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오피니언

2024 코리아 세일페스타

우정구 논설위원 미국의 블랙 프라이데이는 추수감사절 다음날인 11월 넷째주부터 시작되는 미국 내 최대규모 쇼핑 할인행사다. 블랙 프라이데이 시즌에 일어나는 매출은 미국 연간 발생 매출의 20%를 차지할 정도로 크다. 미국인들은 한 해 동안 아끼면서 닫아두었던 지갑을 블랙 프라이데이 시즌을 맞아 활짝 열고 쇼핑에 나선다고 한다. 블랙 플라이데이의 어원도 많은 소비가 일면서 상인들의 적자(red ink) 장부가 흑자(black ink)로 전환됐다는 말에서 유래됐다는 설도 있다. 우리나라도 미국의 블랙 프라이데이와 비슷한 대규모 쇼핑 할인행사가 매년 벌어진다. 코리아 세일페스타다. 2015년 메르스 사태로 침체된 경제를 살리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처음 시작한 거국적 할인 행사다. 올해로 9번째 맞는 국가대표 축제인 코리아 세일페스타는 미국의 블랙 프라이데이를 롤 모델로 삼는다. 지난 9일부터 30일까지 2024년 할인행사가 벌어지는데, 얼마나 많은 소비자들이 찾아올지가 관심사다. 올해는 역대 가장 많은 2600개 기업이 행사에 참여했다. 백화점, 대형마트, 가전제품과 생필품, 자동차, 숙박시설, 놀이공원 등 거의 모든 서비스 업종이 동원됐다. 특히 코리아 세일페스타의 목적은 내수경기 진작을 통해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데 있다. 극심한 불경기를 맞는 올해는 그래서 더 많은 기대감을 모으고 있다. 경제학에서 소비를 미덕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소비가 바람직하게 이뤄지면 기업의 생산을 유발하고, 이로 인해 일자리도 많이 창출된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균형 잡힌 소비가 바람직하다. 2024 코리아 세일페스타가 힘든 우리 경제의 마중물이 되길 바란다. /우정구(논설위원)

2024-11-14

“아직 ‘달빛 철도’를 놓을 때가 아닙니다”

신광조​​​​​​​사실과 과학 시민네트워크 공동대표 2023년 강기정 광주광역시장은 “달빛 고속철도는 사람과 도시, 영호남을 이어 동서화합과제를 해결하고 영호남 상생발전과 국토균형개발로 국가경쟁력을 높이게 될 것이다.”고 누누이 강조했다. 그리고 그가 원했듯 최다(議員) 261명이 특별법을 공동발의 하고, 예비 타당성조사를 면제시켰다. 건설 사업비는 고속화 일반철도로 수정, 10조원에는 조금 못 미칠 것이다. 이 사업을 두고선 아직도 논란이 적잖다. 사회기반 시설이 어느 정도 구비되어, 대구에서 승용차를 이용하지 않더라도, 40분 간격의 고속버스를 타면 지리산 완상하며 광주로 갈 수 있다. 고속버스 좌석은 보통 반도 안 찬다. ‘공공투자의 모순’이라는 것이 있다. 건설 열심히 하면 더 좋은 세상이 오고, 효율성이 제고될 것 같은 착각에 빠지도록 하는 것이다. 광주지하철 2호선 건설 때였다. 지하철 운영 수요 확보 기준은 현재 대구 인구인 250만 명인데 145만 명의 광주가 이걸 추진하다니, 이건 아니다 싶어 광주시 도시계획, 교통국장을 지냈던 경험을 바탕으로 건설저지를 위해 싸웠다. 하지만 공론화 투표에서 지고 승복을 했다. ‘빛의 도시’가 아닌 ‘빚의 도시’광주를 후손들에게 물려줄 애잔한 슬픔은 스스로 달랬다. 나의 지역 살리기 전략은 명예나 이름을 버리는 데서 시작된다. 2005년 광주광역시 기획관 시절, 혁신도시 건설과 공공기관 지방이전이 있었다. 한국 전력공사는 앙꼬였다. 광주, 전남은 부산과 경남, 대구와 경북에 뒤질 수밖에 없었다. 묘수가 필요했다. 숙고를 거듭했고, 그렇게 나온 안이 광주, 전남 ‘따로 백반’ 두 혁신도시를 합해 나주에 공동혁신도시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박광태 광주시장과 박준영 전남지사께서도 힘을 보태주셨다. 두 광역자치단체가 힘을 합하니 시너지 효과가 낳고 결국 황금 알을 낳을 거위로 평가받던 한전을 품에 안았다. 밤새 코피를 흘리며 고민하다 동이 트는 순간 떠오른 아이디어 한 방이 올린 성과였다. 고정관념과 편견, 선입견, 평범한 생각을 버려야 한다. ‘달빛 철도’ 건설하면 좋은 일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회비용관점에서, 지역발전의 승부수인 중요프로젝트를 다 포기해야 할 정도로 화급한 일이냐고 묻고 싶다. 운영적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진퇴양난에 빠질 것이다. 이제 광주전남, 대구경북은 지방으로부터의 역전과 반란을 일으켜야 한다. ‘달빛 철도’ 건설을 연기하는 대신, 소요되는 재원 10조원을 양 지역에 반씩 나누어주도록 하자. 그 돈으로, 미국의 메이요 클리닉 의료병원시스템을 포항과 화순 지역에 각각 도입하면 국민들에게 의료천국 선사해줄 수 있다. 의사숫자를 늘리는 것과 같은 양적 확대, 하향평준화가 아니다. 질적 개선 상향평준화를 하자는 말이다. 4차 산업혁명시대는 전기에너지인프라가 열쇠다. 포항 영덕 경주 지역을 중심으로 일고 있는 수소경제 착근과 혁신 중소원자로(i-SMR)건설도 매가 지상의 먹이 낚아채듯 전속력으로 수직낙하 해보자! 대구경북이 선구자로 튀어나가, 전국을 가르쳐주자. 정치적 합리성이 경제적 합리성을 찬탈하면 지방은 파국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2024-11-14

수능이 끝났다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11월 14일 목요일, 수능이 끝났다. 2025학년도 대학입시를 위한 수학능력시험이 마무리된 것이다. 그동안 부단히 외우고 익힌 노력을 평가받는 과정이다. 이제 재학생들은 3년간의 고등학교 학업을 끝내고 자신의 10대를 마무리하는 길목에서 대학입시를 준비하며 마음을 다잡아야 할 것이다. 올해 수능 총지원자 수는 작년보다 1만8000여 명이 증가한 52만2670명이다. 그중 재학생이 34만777명으로 65% 정도이고 졸업생이 16만1784명, 그리고 검정고시는 2만109명이라고 한다. 여기서 고3 재학생 1만4000명, 졸업생과 검정고시는 각각 약 2000명이 증가하여 졸업생 지원자 수는 2004년 이후 21년 만에 가장 많았다. 이는 올해 의료계 언쟁의 소용돌이 속에 아직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듯, 내년 전국 40여 개 의대 정원 축소 우려를 느낀 반수생 지원자 등 ‘N수생’이 몰려든 탓도 있을 것이다. 시험 하루 전 예비 소집 날, 수험표를 받고 시험장을 확인하는 자리에서 후배들이 마련한 레드카펫과 격려문 피켓을 보며 ‘대박을 기원합니다’라는 격려도 받고, 또 담임 선생님들이 정성껏 마련한 쿠키와 떡 등의 간식 선물들을 받은 수험생들은 ‘잘 풀고 잘 찍자’라고 다짐하며 출정식을 즐겼다. 수험생들은 전국 85개 지구 1282개 시험장에서 자신의 꿈을 이룰 문제의 답을 하나씩 적어나갔을 것이다. 성적 통지일은 12월 6일이다. 킬러 문항을 배제하고 N수생의 변수를 고려했을 문제들은 지난 6월과 9월의 모의평가에서 난이도가 높았다 낮았다 하는 우여곡절도 겪었지만 불수능이니 용암 수능이니 하는 불평은 없어야 될텐데…. 한국사는 필수이니 응시하지 않으면 모든 시험이 무효되고, 당일 모든 항공기의 이착륙을 금지하여 소음도 막았다. 작년 수능 만점자는 1명 밖에 나오지 않았는데 올해는 몇 명이나 나올까 기다려 보자. 예전에는 수능 감독들의 불만도 많았다. 하루 2~3시간 연속으로 감독할 경우 인권 침해의 우려도 걱정이 되었지만 ‘수고했어요’ 한 마디에 마음이 풀어졌을 것이다. 포항지역은 12개 시험장에서 4330명이 시험을 치렀다. 시험장이 없는 울릉고는 남학생 9명과 여학생 13명 모두 22명이 포항까지 먼 뱃길을 와서 시내 3~4곳에 분산되어 시험을 치른다고 했다. 공항이 없어 기상 여건에 따라 시험을 치르지 못할 경우를 염려한 것이고 선박비, 숙박비 등 비용 전액을 경북교육청에서 지원받는다고 한다. 이제 수능이 끝났으니 자유시간을 갖고 ‘불행 끝, 행복 시작’의 마음으로 지원하고자 하는 대학별 면접을 준비해야 한다. 내년 전국 대학 입학정원은 330여 개 대학에 작년보다 3300여 명 감소한 34만명이라지만 학생부 위주의 수시모집은 이미 끝났고 앞으로 있을 정시모집은 수능 위주의 평가이니 문과 이과 통합교육 과정 등을 잘 살펴서 전공 선택도 신중했으면 한다. 학생들에게 ‘수능 후 가장 하고 싶은 일’을 물은 ‘알바 천국’의 조사를 보면, 첫째가 아르바이트, 둘째가 여행 그다음이 휴식이다. 아르바이트를 택한 이유는 경제적 자립과 경험을 쌓기 위한 욕구라고 했다하니 늦은 단풍을 구경하며 마음의 휴식을 갖기를 바란다.

2024-11-14

윤석열 대통령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어려서 백 환짜리 지폐에 그려진 이승만 대통령의 초상을 본 후로 12명의 대통령을 더 거쳤다. 4·19혁명으로 탄생한 제2공화국의 윤보선 대통령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고. 18년간이나 통치한 박정희 대통령은 흑백텔레비전 뉴스로 자주 보았다. 박 대통령 서거 후 권한대행을 거쳐 7개월 남짓 재임했던 최규하 대통령도 별다른 역할이 없었다.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을 끝으로 소위 군사정권은 종식되고, 김영삼 대통령부터 문민정부가 이어졌다.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은 주로 좌파들의 지지를 받았고, 이명박, 박근혜, 윤석열은 우파진영이 밀어서 대통령이 되었다. 지난 대통령들은 모두 결말이 좋지 않았다. 이승만, 윤보선, 최규하 대통령은 중도 하야를 했고, 박정희 대통령은 김재규의 총탄에 서거했다.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대통령은 임기 후 감옥살이를 했고,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은 자식들의 비리 문제로 임기 말년이 순조롭지 못 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임기를 마치긴 했으나 수사를 받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고, 박근혜 대통령은 임기 중에 탄핵을 당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검찰의 수사를 앞두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1월 10일 임기의 반환점을 돌았다. 그동안 나름으로 국정에 전념해서 상당한 성과를 올렸다. 무엇보다 큰 업적은 심각하게 기울어진 나라를 바로 잡은 노력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윤 대통령이 아니었으면 정권이 다시 좌파 쪽으로 넘어가서 지금쯤 대한민국은 회복불능의 상태가 되었을 것이다. 다음으로는 안보를 공고히 한 일이다. 한미동맹의 강화와 한미일 공조가 그것이다. 한미연합 훈련을 재개하는 등 해이해진 군의 기강을 바로잡은 것도, 북의 도발에 대해 단호한 태도를 취한 것도 행여 헛된 망상을 갖지 못하게 한 일이다. 문재인 정권이 망쳐놓은 원전생태계를 서둘러 복원한 것도 결코 적지 않은 업적이다. 그로 인해 세계 최고 수준의 원전기술이 엄청난 국익창출을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 그리고 국격을 높인 외교역량도 손꼽을 만하다. 김정은의 수석대변인이란 조롱을 받으며 국제적 망신을 샀던 문재인 대통령과는 달리 당당하고 품격 있는 외교를 펼쳤다. 그 덕에 방상산업을 비롯해 조선이나 건설 같은 분야의 세계시장 진출에 성과를 올리고 있다. 그런데도 윤 대통령이 국정운영을 잘 한 게 없다는 국민이 70%이상이라고 한다. 임기 초부터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 야당·좌파의 악의적인 선동과 음해공작이 그만큼 먹혀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도 좌파무리들은 주말마다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을 외치는 집회를 하고 있다. 윤 대통령이 탄핵을 당할 만큼 중대한 헌법·법률의 위반이 있거나 권한을 남용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국민들을 선동해서 나라를 혼란에 빠뜨리려는 게 저들의 목적이다. 그래서 코앞에 닥친 각종 사법리스크를 모면할 계기를 만들어 보려는 것인 줄은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들은 다 아는 일이다. 대한민국의 국운이 다하지 않았다면, 머지않아 대다수 국민들의 각성이 있을 것이다.

2024-11-14

어린 고래의 눈물

윤명희 수필가 잔디를 비집고 올라온 잡초를 뽑는다. 남편은 말없이 포와 과일로 간단한 상을 차린다. 오늘은 아버지의 봉분을 흠뻑 적실 술을 두병이나 준비했다. 잔을 채운 술이 넘쳐흐른다. 어릴 적 나는 제삿날만 되면 불안했다. 그날이 오면 일부러 바깥에서 오래 시간을 보냈다. 어스름한 시간에 대문을 들어서면, 마루 끝에 술 취한 아버지가 먼저 보였다. 제사음식 준비를 끝낸 엄마는 부엌에서 서성거렸고, 동생들은 방에서 불도 켜지 않은 채 숨죽였다. 나는 저녁밥도 거른 채 아버지의 눈을 피해 내 방으로 들어갔다. 열시가 넘어가자, 제주(祭酒)를 든 삼촌이 들어섰다. 삼촌을 본 아버지의 코끝이 실룩거렸다. 동경에서 태어난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5남 1녀 중 셋째 아들이다. 형이 둘이 있었고 맨 위로 누나가 있다. 아버지가 아홉 살 되던 해, 해방이 되었다. 공부하는 두 형을 동경에 남겨둔 채, 할아버지는 나머지 식구들을 데리고 대구 칠성동으로 터전을 옮겼다. 현해탄 길에서 열감기로 아래동생을 잃고, 막냇동생만 남았다. 낯선 곳에 익숙해질 틈도 없이 누나가 멀리 시집을 가고, 어린 아버지는 어머니를 병으로 잃었다. 이별은 급물살로 휘몰아쳤다. 어머니를 잃고 일 년도 지나지 않아 아버지까지 돌아가셨다고 한다. 세 살 박이 막내의 엄마 찾는 소리만이 집안을 떠돌았다. 장례 치르러 온 큰형은 해야 할 공부가 남았다며 작은 형과 동생들을 남기고 다시 일본으로 갔다. 아버지는 작은 형의 옷자락을 놓지 않았다. 온 식구가 동경에 살았을 때, 형들은 언제나 든든한 파수꾼이었다. 합기도를 잘하는 형들이 있어 조센징이라고 놀리는 일본 아이들도 함부로 하지 못했다. 마지막 버팀목인 작은형마저 떠날까 불안한 나날이었다. 그러던 어느 밤, 어린 아버지는 대문 흔드는 소리에 잠이 깼다. 마당이 달빛으로 환했다. 대문 두드리는 소리가 다시 들렸다. 아버지는 문턱에 서서 파자마와 흰 러닝셔츠차림인 작은형의 뒷모습을 내다보았다. 대문 여는 소리와 동시에 형의 외마디 비명소리가 들렸다. 건장한 남자들에게 끌려가는 형을 보았다. 대문 앞에 떨어진 형의 신발 한 짝을 손에 든 아버지의 우는 소리가 골목을 뒤흔들었다. 그 소리에 깨어난 막내의 울음소리가 마당까지 따라 나왔다. 작은형은 그렇게 꿈처럼 사라졌다. 이별의 무게에 눌려 숨도 쉴 수 없었다. 갑자기 홀로 남겨진 아이는 어른이 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아무도 가르쳐주는 이가 없이 혼자서 어른이 되고, 아버지가 되었다. 내가 일곱 살 무렵이었다. 우리 집에 소포꾸러미가 배달되었다. 아버지의 큰형, 한 번도 보지 못한 나의 큰아버지 이름이었다. 꾸러미에는 옷, 양말, 생필품들이 가득했고, 그 사이에 사진 한 장이 있었다. 그토록 기다렸던 큰형이 사진으로 왔다. 사진 속 큰형의 가족은 아이까지 모두 정장차림이었다. 그들이 웃고 있었다.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그것들을 쓰레기장에 처박아 버렸다. 세파를 혼자 헤쳐 나온 아버지는 그 사진에서 버려진 자신을 본 것은 아닐까. 돌아가시는 날까지 형의 이야기는 입에 담지 않았다. 그날 이후로 아버지는 제사 모시는 시간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일본에 사는 형 집에 가기 전에 먼저 제사를 지내야 한다고 했다. 밤 11시가 되면, 벽에 기댄 채 꼼짝도 하지 않던 아버지가 급하게 일어섰다. 제사상을 차리고 지방까지 써 붙였다. 나는 얼른 빨랫줄을 걷고 대문을 열었다. 삼촌은 전깃불을 끄고 촛불을 켰다. 할아버지 할머니 앞에 선 아버지의 얼굴이 곧 울음이 터질 기세였다. 절을 할 때마다 이마를 손등에 댄 아버지는 일어서지 못했다. 일어서던 삼촌이 다시 엎드려 곁눈질로 언제 일어나야 하는지를 살폈다. 아버지의 등이 한참동안 들썩거렸다. 아버지는 해마다 제삿날이 되면 종일 술에 취해있었다. 눈물로 할아버지 할머니께 어린 동생들을 유기한 큰형을 일러바치던 그 날은 막냇삼촌을 차마 바라보지 못했다. 내가 큰아버지의 가족조차 뵐 기회는 끝내 오지 않았다. 세 살짜리 어린 동생의 손을 잡고 험난하고 외로운 항해를 해야 했던 어린고래는 얼마나 무서웠을까. 이제야 뒤늦게 아홉 살의 아버지를 가슴으로 깊이 껴안는다. 남은 술을 병째로 봉분에 부어드린다. 오늘은 실컷 드시고 취해도 괜찮다. 봉분에 볼을 대고 가만히 쓸어안는다. 볼에 닿는 잔디가 아버지 수염처럼 깔끄럽다.

2024-11-13

감기조심하세요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한여름 더위가 가을이 지나도록 지속되다가 최근 날씨가 급속히 추워지고 있다. 감기는 바이러스로 인한 것이지만 날이 갑자기 추워지고 인체 면역력이 떨어졌을 때 많이 발병을 하고 전염력이 강해진다. 여름의 더위에 적응된 몸이 서서히 날씨가 추워지면 적응을 할 시간이 있으나 우리나라처럼 갑자기 온도가 떨어지면 인체가 가을의 날씨변화에 빠르게 적응을 하지 못해 면역력이 떨어지고 감기에 걸린다. 인체 면역력이 약해지면 몸이 으쓸 해지면서 콧물이 나는 감기 초기 증상이 보이고 이때 건강 관리가 소흘해지면 그 해 유행하는 바이러스에 따라 감기에 걸린다. 지금도 감기 환자가 전국에 넘쳐나고 후유증으로 고생을 하는 사람도 많다. 감기는 약도 중요 하지만 관리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치료 속도에 차이가 나고 또 후유증으로 고생을 덜한다. 우선은 감기에 걸리지 않기 위해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되는 날씨변화에 맞춰서 옷을 입고 나가야 한다. 덥다고 얇고 짧은 옷을 입고 외출하거나 운동하는 것은 삼가고 이왕이면 약간 두꺼운 옷을 입거나 답답하면 얇은 옷과 점퍼를 겹쳐 온도 변화에 대처를 하는 것이 좋다. 추위에 피부가 노출되는 것은 어떻게든 피하는 것이 좋다. 감기에 걸렸으면 옷은 무조건 따뜻하게 입고 피부를 찬바람에 노출을 시키지 않는 것이 좋다. 음식은 소화가 잘되는 따뜻한 죽을 먹고 고기나 생선 등의 단백질을 섭취하는 것이 좋다. 위장에 부담이 가는 고춧가루가 들어간 맵고 자극적인 음식은 먹지 않는다. 샤워를 하고 나면 꼭 피부에 물기를 완벽히 닦고 몸을 다 덮는 옷을 입는 것이 좋다. 덥다고 얇은 옷을 입고 찬 기운을 피부에 노출시키면 감기가 잘 낫지 않고 후유증이 남는다. 감기를 일주일 안에 해결하지 못하고 한 달 정도 지속하는 경우엔 기침이나 가래 등의 후유증이 낫지 않아 또 몸에 기운이 없고 회복이 안되어 한의원에 내원하기도 한다. 사실 감기는 약이 없고 대증치료를 해야 하는데 약만 믿고 몸 관리와 면역 관리를 소흘히 하게 되면 감기 후 이렇게 골골 거리는 현상이 생긴다. 이럴 땐 몸의 면역을 올리고 보하는 한약을 복용하면 부작용이 빨리 개선되고 몸의 기력이 약해 골골 거리는 증상들도 좋아진다. 계지탕이나 소시호탕 계통의 몸을 따뜻하게 하게 면역을 올리는 처방들은 감기 후유증에 탁월한 효과를 보인다. 기침과 가래가 떨어지지 않으면 배와 꿀 도라지를 적당량 섞어 배가 푹 삭을 정도로 끓여 먹으면 기관지가 건강해지고 불편한 증상이 빨리 개선된다. 계피와 생강을 팔팔 끓여 계피생강차를 만들어 수시로 복용해도 속이 따뜻해지고 피부와 손발의 혈액순환이 좋아진다. 가을과 겨울철엔 수시로 끓여서 복용하면 몸을 따듯하게 유지할 수 있으니 참고해서 차로 끓여 먹으면 좋다. 수면을 취할 땐 보일러를 적당히 올려 새벽에 몸이 차가워지지 않게 방의 온도를 올려놓는 것이 좋고 얇은 이불이라도 덮어 새벽에 온도를 빼앗기지 않아야 한다. 이렇게 다양한 방법으로 내 몸 관리를 한다면 가을 겨울 고생하지 않고 면역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2024-11-13

내방가사의 세계기록유산적 가치

이정옥위덕대 명예교수 세계기록유산(MoW)은 유물이 진품으로서 해당 기록물의 소멸이나 약화가 전 인류 유산을 빈곤하게 만들 정도로 독특하며 대체 불가능한 기록물임을 입증해야 한다. 또 하나의 중요한 가치는 세계사적 중요성이다. 세계적 가치는 시간, 장소, 사람, 대상과 주제, 형태와 양식 측면의 가치를 입증하기를 요구하고 있다. 이 요구 조건 외에 추가적으로 희귀성, 완전성, 위협요소의 유무 및 보존 관리 계획의 기재도 명시하도록 되어 있다. 내방가사는 위의 등재 기준을 충족하고 그 기록유산적 가치를 인정받아 2022년 11월 16일, 세계기록유산 아시아태평양 지역 목록(MoWCAP)에 등재되었다. 내방가사는 종이에 기록된 필사류 원본으로, 개별 문서, 두루마리 또는 선장본(codex)으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두루마리본의 경우 10m가 넘는 기록물을 쉽게 찾아볼 수 있으며, 20m가 넘는 형태의 기록물도 있다. 통일된 유형이 없는 유일본들로, 직접 붓으로 필사한 원본들이다. 내방가사는 1794년부터 1960년대 말까지 여성들이 공동으로 창작하고 낭송하여 기록한 여성들만의 문학 장르이다. 내방가사는 개인에서 집단 창작의 형태로 넘어갈 때 남길 수 있는 다양한 기록물의 형태적 전형성을 모두 확인할 수 있다. 낭송과 필사 등의 재창작 과정을 통해 내용상 유사한 작품들이 다수 존재하지만, 이 역시 내방가사의 가치를 드러내는 중요한 특징이다. 내방가사는 18세기에서 20세기, 남성 중심주의가 주류였던 시대, 여성들이 그들의 주요 문자인 한글을 사용하여 여성들만의 생각과 삶을 주체적으로 표현한 여성 집단 활동의 결과이다. 또한 20세기 동아시아의 압축적인 역사변혁기에 대한 여성들만의 사회적 인식을 그대로 드러낸 작품이다. 더불어 내방가사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창제 원리가 밝혀져 있는 문자인 한글로 기록된 문학 장르이다. 한글로만 창작된 내방가사는 창제된 문자가 한국어의 특징에 맞는 문자로 창작되는 문학 장르가 있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내방가사를 통해 우리는 창제된 문자가 어떠한 활용 단계를 거쳐 한 사회의 공식 문자가 되는지 추적할 수 있다. 내방가사는 여성 개개인의 주체성이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집단적 문학 활동’을 통해 여성들 스스로 글을 읽고 쓸 수 있도록 교육하고, 이를 통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기록’으로 남겼다. 전승의 필요에 따라 입으로 낭송하고, 또 필요에 따라 함께 베끼고 기록하며, 새롭게 내용을 만들어갔던,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집단 창작’의 결과물이다. 어떤 내방가사는 사회와 국가 구성원으로서 그들의 역할과 시대적 사명까지 함께 공유하는 노력을 드러내기도 했다. 내방가사는 한글 서체 미학 관점에서도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낭송, 받아쓰고 베껴 쓰는 과정 등을 반복하면서 지속적으로 필사되었다. 이러한 필사는 여성들의 서체 훈련 과정이기도 했고, 서예사 측면에서 다양한 한글 서체로 발전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이는 여러 종류의 민간 서체 발굴의 가능성을 열어 놓는 동시에, 현재 한글의 사용 폭을 넓히기 위한 폰트 개발이나 새로운 디자인에 활용될 수 있는 원형 콘텐츠로서 가능성도 높다.

2024-11-13

수능 아침 생각

장규열 고문 수능날 아침. 아이들이 십대후반에 거쳐가는 통과의례 앞에 온 나라가 멈춘다. 마음은 기온보다 훨씬 춥다. 수험생은 마음이 떨리고 부모는 가슴이 아프다.‘잘 할 수 있어!’ 응원하지만, 무엇 하나 해줄 수 없는 속마음이 종일 힘들다. 실력만큼 실수없이 치르고 오기만 바랄 뿐. 정겨운 친구들이 차가운 경쟁의 대상이 되어버린 처지가 밉다. 선생님은 제자들의 이 하루가 안타깝고, 가족과 친지들도 아슬아슬하다. 온 나라가 몸살을 앓는다. 영어듣기 시험시간에 항공기 운항까지 멈추는 나라가 있을까. 수능만큼은 누구도 소홀할 수가 없다. 온 나라가 빡빡한 긴장에 빠져든다. 수능의 ‘역할’은 무엇인가. 대학수학능력시험. 수학능력을 시험한다는 데, 기본소양 인증인가 아니면 실제실력 평가인가. 대학입시 앞에 설정된 관문이지만, 실력을 평가해 줄을 세우는 도구로 삼는 일은 너무 낡은 생각이다. 대학공부를 해낼 수 있겠는지 기초적인 소양을 인증하는 정도로 그 기능을 조절해야 하지 않을까. 대학에 들어가는 방법이 이제는 너무나 다양하다. 수능 한 번의 결과로 학생의 진짜 실력을 평가한다는 건 말도 안 된다. 겨울로 들어가는 길목 차가운 아침에 서 있는 수능의 낡은 모습은 유효기간이 지났다. 일 년에 ‘하루’만 치르는 것도 문제가 아닌가. 컨디션이 바닥이라거나 몸이 아픈 건 용납되지 않는다. 위급상황이 발생해도 오늘을 돌아가지 못한다. 깊은 슬픔을 엄청난 비극을 당해도 오늘은 수능이다. 무조건 오늘 치른다. 딱 하루 단 한 번. 거른다면 온통 일 년을 기다려야 한다. 한 해에 딱 하루 한 번만 치러야 한다는 생각은 누가 지어냈을까. 그동안 그래 왔지만 이제는 바꾸어야 한다. 교육 관련 제도를 바라보는 정책적 안목이 왜 그런지 게으르고 느슨하다. 세상은 빛보다 빠르게 바뀌어 가는데 우리 수능은 수십 년째 멈춰 서 있다. 총기넘치는 Z세대 오늘의 십대에게는 일 년에 적어도 몇 차례 기회를 더 주어야 한다. 대학이 성역인가. 고등교육을 위한 준비상태를 살핀다면서 이처럼 불필요한 긴장을 유지할 까닭이 없다. 대학운영과 대학입시에 관한 업무를 과감하게 대학의 자율에 맡겨야 한다. 대학입학을 위한 기본소양을 검정하는 새로운 수능은 일 년에 몇 차례 치를 수 있어야 하며, 학생이 편안하고 유연하게 대할 수 있어야 한다. 실수를 돌아보며 수정해 가는 값진 경험도 귀하지 않을까. 일 년에 딱 하루 로또처럼 만나는 수능은 이제 막을 내리자. 딱 한 번 시험을 잘 쳤던 경험을 평생 붙들고 국민 앞에 무례하게 서 있는 이들을 목격하지 않는가. 정책과 제도는 세대와 시대에 걸맞게 바꾸어야 한다. 수능 아침을 향해 부지런히 달려온 수험생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기울였던 노력과 수고에 보상과 결과가 합당하게 돌아오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꾸준히 실력을 쌓으며 열심히 사는 사람이 끝내 이기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한판의 경쟁’만 떠올리는 건 정상이 아니다. 일등만 대접받는 교육은 부적절하다. 교육은 과정도 결과도 모두에게 뿌듯함과 보람을 안겨주어야 한다. 대입제도와 수능시험, 대학과 대학교육은 오늘에 맞게 변화해야 한다. 교육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2024-11-13

죽음 부른 불법 사금융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20만원 빌려주고 일주일 후 128만원을 갚으라고 했단다. 이쯤 되면 폭리를 넘긴 살인적인 이율이다. 금융 관련 상담센터엔 1140만원을 빌린 영세 자영업자가 58일간 매일 30만원을 갚았던 사례도 접수된 적이 있단다. 이자가 568%였다. 최근 불법 사금융업체로부터 “빌린 돈을 갚으라”는 독촉과 협박을 받다가 이를 견디지 못하고 어린 딸을 남겨둔 채 스스로 세상을 등진 30대 여성의 사례가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실제로 위와 유사한 불법 추심이 우리 주위에서 드물지 않게 일어나고 있다는 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돈을 빌린 사람 사진을 수배 전단지 형태로 만들어 이웃들에게 배포하고, 낮밤을 가리지 않고 하루에도 수십 차례 전화로 협박하고, 채무자 자녀를 살해하겠다 위협하고, 여성 채무자를 유흥업소에 팔아버리겠다고 윽박지르고…. 국세청의 불법 사금융업자 조사에서 드러난 사실은 많은 이들의 혀를 차게 한다. 취업준비생이나 주부가 몇십 만원의 작은 금액을 짧은 기간 대출할 경우엔 2만%가 넘는 이율을 적용한 사금융업체도 있었다니, 이 정도면 그들의 행위 자체를 ‘살인 압박’이라 불러도 틀린 말이 아닐 것 같다. 악질적이며 비인간적이다. 오죽하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을 두고 어머니가 극단적 선택을 했겠는가. 이 소식을 접한 윤석열 대통령은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불법채권 추심 행위는 서민의 삶을 무너뜨리는 악질적인 범죄”라며 엄단을 지시했다고 한다. 서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불법 사금융업자들이 향후 어떤 수사와 처벌을 받게될 지 경찰과 검찰의 행보를 주목하는 국민들이 적지 않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11-13

포항 발전 모체가 된 대흥산과 대흥골

포항에 가장 먼저 사람이 살았을 곳은 어디일까. 궁금해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일단은 이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산명(山名)으로 등장하는 대흥산 기슭과 대흥골을 먼저 꼽고 있다. 이는 중앙동행정복지센터 홈페이지 대흥동 지명유래에서도 일부 내용이 나타난다. “조선시대 칠성강 북서쪽 대흥산 앞에 마을을 형성하여 영일현 북면 대흥리로 불리었다. 1694년경 엔 60-70여 호의 마을을 형성하였으며, 1700년대 초 이 고장의 세곡(稅穀)을 수송·보관하는 포항창(浦港倉)이 설치되면서 부락명이 포항리로 되고, 포항장(1일과 6일)을 형성하였다. 대흥동 영일현 북쪽 우물곡동(雨勿谷洞)에 대흥제(大興提)가 있어 18결의 논에 물을 대었다는 기록이 있는 유래 깊은 명칭이다. 해방 후 택지로 변한 대흥못의 옛 자리는 지금의 용흥동 현대타워 아파트 정문 앞 부근이 된다. 오늘날 대안산·대왕산과 대안곡의 명칭은 대흥산과 대흥곡이 변음된 것이다.” 대흥산과 대흥골은 어디 쯤 될까? 포항시사를 살펴 정리해 보면, 1731년 지금의 용흥동과 대흥동이 포함되는 넓은 지역의 대흥리는 포항리로 개칭되면서 지명이 없어졌다가 1910년 포항동 일부와 용당동 일부를 더해서 용흥리가 만들어졌다. 용당동의 용(龍), 대흥동의 흥(興)을 더하여 용흥리(龍興里)를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1946년 초음정을 개칭하면서 예전 대흥동의 지명이 다시 살아난듯하나 현재 대흥리의 영역은 1731년 이전의 극히 일부만 포함하고 있고, 예전 대흥리 대부분은 현재 용흥동으로 떨어져 나간 것으로 보인다. 대흥동과 용흥동 영역에서 대흥·대왕·대안을 키워드로 검색해 보면, 대흥동에서는 연관성 있는 지명이 없고, 용흥동에서는 용흥우방아파트단지 뒤편 대흥초등학교와 대흥중학교가 나오고, 행정복지센터 앞에서 서북쪽으로 난 골짜기에 대안지와 소류지, 대흥지 체육공원, 대안길(용흥 현대타워 2차 앞-대안지 지나 용흥동 590번지까지 2.4km 정도), 또다른 대안길(용흥동 378-10번지-성안 교회, 200m 정도), 대안길 16번길(참행복한 교회-성안 교회, 220m 정도) 등이 검색되고 있다. 이 일대가 대흥골이 틀림없는 듯하다. 그렇다면 지명 확정시 대흥지 소류지, 대흥지 체육공원, 대흥길, 대흥길 16번 등으로 명명되어야 함이 타당하나 고증이 부족해서인지 반영되지 않았다. 대흥못에 대한 기록을 살펴보면 대흥동 지명유래에 “대흥제(大興提)는 용흥동 현대타워 아파트 정문 앞 부근이 된다.”고 적고 있다. 주민센터에서 서북쪽으로 1.7km 지점에 있는 대안소류지로 표기된 곳과 대흥못은 상관성이 없는 듯하다. 대흥산은 지리서 및 옛 지도에서도 나타난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제23권, 경상도 영일현의 ‘산천’ 조에는 “대흥산(大興山) 현의 북쪽 23리에 있다.”고 적힌 문구가 있다. 조선시대 1리가 449.28m이므로 23리는 10.3km 정도이고, 남성리 영일읍성-칠성천-연일대교-탑산까지가 보행거리 10.3km 쯤 된다. 또한 ‘토산’조에는 “죽전(竹箭) 대흥산에서 난다.”는 부분이 발견된다. 죽전은 대나무 화살을 뜻하는데 대흥산에 이대나 신이대로 불리는 대나무가 많이 난다는 의미로 읽혀진다. 영일현 관할지역에 포항창을 적고, 뒤편에는 흥해 관할 경계지점에 산을 그리고 대흥산으로 적었다. 같은 ‘조선지도’의 흥해군 관할에는 연일과 경계되는 산을 그려 봉림산으로 적고 있다. 또한 ‘광여도(1737-1776년 간행)’ 흥해 관할에도 포항창으로 보이는 ‘浦’자를 쓰고 그 뒤로 산을 그려 봉림산으로 적고 있다. 고산자 김정호가 만든 ‘대동여지도’에는 영일현 관할지역에 浦項을 적고, 뒤편에 흥해 관할 경계지점에 산을 그리고 봉림산으로 적고 있으며, 인터넷 두산백과에는 “옛날 용흥동을 죽림산(竹林山) 아래에 있다 하여 죽림동이라고 하였으며, (중략) 조릿대가 많이 자라고 있는데, 산 정상에는 전몰학도충혼탑이 있다.”고 적고 있다. 박상구 경주대 대학원 특임교수 네이버 지식백과에는 “봉비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는 도심 속의 전통 사찰인 죽림사는 불국사의 말사이며 신라 때 창건되었다고 전해진다.”라고 적혔다.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을 정리해 보면, 영일현의 북쪽 23리에 대흥산이 있고, 산형이 숲에서 서남방을 향해 앉아있는 봉황 형국을 하고 있어서 봉림산으로도 공식적으로 쓰고 부른 듯하다. 한국전쟁 이후에 전몰학도충혼탑을 세운 이후부터는 탑산이 산명으로 자리 잡은 것으로 보이며, 화살대로 쓰는 신이대가 많이 나서 민간에서 죽림산이라 간간이 부른 듯하는데 현재 일부 단체 등은 유래와 어울리지 않게 ‘봉황이 날아오른다’는 봉비산(鳳飛山) 이라는 명칭도 쓰고 있다. 지명은 우리 조상들의 삶의 향취와 멋이 담겨져 있는 문화와 역사의 일부분으로서, 바로 알고 잘 보전해서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소중한 자산이다. 백두대간의 큰 기운을 품은 낙동정맥을 지나 포항의 대표 산줄기인 비학지맥을 거쳐 도음산의 분맥으로 내려온 대흥산은 ‘자연이 베풀어 크게 발전 한다’는 산명처럼 오늘날 포항 형성 발전의 모체가 된 포항 제일의 위계를 차지하는 소중한 지명이다. 따라서 탑산·봉비산·대왕골·대안지 등을 정리하고, 대흥산과 봉림산을 병행사용하며, 대흥골·대흥지 소류지·대흥지 체육공원·대흥길 등으로 지명 회복시키는 일이 포항 문화의 뼈대를 충실하게 만들고 가꾸는 일이다.

2024-11-12

작가 사이를 오갔던 예술적 우정 색깔

우리는 지금 평범한 글쓰기의 시대를 살고 있다. 글쓰기의 기술이 특별한 무언가가 되지 못하면서, 그것은 빛을 잃게 되었다. 물론, 글쓰기가 특별한 특권층의 무엇이었던 다시 그 시대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제는 다시 그 시대로 돌아갈 수 없다. 다만, 빛이 죽어버린 글쓰기를 위해 그것이 우리에게 무엇이었던가 생각해보고 싶은 것 뿐이다. 과거, 진정 특별한 기술이었던 글쓰기는 이제는 누구에게나 가능한 것이 되었다. 대학에서도 아직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고, 글쓰기와 관련된 책들도 존재하고 있지만, 무엇보다 글쓰기를 잘하지 못해서 가슴 태우는 이들이 줄어들었다는 것은 글쓰기의 기술이 평등해지고, 평범해져버렸다는 것을 반증한다. 문해력의 위기 같은 진단도 나오지만, 글쓰기가 테크닉의 문제일 뿐이라면, 지금 한국에 있는 학생들이 조선시대의 어떤 지식인보다 더 뛰어날지도 모른다. 단지 그것으로 무엇을 써내고 표현해야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뿐이다. 사진을 찍어 전달하는 것이 훨씬 빠르지 않은가. 글쓰기의 진정한 불황은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인류가 글쓰기를 토대로 이뤄왔던 모든 가치 있는 것들을 더 이상 글로 볼 필요가 없다는 것에서 도래한다. 이미지로도, 동영상으로도 감정은 전달되지만, 지나칠 만큼 투명한 그것은 전달되는 감정을 지나치게 납작하게 눌러버린다. 애초에 그것뿐이었다면, 우리는 아쉬움을 느낄 리 없다. 사랑을 표현하는 색깔이 본래 한 가지였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하지만, 이미 우리는 사랑을 표현하는 색깔이 한 없이 밝은 것에서, 한 없이 어두운 것까지, 한 없이 가벼운 것부터, 한 없이 진득한 것까지 존재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 기억을 가진 사람이 단 한 가지 사랑의 색깔에 탐탁해 하지 못하는 것이야, 당연할 일 아닌가. 그처럼 한 줄의 문장이 찬연히 빛났던 시대를 기억하는 것 정도는 용서되리라 믿는다. 사실, 지금이야 작가들 사이의 우정 같은 것은 작가의 신화를 구축하는 데 하등 도움을 주지 못하는 요소겠지만, 작가라는 존재가 지금의 연예인 같은 지위를 갖고 있던 시대에 작가들의 삶과 죽음, 그리고 그들 사이에 오고 갔던 우정과 사랑은 현재 아이돌 스타들 사이의 그것을 넘어서는 파급력을 가졌던 시대가 있었다. 지금처럼 모두가 글쓰기의 기술을 습득한 시대에야 철지난 이야기로 웃고 말아 버리겠지만, 한 줄의 문장이 찬연히 빛나는 것처럼 보였던 시대에는 글쓰기의 재능이란 천부의 것처럼 여겨지기도 했었다. 시인 이상이 경영하던 제비다방에서, 소설가 박태원이 찾아와 친구가 되고, 서로 끝없는 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를 당대의 시인 정지용과 이태준에게 소개하고, 이상은 ‘오감도’를 발표한다. 그렇게 연재되던 ‘오감도’가 독자들의 비난에 싸여 중단될 무렵, 박태원이 발표했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 이상은 삽화를 그렸다. 박태원은 이 소설의 말미에 이상을 등장시켰다. 박태원이 그냥 집에 들어가기 싫어 떠올린 한 명의 친구, 하얗고 납작한 찻집을 경영하며 석 달이나 집세를 밀려 내용 증명 우편을 받았던 친구, 그래도 오늘은 술을 사 달라는 박태원의 제안에 두 번 생각하지도 않고 오케이했던 그가 바로 이상이었다. 박태원은 1937년 이상이 죽었을 때, 누구보다도 슬퍼했고, 누구보다도 많은 작품을 통해 그를 기억했다. 이것이 찬연한 글쓰기의 시대, 작가들 사이의 우정이었다. 앞으로 글쓰기라는 기술이 사라질 것인가, 글쓰기는 AI의 전유물이 될 것인가, 하는 우려가 사라지지 않아도, 우정과 죽음, 사랑 같은 기억의 색깔만큼은 기억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송민호 홍익대 교수

2024-11-12

다시 볼 트럼프의 골프 외교

우정구 논설위원 정치가 골프와 닮았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정치 9단으로 통하는 박지원 의원은 “골프와 선거는 고개를 쳐들면 지는 것”이라 말했다. 유권자에게 오만하게 보이면 표를 얻을 수 없다는 뜻이다. 골프처럼 정치는 중독성이 있다는 말도 있다. 실패를 반복해도 끊기가 어려운 게 닮았다는 것이다. 또 힘을 빼야 골프를 잘 칠 수 있는데 정치도 힘을 빼야 유권자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 우리나라 골프 외교의 시작은 이승만 초대 대통령 때부터라고 전해진다. 6·25 전쟁이 끝나고 당시 한국에 주둔하던 미군 장교들이 주말이면 비행기를 타고 일본으로 건너가 골프를 친다는 사실을 안 이 대통령이 서울에 골프장 건설을 허용한 것을 두고 외교적 발생으로 해석한 것이다. 이후 1990년 YS(김영삼)와 JP(김종필)가 골프장 회동 후 민주·공화 두 당의 통합을 발표하면서 골프장은 수시로 정치의 주요 무대로 등장한다. 골프가 정치의 연장선이라는 말까지 생겨난 것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골프광이라 불릴 만큼 골프 애호가다. 트럼프 1기 임기 4년 동안 골프장 방문횟수가 300번을 넘는다고 한다. 주말이면 거의 빠짐없이 골프장을 찾았다. 라운딩에는 각료와 상하의원은 물론 타이거 우즈와 같은 골프 스타들도 자주 회동했다. 일본의 전 총리 아베 신조는 트럼프의 골프 사랑을 잘 알고 황금 골프채를 선물로 전달하고 다섯차례나 라운딩을 같이해 골프 외교의 성공 모델로 회자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트럼프와의 만남을 염두에 두고 골프 연습에 나섰다는 보도가 나왔다. 트럼프의 골프 외교가 또 한 번 세계적 화제를 모을 전망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4-11-12

‘의료위기 해소’가 성탄선물 될 수 있을까

심충택 논설위원 의정 갈등의 출구를 열 ‘여야의정 협의체’가 그저께(11일) 출범했다. 첫 회의에선 사직 전공의들의 군입대 문제와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등이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협의체는 크리스마스 전까지 성과를 내는 것을 목표로 주 2회 회의를 열고, 의료계 요청 사항인 사직 전공의 복귀와 의평원 자율성 보장 방안을 논의하기로 했다. 협의체 멤버는 일단 야당과 전공의 등을 제외한 여당·일부의료계·정부 대표 참여만으로 스타트했다. 정부에선 한덕수 국무총리, 성태윤 대통령정책실장, 이주호 교육부 장관, 조규홍 복지부 장관이 참여했다. 의대증원 정책을 사실상 주도한 장상윤 대통령실 비서관과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은 의료계와의 마찰을 고려해 멤버에서 제외했다. 여당에선 김성원(여당측 대표)·이만희·한지아 의원이 참여했다. 첫 회의에는 협의체 구성을 처음 제안했던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와 김상훈 정책위의장도 참석했다. 민주당은 ‘전공의·의대생 불참’을 이유로 참여하지 않았다. 의료계에선 한국의대·의학전문대학원협의회와 대한의학회만 참여했다. 다만 ‘초강경파’로 불렸던 임현택 대한의사협회 회장이 최근 불신임당함으로써, 의협이 비대위체제로 전환된 것이 변수가 되고 있다. 의료계에선 의협 새 지도부가 꾸려지면 협의체에 참여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의정 갈등 해소의 실마리를 쥔 전공의들의 참여 가능성은 현재로선 높지 않다. 전공의들은 2025학년도 의대정원 의제도 협상테이블에 올려야 협의체에 참여할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김교웅 의협 대의원회 의장은 “새 비대위에 전공의를 많이 참여시키고 이들의 의견을 반영해 협의체 참석 여부를 정할 것”이라고 했다. 의협은 의정 갈등 상황을 감안해 오늘(13일) 선출되는 비대위원장이 차기 회장에 출마할 수 있도록 했다. 전공의, 의대생과 소통이 가능한 비대위원장이 차기 회장이 되는 길을 열어둔 것이다. 협의체에서는 전공의들이 복귀하려면 명분이 필요한데, 어떤 명분을 도출할 수 있을지 깊이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첫 회의에서 한덕수 총리는 “정부는 열린 마음과 자세로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1·7 회견’에서 내년 정원은 조정할 수 없고, 2026학년도 정원논의는 가능하다고 못을 박았다. 2025학년도 정원문제를 의제로 다루어야 한다는 전공의들에게 정부가 어떤 참여 명분을 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의료시스템 붕괴위기는 정부가 의료계 목소리를 충분히 듣지 않고 서둘러 의대증원을 추진한 탓이 크다. 특히 의료개혁 추진과정에서 의사들을 마치 적(敵)대하듯 한 일부 공무원들의 태도는 비판받아 마땅하고, 그 책임도 물어야 한다. 의료개혁도 마찬가지지만 4대 개혁 하나하나는 반드시 피해집단이 있기 때문에, 사회적 합의를 거치지 않고 일방적으로 추진하면 저항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이제 여야의정 협의체가 의정갈등 수습책임을 진 만큼, 본격적인 추위가 오기 전에 위기를 해소할 수 있는 해법이 나오길 바란다.

2024-11-12

기술혁신과 기업 경쟁력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기업의 기술혁신은 기업 경쟁력 강화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기술 혁신을 통해 기업은 제품과 서비스의 품질을 높이고 비용을 절감하며, 새로운 시장에 진출하는 기회를 만들 수 있다. 경쟁 우위를 선점하는 기술 혁신은 기업이 시장 내에서 차별화를 꾀하고 빠르게 변하는 시장 환경에 유연하게 대응하게 한다. 기술 혁신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첫째는 비용 절감과 효율성이다. 생산 공정 개선을 통해 비용이 절감되고 생산 효율성을 높여 수익성을 기대할 수 있다. 둘째, 제품 및 서비스 개선이다. 혁신적인 기술이 적용된 제품과 서비스는 고객의 요구에 더 잘 부합하고 고객 만족도를 높이며, 시장에서의 경쟁 우위를 확보한다. 셋째, 새로운 시장 및 고객 창출이다. 혁신적인 기술은 기존 제품의 한계를 넘어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IT, 바이오, 전자상거래와 같은 빠르게 성장하는 산업에서 두드러진다. 넷째, 기업 이미지 및 브랜드 강화이다. 혁신적인 기업은 대중에게 긍정적인 이미지로 인식될 가능성이 높아 브랜드 가치 상승 및 신뢰도를 향상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기술 혁신이 성공하기 위해 중요한 것은 적극적인 연구개발(RD) 투자다. 지속적인 RD 투자는 기업이 최신 기술을 개발하고 시장 트렌드를 선도하는 데 필수적이다. 또한 기술적 리더십과 전문가 육성이다. 기업 내부에 전문성을 갖춘 기술 인재를 육성하고 유지하는 것은 기술혁신의 기반이 된다. 그리고 혁신의 최종 목표는 고객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므로 고객의 요구와 기대에 부합하는 기술혁신이 필요하다. 단독으로 기술혁신을 추구하기 보다는 기업연구소, 대학과 협력을 통해 혁신 속도를 높이고 시너지를 발휘하는 것이 유리하고, 급변하는 기술 환경에 유연하고 창의적인 조직문화가 텃밭이 된다. 중소기업이 밀집한 인천 남동공단에 감속기를 생산하고 있는 대화감속기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성장 일환으로 P사의 혁신 지원을 받았다. 감속기 중견기업에서 독립한 직원 30여 명 수준이지만 감속기 기술력은 기업연구소와 공동 연구하는 등 높은 수준에 있다. 필자는 대화감속기 진단을 하고 생산 라인 최적화에 초점을 두었다. 공장 자재 놓을 곳이 없어 새로 창고를 건축 할 예정이었지만 중단시키고 정리 정돈부터 시작했다. 모든 자재 품목은 수량 관리 개념을 도입하고 관리체계화를 정립하고 생산 라인은 강물이 흐르듯 흐름화 하여 생산 효율성을 높였다. 공장 생산흐름화가 완성되어 갈 때 당진 소재 H사의 기술진이 방문했다. 감속기 기술 수준과 생산 과정을 보고 100억 수주를 하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최적화 된 생산 프로세스와 전 직원 개선하는 문화를 보고 신뢰를 얻어 대기업 H사가 통 큰 수주를 한 것이다. 기업에서 기술 혁신과 생산 프로세스 최적화는 기업 경쟁력에 중요한 요소다. 자사의 기술력은 제품의 신뢰성을 갖게 되고, 양품을 만드는 생산 프로세스와 지속적인 개선 문화는 고객을 움직이게 하여 큰 수주로 연결 되는 것이다. 제품 수주는 회사의 규모보다 기술력과 생산과정의 신뢰성에 따라 달라진다.

2024-11-12

마음의 숨결 같은 시 낭송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늦가을이면서 초겨울인 11월. 가을의 끝자락이 비로소 겨울로 치닫는 ‘미틈달’이다. 어중간하다 해야 할까, 머뭇거린다고 해야 할까, 보내기 싫은 사람처럼 아직은 잡고 싶은 가을이고, 선뜻 맞이하기엔 이르고 낯선 계절이 서로 밀고 당기는 듯하다. 산자락엔 아직도 초록의 잎새들이 진을 치며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지만, 산마루에서 하루가 다르게 번져오는 꽃불의 위세(?)에 잔뜩 긴장하는지도 모른다. 조락(凋落)의 초목이 무언의 곡조를 타며 장고(長考)에 들어가고, 새들은 비껴서 날아오르며 음표를 그리는 듯하니, 보이고 들리며 느껴지는 것들이 어쩌면 모두 시(詩)의 결이고 여울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율곡선생은 ‘숲 속 정자에 가을이 깊으니/시인의 생각은 한이 없어라(林亭秋已晩 騷客意無窮)’고 읊었던가. 시의 날(11월 1일)로 시작된 11월이 시의 향기 속에 나날이 깊이와 울림을 더해 가고 있다. 11월 들어서 시를 읽고 노래하며 시낭송을 즐기는 행사가 유난히 많아졌다. 서울에서는 제37회 ‘시의 날’을 맞아 ‘광화문에서 시를 노래하다’를 주제로 시낭송과 무용, 시집·시 카드 배부 등 푸짐한 시 나눔 행사가 다채롭게 열렸고, 부산에서는 이번 주말 전국 시낭송대회가 대대적으로 개최될 예정이다. 또한 전국 각지에서도 크고 작은 시낭송 콘서트가 다양하고 풍성하게 열리고 있다. 시를 단순히 읽고 감상하는 것에서 나아가 시의 의미와 여운을 목소리의 음색과 영상·음향효과로 표현하는 시낭송이 시민들의 호응을 받으며 점차 확산되고 있는 추세다. 포항지역에서도 예외 없이 시낭송 콘서트와 보기 드문 시조창 발표회까지 열리게 돼서 한결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사)대한시조협회 포항시지회가 주최·주관하는 제6회 시조창 발표회는 회원들이 평소 갈고 닦은 시조창 솜씨를 시민들에게 선보이는 자리로, 20여명의 회원들이 장구와 대금의 반주에 맞춰 평시조·우시조·각시조·남창질음·여창질음·엮음질음·시창 등 우리 고유의 정가(正歌)를 독창 또는 합창으로 부르면서 깊어 가는 가을밤을 구성지게 수놓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포항시낭송가협회와 맥시조문학회가 콜라보로 마련하는 ‘詩가 되어 밀려오는 삶의 바다’ 시낭송 콘서트는, 바다와 어촌 주제의 맥시조 회원의 창작시조를 시낭송과 시창, 시극으로 다양하게 각색, 연출될 것으로 보여져 시낭송의 매력을 더할 것으로 여겨진다. 특히 이번 시낭송 콘서트에는 맥시조 회원 3~4명도 출연하여 시낭송을 함께 하고, 또한 공연장 입구에서는 맥시조 회원들이 지난 여름날 손수 그리고 쓴 시화작품도 반짝 전시될 예정이라서 한결 이색적이고 푸짐한 시 나눔 마당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활자로 된 시나 시조를 목소리의 예술로 표현하고 노래로 부르는 것은 시의 근원적 본질이자 전통인 노래성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시와 시조의 운율 속에 내재된 음악성을 바탕으로 목소리의 리듬과 고저강약의 장단을 맞춰서 유창하게 낭송하고 시조창으로 부를 때, 시적인 감흥과 생명력이 살아나 낭송효과가 극대화될 것이다. 항상 열려 있고 오래도록 들을 수 있는 귀를 통해 마음의 숨결 같은 시낭송으로 시의 묘미를 흠뻑 느껴보면 어떨까.

2024-11-12

K-문학의 시대, 문학방언의 번역 과제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시와 소설 등 문학예술은 언어를 매체로 하는 예술이다. 한국문학은 한국어가 중심 매체로 되어 있다. 그런데 한국어에는 공통어인 표준어가 있지만 여러 지역과 사회계급에 따른 방언도 있다. 모든 한국인의 소통에 기준이 되는 표준어가 사실 인공적으로 정한 언어이기 때문에 한국인에게는 대칭적인 자연언어인 방언이 상호보완적 관계를 맺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중 어떤 언어가 우리 문학의 매체로 되어야 할까? 현대문학에 있어서는 두말 할 것도 없이 공통어가 문학 용어로 사용된다. 가끔 문학적 효용을 위해 방언으로 된 문학 작품이 발표되기도 하지만 매우 큰 제약을 받고 있다. 등장인물의 성격을 드러낼 필요가 있는 경우 대화체에서 방언 화자의 생경하고 자연스러운 방언을 노출하지만 방언으로 된 작품은 근본적으로 제약을 받고 있다. 예를 들면 제주도에서 간행된 그곳 출신 유명한 작가의 작품도 공통어 일색이다. 소설 등의 인용 대화문에서만 때로 방언이 나타날 뿐이다. 교육과 매스컴의 영향으로 전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공통어가 크게 보급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하여 공통어가 덜 보급된 시기의 문학 작품, 곧 고전 문학의 경우에는 방언을 매체로 한 작품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 지방에서 간행된 한글고소설, 내방가사, 시조 등을 살펴보면 동 시기의 작품에서는 대체로 공통어와 방언이 뒤섞인 경우가 적지 않다. 비록 지방문학으로서의 고전에서도 공통어로 되어 있다. 사실 공통어는 본시 방언의 혼입이다. 가령 가사 문학의 두 대가인 전라도 출신의 송강과 경상도 출신의 노계는 각각 전라·경상 방언을 말하는 지방 출신이지만, 그들의 작품에서 구개음화 등 약간의 방언형을 제외하고는 그들 지역방언을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전남 해남 출산의 고산의 시조 작품에서도 마찬가지다. 이에 우리는 고전문학에 있어서도 공통어가 매체로 되어 있음을 확인한다. 문학어로서 공통어와 더불어 선별적으로 방언을 함께 권장하는 근본적 이유는 고유어의 샘물이 마르지 않게 한국어의 생태 환경을 보다 풍요롭게 만들기 위해서이다. 과거와 현재의 문인들에게 공통어와 방언을 지켜내고 풍부화시킨 그들의 공로를 우리는 크게 찬양하여야 할 것이다. 민요와 설화 등 구비문학에 있어서 그 지방의 방언이 그대로 매체가 된 김영돈의 ‘제주도 민요연구’(1965)에 “방엔 보난 굴묵낭 방에 절권 보난 도에낭 절귀방아는 보니 느티나무 방아 절굿공이”와 같이 제주방언으로 노래한 작품이 많다. 완판본 ‘열녀춘향수절가’는 당연히 전라 방언으로 구사되어 있다. 특히 채록을 통한 구비문학 연구가 70년대 이후 활발하게 진행되면서 지방의 방언 구어들이 민요나 설화 전설에 대량으로 기록유산으로 전해온다. 이균옥(1998)의 ‘동해안 별신굿’은 동해안을 따라 강릉에서 부산 다대포까지 내려오면서 각종 별신굿의 연희 내용을 채록한 기록문학이다. “우리 영감 디베졌십더/영감 디비졌다꼬?/예 진찰 좀 해주이소/어/우리영감 좀 살려주이소/오 긇나/예, 예”에서처럼 경상도 사투리 구연 그대로를 채록한 무가 자료는 마치 곁에서 말하는 듯하다. 이재욱(1930)이 채록한 ‘영남전래민요집’의 상주지방 ‘모숨기소리’에서는 “상주 함창 공갈 못에/연밥 따는 저 큰 애기/연꽃은 따지 말고/이내 품에 잠을 자세/잠자기는 어렵잔에도/연밥 따기 늦여간다/머리 조코 잘난 쳐자/울 뽕남게 거란잔네”라는 지방 민요의 맛깔을 돋우는 것이 바로 방언의 기능이다. 따라서 문학 작가들을 일컬어 언어의 창조자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무엇보다도 한 개별언어의 생태적 조건은 새로운 대상을 상징하는 다양한 조어능력을 갖는 일이다. 만일 새로운 단어의 조성 능력이 단절되면 그 언어는 사라지거나 혹은 변질되어 변종으로 바뀌게 된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본격적인 K-문학의 세계화를 위한 한국고전문학의 번역 문제는 꽤 심각한 문제이다. 한국의 전통 문화의 정수가 담긴 ‘모숨기노래’와 같은 민요나‘열녀춘향수절가’와 같은 판소리를 어떻게 다국적 언어로 번역할 것인가? 방언으로 된 한국고전을 한국어 공통어로 번역한다면 우선 그 문학의 토착적 배경이 모두 무너져 버릴 터인데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외국어로의 번역은 더욱 난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앞으로 방언문학의 번역 문제에 대한 전문가들의 관심과 연구가 매우 긴요한 과제이다. 세계문학으로 진출하기 위한 크나큰 문턱이 가로막고 있다.

2024-11-11

고색창연함과 화려함, 세련됨에 숨이 찼던 하루

10월 5일은 오후부터 조선학회의 발표가 시작되지만, 저는 나라 관광을 좀 더 하기로 했습니다. 나라(奈良)의 그 많은 관광지를 남겨두고는 학회의 발표가 귀에 들어올 거 같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일본에서 최초로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호류지(法隆寺)였습니다. 14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호류지는 무려 200개 가까운 국보와 중요문화재를 가지고 있는 일본의 대표사찰이죠. 호류지의 금당, 오중탑, 중문 등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이기도 한데요. 전날 야쿠시지의 동탑과 금당 등을 보고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왔다면, 호류지의 오중탑과 금당을 보았을 때는 그 고색창연함으로 인해 말문이 막히고 말았습니다. 호류지가 저를 잡아끈 이유는 고대 한반도와의 관련성 때문입니다. 이곳에는 명칭에 ‘백제’가 들어가 있는 백제관음상과 한떄 고구려 승려 담징이 그렸다고 알려졌던 금당 벽화가 있는데요. 다행히 백제관음은 일반에 공개되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반론도 많지만, 백제관음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에는 분명 백제관음상이 “백제에서 온 것”이라고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설령 백제관음상이 ‘백제계 도래인이 만든 것’이거나, ‘백제의 것처럼 아름다운 것’이라는 의미더라도, 이 불상이 한반도와 갚은 관련을 맺고 있다는 사실만은 변함이 없을 겁니다. 호류지의 오중탑. 오랜 세월의 흔적으로 검게 변해 있는, 높이 2미터의 백제관음을 보자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났습니다. 일본에서 보아온 불상과는 너무도 다른 분위기의 백제관음상은 한반도에서 일본열도로 간 수많은 선조들의 기대와 슬픔을 모두 품어 안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던 겁니다. 저는 고구려 승려 담징의 흔적도 찾아보려 백방으로 뛰어다녔지만, 어디서도 그 발자취를 찾을 수는 없었습니다. 감정을 추스르고 절을 나와 지도앱를 보았을 때 근처에 고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10분 정도를 걸어서 도착한 후지노키 고분은 전날에 본 전방후원분과는 달리 우리에게도 익숙한 원분이었습니다. 이 고분에서는 금동제 왕관이나 신발 등이 출토되었다고 하는데요. 이 곳에서 나온 유물 역시 한반도와의 관련성을 드러내는 것들이라고 합니다. 제 머리 속에서는 전날에 이어 계속 고대 한반도와 일본열도의 관계에 대한 상상의 날개가 한껏 펼치지고 있었습니다. 이후에는 전철을 타고 나라의 대표적인 관광지이자 사슴이 많기로 유명한 나라공원으로 향했는데요. 처음 간 곳은 연못에 비치는 높이 50미터의 오중탑으로 널리 알려진 고후쿠지(興福寺)였습니다. 안타깝게도 오중탑은 수리중이어서, 탑도 그 그림자도 볼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30개가 넘는 국보와 중요문화재를 전시하고 있는 국보관이 저의 아쉬움을 달래 주었습니다. 그 많은 보물 중에서도 아수라입상(阿修羅立像)과 용등귀입상(龍燈鬼立像)은 참으로 인상적이었는데요. 8세기 전반에 만들었다는 아수라상은, 아름다운 서양 여성의 모습으로서, 21세기 헐리우드 영화에 출연해도 어색하지 않을 거 같았습니다. 13세기 초에 제작된 용등귀입상은 악귀가 등롱을 머리에 이고 있는 모습이었는데요, 한껏 폼을 잡고 있지만 훈도시(일본의 남성 속옷) 차림의 악귀는 아무리 보아도 무섭다기보다는 익살스럽게 느껴졌습니다. 그동안 한국에서 자애로운 모습의 불상만 보아온 저에게는 모두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다음으로 들른 도다이지(東大寺)에서는 우리에게 익숙한 ‘축소 지향의 일본인’이라는 명제를 잠시 잊어야 할 거 같았습니다. 일단 절의 면적부터 야구장 50개가 들어갈 만큼 어마어마하게 넓었고, 주불로 모셔진 비로자나불은 손바닥 크기 하나가 2.5미터에 이를 정도였으며, 그 불상을 모신 대불전 역시 세계에서 가장 큰 목조건물이었으니까요. 이 절은 크기로 승부를 보겠다는 듯이, 절의 정문인 남문도 높이 25미터가 넘는 일본 최대의 산문(山門)이었습니다. 이후에는 이수이엔(依水園)이라는 정원에 갔는데요, 이 곳은 에도 시대에 만들어진 전원(前園)과 메이지 시대에 만들어진 후원(後園)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전형적인 지천회유식(池泉回遊式) 정원으로서, 연못 주위를 거닐며 즐기는 양식이었는데요. 인상적이었던 것은 도다이지 남문이나 와카쿠사산 같은 주변 풍경을 정원 경관의 하나로 끌어온 차경(借景)이 매우 빼어났다는 점입니다. 일본의 어디를 가나 외국인 관광객이 많고, 그 중에서도 나라(奈良)에는 더 많았지만, 그 나라(奈良)에서도 이수이엔에는 정말로 많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자, 어쩌면 세계공용어는 영어가 아니라 아름다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경재 숭실대 교수 이수이엔을 나왔을 때는, 아직 햇빛이 뜨거운 오후 4시였는데요. 그런데도 저는 큰 전투라도 치른 군인처럼 무척이나 지쳐 있었습니다. 호류지의 고색창연함과, 고후쿠지의 화려함과, 도다이지의 거대함과, 이수이엔의 세련됨에 아마도 몹시나 숨이 찼던 모양입니다. 잠시 앉아서 쉬기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기적처럼 조선 백자가 그려진 미술관의 포스터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수이엔 바로 옆에 있는 네이라쿠(寧樂)미술관의 포스터였는데요. 이 미술관은 한중일의 고미술품 수천점이 수집돼 있는 것으로 유명한 곳이었습니다. 저는 구원이라도 얻은 양, 급하게 그곳으로 가 우리의 도자기들을 찾았는데요. 그제서야 비로소 저는 고국에 있는 지인들처럼 반가운 청자와 백자의 우아함과 담백함과 영롱함과 투명함 속에서, 편안한 숨을 쉴 수 있었습니다.

2024-11-11

좋은 보컬과 좋은 사회 구성원

며칠 전, 친구가 직장인 밴드 공연을 한다며 초대를 해 주어 응원을 하러 다녀왔다. 친구는 대학시절 동아리 활동을 함께 했던 친구들과 함께 졸업 이후에도 인연을 이어가며 즐겁게 음악생활을 해 나가고 있었다. 많은 밴드 동호회가 그러하듯 밴드의 멤버는 고정되어 있지 않았다. 여러 명의 보컬리스트들이 번갈아 노래를 부르고 또 여러 연주자들이 교대하며 다채로운 구성으로 다양한 음악을 들려주었다. 내가 평소 일을 하며 보게 되는 프로연주자들의 무대와 비교하자면 약간의 인간미가 느껴지는 부분들도 있었지만 취미생활임에도 불구하고 개개인이 많은 노력을 해왔고 그들이 오랫동안 끈끈하게 합을 맞추었다는 것을 짐작케 하는 부분도 있어서 흥미롭게 구경을 잘 하고 왔다. 아무래도 공연을 할 때 내 포지션이 보컬리스트이다보니 무대에 오르는 여러 보컬리스트들에게 좀 더 많은 관심이 갔던 것이 사실이다. 가장 크게 다가온 부분은 역시 우리나라에 노래 잘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무대에 올랐던 보컬리스트들 모두 수준급의 실력을 뽐내 주었다. 악기연주자는 악기를 구매해서 숙련의 과정을 어느 정도 거치지 않으면 밴드에 참여할 수 없지만 노래는 사실 아무나 다 부를 줄 안다. 그 사람들 중에서 밴드의 보컬을 하겠다고 나설 수 있으려면 동호인 사회라 할지라도 어느 정도의 역량은 갖추어야 할 테니 가창력 면에서 특별한 부족함을 느끼지는 못했다. 그런데 무대를 보면서 두 가지 의문점이 들었다. 하나는 비슷비슷한 수준의 가창력을 가진 그 보컬들 중에서도 눈과 귀를 더 사로잡는 구성원이 있었는데 그 차이는 어느 지점에서 발생하는가 하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어떤 프로들과 비교하자면 나을 수도 있는 가창력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그들을 동호인처럼 보이게 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그것의 실체가 무엇일까 하는 것이었다. 무대를 한참 지켜보다가 공연이 끝날 무렵쯤 나는 그것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었다. 어떠한 역할을 잘 수행해내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그 역할에 대해 고민한다. 좋은 보컬리스트가 되기 위해서는 좋은 보컬리스트가 무엇인지 깊이 고민을 해 봐야 하는 것이다. 보컬리스트는 물론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기 때문에 노래를 잘 불러야 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그게 전부라고 볼 수는 없다. 대부분의 밴드에서 보컬리스트는 한복판에서 무대 전체를 이끌고 나가는 프론트맨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노래를 잘 부르는 것과 함께 내가 어떤 무대를 만들 것인지 상을 그려내는 능력도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서 동작과 시선, 멘트, 호흡까지 하나하나 디자인해나가는 능력도 필요하다. 그날 무대 위에서 가장 빛났던 보컬리스트가 한 명 있었는데 그 분이 다른 분들에 비해 훌륭하게 보였던 점은 이러한 프론트맨으로서의 역할을 고민했던 흔적이 역력했기 때문이었다. 프로 보컬리스트와 아마추어 보컬리스트가 다르게 보이는 상황도 그 역할에 대한 고민이 있고 없고의 차이로부터 발생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강백수 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 우리 모두 사회에서 밴드의 멤버들처럼 저마다의 포지션을 하나씩 점유하고 각자의 역할을 하며 살아간다. 앞서 이야기 한 역할에 대한 고민은 사회에서 자신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전문직 종사자들도 자신의 전문영역에서의 기술적인 역량과 동시에 자신이 속한 조직이나 수행하고 있는 프로젝트 전반에 대한 이해를 갖추어야 하고 그 안에서 기술적인 것 외에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다양한 부분들에 대해서 고민해야 한다. 축구 경기를 뛰는 스트라이커는 골을 넣는 사람이지만 슛을 차는 것 외에도 다양한 움직임에 대해 고민해야 하고, 야구장의 4번타자도 홈런을 치는 일만 고민할 것이 아니라 작전을 수행하고 공수교대 이후에는 수비를 견고히 하는 일까지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좀 더 발전시키자면 직업적인 것 외에도 개개인이 맡고 있는 다양한 역할에 적용시킬 수 있는 생각이다. 사회의 가장 작은 단위인 가정에서 나의 역할은 아빠다. 돈 잘 벌고 아이가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도 아빠의 역할이겠지만, 아이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며 그 성장을 지켜보는 것이나 아이에게 정서적인 버팀목이 되어주는 것, 그리고 엄마에게 좋은 남편이 되어주는 것까지 모두 고민해야 진정으로 좋은 아빠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좋은 아들도, 좋은 친구도, 좋은 선후배도 모두 그런 고민 이후에 될 수 있는 것이리라. 뜨거운 조명 아래서 오랫동안 열심히 준비해준 공연을 훌륭하게 보여준 직장인 밴드 ‘씨즌’ 멤버들과 내 친구 하헌재 덕분에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해 보게 되었다.

2024-11-11

그곳에 있다는 믿음으로

만화 ‘원피스’는 오다 에이치로가 1997년부터 연재 중인 만화다. 세계 제일의 보물이라고 일컬어지는 원피스를 찾아 떠나는 이야기로 주인공인 루피와 그가 이끄는 밀짚모자 해적단의 모험을 그린다. 작품의 제목이자 주인공을 추동하는 보물이 무엇인가에 관한 의견 또한 분분했는데, 혹자는 동료들과의 우정, 꿈과 열정같이 추상적인 개념으로 추측하기도 했다. 그러나 작가는 자신의 목소리로 직접 ‘원피스는 실체가 있는 무언가’라고 일축하며 독자의 기대감을 고조시켰다. 해적왕 로저가 찾아낸 보물, 원피스의 정확한 형태는 알 수 없지만 그것의 성격에 관해서는 이야기를 통해 조금씩 드러나고 있는데, 해적왕이 원피스의 정체를 알고 폭소하였다는 것과 보물을 남긴 자가 ‘Joy Boy’라고 불린다는 것, “이 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운 사람이 해적왕이야!”라는 대사 등을 미루어 보아 생각보다 가볍고 단순한 것이지 않을까 하는 것이 개인적인 추측이다. 나아가 작가는 최근 만화가 최종장에 진입했다고 발표하였으니, 모험의 대장정이 곧 끝날 것이라는 아쉬움과 설렘으로 연재를 지켜보고 있는 독자들이 많을 것으로 안다. 거기에는 나도 포함이다. 어린 시절부터 집 앞의 만화방에 들락거리며 “아저씨, 원피스 최신 권 나왔어요?” 하고 묻던 발랄한 꼬마가 어느덧 삼십 대가 되었다. 당시 만화 한 권을 빌리는 값이 삼백 원쯤 되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일주일에 천 원씩의 용돈을 받던 나는 한 시간 분량의 유희에 내가 가진 모든 돈을 투자하는 것에 거침없었다. 만화를 읽고 있노라면 나의 마음 깊은 곳에서 무언가 타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그것은 아마 소년 만화가 건네는 특유의 힘이 아니었을까 싶다. 따지고 보면 ‘원피스’는 내 안의 의협심과 투지를 만들어 준 원료였던 셈이다. 처음 이 만화를 접했을 때 어떤 감정이었나 생각해 보면, 주인공인 루피가 해적왕이 되는 것에 성공하느냐 마느냐는 그렇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가 바다로 나가 동료를 모으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과정을 들여다보는 것 자체에 흥미를 가졌으니. 여러 섬에 정박하며 많은 문제에 봉착하고 그것을 그만의 방식으로 해결해 나가는 것에 일종의 해방감을 느꼈다. 어느 순간 나는 이불 속에 누워 만화를 읽는 행위를 멈춰야만 했다. 더 중요한 일이 생긴 것이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관계를 맺어야 했고 대학에 가야 했으며 먹고 살기 위해 돈을 벌어야 했다. 그동안 루피는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고 새로운 동료를 찾았으며 많은 적을 물리쳤고 여러 존재에게 도움을 주었다. 단 하나의 꿈.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항해를 계속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사실을 놀라워해서는 안 된다. 루피가 첫 출항을 했을 때의 나이가 열일곱이고 작중 나이가 열아홉이니 그는 그 안에서 여전한 청춘이다. 현실은 흘러가지만 이야기는 계속해서 같은 자리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밀짚모자 해적단을 보고 있노라면 언제든 만화방으로 향하는 꼬마의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다. 그 사실을 실감한 순간 나는 꽤 대단한 세상의 진실을 손에 넣은 듯 우쭐해졌다. 그러니까 ‘원피스’가 어떠한 형태를 지녔든 그것은 결국 하나의 상징일 수밖에 없다. 젊음, 낭만이나 꿈, 열정과 같은 개념. 그저 아름답게만 들리는 이러한 상태는 영원히 지속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지난한 일상의 대척점에 놓여 있다. 열정은 사그라지고 모험은 끝을 맺어야 한다. 종결 또한 삶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우리는 알고 있다. 이야기가 전개되는 한 그 안에서 유지되고 있는 불씨는 꺼지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삶의 내부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밖에 없고 한 가지 인생밖에 경험할 수 없다. 언제나 가능성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런 면에서 보물을 찾는 자의 모험을 바라본다는 것은 또 다른 체험의 방식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보물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언제나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보물은 숨겨져 있을 때 진정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보물의 또 다른 말은 희망이다. 그것은 우리를 끝내 앞으로 나아가게 만든다. 그것을 찾는 여정이 쉽지 않다는 것을, 결국 막을 내릴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글을 쓰는 내내 당연한 사실을 떠올렸다. 우리는 아직 ‘원피스’가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한다는 것. 그러니 마음껏 추측하고 상상할 수 있다는 것. 이런 사실을 떠올리면 지루한 일상도 자못 유쾌해진다. 기쁜 마음으로 기다리게 된다. 보물이 그곳에 있다는 믿음으로.

2024-11-11

트럼프의 ‘전화 정치’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미국은 군사 부문과 경제 분야에서 부정할 수 없는 지구 위 최강대국이다. 세계의 ‘경찰국가’를 자처하는 나라의 차기 대통령이 선출됐다. 도널드 트럼프. 그가 통치했던 몇 해 전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무엇보다 미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극단적 자국이기주의, 가난한 국가에서 미국으로 들어온 이민자에 대한 배척, 사업가 출신다운 발 빠른 물질적 계산을 통한 국가간 질서 개편 등이 트럼프가 지향해온 정치 스타일이다. 향후 4년도 이런 추세가 바뀔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앞서의 언급처럼 세계의 경찰국가라 불리는 미국의 권력자로 확정됐으니, 트럼프는 여러 나라의 국가원수들로부터 축하를 받고 있다. 미우나 고우나 지구 위 가장 힘센 통치권자를 백안시할 수는 없는 법이니 이미 70개 국 정상이 트럼프에게 전화를 했다. 대통령 선거운동 과정에서 트럼프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을 빠른 시일 안에 끝내겠다고 호언장담해 왔다. 그래서일 것이다. 선거 결과가 나온 직후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게 전화를 건 트럼프는 “더 이상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을 확산시키지 말라”고 주문했다. 그러나, 지난 주말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최대 규모의 드론 전투가 벌어졌다. 트럼프의 말이 아직은 약발을 받지 않고 있는 듯하다. 10일 독일 올라프 숄츠 총리와 통화한 트럼프는 “유럽의 평화 회복을 위해 함께 노력하자”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발표된 통화 내용은 두루뭉술하고 구체적이지 못하다. 아직은 당선자 신분이니 그럴 수 있다. 향후 정식 취임 이후엔 트럼프의 ‘전화 정치’가 얼마만한 힘으로 세계질서를 재편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11-11

나의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 지난 주말 서울은 무척 시끄러웠다. 생각을 달리하는 두 ‘집단’이 각기 거의 같은 시간에 시내에 집결했다. 모인 사람들 수가 몇 만 단위를 넘었다고들 주장된다. 당분간 이런 시절이 계속될지도 모르겠다. 미리부터 나 자신에게 다짐을 해 둔다. 이번에는 어디에도 ‘나가지’않으련다. 고민이 없어서가 아니다. 지난 20년 전, 평론집 ‘행인의 독법’을 낼 때 심정으로 돌아가 보자는 것이다. ‘행인’의 심정으로 돌아가 차근차근, 냉연히, 생각해 보겠다는 것이다. 2014년 4월 16일, 모든 것이 기이하리만큼 이상했다. 정부는 단순히 무능력한 것만 아니고 무언가 모를 비밀을 감추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음모론’이라 매도되는 모든 가설과 추론이 얼마든지 제기될 수 있었다. 문제의 선박은 출항 일자부터 항로, 구조 과정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납득할 만한 것이 없었다. 이 전대미문의 참사는 2년 후 정부가 무너지는 것으로 이어졌다. 국정농단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근본적 원인은 다른 곳에 있었다. 나의 의문은 그 시점부터다. 정부가 바뀌었는데, 어째서 참사의 진실이 드러나지 않은 걸까. 선거 때 참사의 선박이 인양되기는 했다. 그뿐이었다. 진실 규명을 위한 노력은 없었다. 참사 때문에 들어선 정부, 진실을 요구하던 단체들, 모두들 딴전을 피웠다. 허무한 세월이 그렇게 흘렀다. 아무것도 한 일 없는 정부가 다시 한번 새로운 정부로 바뀌었다. 처음부터 ‘탄핵’을 하자는 말들이 쏟아졌다. 왜? 내게는 이유가 보이지 않았다. 몇 달이 흘렀다. ‘핼로윈 데이’. 이태원에서 대형 참사가 일어났다. 원인은 이번에도 드러나지 않는 가운데 정부로 책임을 돌리려고들 했다. 사고 당시의 동영상 기록 등 앞뒤 상황은 의문투성이였다. 걱정과 번민 속에서 사태의 진실에 다가가고 싶었지만 가능하지 않은 일이었다. 당시 이태원 인파들 가운데 특이한 움직임을 보이는 사람들을 추적하는 유튜브 채널들은 사람들이 어디서 희생되었는지, 원인은 무엇인지, 특정 세력의 개입은 없었는지를 따지고 있었다. 공개된 영상들이 조작된 것이라고 믿은 어떤 이는 장례식장, 분향소를 직접 찾아가 보기도 했는데, 이는 나중에 야당 대표가 테러를 당했다는 데 대해서도 진위 여부를 따지다 고발을 당하기까지 하는 것이었다. 그러는 사이에 내게 하나 깨닫기는 게 있었다. 신문·방송을, 유튜버들을 액면 그대로 믿을 수만은 없다. 이들의 무성한 수풀을 찬찬히 헤쳐 누가 정말로 진실을 말하는지 헤아려야 한다. 선거도, 여론조사도, 그렇게 엉망진창이어서는, 베일에 가려 있어서는, 민심 그것과는 현격한 거리가 생기는 법이다. 원인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외치는 소리에 너무 쉽게 흔들려서는 안 된다.‘가상현실’이 진짜 현실은 아닐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바야흐로 시작된 11월의 사태, 어디로 어떻게 흘러가는지 한 번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보겠다고 생각한다. 모든 ‘진실’에 의문을 품고 있는 나로서는 이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 그것은 같은 일이 두 번 똑같이 일어나가는 어려울 것 같다는 느낌, 바로 그것일 것이다.

2024-11-11

수능을 앞두고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언제부터인가 정신건강이 좋지 않은 학생이 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어쩌다 있는 예외적인 경우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상당히 많은 학생이 아프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동료 교수들과 만나 이야기하며 우리 대학만이 아니라 전국 모든 대학의 학생이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자살률이 OECD 국가 1위라는 불명예를 극복하기 위한 정부의 정책이 있지만, 이와 별개로 청년들의 정신건강은 계속 안 좋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번 학기에 만난 어떤 학생은 스물여덟 살이란 나이에 특별한 관심사가 없는 자신의 상황에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다. 제대 후 아버지 사업을 도우며 이 년을 일하고 졸업장을 받아 오라는 부모님 말씀에 따라 복학했지만, 학업에 특별한 관심이 있지는 않았다. 졸업이 늦어지는 것에 대한 조급함과 진로에 대한 답답함을 토로하던 학생은 한참이 지나서야 대인기피증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고백했다. 나는 현재 상황을 부모님과 공유하고 치료받기를 권했지만, 그 학생은 부모님께 자신의 병을 알리고 싶어 하지 않았다. 또 다른 학생은 어머니와의 갈등이 정신건강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친 경우였다. 오빠와 자신을 차별하는 할머니와 이를 모른 척한 어머니의 태도가 누적되며 학생은 마음이 아프고 모든 일에 자신감을 잃었다. 어린 시절부터 누적된 이러한 경험이 만든 삶의 태도가 더 큰 도약을 해야 하는 학생의 마음을 끌어내리고 있었다. 무엇보다 어머니에게 자신의 병을 알리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첫 번째 학생과 비슷했다. 두 학생과 이야기를 나누고 답답한 마음이 가시질 않았다. 두 학생은 자신의 아픔을 오롯이 혼자서 감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학교의 노력이 없는 것이 아니다. 우리 대학도 그렇지만 많은 대학이 정신건강 상담센터를 운영하고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검진을 진행하기도 한다. 분명 과거보다 대학은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추고 학생들의 정신건강을 책임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렇지만 문제의 본질은 두 학생의 경우처럼 학생들의 정신건강은 미성년기부터 누적된 결과라는 점에 있다. 11월 14일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이다. 올해 수능을 친 학생들은 2025학번으로 대학에 입학한다. 수험생들은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가기 위해 지난 1년 동안 열심히 노력했을 것이다. 하지만 시험을 마치면 누군가는 자신이 원하는 성과를 얻지 못해 좌절하고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다. 반대로 원하는 성과를 얻은 경우에도 대학 자퇴생의 증가라는 지표가 보여주듯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어느 쪽이든 중고등학교 시절에 어떤 문제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성공이 아니라 실패하는 법을 배울 수 있는, 그리고 실패한 아이들이 다시 일어날 수 있게 감싸주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경쟁이 아니라 협동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학교가 되어야 한다. 이렇게 되지 않으면 마음이 아픈 청년은 계속 증가할 것이고, 더 나아가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더욱 감소할 것이다. 이를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사소한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2024-11-11

디딜 곳 없는 길

강길수 수필가 10월 하순. 며칠 전부터 출, 퇴근길에 일부러 안 가는 코스가 생겼다. 디딜 곳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 일요일에 오륙 년 만에 순례 갔던 베론 성지에는 똑같은 상황인데도 디딜 곳은 아무 문제도 없었다. 냄새는 베론이 훨씬 심했다. 그런데도 사람 걷는 곳엔 그 열매가 하나도 안 보였다. 누가 주워서 치운 누런 은행 열매가 개울가에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때문에, 근처에 가면 악취가 더 난 것이다. 성지 관리자들의 이웃에 대한 배려가 저절로 눈에 보여 참 고마웠었다. 한데, 반 시간 정도 걸어 출, 퇴근하는 이곳 보도에는 요즈음 떨어진 은행 열매로 발 디딜 곳이 마땅찮은 데가 여럿이다. J 초등 옆 교차로 보도 한 곳은 특히 심하다. 이곳은 금방 떨어진 은행 열매가 온 보도를 채워 밟지 않고는 갈 수 없을 지경이었다. 할 수 없이 디딜 곳이 생길 때까지 다른 길로 다니기로 한 것이다. 떨어진 누런 은행 열매를 요리조리 피해 걷노라면 이런저런 생각들이 뇌리에 오간다. 도로 관리 당국에서 가로수를 심을 때 아예 수은행나무만 골라 심으면 이런 불편이 없을 게 아닌가. 그 많은 공무원은 다 탁상공론만 하는가. 또, 아침마다 길거리 휴지 줍는 시니어 인력을 활용해 쓸어도 될 텐데, 관리자들은 현장에 한 번 나와 보기나 하는가. 나아가, 전에는 아줌마나 할머니들이 은행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주워 갔는데 모두 잘 살아선지, 혹, 그분들이 돌아가셨나 하는 생각들이다. 그러다가 고개를 젓는다. ‘그러면, 너는 무얼 했는데?’하는 마음의 소리가 머리에 알밤을 주었기 때문이다. 슬그머니 은행나무에 미안해진다. 만일 수나무만 있다면, 이 지구촌에 페름기에 나타나 2억7천만 년 동안 면면히 대를 이어 오기에 ‘살아있는 화석’이라 부르는 은행나무가 그만 손이 끊어지게 될 테니까. 중생대 쥐라기와 백악기에 수십 종이 살며 전성기를 이루었다는 은행나무. 당시는 공룡이 은행을 먹고 씨앗을 퍼뜨리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오늘날 은행나무가 한종만 남은 원인은 공룡의 멸종과 기후변화로 등으로 보고 있다. 은행나무가 살아있는 화석이 된 비결이 무얼까. 전문가들은 강인한 생명력을 들고 있다. 우선, 열매껍질에 악취와 독성이 있는 화학성분이 들어있어 곤충이나 동물들이 은행 열매를 피하도록 한다. 그 예로 1945년 일본 히로시마 원폭 투하 지점 2㎞ 반경 안에 있던 6그루의 은행나무가 지금까지도 살아 있단다. 어쩌면, 현생인류 우리 호모사피엔스도 은행을 닮아가는지도 모른다. 과학기술이란 이상한 껍질을 몸에 둘러싸고 살아가니 외부 생명들은 감히 접근할 수 없으니까 말이다. 그러니 인간이 사는 영역에 다른 동물들은 발디딜 곳이 거의 없어졌다. 산을 접한 농지에는 철재나 전기울타리도 모자라 하늘에 조류 방지망까지 씌운다. 다른 생명들과 만남을 끊고, 과학기술만의 힘으로 인간이 지구촌과 다른 별에서 지속 가능할까. 이것이, 은행 열매 떨어져 디딜 곳 없는 길이 내게 주는 메시지이다.

2024-11-11

아, 종상 큰스님-금까마귀 하늘을 뚫고 비상하네(金烏徹天飛)

혐시탕척(嫌猜蕩滌) 훼예하류(毁譽何留) 초연탈생사(超然脫生死) 금오철천비(金烏徹天飛) 미움 싫어함 깨끗이 씻어 버리니 헐뜯고 칭찬함이 어디에 머물겠는가 초연히 삶과 죽음을 해탈하려니 금까마귀 하늘 뚫고 비상하네 이러한 열반송을 뭇사람들에게 남기시고 법랍 60년 세수 76세로 사바를 떠나신 종상 큰스님. 조계종 원로의원으로 비구승 최고 법계인 대종사(大宗師)에 오르신 우리시대의 진정한 어른이셨다. 해방 후 정부가 수립되던 1948년 전북 임실에서 출생하시어 더벅머리 총각은 열일곱 나던 해 속리산법주사(俗離山法住寺)에서 월산(月山) 스님을 은사(恩師)로 사미계(沙彌戒)를, 1973년 석암(錫岩) 스님을 계사(戒師)로 구족계(具足戒)를 수지하시고, “선시불심(禪是佛心)이요, 교시불어 (敎是佛語)라, 선은 곧 부처님의 마음이요, 교는 부처님의 말씀이니, 속세와 멀어진다는 속리산, 법이 상주한다는 법주사의 전통 강원에서 ‘부처님 일대시교(一代時敎)’를 마치시고 조계종 총무원의 조사국장(1980), 총무국장(1985)을 필두로 입법의결기구인 중앙종회의원(8,9,12,14,15대)을 장장 5선을 지내시고, 연주암 주지, 청계사 주지, 불국사 주지, 석굴암 주지, 불교방송과 동국대 이사를 역임하셨다. 6·25전쟁으로 폐허가 된 금강산 신계사 복원에도 큰 역할을 하시었고 남북한 관계의 긴장완화와 화해무드 조성에도 그 공로가 매우 크신 분이다. 지은 책으로는 ‘기와를 갈아서 거울 만들기’(청계사, 2001)를 남기셨는데, 건물 짓고 탑 조성하는 일보다 사람 키우는 불사에 원력을 모아야 한다는 평소의 지론을 대화하시듯, 평이하게 그리고 진솔하게 설하신 것이다. 아마 선지식께서는 한국불교의 쇠퇴를 미리 점치셨는가보다. 탄탄 스님·전 불교중앙박물관장 사람 귀하게 여기지 않은 한국불교의 현실은 이제 그리 녹록하지가 않다. 이 또한 상응하는 과보가 맞다. 몇몇 지역 맹주들이 농단해온 우리 교계의 미래 또한 어둡고 불투명하기만 하다. 살아생전 베풀고 나눈 것만 고스란히 남고 탐착하여 빼앗은 허물은 영원할 뿐이다. 대궁당(大弓堂) 큰스님께서는 지나는 객승도 불러 세워 성큼 거액의 지전(紙錢) 한 묶음을 나눠주시고 늘 어렵고 힘든 불자에게는 한없는 은전(恩田)을 베푸셨다. 학인에게는 학비를, 세도가에게는 헌금을, 적재적소에 재물을 풀어 교계 안팎에서 그 칭송이 자자했다. 이만한 복인(福人)은 이 지상에 또 있을 것인가? 남 종상(南 宗常) 북 자승(北 慈乘) 시대가 이제는 저물었다. 때마침 계절이 완연히 바뀌는 겨울의 문턱에서 하필 조계종사에 큰 획을 그은 종문(宗門)의 대사판(大事判) 두 분의 기일(忌日)이다. 전생(前生)은 신라시대 김대성의 화신(化身)이신듯 대가람 불국사와 석굴암을 오늘 지금까지 가꾸고 지키셨으며 금생에 그토록 널리 베푸셨으니, 이제 속환사바(速還娑婆)를 하신다 하여도 원 없는 이고득락(離苦得樂)을 다시 누리실 우리시대 진정한 큰스님이셨다. 훤출한 대장부풍의 법당(인물)이며 통 크신 용력(用力)을 이제 그 어디에서 뵈올 것인가? 수년 전 불국사 전 주지이신 종우 큰스님과 대궁당 큰스님 모시고 떡국공양을 하던 정월 초하루가 벌써 그리워져 눈물이 볼을 타고 흐르는데, 금생에 큰어른과의 잠시 스쳐지나간 인연은 이 얼마나 소중하고 지중했더냐!

2024-11-11

민심과 업고 가려는 노력이 없었다

김진국 고문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7일 기자회견후 여론이 더 안 좋아졌다. 지난주 한국갤럽 조사에서 국정 수행 긍정 평가는 17%로 한 주 사이에 2% 떨어졌다. 기자회견 전에 조사한 것인데도 그렇다. 실제로 듣는 여론은 더 나쁘다. 당장 보수 언론들조차 모두 윤 대통령의 인식에 문제를 제기했다. 기자회견 다음 날 중앙일보는 1면 머리기사에 “윤 대통령 ‘어찌 됐든’ 사과”라는 냉소적 제목을 달았다. 조선일보가 “저와 아내 처신 올바르지 못해 사과드린다”라고 가장 우호적으로 붙였다. 그런 조선일보의 양상훈 주필도 칼럼에서는 “‘기대에 못 미친다’는 반응이 좀 더 많은 듯하다”라고 지적했다. 윤 대통령의 회견에는 ‘억울하다’는 감정이 가득하다. 그는 “침소봉대는 기본이고 없는 것까지 만들어 제 처를 많이 악마화” 한다며 “본인도 억울함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 휴대폰에 온 문자에 답하느라 밤을 새운 부인에게 “미쳤냐”라고 말했다는 대목이나 “순진한 면이 있다”는 답변에서는 애잔함이 배어있다. 이게 무슨 잘못이냐는 항변으로 들린다. 끝부분에서 “무엇을 사과한다는 말이냐”고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구체적으로 지적해 주면 답하겠다”라고 버럭 화를 냈다. 국민의 분노에 전혀 공감하지 못한다는 반응이다. 왜 이런 간극이 생기는 걸까. 윤 대통령은 김건희 여사가 육영수 여사처럼 대통령을 도운 것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국민은 다르다. 공동통치자, 심하게는 대통령보다 더 위에서 인사와 정책을 흔들었다고 의심한다. 김 여사는 전화 녹취에서 “멍청해도 말을 잘 들으니까 내가 데리고 살지”라며 국정을 자신이 주무르는 듯한 말을 쏟아냈다. ‘김건희 라인’ 행정관이 수석비서관의 말도 무시하고, 공적 위계질서를 파괴한다고 걱정한다. 최근 주요 공직에 대통령이 내정한 사람을 제치고 뒤늦게 김 여사가 추천한 인사가 차지했다는 소문까지 나온다. 한국일보 한희원 논설위원이 “우리는 김건희 여사를 뽑지 않았다”라며 날을 세운 이유다. 물론 대통령제 국가에서 영부인의 역할에 대해 논란이 많다. 존 로버츠 2세는 ‘위대한 퍼스트레이디 끔찍한 퍼스트레이디’라는 책에서 “백악관의 여성들은 국가의 대소사와 선거, 대통령의 인사정책에서 항상 분명한 힘을 가지고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라며 “거의 활동을 하지 않았던 퍼스트레이디들조차 어느 정도의 정치적 개입을 했다”라고 말했다. 내조형이었던 낸시 레이건의 부속실장 제임스 로즈부시는 “퍼스트레이디는 대통령의 정치적 파트너”라며 “대통령직 수행은 두 사람의 직무”라고 주장했다. 문재인 정부는 김정숙 여사의 타지마할 방문을 “우리나라 영부인의 첫 단독 외교”라고 미화했다. 관광 논란도 있지만 어쨌든 영부인이 ‘단독 외교’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역할 범위가 넓다는 인식을 드러낸 셈이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장남 트럼프 주니어는 7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대통령보다 자신이 더 잘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내각에) 기용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는 “정권 인수 과정에 매우 깊게 관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시 부자처럼 정치적 역할을 이어받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1기 때는 딸 이방카와 사위가 공개적으로 활동했다. 그렇다고 “선출되지 않은 아들과 딸이 왜 설치느냐”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니 윤 대통령이 억울해하는 것도 한편 이해가 된다. 그는 “대통령 부인이 대통령을 도와서 선거도 좀 잘 치르고 국정도 남들한테 욕 안 얻어먹고 원만하게 잘 하길 바라는 그런 일들을 국정농단이라고 한다면 그건 국어사전을 다시 정리해야 할 것 같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김 여사는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한국 국민이 용납할 범위를 넘어섰다. 역할을 넓히려면 민심부터 얻어야 한다. 믿음이 있으면 일을 할수록 칭찬받는다. 미국에서도 영부인 역할 기준은 고무줄이다. 손바닥에 ‘왕(王)’자를 쓰고, ‘천공’이네 ‘미륵’이네…수준 미달인 사람을 가까이하고, 풍수를 따져 집무실을 옮기고…. 이런 소문부터 국민을 참담하게 만든다. 그런 의심을 풀어주지 못하면 영부인의 역할을 완전히 접어야 한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11-10

일론 머스크가 그리는 세상

우정구 논설위원 전기차 테슬라의 최고 경영자이자 트럼프 대통령 후보의 적극 지지자인 일론 머스크가 새삼 세계인의 주목을 받고 있다. 세계 1위 부자인 그의 재산은 약 2500억 달러(한화 336조원)다. 재산의 상당 부분은 테슬라 주식이다.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이 알려지던 날 테슬라 주식이 폭등하면서 그의 재산은 하루 만에 55억 달러(7조6000억원)가 올랐다. 언론은 그를 트럼프 재집권의 최대 수혜자, 킹메이커, 미 대선 최종 승자라 표현했다. 트럼프 정부가 머스크를 채용하는 시나리오를 검토 중이라는 보도도 나왔다. 하지만 그는 경영자로서 승부사라는 별명을 일찍부터 가지고 다녔다. 자신의 회사를 위해선 도박과도 같은 과감한 결단을 스스럼없이 내리는 그를 두고 몰빵 신이라고도 불렀다. 남아프리카에서 태어나 캐나다를 거쳐 미국에 정착한 그는 어릴적부터 컴퓨터 게임에 관심이 많아 12살 때는 자신이 만든 슈팅 게임기를 게임잡지에 실어 판매도 했다. 그가 최고의 혁신가로서 호평을 받는 이유는 뛰어난 기술력과 식견을 먼저 꼽는다. 또 디자인 감각이나 중독에 가까운 일에 대한 성실함, 현장 중심의 경영도 이유라 한다. 그리고 그의 미래지향적 비전과 도전정신은 기업을 세계 최고로 키운 비결이라 주변에선 평가한다. 경제성이 없다는 전기차를 상업화하는 데 성공했고, 지금은 우주탐사, 인공지능, 에너지산업에까지 새로운 도전장을 던지고 있다. 특히 그가 도전하고 있는 우주탐사는 인류가 새로운 행성에 세상을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트럼프 당선과 함께 머스크가 그려갈 새로운 세상에 세계인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우정구(논설위원)

2024-11-10

아침 안개를 보면서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아침마다 안개가 짙게 내리는 시절이 왔다. 해마다 11월이면 청도 화양에는 지척(咫尺)을 분간할 수 없는 안개가 내리곤 한다. 날이 많이 차거나, 바람이 몹시 불거나, 일교차가 아주 적거나 하는 일이 있다면 모를까, 안개는 예외 없이 날마다 두툼한 얼굴을 내민다. 안개 속에서 모든 것은 짙은 차폐(遮蔽)의 장막 속으로 숨거나 사라져버린다. 안개를 오래도록 묵상한 시기는 대구 금호강 안심 습지(濕地) 부근에 살았을 때였다. 겨울 아침마다 앞을 내다보기 어려울 정도로 안개가 찾아왔다. 일출과 무관하게 이어지는, 안개가 지배하는 시공간에서 무기력하게 금호강을 내려다보며 깊은 상념에 잠기곤 했다. 그리고 어느 날 ‘아침 안개에 관한 짧은 명상’이라는 시를 써야만 했다. 2부로 나누어진 시의 끄트머리에서 나는 썼다. “모든 떠나간 것들은 언젠가 그 자리로 반드시 회귀할 것을 나는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날마다 찾아오던 안개가 사라져버린 황량한 금호강 풍경을 떠올리면서 나는 안개가 속히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랐던 것이다. 안개가 사라진 금호강 습지의 철모르는 오리무리를 보면서 느꼈을 허허로움이 지금도 감촉되는 듯하다. 그저께 아침에도 화양(華陽)에는 짙은 안개가 찾아와 오전 10시 42분이 되어서야 천공의 태양이 빛나는 얼굴을 내밀었다. 붉은 해가 모습을 드러내기 전까지 모든 것은 어둠의 장막 아래 침전한다. 안개의 그늘, 어둠의 심연 속에서 혹자는 평안하고, 누군가는 당혹스러워한다. 사람은 혼란을 기꺼워하는 이와 혼란에서 고통을 느끼는 자로 나뉘기 때문이다. 안개의 본질 가운데 하나는 어둠과 혼돈이지만, 다른 본질은 안개는 언젠가 반드시 사라진다는 것이다. ‘금강경 사구게(四句偈)’에 나오는 ‘몽환포영(夢幻泡影)’ 같은 것이다. 그렇다, 안개는 꿈과 환상, 물거품과 그림자처럼 시나브로 사라져버린다. 안개를 데려가는 것은 태양과 바람이다. 그것들로 인해 안개는 스르륵, 소리 없이 불귀의 객이 되는 것이다. 그리스 영화감독 테오 앙겔로풀로스의 ‘안개 속의 풍경’(1988)은 안개로 시작하여 안개로 끝나는 안개 영화의 전범이다. 12살 소녀 불라와 다섯 살짜리 남동생 알렉산더가 아버지가 있다는 ‘게르마니아’로 길을 떠나는 영화 ‘안개 속의 풍경’. 그들이 여로(旅路)에서 마주치는 세상의 인간들과 풍경과 내면세계를 느려터진 사진기로 잡아내는 앙겔로풀로스. 지독하게 막연한 행로 첫머리에서 아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태초에 어둠이 있었다.” 도대체 그들의 아버지는 실제로 있는 것일까, 있다면 도이칠란트 어디에 있단 말인가! 여리고 어린 남매는 어떻게 아버지를 찾아갈 수 있단 말인가! 남성 어른들이 뿜어내는 무한폭력과 그것에 무너져가는 남매의 모습이 안개 속에서 고요하게 숨 쉬고 있을 뿐이다. 영화 말미에서 남매는 속삭인다. “태초에 어둠이 있었 다. 그리고 빛이 있었다.” 앙겔로풀로스는 빛과 어둠으로 점철된 그리스 현대사를 이것으로 드러내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어둠(안개)을 거두는 빛을 찾아 떠나온 남매를 비추는 찬란한 빛! 어둠은 빛을 끝내 이기지 못한다!

2024-11-10

영주 시민들이 진정한 리더!

박남서 영주시장 지방자치 시대가 개막한 후 각 지자체들은 잘사는 고장, 미래가 있는 고장을 만들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전국의 240여개 지자체들은 현재에 국한되지 않은 후손들에게 물려줄 미래세대에 대한 지향점을 두고 경쟁력 있는 도시 조성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성공한 지자체에는 특별한 리더가 있다는 말이 있다. 리더는 바로 지역의 주민들이다. 지역민들의 애향심, 미래를 위한 관심과 투자, 함께 나누는 사회 분위기 조성 등 다양한 부분에서의 노력이 미래 지역사회의 발전 방향을 이끌게 된다. 이런 부분에서 영주시민들은 진정한 리더라 할수 있다. 영주시가 미래 먹거리를 위해 시민들과 함께 염원하고 기대했던 첨단베어링 국가산업단지 승인과 영주댐 준공은 지역민들의 깊은 관심과 함께 노력한 결과물이다. 시민들의 자발적 관심과 참여, 지역에 대한 애정과 행정에 대한 믿음과 지원이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결과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영주시민들은 진정한 리더이다. 도시 발전에는 경제 활성화가 중요한 부분이다. 과거에는 정부 중심의 경제구조였다면 현대에는 기업 중심의 경제구조다. 지자체의 발전은 기업의 유치가 관건이라 할 수 있다. 고품격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는 많은 기업의 유치가 있어야만 지역 경제가 돌아간다. 이런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것이 바로 국가첨단베어링산업단지다. 국가산업단지 조성사업은 계획에 따라 추진중이다. 산단 입주 기업유치를 위해 현지 방문 및 홍보물 배포, 다양한 행정지원 대책방안을 마련해 놓고 있다. 기업하기 좋은 도시, 기업이 선호하는 도시, 투자를 위해 찾아오는 도시, 지역사회가 함께하는 기업지원 도시로 거듭나기 위한 준비를 착실히 수행하고 있다. 영주댐 수변 지역에 대한 활용도를 높이고 특화된 관광산업화를 위해 영주호개발과를 신설해 새로운 트렌드의 관광수요 창출에도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역 산업화와 관광산업화 못지않게 중요한 부분들이 있다. 인구감소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중소도시의 현실은 미래 발전방향 지표를 어렵게 하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영주시는 국토부가 추진한 공모사업에서 지역활력타운사업이 선정돼 지역 발전에 큰 힘을 보태고 있다. 국가산단과 영주댐 건설에 따른 인구 유입 가능성이 높아진 시점에서 이를 수용하고 MZ세대가 원하고 녹아들 수 있는 주거환경과 주변 시설의 확충에 방점을 두고 시는 지역활력타운사업에 전력하고 있다. 최근 영주역에서 남부육거리 구간에 공정률 80%를 보이며 공사가 한창인 도시재생 사업은 역세권의 상권 부양과 새로운 패러다임을 조성하고 있다. 또 중앙선철도 복선화사업의 일환으로 공사가 완료된 역세권 개발사업은 도시재생 사업과 맞물려 영주시의 대표적 관문인 영주역 인근 지역은 새로운 면모를 갖춰나가고 있다. 이같은 사업은 한데 맞물리며 영주시가 한층 더 발전하기 위한 새로운 변화의 시대를 예고하는 것이다. 우리 시는 유네스코문화유산에 등재된 부석사, 소수서원을 비롯해 천혜의 경관을 갖춘 소백산, 무섬마을 외나무다리 등 다양한 문화유산과 자연을 보유한 고장이다. 현대인들은 도심으로부터 벗어나 쾌적하고 디자인이 아름다운 녹색 도시로의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현대인들이 원하고 바라는 트랜드에 맞춰 영주시는 자연도시로서의 성장력을 함께 키워나갈 것이다. 우리 영주시는 사람이 살기 좋은 도시, 미래가 있는 도시, 생명력 있는 도시로서 누구나 오고 싶고 살고 싶은 도시를 목표로 발전시켜 나갈 것이다. 영주시는 미래가 있는 도시로의 성장을 위해 산업, 관광, 교육, 농업, 복지, 문화가 우리 생활속에 녹아들 수 있는 시민과 함께하는 행정을 펼쳐나갈 것이다. 영주시가 주민의 뜻을 살린 행정을 구현하는 것은 지방자치시대의 기본적인 이념을 따르고 이곳 영주에서 생활하고 삶을 이어가는 근본이 바로 시민들이기 때문이다. 영주시는 앞으로도 후세에게 물려 줄 미래가 있는 영주, 시민이 중심되는 영주, 누구나 오고 살고 싶은 영주 건설을 위해 진정한 지역의 리더인 시민의 뜻과 생각을 반영한 행정을 구현에 나갈 것이다.

2024-11-10

어머니의 손. 어린 시절 엄마의 손에는 늘 상처가 있었다. 밴드도 붙이지 않은 손가락에는 곳곳이 칼에 베어 살들이 벌어져 있었다. 엄마는 피가 마르지 않은 손으로 빨래도 척척 해내고 설거지도 후다닥 해치웠다. 그 손이 아플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보지 못했다. 엄마는 결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인 나의 아버지가 아팠다. 어린 자녀들을 두고 아픈 남편을 대신해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엄마는 젊은 나이에 시장에서 회를 팔았다. 회를 뜨는 일은 경험이 없는 엄마에게는 생소한 일이었다. 회를 뜨는 칼에 생선살과 함께 자신의 살도 베는 일이 많았다. 그 상처는 보이지 않는 가슴의 상처와는 비할 수가 없었다. 살아 내어야 한다는 강한 의지는 아버지도 살려냈다. 아버지는 엄마의 억척스러운 손으로 인해 새로운 생명을 찾았다. 엄마 손에 가락지만 주렁주렁 달아 주겠다던 아버지의 약속은 금이 간 지 오래다.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겠다던 다짐은 온데간데없다. 엄마의 손은 눈물로 젖어 불어 있었다. 건강을 찾은 아버지는 엄마의 삶을 보상해 줄줄 알았다. 하지만 아버지는 겉돌았고 일하는 엄마를 대신해 우리를 돌보지도 않았다. 일에 지친 엄마는 가끔씩 악을 썼다. 엄마는 일생을 젖은 손으로 우리를 공부시켰고 결혼도 시켰다. 일흔이 넘어서야 물에서 손을 떠나보냈다. 우리들이 엄마가 되고 나니 이따금 마음의 말을 내어 놓는다. 손 한 번 잡고 살려줘서 고맙고, 고생 시켜 미안 하다는 말 한 마디만 해 주면 고생 한 거 다 잊을 것 같다며 야속한 아버지를 탓했다. 몇일 전 오빠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가 침대에서 떨어져 꼼짝을 못한다며 구급차에 실려 응급실에 왔다고 했다. 누워 있던 엄마의 다리는 미이라 같았다. 왼쪽 발에서부터 골반까지 하얀 붕대가 칭칭 감겨 있었다. 엄마는 일어나 앉지도, 옆으로 돌아눕지도 못했다. 자신의 다리를 혼자서 굽히지도, 들지도, 펴지도 못했다. 수술을 할 때까지 그저 천장만 바라보며 누워 있을 수밖에 없었다. 침대에서 떨어져 고관절이 산산 조각이 났다. 당장 수술을 해야 했지만 심장이 좋지 않은 엄마는 늘 아스피린을 복용했다. 일주일을 기다려야 했다. 누워서 죽만 받아먹고 물도 빨대에 꽂아 먹이고 양치도 누운 상태에서 했다. 소변 줄을 달고 큰 볼일도 기저귀를 통해서만 가능했다. 엄마는 볼일이 힘들어 거의 곡기를 끊었다, 김경아 작가 엄마의 손은 허물 벗은 뱀 껍질처럼 물기하나 없었다. 거죽만 남은 엄마의 손을 닦이고 로션을 발랐다. 엄마의 손은 이불에 닿을 때마다 까슬까슬 소리가 났다. 거칠었다. 가정을 위해, 어린 자식을 위해 ‘여자의 손’을 포기 하고 선택한 ‘엄마의 손’이었다. 수술 전 날 가족들이 다 모였다. 집에서 걱정만 하던 아버지도 오셨다. 청각 장애가 있는 아버지는 조용한 장소에서는 의사소통이 힘들다. 아버지는 그저 말없이 앉아만 있었다. 옛 세대들이 그렇듯 힘들어 하는 엄마 앞에서도 무덤덤해 보였다. 저녁이 되었지만 아버지는 집으로 가지 못하고 발지도만 그렸다. 겨우 일어나 나가던 아버지는 자꾸 엄마 쪽을 보았다. 문을 열고 나가려다 돌아서서 성큼성큼 엄마에게로 왔다. 갑자기 이불 속에 있는 엄마 손을 꺼내더니 덥석 잡았다. 그리고는 큰 소리로 말했다. “마이 무라. 손이 이게 뭐고. 다 말라 비틀어졌다. 마이무래이” 아버지 두 손 안에 엄마 손 하나를 감싸 잡았다. 앉아 있는 내내 하고 싶었던 마음의 말을 입으로 삼키다가 돌아서서 한 마디 하고는 다시 돌아섰다. 엄마 눈에는 왜 눈물이 고였을까. 엄마는 수술로 인해 아프고 불편한 다리를 가졌지만 평생을 삭혀둔 가슴의 상처가 치유 된 듯하다. 아버지의 말대로 엄마는 많이 드시고 손에 조금씩 살이 차올랐다. 수많은 손들이 있지만 자식을 향한 수만 가지의 사랑과 정성이 들어 있는 세상의 어머니들 손은 아름답다. 아팠던 손 안에서 상처가 꽃이 되어 삶의 꽃이 피어났다.

2024-1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