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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이해할 수 없는 섭리 파헤치며 미지의 희망에 한발 더 다가서다

세계의 불온한 질서들을 엄숙하고도 진지하게 추궁하는 소설가 정찬이 새 소설집 `정결한 집`(문학과지성사)을 출간했다. 작가는 이번 소설집을 통해 세계의 이해할 수 없는 섭리들을 파헤치며 미지의 희망에 한발 더 다가선다.그의 질문은 지금-여기의 현실을 겨누다가 역사와 신화, 판타지로 뻗어나간다. 이를테면 본인의 결핍을 메우려 자식에게 초인적 역할을 기대하는 어머니와 순응 동기를 상실한 아들(`정결한 집`)이나 일제의 난징학살(`오래된 몽상`)과 같은 `현상`을 작가의 의식 깊숙한 곳에서 재구성한 `내막`으로 채워 문제의 처음과 지금을 다시 묻고, 재개발(`세이렌의 노래`)이나 부당해고(`흔들의자`)와 같은 사회적 문제를 신화-종교와 병치시켜 부조리의 원류를 추적해나가는 식이다.정찬은 시대의 화두 앞에서 에두르거나 주저하지 않는다. 시쳇말로 그의 소설은 돌직구다. 가정불화와 과도한 학벌 경쟁이 희대의 패륜을 낳았고(`정결한 집`) 개발과 발전의 미명 아래에서 사람들이 불타 죽었다(`세이렌의 노래`). 백척간두에 올라 생존권을 호소하는 노동자(`흔들의자`)와 신념에 따라 집총을 거부하는 청년의 목소리도 들린다(`녹슨 자전거`). 그런가 하면 자식의 결혼을 앞두고 빈부의 격차가 곧 신분적 질서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아버지는 어느새 구경꾼이 돼 있고(`모과 냄새`) 자본의 논리가 이 시대 신전의 새로운 주인이 되어 역사상 가장 강력한 규범을 행사하고 있다(`오래된 몽상`).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이 모든 일이 분명 충격적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부터 특별한 자극을 주지 않고 있다는 데 있다. 인간은 운명이 자신에게 다가와 덮치지 않으면 그 형태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음유시인의 갈대 펜`).그러므로 처음의 당혹감은 급속도로 반감된다. 아마 어떤 침팬지가 학술원으로부터 글을 청탁받을 만큼 인간 지능의 평균을 뛰어넘는다 해도(`학술원에 드리는 보고`) 오래지 않아 익숙해질 것이다. 이 책은 `당시`의 충격을 되살리고 공유함으로써 이 지난한 운명을 우리가 함께 짊어지고 있음을 환기한다./윤희정기자

2013-02-15

가족의 의미는… 핏줄·끈끈한 애정?

▲ 소설가 고종석저널리스트, 에세이스트, 언어학자로서 여러 방면을 통해 유려한 글쓰기에 매진해온 소설가 고종석의 세번째 장편소설 `해피패밀리`(문학동네)가 출간됐다. `독고준`이후 3년 만에 펴내는 `해피 패밀리`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가장 친근하고 가깝다 여겨온 `가족`이라는 존재에 대한 근원적 회의를 날카롭고 서늘하게 그려냈다. 겉으로 보면 아무 문제 없이 평온해 보이지만 비극적인 역사를 지나온 한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당연하다 믿고 있는 핏줄에 대한 끈끈한 애정과 탄탄한 연대의식이 자세히 들여다보면 얼마나 허망하고 위선적인 것인지 이야기한다.소설은 출판사에서 편집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한민형의 목소리부터 시작해 아들이 일하는 출판사의 사장인 아버지 한진규, 고등학교 역사교사이자 어머니인 민경화, 한민형의 처이자 고등학교 수학교사인 서현주, 한민형의 동생인 한영미와 한민주, 대학 후배인 이정석, 장모인 강희숙, 딸 한지현,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금은 세상을 떠난 한민형의 누나 한민희까지 모두 화자로 나서 각자의 사연과 감정 들을 토로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세상에 금지된 것은 없습니다, 느닷없이 이 문장이 내 입 밖으로 중얼중얼 흘러나왔다.”현대 사회에서 가족이란 어떤 의미일까? 파편화된 개인들이 깊은 관계를 맺지 못하고 데면데면하게 피상적으로 소통하는 요즘이지만 그래도 우리가 가족이라는 명사에서 느끼는 것들, 최소한 느끼기 원하는 것들은 대개 따스하고 편안한 이미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들이었다. 부유하거나 가난하거나, 그 방식이 온전하거나 뒤틀려 있거나를 떠나 우리 서사에서 `가족`이라는 말은 `외롭다`는 말과 거리가 멀었다.그러나 `해피 패밀리`의 가족들은 철저히 개인주의적이고 이기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가슴에 맺힌 커다란 상처를 허무주의로 메우고 있는 한민형의 모습이나, 직접 입양해온 한영미를 철저히 필요에 의해서 물건처럼 대하고 심지어 그런 태도를 아무렇지 않게 정당화시키는 어머니 민경화의 모습은 이들을 정말 가족이라 부를 수 있는지를 다시 한번 되묻게 한다. “나는 사람보다 책이 좋다. 그게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다. 유년기를 되돌아보면, 책 읽는 나보다 동무들과 뛰노는 내가 더 선명히 기억된다. 아마 십대의 어느 때부터였을 것이다, 내가 책을 사람보다 더 좋아하게 된 것이. 책보다는 아닐지라도, 내가 사람을 좋아하긴 하는 것일까? 선뜻 그렇다는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기는 한 것일까? ”(한민형, 12쪽)/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3-02-08

`고목에 새싹나듯`… 인생황혼 그려

▲ 시인 황동규황동규(76) 시인의 끊이지 않는 시를 향한 열정이 열다섯번째 시집 `사는 기쁨(문학과지성사)`으로 다시 한 번 불씨를 지핀다. 이번 시집은 병들고 아픈 몸으로 짧기만 한 가을을 지나며, 다 쓰러진 소나무가 상처에서 새싹을 틔우듯, “벗어나려다 벗어나려다 못 벗어난” 사는 기쁨에 매여 있는 인생의 황혼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하지만 시집의 전체 분위기는 곳곳에서 터지는 상상력 넘치는 언어들과 상승하는 정신으로 오히려 삶의 생기가 가득하다. 물리치료를 받고 돌아오는 길에 `장기 기증`을 의뢰받는 전화 통화에 “아직 상상력 난폭하게 굴리는 고물차 다된 뇌나 건질 만할까”라고 대응하고, 산책길에서 본 쓰러져가는 소나무가 틔워낸 새싹을 보고, “이렇게도 모질게 살아야 하나?”라고 묻지만, 그것은 어떤 회한에서 비롯되었다기보다는 “`살고 싶어 그런 거 아냐./병들어 누운 몸, 살던 곳 빼끔 내다보기지`”라고 표현함으로써 꺼져가는 삶도 생명의 진행 과정에 있음을, 살아 있는 한 생명이 다 하는 날까지 “상처에 아린 살들 촘촘히 짚어가며 하나씩 꿰매다 확 터지곤 하던/저 아픔의 환한 맛”이 주는 `통증`을 달게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삶의 숭고를 표현한다.“노년의 나이에도 이처럼 뛰어난 발상을 보여주는 시, 싱싱하게 살아 있는 비유적 이미지를 구사한다는 사실은 인간의 정신에 대한 무섭고 즐거운 존경을 불러일으킨다.그와 함께 황동규의 시는 어디까지 상승할 것인가란 의문을 떨칠 수 없게 만든다. 그의 육체는 착지점을 찾는 곡사포의 포탄처럼 땅을 향해 하강하고 있을지 모르나 그의 정신은 하강곡선을 망각한 채 여전히 상승의 포물선을 그리고 있다. 그렇다면 그의 시는 정점이 곧 종점이 될 것인가! 이번 시집은 이 같은 의문으로부터 필자 역시 벗어날 수 없게 만든다” _홍정선(문학평론가)오늘은 오늘의 기쁨이 있어, “무언가 주고받으니 그냥 좋은 거다”“이제 뭘 하지? 산다는 게 도대체 뭐람”(`뭘 하지?`)이라고 되묻게 되는 정년 이후의 삶은 독서와 산책, 친구들과의 단출한 여행 등 소소한 일상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이렇게 허락된 노년의 시간들은 삶에 숨겨진 신비를 새롭게 발견하게 한다. 하루는 영하의 기온 탓에 베란다 화분을 데워주려 거실 문을 열어 젖혔다가 거실 바닥에 새겨진 난초 무늬를 보고 한 폭의 묵화가 그려진 이불을 상상한다.20년 간 산 아파트 거실에서 처음 만난 그 묵화에 홀린 시인은 조용히 그 묵화 이불 속으로 들어가 누워 보고 “느낌과 상관없이 `따스하다`고 속삭인다”(`묵화(墨畵) 이불`). 그렇게 만나는 허전하면서도 따스한 감각들은 산책길마다 담아오는 조그만 새소리들이나 겨울날 망향 휴게소에서는 눈 나리는 날 자신의 앞에서 휘청 넘어지는 여인의 머리 위에 내려앉은 눈송이들과 눈인사 나누기 등과 같이 날마다 새로운 체험하게 하는 설레는 순간들이다.이렇게도 새로운 삶이 `재미있어 죽겠다`는 시인 일과를 훔쳐보노라면, 젊은 사람이 보기에도 샘이 날 정도다. 하지만 그러한 시간은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하루`이기 때문에 공감할 수 있다. 시간의 더께가 쌓여 무뎌지고 고요하기만 한 세상, 세월이 만든 담백한 풍경 속에서도 시인은 생의 경이를 발견하는 기쁨으로 이토록 신이 나 있다.깊은 안개 속을 걸으면무언가 앞서 가는 게 없어 좋지.발 내디딜 때생각이나 생각의 부스러기 같은 게 밟히지 않는다.(…)다 산 삶도 잠시 더 걸치고 가보자. `안개의 끝`부분“아직 술맛과 시(詩)맛이 남아 있으니”귀는 쫑긋하지 않고 눈은 반짝이지 않는다. 몸이 스스로 알아서 에너지를 아껴 쓰는 늙고 아픈 몸이지만, 산책과 여행으로 가득한 시인의 일과는 지나온 눈꽃 “두고 갈 때 가더라도 한 번 더 보고 가자”(`눈꽃`)고 마음먹거나 “기쁨은 기쁨, 슬픔은 슬픔, 분노는 분노, 그 부스러기들이/아직 들어 있는 몸이 어딘데”(`맨가을 저녁`)라며 셔츠 윗단추를 풀어 세상의 기운을 느끼기에 바쁘다.“용서 받은 것은 어둡고, 안 받은 것은 더 어”(`어둡고 더 어두운`)두울 수밖에 없는 생이지만 그러한 생이 주는 고통과 모욕에도 시인이 발견하는 이 사는 기쁨들은 “몸이여, 그대 처분에 나를 맡겨야 하지 않겠나”(`이 저녁에`)라고 읊조리게 하며 “미래가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인”(`봄비에`) 가운데서도 꼭 불타는 캠프 파이어 같은 생이 아니어도 좋은, “이 세상에서 나갈 때/아직 술맛과 시(詩)맛이 남아 있는 곳에 혀나 간 신장 같은 걸/슬쩍 두고 내리지 뭐.//땅기는 등어리는 등에 붙이고 나가더라도”(`장기(臟器) 기증`)라고 말하는 시인의 하루는 탐욕 없이도 생의 충만함으로 가득하다.`법사께서는 연로하신데 어디로 가십니까?``죽으러 가는 길입니다.` `가는 곳 물으신다면`부분미래에도 이 거리에선무언가가 사람의 발걸음 멈추게 할 것이다.내가 없는 미래가 갑자기 그리워지려 한다.`브로드웨이 걷기`부분/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3-02-08

감각적 언어로 삶의 본질 꿰뚫어

▲시인 김성대2005년 `창비신인시인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김성대 시인의 두번째 시집 `사막 식당`(창비)이 출간됐다. 김수영문학상 수상작인 첫 시집 `귀 없는 토끼에 관한 소수 의견` 이후 3년 만에 펴내는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더욱 농밀해진 감각적 언어와 선명한 이미지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사물의 본질과 삶의 내면을 꿰뚫어보는 예리한 통찰력과 활달한 상상력의 세계를 선보인다.`판화처럼 나는 삽니다` `물옥잠` `월롱역`을 첫 시집에서 감상할 수 없었던 등단작 3편을 포함해 총 55편의 시를 수록했다. 전통 서정의 문법에 기대어 있으나 다소 낯설고 난해한 듯하면서도 강렬한 인상을 뿜어내는 시편들을 접하는 동안 부지불식간에 미지의 세계로 빨려들어가는 경이로운 체험을 가능케 한다.“속에서 열없는 팽이가 돌고 있다/흩어진 얼굴을 비워야 할 시간/속을 끼얹듯 세수를 한다/`나는 반성문에서 시작되었다`/무엇이 잘못인지 모르면서 뉘우치면서…. 어떤 거짓이 나를…. /이제 그것을 자백하자/그것을 위해 지금껏 말을 잃지 않은 것처럼/말하지 못한 것과 말할 수 없는 것이/식초처럼 말갛게 속을 비운 얼굴로(`본질범`부분)식물성의 언어가 돋보이는 김성대의 시는 폭넓은 사유와 어우러져 깊은 울림을 자아내며 자유로운 연상 속에서 부드럽게 흐른다.첫 시집에서 `귀 없는 토끼`라는 치명적 결함을 지닌 존재를 내세워 자기 정체성을 잃고 사라져가는 사물들과 감각이 격리되는 순간에 몰입해온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한결 예민해진 시선으로 “눈을 잃은 고양이”(`딸기밭`), “갈라진 손톱으로 눈알을 긁는” “색맹의 아이들”(`이안류 2`), “깊은 바다에서 울음을 멈춘 새들”(`해바라기 이데아`)과 같이 일상의 감각을 잃고 마비 증상에 시달리며 “내려앉을 곳을 잃어버린/얼굴을 앓고” “점점 근소해지”(`우기의 장례`)는 존재들에 주목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3-02-08

대구 앞산 역사·문화 스토리텔링 소설 `산(山), 대왕을 품다` 발간

대구 남구청은 6일 남구도시만들기지원센터와 함께 앞산 스토리텔링을 담은 책 `산(山), 대왕을 품다(조두진 저, 대구 남구청 펴냄, 240쪽·사진)`를 발간했다고 밝혔다.이 책은 남구청이 지난해부터 앞산을 배경으로 한`스토리텔링 사업`을 추진하면서 지역 명소인 앞산을 널리 알리고 앞산 자락길을 남구와 대구를 대표하는 문화관광 콘텐츠로 개발하기 위해 발간됐다.이 책에는 앞산 곳곳에 스며 있는 역사와 문화는 물론이고 지명의 유래에 대해서도 이야기로 엮어 한 편의 소설로 발간함으로써 읽는 이로 하여금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그동안 남구청은 이번 책 발간을 위해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해박한 식견을 가진 작가를 만나는 등 작가선정에 심혈을 기울였고, 구청장을 비롯한 간부공무원과 담당 공무원이 앞산의 구석구석을 답사해 직접 관련 자료를 수집하며 향토사학자 등을 통해 역사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산(山), 대왕을 품다`는 고려 태조 왕건이 927년 9월 공산(지금의 팔공산)에서 견훤의 백제군에게 대패한 후 홀로 탈출해 앞산으로 숨어드는 장면으로 이야기의 첫 장을 열고, 이후 앞산의 화전민인 어리노인과 그의 딸 호류를 통해 자연과 농사의 이치를 깨닫고 사람에 대한 참사랑을 깨우쳐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또 책 속에서 앞산의 고산골과 바위굴, 은적사와 안일사 등은 작가 특유의 날카로운 역사의식과 매력적인 문체에다 풍부한 상상력이 더해져 활력이 넘치는 공간으로 새롭게 재탄생하고 있다.남구청은 우선 홍보용으로 500권을 제작해 남구의 각 동 주민센터와 대구시·구·군, 학교 및 도서관, 대구시 문화원 등에 배부한다. 이어 이 책을 CD로 제작하고, `다큐`와 연극`천년의 문`제작을 통해 지역문화예술 진흥에도 이바지할 계획이다.임병헌 남구청장은 “`산, 대왕을 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매력적인 작품인 만큼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한편, `산(山), 대왕을 품다`의 저자 조두진 작가는 지난 2005년 장편소설`도모유키`로 제10회 한겨레문학상 수상한 이후`능소화`, `유이화`, `아버지의 오토바이`,`몽혼`, `북성로의 밤`등 장편소설을 꾸준히 발표해 오고 있다./김영태기자 piuskk@kbmaeil.com

2013-02-07

하루 힘든 노동을 감내한 노동자거친 살갗 속 뜨거운 피가 흐른다

▲ 시인 김광선2003년 창비 신인상을 통해 등단한 김광선(53) 시인의 신작 시집 `붉은 도마`(실천문학사)가 출간됐다.시를 노동의 생활로부터 끌어올리고 삶을 시적인 것으로 변모하고자 했던 노동시의 전통을 따르고 있는 김광선 시인은 첫 시집 `겨울 삽화`(2000)에서 노동자의 고단한 삶에 잠재돼 있는 아름다움을 찾아내고 이를 서정적으로 시화하는 전통적인 노동시를 보여준 바 있다.시인의 고향은 전남 목포다. 세 살 때 어머니와 함께 나로도라는 섬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소년 시절을 보냈다. 무척 가난했기 때문에 두 동생은 학교에 다닐 수 없었다. 열입곱 살이 되던 해, 시인은 친구와 함께 여수로 가는 배를 탔다. 여수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통일호 열차를 탄 소년은 덜컹거리는 차량 안에서 마음속에 품은 꿈도 불안함으로 밤새 요동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세상 물정 모르는 어수룩한 섬 소년은 그렇게 도시의 노동자가 되어갔다.도시로 올라온 소년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지관`을 만드는 일이었다. 지관(紙管)이란 화장지나 접착테이프 속에 들어가는 종이 대롱을 말한다. 소년은 영세한 작업장에서 매일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노동했다. 그때부터 소년은 자신의 삶을 글이나 노래로 풀어내고 싶어졌다. 이후로 그는 유랑극단 생활도 해보고 곱창집을 운영하기도 했다. 밤에는 없는 시간을 쪼개어 책을 읽었다. 술값, 밥값을 아껴 책을 샀다. 일자리를 찾아 전국을 떠돌아다녀야만 했던 그는 마음속으로 희망의 불씨를 지폈다.“남의 삶을 엿보면서 마치 자신의 삶인 양 섣불리 형상화하는 것보다는 자신이 삶을 치열하게 살면서 그 안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삶의 방식과 요구들을 형상화해야 한다.”등단 후 그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다. 그의 시는 삶에 천착해 있다. 거대한 도시 서울에 정착한 섬 소년은 당시 첫 월급으로 1만8천원을 받았다.산동네 허름한 쪽방에서 자취하면서 점심으로 50원짜리 빵을 사 먹었다. 아침저녁으로 라면이나 오뎅 볶음을 `신물 날 정도로` 먹었다고 한다. 지관을 만드는 공장을 떠난 그는 한 음식점에 취직하게 된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그는 밖을 내다볼 시간도 없이 밤늦게까지 주방에서 일해야만 했다. 손은 뻘겋게 퉁퉁 불고 몸은 녹초가 되었다.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오자마자 아무렇게나 방구석에 쓰러지는 고된 생활이었다. 당시 그의 배움과 문학에 대한 희망은 거세게 흔들렸다.공장을 옮길 때마다 기술은 붙고 월급은 올라갔지만 그만큼 돈의 가치는 떨어졌다. 시인의 쳇바퀴보다 사회는 훨씬 더 빨리 돌아갔다. 노조를 꾸릴 인원도 안 되는 공원을 데리고 착취를 일삼는 사업주에 맞서 파업을 주도하기도 했던 그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규모 없는 현실을 변화시킬 방법을 모색했다. 그때 처음 일하던 식당을 떠날 때 주방 선배가 해준 말이 떠올랐다. “식당에 한번 발을 들인 사람은 반드시 식당으로 돌아온다.”`내가 무슨 연어냐?`하지만 그는 결국 상처 입은 연어처럼 식당으로 돌아왔다.언젠가 그를 취재한 기자가 왜 하필 곱창집을 차렸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의 대답은 단순했다. “그 골목에 곱창집이 없어서….”였다. 자신의 삶을 표현하는 데도 오직 시밖에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시인이다.“내 시는 보잘것없습니다. 하지만 진정성 하나만큼은 어느 누구 못지않습니다.”김광선 시인의 시에는 하루의 힘든 노동을 감내한 노동자의 거칠고 투박한 살갗이 있고, 뜨거운 피가 흐른다. 그리고 그 뜨거운 피 속에는 한 가정을 짊어진 가장의 지친 한숨 소리도 녹아 있다. 우리는 이번 시집에 실린 그의 시들을 통해 한 가정의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한 사람의 노동자로서 시인이 가지는 복합적인 감정과 삶의 결들을 세밀하게 읽을 수 있다.이 시집에 실린 그의 진솔한 시들은 시인 개인의 이야기에서 출발하지만, 현재 한국 사회에서 가장 많은 인구 비율을 차지하는 40~50대 노동자의 이야기로 귀결된다.“새라면 아마도 날개였을 것이다푸른 죽지로 힘껏 창공을 날아오르거나펄럭이며 어디고 사뿐히 내려앉을어깻죽지 들여다본 까만 필름은형광 불빛에 비춰지자말간 뼈 많이 뒤틀려 있다”`날개` 부분노동 현장에서 끊임없이 경쟁해야 하는 중년의 노동자는 집에 돌아와서는 고독과 싸워야 한다. 우리 시대의 아버지들은 쉽사리 자신의 이야기나 생각을 겉으로 표현하지 못한다. 예전의 가부장적인 아버지상과는 또 다른 모습으로 그들은 소외되어 있다. 노동자로서 자본으로부터의 소외, 힘없는 가장으로서 가족들로부터의 소외, 중년 남자로서 삶과 꿈으로부터의 소외가 그들이 현재 겪고 있는 삼중고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3-02-01

섬진강 주민 일상 오롯이 담아

▲ 시인 김용택`섬진강 시인` 김용택(65)씨가 최근 산문집 `김용택의 섬진강 이야기`(전8권·문학동네)를 펴냈다.1권 `내가 살던 집터에서`, 2권 `살구꽃이 피는 마을`, 3권 `섬진강 남도 오백리` 등 소제목이 붙은 책들은 섬진강 인근 주민들의 일상을 오롯이 담아냈다.책은 1948년부터 2012년까지 섬진강 일대 한 작은 마을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소개한다.저자가 글로 그려내는 굽이굽이 흐르는 강, 크고 작은 산 아래 작은 마을들을 담은 풍경화를 마주하며 그 안에 담긴 소중한 기록들을 엿볼 수 있다.`내가 살던 집터에서`는 지금 진메 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옛날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름과 면면, 그리고 마을 곳곳에 붙은 지명을 세세하게 기록한 책이다. 강마을 곳곳에 대한 소개, 그리고 그 마을에서 함께 살아간 이웃들의 따뜻하고도 서러운 사연이 김용택 시인의 입담과 시를 통해 구수하고 푸근하게 펼쳐진다.작가는 이 책을 통해 스스로 땅에 뿌리내리고 살았지만 희망이 되지 못한 사람들을 남기고 싶어 한다. 동시에 그가 진정으로 남기고 싶어하는 것은 비단 진메 마을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것을 조용히 읊조린다.`내가 살던 집터에서`는 진메 마을과 사람들을 기록하고 있지만, 사실 어느 시골 마을에나 진메와 비슷한 지명과 풍경이, 비슷한 인물들과 살아가는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사라져가는 고향의 풍경은 그 어디나 매한가지다. 그 유구함이 막을 내리는 순간을, 버림받은 가난한 땅을 덮친 착취와 파괴, 오염의 현장을 텅 빈 집터에 홀로 선 작가가 노래한다.책을 읽다보면 한수 형님, 풍언이 양반, 삼쇠 양반, 용수 형님, 암재 할매 등 김용택의 글 속에 숱하게 주인공으로 등장했던 마을 사람들이 어떤 이들인지, 꽃밭등, 홍두깨날망, 우골, 각시바위, 자라바위, 뱃마당 등의 지명이 묘사하는 마을 풍경은 또 어떤지 생생히 그려질 것이다.그는 땅에 뿌리내리고 살았지만 끝내 희망을 일구지 못한 애처로운 마을 사람들을 기억하고 기록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가 진정으로 남기고 싶어하는 것이 비단 진메 마을의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것을 조용히 읊조린다./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3-02-01

순례자 눈으로 그린 절터의 진면목

전국에는 5천400여 곳의 폐사지가 산재해 있다. 이미 오래전 법등이 꺼진 이들 폐사지에는 몇몇의 석조 유물들과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남아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나와 같다고 옳고, 다르면 그른 것인가 - (이지누의 폐사지 답사기-충청 편)`의 저자 이지누는 80년대 후반 구산선문 답사를 시작으로, 오랜 세월 전국의 주요 절터를 수차례 답사해왔다. 여러 장소를 찾아가기도 했지만, 특히 같은 장소라고 해도 시간대별로, 계절별로 반복해 답사함으로써 절터의 진면목을 그려내기 위해 애써왔다.더구나 충청도 절터의 경우에는 저자의 공부방이 있는 수도권 지역과 그리 멀지 않아 훌쩍 오가기를 옆집 가듯 했다. 이는 얄팍한 감상과 흔한 자료가 뒤섞인 답사 기록과는 비교할 수 없는 넓이와 깊이를 이 책에서 기대하게 한다.`나와 같다고 옳고, 다르면 그른 것인가`는 그렇게 온전히 저자의 머릿속에 그려진 충청도 절터들 가운데 아홉 곳을 세심하게 선별해 다뤘다. 보령 성주사터부터 책의 여정을 시작해 서산 보원사터, 당진 안국사터, 제천의 사자빈신사터와 월광사터, 충주의 미륵대원사터, 숭선사터, 청룡사터, 김생사터까지 충청도 절터의 진경을 펼쳐 보인다.저자는 때로는 시적인 감상으로, 때로는 설화와 전설과 민담으로, 때로는 불교와 관련된 역사적 사료로 절터를 입체적으로 재구성한다. 저자가 직접 찍은 사진 또한 현장의 느낌을 실감나게 전달함으로써 독서의 흥취를 더한다.사진들은 단순한 현장 스케치가 아니라, 한컷 한컷이 글과 어우러지면서도 독자적으로 분명한 메시지를 발산한다. 이를 통해 일반인의 눈으로는 무심히 건너뛰기 쉬운 충청도 절터의 진면목을 순례자의 맑은 눈으로 또렷하게 부각시킨다.독자들은 이들 절터의 흔적을 찬찬히 더듬어봄으로써 불교의 역사.문화. 사상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3-02-01

詩로 보는, 현대판 오이디푸스들 가득한 세상

1993년 데뷔 이후 13년 만에 담백한 시어들을 꼼꼼히 엮어 숙성된 첫 시집을 선보인 바 있는 서상영 시인의 두번째 시집이 출간됐다. 첫 시집을 펴내기까지의 시간보다는 빨라졌지만,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을 지나 나온 시집 `눈과 오이디푸스`(문학동네)다.또 한번의 오랜 시간의 숙성을 거듭하면서 시인의 시세계 또한 변화를 이뤘다. 과거의 작품들에서 나타난 정신을 현대적으로 변용한 것이라는 점에서 첫 시집과 두번째 시집의 연관성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나, “서상영의 시는 호흡을 토대로 삼아서 만들어진 노래다. 그는 자주 소월과 미당과 혜산을 차운(次韻)하여 시를 지었다”는 첫 시집의 권혁웅 해설과 “서정을 포기한 자리에 육두문자와 외설과 패러디가 난무하고, 대중가요와 연극적 대화가 수시로 개입하며, 말장난과 소설적 서사가 포진한다.시인지 소설인지 우화인지 연극인지 분간할 수 없다. 말하자면 집 안에서 그의 시세계는 전통적인 장르의 경계를 가뭇없이 허무는 해체와 재구성의 미학적 실험실이다”라는 이번 시집의 류신 해설의 간극에서 볼 수 있듯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이번 시집에서 주목되는 것은 제목에서도 드러나듯이 `오이디푸스` 신화가 서상영 시인의 시 안에서 어떤 모습으로 바뀌었나 하는 데에 있다. 스스로 눈을 찌름으로써 자신을 단죄한 오이디푸스의 뉘우침은 종결된 것이 아니라는 데에서 그의 시는 출발한다.▲ 시인 서상영오이디푸스의 통곡은 신화를 뛰어넘어 지금, 여기에서도 여전히 울리고 있기 때문이다. “소낙눈이 내린다뜨거운 눈물이 얼어 하얀 꽃으로 핀다대궁도 없이, 벽 없는 허공에헛되이 몸을 부딪치며, 끝도 시작도 없이오오, 그러나 사내여그 숱한 뉘우침은 정당하단 말인가누구도 아버지의 이름을 부를 자유는 없으리-`눈과 오이디푸스` 전문현대판 오이디푸스들이 가득한 세상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는 곳으로, 시인은 가족을 무대 위로 올린다. 철저한 반공주의자이자 이기적이고 가부장적인, 게다가 자신의 딸을 욕망하는 아버지, 막내아들과 근친 관계에 있는 엄마, 아버지와 형을 동시에 욕망하는 누나, 결국 아버지를 배반하고 새로운 아버지로 등극하는 형. 근친상간의 야릇한 욕망으로 이루어진 이 가족은, 서로의 욕망을 가감 없이 드러내며 끊임없이 갈등을 빚는다. 바야흐로 오이디푸스 근친상간 모티프의 전면적인 교정이자 전방위적 확대라 부를 만한 `신가족로맨스`가 펼쳐지는 것이다.형은 마르크스를 사랑했고 아버지는 비스마르크를 사랑했고집안은한시도 열한시도 편할 날이 없었고어머니는 남편과 아들을 똑같이 사랑했다그래서 특이한 사랑의 방식을 택했는데부자(父子)간의 투쟁을 빌미로 바람을 피워보자는 작은 소망을 가졌다부자간의 증오가 증폭될수록 그녀의 소망도 증폭됐지만막상 아버지가 죽었을 때, 그녀에게서 불륜의 꿈은 사라졌다나는 형이라는 형이상학을 통해 세상을 봤으나원체 지지리라 아버지조차 나를 동정했다누나는 아버지를 가장 사랑했고 오빠를 가장 사랑했는데그런 사실을 공공장소에서 밝혔다그때마다 아버지와 형의 싸움을 격렬해졌고엄마는 누나의 귀싸대기를 때렸다-`눈과 오이디푸스-행복한 가족` 전문 이들의 욕망이 반복되고 서로 자리를 바꾸면서 구동되던 가족 관계는 아버지의 죽음 이후 형이 새로운 아버지가 됨으로써 변화를 맞는다. 하지만 그 변화의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져버린다.형도 결국 아버지의 부정적인 면을 고스란히 이어받고 권력자로 군림하려 하면서 가족의 비극은 또다시 반복되고 만다.아버지를 죽인 자리에 또다시 아버지가 된 오이디푸스. 계속해서 악순환으로 이어지는 `아버지의 질서` 앞에 “새아버지도 헌아버지일 수밖에 없”(`눈과 오이디푸스-안녕, 발가벗은 영혼아`)음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그렇다면 이러한 세상에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시인이다. 이 모든 걸 지켜본 그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한 시인이다. 그의 시가 선 자리를 바라보는 것은 이 이야기의 끝이 아니라 시작일지도 모른다.2부의 마지막을 장식한 두 편의 시에서, 독자들이 이 불편한 가족 이야기에서 또다른 이야기가 시작됨을 짐작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을 것이다.나는 홀로 시를 읊네까닭 없이 권태로운 목소리로안개비에 몸을 적시며시를 읊네, 하지만나는 나의 마음을 모르네아름다움에 더욱 목이 마른 아름다움이 슬픔을 나는 용서해야만 할까-`내 마음의 실루엣` 전문그러면 시인은 지금 어느 쪽에 있는가? 시인은 집 안과 밖, 가족과 자연, 실험과 서정, 첨단과 낭만이 대치한 최전선에 있을 것이다. 경계에서 피는 꽃이 가장 위험하고 아름답다. 부디 정치와 미학의 영토가 맞닿은 국경에서 서상영 시의 꽃이 계속해서 만개하길! (….) 두 겹의 삶을 견디기 위해서, 시간과 공간이 새로운 질서를 부여받는 접점에서, 정치와 미학의 청원이 충돌하고 길항하고 교호(交互)하는 전위에서, 서상영의 시세계가 조금 더 독해지고 악해지길 소망한다.-류신, 해설 `안티 오이디푸스 시극(詩劇)`에서./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3-01-25

고려 문신 교훈집 `명심보감` 청소년 알기 쉽게 풀어 엮어

“고려 학자 추적 선생의 명심보감을 우리 아이들이 보다 쉽게 읽고 보다 편하게 이해 할 수 있도록 풀어서 엮었습니다”방학을 맞은 중고등학생들의 인성교육을 돕기 위한 책 `어른이 되어가는 너에게`(밝은사람들)이 출간됐다.대구시 남구 대명로 홍보기획 전문 출판사 밝은 사람들 임직원들이 원고 집필, 사진 촬영에 이르기까지 출판 전반에 직접 참여한 이 책은 고려말 문신 추적 선생이 교훈적인 가르침을 모아 낸 명심보감을 오늘날 정서와 문화를 반영해 청소년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구성했다.나무와 빗물 등 자연현상을 아이의 인격에 빗대어 이해와 존중, 배려, 사랑,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부분부터 어른과 이웃을 대하는 태도와 행동, 인내, 근면성실, 바른 성품, 성찰과 성공의 의미, 겸손과 공손, 베풂, 검소, 언어 사용의 절제까지 명심보감의 주옥같은 내용을 청소년들이 이해하기 쉽게 풀어서 엮어냈다는 점이 특징이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한자는 적지 않았으며 초등학생도 이해가 쉽도록 풀어 썼다.무엇보다 옛 `명심보감`을 시대적으로 다시 해석해서 영상미가 뛰어난 사진과 함께 실어 청소년들이 쉽고 재미있게 다가갈 수 있는 책, 옛 가르침의 고리타분한 책이 아니라 `오늘의 책`으로 거듭나게 하고자 했다는 집필진들의 의도가 세심하게 잘 편집돼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3-01-25

섬세히 그려낸 엄마와 딸의 미묘한 관계

▲ 신달자 시인신달자 시인은 결혼 9년 만에 뇌졸중으로 쓰러진 남편을 24년간 수발하며, 시어머니와 어머니의 죽음, 본인의 암 투병 속에서도 세 딸을 홀로 키우며 희망을 잃지 않고 삶과 문학에 대한 열정으로 고통을 이겨 냈다. 신 시인은 최근 펴낸 에세이 `엄마와 딸`(민음사)에서 화려한 삶 뒤에 감추어진 처절한 고통의 나날들을 견디며 절망의 늪에서도 희망을 건져 올릴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엄마`와 `딸` 때문이었음을 고백한다.세상에서 가장 가깝고도 먼 사이, `엄마와 딸`. 세상 모든 엄마는 누군가의 딸이었고, 세상 모든 딸들은 언젠가 누군가의 엄마가 된다. 그러므로 이 책은 엄마와 딸, 엄마이자 딸, 결국 세상 모든 여자들의 이야기다.“엄마처럼 살진 않을 거야!” “딱 너 같은 딸 하나만 낳아 봐라!” 살면서 한번쯤 이런 말을 주고받지 않는 엄마와 딸이 있을까. 서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지만, 기실 누구보다 서로의 마음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관계, 엄마와 딸. 부모 자식 관계를 넘어, 같은 여자로서 모녀는 갈등과 동질감을 거듭하는 미묘한 관계다.신 시인은 엄마와 딸의 관계를 이렇게 말한다.엄마와 딸 사이는 간단한 관계가 아니다. 미워하고 사랑하고, 창피해하고 자랑스러워하고, 아픈 곳을 할퀴고 무자비하게 상처를 주고, 다시 그 상처를 어루만지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며 빌고 미안해하고, 울고불고 통곡도 마다않는다. 눈물이야말로 엄마와 딸 사이에 핏빛으로 흐르는 강물이다. 격렬하게 분노하고 격렬하게 싸우고, 그리고 격렬하게 몸을 다 바쳐 사랑한다. 슬픔의 뼈까지 눈물의 뼈까지 고통의 뼈까지, 천둥도 벼락도 폭풍도 폭우도 다 가슴으로 삭여 내면서 침묵하는 이 세상의 엄마들…. 바로 딸의 행복을 온몸으로 빌고 있는 것이다. 엄마는 딸이며, 그 딸은 다시 엄마가 된다.신 시인은 기쁨이면서 슬픔이고, 아픔인 동시에 희망인 엄마와 딸의 복잡하고 미묘한 관계를 섬세하고 감동적으로, 유쾌하고 진솔하게 그려 낸다.그녀의 글이 여자들의 가슴을 울리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자신의 치부를 다 드러낼 만큼 솔직함으로써 읽는 이로 하여금 무릎을 치게 만드는 것이다. 스스로 여자로서는 조금 똑똑한 척, 잘난 척도 하지만, 엄마로서는 도무지 쥐구멍으로 숨고 싶을 만큼 부끄럽기만 하다며, 엄마로서의 부족함을 반성한다.또한 자신의 교육법과 사랑법이 오류투성이었음을 고백하며, 엄마의 사랑에도 노력이 필요하다고, 깊은 울림이 필요하다고,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엄마와 딸이 서로 함께 고민하고 공부하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3-01-18

대시하라 그러면 이루리라

최근 출간된 `대시하라-단 하나뿐인 인생을 위하여`(문학동네) 저자 에릭 J. 아론슨이 말하는 `대시`의 의미는 태어난 날과 죽은 날을 이어주는 이음선, 즉 인생, 그리고 삶을 멋지게 만들어줄 네 가지 핵심요소인 결단(Determination), 마음가짐(Attitude), 성공(Success), 행복(Happiness)의 알파벳 앞 글자를 따서 만든 법칙을 뜻한다. `대시` 법칙에는 앞으로 나아가는 힘과 우리 삶의 시작과 끝, 그리고 인생의 지혜가 모두 포함된 것이다.`대시` 법칙의 실천자이자 전도자인 그는 이를 풍부한 사례들을 통해 설명한다. 결단은 `시작하는 힘`이다.단지 바라는 결심에서 벗어나 지금 당장 행동하는 것이며 이는 꿈을 이루기 위한 첫걸음이다. 마음가짐은 `자기 신뢰`다.우리는 삶에서 많은 실패를 경험한다. 그럼에도 좌절하지 않고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것은 `할 수 있다`는 믿음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성공은 끊임없이 도전하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의지다.저자는 여러 번의 좌절 끝에 대통령의 꿈을 이룬 링컨을 예를 들어 설명하면서 실패에도 불구하고 계속 정진하는 것이 진정한 성공이라고 정의한다.마지막으로 행복은 삶의 균형을 찾는 것이다. 저자는 성공이 반드시 행복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꼬집는다. 건강, 가족, 우정, 믿음, 직업의 균형을 이뤄야 참 된 행복이 따라온다는 것이다. 또한 매 순간 감사하고 타인을 배려하고 베푸는 것도 행복한 삶을 위한 하나의 방법이다.`대시` 법칙을 통해 인생의 끝에서 새로운 삶을 찾은 저자는 우리 인생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강조한다.그는 ´단지 꿈꾸면 이루어진다´, 이 책을 읽으면 한순간 인생이 달라진다´, ´무조건 열심히 하면 된다´ 등의 메시지를 담은 기존의 자기계발서의 한계를 벗어나 의미 있는 삶을 위한 현실적인 조언을 제시한다. “결단은 당신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알고 그것을 이룰 때까지 멈추지 않아야만 비로소 완성된다”- 결단 중에서“인생을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지 말고 스스로 갈 길을 선택해야 한다” -24페이지“여기 두 장의 10만원짜리 지폐가 있다. 하나는 깨끗한 신권이고 다른 하나는 구겨지고 찢겨져 있다. 하지만 두 장 모두 10만원의 가치가 있다. 두 장의 지폐는 손으로 구기고 발로 밟아도 그 가치가 떨어지지 않는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넘어지고 상처받고 짓밟힌다고 해도 여전히 똑같은 가치를 지니고 있다. 가난이 인간의 가치를 떨어뜨릴 수 없다. 중독이 인간의 가치를 떨어뜨릴 수 없다. 전과가 있거나, 뚱뚱하거나, 이혼을 했거나,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해도 인간의 가치는 그대로다. 너덜거리고 구겨지고 흙이 묻어도 여전히 똑같은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42페이지“ 마음가짐은 당신 삶의 결과를 바꿀 수 있는 조정 능력이다” - 마음가짐 中에서“´완벽한 부모´ ´완벽한 배우자´ ´완벽한 직원´이 될 필요는 없다. 마음의 여유를 가져라”-77페이지“인생의 밑바닥까지 내려가 보면 극적인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가령 마약중독자들은 바닥까지 침몰해 본 후에야 중독에서 벗어날 마음을 갖게 된다. 그제야 비로소 그들은 지금보다 좀 더 나은 삶을 살 자격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어떤 문제로 인해 삶의 끝까지 가본 사람들은 “더 이상 이런 식으로 살 순 없어!”라는 자아의 목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변화를 일으킨다. 모든 것이 마음가짐에 달린 것이다”-74페이지“성공은 넘어진 탄력으로 더 높이 뛰어오르는 것이다”- 성공 中에서““건강하고, 자주 웃고, 많이 사랑하는 사람, 사람들로부터 존경받고 아이들로부터 사랑 받는 사람, 맡은 역할을 다하는 사람, 화초의 품종을 개량하든, 완벽한 시 한 편을 쓰든, 한 사람의 영혼을 구하든, 세상에 선한 흔적을 남기고 가는 사람, 아름다움에 감사하고 그것을 표현하는 사람, 다른 사람들의 좋은 점을 볼 줄 알고 자신의 좋은 점을 나누어주는 사람, 그런 사람이 성공한 사람이다”-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12페이지)“행복은 당신의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꿈을 이루는 과정이다” - 행복 中에서“기억하라. 행복으로 가는 길은 없다. 행복이 바로 길이다. 행복은 성취에 따라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생각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행복해지는 비결은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다.”-206페이지/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3-01-18

고요한 저녁의 노래 자연과 모성의 상상력

1975년부터 작품활동을 시작한 이래 오랫동안 순정한 시선으로 시의 길을 묵묵히 걸어온 김수복 시인의 아홉번째 시집 `외박`(창비)이 출간됐다. 4년 만에 선보이는 이번 시집에는 생을 관조하는 깊이 있는 성찰과 더불어, 덤덤한 듯 보이면서도 꿈틀거리는 박력 있는 어조가 인상적으로 담긴 품격 어린 시편들이 수록돼 있다.김수복 시인의 시에는 자연이 한가득 담겨 있다. 시인은 저녁노을, 너른 하늘과 구름, 숲의 나무들, 날아오르는 새들, 밤을 밝히는 달 등 다양한 풍경들을 생생한 이미지로 시화한다. 그에게 이런 자연의 한 장면들은 그 자체로도 의미있지만 시인 자신의 삶과 인간사 전반을 돌아보게 하는 계기이기도 하다.독특하게도 시인은 `모성`을 끊임없이 의식하고 그것을 시적 사유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자연의 모든 현상조차도 모성의 현상으로 바라보고 그 모성성을 드러”(정호승, 추천사)내는 이 시집에선 그래서 `젖`이라는 표현을 자주 만날 수 있다.곧 저녁이 다가올 것이다/등불을 밝히고/높고 비천한/어둠과/별에게,/목숨을 바쳐/몸속에 집을 짓는/하늘에서/곧 종이 울릴 것이다/새들이 죽어서 날아갈 것이다(`탑` 전문)그의 시에 이렇듯 저녁의 이미지가 강렬하게 그려지는 것 역시 죽음이라는 필연적인 순간의 면모를 밝히고자 하는 시인으로서의 자의식에서 기인한다. 그러나 역시 그것은 다시 `삶`으로 연결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3-01-18

동화책 속 프랑스 여행 떠나요

대구 수성아트피아가 새해특별기획으로 마련한 `동화책 속 프랑스 여행전`이 오는 2월24일까지 수성아트피아 전시실 전관에 마련된다.이번 전시는 프랑스 유명 그림책 작가들의 작업 원화와 세계 주요 언론 잡지에 나오는 일러스트레이션을 `프랑스 여행`이라는 테마 속에서 열린다.프랑스 그림책작가 20명의 작품을 한데 모은 이번 전시는 특히 전시일러스트레이션의 예술적 수준을 소개하고 전공자와 일반 관람객에게 최신 경향을 제시 하고 세계 유명 작가와 기획자들이 진행하는 마스터 클래스를 통해 세계화 시대에 대가들과의 교류와 학습의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전시회에서는 일러스트레이션 창작과정을 보여주고 다양한 이용 사례를 전시해 그림책과 일러스트레이션 창작과정의 이해, 체험 학습, 직업으로서의 이해를 증진 하고자 어린이들과 가족 단위 방문객들이 쉽고 재미있는 전시를 통해 미술관 이용의 경험을 가지게 하고 미술과 창작에 대한 의욕을 고취할 것으로 보인다. 전시장에는 프랑스 국기의 3색인 빨강 파랑 흰색별로 그래픽디자인 회화 및 철학적 주제를 유머러스하게 표현하거나 상상과 모험의 세계를 묘사한 그림들이 선보인다. 투명 유리통 속에 빨간 에펠탑으로 파리를 묘사한 마크 부타방, 시사주간지 `타임` 커버 위로 뭉친 실타래를 등장시킨 세르주 블로크 외에 조엘 졸리베, 나탈리 레테, 마르탱 자리, 줄리앙 마냐니. 플라비아 루톨로, 제라르 로 모나코, 필립 캘렌, 필립 쁘띠 홀레, 델핀 셰드뤼, 플로리 생-발, 마크 부타방, 크리스티앙 볼츠 등이 출품한다.입장료 일반 5천원 , 할인 4천원 (20인 이상 단체), 36개월 미만, 65세 이상 무료입장./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3-01-15

“퇴당(유명천)의 한시로 옛 지역 모습 엿보세요”

▲ 향토사학자 이상준씨유배는 가혹한 형벌이라 부정적인 면도 없지 않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본다면 긍정적인 면이 더 많았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유배가 오히려 선비들에게는 염치와 명분의 상징이었고, 자기완성의 공간이며 자기성찰의 기회이기도 했다.따라서 유배인들이 머물다 간 유배지는 한 선비에게는 말 못할 고통의 장소였겠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문학의 산실이자 더 높은 문화의 보급 장소이기도 했다.포항의 향토사학자 이상준씨가 15일 펴낸 `영일유배문학산책`(삼양문화사)은 포항(구 영일군) 일대에 유배를 온 사람들의 실상과 작품을 비롯해 조선 후기 문신이었던 퇴당 유명천이 남긴 `오천고사 10절`을 소개하고 있다.14일 이씨를 만나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유배문학은 어떤 의미가 있나. ◆유배를 온 이들이 지역에 남긴 문학은 문학성도 빼어날 뿐 아니라 그 속에는 역사적인 사실들, 옛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지혜, 민중들의 애환과 염원들이 담겨져 있다. 이들이 남긴 작품들이 지금에 와서는 고전문학이 되고 역사가 되는 것이다. 특히 숙동 대에 유배를 와서 영일현(옛 포항)과 인연을 맺었던 퇴당 유명천(1633~1755)이 쓴 `오천록`은 17세기 포항 인근의 지역사 연구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자료가 된다.유배지에서 저작된 문학작품은 유배지에서의 생활상과 접맥시켜 연구해야만 그 진면목이 밝혀진다. 그러므로 유배문학 작품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작품이 창작된 현장을 답사하고, 그 지역에 남아있는 유적과 전설을 검토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책이 나오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내가 위원으로 속해있는 포항문화원 부설 향토사연구위원회를 중심으로 포항의 고전과 문화를 발굴해 오고 있다. 지난 2011년 12월에는 김윤규 한동대 교수가 죽장지역의 시가를 연구한 `죽장입암시가 산책`을 펴낸 바 있다. 이번에 펴낸 `영일유배문학 산책`은 그 두 번째인 것이다. 앞으로도 지역의 고전과 문화를 발굴하는 포항문화원의 사업은 해마다 계속될 것이다.-유명천은 어떤 인물인가. ◆유명천은 공조·예조판서, 사헌부대사헌, 호조판서 등을 역임했고 1693년에는 조선시대 최상위 관계(官階)인 정1품 보국숭록대부에 올랐던 인물이다. 그는 1694년 갑술옥사 때 남인이 실각함에 따라 처음에는 강진에 유배됐다가 그해 6월 영일현으로 이배됐다. 그때부터 1699년 2월까지 약 5년간 영일현에서 생활했다. 그가 남긴 시집 중 `오천록`은 5년간 영일에 머물면서 창작한 작품들로 구성돼 있기 때문에 우리가 관심을 갖는 것이다. 특히 `오천록`에 실린 `오천고사십절(烏川故事十絶)`은 17세기까지 존재하던 영일현의 빼어난 10가지 정경을 묘사해 둔 것이기 때문에 지역사 연구에는 더없이 중요하다. -책은 어떻게 구성돼 있나. ◆이 책의 대부분은 퇴당이 영일 유배지에서 읊은 한시들을 바탕으로 현재까지도 영일지역에 남아 있는 유적과 전설들을 답사하면서 쓴 글이다.우선 영일(구 영일군) 일대에 유배를 온 사람들의 실상과 작품들은 간략히 소개하고 지금부터 약 300년 전에 퇴당이 남긴 `오천고사 10절`을 중점적으로 소개한다.그의 글로써 17세기 영일현의 실상을 심도있게 살펴보고 그 장소를 직접 답사해 현재의 형상과 비교를 했다. 그 속에는 역사적인 사실들, 옛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지혜, 민중들의 애환과 염원들이 담겨져 있음을 확인했다. 나아가 권력의 뒤안길에서 쓰인 그의 문학의 한 끝도 이해해 보려고 했다.퇴당이 남긴 글 중에는 금위영과 어영청에서 사용하던 화살이 포항 죽도(竹島)에서 생산됐다는 역사적 사실이 담겨져 있다. 궁중의 진상품으로 영일만에서 첫물로 잡힌 청어가 사용됐다는 것. 특히 오천 갈평리 여석굴에서 나는 숫돌은 전국에서 가장 빼어나서 진상품으로 상납됐다는 사실도 적혀있다.그는 또 조정에 바칠 공물을 채굴하느라 영일현 사람들이 겪는 참상을 묘사하기도 했다. 천길 깊은 곳까지 굴을 파고 들어가야 양질의 여석이 채취되는 실정이었기에 매몰사고가 빈발해 연달아 장정들이 죽어나가고 있는 현실을 구중궁궐에 계신 왕이 알았으면 하는 간절한 소망을 시에 담기도 했다. -편찬에 따른 기대 효과가 있다면. ◆유구한 세월 속에서 어느 한 시점의 손길과 숨결을 느껴보는 것은 참으로 의미가 있다. 그것은 과거와 교감하는 일이며, 나아가 과거를 살았던 사람들과 교감하는 일이다. 그들이 없었던들 오늘의 우리들이 어찌 있겠는가. 이 책을 발간한 의의는 바로 여기에 있다 하겠다.유배는 단순한 형벌이 아니었기에 유배인들이 머물다 떠난 자리에는 역사가 있고 문화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드라마틱한 스토리도 남아있는 것이다. 때문에 그들이 유배지에 남기고 간 음영들은 때로는 인생의 격랑을 헤치고 나아가려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감동과 교훈을 줄 수가 있다.유배객들이 남긴 유배문학은 조선 시대의 시대적·정치적 상황으로 말미암아 유배자로 전락한 사람들이 유배지에서 겪은 체험과 정신적 충격을 문학화한 작품이다. 이런 문학들은 유배지에서 보고, 듣고, 느끼고, 겪은 것을 주제로 한 기행문학적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에 당시의 실상과 생활사를 연구하는 데는 더없이 좋은 사료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이 지역에는 정치적 소용돌이에 치인 많은 유배객들이 저마다 기구한 사연을 안은 채 살다가 갔다. 그중에는 우암 송시열과 다산 정약용 등 이름만 대도 금방 알 수 있는 조선시대 걸출한 인물들도 많았다. 어떤 이는 유배에서 풀려나지 못하고 이곳에서 죽은 고관대작들도 있었다. 이들이 지역에 남긴 문학은 문학성도 빼어날 뿐 아니라 그 속에는 역사적인 사실들, 옛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지혜, 민중들의 애환과 염원들이 담겨있었다.특히 퇴당의 글로 인해 우리는 17세기의 영일현의 모습과 그 시절 사람들의 삶의 모습, 가치관 등을 엿볼 수 있었다. 그 시대 민중들의 고통과 애환도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나아가 그의 작품은 우리들에게 무한한 상상력과 창의력도 가져다 줬다.퇴당이 영일을 떠난 316년 후인 지난 2010년 포항시는 지역을 대표하는 관광명소로 `포항 12경`을 선정했다.영일의 유배문학은 포항이 `역사·문화의 도시`로 거듭나는데 꼭 필요한 또 다른 자산이다. 그래서 지속적인 연구와 특별한 관심이 요구되는 것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3-01-15

아버지 없이 자란 세대 살아가는 방법 그려

▲ 작가 이영훈매번 한국 장편소설의 신선한 돌풍을 예감케 한 문학동네소설상. 열여덟번째를 맞이한 올해 또 한 명의 재능 있고 개성 충만한 신예작가를 내보낸다. 수상자는 바로 이영훈이다. 그는 이미 2008년 계간 `문학동네`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한 뒤 `모두가 소녀시대를 좋아해`로 제3회 젊은작가상을 수상, 문단 안팎의 주목을 받던 기대주였다. 그런 그가 강렬한 여운과 신선한 박력을 선보인 장편소설 `체인지킹의 후예`(문학동네)로 제18회 문학동네소설상을 수상했다.수상작 이영훈의 `체인지킹의 후예`는 아버지 없이 자란 세대가 살아갈 방법을 가까운 사람들을 통해 굼뜨게 하나씩 배워나가며 저마다의 상처를 극복하는 성장기라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어울릴 법하지 않은 이야기들을 엮어내는 구성력과 `특촬물`이라는 생소한 제재를 통해 현 젊은 세대의 `지금-여기`의 풍경을 강렬한 여운과 정감 어린 이영훈만의 필체로 어루만지고 있다.소설은 보험회사 직원인 `나`가 암 투병중인 연상의 여인을 만나 그녀의 아들 `샘`과의 대안가족을 만들고자 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갑작스레 시작된 연애와 결혼, 느닷없이 가장이 되고 덜컥 아버지가 돼버린 주인공 `나`에게 의붓아들 `샘`과 가족이 되는 일은 낯설고 이질적인 사건임에 분명하다. 게다가 자폐 증상을 보이는 `샘`과의 소통되지 못함은 지금껏 `나`가 경험해보지 못한 사태 중 하나.자신에게 말을 하지도, 묻는 말에 대답하지도 않는 의붓아들 `샘`에게 다가갈 방법을 스스로 깨우쳐야만 하는 `나`에게 가장 큰 걸림돌은 그 누구도 이 문제를 뚫고 나갈 방법을 가르쳐주지 않는 데에 있다. 아니 좀더 살펴보면 `나`에게 있어 한 번도 배워보지 못한, 겪어보지 못한 `아버지 되기`가 실은 더 큰 문제다.물론 이러한 것은 아버지의 부재 때문이기도 하나, 큰 틀에서 보자면 삶에서 아버지가 아닌 다양한 문화콘텐츠에 의해 영향을 받아 성장해온 것이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예컨대, 우리 젊은 세대는 기존의 가족 개념이 바뀐 채 가족구성원의 역할이 모호해진 시대를 살아내고 있다.가족은 다분히 분열됐고 미세하게 균열돼 있다. 가족 내에서의 일방향적 소통 방식이 기성세대에서의 양태였다면, 현 시점에서의 젊은 세대가 요구하는 가족 내에서의 소통 방식은 다원적이고 개인윤리에 타당한 방법을 간구한다는 것.소설은 바로 그러한 지점을 포착해 `샘`과 `나`가 소통을 겪어내는 접점에서 이야기를 확산하고 펼쳐간다.그런데 무게중심의 추가 `대안가족`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젊은 세대의 유사`아버지 되기`의 무기력한 풍경을 묘파해내는 것으로 서사가 기울어지려는 찰나, 소설은 돌연 몸을 바꾸는데…/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3-01-11

한반도 동녘서 쏘아 올린 열네번째 詩集

지역문단을 대표하는 시동인 푸른시(회장 김현욱)는 최근 열네 번째 동인지 `푸른시 2012 제14호`(도서출판 아르코)를 출간했다. 시동인 푸른시는 지난 1999년 포항문인협회에서 활동하는 젊은 시인 11명으로 결성돼 지역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활발한 창작 활동으로 이미 문단에서 널리 알려진 동인이다.현재 활동회원은 차영호, 김만수, 하재영, 손창기, 김현욱, 김말화, 이주형, 김동희, 남정화, 김선옥 등 10명이다.이들은 매월 1회 합평을 통해 창작욕을 다지는 한편 매년 문단의 중견시인을 초청해 시인과 독자가 함께 어울리는 `푸른시인학교`를 열어 왔다.이번에 출간된 `푸른시` 제14호에서는 `특집시인`으로 지난해 푸른시인학교 초청시인이었던 이정록 시인의 대표 시와 산문을, `지역 초대 시인`에는 서울·경기 지역에서 `글발`이라는 시인 축구단으로 활동하는 고영민, 김왕노, 김요일, 박지웅, 이위발, 조현석 시인의 시를 실었다.`권두평론`으로 박현수 교수(경북대 국문과, 시인)의 `미적 자율성의 곤경-항아리가 미술품이 되기까지`를 실었는데 문학과 정치의 담론에서 대부분의 생산자가 문학 쪽에서 대부분의 논의를 동어 반복하는 현상을 예리하게 꼬집은 글이다. 동인 작품으로는 신작시 53편과 김현정 교수(세명대 교양학부, 문학평론가)의 해설 `푸름의 변주-푸른시 14호에 부쳐`를 실었다.김현욱 푸른시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한반도 동녘에서 매년 쏘아 올리는 한 줄기 `푸른시`의 뜨거운 `파랑`이 시와 세상의 아침에 밑거름이 되었으면 좋겠다”며 “앞으로도 15호, 16호, 17호가 계속 나와 시동인의 새로운 역사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밝혔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3-01-11

사진으로 포착한 사라져가는 것의 아름다움…

`아버지의 집`(반비) 지은이 권산은 6년 전 전라남도 구례로 귀촌한 디자이너다. 지리산닷컴(www.jirisan.com)이라는 사이트를 운영하면서 그곳 풍경과 사람들의 사진을 찍어 짧은 글과 함께 매일 아침 도시 사람들에게 전한다. 어느 날 낡은 것을 추종하지는 않지만 선호하는 한 방송사 피디로부터 다큐멘터리를 위해 고택을 촬영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경상북도 봉화로 여행을 떠난다.첫 번째 여행에서는 대규모 공사를 앞둔 300년 된 집과 그 집에 살고 있는 83세 권헌조 옹의 일상을 촬영한다. 성묘를 하고 집을 둘러보고 글을 쓰거나 누워 있는 노인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두 번째 여행에서는 공사에 들어간 집과, 병원에 머물고 계신 노인을 찍는다. 봉화 장(場) 풍경과 아버지 대신 집을 지키고 있는 아들의 모습도 카메라에 담는다. 권헌조 옹의 갑작스런 부음을 듣고 문상을 간 것이 세 번째 여행이다.노인의 죽음으로 어떤 가치 하나가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고 느낀다. 하지만 세상은 그런 것에 별로 관심이 없다. 한탄하는 지은이에게 장례를 도우러 온 일꾼은 “못난 나무가 마을을 지킨다”는 말을 들려준다.네 번째 여행은 권헌조 옹의 뒤를 이어 송석헌에 머물기로 했던 아들 권동재 선생이 돌아가셨다는 뜻밖의 소식을 듣고 난 후 이뤄진다.마지막 여행에서 만난 집은 공사를 모두 마치고 `이제 살림을 시작하면 된다`는 단아한 시그널을 보내는 듯하다.네 번의 여행을 사진과 글로 담아낸 이 책은 `착하다`는 말의 의미에 대해, 낡음이 어떻게 새로움보다 진보적일 수 있는지에 대해 성찰하게 해준다.안동 권씨 가문의 종손이자 8대째 살고 있는 고택 송석헌의 관리자. 효자. 온화한 아버지이자 남편. 재주가 많은 사람. 학문이 깊은 유학자. 장례식에 모인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더할 나위 없이 `착한` 사람. 고 권헌조 노인을 설명하기 위한 말들이지만 어느 것도 권 옹을 충분히 이해시키지 못한다. 일견 생소해 보이는 여러 요소들의 합.그것들이 이 권헌조라는 노인의 삶 속에서 하나로 온전히 통합돼 `아버지의 삶`을 이룬다. 그리고 이 사진집은 그 삶의 기록이다.1700년대에 지어진 고택 송석헌은 그 자리에서 8대째 이어지는 `권씨 집안`의 삶을 지켜봐왔다. 1991년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95호로 지정되고 2007년에 국가 지정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된 이 한옥은 “영남 지방 사대부 저택의 면모를 고루 갖추고 있는 가옥”이다. 이 고택이 2010년 정부 지원으로 전면 보수에 들어가게 돼 마지막으로 원형을 기록하기 위한 다큐멘터리가 기획된다. 그리고 지은이는 그 다큐멘터리에 들어갈 스틸사진을 찍기 위해 전라남도 구례에서 경상북도 봉화로, 짧고도 긴 여행을 시작한다.집이 지어질 당시 주인이 벼슬을 하고 있지 않아 주고를 낮게 지었지만, 경사면에 지어져 앞쪽 기단을 높인 탓에 집은 낯설 정도로 높아 보인다. “전성기의 높이는 힘 있어 보이지만, 쇠락기의 높이는 불안정해 보인다. 그 불안정성은 관찰자의 마음에 동요를 일으킨다. 송석헌에서 나는 불안했다. 그 불안, 그 불안정이 송석헌이라는 낡은 집을 촬영하게 만드는 힘이었다.”쉽게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집으로 서서히 진입하며 지은이의 카메라는 이 한옥이 곳곳에 숨겨놓은 `사이`들의 아름다움을 포착한다. 그리고 집안 곳곳에 먼지처럼 내려앉은, 이곳에 머물다 떠난 이들의 기억들도 포착한다.노인과 집은 하나였다. 노인의 뒤를 이어 누군가 이 집을 계속 `살림`해줄 수 있을까. 집이 `사람`을, `사랑`을 필요로 한다고 느낀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3-01-11

딸 혼수비 마련 위해 젊음 판 귀향인 이야기

소설가이자, 시인, 사회 평론가로 다양한 글쓰기를 해온 복거일(66)의 열한번째 장편소설 `내 몸 앞의 삶`(문학과지성사)이 출간됐다. 이 소설은 북한에서 반중 활동 혐의로 긴 시간 동안 강제 노역을 하다 풀려난 윤세인이라는 인물이 딸의 결혼식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거액의 대가를 받고 자신의 젊은 몸을 늙은 몸과 바꿔 노인으로 살아가게 되는 과정을 담는 지금으로부터 60년 이후의 조금은 먼 미래 이야기다.작가는 생명 연장과 노화 방지 기술이 발전된 극단의 미래를 상정하고 이에 따라 발생할 수 있을 문제들을 제시한다.젊음을 돈으로 사고팔게 된다면 어떨까? 긴 노년을 맞게 된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게 될 것인가? 그들의 욕망은 어떠한 것들이고 어떻게 해소될 수 있을 것인가? 자신의 욕망을 이해하고 운명을 수용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등의 의문이 소설의 줄기를 따라 솟아오른다.복거일은 사회와 문명의 발전에 따른 문학의 진화와 확산 가능성, 특히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른 소설의 시공간 확대에 주목해왔다.이 소설은 그가 천착해온 그 가능성의 사회를 펼쳐내 보이며 인류가 처음 맞닥뜨리게 될 질문들에 대해 생각해보길 요구한다. 속도감 있는 전개와 인물들의 일관된 면모가 돋보인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3-01-04

파키스탄 청년이 느낀 9·11테러

`주저하는 근본주의자`(민음사)는 파키스탄 청년이 느낀 9·11테러를 소재로 쓴 소설이다.이 소설은 발표되자마자 저명한 학자, 작가, 기자들의 엄청난 찬사를 받았으며 전 세계에서 100만 권이 넘게 팔린 데다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올렸을 뿐만 아니라 `가디언` 선정 `지난 10년간 최고의 작품`으로 뽑혔다.또한 다양한 상의 후보(부커 상, 제임스테이트 블랙 문학상, 연방 작가상)에 올랐으며 애니스필드울프 문학상, 아시아아메리칸 문학상, 앰배서더 문학상, 사우스뱅크 쇼 문학상, 이탈리아 문학상 등 여러 상을 휩쓸며 30개국 이상의 언어로 번역, 출간됐다.저자 모신 하미드는 찬게즈라는 한 파키스탄 청년이 익명의 미국인에게 일방적으로 이야기하는 형식을 통해, 그 상대 미국인을, 독자들을 `청중`으로 만든다.하미드는 세계의 독자들을 향해 9·11을 비롯한 여러 역사적 사건과 관련해 미국을 비롯한 서구의 이야기는 실컷 들어 왔으니, 이제는 제3세계의 입으로 그 이야기를 들어 볼 때가 됐다고, 서구의 목소리가 늘 제3세계의 목소리를 압도해 왔지만, 설혹 이기지는 못하더라도 그들과는 다른 시각과 생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다른 목소리로 말을 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소설 `주저하는 근본주의자`의 특별한 점은 자칫 무거워질 수도 있었을 민감한 정치 주제를 문학적으로 훌륭하게 풀어냈다는 점이다.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명료하고 날카롭게, 하지만 결코 그 목소리가 과격해지거나 공감을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담담하고 나직하게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할 뿐이다.거기에 큰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찬게즈의 사랑 이야기다.모신 하미드는 정치적 주제와 사랑 이야기를 하나로 묶어 자연스럽게 녹여 냈다. 프린스턴에 진학해 이제 막 새로운 삶에 대한 꿈에 부푼 찬게즈에게 있어 미국 여성 에리카는 그 꿈을 상징하는 존재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그런데 찬게즈와 에리카의 사랑은 순탄하지 않다. 에리카에게는 잊지 못하는 첫사랑이 있고, 그 첫사랑은 에리카를 고립 속으로 몰고 간다.쉽사리 마음을 열지 못하는 연인에게 9·11은 위기로 다가온다. 위태롭고도 은밀한 사랑 이야기는 때로는 안타깝게, 때로는 아찔하게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러브 스토리에 더해 이 소설은 또 하나 `스릴러`의 외피를 입었다. 어둑어둑해질 무렵 라호르의 옛 시가지, 한 파키스탄 청년과 미국인 남자가 식당에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하지만 이 미국인이 누구인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그 누구도 알 수 없으며, 그의 목소리는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웨이터와 지나가는 사람들을 지나치게 경계하는 태도, 안주머니 속에서 불룩 솟은, 마치 권총과도 흡사한 실루엣과 함께 하늘을 날아다니는 “스키피”한 박쥐 무리까지, 어딘지 음울하고 아슬아슬한 분위기가 작품 전반을 휘감는데…./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3-01-04

현실의 냉혹함… 그래도 희망은 있다

쇄빙의 아침이다오늘 하루도 얼음장을 깨고 쇄빙의 시간 속으로 나간다갈비뼈 있는 데서 피가 흐른다쇄빙의 칼날 밑에 오늘도 네 사람의 학생과한 사람의 교수가 자살했다면류관 같은 얼음칼이 쇄골에 쿡쿡 박힌다속이 차디찬 사과의 반쪽이 떨어져 있다차바퀴가 하얀 사과의 속살을 뭉개고 지나간다반쪽 가슴의 사과는 아프다조간신문이 내 골 속에 떨어진다돈 돈 돈…. 하고 우르르 몰려간다나는 시인이다연탄재를 버리려고연탄집게를 들고 영동대로에 서 있다버릴 곳이 없다얼어붙은 입이 자꾸 구겨지며 피가 터진다-`서울의 우울 3` 부분시인이자 소설가로, 또한 대학에서 국문학을 가르치는 교수로 활동하는 김승희(60)의 아홉번째 시집 `희망이 외롭다`(문학동네)가 출간됐다. 전작 `냄비는 둥둥`이후 6년 만에 펴낸 시집이라 반가움이 큰 이번 시집은 시단에 나온 지 꼬박 40년을 채워가는 시점에 출간된 시집이라는 점에서도 그 의미가 남다르다.사변적이거나 페미니즘적인 시가 아닌 현실과 문명에 대한 강렬한 비판을 담은 시로 동시대 여성 시인들과 구별되며 현대시사에 확고한 자신의 자리를 마련한 시인 김승희가 아홉번째로 펴내는 화사하고 아름다운 핑크색 시집에 담긴 키워드는 다름 아닌 `희망`이다.그러나 그 단어가 품고 있는 절실한 바람과 달리 작금의 현실에서 핑크빛 미래를 꿈꾸기는 쉽지가 않다. 그리하여 그 아름다움에도 불구하고, `희망이 외롭다`.`이번 시집에는 연작시들이 많아 시선을 끈다. 그중에서도 2부의 주를 이루고 있는 `서울의 우울` 연작은 날카로운 현실 분석과 그것을 바라보는 시인의 연민 가득한 시선이 돋보이는 작품들이다.시인 김승희의 눈과 가슴에 맺히는 사건은 무엇보다 죽음이다.잘못도 없이 죽임을 당하거나, 마찬가지로 죽음으로 내몰린, 하여 자살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그러나 어느새 아무 일 없는 듯 묻혀버린 장자연에 대해 쓸 때에는 “황폐한 도성에서 죽어가는 어린 것들을 보며 창자가 찢어지고 피가 끓는 극한 고통을 느꼈던 예레미야의 탄식이 이 시집에 황혼처럼 내려앉아 있”(허윤진)는 듯하다.사정이 이러할진대, 우리는 어디에서 희망을 찾아야 할까. 연탄집게를 든 초라한 모습으로 대로에서 할 일을, 갈 곳을 잃고 만 시인의 등에 대고 살며시 묻는다.시인의 말에서 시인은 “폐허에서 쓰러지기 직전에 가끔은 말의 에피파니(epiphany)를 꿈꾸기도 했다. 신은 시인에게 언어와 언어의 꿈을 주었기에. 결국은 말의 에피파니가 부서진 세계와 영혼의 병을 구원하는 것일까? 거기에 그리움이 있었고, 희망의 빈혈로 너무 아플 때면 우리말을 부여잡고 우리말에 기대어 울어보기도 했다”고 고백하고 있다.얼어붙고 어두운 세상에서 불안과 죽음들이 빚어놓은 비극을 목격한 시인이 할 수 있는 것은 언어에 기대어 울어보는 일. 그렇게 `희망`을 조심스럽게 꺼내보는 일을 테다.1부를 수놓고 있는 `~라는 말`로 표현된 제목의 시들에 주목하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시인이 담아내는 `하물며` `부디` `아직` `이미` `어쨌든` `비로소` `아랑곳없이` `저기요` `아~` 등의 말은 문장에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지만 적절한 활기를 부여하며 의미를 풍성하게 하기 위한 부사와 감탄사이다.이번 시집의 해설은 맡은 허윤진은 “명사와 형용사보다는 동사와 부사가 언어의 정취를 결정하는 한국어의 세계에서 부사는 동사를 단장하는 마지막 손길 같은 것”이라고 했다.“얼음처럼 차가운 현실의 냉혹함. 그 속에서 희망을 찾으려는 시인의 절박함이 이끌어낸 언어들. 그리하여 간신히, 희망을 희망해보는 오늘. “오히려 그 희망 때문에/ 무섭도록 더 외로운 순간들이 있다”. 하지만 시인은 “도망치고 싶고 그만두고 싶어도/ 이유 없이 나누어주는 저 찬란한 햇빛, 아까워/ 물에 피가 번지듯…. / 희망과 나,/ 희망은 종신형이다”라고 말한다. 이렇게, 어쩔 수 없이, “희망이 외롭다”(`희망이 외롭다 1`)./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3-01-04

밥벌이의 고단함과 일상의 허무함 일깨워

김기택 시인의 여섯번째 시집 `갈라진다 갈라진다`(문학과 지성사)가 출간됐다. 김기택은 현실에서 효용이 없어 버려지는 것들, 도시의 리듬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들, 목적과 수단에서 일탈해 있는 생뚱맞은 것들을 시적 탐구 대상으로 삼는다.쉽게 지나칠 수 있는 대상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어떤 감정이입도 없이 그저 열심히 옮겨놓는다. 그러나 그의 시적 진술은 정지된 묘사가 아니라 꿈틀꿈틀 살아 있는 시어들로 진동한다.원숙미에 짓눌려 차분해지기보다는, 어떤 통찰로 쉽게 재단하기보다는 대상을 포착해 그저 살아 있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김기택 시가 항상 새로울 수 있는 이유다. 그렇게 포착한 비정형, 비효율, 비경제적인 대상들은 격정적인 울분이나 서정적인 감상에 갇혀 있지 않는다.죽어 가는, 죽어 있는 세상을 비판하거나 애도하지 않는 단단하고 건조한 응시는 현실 안의 희망과 가능성을 포기한 듯하지만 그것은 해답을 주는 대신 질문만을 지속함으로써 대상을 움직이게 하는 동력을 제공한다.어떤 감상적인 자기연민에도 빠지지 않고 우리의 삶과 현실의 문제를 직시하면서 자신만의 독특한 어법으로 새로운 시적 언어를 탐구하는 김기택의 시적 태도가 돋보인다.덧붙여, 시집 첫 장에서 시인은 `시 쓰는 일 말고는 달리 취미도 재주도 없는 자신의 뛰어난 무능과 활발한 지루함`을 탓하면서 그저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인 자신의 삶의 태도를 고백한다. 시집을 받아든 이들은 이러한 `있음`의 방식을 통해 밥벌이의 고단함과 일상의 허무함에 의미를 새기고 가치를 느끼게 될 것이다. 통속적이지 않으면서도 다중을 위로하는 김기택 시만의 강인함 속으로 독자들을 초대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12-28

계간 `스토리텔링 아시아` 출간

계간 문예지 `아시아` 겨울호인 `스토리텔링 아시아 시리즈`(아시아)는 우리가 잘 아는 도시지만 잘 알지 못하는 도시의 이야기를 `이야기 지도`로 펼쳐 보인다. 2012년 `스토리텔링 아시아`는 하노이, 상하이, 삿포로를 먼저 여행했고 올해 마지막으로 인도 델리를 찾아간다.28개 주, 7개 연방직할령이 있고, 24개의 공용어를 사용하는 인도는 하나의 문화라고 말하기 어렵다. 그중에서도 델리는 여러 가지 문화와 언어가 한데 어우러지면서도 독특한 분위기를 가진 도시이다. 쿠시완트 싱이 소설 `델리`에서 말한 것처럼 이번 델리편을 읽다보면 델리가 가진 묘한 매력에 취할지 모른다.십 수 년 인도를 드나들며 다양한 층위의 여행을 하며 진짜 여행은 인도에만 있다고 여긴 여행가이자 사진가인 이희인 작가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더 추가하고 싶어 한다. 바로 진짜 소설들은 인도에만 있다고. 인도 소설은 세계 어느 나라의 소설보다 약동하는 생명력을 자랑한다고 한다. 2008년 `화이트 타이거`로 부커상을 수상한 아라빈드 아디가 `적절한 균형` `그토록 먼 여행`의 로힌턴 미스트리,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비카스 스와루프, `축복받은 집`의 줌파 라히리, `작은 것들의 신`의 아룬다티 로이, `아편의 바다`의 아미타브 고시 그리고 `델리`, 인도의 국민작가로 불리는 쿠시완트 싱의 작품 등이 있다. 이번 스토리텔링 아시아 델리편에서도 M. 무쿤단과 폴 자카리야의 단편소설을 통해 인도 소설의 풍미를 맛볼 수 있다.`라마야나`는 고전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재미있다. 신과 인간과 동물이 어우러진 판타지같은 배경에 왕자 `라마`의 모험과 사랑 이야기뿐만 아니라 지도자의 자격, `도덕`에 관한 물음을 다시 속 깊은 이야기다. 이런 이야기에 영화평론가 이안이 다시 물음을 던진다. 바로 여성의 눈으로 `라마야나`를 다시 읽어보는 것이다. 영화인 이안의 글 `영화 속의 라마야나`는 디파 메타 감독의 `파이어`와 니나 페일리 감독의 `블루스를 부르는 시타`를 고찰한 글이다.영화 `파이어`가 고국 인도의 여성을 여전히 얽매는 관습 때문에 여성들이 어떻게 고통 받고 저항하는가를 짚어보는 영화라면 `블루스를 부르는 시타`는 그 관습이 어디서 어떻게 비롯됐으며, 그런 고통을 이겨내는 것이 인도 바깥 여성에게 어떤 공감과 위안을 주는가를 살피는 애니메이션이다.`Dilli dur ast`(델리는 멀다)라는 말처럼 델리는 인도의 민중들에게도 또 여행자들에게도 천상만큼 먼 도시이다. 그래서 델리편 이야기 지도는 여행자의 시선으로 서장을 연다. 이희인 작가의 `인도를 여행하는 독서 여행자를 위한 안내서`는 인도에 매혹된 여행자의 인도 현대 소설에 대한 단상들을 담고 있다.`이야기 지도 4`는 인도가 가진 고민에 대한 이야기다. 말라얄람 모더니즘 문학의 선구자 M. 무쿤단의 단편소설 `운전사`는 평생 남의 운전사로 일하다 존재론적 각성에 이르러 시인이 되고자 하는 인물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폴 자카리야의 `라다. 오직 라다`는 앞서 말한 무쿤단에 대한 소설적 오마주를 숨기지 않는 실험적인 작품이다.마카란드 파란자페의 논문 `인도 영어, 인도 토착어`는 공용어만도 열네 개에 이르며 보조 공용어로 영어를 사용하는 다언어 사회인 인도에서 문학 텍스트의 생산과 번역 문제를 탐구한 글이다. 닐락시 보르고하인의 단편 `현지인`은 소수 언어인 아삼어 사용자인 작가의 곤경을 자전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언어 문제에 대한 비평과 소설이 서로 잘 조응하고 있다.`또 다른 이야기`에서는 국내 발표된 소설 중에서 우수한 단편을 골라 소개하고 있다. 이번호에 소개할 단편은 박형서 작가의 `아르판`이다.태국과 미얀마 국경의 소수 언어 사용자를 인물로 끌어들여 글쓰기에 대한 고뇌를 야심차게 밀어 붙인 단편이다. 아울러 이영광 시인의 두 편의 시는 겨울의 길목에서 짙은 서정을 입혀주고 있다. 그리고 현재 델리에 체류 중인 고명철 평론가가 보내온 산문은 인도의 정치·사회적 갈등을 조망한 글로 현장 보고서로서 손색이 없다. 김정남 평론가가 쓴 로힌턴 미스트리 장편소설 `그토록 먼 여행` 리뷰도 일독을 권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12-28

한 사람이 바꿔놓은 행복한 가족 이야기

“초등학교 6학년, 아직 어린 나이에 민석이는 엄마를 잃습니다. 몸은 작고 가벼웠지만, 포장마차를 하면서 몸이 불편한 할아버지를 정성껏 모셨던 엄마였습니다. 민석이는 엄마가 큰고모의 모진 말 폭탄과 아빠의 무심함에 돌아가셨다고 생각합니다. 엄마가 돌아가시자 공부 잘하는 사촌 정미가 있는 학교도 가기 싫고, 집안 살림을 잡고 흔드는 큰고모가 있는 집도 싫습니다. 그래도 이제 할아버지를 돌볼 수 있는 사람은 이제 민석이뿐입니다. 오로지 할아버지 때문에 버티고 있던 민석이 앞에 몽골에서 온 `새엄마`가 나타납니다. 새엄마는 항상 웃는 얼굴입니다. 하지만 민석이에겐 `입 큰 괴물`로만 보입니다. 새엄마 때문에 더 속상하고 집이 불편하다고 느꼈는데, 언젠가부터 새엄마가 궁금하고 의지가 됩니다. 특히 전학을 하는 날에는 새엄마가 옆에 있어 주어서 조금은 든든합니다. ”중진 동화작가 김일광씨가 최근 다문화가정을 소재로 한 창작장편동화 `엄마라서 행복해`((주)중앙출판사) 를 출간했다. `엄마라서 행복해`속 가족은 단순히 다문화 가정이 꾸려지는 모습만 보이는 것이 아니다. 어린 소년이 혼자 감당하기 힘들었던 현실 속에서 자신을 위해 주고 지켜 주는 `엄마`라는 존재에 대해 다시금 의존하며 커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최근 아동문학이 아이들의 기호에 맞춰 가벼워지고 있는 반면 김씨의 이번 동화는 한국 아동문학을 진중한 서사와 주제로 지키고 있는 아동문학의 버팀목이 되는 주요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김일광씨는 “최근의 동화작품들이 다문화 여성들이 한국으로 시집와서 고생하는 이야기들이 많은데 `엄마라서 행복해`는 결혼이주여성을 통해 흩어진 우리사회를 꾸려나가는 훈훈한 이야기”라고 소개했다.포항 출신인 김일광씨는 30년 가까이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으며 1984년 창주문학상, 198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동화를 쓰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작품이 실리기도 했으며, 대표작 `귀신고래`는 `포항시의 One Book One City`와 2008 창비어린이 `올해의 어린이 문학`에도 선정됐다. 그동안 쓴 책으로는 `물새처럼` `말더듬이 원식이` `아버지의 바다` 등이 있다./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2-12-28

조선후기 학자·정치인 이형상을 통해 본 지도자가 가져야할 덕목과 자세

이정옥 전 위덕대 교수사진가 조선 후기의 문신인 병와 이형상의 인문학적 성찰을 조명한 `백성은 물, 임금은 배`를 펴냈다. 이 전 교수는 이형상(효종 4년~영조 9년)은 백성들의 편에 서서 당화에 휩쓸린 조선조 후기 관료사회의 모순들을 혁신하려고 노력한 학자임과 동시에 청렴한 `정치인`이었다고 소개하고 있다.병와는 전 생애를 통해 총 142종 326책이라는 방대한 분량의 저술을 남겼다. 목민관으로서 경험과 성리학적 사유는 새로운 실학의 불을 당기는 가교역할을 해낸 것이다. 그의 생애 경험이 고스란히 방대한 저술로 남아 그의 저술 가운데 대표적인 `둔서록(遯筮錄)`, `악학편고(樂學便考)`, `강도지(江都志)`, `남환박물지(南宦博物誌)` 등은 국가 보물(제 256호 1~10)로 지정됐다.한 개인이 지켜내야 할 정직하고 깨끗한 숭고한 삶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를, 또 한 개인의 삶이 얼마나 고결해야 하는지를 알리기 위해 편찬한 이 책에는 300년 전 병와가 이뤄낸 인문학적 성찰 또한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이 전 교수는 “시대는 변했지만, 지도자가 가져야 할 덕목과 자세는 바뀌지 않는다. 그것이 300년 전, 백성을 사랑하고 녹슨 관료사회를 개혁하려 한 병와의 가르침을, 현 사회를 살아가고 이끌어나가는 사람들이 주목하고 받아들여야할 이유”라고 전했다.“대저 사람의 세상이란 하나의 큰물이고, 백성의 마음은 하나의 큰 바람이다. 성난 물결이 해(임금을 상징)를 향해 쏟아지고 급한 여울이 산을 밀치며, 무너져 내린 구름과 자욱한 안개가 바다를 가리고 하늘을 막아 천오(天吳, 북두의 중심별)가 잠깐 보였다가 금방 숨어 암초가 이미 지났는데 다시 부딪치게 되는 것이 바로 험악하다는 것이다. 막연하고 어두운 속에 감추어져 있다가 갑작스레 거울같은 평면의 물결을 격렬하게 뿜어대어 하늘에 닿을 형세를 이루어서 돛대가 부러지고 삿대가 망그러져서 방황하고 정신이 없어 지척의 사이를 알 수가 없고 담이 떨어지고 정신이 나가는 것이 이른바 무섭다는 것이다.”-본문 `백성은 물, 임금은 배`편 중에서이 전 교수는 “경제가 어렵고, 민심이 동요되고, 정치인들, 소위 윗사람 들만 풍족하고 편안한 나라를 바라는 국민들은 없을 것이다. 이 책 속에는 이 시대의 정치인들이 자신들을 뜻하는 배가 뒤집히지 않도록 하기 위해, 자신들을 나아가게 해줄 넉넉하고 잔잔하고 넓은 물, 바로 국민을 생각할 때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밝혔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12-21

현실에 길들여진 40대 중년의 삶 노래

1989년 `민중시`를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한 김주대 시인의 다섯번째 시집 `그리움의 넓이`(창비)가 출간됐다. 80년대 민중민족문학 진영의 촉망받는 젊은 시인이던 그는 첫 시집 `도화동 사십계단`을 발표한 뒤로 오랫동안 침묵하다가 2007년 `꽃이 너를 지운다`를 펴내며 시작활동을 재개했다. 네번째 시집 `나쁜, 사랑을 하다`(2009) 이후 3년 만에 펴내는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현실에 길들여진 채 살아가는 사십대 중년의 소시민적 삶을 담백한 어조로 노래한다. 평범한 일상 언어로 삶의 사소한 기척들을 포착해내는 자전적 시편들이 가슴 저린 감동을 불러일으킨다.“우주는 지구를 저질러놓고/용암 같은 점액질의 시간을 흘려보냈다/육신을 만난 시간이 뼛속에 나이테를 새겨/뜨겁고 촘촘히 과거를 감아놓았다/나는 사건이다/깊은 숲 속 시간의 무거운 흐름 위로/어느날 튀어오른 물고기처럼/세상에 왔다/(…)/생은 시간을 역류하여 솟아오른 사건이다/아들이 나의 해결할 수 없는 벅찬 사건이듯이/모든 생은 스스로를 수습한다”(`시간의 사건`부분)현실의 구체적인 풍경 속에서 삶의 진정성과 아름다운 가치를 찾아내는 김주대 시의 밑바탕에는 인간 존재에 대한 애틋한 사랑이 깔려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12-21

평생 한 여인만 사랑한 한 남자의 운명적 연애

우리 시대의 이야기꾼 성석제(53) 작가가 첫 번째 장편 연애소설 `단 한 번의 연애`(휴먼북스)를 펴냈다. 초등학교 입학식에서 고래잡이의 딸에게 매혹 당한 소년이 중년의 남성이 되기까지, 시대의 폭력과 인생의 굴곡을 넘어 오직 한 여자만 사랑한 그 연애와 구원의 서사를 그린 소설이다.사랑과 구원이라는 보편적 테마를 성석제 작가 특유의 유머와 통찰, 그리고 자기 세대의 경험담을 농축해 그려내 독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흡인력 강한 소설이다.동해안 어촌마을(포항 구룡포)에서 태어난 남자(이세길)는 초등학교 입학식에서 고래잡이의 딸(박민현)을 만나 그녀의 매력에 사로잡힌다.그 시점부터 남자는 유년 시절, 중고등학교 학창 시절, 데모와 미팅으로 대변되는 대학 시절, 그리고 군대(전경) 시절을 거쳐 사회인으로서의 시절까지 이어지는, 한 여자만을 향한 아름답고도 운명적인 연애를 펼쳐간다.황홀하고 달콤하면서도 치명적인 연애의 미학이, 깊은 좌절감과 극한의 희열 사이를 오가며 반복되는 연애의 본질이, 작가 세대의 경험담과 시대상에서 비롯된 에피소드들을 통해 한편으로는 유쾌하고 유머러스하게, 한편으로는 가슴이 아릴 정도의 묵직한 감동으로 그려진다.그와 동시에 베이비부머 세대의 주인공들이 시대와 일상의 폭력을 넘어 사랑을 통한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과정 역시 흥미진진하다.고래잡이배의 포수인 아버지와 나나(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의 식모)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폭력에 노출되어 있던 민현을 알고 난 후 지속된 세길의 연애 여정에는 삶이 지닌 본연의 폭력성과 한국 현대사 50여 년의 격렬한 물결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 험난한 질곡의 순간순간마다 평범하기 짝이 없는 `그`의 사랑은 비범하지만 위안의 장소가 없는 그녀에게 구원의 도피처가 되어 준다.소설은 민현을 향한 세길의 연애 연대기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모든 현대적 폭력들에 맞서 인간과 자연의 존엄을 지키며 살아가는 현재의 그들이 나누는 대화를 교차 병렬하는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성석제 작가 특유의 필담으로 리드미컬하게 현재와 과거, 그리고 시대상을 오가며 이야기의 재미를 배가하고 주제를 선명하게 부각한다.`단 한 번의 연애`는 평생 단 한 여자만을 사랑했던 한 남자의 간절한 연애 이야기를 통해 세상의 폭력을 극복해내는 사랑의 가치를 다시금 웅변하는 작품이며, 동시에 현시대 인류가 극복해 나가야 할 폭력은 무엇이며 추구해야 할 삶의 가치는 무엇이지를 되묻는 진정성 가득한 소설이다.소설의 시대라 불리며 세계적인 대문호들을 배출한 19세기의 문학. 이 시대의 소설이 다룬 주제를 가장 극명하게 두러낸 작품들로 허먼 멜빌의 `백경`과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꼽을 수 있다. 19세기 세계문학 중에서도 단연 백미로 꼽히는 작품들이다. 전자는 자연을 정복하려는 인간의 위대한 정신과 집념을, 후자는 죄와 구원의 주제를 다룬 작품이다.성석제의 `단 한 번의 연애`는 이들 고전소설의 소재와 주제의 자장 안에 있으면서도 시대적 역전 현상을 생생하게 반영한 작품이다. 허먼 멜빌이 `백경`을 통해 광포하고 거대한 자연에 대한 인간의 정복과 위대한 정신을 다루었다면, `단 한 번의 연애`는 역으로 인간의 탐욕이 고래와 같은 자연과 생명, 그리고 인류 절대 다수의 삶에 가하는 폭력을 경고하는 형태로 주제의 역전을 이룬다.또 `죄와 벌`이 라스콜리니코프의 윤리를 구원하는 소냐의 여성적 치유를 그려냈다면, `단 한 번의 연애`는 민현을 향한 세길의 남성적 헌신과 평범함으로 위대함의 빈틈을 아우르는 포용력을 보여줌으로써 사랑과 구원이라는 테마의 변주를 이루어낸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2-12-21

철강왕 박태준 사상·생애 `총망라`

청암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의 타계 1주기에 맞춰 그의 사상과 생애를 심층적으로 연구하고 분석한 책 `박태준 사상, 미래를 열다`(아시아)가 출간됐다. 지난 4월 출간된 총5권의 `청암박태준연구총서`의 30명 저자들 중에 송복, 최진덕, 전상인, 김왕배, 백기복이 집필하고,`박태준`평전을 쓴 이대환 소설가가 엮었다.사회적으로 공로가 큰 인물의 타계 이후 그를 기리는 책이 발간되는 일은 출판계에서 흔한 일이지만, `박태준 사상, 미래를 열다`는 무엇보다도 고인의 정신을 후세에 유용한 유산으로 남기고자 하는 작업이라는 데서 더욱 관심을 끈다.송복 연세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선비의 전형(典型) 박태준의 선비사상`에서 `박태준 연구`의 당위성을 다른 기업인 연구와 달리 사회·인문학 연구자들의 참여에서 풀어본다. 자칫 주관주의에 빠질 수 있는 고인이 지녔던 `매력`, 그 이상을 뛰어넘는 증명해내고 싶은 사상과 정신이 그 삶 속에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매력`은 무엇인가? 송복 명예교수는 철강왕 박태준의 매력을 한 마디로 `선비`라고 말한다.최진덕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우리 현대사의 비극과 박태준의 결사적인 조국애`에서 간단명료했지만 위대한 행동인이 되어 대성취를 이루어낼 수 있었던 힘을 박태준의 `조국애`에서 찾아본다.측량할 수 있는 `성취`의 부분에서는 다소 알려진 반면, 사상에 대해서는 잘 논의되지 않은 점을 집어보는 이 글은 박태준의 사상이 강력한 정신과 방대한 독서를 통한 지식에서 나온다는 점, 비극적인 우리 현대사 속에서 남달랐던 박태준의 애국심을 풍부한 예로 설명해준다.전상인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는 `박태준 영웅론:제철입국의 근대 정치사상`에서 독일의 비스마르크, 미국의 카네기, 일본의 후쿠자와 유키치, 중국의 덩샤오핑, 베트남의 호치민, 싱가포르의 리콴유 등 동서양에 걸친 영웅들의 삶을 살펴보고, 근대화 과정에서 제철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가운데 박태준 삶의 영웅적 면모를 입증한다.김왕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박태준의 국가관과 사회관`에서 국가중흥주의자로서 박태준의 보국이념이 오늘날 갖는 의미를 짚어본다.이념과 행위의 결과는 어느 시대, 누구의 눈으로 무엇을 잣대로 볼 것인가에 따라 다양한 평가가 나오지만 공동체의 번영을 추구한 박태준의 삶을 비추어보며 개인과 사회, 국가에 대한 질문을 다시 던진다.용혼(熔魂)이란 “혼으로 녹여내어 이룬다”는 뜻이다.백기복 국민대 경영대학 교수는 `박태준의 용혼(熔魂) 경영사상`에서 포스코 창업에서부터 세계 굴지의 철강기업으로 키워낸 청암 박태준의 경영사상을 `용혼사상`이라고 부른다.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해낸 세계최고 철강인 박태준의 사상과 정신세계를 그가 이루어낸 업적에 비추어 분석해낸다.그리고 `박태준` 평전의 저자 이대환의 `엮은이의 말`에 이 책을 펴내는 뜻이 잘 나타나 있는 이대환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2011년 12월 13일 청암 박태준의 부음을 알리는 한국의 모든 언론들과 해외의 많은 언론들이 일제히 헌화하듯이 그의 이름 앞에 영웅·거인·거목이란 말을 놓았다. 시대의 고난을 돌파하여 공동체의 행복을 창조한 그의 인생에 동시대가 선물한 최후의 빛나는 영예였다. 그러나 어쩌면 그것이 망각의 늪으로 빠지는 함정일지 모른다. 영웅이란 헌사야말로 후세가 간단히 공적으로만 그를 기억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영웅의 죽음은 곧잘 공적의 표상으로 되살아난다. 이것이 인간사회의 오랜 관습이다. 세상을 떠난 영웅에게는 또 하나의 피할 수 없는 운명으로 강요된다. 여기서 그는 우상처럼 통속으로 전락하기 쉽고, 후세는 그의 정신을 망각하기 쉽다. 거대한 짐을 짊어지고 흐트러짐 없이 필생을 완주하는 동안에 시대의 새 지평을 개척하면서 만인을 위하여 헌신한 영웅에 대해 공적으로만 그를 기억하는 것은 후세의 큰 결례이며 위대한 정신 유산을 잃어버리는 사회적 손실이 아닐 수 없다. 다만 그것을 막아낼 길목에 튼튼하고 깐깐한 바리케이드를 설치할 수는 있다. 인물연구와 전기문학의 몫이다.”/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2-1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