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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신간 책꽂이

◆`딴짓의 힘` · 프리윌어떤 일을 하고 있을 때 그 일과는 전혀 관계없는 행동을 하는 걸 보고 `딴짓`이라고 한다. 물론 부정적인 의미에서 사용되는 단어다. 하지만, 딴짓이 전혀 무용한 행위일까? 이 책은 그 의문에 대한 세세한 답변으로 읽힌다. 저자인 김충만은 이렇게 말한다. “딴짓은 올바른 선택을 위해 자극과 반응 사이의 틈을 가지는 행위다.”딴짓을 통해 삶의 주도권을 회복하고, 스스로 자신다워지는 시간을 경험하자고 권유하는 책은 `딴짓`이 생존의 상황에 떠밀려 잃어버렸던 자기를 되찾고 내면을 탐색하는 마음의 눈을 열어줄 것이라고 설파하고 있다. “딴짓의 본질은 돌아옴”이라면서. ◆`NL 현대사` · 인물과사상사반독재·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이 숨 가쁘게 전개되던 1980년대와 1990년대. 우리는 이 시기를 `격동의 시대`라고 부른다. 적지 않은 수의 대학생들이 사회변혁운동에 투신했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학생운동의 주류로 떠오른 것이 바로 `NL(민족해방) 노선`이었다. 책은 지난 30년간 한국 학생운동과 사회운동에 큰 영향을 끼친 NL의 성쇠를 가감 없이 보여준다.`NL의 등장` `NL의 전성기와 전대협` `갈등과 분열` 등 3장으로 나눠 서술되는 책의 저자는 박찬수. 1964년에 태어난 그는 1980년대에 대학에 다녔고, 1989년에 한겨레신문에 입사해 현재는 논설실장으로 일하고 있다. ◆`카페에서 읽는 수학` · 북카라반많은 사람들이 어렵고 골치 아픈 학문이라 생각하는 수학. 그 수학에 얽힌 일상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낸 책이다. 수학자 크리스티안 헤세가 독일의 주간지에 기고한 글을 모아 엮었다. “수학은 우리의 일상 곳곳에 숨어 있다. 그리고, 수학은 사랑과 음악처럼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준다”는 출판사의 홍보문구가 눈에 띈다.평범한 사람이 생활 속에서 고차방정식이나 미적분을 풀어야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지만, 수학적 사고는 “세상을 좀 더 명확하게 보고, 무언가를 결정해야 할 순간이 되면 우리에게 도움을 준다” 것이 저자의 설명. 번역은 독일에서 공부한 고은주 씨가 맡았다. ◆`뇌세포 재활로 치매 치료 가능하다` · 공감이른바 `100세 시대`다. 의학과 과학기술의 발달로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지난 시절에 비해 현격히 늘었다. 이는 떨어진 뇌의 기능을 가지고 길어진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과 동일한 의미이기도 하다. 책은 “노후를 어떤 상태로 보내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완전히 달라진다”고 말한다. 저자는 치매 예방·치료 전문의인 김철수.“치매를 치료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하는 것”이란 선언이 눈길을 붙잡는다. 파괴된 뇌세포는 `재생`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한의학적으로 접근하면 `재활`은 가능하다는 주장 아래 새로운 관점의 치매 예방법과 치료법을 소개하고 있다./홍성식기자hss@kbmaeil.com

2017-12-01

표면적 일상에서 찾아낸 스웨덴의 내면

여름 어느 날. 길고 검은 머리칼과 까만 눈동자를 가진 조그만 동양 여자 하나가 스웨덴 웁살라 중앙역에 도착했다. 커다란 여행가방 2개엔 40kg에 육박하는 무거운 짐이 담겨있었고, 양 손에 들 수 없어 어깨에 가로질러 멘 노트북컴퓨터의 무게도 만만찮았다. 하지만, 여자는 별 걱정을 하지 않았다.몇 해 전 영국 여행에서 미리 체험한 유럽 남자들의 친절을 믿었기 때문이다. 런던 지하철 계단에서 끙끙거리며 짐을 옮길 때 아무 말 없이 묵묵히 자신의 큼직한 가방을 대신 들어주던 신사도를 스웨덴에서도 기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건 착각이었다.낑낑대며 플랫폼을 거쳐 역을 빠져나갈 때까지 자신보다 머리 하나가 더 큰 건장한 스웨덴 사내들 중 누구도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았다.여자가 스웨덴 남자들의 첫인상을 `차갑고 매몰찬 등을 가졌다`고 말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런데, 왜 그들은 그녀를 돕지 않았을까? 어떤 이유가 있어 스웨덴 남자들은 여자의 무거운 짐을 들어주는 인간적인 매너를 발휘하지 못했을까?위에 소개한 일화는 소설가 박수영이 직접 겪은 것이다. `매혹` `도취` 등의 장편소설로 작가로서의 입지를 굳혀가던 그녀는 마흔 셋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스웨덴으로 건너가 웁살라대학에서 유럽 현대사를 공부했다.말수 적고, 속내를 드러내는 법이 거의 없는 박수영. 그녀 안에 어떤 들뜬 열망이 숨겨져 있었기에 천리타국 먼 곳에서 `존재의 방향전환`을 도모한 것일까?책은 2년 6개월의 스웨덴 생활을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온 박수영이 위의 질문에 내놓은 답변으로 읽힌다.책의 부제는 보다 구체적이다. `북유럽에서 만난 유쾌한 몽상가들`. 이 책은 여행기나 체류기라기보단 한 작가의 꿈과 지향에 대한 고백서로 읽힌다.기자에게 스웨덴은 실물이 아닌 추상으로 존재했다. 나라 이름을 입 속으로 중얼거릴 때면 `길버트 그레이프`를 연출한 라세 할스트롬 감독이 떠올랐고, 독특한 시각으로 뱀파이어를 해석한 `렛 미 인`에서 화면 가득 펼쳐지던 눈 덮인 북유럽의 쓸쓸한 풍광이 그려졌을 뿐이다.스웨덴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다는 건 다수의 한국인들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그 나라의 정치제도와 역사, 사회민주주의 전통, 여기에 공존하는 시니컬과 다정다감을 제대로 알고 있는 독자 역시 많지 않을 듯하다.▲ 박수영 작가그런 이유에서다. 그곳에 머물며 인간과 세계를 꼼꼼하게 들여다본 박수영이 들려주는 진솔한 자기고백은 추상이 아닌 실체로서의 스웨덴을 이해하는데 기여한다.책은 국적과 나이, 인종이 각기 다른 7명의 웁살라대학 역사학과 학생들의 일상에 밀착해 전개된다. 그들의 사랑과 실연, 사소한 것에서 발견한 행복에 기뻐하는 모습을 따라가다 보면 공감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하지만, 박수영은 `즐거움`만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스웨덴에서 살아가는 청년들의 표면적 일상에서 인간과 세계의 내면적 비밀을 찾아내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은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스톡홀름, 오후 두 시의 기억`이 여타의 가벼운 여행서나 해외 체류일기와 변별되는 가장 큰 미덕이다.가진 자가 오만하지 않고 가난한 자는 비굴하지 않아도 되는 나라. 부(富)가 개인적 능력이 아닌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사회제도에서 탄생한다고 믿는 스웨덴을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펴든다면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17-11-24

신간 책꽂이

◆`모든 순간의 철학` · 현암사비단 `철학적 문제`에 관해 진지하게 고민해보지 않은 사람들이라도 한 번쯤은 떠올렸을 법한 질문들이 있다. “나는 누구인가?” “인간은 어떤 것을 지향하며 살아야 하는가?” “내가 죽으면 가는 곳은 어디일까?” 쉽게 답을 얻을 수 없는 물음이다.`철학`이라고 하면 어렵고 사변적인 것이라 지레짐작하고 더 이상 공부하거나 접근하기를 포기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철학아카데미 상임위원이자 서울대학교 평생교육원 철학 교수로 활동하고 있는 박남희 씨는 이런 사람들을 위해 `철학의 실마리`를 어디에서 찾을 것인지 안내한다. 책의 부제는 `일상을 바꾸는 새로운 시선`. ◆`집단감성의 계보` · 앨피“감성 연구는 신자유주의를 정면으로 통과하고 있는 현대 한국사회와 세계화 시대에 인문성의 역할과 회복을 재성찰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문장은 문자가 아닌 추상으로 존재하는 `감성`을 연구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에 대한 답변이다.책은 인문학의 사회성 회복을 추구하는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감성팀`의 연구 성과물이다. 이들은 감성 연구를 매개로 인문과학과 사회과학을 통섭해 한국학으로 재구성하고자 노력해왔다. “집단감성의 역사적 형성과 영향을 계보학적 관점에서 연구하고, 이것을 동아시아라는 지역적 관점에 접목시켰다”는 것이 출판사의 설명. ◆`1장 1단` · 파랑새미디어`먼지 쌓인 일기장/빛바랜 사진/오랜 추억…/기억은/잔물결이 일렁거리는 호수와 같은 것인가.` 때로 한 장의 사진은 어떤 글보다 진한 여운을 남긴다. 전혀 특별하지 않은 피사체를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며 작업을 이어왔기에 `휴머니즘을 지닌 포토그래퍼`로 평가받는 정현진 씨가 내놓은 `산문 사진집`이다.“정현진의 사진은 거울처럼 맑디맑은 바다를 닮았다. 거창한 비주얼과 메시지가 없지만 바라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의 사진을 접하면서 명상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 책을 접한 한 독자의 감상이다. 어깨에 힘을 뺀 사진들이 인상적. ◆`왜 거기에 수도가 있을까` · 푸른길서아프리카에 위치한 국가들의 수도는 왜 해안에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을까? 동부 유럽 국가의 수도들은 왜 다뉴브강을 끼고 있을까? 대학시절부터 지리학 연구에 관심을 가져온 고등학교 교사 강순돌 씨는 위와 같은 의문을 가졌다. 그리고는 그 답을 찾아 나섰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수도의 입지와 분포를 살폈다.책은 조사 결과를 토대로 67개 나라와 유럽연합의 수도를 11개의 유형으로 분류하고 있다. 이를 통해 한 나라 수도의 위치는 지리와 입지, 역사와 정치적 상황이 유기적으로 고려돼 결정된다는 것이 드러났다. 흥미롭게 읽히는 지리학 입문서다./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17-11-24

“구글·알파고에게 없는 것 그것이 나에게 있다”

시가 `천 마디의 말을 대신하는 한 줄 문장의 울림`이라고 정의될 수 있다면, 시인이 바로 `그 문장`을 쓰는 자라면 고은(84)은 더 이상 구구한 설명이 필요 없는 사람이다. 올해로 시력(詩歷) 58년. 출간한 책의 수를 헤아리는 것은 더 이상 무의미한 일이다. 해마다 노벨문학상의 유력 수상작가로 오르내린다는 것 역시 그렇다. 그의 최근 시집 `초혼`을 펼친다. `대체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이 눈에 띈다. 응축된 언어를 통해 짧지만 강한 울림을 주는 시 한 편.구글 알파고에게 없는 것그것이 나에게 있다슬픔 그리고 마음집에 돌아와 신발을 벗고 뉘우친다내 슬픔은 얼마나 슬픔인가내 마음은얼마나 몹쓸 마음 아닌가등불을 껐다.`슬픔`과 `마음`을 인간만의 특질로 파악한 노시인은 지극한 자기반성 끝에 `등불`을 꺼버린다. 이후 암전의 시간에 대한 해석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둔 채. 젊은 시인들의 궤변에 가까운 긴 문장에선 찾아보기 힘들었던 `여운`이다.이미 수백 수천 명의 평자들이 달라붙어 해석한 고은의 시세계를 미시적으로 중언부언 다시 거론하는 건 무의미하다. 그건 기자의 역할도 아니다. 다만, 문학평론가 조재룡의 아래 진술은 `거시적` 차원에서의 이야기라 새겨들을 만하다.“고은 시인은 무수한 사건과 숱한 시간들, 다양한 장소를 사그라지지 않는 메아리처럼 백지 위로 끌어내었지만, 그의 시가 역사를 움켜쥐는 방식은 개인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모색되는 이야기의 새로운 길이었다.”고은의 시는 `역사`란 시간에 다름 아니고, 역사에 대한 문학적 모색은 시간 안에 존재했던 인간을 탐구하는 것이란 주지의 사실을 보여준다. 누구도 쉬이 가닿을 수 없었던 철학적 경지다.`초혼`의 마지막 페이지. 여든넷의 고은은 지구 위 명멸했던 몇 안 되는 초탈자의 목소리로 이런 말을 들려준다. 독자들의 가슴이 뜨겁게 서늘해진다.“다음을 기약하지 않는다. 그토록 숨찰 것도 없지 않은가.”/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17-11-24

신간 책꽂이

◆`이방인의 성`·멘토프레스낭만적이고 낙관적인 이야기를 다루는 `스팀펑크` 지향의 SF소설이다. `대체역사소설`이라 불러도 무방하다.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에 매몰됐던 사이버펑크에 대립되는 개념이라는 게 출판사의 설명이다. 저자는 서구문학 애호가였던 홍준영.조선 개국 619년인 2010년. 조선 국왕의 형인 합선대군은 경인민란 61주년을 맞아 세계적인 연회를 열려고 한다. `경인민란`이란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세력이 맞붙었던 전쟁. `IF(만약에)…`라는 개념을 사용해 실제 역사 속에서는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 만약에 발생했다면 현재는 어떠했을 지를 작가적 상상력으로 풀어나간다. ◆`브라이덜 패션 이야기`· 클라우드나인“고객에게 최고의 절정 체험을 선사하라”는 슬로건 아래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웨딩드레스를 만들어온 이은실 씨의 이야기를 담았다. 현직 패션 디렉터의 경험이 가감 없이 녹아든 마케팅 지침서인 동시에 결혼을 앞둔 신부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책이다. 이은실 씨는 2개의 웨딩드레스숍을 직접 운영하는 경영자다.“이 책은 웨딩드레스에 대한 딱딱한 이론서가 아닌 세계 유명 셀럽들의 이야기와 다양한 최신 웨딩드레스 화보들이 가득한 흥미로운 서적”이라는 홍보 카피가 과장이 아니라는 건 책을 확인하면 알 수 있다. ◆`이 낯선 마음이 사랑일까` · 마음서재`꽃잎에도 색깔이 있고/향기가 있고 모양이 있듯이/사람에게도 색깔이 있고/향기가 있고 모양이 있어요`. 가끔은 SNS에서 확인하는 별 것 아닌 문장이 마음을 흔들 때가 있다. 그렇다. 백년을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옮겨질 문장은 흔치 않다.10년간 거의 매일 감상적인 SNS 메시지를 전달함으로써 사람들의 주목을 받아온 이근대 씨의 책은 흔들리고 아픈 삶을 살아가는 이들을 따스하게 위로한다. 사랑한다는 것, 관계 맺는다는 것, 이것들 속에서 삶을 살아간다는 건 일견 우습게 보이지만 더없이 진지한 일이다. 책은 그 소박하고도 부정할 수 없는 진리를 보여준다. ◆`엄마표 영어, 놀이가 답이다` · 다산지식하우스워킹맘이자 초등학교 교사가 쓴 실용 교육서. 저자인 이규도 씨는 “선생님들은 자녀들에게 어떻게 영어를 가르칠까요”라는 물음에 대한 답변으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이 씨는 11년차 초등학교 영어 교사다. 자신만의 영어교육 노하우가 없을 수 없다. 책은 `쉽고 재미있는 엄마표 영어교육 방법론`이라 요약될 수 있다.저자는 “영어를 잘하는 것과 잘 가르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고 말한다. 중학교 영어수업을 듣고 이해할 정도의 실력에 `스킬`만 갖추면 아이들을 가르치는데 어려움이 없다는 이야기다. 그 스킬은 무엇일까? 답은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17-11-17

신은 과연 인간을 창조했는가… 도발 질문 왜?

“종교에서 진리란 그저 살아남은 견해를 지칭할 뿐이다.”-오스카 와일드“누군가 망상에 시달리면 `정신 이상`이라고 한다. 다수가 망상에 시달리면 `종교`라고 한다.”-로버트 퍼시그“종교를 비판한다는 것은 도덕적 타락이 아니라 연민과 사랑 등 인간 본연의 가치를 찾는 일이다.”- 필립 풀먼어떤 형태로건 신(神)의 존재를 믿는 사람들이 들으면 놀랄만한 인용의 열거다. 영국 옥스퍼드대학 리처드 도킨스 석좌교수의 `만들어진 신(The God Delusion)`에는 위와 같은 인용이 시시때때로 등장한다.“신은 과연 인간을 창조했는가?”라는 도발적인 질문을 부제로 단 이 책에서 도킨스 교수는 “종교가 없었다면 자살 폭파범도, 9·11 사태도, 마녀도, 인도 분할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쟁도, 고대 석상을 파괴하는 탈레반도, 유대인 박해도, 속살을 보였다는 이유로 여성에게 채찍질을 가하는 행위도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이에 더해 도킨스 교수는 “신이 존재한다는 것은 우주에 관한 과학적 가설 중 하나로서 다른 모든 가설들처럼 회의적으로 분석돼야 한다”며 “이제까지 신학자들에 의해 제기된 신의 존재에 대한 논증은 대단히 취약하다”고 지적한다.전작 `이기적 유전자`와 `눈 먼 시계공` 등을 통해 독자들에게 알려졌다시피 그는 찰스 다윈이 주창한 `진화론`의 철저한 추종자이자 지지자다. 이런 철학적 신념을 바탕으로 도킨스는 `창조론`을 논박하고, 종교의 불합리성이 야기한 각종 사회적 해악을 비판해왔다.“끊이지 않는 전쟁과 가난, 아동학대와 동성애자 인권유린 등은 모두 종교에 대한 잘못된 믿음에서 왔다”며 신을 믿지 않거나 부정하는 무신론자들은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무신론자가 된다는 것은 결코 구차하게 변명해야 할 일이 아니다. 오히려 먼 지평선을 바라보며 당당히 나서야 할 일이다. 무신론은 언제나 마음의 건전한 독립성 즉, 건강한 마음을 나타내기 때문”이라는 게 도킨스 교수의 주장이다.▲ 리처드 도킨스 석좌교수 /연합뉴스도킨스 교수의 비판은 특정한 종교에 국한되지 않는다. “조지 부시는 신으로부터 이라크를 침공하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신은 그곳에 대량 살상무기가 없다는 계시를 내려주지는 않았다”는 말로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비난하는 도킨스는 아랍 세계를 지배하는 이슬람교의 불합리와 비이성에 관해서도 쓴소리를 쏟아낸다.“탈레반 치하의 아프가니스탄에서 동성애에 대한 공식적인 처벌은 사형이었다. 산 채로 묻은 뒤 그 위에 벽을 쌓는 방법을 사용했다. 그 죄는 다른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고, 성인들 사이의 동의에 따라 이루어진 사적인 행위임에도 그러했다.”`만들어진 신`을 통해 도킨스가 이르고자 한 지점은 `인간, 그 스스로에 대한 신뢰 획득`으로 요약될 수 있을 듯하다. 신 앞에서 무너졌던 존엄을 되찾아 스스로 희망을 제시할 수 있는 존재로서의 인간이 되어야한다는 것. 신에게 빼앗겼던 사랑과 연민이라는 인간 본연의 가치가 회복돼야 한다는 것 말이다./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17-11-17

삶의 벼랑 끝에서 체득한 인간과 세계의 진실

“인간에 대한 사랑과 예의, 삶에 대한 외경과 겸손을 체험적 고백으로 깨우쳐준다”는 이해인 시인의 추천사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루게릭병을 앓고 있는 소설가 정태규의 책 `당신은 모를 것이다`는 평범하게 길을 걷고 밥을 먹으며, 책을 읽고 글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가를 깨닫게 해준다.이 책은 손이 아닌 안구 마우스로 어렵게 써내려간 고통과 그 고통을 극복한 기록에 다름없다. 그래서인지 느껴지는 감동의 진폭이 여느 책과는 다르다.전직 국어교사이기도 했던 저자 정태규는 루게릭병으로 7년째 투병 중이다. 어느 가을 아침. 출근 준비를 하던 중 루게릭병의 전조를 느꼈고, 이후 힘이 없어지는 팔다리와 가벼운 물건조차 들지 못하게 된 상황에 절망하게 된다. 하지만, 정 씨는 그 절망에 굴복하지 않고 가혹한 운명을 이겨내며 `구원으로서의 글쓰기`를 이어가고 있다.`죽음 자체는 두렵지 않다. 누구나 언젠가는 죽는다. 다만 두려운 것은 죽음에 대해, 육체의 감옥에 갇혀 눈만 깜빡일 수밖에 없는 이 불행에 대해, 나 자신이 분노나 공포에 사로잡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다`라는 정태규의 문장은 삶의 벼랑 끝에서 체득한 인간과 세계에 관한 진실을 아프게 보여준다.책을 접한 시인 김용택은 “죽음과 삶의 경계를 넘나드는 나비 같은 사람, 그 사람 정태규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노래를 들으며 우리는 다시 저쪽에서 환생하고, 또 이쪽에서 부활하고, 여기에서 새로 태어난다”는 말로 정태규와 정태규의 문장을 따스하게 감싸 안았다.극단의 불행 속에서 극적인 희망을 찾아 나서는 사람들에게서는 `미시적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이 발견된다. “그토록 보잘것없는 순간들을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다”는 진술은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우리를 둘러싼 일상의 풍경이 실상은 얼마나 귀한 보물인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만화가 이현세는 “고통의 병상에서 스스로를 구원하는 정태규를 보며 힘을 얻는다. 그를 통해 살아 있는 매 순간의 놀라운 기적을 경험한다”고 했다./홍성식기자

2017-11-17

신간 책꽂이

◆`그늘진 말들에 꽃이 핀다` · 창비“소리 없는 절창, 이 시들이 숨은 무명의 세월이 무자비하다”는 고은 시인의 추천사가 눈길을 끈다. 2010년 문예계간지 `문학동네`를 통해 독자들과 만난 박신규 시인이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랜 기간 응시하며 7년 만에 펴낸 첫 시집.책을 접한 평론가들은 “그늘진 말들에 꽃을 피우려는 처연한 미학”으로 박신규의 작품들을 규정했다. 삶을 압도하는 죽음에 관한 시인 특유의 인식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죽을 만큼 아팠다는 것은/죽지 않고 살아남았다는 것`이란 대목이 독자의 가슴을 친다. 1972년 전북 남원에서 태어난 박신규는 중앙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함부로 말할 수 없다` · 새움20여 년 기자 생활을 접고 사진작가로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는 허영한의 사진 에세이. 기자 시절에도 두 권의 사진집을 출간했고, 여러 매체에 칼럼을 쓰기도 했던 허영한의 글 솜씨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사진이 더해진 31편의 매혹적인 에세이가 흥미롭게 읽힌다. 출판사측은 “사진의 프레임에는 미처 담을 수 없었던 작가의 사유와 느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거리에 서서 유명 인사들의 사진을 바라보고 있는 쓸쓸한 남자의 뒷모습은 존재한다는 것과 사라진다는 것, 빛난다는 것과 어두워진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여자의 모든 인생은 20대에 결정된다-실천편` · 해냄한국을 넘어 중국과 대만 등에서도 선풍적 인기를 끈 `여자의 모든 인생은 20대에 결정된다`에 이은 `실천편`이다. 기존의 책을 새롭게 구성하고 내용을 추가했다. “나 역시 주어진 환경에 순응해 도전을 두려워하던 시절이 있었다”고 고백하는 저자는 현명한 선택과 용기 있는 행동을 통해 생을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20대 여성들에게 `반전 있는 삶`을 설파하고 있는 남인숙은 이 책을 통해 실패가 두려워 도전하지 않는 것은 자신을 버리는 행위라고 조언하고 있다. “20대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결정된다”는 문장은 짧지만 그 울림이 크다. ◆`여섯 살 미술 공부를 시작할 나이` · 라온북아동교육에 관해 공부한 학자들은 `여섯 살`이란 나이를 “잠들어 있는 창의력을 깨우기 가장 좋은 나이”라고 말한다. 경남 진영에서 스토리텔링에 기반한 아동 미술교육을 하고 있는 이유미가 그간의 경험을 통해 얻은 노하우를 담은 책이다.“미술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훌륭한 성장의 밑거름인지를 확인한 저자가 아이들을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주인공으로 키울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는 것이 출판사의 부연이다. 미술교육의 방법론에 앞서 미술이 지닌 가치를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 이채롭다. 미술교육에도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독자들이 주목할 듯./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17-11-10

“오늘은 어떤 의미의 냄새로 기억될 것인가 ”

▲ “늘 자기갱신을 시도하는 작가로 살고 싶다”고 말하는 이병철 시인.시 쓰는 행위를 `언어와의 연애`에 비유할 수 있다면, 첫 시집을 출간한다는 것은 그 연애가 결혼으로 이어져 첫 번째 아이를 낳은 것과 다름없다. 주위 사람들과 독자의 축하가 이어지는 건 당연하다.2014년 `시인수첩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한 젊은 시인 이병철(33)이 첫 시집을 냈다. 이름하여 `오늘의 냄새`.이병철 시인은 드라마틱하고 유쾌한 삶을 사는 사람이다. 그는 지난해 겨울 배낭을 꾸리고 낚싯대를 챙겨 홀로 노르웨이로 떠났다. 이유는 단순했다. `오로라를 보고 싶어서`였다. 얼음 섞인 칼바람이 몰아치는 무인지경의 설원에 텐트를 치고 잤다고 한다. 그 모험심과 용기를 흉내 낼 사람이 많지 않을 듯했다.이 시인은 시라는 장르에만 얽매이지 않고 문학평론과 칼럼, 여행기까지 종횡한다. `경북매일`과 `경향신문`엔 사회문제를 문화적으로 해석하는 칼럼을 연재하고, `조선일보`엔 여행기를 싣기도 했다. 열린 태도와 시선을 가지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다.취미가 다양한 그는 어느 날엔 아마추어 야구단의 에이스로 운동장을 뛰고, 또 다른 날 밤엔 쏘가리를 낚으러 남쪽 끝자락 어둠에 잠긴 강으로 차를 몰기도 한다.어느 누구도 온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세상에서 `자유를 지향하며` 사는 이병철 시인. 시집 `오늘의 냄새`엔 그의 내면풍경과 세계인식이 고스란히 담겨있을 게 분명했다.이병철과 그의 첫 시집이 궁금했다. 깊어진 가을, 노랗게 물든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공원에서 `문학의 가시밭길`에 막 발을 내디딘 `청년작가` 이병철을 만났다.- 첫 시집이다. `활자화 된 첫 번째 자식`을 낳은 격이다. 어떤 심정인가.“내가 쓴 시가 누군가의 손에 들려 읽힌다고 생각하니 은밀한 부분을 내보이는 것 같아 부끄럽기도 하지만, 시를 읽은 사람들이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떤 말을 할지 궁금해 하는 자체만으로 재밌고 신난다. 여기저기 흩어진 자재들을 모아 겨우 집 한 채 지었는데 아무도 안 들어오면 어떡하나 걱정도 된다.”- `오늘의 냄새`라니, 시집의 제목이 독특하다.“시는 사유보다 감각의 언어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각이나 청각을 이미지화한 시들은 많지만 후각은 상대적으로 소외돼 왔다. 가장 예민한 감각임에도. 냄새를 통해 과거의 장면과 당시의 구체적 감정들을 기억해내는, `냄새`라는 라벨을 붙여 시간을 `넘버링`하는 습성이 내겐 있다. `오늘`이라는 시간을, 이 현상세계를 `냄새`를 통해 의미화하려는 열망이 수반된 제목이다.”- 시인이 되고자 마음먹었던 때는 언제인가?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지.“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문예창작과에 입학해 처음 들은 수업이 `시론`이었다. 시라는 것이 대중가요 가사 같은 말랑말랑한 게 전부인 줄 알았는데, 수업을 통해 시가 상상력과 해석으로 이전에 없던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내는 연금술임을 목격하고는 매료돼버렸다. 그 스무 살 때부터 시인을 꿈꾸었다.”- 여행을 좋아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여행이 글을 쓰는데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익숙한 삶의 자리에 오래 머물다보면 정신도 둔해지고 감각도 퇴화되는데, 그때 낯선 이국이나 예측할 수 없는 자연으로 간다. 그러면 사소한 것에도 긴장하고, 두렵고, 놀라고, 감동하게 된다. 무뎌졌던 감각들이 벼려지고, 한 번도 해본 적 없던 생각들이 태어난다. 그렇게 얻은 감각과 정신의 자극들이 내면에 새겨져 시로 형상화되는 것이다.”- 사숙한 선배 시인이나 작가가 있는지.“송재학, 장석주 시인을 동경했다. 송재학 시인의 경우 현란한 수사와 은유를 통해 성취한 미적 완결성을 마주하면 짓눌리는 듯하면서도 쾌감을 느낀다. `이미지의 가학성`이 좋았다. 장석주 시인은 학부 시절 은사다. 시를 쓰는 정신을 강조하셨고, 시집 `햇빛사냥`에 실린 초기 시편들을 통해 이미지나 발화법 등의 영향을 받았다.”- “20~30대 한국 시인들은 가볍고 어렵다”는 평가가 있다.“주도적 경향이나 담론이 없다는 데서 오히려 다양성이 움트는 것 같다. 이데올로기에서도 자유롭고, 동일한 범주로 묶일만한 일률적인 개성도 아니라는 것이다. 무겁지 않고, 전위라 할 만한 파격도 없지만, 서로 닮아있지도 않다. 이 `다양성`이 `가벼움`에 대한 변론인 동시에 `어려움`에 대한 옹호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교류하는 동년배 작가는 누구인가?“대학원을 같이 다닌 황종권 시인과 친하다. 매주 만나 함께 술을 마신다. 시 이야기로 밤을 지새울 때도 있고, 먹고사는 문제 등 당장의 현실과 앞날에 대한 걱정을 토로하기도 하고, 낚시, 여행, 운동 등 취미와 취향에 관한 대화를 하기도 한다. 장가갈 때가 돼선지 이성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하고.(웃음)”- 당신이 주목하는 또래 작가는.“`예술창작아카데미`에서 함께 활동한 황유원, 배수연, 정현우, 홍지호, 박세미, 최지인, 안태운 시인 등이다. 내가 쓸 수 없는 문장을 쓰고, 낼 수 없는 목소리를 내는 시인들이다. 황유원, 안태운 시인은 김수영문학상을 받았고, 최지인 시인은 얼마 전 첫 시집을 냈다. 배수연, 박세미 시인도 곧 시집이 나올 예정이다. 정현우 시인의 유려한 이미지와 홍지호 시인의 담담한 진술은 흉내 내고 싶은 장기다.”- 한국문단엔 `낚시`를 좋아하는 작가들이 적지 않다. 당신도 그렇다고 들었다. 낚시가 창작에도 도움을 주는가?“낚시는 볼 수 없고 알 수 없는 것을 향해 감각을 기울이는 행위다. 거기 무엇이 있는지 모르면서 채비를 던지고, 가느다란 줄에 전해져오는 물의 흐름과 물속 지형을 느끼면서 상상하는 것이다. 감각을 통해 미지의 세계를 이미지화하는 작업이라는 점에서 낚시는 창작과 비슷하다.”- 평론가 박상수는 이번 시집에선 `불`과 `물`의 이미지가 동시에 보인다고 했는데.“`불`은 내면에 각인된 최초의 폭력을 상징하는 이미지인데, 불 이미지가 사용된 시편들에서 불을 패배적으로 수용하기보다 오히려 극복하고 자신의 힘으로 통제할 때 희열을 느끼는 태도들이 나타난다. 반면 `물`은 내 힘으로 닿지 못하는 곳에 나를 닿게 하는 이동과 전이의 방법론이다. 불과 달리 물에는 수동적으로 침잠되거나 유속성에 존재를 내맡기는데, 어린 시절부터 물을 좋아하고 편안하게 느껴온 것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 여러 작품에서 `가족`의 냄새가 맡아진다. 가족은 당신과 당신 시에 있어 어떤 의미인가?“가족은 완전했던, 지금은 없는 유토피아다. 유년기를 배경으로 한 시들이 유독 많은 것은 유토피아로의 회귀를 꿈꾸기 때문이다. 불가능한 꿈이지만. `가족해체시대`를 온몸으로 살면서 여섯이었던 대식구가 1인가구로 축소되는 걸 경험했다. 닿고 싶으나 닿을 수 없는 이상향이자 미적 원형, 해체되고 분열된 실낙원이나 아직은 사라지지 않은, 그래서 한없이 소중하고 아픈 세상이다.”- 시집 `오늘의 냄새`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해명하기 힘든 슬픔`과 `서늘한 뜨거움`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동의하는가?“기쁨, 슬픔, 분노, 사랑… 감정은 명명하고 규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원색 뿐 아니라 중간 색조가 있듯 슬픔과 기쁨의 중간, 사랑과 증오의 중간이 있고. 슬픈데 왜 슬픈지 알 수 없는 슬픔이 내겐 많다. 감각 또한 명확한 규정을 거부한다. 싫은데도 좋은 자극이 있다. 쾌감과 고통은 사실 한 몸이다. 그 모호한 지점, 경계가 불명확한 세계를 표현하고 싶었다.”- 첫 시집을 통해 독자들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가.“세계는 관념이 아니라 감각이 지배하는 곳이라는 것, 인간은 사유보다 감각이 먼저 작동하는 동물이라는 것, 판단하고 규정하고 의미화하는 것보다 감각적 인상에 집중할 때 세계의 아름다움과 더 가까이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21세기가 `시를 읽지 않는 시대`라는 것은 부정하기 힘들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시인들은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글쎄….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SNS를 활용한다든가 팟캐스트, 디카시, 시 콘서트 등 시대 경향에 맞는 나름의 방식으로 독자와 소통하고 있는 자체가 노력이라고 본다. 나는 어딘가 있을 단 한사람의 독자를 위해 끝까지 쓰겠다는 낡은 순정을 아직 지니고 있다.”- 당신이 설계하고 있는 `문학적 미래`와 `인간적 미래`가 궁금하다.“문학적으로는 금방 잊히거나 도태되지 않고 꾸준히 오래 쓰면서 늘 자기갱신을 시도하는 시인이고 싶다. 인간적으로는 제도나 기성의 관습에 물들지 않고 지금 사랑하는 것들을 계속 사랑할 수 있는 사람, 소년의 마음으로 사는 사람이고 싶다.”/홍성식기자 hss@kbmaeil.com사진제공:구창웅

2017-11-03

책을 통해 인간과 세계를 고민하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며 더 나은 삶을 향해 나아가는…

▲ `향기가 있는 문화공간` 클래식북스를 운영하는 조신영 작가.넓은 창을 통해 세상의 곡식과 과일을 익히는 가을 햇살이 따스하게 쏟아져 들어오는 아늑한 공간. 포항시 북구 양덕동에 위치한 `클래식북스(ClassicBooks)`에 들어서자 러시아의 작곡가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의 감미로운 선율이 가장 먼저 기자를 반겼다.고풍스런 책꽂이엔 `일리아드 오디세이`와 `돈키호테`, `프란츠 카프카 선집` 등이 가지런히 꽂혔고, 향긋한 커피 향이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고 있었다. `클래식`과 `책`이 행복하게 공존하는 공간. 클래식북스가 지향하는 “책과 사람이 더불어 함께 크는 인문고전 북카페”가 어떤 의미인지 어렵지 않게 짐작됐다.지난 2015년 8월 문을 연 클래식북스가 고전음악과 고전(古典·오랜 기간 널리 읽힌 모범적 문학작품)을 아끼는 포항 사람들 사이에서 `소리 없는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최근 몇 년 사이 지방 중소도시와 서울 할 것 없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것이 `북카페`다. 그러나 그 이름에 값하는 북카페는 찾아보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책을 읽는 공간이라기보다는 학생들이 과제를 하고, 친구들끼리 모여 수다를 떠는 공간으로 변색된 북카페들.하지만, 클래식북스는 다르다. 표방하는 `운영원칙`만 봐도 알 수 있다. 휴대폰을 이용한 통화는 바깥에서 해야 하고, 다른 사람들이 들릴만한 목소리로 대화하는 것도 금한다. 이는 클래식북스에서만은 `책`과 `클래식`에 집중하자는 의지의 표현으로 보였다.뿐만 아니다. 클래식북스는 70여 명의 회원이 참여하는 `SLC(Seven habits Leading CEO) 연구회`를 운영하고 있다. 고전을 읽고, 인문학 토론을 하며, 서로의 지식과 경험을 교류하는 모임이다. “회원이 7명만 돼도 좋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올 4월 시작한 SLC연구회는 6개월 만에 예상의 열 배를 뛰어넘는 성과를 내고 있다.보통의 북카페에선 보기 힘든 클래식북스의 운영원칙과 고전·인문학 프로그램의 배후에는 작가 조신영(54)씨가 있다. `성공하는 한국인의 7가지 습관` `경청 - 마음을 얻는 지혜` `나를 넘어서는 변화의 즐거움` 등의 책을 쓴 조 씨는 자기계발 분야의 국제 강사이기도 하다.미국, 중국, 러시아, 몽골, 홍콩 등에서 수백 회에 걸쳐 자기계발 세미나를 진행했던 조신영 씨는 `한국인문고전 독서포럼`을 주도하기도 했다. 그가 낯선 도시 포항에서 클래식북스를 연 이유는 뭘까?“우연이었습니다. 이전에 독서모임 등을 함께 했던 지인이 이곳에 건물을 구입했고, 포항에 `의미 있는 문화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의견을 전해왔습니다. 저 또한 도시마다 책과 클래식을 기반으로 하는 인문학 카페가 한두 개쯤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왔기에 이곳에 자리를 잡게 됐습니다. 보증금이 없다는 장점도 있었지요.(웃음)”보통의 카페와는 다른 분위기에 조금은 어색해하는 손님들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다.“책과 고전음악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누구나 편하게 오셔서 클래식북스를 즐기시면 됩니다. 한두 번만 와보면 여기가 특정인을 위한 공간이 아니란 걸 알게 됩니다. 전화번호 등을 남겨 우리가 만드는 뉴스레터를 받아보는 분들이 2천 명이나 됩니다”라는 게 조 씨의 설명이다.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한 조신영 씨는 어릴 때부터 철학과 인문학, 고전음악에 관심이 많았다. “고전을 통해 우리가 왜 사는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함께 고민하고 싶었다”고 말하는 조 씨에게 SLC연구회는 서로가 서로에게 스승이 되고, 학생이 되는 공부모임이자 친교의 공간이다.사업가와 교사, 의사와 회사원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SLC연구회 회원들은 책을 통해 인간과 세계를 고민하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며, 더 나은 삶을 고민하고 있다. 이들이 토론을 할 때면 바흐와 헨델, 멘델스존과 쇼스타코비치가 배경이 돼준다.클래식북스는 문을 여는 순간부터 폐점할 때까지 고전음악이 흐르는 스피커를 끄지 않는다. 관악기와 현악기의 조용한 하모니는 독서의 집중력을 높이는데도 도움을 준다. 조신영 씨를 포함한 SLC연구회 회원들은 “한 시간의 독서로 가라앉지 않는 슬픔은 없다”라는 문장을 신뢰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일까? 클래식북스가 발행한 뉴스레터에 실린 페르시아 시인 하피즈의 `모두 다 꽃`이란 작품에 등장하는 `빛`의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장미는 어떻게 심장을 열어모든 아름다움을 세상에 내주었을까그것은 자신의 존재를 비추는빛의 격려 때문그렇지 않았다면 우리 모두는언제까지나 두려움에 떨고 있을 뿐많은 사람들이 책에서 멀어지고 있는 시대임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아직도 적지 않은 이들이 책 속에서 `길`을 발견하고 있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하피즈가 말한 `자신의 존재를 비추는 빛`이란 SLC연구회가 읽고 있는 `고전`과 동일한 의미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향후 계획을 묻는 질문에 조신영 씨는 “클래식북스와 같은 곳이 포항만이 아닌 다른 도시에도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단지 수익만을 창출하는 카페가 아닌 책과 고전음악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한 문화공간도 몇 개쯤은 필요한 것 아니겠습니까”라고 답했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라 덧붙일 의견이 없었다.`클래식북스`와 `SLC연구회`에 관해 보다 구체적으로 알고 싶은 독자들은 054-255-0911로 문의하면 된다./홍성식기자 hss@kbmaeil.com사진:이용선 기자

2017-10-27

신간 책꽂이

◆`지극히 사소한, 지독히 아득한` · 마음서재건조하지만 인간에 대한 애정이 곳곳에 묻어나는 문체로 세상을 탐구해온 소설가 임영태 씨의 신작. “따뜻한 시선 속에서 한 인간의 성찰이 뭉클한 여운을 남긴다”는 평가(문학평론가 송희복)를 받은 이 작품은 지방 소읍의 조그만 편의점을 배경으로 우리 시대의 욕망과 허무를 진지하게 탐구하고 있다.`희대의 배신도 숭고한 헌신도 먹고사는 일을 둘러싼 발걸음`이라는 문장이 독자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다를 바 없는 내일을 살아가면서도 끊임없이 타자와의 소통을 갈망하는 인간 실존의 흔들림을 확인할 수 있다.◆`우화` ·보리`직설`이 아닌 에둘러서 세상사를 비판하거나 새로운 깨달음을 주는 걸 `우화`라고 한다. 무언가 내놓고 말하기가 힘들 때 사람들은 바로 이 우화에 기댄다. 그런 차원에서 우화는 현실과 대단히 밀접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오랫동안 한국의 옛 이야기를 채록해 아이들에게 전달하고자 힘써온 서정오 씨가 출간한 이 책은 위정자와 갑질을 일삼는 이들, 법을 법답게 다루지 못하는 현실, 아이들을 공부로만 내모는 세상을 점잖게 비판하고 있다. 경북 안동에서 태어난 저자는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고, 옛이야기 다시쓰기와 되살리기에 힘써왔다.◆`일본 노동 정치의 국제관계사` · 후마니타스노동운동을 해온 사람들은 `냉전의 역사`를 어떻게 바라봤을까? 냉전의 또 다른 전선이 된 자유주의 진영의 노동조합 역사와 미국의 무역정책, 국제적 정세와 무관할 수 없었던 제2차 세계대전 후 일본의 노동조합운동을 깊이 있게 다룬 책이다. “일본 노동운동의 경험은 여러 점에서 타산지석의 교훈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이 그 관문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는 것이 책을 번역한 임영일 씨의 바람이다. 임씨는 서울대 사회학과에서 공부했고, 현재 창원노동사회교육원 이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저자는 일본 히토쓰바시대학 교수인 나카키타 고지.◆`멀티족으로 산다` · 쌤앤파커스회사를 다니면서 캘리그라피로 본업보다 더 많은 돈을 버는 사람, 요리 블로그를 운영하다가 그 콘텐츠로 책을 내는 사람, 1인 미디어로 연예인처럼 유명해진 사람…. 세상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경제적인 측면의 이익도 얻는 `멀티족`들이 있다. 취미가 다양하고, 독립적이며, 주관이 확실한 반면 규칙을 따르는 것에 불편을 느끼는 멀티족.책은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의 뜻에 따라 좋아하는 일에 아낌없이 시간을 투자하는 멀티족을 소개하면서, `제대로 된 멀티족`으로 살아가기 위한 방법을 안내하고 있다./홍성식기자

2017-10-27

“자기를 넘는 사랑은 내 문학의 대주제”

▲ `대전 스토리, 겨울` 방민호 지음·도모북스 펴냄 소설·1만4천원서울대 국문과 방민호(52) 교수는 한 가지 잣대만으로는 해석하기가 어려운 사람이다. 그는 일제강점기와 해방 전후 한국문학사 연구의 권위자인 동시에 시집 `나는 당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고`를 쓴 시인이며, 장편 `연인 심청`과 단편집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답함`을 출간한 소설가이기도 하다. `지식인의 사회적 발언`이라는 측면에서도 거침이 없는 방 교수는 방송사 시사프로그램 패널과 정치를 주제로 다루는 라디오방송의 토론자이기도 했다. 국문학 강의와 문학사 연구, 평론 집필과 시 쓰기. 일인다역의 바쁜 삶을 살아가는 그가 최근에 또 한 권의 장편소설을 세상에 내놓았다. `대전 스토리, 겨울`이 바로 그것.제 안에서 타오르는 열망 탓에 세상과 화해하지 못하는 대학원생 이후(34)와 결혼이 외로움을 해결해줄 수 없다는 걸 알아버린 여자 숙현(38), 타락과 순수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는 여성 보영(30)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대전 스토리, 겨울`은 “삼각관계 속에 삼투된 시대적 고뇌를 보여주는 동시에 사실주의 이후 한국 소설의 새로운 장르적 가능성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방민호 교수와의 인터뷰를 통해 `대전 스토리, 겨울`의 집필 계기와 작품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 교수와 작가의 삶을 동시에 살아야하는 어려움 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인터뷰는 두 차례의 통화와 이메일을 통한 질의-답변 방식으로 진행됐다.▲`대전 스토리, 겨울`을 읽을 독자들에게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읽으면 효과적인 독서가 될 수 있다`는 힌트를 준다면.“이후, 보영, 숙현. 이 세 인물을 사랑해 주면 좋겠다. 그들의 인생이 내가 그리고 싶었던 세상의 모습이다. 그들에게 우리들의 삶이 스며들어 있다. 이 셋이 곧 우리다. 소설엔 세상에 대한 나의 근심이 들어있다. 난 오래 전부터 이 세계가 평화롭기를, 서로 감싸 안을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바라왔다.”▲많은 사람들은 당신을 학자이자 교수로 생각한다. 그런데, 얼핏 보기에 이번 작품은 통속소설에 가깝다. 이 소설을 쓴 이유는?“한 남자와 두 여자의 사랑 이야기니까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변명이 아니라 통속소설이 아닌 `풍속소설`이다. 현실을 뼈가 아니라 살을 그려내고자 하는 풍속소설의 이념에 따랐다고 하면 해명이 될 수 있을까?”▲`엇갈리는 사랑`은 오래 전부터 문학의 주요한 주제였다. 전작 `연인 심청`에 이어 `대전 스토리, 겨울`도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연이어 사랑이란 주제로 소설을 쓴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물질과 욕망이 지배하는 이 세계를 무엇으로 구할 수 있을까? 누구나 자기애에만 탐닉한다면 세계는 그 풍선들끼리 부딪혀 터지고 만다. 자기를 넘어 타인을 아끼고, 세계를 안쓰럽게 여기는 마음을 가리켜 사랑이라고 한다. 그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사랑이라는 걸 할 수 있는 것인지를 생각하고 있다. 이는 내 문학의 대주제다.”▲소설의 주요한 공간적 배경이 대전이다. 그렇게 설정한 이유는?“대전은 내가 초중고교 시절을 보낸 곳이다. 가장 잘 알고 소중하게 여기는 공간이다. 대전에 이야기를 선사하고 싶었고, 서울과 대전의 공간적 대위법으로 우리가 사는 시대를 입체적으로 조명하고 싶었다. 이번 소설에서 서울과 대전, 그 중에서도 대전의 구도심은 어떤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눈 밝은 독자들이 그걸 찾아주기 바란다.(웃음)”▲`대전 스토리, 겨울`을 통해 당신이 궁극적으로 하고 싶었던 말은 뭔가?“이 질문 앞에서는 말을 아끼고 싶다. 다만, 이 소설은 2014년 봄부터 2015년 겨울까지를 그리고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당시는 우리 사회가 요동을 친 시기다. 우리는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묻고 싶었다. `세상을 어둠에게서 되돌려 받으려면 먼저 자기를 자기의 어둠에서 되돌려 받아야 한다`는 문장이 문득 떠오른다.”▲동료 국문학자들은 당신의 `소설 작업`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문학작품, 시와 소설은 한 나라 언어의 가장 섬세하고 심오한 구성물이다. 창작의 중요성을 인정하지 않는 국문학자가 있을까? 나는 내가 가야 하는 길을 가고 있을 뿐이다. 많은 분들의 이해를 요청하면서.”▲문학연구와 강의, 창작까지 겸하고 있다. 시간 배분의 노하우를 알려준다면.“나는 부지런한 사람은 못된다. 다만, 문학에 대한 생각만은 멈추지 않으려 한다. 문학하기, 생각하고 읽고 쓰는 것에서 멀어지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평론을 쓸 때와 소설이나 시를 쓸 때는 어떤 게 다른가? 의식적으로 두 장르 사이의 간극을 생각하고 쓰는지.“최근에 평론과 창작은 내게 있어 하나임을 새삼 깨달았다. 세상 사람들이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해서 하는 것, 나를 비우고 그 공백을 타인의 말로 채우는 것. 이것이 내가 깨달은 새로운 문학의 의미다. 이제 조금 더 자유로워진 것 같다. 평론과 창작 사이의 간극이 없어진 것 같은 착각이 지금 내가 느끼는 `나의 문학`이다.”▲ 김달진 시인 생가를 방문한 방민호 교수.▲앞으로도 연구와 창작을 겸할 생각인가?“힘이 다할 때까지 그렇게 하고 싶다. 장편소설 소재를 몇 가지 생각하고 있다. 시간이 허락돼 대마도 이야기, 사마귀 이야기, 평양 이야기 등을 쓸 수 있으면 좋겠다. 또한, 해방 이후 8년 동안의 문학사적 논점을 정리하는 것도 연구자인 내게 남겨진 과제다.”▲마지막으로 덧붙일 말이 있다면.“이번 작품 `대전 스토리, 겨울`은 닫힌 문 안에 갇힌 세대의 고민을 보여주려고 썼다. 모두가 독방에서 살아가는 것 같은 시대다. 세상은 부조리하고 인간은 타락의 위기 앞에 서 있다. 이런 세상이라면 자기를 구하는 자가 세상을 구할 수도 있지 않을까.”/홍성식기자

2017-10-20

신간 책꽂이

◆`칼과 혀` · 다산책방“흩어진 독자들을 다시 모을 수 있는 작품”이란 출판사의 홍보 문구가 의미심장하다. `혼불`의 작가 최명희의 문학정신을 기려 2011년 만들어진 혼불문학상 7회 수상작 `칼과 혀`가 출간됐다.수상자인 권정현은 심사위원들에게 “한·중·일의 역사적 대립과 갈등을 넘어 세 나라 간의 공존가능성을 타진했고, 그것을 밀도 있게 포섭해 높은 예술적 경지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소설은 일제 패망 직전의 만주를 배경으로 전쟁의 공포에 시달리는 일본 관동군 사령관과 그를 암살하려는 중국인 요리사, 조선 여인 길순의 이야기를 다룬다. ◆`기지 국가` · 갈마바람이른바 `냉전`이 끝난지도 20년이 훌쩍 넘었다. 하지만, 미국은 아직도 전 세계 70여 국가에 800개가 넘는 군사기지를 운영하고 있다. 이런 상황은 미국에게 독으로 작용하고 있을까? 약으로 역할하고 있을까?6년에 걸쳐 한국을 비롯한 60개 나라의 미군 기지를 직접 찾아 세밀한 취재를 진행한 데이비드 바인 교수는 “미국의 해외 군사기지가 사람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재검토해야 할 시기가 왔다”고 말한다. 저자인 데이비드 바인은 워싱턴 D.C. 아메리칸대학 인류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번역은 국제문제 전문 번역가 유강은이 맡았다. ◆`수업 고민, 비우고 담다` · 맘에드림공개수업과 수업연구를 통해 성장하는 교사 학습공동체에 관한 성찰을 다룬 책이다. 교육과정의 구성과 수업 디자인, 교재 연구와 공개수업, 이에 관한 객관적 평가는 수업 개선의 주요한 과정이다. 그러나, 현실에선 이 같은 시스템이 정착되기가 쉽지 않았다.이 책은 비전이나 미션의 선언에 그치지 않고, 제기된 문제점을 실천으로 변화시키는 과정에 관해 말하고 있다. `수업, 무엇을 보고 있나?` `함께 성장하기 위한 수업협의회` 등으로 구성된 각각의 장이 그것을 증명한다. 책을 접한 박종훈 경상남도 교육감은 “중요한 것은 교육의 본질 회복”이란 독후감을 남겼다. ◆`내가 엄마가 되어도 될까` · 새움“아기를 낳으면 내 삶은 없어지는 게 아닐까?” “내가 과연 좋은 엄마로 살아갈 수 있을까?” 출산을 앞둔 여성이라면 누구나 가지게 되는 고민이다. 이 책은 임산부들의 고민을 진지하게 들어주고, 도움의 말을 전하고 있다.출판사는 “당연한 듯 쉽게 말하지만 결코 당연하지 않은 이야기, 누구나 알아야 하지만 아무도 들려주지 않았던 임신과 출산, 육아에 관한 생생한 이야기를 담았다”고 설명한다. 저자인 장보영은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했고, 신춘문예 동화 부문에 당선돼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 남편, 딸 새봄이와 함께 제주도에서 살고 있다./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17-10-20

외국인과 더불어 삶의 필수 한국식 영어공부 한계 극복

비단 학생들만이 아니다. `영어를 잘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수십 년째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그런 이유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영어학습법 관련 책이 출간된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각종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얻기 위해” “외국인 친구와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해외여행에서 보다 다양한 경험을 하기 위해”…. 영어를 공부하는 사람들의 목적은 저마다 다르다.최근 출간된 `카테 잉글리시 총론`의 저자 안정호는 조금은 특별한 이유를 `영어 공부의 목적`으로 이야기한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한국은 이미 고령화사회로 진입했다. 곧 현실화 될 인구절벽 현상으로 인한 내수시장의 침체는 불을 보듯 뻔하다. 이런 사회현상은 내부가 아닌 외부에서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앞으로 한국사회는 인구절벽의 해소를 위해서도 외국인 유입이 필요하다. 외국인들과 불화 없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리의 영어 수준이 변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새로운 영어학습법이 나와야 한다.”안정호는 자신의 주장을 구체화하기 위한 방법으로 이 책을 펴냈다.기존의 패턴을 외워서 말하는 방식으로는 외국인과의 효과적인 의사소통이 어렵고,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펼칠 수 있는 영어를 할 수 없다면 세계와의 경쟁에서 뒤떨어질 수밖에 없는 게 미래 사회다.`카테 잉글리시 총론`을 발간한 출판사 관계자는 “한국식 영어공부의 한계를 극복하는 방법과 기존 영어학습서가 실전 영어로 발전할 수 없었던 이유 등을 책에 담았다”고 말했다.사실 영어를 포함한 모든 언어는 인간과 인간을 이어주는 유용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이다. 더 늦기 전에 자신이 사용해온 모국어와 함께 새로운 언어를 배워 더 넓은 세상과의 소통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눈여겨볼 만한 책이 바로 `카테 잉글리시 총론`일 듯하다.책을 쓴 안정호는 서울시립대를 졸업하고 영국 코벤트리대학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영어 교육과 홍보 컨설팅을 진행하는 회사 카테난조(C.A.T.E. NANZO)를 운영하고 있다./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17-10-13

박혁거세를, 경덕왕을 왕의 길에서 만나다

하루에도 수십 수백 권의 책이 출간되는 한국사회의 현실에서 각각의 책이 가진 공신력은 어떻게 확인될 수 있을까?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하지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신뢰할만한 사람의 책에 관한 평가는 독자들의 선택에 도움을 주는 것은 물론, 앞서 언급한 책의 공신력을 확인할 수 있는 유용한 방법 중 하나다.`이재호와 함께 신라 왕릉 가는 11길`이란 부제가 붙은 책 `왕의 길을 걷는 즐거움`의 출간에 즈음해 유홍준(전 문화재청장)과 박재동(시사만화가)은 아래와 같은 축하의 말을 전했다. 알다시피 유씨와 박씨는 모두 유명인인 동시에 적지 않은 독자들의 신뢰를 받아온 사람들이다.“나와 함께 한결같은 마음으로 우리 문화유산을 사랑하고 지키고 알려온 이재호가 낙향해 수오재(守吾齋) 고택에 살면서 신라의 문화유산을 세상에 소개해온 지도 20년이 훌쩍 지났다… 이 책은 그간 갈고닦은 탁월한 혜안에 현장에 사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서정이 스며 있어 어떤 왕릉 안내서보다 살갑게 다가온다.”(유홍준)“이재호는 서울을 떠나 경주에 머물며 신라의 향기에 담뿍 취해 조상의 유적들을 어루만졌다. 그의 맑고 애정 어린 눈길은 실낱같은 오솔길 하나도 버려두지 않았다… 신라 왕들의 이야기를 과거와 현재, 미래에 접목시켜 독특한 시각으로 풀어낸 이 책에선 깊은 사유를 발견할 수 있다.”(박재동)오랜 시간 교류해온 유홍준과 박재동으로부터 호평 받은 `왕의 길을 걷는 즐거움`을 쓴 이재호는 기행작가이자 수필가로 알려져 있다.1995년 경주에 정착한 그는 점차 흔적이 사라져가는 한국의 전통문화유산을 지키고 발전시키는 일도 함께 진행했다. 울산박물관 건립, 태화루 원위치 복원, 반구대 암각화 보존운동 등이 그 사례다. 미술을 공부한 그는 대학과 기업체에서 동양미술사 등의 문화강좌를 진행하기도 했다.이처럼 다양한 활동 속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건 그가 쓴 책들이다.이재호는 전작 `천년고도를 걷는 즐거움`을 통해 경주 문화의 길라잡이를 자처했고, `삼국유사를 걷는 즐거움`을 써서 고서(古書) 속 역사의 현장을 독자들에게 소개했다. 이번에 선보이는 `왕의 길을 걷는 즐거움` 역시 그런 일련의 작업 속에서 탄생한 책이다.“고즈넉한 절터와 고요한 왕릉들 곁을 수없이 거닐었다”고 말하는 저자는 “가슴 시린 여운과 벅찬 감동을 함께 나누고자 왕릉과 왕릉을 연결한 길의 문화유적과 마을을 답사했다”고 고백했다.▲ 이재호 작가그간 이재호가 걸었던 `왕릉과 왕릉을 연결한 길`과 `문화유적 답사`에 관한 기록이 고스란히 담긴 게 바로 `왕의 길을 걷는 즐거움`이다. 책은 모두 4개의 장으로 이뤄졌다. `신라의 건국과 패망`으로 이름 붙인 1장은 박혁거세왕릉, 지마왕릉, 삼릉, 경덕왕릉에 얽힌 이야기를 다룬다. 오릉과 헌강왕릉, 경애왕릉 등을 답사한 2장은 `불국토의 염원, 경주 남산`이란 제목으로 묶였다.3장은 `통일의 기운은 싹트고`다. 여기선 신문왕릉, 괘릉, 효공왕릉, 진평왕릉과 만날 수 있다. 마지막 4장은 반월성과 봉황대, 태종무열왕릉과 문무왕릉의 역사적 의미를 알게 해주는 `찬란한 신라의 꿈`이다.10월도 중순에 접어들었다. “거리 자체가 박물관”이라 불리는 경주의 가을도 깊어가고 있다. 책 읽고 여행하기 좋은 계절. 왕릉을 포함한 유적과 문화재 속으로 떠나는 경주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왕의 길을 걷는 즐거움`이 양질의 가이드북이 돼줄 것이다./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17-10-13

70년 시인 인생 응축된 보석같은 절창

`만월`과 `길은 멀다 친구여` 등의 시집으로 잘 알려진 이시영(68)이 노익장을 과시하며 새로운 노래로 독자들 곁으로 돌아왔다. `하동`으로 명명된 이 시인의 최근 시집은 `짧아지고 짧아져서 더 이상 응축할 수 없는 절창` 몇몇으로 빛난다.고래로부터 시를 평해온 학자들은 말했다. “좋은 시는 길지 않다.” 아래와 같은 작품은 이시영이 견뎌온 70년 가까운 인생이 가까스로 얻어낸 보석 같은 답변으로 읽힌다.`보도블록과 보도블록 사이에서민들레 한 송이가 고개를 쏘옥 내밀었다너 잘못 나왔구나여기는 아직 봄이 아니란다`- 위의 책 중 `봄` 전문.젊은 날의 열정과 치기에 머물지 않고 문학적 갱신을 지속해온 이시영은 “간명한 언어와 따뜻한 서정으로 인간과 세계의 진실을 탐구해온 시인”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번에 출간된 `하동`은 그의 14번째 시집이다.그는 책의 마지막 `시인의 말`을 통해 “시인으로서의 창조성이 쇠진되었다고 느끼면 깨끗이 시 쓰기를 포기하겠다”고 약속한다. 노장의 결기가 묻어있는 문장이다. 하지만, 다음에 인용하는 `무제`와 같은 시를 앞으로도 쓸 수 있다면 성급한 `포기 선언`은 조금 뒤로 미루어도 좋을 듯하다.`겨울 속의 목련나무에 꽃망울이 맺혔다세상엔 이런 작은 기쁨도 있는가`고희(古稀)를 눈앞에 두고도 문학적 실험과 탐구를 멈추지 않는 이시영의 근작(近作)을 접한 문학평론가 염무웅은 “그의 시가 더 깊은 침묵을 향할지, 아니면 세상과의 전면전으로 나갈지 긴장하게 된다”는 말로 이시영의 시적 미래를 궁금해 했다.

2017-10-13

살아간다는 것, 그 적막한 쓸쓸함에 대하여

조용호(56)의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어둠이 장악한 인적 없는 강변을 홀로 서성이는 것처럼 쓸쓸하고 외로운 일이다. 터무니없는 생기발랄과 냉소, 엉터리 문장과 조악한 문체가 부끄러움 없이 횡행하는 21세기 한국문단. 조용호는 오늘도 그 속에서 홀로 고군분투 중이다.2006년 봄부터 2011년 가을까지 여러 문예지에 발표된 7개의 단편. 그것들은 어두운 강물이 일렁이는 표지 안에 발표 순서대로 조용히 줄을 서있다. 생성과 소멸, 외로움과 버릴 수 없는 희망, 떠남과 돌아옴에 관한 조용호의 작품들. 다음과 같은 문장은 마치 오래 암송돼온 시(詩)처럼 독자들의 가슴을 흔든다.`나일강에 해가 진다.종려나무 잎사귀들이 암록으로 어두워진다.모래언덕은 석양에 붉고, 강물은 소리 없이 푸르다.4천 년 전 이맘때도 저 언덕은 오늘처럼 어김없이 붉었을 것이다.`-위의 책 중 `달과 오벨리스크` 일부 인용.이처럼 곳곳이 시적인 문장으로 축조된 조용호의 3번째 소설집 `떠다니네`에 수록된 작품들은 더하거나 덜어낼 것이 없다.가브리엘 마르케스의 `판타지 리얼리즘` 향기가 물씬 풍기는 `푸른바다거북과 놀다`는 마지막 대목이 사람들의 가슴을 서늘하게 하고, 책의 서막을 여는 `모란무늬코끼리향로`는 오페라 `카르멘`의 주제 “지독한 사랑은 파멸이다”를 소설적으로 완성도 높게 변주해냈다.이 소설집의 백미는 누가 뭐라 해도 연작소설로 읽히는 `베인테 아뇨스`와 `신천옹`이다. 이 두 작품엔 조용호가 시종여일하게 지향해온 `정주(定住)와 유랑은 결국 하나의 것`이란 차갑고 우울한 세계인식이 가장 잘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어떤 이유로 인해 아내와 헤어져 혼자 사는 프리랜서 사진작가, 누군가 몰래 들어온 흔적이 역력한 집, 히스테리를 반복하는 여자친구, 썩지 않은 할머니의 시체, 세상사에 초연한 늙은 수녀, 말기 암 환자가 되어서야 다시 만나게 된 전처…(베인테 아뇨스)동생들과 처자식 때문에 평생 한 번도 자신의 뜻대로 살아보지 못한 중소기업 간부, 살벌한 내용의 붉은 글씨 가득한 도심의 철거민촌, 히말라야 트래킹에서 만난 상처투성이 여자, `바람을 타고 바람을 희롱한다는 새` 앨버트로스가 산다는 남극 인근 캠벨섬, 상상을 뛰어넘으며 거칠게 요동치는 얼음의 바다, 갑작스레 사라져버린 친구…(신천옹)위에서 서술한 것들을 재료로 `세상사 가장 쓸쓸한 이야기`를 만들어낸 조용호. 이 지면에서 굳이 줄거리를 구구절절 상세하게 늘어놓지 않는 이유는 조용호가 던져놓은 퍼즐조각을 맞춰가는 즐거움을 소설의 독자들에게서 뺏고 싶지 않아서이다. 책의 마지막. `작가의 말`을 통해 조용호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다.▲ 소설가 조용호씨.“몸이 뿌리를 내려도 마음은 떠돈다. 붙박였다고 갇힌 게 아니고, 떠난다고 늘 자유로운 건 아니다.” 이 문장은 불혹의 가시밭길을 지나 가까스로 지천명의 강을 건너 이순을 향해 가고 있는 조용호의 철학적이고 문학적인 깨달음에 다름 아닌 것으로 읽힌다. 맞다. 영원히 머물거나, 영원히 떠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 비단 소설가 조용호만이 아닌 우리 모두가 그렇다./홍성식기자hss@kbmaeil.com

2017-09-22

“만들어지고 부서지며 떠도는 그대, 낭인이여…”

재론의 여지가 없다. 장자(莊子) 철학의 핵심은 `무위자연`(無爲自然)이다. 일체의 인위적인 것들을 거부하고, 인간과 사물이 생겨나온 자연에 거스르지 않으려는 순정하고 담담한 태도.시조와 시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문학적 이력을 쌓아온 김락기(61)의 시집 `황홀한 적막`에선 바로 이 `장자`와 `무위자연`의 향기가 어렵지 않게 읽힌다. 화려하지는 않으나 더없이 담백하고, 기교를 부리지 않았음에도 품격이 느껴진다. 예컨대 이런 시다.`아름다운 것은 그대로 두어라/가까이 하려 하지 마라//여름 밤하늘 그토록 빛나며 사라지는 별똥별도/가까이 하면 비수가 되어 꽂히는 운석파편일 뿐.`- 위의 책 중 `운석비`(隕石雨) 일부.아름다움은 굳이 제 곁에 두려 애쓰지 않아도 그 자체로 아름다운 법. 이 짤막한 몇 줄의 문장을 통해 독자들은 알게 된다. 김락기 시인은 한 걸음 물러서 관조하며 세상사를 해석하는 태도를 이미 체득하고 있다는 사실을.김락기가 자신의 문학을 통해 보여주는 `무위자연`의 향취는 시집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중 기자가 읽은 백미(白眉)는 `구름 섬 인생`이다. 이런 노래다.`세상은 또한 사람 섬으로 넘쳐나고/사람은 오만가지 생각 섬을 만들며 살아간다/만들어지고 부서지며 떠도는 그대, 낭인이여/이 세상 누군들 구름 섬 아닌 자 있으랴/생멸하는 구름 섬을 저 아니라 할 수 있으랴.`시인에게 포착된 `인간의 삶`이란 외따로 떨어져 서러운 섬과 같은 것. 슬프지만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운명이다. 김락기는 단 5행의 시어(詩語)로 이 부정하기 힘든 생의 진실을 간파해내고 있다. 높은 시적 경지라 부르지 않기 힘들다.계간 `시조문학`과 월간 `문학세계`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한 김락기 시인은 `삼라만상` `바다는 외로울 때 섬을 낳는다` `고착의 자유이동` 등의 책을 썼다.한편, 이번 시집 `황홀한 적막`을 접한 서울과학기술대 최서림 교수(시인)는 “김락기의 시는 단순·소박하면서도 깊이가 있다, 배워서 터득된 기교가 아닌 절박함의 기교가 독자들의 감성을 자극한다”며 “눈에 보이지 않는 우주적 적막”을 김 시인의 특장으로 지목했다.그렇다. 장자가 말한바 `무위자연`의 진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숨겨져 있어 더욱 아름다운 것이다./홍성식기자hss@kbmaeil.com

2017-09-22

신간 책꽂이

◆`좋아하는 것을 돈으로 바꾸는 법` · 동양북스책의 헤드 카피가 재밌다. “쓸수록 돈이 들어오는 구조를 만드는 심리술”이란다. 저자 멘탈리스트 다이고는 “행복해지려면 참지 말고 좋아하는 것에 아낌없이 돈을 쓰라”고 말한다. 이게 무슨 해괴한 논리인가? 보통의 사람들은 돈을 모으기 위해 반찬값도 아끼고, 일확천금을 위해서 없는 돈을 털어 복권까지 사는데….저자는 이 물음에 이렇게 답하고 있다. “어떻게 절약할지가 아닌, 나의 성장을 위해 어떻게 돈을 쓸 것인지를 고민하라”고. 물론, 책은 아무렇게나 돈을 낭비하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어디에 어떻게` 쓰는 것이 돈을 넘어 행복에 이르는 길인지를 알려주고 있다. 책장을 넘길수록 유쾌해지는 책이다.◆`여혐, 여자가 뭘 어쨌다고` · 다시봄아직도 엄존하는 유교의 그림자. 많은 부분이 개선되고 있지만 한국사회에서의 진정한 남녀평등은 아직 먼 길이다. “책으로만 페미니즘을 배워 아직 부족한 점이 많아”고 이야기하는 저자 서민은 우리 사회에 넓게 퍼진 여성 혐오와 차별의 실태를 현실적으로 진단해 그 해법을 모색하고 있다.브랜드 커피숍에서 에스프레소를 마시면 `된장녀`가 되고, 데이트를 하면서 제 몫의 식사비를 계산하지 않으면 `김치녀`로 불리는 한국. 남성들이 여성을 좋아하면서도 혐오하는 이유는 대체 뭘까? 책은 여성 혐오의 분위기가 얼마나 큰 영역을 지배하고 있는지 진단하고, 그것이 왜 잘못된 것인지를 조목조목 들려준다.◆`아빠, 퇴사하고 육아해요!` · 새움“아내는 더 이상 나를 다정한 눈길로 쳐다보지 않는다. 뿐인가. 아이들은 나와 말 한마디 나누지 않는 날이 흔하다.” 어디서나 들리는 21세기 아버지들의 푸념이다. 한국에서 아버지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아침에 만원 전철에 몸을 싣고 출근해 밤이 깊어서야 집으로 돌아가는 그들의 처진 어깨. 대기업 기획조정실에서 근무하다 아내를 대신해 5년째 두 딸의 육아를 담당하고 있는 노승후는 자신이 쓴 책을 통해 “엄마가 출근하고 아빠가 육아와 살림을 하는 것이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그는 어떤 경로를 거쳐 불만족스러운 아버지에서 `행복한 아빠`가 됐을까? 책은 그 답을 알려준다.◆`영재는 일기를 이렇게 쓴다` · 지식공방`교육학자이자 시인인 최철호가 쓴 글쓰기를 잘하는 방법`이다. 경기도 고양시에서 15년째 논술학원을 운영하며 얻은 작문의 노하우가 곳곳에 담겼다. 저자는 일기를 “자기표현의 기본이 되는 중요한 글”이라고 말한다. 일기를 잘 쓰게 되면 이후 수필과 독후감은 물론, 더 어려운 논문도 자연스레 잘 쓸 수 있다는 것. 일기를 통해 글쓰기의 기초를 닦는 방법을 알려주는 이 책은 12장으로 구성, 초·중학생들의 일기를 직접적 사례로 들어가며 문제점과 해결점을 제시한다./홍성식기자

2017-09-22

신간 책꽂이

◆`풍수로 공간을 읽다` · 푸른길“어렵고 비과학적”이라는 오해를 받고 있는 풍수. 하지만, 풍수지리는 2006년 문화관광부가 선정한 `한국 100대 민족문화 상징물` 가운데 하나다. 경북대학교 지리학 박사 과정을 수료한 박성대씨가 `비과학적`이라 홀대받던 풍수의 제자리를 찾아주기 위해 나섰다.“풍수는 전통적 환경사상이자 선조들의 삶의 지혜가 응축된 자연생태학”이라고 말하는 저자는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풍수 연구를 통해 풍수를 둘러싼 그간의 오해를 풀고, 실생활에서의 적용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다양한 사진이 이해를 돕는다. ◆`애착 교실` · 해냄한국 교육과 학교가 처한 현실을 표현하는 문장이 거칠어진 것은 이미 오래 전 일이다. `결과 중심의 획일화된 교육` `과도한 학업 부담과 집단 괴롭힘` `OECD 국가 중 사회적 관계 수준은 최하위`….심리학자 루이스 코졸리노는 `애착`(愛着·Attachment)이라는 키워드로 관계 중심의 학교와 학급을 만드는 방법을 탐구했다. 책은 그 결과물이다. 애착이란 아이가 부모처럼 중요한 사회적 인물과 맺는 친밀한 정서적 유대관계다. 저자는 “애착관계가 학생들의 학습 능력을 좌우한다”고 말하고 있다. 번역은 서영조씨가 맡았다. ◆`다문화사회에서의 미디어 역할` · 한울`단일민족` `같은 핏줄` 이란 단어는 이제 낡은 것이다. 일자리를 찾아서, 또는 배우자를 찾아서, 어떤 경우엔 정치·종교적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국경을 넘나든다. 이제 한국사회도 재론의 여지없는 다인종·다민족국가로 변화하고 있다.여기서 중요한 문제는 동일 국가에서 생활하는 서로 다른 사람들의 사회적 통합과 문화적 결속이다. 인천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이수범 교수와 독일 라이프치히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 박사과정을 공부하는 장성준씨가 다문화사회의 구성원 통합을 위한 미디어의 역할을 탐구했다. ◆`누구일까? 동물친구` · 이룸아이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아이들은 예외 없이 동물에게 호기심을 가지고 친밀함을 표시한다. 이를 효율적 학습에 이용할 수는 없을까. 책은 동물의 부분 사진과 초성 글자, 그림자 등을 보여줌으로써 아동의 상상력을 자극한다.재미있게 제시되는 힌트와 퀴즈 놀이를 통해 동물을 상상하고 유추하는 과정은 스스로 사고하는 두뇌 발달 과정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엄마가 함께 읽으면서 칭찬과 격려를 더해준다면 아이들의 성취감은 배가될 것이다. “신비한 동물의 생태를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흥미롭게 구성했다”는 것이 출판사의 설명이다./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17-09-15

`성격이 급한 매미는 곧 집을 벗어놓고 떠나갔다…`

시인 황수아(37)에게선 1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 파리를 휘청대며 걷던 초현실주의자의 향기가 난다. 그래서다. 황 시인의 첫 시집 `뢴트겐행 열차`의 저자 서문을 살짝 고쳐봤다.“마음의 발자국을 복원하며 생각했다. 삶은 우연이면서 선택이었고, 너무 쉬운 문제에 대한 오답과도 같았다.”좋은 시인은 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느낀`다. 황수아의 경우도 적지 않은 사회적·문화적 고민 속을 통과했던 청춘이 있었을 터. 그 때문일까. 1920년대 초현실주의자들이 그랬듯 황 시인 역시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세계인식을 거부한다. 이런 노래를 통해서다.`성격이 급한 매미는 곧 집을 벗어 놓고 떠나갔다/나는 외로웠지만/행인들은 그것을 자연의 섭리라고 표현했다/매미는 울음소리로 소식을 전해왔다…`- 위의 책 중 `책갈피` 일부.보통의 사람들은 매미에게서 누구나 말할 수 있는 `자연의 섭리`만을 읽어낼 뿐이지만, 시인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울음소리로 소식을 전`하는 매미의 짧은 생을 자신의 삶과 동일화시킨다. 깊은 성찰에서 나온 좋은 은유다.이어지는 시 `우리는 실존주의 강의를 들었지`에서는 황수아의 시적 자각과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이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난다.`일 년 중 가장 따스했던 날/우리는 실존주의 강의를 들었지/교정에 목련은 만발했고/학습의 목표는 실존이었어/우리의 우상은 한결같이 카뮈였지만/우리에게 실존은/등록금 고지서에 인쇄된 우주의 크기였지…`한 편의 잘 쓰인 소설처럼 기승전결을 갖춘 도입부다. 존재와 실존의 문제는 아주 오래 전부터 철학자와 청년들의 화두 혹은, 고민덩어리였다.그걸 알베르 카뮈나 장 폴 사르트르처럼 우회의 방식으로 어렵게 설명하는 게 아니라 `등록금 고지서`로 직결시키는 황 시인의 위트가 발군이다. 쉽게 쓰인 시 같지만 긴 수련의 시간 없이는 쉬이 나올 수 없는 표현이다.문학평론가 고봉준은 “황수아의 시편들 곳곳에는 시인 특유의 자의식, 시에 대한 질문은 물론 시를 쓰는 행위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들이 함축돼 있다”고 말한다. 기자는 여기에 딱 한마디만을 더 보태고자 한다.“그 물음들이 황수아의 미래를 낙관할 수 있는 가장 큰 근거다.”/홍성식기자hss@kbmaeil.com

2017-09-15

이미 50년 전에 예견된 살충제 남용 재앙

현명한 자연과학자는 때로 예언가의 역할까지 수행한다. 미국의 생물학자 레이첼 카슨(Rachel Carson·1907~1964)도 그런 사람이다. 지금으로부터 55년 전인 1962년 그녀가 쓴 책 `침묵의 봄`(Silent Spring)은 2017년 한국사회의 `살충제 계란 파동`을 미리 본 듯 예언하고 있다. 아니 살충제 남용이 가져올 위험을 감지한 것은 그보다 더 오래 전이었다. 1945년 카슨은 `리더스 다이제스트`를 통해 합성 화학물질인 DDT(유기염소 계열의 살충제)를 포함한 제초제가 지구 환경을 오염시키는 증거를 제시했다. 여기에 이런 말도 덧붙였다. “제 힘에 취해서 인류는 제 자신은 물론 이 세상을 파괴하는 실험으로 한 발씩 더 나아가고 있다.”미국 대학사회에서도 남녀차별이 엄존하던 1920년대. 문학을 공부하고 싶어 했던 카슨은 `실용적 선택`으로 생물학을 전공한다. 자연과학 분야에 여성이 거의 없던 시절이었다. 메릴랜드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한 초보 교수 카슨은 이미 1930년대부터 환경문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자연과학자의 논리적 해석과 문학소녀의 감성이 동시에 담긴 카슨의 글은 사람들을 이성적으로 설득시키고 감동시켰다. `해풍 아래서`(1941), `우리 주변의 바다`(1951) 등이 그 실제적인 사례다.`타임`지는 레이첼 카슨을 `20세기를 변화시킨 100인 중 한 사람`으로 지목했다. 이유는 간명했다. 그녀의 미래 예측은 명료하고 정확했다. 이런 것이다.“땅과 물을 오염시키는 원인은 원자로·실험실·병원에서 배출되는 방사성폐기물은 물론, 핵폭발 낙진, 도시와 마을에서 흘려보낸 생활 폐수, 공장에서 나오는 산업폐기물 등 다양하다. 여기에 농작물과 정원, 숲과 밭에 뿌려진 살충제가 더해진다. 이런 화학물질이 만들어내는 심각한 상호작용과 변형, 그 결과에 대해서는 연구된 바가 없다.”문제의 제기와 근거의 나열, 거기에 대책 없는 현재까지를 이 짧은 문장 안에 고스란히 녹여낸 카슨은 두말할 나위 없이 `시대를 앞서간 환경주의자`였다. “그녀는 향후 한국의 양계장에서 살충제가 사용될 것임을 그때 이미 알고 있었을 수도 있다”고 말하는 게 과장으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다.어느 나라 할 것 없이 정치인이란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 후에야 뒤늦게 해결책을 모색하는 사람들`에 가깝다. 이번 `살충제 계란 파동`에 허둥지둥하던 한국의 정치인과 식품 안전을 담당하는 공무원들의 모습은 그 명제가 틀리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한 사례다.▲ 젊은 시절의 레이첼 카슨.인간은 과거에서 배우지 않고서는 현재를 제대로 살아갈 수 없는 존재다. 미래 또한 과거 학습과 현재의 노력이 더해져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와 우리 국민은 제2, 제3의 `살충제 식품 위기`가 오기 전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아래 인용하는 레이첼 카슨의 `경고`는 살충제가 미래세대의 평화롭고 건강한 삶까지 위협할 수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이제 말로만 `환경보호`와 `건강할 권리`를 외쳐서는 어떤 국민도 설득시킬 수 없다. 정치권의 각성이 필요한 시점이다.“유독물질은 모체에서 자식세대로 전해지기도 한다. 과학자들은 모유 시료에서 살충제 잔류물을 발견했다. 이는 모유를 먹고 자란 아기도 지속적으로 화학물질을 흡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이들은 성인보다 훨씬 쉽게 독극물로 인해 심각한 피해를 입는다. 살충제를 포함한 화학물질의 남용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17-09-15

`나`와 `누구`는 결국 하나였음을… `마흔 즈음에 발견한 생의 비밀

“21세기 서정시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가는 작가”로 평가받는 시인 신용목(43)이 `아무 날의 도시` 이후 5년 만에 새로운 노래로 독자들과 만났다. 시어의 사용은 더욱 노련해졌고, 세상과 인간을 해석하는 촉수는 보다 민감해졌다. 시집 제목부터가 자아와 존재에 관한 불혹의 성찰이 느껴진다. 이름하여 `누군가가 누군가를 부르면 내가 돌아보았다`(창비).신용목 씨가 20대 후반일 때부터 곁에서 지켜본 기자로선 이 시집을 `절차탁마 끝에 이룬 미학적 성취`라고 부를 수밖에 없을 듯하다. 다소 단정적이고 과도한 칭찬으로 보일 수도 있겠으나, 천만에다. 아래와 같은 시를 읽어보자.`잤던 잠을 또 잤다//모래처럼 하얗게 쏟아지는 잠이었다//누구의 이름이든/부르면/그가 나타날 것 같은 모래밭이었다. 잠은 어떻게 그 많은 모래를 다 옮겨왔을까?`-위의 책 중 `모래시계` 일부.고래로부터 시인이란 혜안(慧眼)을 가진 사람을 지칭했다. 혜안이란 세상사와 인간의 본질을 명확히 해석할 수 있는 식견을 의미한다. 신용목의 혜안은 `나`와 `누구`가 결국은 동질이형(同質異形)의 존재라는 걸 깨닫고, `누군가를 부르는` 호명이 자신을 찾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낮은 어조로 노래한다.이러한 높은 차원의 깨달음이 있기까지는 아래 인용하는 시 `자작나무`에 등장하는 형이상학적 질문이 있었을 것이 분명할 터.`질문이 적힌 종이를 구겨 던진 구름들, 천둥으로 번개로 쏟아지던 활자들/그때 겨울이 왔고//눈이 내렸다. 허공의 젖은 소매에 부딪쳐 반짝이며/흩어지며/생의 비밀을 잃어버린 사금파리처럼/한순간/깊은 동맥을 그으며…`이미 눈 밝은 독자들은 짐작했겠지만 찰나에 진리를 포착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가 시인이라 할지라도.신용목 또한 오늘이 있기까지 `생의 비밀을 잃어버린 사금파리`처럼 파랗게 추운 시간을 지나왔음이 분명하다. 해서 이 시는 내밀한 자기고백으로 읽힌다.신용목의 신작 시집 `누군가가 누군가를 부르면 내가 돌아보았다`가 지닌 가장 큰 미덕은 `마흔셋에 발견한 생의 비밀`로 요약될 수 있다.쏟아지는 질문 속에 혜안을 찾아가는 험한 길을 걸어 시인은 마침내 이런 경지에 도달한다. `옆집 남자`에서 읽히는 존재와 본질에 관한 명료한 인식. 이를 `진리와 자아의 발견` 외에 어떤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신용목 시인`사막 가운데서도/선인장은 물속에 잠겨 있다//땅에 떨어져도/새의 뼈가 비어 있는 것처럼. 죽어서 새는 땅속으로 하늘을 가져간다/어둠/끝이 보이지 않는 것과 끝이 없는 것은 같은 말이다/밤….`선배시인 허수경은 신용목의 시적 성취를 두고 “시집의 시간을 독자들에게도 그대로 살게 한다”고 말했다. 보기 드문 상찬이다.문학평론가 김나영 역시 “불가능한 자기증명에 대한 고투가 이토록 담담하게 `나`를 돌아보는 일로 그려지기도 한다. 신용목의 시는 차마 경계 지을 수 없는 인간이라는 보편적 사정을 한 철저한 개인의 반성을 통해 그려내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는 말로 신용목의 시적 미래를 격려했다.1974년 경상남도 거창에서 태어난 신용목 시인은 고려대 대학원 국문과에서 공부했고, 2000년 문예지 `작가세계`를 통해 등단했다. 이후 `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 `바람의 백만번째 어금니` 등의 시집을 출간했다. 제2회 시작문학상 수상자이기도 하다./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17-09-08

내가 읽은 `어린왕자`에 오역이?

혹자는 “번역은 반역에 다름없다”고 말한다. 원작에 사용된 언어를 다른 언어로 완벽하게 옮긴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요즘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영화 제목처럼 “미션 임파서블(Mission Impossible)”.최근 출판사 새움이 출간한 `어린 왕자`는 이 `불가능에 가까운 작전`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번역자 이정서씨의 안간힘이 만들어낸 책이라고 불러도 무방하다.프랑스의 작가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 왕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 번쯤 펼친 책이지만 그 안에 담긴 함의와 은유를 제대로 이해하는 독자는 드문 것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원작인 불어판과 영문 번역본까지 비교하며 함께 읽어본 이는 더욱 드물다.이번에 `어린 왕자`를 한국어로 번역하고, 책의 뒤편에 불어와 영어 번역본까지를 수록한 이정서씨는 기존의 권위와 질서를 부정하며 주목받은 `용기 있는` 번역자다. 그는 2014년 그때까지 출간된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에 “오역(誤譯)이 적지 않다”고 지적해 출판계를 흔들어 놓았다.그의 주장에 대한 지지 선언과 비난이 동시에 돌출했고, `이정서`라는 이름은 인터넷과 문학 관련 잡지 등에서 한동안 `뜨거운 감자`가 됐다.이 논란의 진행 과정에선 부정적 측면도 발견됐지만, `번역자로 일하는 이들의 타성에 젖은 안일한 태도를 반성하게 했다`는 긍정적 측면은 누구도 함부로 부정할 수 없다. 만나본 바 없지만 이정서씨가 `성실한 사람`임에는 분명해 보인다.출판사가 밝힌 `어린 왕자`의 번역·출간 의도는 분명하다. 아래와 같은 설명이다.“단어 하나, 문장 하나의 잘못된 해석으로 작품의 메시지가 흔들리는 일은 번역 세계에서 흔히 있는 일이다. 그래서 역자는 더 나은 번역을 위해 끊임없이 개정판을 내는 것일 터.”이정서씨는 `이방인`에 이어 기존의 `어린 왕자` 번역서에도 여러 군데 오류가 있다고 말한다. 자신의 주장을 구체적으로 증명하기 위해 불어·영어·한국어 번역을 비교하는 `작업 노트`까지 책에 실었다. 짐작건대 이번 `어린 왕자` 번역본 출간도 작지 않은 논란을 부를 듯하다.만약 1944년 지중해 인근으로 정찰 비행을 떠났다가 실종된 생텍쥐페리가 아직 살아있다면 한국에서의 `어린 왕자 번역 논란`에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궁금하다./홍성식기자hss@kbmaeil.com

2017-09-08

신간 책꽂이

◆`시베리아 문학기행` · 서울문화사`여행`과 `문학`이란 두 단어의 매력을 아는 독자들이 흥미를 가질 책이다. 끝없는 설원과 낭만을 소재로 한 러시아 소설의 매혹을 `시베리아 문학기행`을 통해 만날 수 있다. 톨스토이, 체호프, 도스토옙스키….저자 이정식씨는 서울대 사범대를 졸업하고. CBS, KBS 등에서 기자 생활을 했다. 출판사는 “삶의 한가운데서 잠시 휴식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는 말을 전했다. 책에 실린 사진은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있는 듯한 대리체험을 제공한다. 수년에 걸친 이씨의 수고가 글과 사진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난다. ◆`가야사 새로 읽기` · 주류성`가야의 역사와 문화`가 새삼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 고대국가인 신라, 고구려, 백제에 비해 관련 자료도 적고, 연구학자도 소수다. 경북대 사학과 주보돈 교수의 `가야사 새로 읽기`는 문헌을 근거로 가야사의 흐름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고 있다.“가야를 주체로 한 가야사의 발전, 변화하는 가야사를 역동적으로 새롭게 그려보고자 시도했다”는 것이 출판사의 설명이다. 저자인 주 교수는 경북대 박물관장, 한국고대사학회 회장, 한국목간학회 회장,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 위원 등을 지낸 역사학자다. ◆`마흔의 시간관리` · 반니라이프우리 사회의 중추로 역할 하는 40대. 현재 위치에 오기까지 적지 않은 노력이 필요했다. 그 노력 중 하나가 `시간의 효율적 사용`. 하지만, 갈수록 시간은 모자라고 해야 할 일은 넘친다. 이런 고민을 가진 사람에게 `마흔의 시간관리`를 권한다.미국 국제경영대학원에서 MBA 학위를 취득하고, 기업연수 전문 컨설팅 회사 대표를 맡고 있는 저자 오츠카 히사시는 `후회하지 않는 40대의 삶`을 위한 시간관리 노하우를 독자들에게 전해준다. 번역은 대기업 사원을 대상으로 일본어 교육을 진행해온 정윤아씨가 맡았다. ◆`꼭 갖고 싶은 로봇 친구` · 꿈터IT회사에서 일하는 작가가 쓴 동화. 한 어린이가 로봇 친구 `마스토스`와 함께 코딩,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에 대한 궁금증을 재밌게 풀어간다. 책을 쓴 유병천씨는 대학에서 경영 정보학을, 대학원에선 문학을 공부했다. 현재 웹 기반의 솔루션 사업을 하는 아이티스텐다드 이사로 일하고 있다.미래사회의 주역인 어린이들이 살아갈 시대는 싫든 좋든 인공지능과 어울려야 한다. 이 책은 컴퓨터에 대한 기본 지식과 인공지능 기술을 자연스레 얻게 해주는 동시에 인간과 기술 발전의 상관관계를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되돌아보게 해준다./홍성식기자hss@kbmaeil.com

2017-09-08

1950년대, 애틋함으로 추억할 수 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독서시대의 종말`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 인간이 쌓아올린 지식과 문명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책 이외의 어떤 것에서 세상을 배울 수 있을까. 본지는 장르와 신·구간, 베스트셀러와 스테디셀러의 구분을 두지 않고, 한 권의 책에 주목하고자 한다. 책을 매개로 세상과 인간을 제대로 바라보자는 뜻에서다. 책 선정에는 방민호(서울대 국문과 교수), 이산하(시인), 박철화(문학평론가), 이경재(숭실대 국문과 교수), 전소영(문학평론가) 씨가 참여하고 있다. - 편집자 주스스로는 부정할 수도 있지만 작가들이란 `정의 내리기`를 좋아하는 존재다. 그렇다면, 한국전쟁 이후의 궁핍과 절망 그리고, 전망 상실로 인해 국민 대부분이 정신과 육체 모두를 가혹하게 앓아야 했던 1950년대는 어떻게 정의될 수 있을까?향연출판사에 의해 2005년 재출간된 고은 시인의 `1950년대`는 위 물음에 대한 답을 들려주고 있다. 노벨문학상 수상 후보로 여러 차례 언급된 고은 시인은 특유의 드라마틱하고, 열정적이며, 단도직입 하는 `뜨거운 대답`을 펼쳐 보여준다.`1950년대`는 1971년 `세대(世代)`에 연재돼 독자들의 폭발적인 반향을 얻어냈던 글을 모아 엮었다. 저자인 고은은 “나는 돌아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향수란 때로 삶의 전위성에 대한 독약일 수도 있으므로”라고 말하면서도, 재출간판 서문에선 1950년대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드러내는 것에 인색하지 않았다.모두가 가난했고, 그 가난 탓에 야수처럼 거칠었으며, 즐거움보다 슬픔이 지배했던 1950년대를 `애틋함`으로 추억할 수 있는 이유는 뭘까? 그건 가난과 거침과 슬픔을 단숨에 뛰어넘는 낭만과 인간미가 그때도 엄연히 존재했기 때문이 아닐까싶다. 그것도 지금보다 훨씬 뜨거운 양상으로. 예컨대 이런 이야기다.1950년 6월 전쟁이 발발한다. 남한의 수도 서울은 완장을 찬 일군의 청년들이 간단한 인민재판만으로 우익인사의 생사를 결정짓는 무정부상태로 변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부여대(男負女戴)로 서울을 떠나 남하한다.그런데, 충청도 어디쯤 살던 청년시인 신동문은 보통의 사람들과는 반대로 잊지 못한 첫사랑의 여인을 찾아 서울로 거슬러 오른다. 쏟아지는 포탄과 귀청을 찢는 폭격을 무릅쓰고. 하지만, 그렇듯 애타게 찾고자했던 첫사랑은 이미 서울에 없었다. 그때 그 명민했던 젊은 시인이 느꼈을 허탈감이란 어떤 것이었을까. 하지만, 사랑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 기억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신동문을 지배했으리라.고은의 `1950년대` 속엔 이처럼 소설 같고, 거짓말 같으며, 21세기 사람들의 이성으론 도무지 이해가 불가능한 매력적인 이야기가 수도 없이 담겼다.토속서정의 대가 김영랑의 어이없는 죽음, 소년병의 폭사를 목격한 미당 서정주의 정신분열, 부산의 다방에서 클래식을 들으며 음독한 시인 전봉래, 끊임없는 자기학대를 통해 천재로 완성된 화가 이중섭, 방랑과 구걸도 당당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시인 천상병….▲ 고은 시인 /연합뉴스밀주의 취기와 한치 앞도 예측키 어려운 미래 탓에 방탕을 거듭했던 문인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1950년대`. 하지만 책은 암울한 회색빛이 아니다. 왜냐, 그들 모두는 “결국 아름다움이란 존재한다”는 것을 끝끝내 믿었던 `핑크빛` 낭만주의자였으니까.일찍이 헤르만 헤세는 그의 책 `지와 사랑`에서 “모든 것은 지나간다. 세상에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없다. 고통 또한 마찬가지다”라고 서술했다.전 세계를 오가며 시와 자유, 그리고 인간의 아름다움을 설파하고 있는 오늘날의 고은 시인을 보자면 그 역시 헤세와 같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고통`이 삶의 대부분을 지배하고 있던 1950년대부터 언젠가는 그 고통이 끝날 것을 믿었던 모양이다./홍성식기자hss@kbmaeil.com

2017-09-01

신간 책꽂이

■`바람이 그리움을 안다면`·구민사국회와 청와대, 행정안전부 등에서 근무했던 독특한 이력을 지닌 시인 강원석의 두 번째 시집. 일상의 안과 바깥에 존재하는 행복과 사랑이라는 평이한 주제를 자신만의 감수성으로 독특하게 변주했다. 수록작 중 `반딧불이` `봄비 닮은 어머니`에서 보이는 애틋한 서정이 눈길을 끈다.“시인이 되고 난 후 일상 속으로 사랑과 행복이 왔다”고 말하는 강 시인은 1969년 경상남도 함안에서 태어나 마산에서 소년시절을 보냈다. `서정문학` 시 부문 신인문학상 수상자이기도 하다. ■`거미집 짓기`·마음서재중편 `미스터리 존재방식`으로 201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돼 문단에 나온 신예 정재민의 장편소설. 2012년 서울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1963년 강원도 삼척 탄광촌에서의 이야기가 시공간을 오가며 숨 가쁘게 전개된다. 흥미로운 구조다.서강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작가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9년간 일했다. 그때의 체험이 정교한 동시에 창의적인 문장을 만들어낸 듯하다. 2013년에 구상을 시작해 집필을 마칠 때까지 4년이 걸린 노작(勞作)이다. 출판사는 “압도적인 서사와 함께 전율이 흐르는 마지막 한 페이지”라고 이 책을 요약했다. ■`각색 이론의 모든 것`·앨피캐나다 토론토대학 영문·비교문학과 특별교수 린다 허천(Linda Hutcheon)의 `A Theory Of Adaptation`의 한국어 번역본이다. 이미 만들어져 있는 원작을 각색하는 방법과 원리를 이론에 근거해 설명한다. 원작이 아니라는 이유로 홀대받았던 `각색`의 제자리를 찾아주려는 저자의 노력이 엿보인다.영화, 게임, 만화, 뮤지컬, 음악, 미술 등 문화콘텐츠의 중요성은 강조되지만, 생성 원리에 관한 책이 드문 현실이기에 주목된다. 번역에는 손종흠(방통대 국문과 교수), 유춘동(선문대 역사문화콘텐츠학과 교수), 김대범(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박사과정), 이진형(건국대 아시아·디아스포라연구소 교수) 씨가 참여했다. ■MCN 비즈니스와 콘텐츠 에볼루션·북카라반2017년 오늘. 이제 할머니의 옛이야기에 흥미를 느끼는 아이들은 극히 드물다. 요즘엔 유치원생의 손에도 스마트폰이 들려있고, 초등학생도 포털사이트와 페이스북, 트위터 등을 통해 세계와 소통한다. TV와 라디오는 낡은 미디어가 돼가고 있다. 디지털기지는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미디어오늘` 뉴미디어 팀장으로 일하는 금준경은 `넥스트 미디어`의 탄생과 변화·발전 과정을 알기 쉽게 요약하고, MCN(Multi Channel Network) 혁신가와 전략가들을 인터뷰해 다가올 미래의 빛과 그림자를 전망한다. 책의 부제는 `플랫폼 레볼루션과 미디어 빅뱅`./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17-09-01

일본의 헌책방 그리고 그 책방을 지키는 사람들

경남 진주에 자리한 `소소책방`을 운영하는 조경국(43) 씨는 보편의 상식을 뛰어넘는 사람이다. 인터넷신문 기자, 교육·연수원 관리사원, 사진 서적 편집자 등 적지 않은 직업을 거친 그는 몇 해 전 고향으로 내려와 헌책방을 차렸다. 서울을 떠나기 전 몇몇 지인들에게는 “간난신고의 타향살이를 끝내고 이제 생활을 이어갈 최소한의 돈만 벌며 읽고 쓰는 일에 집중하고 싶다”는 생의 목표를 밝히기도 했다.조경국 씨는 문장이 좋은 사람이다. `글은 사람을 닮는다`고 했던가. 세상의 빛과 그늘을 바라보는 그의 문장은 따스하고 부드러워서 조씨의 품성을 어렵지 않게 짐작하게 한다.그런데, 재밌는 게 하나 있다.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데 그는 `오토바이 마니아`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오토바이에 올라 바람을 가르던 기억을 40년째 간직하고 있는 것. 스스로도 “헌책방 주인이 되지 않았다면 오토바이 수리공으로 살았을 것”이라고 말한다.바로 이 조경국 씨가 `책`과 `오토바이`를 매개로 책을 썼다. `오토바이로, 일본 책방`이 바로 그것.쿠바의 혁명가 체 게바라가 오토바이를 타고 남아메리카를 떠돌면서 인간에 대한 애정과 신뢰를 체화시켰다면, 조씨는 자신의 애마 `로시(BMW F650GS TWIN)와 함께 일본을 종횡하며 책방과 그 책방을 지키는 사람들을 만났다.저자의 말을 잠시 인용하자. “이 책에는 지난 2015년 9월부터 10월 사이 약 한 달간 오토바이로 일본을 여행했던 내용을 담았다.” 하지만, 이 짤막한 문장만으론 `오토바이로, 일본 책방`의 진면목을 설명할 수 없다.책 속엔 조경국 씨가 삶을 대하는 태도, 책을 향한 그의 가없는 사랑, 일본 각처에 산재한 특별한 서점들에 대한 꼼꼼한 정보, 여기에 어지간한 시인이나 소설가 못지않은 미적인 서술까지가 고스란히 담겼다.책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아우구스티누스의 문장이 가슴을 친다. “길 떠나지 않는 이에게 세상은 한 페이지 읽다만 책일 뿐이다.”/홍성식기자hss@kbmaeil.com

2017-09-01

민속학자 박창원씨 `동해안 민속을 기록하다` 출간

▲ 민속학자 박창원씨포항지역의 민속학자이자 청하중학교 교장인 박창원(60)씨가 최근 30년 동안 동해안 지역의 민속을 조사해 정리한 `동해안 민속을 기록하다`라는 전문서적을 출간했다.박씨는 지난 1980년대 중반부터 포항을 비롯한 동해안 지역의 민속을 조사·연구해 10여 편의 논문을 발표해 왔는데, 올 8월 말 교장 퇴임을 기념해 한 권의 책으로 묶게 된 것이다. 세시풍속, 민속놀이, 공동체신앙, 기우제, 별신굿, 풍수, 신화, 전설 등 8가지 영역을 다뤘고, 주로 그 동안 쓴 논문을 이야기 형식으로 쉽게 풀어서 썼다.이 책에서 박씨는 30여 년 간 발품을 팔면서 조사한 포항지역 구석구석의 세시풍속과 민속놀이의 특별한 점을 보여 주고자 했다. 연연세세 지역민들의 정서 속에 녹아 있는 민간신앙의 원리와 거기에 담긴 지역민의 의식세계를 들여다보았으며, 주목할 만한 신화와 전설을 소개하고 거기에 투영된 상징과 의미를 분석해 보였다.박씨가 민속학에 입문한 것은 국어교사였던 1990년대 중반, 대학원에서 민요 연구로 석사학위 논문을 쓰면서부터다. 민요를 연구하다보니 인접 학문인 민속학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농업노동요는 농경세시를 알아야 했고, 어업노동요는 어로민속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다. 때마침 지도교수로부터 한국민속학회에 들어가 학회활동을 해 보라는 권유를 받아 가입함으로써 본격적인 민속학 연구자가 된 것이다.그것이 인연이 돼 이후 근 20년 동안 한국민속학보를 비롯한 학회지와 지역의 학술지에 민요, 설화, 민속놀이, 민간신앙, 풍수설화에 관한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대단한 업적은 아니지만 교직생활 틈틈이 조사·연구한 것이어서 그 나름대로는 소중한 작업이었다.“최근에 그 동안 써왔던 논문을 한 곳에 정리해 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죠. 그러나 단순히 논문을 한 권에다 모으는 것은 별 의미가 없을 것 같았어요. 관련 분야의 연구자가 아니라면 논문 한 편 읽기가 쉽지 않은데, 논문집을 읽을 사람은 도무지 없겠기 때문이죠. 이왕에 정리를 하자면 전문적인 내용을 일반인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풀어써야겠다고 생각했죠.”그는 “또 쉽게 쓰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점은 재미있게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이를 위해서는 독자들로 하여금 민속이라는 세계에 빠져들게 하는 흥밋거리를 만들어야 했던 것. 그래서 책 제목에, 각 영역별 제목에 `이야기`를 넣었다. 단순한 설명이나 이론이 아닌 하나의 이야기로 읽을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해서다. 그렇게 써보겠다고 덤빈 책이지만 의도대로 잘 되지는 않았다. 역량 부족을 실감하면서 쓰고, 또 썼다.박씨가 이번에 펴낸`동해안 민속을 기록하다`는 제목 그대로 동해안의 민속에 관한 것이다. 세시풍속, 민속놀이, 공동체신앙, 기우제, 별신굿, 풍수, 신화, 전설 등 8가지 영역을 다뤘다. 주로 그 동안 쓴 논문을 바탕으로 하였고, 이 책을 쓰면서 새로 보완한 것도 상당수 있다.동해안이라 하지만 일부 경주나 영덕 이야기를 빼면 사실 거개가 포항 쪽의 이야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해안 민속 이야기`라 한 것은 포항의 민속이 크게 봐서 같은 바다를 끼고 있는 인근의 경주, 영덕, 울진의 민속과 일맥상통할 것이라고 생각한 때문이다.박씨는 앞으로의 계획으로 “퇴임 후에는 일단 동해안 지역의 민속놀이와 민간신앙에 대해 조사, 정리 하는 작업을 계속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월월이청청, 지게상여놀이, 앉은줄다리기 같은 동해안을 대표할 만한 민속놀이에 대한 연구를 통해 학술적 가치를 부여하고, 체계적인 전승 방법을 찾는 노력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7-0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