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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고객 잠재력을 깨우는 힘, 코칭

장광일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매월 하루는 각 지역에서 떨어져 있는 컨설턴트 모두가 모여서 혁신 토론과 QSS 연구회를 하고 있는데, 이달에는 특별히 코칭 강사(박희섭)를 초빙하여 ‘코칭 리더십’이란 주제로 강의를 들었다.필자는 이 강의를 들으면서 코칭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반성하였고, 이 코칭의 중요성을 알리고 싶어 글을 쓰게 되었다.컨설팅(Consulting)은 흔히 티칭(Teaching)과 코칭(Coaching)으로 나눈다. 티칭은 알고 있는 지식을 알려주는 일련의 가르침이고, 코칭은 알고 있는 지식을 알려주기보다는 고객에게 질문을 통해 스스로가 해답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법이다. 그러나 실제로 현장에서 고객을 마주하면 티칭으로 시작하여 티칭으로 끝내는 경우가 많았다.골프황제 타어거 우즈의 최고의 코치는 그의 아버지 얼 우즈이고, 골프 신동인 찰리 액셀 우즈의 최고의 코치는 그의 아버지 타이거 우즈라는 것이다. 이들 코칭 방식은 질문을 많이 하여 스스로 잘못을 깨우치게 하고 개선하도록 유도하는 것과 재미있게 배우도록 하여 자발성을 최대한 끌어 올리도록 하는 것이라고 한다.‘한비자’에 삼류 리더는 자기의 능력을 사용하고, 이류 리더는 남의 힘을 이용하며, 일류 리더는 남의 지혜를 사용한다,라고 하였다. 일류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능력을 활용하기보다는 고객 스스로 지혜를 발휘할 수 있게 하고 스스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일류 리더가 되기 위한 코칭의 핵심 3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첫째 한 번에 하나의 목표만 제시하라. 천재 물리학자인 아인슈타인도 골프를 처음 배울 때 코치가 이것저것 많은 주문을 쏟아내자 그는 코치에게 골프공 4개를 집어 던지며 받으라 하였고, 코치는 받지 못하자 볼 한 개를 던지며 하나를 제대로 가르쳐 달라고 요구하였다고 한다. 이처럼 고객이 하나에 몰입하도록 하여야 한다.둘째 질문에 달인이 되어라. 존 홀랜드는 “진정한 코칭은 효과적인 질문을 통해 사람들의 내재된 잠재력을 깨우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질문에 반드시 대답하려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잠재력을 깨우칠 수 있는 질문을 준비하고 적절한 타이밍에 질문해야 한다.셋째 고객의 말에 경청(敬聽)하라. 말은 ‘마알’, 즉 ‘마음의 알갱이’라는 말을 한다. 말 속에 마음이 들어 있고, 마음 상태를 말로 표현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청중이 말 한마디 한마디 속에는 알토란 같은 마음이 들어 있다고 봐야 한다. 경청하면 고객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고 공감(共感)할 수 있다.코칭은 신뢰 관계 속에서 목표를 공유하고 질문과 경청을 통해 솔류션(Solution)을 스스로 찾도록 서포팅(Supporting)하여야 한다. 고기를 잡아주는 것이 아니라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맥킨지 앤드 컴퍼니, 구글, 링컨 일렉트릭, 인도고 등의 기업들은 코칭 리더십을 활용하여 조직 문화를 강화하고 직원들의 역량을 향상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이처럼 코칭 기법을 활용하여 고객의 잠재력을 깨우쳐 주길 기대해 본다.

2023-08-20

무궁화 찾아보기

우정구 논설위원 역사적으로 볼 때 무궁화는 우리 민족과 오랜 세월을 함께 해온 꽃이다. 중국 지리지 산해경에는 “군자의 나라에 아침에 피고 저녁에 지는 훈화초가 있다”는 기록으로 보아 고조선 시대부터 한반도 전역에 걸쳐 분포했던 꽃으로 짐작이 된다.특히 고대시대는 신성시되는 식물로 여겨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신전 주변에 많이 심었다고 전해진다. 조선시대 장원급제자 머리에 꽂아주는 꽃도 무궁화다. 또 혼례때 입는 활옷에도 무궁화를 수놓았다고 한다.일제 강점기에는 독립운동의 표상으로 백성들은 무궁화를 사랑했고, 무궁화에 대한 사랑이 곧 애국애족의 정신이라 생각했다. 일본은 무궁화가 한국 민족의 상징적 꽃이라는 것을 알고 전국적으로 무궁화 꽃을 뽑아 불태워 버리기도 했다.그래서 광복절만 되면 매스컴에서는 무궁화꽃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무궁화는 7월부터 10월까지가 개화기다. 여름부터 가을까지 매일 새롭게 꽃이 피고 진다. 보통 한그루에서 2천∼3천개의 꽃송이를 피우고 진다. 꽃말은 일편단심 혹은 영원 등으로 불린다. 매일 꽃이 피고 지니까 불굴의 상징으로도 통한다. 우리 민족의 인내와 끈기에 비유되기도 한다.무궁화는 공식적으로 우리나라 국화(國花)는 아니다. 그러나 애국가 후렴에 등장할 정도로 대표적 꽃이어서 관습적으로 국가나 국민이 국화로 여기고 있다.지난 8월 8일은 무궁화의 날이다. 2007년부터 대한민국 나라 꽃 무궁화를 기념하기 위해 민간단체 주도로 제정한 날이다. 봄철에 피는 벚꽃만큼 쉽게 만나지는 못하나 광복의 달을 맞이하여 애국애족의 꽃 무궁화 명승지를 한번 찾아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8-17

늙은 말(馬)이 갈 길을 안다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최근 야당 혁신위원장의 노인폄하 발언 후, 사회적 물의가 번져가고 있다. 청년들과의 좌담회에서 아들이 중학생 때 했다는 말을 꺼내 들며 “남은 생에 비례해서 투표해야 한다”는 내용의 말을 한 것이다. 이것은 대한민국 헌법상의 보통선거와 평등선거 원칙을 존중하지 않는 발언으로 대한노인회와 국가원로회의 등으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2004년에도 열린우리당 의장의 “6,70대는 투표 안 해도 된다”는 발언으로 총선 판도를 바꾸어 놓기도 했고, “60이 넘으면 뇌가 썩는다”는 입놀림으로 홍역을 치른 정치인도 있었다.왜 이렇게 노인들이 비하되고 폄하를 받아야 할까? 세대 간의 갈등과 가치관의 차이라고 보아 진다. 은퇴 후 몸도 약해지고 생산 활동이 줄고 소비가 늘어나게 된다는 것에서 사회적 힘이 없고 지식의 한계를 나타낸다는 관점일 것이다. 그래서 노인네, 늙은이, 꼰대 심지어 ‘틀딱충’이라는 신조어도 나돌고 있다. 꼰대는 프랑스 귀족 ‘백작(Comte)’에서 온 말인데 ‘권위적 사고를 가진 어른’을 비하하는 은어가 되었고, 또 번데기의 영남지방 사투리 ‘꼰데기’에서 변화됐다는 설도 있다.유엔은 65세 이상을 ‘노인’으로 규정하고 국민의 7% 이상이면 ‘고령화사회’, 14% 이상이면 ‘고령사회’라 하고있는데 우리나라는 올해 7월 이미 18.5%을 넘어 ‘고령사회’이다. 2020년에 베이비붐 세대가 고령층에 진입하여 60대 이상 노인세대가 950만, 100세 이상이 8천500여 명이라고 한다. 이렇듯 많은 노인에 대한 경로효친 사상은 MZ세대에서는 왜 찾기가 힘든 것일까?삶을 살아가는 데는 지식과 지혜가 필요하다. 지식은 ‘앎(knowledge)’이고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말처럼 철학, 수학, 과학, 예술 등의 교육과 학습, 훈련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며, 지혜는 ‘슬기(wisdom)’ 즉, 사물의 원인을 이해하고 이치를 깨닫는 전인적 능력이라 할 수 있다. ‘무엇은 어떤 것인가?’라는 명제적 지식은 요즘과 같은 인공지능이 대신할 수 있겠지만,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절차적 지식은 많은 경험과 감각에서 얻은 사리 분별 능력이 그 길을 찾게 해 준다.노마지로(老馬知路) 즉 ‘늙은 말이 갈 길을 안다’는 사자성어가 있다. 춘추전국시대 제(齊)나라 환공(桓公)이 융적(戎狄) 토벌원정에 나섰다가 겨울에 돌아오며 길을 잃어버렸는데 재상 관중(管仲)이 ‘늙은 말은 지혜가 쓸 만하다’며 늙은 말을 풀어놓고 말 가는 데로 따라가 길을 찾았다는 이야기다. 늙을수록 경험을 쌓아 사리에 통달하는 지혜를 습득한다는 뜻이다. 노인의 지혜로움은 사회 측면에도 많은 가치가 있다. ‘노인 한 명이 사라지면 도서관 하나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집에 노인이 없으면 빌려서라도 모셔라’는 외국 격언들을 보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노인의 지혜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우리는 누구나 늙는다. 진정한 사회인의 덕목은 존중과 배려이다. 사는 날이 많지 않아 쓸모없다(?)는 노인들을 존중하며 그들의 슬기로운 삶의 지혜를 빌려 나라의 앞길을 찾아보자.

2023-08-17

전라도 시인 정재학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 이름난 시인들 중에는 전라도 출신이 많다. 한국 현대시단의 거목으로 꼽히는 서정주 시인은 전북 고창 출신이고, 여러 번 노벨상 후보로 올랐던 고은 시인은 전북 옥구군, 민주화 운동의 대부였던 김지하 시인은 전남 목포가 고향이다. 그 아래로 섬진강 시인으로 널리 알려진 김용택 시인은 전북 임실군,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기법의 풍자시로 주목을 받은 황지우 시인은 전남 해남군, 농촌시의 일가를 이룬 고재종 시인은 전남 담양군, 시집 ‘노동의 새벽’으로 유명해진 박노해 시인은 전남 함평 출신으로, 모두가 한국 시단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상당한 영향력이 있는 시인들이다.요즘 ‘전라도 시인 정재학’이란 이름이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걸 더러 보게 된다. 섬진강 시인 김용택 말고는 출신지가 이름 앞에 수식어로 붙는 시인이 없었는데, 굳이 ‘전라도 시인’임을 강조하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인터넷에 나와 있는 프로필에 따르면, 정재학 시인은 전북 고창 출신으로 조선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전라도 지역을 전전하며 중·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했다. 그가 가졌던 ‘전교조추방시민연합 공동대표’라는 직함은 그의 교직생활이 평탄치 못했음을 짐작케 한다. 사실 그는 문학 쪽보다는 보수우파 논객으로 더 많은 활동을 해온 모양이다.전라도에서 태어나 살면서 전교조추방운동을 하고 보수우파 논객으로 활동한다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닐 터이다. 편지 형식으로 쓴 어떤 글에서 그는 그 고충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전교조의 해악을 알던 2002년부터, 이 길에 들어서서 싸워왔고, 그리고 만신창이의 몸으로 여생(餘生)을 아내에게 부탁하고 있네. 고소만 무려 20여 차례. 매일 대문 앞에 우체통에 검찰청, 법원에서 날아오는 붉은 줄 쳐진 편지를 받아본 사람들은 내 심정을 알 것이네.”그는 무엇 때문에 자청해서 그런 가시밭길을 걸어왔던 것일까. 누구 못지않게 조국과 전라도를 사랑하기 때문에, 자식들과 제자들이 살아갈 미래를 위해서 전라도가 종북좌파의 꼭두각시로 전락하고 그 해악이 전 국민에 미치는 걸 두고만 볼 수는 없었던 것이다. ‘이발소 아저씨도, 국밥집 아주머니도, 국밥집에서 만나는 지인들도’, ‘국회의원부터 자치단체 기초의원까지 모조리’ 좌파정당 일색인, ‘저울의 평형을 상실한 채, 한쪽으로 기울어진 논리와 주장으로 살아가는 곳’ ‘정치이념의 일방통행만이 허용된 곳’에서 자유우파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상당한 용기와 사명감이 필요한 일이다.전라도가 좌경화된 주된 원인은 ‘멸시와 천대’에 대한 뿌리 깊은 원한과 분노라는 것이 정재학 시인의 진단이다. 그 피해의식과 적개심을 파고든 것이 바로 종북좌파세력이라는 것이다. 통일보다 더 크고 간절하고 시급한 소원이 국민통합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빨갱이들을 호남민중과 분리시켜야한다’는 주장이다. ‘전라도 내에 기생하는 북한추종세력들은 전라도 자유우파가 상대해야 한다’는 것이고, ‘전라도 출신 자유우파를 결집시키는 운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모쪼록 많은 전라도 출신들의 적극적 호응을 기대한다.

2023-08-17

갑인일주(甲寅日柱)

육십갑자 중 오십 한 번째는 갑인(甲寅)이다. 천간(天干)의 갑목(甲木)과 지지(地支)의 인목(寅木)은 같은 목(木)기운이며, 물상으로 보면 언 땅 위에 자란 굵직하고 힘찬 나무다. 강직한 인상을 준다. 동물로는 호랑이다.갑인일주는 나무의 기세가 너무 강해서 도끼가 부러질 정도로 강하다. 방해물이 있어도 머뭇거림이 없다. 말도 잘하지만 직설적이다. 하늘로 뻗어가는 나무처럼 올곧은 성격으로 남의 일에는 관심이 없지만, 자기 일에는 적극적이며 일단 시작하면 고집대로 끝까지 밀고 나가는 성격이다.세상의 고난을 이겨낸 뒤 많은 것을 성취하는 기운이다. 좋은 결실에는 성패의 굴곡이 따른다.하지만 자신에 대한 확신이 강한 만큼 타인의 의견을 경청하지 않고 독단적인 면이 있다.한편으로 사회활동에 많은 정열을 쏟아 붓는 성격으로 가정적인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다. 성실한 데다 지도자 자질이 있어 자수성가형이다.갑인일주는 철학적인 사고를 좋아하는 편이다. 따라서 자신만의 신념과 내면의 세계를 구축하려는 성향이 있다.이러한 성향은 자기 정체성을 분명하게 하는 장점이 될 수 있지만, 반대로 자의식이 너무 강해서 다른 사람이 받아들이기 벅차기에 단점이 될 수 있다.그렇기에 주어진 환경에 따라 예민하게 자기중심적으로 판단을 한다. 즉흥적으로 결정을 하고 후회하며, 또한 순간의 화를 참지 못해 공든 탑이 한 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그러기에 세 번 생각하고 한 번 말하는 습관을 길러야 하며,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지혜도 갖추어야 한다.중국 명나라 초기 유기의 ‘욱리자’ 영구장인 편에 나오는 이야기다. 제수라는 장사꾼이 강을 건너다가 배가 무언가에 부딪혀서 가라앉았다. 간신히 물 위에 뜬 널빤지를 잡고서 큰소리로 살려 달라고 소리쳤다. 마침 지나가던 어부가 구해주기 위해 배를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자 장사꾼은 살았다는 생각에 “나는 이 강가에 사는 돈 많고 세력 있는 사람이요. 당신이 나를 구해주면 금 백 개를 주겠소”라고 말했다.어부가 그를 구해내서 강 언덕에 내려주자 장사꾼은 어부에게 금 열 개만 건네주는 것이었다.어부는 “당신이 금 백 개를 준다고 하지 않았소”라고 항의했다.장사꾼은 얼굴색이 달라지면서 “아니, 이 사람아. 자네 같은 고기잡이가 하루에 몇 푼이나 버는가? 잠시 수고하고 금을 열 개나 벌었으면서 적다고 투정하는 것인가?”라고 오히려 화를 벌컥 냈다. 어부는 풀이 죽어 고개를 숙이고 배를 저어 떠나갔다.그 후 어느 날 그 장사꾼이 물건을 싣고 강을 따라 내려오다가 고기를 몰아들이기 위해 설치해 놓은 좁은 통로의 바위에 배를 들이받고 말았다. 마침 그곳에 지난번의 그 어부가 있었다. 그는 팔짱을 끼고 구경만 하였다. 결국 그 장사꾼은 물속으로 들어가서 영영 떠오르지 않았다.뭍에 서 있던 사람이 “왜 장사꾼을 구해주지 않았소”라고 묻자, 어부는 “저 사람은 자기 입으로 준다고 했던 금을 주지 않는 사람이오”라고 대답했다. 욱리자는 “사람들이 장사꾼은 목숨보다도 재물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하기에 믿지 않았는데, 이제 보니 정말로 그런 일이 있구나”라고 말했다. 맹자도 “사람이 가야 할 길은 어차피 사람이 가려서 택하는 것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작은 이익 때문에 신용을 저버릴 경우 오히려 큰 우환을 만날 수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갑인일주의 여자는 여장부의 기질이 있어 가정보다는 사회활동에 적합하다. 자존심이나 자기주장이 너무 뚜렷해 부부관계가 원만치 못하니 고독을 즐기는 경우가 많다. 남편보다 자식에게 애정을 쏟으며 사는 경우가 흔히 있다. 남자는 부인이 능력 있고 잘 생겼으며, 처가 덕도 본다. 허나 배우자를 무서워하고, 배려심이 부족하니 애정이 깊지 않다. 결과적으로 집보다 주로 밖에서 시간을 보내니 주의해야 한다. 남녀 모두 친구 같은 아내나 남편으로 서로 양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갑인일주의 인(寅)은 호랑이다. 울창한 숲에 있는 호랑이 형상이다. 활기찬 생명의 시작 즉 새롭게 일을 시작하려는 기운이며, 강한 활동력과 추진력이 있다. 모험심이 강해 다양한 경험을 쌓으려는 경향이다. 겉모습은 친해지기 어렵지만, 친해지면 다정하고 진중한 면이 있다.음 기운에서 양 기운으로 바뀌는 인시(寅時·새벽 3시)는 야행성 동물인 고라니, 노루, 사슴 등이 보금자리로 돌아가는 시간이다. 이때 호랑이는 먹이 사냥을 한다. 이 기회를 놓치면 배고픈 호랑이가 된다. 그러나 배고프고 고독한 호랑이는 어떻게는 살아남는 요령이 있다. 류대창명리연구자 이 세상에 말이 그냥 나오는 법은 없다. 속담에 ‘갑인년 흉년에도 먹다 남은 물은 남아 있는 법’이란 말이 있다. 그 심한 갑인년 흉년에도 물은 남았다는 말이다. 또는 아무리 흉년이라도 물마저 말라 버리는 일은 없다는 말이다. 제주도에는 물이 귀하여 이런 속담이 생겼다고 한다. 제주도 방언으로 ‘갑인년 흉년에도 먹다 남은 게 물이여’에서 온 것이다.배고픈 만큼 서러운 것이 없다. 우리들도 지난날 경험했던 기억이 있다. 식탁에서 인사말은 ‘많이 드세요’다. 굶주림의 시대가 만들어 낸 인사말이다. 인간은 먹고 싶은 욕망을 억누르기가 힘이 든다. 생존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멈출 줄 모르는 욕망의 마지막에는 항상 잔인하고 끔찍한 일이 발생하니 유념해야 한다.철학자 니체는 인간의 욕망을 ‘푸줏간 앞의 개’로 표현했다. ‘푸줏간 앞을 서성이는 개의 시선을 닮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했다. 눈앞의 고기를 먹고 싶은 욕망과 푸줏간 주인의 시퍼런 칼이 두려워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개의 모습에서 인간은 욕망을 제대로 제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교훈을 얻는다.젊었을 때는 욕망을 채우면서 살아야 하고, 늙어서는 부단히 욕망을 빼면서 살아야 한다. 이것이 인생 최고의 지혜가 아닐까?

2023-08-16

윤명희 수필가 전화기를 쥔 친구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무슨 일이냐고 묻자 그녀는 잠시 말이 없다. 숨을 고르더니, 딸이 사는 옆집에서 청년이 죽었다고 한다. 느닷없는 말에 나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혼자 멀리 떨어져 사는 딸이 걱정인 친구는 가끔 집 주인에게도 안부를 묻는 전화를 하는 편이다. 주인아저씨는 옆집 청년의 일 때문에 전화를 했다고 생각했는지 내막을 술술 불었다.딸은 그 청년과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잠을 자고, 샤워하고 밥을 먹고 학교에 간다. 밤이면 또 그 집 앞 복도를 지나 현관문을 열고 들어간다. 그 벽에 등을 대고 유튜브를 보며 지친 몸을 뉘었을 거라 생각이 들자 친구는 등이 가려운 듯 몸을 비틀었다. 차라리 안 들은 만 못했다. 주인에게 이 사실을 딸에게는 얘기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여린 딸이 알면 무섬증에 그 집에 다시는 들어가지 못할 거라고 했다.친구는 죽은 이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생활했을 딸 걱정이 앞섰다. 딸에게 전화하니 신호가 두어 번 가기도 전에 끊기고, 도서관이라는 짤막한 문자가 온다. 잘 지내느냐고 답문을 보냈다. 더 이상 대꾸가 없다. 별일 없지? 라는 문자를 또 보내보지만 딸은 그 문자를 읽지도 않는다. 우리는 다시 황망했을 청년의 부모 걱정을 했다. 멀리 있는 자식에게 온 신경이 가 있는 것은 우리 모두의 일이다. 세상 일이 내 자식을 중심으로 돌아가기를 바라지만 정작 내 자식은 세상을 쫓아가느라 바쁘다.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잘 지내는지 밥은 잘 먹고 다니느냐는 친구의 말이 빙빙 돌아다녔다. 별일 없느냐는 말이 입안에서 몇 바퀴나 돌았지만 결국 하지 못하고 국은 있느냐고 물었다. 공부하다가 나왔다는 딸의 짜증 섞인 말이 폰 밖으로 튀어나온다. 며칠 전에 보내 준 것도 냉동실에 그대로 있다며 무슨 말이 하고 싶으냐고 되물었다. 친구는 차마 그 얘기는 못하고 대신 보고싶어서라고 한다.“왜? 옆집 얘기가 하고 싶은 거야? 그 집에 어젯밤에 다른 사람이 새로 들어오는 것 같던데?”지난번 집에 와서 엄마의 밥이 맛있다고 했던 그때 이미 벌어진 일이었다.일요일 오후, 모처럼만에 종일 늘어지게 잤던 딸은 배가 고파 일어났다. 냉동실에서 엄마가 보내준 국 뭉치를 꺼내 해동부터 시켰다. 치약을 짜는데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이사 후 처음 울린 초인종 소리에 놀랐다. 치약을 묻힌 칫솔을 세면대에 올려놓고는 문 앞에 서서 누구냐고 물었다. 경찰이라는 말에, 치아교정용 보철을 한 그녀는 마스크부터 찾았다. 현관문 걸쇠를 한 채 문을 열었다. 헝클어진 머리를 쓰다듬으며 내다보았다. 두 남자의 신분증을 확인했지만 걸쇠를 풀지는 않았다.그들은 그녀에게 옆집에 사는 사람을 아는지 아니면 본 적은 있는지 물었다. 한 건물에 열 몇 가구나 살고 있지만 아는 이가 한 사람도 없는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벽에 뭔가가 부딪치는 소리라던가 싸우는 듯한 이상한 소리가 들리지 않더냐고 또 물었다. 보철을 거쳐 마스크를 비집고 나오는 ‘아니오’라는 말을 그들은 알아듣지 못했다. 두 남자가 재차 물었다. 평소 몇 시에 집을 나가서 몇 시에 돌아오느냐는 둥 일거수일투족이었다.그녀는 옆집에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묻지 않았다. 얼굴도 모르는 이의 사정 보다는 해동이 끝났다고 울리는 전자레인지 소리와 칫솔에 얹힌 치약이 욕실 바닥에 떨어질까 봐 신경이 쓰였다. 캐묻는 말과 짧은 대답이 몇 번 오간 후 경찰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녀에게 외국인이냐고 물었다.그들은 그에 대한 대답은 듣지 않고 돌아섰다. 왜 자기에게 외국인이냐고 묻는지를 알 길이 없는 그녀는 커다란 눈만 끔뻑였다. 걸쇠를 걷어 젖히고 고개를 내밀어 닫히는 엘리베이터를 쳐다보았다.친구는 지금껏 그 일에 대해서 한 마디도 하지 않은 딸에게 섭섭함이 몰려왔다. 원룸 주인에게 이야기를 듣자마자 이사를 가야 하나 어쩌나 고민하고 있는 친구에게 딸은 아무 일도 아닌 일로 자기 시간을 뺏는다는 투로 말한다. 주변의 일에는 관심 가질 시간적, 마음적인 여유조차 없이 살아가는 딸의 모습에 친구와 나는 한숨을 쉬었다. 어디 딸의 문제이기만 하겠는가. 쓸쓸히 생을 마친 청년의 일이기도 한 것을. 커다란 벽을 마주한 듯 가슴이 답답하다.

2023-08-16

스카우팅, 누구의 일인가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세계스카우트잼버리가 지나갔다. 낯선 이름의 국제행사에 대통령까지 관심을 보이니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정부가 깊이 관여하였다. 스카우트운동은 민간사회운동이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세계적인 수련활동이기는 하지만, 본질은 여전히 보통사람들의 자발적인 사회운동이다. 주로 야외활동에 방점을 두고 진행되는 다양한 운동의 결과로 청소년들이 스스로 생존능력을 확인하고 적극적으로 활동역량을 증진하며 공동체를 위한 봉사정신을 함양하게 된다. 필자의 오랜 해외경험에 비추어도 스카우트운동에 정부조직이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일은 그리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다. 다만, 스카우트운동을 지켜보면서 지원하는 방식은 얼마든지 가능할 터이다.새만금잼버리에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운영에 참여한 결과, 부정적인 부분에 대하여 책임소재를 놓고 시끄러울 판이다. 더욱 혼돈스러운 일은 책임 시비를 두고 정권이나 이념의 향배에 따라 편을 가르고 지방색을 극도로 드러내는 비난이 들리는 부분이다. 대한민국은 정부가 바뀌어도 같은 나라이어야 하며 지방정부에 책임이 있다면 이를 밝혀 시정하면 될 일이다. 어느 나라의 문제와 책임은 그 나라의 것일 뿐 ‘특정한 정권의 나라’에 귀속하지 않는다. 사회공동체의 사안을 어느 집단의 사안으로 바꾸어 시비와 정쟁을 일삼으면, 해결책의 도출은 고사하고 논쟁과 싸움의 이전투구만 거듭하게 되어있다. 실익과 결과가 보이지 않는 아귀다툼은 멈추어야 한다.길에서 새만금잼버리에 참가하였던 유럽 국가 청년들을 만났다. 생생한 느낌과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그들 사이에도 생각과 의견이 달랐다. 전반적으로, K-콘서트가 인상적이었던 반면 스카우팅 본질에는 미흡하였다는 인상을 전해 주었다. 더위는 견딜 수 있지만 그늘이 없었던 건 힘들었다고 했다. 자연적인 난관은 얼마든지 이겨낸다는 스카우팅 운동의 실체를 엿들은 느낌이었다. 조금만 더 잘 준비하였더라면 그리 실패할 것도 없는 잼버리였을 모양이었다. 그르친 책임을 묻고 새롭게 만들어 갈 다짐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과도한 정쟁으로 혼돈스런 광경이 연출되지 않았으면 한다. 스카우트운동의 본질을 다시 찾아가도록 지원하여야 한다. 민간운동을 정권다툼으로 퇴색시킬 수는 없지 않을까.‘준비하라.’ 스카우트운동의 슬로건이라고 한다. ‘무엇이든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대하여 몸과 마음으로 늘 준비하는 태도를 가지라’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다음세대 청소년들에게 어려움을 이겨내고 난관에 미리 대비하는 마음가짐을 가지도록 이끄는 셈이다. 세계잼버리 행사가 늘 여름 한가운데 벌어지는 까닭이 아니었을까. 폭염과 태풍 등 기후조건에 대하여 사전에 보다 치밀하게 준비하고 대처하였으면 하는 안타까움이 있다. 운동의 본질을 잘 이해하였다면 행사의 운영에 보탬이 되었을 터이다. 국민은 정치권의 끝모르는 아귀다툼에 지쳐간다. 정치권이 진정성있는 돌파구와 해결책을 찾아내는 정치적 효능감을 보여주었으면 한다. 청소년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나라가 되어야 한다.

2023-08-16

동물의 복지와 권리

홍석봉 대구지사장 동물을 인간의 소유물로 봐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자리잡아 가고 있다. 한국리서치가 지난해 3월 설문조사한 결과 ‘동물에게도 생명권 등 기본적인 권리가 있다’는 응답이 79%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려동물 양육 인구가 급증하면서 기존의 동물에 대한 인식도 바뀌고 있다.사설농장 등에서 키우던 곰과 사자 등의 탈출 소동이 잇따르자 동물보호단체가 정부에 야생동물 사육 기준 강화를 요구했다. 동물자유연대는 최근 대구 달성공원에서 탈출한 침팬지가 마취총을 맞고 숨진 데 이어 경북 고령에서 농장에서 키우던 암사자가 탈출 한 시간 만에 사살된 사건이 발생하자 야생동물 사육의 문제점을 제기하며 방안 마련을 요구한 것이다. 사육 동물의 잇단 탈출은 관리부실과 열악한 시설 탓이 크다. 현재 전국 곳곳에 야생동물 사육·전시 시설이 산재하고 있으나 정부는 실태 파악조차 못하고 있다. 우리에서 탈출한 동물들은 대부분 사살된다. 산채로 포획되는 경우는 드물다.지난 14일 경북 고령군의 한 사설 동물농장에서 기르던 암사자 1마리가 탈출했다가 농장 인근에서 출동한 엽사와 경찰에 의해 사살됐다. 지난해 12월 울산시 울주군 곰 사육농장에서 탈출한 반달가슴곰 3마리도 사살됐다.사자와 곰 등은 대부분 어린이 관람용으로 사육한다. 한때 웅담 채취를 위해 곰을 불법 사육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젠 거의 자취를 감췄다. 여름철 몸보신을 위해 개를 잡는 풍토도 찾기 힘들어졌다. 사람과 똑같이 감정과 고통을 느끼는 동물을 가둬놓고 구경하는 사설 동물농장 및 동물원도 시대 흐름에 따라 변할 때가 됐다. 동물의 권리에 대한 인식 변화가 가져온 현상이다. 동물의 복지와 권리까지 챙겨야 하는 세상이 됐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8-16

월경통과 두통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여성이라면 초경 이후로 따라다니는 고통이 하나 있다. 생리관련 질환 특히 월경통으로 고생하는 여성들은 아주 많다. 막 생리를 시작한 청소년부터 아이를 가진 여성까지 많은 여성들이 고통을 받고 있는 질환이다. 가임기 여성의 자궁내막이 주기적으로 분비된 호르몬에 의하여 증식하여 배아의 착상을 준비하는데 임신이 되지 않으면 자궁내막이 저절로 탈락되는데 이를 월경이라고 한다.자궁내막의 증식으로 복부에 불쾌감이 생기고 호르몬 변화로 인해 감정변화와 더불어 신체 변화가 나타나고 자궁내막의 탈락으로 인한 자궁근육의 강한 수축으로 복부의 통증 혹은 그 주위 골반이나 허리 통증이 생기기도 한다. 심한 경우 두통 어지럼증 구역 구토 위장장애까지 생긴다. 단순 자궁의 변화로 인해 발생하나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양한 증상이 생기고 주로 자궁이 있는 골반부 근처에 문제가 많이 생긴다. 한의원에선 생리전 증후군, 생리시 복통과 요통증이 심해서 내원하고 아주 심한 경우는 구토, 두통 혹은 전신 몸살로 하루 종일 누워 있는 경우도 있다.자궁의 변화가 생기면 주변 허리쪽의 장요근 즉 대요근 소요근 장골근의 변화가 생기고 필연적으로 골반통과 요통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 이때 쉬어줘야 하는데 일을 하고 몸이 좋지 않은 현대인들은 그 고통이 심할 수가 있다. 보통 산부인과에서 검사를 하고 오는 경우가 많으며 한의원에 오는 경우는 치료가 되지 않아 내원한다. 대부분은 10대에서 30대이고 이를 지나면 갱년기 쪽의 문제로 내원하는 경우가 많아진다.치료는 환자의 증상과 몸 상태에 따른 한약을 쓰게 되는데 기본이 간을 깨끗하게 하고 열을 내려 주는 시호관련 약재를 군약으로 쓰게 되고 추가로 어혈을 내려 주는 한약재를 같이 넣어서 처방을 한다. 한방에선 간과 자궁의 상관 관계를 아주 크게 보는데 간을 깨끗하게 하면 피가 맑아지고 피가 맑아지면 자궁이 깨끗해 진다고 본다. 보통 3개월 전후 복용을 기본으로 하고 치료를 하는데 대부분 이정도면 큰 고통은 없이 일상생활은 가능해진다. 아주 심하면 6개월까지 치료를 하는 경우도 있다.그리고 흔히 아는 복통과 요통만이 아니라 특이하게 생리때만 되면 극심한 두통과 구토 속미식거림 등을 호소해서 오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는 정말 고통을 많이 받는 경우로 사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좋아지는 경우가 없어 포기하고 사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는 일반적인 약재를 써서는 효과를 보기 힘들다. 이런 환자들은 대부분 체력은 아주 약한 편이고 추위를 타고 손발이 차며 배가 차다. 한의원에도 소개로 오는 경우 말곤 보기 힘든 경우이다. 이럴 때는 오수유를 군약으로 하는 약재를 처방하면 탁효를 보는 경우가 많다. 단점은 너무 써서 먹기 힘든데 보통 한달만 먹어도 환자들이 느끼는 고통은 확연히 줄어든다. 3개월 정도 복용 후 증상이 개선되면 일년에 한두번 보약을 먹는다 생각하고 컨디션이 떨어질 때마다 약을 복용하면 일상생활이 가능하다.매운 음식을 금하고 단백질을 적당히 복용, 그리고 야채를 많이 먹으면 좋다. 탄수화물은 줄이고 설탕은 무조건 적게 먹으면 도움이 된다.

2023-08-16

무리하셨어요?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아침에 눈을 뜨니 어지럽고 메스껍다. 바로 일어나지 않고 잠시 앉아 있다가 끙차 손으로 바닥을 짚고 일어나도 바로 다시 주저앉는다. 한창 더울 때라 더위 먹었나? 도로 누웠다. 깨질 듯이 아픈 머리를 감싼 채로 한참을 엎드렸다. 난 아픈 신호가 항상 두통으로 온다. 그걸 아는 남편이었다. 바로 병원에 가자며 일으켜 세웠다. 가까운 내과에 갔다. 증상을 얘기하자 의사가 묻는다. 무리하셨어요? 그럴 일이 없다고 대답하면서 진료를 받고 링거도 맞았다. 이틀 분의 약을 지어주면서 안정하란다. 며칠 후에도 나을 기미가 없자 이석증인 듯하여 오희종신경과엘 갔다. 지난주의 일이었다.무리하셨어요? 참 오랜만에 듣는 말이다. 2005년 여름, 이때쯤이었다. 며칠째 밤을 새우며 논문을 썼다. 창밖이 푸르스름하게 희붐해질 쯤에야 컴퓨터 모니터를 껐다. 기지개를 크게 켜며 의자에서 일어나자 바로 쓰러졌던가 보았다. 새벽녘에 화장실을 나온 남편이 화들짝 크게 놀랐다. 응급실로 가서 뇌사진을 찍는 등 온갖 검사를 하며 호들갑을 떨었으나 큰 병이 아니라고 했다. 전정기관의 이상이 의심되나 별 치료 방법이 없다며 집에서 안정하란다.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하늘이 뱅그르르 도는데도 그저 누워있을 뿐이었다. 며칠 후 남편이 용한 병원을 알았다며 데리고 갔다. 오희종신경과였다. 의사는 무리하셨어요?라고 물었고 나는 며칠밤을 샜다고 실토했다. 이석증이라는 병명을 처음 들었다. 신이하고 꼼꼼한 치료로 어지러움은 금세 말끔히 나았다. 깨끗해진 머리 덕에 신나게 운전하여 학교엘 갔다. 며칠만에 또 도졌다. 쉬라는 의사의 말을 듣지 않은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또 한번은 2012년 겨울, 연말이었다. 입시며, 성적이며 한창 정신없을 때였다. 며칠째 열나고 오한이 들었지만 약을 지어 먹으면 낫길래 무시하였다. 어느 날 한밤중 이를 딱딱 마주치는 사정없는 오한에 정신을 잃었다. 식구들이 혼비백산, 응급실로 날랐다. 치료를 받으면 나았다. 낮엔 일상생활을 했고 밤이 되면 또 열에 들떠 응급실을 들락거렸다. 외래진료를 받으라고 했으나 처리할 일이 태산이라 의사의 말을 듣지 않았다. 학교의 급한 불을 끈 뒤 퇴근길에 내 발로 느긋하게 병원을 찾았다. 당장 입원하라는 의사의 호통이 매서웠다. 며칠 새 병을 크게 키웠고 신장 수술할 수도 있다고 했다. 2주간 입원했으나 호전되지 않자 종합병원으로 옮겼다. 그제야 내 몸 돌보지 않은 후회를 했다. 다행히 수술은 하지 않았다. 병소(病巢)는 남아 있으니 조심하라는 당부를 들었다. 그때 역시 의사의 첫 문진은 무리하셨어요?였다.일 욕심이 많긴 했다. 한창 일할 때는 다소 무리했음을 부인하진 못하겠다. 그러나 이제, 은퇴 후 이렇게 느긋하게 놀고 있는데 무리라니 어이가 없다. 일주일에 3일 손녀 유치원 등하원 도와주기. 일주일에 한 시간 자원봉사와 두 시간 영화공부하기. 주말에 모두의 집에 가서 풀 뽑고 텃밭 가꾸기. 병든 강아지 수발들기 정도가 일상의 전부다. 최근 일주일 두 시간 서예공부 시작으로 기분좋은 흥분에 마냥 들떠 있는데 이게 어찌 무리인가. 몸이 쾌청하지 않으니 별 서운한 생각이 다 든다.

2023-08-16

‘수도권 총선위기론’에 무덤덤한 집권당

심충택 논설위원 내년 총선 이슈가 ‘영호남 민심’을 건드리는 아주 부정적인 방향으로 가고 있다. 경남 양산에 거주하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 이 예민한 이슈에 불을 붙였다. 그는 최근 SNS에서 양산 평산마을과 전남 구례 양정마을 자매결연 소식을 전하며 ‘영호남 화합의 의미를 담았다’고 말했다. 퇴임 후 정치에선 손을 떼겠다던 전직 대통령이 총선을 앞두고 가장 자극적인 정치적 이슈를 언급한 것이다. 지난 10일에는 김한규 민주당 원내대변인이 새만금 잼버리 파행에 대한 정부 대응을 비판하며 “세계 엑스포 부산 유치는 사실상 물 건너갔다고 본다”고 말해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PK(부산·울산·경남)지역민의 ‘반(反) 정부정서’를 자극하려 한 것으로 해석된다. 부산지역 여당 국회의원들은 “민주당이 엑스포 유치에 재를 뿌리고 있다”며 성명서를 내기도 했다.내년 총선에서 영호남 지역감정이 또 쟁점화되면 여당에 이로울 게 없다. ‘민주당이 은근히 부산엑스포 유치 실패를 바란다’는 여론이 형성된다고 해도 국민의힘 의석 확보에 도움이 안 된다. 대구·경북지역에 코로나19가 대유행한 상황속에서 진행된 21대 4·15 총선때도 진보진영은 ‘대구손절’‘대구봉쇄’ 등의 막말을 쏟아내며 지역감정을 부추겼다. 그 결과 21대 총선은 사상최고의 사전투표율을 기록했으며, 진보진영은 그 어느 때보다 조직력을 굳히며 180석의 의석을 차지했다.집권당이 지금 집중해야 할 부분은 ‘문재인의 입’과 ‘잼버리 파행’이 아니라, 수도권 위기론에 대한 대응이다. 21대 총선(2020년)의 최대 승부처도 수도권이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여당의 수도권 의석은 18석으로 민주당 97석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특히 경기·인천 현역 의원의 80%는 민주당 소속이다. 총선현장을 취재해보면, 현역 의원들의 조직력과 자금력, 홍보전략은 정치신인들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특히 다선 현역의 경우, 재정후원회와 세분화된 조직력이 아주 탄탄하다. 지역구 사무실도 별도로 있어 주민들과 상시 접촉할 수 있다. 안철수 의원이 최근 “대부분 수도권 국회의원이 민주당이다 보니,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분들이 그들과 대항해 싸우기가 대단히 어렵다”고 한 말은 집권당이 절대 흘려듣지 말아야 한다.국민의힘은 집권 초부터 내부갈등으로 시간을 허비했다. 김기현 대표 체제가 들어선 이후에도 거대 야당을 상대할 전략과 혁신이 거의 안 보인다. 그러니 당 외연을 막는 울타리가 더욱 단단해지고, 경쟁력 있는 인물들이 바깥에서 겉도는 것이다. 하태경 의원은 “부산도 위험하다”고 말했다.여당은 여소야대 악몽에서 벗어나려면 지금부터 당의 확장성을 위해 체질개선을 해야 한다. 수도권, 중도층, 2030세대가 지지할 수 있는 혁신을 당장 시작해야 한다. 그러려면 혁신을 주도할 스타급 인물, 예를 들어 이준석, 유승민, 나경원 같은 비판적 지지그룹을 당이 흡수해야 한다. 지지율이 30%대에 갇힌 윤석열 대통령 측근 인물들을 중심으로 공천리스트를 작성할 경우, 당의 확장성은 ‘제로’가 된다.

2023-08-15

올드보이 논란

우정구 논설위원 한국 국회의원의 평균연령은 55세다. 국제의원연맹(IPU) 조사에 의하면 한국의 국회 평균연령은 G20 국가 중 3등이다. 미국 58.4세로 가장 높고 일본 55.5세, 다음이 우리다. 가장 낮은 이탈리아보다 10살 정도 더 높다.각 계층 대변을 국회 평균연령으로 왈가왈부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우리나라 중위연령(43.2세)과 비교해 볼 때 10살 이상 차이가 나 국회의 평균 연령대가 높다는 데는 이론이 없다.국회의 평균연령이 높다는 비판은 이미 많았다. 유럽 대부분 국가가 평균 40대인 것과 비교할 때 더 그렇다. 그러나 우리사회의 노령화 추세에 비춰 볼 때 장차는 국회의 평균연령이 더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문제는 고령보다 고령의 정치가 젊은 정치인 진출을 가로막고 있다는 데 있다. 21대 국회의 2030의 비율은 고작 4.3%다. 전체 중 2030세대가 13명 정도다.최근 미국에서도 장로(長老)정치라는 단어가 뜨거운 논쟁거리라 한다. 미 상하의원 중 20여 명이 80∼90세의 고령에도 현실 정치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81세 바이든 대통령과 77세의 트럼프 전 대통령의 차기 대통령 출마가 유력하자 올드보이 논란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 같다는 전망이다. 바이든 대통령의 경우 공개석상에서 여러 번 넘어지는 실수를 범해 이런 우려를 키웠다.최근 민주당 혁신위원장이 고령의 다선의원 용퇴를 촉구해 논란이 일었다. 같은 당 이상민 의원은 “선출직은 선거로 심판을 받는다”며 반박을 했다.나이만을 이유로 문제를 제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 젊음과 패기에 맞서는 연륜과 노련함도 있어야 한다. 정치권이 머리를 싸매고 고민해야 할 문제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8-15

필묵의 텃밭, 꾸준한 먹빛 솎기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봄철이나 여름날 비가 잦게 되면 들판에 도사리던 잡초의 복병이 일제히 일어서며 진을 치게 된다. 잡초는 가꾸지 않아도 이곳저곳 저절로 나서 자라는 여러가지 풀로, 뽑고 뽑아도 질기고 끈덕지게 농작물 따위의 다른 식물이 자라는데 해(害)를 끼치게 된다. 잡초, 즉 잡풀은 사람에 의해 재배, 관리되지 않는 잡다한 풀로 때와 장소에 적절하지 않은 식물이라 할 수 있다.잡초나 잡목 같은 것은 논밭이나 산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생각이나 마음의 밭에도 얼마든지 잡스러움이 튀어나와 쑥쑥 자라며 옳고 바른 일들을 방해하고 지장을 줄 수도 있다. 이를테면 잡념이나 잡담 등 쓸데없는 생각이나 말들이 언행에 민망함을 주는가 하면, 잡종이나 잡상(雜常)스러움은 사회적으로 악영향을 끼쳐서 불미스러움이나 낭패를 초래하기도 한다. 그래서 어느 시인은 ‘봄날 시름은 풀처럼 자라거늘/어느 때 낫을 얻어 마음의 뜰 베리오(春日傷悲如草長/何時得91E4刈心庭)’라고 읊었던가.서예창작활동은 어쩌면 붓과 먹의 언저리에서 무수히 돋아나고 비집어 드는 잡다한 풀 같은 불순(不純)함을 걷어내는 지난한 과정이 아닐까 싶다. 이를테면 비탈진 선지(宣紙)의 밭뙈기에 무딘 붓의 날(刃)로 먹을 찍어 점과 획의 골을 타서 필묵의 밭을 일구며, 생동하는 글과 향기로운 글자의 숲을 이뤄가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곧 묵향으로 텃밭을 일구듯 순백의 설원 같은 화선지에 싹을 틔우는 몸짓으로 붓이 노래하고 먹을 춤추게 하는(筆歌墨舞) 먹빛의 향연을 줄기차게 펼치는 것이리라.‘마음의 뜨락에 서(書)의 창을 드리워/먹 갈고 붓 잡기 위안으로 삼은 나날/무채색 끝 모를 깊이에 솟아나는 빛줄기//순백의 설원에 그리움의 점을 찍고/마르고 거친 맥박 애환의 획을 그어/들끓듯 뿜어진 먹빛/눈부신 침묵이어라’ -拙시조 ‘먹빛 솎기’중농부의 발자국소리를 듣고 농작물이 자라듯이, 글밭(書田)에 어리는 먹의 새순(荀)들은 꾸준하고 한결같은 붓질에서 비롯된다. 부지런히 먹을 갈아 줄기차게 붓을 움직이다보면 어느새 먹물의 거침없는 번짐과 주체 못할 난감이 잡히고, 붓놀림의 잡기같은 난삽하고 생경한 서체의 행색이 차츰 유려해지지 않을까 싶다. 꽃솎기나 적과(摘果)로 실한 열매를 기약하듯이, 먹빛 솎기는 필묵의 절제와 숙성을 가늠한다.붓과 먹으로 세상과 소통하며 먹빛 솎기를 수십년 일삼아온 전국의 중진 서예가들이 ‘월간 서예문화’가 주최하는 KOCAF ‘筆墨의 世界化展’에 초대되어, 오늘부터 1주일간 서울 인사동에서 먹빛의 향연을 펼치게 된다. 문화와 트렌드의 중심인 서울에서 작가 나름의 통찰과 소신의 다변화된 붓질로 한국서예의 새로운 아이템과 발전적인 미래를 모색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가장 한국적인 정서와 특장의 서예작품세계를 추구하는 것이 필묵의 세계화를 지향하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쉼 없는 먹빛 솎기는 필묵의 지고지순(至高至純)함에 이르는 길이다.

2023-08-15

20대의 실상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우리 대학은 학생들이 휴학이나 자퇴하는 경우 학과장과의 상담을 의무로 규정하고 있다. 필자는 학과장 보직을 맡고 1년이 지난 지금까지 몇 명의 자퇴생, 그리고 다수의 휴학생과 (비) 대면상담을 해야만 했다. 뜻한 바를 이루기 위해 자퇴나 휴학하는 경우는 서로 기분 좋게 상담을 마무리할 수 있다. 그런 학생들은 자신의 미래에 대한 의지를 갖추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하지만 안타깝게도 기분 좋은 상담보다 마음이 편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그중에서 아직도 기억에 선명한 두 가지 사례는 다음과 같았다. 올해 초 학기가 시작하고 일주일 정도 지났을 무렵 2023학번 여학생이 찾아왔다. 어딘가 불안한 학생들이 그러하듯 눈은 나를 피해 주위를 기웃거리고 있었다. 그 학생은 학교에 있는 것이 불안하여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집도 편하지 않기는 마찬가지라고 했다. 정신과에 입원한 적도 있고 치료도 오래 받았다고 담담히 말하는 학생에게 내가 더 해줄 말은 별로 없었다.또 다른 학생은 1학기 종강을 4주 정도 남겨두고 갑자기 찾아온 경우다. 도저히 힘들어서 학교에 있기 어렵다고 말하는 학생에게 이제 종강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조금만 힘내보자는 말을 전했다. 그러자 그 학생은 조용히 자기의 팔목을 보여주었다. 자해 흔적이 선명한 팔목을 보고 나는 애써 당황한 표정을 지우며 이유를 물었지만, 당시 그 학생이 뭐라 답했는지는 잘 떠오르지 않는다. 집으로 돌아가 심신을 치료하고 건강하게 학교에서 보자는 말을 학생에게 마지막으로 전했지만, 정말 그 학생을 건강하게 다시 볼 수 있을지는 분명하지 않다.2023년 3월. 정부는 최초로 청년(만 19세~34세) 삶 실태조사 통계를 발표했다. 결과에 따르면 거의 집에만 있는 청년 비율이 2.4%, 약 24만 4천 명으로 나타났으며, 은둔의 이유로는 취업과 인간관계의 어려움이 제시되었다. 일본의 은둔형 청년이 전체의 1.8% 수준이란 점을 고려할 때 대단히 높은 수치다. 코로나가 끝났지만, 그냥 쉰다는 청년이 65만 명이 넘는다는 통계까지 고려한다면, 우리 사회에는 어떤 이유로 취업 전선에 뛰어들지 않고 고립된 삶을 살아가는 청년이 증가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게다가 2022년 대한민국 전체 실업률이 2.9%인 점을 고려한다면, 청년들의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짐작할 수 있다. 2023년 현재 청년들의 이런 삶은 여러 가지 문제가 복잡하게 얽힌 결과일 것이다.최근 신림동 살인사건, 서현역 살인사건 등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범죄가 연달아 발생하며 경찰이 특별대책을 발표하는 등 대안 마련에 나섰다. 시내에 기관총으로 무장한 경찰과 장갑차까지 등장했다. 당연히 ‘묻지마 범죄’에 대한 엄벌과 예방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지우기 어려운 사실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만 않았을 뿐, 우리 주위에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청년들이 많다는 점이다. 고립된 청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최근 발생한 일련의 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이다.

2023-08-15

태풍이 지나간 자리에서

강박과 불안을 저 멀리로 보내고 싶어진다. /언스플래쉬 태풍 카눈이 몰려오고 있었다. 우산을 들고 있기도 힘든 강풍이 불었지만 나는 인천으로 향하는 버스를 기다렸다. 우산을 썼다는 게 무색할 정도로 옷이 잔뜩 젖어 버스 가죽 시트에 앉는 것이 민망할 정도였다.버스 안에선 실시간으로 태풍으로 인한 피해 뉴스 기사를 읽었다. 안타까웠다. 왜 절망은 이렇게 예고도 없이 찾아와 안그래도 고통 속에 머무는 인간의 삶을 휘저어 놓는 걸까. 아직 읽지 못한 피해 기사가 수두룩했지만 휴대폰을 끄고 눈을 감았다. 태풍의 절정에 다가서는 듯 버스는 바람에 거세게 흔들렸고 차창에 부딪히는 물방울은 소란스러웠으며, 두통이 또다시 시작되었기 때문이었다.버스 2개를 마저 갈아타고 인천광역시 중구에 위치한 작은 섬 영종도에 도착했다. 숙소에 들어가 간단한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웠다. 새하얗고 보드라운 흰색 이불을 몸에 덮고선 거센 바람과 빗소리를 가만히 들었다. 바깥과 달리 방 안의 낯선 적막이 온몸을 휘감아 소름이 돋았다. 시계를 보니 대략 한 시 반. 평소 이 시간에는 오후 업무를 다시 해내기 위해 억지로 커피를 들이켜고 있을 시간이었다.휴대폰의 전원을 끄고선 안개가 내려 앉아 먹먹히 젖은 바다와 빗소리로 부산스러운 영종도의 풍경에 귀를 기울였다. 현실의 고단함을 이렇게 외면하는 것이 정말 맞는 걸까 싶지만, 어떤 상황은 정면 돌파보다 가만히 눈을 감고 인내하는 것에서부터 해결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겨우 떠올려보았다.낯선 공간이 조금씩 익숙해질 때쯤, 집에서부터 챙겨온 김영민 저자의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꺼내들었다. 손길이 가는대로 아무 장이나 펼쳐 보았더니 시시포스 신화 이야기로 글이 시작된다.꾀가 많고 교활한 시시포스는 제우스의 분노를 사 저승에 가게 된다. 하지만 시시포스는 자신의 못된 지혜를 이용해 저승의 신 하데스를 속이고 장수를 누린다. 곧이어 속임수가 발각되었고, 신을 속인 벌로 무거운 바위를 산 정상으로 밀어 올리는 영원한 형벌을 받는다.김영민 저자는 이 신화의 이야기를 꺼내오며 ‘시시포스와는 달리 권태를 이기기 위해 인간은 스스로 돌을 아래로 굴린다’고 말한다. 생은 본래 허무하며, 외려 인간은 허무함을 잊기 위해 반복되는 노동을 자처한다는 것이다.이어 ‘먹고살기 위한 노동이 아닌 즐기는 노동이 되어야 그나마 노동은 삶의 구원이 될 수 있다. 서둘러 판단하지 않고 구체적인 양상을 집요하게 응시하는 것은 신산한 삶을 견디게 하는 레시피다. 슬픔이 닥칠 때는 절망으로 인해 바닥으로 떨어지는 게 아니라 지금 언덕을 오르는 중이라 생각하라’고 말한다.너무 당연한 이야기일까. 하지만 생의 허무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모르겠을 땐 ‘구체적인 양상을 집요하게 응시하라’는 말이 듣고 싶어진다. 김영민 저자의 말처럼 ‘쉬는 일도 쉽지 않은 것이 인생’이기 때문이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그리곤 그가 말하는 ‘소극적으로 쉬면 안 된다. 적극적으로 쉬어야 쉬어진다. 악착같이 쉬고 최선을 다해 설렁설렁 살아야 한다’라는 문장을 읽으며 허무를 받아들이는 여유와 마음의 탄력을 상기해보는 것이다.스멀스멀 밀려오는 강박과 불안을 파도 소리에 실어 저 멀리, 도무지 내가 떠올릴 수 없는 곳까지 밀려 보내본다. 하지만 그럴수록 역설적이게도 나를 괴롭힌 허무와 어떻게 하면 더 잘 지낼 수 있는지, 허무를 어떻게 더 길들이며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열렬한 고민에 빠져드는 것이다.왜 나는 어제의 나보다 더 행복해져야 하는가? 일상의 허무를 잊고 마음의 안정을 위해 낯선 곳으로 발걸음을 옮겨왔으나 실은 막연한 행복에 기대지 않고 구체적으로 허무를 대하는 법에 골똘해지기 위해 이곳에 당도한 것임을 깨닫는다.사방이 조금씩 어두워지고 있고 비는 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그쳤다. 풍경이 조금 더 선명히 보이고 해변가에는 폭죽을 터뜨리는 이들이 보인다. 발코니에 앉아 그들이 만들어 내는 작은 소음을 지켜본다. 마음 속 어딘가에서 생의 의문들이 싸구려 폭죽처럼 낮게 솟아오르다 힘없이 꺼진다.그 풍경을 오랫동안 지켜보기 위해 얇은 겉옷을 걸치고 의자를 고쳐 앉았다. 쉼이 시작되고 있다.

2023-08-15

이것이 K잼버리다

서울 시내에서 본 스카우트 대원들. 지난주 월요일, 을지로에 나왔다가 영국 스카우트 대원들이 폭염의 광장시장 앞에 퍼질러져 있는 광경을 보고 측은했다. “집 나오면 개고생”이라는 말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스카우트 스카프를 매고, 배지를 달고 있었지만 영락없는 난민 꼴이었다. ‘엑소더스’에 성공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버티고 있었다간 태풍에 풍비박산 났을 테니 말이다.새만금 잼버리가 종료됐다. 153개국 4만3천여 명 청소년이 참가한 역대 최대 규모 행사는 다른 의미로 ‘역대급’이 됐다. 천억 원 넘는 예산을 어떻게 사용한 건지 뭐 하나 제대로 준비된 게 없었다. 기록적인 폭염 가운데 그늘 하나 없는 풀밭에서 잼버리 대원들은 온열 질환과 모기, 개미 등에 시달렸다. 열사병 환자들이 속출했지만 의료 지원은 미비했고, 열악한 야영 환경에서 세계 청소년들의 종아리에는 벌레 물린 수포 자국이 가득했다. 청소가 이뤄지지 않은 화장실에서는 악취가 나고, 인원수 대비 턱없이 부족한 샤워장은 비좁은 데다 수압까지 약했다. 비위생적인 시설에서 전염병이 창궐하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 만큼 후진적이었다. 그 와중에 단독 입점한 GS25 편의점은 바가지 상술까지 부렸다. 총체적 엉망진창. 전체 예산 1170억 원 중 야영장 시설 조성에 쓴 돈은 129억 원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날카로운 감사를 피하지 못할 것이다.새만금에서 잼버리를 개최한 것부터 난센스다. 새만금은 끔찍한 생태 학살의 현장이지 않은가? 자연의 보고인 갯벌에 시멘트를 들이부어 바다 숨구멍을 막아버린 곳이다. 자연과 인간의 상생을 주장하는 잼버리 정신을 완벽하게 위반한다. 뉴스에 보도된 현장 영상과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황량하기 그지없는 사막 같은 데다 천막을 쳐놨다. 애초에 장소 선정부터가 틀려먹었다. 이 파행을 예상 못했을까? 게으른 관료주의는 아마 ‘들판에서 텐트치고 애들 놀다 가는 거’ 정도로 잼버리를 얕잡아봤을 것이다. 돈 잔치라고 여겼는지도 모르겠다. 그 결과 전 세계적인 개망신을 당했다.정부가 부랴부랴 수습에 나섰다. 조기 퇴영한 대원들을 서울로 불러 시티투어 버스 태워주고, 경복궁 구경시켜주고, 홍대 기숙사에서 재우고, K팝 콘서트를 보여줬다. 다른 지자체들도 거들었다. 잼버리 대원들은 악몽 같은 새만금을 잊고 부산 광안리에서 해수욕하고, 드론쇼 보고, 보령 대천해수욕장에서 머드 축제 즐기고, 전국 각지에서 템플스테이, 레고랜드, 민속촌 관광 등 다채롭게 놀았다. 정부와 지자체의 위기 대응은 ‘K스러움’이 뭔지 제대로 보여줬다. 인간성이 결여된 디지털 콘텐츠, 규격화된 관광 자원, 자연과의 불화, 자본이 급조해낸 문화 양식 등이다. 나는 새만금 잼버리보다 ‘폭망’한 잼버리를 수습하기 위한 ‘K관광’이 더 큰 실패라고 생각한다. 잼버리를 고작 단체 패키지 관광, 애들 수학여행으로 전락시켰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급히 대책을 마련하느라 정신없었겠지만. 다른 나라 대원들과 함께 교류하며 협동심과 이타심을 발휘하고, 도시 문명의 이기에서 벗어나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불편함을 낭만으로 바꾸는 씩씩함이 잼버리 정신임을 떠올린다면 실내 체험 행사와 도시 투어, K팝만을 내세운 대응은 아쉽다. 국가별로 뿔뿔이 흩어져 노느라 ‘잼버리 공동체’는 조각나고, 대자적 기억 대신 개개인의 즉자적 추억만 남았다. 캠핑 인구가 700만 명이나 되고, 육군이 사계절 야영 훈련을 하는 ‘야영 강국’ 대한민국인데, 잼버리의 취지에 보다 부합한 대책은 없었을까?“여러분은 시련에 맞서 이것을 오히려 더 특별한 경험으로 맞바꾸었습니다. ‘여행하는 잼버리’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아흐메드 알헨다위 세계스카우트연맹 사무총장의 폐영식 발언에는 뼈가 있다. ‘시련’, ‘특별한 경험’, ‘여행하는 잼버리’에 밑줄치고 싶다. ‘K잼버리’의 가장 큰 문제는 그늘 없는 새만금이 아니라 관료주의의 빈곤한 상상력이다. 한국사회 특유의 효율과 가성비 지상주의다. 호방하고 장쾌한 데가 없이 모든 문화가 비좁고 답답하다. 땡볕의 간척지로 상징되는 산업화의 난개발은 우리에게서 자연을, 자연과 어울리는 낭만을, 숲과 반딧불을, 맑은 공기를, 조화와 연대의 감각을 앗아가고 협소한 생활과 작위적인 문화만 남겨뒀다. 여기저기서 발생하는 칼부림 사건과 잼버리의 파국을 거슬러 올라가면 그 기원이 가까울 것이다.

2023-08-15

“내 새끼가 아니다…”

김진국 고문 “내 아이는 왕의 DNA를 가졌기 때문에 왕자에게 말하듯 말해라.” 한 교육부 사무관이 자식의 담임교사에게 이런 메일을 보내 충격을 던졌다. 보도에 따르면 한 사설 자녀 교육 지도 단체가 부모들에게 가르친 내용과 유사하다고 한다. 장애가 있는 아이가 왕의 DNA를 가졌다고 생각하고 양육하라고 부모를 교육한 내용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해할 수도 있다.그렇지만 ‘왕의 DNA’를 가진 아이가 그 공무원의 자식만이 아니다. 그 반에 있는 아이들 모두에게 해당한다. 그런데 “또래의 갈등이 생겼을 때 철저히 편들어 달라”고 요구했다니 자기가 실천할 것을 교사에게 요구하는 난독증(難讀症)인가. 자기 아이 외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내 새끼 지상주의’를 전파하는 건가. 그는 “나는 담임을 교체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압박하고, 실제로 직전 담임교사를 직위해제 시켰다. 이런 사람이 교육부 고급공무원이라니 더 어이가 없다.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사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정황상 학부모의 갑질 때문이라고 교사들은 의심한다. 전국의 교사가 분노했다.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는 영화 제목에나 써먹는 말이 됐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말라는 건 케케묵은 잔소리다. 스승에게 주먹질하는 세상이다. 버릇없는 학생을 훈계하지 못하고 참으며, “내 새끼 아니다”라고 주문을 왼다고 한다. 스승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다.우리 사회에 분노가 가득하다. 취업이 안 되는 사회적 원인이 크다. 휴대폰에 갇혀 가족이고, 친구고, 대면 소통이 단절된 기술적 요인도 있다. 그렇지만 의사가 치료해야 할 부분은 논외로 하더라도, 누군가는 사회 규범을 가르쳐야 할 것 아닌가.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개인의 쾌락만이 아니라 가족과 공동체에 기여하고, 작은 어려움은 이겨내는 인내심도 길러야 한다. ‘왕의 DNA’를 가지고, 안하무인인 아이들만 설친다면 우리 사회가 어떻게 되겠나.자식 문제는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다. 국회 인사청문회를 보면, 고위공직자들도 가장 큰 약점이 자식이다. 몰래 자식에게 재산을 넘기려는 사람, 자식의 교육·병역·국적·취업을 위해 편법을 쓰는 사람…. 아득바득 불법으로 재산을 불리는 것도 결국 자식을 황제로 살게 하겠다는 욕심 아닌가.대통령들도 예외가 아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아들 김현철 씨가 국정에 개입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재임 중 아들을 구속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부인 손명순 여사는 “이러려고 대통령 됐느냐”라며 울었다고 한다. 그는 회고록에서 “진작 해외에 내보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일었다”라고 썼다.김대중 전 대통령은 임기 중에 아들 삼 형제를 모두 비리 혐의로 구속했다. 그는 야당 총재 시절에도 아들에게는 엄하게 하지 못했다. 장남 홍일을 권노갑 전 의원 지역구이던 목포에 공천하면서, “나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해서…”라며 반대 의견에 입을 막았다.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극으로 몰아간 것도 자식 문제다. 검찰 수사가 진행되던 어느 날 정상문 비서관이 권양숙 여사와 돌처럼 굳어진 얼굴로 심각하게 이야기했다. ‘(아들) 건호가 관련되었다는 500만 달러, 아내가 받아 쓴 3억 원과 100만 달러’(자서전 ‘운명이다’) 문제였다. 노 전 대통령은 자서전에 “그때만 해도 미국에 있는 아이들에게 쓴 것인지 몰랐다”라고 썼다. 역시 자식 문제였다.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집안이 풍비박산한 가장 큰 배경도 자식 사랑이다. 이미 박근혜 정부 때 최순실 씨의 딸 사랑이 얼마나 큰 재앙을 가져왔는지를 보고 배운 이후다. 그런데도 자식 문제에는 눈이 멀어버린다.발자크의 소설 ‘고리오 영감’은 평생 두 딸에게 재산을 다 쏟아부었지만, 가난뱅이가 되자 외면당하는 노인 이야기다. 두 딸은 아버지의 장례식에도 오지 않았다. 뒤늦게 고리오는 “부모는 자식에게 생명을 주지만, 자식은 부모에게 죽음을 준다”라며 정곡을 찌른다.자식 사랑을 나무랄 순 없다. 하늘이 정한 본능이다. ‘딸 바보’, ‘아들 바보’가 미담일 수 있다. 그래도 내 새끼밖에 안 보이는 사람이, 사회 지도층으로 존경받아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3-08-13

다시 기림일

김은주 포항시의원 다시 기림일이다. 정확하게 오늘은 국가 기념일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이다.그리고 내일은 광복절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고 광복의 기쁨을 누려야 할 때, 그러지 못하는 거꾸로 가는 세상에, 그리고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하는 이들에게 한 말씀 드리고자 한다.8월 첫날 폭염으로 한껏 달궈진 길 위에 섰다.국회 앞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보호법 개정을 촉구하기 위해서다. 폭염주의보에 1시간 동안의 1인 시위는 땀과의 전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지난 몇 년 동안 한국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보호를 위해 운동을 했던 단체에 대한 가짜뉴스가 대량 생산되었다. 최근 대부분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이 났지만, 왜곡된 프레임 탓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명예훼손뿐 아니라 일본군 ‘위안부’를 지원하는 모든 활동 등이 부정되는 시간을 견뎌야 했다.1992년부터 시작해 1천600회를 넘어선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시위 현장은 더 참혹하다. 언젠가부터 역사 부정 세력들이 수요시위 자리에 집회 신고를 해서 자리를 선점하기 시작하더니 그들의 혐오 발언은 30여 년을 바위처럼 지켜온 수요시위 현장을 오염시키기 시작했다. 급기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께서 발언하시는데도 할머니의 실명을 부르면서 성희롱적 발언을 쏟아내는 것은 참아내기 힘들 지경이었다.‘누가 저들의 스피커를 저렇게 키워주고 있는 것인가?’ 슬프고도 참담했다. 무엇보다 그 모진 말들을 오롯이 견뎌내고 있는 수요시위를 지키는 모든 이들에게 경의를 표한다.얼마 전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수요시위 현장에서만 봤던 역사 부정 세력들이 내일 광복절에 포항 환호공원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소녀상 철거를 촉구하는 집회를 연다고 한다. 포항까지 찾아온 자세한 내막을 알 순 없다. 사실 알고 싶지 않다. 무관심이 최선이긴 하다.하지만 한 가지만 알려 드리겠다.포항 환호공원의 평화의 소녀상은 2015년 포항여성회가 주축이 되어 포항시민 3천여 명이 모금에 참여해 만들어낸 것이다. 그리고 지난해 포항시에서 공공조형물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는 점이다.끝으로 국회에 잠들어 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보호법이 긴 잠에서 깨어나길 바란다. 등록한 240여 명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중 이제 생존자는 아홉 분에 불과하며 평균 연령이 94세로 할머니들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무엇보다 올해 96세이신 경북에 유일한 일본군 ‘위안부’생존자이신 박필근 할머니께서 뉴스를 자주 보신다.행여 할머니께서 역사 부정 세력들의 혐오 현장 관련 뉴스를 보시고 “누가 그카던데, 그게 무슨 말이고?” 이렇게 물으신다면, 무슨 답을 해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다.다시 기림일!혐오는 정의와 상식을 이길 수 없다.오늘 하루만큼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기리고 평화를 기원하는 날이 되길 간절히 바라본다.

2023-08-13

끝이 안 보이는 정치적 시니어 비하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필자는 ‘노인’이란 단어를 개인적으로 쓰지 않는다. 노인이라는 단어을 공공연하게 쓰는 나라는 아마 한국뿐 일 것이다. 영어에서는 시니어 시티즌(Senior Citizen)이라고 하여 경험을 강조하지 늙은 것을 강조하지 않는다. 할인을 하는 경우 시니어 디스카운트(Senior Discount)란 단어를 사용한다.민주당의 정치적 시니어 비하는 끝이 안 보인다. 시니어에서 표를 많이 얻지 못하니까 아예 시니어들에게 투표권을 주지 않거나 차등화된 표를 주자고 주장한다.어떤 정치인이 시니어에게는 투표권을 제한해야 한다. 삶이 많이 남은 젊은이에게는 투표권을 더 할당하고 남은 삶에 비례하여 투표권을 비례적으로 주어야 한다는 말을 했다.그러니 또 다른 정치인이 맞장구를 치며 시니어는 곧 사라질 사람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럼 중고교생들은 살날이 많으니 한 100표의 권리는 주어야 한다는 말로 들린다.참 정신나간 정치인들이다. 표를 얻으려니 모두들 제정신들이 아닌듯하다. 이들의 막말과 비하는 처음이 아니다과거 대통령 후보는 ‘60대 이상은 70대는 투표 안 해도 괜찮다. 집에 쉬셔도 되고….’라는 발언을 비롯해 ‘50대가 되면 멍청해진다. 60대엔 책임 있는 자리는 맡지 말아야’한다는 말도 했다. 심지어 ‘서울 노친네들 투표 못하게 여행 예약해드렸다’는 네티즌의 트윗에 ‘진짜 효자!!’라고 댓글을 단 분이 교수를 하고 장관을 했다는 분이다.사실상 이들의 시니어 폄하 발언은 표를 얻기 위해 물불을 안가리는 치유할 수 없는 습관성 질병의 수준이다. 이들의 발언은 시니어 폄하가 아니라 시니어 혐오의 수준이다. 자기들에게 표를 많이 안준다고 하여 시니어들을 혐오하는 수준으로 발전했다.투표권을 남은 생명과 비례하여 주자고 주장한 그 분은 대학교수까지 했던 분이라고 하는데 정말 수학적 사고가 그 정도인가 묻고 싶다. 그 분 주장대로라면 갓 태어난 1세가 남은 생명이 가장 길기 때문에 가장 많은 투표권을 주어야 한다. 선거제도가 가령 18세 이하에 투표권을 안주는 것은 사고의 성숙도를 고려하는 것이다.사고의 성숙도는 18세가 넘어 시작되어 계속 경험과 성숙도가 쌓이면서 늘어간다. 사고의 정점의 나이가 몇인가 하는 가는 의견이 다를 수 있다. 많은 시니어들은 사고의 성숙이 계속 늘어간다고 믿고 있다.맞장구를 친 의원은 “김 위원장 말이 맞다. 지금 투표하는 많은 이들은 미래에 살아있지도 않을 사람들”이라는 섬뜩한 글을 남겼다. 연령과 세대를 선거 득실과 표로 계산하고 재단하는 음습한 속내가 드러난 것이다.표를 주지 않는 유권자를 미워하고 투표권을 제한하자는 반민주적 공상을 하는 당이 ‘민주’라는 당명을 붙이고 있다는 것도 아이러니이다.인간은 누구나 늙어간다. 선택할 수 없고 피할 수도 없다. 고령은 차별의 대상이 아니라 성숙한 사고의 존경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시니어들에 대한 반감과 저주를 퍼붓는, 조폭적 행패를 즉시 멈추어야 한다. 미래는 청년과 시니어들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며 결정되는 것이다. 합리 운운하면서 시니어 차등 투표까지 토론 대상으로 삼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당사자는 발언의 맥락을 오해했다고 주장하지만 전혀 오해가 된 것이 아니고 표를 의식한 막말이 확실히 느껴진다. ‘청년’과 ‘미래’라는 명분으로 시니어들을 핍박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정치인들이 해야 할 일은 절대 아니다.시니어들은 지금의 청년이 존재하도록 사회를 발전시킨 장본인들이다.시니어의 개념도 이제 자꾸 달라지고 있다. 100세 시대에는 기존의 청년, 중년, 시니어의 개념도 바뀌어 가고 있다. 이제 환갑잔치도 사라지고 칠순 잔치도 안하는 시니어들이 많다. 그들은 장년이라고 스스로 믿고 있기 때문이다.나이에 대해 우리가 흔히들 잘못 알고 있는 상식은 판단이 흐려진다는 주장이다. 경험을 해보니까 판단은 더 명확해지고 오랜 경험에서 무리한 결정보다는 더 합리적인 좋은 결정을 하게 된다는 것이 느껴진다. 치매 등에 의한 사고의 노쇠가 있지만 그건 본인이 확실히 알 수 있고 결정할 수 있다. 그래서 미국대학에는 교수의 강제 은퇴가 없다. 스스로 판단하여 80이 넘어서 강단에 서는 교수도 많다. 특히 초일류 대학인 하버드, 스탠퍼드 등에는 이런 교수들이 많다.나이는 숫자가 아닌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나이로 세대를 구분할 필요도 없고 차별화할 필요도 없다. 같은 사고를 하고 같은 감정을 가진 것이 시니어 세대이다. 이제 100세 시대에 우린 살고 있고 시니어들의 활약도 사회의 중요한 몫이 되고 있다.“너 늙어보았니? 나 젊어 보았다”는 노래가 생각난다. 나이 들어 보지 않은 청년들은 시니어를 충분히 이해하기 쉽지 않다.그러나 이해하기 쉽지 않다고 추측으로 세대를 구분하고 혐오하는 일은 멈추어야 한다. 일부 몰지각한 정치인들의 자신들의 이익 계산에 의한 시니어 혐오는 즉시 멈추어야 한다.

2023-08-13

기후재난과 극복을 위한 실천방안

위현복(사)한국혁신연구원 이사장 일반인에게 익숙하지 않았던 ‘탄소중립, 넷 제로, RE100’ 같은 단어들이 이제 일상의 문제가 됐다. 전 세계적으로 기후변화에 의한 재난이 심각한 현안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지난 7월은 온도계가 도입된 후 가장 더웠다고 한다. 평소 장마철에 300㎜ 정도 오던 비가 1천㎜ 이상 쏟아져 경북에서만 25명의 희생자를 내기도 했다. 기후변화로 인한 재난이 결코 남의 나라 일이 아니란 걸 온 국민이 절감하고 있는 여름이다.지구상에 발생하는 이산화탄소의 경우, 공기로 증발하거나 식물·토지·해양에 저장됨으로써 수많은 세월 동안 균형을 이뤄왔다. 그런데 1760년대 산업혁명 이후 땅속에 저장되어 있던 화석연료를 인위적으로 캐내어 사용함으로써 균형이 깨지기 시작했다.현재는 산업혁명 전에 비해 석탄, 석유, 가스등 화석연료로부터 매년 510억t이라는 어마어마한 양의 이산화탄소가 추가로 공기 중으로 배출된다. 국제사회는 뒤늦게 탄소배출로 인한 기후위기를 깨달았다. 2015년이 돼서야 UN은 파리기후협약(197개국 참여)을 통해 국가별 NDC(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2021년까지 제출받았다.세계 대부분의 국가가 2030년(2017년 기준)까지 43% 정도의 감축목표를 제시했다. 우리나라도 2018년 기준 40% 감축목표를 제시했다. 전 세계가 2050년까지 매년 발생되는 510억 톤의 탄소배출을 제로(0)로 하자는 것이 목표다.최근 IPCC(UN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는 탄소중립뿐만 아니라 화석연료(석탄, 석유, 가스) 기반 경제를 지속가능한 재생에너지(태양광·풍력·수력) 기반 경제로 바꾸자는 ‘에너지 대전환’ 선언을 했다. 지금처럼 화석연료 기반 경제를 유지하다가는 기온이 감당할 수 없는 정도로 높아져 2100년쯤에는 인류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안토니오 구테흐스 UN사무총장은 “인류가 기후연대 협정을 맺던지 집단적 자살협약을 하던지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라고 부르짖었다.에너지 대전환을 하려면 지금까지의 삶의 방식을 바꿔야 한다. 편리하고 익숙한 생활문화를 단기간에 바꾸기 위해서는 대단한 실천의지 없이는 불가능하다.‘월드 그린뉴딜’ 제안자인 제레미 리프킨은 “이제 인류도 ‘멸종할 수 있는 생물종’임을 스스로 인식하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현실은 인류가 ‘공동의 유대감’을 갖도록 만들었다”라고 했다. 필자는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큰 위기는 ‘정치 지도자들이 기후위기가 얼마나 심각한 상태인지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에너지 대전환에 대해 비용을 운운하며 너무 비용이 많이 든다든지 또는 마치 안 해도 될 일을 강요당하는 것처럼 여기는 것이 문제다. 정치 지도자들이 이런 사고를 가지고 있는 한 ‘온도 상승을 산업화 이전보다 1.5도에서 멈추라’는 선언이 헛구호가 될 가능성이 높다. 기후위기 전문가들은 온도 상승이 ‘2도’를 돌파하면 인간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지구가 위험해질 수 있다고 판단한다. 궁극적으로 물질 중심의 문명 체계를 바꾸는 대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인류의 생존 문제가 걸린 기후위기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첫째, 사용하는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해서 30% 에너지 절감을 실천해야 한다. 이회성 IPCC의장에 따르면 지금 사용하는 에너지의 40~70%는 절감 가능하다는 것이다. IEA(국제에너지기구)는 에너지 절감을 ‘The First Fuel(첫 번째 발전소)’이라고까지 하며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에너지 절감은 1㎾ 절감에 27원의 비용이 드는 가장 싸고 안전하고 친환경적인 발전이다. 공장이든, 빌딩이든, ATP든 에너지 절감을 실천하면 작게는 몇 십 ㎾, 크게는 몇 백 ㎾ 청정 발전소 하나를 갖는 것과 같다. 에너지 절감 활성화를 위해서는 절감에 따른 각종 인센티브 제공과 ESCO(성과배분방식)와 같은 법적 정비가 필요하다.둘째, 모든 건축물에 태양광을 설치하면 우리나라에 필요한 재생에너지의 30% 정도를 조달할 수 있다. 기업들이 공장 지붕에 태양광을 설치하면 작게는 몇 100㎾에서 많게는 수천㎾까지 재생에너지 발전이 가능하다. 공장과 아파트, 상가, 주택의 지붕·옥상에 태양광 설치를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셋째, 법적으로나 제도적으로 햇빛이 가장 풍부한 전답에 태양광과 풍력발전기를 설치할 수 있도록 해서 대도시나 산업단지에 필요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우리나라는 지금 정치인이나 기업을 비롯해 전 국민들이 기후위기에 무감각한 상태다. 탄소중립이 뭔지, RE100이 뭔지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고 있다. 마치 미지근한 솥에 들어앉은 개구리와 같은 모습이다. 솥은 이미 끓고 있는데 생명이 위험한지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에너지에 대한 국민 의식의 대전환 없이는, 앞으로 10년 안에 우리 모두가 돌이킬 수 없는 지옥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경고를 귀담아들어야 한다. 기후 재앙을 우리 눈으로 명백하게 보는 순간, 기후환경에 대한 통제는 인간의 영역을 벗어나게 된다는 섬뜩한 경고를 잊지 말아야 한다.

2023-08-13

‘시인의 저녁’, 종언을 고하다!

김규종 경북대 교수 금요일 점심 먹고 오는 길에 아, 그렇지,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경북대 교수회에서 퇴임의 변(辯)을 써달라는 시한이 그날이었기 때문이다. 까맣게 잊고 있다가 문득 생각이 난 것이다. 길을 걷는 일은 그래서 유용하고 의미 있는 모양이다. 방송국으로 출발하기 전까지 남은 시간은 얼핏 두 시간이다. 그 시간 동안 지나간 세월을 차분하게 반추하여 글로 옮겨야 한다. 원고매수 제한은 없으니, 하고 싶은 이야기를 차분하게 전하면 된다.수요일에는 젊은 가수 박창근씨를 초대하여 두 시간 특집방송을 진행했고, 목요일에는 학교 선생님 두 분과 함께 교육 문제를 여러 각도에서 짚어봤다. 그리고 금요일에는 음유시인이자 참여 가객(歌客) 정태춘-박은옥 부부를 초대하여 두 시간 특집방송을 하기로 했다. 대구 문화방송 라디오 프로그램 ‘시인의 저녁’이 청취자들과 작별 인사를 하는 중이다. 금요일 저녁 6시 5분부터 8시까지 두 시간 방송을 마치면 ‘시인의 저녁’은 종방이다.지난 2020년 10월 5일 저녁 6시 15분에 시작하여 2년 10개월 1주일 동안 진행된 ‘시인의 저녁’이 막을 내린다는 소식은 지난 5월 중순에 알려졌다. 처음에는 뭐, 그럴 수도 있는 일이지, 하고 덤덤하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방송국의 의사결정과정이 마음에 와닿지 않았고 서운하기까지 했다. 손님인 나야 어쩔 도리가 없지만, 은퇴를 목전에 둔 연출가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인 방송 중단 통보는 찜찜하고 아쉬운 것이었다.8월 11일 저녁 8시가 되면 2021년 ‘한국 방송 라디오 부문 대상’을 받은 전국 유일의 시사와 인문학 프로그램인 ‘시인의 저녁’이 끝난다. 그런 자명한 사실이 시간과 더불어 점점 현실로 다가오는 것이다. 돌이킬 수 없는 필연의 사실로 굳어진 방송 중단! 수요일 박창근 가수는 여러 차례 부당함을 강조한다. 이렇게 좋고 의미 있는 프로그램을 중단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그는 여러 차례 항변조로 말한다. 고마운 마음으로 그의 말을 들었다.세상의 모든 것은 생명이 있든 없든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기 마련이다. 나의 교수질 30년 인생이 끝나가듯 ‘시인의 저녁’도 끝나는 것이다. 마지막 방송을 마치고 나오자 30명 정도의 방송국 관계자들이 잔칫상을 준비한다. 피디와 아나운서, 방송작가들이 십시일반 (十匙一飯) 정성스레 준비한 상이 펼쳐지고, 축하와 감사 인사가 이어진다. 여기저기 사진기가 소리를 내고, 환한 웃음과 예기치 못한 눈물이 터져 나온다.‘사랑에 관하여’에서 안톤 체호프는 모든 것은 가장 적절한 시간에 끝난다는 명언을 남겼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소설의 남녀 주인공 알료힌과 안나 알렉세예브나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마침내 종언(終焉)을 고할 때 작가가 남긴 말이다. ‘시인의 저녁’도 그러할지 모르지만, 나는 오히려 ‘시(始)는 종(終)이요, 종은 시다’라는 글을 남긴 윤동주 시인의 말에 더 동의하고 싶은 마음이다. 지난 1천일 동안 ‘시인의 저녁’에 관심과 애정을 쏟아준 대구경북 청취자들께 감사드린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다시 그들과 만나고 싶다. 끝은 어차피 새로운 시작이기에!

2023-08-13

長壽의 섬 울릉

우정구 논설위원 중국 진나라 황제 진시황은 불로장생을 염원해 우리나라 남해와 제주도 등지로 사신을 보내 불로초를 구하려 했으나 끝내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가 염원한 불로장생의 기대와는 다르게 그는 49살의 이른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늙지 않는다는 불로초가 실존하지는 않지만 인류는 오래 살기를 염원하면서 질병과의 싸움을 거듭한 끝에 인간의 수명을 꾸준히 늘렸다. 통계에 따르면 1900년도 세계인의 기대수명은 평균 31세였고, 1950년대 와서 평균 49세로 높아졌다. 2020년에는 1900년도의 두배가 넘는 평균 73세에 이르렀다. 현재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평균 84세다.최근 질병관리청 자료에 의하면 울릉군은 전국에서 가장 건강하게 오래 사는 도시로 밝혀졌다. 울릉군의 건강수명은 77.4세로 전국 평균 70.9세보다 6.5세가 높았다. 또 전국에서 가장 짧은 부산의 부산진구 64.9세보다는 무려 12.5세가 높았다. 건강수명이란 기대수명에서 질병이나 장애를 가진 기간을 뺀 수명을 말한다.우리나라는 1인당 연간 평균 외래진료 횟수가 OECD국가 중 1위를 차지한다. 의료기술과 의료복지가 잘 돼 있어 OECD 국가 중 기대수명과 건강수명 등이 최상위권에 속한다. 우리나라의 이런 의료 현실과는 다르게 울릉군의 의료환경은 열악하다. 실제 병원 역할을 하는 곳은 보건의료원 하나뿐이다. 그럼에도 건강수명이 전국에서 가장 높게 나타난 것은 눈여겨볼만 한 일이다.육지와 멀리 떨어진 섬이란 특수성과 울릉군의 뛰어난 자연환경, 맑은 공기, 좋은 물 등이 주민들의 건강을 지켜준 탓은 아닐까. 이번 조사로 울릉군이 전국 최고 청정지역임이 입증된 것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8-13

지구온난화와 제조 현장의 개선

엄주선 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올여름 폭염이 미국과 유럽·아시아를 강타하며 3개 대륙이 경쟁하듯 연일 사상 최고기온을 갈아치우고 있다. 미국 남부 피닉스는 50년 전의 최고 기록을 경신하며 19일째 43도가 넘는 불볕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유럽도 로마 관측사상 최고 기온인 41.8도를, 스페인 일부 지역은 45도의 폭염을 기록하였다. 인도에서는 최소 90명이 더위로 사망하면서 급기야 유엔 산하 세계기상기구(WMO)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지구 온난화 시대는 끝났다 지구가 끓는 시대가 시작 되었다’고 발표하였다.우리나라도 피해가 커지고 있다. 지난 7월 제주도 서귀포에 있는 용머리해안을 갔는데 제주 해안의 해수면 상승폭이 지구 평균의 3배로 1989년을 기준으로 2018년 12.8Cm 상승하였고 2050년 26.4Cm, 2100년에는 47.7Cm가 상승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로 인해 용머리해안로의 종일 탐방 가능 일이 2011년 214일에서 2020년에는 42일로 줄어들어 아쉽게도 해안에서 바라만 보다 와야 했다.최근 제조현장에서도 지구환경에 영향을 주는 황산화물(SOx)과 질소산화물(NOx)을 줄이기 위해 많은 투자와 노력을 하고 있다. 황산화물은 보통 SOx라고 하며 황과 산소가 주성분으로 대기중에는 아황산가스(SO2) 상태로 존재한다. 연료 중에 함유된 황 성분이 연소에 의해 산소와 결합하면서 발생한다. 이를 제거하기 위해 주로 다공의 활성탄을 사용하여 화학적물리적인 흡착을 통해 제거하고 있다.질소산화물의 주요 형태는 일산화질소(NO)와 이산화질소(NO2)이며 이 둘을 합쳐서 NOx로 표현한다. 질소가스를 구성하는 두개의 원자는 아주 강하게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원자 상태로 쪼개는 것은 높은 온도가 아니면 쉽지않다. 그래서 주로 제조 현장의 연소로 소각로 등 석탄, 석유, 가스 등과 같은 연료에 의한 연소시 생성되며 대기중에서 물과 반응하여 질산(HNO3)을 만들어 산성비를 유발하므로 인체에 유해하며 환경과 대기 오염을 유발한다.질소산화물을 제거하기 위해 제조 현장에서는 오산화바나듐(V2O5)을 촉매로 사용하여 암모니아와 몰농도를 일정비율로 주입 280 ~ 450°C 온도에서 반응시켜 NOx를 제거하는 선택적촉매환원법(SCR)을 많이 사용한다. 제철공정에서는 원료를 1차 가공하는 소결로에서 광석을 소결하는 과정에서 배출가스에 포함된 황과 질소 산화물을 탈황과 탈질 설비를 순차적으로 거쳐 대기 방출 농도가 기준치 이하가되도록 하고 있다.생산설비를 정기수리나 점검후 재가동할 때 불안전 연소나 탈황 탈질 설비가 정상 가동이 안되어 황과 질소 산화물 농도가 많이 올라간다. 이들 설비가 정상 가동되기 위해서는 수분, 온도 등의 가동 조건이 되어야 하기에 현재는 행정처분 유예 시간을 설비 특성을 고려하여 주고 있다.하지만 최대한 짧은 시간에 법 기준치 이하로 빠르게 낮추는 것이 회사나 사회 모두에게 필요하므로 설비 문제점을 발굴하여 정상가동 시간을 줄이기 위해 개선을 지속하고 있다. 환경오염 물질의 배출 저감은 후손들에게 지속가능한 지구를 물려 주기 위해서라도 모두의 노력과 개선이 더 요구되는 시점인 것이다.

2023-08-13

치매는 치매가 아니다

유영희 작가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병을 꼽으라면 누구나 치매를 들 정도로 치매는 모두에게 공포의 대상이다. 치매에 걸리면 벽에 똥칠한다는 소문으로만 치매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치매를 두려워하게 된 이유는 무엇보다 치매라는 명칭 때문이다. 치매는 ‘어리석을 치’, ‘어리석을 매’ 두 글자로 이루어져 있어서 지나치게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을 뿐 아니라 실제 환자의 증상과도 동떨어져 있다. 치매 환자의 인지 기능이 낮기는 하지만 어리석지도 않고 증상의 범위도 넓기 때문이다.지난 6월부터 노후 준비 차원에서 치매를 공부하고 있다. 사회교육기관에서 치매 강의를 같이 들은 동료들과 모임을 만들어 학습을 이어가고 있는데, 아무리 중증 치매 환자라도 자기주도권에 대한 의식은 끝까지 가지고 있다는 내용을 알고 숙연해진 적이 있다.신경과 전문의 양현덕은 치매 환자 진료에만 머물지 않고 치매 전문 출판사와 인터넷 신문을 발간하고 있는데, 2021년 ‘디멘시아 도서관’을 개관하여 치매 인식 개선에 앞장서고 있다. 그는 ‘치매 정명’이라는 책에서 ‘치매’라는 단어의 뜻을 알기만 해도 이 명칭이 부적절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며,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서라도 명칭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미 대만은 2001년에 실지증으로, 일본은 2004년 인지증으로, 홍콩과 중국은 2010년과 2012년에 뇌퇴화증으로 이름을 바꾼 상태다.우리나라에서는 이들 나라보다 조금 늦게 2006년부터 보건복지부에서 치매 명칭 개정을 추진했고, 2017년에는 ‘인지장애증’이라는 이름으로 바꾸기 위한 국회 입법안이 발의되었지만, 병명 개정보다 사회적 인식 개선이 더 중요하다는 이유로 계류된 이후 최근까지 지지부진한 상태였다. 다행히 작년 말부터 다시 개명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간질은 뇌전증으로, 정신분열증은 조현병으로, 나병은 한센병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병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많이 감소한 사례가 있다. 막연히 예쁜 이름으로 바꾸자는 말이 아니다. ‘치매 정명’에서는 새 명칭의 조건으로 질병의 본질이 잘 반영해야 하고, 과학적 타당성이 있어야 하며 국민이 쉽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할 것 등을 제시하고 있다.현재 84만 명으로 추정되는 치매 환자는 2030년에는 136만 명, 2050년에는 300만 명을 넘을 것이라고 한다. 치매에 대한 무지로 이들을 불편하게만 생각한다면, 그 부담은 우리 모두가 같이 질 수밖에 없다. 초기에 발견하지 못하여 악화되면 시설에 갈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환자에게도 고통이고 비용도 천문학적으로 늘어난다.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조기 발견할 수 있고 잘 관리하면 자기 집에서 이웃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기간이 늘어난다.그러기 위해서는 명칭 개선이 급선무다. 그동안 후보에 오른 ‘인지장애증’와 ‘인지저하증’, ‘신경인지장애’ 중에서 선택해도 좋다. 이 글에서는 어쩔 수 없이 치매라는 단어를 썼지만,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그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바란다. 치매는 치매가 아니다.

2023-08-13

‘화랑대기 전국 유소년축구대회’에 거는 기대

주낙영 경주시장 전국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화랑대기 전국 유소년축구대회’가 보름간 경주 일원에서 개최된다. 제6호 태풍 ‘카눈’의 한반도 북상으로 대회 차질이 우려됐지만, 10일 열릴 개회식은 취소하고 대회 시작도 11일에서 12일로 하루 연기하는 것으로 조정해 무사히 개막했다.올해로 20회째를 맞는 이번 화랑대기는 지난 12일 첫 경기를 시작으로 오는 25일까지 국내 최초 에어돔 축구 훈련장인 ‘스마트 에어돔’을 비롯해 알천구장, 축구공원, 화랑마을, 시민운동장에서 1천900여 경기가 열릴 예정이다.이번 대회는 전국 620여 개 팀, 선수 1만 여 명이 참가한다. 그간 코로나19로 인해 불참했던 일본 나라시와 중국 양저우시 유소년 팀까지 출전하면서 그 어느 해보다 다채롭고 풍성한 대회가 될 전망이다.올해부터는 선수들과 공의 움직임을 감지해 자동으로 촬영하는 AI 카메라 중계를 도입해 유튜브(KFATV Live, AI SPORTS TV)에서 박진감 넘치는 경기 관람이 가능하다.또 폭염을 대비해 선수들의 안전과 원활한 경기 진행을 위해 다양한 팀들이 빠짐없이 스마트 에어돔 경기장을 일부 활용할 수 있도록 경기 일정을 마련했다. 또한 대회안전과 차질 없는 진행을 위해 야외 축구장에 쿨링포그(물입자 분사) 운영, 경기장 아이스박스 설치 및 물 공급 확대, 쿨링 브레이크 시행 등 대회 준비에 만전을 기했다.올해 화랑대기는 코로나19 사태가 절정이었던 2021년 대회 당시 221개 팀 참가에 485경기가 열렸던 것과 비교하면 참가팀은 3배, 경기 수는 무려 4배 이상 늘었다.코로나19 이전 수준을 훌쩍 넘어선 가파른 성장세다. 화랑대기 앞에 ‘전국 최대 규모 유소년 축구대회’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은 까닭이다.이뿐만이 아니다. 화랑대기가 열리는 8월 보름간 지역 숙박업소 물론, 시내 음식점과 상가 대부분이 누리는 이른바 ‘화랑대기 특수’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위덕대 건강스포츠학부 박진기 교수팀이 분석한 ‘2022 화랑대기 전국유소년축구대회 평가보고서’에 따르면, 선수단 1만3천790명이 지난해 경주에서 7.25일을 머물렀고 선수 학부모 등 방문객 4만3천549명이 4.28일을 경주에서 묵었다.이 기간 출전 선수단이 지출한 직간접 비용은 84억8천만, 학부모 등 방문단이 지출한 비용은 303억3천만원으로 집계됐다.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선수들이 식사와 숙박이 편리한 불국사 숙박단체단지에 머무는 반면, 학부모들은 보문관광단지와 도심권에 주로 머문다는 점이다.‘화랑대기 특수’가 특정 숙박업소나 단체식당에만 국한되지 않고 경주 전역에 미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특히 화랑대기가 여름휴가 성수기가 끝나는 8월 중순부터 열리면서, 사실상 여름 성수기가 10여일 이상 연장된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화랑대기가 코로나19 사태로 침체된 지역경제 회복에 큰 버팀목 역할을 했다는 데 별다른 이견이 없을 것이다.반면 화랑대기가 긍정적인 면만 있는 건 아니다.대회 때마다 지적을 받았던 일부 숙박업소 업주들의 바가지 상혼과 경기장 주변 불법 주정차 문제가 대표적이다.경주시에서는 지속적인 행정지도와 단속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갈 방침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시민들의 성숙된 시민의식과 참여이다.최근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은 일본과의 경기에서 연속으로 3대 0 참패를 당했다. 호주에서 열리고 있는 ‘2023 여자월드컵대회’에서의 일본 여자축구팀의 선전은 부럽기만 하다. 일본축구의 놀라운 성장과 발전은 유소년 축구에 대한 체계적인 육성과 지원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경주시가 유소년 축구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많은 투자를 하고 있는 것은 단순히 지역경제에 도움이 되고자 하는 욕심만은 아니다. 국민적 스포츠인 대한민국 축구 발전에 밑거름이 되고자 하는 대의도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수많은 축구선수들이 화랑대기를 통해 배출되었음을 큰 자랑으로 생각한다.경주시는 전국 최대 규모 유소년 축구대회로 자리 잡은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앞으로도 화랑대기의 발전과 성장을 위해 모든 역량을 아끼지 않을 작정이다.

2023-08-13

사랑, 그 지독한 멜로

이희정 시인 그가 오른손 검지로 내 왼눈을 찔렀다나는 눈을 지그시 감고그의 손가락이 후벼 파는 내 혈관의 피비린내를 음미했다어쩌다 통증 같은 것이 올라오면한밤중에 사 오던 감기약이나목도리 둘러주던 손길을 떠올리기도 했다그러다 어떤 순간엔 눈꺼풀에 더욱더 힘을 주었다그의 손가락이 내 눈에서 빠져나갔을 때내 눈을 잊지 않게 하려는 의도였다나는 그의 손끝이 지나가는 길을 잊지 않으려고내 몸의 다른 부분은 모두 잊기로 했다나는 눈이 전부인 물고기였다그가 손가락을 빼고물 없는 수조에 나를 눕혀주었을 때나는 비로소 숨쉬기를 기억해냈다그가 왜 내 눈을 찔렀는지나는 왜 물고기가 되었는지알 수 없었으므로나는 오른눈을 내 손으로 찔러보기로 했다―최라라, ‘사랑’ 전문 (나는 집으로 돌아와 발을 씻는다, 2017)최라라 시인이 그려내는 ‘사랑’은 독특하고 강렬하다. 제목과 달리 이 시는 그저 달콤쌉쌀한 멜로가 아님을 첫 행부터 시종일관 보여주고 있다. 장르적 관점에서 보자면 서정적 스릴러라고 명명하고 싶을 만큼 기이하고 매혹적이다.“형식은 이데올로기의 벡터다” 에이젠시테인이 남겼던 이 말은 다른 예술처럼 시에서도 형식의 중요성을 그대로 요약한다. 그녀는 자신이 선택한 형식의 자장 속에서 위축되지 않은 잔혹한 그로테스크(grotesque)의 미학을 유감없이 드러낸다.이 시에서 사건을 보는 것은 눈이 아니라 감각이다. 눈은 보는 대신 기억하고 꿈꾸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이성혁의 말처럼 시인에게 사랑은 즉각적으로 고통을 주는 폭력의 의미가 아니라 ‘그’의 존재를 삶의 속살에 깊이 새기는 폭력, 그리하여 운명이 새겨지는 폭력이다. 그것은 서로의 존재를 새기는 일이기에 상처가 나기 마련인 사랑의 격렬함을 의미한다. 고통을 회피한다면 사랑의 극한을 경험할 수는 없을 것이기에. 시인이 “그의 손가락이 후벼파는 내 혈관의 피비린내를 음미”하는 것을 보면 그것은 폭력의 수동적인 수용이 아니란 것을 알 수 있다. 시인은 ‘그’의 존재가 자신의 존재 속으로 격렬히 침입해 들어올 때 일어나는 피비린내로부터 올라오는 통증이다. 이는 아마도 ‘그’에 대한 따스한 추억들, “한밤중에 사 오던 감기약이나/ 목도리를 둘러주던 손길”과 같은 추억들을 떠올리게 된다.시인이 기억하는 사랑은 소중하다. “나는 그의 손끝이 지나가는 길을 잊지 않으려고 / 내 몸의 다른 부분은 모두 잊기로 했”던 것, 그리하여 그녀는 “눈이 전부인 물고기”가 되어버린다. 우리는 이 대목에서 “혼자 있으면 그 혼자 있음이 금방 들켜 버리는 외눈박이 물고기 비목(比目)처럼 목숨을 다해 사랑하고 싶”다던 류시화의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된다. 여기서 시인은 “그가 왜 내 눈을 찔렀는지/ 나는 왜 물고기가 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고 한다. 이에 시인은 자신의 “오른눈을 내 손으로 찔러 보”는 일을 자행한다. 자신의 눈을 찔러줄 ‘그’는 없다. 그렇기에 스스로 자신의 다른 쪽 눈을 찔러봄으로써 사랑의 고통을 체험하면서 자신 안에 깊이 존재하는 그를 이해하고 자신이 물고기가 된 연유를 알려고 한다. 이제 우리는 자신의 눈을 찔러보는 고통스러운 실험이 시인이 시를 쓰는 바탕이 되는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그것은 떠나간 ‘그’를 기억하며 자신의 눈을 찔러 눈알이 된 지느러미만 남은 물고기가 시인의 숙명임을 견지하고 있다.사랑의 방식이 서로 달라서 상처인 줄 모르고 내 방식을 고집하는 사랑이라고 말한 친구의 독해처럼 이 시는 그렇게 읽을 수도 있겠다. 가학적인 사랑의 상처가 멈춰 선 자리에서 최라라 시인은 다소 모호하게 구두점을 찍으며, 고백의 바깥으로 배턴을 넘긴다. “그의 손가락이 내 몸을 빠져 나갔을 때”의 서술이 겨냥하고 있는 것처럼 표현의 대담함이나 우울한 판타지의 대리 만족도 아니다. 이것은 헤어짐을 삶의 본질로 이해하게 되는 그에 대해 기억하는 그녀의 사랑 이야기다. 그가 떠나고, 환상이 끝나고, 꿈이 끝나야 비로소 사랑임을 알 수 있다. 그것이 이 시에서의 사랑이 처한 위치다.“그의 손끝이 지나간 길을 잊지 않으려고 내 몸의 다른 부분은 모두 잊기로 했다”

2023-08-13

그들만의 리그, ‘이권 카르텔’

홍석봉 대구지사장 고려대교우회, 호남향우회, 해병대전우회는 조직력이 단단하기로 유명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결속력이 강한 인맥 집단이다. 또한 가장 배타적인 집단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한국 3대 마피아’라고 칭해지기도 했다. 이들의 조직은 국내는 물론 세계로 뻗어있다. 서로 끌어주고 당겨주는 대표적인 인맥 집단이다. 이 3대 조직도 사정이 예전만은 못한 듯 하다. 젊은 세대의 정서에 맞지 않아 회원수 격감 등으로 쇠퇴하고 있다. 그래도 끈끈한 유대는 이어지고 있다.최근 ‘이권 카르텔’이 주목받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언급을 계기로 우리 사회의 병폐로 자리잡았다. 윤 대통령은 2021년 대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이권 카르텔’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 문재인 정권을 겨냥했다. 이후 각종 ‘이권 카르텔’이 등장했다. 척결 대상이 됐다. 노조와 시민단체가 타깃이 됐다. 정부가 노조에 메스를 댔다. 민간단체 보조금을 유용한 시민단체도 ‘이권 카르텔’의 한 부류가 됐다.이권 카르텔의 대상은 우후죽순으로 나왔다. 문재인 정부의 정책도 대상이 됐다. 신재생에너지 사업은 부정과 부패의 온상으로 이권 카르텔로 지목됐다. 수능 킬러문항 논란 이후 ‘사교육 이권 카르텔’이 등장했다. 최근엔 ‘순살 아파트’사태로 LH의 ‘전관 카르텔’ 특혜 시비가 불거졌다.대통령은 신임 차관에게 임용장을 주면서 현 정부를 ‘반카르텔 정부’로 규정하고 “이권 카르텔과 가차 없이 싸워달라”고 주문했다.‘50억 클럽’의혹의 당사자인 박영수 특별검사의 구속을 계기로 법조 카르텔이 주목받았다. 이권 카르텔을 깨는 첨병인 검찰도 도마위에 올랐다. 법조 카르텔에 침묵하는 검찰에 대해 여론은 비판적이다.전두환·노태우 대통령 때 위세를 떨쳤던 ‘하나회’는 카르텔의 원조다. 군부내에 패거리문화를 조장했었다. 관가에서는 한때 한국 경제를 좌지우지했던 ‘모피아’가 대표적 카르텔이다. 재무부와 재경부 출신들이 요직을 독차지하고 그들끼리 대물림했었다. 최근 문제가 된 LH의 전관 업체 특혜도 공무원 사회에 이어져 온 ‘전관 카르텔’의 하나다. 법조계에 만연한 전관 예우 풍토는 대표적인 전관 카르텔이다. 문화권력자들의 이권 카르텔과 운동권의 좌파 카르텔은 사회의 암덩이가 됐다.이 같이 우리 사회 곳곳에 각종 카르텔이 판을 치고 있다. ‘관행’이란 이름하에 ‘그들만의 리그’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혈연·지연·학연이 판을 치던 연고 사회의 변형된 모습이다.우리 사회 곳곳에는 아직도 드러나지 않은 ‘이권 카르텔’이 적지 않다. 오히려 더 조직화되고 내부 결속이 더 단단해지는 느낌이다. 애교심과 애향심, 동지애는 잘 어우러지면 시너지 효과를 가져 온다. 하지만 권력 지향과 이념이 덧입혀지면 또다른 ‘이권 카르텔’이 된다. 조심해야 한다. 그래도 이권 카르텔이 국정운영에 걸림돌이 되거나, 비판 세력이라고 해서 낙인찍기는 곤란하다. ‘이권 카르텔’이라는 이름으로 조자룡 헌칼쓰듯 단죄 해서도 안 된다. 자칫 전임 정부의 적폐청산 재판(再版)이 될 수 있다.

2023-08-10

성주참외의 진가

우정구 논설위원 한국산 참외는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과일이다. 한국에서 유일하게 개발한 품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외에서는 이를 코리안 멜론으로 부른다. 한해살이 덩굴식물로 분류학적으로는 멜론의 한 변종이다.멜론과 오이의 중간 정도의 맛을 가지고 있다. 참외의 어원도 좋다, 뛰어나다는 뜻의 ‘참’과 ‘오이’를 축약해 참외로 불렀다.수분 함량이 90%이상 차지해 수박과 더불어 대표적인 여름 과일로 손꼽힌다. 지금은 하우스재배가 가능해 연중 생산되지만 여름이 제철인 과일이다. 비타민C가 풍부해 기미, 주근깨 예방에 좋고 피부노화를 늦춰져 여성에게 특히 좋다. 또 무더위로 피로감을 느끼는 사람에게도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전해진다.참외 씨를 먹으면 배탈이 난다는 속설이 있으나 씨앗에 붙어 있는 태좌는 식이섬유가 많아 씨앗을 같이 먹는 것이 오히려 좋다.참외하면 경북 성주다. 우리나라 생산량의 80%가 성주에서 생산된다. 성주군은 50년 전부터 참외를 많이 재배해 왔다. 낙동강 연안에 위치한 비옥하고 넓은 토지와 풍부한 일조량이 있어서다.성주군에서 생산되는 참외 규모가 연 6천억원 정도다. 제주 다음으로 조수익 규모가 크다. 성주군내 3천800여 참외 농가 중 44%가 억대 조수익을 올리는 부농이다.지난 4일 일본 소비자청은 한국산 참외가 스트레스 완화에 도움이 된다고 인정해 기능성표시식품으로 등록을 허가했다. 참외에 함유된 가바(GABA) 성분이 일과 공부 등으로 인한 일시적 스트레스를 완화해주는 과학적 근거가 있다고 인정한 것이다. 일본 소비자청에 등록된 기능성표시식품은 전체의 2.9%에 불과하다. 한국산 참외의 진가가 인정된 셈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8-10

노인을 멸시하는 좌파들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우리나라는 상고시대부터 경로효친(敬老孝親)의 전통이 있었다. 단군신화나 지석묘 등에 반영된 조상숭배사상을 엿볼 수가 있고, 유교의 효(孝)사상이 유입된 삼국시대부터는 세속오계(世俗五戒)와 같은 체계적인 실천덕목으로 정립하기에 이르렀다. 특히나 조선시대에는 효사상이 사회를 지탱하는 근간이었다. 그래서 전래의 동방예의지국이라는 칭송과 함께 유교적 이상이 가장 잘 실현된 나라로 불렸다.경로효친은 우리 민족이 농경사회로 정착하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윤리체계이기도 하고, 한 편으로는 한 핏줄을 이어받은 민족이란 의식이 바탕이 된 사상일 터이다. 친인척이 아닌데도 노인들을 보면 할아버지 할머니로 호칭하고, 부모 뻘의 연세이면 아버지 어머니로, 비슷한 연배들 간에는 언니 오빠 형으로 부르는 언어습관에도 그런 피붙이 의식이 여전히 남아 있다.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바뀌면서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 고모까지 한 집에서 살던 가족형태가 소위 핵가족으로 분화되어 가족관계의 붕괴와 함께 연장자에 대한 권위나 존경심도 희박해져 갔다. 더구나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오늘날에는 노인들은 시대에 뒤처진 구닥다리 신세를 면하기 어렵게 되었다. 수천 년 이어온 농경사회에서는 노인의 경험과 경륜이 삶의 지혜이고 능력이었지만, 지금은 가전제품 하나 작동하는 것도 일일이 손자들에게 물어야 하는 처지이니 무엇으로 권위를 찾겠는가.얼마 전에 더불어민주당의 혁신위원장이란 이가 노인을 비하하는 발언을 해서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청년들과의 좌담회 자리에서 “남은 수명에 비례해서 투표하게 해야 한다”는 중학교 2학년짜리 아들이 했다는 말을 인용하면서 ‘합리적이고 맞는 말’이라고 한 것이다. 같은 당 양이원영이란 의원도 “지금 투표하는 이들은 미래에 살아있지도 않을 사람들이다. 오래 살아있을 청년과 아이들이 미래를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거들었고, 윤형중 혁신위원회 대변인도 양이 의원의 주장을 두고 “발언의 본 취지를 정확히 이해한 그런 글이었다고 생각한다”라고 두둔하고 나섰다.그들의 발언은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무시하는 것은 물론 노인세대를 멸시하는 패륜적인 행태가 아닐 수 없다. 지금의 야당을 비롯한 좌파들이 노인을 비하하고 멸시하는 가장 큰 이유는 노년층에 우파들이 많다는 사실 때문이다. 좌파 정치인들은 젊은이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노인비하를 서슴지 않는 것이고, 그런 선동에 물들어 좌경화된 젊은이들은 ‘꼰대’니 ‘틀딱’이니 하면서 노인들을 멸시하고 혐오하기에 이른 것이다. 정치적 이득이나 표를 모으기 위해서는 패륜쯤은 아랑곳없다는 것이 좌파들의 인성인 것 같다.권력을 위해서 친형을 독살하고 고모부를 처형한 북한의 김정은을 추종하는 주사파들을 위시한 좌파들에겐 이념이나 정치적 이득을 위해서는 인륜이나 법질서쯤은 짓밟아도 된다는 걸 보여준다. 그럴수록 노인세대가 더욱 분발하여 국가와 미래를 위한 마지막 충정으로 자유민주주의체제의 수호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2023-08-10

분노 사회의 ‘묻지마 범죄’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입추와 말복에 태풍이 다가오는 어수선한 8월 초, 흉기 난동의 무차별 살인범죄가 연이어 발생했고 그 여파로 닮은꼴의 살인예고 협박성 글이 온라인 커뮤니티 SNS에 와글대고 있다. 지하철역 등 다중 밀집 지역에서 불특정 사람들을 살해하겠다는 협박에 범행을 막으려고 전신무장한 경찰들이 배치되고 시민들은 불안에 떨며, 지나가는 사람에게 의심의 눈길을 둔다,지난 7월 21일 서울 신림역 부근 골목에서 30대 남자의 무차별 칼부림으로 4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범인은 무직, 전과 3범 외에도 소년 시절 범행도 10여 건이 넘는다.‘열심히 살았는데 잘 안돼….’ 하며 범행 후 태연하게 부근 계단에 앉아있다가 검거됐다.이후 2주일도 지나기 전에 분당 서현역에서는 22세 청년이 차량을 인도로 돌진하여 행인 5명을 친 후, 다시 인근 쇼핑몰로 칼을 들고 들어가 무차별 난동으로 9명을 다치게 하였다. 정신병력이 있으며 자신은 ‘스토킹 집단의 위험을 느꼈다’고 진술하고 있다.또 지난 1월 신도림역과 2월 신길역에서 묻지마 폭행을 한 남·녀, 3월 전철 내에서 시끄럽다는 60대 여성을 살해한 30대 여자…, 이렇게 불특정 다수를 노린 반사회적 범행은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었고, 이러한 분노 범죄는 코로나 팬데믹 등으로 사회와의 단절과 고립에 의한 사회성 결여와 고물가, 불황과 실업, 빈부의 양극화 등 사회 불안 현상을 원인으로 보고 있다.경찰청이 밝힌 바에 의하면 9일까지 수사 중인 살인예고 187건 중 67건을 검거했다고 하는데 10대가 34명이며 14세 미만도 다수라고 한다. 이처럼 고립·은둔 청년의 묻지마 범죄로 인한 피해자 역시 평균 27.4세라고 하니 요즘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정신적 불안이 심각해지는 것 같다. 이러한 ‘묻지마 범죄’의 공식 용어는 ‘이상동기 범죄’라 하며 현실불만형, 정신장애형, 만성분노형 등 3가지 유형으로 분류하고 있다. 검거된 후에는 ‘죄송합니다’‘남들도 불행하게 만들고 싶다’‘살고 싶지 않다’라고 중얼대지만 ‘관심받고 싶다’는 10·20대의 심리가 사회에 화를 유발시켜 관심을 끌고 자신은 변태적 쾌감을 느끼는 악질적 범죄인데도 ‘장난이었다’라고 변명하고 있다.이에 행정안전부는 특별치안 활동을 선포하고 예고지역 순찰강화와 선별적 검문검색을 실시하는 동시에 경찰의 정당한 총기 사용 및 제압 행위에 대한 책임감면 규정을 재조정하는 한편, 범죄자에 대한 처벌 강화 등 형사사법제도의 개선을 추진할 것이라 한다. 즉 위계에 의한 공무 방해, 협박 및 살인예비죄 등을 적용한 처벌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최근 묻지마 범죄에 불안을 느끼는 사람들을 위하여 알림 사이트 ‘테러리스(terrorless)’도 배포되어 있다. 살인, 칼부림, 총기 난동, 폭탄 테러 등이 난무하는 요즘, 우리나라에 총기 소지를 허용하였다면 어찌 됐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러나 마냥 두려워만 할 것이 아니라 청소년들의 교육심리 상담 등 특별예방교육과 홍보 활동 확대, 갈등관리에 대한 지원과 멘토링으로 공동체 의식함양을 높이고 사회 전반의 대응 체계를 강화하여 안정된 사회가 되도록 힘써야 한다.

2023-0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