 장편소설 `물에 잠긴 아버지`의 기자간담회 자리에서도 “열심히 쓴 결과다. 동생들 키우고 시집 장가 보내는 걸 소설 쓰면서 다 해냈다”고 스스로 밝힌 바 있다. 그리고 지난한 현실에 절망하지 않고 소설이란 삶의 동아줄을 굳게 붙잡게 해준 구원 같은 존재가 바로 어머니였다. 자신만을 바라보는 처자식과 동생들에게는 보일 수 없었던 깊고 고단한 울음도 어머니의 품안에서만큼은 마음껏 터뜨릴 수 있었던 것이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6-10-14

“경제적 불평등·우경화·반 유대 더 이상 공화국이 아닌 프랑스”

자유·평등·박애의 나라 프랑스는 진정한 자유를 갈구하는 모든 이들의 유토피아였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유럽 경제가 곤두박질치고 범죄와 테러가 기승을 부리면서 프랑스인들 사이에서는 이민자들에 대한 반감이 갈수록 심해지는 상황이다. 지난해 1월 프랑스 시사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가 테러 공격을 당하자 프랑스 전역의 거리에 300만명 넘는 시위대가 쏟아져 나왔다.`프랑스판 9·11 테러`로 일컬어지는 이 사건을 시작으로 지난 한 해 잇따른 테러는 프랑스 사회의 모습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자유와 평등, 박애의 프랑스 대혁명 이념을 자랑했던 프랑스에서 테러 이후 국경을 닫아 이민자를 막자고 주장하며 이슬람에 적대적인 극우정당이 큰 인기를 끄는 이례적인 모습이 나타났다.정치인과 종교 지도자를 서슴지 않고 풍자한 샤를리 에브도 사무실에 난입해 총기를 난사, 편집장 샤르브 등 12명을 숨지게 한 테러범들이 프랑스에서 나고 자란 이민자 후손이라는데 큰 충격을 받은 프랑스에서는 이민자 통합이 실패했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왔다.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예견했던 프랑스의 석학 엠마뉘엘 토드는 최근 번역·출간된 자신의 저서 `샤를리는 누구인가?(희담)`에서 샤를리 에브도에 대한 테러 이후 이 사건이 불러일으킨 다양한 사회적 파장에 주목한다.엠마뉘엘 토드는 프랑스에서 사회적 약자에 불과한, 이슬람이라는 소수 종교에 대해서 풍자의 자유를 주장하는 무정부 신문사(샤를르 에브도)를 옹호하기 위해, 300만명 넘는 시민이 거리로 몰려나온 시위가 과연 정당한 행동이었는지 묻고 있다. 그는 프랑스가 공화국의 정신으로 돌아갈 것을 강조하고 이슬람 국가 출신 이민자들을 포함한 자국 내 모든 민족과의 동화정책을 지지한다.엠마뉘엘 토드는 이 시위에서 프랑스 사회가 직면한 정반대의 현실을 읽어낸다. 그는 프랑스 사회의 불평등을 야기한 중간계층이 시위를 주도했고 결과적으로 이슬람 혐오주의를 부추겼다고 본다. 그는 당시 시위대를 지리통계학적으로 분석하면서`나는 샤를리다`를 외치며 거리 곳곳을 행진했던 수백만의 샤를리들은 실상 이슬람 혐오와 종교적 배타성으로 똘똘 뭉친 중간계층이었으며, 추모집회가 프랑스 대도시에서만 일어났고, 도시 근교의 빈곤층과 젊은이들은 집회에 참여하지 않았음을 지적한다. 집회에 참여한 것은, 대도시에 거주하고 문화적으로 가톨릭 전통에 속하는, 이민자와 빈곤층으로부터 사회 불안을 느끼는 중산층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90년대 이후 대폭 증가한 이슬람 이민자들에 대한 반감을 가져오고 있었는데, 이렇게 축적된 이슬람 혐오가 “나는 샤를리다”라는 표현으로 분출됐다는 분석이다.저자는 경제적으로 불평등하고 우경화 경향으로 반유대주의까지 나타나는 오늘날 프랑스가 더이상 본질적 의미의 공화국이 아니라고 냉정하게 분석한다. 불평등과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하고 공화국 정신으로 되돌아갈 해법은 유럽연합 탈퇴라는 게 저자의 결론이다.한편 국립인구통계학연구소의 연구원인 엠마뉘엘 토드는 25세이던 1976년, 영아사망률을 근거로 소련의 몰락을 예견한 바 있다. 2007년에는 아랍 세계에서의 문맹률 감소와 출산율 상승으로 사회 변혁이 일어날 것이라며, 2010~2011년 아랍의 봄을 예측하기도 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6-10-14

수면박탈시대 현대인이여 성공하고 싶다면 숙면하라

`수면혁명`(민음사)은 수면 박탈의 시대, 일에 매몰돼 소진돼 가는 현대인에게`잠`의 중요성을 깨우치는 책이다. 미디어업계의 판도를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 인터넷매체 허핑턴 포스트의 창립자인 아리아나 허핑턴의 신작이다. 전작 `제3의 성공`에서 돈과 권력이라는 전통적인 기준에서 벗어나 웰빙과 지혜, 내면의 여유로 성공의 패러다임을 재정의했던 허핑턴은 이를 이루기 위한 토대로서 인간의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수면`에 주목하고, 숙면과 성공의 상관관계를 분석한다.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24시간 연결돼 있으며, 온갖 정보가 쏟아지고, 근심 걱정이 끊이지 않는 현대 사회에서 숙면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면서도 동시에 충족하기 어려운 욕구가 됐다. 허핑턴은 잠이 성공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치러야 하는 대가라는 착각에 반기를 들고, 진정으로 `잘살고` `성공하고` 싶다면 숙면의 시간을 충분히 확보하라고 단언한다.△아리아나 허핑턴의 수면 혁명 10계명1 매일 7~9시간을 자라.2 침실은 어둡고 시원하게 유지하라.3 훌륭한 베개와 잠옷이야말로 남는 투자다.4 잠들기 30분 전부터는 전자 기기를 사용하지 마라.5 침실 주변에서 스마트폰을 충전하지 마라.6 과식과 늦은 식사를 피해라.7 잠들기 전 따뜻한 물로 샤워하거나 목욕하라.8 간단한 스트레칭이나 요가, 명상 등으로 몸과 마음을 잠으로 유도하라.9 침대에서는 절대 일이나 공부를 하지 마라.10 `오늘의 감사 목록`을 작성하는 것으로 하루를 마감하라./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6-10-07

존재의 부조리·삶의 본질에 대한 치열한 사유

2004년 `현대문학`을 통해 시단에 나온 뒤 독특한 발상과 낯선 화법으로 개성적인 시 세계를 펼쳐온 이근화 시인의 네번째 시집`내가 무엇을 쓴다 해도`(창비)가 출간됐다.2000년대 시단을 뜨겁게 달궜던 `미래파 시인` 중의 한사람으로서 주목받았던 시인은 여러차례의 수상 경력에서 드러나듯이 한국 시단을 이끄는 젊은 시인으로서 두드러진 활동을 보여주면서, 활달한 상상력과 감각적인 언어가 어우러진 단정한 묘사와 사유가 돋보이는 시 세계를 견고하게 다져왔다.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감정이 절제된 차분하고 담백한 어조로 일상의 소소한 풍경을 섬세한 관찰력과 감각적인 언어로 그려낸다.욕망과 갈등이 들끓는 고단한 일상에서 마주칠 수밖에 없는 존재의 부조리함과 삶의 본질적인 문제를 냉철하게 응시하면서 “무감각하기만 한 일상의 시간”과 “나날의 삶이 기실 얼마나 메마르고 외롭고 위태로운 것인가를 알려주는 비명이자 침묵”(이영광, 추천사)의 목소리가 깊은 여운을 남기며 잔잔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이근화의 시는 한눈에 가늠하기가 어렵다. 일상의 사소한 사건들을 “그만한 이유가 있”고 “그도 그럴 것이다”(`택시는 의외로 빠르지 않다`)라는 짐짓 무심한 표정의 일상적 어법으로 이야기하지만 우리는 “도달할 곳이 없는 세계”(`네덜란드인과 결혼하기`)와 사물에 대한 시인의 세심한 사유를 엿볼 수 있다.시인은 “그냥 그럴 것”(`집으로 가는 길`)인 예사로운 풍경들 속에서 `정신의 거처`로서의 시를 찾는다. “우스운 과거와 무시 못할 가족력”(`택시는 의외로 빠르지 않다`)이 있고 “적막과 허무”뿐인 “정적과 암흑의 놀이터”(`코맥스 200)인 우리의 인생이 결국은 “불가능한 꽃/불가해한 꽃”(`산유화`)으로 피어나는 한편의 시라는 깨달음에 이르며 삶의 진실을 향해 다가서는 것이다.시인에게 일상은 “영원히 죽지 못하는 눈빛이 떠”도는 미지의 세계이며, 시인은 “네가 나의 절벽이 되는 삶”과 “재가 너의 향기가 되는 죽음 위에”(`눈사람`) 절박한 마음으로 서 있다. 공감과 소통은 단절되고 곳곳에서 “지옥의 음악 소리”가 “부글부글 흘러나오는” 이 공포의 세계에서 더이상 “슬픔은 들리지 않”고 “고독은 냄새 맡을 수 없”(`가짜 논란`)으며 고통은 흔적도 없다. 하지만 시인은 “길 위에 더럽게 버려진” 채 “오늘도 살아야”(`요양원`) 한다. “길거리에 마구 내뱉어진” 그가 돌아갈 집이라고는 비록 “헛된 망상처럼 높고 반듯하고 분명”(`내 죄가 나를 먹네`)한 신기루에 지나지 않지만, “침묵과 울분 속에서” 마치 “세상을 다 아는 눈빛”(`새의 가슴`)을 번뜩이면서 우리들의 삶에 다가서고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6-10-07

북촌, 그 정겨움에 대하여

한국문학의 대표 여성시인인 신달자(73) 시인이 열네 번째 시집 `북촌`(민음사)을 펴냈다.`백치애인``물 위를 걷는 여자` 등에서 인생의 관조가 배인 감성적 언어로 수많은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시인은 그간 삶의 고뇌를 섬세한 여성적 감성으로 표현한 에세이, 소설 등으로도 성가를 높이며 우리 문학에서 여성 시의 영역을 개척하고 대표해 온 작가로 평가받는다.`살 흐르다`이후 2년 만의 신작인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70편의 시들을 통해 서울 종로구 계동에 있는 서울의 대표 관광지이자 한옥 밀집 지역인 북촌 한옥마을에 대한 사랑과 예찬을 담아낸다.북촌은 다양한 문화재와 역사적 의미를 담고 있는 다채로운 공간과 전통가옥인 한옥들로 독특한 경관을 형성하고 있어 보존 가치가 높아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 서울 강남구 수서동 아파트에서 살던 그는 2014년 가을 그곳에 둥지를 틀었다. 작은 한옥에서 느끼는 불편함보다 북촌의 정겨움과 아름다움에 더 푹 빠졌다.북촌로 8길 26, 열 평 남짓 작은 한옥에 살고있는 시인은 2014년 가을, 누우면 “발 닿고 머리 닿는/ 봉숭아 씨만 한 방”으로 이사한 첫 밤에 그녀는 새 노트를 펴고 `북촌`이라고 썼고, 그것이 이 시집의 시작이 됐다. 그날부터 계동의 골목을, 가회동의 소나무길을 걸으며, 북촌이 가진 역사와 문화와 삶을 가까이 보면서, 한 편 한 편 시를 써나갔다. 그곳의 삶 그 무엇 하나 그녀를 사로잡지 않는 것이 없었다. 북촌에 사는 내내 “온몸의 살과 뼈 피까지 옹골지게도 앓”으며 “누가 맘먹고 호미로 온몸을 조근조근 찢어 대는” 것처럼 아팠지만, 북촌을 써야 한다는 의욕으로 통증을 견디어 냈다. 그런 절실함으로 써낸 이 시집에는 “지상에서 가장 애틋한 언어”이자 “혀가 잘려도 해야 할 말”이 오롯이 담겨 있다.경복궁과 창덕궁 사이 골목골목에서 만나는 근대사의 유적과 인물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빚어내는 풍경들을 바라보며, “골목으로 들어서 골목으로 돌아돌아/ 다시 골목으로 이어지는” “골목골목이 소곤거리고 계단마다 반짝거리는 햇살”이 부서지는 북촌에서 그녀는 “열 평만 내 것인 줄 알았는데/ 북촌이 다 내 것”이라는 충만함을 느낀다. 그녀는 북촌을 “고향 품” 같고 “엄마 품” 같다고, “내 생의 중심”이자 “내 혼의 종착지”이자 “내 생의 출발 지점”이라고 노래한다. “극세공의 필치로 쓴 역사가 있고/ 핏줄을 뽑아 그린 화가의 그림이 있고/ 목숨으로 지킨 나라 사랑이 곳곳에 보일” “단 한마디 아름다움이란 말 놓칠 수 없는/ 북촌”은 “이 골목 저 골목이 모두 역사의 현장”이며, “북촌의 어느 땅이건 다 성지다”. “일제 시대가 흐르고/ 한국 전쟁이 흐르고 새마을 운동 산업화 시대가 흐르고/ 알파고 시대”가 흐르는, “지금도 스치면 불붙는” 뜨거운 피가 흐르는 곳이다. 가장 오래된 것과 가장 새로운 것이 섞여 있는 곳, 북촌. “고요를 만지다가 더 큰 고요로/ 나직하게 침묵의 길을 걸으면서”, “이 집 처마와/ 저 집 처마가/ 닭 벼슬 부딪치듯/ 사랑싸움을 하”는 사람 냄새 풍기는 북촌. “누구라도 아늑하게 마음을 담는”, “누구라도 의지하고 말 터놓고 싶은”, “내 몸보다 더 편안한 곳” 북촌을 노래한 이 시집에서 우리는 “어디라도 손 내밀면 누구라도 만날 수 있는/ 따뜻한 길이 열리는 시간”을 만난다. 경남 거창 출생으로 1964년 등단한 신달자 시인은 시집 `봉헌문자`, `아버지의 빛`, `열애`, `종이` 등과 수필집 `다시 부는 바람`, `백치애인` 등을 펴냈다. 대한민국문학상, 한국시인협회상, 영랑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대산문학상 등을 수상하고 은관문화훈장을 받았으며, 한국시인협회 회장을 지냈다.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이다./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6-1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