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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일제강점기 `지옥섬` 군함도의 진실 추적

소설가 한수산(70)씨가 일제강점기 하시마(瑞島) 강제징용과 나가사키 피폭의 문제를 다룬 장편소설 `군함도(창비·전2권)`를 펴냈다.한씨는 1988년 일본 체류 당시 도쿄의 한 서점에서 `원폭과 조선인`이란 책을 접한 뒤 하시마 탄광의 조선인 강제징용과 나가사키 피폭에 대한 작품을 쓰기로 결심하고 수차례 소설의 무대가 되는 군함도와 나가사키를 십여차례 방문하고 일본 전역을 비롯해 원폭 실험장소인 미국 캘리포니아 네바다주까지 다녀왔으며, 수많은 관련자들을 인터뷰하는 등 치밀한 현장취재를 거쳤다. 이렇게 모은 자료를 바탕으로 1993년부터 3년간 한 일간지에 `군함도`의 전작이라 할 수 있는 `해는 뜨고 해는 지고`를 연재했다. 2003년에는 원고지 5천300장 분량의 `까마귀`(전 5권)를 출간했다. 2009년 까마귀의 분량을 3분의 1가량 줄이고 `군함도`로 제목을 바꿔 일본어 번역판을 내놨고 추가 취재를 거쳐 완결판을 완성했다.이번에 펴낸 `군함도`는 전작을 대폭 수정하고 원고를 새로 추가해 3천500매 분량으로 완성된 결정판이다. 이 과정에서 등장인물들의 출신과 배경 등이 새롭게 설정됐고 원폭 투하의 배경과 실상을 전면 개고해 최대한 사실에 가까운 묘사를 추구했다.(40, 41장) 등장인물들의 고난은 자아의 지평을 넓혀가는 과정으로 서사적 흐름이 자리잡으며 소설적 구성미와 완성도를 높였고, 박진감 넘치는 전개로 재미와 가독성을 끌어올렸다. 또한 눈물로 기다리는 조선여자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남편을 찾아나서고 탄광사무소의 부당한 처우에 맞서는 서형, 불의에 맞선 죽음으로 자신의 사랑을 지켜내는 금화 등을 통해 주체적인 여성상을 창조했다.▲ 한수산작가한수산은 비극적인 역사적 사실을 전하고 알려내는 것뿐만 아니라 당시 고난을 겪은 조선인 한사람 한사람의 숨결을 되살리는 데에도 큰 공력을 들이며 지옥의 섬 군함도에서 다만 `사람`이고 싶었던 징용공들의 일상과 인간적인 면모, 역경 속에서도 그들이 꿈꾼 안타까운 사랑과 희망을 가슴 아프면서도 핍진하게 복원한다. 작가는 경상 전라 충청도의 생생한 사투리 구사에 힘을 기울여 인물에 생동감과 실감을 더하면서 힘든 환경 속에서 구수하고 걸쭉한 농담으로 고됨을 잊는 조선 징용공과 농부들의 활기를 전하고, 각 지방의 아리랑과 의병가를 적절히 활용해 작업현장에서의 고달픔과 서러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넘어서는 조선인의 힘을 부각한다.한씨는 작가의 말에서 “젊은 독자들이 이 `과거의 진실`에 눈뜨고 그것을 기억하면서 `내일의 삶과 역사`를 향한 첫 발걸음을 내디뎌주신다면, 그래서 이 소설을 읽은 후에 이전의 삶으로는 결코 돌아갈 수 없는 각성과 성찰을 시작하신다면, 이 작품으로서는 더할 수 없는 영광이 될 것입니다”라고 적고 있다./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6-06-03

신자유주의 `미의 기준`비판과 진정한 아름다움에의 사유

재독 철학자 한병철(57) 베를린 예술대 교수의 최신작 `아름다움의 구원`(문학과지성사)이 출간됐다. 우리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들을 독창적 시각으로 읽고 분석한 책들을 꾸준히 펴내며 매번 화제를 불러일으킨 한 교수는 이번에는 `아름다움`을 화두로 현대 사회의 문제를 파헤친다.한병철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추구되는 `아름다움`은 모든 부정성과 낯섦을 제거하고 긍정성과 자기 동일성만이 부유하는 `매끄러움`의 미에 지나지 않게 됐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우리가 구원해내야 할 진정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이야기한다. 독일의 최고 권위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에서 한병철을 `문화 비판의 혁신자`라고 칭했듯, 이번 책에서도 그는 오늘날 미의 기준에 대한 관찰에서 신자유주의적 특성에 대한 예리한 통찰로 이어지는, 혁신적 문화 비평을 선보인다.한병철은 제프 쿤스로 대표되는 현대 예술과 스마트폰, 브라질리언 왁싱, 위생 강박, 셀카 등을 하나의 현상으로 묶는다. 아름다움은 이제 일체의 부정성이 제거된 채 매끄럽게 다듬어져 나에게 만족을 주는 대상, 향락적인 향유 대상으로 축소돼 버렸다. 이로써 미적인 것은 모조리 주체의 자기긍정에만 기여할 뿐, 주체를 진정 뒤흔들지도, 부정하지도 않는 것이 된다. 심지어 추함 또한 매끄러워진다. 악마적인 것, 섬뜩한 것, 끔찍한 것 역시 공포와 경악을 불러일으키는 부정성을 상실한 채 소비와 향유의 공식에 맞춰 매끄럽게 다듬어진다.하지만 털을 제거한 몸이나 DS 자동차, 스마트폰의 터치스크린 등 매끄러운 표면을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현대 미의 기준은 한병철의 눈에는 전혀 아름답지 않다. 그는 진정 아름다운 것, 진정한 예술작품이란 폭로될 수 없는 비밀, 은폐된 것, 은유, 부정성을 내포한 것이라고 본다. 부정성을 가진 것이 아름답다는 한병철의 주장은 “미는 병이다”라는 데로까지 나아간다. 그래서 한병철은 “히스테리적인 살아남기의 모습을 띠게 된 단순하고 건강한 삶은 죽은 것, 좀비”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한다. 그리하여 모든 제작물들과 환경이 아름다움이라는 기준에 맞게 개조돼 가는`미의 통치`의 시대가 됐지만, 오로지 긍정성의 미학에 지배되고 있다는 점에서 한병철은 우리 시대를 오히려 `미가 철폐돼 가는 시대`로 간주한다. 그는 블랑쇼, 보들레르, 릴케, 아도르노, 벤야민, 바르트 등을`부정성의 미학`의 증인들로 소환한다. 또한 칸트와 헤겔의 미학에서 소비와 도구화에 대한 저항, 타자에 대한 존중 등의 요소를 찾아낸다. 이런 부정성의 미학에 기초해 한병철은 나르시시즘적인 경향, 즉각적인 만족을 추구하는 소비문화, 피상적인 긍정성에 집착하는 소통 양상 등 현대의 현상들을 두루 비판한다. 여러 사상가의 이론을 간명하게 짚어내 연결하는 이 책은 독자들을 흥미롭고도 깊은 사유로 점점 나아가게 해준다./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6-06-03

`단순한 삶이 곧 인간적인 삶` 심플라이프의 의미와 실천

`심플라이프`의 개념을 최초로 전파한 `단순한 삶(La vie simple·판미동)`이 번역 출간됐다. 영감 어린 저술 활동으로 프랑스 개혁 신앙에 큰 영향을 미친 진보적인 목사 샤를 와그너가 아내와 함께 파리 바스티유 빈민가에 있는 작은 아파트에서 검소하게 생활하며 저술한 책으로, 생각법, 말하기, 라이프스타일, 돈, 인간관계, 교육 등 삶의 전 영역을 망라하여 단순함이란 무엇인가를 밝히고, 그 가치를 삶에서 실천하는 방법을 제시한다.1895년 프랑스에서 처음 출간된 이 책은 `존재의 행복과 힘과 아름다움은 단순함의 정신에 그 원천을 두고 있으며, 단순한 삶이 곧 가장 인간적인 삶`이라는 중심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는 과학 기술, 자본주의 등의 발전으로 나날이 복잡해져만 가는 삶에 지쳐 가던 당대 사람들에게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켜 큰 성공을 거뒀다. 특히 미국에 `심플 라이프(The Simple Life)`로 번역 소개돼 윤리적·종교적 리더들로부터 찬사를 받으며 베스트셀러가 됐고, 이 책을 읽고 감명한 루스벨트 대통령이 저자를 백악관에 초청 강연케 해 `심플라이프`는 20세기 초 미국의 사회적 현상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단순한 삶`은 1895년 출간된 100년 전의 책이지만, 지금 읽어도 충격적일 만큼 현대적이고 시의성 있는 내용들이 담겨 있다. 이 책 서두에서는 프랑스의 한 가정에서 결혼식을 준비하는 지난한 풍경을 보여 준다. 양복 재단사, 가구 제작자, 연회업자 등을 만나야 하는 복잡한 준비 과정, 처리해야 하는 갖가지 편지와 서류, 쓸데없이 많은 피로연, 환영회, 무도회 등의 행사…. 이러한 복잡한 준비 과정을 겪는 두 젊은이가 인생에서 가장 행복해야 하는 시기에 정신적으로 피폐해지고, 심지어 그들의 사랑마저 흔들리게 되는 일련의 과정은 요즘 우리의 세태와 별반 다를 게 없다.또한 언론에서 복잡한 말들을 쏟아내 대중들을 서로 불신하게 만들고, 사회 불안을 조장해 정확한 판단을 내리지 못하게 하는 상황, 일하는 동기가 오로지 월급이 전부인 사람들에 대한 비판,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욕구를 통제하지 못해 갈수록 삶을 복잡하게 만드는 소유욕 등에 대한 문제 제기와 성찰은 현대인들이 당면한 복잡한 문제들을 비춰보는 거울인 동시에 그 근본원인을 이해하고 풀어 나가는 열쇠가 돼 준다./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6-06-03

거짓말이 능력과 스펙이 되는 시대

`철수 사용 설명서`로 2011년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전석순 작가의 새 장편소설 `거의 모든 거짓말`(민음사)이 출간됐다. `거의 모든 거짓말`은 `거짓말 자격증` 2급 소지자인 주인공의 거짓말 가이드북이다. `나`는 3급이거나 1급 거짓말 자격증을 소지했을지도 모르는 사람들, 혹은 거짓말은 전혀 하지 않는 사람일지도 모르는 상대방과 거짓말 게임을 벌인다. 자격증 소지자는 백화점 매장이나 레스토랑에 투입되어 직원들의 친절도를 판별하는 일을 하거나 급수가 높은 경우 누군가의 역할을 대신 해내는 심부름을 한다. `거의 모든 거짓말`에서 거짓말은 능력과 스펙이 되고 주인공은 스펙을 갖추려 발버둥치는 청년에 불과하다. 독자는 주인공의 거짓말을 따라 가며,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알 수 없는 지점에 이른다. 소설은 시종 건조하고 차분한 어조로 사건을 이어가지만, 지금까지의 이야기가 거짓말일 수 있다는 긴장을 유지하며 독자의 시선을 잡아챈다.`나`는 이제 2급에서 1급으로 자격증의 급수를 높이길 바란다. 거짓말에 대한 철학과 자신감을 보이는 주인공은 이제 사랑 앞에서 거짓과 진실을 버무리기 시작한다. 여자 앞에는 남자와 소년이 있고, 주인공인 여자는 그들 앞에서 성공적인 거짓말을 이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사랑을 변질시키고 부패시키는 것은 거짓말이 아니라 덜 피어 궁색한 거짓말”이라는 소설 속 문장처럼, 주인공은 거짓말로 사랑을 유지시키는 데 능수능란하다. 사랑을 위한 진실, 거짓을 위한 사랑은 실체를 보이지 않는 거대한 숲처럼 그들의 관계를 둘러싸고 미지의 색을 뿜는다. 모든 것이 희미해졌을 때 기어코 드러나는 진실은 그녀의 거짓말이라는 게 결국 `친` 거짓말이 아닌 어설픈 구라였음을 밝혀 준다. 그녀의 거짓말은 여기서 멈추는 것일까. 우리의 거짓말은 이제 시작인 것은 아닐까. 이제 우리가 거짓과 진실의 숲에 들어갈 차례다.전석순 작가는 서문에서 “기꺼이 내 거짓말에 속아 줬던 수많은 당신에게 인사를 전한다. 아직 치지 못한 거짓말이 많이 남아 있다. 그건 당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는 거짓말을 치는 동시에 속을 채비를 한다. 우리는 오랫동안 팽팽하게 마주할 것”이라고 밝혔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6-05-27

우리시대 대표인물이 뽑은 `내 운명을 바꾼 책 10선`

“당신을 바꾼 단 한 권의 책은 무엇입니까?”오랫동안 신문사에서 문학을 담당해온 어수웅 기자가 최근 펴낸 `탐독`(민음사)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이다. 김영하, 조너선 프랜즌, 정유정, 김중혁, 움베르토 에코, 김대우, 은희경, 송호근, 안은미, 문성희. 소설가, 철학자, 영화감독, 사회학자, 무용가, 요리 연구가 등으로 직업은 다르지만, 저마다 자기 분야에서 성취를 이룬 우리 시대의 대표 예술가와 학자들이다. 모두가 책의 위기를 말하는 지금, 10인의 예술가와 학자가 들려주는, 책을 매개로 한 마법과도 같은 순간과 이야기가 펼쳐진다.관광객이 모두 퇴장한 고요한 밤. 루브르 박물관의 장서각 2층 난간에 서 있던 움베르토 에코는 종이책`장미의 이름`과 전자책 단말기 `킨들`을 아래층으로 힘껏 집어 던졌다. 킨들은 부서졌지만, 종이책은 조금 구겨졌을 뿐이었다. 이틀 뒤 파리 현지에서 에코를 만난 저자는 이 행사가 “조금 작위적으로 보였”다며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시대착오적이라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지 않나요?”에코 자신도 인정한 것처럼, 겉보기에 우스꽝스러울 수도 있는 장면이었다. 에코는 무엇을 보여 주고 싶었던 것일까?`읽기`의 힘은 여전히 강력하다. 그러나 책의 미래는 밝지 않다. 디지털 미디어의 등장으로 정보 혁명과 더불어 `읽기 혁명`이 일어나면서 전통적인 읽기 수단이었던 책은 위기에 처했다. 이제 독자들은 책보다는 스마트폰을 더 선호하고, 책 속의 긴 글보다는 SNS의 짧은 글을 더 친근하게 여긴다. 그러나 읽기 그 자체의 효용을 따진다면 책은 궁극에 이른, 대체할 수 없는 수단이다. 페이스북의 설립자인 마크 저커버그는 2015년을 `책의 해`로 선포하고 2주에 한 권씩 직접 책을 선정했으며, 마이크로소프트의 설립자인 빌 게이츠는 지금도 블로그를 통해 자신이 읽은 책을 꾸준히 추천하고 있다.`운명을 바꾼 책`들 목록에는 `달과 6펜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픽션들`등 오랜 세월 그 가치와 의미를 인정받아 온 고전들이 자리한다. 불확실한 시대, 삶의 나침반으로서 책 읽기에서도 근원으로 돌아가고자 함을 시사하는 듯하다.이 책에 소개된 `내 인생의 책` 열 권을 살펴보면, 인간이 품은 불안과 욕망의 근원을 밝히고 미래에 대한 전망을 보여 준다는 공통점이 나타난다. 디지털 미디어의 발달로 책에서 멀어지면서 공감하는 능력을 상실한 오늘날의 현실에 대한 비판도 빼놓을 수 없다. 조너선 프랜즌은 스마트폰과 페이스북은 인간의 질문에 답을 줄 수 없다고 말하고, “항우울제 따위가 사람들을 위로해 줄 수 있다는” 생각을 “멍청한 생각”이라고 단언한다. 움베르토 에코는 요즘의 젊은 세대들이 인공 눈에 의존하는 현실을 한탄하며 카메라가 아닌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라고 주문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6-05-27

28세에 보위 대청제국 전성기 이끈 `건륭제`

중국 역사상 가장 번성했던 시대로 흔히 `강건성세(康乾盛世)` 130여 년을 꼽는다. 강희제(康熙帝 재위 1661~1722), 옹정제(雍正帝 재위 1722~1735), 건륭제(乾隆帝 재위 1735~1795)로 이어지는 이 시기 청나라는 부국강병은 물론 문화, 예술의 눈부신 부흥을 이뤄냈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자주 이 시대를 거론하며 미래 중국의 모델로 삼고 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건륭황제`(더봄)는 중국 역사소설가 얼웨허(二月河)가 쓴 `강희대제` `옹정황제` `건륭황제`, `제왕 삼부곡`중 세 번째 시리즈로 청나라 6대 황제 건륭제의 일생과 업적을 그린 대하소설이다.`제왕 삼부곡` 시리즈는 중국에서 1억 부 이상이 팔린 베스트셀러로, CCTV 드라마로도 만들어졌다. 2002년 한국에서 첫 출간됐던 책을 중국 전문가 홍순도씨의 번역으로 더봄출판에서 2016년 다시 펴냈다.얼웨허는 다양한 사료에 기반해 기록영화 같은 대하소설을 쓰는 작가로 유명하다. 특히 냉정한 시각으로 역사를 직관하고 투시하는 자세로 일관하면서 역사적인 기록을 충실히 담아낸다.`건륭황제`는 중국 역사상 집권기간이 가장 긴 왕이자 청 제국 최대의 전성기를 만든 명군이다. 64년 재위 동안 정치를 비롯해 경제와 문화 등 거의 모든 면에서 괄목할 만한 발전을 이뤄 청나라를 확고한 반석 위에 올려놓았다. 집권 기간 동안 전국을 순회하며 직접 국정을 확인할 정도로 정력적이었으며, 환갑 이후로 여자와 술을 멀리하고 소식을 고집하며 89세의 평수를 누렸다. 또한 `사고전서`라는 대 백과사전을 편찬했으며 1500수가 넘는 한시를 지어 남겼을 정도로 문무를 겸비한 매력적인 왕이었다. 21세기 중국이`강건성세(康乾盛世)`의 부활을 꿈꾸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총 18권으로 펴낸 책은 풍화초로(風華初露), 석조공산(夕照空山), 일락장하(日落長河), 천보간난(天步艱難), 운암풍궐(雲暗風闕), 추성자원(秋聲紫苑) 등 총 6부로 구성돼 있다.중국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확보한 황제로 불리는 옹정제의 넷째 아들로 태어나 25세에 황제의 자리에 올라`대청제국`의 전성기를 지배한 건륭제의 드라마틱한 인생을 생생한 묘사로 담았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6-05-27

더럽혀지지 않는 세상의 `흰것`에 관하여

최근 인간의 폭력과 어둠에 천착한 소설 `채식주의자`로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받은 소설가 한강(46)이 새 장편소설 `흰`(난다)을 펴냈다. 이번 신작 `흰`은 그가 처음으로 “삶의 발굴, 빛, 더럽히려야 더럽힐 수 없는 것들”을 이야기하기 위해 세상의 흰 것들을 응시하며 쓴 작품이다.65편의 짧은 글로 이어진 이 책은 하나의 주제의식과 이야기를 가진 소설이면서 동시에 각각의 글이 한 편의 시로도 읽힐 만큼 완결성을 지녔다. 문체도 산문과 운문이 교묘히 뒤섞인 형태다.이번 작품은 특히 그가 그동안 인간의 폭력과 어둠을 파고든 것과 달리 생명과 빛, 아름다움에 주목한 것이어서 하나의 이정표 같은 느낌도 준다.작가로부터 불려나온 흰 것의 목록은 배내옷, 각설탕, 진눈깨비 등 총 65개의 이야기로 파생돼`나`와`그녀`와`모든 흰`이라는 세 개의 부로 나눠 담겨져 있다.“익숙하고도 지독한 친구 같은 편두통”에 시달리는`나`가 있다. 나에게는 죽은 제 어머니가 스물세 살에 낳았다 태어난 지 두 시간 만에 죽었다는`언니`의 사연이 있다. 지난봄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당신이 어릴 때, 슬픔과 가까워지는 어떤 경험을 했느냐고.” 그 순간 나는 그 죽음을 떠올린다. “어린 짐승들 중에서도 가장 무력한 짐승. 달떡처럼 희고 어여뻤던 아기. 그이가 죽은 자리에 내가 태어나 자랐다는 이야기.”나는 지구 반대편의 오래된 한 도시로 옮겨온 뒤에도 자꾸만 떠오르는 오래된 기억들에 사로잡힌다. 그러다 우연히 1945년 봄 미군항공기가 촬영한 이 도시의 영상을 보게 된다. “유럽에서 유일하게 나치에 저항하여 봉기를 일으켰던 도시,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깨끗이, 본보기로서 쓸어버리라는 히틀러의 명령 아래” 완벽하게 무너지고 부서졌던 도시, 그후 칠십 년이 지나 재건된 도시 곳곳을 걸으면서 나는 처음 “그 사람-이 도시와 비슷한 어떤 사람-의 얼굴을 곰곰이 생각”하기에 이르른다.`흰`은 삶과 죽음이라는 경계를 무력하게 만드는 소설이다. 삶과 죽음이라는 벽을 모래로 허물고, 삶과 죽음이라는 단단함을 무르게 만들고, 삶과 죽음이라는 당연함을 낯설게 하고, 삶과 죽음이라는 평면을 입체로 분산시키고, 삶과 죽음이라는 유한을 우주라는 무한으로 확장시킨다.이 책은 `채식주의자`를 번역해 맨부커상을 공동 수상한 데버러 스미스가 현재 번역 중이다. 내년 말 영국에서 출간될 예정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6-05-27

천의 얼굴 경제학에 대하여 `찬양 혹은 비판`

금융위기 이후 경제학은 그야말로 동네북이 됐다. 경제학자들은 곳곳에서 비난과 조롱에 직면했다. 그렇지만 경제학은 여전히 보다 많은 역할을 요구받고 있기도 하다. 이 역설을 풀기 위해서는 경제학의 강점과 약점을 이해해야 한다. 2015년 이코노미스트 블룸버그가 선정한 올해의 책, 파이낸셜 타임즈가 선정한 최고의 경제서, 미국의 경제학자 대니 로드릭의 `그래도 경제학이다`(생각의힘)이 출간됐다.대니 로드릭은 경제학자들이 `모델`이라고 부르는 이론적 분석틀의 다양성이야말로 경제학의 강점이라고 주장한다. 경제학에는 다양한 모델이 있다. 경제학자들은 이 다양한 모델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더 좋은 세상을 위한 유용한 방책을 제안하며, 지식을 축적시켜 나갈 수 있다.경제모델은 다른 모든 잠재적인 요인들을 분석에서 생략해 특정 원인들만의 영향을 분리하고 확인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다. 만약 많은 원인들이 동시에 작용할 수 있는 경우, 경제모델은 현실을 완벽히 설명할 수 없다.때로는 모순적일 수도 있는, 다양한 모델들을 포용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이 책은 경제학에 대한 찬양이자 비판이다. 경제학은 결정적이고 보편적인 답을 제공하지는 못하지만, 사회의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는 훌륭한 분석 도구를 제공한다. 그러나 매우 유연해야 하며 맥락을 중요시해야 하는 경제학의 속성은 어설픈 전문가의 손에서는 아킬레스건이 될 수 있다경제학에 대한 많은 비판은 결국 경제학자들이 잘못된 모델을 쓰고 있다는 주장으로 귀결된다. 신고전파가 아니라 케인스주의, 마르크수주의 또는 민스키주의 모델을, 공급측 모델이 아니라 수요측 모델을, 합리주의적 모델이 아니라 행동주의적 모델을 써야 한다는 주장들이 그것이다.그러나 경제학에 대한 포괄적인 비판은 대부분 적절하지 않다. 그것은 경제학이 모든 경우에 적용할 수 있는 하나의 모델에 의해 미리 포장된 결론들의 집합이 아니라 맥락에 따라 다양한 가능성을 인정하는 모델들의 집합이기 때문이다.경제학은 이전의 모델이 설명하지 못하던 특징들을 설명하는 새로운 모델과 함께 수평적으로 발전한다. 즉, 새로운 모델이 낡은 모델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환경에서 더욱 적절할 수 있는 새로운 차원을 도입하는 것이다./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6-05-20

`순진한 영계`가 `막나가는 치킨`으로

기발한 발상과 넘치는 유머로 독자들의 호평을 받으며 25만 부 이상 판매된 패러디 요리책 F. L. 파울러의`치킨의 50가지 그림자`(황금가지)가 출간됐다. 제목에서부터 명시적으로 드러나듯이 희대의 베스트셀러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를 패러디했다. 억만장자 청년 크리스천 그레이와 여대생 아나스타샤 스틸의 관능적이고 이색적인 사랑을 파격적으로 묘사한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는 전 세계 50여 개국에서 출간돼 총 판매 부수가 1억부를 돌파했다. 이러한 폭발적인 성공과 파급력에 따라 수많은 아류작이 양산되는 가운데, 소설의 형식을 빌린 닭 전문 요리책 `치킨의 50가지 그림자`는 닭과 요리사의 관계를 중심으로 50가지 요리에 대해 풀어 나간다는 설정만으로 화제를 모으며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랐다.`치킨의 50가지 그림자`는 냉장고에 갇혀 있던 수수한 생닭 아가씨가 화끈한 매력을 지닌 지배적인 요리사와 만나 `순진한 영계`에서 `거침없이 막나가는 치킨`으로 변모하는 50가지 단계적 과정을 짧은 이야기와 맛깔스러운 레시피로 담았다. 에필로그에는 4가지 곁들임 요리 레시피도 수록돼 있으며 닭과 요리사라는 구도에서부터 황당함과 흥미를 동시에 불러일으키고 있다./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6-05-20

빅데이터의 역습과 해법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아마존 선정 2015년 올해의 책….디지털 감시와 정보 보안에 대한 사회적 토론을 이끌어온 미국의 보안 전문가 브루스 슈나이어의 `당신은 데이터의 주인이 아니다(반비)`는`좋아요`에 목매고 스마트폰을 안고 자는 이 시대 사람들에게 보내는 경고문이다.브루스 슈나이어는 데이터 감시가 실제로 어떻게 벌어지고 있으며, 그로 인해 우리가 무엇을 잃고 있는지, 그리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조치가 필요한지 아주 상세하고 알기 쉽게 설명한다.브루스 슈나이어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신뢰받는 보안 전문가다. 그의 첫 책인 `응용 암호학`은 당시 미국 정부가 `무기`로 분류해 수출을 금지하고 비밀에 부치려 애쓰던 암호 기법의 실제 작동 원리를 일반인에게까지 널리 알려주면서 세계적인 암호화 기술의 발전을 북돋웠다. 숨김없고 명쾌한 발언 덕에 “보안 업계의 록 스타”, “보안 구루”로도 불리는 슈나이어는 25만명 이상이 구독하는 자신의 뉴스레터 `크립토그램`을 통해 보안에 관한 글을 꾸준히 발표해왔고`가디언`, `와이어드`, `애틀랜틱`등 여러 매체를 통해 보안을 둘러싼 사회적 담론을 이끌어왔다. 그리고 그는 2013년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 당시`가디언`을 위해 스노든이 건넨 자료를 분석하며 NSA의 대량감시 프로그램에 관해 낱낱이 알게 된다.이 책에서 브루스 슈나이어는 보안 기술자로 일하면서 축적한 경험과 지식, 그리고 NSA의 최고기밀문서를 분석하며 각국 정부의 감시활동에 관해 알게 된 사실들을 통해 데이터 감시의 실상을 파헤친다. 정보기술 분야의 대표적 전문가인 동시에 언제나 공적 토론을 통해 기술의 약점을 보완해야 한다는 견해를 관철해온 슈나이어는 정부, 기업, 시민 모두의 입장을 고려하는 균형 잡힌 시각으로 데이터 감시의 피해를 막아내고 사회 전체가 고르게 빅데이터의 효용을 누릴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한다.우리가 컴퓨터와 휴대전화를 사용하면서 배기가스처럼 유출하는 데이터가 우리를 어떤 위험에 처하게 했는지 섬뜩하게 드러내 보인다. 배기가스가 기후변화를 초래한 것처럼, 데이터는 감시사회의 도래와 프라이버시의 종말을 가져온다. 규제 없이 벌어지는 대량감시는 사회의 여러 중요한 핵심 가치에 피해를 입힌다. 슈나이어는 지금 우리 사회의 어떤 측면이 위협받고 있는지도 조목조목 따져 설명한다. 인터넷에 올린 글, 친구와 메신저로 나눈 대화가 감시되고 있다는 두려움은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킨다. 정부와 기업은 수집한 정보를 이용해 우리의 심리를 조종하고 여론을 조작할 수 있다. NSA의 대량감시가 세계에 알려진 이후 미국 정부의 통제권 아래 있는 미국 IT 기업들이 계속해서 거래를 잃고 있다는 사실은 기업 경쟁력이 입을 피해를 보여준다. 그리고 `테러로부터의 안전`을 이유로 정부가 요구하는 감시 능력을 허용하면 시스템 전체의 보안이 흔들리고 사이버범죄자, 타국 정부, 악성 해커들로부터 우리 모두가 위험해진다는 사실도 지적한다.브루스 슈나이어는 이 책의 3부에서 데이터 감시의 위험을 해결하기 위한 기본 원칙과 구체적 방안을 자세하게 제안한다. 변화는 정부, 기업, 시민사회 어느 하나만 움직여서는 이루어지지 않기에 각각의 분야에 걸친 해법을 내놓고 있다. 정부가 안보라는 목표를 효과적으로 달성하도록 도우며 대량감시를 제한할 법적 . 제도적 개선안, 그리고 기업이 빅데이터로 이익을 창출하면서도 데이터 수집을 최소화하게 만들 합리적인 규제 방안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또 보통 사람들이 일상에서 감시를 피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실용적인 조치와 함께, 가치중립적인 기술을 인간의 편으로 만들기 위해 필수적인 민주주의와 정치, 공적 토론의 중요성을 강조한다./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6-05-20

황순경만 유일한 가해자였을까? 끝내 말하지 못한 진짜 진실은…

1993년 작가세계 신인상으로 등단한 이래 이상문학상, 동인문학상, 김승옥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현대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왕성한 작품 활동을 계속해온 김경욱의 일곱번째 장편소설 `개와 늑대의 시간`(문학과지성사)이 출간됐다.1982년 4월 일어난`우순경 사건`을 모티프로 삼은 이 소설은 참사가 일어난 하룻밤 사이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간 피해자 한 명 한 명의 삶에 집중하고 있다. 마치 장기 미제 사건에 덤벼든 프로파일러처럼, 김경욱은 사실성의 씨줄에 개연성의 날줄을 엮어가며 비극의 진실을 끈질기게 추적해나가지만 결국 작가의 시선이 멈추는 곳은 끝내 말하지 못한 채 스러져간 사람들 개개인의 소중한 삶이다. 또한 김경욱은 이 비극적 사건 이면에 존재했던 역사적·사회적 맥락을 작가 특유의 위트 넘치는 문장으로 들춰내 보인다. 이 소설은 끝내 말하지 못한 쉰여섯 명의 이야기를 찬찬히 풀어가며 이 사건의, 이 세계의`진짜 진실`을 우리에게 보여준다.이 사건을 탐색하는 김경욱의 시선은 지극히 피해자 중심적이다. 충분히 잔혹하고 자극적으로 쓸 수 있는 이야기이지만, 작가는 오로지 당시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왔고, 무엇을 생각했고, 왜 그런 사람이 되었는지에 집중한다. 타인의 아픔에 민감한 공감 능력을 가졌던 박만길, 어린 나이에 백부에게 맡겨져 평생 사랑만을 바라온 손미자, 모든 것이 무협의 세계로 보이는 철없고 꿈 많던 소년 손영기 등 어느 날 갑자기 미완으로 남게 된 피해자들의 이야기가 다시 시작된다.작가는 피해자 56명이 단지 숫자로만 환원될 수 없음을, 이 사건은 한 명 한 명의 이 꿈꿨던 우주가 사라진 비극이었음을 절실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묻는다. 이날 미친 호랑이처럼 사람들을 향해 총구를 겨눴던 황 순경만이 유일한 도살자이자 가해자였을까. 살인자가 마을을 돌아다닌다는 사실을 알고도 마을방송은커녕 변소로 숨어버린 면장, 온천 접대를 받다가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뒤 마을 앞에 참호를 파 들어앉은 궁지지서장, 결재 라인만 따지며 나서길 주저했던 군청 직원들 등 오늘의 우리의 상황과도 오버랩되는 한국 사회 곳곳의 병폐가 이 소설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이날 가장 잔인했던 것은 구조를 요청한 이들을 외면한 시스템―타성에 젖은 관료제, 권위주의 문화, 억압적 이데올로기, 무사안일주의―은 아니었는가에 대해 작가는 질문을 던진다.`개와 늑대의 시간`의 특징 중 하나는 작은 시골 마을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의 기원을 세계사적 인과망 속에서 추적해간다는 점이다. 사건의 개요, 살인자의 이동 경로, 피해자들의 피격 장소나 이력 등을 바탕으로 씌어졌지만, 이 소설은 르포문학이나 추리소설과는 거리가 있다. 작가는 이 사건들이 얽혀 있는 다층적 인과에 주목해 비극의 기원을 폭넓은 역사적 지식과 풍부한 상상력으로 추적해 들어가기 때문이다. 이미 2007년 김경욱은 `천년의 왕국`에서 역사적 기록을 소설적 상상력으로 변주해 380여 년 전 조선에 표류해`박연`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간 네덜란드인의 이야기를 장편소설로 써낸 바 있다.`하멜표류기`의 단 한 줄에 착안해 긴 소설을 창작했듯, 이번에도 작가는 이 사건의 주요 살상 무기인 카빈총에서부터 각 인물들의 삶에 얽힌 역사적 맥락을 짚어낸다./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6-05-20

현대인이여 `헬조선` 직시 없이는 출구도 없다

`착한 사람들의 나쁜 사회`(생각의힘 출판사)는 문화연구자와 비평가로 활동하다가 지금은 성북문화재단에서 문화사업본부장으로 일하며 지역사회와 문화예술생태계의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고 있는 권경우의 칼럼과 비평을 모은 것이다. 정치와 사회, 인문학과 철학, 대중문화와 예술, 청년담론과 대학사회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저자의 관점은 일관돼 있다. 저자는 우선 `헬조선`으로 명명되는 사회를 직면해야 한다고 말한다. 대안을 모색하는 것은 그 이후의 문제다. 현실에 대한 명확한 분석과 진단이 없다면 잘못된 출구를 찾게 된다. 저자가 생각하는 출구는 정치나 경제 등 개별 영역이 아니라 정치, 사회, 경제, 철학 등을 포괄하는 문화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그것은 곧 분절된 삶이 아니라 통합적 관점의 삶을 일상에서 고민하고 실천하는 것을 뜻한다.예측할 수 없는 위험과 재난의 일상에서 악이 구조적으로 고착된 사회에서 사회적 약자들은`착한 사람들`로 살아갈 것을 강요받는다. 그들은 저항하지 않고 자신의 무능과 연약함을 자책하며 살아간다. `착한 사람들`이 `나쁜 사회`를 유지하고 강화하는 아이러니는 바로 그 지점에서 비롯된다는 것.1부 `우리는 나보다 똑똑하다`는 주로 사회적 문제에 관해 쓴 글들로, 세월호 참사, 세 모녀 자살 사건, 인천 어린이집 원아 폭행사건 등으로 표출된 `나쁜 사회`를 직면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2부 `나는 대한민국이 아니다`는 인문학과 대중문화에 관해 다룬다. 인문학, 자기계발, 힐링 열풍의 사회적 맥락에는 유사점이 있다. 각자도생의 사회에서 생존의 조건을 다룬다는 점, 그럼에도 그것만으로는 결코 구원에 이를 수 없다는 점에서 그렇다. 우리에게는 제대로 된 인문학과 힐링이 필요하며, 각자도생이 아닌 상호협력의 삶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6-04-29

진혼가이자 투쟁가이며 때로는 겁없는 사랑가

시인이자 수필가이며 소설가인 김선우(46)의 다섯번째 시집 `녹턴`(문학과지성사)이 출간됐다. 1996년 `창작과비평`을 통해 등단한 그는 현대문학상, 천상병시상 등을 수상한 중견시인이다.네번째 시집 이후 걸출한 장편소설과 통찰력이 돋보이는 에세이들을 선보이며 자신의 문학세계를 벼려온 그가 4년 만에 펴낸 이번 시집에서는 세상 낱낱의 존재들과 눈을 맞추며 경이로운 생명력을 이야기하는 특유의 여린 강인함이 빛을 발한다. `잉태하고, 포옹하고, 사랑하는` 몸에 대한 애착은 모든 시간에서 고유한 언어를 창조해내는 “온몸의 유희”가 되고, 시인 안팎에 부글거리는 `나들`의 향연은 “살아 있는 한 끝나지 않을 혁명”으로 계속되는 것이다.아름답고 여린 말을 매만져 예측하지 못한 힘을 자아내는 김선우의 시는 슬픔에 빠지지 않는 진혼가이자 끝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랑시, 격분하지 않되 묵직하게 끓어오르는 투쟁가로 읽힌다. 고요한 밤을 조용히 울리며 감정을 뒤흔드는 야상곡인 듯, 신비롭고 조화로운 리듬들로 이뤄진 무언가(無言家)인 듯, 67편의 잘 익은 시들은 편편이 서로 공명하고 있다. 김선우의 시집에서 사랑은 빼놓을 수 없는 주제다.`녹턴`에서 사랑은 이별과 결합한 애도의 형태로 등장한다. 이 시집에서 `그해 봄`이라고 에둘러 지칭된 하나의 사건은 그것을 목도한 모든 이들에게 감당할 수 없는 무력감을 가져다줬다. “보았네//보았으나//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보다,의 지옥”(`지옥에서 보낸 두 철`)에서 “세상에 대해 아무런 죄 없는 그 아이를 살려내라고” “불모의 신”을 부르다가 신에게 “면죄부를 쥐여주고 떠나보”(`그해 봄 처음으로 神을 불렀다 1`)내며 시인은 묻는다. `그해 봄`은 이제 누구의 죄인가?이 시집의 해설을 맡은 문학평론가 이광호는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끼는 한, 우리는 우리 자신이 그런 고통을 가져온 원인에 연루되지 않았다고 느끼는 것”이라는 수전 손택의 말을 빌려, 시인의 정치적이며 시적인 물음의 기원을 찾는다. `그해 봄`에 한해, `우리`는 기만적인 단어일 수 있다. “연민이라는 면죄부” 너머 나의 연민이 당신의 고통과 같아질 수 있을지 묻는다면, 김선우는 그것이 가능하다고 답하지 않는다.다만 “고통을 정확하게 함께 느끼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고백하는 것”(이광호)이 가능하며, “`우리`와 다른,/`나들`이라 이해할 수밖에 없는 `나` [….] 너의 아픔에 덩달아 아픈 `나들`”(`詩의 죽음을 애도하는 이유`)로써, 영영 같아질 수 없지만 각자 달라 함께 사무치는 “얼룩 같은/얼굴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적을 뿐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6-04-29

일상의 따뜻함이 삶의 의미로

살아간다는 일이란 원래 이토록 삶에 대한 실감을 하지 못한 채 흘러가버리는 것일까. 우리는 삶 안에 있음에도 그로부터 소외돼, 삶의 의미와 느낌 같은 것들에 쉽게 무뎌진다. 그것이 지나친 피로감 때문이든 혹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든, 저마다의 다양한 이유들로 우리는 삶의 실감을 잃어버린 채 주어진 시간을 살아갈 뿐이다. `레고로 만든 집`의 윤성희(44) 작가의 다섯 번째 소설집 `베개를 베다`(문학동네)는 우리 삶의 생생한 질감을 되살리는 단편소설 10편이 묶여 있다.199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레고로 만든 집`이 당선돼 작품 활동을 시작한 뒤 `하다 만 말`,`유턴지점에 보물지도를 묻다`,`부메랑` 등의 작품으로 현대문학상·이수문학상·황순원 문학상을 수상한 그녀는 일상에서부터 비롯된 소소한 이야기들을 따뜻하고 유머러스하게 그려내며 무뎌진 삶의 의미를 되찾게 해준다.어느 봄에서 시작해 다시 어느 봄으로 끝나는 이 소설집을 읽으며 우리는 “(유행하는 말로 해보자면) 윤성희 소설을 한 편도 안 읽은 사람은 있을지 몰라도 단 한 편만 읽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라는 말이 전혀 유행 따라 그저 해본 말이 아님을, 또한 “낮술을 마시고 길을 걸을 때처럼 무엇이나 환하고 선명하게 보이게 한다”(문학평론가 백지은)는 말이 그저 비유에 그칠 뿐이 아님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소설집의 전반부는 `가볍게 하는 말 ``못생겼다고 말해줘``날씨 이야기` 등과 같이 어린 손자와 단둘이 사는 고모, 딸 하나를 잃은 어머니, 어쩐지 정신이 조금 없어 보이는 언니 등 연장자인 여성을 관찰하는 여성 화자의 목소리로 이뤄져 있다. 그러나 이 화자의 시선에는 죄책감이나 미안함, 연민 같은 확실하고 분명한 감정이 드러나는 대신, 과거를 조밀하게 기억하고 현재의 생활을 촘촘하게 이어나가는 삶의 무늬가 새겨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후반부에는 `휴가` `베개를 베다 ``이틀` 등과 같이 어딘지 모르게 조금 모자라다 할 법한 남자들의 사연이 이어진다. 그러니까 다 큰 성인임에도 어린 시절 어머니가 차갑게 내뱉은 말에 매달려 자꾸 그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는 남자, 느닷없이 엑스트라 배우가 되기로 결심하고 직장을 그만두고 아내와도 헤어진 남자, 또한 은퇴를 할 나이가 됐음에도 여전히 결근하는 일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이는 남자 등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들을 통해 드러나는 것은 우리 모두 삶의 두려움을 직면하고 살아간다는 사실이다.윤성희의 소설은 작은 이야기들이 저마다의 무늬로 굽이치며 흐르고 있기에 무척 촘촘하다고 느껴지지만 사실 이 빽빽함 안에는 굳이 언급하기를 생략해 생겨난 아주 환한 여백들이 있다. 이를테면, 어린 손자와 함께 사는 고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가볍게 하는 말`. 아마도 고모의 아들인 `태우 오빠`는 죽은 듯한데, 윤성희는 이에 대해 어떤 설명도 꺼내지 않는다. `나`가 기억하는 아홉 살 적의 태우 오빠―이른 아침 학교에 가기 위해 일어난 그가 잠에서 깨어난 `나`에게 더 자라고 속삭이며 이불을 덮어주던 기억―의 부지런함과 다정함에 대해서는 세밀하게 말해주면서 말이다. 이처럼 누군가의 부재가 왜 발생한 것인지 함구하는가 하면, `베개를 베다`의 `나`가 갑자기 엑스트라 연기자가 되기로 마음먹은 것처럼,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누군가의 결심이 어째서 비롯된 것인지 또한 세세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윤성희의 소설을 읽다 보면 우리 일상과 다를 바 없는 소소한 이야기들에 빠져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토록 그의 작품들은 수수함 속에서 삶의 에너지를 북돋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6-04-29

하고 싶은 것들과 해야하는 것들…진짜 자유는?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지고 시대적 상황과 개인의 생활이 자유로워졌지만 아직 우리는 진정한 자신을 찾을 자유는 얻지 못했다….”(홍신자 `자유를 위한 변명`중)1993년 초판 출간돼 70만 부가 넘게 팔리고 일본과 중국에 번역되는 등 수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다가 소리 소문 없이 절판된 세계적인 예술가 홍신자(76)의 `자유를 위한 변명`(판미동)이 23년 만에 개정 출간됐다.27세의 늦은 나이로 뉴욕 무용계에 입문, 33세에 인도로 떠나 영적 스승 오쇼 라즈니쉬의 첫 한국인 제자로 들어가 구도의 춤을 추구해 20세기 한국의 가장 영향력 있는 예술가로 자리매김한 아방가르드 무용가 홍신자. 그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담긴 이 책에는 하고 싶은 것들과 해야만 하는 것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며 진정한 자유를 찾아가는 한 인간의 인생 역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초판에 실린 파격적인 내용을 그대로 살리면서, 사실관계를 바로잡고 현대적인 표현으로 문장을 손질해 새로운 감각의 디자인으로 독자들과 다시 만난다.진정한 자유를 얻기 위해 투쟁하듯 살아온 저자의 인생을 꿰뚫어보는 솔직한 고백과 날카로운 통찰이 이 담겨 있다. 늦은 나이에 무용을 시작한 동기, 세계적인 명성을 얻어 가는 과정, 돌연 무용을 포기하고 인도로 떠나 매진한 명상과 구도, 무용가이자 명상가로서 인간의 몸과 죽음을 이해하기 위한 훈련,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생긴 자유에 대한 통찰 등….저자가 활동한 시대에는 누구도 감히 상상할 수 없었던 일들이다. 더불어 고독, 죽음, 몸, 성, 사랑, 결혼, 임신, 출산, 살림, 종교 등 전반적인 삶의 조건들에서 어떻게 우리가 자유로워질 수 있는지 진솔하면서도 파격적인 시각을 제시한다.저자가 왕성히 활동하던 70, 80년대보다 훨씬 더 자유로워졌다고 믿는 이 시대에 이 책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저자는 “자유가 곁에 있는데도 미처 그것을 보지 못하는 독자들에게 선물을 주고 싶어서 이번 개정판을 내기로 결심했다”고 말한다. 현재의 많은 사람들이 “물질적인 면에서 풍요로워지고 시대적 상황이나 개인의 생활에서 자유로워지긴 했으나, 진정한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자유는 아직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외형적인 자유가 만연해진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는 역설적으로 내면의 자유를 잃어버릴 위험이 있다는 이야기다. 살아가면서 “내가 왜 이렇게 살고 있지?”라는 의문이 들 때마다 이 책을 펼쳐보며 자신을 일깨우는 것도 좋을 듯하다./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6-04-29

커피 좋아하시나요? 로스팅부터 창업까지

길을 걷다보면 다양한 콘셉트의 카페를 만난다. 매장에서 직접 로스팅을 한 원두를 사용하는 로스터리 카페부터 커피값이 저렴한 투고(To go) 카페, 아늑한 공간을 제공하는 카페 그리고 우리에게 익숙한 프랜차이즈 카페까지. 그렇게 여러 카페들을 방문하다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나도 회사 때려치우고 커피집이나 한번 해볼까?”실제로 창업 준비자들 중 대다수가 카페 창업을 준비하고 있고 일선에서는 커피 시장은 이미 포화상태라고까지 말한다. 굳이 카페가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창업이 그렇듯 `커피집 한번 해`보는 일은 생각만큼 만만한 일이 아니고 섣불리 창업을 시도했다가 금세 문을 닫게 되는 일 또한 허다하다.`커피집을 하시겠습니까`(달)는 6년 전 카페를 창업해 지금까지 성공적으로 유지해오고 있는 저자 구대회씨가 커피 공부를 시작한 뒤 자신만의 카페를 만들어가기까지의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커피 관련 팟캐스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EBS`세계테마기행`모로코 편, MBC `불만제로`커피 편 등의 방송 출연도 했을 만큼 아는 사람은 다 아는 구대회 사장이 바로 그다. 그는 스스로를 `커피테이너`라 부른다. 커피테이너는 커피(coffee)와 엔터테이너(entertainer)의 합성어로 그만큼 커피에 관련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는 의미다.카페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이 어떻게 커피를 접하고 공부하느냐에 따라 앞으로 그가 어떤 카페를 하게 될지가 결정된다. 저자 또한 처음에는 커피 추출에 대해 배우는 정도였지만 곧 이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에 18개월 동안 약 40여 개국의 카페와 커피 농장을 돌아보기 위한 커피 여행을 감행한다. 이 여행에서 베트남, 오스트리아, 모로코, 칠레 등의 독특한 카페를 체험하고 인도네시아, 탄자니아, 콜롬비아 등 커피를 직접 생산하는 농장을 견학하는 등 오감으로 직접 커피를 경험한 후 여행에서 돌아와 카페를 열었다.이 책은 세계의 카페와 커피 농장을 탐방하는 `커피를 찾아 떠난 여행` 카페를 창업한 후 일본 커피 명가를 찾아 떠난 가배무사수행과 혼자 힘으로 기획하고 진행하는 커피 팟캐스트를 소개한 `커피와 가까워지는 시간` 그리고 그가 그동안 몸소 겪었던 시행착오들이 담긴 `내가 하고 싶은 카페`, 그리고 카페 창업을 준비중인 사람들이 필수로 알아두면 좋을 법한 기본적인 정보들이 담겨 있는 `카페를 열기 전 체크리스트`로 구성됐다.지금 카페를 해도 좋을지, 커피 공부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 창업에서 우선순위로 둬야 할 것은 무엇인지 등 카페를 열기 전 하게 되는 일반적인 고민에 대한 명쾌한 답에서부터, 매장의 위치는 어디가 좋을지, 인테리어는 어떻게 해야 할지, 상표등록과 영업신고증 발급은 어떻게 해야 할지 등 카페 창업 전후에 해야 할 일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다./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6-04-22

천재작가 삶 추적 `꾿빠이 이상`

소설가 김연수(46)는 1994년 등단 이후 22년 동안 8권의 장편소설과 5권의 소설집을 펴내며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작가로 자리매김한 인기 작가다. 동서문학상(2001), 동인문학상(2003), 대산문학상(2005), 황순원문학상(2007), 이상문학상(2009) 등 주요 문학상을 휩쓴 그는 2000년대 한국 문학을 대표하는 `글쟁이`다. 문학동네가 최근 그의 소설집과 장편소설 4편을 개정판으로 새로 출간했다.△장편소설 `꾿빠이, 이상``꾿빠이, 이상`은 지난 17일 작가 이상(李箱·1910~1937)의 기일을 맞아 재출간했다. 김연수 작가가 지난 2001년 발표한 `꾿빠이, 이상`은 요절한 천재작가이자 난해한 수수께끼로 남아 있는 이상을 소재로 삼은 장편소설이다. 이상이 남긴 흔적을 추적하는 3명의 인물이 이야기를 풀어가는 소설은 김연수라는 한국문학계의 대스타를 만든 분기점이 됐다. 소설은 `데드마스크`, `잃어버린 꽃`, `새` 등 총 3장으로 구성됐다.수많은 자료들을 통해 이상의 삶과 그 비밀을 추적해들어감으로써 “지적 소설의 한 장을 열어젖혔다”는 평을 받았다. 이번 개정판은 기존 이야기를 그대로 유지하고, 15년간 나온 이상에 관련된 연구에 기반해 사실관계만을 바로잡았다. 자료들로는 와닿을 수 없는 이상 문학의 진실이 그대로 전해진다는 문학동네 측의 설명이다▲ 밤은 노래한다△장편소설 `밤은 노래한다`장편소설 `밤은 노래한다`는 1932년 동만주에서 벌어진 소위 민생단 사건을 다룬 소설이다. 이 소름 끼치는 이야기는 소설이라기보다는 실록처럼 읽힌다. 역사의 어둠 속에 묻힌 진실을 찾아 거기 빛을 들이댄 작가의 꼼꼼한 취재와 용기와 열정 때문일 것이다.역사의 소용돌이로부터 한 발 떨어진 채 일상을 살아가던 한 남자가 어느 날 연인이 죽기 직전 보내온 한 장의 편지를 받으면서 역사의 한가운데로 걸어들어가게 되는`밤은 노래한다`는 우리를 1930년대 초반 북간도로 이끈다. 그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우리는 항일유격 근거지에서 일어난 비참한 사건, 즉 “민생단 사건”과 마주하게 된다.△두번째 소설집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김연수의 두번째 소설집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는 “등장인물의 기억이 개인 차원에 머문 것이 아니라 사회적 맥락과 연결돼 역동성을 확보하는 견고한 시각이 느껴진다”라는 평을 받으며 제34회 동인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이다.다양한 레퍼런스와 특유의 서정적인 문체를 엿볼 수 있는 첫번째 소설집 `스무 살`(2000)과 작가적 역량이 극에 달한 `나는 유령작가입니다`(2005) 사이에 놓인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2002)는 김연수에 따르면 “처음으로 소설 쓰는 자아가 생긴 작품” “`꾿빠이, 이상`과 더불어 소설가로서 살아갈 수 있는지를 확인해본 시기”에 쓰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이 작품에 이르러 오로지 이야기만으로는 소설을 구성해보려는 작가적 자의식이 발동한 것이다.수록된 아홉 편의 소설의 배경이 `80년대 김천`이라는 점 때문에 김연수(김천 출생)의 자전적 내용을 담은 소설집이라는 오해를 받기도 했지만,`자전소설`이라는 테마로 쓰인 `뉴욕제과점`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작품들은 모두 “자연인 김연수의 개성과 사상을 완전히 배제하고 작가로서 만들어낸 이야기로만 구성”돼 있다.△세번째 소설집 `나는 유령작가입니다`김연수 작가의 세번째 소설집 `나는 유령작가입니다`는 “응축미 있는 구성과 사건에 대한 새로운 해석, 거기에 예상을 뒤엎는 결말 처리가 돋보였다”는 평을 받으며 제13회 대산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이다.총 9편의 소설이 수록된 이 소설집을 관통하는 유일한 진실이 있다면 그것은 “어떤 진실도 말해질 수 없다”일 것이다. 이 세계는 이야기될 수 없는 것이라는 작가적 자의식은, 그러나 허무주의에 쉽게 안착하는 대신 이야기의 가장 마지막 지점까지 우리를 밀어붙인다. 요컨대 말해질 수 있는 진실이란 존재하지 않으므로 그 자리에서 멈춰 서버리는 것이 아니라, 타인·세계를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으로 이야기의 끝의 끝까지 가닿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그 앞에서 우리가 맞닥뜨리게 되는 “절망”이란 허무주의에서 이끌어낸 그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진 단어가 된다./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6-04-22

억압과 굴종의 공간 `학교`

안강여중 교사 황주환씨가 최근 `왜 학교는 질문을 가르치지 않는가 - 어느 시골교사가 세상에 물음을 제기하는 방법`(갈라파고스)을 펴냈다. 이 책은 어떻게 학교가 학생들에게 억압과 굴종의 공간이 돼버렸는지 그 이유를 추적해간다. 학생들은 자신들이 왜 공부를 하고, 왜 대학에 가는지, 그리고 왜 두발을 비롯해 자신의 몸에 대한 결정권을 갖지 못하는지, 자신 앞에 놓인 수많은 사안에 대해 질문하는 힘을 잃어버렸고 이미 학교는 질문을 허락하지 않고 복종과 주입을 강요해왔고, 학생들은 5지선다형에서만 정답을 찾을 뿐이라는 것.저자의 이같은 깊은 문제의식은 `질문 없는 학교`와 `질문하지 않는 학생`에서 시작한다. 현재의 암울한 현실을 벗어나기 위한 첫 단초로서 질문의 절실함을 이야기한다. 학생들이 질문을 가져야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또 우리 앞에 놓인 수많은 모순을 극복할 해답도 제대로 된 질문 속에서 찾을 수 있고 질문은 궁극적으로 세상을 변하게 하는 힘이 된다는 것.이 책에서 저자가 끊임없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아름답고 말랑말랑한 이야기 속에서 감춰져 버린 현실을 직시하자는 것이다. 사실 교육은 체제의 입장에서 피교육자를 길들이는 속성이 있다. 저자에게 책읽기란 그러한 길들여져짐을 넘어서는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실천 방법으로,`불온한 책읽기`로 명명된다. 저자는 “살펴보면 세상의 위대한 것들은 모두 시대에 불온했다”고 말한다. 예수도, 갈릴레이도, 마르크스도, 전태일도 모두 그러했으며, 바로 그들을 통해 시대의 핵심이 드러났다. 불온한 책, 불온한 사상, 불온한 사람이야말로 세상을 통찰하는 가장 중요한 지점이 된다는 것이다. 저자의 독서록은 거기에 초점을 맞춘다.저자가 소개하고 있는 조영래의 `전태일 평전`, 사르트르의 `지식인을 위한 변명`,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루쉰의 `아큐정전`, 강명관의 `열녀의 탄생`, 김용철의 `삼성을 생각한다`에 대한 독서록은 하나의 서평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책 자체의 텍스트와 저자 자신의 삶과 성찰이라는 콘텍스트로 이어짐으로써, 하나의 책들을 더욱 깊고도 풍성하게 읽어내게 되고, 전태일, 아이히만, 아큐 등을 생생하게 그려내어 지금 우리의 모습을 선명하게 바라보게 해줄 것이다./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6-04-22

세계적 오페라의 탄생엔 문학작품 있었다

빅토르 위고의 희곡이 없었다면 베르디 오페라`리골레토`가 태어날 수 있었을까? 장 라신의 작품이 없었다면 모차르트 오페라`미트리다테`가 무대에 오를 수 있었을까? 국내 일간지 기자로서 오랫동안 클래식 음악 현장을 누비며 이미 5권의 클래식 저서를 출간한 저자 김성현씨는`봉주르 오페라`(아트북스)에서 위의 물음에 대한 흥미로운 답을 들려준다. 지금까지의 오페라 해설서가 작곡가의 창작 배경과 작품 줄거리, 주요 아리아 등의 순으로 구성돼 오페라에서 시작해 음반에서 끝났다면`봉주르 오페라`는 원작인 문학에서 출발해 오페라에서 끝나는 방식을 취한다. 즉 “오페라 그 이후”가 아니라 “오페라 그 이전”인 문학의 샘으로 거슬러 올라가 오페라의 원작이 된 프랑스 문학작품 스무 편의 속살을 살피며, 각 작품이 음악의 옷을 입고 오페라로 탄생된 과정을 집중 조명한다. 그것은 오페라 명작 가운데 대다수가 프랑스 문학을 바탕으로 하며, 문학이 오페라에 결정적 영감을 제공한 덕분이다. 이를테면 베르디의`라트라비아타`는 뒤마 피스의`춘희`를, 바르톡의`푸른 수염 공작의 성`은 샤를 페로의 동화`푸른 수염`을 원작으로 한다. 이뿐 아니라 모차르트와 로시니, 푸치니 등 오페라의 거장들 역시 다른 곡의 작곡을 제쳐놓고 오직 그 작품에 빠져든 나름의 사연이 있었으며, 불문학에서 자신의 음악적 영감을 찾았다.`봉주르 오페라`의 출간 배경 또한 흥미롭다. 평생에 한 번 기자들에게 주어지는 해외연수를 프랑스로 가게 된 저자는 현지에서 문학작품을 통해 언어를 배우며, 프랑스 문학이 오페라로 가득하다는 깨달음과 함께 문학의 매력에 푹 빠진다. 귀국한 뒤에도 오페라의 원작이 된 불문학 작품을 모두 원어로 읽으며 문학과 오페라의 만남에 대한 글을 구상했고 이 책은 그러한 4년간의 시간을 바탕으로 한 저자의 결실이다.`네이버 캐스트` 연재 당시에도 인기를 누린 이 글들은 연재를 마친 뒤 내용(오페라 줄거리와 추천 음반, 추천 영상)을 보태고 도판을 손질해 단행본으로 재탄생했다.오페라 감상은 흔히`고급스러운 취향`으로 여겨지지만 실상 오페라의 역사는 유럽 부르주아 계급의 성장과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 물론 오페라사 초기에는 오페라가 궁정이나 귀족의 의뢰로 작곡됐지만, 궁정 축하연이나 카니발 축제 때 이를 접한 부르주아들이 재미를 들이면서 오페라는 그 성격이 변화한다. 극의 내용으로는 부르주아의 일상적 삶이나 당대 유럽을 휩쓴 혁명의 여파 등이 다뤄졌고 음악의 형식, 무대 기술도 색을 달리하며 발전한 것이다.`봉주르 오페라`는 이러한 오페라사를 배경으로 원작인 문학작품에 초점을 맞추는 부분에서는 원작의 역사적, 시대적 배경과 작가의 관심사, 출간 뒤의 필화 사건 등을 생생히 재현한다. 이를테면`토스카`는 나폴레옹 시대의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하고,`피가로의 결혼`의 핵심인 풍자는 평생을 귀족과 부르주아 사이의 경계인으로 산 극작가 보마르셰의 삶을 알지 못하고서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당시에도 검열은 여전해서 지금은 고전이 된 위고의 희곡`환락의 왕`은 루이 필리프 체제 아래에서 수정을 요구받았고, 급기야 1832년 초연 직후에는 상연 금지 처분을 받는다. 역사적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오페라도 정치적 의도를 의심받을 만큼, 원작의 파급력은 막강했다.한편 문학작품이 오페라로 태어난 과정을 풀어간 대목에서는 어떤 부분이 각색됐는지, 초연시의 반응이나 평가, 오페라 사에서 각 오페라가 차지하는 위치 등을 전한다. 오페라`라 보엠`의 원작인 앙리 뮈르제의`보헤미안의 생활 정경`이 세밀하게 보헤미안의 일상 풍경을 묘사하는 데 치중했다면`라 보엠`은 달빛 아래 대화를 나누는 장면 등을 삽입해 오페라의 관습에 맞게 한층 대담하고 낭만적으로 작품을 재해석했다.세계적인 오페라축제로 발돋움하고 있는 제14회 대구국제오페라축제가 오는 10월 관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또한`세계명작 오페라·발레 시리즈``더 메트 라이브 인 HD 2015`등 오페라 실황 콘텐츠가 경쟁적으로 개봉되고 11월에는 세계적인 연출 헤닝 브록하우스의 오페라`라트라비아타-The New Way`도 공연 예정이다. 풍성한 2016년의 공연 무대를`봉주르 오페라`와 함께 해보는 것은 어떨까. 감동과 찬탄의 미사여구보다 박학한 지식을 바탕으로 명쾌한 해석을 선보이는 이 책은 오페라 입문자와 애호가 모두를 오페라 무대 가까이로 이끌 튼실한 가이드다. 젊은 관객이라면`이 한 장의 영상`에 소개된 연출에 대한 평을 살피는 것도 쏠쏠한 재미가 될 것이다./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6-04-15

섬뜩한 당혹·묘한 통쾌감… 상투적임의 가차없는 절단

198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한 이후 줄곧 날것 그대로의 상상력과 거침없는 표현으로 `환멸의 끝을 향하는 극단의 시학`을 펼쳐온 김언희(63) 시인의 다섯번째 시집`보고 싶은 오빠`(창비)가 출간됐다.`시단의 메두사`로 불릴 만큼, 첫 시집부터 네번째 시집까지 5~6년 간격으로 시집을 낼 때마다 성에 대한 노골적인 표현과 폭력적인 언어 구사, 잔혹하고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로 매번 화제를 모으며 충격을 안겨줬던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도 예외 없이 어느 누구도`감히`흉내낼 수 없는 독자적인 시세계를 선보인다. “얼음같이 찬 맨정신”으로 “눈빛 한번 흩트리지 않고, 예리하고 집요하게” 파고드는 “격렬한 자폭의 언사”(김사인 추천사) 속에 풍자와 해학, 유머와 위트가 감추어진 시편들이 섬뜩한 당혹감을 불러일으키면서도 묘한 통쾌감과 시를 읽는 즐거움을 선사한다.“난 개하고 살아, 오빠, 터럭 한올 없는 개, 저 번들번들한 개하고, 십년도 넘었어, 난 저 개가 신기해, 오빠, 지칠 줄 모르고 개가 되는 저 개가, 오빠, 지칠 줄 모르고 내가 되는 나도//(…)//그래도, 오빠, 내 맘은, 내 마음은 아직 붉어, 변기를 두른 선홍색 시트처럼, 그리고 오빠, 난 시인이 됐어, 혀 달린 비데랄까, 모두들 오줌을 지려, 하느님도 지리실걸, 낭심을 꽉 움켜잡힌 사내처럼, 언제 한번 들러, 오빠, 공짜로 넣어줄게”(`보고 싶은 오빠`부분)▲ 김언희 시인김언희의 시는 불편하다. 때로는 불쾌하고 역겨운 감정마저 일으킨다. 그러나 시인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 직설적이고 명쾌한 어법으로 한치의 망설임이나 타협도 없이“먼눈을/시퍼렇게 두리번거리면서”(`이렇게’) 온갖 비속어와 신성모독이 넘치는 극단의 세계로 시를 밀고 나간다. “세계에 대한 끊임없는 의심과 철저한 자기부정, 언어에 대한 회의와 그것을 넘어서고자 하는 욕망”(김남호, 발문) 등으로 미뤄볼 때, 상투적인 것을 가차없이 베어내며 `느닷없는 돌기`처럼 툭 튀어나온 듯한 그의 시는 다분히 `전위적`이다. 기존의 윤리와 도덕, 그리고 왜곡된 욕망에 억눌린 사회의 관습을 깨뜨리고자 시인은 “입에 담을 수 없는 곳에서/입에 담을 수 없는 것이 되어 눈을 뜨는”(`캐논 인페르노`) 생의 굴레를 무릅쓰며 “하는 수가 없어 나는/나의 배를 가”르기도 하고 “하는 수가 없어 나는 나의 늑골을 톱질”하기도 하고 심지어 “섬벅섬벅 뛰는 심장을/꺼내”(`푸른 고백`) 우리 손에 쥐여주기도 한다. 이렇듯 체념과 달관의 사이에서 시인은 권위적인 “세계와 맞서는 치열한 단독자”(김남호, 발문)로서 “찍소리도 없이 꿔야 할 꿈들”(`보고 싶은 오빠`)을 꾸기도 하면서, “값비싼 호박(琥珀) 속의 값비싼/버러지”(`말년의 사중주`) 같은 자신의 정체성을 되묻고 “나의 지저분”(`안녕들하시다`)하고 “파렴치한”(`그라시아스 2014`) 시의 의미를 되새겨본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6-04-15

물체운동법칙 밝힌 최초 근대 역학 교과서

현대 과학 기술 문명의 기초인 물리학은 끊임없이 진화해 왔다. 뉴턴 역학은 하늘에 존재하는 천체들의 운동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시공간을 통합해 우주의 지형도를 새로 그렸다. 이후에는 대폭발 이론, 끈 이론, 다중 우주론 등이 등장해 우주에 대한 한층 깊은 이해를 이끌었다. 거시 스케일뿐만 아니라 미시 스케일에서도 물리학은 진보해 나갔다. 현미경으로 벼룩을 관찰하며 만물의 설계자인 신을 찬양하던 시절을 지나 방사광 가속기로 DNA의 단백질 구조를 살펴보고 LHC 실험실에서 극미소 입자들을 다루는 시대가 온 것이다.현대 과학의 연구 범위는 이미 인간의 지각 수준을 넘어섰다. 오늘날 과학자들은 우리의 현실과는 동떨어져 보이는 환경 속에서 존재하는 그 무엇을 찾아내고 연구하기 위해 열정을 쏟는다. 하지만 불과 400년 전만 해도 과학은 눈에 보이는 것 또는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에 의존했다. 그런 상황에서 인위적인 실험과 적절한 장치를 통해 가설을 검증하고 이론화하는 과학적 방법론의 탄생은 과학의 혁명, 더 나아가 인식의 혁명을 불러일으킨 대사건이었다.그 혁명의 선두에 서 있던 인물이 16세기 이탈리아의 자연 철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1564~1642년)였다.`새로운 두 과학: 고체의 강도와 낙하 법칙에 관하여(사이언스북스)`는 첫 출간(민음사, 1996년) 후 20년 만에 갈릴레오의 젊은 시절 수학 노트를 추가하고 번역과 디자인을 새롭게 하여 나온 책으로 대중들에게 물체의 운동 법칙을 소개하는 최초의 근대 역학 교과서라 할 수 있다. 1638년 가톨릭교회의 검열을 피해 네덜란드에서 출간된 이 책은 `대화`로 인해 종교 재판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갈릴레오가 자택에 연금된 채 눈이 멀어가는 와중에 완성한 근대 물리학의 고전이다.운동은 고대 그리스부터 내려오는 매혹적이면서도 난해한 문제였다. 하지만 갈릴레오는 과감하게 매개 도구와 실험을 통한 측정 그리고 사고 실험을 과학 연구에 도입했다. 그 결과 인간은 불완전한 감각의 한계를 넘어서 진리의 문에 한걸음 다가갈 수 있었다.`새로운 두 과학`을 통해 갈릴레오와 함께 새로운 과학이 탄생하는 순간을 공유할 수 있을 것이다.책은 `대화`와 같이 살비아티, 사그레도, 심플리치오라는 세 인물이 등장해 나흘간 자유롭게 토론하는 형식으로 구성돼 있다. 살비아티는 갈릴레오의 운동 이론을 소개하고, 심플리치오는 당시 학계 정설이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물리학을 대변하며, 사그레도는 교양 있는 일반 시민을 상징한다. 그리고 갈릴레오는 `동료 학자`로 등장한다. 이 책은 세 사람은 나흘간 물체의 응집력, 강도와 부피와 길이의 관계, 물체의 등속도 운동, 가속도 운동, 포물선 운동에 대해 `동료 학자`가 쓴 책을 같이 읽으며 자유롭게 토론한다.물리학의 탄생을 우주 대폭발 사건에 비유한다면 갈릴레오의 `새로운 두 과학`은 대폭발 전에 존재한`우주의 알`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매개 도구를 통해 실험을 설계하고 해석하는 갈릴레오의 전통은 더 나은 도구와 장치로 관찰과 실험의 영역을 넓혀 나가면서 데이터를 축적하고, 그것을 통해 더 깊은 이해에 도달하는 과학의 진보를 이끌었다. 갈릴레오의 위대한 유산은 `새로운 두 과학`이 출간된 지 4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과학이 미답의 경계를 허물고 지식의 지평을 넓히는 데 기여하고 있다./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6-04-15

베르테르와 닮았고 맥베스를 반추케 하는…

엘리자베스 라밴의 소설 `비극 숙제`(문학동네)는 어린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조용히 그러나 힘있게 다가와 가슴 아픈 첫사랑과 어리숙한 시절의 실수, 그로 인해 피하지 못한 비극에 대해 속삭인다.엘리자베스 라밴은 이 소설에서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려 시도하면서 거기에 셰익스피어의 여러 희곡들에서 받은 영감을 더하고 있다.주인공 팀 맥베스는 자기 확신 없이 스스로의 “비극적 결함”에 이끌리며 비극적 운명으로 내달리게 되는 베르테르와 닮아 있고, 그의 이름은 셰익스피어의 희곡`맥베스`에서 따온 것이다.주인공 팀 맥베스와 덩컨 미드가 “그날”의 비밀이 담긴 녹음 CD를 매개로 소통하게 되면서 두 인물의 이야기가 각자의 시점에서 교차되고, 거기에 셰익스피어와 괴테의 고전 속 비극의 원형이 어우러져 작품에 깊이를 더한다.`비극 숙제`는 팀 맥베스와 덩컨 미드라는 두 명의 소년을 앞에 내세운 액자식 구성의 소설이다. 팀이 돌이킬 수 없는 `그날`의 일과 버네사와의 추억을 고통스럽게 복기하며 녹음해간 1인칭 시점의 CD 속 이야기와 그 CD를 들으며 비밀을 파헤치고 자신의 트라우마를 떨쳐나가는, 3인칭 시점으로 서술된 덩컨의 이야기가 교차하며 흥미롭게 결말을 향해 나아간다.액자 속 이야기의 주인공이자 진짜 비극의 주인공인 팀 맥베스는 셰익스피어의 `맥베스`속 맥베스와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을 믿지 못하는 인물이고, 덩컨 미드는`맥베스`의 덩컨 왕처럼 예민하고 섬세하다. 팀과 버네사의 첫 만남과 이후의 삼각관계는 구성에 있어서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얼마간 빚을 지고 있다. 자신감의 결여, 의심, 죄책감 같은 일상적이고도 `비극적인 결함´ 탓에 작은 실수를 반복하다가 끝내 운명적으로 비극을 맞게 되는 인물들에게서 명작이라 불리는 고전들 속 비극적 인물들이 언뜻언뜻 비칠 때 그것을 포착하는 즐거움이 남다르다./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6-04-08

우리가 사는 세상은 살만한 곳인가…

소설가 김이설(41)씨는 소외되고 결여된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과연 우리가 사는 세상은 살 만한 곳인가를 끊임없이 묻는 작가다. 200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열세 살`이 당선돼 작품활동을 시작한 이후 올해로 등단 10년을 맞은 김 작가는 그동안 첫 장편 `나쁜 피`와 소설집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들`, 중편 `선화` 등을 통해 사회의 최하층을 이루는 구성원들의 생존의 몸부림을 처절하게 그리곤 했다.엄마와 노숙 생활을 하다가 아비를 알 수 없는 아이를 낳게 되는 소녀(`열세 살`), 외삼촌의 폭행과 주변 남성들의 성폭행에 무방비로 노출된 삶을 살다 죽은 지적장애인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가슴 속 상처로 안고 사는 30대 중반 노처녀(`나쁜 피`), 빚 때문에 가족과 흩어져 대리모가 된 여대생 등 남루한 현실과 그 속에서 발버둥치면서 소진해 가는 사람들(`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들`), 화염상모반이라는 선천성 병으로 얼굴에 짙은 얼룩으로 생을 무겁게 누르는 아픔을 갖고 살아가는 처녀(`선화`)….작품마다 불편하고 어두운 사회문제를 파고들며 차세대 여성 소설가로 주목받으면서 동세대 작가들과 뚜렷이 구분되는 소설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2010년에 펴낸 첫 소설집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들`이후 꼬박 6년 만에 펴낸 두번째 소설집 `오늘처럼 고요히`(문학동네)가 출간됐다.“작품의 완성도에 대한 집념 혹은 치열함을 느끼게 한다”(소설가 은희경)라는 평을 받으며 제3회 젊은작가상을 수상한 `부고`와 2016년 이상문학상 우수상으로 선정된 `빈집`을 포함해 총 9편의 소설이 수록된 이번 소설집을 통해 김이설은 폭력이 우글거리는 밑바닥 삶에 여전히 현미경을 들이대 그 세계의 진상을 선명히 감각하게 하면서 그 세계에서 한 발 떨어진 채 지켜온 우리의 평온함이라는 게 얼마나 기만적인지를 되묻는다.그같은 벗어날 길 없는 세계에서 삶은 어떻게 이어질 수 있는가, 아니 그런 삶도 과연 지켜나갈 만한 것인가, 라는 둔중하고도 무서운 질문을 던진다. 그리하여 `오늘처럼 고요히`라는 제목은 수록된 소설들의 전체 이미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면서 동시에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 오지 않으리라는 걸 체득한 인물들이 내뱉을 수 있는 최소한의 바람이 된다.소설집 가장 처음에 자리한 `미끼`는 김이설 스스로 “그동안 보여준 소설의 정점 같은, 더이상 비슷한 작품을 쓸 수 없도록 여한 없이 쏟아부었다”라고 말할 정도로,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폭력이 대물림되는 과정을 야성적으로 구현해낸 작품이다. 아버지가 창고에 가둬놓고 물고기를 낚아채듯 함부로 짓이기던 여자를`엄마`라 부르던 `나`가 어느 순간 또다른 여자를 끌고 와 아버지보다 더 무자비한 방식으로 여자를 창고에 던져넣을 때, 우리는 폭력의 연쇄 속에서 증폭되는 것은 오로지 더 큰 폭력밖에 없다는 선뜩한 사실과 마주하게 된다.이는 악몽보다 더 지독한 현실을 그려낸 `흉몽`을 통해서도 차갑게 전해져온다. 남편의 실직 후 불어난 빚을 갚고자 모텔에서 밤낮없이 청소 일을 하며 버텨가던 `나`에게 어느 날 남편이 찾아온다. 구취를 풍기는 돈가방 하나를 들고서. 출처가 미심쩍은 돈가방도, 횡설수설하는 남편도 원래의 자리로 돌려보내고, 참담한 삶이나마 근근이 이어나가는 것이 우리가 바라는 결말일 것이다. 그래야만 적당한 불편함을 잠시 느끼고 우리 역시 원래의 세계로 안전하게 되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이 작품들을 따라가다보면, 혈연으로 맺어진 관계는 서로를 옭아매는 것 외에 서로에게 어떤 의미도 돼주지 못한다는 작가의 냉혹한 시선과 마주하게 된다. 부모님의 이혼-성폭행-친모의 죽음-애인과의 이별-중절 수술 등 끊임없이 바닥으로 휘몰아치는 상황 속에서 `나`를 위안해주는 사람은 아빠도 오빠도 아닌, 자신과 비슷한 상처를 지닌 의붓엄마이며(`부고`), 가족을 위해 평생을 헌신해왔다는 그 자부심 하나로 폭언을 일삼는 아버지를 피해 `나`가 잠깐이나마 웃음짓는 순간은 동료들과 함께 시답잖은 농담을 할 때이고(`한파 특보`), 가족 중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는 비밀을 간직한 `나`가 연약하나마 어떤 희미한 연결감을 느끼는 대상은 국적도 다르고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민호 엄마다(`비밀들`). 우리가 위안을 얻을 수 있는 대상이 가족 아닌 타인이라는 것은 엄정한 진단이지만 동시에 폭력이 휩쓸고 난 이후 우리가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그 방향을 모색해보게 한다는 점에서 역설적인 희망을 가져다준다. /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6-04-08

하면될까? 젊음은 아프다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로 한국에서 큰 화제를 불러일으킨 일본의 젊은 사회학자 후루이치 노리토시(31)의 데뷔작 `희망 난민`(민음사)이 출간됐다.이 책은 저자가 사회학을 선택한 이래 줄곧 천착해 온`젊은이 문제`를 심도 있게 파고든 첫 결실이다. 그는 도쿄대 대학원 총합문화연구과 석사 논문으로 제출한 연구물을 바탕으로`희망 난민`을 세상에 내놓았고, 주요 언론은 물론 학계와 대중으로부터 큰 주목을 받았다.`희망 난민`이 화제에 오른 건 국제 NGO 단체 피스 보트(세계 평화 실현하는 세계 일주 크루즈)를 통해 현대 일본의 젊은이 문제를 절묘하게 규명해 냈기 때문이다.`희망 난민`이 출간될 당시만 해도 젊은이 연구는 학력, 노동, 범죄, 서브컬처 등의 문제와 얽혀 이뤄져 왔을 뿐 세계 평화나 환경 보호를 부르짖는 NGO 단체 등 사회 운동의 차원에서는 좀처럼 다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껏 젊은이는 사회 변혁의 주체로 받아들여져 왔고, 자기 찾기를 위한 방황은 당연한 미덕으로 간주돼 왔다. 하지만 저자는 근대 이후 경제 성장이 멈춰 선 오늘날, 젊은이들에게 쏟아지는 막중한 기대에 위화감을 느낀다. 열악한 노동 환경과 불투명한 미래의 기로에서 외딴 섬으로 변해 가는 젊은이들을 위로해 주는 돌파구로서 자주 거론되는 새로운 공동체와 사회 운동 커뮤니티. 저자는 이런 것들이 오늘날 `젊은이 문제(빈곤과 고독)`를 해소해 줄 만병통치약처럼 거론되는 사회 분위기에 의문을 제기한다. 희망 고문을 재생산하고 꿈만 좇게 하는 공동체가 노동 시장의 변두리에 놓인 젊은이들에게 어떠한 혜택을 줄 수 있을까? 피스 보트가 제공하는 세계 여행과 사회 변혁을 요구하는 구호는, 현재 젊은이들의 목을 조이는 빈곤과 외로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저자는 졸업, 취직, 결혼 등으로 이어지는 근대적 인생 경로에서 제 기능을 상실한 통과 의례와 자아성찰의 과정을 되짚어 보며, 오늘날 젊은이들이 모여드는 공동체의 실체를 낱낱이 파헤친다.한 사회의 축소판이자 더 나은 미래를 요구하는 피스 보트 커뮤니티에서 114일 동안 집요하게 파고든 현장 조사 끝에 저자가 마주한 진실을 적었다.오늘날 피스 보트와 같은 사회 운동 공동체는 물론, 극우 단체나 사이비 종교 단체마저도 `희망 난민`을 위로하는 기능을 수행하며 젊은이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사회 구조 자체가 젊은이를 자립한 존재로 이끌 수 없다면 자기 계발을 강요하는 담론과 그럴싸한 외양을 지닌 `새로운 공동체`는 사회와 개인을 개선할 수 없다. 그곳은 단지 젊은이들의 외로움과 승인 욕구만 어루만질 뿐, 미래의 빈곤과 냉혹한 현실까지 껴안지는 못하기 때문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

2016-04-08

만주와 한국을 잇는 계보

1960년대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한국을 세계 경제 10위권으로 부상하게 한 급속한 산업화, 건설과 정보 강국을 견인한 속도 추구, 나아가 개발 체제에 대한 향수가 일조한 이명박·박근혜 정부 탄생에 이르기까지, 1960년대는 오늘날의 한국과 밀접하게 연결된 시간대다. 이처럼 한국 현대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1960년대 한국 사회를 읽는 또 하나의 독법을 제시하는 책`만주 모던: 60년대 한국 개발 체제의 기원`(문학과지성사)이 출간됐다. 이 책은 만주에 관해 오랫동안 연구해온 한석정 동아대 사회학과 교수가 10여 년간의 연구 성과를 집대성한 결과물로서, 한국의`재건 체제`혹은 불도저식 증산, 안보 체제의 원류를 만주국 체제(1932~45)에서 찾는다.오늘날의 한국 사회와 직결돼 있는 시공간이 1960년대라면, 또 이 시대와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는 시공간이 바로 1930~40년대 만주라는 것이다.저자는 1960~1970년대 한국에서 일어난 경제개발 5개년 계획, 국토개발, 반공대회, 대량 전단 살포, 표어 제작, 주민 점호 등은 모두 만주국 시대에 행해진 것이라고 말한다.오늘날의 한국 사회와 직결된 시공간이 1960년대라면, 또 이 시대와 직접적으로 연결된 시공간은 1930~1940년대 만주라는 것이다.1장은 1930년대 부산에서 시작해, 만주행 엑소더스의 출발지인 영남 지역을 거쳐 만주 펑톈 등지로 갔다가 해방 후 귀환하는 기행 형식을 통해 재건 체제 형성의 역사를 추적한다.2장에서는 만주의 충격을 가장 크게 받았던 부산을 중심으로 식민주의가 초래한 `확산`에 접근한다. 조선인의 만주 이주와 귀환, 조선과 만주의 관계, 조선인의 지위 등을 통해 1960년대 한국의 재건 체제에 이르는 개척의 흐름을 추적한다. 3장은 동아시아 발전국가의 계보에서 만주국이 차지하는 위치, 만주국을 소환한 배경인 냉전과 한일 수교 등을 짚어보고 한국 발전국가의 역사적 맥락을 논의한다. 4장은 부정적 시각 일변도의 파시즘을 분해하고 파시즘과 근대의 관계를 살핀 후 생산과 안보에 주력한 한국판 국방국가의 형성을 살펴본다.5장은 온 국토를 뚫고 메우는 직선적 건설, 속도에 매몰된 건설 시대의 면면을 들여다본다. 6장은 신체를 통한 재건 체제의 형성에 관한 것이다. 신체가 어떻게 제국, 민족, 냉전 경쟁에 헌신하게 되고 재건 체제를 형성했는지 논한다. 7장은 노래, 춤, 영화 등 예술 세계에서의 남북 대결, 만주국에서 비롯된 예술 세계를 추적한다. 8장은 결론으로서 재건 체제 형성을 되짚어보고, 만주 모던이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는 함의를 생각해본다./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6-04-08

4월엔 삼국유사도 좋아요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원장 이기성)은 올해 `4월의 읽을 만한 책`으로`글쓰는 여자의 공간`(타이나 슐리·남기철·이봄) 등 10종과`4월 청소년 권장도서`로`삼국유사 어디까지 읽어봤니?`(이강엽 글·김이랑 그림·나무를심는사람들) 등 9종을 선정 발표했다.출판진흥원은 좋은 신간도서에 대한 정보를 일반에 제공해 출판산업과 독서문화 발전에 기여하고자 좋은책선정위원회를 통해 문학예술,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실용일반, 유아아동 분야의 책을 매달 `이달의 읽을 만한 책`과 `청소년 권장도서`로 나눠 선정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진흥원 홈페이지(www.kpipa.or.kr)에서 볼 수 있다. 4월 추천도서는 다음과 같다.□ 4월의 읽을 만한 책`4월의 읽을 만한 책`으로는 35명 여성 작가들의 작품을 탄생시킨 그 은밀한 공간을 사진과 함께 소개한 `글쓰는 여자의 공간`(사진·타이나 슐리·남기철·이봄), 농사 현장에서 점차 사라져 가는 우리 농기구들 안에 깃든 가치를 들려주며 우리 선조의 지혜를 엿보는 `농사짓는 시인 박형진의 연장 부리던 이야기`(박형진·열화당), 각종 브랜드명을 비롯해 익숙한 단어들을 따라가며 세계 문화를 배우는`단어 따라 어원 따라 세계 문화 산책`(이재명, 정문훈·미래의창) 등 10종이 선정됐다.□ 4월 청소년 권장도서`4월 청소년 권장도서`로는 삼국유사 원전에서 초중고등 교과서에 실린 이야기 외에 잘 알려지지 않은 다른 주요 이야기들을 열 가지 주제로 나누어 들려주는 `삼국유사 어디까지 읽어 봤니?`(사진·이강엽 글·김이랑 그림·나무를심는사람들), 청소년들이 문자의 기원과 가치를 통해 인류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10대에게 권하는 문자 이야기`(연세대 인문학연구원 HK문자연구사업단·글담출판), 세상의 어려움을 극복해 나아가는 우리 신화를 다양한 캐릭터들을 통해 이야기한`우리 신화 여행`(정해원 글·김종민 그림·우리교육) 등 9종이 선정됐다./윤희정기자

2016-04-01

어느날…예기치 못한 구덩이에 빠지다

편혜영의 네번째 장편소설 `홀(The Hole·문학과지성사)`이 출간됐다. 지난 200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편혜영은 빼어난 외모와 함께 매년 작품을 펴내는 성실성으로 유명한 작가다.밀도 높은 서사와 긴밀한 문장으로 독자들을 사로잡으며 `아오이가든`, `사육장 쪽으로`, `선의 법칙` 등의 작품을 펴낸 그는 이효석문학상을 시작으로 동인문학상, 이상문학상, 현대문학상을 연이어 거머쥐며 한국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했다.작년 발표한 장편`선의 법칙` 이후 1년 만에 다시 펴낸 `홀`은 문예지`작가세계`에 발표했던 단편`식물 애호`에 살을 붙여 만들었다.소설은 느닷없는 교통사고와 아내의 죽음으로 완전히 달라진 오기의 삶을 큰 줄기로 삼으면서, 장면 사이사이에 내면 심리의 층을 정밀하게 쌓아 올렸다. 또한 모호한 관계의 갈등을 치밀하게 엮어 팽팽한 긴장감을 조성해냈다. 사고가 일어난 직후 벌어지는 일들과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의 일들이 교차로 그 모습을 드러내면서 한 인간에 대한 적나라한 일면이 서로 단단히 연결된 문장들로 기록됐다.특별한 일 없이 흐르던 일상은 순식간에 엉망이 되기도 한다. 언제 시작될지 모르는 재앙과 고난을 기다렸다는 듯이 편혜영은 그 시작을 알리는 방아쇠를 당긴다. 이 책은 뉴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교통사고로 시작한다. 그것도 아주 심각한 교통사고. 이 사고로 오기는 아내를 잃고, 스스로는 눈을 깜박이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불구가 돼버린다. 의사의 말대로 `의지`가 있어야만 겨우 살 수 있는 상태에 처한 셈이다.“완전히 무너지고 사라져서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렸다는 오기의 독백처럼 예상치 못한 사건은 오기의 일상을 한순간 뒤흔든다.이 책 대부분의 사건과 이야기는 타운하우스 형태로 지어진 오기 부부의 집에서 벌어진다. 정원을 갖춘 이 집은 소설이 진행되면서 오기와 두 여자 사이의 관계 변화에 따라 그 모습을 달리한다. 첫번째로 집은 사고 이전 오기와 아내 사이에 아무런 문제없던 시절 자유롭게 둘의 미래를 꿈꾸는 공간이었다. 그들의 미래에 어떠한 균열도 예측할 수 없으리라는 믿음 아래 두 사람은 행복과 희망을 그려나갔다. 무리한 값을 지불해야 했지만 서서히 사회에 자리를 잡아가는 오기 부부에게는 그 정도 부담감은 감당할 만한 가치가 있는 공간이다.두 사람의 관계가 조금씩 달라지면서 이 공간이 갖는 이미지도 서서히 달라진다. 영국식 정원을 만들겠다며 정원 만들기에만 몰두하는 아내의 변화로 인해 정원은 곧 `아내의 공간`이 돼버리고 집이라는 공간에는 보이지 않는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오기의 사고 이후에는 완전히 제 역할을 탈바꿈한다. 몸을 전혀 움직일 수 없는 오기에게 자신의 전부나 다름없는 집은 마지막에 이르러 거의 사용할 수 없는 공간이자 오히려 오기를 가둬버리는 공간으로 폐쇄적이고 황폐한 분위기를 풍기는 것이다. 아내와 평생 사용할 거라고 믿고 비싼 돈을 주고 구입한 “이튼알렌의 장미목 침대”와 “티크 책상”은 불구의 몸이 된 오기에게는 짐짝 같은 존재일 뿐이다. 아내의 죽음 이후 아무도 관리하지 않는 덩굴식물은 과거 “덩굴식물로 담벼락을 뒤덮지 말라”는 오기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그 악착 같은 본성을 자랑하며 오기의 창을 잠식해오기 시작한다. 사실상 손쓸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는 오기가 유일하게 밖을 내다볼 수 있는 통로였던 창을 말이다. 작가는 하나의 공간 안에서 이야기를 진행하며 공간의 이미지가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모습을 치밀하게 드러낸다.크지 않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삶에의 불안과 공포가 사건이 진행될수록 서서히 오기를 조여온다. 일어나지 않았다면 좋았을 일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그 시작을 알 수 없는 지난날의 삶이 덮쳐오면서 읽는 이들도 함께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될 것이다.소설은 오기가 집에서 탈출을 시도하다 구덩이에 빠지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제목처럼 걷잡을 수 없는`홀`에 빠진 것이다./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6-04-01

현재의 우리와 닿아있는 도시의 역사

오늘 우리에게 `서울`은 무엇일까.`서울의 인문학: 도시를 읽는 12가지 시선`(창비)은 서울이라는 도시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에 인문학적 깊이를 더한다. 문학, 역사학, 사회학, 건축학, 철학 등 다양한 분야의 필자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들여다본 서울은 여러 겹의 시간과 공간을 품은 도시이자, 갖가지 욕망으로 살아 숨쉬는 사람들의 도시이다. 광화문, 남산, 종로, 홍대, 강남 등 서울의 여러 공간이 지닌 의미의 변화와 함께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내면을 탐색하는 이 책은, 겉으로 보이는 풍경과 수치화된 자료 아래 감추어진 서울의 속살을 드러냄으로써 서울의 현재를 다층적이고 입체적으로 이해하게 하며, 이를 통해 서울이라는 공간을 살아가는 우리 자신의 현재를 성찰하게 한다.`서울의 인문학`을 구성하는 12가지 시선은 서울의 특정한 장소 또는 특정한 현상으로부터 서울이라는 도시, 나아가 우리 사회의 현재에 대한 탐구와 성찰로 이어진다. 공간에 새겨진 정치사회적 기억을 발굴하고, 공간을 점유하는 각 세대의 삶의 양상을 탐구하며, 공간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인간의 욕망을 성찰하고, 나와 타자를 구별짓는 시선을 반성하는 이 논의들은 공간에 대한 탐구가 결국 우리 자신의 현재를 되돌아보는 일과 닿아 있음을 보여준다.류보선의 `광장의 꿈, 혹은 권력의 광장에서 대화의 광장으로`는 서울의 대표적인 광장인 광화문광장과 서울광장을 다룬다. 이들 두 광장은 오랫동안 한국사회의 사회정치적 관계가 응축되어 드러나는 공간이었으며, 특히 2002년 월드컵 이후로 우리 사회의 상징적인 장소로 부상했다. 하지만 최근의 세월호 사건을 겪으면서 광화문광장과 서울광장은 애도와 재생이 아닌 대립과 갈등의 공간으로 전락해가는 징후를 보이고 있다. 필자는`밀실`과 `광장`이 변증법적으로 지양되는 광장, `멈추어 서서 대화하는 곳`으로서의 광장이 필요함을 역설한다.염복규의 `서울 남촌, 100년의 역사를 걷는다`는 최근 북촌과 서촌이 문화적으로 부상하는 데 비해 상대적으로 주목이 덜한`남촌`을 중심으로 공간에 남아 있는 역사적 기억과 현재의 모습을 살핀다. 일제강점기`한적한 북촌` 대 `북적이는 남촌`의 대비에서 시작해 일제시기 일본인의 정착지이자 식민지배의 표상이었던 남촌에 새겨진 100년의 역사를 찾으며 그 현재적 의미를 읽어내는 이 글은 상처와 환희, 굴욕과 영광이 어우러진 남촌의 역사를 어떻게 마주하고 남촌의 장소성을 현재에 어떻게 되살려야 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우리에게 제기한다.조연정의 `이 멋진 도시를 어떻게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을까`는 노량진과 고시원으로 상징되는 청년세대의 `유예된 삶`의 모습으로부터 우리 사회 청년 세대가 직면한 빈곤과 절망의 현실을 논의하며, 최근 젊은 세대의 소설을 통해 서울로부터 `거절`당한 이들이 현실에 대한 체념과 미래에 대한 불안이라는 정조를 바탕으로 결코 `내 것`이 될 수 없는 서울이라는 공간을 나름의 방식으로 상상하고 소유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음을 읽어낸다.정수진의 `청계천, 서울의 빛나는 신전`은 청계천에서 동대문디자인플라자로 이어진 서울의 공간 디자인을 둘러싼 `서울의 꿈`, 혹은 `권력에의 의지`를 해부한다. 모더니티를 향한 꿈이 빚어낸 청계천 복개공사와 기능적 도시계획은 그 이면에 좁은 뒷골목으로 이루어진 모더니티의 그림자를 낳았음을 이야기 한다./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6-04-01

우리의 존엄을 지켜주는 것은 무엇인가?

“헤세는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에서 진짜 내가 원하는 걸 찾는 여정이 삶의 공부라고 말한다.`안티고네`는 인간이 목숨을 걸고라도 지켜야 할 가치가 있음을 깨닫게 한다.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가치들, 이것들을 위대한 작가들은 모두 공부를 통해 실천했다. 공부는 읽기와 글쓰기를 넘어서 삶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40만 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 여행서`내가 사랑한 유럽`의 작가이자 문학평론가인 정여울(40)이 인문 에세이집 `공부할 권리`(민음사)를 펴냈다.정여울은 `공부할 권리`에서 공부를 “과거와 현재의 내 문제를 깨닫고, 미래의 내 삶을 설계하는 것”이라고 정의 내린다. 인생 항로에서 배움을 꼭 붙들고 있어야 품위 있는 삶을 쟁취할 수 있고, 이는 모두에게 중요한 권리라는 것.`공부할 권리`는 마르크스에서 지그문트 바우만까지,`리어 왕`에서`이방인`까지 저자가 종횡무진 횡단했던 책 읽기를 삶의 지도에 그려 넣고 있다.정여울은 이번 책이`나와 너, 그리고 우리의 존엄을 지켜 주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자신만의 해답이라고 말한다. 그는 삶의 작은 가치들을 창조의 힘으로 꽃피우려면 공부할 권리를 포기해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그는 인간의 고독할 자유를 설명하기 위해 지그문트 바우만의`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칼 융의`원형과 무의식`, 아스트리드 리드그렌의 동화 `라스무스와 방랑자`를 끌어들인다. 문학, 철학, 미학, 문화비평 등을 넘나드는 그의 방대한 독서편력이 책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시인 네루다의 질문에서 시작하기도 하고, 마르크스의 문제의식에서 출발하기도 한다.책은`품위 있는 삶을 위한 인문학자의 분투기`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1부`인간의 조건`에서는 그리스 신화의 영웅 아킬레우스가 처음부터 멋진 영웅이라기보다는 점점 성장하는 영웅의 내면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라는 점과 신데렐라는 남들이 아무리 자신을 초라하게 볼지라도 자신의 위대함을 끝내 믿는 인간의 신비를 증언한다고 쓰고 있다.2부`창조의 불꽃`에서는“외적인 성장만을 중시하는 현대사회에서 우리에게는`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을 수 있는 감수성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잠시 트위터와 카톡을 멈추고 자신의 내면과 만날 수 있는 진정한 고독을 되찾아야 할 것이라고.3부`인생의 품격`에서는“자기 삶에서 어떤 선택을 할 때는 그것이 반드시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임을 잊지 마라”고 말한 새뮤얼 존슨의 교훈을 전하고 4부`마음의 확장`에서는 그리스의 서사시`오디세이`의 주인공 오디세우스를 영웅으로 기억하는 것은 자신의 분노를 침착하게 통제하고 전략적으로 이용해 마침내 원하는 것을 얻어 내는 오디세우스의 놀라운 이성 때문이라고 말한다. 인류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사회를 파괴시키는 에너지로서의 분노`가 아니라 사회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분노,`정의로운 분노`에 대한 공감대를 어떻게 이룰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5부`가치 있는 삶`은 영국 대표 여성작가 버지니아 울프가 첫 소설`출항`을 출간하는 데 7년이나 걸렸을 만큼 느린 글쓰기에서 진정한 창작의 자유가 올 수 있었고 더 많은 돈, 더 큰 집, 더 멋진 스위트홈을 이루는 것이 현대인의 이상이 되었지만, 그것을 꿈꾸는 이상 자체가`커다란 감옥`일 수 있다는 점을 마르크스는 일찍이 간파했다고 전한다./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6-0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