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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무너진 것은 교육만이 아니다

홍석봉 대구지사장 우리 사회가 교권침해로 홍역을 앓고 있다. 수만 명의 교사들이 참가, 서이초 교사의 49재를 지내고 ‘공교육멈춤의 날’ 행사를 가졌다. 전국에서 추모 열기가 일었다. 이 와중에도 학생의 교사 폭행과 교사 자살 사건은 이어졌다.외신도 한국의 교권침해 문제를 집중 조명했다. BBC는 “학업 성공에 모든 것이 달린 초 경쟁 사회가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BBC는 “(교사들이) 아동학대범으로 몰릴까 두려워 학생들을 훈육하거나 싸우는 아이들 사이에 끼어들 수 없다”고 교육현장을 비판했다.강은희 대구시교육감은 “지금은 학생들에게 훈육이 불가능한 상태”라며 “아동학대 관련법의 개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아이들의 교권침해는 우발적으로 일어나는 경우가 많고 학부모들이 아동학대 고소는 사소한 것들이 누적돼 나타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교사와 아이들의 충돌과 교사의 과도한 언어 대응이 학부모의 분노를 촉발, ‘아동학대’ 나 ‘정서 학대’로 진행된다고 봤다.교육 붕괴의 근인은 가족 해체다. 가족 해체는 가정 붕괴로 이어진다. 가정교육을 못 받은 학생의 일탈은 교사의 지도가 어렵다. 그러다가 포기하게 되고, 학교 교육마저 무너진다. 이는 사회까지 연결된다. 결국, 밥상머리 교육이 문제다. 가정과 학교가 바로 서야 공교육이 정상화될 수 있다.사교육에 찌들려 교실에서 잠만 자는 학생. 이를 나무라지도 못하는 교사 등 학교보다 학원이 우선되는 게 현실이다. 내신조차 사교육으로 넘어갔다. 수능점수에 학생의 인생이 좌우된다. 공교육은 형편없이 망가졌다.교육 붕괴는 연쇄 파급된다. 한국은 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의 오명을 오랫동안 벗지 못하고 있다. 청소년 자살률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어 더욱 문제다.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한 ‘묻지마 범죄’가 잇따른다. ‘모방 범죄’까지 발생, 국민이 노심초사다.정치판도 무너졌다. 협상은 없고 이전투구만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가상화폐 투자로 국민 분노를 산 김남국 의원을 퇴출하지 못하는 죽은 정당이 됐다. 이재명 당대표는 국정감사를 하루 앞두고 단식에 돌입했다. 출퇴근, ‘웰빙 단식’을 한다. 약자의 최후 수단인 단식을 희화화했다. 무소속 윤미향 의원은 친북 단체인 조총련 주최의 간토 대지진 학살 조선인 추모식에 참석, 지탄받았다. 정작 자신은 궁색한 변명만 늘어놨다. 윤석열 정부와 여당은 거대 야당의 묻지마식 반대와 거부에 국정 운영이 비틀대고 있다.국가정보원은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와 관련, 북한이 일부 좌파단체 등에 반대 투쟁 지령을 내렸다고 발표했다. 공산당이 버젓이 내놓고 활동하는 게 현실이다.교육계에서 다양한 교권침해 대책과 논의가 일고 있다. 공교육 정상화의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외신이 지적하듯 우리의 현실은 교육 붕괴만이 문제가 아니다. 가정이 무너지고, 정치는 실종됐고 경제는 저성장의 늪에 빠져 허덕댄다. 사회가 중병이 들었다. 총체적 난국이다.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됐다고 하지만 진정한 선진국의 길은 멀고도 험난하다.

2023-09-07

한글서예로 꽃핀 내방가사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제14회 대구한글서예대축제 초대장과 도록을 받았다. ‘내방가사-한글서예로 담다’를 주제로 한 서예전이었다. 내방가사가 이렇게 꽃필 수도 있구나 싶은 반가움과 고마움에 내방가사의 역사를 짚어보고 싶었다. 마침, 짧은 인사말을 부탁받았기 때문에라도 정리할 필요도 있었다.내방가사는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여성의 문학이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전적으로 세종대왕 창제의 한글 덕분이다. 1443년에 창제 1446년에 반포된 한글, 훈민정음은 말 그대로 백성을 위해 만든 문자였다. 그러나 조선의 공식문자는 한자였다. 대부분의 남성 양반에 의한 지배문학 역시 한자였다. 그런 면에서 여성은 침묵을 강요당한 백성이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130여년 뒤, 1580년대 난설헌 허초희라는 천재시인이 ‘규원가’라는 가사를 지었으나 문학에 관한 한 대부분의 여성들은 침묵하고 있었다. 200여 년 후, 1794년 경북 안동 하회에서 연안 이씨가 집안의 겹경사를 송축하는 가사 ‘쌍벽가’를, 연이어 1810년경 기행가사 ‘부여노정기’를 창작하면서 드디어 내방가사가 한국문학사에 점을 찍기 시작하였다.이후 경상도의 여성들은 내방가사를 창작하고, 필사하고, 혼자 읽고, 돌려 읽고, 혼자 외고, 둘러앉아 낭송하는 향유의 전통을 만들기 시작했다. 사적으로는 친척 내에서, 더 넓게는 혼인관계를 통해 전파와 전승의 향유를 지속하였다. 학계에서 공식적으로 보고된 작품 수가 6천여 편이 넘을 정도로 경북 여성들만의 특별한 문학이자 문화가 되었다. 창작과 낭송의 전통이 안채의 담장을 넘지 않았던 여성의 목소리가 세상 밖으로 드러나게 된 것은 180여년 후인 1997년, 이선자 회장이 창립한 안동내방가사전승보존회 덕분이었다. 특히 총 24회나 개최된 전국내방가사경창대회를 통해 내방가사의 아름답고 기품있는 낭송 소리는 경북을 넘어 전국으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고전문학인 내방가사가 현재도 향유되고 있는 현재성의 문학임을 증명하게 된 계기도 되었다.2022년 11월 16일, 내방가사는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아시아태평양 지역 목록)에 등재되었다.“미래세대에 전수될 수 있도록 보존하고 보호할 가치가 있고, 기록유산에 담긴 문화적 관습과 실용성이 보존되어야 한다”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의 목적에 부합되면서 여성공동체의 집단문학적 가치를 인증받은 셈이다. 이는 전적으로 내방가사를 잘 지켜온 대구경북 여성들 덕분이다. 허난설헌으로 기산하면 443년, 연안이씨로부터는 229년의 내방가사의 역사에 이름없는 수많은 여성 작가들을 보태어야 한다. 내방가사전승보존회 이선자 회장의 노고와 대구한글서예협회 최민경 회장의 역량에 기대어 있음도 부인할 수 없다.인류사에서 기록물 등 수많은 무형유산들이 전쟁, 사회적 변동, 약탈 등에 의해 영원히 사라졌거나 멸종위기에 처해 있음에 비춰볼 때, 내방가사를 소중히 지켜온 대구경북 여성들에게 우리 문학, 문화, 역사가 크게 빚지고 있다. 2023년 8월, 대구한글서예대축제에서 만난 서예작품들은 문학이 서예로 비상하는 내방가사의 새로운 역사의 장이었다.

2023-09-06

뜨거운 것에 데었을때 어떻게 할까?

김영준 포항 약전부부한의원장 땀이 뻘뻘 나는 더위에도 뜨거운 삼계탕을 먹는 나라, 노곤한 하루 일과를 김이 펄펄 나는 국밥으로 마무리하는 곳이 바로 우리나라이다.이렇듯 뜨거운 음식이 주류를 이루다 보니 살면서 종종 화상을 입는 경우가 있다. 특히 어린 아이가 화상을 입어 물집이 생겼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한 상황을 겪는데 이럴 때 떠올려야 할 것들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먼저 화상을 입었을 때 손상의 정도를 파악해야 한다. 물집이 생기지 않고 피부가 붉게 되어 통증만 있는 정도는 1도 화상에 속한다. 이런 경우에는 별다른 치료를 하지 않아도 저절로 낫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물집이 생기면 2도 이상의 화상으로 치료 관리가 중요해진다. 2도 이상의 화상부터는 전문적인 치료를 받는 것이 좋다. 특히 물집의 크기가 크고 물집 아래로 비치는 색이 노랗거나 흰 경우 손상의 정도가 깊으므로 되도록 빨리 의료기관을 방문하는 것이 좋다.화상을 입은 경우 먼저 흐르는 수돗물에 환부를 데어 열기를 가라앉히고 오염을 제거한다.화상으로 입은 상처에 세균 등이 감염되면 치료 기간도 굉장히 길어지고 흉터도 생기게 될 수 있다.가장 중요한 것은 물집의 관리이다. 갑자기 화상을 입으면 물집을 터뜨려야 할지 가만히 둬야 할지 고민이 된다. 물집 안에는 피부 재생을 도와주는 물질들이 많이 들어있기 때문에 되도록 물집을 간직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물집의 크기가 크면 통증이 심하기 때문에 물집을 터뜨려서 안에 있는 물을 빼 주어야 한다. 다만 이 경우에도 물집 주머니는 제거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다. 환부 주위를 깨끗하게 소독해 주고 물집 주머니는 제거하지 않은 상태로 외부와 닿지 않게 거즈나 밴드 등을 이용해서 덮어준 상태에서 의료기관을 방문해 치료를 받는 것이 좋다.한의원에서 이런 화상 치료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이 생소할 수 있는데 생각보다 화상을 치료하는 데 한방 치료가 효과적인 경우가 많다. 한의원에서 하는 화상 치료로는 대표적으로 자운고 도포와 침 치료가 있다. 자운고는 자초, 당귀, 호마유, 밀랍, 돼지기름 등으로 만들어진 연고로 피부 질환에 많이 사용하는 외용제이다. 자초는 염증을 가라앉히는 청열 작용이 있고 당귀는 보혈 및 어혈을 제거하는 작용으로 피부 재생을 도와주며 나머지 정유 성분들은 보습을 도와준다. 화상에도 많이 쓰이지만 건조한 피부 질환에도 효과가 좋은 약이다.침 치료는 화상으로 상처가 난 부위 주변 테두리를 따라 얕게 자침하여 피부의 재생을 도와준다. 침의 자입으로 인한 미세한 손상이 회복되면서 주변 조직도 함께 회복되는 효과로 추측하고 있다.화상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한의원이 있을 정도이니 한방 치료의 효과가 얼마나 뛰어난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피부의 상처는 관리에 따라서 짧은 기간에 깨끗하게 나을 수도 있지만 감염에 의해 다른 병으로 바뀌는 경우도 많고 소독을 너무 과하게 하는 경우에도 회복이 더딜 수 있다. 의료기관의 전문적인 치료가 중요하니 급한 상황의 처치 후에는 꼭 의료기관을 방문해서 치료를 받도록 하자.

2023-09-06

초고령사회, 위기일까 기회일까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대한민국은 곧 ‘초고령사회’로 접어든다. 2025년이면 65세 이상이 인구의 20퍼센트를 넘기게 된다. 나이가 많아도 경제생활을 지속해야 하지만 일자리에서 물러난 노인들은 길을 잃는다.정부가 짊어질 복지정책 부담도 재정적인 면에서 가볍지 않다. 고령화는 저출산과 맞물리면서 전반적인 인구구조의 변화를 초래하면서, 지역에는 급격한 인구감소를 빚어내 지역소멸의 위기감마저 가지게 한다. 인구위기는 남북한을 가리지도 않는다.2070년이 되면 남한은 3천600만, 북한은 2천400만 인구로, 2021년 대비 각각 70%와 90% 수준으로 줄어든다고 한다.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고령화되고 출산율은 가장 낮은 나라가 될 것이라고 한다.위기의 그림자는 반드시 기회의 가능성을 품는다. 오늘 65세로 접어드는 사람들은 이전의 노령층과 어떻게 다를까. 그들은 한국전쟁 후 사회적 경향을 타고 태어난 사람들로 베이비붐세대(baby boom generation)라 불리운다. 급격하게 초고령화로 접어든 느낌이 드는 데에도 까닭이 있는 셈이다. 그들은 사회문화적 격동기를 거치면서 경제적 성장과 정치적 혼란을 모두 겪었다. 나라가 가장 어려웠을 시절에 때어났지만 눈부신 발전을 경험했으며, 정치적 변동을 체험하면서 거친 들판을 지나온 세대가 아닌가. 다양한 사회문화현상에 대한 체험적 이해가 깊고 여러 정치적인 이념성향도 겪을 만큼 겪었다. 이전 세대의 경제적 어려움을 보며 배운 바가 있어 노후대비에도 무심하지 않았다. 이전 어느 노인세대와는 판이하게 다른 ‘신개념고령층’이 출현하고 있다.한국사회에 처음 나타난 세대가 아닐까. 역사상 처음으로 체력(體力), 지력(智力), 재력(財力)을 겸비한 세대라고도 한다. 의학과 과학의 눈부신 진보로 인간수명 백세를 바라보는 세상이 되지 않았는가. 전후 부모들의 뜨거운 교육열 덕분에 가장 많이 배운 세대가 아닌가. 국가경제 발전을 몸소 견인해 온 어른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은퇴한 다음 일로부터 손을 놓고 뒷방 늙은이로 자조적인 삶을 유지하던 노인층이 아니다. 건강과 열정을 포기하지 않고 새로운 삶을 이어가려는 의지와 다짐을 불태우는 세대로 보아야 한다. 서구사회에서도 액티브시니어(active seniors)를 대상으로 하는 실버산업이 블루오션이라는 게 아닌가. 인구 초고령화는 사회의 위기인 동시에 기회를 제공한다.초고령화를 위기요소가 아니라 기회인자로 보아야 한다. 정책적으로도 복지예산에 대한 재정적 부담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세대의 문화적 유연성과 경제적 소비성향을 진작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정년연장이 뜨거운 이슈가 되었지만, 이를 세대 간 갈등요소로 볼 것이 아니라 인구고령화를 적극적으로 대비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피할 수 없는 미래로서 ‘초고령화현상’은 사회문화적으로 새로운 생각의 틀을 마련하여 준비해야 한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맞게 될 고령사회를 슬기롭게 대비하는 지혜를 준비해야 한다. 재정압박을 핑계로 회피하려 하거나 세대갈등의 빌미로 보아 배척하려는 태도는 버려야 한다.

2023-09-06

재주는 곰이 부리고…

홍석봉 대구지사장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되놈이 번다’는 속담이 있다. 수고하는 사람 따로 있고 이익 보는 사람 따로 있을 때 하는 말이다.박지원이 쓴 ‘열하일기’에 곰과 호랑이 등 ‘곰 곡마단’에 대한 언급이 있다. 박지원 뿐만 아니라, 당시 청나라를 다녀온 실학자들이 곳곳에서 곰 곡마단을 구경했다는 기록이 있다. 하지만 국내에는 없는 유희단이었다. 독립신문에도 청나라 상인이 원숭이를 데리고 다니며 재주를 부리게 했다는 기사가 있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속담은 대한제국 시기 들어온 청나라 사람들과 관련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한국이 양극재 수출로 번 돈 대부분이 중국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 사업의 급성장에 따라 우리나라의 이차전지 양극재 수출이 급증하고 있지만 양극재 수출로 번 돈이 리튬, 전구체 등 핵심 원료를 공급하는 중국으로 상당 부분 흘러갔다. 양극재 제조용 원료 확보가 미국 IRA 대응은 물론 원가 절감을 위해서도 중요해졌다.무역협회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우리나라의 이차전지 양극재 수출액은 74억9천만 달러로 작년 동기보다 66%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양극재 수출은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연평균 77.7% 성장했다. 하지만 양극재 수출이 늘수록 원료인 리튬과 전구체 수입이 늘고 수입 대부분을 중국에 의존하는 특성상 무역수지가 악화됐다. 상반기 양극재 수출로 58억1천만 달러의 흑자를 봤지만 88%인 51억 1천만 달러가 원료를 수입한 중국에 돌아갔다.원료 공급선 다변화와 원자재난에 대비하기 위해 해외 원자재 확보와 투자가 절실하다. MB정권이 추진했던 해외 원자재 확보 실패가 뼈아프다. 재주는 한국이 부리고 돈은 중국이 버는 상황이 답답하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9-06

길을 내다

배문경 수필가 우거진 숲 사이로 길이 나있다. 그 길옆으로는 보랏빛 향기가 뿜어져 나올 맥문동이 그득하다. 그 사이 만들어진 길에는 나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맨발로 길을 걷는다.얼마 전부터 만들어진 황톳길이다. 맨발로 걷다보면 황토의 붉은 기운이 힘나게 한다. 뿐만 아니라 새소리며 다람쥐며 청솔모는 덤의 볼거리다. 처음에는 몇몇이 보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이 많아진다. 서로 어깨가 부딪힐 정도로 인기절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건강에 대한 관심은 사람들을 자연스레 운동을 이끌어냈다. 이른 아침부터 공원은 사람들이 북적인다. 맨발인 사람, 운동화를 신은 사람들이다. 대부분 걷고 일부분은 기구를 이용해서 운동을 한다. 나또한 한 두 번은 키 큰 철봉에 매달리기를 하며 앞뒤로 시계추처럼 몸을 흔들어준다. 어깨에 좋다는 설이 있어 간혹 즐긴다.계절마다 선물해주는 봄여름 가을의 향연이 눈부시다. 봄이면 연초록의 숲은 긴 겨울의 적막을 벗어던지고 가벼워진다. 잎들은 더욱 푸르른 빛으로 꽃들은 상큼하게 숲의 하루를 열어준다. 봄을 지난 숲은 더 깊어진 녹음과 매미소리로 풍성해진다. 망초가 피고 나비가 날아다니고 숲 위의 하늘은 푸르고 더러 소나기로 더위를 식혀준다. 태풍이 지나고 난 뒤에 갔더니 황토는 말랑말랑 송편을 빚으려고 만든 반죽 같았다. 한두 명이 밟은 발자국 위로 다시 길은 사람들의 발에 의해 다져진다.구월의 바람이 살랑살랑 코끝을 간지럽힌다. 나의 아침걷기가 참으로 분주해질 때다. 맨발로 땅을 밟으면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하나로 소통된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곳곳에서 막혀있던 혈관이며 신경이 살아나 아침 기지개를 켜는 것 같다. 살아있다는 것의 그 순수와 아름다움을 그대로 받아들일 시력과 청력이 좋아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살아있음이 세포 곳곳에서 활성화된다는 생각에 빠르게도 걷고 느슨하게도 걸어본다.인류의 신발은 무엇이었을까. 맨발로 생활하다 이족보행이 발바닥에 엄청난 압력을 주어 족저근막염 등의 고통을 주었을 수도 있다. 인디언의 모카신은 최초의 신발의 원형을 가지고 있는데 한 장의 가죽으로 발을 감싼 뒤 가장자리에 구멍을 내어 묶어 신었다고 한다. 맨발 걷기를 하기 위해 문명의 산물인 신발을 벗어 칸만 있는 신발장에 두고 맨발로 땅을 밟는다. 초핀과 전족과 하이힐의 속박에서 벗어난 여성들처럼 문명의 이기를 벗고 자연인이 된 듯이 가볍다. 가벼워진 몸이 하늘을 날 것 같다.지표의 약 10%를 덮고 있는 황토는 쉽게 부서지지 않는 점력(粘力)을 지니고 있다. 실리카, 알루미나, 철분, 마그네슘, 나트륨, 칼리 등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러한 성분비와 다양한 효소들로 조성된 황토는 동식물의 성장에 꼭 필요한 원적외선을 다량 방사하므로 황토를 살아있는 생명체라 부른다.황토에 발을 딛고 걷기 시작하면 건강해진다는 느낌이 든다. 황토에는 해독작용과 혈액순환 개선, 통증 완화와 피부미용에도 도움이 된다. 항균작용은 덤이다. 습도조절과 전자파차단이며 항암효과와 중금속 배출이 된다.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황토는 또 하나의 자연이득이 분명하다. 황토 팩이나 황토 장판, 벽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이용되는 황토가 깔린 길을 구경하며 걷는다. 나뭇잎을 흔들던 바람 한줄기가 시원스레 이마와 목젖을 스친다.옛 친정동네에는 오래된 초가집들이 많았다. 그 곳에서 유독 먼 친척 할아버지 집은 황토벽에 황토 구들장이 그대로 노출되어 때론 대나무가 황토벽 사이로 보였다. 얼기설기 짜 놓았던 그 벽과 구들장들이 아마 원적외선 노출이 되었던가. 얼마 전 귀농하신 지인의 집에서도 비슷한 황토 일색의 인테리어를 보았다. 아마 건강에 좋다는 이유일 것이다. 흙과 불로 이루어진 갖가지 제품들이 건강을 챙기려는 현대인의 구미에 맞아떨어진다.아침산책길에서 운동화는 차에 벗어두고 슬리퍼로 갈아 신고 숲으로 들어선다. 새들이 경쾌하게 노래를 부르자 숲의 나뭇잎이 더욱 푸른빛으로 답례를 한다. 황톳길에 발이 닿자마자 나도 숲의 일부분이 된다.

2023-09-06

정사일주(丁巳日柱)

육십갑자 중 오십네 번째는 정사(丁巳)다. 천간(天干)의 정화(丁火)와 지지(地支)의 사화(巳火)는 같은 화(火)기운으로, 빛과 열이 혼합되어 화려하고 찬란하다. 동물로는 붉은 뱀이다.정사일주는 타오르는 불꽃같은 형상이지만, 해 질 녘의 모닥불이며 뜨거운 용광로와 같다. 활동적인 불기운이 아니라, 정제된 불기운이다. 만사를 합리적이고 인간적으로 처리하여 처세에 능하기 때문에 큰일을 도모하고 성취하는 재능이 있다. 권력의지가 강하고 활동이 정열적이며 개성이 뚜렷하나 끈기가 약하다. 하지만 꺼질 줄 모르는 열정만은 남다르다.현실적 감각이 뛰어나 금전 감각이 밝은 편이다. 판단력도 좋아 종종 주변 사람들이 조언을 구하러 찾아오기도 한다. 그렇지만 싫증도 빨리 내고 뒷심이 부족한 편이다. 초심과 달리 종종 용두사미가 되는 경우도 있으니 인내하고 끝까지 밀고 나가는 힘을 기르는 것이 현명하겠다.한편 예의를 중요시하기 때문에 남들에게 신의를 지키고 존중해주면서도 자기 자신을 은근히 자랑하는 스타일이다. 성격이 명랑하고 쾌활하며 낙천적이다. 마음이 순수하고 깨끗하며, 성격은 불같지만 쉽게 누그러지는 호탕한 성품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강한 상대를 보면 도전하고자 하는 승부욕도 가지고 있다.중국 춘추시대 위나라 임금인 문후가 사냥터를 관리하는 관원에게 사냥하러 갈 날짜를 정해서 미리 알려주었다. 사냥하기로 한 날, 위문후는 기분 좋게 술을 마셨다. 마침 그때 갑자기 비가 내렸다. 그런데도 위문후는 사냥하기로 한 날임을 기억하고 문을 나설 준비를 하고 있었다. 주위의 신하들이 “오늘 술도 기분 좋게 마셨고 이렇게 비가 내리는데 어딜 가시려고 그렇게 차비를 하십니까?”라고 물었다.위문후는 “사냥터 관리인에게 오늘 내가 사냥 간다고 알려 놓았다오. 오늘 비록 술을 마셨고 비가 오지만, 그렇다고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좋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겠소?”라고 말했다. 그는 끝내 사냥터 관리인에게 가서 직접 이번 사냥은 쉰다고 말해 주었다.‘위문후서’에 나오는 이야기다. 약속에는 신분의 고하가 없는 법이다. 자신의 이익이나 편안함에 매몰된 사람은 쉽게 약속을 파기하는 경향이 있다.정사일주 남자는 경제력이 충분해도 지나친 욕심과 고집으로 배우자가 힘들어 할 수 있다. 경제권을 아내에게 맡기는 것이 현명하다. 여자는 성격이 화끈하며 치장과 변신에 능하고 독설도 서슴지 않기에 언행에 주의해야 한다. 모든 것을 손아귀에 넣어야 만족하기에 고독하게 혼자 사는 경우가 있다. 남녀 모두 결혼은 만혼이 좋다. 부부다툼으로 인하여 이별수가 있으니, 상대방에게 양보하고 져줄 수 있어야 화목한 가정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정사일주는 보름달 아래 붉은 뱀의 모습이다. 겉으로 보기에 화려한 느낌이 강하고, 혼자 다니기를 좋아해 어딘가 비밀이 많고 속마음을 잘 비추는 법이 없다. 하지만 밝고 놀기 좋아한다. 어떤 역경이 있어도 좌절하지 않고 버티는 악착같은 면도 있다. 쇠약하거나 시들어도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는 불멸의 일주다. 뒷담화로 욕할지언정 앞에서는 포용력이 넘치고 친화적이라 인기가 좋은 편이다. 분위기 메이커는 아니지만 어울리기를 좋아한다.또한 화려한 색상의 의상이나 눈부시고 사치스러운 삶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조용한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어 성공과 권력에 대한 욕구가 남다르다. 이를 성취하기 위한 노력과 재능을 가지고 있으며, 편법도 마다하지 않는다. 또한 상대에 대한 기억을 아주 잘하며, 상대가 베푼 작은 선행도 감사하고 잊지 않는다. 자신을 힘들게 했던 일이 있으면 이를 앙갚음하기 위해 원한을 가지기도 한다. 이뿐만 아니라 대인관계에서 극단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이와 유사한 이야기로 스콧 피츠제럴드 (1896∼1940)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가 있다. 1920년대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급격한 성장을 이룬 미국 경제와 물질 만능주의가 난무하던 시기를 배경으로 했다. 군 입대와 가난 때문에 이별해야 했던 애인 데이지를 잊지 못하고 그녀를 되찾기 위해 당시 금주법을 악용하여 불법인 밀주를 통해 막대한 부를 얻게 된다.개츠비는 데이지가 사는 강 맞은편에 거대한 주택을 마련한다. 개츠비는 밤이 되면 그녀가 살고 있는 집을 바라보며 불이 꺼질 때까지 바라본다. 그녀와 다시 만나길 고대하며 매일 밤 화려한 파티를 연다. 언젠가 그녀가 방문하리라는 기대감으로 살아간다. 데이지는 부유한 톰과 결혼을 했고, 딸아이까지 있었다.개츠비는 우연히 자기 집 근처에 사는 데이지의 사촌 오빠 닉을 만난다. 닉은 개츠비가 오래전 연인이었던 데이지를 아직도 못 잊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닉을 통해 개츠비와 데이지는 5년 만에 만난다. 개츠비는 인생을 걸고 데이지에게 모든 걸 바치려 하지만, 데이지는 사랑에 응답하지 않았다. 류대창 명리연구자 어느 날 개츠비는 데이지가 사랑한 사람은 톰이 아니라 자신이라며 언쟁을 벌이게 된다. 기분이 언짢은 데이지가 자리를 뜨자 뒤쫓아 간 개츠비는 그녀가 모는 자동차를 함께 타고 가는 도중에 톰의 정부 머틀을 차로 치어 죽이게 된다. 톰은 머틀의 남편 윌슨에게 개츠비의 짓이라고 알려준다. 윌슨은 개츠비를 살해한다. 개츠비의 장례식에 데이지는 오지 않았다. 닉과 게이츠 아버지 등 두 세 사람만이 참석했다. 그 후 닉은 고향에 돌아간다.1920년대 미국사회의 도덕적, 윤리적으로 타락한 치부를 드러내며 소위 아메리칸 드림의 타락과 이상을 쫓다가 신분 장벽으로 좌절된 한 젊은이의 삶을 담고 있다. 교활한 사람, 비겁한 사람은 간혹 본질을 파악하기 어려운 사람으로 포장되기도 한다. 그들은 심오한 내면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언제나 눈앞의 이익만을 추구한다는 의미에서 너무도 단순한 인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100년이 지난 우리 사회도 그 당시와 별반 다르지 않는 것 같다. 가난한 환경에서 벗어나기 위해 공부로 출세를 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대다수 젊은이들은 코인, 주식, 부동산 투기로 일확천금을 갈망하고 있다. 신분상승으로 인해 상류기득권에 합류하기 위해서다. 그 방법만이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한다. 몰락의 길인 줄 알면서도 불나방처럼 달려드는 것이다.

2023-09-06

‘빼박’의 국민연금

우정구 논설위원 “빼도 박도 못한다”는 우리말은 일이 난처하게 되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는 의미의 관용어다. 한자 말로는 진퇴유곡 혹은 진퇴양난에 비유된다. 한때 인터넷상에는 이 말을 줄여 ‘빼박’이라 부르기도 했고, “할 수 없다”는 뜻의 영어 can’t를 붙여 ‘빼박캔트’라고도 불렀다.국민연금 개혁을 약속했던 문재인 정부는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연금개혁을 차일피일 미루다 끝내 개혁을 거부했다. 국민 눈치보기 내지 인기영합적 태도다. 누가 보더라도 고갈될 것이 뻔히 보이는데도 애써 외면했던 것이다.윤석열 정부는 “연금개혁이 인기없는 일이지만 회피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최근 보건복지부 산하 전문가 그룹이 연금개혁 시안을 내놓았다. 보험료를 더 내고 시기는 늦춘다는 것이 골자다. 2055년 예상되는 연금 고갈 시기를 최장 2093년까지 연장하는 내용이다. 현재 20세 청년이 90세가 될 때까지 연금이 소진되지 않을 것이란 확신을 심어주는 데 초점을 두었다.문제는 소득대체율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것이다. 소득대체율이 인상되지 않으면 연금소득 자체가 초라해지기 십상이고 소득대체율을 높이면 연금 보험료 인상의 효과가 상실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정부안을 두고 설왕설래가 많이 오가고 있다.그야말로 빼박도 못하는 개혁안이지만 그래도 여론은 좌고우면하지 말고 밀어붙여라고 하는 쪽이 우세하다. 복지부 산하 16명의 전문가들이 머리를 싸매고 안을 내놓았으니 지금부터라도 후퇴없이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는 뜻이다.국민의 70%가 거세게 반대한 프랑스 연금 개혁안을 강력히 밀어붙인 마크롱 대통령의 개혁의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도 좋을 것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3-09-05

광역비자제도가 인구문제 해법될 수 있다

심충택 논설위원 요즘 어떤 자리에 가도 가파르게 떨어지는 출산율이 화제다. 우리세대에서 국가소멸이 가시권 내로 들어온 탓이다. 만약 이 시점에서 인구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우리는 후세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짓게 되는 것이다.지난해 연말, 역대 가장 낮았던 4분기 합계출산율(0.702명)과 관련한 사설을 쓰면서 ‘인구재앙’을 언급했던 적이 있다. 만약 우리나라 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걸로 예상되는 아이의 수가 0.6명대로 떨어지면, 대한민국의 존립 자체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라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올해 2분기 출산율은 0.701명으로 더 떨어졌다. 통상 1분기에 아이를 가장 많이 낳고 해가 바뀌는 4분기에 가장 적게 낳는 점을 감안하면, 올 4분기에 0.7명대 마지노선이 깨질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이미 대구는 출산율이 0.67명으로 서울(0.59명), 부산(0.66명)과 함께 0.6명대로 떨어졌다. 전국 17개 시도를 통틀어 출산율이 1명을 넘은 지역은 단 한 곳도 없다. ‘아이 키우기 좋은 도시’로 꼽히는 세종시의 출산율도 0.94명이다. 올 1분기만 해도 1.19명이었다. 충격적이다.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가운데 출산율이 1명이 안 되는 나라는 우리뿐이다. 현재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 출산율도 1.3명이다.미국 학자 조앤 윌리엄스는 EBS 다큐멘터리에 나와 한국 출산율 수치를 듣고 “대한민국 완전히 망했다”며 머리를 감쌌다.한국의 인구절벽은 그야말로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중소도시 소멸 징후는 이미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아이를 낳지 않으니까 대도시가 아니고는 산부인과·소아과를 찾아볼 수 없다. 당연히 일차적으로 초등학교가 붕괴되고 있다.경북도를 예로 들면, 2023학년도 신입생이 한 명도 없는 초등학교가 32개교다. 이 중 14개교는 2~3년 연속 신입생이 없었다. 입학생이 1명뿐인 학교도 30곳이다. 윤석열 대통령도 언급했다시피, 돈으로 저출산 추세를 막기는 불가능해졌다. 내년에도 저출산 극복예산으로 17조5천900억원을 책정해 놓았지만, 대부분 예산항목이 그 나물에 그 밥이다.이제 인구정책 패러다임을 외국인 유치 쪽으로 전환할 때가 된 것 같다.정부는 경북도가 제안한 ‘광역비자’제도(시도지사가 외국인 노동인력, 유학생 유치를 위해 비자 발급 권한을 갖는 것) 도입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우동기 지방시대위원장도 지난해부터 광역단체장에게 비자발급권을 주는 정책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지방대학에 외국인 유학생 1명이 입학하면 부모 2명에게 취업 비자를 줄 수 있도록 하자는 아이디어다.현재 국회에는 임이자 의원(상주·문경)이 발의한 ‘인구감소지역 지원 특별법 개정안’이 계류돼 있다. 인구감소지역을 관할하는 시·도지사가 외국인 우수산업인력의 배우자·부모·자녀에 대한 비자발급을 법무부장관에게 요청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다. 우선 이 법안이라도 국회에서 빨리 통과시켜 비수도권 지역의 인구소멸 위기를 조금이라도 해소할 길이 열리길 기대한다.

2023-09-05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사람들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하늘도 맑고 높푸르러지니 바람의 결조차 달라져 한결 선선하다. 무성하게 자라던 초목은 성장을 멈추고 들판의 곡식은 정갈한 햇살을 받아 여물어간다. 아침 저녁의 선들선들한 기온에 한낮의 무더위가 스멀스멀 꼬리를 감추며 사라져가는 초가을, 알곡이 여물고 과실이 익어가는 9월은 열매달이라고도 한다. 어정거리던 칠월을 지나 동동거리던 팔월의 가슴을 선선한 바람 결에 쓸어 내리는 가을의 어귀로 접어들고 있다.‘지구의 손가락이 궁서체로/공중에 ‘가을’ 한 글자 적으면//무성해 소란스럽던 무더위는/도마뱀처럼 꼬리를 자르고 달아나고//그간 쪼그라들었던 가을바람은/고추잠자리 날개 펼치듯/오금을 쭉 펴고 일어나지//풋풋한 가을이 자박자박 걸어오지’·남정림 시 ‘초가을’전문가을을 찬미라도 하듯이 도처마다 즐비하게 울리는 풀벌레들의 울음소리가 자연의 합주곡마냥 정겹게 들린다. 하늘 높이 떠가는 흰구름이 바람의 시를 쓰고, 또렷하면서 청아하게 울리는 풀벌레들의 합창이 풀숲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계절의 시계마냥 그냥 보이고 저절로 들리는 자연의 시와 음악이 넉넉한 세상의 배경이 되듯이, 사시사철 나눔과 베풂으로 사회 곳곳을 밝고 따스하게 아름다운 세상으로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세상을 숨쉬게 하는 자원봉사자들이다. 자원봉사로 소리 없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가는 사람들을 위한 격려와 응원의 마음을 담은 ‘아세만사(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 음악회가 바로 내일(7일) 포항의 효자아트홀서 열리기에 이채롭고 신선하기만 하다.봉사활동하기 좋은 9월에 마치 자원봉사의 손길과 땀방울을 찬탄하는 양 풍성하고도 다채로운 문화예술의 향연이 벌써부터 설레고 기대된다. 필자도 조금씩 봉사활동을 하고 있지만, 사실상 봉사자들은 자신의 있는 시간 없는 시간을 내거나, 심지어 휴가를 반납하면서까지 자원봉사활동에 나서고 있어도 무엇 하나 보상이나 위안을 삼기가 머쓱했었는데, 이번에 포항시 자원봉사자들을 위한 감사 뮤직 콘서트가 오랜 준비 끝에 열린다기에 여간 반갑고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난타와 대중가요, 악기 연주, 시낭송, 밸리댄스 등의 자원봉사 출연진이 ‘사랑의 씨앗을 뿌리는 사람들(1부), 아름다운 장미꽃을 피우는 사람들(2부), 봉사함에 행복한 당신이 있어(3부), 세상은 아름답습니다(4부)’ 등의 테마로 공연을 펼치는 것은 봉사자들의 노고와 기여에 대한 감사와 시민들에게 문화예술의 향유 기회제공을 위한 정성과 노력의 산물이 아닐 수 없다. 다양한 출연진들 모두가 재능기부나 자원봉사로 나섰기에 한결 의의가 크지 않을까 싶다.가을 마중을 하듯이 밖에서는 풀벌레들의 세레나데가 들려오고 안에서는 음악의 선율과 시의 향기가 흐르고 있으니 과연 가을의 길목에 어울리는 절묘한 하모니랄까, 자연과 사람의 조화로운 화음인 듯하다. 아름다운 봉사의 손길이 문화와 예술로 승화되고 삶의 힘이 되듯이, 누구나 편하게 참여하고 부담 없이 어울려 자원봉사의 진정한 보람과 가치를 느끼기를 기대해 본다. 봉사는 자신을 아름답게 가꾸는 최상의 덕목이자 가없는 정성이다.

2023-09-05

포항 하면 SF가 떠오르기를

강지우 SF평론가 2019년, 포항에서 ‘제1회 포항 SF 페스티벌’이 열렸다. 육거리에 위치한 인디플러스 포항 영화관을 중심으로 SF 영화제, 토크콘서트는 물론 한국 SF 100년사 전시와 각종 부대행사가 알차게 펼쳐졌다. 필자가 SNS에 행사를 공유하니 다른 지역에 사는 이들이 많이 부러워했던 기억이 난다. 영화 ‘컨택트’와 ‘매트릭스’를 보고 우주과학자, 뇌과학자와 영화 속의 과학에서 시작해 우리의 삶과 우주로 확장하는 이야기를 나눴던 시간이 특히 인상에 남았다. 그러나 ‘제1회’에 담긴 지속하고자 하는 포부에도 불구하고 이듬해 포항 SF 페스티벌은 열리지 않았다. 코로나19 사태의 여파도 있었겠지만, 찾는 관객이 다소 적었던 것도 원인이 아닐까 싶다.포항 SF 페스티벌은 포스텍에 위치한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APCTP)의 주관이었다. APCTP는 대한민국 유일의 국제 이론물리 연구소로, 세계적인 석학들이 물리를 연구하는 곳이다. 동시에 이곳은 우리나라 ‘과학문화’의 중심이기도 하다. 20년 가까이 포항시와 함께 ‘포항 가족 과학축제’를 운영하는 주체가 바로 APCTP다. 매년 ‘올해의 과학도서’를 선정해 저자 강연을 개최하며, 이공계 학생 대상의 과학커뮤니케이션 스쿨도 10년 넘게 이어오고 있다. SF와의 인연도 깊다. 2008년부터 웹진 ‘크로스로드’에 SF 코너를 운영해 온 덕에, 지금은 거장이 된 SF 작가들이 데뷔 초기, SF를 발표할 마땅한 지면이 없던 ‘보릿고개’를 버티고 작품활동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필자가 처음 SF의 매력에 빠진 것도 ‘크로스로드’에서 낸 SF 앤솔로지(여러 작가의 작품집)를 읽고서였다.APCTP가 위치한 포스텍도 SF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포스텍은 2020년부터 ‘포스텍 SF 어워드’를 개최하고 있다. 베스트셀러 SF작가 김초엽이 나온 대학이기 때문일까. 일반 모두를 대상으로 하는 여타 SF 공모전과는 달리, 이공계 대학생 또는 대학원생만을 참가 자격으로 받는 것이 특징이다. 이공계 전공을 바탕으로 우리나라 SF계를 더욱 풍요롭고 다채롭게 할 작가와 작품들이 발굴되고 있다. 포스텍은 SF 작가의 강연이 자주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지난해에는 ‘SF, 오래된 미래의 서사’라는 이름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SF 작가 여섯 명의 연속 강연이 열렸다. 또한 ‘제1회 포스텍 SF 데이’에서는 맨부커상 후보에 빛나는 정보라 작가와 김겨울 작가의 북토크가 독자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이처럼 포항과 SF의 연결고리가 여러 겹으로 견고한 이유는 무엇일까. 과학 연구의 최첨단을 이끄는 포스텍과 최첨단의 기술로 지어진 제철소가 일상처럼 가까운 도시. 이곳에서 우리는 자연스레 과학과 기술이 만들어 낼 미래를 꿈꾼다. SF적 상상력을 배양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춘 것이다. 이제 ‘포항’ 하면 푸른 바다와 맛있는 해산물뿐 아니라 ‘SF’가 떠오르기를 바란다. 과학과 사회의 관계를 성찰하고 미래를 이야기하는 곳, 소설, 영화, 드라마, 게임 등 SF 기반 문화 콘텐츠가 한껏 피어나는 곳이 되기를 바란다. ‘제2회 포항 SF 페스티벌’이 벌써 기다려진다.

2023-09-05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때 아닌 사상 논증이 한창이다. 육군사관학교 충무관 앞 독립군·광복군 영웅 흉상 이전 논쟁이 그 주인공이다. 요지는 이러하다. 흉상의 인물이 현 대한민국의 정신에 맞지 않으며, 소련 공산당에 가입한 전력이 있던 사람도 있기 때문에 대한민국 육군사관학교의 정신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 더불어 국방부와 육사측은 독립운동보다는 창군 이후 군사적 분야에 대해서만 흉상을 비치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입장을 발표하며, 흉상 철거 사유의 정당성을 피력하고 있다.여기까지만 보아서는 국방부와 육사의 발언은 꽤나 합당해 보인다. 여전히 대한민국 국군이 북한 정권과 군사적 대립을 이어가는 상황이므로, 공산당 전력이 있는 사람을 육사의 정신을 표상하는 흉상으로 배치하는 것은 합당치 않은 것으로 들리기 때문. 하지만 그 대상이 홍범도 장군이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의아한 구석이 점차 생겨나기 시작한다. 홍범도 장군은 심지어 2016년 박근혜 정부 시기 해군 97전대 소속의 손원일급 잠수함에도 명명된 바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논쟁은 단순히 육사의 흉상 이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잠수함 명칭 개변 및 국군사에서의 홍범도 장군은 흔적 지우기라는 문제로까지 확대되고 있는 상황이다.물론 홍범도 장군이 레닌 시기 소련 공산당 인사였음은 의심할 바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하지만 이를 보다 정확하게 알기 위해서는 당대 세계의 역사적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홍범도 장군이 북방에서 항일 무장투쟁을 전개하던 1920년대 당시 일본군은 러시아의 백군과 연합해 전선을 펼치고 있었기에, 만주 군벌 및 일본군과 대립하던 홍범도 장군으로서는 러시아 적군과 연합해 전선을 구성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뿐만 아니라 당대의 러시아 공산당은 향후 한반도에 큰 영향을 미친 스탈린 시기 공산당과는 사실상 다른 집단이며, 2차대전 당시 연합국에 속해 있었다는 역사가 고려되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깝다.심지어 일각에서는 이들이 항일 빨치산 활동을 했다는 것을 빨갱이라는 이유로 받아들이고 있는데, 이 빨치산이라는 단어 자체가 비정규 유격 게릴라 부대를 통칭하는 파르티잔(Partisan)에서 비롯된 것임을 생각하자면 아전인수 격의 해석이라 할 수 있다. 국방부측은 여기에 덧붙여 홍범도 장군이 사할린 한인 부대가 러시아 인민혁명군에게 제압당한 자유시 참변에 개입하였기에 진성 공산당원이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실제 사학계에서는 해당 사건에 홍범도 장군이 개입한 증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역사 논쟁으로까지 확산될 전망이다.그럼에도 홍범도 장군을 비롯한 독립군·광복군 인사의 흉상 이전에 찬성하는 ‘제대군인자유노동조합’의 김영교 공동대표는 최근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장에서 신원식 국민의힘 의원과 공동 진행한 ‘대한민국 정통성 부정 육사 공산주의자 흉상 존치 규탄대회’에서 홍범도 장군을 공산주의자로 규정하며 그의 무덤을 파묘해 북한으로 보내야 한다는 발언을 해 물의를 빚었다. 이러한 흉상 이전 찬성 측의 발언과 근거를 확인하고 있자면, 흡사 이명박-박근혜 정권 당시 있었던 대한민국 정통성에 대한 논쟁과 임시 정부를 대한민국의 근간에서 부정하려했던 뉴라이트 계열의 논쟁이 저절로 떠오르게 된다.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더욱 의미심장한 것은 육사와 국방부측에서 이와 같은 독립군·광복군 영웅 흉상의 자리에 백선엽 장군과 맥아더 장군, 밴플리트 장군의 흉상을 설치하려 계획 중이라는 사실이다.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백선엽 장군은 일본의 괴뢰국인 만주국 육군 소속 간도특설대에서 활동한 바 있으며, 자서전에 직접 서술한 친일행위로 인해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된 인물이다. 더불어 맥아더 장군과 밴플리트 장군은 전쟁사와 한국사에 있어 많은 영향력을 지닌 인물이라고는 하지만, 그들이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육사의 정통성을 기리는 충무관 흉상으로 제작되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다소의 의문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과연 우리의 역사에서는, 이 둘을 대체할 정도의 영웅이 없었다는 말인가?많은 부분에서 최근의 논란은 이명박-박근혜 정권 당시 있었던 역사 논쟁을 떠올리게 만든다. 대한민국 정부의 정통성이 임시정부를 계승한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특정한 인물이나 역사적 단체의 위상을 상향하려 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실제 역사를 부정하고, 없는 역사를 만들면서까지 무엇을 위해 이런 행동을 행하는 것일까. 가뜩이나 힘든 뉴스가 연일 보도되는 가운데, 없는 문제까지 만들어내는 이유가 궁금할 따름이다.

2023-09-05

‘복세편살’이라는 주문

‘복세편살’이라는 말이 한창 유행했을 때가 있었다. 그 신조어를 접했던 건 바야흐로 십 년 전, 친구에게 내 고민을 털어놓던 순간이었다.그녀는 “은강아, 복세편살하자. 복세편살.”하면서 내 어깨를 두드렸고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어 친구 얼굴만 멀뚱멀뚱 쳐다봤다. 언뜻 들으면 복(福)을 비는 것 같기도 하고 뭔가 심오한 뜻이 내포된 사자성어 같기도 한 묘한 단어. 대충 좋은 말이겠거니 하고 넘겼는데 나중에야 ‘복잡한 세상 편하게 살자’를 네 글자로 줄여 쓴 것이라는 걸 알았다. 요즘 애들은 별걸 다 줄여서 말하는구나. 애늙은이처럼 혀를 차는 것도 잠시, 그 말이 어찌나 중독성 있던지. 언제부턴가 나도 주문처럼 ‘복세편살’을 외치고 있었다.정말이지 그건 주문 같았다. 마음이 실타래처럼 엉키거나 중심을 잡지 못하고 기우뚱댈 때면 마음속으로 ‘복세편살’을 중얼거렸다. 그것은 정말 주술적 효과를 가져다주기도 했다. 어려운 상황이 단박에 해결되는 건 아니었지만 마음만은 순간적으로 잔잔해지는 것도 경험했다. 폭풍우처럼 몰아치는 감정에 던진 작은 돌 하나가 생각지도 않은 도움을 주다니. 참 신기한 일이었다.세상은 복잡하다. 점점 더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상상하기 어려웠던 새로운 것들이 자꾸자꾸 생겨난다. 변화의 속도는 따라가기 벅찰 정도다. 대면보다 비대면 방식이 많아지고 1분 내외의 숏폼 영상을 넘기고 있노라면 20분 내외의 유튜브 영상도 길다고 느껴진다.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소식을 듣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며 노동세계 또한 완벽하게 변화했다. 사람들과 관계 맺는 건 어떠한가. 타인의 마음은 나와 같지 않아서 어떤 노력은 번번이 실패로 돌아간다. 선의로 건넨 진심이 난도질 되어 아무렇게나 버려질 때도 있다.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이해하기도 전에 새로운 문제가 생겨나고 우왕좌왕하며 갈피를 잡지 못할 때가 부지기수다.인간이 질서와 체계를 좋아하는 건 그래서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존재하는 것들에 이름을 붙이고 자연법칙을 분석하여 미래를 예측한다. 책상이 뒤죽박죽 상태가 되면 말끔하게 정돈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고 자신의 의견을 일목요연하게 전달하려고 노력한다.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무질서로 향한다. 이토록 복잡한 세상은 단 한 순간도 내가 원하는 상태로 있어 주지 않는다.스토아학파의 대표적 철학자인 에픽테토스는 말했다. “행복에 이르는 길은 단 하나, 자신의 의지로 어쩔 수 없는 것에 대한 걱정을 멈추는 것이다.” 슈테판 클라인은 ‘우리가 운명이라고 불렀던 것들’이라는 저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복합적인 문제에서는 중요하지 않은 것을 무시하는 것이 종종 성공의 열쇠가 되어준다. 단순한 사고만이 승산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덧붙였다. “모든 문제를 작은 걸음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머리로는 알고 있다. 불필요한 생각을 멈추고 담백하게 살아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그러나 그저 ‘편하게’라는 말로 넘기기에 눈앞의 문제는 호락호락하지 않다. 어떤 일이 다가왔을 때 마냥 초연한 태도를 유지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감히 겪어보지 못한 사건을 경험한 이들도 있다. 걱정을 멈추고 마음을 편하게 가지라는 조언은 어떤 면에서 사치스럽게 여겨지기도 한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이렇듯 또다시 마음이 복잡해지면, 내 어깨를 두드리며 ‘복세편살’을 외치던 친구의 얼굴을 떠올린다. 이십 대 초반의 나는 매사가 불안했고 작은 일에도 쉽게 넘어졌다. 선택에 대한 믿음이 부족했고 누군가 내 진심을 곡해할까 전전긍긍했다. 그때의 나는 친구가 뱉은 그 ‘복세편살’이라는 말이 유치하다고 생각했으나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그녀의 말간 얼굴을 떠올리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난다. 그 담백하고도 다정한 말은 내게로 향하는 분명한 위로였다.나는 결심한다. 상대의 저의를 파악하는 것보다 상대의 눈동자를 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자. 어려운 상황에도 밝고 쾌활하게 웃는 사람을 그 모습 자체로 사랑하자. 그러한 시선을 가지는 것이야 말로 ‘복잡한 세상을 편하게 사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내일은 편안해지리라고 중얼거리다 보면 생각지 못한 행운이 다가온다고도 믿는다. 알다시피, 세상은 너무나 복잡해서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자꾸 벌어지니까. 그것이 꼭 불행의 형태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니까. 우리의 ‘복잡한 세상’이 ‘복(福) 가득한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

2023-09-05

신라 이사부 장군이 지켜온 독도·동해…이제는 우리가 지켜야 할 때

유충근 동해해양경찰서장 중국 당태종의 유명한 고사 중“창업이수성난(創業易守成難)”이라는 글귀가 있다. 이는“어떤 일을 이루기는 쉬우나 지키기는 어렵다”는 말로 나라를 세우는 것과 잘 지키고 유지하는 것 중 어떤 것이 더 어려운지를 신하들에게 물었다는 내용이다. 어떤 일을 유지하기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해양경찰 70주년을 맞이한 지금 우리는 해양패권의 경쟁 속에서 국가 안보와 국민의 생명 재산 등을 지키며 한 발자국씩 더 발전하고 있는지 오늘 나는 생각해 본다. 동해시 묵호진동 13번지, 이는 동해문화원과 국가기록원 동해시청 등을 통해 찾은 동해해양경찰서의 시작인 묵호기지대의 창설지이다. 동해해경은 1954년 묵호진동 13번지에서 해양경찰 묵호기지대 발대식을 거쳐 2010년 현재의 청사로 이전하기까지 70년간 동해를 지키고 있다. 우리 동해를 지키기 위한 노력은 신라시대 지증왕 13년 이사부 장군이 하슬라주에 군주로 임명되면서부터 시작됐다. 군주로 임명된 이사부 장군은 동해 먼바다에 있는 우산국(지금의 독도와 울릉도)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나무로 된 사자를 여러 개 만들어 겁을 주니 우산국(울릉도) 사람들이 놀라 항복한 일화는 우산국을 정벌한 이사부 장군의 지혜와 함께 신라 수군 양성에 큰 역할을 했다. 이런 이사부 장군의 기백을 이어받은 동해해경은 2002년 3월 해양경찰 최대 경비함정인 5001함(삼봉호·독도의 옛 지명)을 인수해 독도와 동해북방해역까지 광활한 동해를 수호할 수 있었다. 2006년 10월 23일 울릉도 북서방 117Km 해상에서 러시아 선적 시네고리예호가 침몰했을 때 동해해경은 삼봉호를 현장으로 보내 10여 일간의 수색 구조작업을 했다. 삼봉호는 거센 파도를 뚫고 북방한계선을 넘어 수색하던 중 러시아 선원 5명을 구조하고 1명에 시신을 수습했다.  이는 국내는 물론 러시아 현지에서도 큰 감동을 불러왔고, 감명을 받은 러시아 유명 화가는 1997년부터 2001년까지 4년에 걸쳐 그린 유화작품(가로 16m, 세로 1m)을 동해해경에 기증했다. 그는“러시아 선적 시네고리예호 침몰사고시 최악의 기상조건에도 불구, 한국 해양경찰의 10여 일간의 생사를 넘나든 구조 활동은 국적과 인종을 초월한 휴머니즘의 극치를 보여줬다”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이는 대한민국 국가 위상을 드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2014년 12월 1일에는 러시아 베링해에서 침몰한 501 오룡호를 수색하고자 삼봉호는 해양경찰 역사 중 처음으로 해외 자국선박 구조작업에 투입됐다. 38일간의 긴 수색작업으로 당시 평균 파고 4~5m 이상의 높은 파도와 초속 20m/s의 강풍이 부는 극한의 상황 속, 안타깝게도 실종자를 발견하지 못했지만, 한국인 6명의 시신을 인도받아 고국에 있는 가족의 품으로 보내드렸다..또한, 2021년 12월 울릉도 북동 131km 해상에서 5천t급 파나마 선적 화물선이 침몰해 3016 함(태평양 16호)을 현장으로 급파했다. 악천후 속 선원 18명 중 17명을 구조한 동해해경은 베트남 특명전권대사로부터 감사장을 전달받았고 현재까지도 우호적인 협력관계를 계속해서 이어 나가고 있다. 한편, 내부적으로 동해해경은 동해 북방해역 등 광활한 해양영토에서 불법 조업 외국어선 대응역량을 강화해 국민이 안전하게 조업할 수 있도록 대응체계를 지속적으로 보완하고 있다. 또한, 동해를 방문하는 많은 국민에게 연안안전정책 홍보 등을 통해 안전의식을 키우고 연안사고 예방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새로운 레저 트렌드에 맞는 수상레저활동 안전관리 대책을 세우고 시기에 맞는 특별단속기간을 정해 해양범죄 단속을 강화하는 한편, 해양 마약사범 근절 등 해양수사 전문가 양성에도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해양경찰 70주년을 맞이한 올해, 동해해경은 묵호기지대 창설지 위치에 동해해경 표지석을 설치, 국민에게 동해해경 역사에 대한 홍보를 이어 나갈 예정이다. 동해해경은 지난 70년 동안 크고 작은 많은 사건·사고를 처리하면서 성장해 왔고, 기본에 충실하고 현장에 강한 국민의 해양경찰이 됐다. 칠흑 같은 어두운 바다에서 한 줄기 빛을 뽐내는 등대의 불빛처럼, 우리는 국민의 신뢰를 받는 동해의 길잡이가 돼, 안전하고 깨끗한 동해를 만들고자 최선을 다할 것이다. 독도의 개척자 신라 이사부 장군은 지난 2012년도 표준영정으로 돌아와 삼봉호로 승선, 독도의 수호자 동해해경과 함께 독도와 동해바다를 굳건히 지켜 내고 있다. 동해해경을 지켜온 수많은 선배님과 592명의 든든한 소속 해양경찰관, 함정 18척, 그리고 이사부 장군, 그 기세를 오늘도 떠오르는 독도 동해의 태양을 보며 해양주권 수호를 다짐하고 또 다짐해 본다.

2023-09-05

‘마린머드’, 진주되나

홍석봉 대구지사장 진흙 속에 들어 있는 미네랄은 슈퍼박테리아, 살모넬라, 대장균 등 유해 세균으로부터 인체를 보호해 준다. 진흙 속 다양한 무기질과 미량 원소 등 영양소는 항균 작용을 도와 각종 피부질환과 물리치료에도 효과적이다. 진흙은 이렇듯 인체에 이롭다. 특히 해수와 오랜 시간 반응한 마린머드는 약리적 효능과 화장품 기능을 갖는다.경북 동해안 일대에 다량 분포한 ‘마린머드’가 뷰티산업 신소재로 떠올랐다. 유럽과 남미에서는 이미 테라피(치료) 산업용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마린머드를 활용한 뷰티 테라피 산업은 건강의 질을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에 편승해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다.사해의 머드는 머드팩, 화장품, 테라피 용도로 고가에 판매되고 있다. 경제 가치만 1조 원에 달한다. 최근엔 알래스카 빙하머드도 출시됐다. 뷰티 테라피 산업분야에서 마린머드의 글로벌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경북 동해안의 후포분지는 왕돌초가 퇴적물의 이동을 막고 있는 해저 지형으로 양질의 머드가 대량 부존돼 있다. 지질자원연구원 포항센터는 울진 후포 앞바다에 마린머드가 8만ha에 36억t 가량 산재한 것으로 추정한다.경북도는 최근 마린머드의 보습과 주름 개선, 항산화, 항염, 미백 등 뛰어난 효능을 확인했다. 마린머드의 화장품 원료 공정개발도 마쳤다. 효능평가와 함께 중국과 미국에 국제 뷰티산업 원료등록을 하고 한창 제품을 개발 중이다.경북도는 동해안 마린머드가 충분한 산업화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테라피와 의료제품 개발 등 국가지원 사업으로 육성할 계획이다. 관광 상품 개발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보령 머드축제를 뛰어넘는 울진의 마린머드 축제를 기다린다. 진흙탕 속에 흠뻑 빠져 맘껏 뒹굴 날을…. /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9-04

‘수소 도시’

남광현 대구정책연구원 연구본부장 지난 4월 10일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이하 탄녹위)는 정부 서울청사에서 공동위원장인 국무총리 주재로 윤석열 정부의 탄소중립녹색성장 추진 의지와 정책 방향을 담은 최상위 법정계획인 ‘제1차 국가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안)’(이하 기본계획)을 심의·의결하였다. 그리고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정부(안)으로 확정하였다.이 계획은 작년 8월부터 국책연구기관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기술작업반의 총 80회 회의와 연구·분석을 토대로 환경부, 산업부, 국토부, 과기정통부, 기재부 등 20개 관계부처의 협의를 거쳐 정부안을 마련하였다.3월 21일 정부안 발표 이후 탄녹위와 관계 부처는 대국민 공청회를 통해 각계 전문가 토론과 온·오프라인 국민 의견을 수렴하였다. 아울러, 각계각층의 폭넓은 의견 청취를 위해 과학기술계, 노동계·지역사회, 중소·중견기업, 청년·시민단체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와의 토론회·간담회(공청회 포함 총 15회)를 개최하고, 기본계획(안)에 각계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하였다. 이 계획은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목표로 하여 탄소중립 사회로 이행하고, 환경과 경제의 조화로운 발전을 도모’를 비전으로 설정하고 4대 전략과 12대 과제를 제시하였다.기본계획에서 2030년까지 우리나라 중장기 감축목표는 2018년(6억8천600만t CO2eq) 대비 40% 감축된 4억3천700만t CO2eq으로 설정하였다. 이렇게 새로이 설정된 감축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2030년까지 부문별 감축 시나리오도 조정하였다. 현실적 여건을 고려하여 산업 부문은 감축 후 목표배출량은 2억2천300(14.5%)만t에서 2억3천100(11.4%)만t CO2eq로 상향하였다.반면 태양광과 수소 등 청정에너지 관련 전환 부문 감축량은 확대(+400만t)하고 해외투자를 통한 국제감축 부문도 확대(+400만t) 하는 등 감축 수단별 이행 가능성 등을 고려하여 부문 간 감축목표량을 조정하였다.이렇게 윤석열 정부에서는 전환 부문에서 태양광과 더불어 수소 에너지와 관련하여 수소 생산·인프라와 수소 생태계를 적극적으로 양성할 계획이다. 생산·인프라는 수전해 기반 그린수소 등 핵심기술 실증 및 수소액화 플랜트·수소 배관망 등 인프라 구축을 확대하는 것이다. 수소 생태계는 내연차·선박·트램 등 수소 모빌리티 다양화, 수소 클러스터 및 ‘수소 도시’를 지정하는 것이다.산업통산자원부는 지난 1월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수소와 암모니아 발전량 비중을 2018년 0%에서 2030년과 2036년에는 각각 2.1%와 7.1%로 확대할 계획을 발표하였다.토요타시(일본)는 ‘수소 사회’ 구축을 추진하며 연료전지 자동차와 수소 인프라를 활용하고 있으며, 코펜하겐(덴마크)은 풍력을 활용한 수소 생산과 연료전지 교통수단을 운영하고 있다. 기본계획에서는 포항시를 포함한 6개 지역을 ‘수소 도시’로 시범 조성할 계획이다. 2030년 대구경북신공항 건설과 함께 공항신도시와 K-2 후적지 등에도 ‘수소 도시’ 조성이 기대된다.

2023-09-04

따라 하기라니

김규인 수필가 살인 예고 건수가 480건을 넘었다. 한 사람에서 시작한 살인 예고가 빠른 속도로 번진다. 이를 중·고등학생들이 따라 하더니 초등학생마저 살인 예고한다. 어찌하다가 이 지경이 되었는지 안타깝다. 살인 예고는 그 지역에 터를 잡고 사는 사람뿐만 아니라 국민 전체를 불안하게 한다. 사회가 안정되기를 바라는 바람과는 달리 어린 학생들마저 따라 하며 걷잡을 수 없이 사태가 커져만 간다. 많은 사람이 불안스레 지켜보는 와중에도 왜 이런 일을 계속하는지 알 수가 없다.여기에 더하여 초등학생들이 학교 앞 횡단보도에 드러눕기까지 한다. 촉법 소년은 죄를 저질러도 처벌받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초·중등 학생들의 도를 넘는 이러한 행동이 사회의 새로운 걱정거리로 떠오른다. 민식이법을 이용해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으려는 행위인지 유튜브 같은 소셜 미디어에서 돈벌이하려는 행위인지 알 수가 없다. 다만 늘어나는 따라 하기에 불안하기만 하다. 국가에서는 많은 인력을 동원하여 살인 예고를 한 사람을 붙잡고 횡단보도에 드러누운 학생들을 집으로 돌려보낸다. 유치원에만 다녀도 알 수 있는 사회 기본 질서를 지키는 일이 공권력을 동원해야만 하는지. 그렇지 않아도 사회의 힘들고 아픈 사람도 살펴야 하는데 말이다.그런데 막상 살인 예고를 한 사람을 붙잡아도 마땅한 처벌법이 없어서 다시 놓아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살인 예고는 점점 더 늘어만 간다. 아울러 촉법 소년이 처벌받지 않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이들을 위해 소모한 막대한 사회적 비용과 혼란은 오롯이 국민의 몫으로 남는다.말끝마다 국민을 위한다는 국회의원은 다 어디로 갔는지. 관련 법이 없어 처벌하지 못하고 불안한 사회를 쳐다보기만 하는 건지. 권력을 잡는 일에만 열중인 국회의원들을 보면 할 말을 잊는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법을 만들어 권력만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국민을 바라보아야 한다.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말이 빈말이 아님을 확인하고 싶다.촉법 소년 교육은 일차적으로 가정에서부터 시작하여야 한다. 자녀들이 사회에서 안전하여지려면 먼저 사회의 규범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 국가는 교육받지 못하는 아이들을 교육하여야 한다. 잘못한 일에 대해서는 처벌받는다는 사실과 법을 지켜야 자신이 안전하다는 깊은 인식을 심어주어야 한다. 학부모는 남에게 해를 가하고도 자기 자식만 안전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버려야 한다.살인 예고와 횡단보도에 드러눕기가 처벌받지 않아서인지 따라 하기가 늘어난다. 이제는 반사회적인 행위로 남의 이목을 끄는 행위를 멈추어야 한다. 자신이 지키지 않은 반사회적인 행위로 자신이 위해를 당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조금만 생각하면 사회를 위해 해야 할 일이 너무도 많다.사회는 우리 스스로 가꾸어 나가야 하는 생활공동체임을 인식해야 한다. 사람 인(人)자가 막대 두 개가 서로 기댄 것처럼 사회는 서로 의지하며 사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아무런 의미 없는 따라 하기를 이제는 멈추어야 한다. 주위 사람들을 향해 따뜻한 마음을 나눈다면 그래도 세상은 살만한 곳이다.

2023-09-04

고속열차를 타고 오가는 것들

홍덕구포스텍 소통과공론연구소 연구원 지난 9월 1일, 포항과 수서를 오가는 SRT 고속열차가 개통되었다. 이로써 포항역에서 서울 수서역까지 약 2시간 21분 만에 이동할 수 있게 되었다. 서울 강남권에 용무가 있는 경북 동해안 지역 주민들에게는 희소식이 아닐 수 없으며, 관광객 유치에도 상당한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한 가지 명심해야만 하는 것이 있다. 교통, 통신 기술의 발달로 인해 지역이 서울~수도권과 더 가까워질수록 오히려 지방 소멸이 가속화되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한 예로 2004년 KTX 경부선이 개통되며 서울~부산 2시간 반 시대가 열린 이후, 많은 환자들이 부산권 병원 대신 서울의 대형 종합병원을 찾게 되면서 지역 병원들이 어려움을 겪게 된 사례가 있다.이러한 환자 유출 현상은 단지 재정적 어려움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지역 출신 인재들이 지역의료에 종사하는 동기를 약화시키게 되어 지역의료 시스템 전체의 위기를 초래한다. 지금 당장은 지역 병원과 서울권 병원 사이에서의 선택의 문제에 불과해 보일지 몰라도, 중장기적으로는 아주 가벼운 질병이 아니고서는 지역에서 치료가 불가능해 대부분의 환자가 서울로 가야만 하는 상황이 예상된다.이러한 문제는 지역 인재 유출이라는 측면에서도 진지하게 검토되어야 한다. 지역의 위기와 지방 소멸을 우려하지 않는 지역은 없지만, 그 해결책으로는 고속철도나 공항과 같은 대형 교통인프라의 유치가 여전히 1순위로 내세워진다. 이러한 교통인프라의 확충을 통해 서울~수도권과의 체감적 거리가 가까워지면 지역으로 사람과 자본이 대거 유입되리라고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행기와 고속철도는 일방향이 아니라 양방향으로 움직이므로, 지역에서 외부로 유출되는 것들이 필연적으로 생겨나게 된다. 부족한 일자리와 경직된 문화로 인해 우수한 인재들이 지역을 이탈하는 속도 또한 가속화될 수 있다.지역성은 중심(서울~수도권)과의 상대적 관계 속에서 많은 부분이 형성되는 정체성이다. 지역을 지역답게 만드는 요소가 존재하며, 이것은 중심로부터의 상대적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유지되기 어렵다. 필자의 작은할아버지가 1980년대 초 포항에서 일하실 때는 서울에서 고속버스로 여섯 시간이 넘게 걸렸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포항과 서울 간의 물리적 거리는 그때나 지금이나 동일하지만, 상대적·체감적 거리 차이는 비교할 수 없이 크다. 고도로 발달된 현대 교통기술이 더 빠른 속도로 사람과 물자를 이동시킬수록 지역은 지역다움을 잃어가게 된다.그렇다면 지역성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지역을 활성화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역설적으로 지역사회의 속도를 더더욱 가속화할 필요가 있다. 서울~수도권과 같은 메트로폴리스의 속도를 무비판적으로 지향하라는 뜻은 아니다. 물질문명의 발달 속도에 맞춰 정신문화의 진보도 가속화시켜야 한다는 의미이다. 예컨대 성차별적 문화, 가부장제와 남성중심주의, 조직에서의 수직적 위계질서 등을 타파하고, 지역사회와 문화를 이끌어갈 젊은 인재들이 이런 문제에 염증을 느껴 지역을 떠나는 일을 방지해야 한다. 고속철도의 속도가 지역사회의 타성을 변화시키는 계기로 작용하길 기대한다.

2023-09-04

지오투어리즘, 울릉도

광활한 동해 가운데 아직도 활동하는 화산섬 일대가 있다. 하늘이 허락해야 볼 수 있다는 말처럼 이곳은 그날 날씨 상황에 따라 눈에 담을 수 있는 곳도 가변적이다. 최근에 대두되는 백두산 폭발만큼이나 초대형 폭발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곳, 울릉도 일대는 오늘도 천혜의 자연을 만끽하려 사람들이 모여든다. 만약 운이 따른다면 독도에 발을 디디게 될 행운을 누릴지도 모른다는 기대도 한다.대개는 1만년 이내에 화산활동이 있었으면 다시 활동을 재개할 수 있는 활화산으로 분류한다. 울릉도는 약 250만년 전에서 5천년 사이에 형성되었는데, 바닷속 해저화산에서 용암이 여러 차례 분출되어 바다 위로 모습을 드러내었다. 해저화산이 섬이란 이름의 땅이 되던 모습은 2021년 8월 일본의 해저화산 폭발이나 2019년 통가의 해저화산 폭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형성된 섬은 대부분 바닷물에 의한 침식으로 사라지는 경우가 많지만 일부는 살아남아 영토 확장에 기여하기도 한다. 울릉도는 마지막 화산 폭발이 약 5천년 전쯤 안으로 조사되었고, 활동 주기가 3천년에서 7천년 사이로 확인되었다. 또한 최근에 지하 100㎞에 거대한 마그마방이 존재할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실제로 온천이 없는 울릉도의 지하수 온도가 63~99℃까지 올라가는 것으로 측정되었고, 지열 발전을 위한 연구에서도 1㎞ 땅속으로 내려갈 때마다 온도는 급속하게 올라가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버블스프링’이라하여 마그마가 오래 머금기 어려운 이산화탄소가 배출되는 현상이 발견되기도 했다. 이만하면 아직도 살아있음이 확인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울릉도는 화산의 총길이가 3천m나 되지만 현재 물 위로 보이는 부분은 겨우 600m에서 1천m에 불과하다. 해저화산의 일부가 물 위에 보이는 형태인만큼 섬의 경사도가 심한 편이고 해식절벽이나 침식동굴, 부석 등 화산활동과 이후의 결과물을 쉽게 관찰할 수 있다. 저동·도동해안은 초기 화산활동의 지질구조를 잘 간직한 곳으로 주로 현무암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이하게도 마치 치약을 길게 짜놓은 듯 길고 둥근 모양(베개모양)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를 베개용암이라 부른다. 울릉도 개척항으로 유명한 학포해안은 해안을 따라 집괴암·응회암·조면암층이 분포되어 있는데, 집괴암과 응회암이 많은 지형은 침식되어 만(들어간 곳)이 되고, 단단한 조면암층이 많은 곳은 곶(튀어나온 곳)이 되었다. 해안절벽은 침식으로 붕괴되면서 가파른 절벽이 만들어졌으며 그 위로 국수처럼 길고 각진 기둥이 생성되어 주상절리를 이루었다. 향나무가 자생하는 대풍감이나 노인봉·송곳봉 그리고 국수바위에서도 잘 발달된 주상절리가 발견된다. 또 본래는 울릉도와 한 몸이었으나 이제는 동떨어진 섬이 된 코끼리바위는 높이 약 10m 아치형의 해식동굴이 코끼리의 코를 이룬다. 이러한 코부분이 침식되어 부서진다면 아마도 세 명의 선녀처럼 서 있는 삼선암이나 거북바위처럼 독립된 촛대 모양의 바위가 될 것이다. 이런 침식이 지속되면 언젠가는 관음도의 관음쌍굴도 바다가 시원하게 보이는 구멍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전에 높아진 해수면에 잠겨 보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더 높지만 말이다.강물에 의해 침식된 지형은 울릉도 남부의 주요 상수원이 되는 봉래폭포와 용출소가 있다. 용출소는 지하수가 단단한 조면암을 만나 지표로 솟아올라 형성된 물웅덩이로 약 2만t의 물을 저장할 수 있다. 봉래폭포는 오르는 길에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풍혈(바람구멍)이 있어 산책하기 좋으며, 울릉도 특유의 식생이 발달하여 여러 식물을 관찰하기에도 편한 장소이다. 사실 대다수 희귀식물은 성인봉 인근의 원시림에 주로 자생한다. 너도밤나무 숲·섬조릿대·솔송나무·섬단풍나무·섬피나무 등과 섬말나리·섬노루귀·섬바디 등 총 200분류군이 발견되었고 보존을 위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이러한 원시림은 화산폭발때 발생한 부석이 비옥한 토양층을 형성하여 조성되었다. 대나무가 많이 자라 죽도라 불리는 울릉도의 한 부속섬도 얇은 부석층으로 덮여있다. 울릉도 화산의 분화구에 해당되는 나리분지는 폭발 후 그 일대가 가라앉아 형성된 칼데라이자 그 안에 또 다른 작은 화산 알봉을 품은 이중화산 분화구이다. 두 개의 칼데라가 겹쳐 만들어진 이곳은 울릉도에서도 눈이 많이 내리기로 유명하여 해마다 눈꽃축제가 열린다. 알봉은 점성이 강하고 끈적한 용암이 봉긋한 돔형태로 굳어진 것으로 마치 새의 알처럼 생겼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분화구가 뚜렷하지 않아 살짝 패인 꼭대기를 분화구로 추정하고 있다.우산국·우릉도·무릉도·우릉성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며 우리 역사의 한 자리를 차지한 울릉도는 현재 지오투어리즘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화산으로 형성된 지질과 그 이후 침식된 세월의 흔적을 머금었으며, 독자적으로 자생한 원시림이 남아있고, 다양한 자연환경을 엿볼 수 있다. 여기에 울릉도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그들이 만들어 온 역사가 흥미를 더한다. 오늘도 하늘이 허락한 사람들은 잔잔한 바람과 고요한 파도를 만끽하며 울릉도로 향하는 배에 몸을 싣는다./최정화 스토리텔러◇ 최정화 스토리텔러 약력 ·2020 고양시 관광스토리텔링 대상 ·2020 낙동강 어울림스토리텔링 대상 등 수상

2023-09-04

바람과 함께 사라진 시대

1936년에 출판된 마거릿 미첼(Margaret Mitchell)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 표지. 소설을 원작으로 그것을 영상화하는 경우는 대부분 주인공에 어떤 유명 배우를 캐스팅하더라도 소설 속 주인공에는 미치지 못하는 경우는 흔한 일이다. 소설의 주인공이란 본디 독자의 꿈속에 존재하는 것이므로. 독자가 꿈꾸는 소설 속 나만의 주인공을 현실 세계의 누가 따를 수 있을 것인가. 꿈과 경쟁할 수 있는 현실이란 본디 존재할 리 없는 것이다.하지만, 간혹 먼저 나온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인데도 마치 그것 먼저 존재했던 것처럼 우리의 기억의 선후 관계를 바꾸는 영화가 있다. 그 영화, 소설 원작이 있다고 말하면 깜짝 놀라게 되는 경우도 있고, 소설의 주인공을 떠올리려고만 하면 어떻게 해도 그 주인공을 연기했던 배우만 떠오르는 경우가 그것이다. 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본디 소설은 시각적 이미지가 존재하지 않는, 문자의 추상성과 그 연결을 통해 그것을 읽는 독자의 마음속에 떠오르는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 이미지의 각인이므로, 그것은 타인과 공유되지 않는다. 시각화된 이미지가 현대인의 마음을 전유하는 시대라고 해도, 꿈속에 있던 그 이상을 피와 살을 가진 인간이 극복해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은 당연하다.하지만,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주인공 ‘스칼렛 오하라’를 떠올려본다면, 어떤가? 아마 마거릿 미첼(Margaret Mitchell·1900~1949)의 원작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36) 속의 주인공이 아니라, 2년 뒤에 나온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스칼렛을 연기했던 ‘비비안 리’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지 않을까. 많은 소설 속 주인공을 연기했던 배우들이 소설 속 주인공을 둘러싼 꿈과 현실 속 구체적 인물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사람들의 인식 너머로 사라져 버렸지만, 비비안 리가 연기했던 스칼렛 오하라만큼은 오히려 사람들의 꿈 앞으로 나와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냈다.오랜만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다시 꺼내 읽으며, 비비안 리가 스칼렛 오하라로서, 그리고 클라크 게이블이 레트 버틀러로 미국 남북전쟁의 한복판을 걸어 다니는 것을 보며 어떻게 그들이 독자들의 마음속 꿈에까지 걸어들어올 수 있었을까 생각한다. 비비안 리(Vivian Leigh). 물론, 비비안 리가 없었어도, 마거릿 미첼의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속 스칼렛 오하라는 그 자체로도 모든 사람에게 각인될 만큼 멋진 주인공이다. 거친 남부의 타라 농장에서 살아가며 숙녀가 되는 가장 보수적인 교육을 받았지만, 그에게는 세상에 대한 정열이 숨겨져 있다. 이 스칼렛 오하라는 영국 빅토리아 시대를 거쳐 성장해온 여성 작가들의 소설 속 주인공들이 미국으로 옮겨와 보다 자유로운 형태로 실현된 것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남북전쟁이라는 전통과 명분, 그리고 자본이 얽히는 시대를 배경으로 좌충우돌하는 스칼렛 오하라와 레트 버틀러의 사랑은 계속해서 어긋나면서 계속 이어진다. 스칼렛은 자신이 사랑했던 애쉴리 윌크스에 대한 질투이자, 가문끼리의 거래로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와 한 번 결혼했으나 결혼 직후 남편이 죽어 바로 혼자가 되고, 전쟁으로 타라 농장을 떠나 있다가 돌아와 폐허만 남은 농장을 떠안는다. 농장주로서 피할 수 없는 선택의 와중에, 스칼렛은 돈 때문에 다시 한 번 더 결혼한다. 스칼렛은 한 번은 가문 때문에, 한 번은 돈 때문에 결혼하고, 스칼렛과 레트의 사랑은 그렇게 부유해 가는 것이다. 이 소설은 그렇게 사랑보다 시대를 견뎌내는 인간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어쩌면 스칼렛 오하라가 단지 로맨틱한 플롯의 일반적 주인공이었다면, 아마도 비비안 리가 연기했던 그 인물이 그토록 우리에게 각인되는 일은 없었을 지도 모른다. 그렇게 바람과도 같이 시대는 사라지고,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르듯, 우리의 삶은 계속된다. 그것이 우리 인생이니 말이다./홍익대 교수

2023-09-04

당론으로 징계감 아니라고 말해보라

김진국 고문 가재는 게 편이었다. 국회 윤리위원회 제1 소위가 지난달 30일 거액의 암호화폐(코인) 보유와 국회 회의 중 투자로 비난받은 김남국 의원 제명안을 부결했다. 거센 여론의 비난을 받았지만, 시간을 끌다 결국 유야무야(有耶無耶) 끝나가는 셈이다. 국회 윤리위가 늘 그런 식이다.21대 국회 들어 49건의 징계안이 제출됐지만, 실제로 징계받은 사람은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 하나다. 다수당인 민주당이 본회의에 직권 상정한 덕분이다. 민주당의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 강행 처리 때 법사위원장석을 점거했다고 징계했다. 20대 국회 47건, 19대 국회 39건도 모두 흐지부지됐다. 그 가운데 75건은 임기가 끝날 때까지 처리하지 않고 뭉개다 저절로 사라졌다.김남국 의원은 국회 상임위나 본회의 도중 수백 차례 코인 거래를 했다. 코인에는 젊은이들의 피눈물이 담겨 있다. 부동산과 취업 문이 막혀 있는 상황에서 젊은이들 사이에 코인 열풍이 불었다. 대부분 큰 손실을 봤다. 의원들에게 백지신탁을 요구하는 건 공직을 이용한 불공정 게임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코인은 주식보다 더 불공정한 게임이다. 그것도 국정을 수행하는 중에 투자해 수십억 원의 수익을 올렸다.국회 윤리심사자문위원회는 지난 7월 20일 김 의원의 의원직 제명을 권고했다. 외부 인사 8명으로 구성돼 그런 결론을 냈다. 그러나 윤리위 소위원회는 국민의힘 3명, 민주당 3명, 6명이다. 표결 결과 3 대 3이었다. 민주당 소속 의원 3명이 모두 반대한 것이다. 김남국 의원은 더불어민주당 소속이었으나 코인 논란으로 지난 5월 탈당했다. 그러나 민주당 김종민 의원은 이재명 대표가 지시하지 않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김남국 의원의 부도덕성은 결국 민주당의 책임, 이재명 대표의 책임이 될 수밖에 없다.김 의원이 탈당한 것도 결국 눈속임이다. ‘검수완박’ 법안을 처리하기 위해 위장 탈당했던 민형배 의원을 다시 복당시킨 데 이어 재산 축소 신고로 공직선거법 위반 유죄 선고를 받은 김홍걸 의원을 출당했다가 복당시켰다. 명분이 없다. 지금도 성추행 혐의를 받는 박완주 의원, 정대협 공금 유용과 관련한 윤미향 의원, 돈 봉투 살포와 관련한 윤관석·이성만 의원 등이 탈당해 무소속으로 있지만 모두 민주당 의원처럼 움직인다. 탈당과 제명이 민주당의 책임을 피하기 위한 수단이다. 그것도 몇 달을 못 참고 복당시킨다. 국민의 눈만 잠시 속이자는 거다.민주당 의원들은 코인을 보유한 다른 의원들과의 형평성 문제를 제기했다. 다른 사람도 문제가 있으면 처벌하면 된다. 추가로 코인 거래 조사를 하겠다던 김상희·김홍걸·전용기 의원도 문제없다며 최근 조용히 끝내버렸다. 도긴개긴이니 모두 눈감아주자는 건 결국 의원들의 짬짜미다. 분노한 국민을 또다시 속이는 일이다. 더군다나 김남국 의원은 코인 보유만이 문제가 아니다. 이태원 참사, 법무부 장관 청문회처럼 심각한 국정 논의 중에도 수백 차례 코인 거래를했다. 가난 코스프레를 하고, 진상 조사 과정에도 수없이 거짓말을 했다.또 김 의원이 내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는 핑계다. 민주당 의원들은 “사실상 정치 생명이 끝난 것”이라고 주장했다. 탈당과 복당을 반복하는 사람들의 말을 믿을 수는 있나. 지금 탈당하고, 불출마 선언을 하는 것은 의원 자격이 없음을 자인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임기는 왜 채우려 하나. 내년 4월 총선까지 무엇을 할 생각인가. 활동을 못 해도 억대 세비는 챙기겠다는 욕심인가.결국 국민 여론보다 의원끼리 의리가 중요하다. 다른 의원들도 그 정도 약점은 안고 있다는 고백일 수 있다. 그렇다면 차라리 “징계감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게 정직하다. 외부 인사로 구성된 자문위는 의원직 제명을 권고했는데, 의원으로 구성된 윤리위는 아무 이유도 없이 뭉개버렸다. 무용지물인 이런 윤리위로는 부패 정치인에게 면죄부를 주는 이상의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다. 표결 의원들도 비공개회의에 숨어서 오물을 덮지 마라. 당당하다면 공개회의에서 자기 의견을 밝혀라. 그리고 책임을 져라.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3-09-03

정직이 살아있는 한국 사회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며칠 전 비상사태가 일어났다. 핸드폰을 분실 했다.자전거를 즐겨 타는데 자전거 앞의 바구니에 넣어서 음악을 들으면서 자전거를 탄다. 주머니에 넣고 이어폰으로 들어도 좋지만, 공간에 퍼지는 음악을 듣는 맛을 훨씬 좋아하기에 앞 바구니에 넣고 음악을 듣는 걸 더 좋아한다.커브를 돌 때 떨어진 듯한데, 그때 음악을 듣고 있지는 않았다. 음악을 듣고 있었으면 휴대폰이 떨어지면 음악이 중단되니까 인지했을 텐데라는 후회를 했다.“당분간 PC 카톡으로만 연락됩니다”…. 라고 여러 친구들, 그룹들에 연락한 후, 한 친구로부터 ‘구글 위치확인’서비스를 받아 보라고 하는 충고를 받았다. 근처 단골 핸드폰 가게에 가서 구글 서비스를 해보자고 하는데 구글 ID 등이 필요하다고 해서 일단 더 찾아보자고 했다.자전거로 다닌 길을 두 번이 지나면서 계속 찾았지만 없었다. 그리고 1시간 반이 지났다. 점점 찾을 가능성은 줄어들고 있었다. 주변 경찰서에 가서 유실물 신고를 했다. 경찰서에서는 핸드폰은 찾는 경우가 많으니 염려 말라고 했지만, 여전히 맨붕 상태는 계속 되었다.다시 집으로 돌아와 구글 ID/PW를 검색해서 다시 핸드폰 가게를 찾았다. 그리고 구글 위치 추적에 성공했다. 자전거로 다닌 길 어떤 커피숍에 있다고 나왔다.그곳으로 달려갔다. 그 커피숍에서는 주인이 없다고 펄쩍 뛰었다. 구글 위치에 여기라고 나온다고 나는 주장하고 그는 없다고 의심하지 말라고 한다.결국 그 커피숍 근처를 뒤지는데 없었다. 주인이 나와서 같이 찾기로 했다. 커피숍 근처에 편의점이 있었는데 그 편의점은 월요일 휴일이었다.그런데 갑자기 그 커피숍 주인이 “저 테이블에 있는 건 무어죠 ?”라고 외쳤다. 찾았다! 핸드폰은 거기 있었던 것이다.내가 감동을 받은 것은 (1)구글의 기술력! 정확히 핸드폰이 어디 있는지 위치를 알아냈다. 정말 신기했다. (2) 한국민의 양심! 누군가 길바닥에 떨어진 걸 주워서 길거리 편의점 탁자 위에 올려놓았고 그것을 2시간 동안 손댄 사람이 없었다.다행히 그 편의점이 오늘 휴점 덕분에 드나드는 사람이 없었지만, 그래도 2시간을 그 탁자 위에 있었다는 건 한국민의 양심이 살아있다는 증거 아닐까?가져가도 팔기도 쉽지않고 절도로 체포될 수도 있고 아마 그 자리에 놔두는 게 제일 안전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거기 핸드폰이 그대로 놓여 있는 건 선진국 영국, 일본 등에서 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문득 10년 전 독일 생활이 생각났다. 처음 독일의 드레스덴이라는 동네에 도착해서 전차를 타는 방법을 모를 때 50유로의 티켓을 사면 한 달 동안 전차, 버스 등 교통수단으로 모든 시내 및 일정한 거리의 시외까지 다닐 수 있다는 것을 한 교민이 알려줬다. 그 티켓을 끊어서 가지고 돌아다니면서 느낀 것이 참 많았다. 우선 첫 시승 때 전차 내에서 첫 시승임을 스스로 기계로 체크하게 되어 있다. 양심적으로 하도록 돼 있어서 승객이 첫 구입한 티켓을 언제부터 사용하는가를 스스로 신고하는 시스템이었다. 한 달이라는 기간이 티켓을 발행할 때부터 사용이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첫시승 때 스스로 신고 하도록 돼있는 인상적인 시스템이었다. 열심히 한 달 동안 학교를 오가고 돌아다녔다. 그러나 거의 한 달이 지나도록 전차, 버스를 탔지만 티켓검사를 한 번도 하는 경우가 없었다. 결국 승객들이 알아서 자기가 필요한 티켓을 구입하여 양심적으로 가지고 다닌다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었다. 한 달이 다 지나가던 어느 날 처음으로 조사원의 티켓검사가 시작됐다. 나는 속으로 아마 여러 사람 걸리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건 한 달 내내 티켓검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내 예상과는 달리 단 한 사람도 티켓을 소지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또 한 번은 배를 타고 인근의 마을로 여행을 하는데 배 안에서 음식주문을 받아서 커피, 차, 식사 등을 가져다 주는 것이었다. 가격에 대한 이야기도 없고, 청구서도 없었다. 속으로 아마 티켓값에 포함되어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다.그러나 배를 내릴 때 쯤 되니까 각자가 알아서 식사비용을 계산하는 것이었다. 배에서 내리기전까지 여러 정거장이 있었고 화장실이나 갑판으로 가기 위해 자리를 여러 번 떠났지만 아무도 제지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대로 중간 정거장에서 내릴 수 있는 기회도 여러 번 있었다.음식값을 계산하라고 강요하는 직원도 없었다. 내리기 전에 알아서 양심적으로 계산하고 내리는 그런 시스템이었다. 이러한 시스템을 보면서 신선한 충격을 느꼈다. 과연 정직한 사회란 무엇인가를 실감했다.우리 사회도 과거와 비교하면 사회 곳곳에 정직성이 향상된 것도 사실이다. 공공질서도 많이 좋아졌고 준칙성은 나의 젊은 시절보다는 훨씬 좋아졌다.이번 핸드폰을 잃어버린 날 그날은 한국인의 양심에 감동 받은 날이었다. 정직이 살아있는 한국사회라는 생각이 들었다.핸드폰을 찾아 자전거를 타고 귀가하는 길은 날아갈 것 같았다. 신고취소가 필요하지 않을 듯해도 경찰서에 들러 찾았다고 보고 하고 유실물 신고를 취소했다. 경찰들의 얼굴에도 잔잔한 미소가 번져갔다.

2023-09-03

‘용인 반도체클러스터’ 재생에너지 100% 공급방안

위현복(사)한국혁신연구원 이사장 대한민국 미래 먹거리로서 2042년까지 삼성전자가 300조원을 투자하기로 계획한 ‘용인 반도체클러스터’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생산 시설과 200여 개의 반도체 팹리스, 소재, 부품, 장비 기업들이 순차적으로 입주할 예정이다.일간 전력수요는 2029년 0.4MW를 시작으로 2042년 7GW, 2050년엔 10GW 이상일 것으로 관측된다. 일간 10GW는 우리나라 연간 최대 전력수요량(피크전력)의 10분의 1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양인데, 이 정도 전력을 공장이 돌아가도록 24시간 꾸준히 공급해야 한다.또한 용인 반도체클러스터에서 사용하는 전기는 전부 재생에너지라야 하는데 문제가 있다. 삼성전자의 주요 고객사 중 하나인 애플이 2030년까지 RE100(제품 생산에 100% 재생에너지 사용)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애플을 필두로 한 글로벌 IT기업들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소요전력에 대해 재생에너지 100% 공급을 바탕으로 사업이 추진되어야 한다는 점이다.이 계획에는 두 가지 큰 문제가 있다.첫 번째는 그 막대한 양의 전력을 용인까지 어떻게 가져오느냐는 문제다. ‘평택 반도체단지’에 필요한 전력을 끌어오기 위해 당진시에서 평택 반도체단지까지 송전선로 34.2Km를 구축하는 사업이 당초 2015년 준공 계획이었지만 당진지역의 반대에 부딪혀 아직도 준공하지 못한 사례를 볼 때, 전국에서 10GW 전력을 모아서 용인까지 끌어온다는 계획은 애시당초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두 번째는 용인 반도체클러스터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려면 100% 재생에너지 공급이 필수사항인데도 불구하고 재생에너지 공급대책은 없고 LNG, 원전, 석탄전력을 공급할 계획을 세우고 있으니 답답하기 짝이 없다.삼성전자의 주요고객인 애플은 2030년까지 모든 제품을 100% 재생에너지로 생산하며, 납품기업들에게도 재생에너지 100% 사용을 압박하고 있다. 삼성전자 또한 2050년까지 세계 모든 사업장에서 100% 재생에너지 전환을 달성할 계획이다. 그런데 애플 등 글로벌 IT기업들의 고객 수요인 RE100을 2030년까지 못 맞춰 줄 경우, 2042년까지 용인 반도체클러스터 조성이 가능할까? RE100이 불가능하다면 삼성이 용인에 반도체 클러스터를 끝까지 추진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거듭 말하지만, 용인 반도체클러스터는 첫 단계부터 재생에너지 100% 사용에 초점을 맞춰서 조성해야 한다. 필자가 그간 현장에 부딪히며 축적한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제안하는 ‘용인 반도체클러스터 재생에너지 100% 공급방안’에 대한 의견은 다음과 같다.용인시와 반도체클러스터 인근 화성시, 안성시, 평택시 등 2~3개시의 농지에 ‘첨단 스마트팜과 수소연료전지 융복합 재생에너지 단지’를 조성하는 것이다. ‘지역특화산업특구’를 지정해서 개발하면 농업진흥지역에서도 스마트팜과 수소연료전지 발전소를 건설하는 것이 가능하다.쌀농사만 짓는 농지에 스마트팜을 조성하고 지붕일체형 태양광으로 건설하는 스마트팜의 지붕과 수소연료전지발전을 통해 생산되는 신재생에너지는 반도체클러스터에 재생에너지 100% 공급이 가능하게 할 수 있다.그러면 10GW의 재생에너지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얼마의 농경지가 필요할까. 50KW의 전력생산이 가능한 첨단 스마트팜 1개동을 짓는데 150평의 농지가 필요하다. 따라서 1GW(100만Kw)의 재생에너지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300만평의 농지가 소요된다. 그러므로 10GW의 재생에너지 생산을 위해서는 3천만평의 농지에 첨단 스마트팜을 2027년부터 매년 200만평씩 15년간 조성하면 2042년엔 용인 반도체클러스터에 재생에너지 100%를 공급할 수 있다.첨단 스마트팜과 병행해서 수소연료전지발전소를 건설해서 운영하면 용인 반도체클러스트에 100% 신재생에너지 공급이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온다.용인시 농경지가 2천200여 만평이니 화성, 안성, 평택 등 이웃 시들을 참여시키면 충분히 가능하다. 농민들의 평균 경작 면적이 약 3천평 정도 되므로 1만 농가를 참여시키면 부지 문제는 해결 가능하다.첨단 스마트팜을 바탕으로 하는 지역특화산업특구는 벌써 몇몇 군데에서 추진되고 있는데, 첨단 스마트팜에 협동조합 형태로 농민들이 농지를 가지고 참여하면 쌀농사에 비해 100배 정도 초고소득을 창출할 수 있다. 용인 반도체클러스트는 용인시를 비롯한 주변 농민들에게도 전통적인 쌀농사에서 첨단 바이오산업에 참여하고 농가소득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용인 반도체단지클러스터 주변 농지를 활용해서 재생에너지를 공급할 경우 먼 지역에서 송전하느라 설치하는 송전탑 문제로 인한 주민과의 갈등도 없어질뿐더러, 원거리 송전에 따른 전력 손실 또한 줄일 수 있다. 더군다나 주변 농지에서 첨단 스마트팜 조성을 통해 전력을 공급하게 되는 농민들은 용인 반도체클러스터 조성에 막대한 기여를 한다는 자부심뿐만 아니라 첨단 바이오산업을 통하여 상상치도 못한 소득도 생기는 그야말로 기업과 지역 주민의 상생 발전모델이 될 것이다.

2023-09-03

노화와 죽음을 넘어선다면?

김규종 경북대 교수 오브리 드 그레이의 ‘노화의 종말’(2007)에서 발원하여 데이비드 싱클레어와 매슈 러플랜트의 ‘노화의 종말’(2020)과 호세 코르데이로와 데이비드 우드의 ‘죽음의 죽음’(2023)으로 이어지는 노화의 종식과 불사(不死)에 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이런 논의 사이에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2015)가 자리한다.‘사피엔스’에서 하라리가 제시한 것은 ‘길가메시 프로젝트’였다. 사피엔스의 가능 최대수명인 125세의 네 배에 이르는 500세 인생에 도전하는 기획이 길가메시 프로젝트다.그런 문장과 만났을 때 ‘농담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요즘엔 ‘그럴 법도 하겠군!’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만큼 현대의학과 약학, 여타 분야의 과학기술 발전이 눈부신 것이다.어렸을 때부터 우리의 눈과 귀를 가장 자주 자극한 네 글자는 생로병사(生老病死)일 것이다.인간에게 숙명처럼 내장된, 누구도 거역할 수 없고, 비켜 갈 수 없는 필멸과 그 대척점에 서 있는 불사의 신! 연역법과 귀납법의 단골 소재로도 쓰였던, 누구나 죽는다는 자명한 논리. 그런데 그것을 뒤집겠다는 과학적 도전이 진행되고 있다.죽음을 앞두고 10년 세월 병원을 들락거리고, 요양원과 요양병원 신세를 진 끝에 인생과 작별하는 요즘 세태에서 보면, 노화의 종말과 장수는 분명 축복이다. 40대에 찾아오는 노화의 첫 번째 제비를 20대나 30대로 돌려놓음으로써 건강과 활기를 유지하면서 노화와 작별하고, 마침내는 죽음을 망각하게 되리라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2017년 가을학기에 디지스트에 출강하면서 만난 뇌 전공 대학원생과 이 문제를 생각해본 일이 있다. 20대 중반의 청춘인 그는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는 500년은 살고 싶다는 것이다. 젊은 대학원생이 진지하게 제기하는 죽음의 공포에 나는 단출하게 대답했다. “그 장구한 세월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지, 생각해봤니?!”근자에 만난 고교 동창생이나 선배 교수들과 노화의 역전(逆轉)과 영생불사 혹은 최소 150년 200년 살아가는 인생 문제를 다시 꺼내 들었다. 흥미로운 점은 누구도 그렇게 긴 세월 살고자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아버지와 어머니는 150살, 아들딸은 120살, 손자는 90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는 게 대체적인 반응이었다.하지만 세태는 조변석개(朝變夕改)가 다반사(茶飯事) 아닌가?! 불과 한 세대 전에 남녀의 결혼 적령기는 모두 30살 이전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어떤가?! ‘둘만 낳아 잘 기르자’ 하던 산아제한 포스터 문구가 ‘둘도 많다’로 바뀐 게 40년도 안 되었다. 그런데 지구촌 최악의 저출산 국가 운운하면서 나라 망할 것처럼 호들갑 떠는 시대 아닌가 말이다!그래서다. 우리가 잘 알지도 모르는 상황에 광속(光速)으로 다가오는 노화 역전과 무병장수 시대를 무작정 맞이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심사숙고(深思熟考)해보자는 게다.2천500년 전에 공자가 ‘인무원려(人無遠慮) 필유근우(必有近憂)’라 하지 않았던가?!

2023-09-03

합계출산율 0.46명인 곳도 있다

우정구 논설위원 통계청 발표에 의하면 지난 2분기(4월∼6월)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역대 최저치인 0.70명으로 조사됐다. 작년 0.78명에서 역대 최저치를 다시 경신했다. 0.6명대가 초읽기에 들어섰다는 걱정스러운 분석이다.알려진대로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OECD 국가 중 꼴찌다. 영국 옥스퍼드대학 인구문제연구소는 일찍이 한국의 출산율 추이를 두고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사라질 국가로 꼽았고, 그 시기가 2750년이라 했다.1970년대 우리나라 한해 출생아 수는 100만명이었다. 이것이 50년후(2020년)에 와서는 30만명 아래로 곤두박질쳤고 작년에는 24만9천명까지 떨어졌다. 최악의 출생율이다.합계출산율은 한 여성(15세∼49세)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아이의 수다. 국가별 출산율 비교나 한 사회의 인구수 변화를 예측하는 중요한 자료다.이번 조사에서 대구는 전국 평균치에 못미치는 0.67명으로 나타났다. 시도별로 서울(0.53명), 부산(0.66명) 다음으로 전국에서 세 번째로 낮았다. 또 전국 구군별로는 대구 서구가 0.46명으로 전국 두 번째로 낮았고 대구 남구는 0.49명으로 전국 하위 8위를 기록했다. 가장 낮은 합계출산율을 보인 곳은 서울 관악구(0.42명)다.기초자치 단위별로 볼 때 상당수 지역은 이미 인구소멸이 시작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설상가상으로 우리나라 청년층의 결혼인식이 매우 부정적이라는 사실이다. 최근 통계청의 청년의식 조사에서 결혼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는 비율이 36%에 그쳤다. 특히 여성의 65%는 결혼을 해도 자녀를 둘 필요가 없다고 대답했다. 한국의 인구 재앙은 이제 시간문제가 됐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9-03

안다는 믿음

유영희 작가 며칠 전 유명 소아정신과 전문의의 sns에서, 요즘은 질문은 없고 대답만 있다는 글을 보았다. 내가 이해한 바로는 자신의 답에 확신하며 질문하지 않는다는 세태가 안타깝다는 뜻이었다. 따지고 보면, 내가 아는 것은 얼마나 정확한가, 나의 선택과 행동은 얼마나 일관성 있을까, 하는 문제에 자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인간은 수시로 자신의 뇌에 속기 때문이다.닉 채터는 ‘생각한다는 착각’에서 여러 실험을 통해서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을 알지 못한다고 말한다. 2010년 스웨덴 총선거를 앞두고 실험을 했는데, 실험자는 응답자가 선택한 것과 반대되는 대답을 했다고 바꿔서 보여주었다. 좌파 성향의 응답자에게는 그들이 낮은 소득세나 건강보험에 민간 개입 등 우파 성향의 답에 공감했다고 알려주고, 우파 성향의 응답자에게는 그들이 넉넉한 복지와 노동자 권리 선호 등 좌파 성향의 답에 응답했다고 바꿔서 알려주었다. 이때 평소 4분의 1만이 실수로 잘못 응답했다면서 답을 수정했고, 나머지 4분의 3은 바뀐 답에 맞게 그것이 자기 믿음이라고 생각하고 그 입장을 옹호했다고 한다.응답자에게 여러 인물의 카드를 보여주고 매력 있는 인물을 선택하라고 했을 때도 그가 고른 것과는 다른 카드를 내밀며 당신이 고른 카드라고 속여도 대부분 못 알아채고 자기가 왜 그 카드를 선택했는지 열심히 설명한다고 한다. 이렇게 자기가 선택하지 않은 선택을 옹호하는 현상을 ‘선택맹’이라고 한단다.질문 문항이 500개가 넘는 다면적 인성 검사 MMPI에는 같은 질문이 여러 번 나온다. 체크한 답이 정말 자기 생각인지 일관성 있는 답을 확인하기 위해서 그렇게 한단다. 나도 해본 적이 있는데 같은 질문이라는 기억은 나면서도 몇 번에 답을 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그러니 같은 질문에 다른 답을 하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닉 채터의 말대로, 우리의 뇌는 순간순간 마음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자신의 지각과 인식과 기억을 확고부동한 것으로 붙잡는 경향이 많다. 나의 지각과 기억과 인식이 확실하다는 오류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관찰하고 질문하는 수밖에 없다.사도시마 요헤이는 ‘관찰력 기르는 법’에서 사람은 모호함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일정량의 지식이나 경험이 있으면 무의식적으로 가설을 떠올리고 그에 따르려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관찰하면 이런 자동적 행위를 의식하게 되고, 가설에 따르려는 본능에 저항하게 된다면서, 세상과 자신을 관찰하려면 용기도 필요하고 질문과 가설의 순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지난주에 쓴 칼럼과 근거 자료를 여러 채널에 올려서 의견을 받았다. 그 의견을 모아 ‘방류하면 안 된다’, ‘방류해도 무방하다’로 표현을 바꾸어 다시 정리하였다. 비판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듣는 것이 조금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나의 가설을 내놓고 의견을 받으니 질문하는 힘이 성장한다는 느낌이 든다. 우리 사회의 대립과 갈등이 나날이 심각해져 간다. 관찰하고 질문하는 문화가 정착하는 데 내가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면 좋겠다.

2023-09-03

눈으로 볼 수 있어야 관리할 수 있다

김종찬 포스코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옛날 중국 한나라의 황제인 선제는 서쪽의 강족이 틈만 나면 쳐들어와 백성들을 괴롭혀 근심이 많았다. 강족을 물리칠 장수로 76세의 백전노장 조충국을 불러들여 강족을 토벌할 대책을 묻자 “폐하! 백문 불여일견이라 했습니다.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낫지요. 직접 보지 않고 방법을 말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으니 강족이 자주 나타난다는 금성군으로 가서 살펴본 뒤 방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이후 현지에 가서 눈으로 살펴본 후 적절한 방법을 찾아 강족을 토벌하였다.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만 못하다는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는 고사 성어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시사점을 주고 있다. ‘블랙박스’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면 진입로를 혼동하여 무리하게 끼어들거나 지나친 길을 역으로 주행하다 일어나는 사고를 보게 된다. 얻게 될 시간상의 이득을 포기하지 않기에 무리한 행동을 하는 것이다. 언제부턴가 도로 표면에 분홍색 혹은 녹색의 선이 그려져 있는 것이 자주 보인다. 이를 노면 색깔 유도선이라고 하는데 도로의 진출입 지점을 색깔로 시각화하여 주행 경로 혼동을 막고자 하는 것이다.눈으로 직접 경로를 확인하며 주행할 수 있는 노면 색깔 유도선은 2011년 서해안 고속도로 안산 분기점에 처음으로 시범 적용이 되었는데 그 효과는 놀라웠다. 안산 분기점은 연간 25건의 교통사고가 발생하던 곳이었는데 노면 색깔 유도선 적용 후 3건으로 줄어들었고, 2017년 국토교통부에서는 노면 색깔 유도선에 대한 설치 및 관리 매뉴얼을 만들어 전국적으로 확산하게 되었다. 이제는 내비게이션과도 연동하여 “분홍색 유도로를 따라 주행하세요”와 같이 음성 안내를 들으면서 눈으로 보며 주행하니 경로를 혼동하여 일어나는 사고의 위험이 현저하게 줄었다.눈으로 본다는 것은 원하지 않는 결과가 나타나지 않도록 하는 예방적 관리 수단으로 기업을 포함하여 모든 영역에서 연구하고 활용할 필요가 크다. 핵심은 눈에 보이게 하는 것이다. 보이게 하는 수단은 인간의 오감을 포함하여 첨단 계측기들을 활용해야 더 넓은 범위를 사각지대 없이 관리할 수 있다. 배관 내부를 흐르는 물질은 눈으로 볼 수 없어 이로운지 해로운지 알 수가 없기에 보이게 하는 수단으로 온도계나 압력계 등을 활용한다. 압력이나 온도를 알 수 있어야 환경에 적합한 조건으로 운전하면서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통제하여 경쟁력을 담보할 수 있다. 더불어 배관 바깥 표면의 눈에 잘 보이는 곳에 물질의 이름과 흘러가는 방향 표시를 하여 위급한 순간에 빠른 대처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인간의 눈은 너무 빠르거나 느린 것은 볼 수 없기에 최첨단 카메라에게 양보하고, 위험 지역은 센서가 24시간 감시하게 하여 이상 시 알려 주는 시스템을 구축하여야 가치 있는 일에 시간을 투입하여 생산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 관리할 수 없어 늘 불안했던 사각지대가 있다면 이제는 눈으로 보는 관리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할 시점이다.

2023-09-03

어떤 동행

오랜 시간 등장해도 기억나지 않는 배우가 있는가 하면 단역으로 등장해도 오래도록 장면이 떠나지 않는 배우가 있다. 단역은 극적으로 등장해 선명한 사건을 남기거나, 가슴을 후벼 파는 강한 대사를 던지고 사라질 때 주연 못지않게 기억에 남는다.작년 여름, 마른장마로 지쳐 있을 때 카톡 소리가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과자 몇 조각 욕심에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더 열심히 교회를 나갔던 코흘리개 친구들이 25년 만에 갑자기 연락이 닿았다. SNS 속에서 사십대 중반이 된 자신과 아이들의 사진을 올리면서 빛바랜 흑백사진 속의 어린 시절을 떠 올렸다.어릴 적, 살던 동네가 전부인 양 알았던 우리는 여러 지방으로 흩어져 한 아이의 엄마가 되고 아빠가 되었다. 서로 다른 직업으로 각자 자기의 영역에서 열심히 살고 있었다. 8명의 어른들이 자신의 일과를 마치고 설레는 마음으로 자정 무렵에 모였다. 마음과 몸은 자라지 않고 세월의 주름만 깊이 파인 듯 지금의 우리는 예전이나 별 달라진 게 없어 보였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몇 십 년 전으로 돌아 간 것 같다.나이 들어가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하나하나 삶의 숙제를 풀어 놓고 느긋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이제 나 하나만 행복해지면 되겠구나 생각하며 느끼는 홀가분함이 좋다고 우리는 이야기 했다. 추억의 서랍을 활짝 열고 미어터지도록 눌러 담긴 어린 시절을 끄집어내며 마주앉았다. 목 놓아 건배를 나눴다. 대화가 무르익을 무렵, 사진관을 하는 친구 한 명이 자신의 사진관에 가서 기념사진을 찍자고 했다. 열 명이 일자로 서서 한 곳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었다.“우리 해마다 찍자. 한 명 남을 때까지”경애가 말하곤 ‘제일 먼저 사라지는 친구와 제일 마지막까지 남는 친구는 누가 될까’라고 보탰다. 아직도 우리에겐 올라 설 무대가 많이 남아 있다고 생각 했기에 까르르 대며 웃었다. 흩어졌던 친구들이 하루 만에 모여 25년을 이야기하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다음을 약속하며 눈물 나는 만남을 뒤로하고 우리는 헤어졌다.“아내가 중환자실에 있습니다. 오늘이 고비입니다. 기도해 주세요”한 달 후 문자가 날아들었다. 경애의 남편이었다. 경애는 희귀병을 앓았는데 최근 병이 악화되어 염증이 혈관까지 퍼졌다고 한다. 중환자실에서 만난 경애의 얼굴은 벌겋게 열이 올라 있었다. 우리를 보며 와락 눈물을 쏟아냈다. 힘겹게 한 마디 건넬 때마다 산소 호흡기에 뜨거운 김이 서렸다.얼마 후 경애는 떠났다. 장례식장 앞에서 만난 친구들은 말없이 발지도만 끼적거렸다. 친구들의 얼굴만 봐도 뜨거움이 울컥 올라 왔다. 빈소로 내려가는 계단이 25년이라는 시간 보다 더 길게 느껴졌다. 그동안 못 다한 말들이 얼마나 많은데 반갑고 설레던 마음의 여운이 사라지기도 전에 친구 한 명을 보내야 했다. 김경아 작가 경애의 영정사진 옆에는 얼마 전 우리가 함께 찍은 사진이 있었다. 경애는 친구들 옆에서 활짝 웃고 있었다. 가는 길 외롭지 않게 친구들과 함께 찍었던 사진을 올려 달라고 했단다. 아무리 인생이 짧아도 스무 번은 더 찍을 수 있었을 텐데 친구 7명은 차마 ‘친구야 잘 가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경애는 우리의 얼굴과 함께 초행길을 떠났다. 우리는 사진으로나마 경애와 함께 저 세상으로 동행했다. 늘 앞장서서 말하기 좋아했고 우리를 대신해 남자 친구들과 과감히 싸워 주었던 경애는 먼 길에도 앞장을 섰다. 짧은 추억과 사진을 함께 안고 떠난 경애는 외롭지 않을 것이다.한 명 남을 때까지 사진을 찍자던 경애는 제일 먼저 사라진 한 명이 되었다. 내년이면, 경애의 빈자리는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까. 세월이 흐르면서 우리는 한 명씩 사라져 갈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손 맞잡고 찍은 사진이 점점 여백으로 채워질 때 다른 세상에서 우리는 또 다시 만나 여백을 채워가고 있으리라.우리는 모두 엔딩을 준비한다. 그러나 이렇듯 섬뜩한 변주를 예측하지는 못한다. 주연이든 조연이든 내게 주어진 역할에 만족하며 영화의 막을 내릴 수 있기를 바라본다.

2023-09-03

주변에 ‘범우주적 세계’ 산재, 역설적인 ‘마음의 여유’

박진홍 부국장 반복되는 일상은 무척 따분하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삶이 무미건조하다”고 투털대는 지인들이 대부분이다.하지만 평범했던 주변의 세계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순간, 우리는 또다른 경이로운 세계를 만날 수도 있다.우리 몸 안에 또 주변 곳곳에는 범우주적 세계들이 산재해 있다. 무심코 지나치고 있을뿐 모두 엄청난 세계이기 때문에 어지럼증이 생긴다.과학자들은 “인체에 세포 37조개와 미생물 39조개가 있다”고 말한다. 세포 한 개 크기는 천문학적인 10-100μm다. 1μm는 100만분의 1m.너무나도 미세한, 이 각각의 세포들은 그러나 살아 있는 동물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소기관을 가지고 호흡과 운동, 성장 그리고 자기복제 즉 번식을 한다.인체 세포 37조개 중의 한 개에 불과한 이 세포 안에, 또다른 우주가 숨어 있는 것. 여기까지라면 현기증은 나지 않는다.하지만 39조개 각각의 세포 핵에, 상상도 하기 힘든 천문학적 분량의 유전 정보가 복사돼 있음을 감안하면 상황은 달라진다.세포핵 이중나선구조 염색체 46개에는 사람의 성을 결정하고 골격을 만든 후 장기와 혈액을 운용하는 모든 방법이 프로그램화돼 있다. 또 뇌와 신경조직, 기질과 성격 등에 대한 유전 정보도 들어 있다.현대 과학자들은 “지구에서 35억년 전에 처음 출현한 세포는, 생존을 위해 다양한 세포 결합 등 진화를 거친 끝에 현재의 유기체인 인체를 구성하고 있다.”고 말한다.세계적인 석학 리처드 도킨슨은 “모든 동물은, 세포 유전자가 자신의 생존과 번식을 위해 만들어낸 생존기계”라고 밝혀 세상을 놀라게도 했다.사람 역시 우리 몸 안 세포 유전자의 생존과 번식을 위해 만들어진, ‘세포 유전자에 의해 프로그램 된 일종의 로봇’이라는 것.“사람의 생존과 번식 본능은 세포 유전자에 의해 조종 되며, 뇌에 의한 의식 역시 유전자의 절대적인 영향을 받는다”고 설명하고 있다.이번에는 사람 혈액 적혈구에 있는, 그 숫자가 무려 60해개에 달하는 헤모글로빈의 세계로 가 보자.역시 인간의 사고로는 접근이 쉽지 않은 범우주적 나노의 영역이다.단백질 분자인 헤모글로빈 한 개는, 아미노산 574개로 구성돼 있고 다시 아미노산 한 개는 원자 수십개로 이뤄져 있다.인체에서 산소를 운반하는 헤모글로빈의 수명은 120일. 매초마다 40조개가 생성되고 파괴된다.헤모글로빈도 인체 안에 있지만, 각자 살아 움직이는 독립 생명체 같은 존재로 볼 수도 있다.숙주(?)인 우리의 의식과는 무관한, 거대한 미지의 세계를 형성하고 있는 것.번식을 위한 남성 정자의 세계도 비슷하다.정자 길이는 40-50μm. 정자는 여성 자궁안에서 나선형으로 헤엄쳐 난자에 도달한, 단 한마리만 수정을 한다.한번 사정 때 쏟아지는 정자 수는 무려 2억-5억마리.더 놀라운 사실은, 정자 한 마리 한 마리의 세포핵에는 천문학적인 분량의 아버지 유전 정보가 모두 들어 있다는 것.여기에다 난자와 수정을 시도하는 정상 정자는 10%에 불과하다.나머지 기형 정자 90%는, 여성 자궁 내로 진입해 난자와의 수정을 시도하는 ‘다른 숫놈의 정자’의 경로를 방해하거나 죽이고는 산화한다.이쯤되면 리처드 도킨스 박사의 ‘인체가 우리 몸 이전에, 세포 유전자가 조종하는 살아 있는 로봇’이라는 주장에 일순 수긍이 가기도 한다.눈을 외부로 돌려보자. 그곳에도 무지막지한 규모의 우주가 있다.과거에는 단 한 개의 우주로 봤지만 최근 과학이 발달하면서 우주의 개념도 확장되고 있다.많은 천문학자들은 “은하계에 별 3천억개가 있고, 우주에는 은하계 같은 은하가 3천억개가 있다. 다시 이 세상에는 우주가 1개가 아니라, 3천억개가 있다”고 말한다.마이크로한 축소의 세계, 광대한 우주에다 억겁의 세월 앞에 사람은 먼지보다 작은 존재다. 또 인생은 찰나와 같다.빡빡한 현실 속에서 범우주적 세계들을 생각하면, 역설적인‘마음의 여유’가 생기지 않을까 .

2023-09-03

호남 이단아들

홍석봉 대구지사장 호남과 호남인의 문제를 제기하며 호남 주류와 반대 목소리를 내는 호남 지식인들이 주목받고 있다. 전라도 출신이면서 더불어민주당을 비판하고 5·18에 대한 평가에도 일정한 선을 긋고 있다. 종군 위안부 문제와 간토 대학살 사건 등에 일본의 책임 인정과 사죄를 촉구하고 피해자를 돕는 일본의 양심과도 비견된다. 호남대안포럼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박은식 의사와 전라도 시인 정재학이 대표적인 인사다. 이들은 꾸준히 호남의 이탈을 꾸짖고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치권에서는 양향자 의원이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들의 호남 각성을 촉구하는 외침이 우리 사회에도 큰 울림을 주고 있다.전라도 시인 정재학은 조국과 전라도를 사랑하기 때문에, 후손들의 미래를 위해 전라도가 종북좌파의 꼭두각시로 전락하고, 그 해악이 국민에게 미치는 걸 두고만 볼 수 없다며 분연히 떨치고 일어났다. 전교조추방운동을 하고 보수논객을 자처하며 통렬한 전라도 비판의 선봉에 서고 있다. 그는 ‘국회의원부터 자치단체 기초의원까지 모조리’ 좌파정당 일색인, ‘저울의 평형을 상실한 채, 한쪽으로 기울어진 논리와 주장으로 살아가는 곳’ ‘정치이념의 일방통행만이 허용된 곳’에서 자유 우파를 지향하며 살고 있다고 한다. 그는 최근 논란의 중심이 된 “광주의 정율성 추모는 반역이며 반역을 지시한 자들이 전라도 민주당”이라며 “전라도는 가엾게도 공산주의자들의 땅이 됐다”고 개탄했다.박은식은 호남통신이라는 글을 통해 잼버리 사태를 보고 호남인으로서 얼굴을 들 수 없었다며 호남이 스스로 변해야 할 때라고 자아 비판했다. 그는 새만금공항부터 취소하자고 했다.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 건국을 주도한 김성수와 송진우를 배출한 호남이 통합진보당 출신 인사를 뽑아주고, 중국 인민해방군과 북한 인민군 군가를 작곡한 정율성 도로와 공원을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의 호남 독점을 비판하고 국민의힘 출신 신안군수가 나와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한 정당에 대한 무조건적 지지를 거둬 들여야 한다고 단언한다.호남이 자신들이 만든 성에 갇혀 이념 논란의 중심에 서고 퇴행적인 행보를 계속하면서 변화를 거부하고 있다는 것이 호남 지식인들의 생각이다.지성마저 마비시키는 이념의 벽이 나라 발전과 민주 시민의 길을 가로막고 있다는 시각도 갖고 있다. 호남인들의 민주당 짝사랑이 지역에 독이 됐다는 것이 이들의 견해다.정율성 논란과 원전 방류수 공방 등 정치판의 아귀다툼이 빛나는 성취를 일궈낸 한국의 자긍심을 형편없이 깎아내리고 있다. 4류 정치는 낡아 빠진 이념의 틀에 갇힌 채 이전투구 중이다. 케케묵어 쉰내 나는 이념에 매달려 한국호가 방향타를 잃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 광주 출신 무소속 양향자 의원이 기득권 타파를 주장하며 정치권에 새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모두가 한 방향만 보고 달려갈 때 반대 방향을 택할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다. 호남 이단아들의 자기반성과 외침이 가슴을 친다. 어느 날 깨어보니, 아르헨티나의 길을 걷고 있어서는 안 된다.

2023-0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