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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교권과 학생 인권의 조화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지난 18일 서울 서이초등에서 23세 새내기 여교사의 안타까운 죽음의 소식이 전해왔다. 그것도 자기가 근무하는 학교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이라 더욱 마음이 아프다. 담임을 맡고 있던 학생을 훈계한 것을 학부모가 전화를 걸어 협박하는 소위 ‘부모의 갑질’에 시달리며 힘겨워했으며, 이 사실이 터지자 유사한 사건들이 하나둘씩 알려지며 우리 교육계의 어두운 면이 밝혀지며 참았던 분노를 쏟아내고 있다.교사의 꾸지람이 학생 인권을 침해했다는 것으로 학부모의 폭언과 해명 요구 등 보호자의 악성 민원이 교사들에게 심각한 정신적 불안과 함께 극단적 선택을 하게 한다는 것이다. 1개월 전쯤에는 초등 6학년이 여선생에게 무차별 폭행을 가해 신체적 손상을 입혔는데 이 학부모 역시 아동학대라는 이유로 학교를 찾아오고 전화로 협박하여 괴롭히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학부모의 갑질은 잘못된 방향의 자식 사랑이고 지나친 편애의 과잉보호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처벌이나 제재수단이 없는 실정이며 교사를 업신여기는 사회 풍조 탓이다. 학생 인권을 앞세우고 있지만 교사들에게는 교권침해이기도 하여 교권 붕괴 현장이 된 것이다.교사는 교육할 권리, 전문직 종사자로서의 권리 및 인간으로서의 기본 권리가 있으나 학생, 학부모 또는 동료 교원, 사회단체 등에 의해 침해를 당하기도 한다. 교권은 교과 과정 편성, 교재 채택, 성적 평가 등 많은 곳에 해당하지만 학생지도와 징계권도 있다. 그래서 잘못을 저지른 학생에게 나름의 올바른 가르침을 주는데 이를 아동학대라 하여 고발하는 등 범죄로 취급하는 학부모가 문제인 것이다. 최근 교육활동 침해는 연간 2천 건을 넘고 모욕과 명예훼손이 약 55%라 한다. 교사는 학부모로부터 자녀교육권을 위임받아 인생의 지도자로서 덕성과 인격을 바탕으로 진리와 양심을 자유롭게 가르치는 이른바 ‘스승’으로 대접받는 ‘선생’이어야 하지만 요즘은 단지 가르치는 직업인 즉 ‘교사’로 격이 낮아지고 공무원으로만 여겨지는 것 같다.학생들은 수업 중에 라면을 먹는 영상을 남기기도 하고 휴대폰으로 녹음도 하지만 학생인권조례가 있어 체벌이나 압수가 어려운 실정이며 하기싫은 공부를 시킨다고 반항하며 오히려 선생을 폭력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고 이를 제지하거나 몸에 손을 대면 언어폭력 또는 성폭력이라고 고발당하는 현실이다. 그리하여 조사에 의하면 교사 10명 중 8명 정도가 ‘학교를 그만두고 싶다’ ‘이직과 사직을 생각한다’는 응답이고 ‘이제는 꿈의 직장이 아니다’라는 분위기이다. 여기에 충북도 교육감은 “교사는 예비 살인자이다” 했으니 과연 그 교육감은 교육자인가….교육의 교(敎)는 회초리로 때려 가르친다는 글자이고 육(育)은 거꾸로 태어난 아이를 몸으로 감싸서 키운다는 글자이니 비록 매를 들더라도 따뜻하게 품어주어 진정한 사랑의 가르침을 느끼도록 해야 한다.학생은 자유와 권리에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마음에 새겨야 하고, 선생은 아동학대, 정신적 학대라는 가해자로서의 모욕을 받지 않도록 참된 인성교육을 통해 열정을 가지고 가르치는 올바른 교육환경이 이루어져야 한다.

2023-07-27

기상이변과 치산치수(治山治水)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전국 곳곳에 엄청난 폭우의 피해가 잇달았다. 기상이변에 따른 자연재해이기도 하지만 상당부분 사전대비가 부실한 탓도 없지 않았다. 언제 어떻게 닥칠지 모르는 각종 재난에 대해 얼마나 충실한 준비가 되어 있느냐가 선진국 여부를 가름하는 하나의 잣대가 될 것이다.자고로 현명한 지도자들은 치산치수를 통치의 근간으로 삼았다. 중국 전설상의 우왕이 태평성대를 이룬 군주로 칭송받는 것도 치산치수를 잘 해서였다. 조선 말기까지 우리나라의 치산치수는 아주 열악한 형편이었다. 오죽했으면 정조 임금도 “며칠만 비가 와도 홍수가 나고, 며칠만 비가 내리지 않아도 가뭄이 되는데, 이 모두가 산에 나무가 없기 때문이다”라고 탄식을 했을까.일제시대 조선총독부에서 실시한 대규모 조림사업과 하천개수사업은 그나마 계획적인 치산치수사업의 시작이었다. 해방 후 박정희 대통령의 산림녹화와 사방사업은 오늘의 대한민국 근간이 되는 또 하나의 치적이었다. 1970년대 이전의 헐벗은 민둥산을 기억하고 있는 세대들은 울창하게 숲이 우거진 지금의 산들을 보면 그야말로 금석지감을 금할 수 없을 터이다.이명박 대통령의 4대강 사업은 박정희 대통령의 치산정책에 버금가는 치수정책이었다. 그 사업이 원만히 이루어져 지천의 정비까지 완성이 되었더라면 가뭄과 홍수의 피해는 훨씬 줄었을 것이다. 4대강사업은 고속도로를 건설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기간사업이었지만 처음부터 반대와 반발이 만만치 않았다. 경부고속도로를 만들 때 김영삼·김대중을 비롯한 야권인사들이 길바닥에 드러누우면서 방해를 했던 것 못지않은 저항이 있었다. 그런 반발에도 불구하고 4대강사업을 밀어붙인 이명박 대통령의 결단은 치적으로 평가를 받아 마땅하다. 그럼에도 당시의 야권과 환경단체 등 좌파들은 나라를 망치기라도 한 것처럼 난리를 쳤고, 그런 선동에 넘어간 대다수 국민들도 4대강사업이 국고만 낭비한 무모한 사업인 줄로 알았다.문재인 정권은 5년 동안 나라의 근간을 허무는데만 골몰하였다.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와해시키는 것도 모자라 원전이나 4대강보 같은 중대한 국가 기간산업과 시설까지 파괴하려고 온갖 구실을 만들어 냈다. 월성원전 1호기 조기 폐쇄를 위해 경제성을 조작하고 그 자료까지 폐기한 사실은 감사원의 감사를 통해 밝혀진 바다. 4대강보 해체를 위한 음모도 다르지 않았다. 평가 위원회를 구성할 때부터 해체를 반대하는 인사들을 배제 하고 평가 내용을 조작하는 짓을 저질렀다. “아무 생각 없는 국민들이 들었을 때 ‘그게 말이 되’라고 생각 할 것”이라는 게 그들의 이유이고 논리였다.거듭하는 말이지만 박정희 대통령의 치산과 이명박 대통령의 치수는 대한민국의 근간을 튼실하게 하는 역사적인 업적이었다. 아직도 그걸 모르는 국민들이 많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도대체 잘한 게 뭐가 있다고 노무현의 봉하마을은 성지가 되고 문재인의 양산 책방은 문전성시를 이룬다는데, 청개천 복원과 4대강사업이라는 치적을 남긴 이명박의 기념관이 있는 포항 덕실마을은 한산하기만 하다.

2023-07-27

교실은 누가 책임지는가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젊은 선생님이 유명을 달리하였다. 과중한 업무와 부당한 압력에 못 이긴 결과로 보인다. 선생님은 누구인가. 교육이란 무엇인가. 교사가 하는 일은 무엇이고 어디까지 맡겨야 하는가. 학교와 가정, 사회와 국가 가운데 교육의 궁극적인 책임은 누구의 몫인가. 학부모는 학교 교육에 관하여 어떻게 어느 만큼 개입할 수 있을까. 평소에도 궁금했던 질문들이 한 선생님의 극단적인 선택 앞에 불쑥 올라온다. 교사와 부모 사이의 관계를 우리는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게 아닐까. 갈등이 빚어져 회복할 수 없었다면 문제는 무엇이었을까. 유사한 상황이 지금도 발생하고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바로잡을 수 있을까.믿고 맡겨야 한다. 교직은 성직이었다. 선생님 그림자도 밟지 않았을 만큼 높은 신뢰의 대상이었는데, 언제부터 선생님이 감시와 조롱의 대상이 되어버렸을까. 수십 년 전 학교의 모습에서 교사가 자행했던 폭력과 오만의 그늘을 기억한다. 불신과 경계가 일부 교사들의 악행에서 비롯했던 부분도 부인하기 어렵다. 선생님들이 우선 교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던 첫 다짐을 회복해야 하고, 학부모는 젊은 선생님의 진심을 받아주어야 한다. 교실에서 벌어지는 교육과 관련한 모든 결정과 진행에 학부모의 믿음을 실어야 한다. 교사와 부모가 한마음이 되어 자녀교육을 쌓아야 한다.교사는 을이 아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언제나 갑과 을의 관계로 인식하려는 우리 문화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 나이와 성별, 직책과 소속, 업무와 직종에 따라 갑과 을을 판정한 다음, 그 비대칭적인 관계에 따라 나머지 모든 일을 진행하는 방식을 이제는 버려야 한다. 필요에 따라 전문적인 교육과 훈련을 받고 자신이 선택한 업무에 임하는 만큼, 누구든 전문인의 지위를 인정받아야 한다. 비대칭의 갑을문화가 교육에 들어서 있는 한, 교육의 전문성이 살아날 방법이 없다. 교사와 학부모가 각기 학교교육과 가정교육에 대한 전문적인 인식과 태도를 견지하고 자신있게 본연의 업무에 당당하게 임해야 한다. 서로를 향한 관심과 기대는 각자의 전문적인 소양을 진작시키는 긍정적인 에너지가 되어야 한다. 교사와 학부모의 관계는 갑과 을의 관계가 아니라, 자녀교육을 위하여 서로를 믿고 격려하며 소통하고 공유하는 관계가 되어야 한다.아이는 온 마을이 기른다. 선생님과 학부모뿐 아니라 아이들이 자라나는 주변의 사람들과 사물들이 모두 교육에 함께 한다. 교육정책을 만드는 정부와 교육청은 교사가 교실 안에서 가르치는 일에 던지는 과도한 감독과 감시의 눈길을 거두어야 한다. 교사가 전문적이며 자율적인 판단에 따라 긍정적인 교육을 자유롭게 진행하도록 신뢰하고 격려해야 한다. 선생님들이 처음 가졌던 순수와 열정을 회복하고 오래 간직할 수 있도록 사회적으로 캠페인이라도 벌였으면 싶다. 공교육의 근간은 학교에서 찾아야 하며, 교실은 학교 교육의 현장이다. 교실은 선생님의 가르침과 자녀들의 배움으로 가득해야 한다. 선생님이 살아야 교육이 선다.

2023-07-26

다시 열린 문경 하늘재

홍석봉 대구지사장 문경 ‘하늘재’는 우리나라 최초로 뚫린 고갯길이다. 높이가 525m다. 경북 문경시 문경읍 관음리에서 충북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를 넘어가는 고개 이름이다. 고구려와 백제의 영토 분쟁 역사가 전해오는 역사 속의 옛길이다. 수많은 사연과 이야기를 담고 있는 하늘재가 2천 년 만에 다시 열렸다.하늘재는 삼국사기에 처음 등장했다. 삼국시대(156년) 때 신라의 아달라왕이 북진을 위해 개척했다고 기록돼 있다. 고구려 온달과 연개소문은 빼앗긴 하늘재를 되찾기 위해 끈질기게 전쟁을 벌였다. 고려 공민왕은 홍건적을 피해 몽진(蒙塵)할 때 이 길을 이용했다고 한다. 교통 및 군사요충지이자 물류 및 문화의 통로였다. 하지만 조선 태종 때 새재길이 열리면서 이용객이 줄어들었다. 이전에는 서울서 부산까지 가려면 반드시 하늘재를 넘어야 했다. 계립령(鷄立嶺), 대원령, 지릅재 등으로도 불렸다. 길 양쪽에는 전나무, 굴참나무, 상수리 등 다양한 수종의 나무들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2008년 12월 대한민국의 명승 제49호로 지정되기도 했다.역사적인 길이 지금까지 충주 구간만 남아 있었는데 문경시가 하늘재 옛길을 복원, 문경과 충주를 잇는 하늘재 옛길이 완성됐다. 문경시는 최근 하늘재 정상에서 하늘재 옛길 복원사업 준공식도 가졌다. 하늘재 옛길 복원사업은 관광 자원화와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지난 2019년 시작됐다. 문경시는 57억원을 들여 하늘재 마루턱에서 문경 관음리 마을을 잇는 2.48Km의 옛길을 복원했다. 쉼터와 특산물을 판매하는 마을 공동구판장도 마련했다. 하늘재 옛길을 잘 가꾸어 명소로 만들어야 한다. 역사의 숨결을 느끼고 힐링할 수 있는 명품 옛길이 되길 바란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7-26

백일홍꽃밭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족히 60㎡는 넘는 제법 큰 밭이다. 작년 가을엔 구석에 밭을 작게 일구어 배추니 들깨니 심어 좀 뜯어먹긴 했다. 그래도 묵혀둔 자리엔 풀만 그득그득 자랐다. 부지런하기만 하다면야 온갖 씨를 뿌려 농사를 지을 테지만 천성이 바지런하지 않다. 게으른 자의 고민을 덜어줄 좋은 방법은 없을까 여럿에게 자문을 구했다. 혹자는 고사리를 심으라고 했다. 풀이 덜 자라고 봄에 고사리순을 뜯는 재미가 있다고 했다. 예쁜 꽃도 보고 몇 년 후엔 뿌리를 캐먹을 수 있는 도라지를 적극 추천한 이도 있었다. 도라지가 꽃은 예쁘겠으나 몇 년에 걸친 농사라고 생각하니 선뜻 내키지 않았다. 꽃집을 경영하는 친구가 백일홍을 추천했다. 씨만 뿌려주면 거의 손이 안 갈뿐더러 여름내 꽃을 볼 수 있다고 했다.나 역시 농사보다는 꽃을 즐기고 싶었다. 지난봄 남편과 같이 며칠에 걸쳐 풀을 뽑은 자리에 백일홍꽃씨를 마구 뿌렸다. 그리고 두어 달 지난 6월 초, 백일홍꽃이 한 송이 피었다. 며칠 뒤 가니까 또 몇 송이 더 피면서 사람을 유혹하기 시작했다. 분홍, 연분홍, 다홍, 빨강, 주홍, 노랑색의 꽃이 홑겹으로 피다가 며칠 뒤엔 2겹, 3겹, 또 며칠 뒤면 4겹, 5겹, 6겹의 두터운 꽃송이를 마구마구 피워댔다. 남편도 백일홍은 성공했다고 뿌듯해했다.마치 꽃들이 와글와글 떠들어대는 것 같았다. 숨이 멎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마루에 의자 꺼내어 앉아 꽃밭을 멍하니 보고 있으면 시간이 절로 갔다. 그야말로 꽃멍이었다. 어디 꽃뿐인가. 온동네 나비란 나비는 모두 우리집 꽃밭에 와 있는 듯했다. 세어 보다 수를 잃을 정도로 많은 나비들이 꽃을 탐하며 이리저리 날고 있었다. 문득 사미인곡의 한 소절이 떠올랐다.‘찰하리 싀여디여 범나비 되오리라 곳나모 가지마다 간대족족 안니다가 향므든 날애로 님의 오새 올므리라’ 저 나비들은 백일홍 향을 묻혀 어디로 날아갈까….혼자 보기 아까웠고 우리 가족만 보기에도 아까웠다. 사진과 동영상을 찍어 여기저기 보내며 우쭐댔다. 꽃멍하러 오시라고 자랑삼아 유혹했다. 아름다운 꽃을 보면 소녀같이 흔연해하시는 어른이 가까운 청도에 계신다. 꽃보다 아름답게 노년을 즐기시는 분인데 얼마전 허리를 다치셔서 출입이 자유롭지 못하시다. 꽃사진만으로도 감탄하시는데 직접 꽃을 봬드렸으면 하는 마음에 시간을 내어 모시고 와서 꽃구경을 시켜드렸다. 가까이 대구에 사는 후배도 꽃멍하고 싶다며 기어이 짬을 내어 와 한나절을 머물렀다.44년 전 대구의 한 여중에서 1년간 같이 교사로 지낸 인연을 아직도 이어가고 있는 모임이 있다. 다섯 분의 선생님들이 대찬 장맛비를 뚫고 서울서 부산에서 대구에서 와 모였다. 이 꽃 보러 오신 귀한 걸음인지라 하룻밤을 묵으며 함께 지냈다. 빗줄기 속에도 꽃빛을 잃지 않은 백일홍 덕에 꽃놀이만큼이나 황홀한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래도 성이 차지 않았다. 이 꽃 지기 전에 더 많은 사람들이 이 꽃을 봤으면 싶었다. 나무판자에 글씨를 크게 써달라고 남편에게 부탁했다. 그리고 집 앞 우물 위 덮개에다 올려 두었다. “집안에 들어와서 백일홍꽃 구경하세요”

2023-07-26

백세만세 장수사진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청산이 불로하고 녹수가 장존(長存)하는 여름날이다. 청산은 세월이 지나도 늙는 법이 없으니 변함이 없고, 녹수는 세월이 지난 후에 보아도 언제나 변함없이 푸르게 흐르는 물이다.그러나 사람은 세월이 지나면 몸도 마음도 변하기 마련이니 그렇다고 지나가는 세월을 탓할 수도, 늙어가는 자신을 한탄할 수도 없는 일이라 그저 담담하고 차분하게 세월의 여울에 몸을 맡기면 될 일이다.사람이 태어나서 늙고 병들어 죽는 것(生老病死)은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인데 이 네 가지를 인간이 평생 거치게 되는 큰 고통이라 하여 사고(四苦)라 하기도 한다.즉 유한한 생명체인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게 되는 ‘태어남·늙음·병듦·죽음’은 운명이자 피할 수 없는 고통과 괴로움의 원인이라 할 수 있다.현대의학의 발달과 식습관의 개선으로 병고(病苦)를 다소 줄일 수는 있지만 나이를 먹으며 늙어가는 노고(老苦)는 누구에게나 불가피한 일이기에 순순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어쩌면 젊고 건강한 모습과 추억을 간직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어 오랫동안 남겨두는 습성을 지닌 것이 아닐까 싶다.세월 앞에 장사 없듯이, 좀더 활기차고 발랄한 모습을 보이며 다양한 표정과 자세로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그만큼 젊음과 추억과 인연이 소중하기 때문일 것이다.문명기술의 발달로 누구나 손쉽고 간편하게 폰카메라로 사진을 찍을 수 있고 또 언제 어느 때 다시 보거나 인화할 수도 있으니, 가히 사진은 현대사회의 필요조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멋진 경치나 맛난 음식을 대하면서 사진부터 찍게 되는 것도 결국 오래도록 삶을 회억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사람의 생각이나 기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흐릿해지고 잊혀지기 마련이다.장수사진도 그러한 관점에서 늙어감의 비애를 줄이고 오래 살고 싶어하는 기대와 욕망으로 애써 촬영하게 되는지도 모른다.밝고 편안한 표정을 담은 자신의 인물사진을 대하면 본인도 모르게 마음이 온화하고 넉넉해져서 기분이 좋아지고 만족감 속에 긍정적인 에너지가 생겨날 것이다.비록 세월의 흔적을 감출 수 없고 시간의 지문 같은 주름살을 줄일 수는 없지만, 파란만장한 삶의 여정이 배인 현재의 자신을 있는 그대로 각인시키며 여유롭고 완숙한 얼굴을 사진으로 남겨 놓게 된다면 한결 새롭고 설레는 느낌이 들기도 할 것이다.최근 포항제철소 사진봉사단에서는 구룡포읍행정복지센터에서 제32차 ‘찾아가는 장수사진’ 촬영으로 어르신들께 기쁨을 안겨드렸다.5년째 포항시 전역을 동네방네 찾아다니며 1천200여 분께 건강과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장수사진을 촬영하고 액자로 만들어주고 있으니, 참으로 가상한 일로 여겨진다.쑥스러운 듯 살갑게 장수사진을 받아들며 환하게 웃으시는 어르신들의 백세만세를 기원해본다.

2023-07-26

거머리

윤명희 수필가 검은 하늘이 내려앉는다. 곧 비가 내리꽂을 태세다. 퇴근을 망설이는데 사무실 문이 열린다. 얼굴이 파리한 여자가 엉거주춤하니 들어선다. 상가를 내 놓겠다느니, 상담을 좀 해 달라느니 말의 앞뒤가 연결되지 않는다. 일단 자리에 앉아서 차근하게 얘기해 보라고 하자,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다.“그 남자가 내 명의로 가게를 하거든요?”“무슨? 어떤 남자가요?”얼마 전까지 애인이었던 남자가 그녀의 이름으로 장사를 하고 있다. 이름만 사장인 그녀는 직원이 다섯 명이나 되는 가게에 대해서 아는 게 아무것도 없다. 그녀의 카드까지 사용하는 남자와는 이제 헤어진 사이다. 헤어지고도 카드는 남자가 쥐고 있다. 남자는 카드대금을 내야 하는 날짜를 넘기고, 카드를 정지시킨 그녀는 남자에게 가게에 들어간 돈을 돌려주고 명의를 가져가라고 했단다.남자는 그녀의 말을 단칼에 난도질하고 콧방귀까지 뀌었다. 콧방귀에 이어 쌍욕을 바가지로 하더라며 어이없다는 듯이 실실 웃는다. 갚아야 할 카드 대금이 불어서 7천만 원이라는 말에 듣는 내가 억장이 무너진다. 왜 그 남자에게 가게를 내줬냐고 물었다. 묻는 나도 그녀처럼 갈팡질팡 한다.그녀는 남들이 자고 일어날 때마다 돈 벌었다는 말에 비트코인을 시작했다. 빚을 내 시작한 비트코인은 3천만 원의 빚으로 남았다. 그 빚을 남자가 장사해서 갚아주겠노라 했다. 빚을 갚아준다는 말에 또 카드빚을 내 가게를 차려주면서 4살 연하의 남자와 연인사이가 되었다. 서로의 뱃속에 욕심을 품고 맺은 인연이 맞을 리 만무하다. 그들은 채 1년도 채우지 못하고 서로의 목소리만 들어도 욕이 나오는 원수가 되었다. 그녀는 남의 손으로 코를 풀려다 코가 꿰었다.팔에 큰 문신이 있고 성질이 난폭하기까지 하다는 그 남자가 금방이라도 그녀를 쫒아 들이닥칠 것 같다. 나는 흘낏 바깥을 내다 봤다. 어둠이 내린다. 가게 내 주고, 카드 주고 쌍욕까지 듣는 그녀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 카드빚이 오롯이 그녀의 몫이 되는 건 보나마나다. 세상물정 모르는 그녀를 그냥 보내면 잠이 오지 않을 것 같다. 주변에 얼마나 말을 들어줄 사람이 없으면 내 사무실까지 찾아왔을까. 오지랖이 발동된다.그녀가 폰에 적어 둔 것을 보여주었다. 그 남자에게 하고 싶은 말은 많은 것 같은데 요점이 없다. 뭘 말 하고 싶으냐고 물었다. 폐업을 하고 싶다고 한다. 빚이 더 늘기 전에 그 남자에게 폐업하겠다는 말을 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하자 그녀의 표정이 잠시 밝아진다. 그녀가 써 놓은 글자를 조합해서 말하고 싶은 문장으로 만들어주었다.듣다듣다 하 답답한 마음에 어떻게 하려고 여기까지 왔느냐는 말이 막냇동생 나무라듯이 나왔다. 가게부터 정리하고 나서 파산신청을 하면 그만이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말로만 듣던 파산신청을 아무렇지 않게 얘기하는 그녀를 멀뚱히 쳐다보았다. 보증금을 받아서 그거나마 먼저 갚고 벌어서 차근차근 갚겠다는 말을 기대한 내 귀에, 이젠 나랏돈으로 자기의 잘못을 처리하겠다고? 순간, 힘든 가운데도 꼬박꼬박 세금내고 있는 내 등에 그녀가 빨대를 꼽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녀는 묵은 얘기들을 꺼내며 감정에 받혀 눈물을 찍어내기를 반복했다. 벌써 파산을 말한 그녀를 위해 내가 해 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뜨거운 커피를 그녀 앞에 두고 묵묵히 이야기를 들어 줄 뿐이었다. 상담해줘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다음에 올 때는 커피라도 사 오겠다고 한다. 손사래를 치며 앞에 닥친 일부터 처리 잘하라고 당부했다.그녀가 나가고, 사무실 불을 끄고 문을 잠갔다. 비가 내린다. 우산을 펴고 보니 저만치 그녀가 빗속을 걸어가고 있다. 사무실에 있는 우산이라도 가져가라고 소리쳤다. 하얀 원피스가 손을 흔들며 뛰어간다. 거머리의 등에 더 큰 거머리가 달라붙어 덜렁거린다. 그녀가 횡단보도 앞에 섰다. 저렇게 큰 게 쉽게 떨어질까. 나는 신호등 불빛이 바뀔 때까지 바라보았다.

2023-07-26

신해일주(辛亥日柱)

육십갑자 중 마흔여덟 번째는 신해(辛亥)다. 천간(天干)의 신금(庚金)은 보석 같은 작은 금속이나 칼이다. 지지(地支)의 해수(亥水)는 물빛이 맑아 푸르고 맑고 지혜롭다. 동물로는 흰 돼지다.신해일주는 금백수청(金白水淸)이다. 백금이나 다이아몬드며, 맑고 청청한 물의 형상이다. 깔끔한 성격에 신용과 의리를 제일의 덕목으로 삼을 만큼 약속을 잘 지키며, 언행이 바른 편이다. 씩씩한 성격에 예의를 잘 지키며, 체면과 명예를 중시하고, 허튼 일을 용납하지 않는다.가을바람처럼 겉으로 쌀쌀하고 냉랭한 듯하며, 속으로도 칼날처럼 날카로운 성향을 지니고 있다. 이미지가 차갑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냉철하다. 신금(辛金) 자체가 이미 완성된 귀금속으로 태어났다는 뜻이다. 마치 고귀한 여왕 같은 존재다. 낭만적인 연애를 꿈꾸는 사람이 많아 사랑에 대한 욕심이 많고 집착이 강하다. 반대로 상대가 나에게 집착하면 냉철하게 끊어버리는 냉정한 면도 있다.60갑자 중 미남미녀가 많은 대표적인 일주며, 서구적인 미모가 많다. 보석을 물로 깨끗이 씻어 광채가 나듯 대체로 용모가 준수하고, 행동에 품위가 있다. 또한 미적 감각이 탁월하여 옷을 입어도 세련되고 귀티가 난다. 머리가 좋아 선견지명이 있어 늘 남들보다 앞서가는 성향이 있으나, 의외로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여 제 몫을 챙기지 못하는 성품이다.중국 전국시대 제(齊)나라 황공은 겸손함이 지나쳐서 비굴할 정도였다. 황공에게는 아름다운 두 딸이 있었다. 황공도 두 딸이 눈부시도록 아름답게 자라나는 것을 알면서도 언제나 자신의 딸들이 못생겼다고 낮추어 말하곤 하였다. 그랬더니 딸들이 못생겼다는 소문이 멀리까지 펴져서 결혼할 나이를 넘기게 되었는데도 청혼해 오는 사람이 없었다.마침 위나라에 광곤이라는 노총각이 모든 것을 팔자 탓으로 돌리고, 황공의 맏딸에게 청혼을 했다. 그리고 첫날밤에 비로소 얼굴을 대하고 보니 천만 뜻밖에도 신부는 아름다운 미녀였다. 뒤에 집으로 돌아온 광곤이 사람들에게 “황공께서 겸손하기를 좋아하셔서 헛소문이 퍼진 것인데, 실제로 가서 보니 처제가 더 아름다운 것 같았네”라고 알려 주었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앞을 다투어 청혼을 하였다. ‘윤문자’대도 상편에 나오는 이야기다. 겸손이 미덕인 시대는 지났다. 한편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은 늘 우리를 현혹시킨다. 이와 함께 아름다움도 보는 사람에 따라 기준이 다르다는 점도 유념해야 한다.신해일주 남자는 외모가 좋고 재력 있는 배우자를 만나 큰 문제없이 해로한다. 다만 호색가로 외도를 하거나 숨겨둔 여인이 있으니 처신에 조심할 필요가 있다. 여자는 잘생긴 외모에 꾸미기를 좋아하며, 인정욕구가 강해 연애를 오래 지속하지 못한다. 결혼 후 남편을 무시하고 밀어내는 기운이 강하여 헤어지는 일이 발생하니 유의할 필요가 있다. 남녀 공히 냉정하고 차가운 인상이나, 성실하고 섬세하다. 신해일주는 동물로는 흰 돼지다. 가을에 서리가 내린 풍경으로 고독을 느끼는 성품이며, 불의를 참지 못한다.거친 숨을 몰아쉬는 멧돼지처럼 저돌적인 투지와 끈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려울수록 더 힘이 넘치는 난세호걸이다. 난관에 봉착하면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서 싸우는 것이 매력이다.신해일주는 돼지 해(亥)가 하늘의 매서운 기운인 신(辛)을 만나는 물상이다. 중국의 손문 등이 신해년(1911년) 10월에 봉기를 했다. 1910년 일본이 조선을 망하게 하는 것을 보고 개혁에 나선 것이다. 돼지 년에, 돼지 달 10월에, 10일에 일어난 혁명이라고 신해혁명이며 쌍10절이다. 청 왕조를 무너트리고 민중이 주인이 되었다는 중국 최대의 국경절이다.신해년(1911년)에 청나라 타도를 목표로 손문이 삼민주의를 내세워 동맹회를 중심으로 혁명운동을 추진한 결과, 우창에서 군대가 봉기함으로써 신해혁명이 일어났다. 루쉰(1881∼1916)의‘아Q정전’은 신해혁명 시기 ‘아Q’라는 인물의 인생을 그린 단편소설이다. 그는 성 밖 낡은 절간에서 살면서 마을에서 날품팔이를 하고, 번 돈을 술과 도박에 써버리는 인물이다. 툭하면 깡패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아Q’가 신해혁명에 가담하여 인생역전을 하려다가(그나마도 도적 패거리와 결탁한 것) 나중에는 하지도 않은 강도짓에 서명함으로써 총살당하는 이야기다. 류대창명리연구자 타인의 불행을 동정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영양분 삼아 살아가는 중국인이 곧 ‘아Q’다. 노비라는 약자의 입장에 처해 있으면서 반항할 줄 모르는 ‘아Q’는 오히려 자기와 같은 위치에 있는 약자를 무시한다. 그리고 언젠가는 주인이라는 강자의 위치로 올라가서 자기 밑 사람들을 압박하리라고 상상하는 사람이 곧 중국인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루쉰은 권력자나 외국인이나 주인에게 충성하는 중국인을 물에 빠진 개라 했다. 물에 빠진 개라고 해서 때리지 못한다는 법이 없으며 그럴수록 더 때릴 것을 주문한다. 그놈이 물에 빠진 것을 세례(洗禮)를 받은 것으로 보고 잘못을 뉘우쳤을 것이니 다시는 사람을 물지 않으리라는 생각은 오판이라고 질타했다. 그는 오히려 이 개를 더 두들겨 패라고 주문한다. 신해혁명 후 물에 빠진 개를 때리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제멋대로 기어 올라와 사람을 물어뜯게 되었다는 것을 풍자적으로 나타냈다.개인이 광기에 사로잡히는 일은 매우 드물다. 그러나 개인과 개인이 모여 집단을 이뤘을 때, 혹은 시대의 소용돌이에 휘말렸을 때에는 스스로 의식하지 못한 채 너무나도 당연히 광기에 사로잡힌다. 그 결과는 항상 좋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많다. 그러한 상황에 봉착했을 때 냉철한 이성적 판단이 요구된다.

2023-07-26

자격을 결정할 자격

한 초등학교의 담임교사가 교내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이 벌어졌다. 참담한 일이다. 그녀는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디딘 새내기 교사였다. 학부모의 전화를 수십 통 받았으며 환청이 들릴 정도로 힘겨웠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교사들은 물론이고 많은 사람들이 비통함을 표하고 있다. 나 역시도 얼마 전까지 교원으로 근무했었다. 교무실과 학부모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모습과 어떻게든 잘해보겠다고 애썼으나 상실로만 남은 일련의 사건이 떠올랐다. 지금도 비슷한 고통에서 허우적대는 이들이 있음을 알기에 마음이 더욱 어렵다.학교는 누구에게나 익숙한 공간이다. 인간은 자라면서 필연적으로 이곳을 거치게 된다. 집과 부모라는 안온한 세계를 떠나 낯선 세계로 들어와 타인을 만나고 관계 맺는 방식을 배운다. 세상은 호의적이지만은 않다. 내키지 않더라도 규율과 법칙에 따를 필요도 있다. 학교에 간다는 것은 전혀 다른 세계의 문을 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부서지고 무너지고 다시 단단해지면서 한 생명은 자란다. 그렇기에 학교는 마냥 편안한 공간이 될 수 없다.나의 학창 시절도 그랬다. 학교가 흡사 감옥처럼 여겨질 때도 있었다. 교내에서의 차별과 냉대, 강압과 폭력을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의 선생은 손목에 찬 시계를 벗으면서 학생을 향해 무차별적인 구타를 한다. 소설이나 드라마에도 학생을 향해 거리낌 없이 상처 주는 말을 내뱉는 선생이 자주 등장한다. 서사적 비약이 아니다. 그런 야만적인 시대가 우리에게 분명히 있었다. 교사로 일하게 되면서 아이들이 생각보다 훨씬 약한 존재라는 것을 알았다.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는 눈이 바로 서 있지 못하고 위험한 미끼를 덥석 물어버리기도 했다. 폭력에 노출되어도 그것이 폭력인 줄 모르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은 무조건 보호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그것은 나의 미진함과 어리숙함으로 종종 실패로 끝나기도 했다. 그런 날이면 잠이 오지 않고 괴로움에 몸서리쳤다. 출근 시간은 어김없이 돌아오고 나는 다시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선생의 자리에 앉았다. 어떤 부분이 무뎌지는 기분이 들었고 진정성이라는 피상적인 단어가 무력하게 다가오기도 했다.감사한 점은 내게 사랑과 응원을 주는 학생과 학부모들이 대부분이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폭언에 가까운 전화나 문자를 받은 적도 있었는데, 그러면 마음이 유리처럼 산산이 부서지는 기분이었다. 행간에서 나를 상처 주고 싶다는 명백한 의지가 읽혔다. “당신은 선생 자격이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 간신히 붙잡고 있던 실 하나가 툭 끊어져 버리는 것 같았다.세상을 떠난 그녀 역시 그런 말을 들었다고 했다. ‘자격이 없다’는 말은 상대를 모멸감에 빠지게 만들기에 아주 쉬운 문장이다. 악의적인 인간에게 내뱉기도 하지만 예기치 못한 실수나 부딪침에 있는 사람에게도 자각 없이 쓰인다. 누군가의 자격을 결정할 자격을 가진 사람은 없다. 원인이 어떠하든 그것은 분명히 상대의 마음을 훼손시키는 언어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타인을 향한 적의는 어디서부터 오는가. 한 사람을 절대적 악인으로 상정하고 그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일은 빈번하게 일어난다. 교사가, 관리자가, 학부모가, 어떤 사람들은 학생이 나쁘다고 말한다. 태어난 것 자체가 죄라고 한다. 개인에 고통이나 슬픔에 집중하기보단 누군가에게 책임을 덮어씌운 뒤에 무자비하게 돌을 던진다. 세상이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뿌리 깊은 냉소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런 식의 책임 전가는 더 이상 해선 안 된다.육체만큼 다치기 쉬운 것이 영혼이다. 종이에 손이 베이는 것도 쓰라린데 보이지 않는 화살이 가슴에 박히면 회복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학교에서 일하면서 매일 같이 느꼈다. 구시대적인 통제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사회에서 개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살펴야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다른 세계에서 살아온 존재가 한 교실에 모였다. 갈등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한 사람에게 모든 책임을 덧씌워선 안 된다. 모두에게 책임이 있고 모두가 그만큼 노력해야 한다.비와 무더위가 반복되는 한여름의 가운데 서서 다짐한다. 단 한 사람의 마음을 다른 무엇보다 귀하게 여겨야 한다고. 마음처럼 상하기 쉬운 것은 없으니까. 마음 다해 고인의 명복을 빈다. 학교 구성원을 보호하는 제도적 장치는 물론이고 교육 현장에서의 지속적 성찰과 개선을 통해 이와 같은 일이 다시는 벌어지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2023-07-25

인터스텔라, 더스트 볼, 분노의 포도…

영화 ‘인터스텔라’의 기억에 남는 한 장면. 아이들이 야구를 하는 운동장 너머로 거대한 모래 폭풍이 다가온다. 사람들은 모래 폭풍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황급히 집으로 대피한다. 이윽고 모래 폭풍은 마을과 밭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폭풍이 지나간 자리에서 사람들은 망연자실한 얼굴이 되어 옥수수 밭을 바라본다.SF적 상상력으로 빚어낸 한 장면에 불과해보이지만, 사실 이 장면은 20세기 미국에서 벌어진 끔찍한 대재앙을 재현한 것이다. 1930년대 초 미국의 중부 곡창지대를 덮쳤던 더스트 볼(Dust Bowl)이 그것이다. 미국 중부의 대규모 곡창지대인 콜로라도, 캔자스, 오클라호마, 뉴텍사스를 덮친 모래폭풍은 하늘을 가릴 만큼 거대했고, 마차·자동차 따위에서부터 창고·집·우물·전신주와 같은 시설물마저 날려버릴 만큼 강력했다.더스트 볼은 직접적으로 휘말린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을 뿐만 아니라 20만 명이 넘는 이재민 또한 발생시켰다. 모래폭풍은 1937년, 미국 중부에 많은 비가 내릴 때까지 계속 근방을 떠돌며 토지를 더욱 황폐화시켜갔다. 경작도 생활도 불가능하게 된 사람들은 자신들의 땅을 포기하고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대도시로 이주하였지만, 극단적인 가난과 주거의 불안정, ‘오키(Oki)’(뜨내기)라는 멸칭을 안은 채 살아가야만 했다.존 스타인벡의 소설 ‘분노의 포도’는 바로 이 시기, 오클라호마를 비롯한 미국 중부의 서민과 노동자들이 겪은 극단적인 가난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더스트 볼로 인해 황폐화된 고향을 버리고 대도시로 이주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어, 이주할 돈이라도 마련하기 위해 자신들의 땅을 헐값에 팔아야만 하는 사람들. 그렇게 도착한 서부에서조차, 그들은 가난한 이방인이라는 멸시와 홀대에 직면한다. 모든 것을 잃고 설움에 가득 찬 그들의 모습을 존 스타인벡은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굶주린 사람들의 눈 속에 점점 커져가는 분노가 있다. 분노의 포도가 사람들의 영혼을 가득 채우며 점점 익어간다.”놀란 감독이 이와 같은 더스트 볼의 모습과 그 후의 폐허를 영화 속에 차용했을 때, 영화는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달한다. 현실 속 더스트 볼도, 영화 속 모래폭풍도 모두 인간에 의해 빚어진 대재앙이라는 것. 사실 1930년대 초 미국 중부에 닥친 심각한 가뭄이 더스트 볼의 직접적인 방아쇠이기는 하지만, 방아쇠는 결코 총알 없이 발사되지 않는다.식량 증산을 위해 수십 년간 계속된 난개발은 숲과 습지를 비롯한 생태 환경을 심각하게 훼손시켰으며, 미숙한 건조농법의 영향으로 경작지 또한 빠르게 황폐화되었다. 대략 20년간의 난개발과 무리한 경작이 미국 중부를 쑥대밭으로 만든 더스트 볼의 원인 가운데 하나였던 셈이다. 인간에 의해 자행된 자연 파괴가 인간에게 되돌아오는 데에는 채 반 세기도 걸리지 않았다. 우리가 그러한 인과를 눈치챈 것은, 이미 그것이 우리에게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치명적이게 되었을 때였다.이처럼 우리는 거듭 자연 파괴로 인한 재난을 겪어왔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무구한 표정으로 파괴되어가는 자연을 바라보고 있다. 얼마 전 한 컨퍼런스에서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기후변화는 지구 단위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를 비롯한 일부 생물종에게만 치명적인 문제일 수 있다는 것. 기후 변화로 인해 상당수의 생물이 멸종하게 되겠지만, 지구에서의 생명활동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며 살아남은 생물들이 다시 번성하여 지구는 다시금 푸른 별로 돌아가게 되리라는 이야기였다.그럼에도 우리는 거듭 기후 변화를 ‘우리’의 일이 아닌 다른 희귀동물의 멸종 따위의 일로 여기고 있는 것 같다. 이 모든 일이 나의 세대 이후에 발생할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과연 그럴까. 사실 우린 이미 기후 변화로 인한 환란의 시대 속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올 여름에도 끔찍한 수준의 비가 내리고 있다. 기후학회에서는 ‘장마’라는 개념 대신 ‘우기’라는 개념으로 한국의 여름 기후를 바라봐야 한다는 논의가 한창이다. 올 해에도 예상된 호우에도 불구하고 인재가 겹쳐 참사가 벌어지고 말았다. 우리는 생각보다 더 먼 미래까지 내다보며 살고 있지만, 보이는 것을 애써 흐린 눈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희생자들의 명복을 빈다.

2023-07-25

‘교실붕괴’의 심각성, 예삿일 아니다

심충택 논설위원 최근 극단적 선택을 해 우리사회에 충격을 준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20대 교사의 일기장이 공개돼 또한번 국민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있다. 일기장에는 “월요일 출근후 업무폭탄+(학생이름) 난리가 겹치면서 그냥 모든 게 다 버거워지고 놓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숨이 막혔다. 밥을 먹는데 손이 떨리고 눈물이 흐를 뻔했다”라고 적혀 있었다. 숨지기 15일전에 작성된 내용이다. 교사가 학교업무와 학생문제로 얼마나 심한 고통을 겪었는지를 알 수 있는 일기다. 아마 우리나라 대부분 초등교사들은 마음속으로 공감하며, 같이 비통해할 것이다.지금 초등학교 교단은 심각한 아노미(무규범) 상태로 병들어 있다. 담임교사가 자기반 학생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하고, 학부모의 악의적인 고소·고발에 시달리는 비정상적인 상태가 일상화되고 있다. 교사들은 예외없이 매년 인사이동 때마다 민원을 남발하는 학부모의 자녀나 정서장애 학생이 자기반에 편성될까봐 노심초사하고 있다. 학교는 담임교사에게 너무 많은 요구를 하면서도, 그에 상응하는 보수나 권한은 주지 않는다.학생이 다치거나 학생 간 갈등이 발생하면 교육 당국이나 학부모, 심지어 학교 교장·교감도 담임교사 책임으로 미룬다. 교단이 붕괴되지 않고 유지되는 게 오히려 이상한 상황이다.정부와 여당이 오늘(26일) 국회에서 당정협의회를 열고 ‘교권 보호 대책’을 논의한다고 한다. 이 회의에서 실질적인 교권 침해 방지와 교사지위 회복에 대한 제도적 방안이 나와야 한다.국회에는 현재 교사보호와 관련된 법안이 8개나 발의돼 있다. 교육위원회 여당 간사인 이태규 의원이 최근 발의한 초·중등교육법 개정안(교사들이 ‘아동학대 범죄 가해자’로 신고당하는 것을 방지)과 교원지위향상법(교육활동 침해를 한 학생에 대한 조치 내용을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이 대표적인 계류법안이다.민주당에서도 비슷한 내용의 법안을 발의해 둔 상태다. 교육위 소속 강득구 의원은 지난달 ‘법령과 학칙에 따른 교사의 학생 생활 지도는 아동복지법상 아동학대로 보지 않는다’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강 의원은 ‘교원의 지위 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 개정안’(교원이 아동 학대 범죄로 신고돼 조사·수사 등이 이뤄지는 경우 학교장이 조사·수사기관, 법원에 의견을 제출하는 내용)’도 발의해 둔 상태다.여야가 현재 국회에 계류된 법안들을 조속히 통과시키기만 해도 교단의 위기가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다.대구·경북은 채택하지 않고 있지만, 서울·경기·광주·전북·충남·제주 등 6개 시·도에서 시행 중인 학생인권조례도 교사의 정당한 교육활동을 위축시키는 대표적인 장치다. 이 조례는 ‘교사를 보호하면 학생 인권이 추락한다’는 편향된 프레임을 씌우고 있다는 소리를 들어왔다. 민원을 상습적으로 제기하는 학부모들은 제 자녀 만큼 교사의 인권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악성 민원과 무고한 아동학대 신고로 교사들이 매일 학교를 떠날 생각을 해서야 어떻게 우리사회가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겠는가.

2023-07-25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묻지마 범죄’

우정구 논설위원 분노란 자신의 이익이 침해당했거나 부당한 위협에 처했을 때 생기는 개인의 부정적 심리 상태다. 종교적으로 분노는 최악의 행위로 꼽힌다. 그러나 인간의 본능이기에 잘 다스려야 한다고 가르친다.특별한 이유없이 불특정 다수를 향해 무차별적으로 흉기를 휘두르며 공격하는 ‘묻지마 범죄’에 대해 우리 사회가 그간 너무 무심했던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지난 21일 서울 신림역 일대에서 벌어진 30대 남성의 칼부림 사건은 언제 어디서 누구한테나 일어날 수 있는 광폭적 사건이라는 점에서 많은 이를 충격에 빠뜨렸다.‘묻지마 범죄’는 학술적으로 표현하면 동기가 없는 범죄다. 범죄의 가해자와 피해자 간에 상관관계가 없다. 범죄 동기도 없고 불특정 대상을 상대로 저질러지는 특성이 있다. 그러나 그 배경에는 사회에 대한 분노가 공통점으로 숨어있다. 그래서 범죄에 대한 대비가 어렵다. 또 착하고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도 어느 날 갑자기 이런 범죄의 희생자가 될 수 있어 황당하고 잔혹한 범죄다.2001년 일본 오사카 어느 초등학교에 난입한 30대 남성이 칼을 휘둘러 8명이 사망하고 15명이 크게 다쳤다. 숨진 사람은 모두 초등학교 1,2학년생. 범죄자는 “많은 사람을 죽여 길동무하고 싶다”고 말해 당시 일본도 큰 충격에 빠졌다.신림역 칼부림 사건의 범인은 “나는 불행하게 사는데 남들도 불행하게 만들고 싶었다”고 진술했다. 무엇이 그를 이렇게 분노하게 만들었는지 우리 사회가 되돌아볼 때다.한동훈 법무부장관은 “사이코패스 범죄 예방도 국가 책임”이라 했지만 대비책이 언제 나올지 막연하다. 이 사건 후 휴대용 호신용품을 찾는 이가 늘었다는 데 이것이 우리의 해법은 아닐 것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7-25

대구 학부모 선언문의 의미

홍석봉 대구지사장 대구시교육청이 최근 ‘학부모 인식 정립 슬로건 선포식’을 열었다. 대시민 협약식도 함께 가졌다.때마침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사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뒤였다. 학부모의 갑질이 원인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열린 행사라서 의미를 더한다. 선포식은 학교의 온전한 교육활동이 이뤄지도록 학교를 믿고, 지지하고, 함께하며 기다리겠다는 학부모들의 다짐을 담은 선언문을 발표했다. 전국 처음이다.이번 선포식은 ‘학교교육 지원자’로서 학부모의 인식 정립을 통해 ‘다:행복한 대구교육캠페인’의 출발을 알리고자 마련됐다. 행사에는 학부모단체를 비롯한 종교계, 시민사회 단체, 협약기관 대표 등 약 1천여 명이 참석했다고 한다.서울의 한 새내기 초등교사의 극단적 선택과 담임교사 폭행 등은 참담한 학교현장의 모습이다. 고인의 분향소에는 추모 발길이 이어졌다. 전날 열린 추모 집회에는 진상 규명과 교권 보호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5천여 명의 동료 교사들이 참여했다. 교사들의 분노가 하늘을 찔렀다. 그만큼 절절이 공감했다는 반증이다.교사를 극단적 선택으로 모는 건 학생 지도의 어려움과 학부모의 과도한 민원 급증 탓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교권이 무너지면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 몫이다. 이런 아픔을 막으려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학부모들의 자세다. 학교를 믿고 맡긴다는 마음가짐이 없으면 아무리 선포식을 한들 소용없을 터이다. 하지만 학교와 학부모들이 함께 참여하며 이해하고 서로 돕는다면 최악의 사태는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법으로 규제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교사와 학생, 학부모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 대구 학부모 선언문이 뒤틀린 교육 현장을 바로잡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7-24

누구를 위한 정쟁(政爭)인가

변창구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정치’는 실종되고 ‘정쟁’만 난무한다. ‘후쿠시마 오염수’와 ‘서울­양평 고속도로’를 둘러싼 정쟁이 점입가경이다. 정쟁의 외관은 국민의 건강과 편익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사실은 권력의 획득·유지·강화를 위한 투쟁일 뿐이다. 정치인들의 선동·거짓·과장·왜곡이 갈수록 태산이다.후쿠시마 오염수에 대한 정치인들의 행태는 가관이다. 여당의원은 방류를 시작하기도 전에 해수가 안전하다면서 어패류 수조의 물을 마시는가 하면, 야당의원은 ‘핵 폐수’라고 하면서 “차라리 X를 먹겠다.”고 국민을 겁박한다. 2년 전 문재인정부의 합동TF에서는 “오염수 방류의 유의미한 영향은 없을 것”이라는 보고서를 낸 반면, 당시 야당인 국민의힘은 방류를 강력히 반대했었는데 정권이 교체되자 입장이 완전히 바뀌었다.이처럼 오염수 문제는 이미 과학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정치적 이슈가 되었다.오염수의 유해성 여부에 대해서는 ‘괴담과 과학’ 그리고 ‘과학과 과학’이 충돌하고 있다. 과학까지도 이미 정쟁의 도구로 악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과학적 입장을 수용하느냐는 필연적으로 정치적 성격을 띠게 된다. 누구의 주장이 과학적인지, 누가 과학을 빙자한 거짓말을 하는지는 전문가가 아니고서는 알기 어렵다.한편 서울-­양평 고속도로 노선 변경을 둘러싼 정쟁은 더욱 한심하다. 야당이 고의적으로 의혹을 증폭시키는 것도 문제지만, 그렇다고 전면백지화를 선언한 원희룡 장관의 직권남용은 더 큰 문제다. 양평군민의 15년 숙원사업이자 대통령의 공약인 국책사업을 어떻게 장관이 하루아침에 중단시킬 수 있는가. 여당의 자충수로 의혹은 오히려 커지고 있다. 민주당만 살판났다. 각종 비리와 의혹으로 수사를 받고 있는 민주당으로서는 역공할 수 있는 호재를 만난 것이다.“오얏나무 아래서는 갓끈을 고쳐 매지 말라”고 했다. 변경된 노선에 김건희 여사 일가의 땅이 많으니 의혹이 일어날 수밖에 없고, 정부여당을 견제·비판하는 것은 야당이 해야 할 당연한 역할이다. 정부가 떳떳하다면 사업을 백지화시킬 것이 아니라 변경된 사유를 투명하게 설명하고 그 타당성을 입증하면 된다.정치적 중립성이 보장되는 전문가들이 원안과 변경안을 비교분석한 후 양평군민을 비롯한 이해관계 당사자들의 객관적 판단을 구해야 할 것이다.정쟁은 정치적 목적을 가진 권력투쟁이다.‘정치는 국민’을 생각하지만 ‘정쟁은 권력’을 생각한다. 권력투쟁에서 중요한 것은 ‘진실이 아니라 승리’이며, 승리를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여야가 권력의 생살여탈권(生殺與奪權)을 쥐고 있는 국민의 표심을 잡기 위해 선동과 왜곡을 일삼고 있는 이유다.결국 중요한 것은 ‘정쟁을 심판하는 국민’이다. 정치인들의 잘못된 습관과 버릇을 고쳐줄 수 있는 것인 주권자밖에 없다. 따라서 국민은 정쟁에 휘둘리는 ‘노예’가 아니라 그것을 심판하는 ‘주인’이 되어야 한다. 국민의 혜안(慧眼)은 여야의 잘잘못을 정확히 평가하여 내년 총선에서 투표로 심판하게 될 것이다.

2023-07-24

로마네스크 건축조각의 특징

중세미술에서 조각의 발달 과정을 살필 때 우선 눈여겨 보아야하는 부분은 건축과 조각의 관계이다. 중세시대에는 아직 ‘순수미술’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다. 순수미술이라는 말에는 유용한 쓰임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미술작품에 내재된 아름다움 자체에 가치를 부여한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이런 관점에서 중세미술은 ‘순수’하지 않다. 중세미술은 종교적 목적을 위해 기능하는 것이었고 물질로 된 미술품 자체가 아름답다고 여기지 않았다. 미술품이 가리키는 성스러운 대상, 미술품이 상징하는 종교적 가치가 아름다웠던 것이다. 중세미술 중심에는 건축이 있고 그것을 목적과 기능에 맞게 장식하는 것이 그림과 조각이었다. 그림과 조각이 건축을 벗어나 본격적으로 독자적인 길을 걷게 된 것은 르네상스 때부터이다. 특히 건축으로부터 조각의 해방은 그림보다 조금 더뎠다. 매체의 특성상 조각과 건축이 가지는 밀착도가 높기 때문이다. 하나는 입체라는 특징 때문에 다른 하나는 재료의 유사성 때문에 둘 사이의 관계는 밀접할 수 밖에 없다. 이를 잘 보여주는 좋은 예가 남부 프랑스의 오래된 도시 아를(Arles)에 세워진 교회 생 트로핌(St. Trophime)이다.생 트로핌 교회가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건축된 것은 1100년과 1150년 사이이다. 정면 파사드를 장식하는 조각 역시 비슷한 시기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면 출입구 상단 부분에 마련된 반원형의 팀파늄에는 ‘심판자 그리스도’가 부조로 묘사되어 있다. 전신 후광에 둘러싸인 그리스도는 옥좌에 앉아 오른손을 들어 세상을 축복한다. 왼손에는 생명의 책이 들려 있다. 그리스도 주변으로 4복음서자의 상징이 나타난다. 팀파늄 아래의 가로로 긴 띠처럼 생긴 상인방이 출입문과 경계를 이룬다. 그곳에도 역시 인물들이 부조로 새겨져 있는데 이들은 열 두 사도들이다. 흥미롭게 상인방이 좌우 벽면으로 길게 연결되어 파사드 전체를 가로지르는 프리즈(Frieze)를 만들어 낸다.프리즈는 파사드를 아래와 위로 나누는 명료한 경계가 되지만 전체적으로 통일된 느낌을 만들어 준다. 프리즈에도 어김없이 수많은 인물상들이 부조로 나타난다. 팀파늄의 심판자 그리스도를 바라보았을 때 왼쪽 프리즈에는 구원받아 천국으로 초대된 사람들의 행렬이 반대편 오른쪽 프리즈에는 사슬에 묶여 지옥으로 끌려가는 사람들의 행렬이 그려져 있다. 프리즈의 좁은 공간에 일렬로 서있는 사람들은 모두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다. 비슷한 생김새에 비슷한 머리모양, 입고 있는 옷과 옷의 주름도 비슷하다.프리즈 아래에는 고전적 형태의 기둥들이 설치되어 있다. 프리즈를 지탱하는 기둥들 사이로 깊이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고 그곳에 사도들과 성인들의 모습이 전신 조각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 조각상들은 프리즈의 인물들보다 훨씬 입체적이고 세부 묘사가 섬세하지만 독립된 입체조각으로 보기에는 여전히 건축에 종속되어 있어 평면적인 성격이 강하다. 그렇다고 부조라고 부르기에는 꽤나 입체적이다. 부조보다는 입체적이고 독립 조각상보다는 평면적인 이 조각들은 앞으로 조각이 어떤 방식으로 건축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독자적인 길을 걷게 될 것인지 예견해 준다. 물론 건축에서 완전히 해방된 독립 입상이 등장하기 까지는 적어도 200년 이상의 시간을 더 기다려야 한다.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육체를 정신의 감옥으로 보았다. 전성기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조각가 미켈란젤로는 플라톤의 사상을 이어받아 이미 돌 속에 내재되어 있는 형상을 발견하고자 했다. 조각이 교회건축을 장식하기 시작한 12세기 무렵 조각에 대한 그런 정도의 논의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평범해 보이는 생 트로핌 교회의 파사드 조각들은 서양미술사의 조각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들은 초기 로마네스크 조각의 특징을 생생하게 담아내고 있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 조각이 건축과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 정확히 보여준다. /미술사학자 김석모

2023-07-24

신라의 독특한, 영주 순흥 벽화고분과 어숙묘

영주 순흥은 예부터 소백산을 넘기 위한 주요 거점으로서 고구려와 신라가 패권을 다투던 지역이었다. 한때는 고구려의 영토였다가 신라의 세력이 확장하고 고구려의 영향에서 벗어나고자 힘을 쏟을 때 신라의 영토에 편입되었다. 고구려와 신라의 영향을 모두 받았던 만큼 이 지역의 고분은 수용과 융합적인 고분과 벽화가 발견된다. 무덤의 고분벽화는 당시의 생활 풍속·신앙·종교·사상 등을 짐작하게 하며, 회화 기술과 재료·표현 기법 등에 대해 알 수 있게 한다. 신라는 무덤 양식으로 인해 공예품 위주로 발굴이 되어 회화는 매우 희귀한 편에 속하는데, 특이하게도 영주에서 신라의 고분벽화가 발견되었다. 이후 현재까지 신라의 고분벽화는 순흥 벽화고분과 순흥 어숙묘 딱 두 곳만이 있다.봉황이 알을 품는다는 비봉산 서남쪽 구릉에 순흥 벽화고분을 중심으로 고분군이 형성되어 있다. 이 고분은 한반도 중부의 고구려계 벽화고분으로 법흥왕 26년(539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높이 약 4m, 지름은 약 14m이며, 널길과 널방으로 나눠지는 굴식돌방무덤으로 신라의 주류를 이루는 중대형 돌무지덧널무덤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내부에는 석회를 덧바른 벽 위에 벽화가 그려져 있다. 주로 먹선으로 윤곽을 잡은 후 채색한 것으로 보인다. 순흥 지역에 전파된 불교와 불교문화에 융화된 타신앙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신라에 불교가 전해진 시기는 실성마립간(402~417)이나 눌지마립간(417~458) 시기이며, 공인은 한참 후인 법흥왕 528년에 이르러서야 이뤄진다. 한 지역의 내세관이 변화하여 다른 종교의 내세관으로 변하기 위해서는 제법 오랜 시간이 걸림에도 순흥 벽화고분은 신라의 불교가 공인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조성되었다. 이는 이미 오랜 시기 동안 순흥에 불교 신앙이 확산되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로국(신라)은 국경의 소국에게 기존의 지배 구조를 인정해주면서 변경 방어를 맡긴 것으로 보이는데, 아마도 순흥은 국경이므로 거의 자치 행정이 이뤄졌을 것으로 짐작된다.이러한 도시의 유연한 분위기 속에서 순흥은 불교 수용과 융합의 통로로서 기능했음을 알 수 있다.또한 ‘삼국유사’의 불교 전파 흔적-고구려에서 온 승려 묵호자와 아도의 노력-을 살펴보아도 경주의 영향력이 다소 적었던 순흥과 그 인근이 선진문물 수용에 용이했음을 알 수 있다.순흥 벽화 고분의 널길 벽에는 널방을 지키는 천왕형 역사(力士)가 그려져 있다. 역사는 근육질 몸과 부리부리한 눈, 붉은색 상체가 거의 드러나는 인도식 승려복을 걸치고 있으며, 입은 크게 벌리고 소리를 지르는 듯하다.전체적으로 이국적인 생김새를 지녔다. 널방의 동벽은 훼손이 심한 편으로 상서로운 새를 그린 서조도(瑞鳥圖)와 원근감 없이 둥글고 원만한 산악도(山岳圖)만이 일부 남아 있다. 서조도의 새는 ‘해 안의 새’에서 고구려의 ‘삼족오’를, 세련된 선에서 백제의 ‘봉황’과 유사한 면을 연상하게 한다. 북벽에는 산·구름·새·연꽃·연못 등의 그림을 통해 불교적 이상향을 내세의 공간으로 표현하였다.이를 지키는 이는 서벽의 뱀을 쥔 역사와 버드나무이다. 뱀과 함께 그려진 역사는 고구려 고분벽화에서도 흔하지만 귀가 달린 뱀은 신라만의 변형으로 보인다. 재생과 순환을 상징하는 신수로서의 뱀에 대한 신앙이 일부 불교에 수용되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버드나무는 벽사와 재생을 뜻하는 신목으로 동북아시아에서는 신성시했으며, ‘귀신 쫓는 나무’로도 유명하다. 버드나무에 대한 관념도 타신앙의 불교 수용으로 볼 수 있다.남벽에서는 무덤의 축조 시기를 예측할 수 있는 묵서 명문과 삼지창에 고리를 걸어 어형기를 달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는 5세기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유사한 형태를 찾아볼 수 있다.순흥 벽화고분에서 300m 떨어진 어숙묘는 자연적 습기의 영향으로 대부분의 고분벽화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게 파손되었다. 다만 널길의 돌문 안쪽에 있는 명문을 통해 진평왕 17년(595년)에 조성된 것으로 추측된다. 널길 천장에는 활짝 핀 7엽3중판 형식의 연꽃이 남겨져 있다. 3~4중판 연꽃은 5세기 평양과 가야 고분에서도 볼 수 있으나 잎맥을 그린 것은 어숙묘가 유일하다.새로운 삶의 공간으로 들어가는 고분의 통로에 연꽃을 그려 내세의 이상향으로 향하는 불교적 의미를 더했다. 돌문 바깥면의 두 여인은 긴저고리와 치마·허리띠를 하고 있어 삼국시대의 회화 양식을 확인할 수 있다.순흥의 두 고분은 신라의 고분 중 특이한 경우로, 고구려의 영향을 받았다는 점과 6세기 삼국의 회화 양식을 알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발굴 전 이미 도굴되어 대부분의 부장품이 사라진 점이 아쉽기만 하다.현재 벽화고분의 가치를 보존하고 관광자원으로서 정비하기 위한 계획이 수립되었다고 하니 신라의 독특한 고분과 벽화가 어떻게 거듭날지 기대된다.◇ 최정화 스토리텔러 약력 ·2020 고양시 관광스토리텔링 대상 ·2020 낙동강 어울림스토리텔링 대상 등 수상/최정화 스토리텔러

2023-07-24

장마가 아닌 ‘한국형 우기’가 온다

홍덕구포스텍 소통과공론연구소 연구원 “정말 지루한 장마였다.”1973년에 발표된 윤흥길의 소설 ‘장마’의 마지막 문장이다. 작중에서 한 달 가까이 지루하게 이어지는 장마는 이야기에 음울한 분위기를 더할 뿐 아니라, 그 자체로 이념대립과 전쟁이라는 민족의 비극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런데 앞으로는 이런 장마를 경험하기 어렵게 될지도 모른다.장마철이라고 하면 6월 말에서 7월 말까지의 기간을 가리킨다. 이 시기 한반도에는 남쪽에서 올라온 고온다습한 고기압과 북쪽의 차가운 고기압이 만나 기압골이 형성되어 많은 비가 오게 된다. 이를 장마 전선이라 부르며, 7월 말 장마 전선이 한반도를 지나 북상하면 비로소 장마가 끝나고 8월 무더위가 찾아오는 것이 상식이었다.장마철에는 우중충한 날씨가 길게 이어지고, 그동안 비가 약해졌다 강해졌다를 반복하게 된다. 하지만 요 몇 년 동안의 장마철 날씨는 그렇지 않았다. 뙤약볕이 내리쬐다가 갑작스럽게 집중호우가 쏟아지고, 비가 그치면 다시 하늘이 개어 폭염이 이어지곤 했다.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쏟아지는 폭우는 동남아시아 같은 아열대성 기후의 특징인 ‘스콜’, 즉 열대성 소나기를 연상하게 한다. 아열대 지역에만 서식하던 새, 곤충, 물고기, 식물 등이 최근 들어 한반도 남부에서 발견되고 있으며, 차가운 물에 서식하는 냉수성 어류의 서식지가 줄어들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한반도의 기후 자체가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그러다 보니 몇몇 기상학자들은 ‘장마’가 아니라 ‘한국형 우기’라는 용어를 사용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장마’라는 단어로는 지금의 기상현상을 표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난 7월 9일부터 전국을 강타한 집중호우는 50명의 귀중한 생명을 앗아갔다.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했던 엄청난 양의 비가 쏟아졌고, 그에 대한 대비 또한 충분하지 못했다. 14명의 귀중한 생명을 앗아간 충북 오송 지하차도 침수사건은 시간당 30.5㎜라는 집중호우로 인해 인근의 하천(미호천)이 넘치며 일어났다. 미호천에 설치된 임시 제방이 집중호우로 인해 불어난 수량을 감당하지 못하고 붕괴한 탓이다.기존의 장맛비가 아니라, 아열대성 집중호우 상황을 가정해 하천을 정비하고 제방 또한 그 기준에 맞춰 설치했다면 이와 같은 불의의 사고를 방지할 수 있지 않았을까.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유행했던 ‘뉴 노멀(New Normal)’이라는 개념을 기상이변 상황에도 반드시 적용해야 한다.작년 9월, 8명의 귀중한 생명을 앗아가고 지역사회에 큰 슬픔을 가져왔던 포항 아파트 지하주차장 침수 사고를 기억한다. 당시에도 냉천이 그토록 급격하게 범람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기에 피해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 이는 안전불감증의 문제인 동시에, 수십 년간 쌓아온 기상상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기후위기 시대로 돌입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비극이 다시는 재발하지 않도록 기후위기를 ‘뉴 노멀’로 상정하고 ‘한국형 우기’에 대비해 기상정책과 인프라를 정비하자. 탄소 배출량을 줄여 지구온난화와 기후위기 상황 자체를 해결하려는 근본적 노력이 필요함은 물론이다.

2023-07-24

해외직구 트렌드

강길수 수필가 세 번째 해외직구다. 국내 한 오픈마켓 사이트를 통해 필요한 생활용품을 해외에서 직접 샀다. 그 첫 품목은 자동차용 점프스타터였고, 두 번째는 배터리형 물 분사기였으며, 세 번째가 배터리형 예초기다. 셋 다 중국제품이다.지난겨울, 일주일 정도 세워두었던 자동차 시동이 안 걸렸었다. 개선책을 알아보다가 새 배터리 마련보다 점프스타터를 사는 게 더 경제적이란 판단을 했다. 오픈마켓 사이트를 돌아보다가 ‘해외직구 상품’을 알게 되었다. 젊은이들이 많이 하는 해외직구를 한번 해보자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보다는 상품가격이 국내 구매보다 훨씬 쌌다.더욱이 국내 생산 동종상품과의 가격 차이는 생각보다 너무 컸다. 직장에서 품질관리 업무를 해 왔던 나도 ‘고장 나면 두어 번 새로 사도 더 싸겠다’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여, 비슷한 성능에 싼 상품을 고르게 되었다. 하긴 우리나라도 산업화 초기에 품질보다는 저가에 승부를 걸었지 않은가. 아무튼 품질을 중시하던 나도 너무 싼 가격 앞에서 생각을 바꾸고 말았다.소비자가 상품을 구매할 때 따져 보는 요인은 다양하겠지만 마케팅이나 품질관리, 생산관리 등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세 요소는 가격, 품질, 납기라 본다. 해외직구 세 상품이 다 ‘마무리 품질’은 아무래도 모자라 보였다. 우리나라 상품에 비하면 겉모양 세련미가 덜 했다. 하지만, 걱정했던 성능은 일단 셋 다 제대로 나왔다. 수명이 문제겠지만, 가성비(價性比)를 고려하면 쓸만하다는 잠정 결론을 얻었다.웹사이트의 나무위키 사전에서 우리나라 해외직구 통계를 찾아보았다. 2022년 전체 온라인 해외직구 구매액은 5조3천억원이다. 나라별로는 미국 2조, 중국 1조4천800억, 유럽 1조1천300억, 일본 4천200억이다. 상품군별로는 의류, 패션 2조1천500억, 음·식료품 1조4천200억, 가전·전자·통신기기 2천964억, 컴퓨터 주변기기 885억, 생활용품, 자동차용품 3천85억, 화장품 2천507억, 스포츠·레저용품 1천558억이다. 이 통계에 ‘우리는 해외직구 트렌드 시대에 살고 있구나!’하고 놀랐다.1990년대 중후반, 나는 작은 공장의 책임자로 일했다. 그때 처음 중국에서 클로르칼크를 사서 소분, 포장하여 판매하기로 했다. 국내는 생산 중단, 일본제품은 고가에 구하기도 어려웠다. 품질 의심이 들지만, 할 수 없이 중국제품을 처음 샀다. 제품 도착 날, 상태 확인과 소분 포장 교육을 위해 직원들이 모였다. 포장 용기부터 엉성하고, 녹슬어 찌그러지기도 했다. 황당한 일은 뚜껑을 여는 순간 벌어졌다. 내용물의 거친 정제(錠劑) 상태에다 담배꽁초 네댓 개가 함께 들어있는 게 아닌가! 이 일은 중국상품에 대한 품질 불만과 의구심을 갖게 했다.그 후 4반세기가 흐르는 동안 중국상품도 품질이 많이 좋아진 모양이다. 올 해외직구 상품 셋이 과거 클로르칼크의 품질 불만과 의구심을 조금은 엷어지게 한 기분이다. 우리 집에도 주문자 위탁생산 해외제품이 여럿이다. 다른 나라 제품은 아직 직구는 하지 않았다. 우리 정부와 기업들이 ‘해외직구 트렌드’에도 잘 대처해 나가면 좋겠다.

2023-07-24

지도층은 국민과 공감해야 한다

김진국 고문 중국의 역사는 치수(治水)로 시작한다. 하(夏)나라를 세운 우(禹)왕은 치수에 성공해 선양(禪讓) 받았다. 나라를 경영하는 근본이 치수였다. 4천 년 전에 세워진 지도자의 역할이니, 지금은 당연히 많이 바뀌었다. 그렇지만 4천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치수에 실패하는 건 아이러니다.조선시대에는 가뭄·홍수·지진 같은 재해를 임금에 대한 하늘의 경고라고 생각했다. 세종도 즉위하고 몇 년간 가뭄에 시달렸다. 고기를 좋아하던 세종도 수라상을 줄이며(減膳) 근신했다. 임금이 소박하게 먹는다고 비가 내리지는 않지만 굶주리는 백성들과 고통을 나누는 것이 군주의 덕목이다.경주 최부자댁의 가훈은 이런 군자의 도덕을 담고 있다. 재산이 불어나면 소작료를 줄여서라도 만석 이상은 하지 않고, 흉년기에는 땅을 사지 않고, 사방 백 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했다. 며느리가 시집오면 3년 동안은 무명옷을 입혔다. 높은 벼슬을 마다한 최 부자댁이 그러한데, 지도자를 자처하면서도 이런 공감(共感) 능력이 결핍된 사람들이 있다. 사방이 물난리고, 사람이 죽어 나가는데, 고개를 치켜들고, 그게 왜 내 책임이냐고 소리친다. 농민이 죽건 말건, 산사태가 나고, 집이 부서지건 말건, 남의 일이다. 가뭄이 들어 논밭을 헐값에 내놓을 때 곳간을 열어 사들이면 땅은 계속 불어난다. 그러나 어려운 이들 형편을 헤아리지 않고, 그들의 약점을 이용해 불린 부(富)는 하늘이 용서하지 않는다고 선현들은 생각했다. 공감이 없는 사람은 지도자가 될 수 없고, 그런 사회 체제는 오래가지도 못한다.그래도 이번 물난리 중에 집을 잃은 이웃을 재워주고, 밥을 먹이고, 위험을 무릅쓰고 인명을 구하고, 내 일처럼 팔을 걷어붙이고 복구를 도운 사람이 많다. 그런 따뜻한 이웃들이 살아갈 희망을 준다. 국회 윤리특위 윤리심사자문위원회는 지난주 민주당을 탈당한 김남국 의원에 대해 제명을 권고했다. 김 의원은 상임위 중에만 200번이 넘게 코인 거래를 했다고 한다. 코로나가 창궐하던 시절, 민생을 논의하는 상임위에서 청년들의 눈물이 묻은 ‘흉년 땅’을 사고도 ‘억울’하다고 항변한다. 김 의원과 생각이 비슷한 의원들이 많아 제명안이 본회의를 통과할지 의문이다.홍준표 대구시장은 물난리 중에 골프 친 일로 사과했다. 처음에는 “주말에 테니스를 치면 되고 골프를 치면 안 되느냐”, “공직자들의 주말은 비상근무 외에는 자유”라며 트집 잡지 말라고 반발했다. 더구나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았다’라고 사과한 뒤에도 이를 ‘과하지욕’(跨下之辱)이라고 표현했다. 한신이 큰 뜻을 위해 불량배의 사타구니 사이를 긴 것을 말한다. 국민이 불량배인가. 국민에게 사과한 것이 그렇게 치욕스러웠나.21일에는 윤석열 대통령의 장모 최은순 씨가 항소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수백억 원의 잔고증명서를 여러 차례 위조한 혐의다. 최씨는 공범에게 속았다며 울부짖었다. 그러나 사회 지도층이라면 아무리 큰 이익이 돌아온다고 해도 그런 불법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 속았다 하더라도,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최 씨가 그 일을 저지른 건 사위가 대통령이 되기 전이다. 그렇지만 그때도 사위가 검찰의 고위층이었지 않나.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는 12일 리투아니아에서 명품 가게 5곳을 들어가 논란이 됐다. 명품을 샀다, 아니다. 매장 직원의 호객 행위에 끌려 잠시 들렀다, 아니다.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문화·예술계에 전문성이 있는 대통령 부인이 부가가치가 높은 명품 시장을 둘러볼 수도 있다. 그러면 떳떳하게 공식 일정에 넣을 일이다.때를 가리고, 장소를 가려야 한다. 물난리가 나기 직전이지만 큰비가 예보된 때다. 더구나 김 여사는 국민의 주목을 받고, 민심에 큰 영향을 주는 대통령의 부인이다. 일거수일투족이 메시지다. 서민의 삶은 고달프기 짝이 없다. 나라 살림이 위태위태하다. 환난이 닥친 유대 왕처럼 자루 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 쓰지는 않더라도, 최 부자 댁 며느리처럼 무명옷을 입지는 않더라도 근신할 때다. 명품매장은 임기 뒤에 얼마든지 갈 수 있지 않은가.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3-07-23

허리 통증에 대한 오해와 진실

박성률트레이닝과학연구소장동국대 의과대학 연구초빙교수 최근에 약 800억 건의 의료이용 통계를 분석한 결과 한국인이 흔히 걸리는 질병 1위는 요통이 차지했다. 선진국에서도 허리 통증은 흔한 질병이다. 독일의 경우 전체 인구의 약 3분의 2가 1년 동안 적어도 한 번 이상 허리 문제를 겪는다. 요통으로 의료기관을 방문하는 수진자수는 연간 4천만 명이 넘는다.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면서 한 번은 요통으로 고통을 겪는다. 허리 통증은 다른 어떤 질병보다 일상생활에서 받는 불편함이 크다. 그런데 허리 통증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그리고 허리 통증의 예방 및 개선에 무엇이 좋은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인지 허리 통증에 대한 속설이 많다. 구부정한 자세나 가부좌 자세 또는 추간판 탈출증이 허리 통증의 원인이라고 믿는 사람이 많다, 그리고 마사지는 항상 허리 통증에 도움이 된다는 사람도 있다.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그렇지 않은지 명확히 알 필요가 있다.자세가 구부정하면 허리 통증이 생긴다는 것은 오해에 가깝다. 나쁜 자세는 일반적으로 허리 통증의 원인이 아니다. 구부정한 자세, 앉은 자세, 서 있는 자세는 허리 통증의 원인과 무관하다. 문제는 한 자세를 오랫동안 유지하는 것이다. 장시간을 책상에 앉아 있거나 작업대 뒤에 서 있기 때문이다. 운동 부족은 척추 관절에 많은 부담을 준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통증은 보호 반응으로 발생한다. 그러므로 앉아 있거나 서 있는 자세를 가능한 자주 바꾸는 것이 허리 통증에 도움이 된다.가부좌 자세나 책상에 앉아 있는 것이 허리에 부담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체중이 75kg인 남성의 경우 척추의 천골 부위에 있는 추간판은 약 100kg의 무게를 지탱한다. 등을 곧게 펴고 앉으면 130kg, 등을 굽고 앉으면 180kg까지 하중이 걸린다. 따라서 앉아 있을 때 수시로 일어나고 앉은 자세를 자주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 앉을 때 약간 앞으로 몸을 기울였다가 뒤로 기대고 규칙적으로 휴식도 취해야 한다는 뜻이다. 경직된 등 근육을 이완시키는 데는 매달리기와 같은 신전운동이 좋다.허리디스크라고 불리는 추간판 탈출증이 항상 심한 허리 통증을 동반하지는 않는다. 증상이 전혀 없는 경우가 생각보다 흔다. 독일에서 발표된 설문조사 결과에서 추간판 탈출증은 환자 100명 중 4명만 허리 통증의 원인이 됐다고 한다. 따라서 추간판 탈출증이 허리 통증의 원인이라는 생각도 오해에 가깝다. 다만 추간판 탈출증으로 인한 염증성 통증 질환은 허리뿐만 아니라 엉덩이, 허벅지, 종아리 등에도 통증 및 저림을 유발할 수 있다. 심할 경우 감각이상과 운동 장애가 생길 수도 있다.예로부터 허리 통증이 있으면 마사지로 통증을 완화하려고 해왔다. 그러나 그것도 옛말이다. 적어도 인지할 수 있는 원인이 없는 급성 요통의 경우에는 아직 과학적 연구를 통해 마사지의 이점이 입증되지 않았다. 그래서 선진국의 경우 의료지침은 운동을 처방한다. 수동적인 행동보다는 등 근육의 움직임과 능동적 운동이 치료의 초점이 되도록 권장한다. 다만 만성적이고 오래 지속되는 요통의 경우 마사지는 적어도 수동적인 근육의 움직임으로 통증을 치료하는 보조 요법으로 활용이 가능하다.물건이나 짐을 자주 들면 허리 건강을 해친다는 것도 오해다. 등은 척추를 지탱하고 완화시키는 근육을 단련하기 때문에 일상적인 움직임으로 강화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등 문제는 등이 제대로 훈련되지 않고 등 근육이 너무 약할 때 발생한다. 극도로 힘든 스포츠가 아니면 규칙적인 운동과 물건이나 짐과 같은 자극은 허리 건강에 좋다. 이미 허리 통증을 앓고 있는 경우에도 운동은 유익하다. 자전거 타기, 수영, 규칙적으로 걷거나 빠르게 걷는 것도 도움이 된다.허리 건강을 위해 중요한 것이 근육이다. 척추기립근은 경추에서 골반까지 길게 뻗어있는 허리를 바로 세우는 역할을 한다. 허리와 골반을 이어주는 장요근을 강화하는 것도 중요하다. 또한 엉덩이 근육, 허리에서 등에 걸쳐 있는 광배근, 목 주위의 승모근도 척추의 안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허리를 뒤로 젖히게 해주는 신전근의 약화는 요통의 발병 원인이 되기도 한다. 심할 경우 디스크 수핵 탈출로 이어지기도 하므로 척추 주변 근육 강화를 위한 규칙적인 운동이 중요하다.허리에 통증이 생기면 막연히 척추 디스크에 문제가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허리 통증의 대부분은 척추 근육의 약화로 인해 발생한다. 생활 습관을 고치고 운동을 꾸준히 하면 허리 통증이 개선되고 재발 빈도도 줄어든다.평소 바닥에 앉는 습관을 삼가고, 같은 자세로 1시간 이상 있지 말고, 숨이 살짝 찰 정도의 강도로 일주일에 세 번 이상 1시간 정도 걷기나 수영, 실내자전거 타기도 허리 건강에 좋다. 특히 척추 주변 근육을 이완하고 강화해주는 운동이 효과적이다. 허벅지와 엉덩이 근육의 스트레칭과 복부와 등배 근육의 강화 및 골반의 안정화 운동은 정확한 원인 규명이 어려운 비특이적 요통의 재발을 예방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2023-07-23

극한 대결 정치는 종식되어야

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물난리로 전국이 비상상황이다. 수많은 인명이 살상되고 여야가 앞다투어 구조현장에 나섰다. 여야 정치인들이 손잡고 함께 구조 현장에 갈 수는 없을까. 폭우가 그치면 이 나라 정치인들의 극한적인 대결은 계속될 전망이다. 정치인들이 국리민복을 위한 정치를 버린 지 오래고 자신의 영달과 진영 정치에 매몰되었기 때문이다.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에도 여야는 사사건건 정쟁으로 치닫고 시원하게 합의했다는 소식은 들은 적이 없다. 한여름 대낮 매미 소리처럼 여야의 마찰음은 덕 과열되고 있다. 여야 대변인들의 논평뿐 아니라 당 지도부의 발언까지 가시 돋친 독설로 차 있다. 정치인의 도덕성이나 품격은 찾아볼 수 없어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부끄럽다. 여야의 정쟁으로 얼룩진 극한 대결의 정치는 인사, 노동, 뿐 아니라 외교전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이 정치를 걱정하고 그 손해는 국민들이 온통 뒤집어쓴다. 이 극한 대결 정치의 악순환은 정치인들이 먼저 끊어야 한다. 그것이 결자해지의 원칙이다.국민들이 우려하는 이 대결정치, 극단의 정치 연원은 그 뿌리가 상당히 깊다. 이 땅의 대결정치, 극한 정치의 연원은 조선조 당파 싸움에서 찾는 사람이 많다. 사색당쟁은 동인과 서인, 남인과 북인, 노론과 소론으로 갈라놓았다. 조선조의 당쟁은 유학 특유의 명분론과 의리 론으로 무장하여 사림들의 대결로 연결시켜 권력의 쟁탈과정에서 엄청난 사화를 초래하기도 하였다. 결국 조선 왕조의 비극이 국력의 쇠진으로 나타나 일제의 식민 통치로 연결되었다. 그 후에도 독립운동 과정에서 친일 세력과 항일 세력의 사상적 갈등은 견원지간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해방 후의 정부 수립 과정의 대결은 분단 상황으로 이어지고 진영대결은 더욱 확산되었다. 정부 수립 후 반공 보수 세력과 반독재 민주화 세력의 갈등은 오늘날 대결정치의 토대로 작용하였다. 87 민중 항쟁 이후 두 차례의 정당간의 정권 교체에도 불구하고 적대적 대결 정치는 아직 청산치 못하고 있다. 분열과 갈등의 민주적 조정이 정치의 생명인데도 말이다.한국적인 극한 대결 정치의 모순된 구조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여야 공히 상대를 공생의 대상이나 파트너가 아닌 타도 대상으로 간주하고 있다. 양 진영 정치는 중상모략, 흑색선전이나 가짜 뉴스를 통해 상대를 악마 화하는 거부의 정치로 치닫고 있다. 여야 가릴 것 없이 내로남불 정치, 마타도어 정치를 통해 상대를 흠집 내고 쓰러뜨리기 위한 네거티브 정치에 혈안이 되어 있다. 이런 대립 정치 구도에서는 이성보다는 감정이나 정서가 앞설 수밖에 없다. 지난 정권에 이어 윤석열 정부는 출범이후 양극화 정치, 극한 대결 정치는 더욱 확대일로에 있다. 집권 1년이 넘은 윤석열 정부는 아직도 국정의 실패를 지난 정권의 책임으로 돌린다. 야당 역시 그 책임을 현 정권의 무지와 무능이라고 받아치고 있다. 여기에 더하여 강성 지지층의 팬덤 정치가 싸움을 더욱 부추긴다. 여야가 겉으로 보수와 진보를 표방하지만 실제는 사이비 이념 대결만 지속될 뿐이다. 이곳에 공생이나 협치의 토대는 마련될 수 없다.이 극한 대결정치가 초래하는 비극은 매우 심각하다. 이 나라의 언론, 학자, 시민사회까지 양분하여 대결의 싸움판이 확대되고 있다. 어느 편에도 들지 않는 중도적적 입장을 견지하기 어렵다. 중도층은 여론상 상당하지만 선거 때가 되면 양극진영의 등살에 한 진영에 편입된다. 중도층의 양비론은 먹혀들지 않고 때때로 기회주의자로 몰리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일선 정치인들은 자신의 영달을 위해 진영 보스에게 충성한다.역설적으로 한국적인 대결 정치구도가 ‘적대적 공조’를 통해 정치인들의 생명을 보전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대결 정치, 진영 정치, 팬덤 정치는 민주 정치의 공적임을 인식한다. 이러한 비생산적인 비효율적인 정치는 패륜의 정치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 나라 정치의 대결 정치의 폐해를 공유하면서도 쉽게 고치지 못하는 것이 우리 정치의 현실이며 후진성이다.우리의 경제도 안보도 미래 전망이 어둡다. 국력의 상징인 국민 총생산(GDP)도 세계 10위에서 13위로 떨어져 버렸다. 북한의 핵 위협은 점입가경이며 한반도의 안보는 더욱 불안할 뿐이다.여야는 국가적 재난과 위기 앞에서도 극한 대결의 정치를 계속되고 있다. 우선 여야는 극단 정치의 악순환이 공멸을 자초한다는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 급기야 전직 국회의장 등 정파를 초월한 원로 11인이 ‘정치 복원’을 간절히 호소하고 나섰다. 내년 총선의 승리만을 위해 마주보고 달리는 열차 식 정치를 막자는 취지이다. 대통령과 집권 여당부터 국정의 효율성과 안정을 위해 야당을 국정 파트너로 인정해야 한다. 야당 역시 정치 혁신을 통해 대타협의 정치로 나아가야 한다. 아직도 대통령과 여당은 야당에게 줄 것을 많이 가지고 있다. 이 대로 가다간 곧 나라가 말할 것 같은데 나라가 절단되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이다. 정치인들의 결자해지의 결단을 촉구한다.

2023-07-23

100만 관광객 시대를 준비한다

남한권 울릉군수 울릉군의 가장 당면한 과제는 오는 8월 8일부터 11일까지 ‘섬이 그리는 대한민국’을 주제로 열리는 제4회 섬의 날 행사다.섬의 가치와 가능성에 대한 국민의식 고취 및 섬 주민들 간 화합의 장을 마련하고 울릉도 독도 관광 활성화를 위해 열리는 이 행사는 행정안전부, 경북도, 울릉군 주관으로 개최된다. 국내뿐만 아니라 국외관광객 및 외빈들이 대거 방문할 것으로 예상되며 100만 관광객 시대를 맞이하는 전초전이 될 것이다.섬의 날 행사는 한 번도 육지와 닿지 않은 울릉도만의 특수성의 가치와 섬이라면 가지는 보편성을 다양한 컨텐츠와 전문가들의 프로그램으로 보여주려고 한다.태고부터 형성된 울릉도의 천혜의 자연을 만나 볼 수 있는 생태존과 지혜롭게 척박한 환경을 개척한 선조의 발자취도 느껴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다.이를 통해 앞으로 어떻게 섬의 자연과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이 공존하고, 지속가능한 섬의 미래를 만들 것인지 재고할 수 있는 주제전시관을 준비 중이다.부대행사로 직접 울릉도의 고유한 전통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떼배 제작 및 체험과 너새너와 놀이 재현, 슬로푸드 시식 및 체험 등과 같이 보는 것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오감만족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선보일 계획이다.또한, 성공적인 행사 개최를 위해 대대적인 홍보와 축제안전관리계획 실무위원회를 열어 안전관리에 소홀함이 없도록 하겠다. 주요 행사장 및 관광지의 환경정비와 음식 숙박업 종사자의 위생 친절 서비스 교육 등 민관군이 하나가 돼 성공적인 행사가 되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울릉군민의 염원을 담은 초 쾌속대형여객선 엘도라도 익스프레스호가 지난 8일부터 상업 운항하면서 포항~울릉도 간 2시간대 여객선이 본격적인 운항에 들어갔다. 총 t수 3천158t급의 초쾌속 대형여객선으로 울릉군민의 일일생활권 구축과 더불어 연안여객해운 발전에 전환점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지난 11일 독도 교육 강화 및 울릉도·독도 탐방 활성화를 위해 서울시교육청과 울릉교육지원청 관계자 30여 명인 모인 자리에서 수학여행 추진을 위한 실무방안 마련을 위해 간담회를 개최했다.한반도의 동쪽 끝 섬 독도를 품은 울릉도는 전국 최초의 국가지질공원으로 충분한 자연유산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독도를 직접 가보고 가치를 몸소 느끼며 독도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애국심을 고취할 수 있어 전국 초·중·고 학생들의 수학여행 최적지로 부상되고 있다.2022년 7월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을 만나 학생들이 독도 수호 의지 함양도 할 수 있는 동해 최고의 자연생태섬 해양관광지인 울릉도·독도 탐방을 추진을 요청했다.이에 서울시교육청 교육정책국장과 교육과장 및 지원처별 초·중·고 대표 교장단 31명이 직접 울릉도를 방문, 사전답사를 진행했다.울릉군은 수학여행단 유치를 위한 울릉도·독도 역사체험 홍보영상을 제작하고 울릉도의 다양한 문화재와 역사적 가치가 높은 장소로 2박3일 수학여행 일정 표준안을 전국 교육청에 배포하여 손쉽게 울릉도에 올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다. 대형여객선 취항으로 접근성이 확보됨으로써 전국 학생들의 독도 수학여행의 활성화가 기대되고 있다.울릉공항 건설사업은 2020년 11월에 착공하여 2025년 개항을 목표로 차질 없이 진행 중이다. 이 공사에 앞서 대체도로인 공항터널을 개통했고 이후 공항부지 조성을 위해 가두봉을 잘라 바다에 메우고 있다. 현재 가두봉 상부 진입로 조성 중이고 시험발파를 성공적으로 마쳤으며 본 발파 진행 중이다.또한, 활주로를 구성하는 케이슨은 전체 30함중 올해 총 12함을 거치 완료했다. 올해 10월까지 성공적으로 마친다면 최대 18함이 거치될 예정이다.재작년부터 이어진 관급자재 철근수급 불안정 등으로 공사가 다소 지연됐지만, 지금부터는 당면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 울릉공항 공사에 더욱 박차를 가할 것이다.예정대로 울릉공항이 건설된다면 서울에서 울릉도까지 걸리는 이동시간이 1시간 정도로 줄어들고, 연간 440억 원 정도의 교통 비용 절감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또한, 접근성 개선으로 관광객 100만 시대의 현실화와 그로 인한 부차적인 경제적 효과 또한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다.

2023-07-23

페이지터너

오랜만에 친구와 앉았다. 귀국 음악회에서 도와달라고 했다. 무대를 떠난 지 오래라서 감각이 무뎌진 상태인 내게 친구는 가볍게 대답했다.“페이지터너야.”악보를 넘겨주는 사람이 페이지터너(Pageturner)이다. 몸은 무대 위에 있지만 보이지 않는 존재로 설정된 투명인간이다. 하지만 연주와 관객을 잘 이어주는 레가토(legato)로 연주자에게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다. 친구의 요청으로 연습에 들어갔다. 상대의 결에 맞춰 호흡을 늘이고 줄여갔다. 구름 같은 청중 앞에서 연주했던 나인데, 까짓것 악보를 넘기는 일쯤이야, 그런데 막상 공연에 닥치자 마음과는 달리 심장이 두근거렸다. 작은 실수도 없도록 악보 밑을 예쁘게 접어 손가락에 잘 잡히게 했다. 친구가 박수를 받으며 무대로 나갔다. 조명이 친구만 비추는 사이 나는 단상에 악보를 올렸다. 친구의 손가락이 날래게 한 음절 찍었다. 리스트의 ‘파가니니 에튀드 6번’이었다. 손가락이 탄력 있게 움직이자 음표들이 허공에 튀어올랐다. 묵직하면서도 경쾌한 음이 세게 또는 여리게 흘러나왔다. 음표들이 춤을 춰도 나는 로봇처럼 발을 움직이지 않았다. 얌전히 일어났다 앉았다만 되풀이하며 악보만 넘겼다. 한 장 두 장 세 장…, 친구는 음표와 쉼표를 몸짓으로 표현했다. 손가락이 춤을 추는 사이둘은 관객에게는 보이지 않는 언어로 서로의 몸짓을 조율했다.다음은 쇼팽의 ‘녹턴’이었다. 흐름이 느리므로 몸짓이 커 보이고 음정이 고요하므로 숨소리도 들린다. 연주자의 눈길이나 동선에 내가 있으면 안 된다. 이 무대의 주인공은 오롯이 연주자 한 명이다. 연주자가 끝까지 악보를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박수가 터질 때마다 나는 더 보이지 않도록 몸을 움츠렸다.나도 주인공인 적이 있었다. 동문들과 음악회를 열었을 때였다. 나는 친구와 함께 무대에 올랐다. 눈과 귀, 몸짓까지 놓치지 않고 오직 나를 위해 움직였다. 재빨랐지만 보이지 않는 손길이 있기에 나의 연주는 다뉴브강을 미끄러지는 돛단배처럼 순항했다. 내가 주인공이 되게 해주려고 무대 뒤의 사람이기를 자처한 친구가 고마워 눈물이 났다. 다시 친구의 몸짓이 빨라졌다. 흐름이 서서히 느려지면서 친구가 힘을 모아 마지막 음을 찍었다. 정적이 몇 초 흐른 뒤 함성과 함께 박수가 터졌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친구가 연거푸 허리를 숙여 답례했다. 꽃송이와 꽃다발이 한 아름 날아들었다.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고 다시 갈채가 쏟아졌다. 감동이 밀려왔지만 나는 무엇도 할 수 없었다.지금 이 자리에서는 박수 한 조각도 나의 것이 아니다. 꽃송이 하나까지 모두 친구의 것이다. 지금은 친구가 빛나는 시간이다. 친구에게 눈길이 쏠린 사이에 나는 소리 없이 무대를 벗어났다. 내가 무대 뒤에서 안도의 숨을 쉬는 사이 무대 위에는 여운이 한참 더 이어졌다. 화려한 무대 뒤에는 숨은 사람이 존재한다. 혼자만 빛나며 세상을 지배하던 태양도 서쪽으로 이울면 달에게 자리를 비켜준다. 밤하늘은 짙고 망망한 어둠을 무대로 깔고 그 위에 별자리가 뛰어놀 마당을 펼친다. 카시오페아, 쌍둥이자리, 큰곰자리…. 별들이 초롱초롱 뛰어놀기에 밤하늘은 아름답다. 김경아 작가 바람은 계절의 악보를 한 장 한 장 넘긴다. 해오름달, 시샘달, 물오름달…, 열매달, 초목은 바람의 리듬에 맞춰 자신만의 삶을 연주한다. 흔들리면서도 대궁 끝에 꽃을 밀어 올리고 따가운 뙤약볕을 쬐어 열매를 익힌다. 들판에서 곡식이 춤을 추는 모습을 보면 뒤에 바람이라는 페이지터너가 있다고 믿어도 좋다. 우리는 누군가의 어둠이고 바람이다. 네가 빛날 때 나는 어둠이 되고 내가 춤을 출 때 너는 음악이 된다. 네가 바람일 때 나는 잎새가 된다. 너를 빛내려고 내가 숨어서 도울 때 우리의 협주는 아름다운 진행형 소나타이다.◇ 김경아 작가 프로필 ·수필 오디세이 신인상 ·포항소재 문학상 최우수상(2020) ·포항 스틸에세이 금상(2022) ·청송객주 문학대전 장려상(2022) ·울산 산업문화 축제 최우수상(2014) 외 다수 수상

2023-07-23

오은영과 서천석

유영희 작가 초등교사가 6학년 학생에게 폭행을 당해 전치 3주의 부상을 입었다는 소식에 뒤이어 학부모 갑질 때문으로 짐작되는 서이초등학교 교사의 죽음을 접하고 나니, 착잡하기 그지없다. 어느 기사를 보니, 2021년부터 2022년까지 초등교사 사망자는 74명으로, 그 이전 4년 동안 46∼55명 사망에 비해 급격히 증가했다고 한다. 교원 죽음에서 극단 선택 비율도 전체 사망자의 11%라고 한다. 교원단체는 초등교사 사망 급증이 스트레스로 인한 질병과 극단선택이 원인이라고 분석했는데, 그것이 얼마나 실증적인 근거가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흘려 들을 일은 아니다. 교사의 정신적 안녕은 교육의 질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그런데 이번 사태를 둘러싸고 난데없이 금쪽이 상담으로 유명한 오은영이 소환되었다. 네티즌들은 상처받은 아이의 마음을 돌봐야 한다는 오은영의 해법이 교사가 훈육을 제대로 못하게 했고 학부모 갑질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최근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 서천석이 힘을 보탰다. 서천석은 오은영의 방송이 몇 번의 상담으로 아이의 문제가 개선될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준다고 비판한다. 그는 정신적 문제를 가진 아이는 상담이 아니라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한 경우가 많다고 하면서, 아이들의 치료를 뒷받침할 법과 제도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그러나 방송을 가만히 보면, 오은영은 방송에서 우리에게 보여주는 영상보다 훨씬 더 오랜 시간 금쪽이와 부모의 일상까지 관찰한 것을 알 수 있다. 이 정도 밀착해서 관찰한다면 짧은 기간이라도 문제 원인과 해결책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출연자의 문제는 해결된다 해도, 시청자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알 수 없다. 실제로 오은영이 감정 가라앉히는 방법으로 제안한 ‘생각하는 의자’는 많은 부모가 방치의 수단이나 체벌의 형태로 잘못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책이나 방송만 보고 적용할 때는 오남용 여지가 많다.얼마 전, 집이 너무 어수선해서 정리 팁을 얻으려고 유튜브 영상을 수십 개를 봤지만 문제와 해결책을 발견하기 어려웠는데, 컨설팅 업체를 불러 30분 상담하니 다 해결된 경험이 있다. 집 정리 같은 단순하고 물리적인 문제조차 이런데, 인간의 마음처럼 복잡한 문제를 영상을 보고 도움 받기란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교사에게 전치 3주의 부상을 입힌 초등학생은 작년 5월부터 정서행동장애로 하루 1시간 특수반 수업을 듣고 주 2회 상담수업을 받고 있었고 평소에도 상담 수업에 가기 싫다면서 교사를 여러 번 때렸다고 한다. 현재 이 문제를 교권 침해로 접근하여 엄벌을 청원하고 있다고 하는데, 여기서는 치료의 적절성을 더 문제 삼아야 할 것 같다.서천석의 말처럼 정신적 문제를 가진 아이는 적극적인 치료를 받게 해야 한다. 오은영 방송이 상담에 환상을 심어준다는 서천석의 비판에는 동의하기 어렵지만, 아이들의 정신적 문제는 적극적 치료와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그의 주장은 부모와 정책 입안자들이 경청해야 한다. 그래야 무너진 교권도 회복될 수 있다.

2023-07-23

눈으로 보는 관리의 지혜, 가시화VM

장광일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우리나라 속담에 ‘사람 몸이 천냥이면 눈이 구백 냥이다’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눈이라고 하는 감각기관이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사람은 오감(시각, 촉각, 미각, 후각, 청각)을 통해 상황을 판단하고 그 상황에 맞는 행동을 취하고 있는데, 시각을 통해 판단하는 것이 전체 오감을 통한 판단 중 약 80% 이상을 차지한다고 하며, 우리의 일상에서도 보고 판단하는 것이 전체 의사결정의 대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그러나 어떠한 상황을 눈으로 확인할 방법이 없다면 그만큼 문제를 확인하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적절한 상황 대응을 할 수도 없을 것이다.VM(Visual management)은 ‘눈으로 보는 관리’라는 단어로 ‘현장에 근무하는 모든 사람이 작업 현황이나 업무의 진행 상황이 정상인지, 이상이 있는지를 신속히 판단하여 대책을 세우는 것’부터 시작된다. 따라서 현장은 자율신경이 살아있는 가시화(可視化) 현장이 구축 되어야 한다. 또한 보이지 않거나 볼 수 없는 것을 새로운 아이디어를 통해 어떻게 눈으로 보는 관리가 가능하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여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가시화의 기본은 상대방의 의사에 상관없이 다양한 사실과 문제가 ‘눈에 들어 오도록’ 만드는 것이다. 즉 작업자가 ‘본다’ 가 아니라 작업자에게 ‘보인다’라는 것으로 문제가 눈에 보이면 행동을 일으킨다는 인간의 동물적 본능에 호소하는 것이다. 인간은 본래 자율적으로 사물을 판단하고 적정한 행동을 취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문제가 보이면 스스로 해결하려는 무언가가 마음속에서 싹트게 하는 것이다.필자는 철강업에 맞는 VM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동료들과 함께 현장 맞춤형 VM Guidance 연구회를 발족하여 추진하였다. 이 완성된 자료는 모든 관련 회사가 현재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다. 특성에 따라 색별 관리, 표시 관리, 형적 관리, 이상 관리의 4대 항목으로 구분하였고, 목적에 따라 작업 관리, 공정 관리, 안전 관리, 품질 관리, 설비 관리, 현품 관리, 환경 관리, 원가 관리의 8대 목적으로 세분화 하여 접목하였으며, 직원들이 자재를 신청하는 것부터 현장에 적용하는 것까지 쉽게 가이드 하여 좋은 호응을 얻었다. 그 결과 현장 곳곳에 VM모범구역의 명소가 선정되어 벤치마킹 장소가 되었다.세계는 급속히 변화해 가고 있다. 이는 기업 활동에서 자칫 우리에게 기본의 소중함을 잊게 하거나 끊임없이 개선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환경이 변화할수록 현장에서 발생하는 사고나 문제를 예방하거나 사고 처리를 적절히 하기 위해서는 일하는 사람 모두가 기본적인 현장 관리와 개선 활동을 성실히 수행해 나가야 한다.VM은 현장의 문제를 발굴하는 마중물과 같다. 전 종업원이 기본을 충실히 지키면서 이상(理想)을 가지고 주위에 발생하는 문제점을 스스로 발견하여 해결하는 노력을 지속할 때 체질이 강한 기업, 강한 현장이 이룩될 것이다. 이는 그 기업의 문화가 되고 안전 확보는 물론 기업 경쟁력이 향상되어 성공하는 기업이 될 것으로 믿는다.

2023-07-23

넘치는 자식 사랑, 그만 멈추라!

김규종 경북대 교수 20대 초반 여교사가 학교에서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 죽음을 둘러싸고 숱한 소문과 의혹과 추측이 난무한다. 죽음을 둘러싼 진영 사이의 대결과 충돌도 점입가경이다. 하지만 그들 목소리의 교집합이 있으니,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다. 이런 주장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멀리는 4·16 세월호 대참사와 가까이는 10·29 이태원 참사가 있다. 그런데 결론은 무엇인가?! 유야무야(有耶無耶), 꼬리 자르기, 진상규명은 이뤄지지 않았고, 책임자 처벌은 온데간데없다. 이런 일이 어디 한두 번 겪는 일인가?! 반짝하며 타오르는 분노의 불길이나, 절망과 좌절과 탄식의 파고(波高)를 인내하면, 은근슬쩍 지나가게 돼 있음을 원인 제공자들은 잘 알고 있다.1862년 출간된 ‘레미제라블‘에서 빅토르 위고는 프랑스 시민들의 짧은 기억력을 한탄한다. 불과 180일, 여섯 달만 지나면 모든 것을 망각하는 프랑스인들의 어리석음을 오래도록 한탄한 것이다. 하지만 21세기 20년대 대한민국 시민들의 기억력은 여전히 40일의 벽을 넘지 못한다. 불과 38일 지나면 그런 일이 있었나, 하며 조용히 손사래 치며, 그만하라고 목소리 높인다.기억은 힘이 있다. 특히 그것이 경술국치(庚戌國恥) 같은 국가 중대사이거나 제주 4·3이나 여순사건 같은 비극적인 참변이거나, 광주항쟁 같은 위대한 투쟁이거나, 87년 평화 대행진 같은 민주항쟁일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사람은 상실과 패배와 고난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운다. 일컬어 ‘고난 없이 영광 없다(No cross, no crown)’는 영어 속담도 있지 않은가?!그렇지만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우리 한국인은 비관과 부정에 휩싸인 과거를 서둘러 잊어버리려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환향녀(還鄕女)와 호로자식(胡虜子息)이라는 비감하고 쓰라리며 절망적인 단어를 만들어낸 병자호란을 영화관에서 돌이켜보는 자세가 그것을 웅변한다. 어찌 됐든 작은 승리에 도취하고 행복해하는 작은 인간들이 너무도 많다.2011년 개봉된 김한민 감독의 ‘최종 병기 활’에 747만 관객이 들었다. 그들은 조선 신궁(神宮) 남이의 활에서 크나큰 위로와 활로를 찾는다. 작고 여린 남이와 그의 애깃살이 크고 무시무시한 쥬신타의 강궁 육량시(六兩矢)의 대결을 보면서 손에 땀을 쥐고 환호한다. 대국적인 견지의 처참을 극한 패배와 치욕은 사라지고, 남이의 작은 승리에 도취한 군중만 남는다.2017년 개봉된 황동혁 감독의 ‘남한산성’은 385만의 관객을 모았다.‘최종 병기 활’의 절반 수준이다. 이조판서 최명길과 예조판서 김상헌의 치열한 논리 대결을 바탕으로 조선의 완벽한 패배를 조명하고 인조의 구차한 삼전도 굴욕을 재연한다. 시종일관 무겁고 출구 없는 조선의 암군(暗君) 인조와 그를 보필하는 신하들의 허망한 충성 대결. 그 고갱이를 들여다봐야 한다.낱낱이 파헤치고, 진실을 찾아야 한다. 진실이 밝혀지면 책임자를 법정에 세워야 한다. 죽은 자를 되살릴 수는 없지만, 그의 죽음은 기억해야 한다. 추락한 교권을 일으켜 세우고, 폭력적이고 가학적인 자식 사랑을 억압해야 한다. 당신 자식만큼 교사의 생명과 인권도 소중하니까!

2023-07-23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

우정구 논설위원 조금 오래된 조사지만, 영국의 시장조사 기업인 입소스(Ipsos)가 세계 23개국 국민을 대상으로 신뢰받는 직업을 조사해 봤더니 정치인이 9%로 대상 집단 중 가장 낮았다. 가장 신뢰받는 집단인 과학자(60%)의 반의반도 안됐다.민주주의 정치의 선진국이라는 영국과 미국조차도 정치인 신뢰가 꼴찌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각국이 공통으로 정치인을 가장 못믿을 집단으로 규정한 것이 눈길 가는 대목이다.지난 4월 ‘특권없는 공정 세상’을 슬로건으로 출범한 시민단체인 특권폐지국민운동본부는 우리나라 국회의원이 누리는 특권이 200개에 달한다고 했다. 1억5천만원에 달하는 세비와 장관급 대우의 사무실, 입맛대로 뽑을 수 있는 보좌진, 면책특권과 불체포특권 등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국회의원에게 특권이 부여된다는 것은 국민을 대신해 나라 발전에 기여하라는 뜻이다. 이런 뜻에도 불구하고 국민 불신이 높다는 것은 특권을 줄 이유가 없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무방하다. 시민단체의 특권폐지운동의 배경도 여기에 있다.거액의 코인을 보유하고 국회 회기 중 200차례 이상 코인 거래한 무소속의 김남국 의원에 대해 국회윤리특위가 제명을 권고했다. 제명은 의원직 박탈이라는 최고 수준의 징계다. 이제 결정은 국회 몫이다.당사자인 김 의원이 반발하는 가운데 과반수 이상 의석을 가진 민주당이 이번 권고를 받아줄지가 초미의 관심이다. 국정을 논하는 자리에서 코인을 사고 판 행위만으로 이미 의원 자격은 상실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는 법 아닌가. 국회는 순리에 따른 결정을 내려야 추락한 정치인의 신뢰를 조금이라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3-07-23

장마 다음 폭염

우정구 논설위원 지금 미국과 유럽 등 지구촌 북반구에는 살인적 더위로 몸살 중이다. 기록적으로 치솟는 기온을 이기지 못한 온열질환자가 몰려들면서 병원 응급실은 비상이다.세계보건기구(WHO)는 21세기 들어 폭염을 가장 위험한 자연재해 중 하나로 손꼽고 있다.우리나라도 2018년 최악의 폭염을 계기로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을 개정해 폭염을 자연재해에 포함시켰다.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폭염으로 인한 죽음이 급증하고 있다. 특히 고령자, 저소득층, 만성질환자에게는 폭염이 매우 위협적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돈없고 힘없고 건강이 없는 사람에게 폭염은 잔혹한 재난일 수 밖에 없다.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2011년부터 2019년까지 우리나라 폭염사망자는 493명이다. 같은 기간 태풍이나 호우에 의한 사망자의 3.6배에 이르렀다.최근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에선 최고 기온이 19일 연속 43도를 기록했다. 유럽의 이탈리아 로마도 41.8도를 찍어 역대 최고를 기록했고, 스페인의 주요 도시에서도 40도가 넘는 기온이 신기록 행진을 하고 있다고 한다.태풍은 피해자가 눈에 목격되지만 폭염은 실체를 눈으로 확인할 수 없어 침묵의 살인자라 부른다. 지난해 유럽 35개국의 온열질환 사망자가 6만1천여 명에 달했다고 한다. WHO는 살인적 폭염을 이제는 새로운 현실로 받아들여 할 때라고 설명한다.우리나라라고 살인적 폭염이 예외일 수는 없다. 지난주 쏟아진 집중호우로 홍수와 산사태 등이 일어나면서 적잖은 인명피해가 발생했다.장마 뒤 찾아올 폭염에 대비한 준비도 서둘러야 인명 피해를 줄일 수 있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7-20

국민정서법이 뭐길래

홍석봉 대구지사장 #1. 홍준표 대구시장이 ‘수해 골프’ 논란을 사과했다. “국민정서를 고려하지 못해 송구스럽다”며 고개 숙였다. 고심 끝의 사과였다. 전날까지만 해도 “주말 테니스는 되고 골프는 안 된다는 규정이 어디 있냐”며 항변하던 그였다. 재난 대응 매뉴얼까지 내세우며 잘못이 없다며 당당하게 소신을 밝혔었다.그러나 여론은 홍 시장의 뜻과는 반대로 전개됐다. 당 지도부까지 나서 비판하고 징계마저 논의됐다. 결국 홍 시장은 한 발 물러서며 수습에 나섰다. 사태 발발 당시 홍 시장이 “부적절한 행동이었다. 앞으로 조심하겠다”고 한마디만 했으면 끝날 일이었다. 그런데 대응이 꼬이면서 일이 커졌고 ‘국민정서법’이 더해져 화를 키웠다. 홍 시장은 그동안 누구보다 정국을 잘 읽고 대처해왔다. 적절한 국면에 정치 훈수를 아끼지 않았다. 국민감정과 정서 또한 잘 알 터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수해 골프’논란과 수습과정은 아쉬움이 남는다.#2. 국내 입국이 거부된 가수 유승준(47)도 국민정서에 반한 괘씸죄에 걸려 애를 먹었다. 그는 20년 동안 고국에 돌아오지 못하는 고문(?)을 당해야 했다. 유 씨에게 비자를 발급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유 씨는 2002년 군대에 가지 않으려고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다가 그해부터 입국이 막혔다. 비자를 내주지 않았다. 재판부가 체류 자격을 부여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법무부 등의 협의가 필요하다. 유 씨는 병역 회피가 이렇게 오랜 기간 동안 그의 연예 활동과 인생의 발목을 잡을 줄은 몰랐을 터이다.교육과 병역 의무는 우리 국민의 아킬레스건 중 하나다. 자칫 잘못 건드리면 국민이 용납않는다. 국민정서법이 가장 민감하게 작동하는 분야다.국민정서법이란 한 나라의 국민이 특정 사건에 대해 집단적으로 드러내 보이는 감정이나 정서를 말한다. 통상 ‘국민정서’가 법치에 영향을 주는 쪽으로 작용할 때 사용된다. 부정적인 의미를 부각, ‘떼법’이라고도 한다.‘국민정서’가 실정법과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보다 중히 여겨지는 상황을 비꼬는 말이다. 논리적인 법 잣대로만 재단할 수 없는 것이 국민정서법이다. 한국에만 작동하는 독특한 불문율이다. 실체가 없는 모호한 주장일 뿐이라는 의견도 있다.하지만 국민정서법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알게 모르게 작용한다. 우리 국민의 반일정서는 법적으로 해결된 사항을 뒤집기도 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등의 속담처럼 혼자 앞서거나 튀는 행동 등에 대한 반발 심리가 내재돼 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가 남의 눈치를 많이 보게 하는 독특한 문화를 형성했다.국민정서법은 ‘법 위의 법’이 됐다. 집단이기주의와 결부돼 각종 국책사업과 정부정책을 뒤흔들기도 한다.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방해하기도 한다. 평준화 교육에서 보듯 하향평준화의 부작용도 초래한다.공직자와 연예인 등 유명인사는 일반인보다 더 엄격한 처신과 사생활을 요구받는다. 특히 선출직 공직자의 경우는 더하다. 청렴과 성실성 기준이 더 높게 적용된다. 국민정서법에 저촉되면 남아날 장사가 없다.

2023-07-20

피스로드 통일대장정의 꿈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19일 포항 덕업관 대강당에서 ‘신통일한국 피스로드 2023 경상북도 통일대장정’ 행사가 열렸다. 남북통일운동국민연합 경북도회와 경북평화대사협의회 주관으로 6·25 전쟁 정전협정 70주년과 피스로드 10주년을 맞아 마련한 행사였다.마침 장맛비도 그치고 푸른 하늘이 열렸기에 걷기 편한 복장으로 나서는 마음은 가벼웠다. 식장에 들어가 앞자리에 앉으니 ‘6·25 전쟁 참전 학도의용군의 고귀한 희생을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슬로건도 보인다. 초청 내빈과 도민 400여 명이 자리를 채우고 특히 맨 앞줄에 흰 모자 쓰고 훈장 달린 정복을 입은 현재 생존하신 6·25 참전 학도의용군 일곱 분이 눈에 띈다.1부는 6·25 참전용사 추념식. 헌화와 묵념에 이어 낭독한 ‘어느 학도병의 편지’를 듣노라면 “어머니, 전쟁은 왜 해야 하나요”라는 중3 의용군의 절규가 가슴을 저린다. 영상을 본 후 팔순이 넘은 노병들을 무대 위로 모시고 꽃목걸이를 달아드렸더니 “오늘 멋진 대접을 받으니 참 고맙다”라고 하신다.2부에서 평화 통일을 염원하는 축사, 격려사, 대회사가 끝나고 청년대표의 평화선언에 이어 ‘통일의 노래’를 합창할 때면 오랜만에 마음이 뭉클해져 우리의 소원을 마음에 새겨봤다. 태극기 흔들며 만세삼창도 힘껏 외쳤다.마지막 3부 순서가 걷기대회였다. 모두 행사장을 나와서 참전국 국기를 앞세워 형산강둑을 따라 20여 분을 걸어 해도근린공원 숲으로 갔다. 6·25 전쟁 당시 44일간 결사 항전했던 최후의 방어선 ‘워크라인’이었던 곳이다. 참전 유공자 명예선양비 앞에 헌화하고 전몰용사 3천234명의 영혼을 기렸다.이 ‘피스로드 통일대장정’ 행사는 1981년 11월 서울에서 열린 제10차 국제과학통일회의에서 문선명 총재가 제안한 ‘국제평화 초고속도로’ 주창을 기반으로 해서 세계의 분쟁과 갈등을 해소하고 지구촌의 평화시대를 열어 보자는 운동이며, 2013년 ‘한·일 3천800㎞ 평화의 자전거 통일대장정’으로 출발했다. 이후 동참하는 국가가 늘어나면서 2015년 ‘피스로드’라는 이름으로 되어, 걷기와 자전거, 자동차 등 다양한 방법으로 평화의 길을 간다는 세계적 행사로 확대되었다. 그동안 칠레 산티아고에서 피스로드 세계 출범식을 가졌고 아시아, 유럽, 북·남미, 아프리카 등 6대륙을 하나의 길로 연결하여 서울에서 아프리카 희망봉, 그리고 남미 산티아고까지 ‘길’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인류를 한 가족처럼 묶어 평화에 다가가는 금세기의 기념비적인 꿈의 프로젝트이다. 이미 한·일간 해저 터널은 첫 삽을 떴고 유라시아 횡단철도의 꿈도 그리며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우리나라가 북한의 개혁과 개방에 촉매제를 뿌리는 것이다.‘2023 피스로드 통일대장정’은 전 세계 160개국 약 100만명이 참여할 예정이다. 2021년에는 포항영일대해수욕장에서 시민 걷기대회를 열었고 작년에는 영천 시민회관에 모여 금호강변을 걷고 자전거를 달리기도 했다. 올해는 정전 70주년이라 한·미·일 등 8개국의 젊은이들로 구성된 국토종주단이 고성에서 임진각까지 DMZ 자전거 횡단을 계획하고 있다. 이제 남북이 다시 어우러지는 행복한 꿈을 이루어야 하리라.

2023-0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