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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인도 도시 하층민들의 불안한 삶 그려

`안나와디의 아이들`(반비)는 퓰리처상 수상 작가 캐서린 부가 인도의 도시 하층민들이 겪는 불안한 삶을 실화를 바탕으로 기술한 르포르타주다. 저자는 2007년 11월부터 3년 넘게 뭄바이 안나와디 빈민촌에 직접 머물면서 여러 인물들을 인터뷰하고 3천건이 넘는 공공 기록을 조사하면서 도시 슬럼가의 비통한 현실을 기록했다.저자는 안나와디 빈민촌에서 가난과 불행의 인간적인 초상화를 그리는 동시에 그것을 통해 세계화가 양산한 구조적 빈곤과 불평등이 어떻게 인간의 삶을 규정하는지 드러내고자 했다.인도의 뭄바이는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발전하는 도시라는 점에서 그런 이중성이 가장 노골적으로 나타나는 곳이다. 2천만명의 인구를 거느린 메가 시티 뭄바이는 그 한켠에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빈민촌을 형성하고 있다. 그 안에는 토착민과 이주민, 무슬림과 힌두교도 간의 갈등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고 전통과 현대 사이에 낀 여성들의 젠더 갈등도 나날이 심각해지는 데다 고속 성장 시대 특유의 한탕주의와 부정부패가 만연해 있다. 그 혼란의 와중에서 가난한 이들은 돈벌이의 기회, 인생 역전의 기회, 혹은 최소한의 생존의 기회를 포착하려고 고군분투한다. 저자는 뭄바이의 빈민촌 `안나와디` 사람들 이야기를 통해 이 모든 문제들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신분 승상을 위해 극우 정당의 하수인이 된 여성 아샤, 폐품 분류에 대한 천부적 재능으로 가족의 생계를 꾸려가는 무슬림 소년 압둘, 변화하는 세상을 목격하면서도 고지식한 부모 때문에 얼굴도 모르는 남자에게 시집가야 하는 운명에 절망하는 소녀 미나, 글로벌 시대에 걸맞은 인재가 되고자 영어 공부에 매진하는 대학생 만주 등 안나와디의 구성원들은 각자의 앞에 놓인 삶을 버티기 위해 모두 안간힘을 쓰고 있다.일체의 편견을 배제하고, 현미경으로 관찰한 팩트를 핀셋으로 들어올리듯 미세하고 정교하게 관찰한 내용들은 도시 빈민의 삶에 대한 놀라운 통찰로 이어진다. 이들이 길거리에서 죽어가는 타인에게 무심한 것은 윤회에 대한 믿음 때문이 아니라 고통에 공감할 여지가 없을 만큼 참혹한 삶 때문이다. 이들이 부정부패에 관대한 것은 부패와 비리가 이토록 만연한 도시에서는 그것이야말로 가난한 이들의 취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생존의 기회이기 때문이다.저자는 단순히 이들의 삶을 보여주는 데에 그치지 않고, 삶을 규정하는 현대사회와 자본주의의 메커니즘 또한 면밀히 분석한다. 글로벌 자본주의는 빈민촌이라고 해서 비껴가지 않으며, 전 세계적 불황과 비정규직화, 무한 경쟁은 안 그래도 불안한 빈민들의 삶을 뿌리부터 뒤흔든다. 저자는 이 글로벌 자본주의가 어떻게 안나와디 빈민들을 삶을 위태롭게 하는지와 함께, 안나와디의 주민들이 이 험난한 시대를 어떻게 창의적으로 헤쳐 나가는지를 동시에 보여준다.취재 대상의 삶 속으로 뛰어들되, 객관적인 사실관계를 면밀히 확인한 뒤 글을 쓴다는 원칙에 충실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 결과를 종합해 도시의 빈곤과 불평등을 야기한 구조적인 문제들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는 점에서 이 책은 르포르타주의 진가를 보여주고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3-09-27

삶의 미묘함에 대한 조망

올해로 등단 26년째, 198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마디`로 작가생활을 시작한 구효서의 신작 소설집 `별명의 달인`이 출간됐다. 삶이 깊어갈수록 소설세계 또한 다채로워진 대표적 전업작가, 리얼리즘에서 모더니즘, 신비주의와 낭만주의 등 다양한 문체와 알레고리로 독자를 꾸준히 매혹해온 그다. `시계가 걸렸던 자리` `저녁이 아름다운 집`을 잇는 여덟번째 소설집 `별명의 달인`은 앞선 두 소설집에서 천착한 탄생과 소멸의 문제에서 벗어나 삶의 미묘함 그 자체를 조망한다. 죽음에 대한 사유 끝에 따라붙기 마련인 허무의식이 이번 소설집 곳곳에 스민 것은 그러므로 놀라운 일이 아닐 터, 그것이 삶에 대한 포기나 체념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데 이 소설집의 빛나는 힘이 있다. 요컨대 삶은 유한하며 우리는 삶의 의미를 끝내 모를 것이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까닭에 끊임없이 재질문할 수 있다는 것이다.표제작 `별명의 달인`의 화자는 학창 시절 자신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었던 친구를 찾아간다. “당신은 제대로 아는 게 없어”라는 말을 버릇처럼 하던 화자의 아내가 어느 날 갑자기 떠난 뒤였다. 화자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의 내·외면적 특징을 놀랄 만큼 잘 찾아내 `별명의 달인`이라 여겨진 옛 친구. 그 친구라면 아내가 외치던 말의 뜻을 알 것 같았고 자신에게 무엇인가 말해줄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그를 만나 지난날을 회상하던 화자는 옛 친구에게 별명 짓기란 재미가 아닌 공포와 고통을 모면하기 위한 방편일 뿐이었음을 떠올린다.친구들의 반감을 사던 옛 친구의 “너스레와 공연한 자존심” 뒤에는 타인에 대한 빈틈없는 파악이 불가능한 데서 오는 두려움이 있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3-09-27

모순덩어리 사회, 詩로 매섭게 질타

지난 2011년 미당문학상을 수상하며 시단의 주목을 받아온 이영광(48) 시인의 신작시집 `나무는 간다`(창비)가 출간됐다. 2000년대 한국 시단에서 하나의 `사건`이라 불릴 만큼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아픈 천국` 이후 3년 만에 펴내는 네번째 시집이다.“짐승의 비릿함과 사람의 고독, 시인됨의 긍지와 부끄러움, 사랑과 역사가 교차하는 밀도 높은 시의 몸”(함돈균, 해설)이 담긴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절정에 오른 시적 감각으로 무고한 죽음을 낳는 참혹한 현실을 직시하고 모순덩어리의 사회를 매섭게 질타하며 시대의 불합리한 폭력에 맞서는 결연한 시정신을 보여준다.시대를 관통하며 삶과 죽음 그리고 사랑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예리한 통찰력과 섬뜩하리만큼 세밀한 묘사, 생동감 넘치는 정교한 언어 감각이 돋보이는 견고한 시편들이 묵직한 울림으로 다가와 깊은 공감을 자아낸다. 총 60편의 시가 실렸으며 미당문학상 수상작 `저녁은 모든 희망을`을 비롯해 새롭게 선보이는 `유령`연작 2편이 특별히 눈에 띈다. `미당의 토착적인 서정성과 김수영의 불온성`을 동시에 담고 있는(이광호) 이영광의 시는 `아픈 천국`에서 몸으로 쓰는 시다.문학평론가 함돈균이 이번 시집을 “`몸의 시학`에 관한 한국문학사의 가장 전위적인 실천 가운데 하나로 기억될 것임에 틀림이 없다”(해설)고 평가했듯이, 시인은 “육박하고 뒤엉키고 침투하고 뒤섞이는”(`나무는 간다`) “거품 같은 몸”(`깔깔대는 혼`)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건드리면 꿈틀대는”(`정물`) 가슴 밑바닥에 고인 감정을 뽑아올려 자신의 몸을 통과하는 언어로 드러낸다. 몸에서 떠오르는 시적 영감을 직관으로 잡아채는 것이 그의 시의 매력이기도 하다.시인은 “전력을 다해” 살아가듯이 죽음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래야 원혼으로 가득 찬 무수한 죽음들을 두려움 없이 똑바로 바라볼 수 있다고 믿는다. 희망의 씨가 마른 곳에서 오히려 희망의 싹이 돋아난다고 여기는 시인은 “빛을 다 썼는데도 빛은 나타나지 않는”(`저녁은 모든 희망을`) 삶의 그늘진 곳에서 아렴풋한 빛의 세계를 응시하며 자기성찰의 기도 시간을 갖는다.“인간이란 것이 되려다/짐승 탈을”(`쇠똥구리야`) 쓴 “슬픈 몸”이 “덜 살고 덜 살고 덜 살아서” 하게 되는 “숱한 사랑의 말”(`세한`)이 바로 시인의 기도다. 시인은 이 기도를 역설적으로 “희망이 필요 없는 희망” “절망이 필요한 절망”(`쇠똥구리야`)이라고 부른다.우리 사회 곳곳에 널린 억울한 주검들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는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유령` 연작 2편을 새롭게 선보인다.시인이 이 자리에서 불러내는 `유령`은 “팔뚝에 푸른 `反共`을 새기고/뿔 달린 짐승을 꿰뚫은 화살 문신을 하고”서 도대체 과거 속으로 “흘러가지 않는”(`과거는 힘이 세다`) `어제의 용사들`과 “사고든 사격이든 사기든,/깊은 사색이든”(`천안`) 여전히 의문투성이인 `천안함 사건`의 원혼들이다.뿐만 아니라 “동네에서 동네로 옮겨가는데/아무도 알아보지 못”해도 오히려 “세상이 내게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는 사실이/위로다”라고 여기는 “투명인간”(`투명`) 같은 존재들도 유령에 다름 아닐 것이다. 우리가 소외된 이웃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 “과거와 미래와 현재가 좀 힘없이/잘 살”(`과거는 힘이 세다`)게 되는 날이 올 때까지 시인의 `유령` 연작은 계속될 터, 그가 또 어떤 모습의 유령을 불러들일지 자못 궁금하다.이영광 시인은 “사람만이 찾아낸/분노의 거주지/혼돈의 부동산/이따위 곳”(`이따위 곳`)에서 “모든 말을 다 배운 벙어리/혀 잘린 변사”로서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려”(`시인이여`)는 시인으로 살아가는 한 존재로서의 부끄러움을 내비치며, “쥐새끼처럼/죽은 채로 살길을 찾아 헤”(`살생부`)매며 그저 “시늉만 하는” “시인이란 것을 들킬까봐”(`뒷밭`) 두려운 마음에 전전긍긍하기도 한다.시인은 “반평생 나는 시를 카피했을 뿐”이라고 스스로 몸을 낮추지만 “붕어빵에 정말 붕어가 들어 있었던 건지도”(`붕어빵`) 모를 일처럼 정작 그의 시 속에는 “뒤집히”고 “녹아 없어지는”(`나무는 간다`) 세상의 어둠을 밝히는 `지혜의 빛`이 서려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3-09-13

삶의 여유와 따뜻함을 주는 산문·소설

고 박완서 작가의 미발표 산문과 소설을 모은 산문집 `노란집`(열림원)이 출간됐다. `노란집`은 박완서 작가의 장녀인 호원숙 수필가가 엮었는데 작가가 살던 경기 구리시 아치울 마을 `노란집`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라는 콘셉트로, 한 편 속에 생을 옮겨다놓은 듯한 이야기가 마치 작가가 옆에서 동화를 들려주는 것처럼 느낌이 생생하다. 여기에 더해진 글 사이사이의 일러스트들은 일상의 피로를 잔잔하게 어루만지면서 삶의 여유와 따스함을 전달해준다.책에는 `행복하게 사는 법`, `친절한 사람과의 소통` 등 산문 40여편과 `그들만의 사랑법`이라는 제목의 짧은 소설이 수록됐다.수수하지만 인생의 깊이와 멋과 맛이 절로 느껴지는 노부부 이야기가 담긴 소설 `그들만의 사랑법`을 비롯해 `이제야 보이기 시작하는 것들` `예쁜 오솔길` 등 산문 곳곳에서 어머니 품 같은 온화한 글들, 그 문장 하나하나를 마주대하는 것만으로 그리운 작가의 모습이 비추인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경쾌함과 진지함의 균형감각을 유지하면서 행복을 찾으려 했던 작가의 글들이 마치 유언과도 같은 진한 울림을 준다.노년의 느긋함과 너그러움, 그리고 그 따스함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1장의 이야기들은 작가가 2001~2002년 계간지 `디새집`에 소개했던 글들이다. 이밖에 노년기 또한 삶의 일부분이라고 말하며 삶에 대해 저버리지 않은 기대와 희망과 추억을 써내려간 작가의 소소한 일상을 엿볼 수 있기도 하다.사람에 따라서는 삶의 가장 긴 동안일 수도 있는 노년기에 다만 늙었다는 이유로 아무 일도 일어날 수 없다면, 그건 삶에 대한 모독이라고 박완서 작가는 `노년`이라는 또 다른 한 생에 대해 말한다. 아무것도 안 일어나는 삶에서 소설이 나올 수는 없다면서. 작가가 말하는 행복하게 사는 법은 지극히 소박한데서 발견하는 즐거움이다. 장미의 아름다움을 보고 즐거워하기보다 들꽃을 관찰하면서 그 소박하고도 섬세한 아름다움에 감동하는 것이 더 큰 행복이듯이.“마나님은 영감님이 혹시라도 아무도 대작할 이 없이 쓸쓸하게 막걸리를 들이켜는 일이 생긴다면 그 꼴은 정말로 못 봐줄 것 같아 영감님보다 하루라도 더 살아야지 싶고, 영감님은 마나님의 쭈그렁바가지처럼 편안한 얼굴을 바라보며 이 세상을 뜰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어 요즈음 들어 부쩍 마나님 건강이 염려스러운 것, 그건 그들만의 지극한 사랑법이다.”(`그들만의 사랑법`중에서)“우리 삶의 궁극의 목표는 행복이다. 행복하려고 태어났지 불행하려고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누구나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지만 각자 선택한 행복에 이르는 길은 제각각 다르다. 창조주는 우리가 행복하길 바라고 창조하셨고, 행복해할 수 있는 조건을 다 갖춰주셨다. 나이 먹어가면서 그게 눈에 보이고 실감으로 느껴지는 게 연륜이고 나잇값인가 보다. 인생도 등산이나 마찬가지로 오르막길은 길고, 절정의 입지는 좁고 누리는 시간도 순간적이니까”(`행복하게 사는 법`중에서)/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3-09-13

인간 존재에 대한 탐색

윤대녕의 일곱번째 소설집 `도자기 박물관`(문학동네)이 출간됐다. 1990년 `문학사상`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지 올해로 23년째, 그간 특유의 여로 형식과 시적인 문장을 통해 인간 존재의 거처를 집요하게 탐색해온 그의 신작 소설집에서 우리는 윤대녕 소설세계의 연속성을 느낄 수 있음은 물론, 그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깊이를 확보하며 새로운 소설세계로 나아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지난 2010년 9월부터 2013년 4월까지 발표된 총 일곱 편의 단편소설들은 그가 `작가의 말`에서 “고통에 대한 사유와 삶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잦았던 것 같다”고 밝히고 있는 것처럼 살아가는 일의 고통스러움을 보여주는 인물들에 대한 묘사가 두드러진다. 새삼스러운 지적이지만 윤대녕의 인물들은 그들이 품은 어떤 에너지 때문에 삶에서 헤맬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었다. 인물들이 느끼는 태생적인 결핍과 상실감이 그들을 일상에서 벗어나게 만들고 이 세계에서 보이지 않는 어떤 것들을 찾아 방황하도록 이끌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여로에서 만나는 여인들과 은어, 소, 별, 제비와 같은 상징들은 이 아프지만 아름다운 헤맴에 동반자와 나침반이 되어주었다.그런데 이번 소설집의 인물들은 방황할 수 있는, 또 여로에 오를 수 있는 특유의 에너지를 잃고 황폐하고 척박한 고통 속에 깊이 빠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세계가 병들었음을, 더불어 그 세계에 발을 디딘 인물들마저 함께 감염되었음을 보여주는 두 작품 `구제역들`과 `검역에서 그러한 특징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타고난 감각으로 시대의 변화를 예민하게 감지해내던 윤대녕이 이제까지와는 달리 보다 직접적으로 현실 인식을 드러내고 있는 특별한 작품들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3-09-13

세계로 확장해 가는 `낯선 언어`

보이지 않는 “유령”의 말과 `사건의 시학`으로 존재의 형성과 사건의 의미를 물으며, 매 시집마다 하나의 화두를 통해 자신의 세계, 세계의 언어를 살펴 확장시켜나가는 시인 김언의 네번째 시집 `모두가 움직인다`(문학과지성사)가 출간됐다. 미당문학상과 동료들이 뽑은 올해의 젊은 시인상(2009), 박인환문학상(2012)을 수상한 후 처음 선보이는 이번 시집 `모두가 움직인다`에서는 사건을 형성하거나 포착하기보다 세계의 움직임을 단절 없이 담아내고 있다.김언이 세계의 움직임을 담는 방식은 고착된 언어를 낯선 의미로 떠돌게 하는 데서 시작한다.변기를 가져와 전시장에 가져다놓고 미술 작품이라고, 악기 연주 없이 침묵과 연주장의 소음만을 엮어 음악 작품이라고 일컬은 예술사의 익숙한 사건처럼, 현대에 들어 예술은 그것이 무엇인지보다 그것을 `선택`함을 중요하게 여기게 됐다.문학은 다른 예술과 달리 보고 듣는 감각 외에도 모두에게 암암리에 `동의된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특성 탓에 변화가 느릴 수밖에 없었다.물론 시 안에서도 그러한 선택적 파괴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김언은 낯선 언어를 무조건적으로 자폐와 난해로 치부하는 섣부른 판단에 저항하며, 익숙한 언어를 낯설게 만들어 모두가 이미 알고 있는 의미에서 떼어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다.지금도 세계에서는 늘 무엇인가 만들어지고 이름 붙고 변화한다. 마치 그 의미만을 위해 마련된 단어인 듯 이름을 사용하지만 실은 그 `이름`은 부적합하며 불충분하다.다만 다른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단어이기에, 남의 말을 빌려 제 말처럼 쓰는 것이다./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3-09-06

詩로 그려낸 우리들 삶의 현실

“고라니고라니고라니/ 고라니라고 중얼거리다보면 보인다/ 보현산 참새미/ 굴러오는 물방울 더미// 저쪽 고구마밭머리 멀뚱하니 선 채/ 먼 하늘/ 아득히 따라가는/ 눈 맑은 수수꽃다리 너// 보급투쟁 내려온/ 어린 파르티잔 같다”- `고라니` 전문포항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만수 시인의 7번째 시집 `바닷가 부족들`(도서출판 애지)은 우리들 삶의 구체적인 현실을 시로 보여주고 있다. 이번 시집에서는 특히 육친의 사별에 대한 경험과 통증이 인간의 존재론적 사유로 나아가면서 곡진하게 그려지고 있다. 그것은 또 이웃과 마을과 바다로 외연을 넓히고 종종 막막하고 고독한 자아에 대한 성찰로 귀결되곤 한다.“생젖 흐르는 소리를 기다렸으나/ 아무것도 고여 들지 않았고/ 더 깊이 갇혀버린/ 젖 창고”를 기다리거나 “꿈꾸던 사랑과 혁명과 구원이/ 선명한 불꽃으로 타오르던/ 강 언덕에서/ 아직도 막막하고 질긴 문장을 떼어내며/ 간절히 낡은 묵주를 넘기고 있”(`북한강`)기도 하다. 또는 “눈을 따지 않은 알갱이로/ 그대 좁은 뒤주에 들어/ 천년을 눈 뜨고 엎드렸다가/ 몇 홉 씨앗들과 함께/ 아직 푸른 눈의 설렘으로/ 너의 몸에 싹틔우고 싶다”(`현미`)는 바람으로 드러나기도 한다.`쉰`에서는 자본의 사회에서 잘 소비되지 않고 잘 읽혀지지 않고 있는 자아를 얘기하고 있다. 우리 누구도 이러한 자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나 “나를 떠메고 가는 내가 보였다”는 진술처럼 좌절과 상실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의지를 낳는 동력으로 그려지고 있는 점이 시인의 장점으로 보여진다.김 시인의 이번 시집에는 `젖창고` `북한강` `아구` `현미` 등 서시가 많다.이번 시들은 `바닷가 부족들`이 울리는 북소리다. 그들이 지닌 `오래된 물통`에는 `바람칸이 무너진 하모니카며 `놋종`이랑 `은빛 자전거` 등 온갖 것들이 `정박`해 있어 시인은 오늘도 몇몇 도막을 꺼내들고 화톳불을 지핀다. 이를테면 `별싸라기 한줌`을 조몰락거리다가 `토끼 교미 날짜가 적힌 공책`을 들춰보고는 `가슴이 뜨거운 새`들을 하늘 멀리 놓아 보내는 것이다.그의 시들은 오래 걸어온 자의 깨우침이요, 다시 멀리 나아갈 필경(筆耕)의 보습 갈아 끼우기다. “새들이 찍고 가는 울음의 무늬”와 “생젖 흐르는 소리”가 씨줄과 날줄이 되어 생명의 강보를 짜고 있다. 그가 펼쳐놓은 시의 조붓한 길을 따라가다가 `표준전과`, `샛강`, `사진` 등의 시를 만나면 문득 옥수수 삶는 냄새처럼 칭얼거리고 싶어진다.위험을 무릅쓰고 사람의 마을로 보급 투쟁 내려온 어린 고라니처럼 생명에 대한 발원이 가득한 이 시집을 두고 차영호 시인은 “바닷가 부족들이 울리는 북소리다”라고, 이정록 시인은 바다의 너울과 파도의 “고해에서 작살에 피 흘리는 고래의 숨소리와 광어의 뱃가죽 같은 순백을 끌어올린다” 라고 헌사하고 있다.“나는 잘 소비되지 않았다신화가 얽혀지던 불의 축제뜨거운 페이지 뒤란에서젖은 나무토막으로 웅크린 시간들비춰지지 않았으므로반사되지 않았고나는 읽혀지지 못했다사소한 서사에도밀려났다 캐스팅되지 못했다햇살이 낮게 굴러와 죽었다찰방거리는 물길을 만들며 빛이 사랑이번질 거라 믿었다 거짓이었다수없이 개복하고길을 만들고 성을 쌓았다 늦은 나무를 심었다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성 위에는찢긴 깃발이 더 깊이 죽었다나를 떠메고 가는 내가 보였다”― `쉰`전문▲ 시인 김만수1955년 포항에서 태어난 김만수 시인은 1987년 `실천문학`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포스코 건립 당시를 다룬 장편 서사시 `송정리의 봄`을 발표했으며 `소리내기`, `햇빛은 굴절되어도 따뜻하다`, `오래 휘어진 기억`, `종이 눈썹`, `산내통신`, `메아리 학교` 등의 시집을 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3-09-06

시간관리 이렇게 해보세요

티베트 불교의 정신적 지도자인`족첸 라마`이자 학자인 저자가 시간관리법에 대해 쓴 `붓다의 시간 관리`(판미동)가 출간됐다. 족첸의 족은 `완벽한`을, 첸은 `위대한`이라는 뜻을 말한다. 즉, 족첸은 티베트 전통에서 가장 높은 가르침이라 할 수 있다. `붓다의 시간 관리`는 족첸의 라마인 라마 수리야 다스가 쓴 시간 관리법이다.라마 수리야 다스는 `붓다의 시간 관리`에서 진정한 시간 관리란 우리 각자가 의미 있는 삶을 향해 나아가게끔 만드는 인생 관리법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는 책의 서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불교는 시간과 그 운용 방법을 심오하게 다루는 학문이다. 나는 이를 통해 세상이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지라도 중심을 잃지 않고 조화롭게 사는 법을 공부해 왔다. 따라서 나는 당신에게 필연적이며 멈출 수 없는 시간의 행진과 평화롭게 공존하는 법을 보여 주고자 한다. 꽉 짜인 일정과 계속되는 변화 속에서 더 이상 우리가 희생자가 아니라 주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과 자신만의 속도를 통해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고요하게, 쫓기거나 지배당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알려 주고 싶다. 기억하라. 우리가 맞닥뜨린 어떠한 문제 속에서도 멈추고, 호흡하고, 우리의 중심을 발견하고, 점검할 때 그 모든 순간은 무한대의 가능성과 기회를 갖는다”라마 수리야 다스는 먼저 우리가 삶에서 느끼는 초조함과 불안, 삶에 대한 중압감에 대한 궁극적 원인을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통해 자신의 인생에 부족한 것이 무엇이며, 과연 무엇을 진정 원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자신만의 속도를 찾을 수 있다. 이때 바로 우리는 한정된 시간의 개념에 스스로가 얼마나 얽매어 있는지를 깨닫고, 더욱 단순하고 집중된 삶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이는 자신의 생각, 불안, 과거와 현재에 붙들린 자신 스스로가 붙인 꼬리표를 털어 내야 한다는 의미다.저자는 자신만의 속도를 자연의 순환을 통해 이해하고 그 흐름에 따라 몸과 마음을 새로이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이를 위해 복잡한 머리와 심난한 마음을 정화시키는 호흡법과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를 보여주는 명상법 등 지금껏 보아온 시간 관리법과는 전혀 다른 비법들을 제시한다. 총 8장으로 구성돼 있는 `붓다의 시간 관리`는 자신만의 삶의 속도를 찾는 8가지 구체적인 방법을 소개하면서, 그 실천 방법으로 `시간 비우기`와 `마음으로 살피는 순간`을 정리해 놓았다. 이는 시간의 환기를 통해 꽉 막힌 뇌를 활성화시키며 지금 이 시간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되돌아보게 해준다.`붓다의 시간 관리`에 소개된 8가지 구체적인 방법은 다음과 같다.1. 자연적인 시간을 인식하기 2. 고양된 자아와 시간 보내기 3. 점점 더 깊게 빠져들기 4. 우리가 가진 통찰의 힘을 이해하기 5. 지혜롭게 시간 살피기 6. 속도 속에서 여유 창조하기 7. 성스러운 시간과 공간에서 생활하기 8. 매 순간에는 선택이 존재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3-09-06

한 사람의 궤적 따라 던진 질문들

사 년 전, 서른여덟의 작가 이석원은 첫 산문집 `보통의 존재`를 통해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정밀하게 한 인간의 내면과 일상의 풍경을 보여줬다. 그가 꺼내놓은 내밀한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는 잊고 있었던 외로움과 심연을 맞이했고, 그의 이야기가 곧 자신의 이야기와 같음을 느꼈다. 그렇게 “보통의 존재”에 대해 담담한 어조로 이야기했던 작가 이석원이 사 년 만에 장편소설 `실내인간`(문학동네)으로 돌아왔다.이야기는 실연의 상처를 간직한 채 낯선 곳으로 이사를 간 용우가 앞집에 사는 한 남자를 알게 되면서 시작된다. 호기심 많고 활달하면서도 한편으론 유약한 성품을 지닌 용우는 매사에 강인한 모습을 보이는 남자를 친형처럼 따르게 되는데 실내인간은 바로 용우가 만난 사내 김용휘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소설 `실내인간`은 한 사람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며 많은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우리가 옳다고 믿으며 살아가는 것, 소위 인생의 목표로 삼고 살아가고 있는 것들이 과연 얼마나 옳고, 의미 있는 것인지를. 또한 사람이 다른 누군가를 이해한다고 믿는 것이 얼마나 착각인지를, 그리고 정말로 사랑했던 사람을 잊는 것이 가능한 것인지를.1971년 서울생. 서른여덟이 되던 해 어느 날 사랑과 건강을 한꺼번에 잃고 삶의 의미에 대해 반추하다 남은 생을 글을 쓰며 살아가기로 결심, 2009년 겨울 산문집 `보통의 존재`를 발표했다. 마치 현미경을 통해 들여다보듯 정밀하게 잡아낸 보통 사람의 내면과 일상의 풍경이 가득한`보통의 존재`는 이른바 `보통 신드롬`을 일으키며 출간된 지 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베스트셀러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리고 2013년 8월 이석원은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살아가리라는 그의 열망을 담은 두번째 책이자 첫번째 장편소설 `실내인간`을 발표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3-08-30

서민들의 변두리 인생, 詩로 풀어내다

2006년 사십대 중반의 늦깎이로 `현대시학`을 통해 등단해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한 박형권 시인의 두번째 시집 `전당포는 항구다`(창비)가 출간됐다. 생명력이 펄떡이는 이미지와 구수한 입담으로 민초들의 소박한 삶을 그린 첫시집 `우두커니`로 `새로운 민중서정시`의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으며 주목을 끌었던 시인은 4년 만에 펴내는 이번 시집에서 삶의 현장에서 빚어낸 진솔한 언어로 자본주의 사회의 `낮은 생태계`에서 가난한 삶을 꾸려가는 서민들의 변두리 인생을 곡진하게 그려내면서 섬세한 감성의 실타래를 풀어놓는다. “거대도시 주변부 동네와 사람살이에 대한 증언”으로서 삶의 진정성이 오롯이 녹아든 시편들이 잔잔한 여운을 남기며 깊은 울림을 자아낸다.“사람 안 들기 시작한 방에 낙엽이 수북하다 /나는 밥할 줄 모르고, /낙엽 한 줌 쥐여주면 햄버거 한개 주는 세상은 왜 오지 않나/(…) /낙엽 주고 밥 달라고 하면 왜 뺨 맞나 /낙엽 쓸어담아 은행 가서 낙엽통장 만들어달라 해야겠다 /내년에는 이자가 붙어 눈도 펑펑 내리겠지 /그러니까 젠장, /이 깔깔한 돈 세상에는 /처음부터 기웃거리지도 말아야 하는 것이었다 /아직도 낙엽 주워 핸드백에 넣는 네 손 참 곱다 /밥 사먹어라”(`은행나무`부분)박형권의 시는 `비시대적`이라 할 만큼 시단의 풍토나 유행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관념적인 언어에 기대어 이념을 내세우기보다는 구체적인 삶 속에서 길어올린 친근한 일상 언어로 소시민들의 이야기를 조곤조곤 들려준다.시인은 자신이 속한 서울의 변두리 동네, “뷰티플 자본주의”(`뷰티플 플라워를 지나가고 있다`)의 주변부 인생의 곡절들을 애틋한 눈길로 바라보며, “걱정거리라도 생활에 보태 쓰는 동네”(`촌티`)에서 “인간다운 생활”(`화살나무의 과녁`)을 꿈꾸며 살아가는 이웃들의 풍경을 세밀하게 그려낸다. 그러나 시인은 “바들바들 버티다가 처박히”는 “고달픈 서정”일 뿐인 자신의 시가 “누구도 구하지 못하는 무능”(`겨울비`)함을 자탄한다.“동부시장 시계탑이 내려다보고 있는 사거리, 정오, 튀김 천막 내외가 점심상을 받는데 /다붓하게 마주 앉아서 `시골밥집` 된장찌개를 놓고 흰밥을 먹는데 /된장 한 그릇에 들어가는 두개의 숟가락이 서로의 입속에 깊숙이 혀를 밀어넣듯 서로를 먹이는데 /길 위에서 먹는 밥이 달고도 달아 서로를 먹어주는 것이 달고도 달아 /아, 먹는 일 장엄하다”(`꽃을 먹다`부분)지난날 “허무를 좀 안다고 /`살아서 뭐하겠나`와 /`에라, 대충 살자`를 퍼뜨”리며 “나팔을 불었”(`허무의 힘으로`)던 시인은 어느덧 “내 어깨에 아이 둘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고 /아내가 화장품을 안 사기 시작하였다는 것을”(`장엄한 세수`) 깨닫는다. 그리고 자신이 발 딛고 선 이 삶의 누추한 풍경들로부터 자신의 존재를 다시금 쌓아올려야 함을 자각한다. “늘 곰팡이가 피어오르”고 “창틀이 마당과 맞물린” “반지하 단칸방”을 맴도는 땅 밑의 삶을 힘겹게 이어갈 뿐이지만, 시인은 비참함을 한탄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우리들의 미래는 송이버섯처럼 번창하리”(`자전거 타고 방 보러 간다`)라는 희망을 안고서 삶을 짓누르는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시인 박형권시인은 지금 이곳, “발아래 세상이 보이기 시작”(`아빠의 내간체―실연의 힘`)할 때 비로소 저 너머 인간의 훈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희망의 세상을 꿈꿀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어서 씻고 밥 먹고 콩나물시루 같은 버스에 올라 /밥벌이하러 가야” 하는 일상이 반복되는 고단한 삶일지라도 시인은 “오늘부터는 무슨 일이 일어나도 끝내 행복하고야 말겠다”(`장엄한 세수`)는 자못 비장한 다짐을 가슴속에 새긴다. “절망을 끌어안을 자궁이 없”(`김자욱 씨의 여명`)는 눈물겨운 생의 이면을 확신하고 있기에, 시인은 “사랑도 증오도 아닌 살아야 한다는 이유만을 높이 치켜들고”(`풀꽃`) “내가 나를 부르며/수없이 `깨어나라`고 외쳤던 그 막막한 어둠을 기억하며”, 오늘도 내일도 “여명을 향해” 힘차게 “페달을 밟”(`불러요 콜택시`)는다.“능소화 한 가닥 흐드러지게 피어/창문이 보일락 말락 한 지하방에는 /방바닥보다 화장실이 높이 있어서 /서너 계단 밟고 올라가야 변기통이 있다는 거 /혹시 아나 //우라질 놈의 변기통이 고장도 잘 나 //우리 모두 배 속에 똥 모셔두고 사는 걸로 /위안하며 살자 //이렇게 꽃다운 시로 읊어가면서”(`꽃다운 시`전문)/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3-08-30

권위 타파… 거침없는 명쾌한 평론가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는 독일에서 `문학의 교황`이라 불리는 폴란드계 유대인 비평가. 1920년 6월 폴란드 브워츠와베크에서 태어나 1929년 가족과 함께 베를린으로 이주했다. 베를린 피히테 김나지움 시절 독일의 문학, 음악, 연극 등에 심취해 대학 진학을 희망, 아비투어를 치렀지만 1938년 10월 제3제국의 유대인 탄압에 의해 1만 2천명이 넘는 폴란드계 유대인들과 함께 강제 추방당했고 바르샤바 게토에 수용됐다.1943년 트레블링카 강제수용소로 이송되기 직전, 1942년 결혼한 아내 테오필라와 극적으로 탈출에 성공, 한 농가에서 자신들의 목숨을 지켜준 주인 부부에게 세계문학 작품들을 이야기로 풀어 들려주며 열 달 넘게 숨어 지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뒤 폴란드군에 입대하여 정보부와 외무부 등에서 근무했고 폴란드 공산당에 가입했으며 런던 주재 폴란드 총영사관에서 영사로 일하기도 했다. 런던 주재 시절 `제국`이라는 뜻을 가진 `라이히(Reich)`라는 성의 뉘앙스 때문에 `라니츠키`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1949년 폴란드 정보부와 외무부, 공산당에서 축출된 뒤 1958년까지 독일문학 편집자, 비평가 등으로 일하며 생계를 이어갔다.폴란드에서의 부자유를 견디지 못한 그는 1958년 가족과 함께 서독으로 이주해 정착했다. 이후 한스 베르너 리히터가 창설한 독일 현대문학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문학단체로 일컬어지는 `47그룹`에 참여, 현대 독일 작가들과 교분을 맺었고 1960년부터 1973년까지 `차이트`의 상임 문학평론가, 1973부터 1988년까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의 문예부장으로 일하며 현대 독일을 대표하는 문학평론가로서 명성을 얻었다.1988년부터 2001년까지 독일 공영방송 ZDF의 `문학 4중주`라는 서평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부터 전 독일에 이름을 알렸고 문학의 대중화에 앞장섰으며 권위를 타파하는 거침없고 명쾌한 평론으로 독일 문학계의 제왕으로 군림했다. 지나치게 솔직하고 공격적이며 친대중적인 평론으로 귄터 그라스, 마르틴 발저, 페터 한트케 등 여러 유명 작가들이 그에게 등을 돌리기도 했다.1971년부터 1975년까지 스웨덴 스톡홀름 대학, 웁살라 대학 등의 객원교수를 지냈고 1974년부터 튀빙겐 대학의 명예교수로 있다. 뮌헨 대학, 위트레흐트 대학, 웁살라 대학 등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리카르다 후흐 문학상, 괴테 문학상, 토마스 만 문학상, 루트비히 뵈르네 문학상 등을 받았다.그는 책 `작가의 얼굴-어느 늙은 비평가의 문학이야기`(문학동네)에서 고전이 가진 시대를 초월하는 힘과 아름다움을 역설한다. 우리의 삶에서 왜 문학이 유의미한지, 그리고 왜 거장들의 고전을 읽어야 하는지를 조금의 억지나 강요도 없이 자연스레 일깨워준다.책에는 또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가 평생 수집한 작가들의 초상화가 60점 넘게 실려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3-08-30

고통은 사과를 건넨 부드러운 손길서 시작

때로 어떤 체험은 인생의 지표를 바꾼다. 평범하고 소심한 재수생이었던 `달고 차가운`(민음사)의 주인공 `강지용`은 인생의 낙인이 되어 지워지지 않을 첫사랑의 매력 속으로 깊이 빠져든다. 그러나 순진무구한 첫사랑은 여태껏 자신의 욕망에 대해 단 한 번도 질문해 본 적 없는 무지의 상태에 가깝기에, 이율배반적으로 그토록 무지한 순수는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다. 이 돌이킬 수 없는 체험을 통해 소년은 어느덧 청년이 된다. 순수한 만큼 위험하고 파괴적일 수도 있는 나이, 스무 살의 강지용에게는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일까?지용이 `민신혜`를 알게 된 순간, 그의 인생은 이제 전혀 다른 곳으로 향해 간다. 예전의 그는 고작 어머니의 잔소리나 권위적인 아버지에게 반감을 가졌을 뿐이며, 그 자신은 살의에 가까울 정도의 반감이라 생각하지만 그마저도 입시를 치른 고교생치고 대단한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 그가 신혜를 만나 자신 안에 있던 추상적 반감을 살의라는 행위로 구체화하기 시작한다. 지용에게 신혜는 생애 처음 만난 `부드러움`이고 `달콤함`이기 때문이다. 아버지나 어머니, 누나, 그 어느 누구도 자신에게 `부드러운` 혹은 `달콤한` 말을 해 준 적이 없으며, 재수생이라는 단일한 호명으로 묶어 버린 세상도 부드럽거나 달콤하지 않긴 매한가지다. 지용은 신혜를 통해 `부드러운`이라는, 그리고 `달콤한`이라는 의미를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이다.“신혜에게서 부드러움을 알게 된 순간처럼 지금 이 고통으로부터 영원히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다. 신혜는 달콤한 사과를 건네주고, 내가 그것을 달게 먹고 나자 고통을 알게 하는 사과였다고 속삭인 거다. 하지만 처음부터 알았다 해도 나는 그것을 삼켰겠지. 나는 정말 어린아이였다. 그녀 말대로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였다. 그러나, 고통은 실상 사과에서 오는 게 아니라 사과를 건넨 부드러운 손길로부터 온다는 진실만은 알았다.(……)베개에 등을 대고 기대어 있던 나는 신혜의 머리를 감싸 안고 이불 밑으로 기어들어 갔다. 이불 밑은 그녀의 몸속처럼 부드럽고 안온했다. 나는 껍질을 벗긴 사과 알같이 달고 차가운 입술에 오래 입 맞추었다. 너무 달아서 입술을 뗄 수가 없었다. 과즙처럼 다디단 침을 빨아 먹다가, 어두운 이불 속에서 눈을 뜨고 그녀의 얼굴을 더듬었다.”-73쪽열한 살 어린 나이부터 성매매를 강요당했던 신혜를 가족이라는 지옥에서 구출하기 위해, 지용은 신혜의 엄마를 살해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사랑에 대한 전폭적 신뢰는 배반의 복선이기도 하다. 한 사람이 절대적 세계가 되는 사랑의 맹목은 특수한 사태를 보편으로 오해하는 고집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재수 학원 옥상이 일탈의 전부였던 지용은 신혜를 만나 살인을 저지른 후 미국과 홍콩 침사추이까지 삶의 영역을 넓힌다.작가 오현종은 이 소설에서 파괴적 본성이 주인공에게 내재되어 있던 것인지, 아니면 그것이 사랑의 일그러진 방식을 통해 드러난 인물의 또 다른 모습인지 굳이 설명하지 않는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3-08-23

고독 너머 은밀히 찾아온 희망의 기미

한국일보문학상, 이효석문학상, 동인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평단과 독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는 작가 편혜영의 네번째 소설집 `밤이 지나간다`(창비)가 출간됐다. 개인의 내밀한 고독을 성공적으로 형상화한 8편의 단편은 편혜영 특유의 건조하고 치밀한 문장과 밀도 높은 서사로 축조돼 점점 더 무르익어가는 작가의 필력에 깊은 신뢰를 준다. 각자의 삶을 고독하게 이고 가며 내면의 혼란이 빚어낸 현실과 망상의 경계에 위태로이 서 있는 인물들의 이야기는 깊은 여운을 남기며, 고독의 돌파구를 향해 손길을 내미는 인물들에게서는 미약하지만 멀리서 밝아오는 여명의 기운을 느낄 수 있다.편혜영은 평단과 독자들의 뜨거운 관심에 보답하듯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이번 소설집은 2010년부터 현재까지 발표한 단편을 묶었다. 세번째 소설집 `저녁의 구애`에서 사회의 부조리를 폭로함과 더불어 현대인의 일반적인 불안과 고독을 이야기하며 그 어둠의 내막을 드러냈다면 이번에는 조금 다른 양상의 이야기를 선보인다. 고독한 개인의 삶에 균열이 생기고 그 틈으로 불안이 스며드는 것으로 이야기의 틀을 갖추는 작가의 능력은 이미 증명돼 온바 이제 작가는 절대고독 너머, 삶의 파국 이후에 은밀히 찾아오는 희망의 기미를 포착하고 있다.재산을 모두 축낸 아들 탓에 철거를 앞둔 아파트에서 불편한 몸으로 외로이 삶을 연명하는 노년의 여인(`야행`), 오점 없는 삶을 단번에 파괴할 만한 비밀을 안고 살아야만 하는 중년의 남자(`밤의 마침`), 말년을 함께하자며 찾아온 여동생을 요양원에 보내면서까지 노년의 허허로운 일상을 지키고자 하는 노인(`비밀의 호의`), 층간소음에 시달려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이혼남(`개들의 예감`),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일을 하며 조금의 감정의 동요도 허락지 않는 주인공 조(`서쪽으로 4센티미터`), 주눅 들어 자라온 환경 탓에 농담도 쉬이 내뱉지 못하는 한윤수(`가장 처음의 일`), 아들을 잃어버린 고통에 중독돼 가는 여인 엠(`해물 1킬로그램`), 벙커를 제작하는 회사에 근무하며 갖가지 잠재적 재앙에 대한 불안에 잠식돼버린 조효석(`블랙아웃`)까지. 여덟명의 주인공은 서로 다른 고독의 빛깔을 품고 있다.이런 고독한 인간 군상을 엮어내는 하나의 키워드는 바로 `비밀`이다. 모든 고독의 내부에는 은밀한 비밀이 자리한다. 그리고 긴장과 불안, 다중으로부터 분별시켜주는 모종의 우월감이 비밀의 속성이다. 작가는 노년이 돼서야 비로소 모든 비밀과 아쉬움 없이 이별하는 `비밀의 호의`의 주인공을 설정함으로써 우리 삶에서 비밀이 갖는 기묘한 힘을 생각하게 한다. 그런가 하면 안정된 직장에서 번 수입으로 단란한 가정을 꾸려오던 `밤의 마침`의 주인공은 감당할 수 없는 비밀로 인해 영원히 끝나지 않을 밤을 맞게 된다. 낡은 호프집 건물 화장실에 술 취해 앉아 있던 여고생, 끊어진 기억, 불쾌한 충동, 번져나가는 소문. 이 모든 것의 결과는 비밀과 동조하며 고독하게 살아가야 하는 삶이다. 이렇게 고독은 인생을 뒤흔들 만큼 커다란 비밀에서 비롯되기도 하지만 비밀이랄 것도 없는 삶에 대한 비관에서 오기도 한다.이번 소설집에서 특히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편혜영이 조심히 내놓은 희망의 메시지이다. `해물 1킬로그램`과 `가장 처음의 일` 두 작품은 생을 비관하던 주인공들이 모종의 변화를 보이며 살포시 어둠으로부터 한 발 내딛으려는 모습으로 마무리된다. `해물 1킬로그램`의 엠은 실종된 아이가 시신으로 발견된 이후를 살아간다. 고통과 자책, 후회가 무한 반복되는 일상은 서로에게 고통의 낙인이 된 엠과 남편의 삶을 파국으로 치닫게 한다. 그러나 엠은 실종아동을 둔 부모 모임에 나가며 “자신의 고통을 유일한 것으로 치켜세움으로써 고통을 견뎌왔”(78쪽)던 자신의 모습에서 모순을 발견한다. 형벌과도 같은 삶을 살던 엠이 마지막 장면에서 실로 오랜만에 남편과 함께할 식사를 위해 신중하게 해물을 사는 행위는 매우 의미심장하다. 이런 희망의 기운은 `가장 처음의 일`에서도 찾을 수 있다. 노동의 무게에 눌려 웃음을 잃은 부모 밑에서 집안의 유일한 희망으로 자란 한윤수는 살아가는 게 지루하고 버겁기만 하다. 그러던 어느날 버스를 기다리다 들른 서점에서 한 여직원에게 눈을 빼앗겨 타려던 버스를 놓치고 만다. 그러나 놓친 버스는 고속도로에서 큰 사고가 나고 불운을 피한 한윤수는 자신의 행운의 기원이 된 여자 주변을 맴돌기 시작한다.고독은 삶의 상수고 이 세계는 편혜영이 그려온 것처럼 어둡고 비참하며 부조리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 파국을 생의 기초라고 생각한다면, 그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몸짓은 그저 소중할 수밖에 없다. 편혜영은 이제 그 작은 움직임들을 하나씩 수집하기 시작하는 게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밤이 지나간다`가 품고 있는 파국, 그리고 그 안에서 싹트는 삶의 의지는 깊이 음미해볼 만하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3-08-23

당대 어두운 현실, 직관으로 꿰뚫다

보잘것없는 대상들과 손잡고 절제된 언어로 삶의 이면을 그려내는 시인 김명수(69)의 아홉번째 시집 `곡옥`(문학과지성사)이 출간됐다. 시인은 보이는 번듯함에 가려 그늘진 곳에서만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미물들의 이름을 불러낸다. 표제작의 `곡옥`은 옥을 반달 모양으로 다듬어 끈에 꿴, 금관 등에서 볼 수 있는 작은 장식물로, 금관 전체의 휘황찬란함에 비하면 하찮은 물건이다. 그러나 시인은 “금관의 한 일부” “찬란함의 한 일부”라며 곡옥이 본디 갖고 있는 아름다움을 직관한다. 그리고 이 경이로운 발견 속에서 “별들의 적요”처럼 숭고한 묵언을 듣는다. 이는 시인이 전에 없던 세계와 조우하는 순간이며 존재가 저마다 가지고 있는 무한의 시공간을 열어 보이는 순간이기도 하다. 툭 떨어져버리는 과실에서 “가지와 바닥 사이”에 “머무는 평정”(`낙과`)을 읽고, “돌멩이 하나에”서 “향기”(`불행`)를 맡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그의 시는 “현실의 어두움을 간략하고 선명하게 조직화해내고 있다”는 평을 받아왔다(권영민, `한국현대문인사전`, 서울대학교출판부). 시적 대상을 이루는 당대의 어두운 현실을 시인의 날카로운 직관을 통해 꿰뚫어봄으로써 그 의미와 실체를 또렷하게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김명수 시의 직관의 힘이 `본다`는 것의 의미와 연관되어 있다면, 그 `본다`는 것은 가시적이지 않았던 것을 가시적으로 만드는 것, 형언할 수 없는 것을 형언하는 것, 혹은 그 `봄`으로부터 다른 존재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것이다.시가 일종의 목격담이라면, 그 목격담은 잠재된 것들을 드러내는 경이로움으로부터 적막하고 고요한 시간으로 진입하는 적요한 목격담이라고 할 수 있겠다.-이광호(문학평론가) 해설 `적요한 목격담, `그렇게`의 세계`에서/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3-08-23

추억 되찾고 상처 치유한 `1천km 순례길`

때때로 삶에는 예기치 않은 순간, 인생을 바꿀 순간이 찾아온다. 평생 회사와 집을 오가며 쌀쌀맞은 가족의 시선을 감내하며 살다 은퇴한 외로운 남자 `해럴드`에게도, 언젠가부터 꼬여 버린 삶의 의미를 되찾는 순간이 찾아온다. 오래전부터 준비한 세계 여행이나 우연히 만나 황혼의 사랑을 나누게 된 사람이 가져다준 것이 아니다. 이 평범한 사람의 뒤늦은 오디세이는 사소한 편지 한 장으로부터 시작된다.`해럴드 프라이의 놀라운 순례`는 소심한 성격의 60대 은퇴자가 옛 직장 동료에게 편지 한 장을 받은 후, 그녀를 만나기 위해 영국 남부 킹스브리지에서 북부 버윅어폰트위드까지 1천km를 걷게 되면서, 잊고 있었던 인생의 수많은 추억을 되찾는 동시에 자신을 괴롭혔던 힘든 과거를 돌아보며 스스로를 치유하는 이야기이다.작가 레이철 조이스는 왕립 셰익스피어 극장에서 활동했던 배우 출신으로, 결혼 후 영국 BBC 라디오 극작가로 활발히 활동하다 2012년 첫 소설`해럴드 프라이의 놀라운 순례`를 발표하며 일약 스타 소설가로 거듭났다.그녀는 후두암으로 돌아가신 아버지를 떠올리며 이 소설을 구상했는데, 배우와 극작가로 활동한 이력 덕분에 생생하고 쉬운 언어로 인간의 미묘한 감정과 함께 영국 각 지역의 특징적인 풍경까지 탁월하게 묘사해 냈다.`해럴드 프라이의 놀라운 순례`는 출간 즉시 영국 아마존의 판매 순위 상위권에 올랐으며, 그해 브리티시 내셔널 북 어워드의 신인작가상을 수상하고 맨 부커 상 후보에까지 오르는 등 평단과 독자 모두에게 열렬한 반응을 이끌어 냈다.특히 완성도 높은 플롯과 공감 가는 캐릭터, 모두에게 다가갈 수 있는 감동적인 내용으로 호평을 받으며 전 세계 30개국이 넘는 나라에 판권이 팔리는 쾌거를 이뤘다. 작가 폴라 매클레인이 `이 책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울면서 웃음을 터뜨렸고, 해럴드의 여행의 한 걸음 한 걸음을 응원했다. 지금도 해럴드를 응원하고 있다`라고 평했듯, 영국뿐 아니라 전 세계 수많은 독자들이 이 책을 읽으며 `해럴드 프라이`의 순수하고 간절한 행보에 울고 웃었다.영국 남부 킹스브리지에서 양조 회사 영업 사원으로 성실히 일하다 정년퇴직한 해럴드 프라이.부인 모린과 그는 20년 전 아들 데이비드에게 일어난 사건으로 인해 마음을 굳게 닫고 서로를 목석처럼 대하고 있다. 여느 날과 다를 바 없던 봄날 아침, 모린이 그에게 분홍빛 편지 봉투를 내민다. 양조 회사에 다니던 시절 경리부에서 일했던 퀴니의 편지였다. 오래전 그녀에게 큰 도움을 받고도 고맙다는 인사조차 하지 못한 채 비겁하게 그녀를 떠나보냈던 해럴드. 그녀가 현재 영국 북부 버윅어폰트위드의 한 요양원에 있으며 암에 걸려 많이 아프다는 소식에 놀란 그는 어찌할 바를 몰라 급히 답장을 써서 부치러 나간다. 하지만 황망히 걷다 보니 우체통을 지나치고, 자신도 모르게 그대로 쭉 걸어 나가게 된다. 그것이 이 엉뚱한 여행의 시작이었다.급하게 편지를 부치러 나오느라 아무렇게나 꿰어 신은 낡은 신발, 집에 두고 나온 핸드폰, 심지어 삐거덕거리는 몸까지…. 해럴드는 킹스브리지 교외로 나오자마자 자신이 불가능한 일을 하려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하지만 끼니를 때우러 들어간 주유소 겸 식당의 아르바이트 여학생에게 `믿음`이 있으면 퀴니가 병에서 나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듣고, 걸어서 그녀에게 편지를 전달하기로 마음먹는다. 자신이 걷고 있는 한 퀴니는 죽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해럴드의 발걸음을 재촉하게 된 것이다.몇 년 전부터 인기를 끌고 있는 순례와 걷기 열풍에 이 소설은 몇 가지 생각할 점을 던진다. 해럴드 프라이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순례는 걷겠다고 미리 결심하고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발이 먼저 길 앞으로 나아간 다음에야 스스로 그 의미를 깨닫게 되는 행위라는 것을, 또한 순례에는 나침반도, 전문가용 등산화도, 계획적인 루트와 일정 관리도 무의미하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무엇보다 순례는 땅의 울림과 바람의 노랫소리를 느끼며, 무엇보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자신의 삶을 자연스레 돌아보는 행위라는 것을.해럴드가 지나쳐 온 삶에는 행복했던 순간도, 도저히 풀 수 없는 숙제처럼 남아 버린 괴로운 순간들도 있다. 그 모든 삶의 페이지를 다시 넘겨 보며 자신의 삶을 긍정하고 가까운 이들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는 것, 그리고 아무리 어긋나 버린 인생이라도 용기만 있다면 언제든지, 심지어 해럴드처럼 60대 중반의 나이에라도 수정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해럴드 프라이의 놀라운 순례`가 우리에게 주는 가장 놀라운 인생의 열쇠가 아닐까./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3-08-16

삶을 바꾼 도구 `경제학의 진화` 추적

전작 `뷰티풀 마인드`를 통해 우아한 문체, 섬세한 묘사, 날카로운 분석력을 자랑했던 실비아 나사르의 신간 `사람을 위한 경제학`(출판사 반비)이 출간됐다. 이 책에서 실비아 나사르는 인간이 자신의 경제적 운명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아이디어의 진화 과정을 추적한다. 이는 불과 200여 년 전에 태어난 생각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경제학이 있었다. 그 전의 경제학이 고된 노동을 통해 보잘것없는 결실을 얻는 인간의 운명을 묘사하는 “암울한 과학”(토머스 칼라일의 말)이었다면, 19세기 드디어 경제학은 `주인 되는 도구`로 새롭게 태어난 것이다.저자에 따르면 그 생각은 빅토리아 시대 디킨스의 런던에서 처음으로 잉태되고, 1차대전 직전의 황금기에 태어났으며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전체주의 정권의 부상과, 대공황에 도전받았고, 2차대전 이후 두번째 황금기에 되살아나 현대 세계 경제를을 만들어냈다. 인류가 경제적 필연성이라는 주어진 밥상을 걷어찰 수도 있다는 이런 생각은 너무도 낯설고 생소한 것이어서 18세기 후반 제인 오스틴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 당시 전형적인 영국 사람이란 로마 시대 노예보다 살림이 나을 바 없는 농장 노동자를 의미했다. 물론 자신의 형편이 나아지리라는 희망은 가당치도 않았다. 정치철학자 에드먼드 버크는 1756년에 당시의 통념을 이렇게 글로 표현한 바 있다.하지만 제인 오스틴이 죽은 지 50년도 안 돼 세계는 생활 수준이 사회 구성원 전반에 걸쳐 놀라울 정도로 향상됐다./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3-08-16

일상의 수수께기, 미학적 관점서 풀어내다

애거서 크리스티 탄생 120주년을 기념해 하야카와쇼보와 하야카와 기요시 문학진흥재단 주최 장편 미스터리 신인상인 애거서 크리스티 상이 2010년 일본에서 영국 크리스티 사의 협력으로 신설됐다. 많은 예비 작가들이 `21세기의 크리스티`가 되기 위해 도전장을 던졌고, `검정고양이의 산책 혹은 미학강의`로 선고위원들의 감탄을 자아낸 모리 아키마로에게 첫 수상의 영예가 돌아갔다.제목부터 특별한 `검정고양이의 산책 혹은 미학강의(포레)`는 탐정소설의 선조인 에드거 앨런 포의 텍스트와 일상의 수수께끼를 미학적 관점에서 교차 해석하면서 사건의 진상에 다가가는 여섯 편의 단편이 실린 연작소설집이다. 끔찍한 사건이나 기괴한 악인이 나오지는 않지만 세상에서 가장 미스터리한 것이 인간의 마음이라는 진리를 되새김하는 이 작품은 “인간의 삶을 보여주는 훌륭한 이야기” “매력적인 캐릭터로 직조된 유쾌한 미스터리” “포에 대한 새로운 해석, 고전들, 일상의 수수께끼라는 삼색의 조합”이란 평을 들었다.현실과 환상이 교차하는 포의 텍스트에서 모티브를 빌려와 미학, 철학, 영화, 문학, 연극, 종교 등 다양한 분야의 이론과 알레고리로 현실의 불가해한 사건과 그 속에 숨은 인간 심리를 탐구해가는 소설 `검정고양이의 산책 혹은 미학강의`의 주인공은 `검정고양이`라는 별명을 가진 젊은 교수와 `나`라는 대학원생이다.박사과정 1년차로 에드거 앨런 포를 연구하는 `나`는 스물넷에 교수가 된 천재 미학자인 검정고양이의 동갑내기 조수다. 늘 제멋대로 행동하는 검정고양이 때문에 `나`는 난처할 때가 많지만 “아름다운 진상만이 진상이란 이름에 값한다”는 지론을 가지고 모든 사건을 미학적 관점으로 명석하게 꿰뚫고 아름답게 풀어내는 젊은 학자에게 탄복해 오늘도 수수께끼를 들고 그를 찾는다.이야기의 얼개는 화자인 `나`가 미스터리 혹은 일상의 수수께끼를 검정고양이에게 털어놓고, 그 이야기를 들은 검정고양이가 포의 작품과 다른 이론을 엮으면서 사건을 해결(해석)해가는 구조다. 그들은 도심의 거리, 주로 공원을 산책하며 문답식 대화를 통해 진상에 조금씩 다가선다.미스터리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이 소설에는 보통의 미스터리처럼 살인이나 유괴 사건은 나오지 않는다. 두 사람은 엄마의 옷장 속에서 튀어나온 엉터리 지도에 숨겨진 의미를 추적하고, 니체를 연구하던 청년이 친구들을 초대한 날 왜 갑자기 자살했는지를 해명하며, 연인을 위해 만든 향수를 들고 사라진 남자의 행방을 추리한다. 그 밖에도 사라진 여교수, `두개골`을 찾아 헤매는 영화감독, 노학자의 서재에서 울려퍼진 정체 불명의 음악 등 일상에서 포착한 오묘한 수수께끼를 풀어나간다.이 모든 이야기에 포의 텍스트가 각각 한 편씩 엮인다. 바그너를 연구하던 여자 대학원생과 니체를 연구하던 청년의 이야기를 그린 `벽과 모방`은 포의 대표 단편 `검은 고양이`와 연결되고, 시각 장애를 가진 아름다운 여자 조향사와 사라져버린 청년의 이야기 `물의 레토릭`은 향수 판매원의 죽음에 얽힌 미스터리 `마리 로제의 수수께끼`와 교차하는 식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3-08-16

종교와 과학, 공존관계 모색

말 그대로 현대는 과학의 시대다. 법정에서는 법의학자와 과학 수사 담당관의 소견이 절대적인 증거로 채택되며, 백화점의 상품 판매나 주식 투자도 행동 과학이나 통계학의 도움을 받지 못하면 계획조차 짜지 못한다. 소비자의 욕망을 들여다보고 싶은 각 기업의 CEO들은 뇌과학자의 연구실 문을 두들기며, 제약 및 식품 회사의 신제품 개발자들은 식물학자, 동물학자들의 연구 논문을 뒤적인다. 신학자이자 안수를 받은 목사로서 종교와 과학의 관계에 오랫동안 고민하며 종교와 과학, 그리스도교와 진화론의 공존 가능성에 대해 모색해 온 신재식 호남신학대학교 교수는 이번에펴낸 `예수와 다윈의 동행:그리스도교와 진화론의 공존을 모색한다`(사이언스북스)에서 과학의 시대에 종교는 과학, 진화론의 성과를 읽고 받아들여 종교, 그리스도교 신학을 발전시키지 않으면 현대 사회에서 설 자리를 찾을 수 없을 것이라고 진단한다.신재식 교수는 “그리스도교의 2000년 역사 속에서 신학은 언제나 새로운 시대 상황과 지식을 바탕으로 새로워져야 했다”고 전제하며 “일방적으로 설교를 선포하는 것은 오해와 불신과 적대감만을 낳으며 한국 교회 전체의 신뢰성에 의문을 갖게 할 것”이라고 분석한다.신재식 교수는 `종교 전쟁`의 후속작이라 할 `예수와 다윈의 동행`에서`종교 전쟁`속에서 펼쳤던 주장과 통찰을 다듬고, 그 주장과 통찰의 역사적, 구체적 근거들을 한데 엮으며, 진화론을 받아들인 신학, 즉 진화 신학을 펼쳐 보인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3-08-09

일본 속 한국문화 여기 다 있네~

1993년 제1권 `남도답사 일번지`를 시작으로 2012년 제7권 제주편 `돌하르방 어디 감수광`까지 20년 동안 330만 독자의 사랑을 받아왔고 한국 인문서 최초의 밀리언셀러로 기록된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가 이번에는 `일본 속의 한국문화`와 `일본문화의 정수`를 찾아 일본으로 떠난다. 그동안 펴낸 제7권까지의 국내편 `답사기`는 전국 각지의 문화유산을 답사하고 소개하면서 그 가치와 의의를 저자 특유의 입담과 안목으로 새롭게 조명해온바, 수준 높은 문화교양서이자 기행문학의 백미로 널리 알려져 `답사기` 자체가 이미 문화유산의 반열에 올랐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 올 여름에는 `답사기`가 일본편 1권 `규슈―빛은 한반도로부터(창비)`와 2권 `아스카·나라―아스카 들판에 백제꽃이 피었습니다(창비)`로 선보인다.이번에 출간된 `답사기` 일본편은 그동안 한·일 관계의 주요한 주제였던 과거사 문제를 문화사적으로 접근해보고자 하는 의도에서 출발해 한국이 일본에 문화적으로 영향을 흔적을 찾고 그 바탕 위에서 일본문화가 꽃피게 된 과정을 흥미롭게 탐사해 나간다.`답사기` 국내편이 우리 국토의 문화유산을 널리 알리면서 아끼는 마음을 고취시키는 데에 일조했다면, 이번에 출간된 일본편은 일본의 문화유산을 통해 우리 선조들의 문화적 우수성을 확인하고 상호교류하고 섞이면서 발전해가는 문화의 진면목을 깨우쳐준다고 할 수 있다.`답사기` 일본편은 단순히 일본의 문화유산을 돌아본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한국과 일본이 어떤 관계였고, 고대 일본문화에 우리 한반도인들이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발로, 눈으로 확인하고 쓴 책이다.두 권으로 구성된 일본편에서 1권 `빛은 한반도로부터`(규슈)는 일본이 고대문화를 이룩하는 데 한반도 도래인이 전해준 문명의 영향, 조선 도공들이 일본에 터를 잡고 눈부신 자기 문화를 만들어낸 감동적인 이야기를 역사적인 흐름에 따라 답사한다. 2권 `아스카 들판에 백제꽃이 피었습니다`(아스카·나라)는 아스카와 나라 지역에 위치한 주요한 옛 절을 답사하면서 한반도와 일본문화의 친연성과 영향관계, 그리고 자생적으로 발전해간 일본문화의 미학을 돌아본다.저자 유홍준은 여기서 우리가 왜, 새삼 지금 `답사기` 일본편을 읽어야 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준다. 각 권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답사기` 일본편이 소개하는 문화유산은 일본에 소재하는 문화유산이고 일본의 문화유산이지만 그 안에 숨겨진 우리 조상들의 흔적과 영향관계를 추적하는 것이 주된 테마이다.일본편 1권 `빛은 한반도로부터`는 규슈 지역을 답사하며 일본 고대사와 관련된 유적을 돌아보고 곳곳에 남아 있는 우리 조상들의 발자취를 확인한다. 답사는 북규슈와 남규슈로 나눠서 진행된다. 북규슈 답사는 먼저 거대한 청동기시대 주거지인 요시노가리 유적지, 지금은 폐허가 된 임진왜란 때의 침략기지 히젠 나고야성, 백제 무령왕의 탄생지로 전하는 가카라시마, 조선 분청사기가 일본화된 가라쓰야키의 옛 가마터, 장대한 고려 불화가 소장돼 있는 가가미 신사, 조선 도공의 얼이 새겨진 아리타와 이마리, 백촌강 전투 후 망명온 백제인들이 백제식으로 쌓은 수성을 찾는다. 남규슈에서는 임진왜란 때 끌려간 조선 도공 박평의와 심당길 두 집안이 이룩한 사쓰마야키의 고향인 미산마을과 단군에게 제사를 지내던 옥산궁, 백제 후손들이 1300년을 두고 이어오는 사주제(시와스마쓰리)의 현장인 미야자키 백제마을을 돌아본다. 사쿠라지마의 활화산 등 그저 자연풍광을 즐기거나 골프 여행을 떠나는 규슈가 아니라 우리 역사와 함께 호흡하는 규슈 지역을 확인할 수 있다.▲ 저자 유홍준일본편 2권 `아스카 들판에 백제꽃이 피었습니다`에서는 아스카와 나라 지역의 고찰을 돌아보면서 일본에 불교를 전해주고 불상과 건축 등 찬란한 일본의 불교문화를 꽃피울 수 있도록 도와준 도래인들의 자취를 따라간다. 아스카 지역에서는 5세기 가야인들이 건너가 도기문화를 전래해준 흔적이 확연한 `가까운 아스카`, 백제계 도래인들이 불교와 한자문화를 전해준 과정을 따라 석무대, 귤사, 아스카사를 거쳐 법륭사까지 돌아본다.인간·예술·역사가 어우러져 총체적인 인문교양서의 장을 열었던 `답사기`는 이번 일본편에서도 변함없이 그 성취를 이뤄 일본의 역사, 문화, 인물, 예술 등 그야말로 일본에 대한 이해를 돕는 풍성한 내용을 망라해놓았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3-08-09

日열도 달군 공포소설… 한국에 상륙

`모방범` `화차` `이유` 등의 굵직한 사회파 미스터리 작품을 발표하며 일본 문단에서 대중성과 작품성을 겸비한 최고의 작가로 손꼽히고 있는 미야베 미유키사진의 현대 미스터리 소설 `솔로몬의 위증`(문학동네)이 출간됐다. 1부 사건, 2부 결의, 3부 법정의 전3권으로 이뤄진 `솔로몬의 위증`은 공포소설로 2002년부터 2011년까지 9년여에 걸쳐 `소설 신초`에 연재된 작품으로 번역원고 기준 원고지 8천500매에 달하는 대작이다. 한 중학교에서 일어난 의문의 추락사를 시작으로 펼쳐지는 갖가지 의혹과 진실 공방 속에서, 현대사회의 어둠과 병폐뿐 아니라 예민한 10대의 심리를 그리는 데에도 정평이 나 있는 작가의 필력이 유감없이 발휘된다. 일본에서는 지난해 출간 후 오랜 연재기간 동안 단행본을 기다려온 팬들은 물론 일반 독자들에게서도 뜨거운 호응을 얻었고 세 권 모두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각종 순위에서 상위권을 차지했다.국내에는 6월12일 1권 출간에 이어 6월26일에 2권이, 7월10일에 3권이 출간됐다.도쿄의 평온한 서민가에 위치한 조토 제3중학교. 크리스마스 날 아침 눈 쌓인 학교 뒤뜰에서 2학년 남학생 가시와기 다쿠야가 시신으로 발견된다. 경찰은 옥상에서 뛰어내려 자살한 것으로 결론짓지만 곧 그가 교내의 유명한 불량학생들에게 살해당했다는 내용의 고발장이 관계자들에게 날아들고, 불행한 사고는 학교폭력이 얽힌 끔찍한 살인사건으로 발전한다. 이윽고 매스컴의 취재가 시작되며 사태는 일파만파로 커져가는데…. 무책임한 타인의 시선과 소문 속에서 조금씩 학교를 뒤덮는 악의, 하나둘 늘어나는 희생자. 죽은 소년만이 알고 있는 그날의 진상은 과연 무엇인가?전작 `화차`에서 자본에 잠식된 현대사회의 이면과 헛된 욕망을, `모방범`에서 사이코패스 지능범에 휘둘리는 대중과 매스컴의 무책임한 행태를 날카롭게 그려낸 미야베 미유키는 `솔로몬의 위증`에서 학교폭력과 집단따돌림, 등교거부 등의 교육문제를 정면으로 다룬다.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사회화와 기본 교육을 위해 일정 기간 거쳐가는 장소, 지극히 일상적이지만 그 어느 곳보다 폐쇄적이고 기묘한 공간인 학교. 그곳의 구성원들 사이에는 어른들의 사회 못지않은 규범과 계급, 그리고 떼려야 뗄 수 없는 긴밀한 관계성이 존재한다.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며 각자의 균형을 지켜오던 어느 날 학생의 비극적인 자살이라는 커다란 돌이 던져지고, 어디로 퍼져나갈지 알 수 없는 파문 속에서 그간 잔잔한 수면 아래 잠들어 있던 크고 작은 문제들이 연달아 모습을 드러낸다.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엄습하는 정체 모를 악의와 공포는 미야베 미유키의 필력이 가장 잘 발휘되는 영역이기도 하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3-08-09

제주민중 수난·저항, 고증·연구로 재조명

중후한 문체로 제주 4·3항쟁을 비롯해 잊혀진 우리 현대사의 이면을 조명하면서 깊은 울림과 감동을 주는 작품활동을 해온 소설가 현기영의 장편소설 `변방에 우짖는 새`(창비)가 개정판으로 출간됐다. 1981년부터 이듬해까지 월간지에 연재돼 1983년 출간된 이 작품은 구한말 제주도에서 연이어 발생한 방성칠란(1898)과 이재수란(1901)을 다룬 작가의 첫 장편소설로 뿌리 깊은 학정에 시달려온 제주 민중의 수난과 저항을 치밀한 고증과 연구를 통해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역작이다.출간 당시 “명실상부하게 80년대 우리 소설의 새로운 지평을 우람하게 열어놓았다”(소설가 이호철)는 평을 얻으며 많은 독자들로부터 사랑을 받았으며, 1987년에는 동명의 연극으로, 1999년에는 영화 `이재수의 난`으로 각색돼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번 개정판은 옛 표기를 현행 맞춤법에 맞게 고치고 새로운 감각에 맞게 장정을 바꾸어 작품이 지닌 묵직한 감동을 새롭게 전한다.`변방에 우짖는 새`는 구한말 제주도 전 도민이 봉기한 최대 민란이었던 방성칠란과 이재수란의 전 과정을 당시 제주도에 유배되어 있던 구한말의 정치가 김윤식의 기록을 기본 사료로 하고 천주교 측의 자료 등과 민간 취재를 더해 생생한 모습으로 복원해낸다.소설은 을미사변의 연좌로 김윤식이 제주도로 귀양을 떠나는 장면으로 시작해 중앙 정부와 토호들의 수탈에 시달려온 제주도의 수난의 역사를 그려 보인다. 작가 현기영은 거납(拒納)운동에서 시작된 민란이 민중에 의한 천주교인 박해로 이어지게 된 국내외의 복합적인 시대적 요인을 사료에 근거해 치밀하게 파헤침으로써 두 민란의 역사적 성격을 구명하는 데 힘을 쏟는다. 그럼으로써 `변방에 우짖는 새`는 그 중요성에 비해 역사적 연구가 전무하다시피 했던 두 민란에 대한 최초의 본격적 연구라 할 만한 성과로서 완성됐다.그러나 `변방에 우짖는 새`에는 단순히 역사적 기록의 복원에만 한정되지 않는 커다란 문학적 의미가 담겨 있다. 소설 틈틈이 민란에 다소 회의적이었던 적객 김윤식의 목소리와 비교적 민중적 입장에 가까웠던 그의 문객(門客) 나인영의 목소리가 개입하는 가운데, 이름 없는 민중들의 목소리가 대목마다 생생하게 펼쳐지고 여기에 이 모두를 조망하는 작가적 시선이 더해짐으로써 소설은 역사를 구성하는 결코 단순하지 않은 겹겹의 진실을 각각의 역사적 주체들을 통해 입체적으로 형상화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민란의 발단과 전개과정에서 작동하는 복잡하고 미묘한 동학(動學)을 문학으로써 포착하는 데는 그 이상의 길이 없을 것이다. 이러한 입체적인 시각을 통해 `변방에 우짖는 새`는 중앙과 변방의 위계를 전복하고 더 나아가 제주 안의 위계들마저 예리하게 해부함으로써 “가해와 피해의 경계가 교착하는 제주의 속내를 핍진하게 드러낸다”(문학평론가 최원식) 더불어 당시 제주도의 풍속에 대한 세밀한 묘사와 제주어의 보고라고 할 만한 풍부한 어휘들이 소설의 서사와 긴밀하게 어울려 자아내는 매력도 빼놓을 수 없다.무엇보다`변방에 우짖는 새`가 보여주는 수난과 저항의 역사 속에서 면면히 이어지는 민중의 억센 혼을 발견하는 일은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한, 이 빼어난 문학적 성취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큰 선물일 것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3-08-02

갑자기 사랑이 다가오면 어떡 하나

▲ 소설가 심윤경여기, 흔한 사랑 이야기가 있다. 나이가 많든 적든, 잘생기든 못생기든, 부유하든 가난하든 결국 기쁘게 만나고 슬프게 헤어지는 무수한 사랑들 사이에, 우리와 똑같이 평범하게 화내고 기뻐하고 거짓과 진심을 반복하며 치열하게 사랑하는 이들의 이야기가 있다. 모든 걸 집어던지고서라도 사랑에 빠지고 싶은 상대가 나타난다면, 우리는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세계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한 시선, 단정하고 적확한 문체로 끊임없이 사랑을 탐색해온 심윤경의 신작 장편소설 `사랑이 채우다`(문학동네)는 이런 물음에서 시작됐다.`나의 아름다운 정원`으로 한겨레문학상을,`달의 제단`으로 무영문학상을 수상하며 많은 이들의 애정과 관심을 받아온 그는 최근작 `사랑이 달리다`(2012년 7월)에서 들려준 `혜나`와 `욱연`의 사랑 이야기를 고스란히 이어담아 일 년 만에 새로운 연작 장편소설을 펴냈다.어린 여자와 바람나 황혼이혼을 한 아빠, 이화여대를 나왔지만 낭만적 기질 덕분에 아무것도 없는 아빠와 결혼해 빈손으로 이혼당한 엄마, 돈만 밝히는 이기적인 큰오빠, 제정신 못 차리고 대책 없이 대형사고만 터뜨리는 작은 오빠. 이 자타공인 콩가루 집안의 사고뭉치 가족들은 여전히 엉뚱하고 뻔뻔하게, 철없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서른아홉의 나이에 처음으로 돈이란 걸 벌기 위해 산부인과의 보육실에 취직했다가 원장 선생님과 운명 같은 사랑에 빠진 그녀, 김혜나. 평범해 보이지만 중요한 순간마다 보석처럼 반짝이는 그녀의 새로운 이야기가 지금 여기, 아름답게 펼쳐진다.행복이 아니라 재난이었다.나이 마흔에 찾아온 사랑이란 건, 알고 보니 그런 거였다.정 산부인과의 원장 욱연과 꿈만 같던 나날도 잠시, 혜나가 그전에 가장 먼저 처리해야 할 일은 소꿉친구이자 남편인 성민과 헤어지는 일이었다. 뒤늦게 찾아온 운명 같은 사랑에 뒤돌아보지 않고 달리기만 했던 그녀는 얻게 된 행복만큼이나 커다란 불행도 겪어야만 한다. 모든 일에는 대가가 따르고, 그녀의 사랑 역시 마찬가지다.탄탄한 구성과 드라마적인 대사, 속도감 있는 전개로 뛰어난 흡인력을 가진 이 소설은 진심이 담긴 독백과 위트 있는 비유들로 어느 사이 읽는 이를 주인공들의 바로 옆에 데려다놓는다. `사랑이 채우다`의 미질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소설 속의 인물들은 결코 뜬구름을 잡지 않는다. 현실에 발을 디딘 거침없는 대사, 때론 유치하고 뻔뻔하고 속물적이기까지 한 그들의 행동은 소설이라기보다는 늘 주변에서 찾아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그것을 닮았다. 그들은 성자도 아니고, 바보도 아니다. 그저 자신의 방식대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한 인간일 뿐이다.우리는 살면서 많은 부침(浮沈)을 겪는다. 사랑이든 삶이든 오르고 내리는 굴곡이 있기 마련이다. 포기하지 않고 사랑의 마라톤을 끝내 완주하는 혜나의 이야기는 그래서 더 의미 있다. 그녀가 사랑하는 이를 위해 춤추고 노래하며 끝나는 이 소설의 결말을 이런 물음으로 마무리해볼 수도 있겠다. 동화가 아닌 소설은, 그리고 삶은 왜 항상 슬프게 끝나야만 하는가? 이 불가해한 사랑에 관한 질문은 대답할 수 없음을 삶으로 응답해야 하는 우리에게 소설가가 슬쩍 일러주는 조그마한 힌트이기도 할 것이다.“삶에는 `사랑한다`와 `사랑하지 않는다` 사이에 아무런 경계가 없어지는 그런 지점이 있었다. 그에게 그곳이 나무가 쓰러진 고속도로였다면, 나에게는 산꼭대기에 붉은빛이 번져가는 이 산성이었다. 그날 그가 전혜원에게 죽도록 사랑한다고 말했어도 인생은 하나도 이상하지 않게 흘러갔을 것이다. 내가 오늘 성민에게 죽도록 사랑한다고 말했어도, 인생은 또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흘러갔을 것이다. 시간과 방향의 감각이 없어지는 그런 공간에서는, 인간이 무엇에 부딪쳐 어디로 가든 아무 차이가 없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고속도로를, 또 산성을 지나쳤다. 한번 지나치고 나면, 또 그게 당연하다는 듯이 살게 된다” (153쪽)/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3-08-02

디자인 경영, 이렇게 하라

디자인이 혁신의 돌파구로 떠오르면서 많은 기업들이 디자인에 사활을 걸고 있다. 시장에서는 이미 디자인의 효과가 입증된 지 오래고, 전 세계 CEO들이 자신의 비즈니스에 디자인을 어떻게 활용하고 연계할 것인지를 고민한다. 디자인 경영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는 경영자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지만, 디자인 경영을 시행하기에 앞서 디자인에 대한 이해도가 낮아 정작 디자인 경영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영자들이 많다. 신간 `포어사이트 크리에이터`(세미콜론)는 산업 디자이너이자 글로벌 디자인 컨설팅 회사를 운영하는 경영자이기도 한 이돈태 대표가 창조산업 시대에 CEO들에게 제안하는 크리에이티브 전략과 디자인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이 책의 저자 이돈태는 한국인 최초로 세계적인 디자인 컨설팅 회사 탠저린을 이끌고 있는 산업 디자이너로 시장에서 살아남는 성공적인 디자인을 선보이며 많은 글로벌 CEO들의 선택을 받아 왔다.기업의 생태와 조직 운영 원리를 잘 알고 있는 경영자로서, 그리고 수많은 기업과 디자인 프로젝트를 진행해 온 산업 디자이너로서의 경력을 바탕으로 디자인 경영을 어떻게 전략적으로 실행하는지, 시장에서 파괴력 있는 제품은 어떤 과정을 거쳐 탄생하는지, 자신의 경험이 녹아 있는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이돈태 대표의 이력은 오래전부터 이미 국내 여러 언론사에서 수차례 조명된 바 있고, KBS 시사교양 프로그램 `글로벌 성공시대`(2012년 11월17일, 제70회 방송)에서 “디자인 종주국 영국을 사로잡은 한국인”으로 소개되기도 했다.탠저린은 애플의 디자인을 책임지고 있는 조너선 아이브(Jonathan Ive)가 창업한 회사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이돈태 대표는 1998년 이곳 탠저린에 입사한 후 7년 만에 공동 대표 자리에 올라 경영을 책임지고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3-08-02

견딤의 詩學과 소멸하는 生을 노래하다

육체적 고통의 삶을 끌어안는 `견딤의 시학`과 소멸하는 생에 대한 `쓸쓸한 긍정`을 서정적 명상의 언어로 노래해온 엄원태 시인의 네번째 시집`먼 우레처럼 다시 올 것이다`(창비)가 출간됐다. 12년의 공백기를 거쳐 나온 `물방울 무덤` 이후 6년 만에 펴내는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소멸의 운명을 타고난 존재들의 한계를 껴안으며 고통의 삶을 따듯한 시선으로 감내하는 마음을 성찰의 언어에 담아 소멸의 아름다움과 삶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노래한다.“덧없이 사라져간 것들에 대한 기록이자 애도”(시인의 말)로서 애잔한 그리움이 묻어나는 간절한 시편들이 `지금 여기` 살아 있음의 소중함을 일깨우며 가슴 서늘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고독은 그늘을 통해 말한다. //어쩌면 그늘에만 겨우 존재하는 것이 생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늘로 인해 생은 깊어갈 것이다. 고통과 결핍이 그늘의 지층이며 습곡이다. //밤새 눈이 왔다. 말없이 말할 줄 아는, 싸락눈이었다. ”-`싸락눈`전문이토록 절절한 시의 삶이 있을까. 고통마저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절실한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엄원태의 시는 자못 숙연한 분위기마저 자아낸다.“선인장처럼 가시가 굵”은 “근심”에 “대책 없이 찔리곤”(`소금사막`) 하는 기나긴 고통 끝에 시인은 생은 “한바탕 부유(浮游)”(`공중 무덤`)이고 “삶이란, 언제나 죽음 지척의 일”(`주저앉은 상엿집`)이라는 깨달음을 얻는다.“형편이 좀체 나아질 것 같지 않은” 생활 속에서 “가짜 희망처럼, 헛소문처럼/부풀어오르”(`생활`)는 삶에 대한 기대감에 젖기도 하는 시인은 “덩치가 북극곰만하”고 무게가 “무려 구백구십 킬로그램에 이”르는 외로움을 “제 몸에 저장된 고독을 태우면서 버텨”(`극지에서`) 내며 “먼 우레처럼/다시 올”(`강 건너는 누떼처럼`) `사랑`을 기다린다.“창문 깊숙이 햇살 비껴들어, 병상 발치까지 환하다. 내 몸에, 빛기둥이 섰다. 몸에선, 기껏 살비듬 같은 먼지들이 떠다닌다. 때로 그것들도 먼 별들처럼, 반짝인다. //수행승들은 스스로 토굴에 들어 용맹정진했다지만, 내 몸뚱이가 영락없이 토굴이다. 장좌불와(長坐不臥) 대신 장와불립(長臥不立)이다. 한 오백년쯤 지난 후, 뜻밖의 어느 도굴꾼에 의해 관 속까지 비껴드는 한 줄기 햇살처럼, 한 소식처럼, 내 몸에도 빛기둥이 섰다. 늦은 오후, 겨울 햇살 덕분이다.”-`일주(日柱)`부분이렇듯 “삶이 건네는 고통을 `견딤의 시학`으로 관통해왔던” 시인은 이번 시집에 이르러 “제 몸을 잃어가면서” 그 고통을 “그 자체로의 풍경으로 인식하는”(양경언, 해설) 투명하면서도 냉철한 시선으로 존재의 무상함을 그윽이 바라본다. “전심전력 타오르는 촛불”을 보면서 “소멸을 지향하는 집중력이야말로 존재의 근원적인 에너지라는 이 역설”(`아름다운 얼굴`)을 간파해내는 시인은 다만 “어디서든 무심히 흘러”갈 뿐인 “그렇고 그런 날들”(`대구선공원에서`)의 쓸쓸함을 아늑한 풍경으로 그려내며 “축생, 혹은 먼지 같은 날들”(`11월`)에 생의 따듯한 숨결을 불어넣는다.삶의 고통은 비단 시인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주검을 딛고, 죽음을 건너는”(`강 건너는 누떼처럼`) 생존의 아픔 속에서 빛을 잃고 시들어가는 제 몸을 어루만지듯 시인은 “저 혼자 찬 공중에 떠 있”(`개밥바라기`)는 “개밥바라기같이 외로운 행성”처럼 외진 “들판 가운데 홀로 우뚝” 서서 “자체발광 대신 자주 자가발광을 해서 생의 에너지를 보충하곤”(`별마을아파트`) 하는 주변화된 존재들과 “다만 흘러가”(`다만 흘러가는 것들`)며 “제각각의 어둠으로 저물어”(`길을 가면서`) 가듯 그늘 속으로 가뭇없이 스러져가는 것들의 상처를 애틋한 마음과 “그렁그렁 눈물 어린 눈길”(`4월`)로 쓰다듬는다.우리가 알고 있듯이 엄원태 시인은 오랜 세월 병마에 시달려왔다.그 병든 일상, “몸통째 슬픔”(`토르소들`)뿐인 “상처 많은 생”(`간벌(間伐)`)의 힘겨운 나날을 시인은 이미 전작 시집들에서 `뼈마디 저린 절창`으로 들려주었다.▲ 엄원태 시인때로 “공포에 질리기도 하는” “뼈저린 고통”일지라도 “징한 새끼 같은 삶”(`후스루흐`)을 받아들이면서 시인은 이제야 비로소 “슬픔이 구역꾸역 치미는 횡경막을 건너” “고통의 임계 지점”(`타나 호수`)을 넘어선 것일까. “생의 가장 중차대한 고비에 한 매듭처럼 묶이는” 이 시집이 “세상에 나올 때쯤이면, 나도 새 생명으로 거듭나 세상의 빛을 새삼 경이로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시인의 말)이라는 시인의 육성이 한편 눈물겹다. “우연 아닌 삶이 또 있을까마는/단순한 방문객으로 살기엔/내 눈은 너무 많은 것을 보았고/몸의 감각 지나치게 예민하여/괴로움 또한 적지 않았다/나를 가둔 방은 춥거나 더웠으며/음식은 식었거나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어떤 날은 국물에서 바퀴벌레가 나오기도 했다/하지만 지금 여기의 단 한번뿐인 이 삶은/대체로 살아볼 만한 것이었으니,/태초에 별들 사이를 흐르는 음악 같은 것이 있어/그 무시무종의 음률을 따라/나는 왔고 또 돌아가리란 걸 겨우 이해하고 나니/오고 감 또한 본래 없는 것이라 한다”-`지금 여기`부분/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3-07-26

중국 고전 속 영웅들처럼 會社를 경영하라

개인으로는 세계 최초로 52만6천500여 자에 달하는 `사기`를 완역하고 `논어`, `노자`, `한비자` 등을 번역해 고전의 현대화에 기여해 온 김원중 교수. 그가 삼성 사장단과 삼성경제연구소, 사법연수원, KBS라디오 등 공공 단체와 기업에서 벌인 300여 차례 고전 강의를 바탕으로 대한민국 리더들이 실제 현장에서 고민해 온 문제들을 종합적으로 정리해 역은 `경영사서`(민음인)를 펴냈다.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경영사서(經營四書)`란 `한비자`, `손자병법`, `사기`, `정관정요`등 시대의 최고경영자들이 지침으로 삼은 네 권의 고전을 일컫는다.`한비자`는 혼란한 춘추 전국 시대를 진나라가 통일하는 데 기여한 제왕학의 성전으로, 제갈량이 죽기 직전 유비의 아들 유선에게 일독을 권하고 한나라의 중흥을 이끈 무제가 남들과 공유하지 않고 혼자 몰래 읽었던 책이다. `손자병법`은 위나라의 창업자 조조가 직접 열세 편의 주를 달아 보급한, 전쟁의 기술, 정치, 경제, 외교 등 처세 전반을 폭넓게 다루는 중국 최고의 병법서다.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운 마오쩌둥이 국민당과의 대장정 전투에서 전략과 전술을 취한 책이자 죽을 때까지 머리맡에 두고 아껴 읽었던 애독서이기도 하다. `사기`는 기존 역사서에서 간과한 모사, 건달, 협객, 장사꾼 등 비주류 인물까지 광범위하고 체계적으로 다룬 인간학의 보고로, 조선 시대의 정조가 만인의 귀감이 될 인재상들을 제시할 때 직접 그 내용을 발췌하여 보급하기도 했다. `정관정요`는 중국 역사상 최고의 태평성대를 열어 간 당태종과 충신들이 나눈 정치에 대한 토론집으로, 오늘날에도 열린 리더십과 인재 관리의 교과서로 널리 읽힌다.위 네 고전의 원전을 충실히 읽어 나가는 동시에 거기에 담긴 경영 전략들의 현대적인 의미를 모색하는 이 책은, 경영과 처세의 어려움으로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는 조직의 리더뿐 아니라 사회생활을 하는 모든 이들에게 직접적이고 근본적인 해답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지침서가 돼 줄 것이다.오늘날 통용되는 `경영`이란 말은`시경`과 `맹자`에 나오는 `경지영지(經之營之)`의 준말에서 비롯한다. “설계하고 측량하여 집을 짓는다”는 본래의 뜻과 “기초를 닦고 계획을 세워 어떤 일을 해 나가되, 그 뜻을 혼자만 점유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과 공유한다”는 함의가 담겨 있다. 이 책은 경영의 의미가 혼란스러워진 이 시대에 고전을 통해 그 의미를 바로잡고 과거와 지금의 사고를 소통시키며 어떻게 하면 그 가치를 새롭게 탄생시킬 수 있을지 고민한 결과물이다.강연장의 생동감을 고스란히 옮겨 읽는 재미 또한 만만치 않은`경영사서`는 비단 경영의 지혜뿐만이 아닌 현대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인문 지식과 처세 전략, 더 나아가 견고한 삶의 혜안까지 담고 있어 독자들에게 기대보다 더 나아간 고전의 정수들을 선사할 것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3-07-26

시인·소설가·영화감독 `만능작가` 인간을 둘러싼 혼돈과 좌절 그려

`국가의 사생활`, `내 연애의 모든 것` 등을 통해 문단과 대중으로부터 두루 사랑을 받아 온 작가 이응준의 연작소설집 `밤의 첼로`(민음사)가 출간됐다. 이 소설집은 다시 철저히 문학의 본령으로 돌아온 작품이다. 소설 속의 모든 인물과 사건들이 마치 퍼즐이나 모자이크처럼 서로 겹쳐지거나 충돌하며 치밀하고 유기적으로 연결된 여섯 편의 연작소설을 통해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빛과 어둠은 서로 은밀히 연결돼 있음을 보여 주며 쓸쓸한 의지와 불굴의 희망을 노래한다.이 책에 실린 그의 소설들은 하나같이 어둡다. 소설 속 인물들은 모두 “제 생애에서 가장 혹독한 밤”, 즉 어둠의 심연을 겪고 있다. `밤의 첼로`는 어두운 세상을 보여 주기 위해 인간을 둘러싼 혼돈과 좌절을 어둠 그 자체를 그린, 여흑(餘黑)의 소설이다.이응준은 `작가의 말`에서 스스로 밝히듯이, “눈물이 맺히는 아름다운 노래 한 소절이 어떤 거대한 진리보다 강하다고 믿는” 지극한 낭만주의자이자 탐미주의자이다. “무리를 스스로 저버린 늑대가 어둠 속에서 홀로 죽음에 도전하듯” 이응준 작가는 자신과 문학과 세상과 싸워 오며 아름다운 것, 오직 예술만을 추구해 왔다.시인이자 소설가, 영화 각본가와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응준은 그동안 그의 작품들을 통해 시적 언어와 소설적 구성, 영화적 감각으로 한국 문학에 전혀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 냈다.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시인 권진규는 “문득 그는 천국처럼 머나먼 곳의 상처 입는 어떤 이들과 자신이 아주 오래전부터 간절히 아프게 연결돼 있는 것만 같았다”라고 말한다. 이처럼 `버드나무군락지`를 중심으로 이 소설집에 실린 여섯 편의 소설 속 인물들을 연결시켜 주는 것은 고통으로 인한 상처다./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3-07-26

生의 의지·시적 욕망, 노래로 풀어내

▲ 김명인 시인올해로 등단 40년을 맞는 시인 김명인이 열번째 시집 `여행자 나무`를 출간했다. 그는 첫 시집 `동두천`에서 가장 오염된 세속에서 발원하는 가장 인간적인 사랑과 그 `더러운 그리움의 세계`를 그리는 것으로부터 시작해 `바다의 아코디언`과 `파문`을 통해 시간과 기억이 인간의 삶에서 갖는 근원적 의미에 대해 집요하게 질문해왔다. 시력 40년의 긴 여정에서 김명인의 시 세계를 관통하는 것은 `몸의 기억`이다. 김명인 시의 존재자들은 대부분 고향을 잃고 부랑의 운명을 걸머진 채 헐벗은 길 위에 선 이들이다. 한국전쟁 발발에 따른 무의식 속 전쟁 기억, 가족과의 단절 등으로 몸 깊이 새겨진 정신적 상흔은 그의 시에 고스란히 담겨 한국문학에서 독특한 궤적을 그리며 변화를 거듭해왔다.그는 이번 시집에 어느덧 삶의 풍찬노숙을 지나 노년에 이른 시인이 자기 스스로 변화된 몸에서 길어 올리는 깨달음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생명 안쪽에 낙인처럼 찍혔던 트라우마도 희미해지고, 대신 죽음이라는 깊은 어둠이 생생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흑백의 반전처럼 빛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어둠이 충만해지는 시절로서 늙음을 받아들이는 시인은 몸에 새겨진 상처들과 그 방랑의 시절마저 무한한 사랑으로 감싸 안는다.이로써 다시금 솟아나는 `신생의 그리움`, 즉 계속 끓어오르는 문학에의 의지를 보여주는 시인의 이번 시집을 읽다 보면 앞으로도 무한히 변화할 그의 시 세계에 기대감을 갖게 된다. 그에게 “아직 행려의 계절은 끝나지 않았다”.시집 곳곳에는 늙어가는 몸에 대한 사유가 묻어난다. 한 시절 울울창창한 숲처럼 풍성했던 살과 뼈는 `예전 같지 않지만` 시인은 “운신 한결 가벼워졌다”며 이를 삶의 한 과정으로 수용한다.“살은 이승에서 꿔 입는 옷”이라는 그는 줄어드는 몸을 수긍하며 도리어 이를 무한한 자유의 가능성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이 시집의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권혁웅은 이러한 관점을 양압(陽壓)과 음압(陰壓)으로 비유해 삶의 측면에서 볼 때 늙음은 0(zero, 소멸)으로 수렴하는 것이지만 반대로 죽음의 관점에서는 자신의 영역이 영원히 커지고 팽창하는 무한(∞)을 향한 길로 볼 수 있다고 설명한다. 시인에게 죽음은 삶의 자연스러운 과정인 동시에 새로운 여정인 것이다.젊은 시절의 삶은 지독할 정도로 밝은 빛이다. 시인은 “되는대로 미끄러져가며 떠뜨렸던/내 삶의 어떤 폭죽들”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잠깐 일어섰다 부서지던 파문”(`살이라는 잔고`)은 한창때의 나날들을 요동치게 한 적도 있었다고 회고한다. 하지만 어떠한 빛이라도 종래에는 어둠이 오듯, 어떠한 격정 뒤에도 고요가 찾아오기 마련이다. 생생한 쓰라림 가득했던 생채기들도 흔적만 남은 지금, 모든 것을 내려놓은 뒤에 도래하는 사랑이 있다. 유년의 더러운 그리움에서, 젊은 날 상처의 그리움으로, 그러다 찾아온 죽음이라는 어둠 앞에서 삶 그 자체에 대한 무한한 사랑이 발휘되는 지금의 모습을 김명인의 새로운 변화이자 또 한번 깊어진 진화라고도 볼 수 있다.“여행자 나무, 석양에서 피어오르는 신생의 그리움선연하게 둘러앉는 두레의 그늘, 석양이 지고 있다창밖으로 보면 오늘의 여행자는 홀로 서서 고즈넉하고나무 또한 그가 버리고 갈 길에는 무심하지만펼쳐든 여정이라면 누구라도접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여행이란하루에도 몇 번씩 어제가 포개놓은 그늘에 서게 하는 걸까?아직 행려의 계절 끝나지 않았다어디로도 실어 보내지 못한 신생의 그리움 품고 나무의늙은 가지에 앉아몸통뿐인 새가 울고 있다”-`여행자 나무` 부분김명인은 그간 발표해온 시들을 통해 `길`의 이미지를 늘 강조해왔다. 그 길은 고향에서 등 떠밀려 나온 뒤 계속된 `가고` `떠나고` `흐르고` `지워지는` 방랑의 운명 그 자체를 의미하기도 했다.어느덧 석양이 지듯 삶의 황혼기에 이른 시인은 인간 스스로 선택할 수도 거부할 수도 없는 방랑의 운명, 그 자체를 온전히 자신의 몫으로 받아들인다.접을 수 없기에 지난날의 상처를 기억하고 더듬으며 새로운 긴장을 벼리는 그는 아직도 실어 보내지 못한 신생의 그리움, 그 강한 생의 의지와 시적 욕망을 계속 노래로 풀어내고 있는 것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3-07-19

교육현장 체험수기 대상작 등 묶어

제3회 교육현장체험수기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포항 오천중 이주형 교사가 대상 작품을 비롯한 그동안 매일 병원을 오가며 쓴 시와 포토 에세이를 한 권으로 묶어 `희망은 지지 않는다!`라는 책을 출판했다.누구도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절망의 순간이 그려진다. 하지만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도 `희망은 지지 않는다!`의 주인공들은 “신은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사람에게만 시련을 준다”라는 말을 믿고 현재를 인정하고 현재의 고통을 희망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했다. 놀라운 건 그 주인공들이 바로 사회 4대악 중 하나인 학교폭력의 주범으로 지목된 중학생들이라는 것이다.희망은 믿는 이에게만 보인다. 그렇다고 믿는다고 다 보이는 것은 아니다. 막연히 잘 되게 해주세요와 같은 추상적인 희망이 아니라 내가 꼭 이루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인식하고 그것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 할 때 희망은 우리에 찾아온다.이 글의 주인공들의 희망은 오로지 하나였다. 공부도, 게임도, 편안함도 아닌 바로 친구의 생명, 그래서 그 생명을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다들 공부로 바쁜 중학교 3학년이었지만 오천중학교 3학년5반 학생들은 스스로 당번을 정해 규칙적으로 문병을 갔고, 또 정기적으로 공연 팀을 꾸려 병원의 모든 사람들을 위해 공연도 펼쳤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3-07-19

새로운 시작을 꿈꾸는 한의사 이용운 경쟁·좌절·도전 이야기 담담히 그려

▲ 저자 이용운`새로운 시작을 위하여`(이야기공작소)는 한 사람의 살아온 이야기이자, 이 시대가 품어온 이야기이다. 저자 이용운은 가난한 시절, 자식들에게 헌신을 다한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야기에서부터 경쟁과 성장, 좌절과 도전을 반복하며 살아온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펼쳐 보인다. 꾸밈없으면서도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날카로운 시각, 동시대인들에 대한 따뜻한 연민 등, 한의사 이용운의 대의(大醫)를 넘어선 대의(大義)를 향한 새로운 시작을 이 책을 통해 만날 수 있다. 고등학교 수석 졸업, 서울대 출신, 동국대 한의대 수석 입학 등 이른바 `수재`로 일컬을 이력을 가진 저자 이용운. 그는 서울대를 졸업하고도 그 앞에 펼쳐진 엘리트로서의 삶이 아닌 시대의 고민과 고통을 함께 짊어지는 노동자로서의 삶을 선택했다. 노동운동의 대가로 감옥에 투옥됐지만 그곳에서 동양철학을 공부하고 이후 한의사가 되기까지 이용운의 삶은 도전의 연속이었다. 치열한 고민과 삶을 통한 실천, 그리고 지금 다시 새로운 시작을 향해 나아가는 결심을 하기까지 끊임없이 성찰하고 도전한 저자의 지난 시간들은 자신의 인생을 보다 가치 있게 만들기 위해 고민하는 동시대인들의 마음을 든든하게 한다.이 책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웃의 삶이면서 또한 한 인간의 신념에 관한 책이다. 저자는 어린 시절 작은 키 때문에 `꼬맹이`라고 놀림을 받기도 하고 작은 키는 콤플렉스인 때가 있었다. 그러나 “키는 목표를 이루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없다”는 아버지의 가르침, 저자의 작은 성과에도 기뻐하고 칭찬하는 어머니와 형제들, 외형적 조건보다 개개인이 가진 특기와 장점을 이끌어주었던 학창시절의 선생님들을 통해서 극복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인생 앞에 닥친 크고 작은 과제들을 주변 사람들과 힘을 모아 극복하고 성장하면서 저자는 더 넓은 세상,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로운 세상을 꿈꾸게 된다. 그리하여 신념을 가지고, 신념을 지키는 한 인간으로 나아가기로 한다.저자가 꿈꾸는 세상은 그리 특별하지 않다. 자식으로서, 친구로서, 남편으로서, 가장으로서, 아버지로서 정직하고 건강한 사람들이 평범하게 사는 세상이다. 특히 그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차별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비판한다. 자기 안의 고정관념을 깨고, 누구도 아닌 “내 딸들이 차별 없이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펼치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 열등감을 이겨내며 자란 학창시절, 가진 것은 없지만 신념과 의지로 앞으로 나간 청년 시절… 동시대를 사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겪었을 일화들을 읽으며 독자들은 때로는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또한 정직하면서도 날카로운 시대감각을 느끼는 칼럼을 읽을 때에는 속이 후련한 기분이 들기도 할 것이다. 1964년 포항에서 태어난 이용운씨는 오천초등학교, 포항중학교, 포항고등학교를 수석으로 나와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졸업을 앞둔 1989년부터 1992년까지 4년여 동안 노동운동에 투신했으며 스스로 현장을 떠난 직후인 1992년 8월 구속되어 옥중에서 동양철학을 공부하며 삶의 새로운 길을 찾았다.1994년 동국대 한의과대학을 수석으로 입학했으며, 2002년부터 한의사가 돼 서울 광진구에서 해마루부부한의원을 개원했다. 포항고등학교총동창회 부회장, 서울 광진구한의사회장, (사)한국다문화희망협회 자문위원 등을 맡고 있다.이용운씨는 20일 오후 5시 포항시청 대잠홀에서 출판기념회 `이용운의 북콘서트`를 연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3-0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