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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울릉군의 딜레마…울릉도 나리분지 파크골프장 건설

김두한 기자 경북부 최근 파크골프가 시니어들의 최고 운동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시니어 층의 증가추세는 울릉도도 마찬가지다. 2023년 말 기준 60세 이상 연령대가  40.80%에 달하고 있다. 당연 시니어들의 여가 선용 및 운동문화가 중요해 졌다.  많은 예산, 넓은 부지, 적잖은 운동 비용이 소요되는 골프를 대체한 파크골프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자 전국의 지자체들이 앞다투어 파크골프장 유치를 하는 가운데 울릉도 역시 시니어 관광객 유치와 지역 시니어들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한 시설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울릉도에 파크골프장이 만들어지면 육지의 골프 1회 비용만 갖고도 울릉도 여행과 파크골프(그린피 비싸도 1만원)를 동시에 즐길 수 있다. 특히 파크골프가 시니어들만의 전유물이라기 보다 울릉도만의 특성을 잘 살려 설계,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스포츠로 자리매김시킬 수 있다면 울릉도 관광객 유치에도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다. 산천어 축제로 유명한 화천군이 대표적이다. 그곳은 요즘 전국의 파크골프 동호인들로 북적이고 있다. 파크전국부부대회, 체육회장기, 시즌오픈 전국파크대회 등 각종대회도 줄을 잇는다. 일찍이 파크골프장을 조성, 짜임새  있게 관련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운영한 결과다. 수치상으로도 그 성과는 대단하다.   5월 28일부터 막이 오르는 이대회는 6월13~14일까지 예선전과 결승전을 치르기 때문에 화천군에 머무는(15일~16일간) 외지인이 엄청나다.  그들이 화천서 먹고, 자고 , 놀고 관광하고 하는 부수효과는 기대 이상이다.   최근 경주에서 울릉도여행을 패키지로 한 파크골프대회가 개최됐었는데, 여기에도 350여 명이 참가했다.  포항 등지에서 개최되는 파크골프대회도 늘 조기마감되는 등 현 추세대로라면 파크골프  인기는 고공진행이다.  이를 눈여겨 본 모 선사가  울릉도 나리분지에 18홀 규모의 파크 골프장을 조성하려 뛰어들었다.  여객선을 통한 관광객도 유치하고 울릉 지역 경기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기획했다. 선사 측은 나리분지가 울릉도 상수원 원수지임을 감안,  수질이나 상수원 오염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농약사용 경우 허가취소)에서 파크골프장 건설을 추진했다. 하지만 최근 서류를 반려받았다. 사실상 불허통보다. 반려 이유는 나리분지에 파크골프장이 조성되면 울릉주민 식수원인 북면 추산 용출소 상수원이 오염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었다.  나리분지 주민들이 “농약을 사용하지 않으면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했지만 인허가 벽을 넘지는 못했다. 파크골프장을 유치했던 선사는 “울릉도에 파크골프장이 들어선다면 연중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을 것 같은 판단이 들어 이 사업을 추진했다"면서 "행정소송 등을 통해 인허가를 다투어 볼 생각도 있었지만 현재 선박을 운영하는 것만으로도 엄청 힘들어 포기했다”고 밝혔다.  울릉주민들 사이에선 오래전부터 울릉도에 골프장을 하나 개장했으면 하는 이야기들을 늘 해왔다. 그동안 타 시군에서 골프장이 관광객 유치에 폭발적 원동력이 되는 것을 수없이 보며 학습한 효과도 있다. 제주도은 그 단적인 예다.  알다시피 제주도 골퍼 관광은 연중 무휴다. 골프장 수 또한 엄청나다. 하지만 울릉은 골프장을 만들만한 땅이 없기도 하거니와 설령 부지를 구한다 해도 육지보다 훨씬 더 들어가는 공사비 등으로 엄두를 내기가 어렵다. 그래서 나온 안이 우선 파크골프장이라도 하나 갖자는 것이다.  그 장소가 나리분지든, 다른 곳이든 간에  일단 하나만이라도 물꼬를 터 봤으면 한다.  물론 인허가를 반려한 울릉군의 입장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또 반려하기까지 신중에 고민을 거듭했으리라고 본다. 하지만,  정 나리분지가 안된다면 군이 나서 다른 장소라도 찾아 주었으면 한다.  적당한 장소만 있다면 투자자도 분명 나설 것이다.  울릉공항 개항이 다가오는 만큼 향후 울릉도 투자는  관광, 숙박, 볼거리와 놀거리, 스포츠 인프라 등으로 엄청 늘어날 것이다.  산지로 이뤄진 울릉도에 나리분지를 제외하면 솔직히 제대로 된 투자를 하기가 곤란하다. 그런 면에서 상수원도 보호하고 울릉도 관광 인프라도 살리는 묘책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물론 양립은 쉽지가 않다. 하지만 깊이 고민하고 머리를 맞대면 안될 일 또한 없을 것이다.  가금씩 외국에 나가 유명관광지나 관광인프라를 가보면 어떻게 저런 곳에 인허가를 받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때가 한두번 아니었다.  나리분지도 이제는 성역으로 두기보다 함께 가는 길을 찾을 때가 됐다. 개인적으로는 대한민국 최고의 청정지역, 살아 있는 활화산 속의 나리분지 내  파크골프장에서 채를 한 번 휘둘러 봤으면 하는 마음이다.  /김두한기자kimdh@kbmaeil.com

2024-11-28

법조와 AI

장규열 고문 ‘법원의 결정을 존중합니다’ 모두 그렇게 말하면서도 늘 여운을 남긴다. 같은 사건을 놓고 가진 이념의 향배에 따라 다르게 생각하고 판이하게 판단한다. 엄연한 팩트도 보는 입지에 따라 다른 게 보이고 정반대로 해석되기 일쑤다. 객관적이며 공평한 판단은 법조계에서도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사실과 법리에 따라 공정하게 판단한다지만, 우리는 사건을 맡은 판사가 누구인지 그가 어떤 성향의 판결을 내려왔는지 궁금하다. ‘사실’은 벌어진 일의 실체일 것이며 ‘법리’는 이미 적혀있는 법조문을 적용하는 일이 아닌가. 쌓여있을 판례와 법조문 간의 관련성 등을 객관적이며 균형있게 참고하여 마지막 결론을 내릴 터이다. 이념과 시류, 여론과 주장에 흔들릴 위험이 있는 사람보다 정교하고 치밀한 분석이 가능할 인공지능(AI·Artifical Intelligence)에게 맡기는 게 낫지 않을까. AI는 이념적 편향이나 감정적 판단에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므로, 법조문과 판례를 바탕으로 객관적이며 균일한 판단을 내리지 않을까. 방대한 판례와 법적 데이터를 빠짐없이 신속하게 분석하여 적절한 사례와 타당한 규정을 제시할 수 있어, 법조 판단의 효율성을 크게 향상시킬 것이다. AI가 이렇게 수다한 법적 결정을 적절하게 처리할 수 있다면 법률 자문이나 변호사 비용이 내려가 보통 사람들도 쉽게 법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법조에 AI를 활용함에는, 몇 가지 과제도 있다. 법적 판단은 사실 관찰과 법조문 해석에 그치지 않고, 인간의 사회적이며 도덕적 관련성을 반영해야 할 때가 많다. AI가 인간적 맥락을 이해하면서 판단할 수 있을까. AI가 오판을 한다면, 책임소재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을 터이다. AI는 과거 데이터를 바탕으로 훈련될 것인데, 데이터의 편향 가능성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도 문제다. 판단은 단순히 사실을 발견하고 규정을 집행할 뿐만 아니라, 사건 관련자의 인간적 측면을 고려해야 하는 어려움을 AI가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 아직은 걱정거리가 아닐 수 없다. 이념적으로 극심한 편향성이 문제로 드러난 이상, 법조계가 AI를 유용한 판단도구의 하나로 도입하여 활용하는 방안을 적극 고려했으면 싶다. 다만, 사람을 완전히 대체하기보다 법조인과의 협력을 통해 공정하고 균형있는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방향으로 발전하는 것이 현실적인 접근이 아닐까. AI는 판사, 검사, 변호사의 업무를 돕는 역할로 시작해 점진적으로 더 많은 역할을 맡게 될 가능성이 분명히 있어 보인다. 사실판단과 법리적용보다 이념의 성향과 여론의 향배에 따라 법조의 판단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행태는 국민이 보기에 그리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다. 법원의 최종판단이 존중되려면, 투명하고 공정한 심리와 결정과정이 보통사람들의 공감과 동의를 얻어야 할 터이다. 인간의 주관적이며 감성적인 편견과 정치적 이념성향을 최소한으로 제어하면서 정의로우며 공명정대한 결정에 이르러야 할 터이다. AI의 장단점을 모두 고려하여 법조에 적극 활용하는 방법을 고려해야 한다.

2024-11-27

‘적자 인생’ 사는 노인들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늙은 남성들 사이에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런 이야기가 떠돈다. “친구고 뭐고 다 소용없어, 늙으면 가장 필요한 게 돈과 마누라야.” 돈과 아내. 지목된 이 두 가지 가운데 돈과 관련된 걱정스런 뉴스 하나가 많은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60대 이상 노인들의 상당수가 적자 인생을 살고 있다는 소식이다. 61세 이후 생애주기 적자폭은 갈수록 늘어난다. 61세에 178만4000원이던 적자 규모는 70세가 되면 1612만1000원, 75세엔 2015만2000원으로 늘어나고, 85세 이상 노인들의 적자 규모는 2420만2000원에 이른다는 게 통계청의 설명이다. 일을 해 벌어들이는 소득과 생활 유지를 위해 사용되는 돈의 차액 폭이 갈수록 커지는 이런 현상이 이른바 ‘빈곤한 노인’을 만들어내고 있다. 현행 60세인 정년을 연장하고, 퇴직 후 일자리 찾기를 도와야 한다는 사회적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는 것도 이런 세태를 반영한 게 아닐까. 나이를 먹을수록 병원비 사용은 가파르게 상승하고, 60대면 아직 자식들 뒷바라지가 채 끝나지 않은 경우도 흔하다. 거기다 일을 하지 않는다고 개인의 소비가 0이 될 수는 없는 게 명약관화하지 않은가. “세상이 좋아졌으니 이제 한국 사회에서 밥 굶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지만, 우리 주변엔 하루 종일 리어카를 끌고 폐지를 주우러 다니거나, 추운 날씨임에도 1~2시간 무료급식소 앞에서 줄을 서는 노인들이 없지 않다. 여러 이유와 조건 탓에 적자 인생을 사는 노인들을 효과적으로 조력할 방안을 국가적 차원에서 고민할 때가 왔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11-27

손자의 도시락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요즘 초등학교에선 소풍이나 운동회라는 행사가 없어진 것 같다. 학년별로 과학관이나 테마파크로 가는 체험활동이라는 프로그램이 대신하는가 보다. 손주들이 학교 가면 소풍도 따라가고 운동회도 꼭 가봐야지 기대했는데 많이 아쉬웠다. 체험활동 가는 손자에게 도시락이라도 싸주고 싶었다. 손사래를 치며 말리는 며느리를 설득했다. 우리 아이들이 초등학교 때, 내가 바빠 손수 만든 김밥을 싸주지 못한 때가 있었다. 학교에서 밤늦게야 집에 오니 다음날이 소풍이라는 거였다. 미안한 마음에 미리 알려주지 않았냐며 오히려 역정을 냈다. 새벽에 문 여는 김밥집이 있다는 이웃의 정보를 얻어 김밥을 사 도시락으로 넣어준 적이 있다. 아직도 그날이 생각날 정도로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날의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손자에게라도 갚고 싶다. SNS에서 예쁜 도시락을 폭풍 검색해서 하나 골랐다. 문어유부초밥 만들기. 유부초밥에 토핑으로 비엔나소시지를 문어 모양으로 만들어 얹는 거였다. 이거다. 김밥 만들기보다 오히려 간단하고 예쁘고 귀여워 손자가 좋아할 것 같았다. 필요한 재료를 메모해서 남편과 함께 마트에 장보러 갔다. 소시지, 유부초밥세트, 검은깨, 치즈 등과 작고 동그란 구멍을 낼만한 도구도 샀다. 소풍날 늦지 않게 가져다주려면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야겠다 싶어 장봐온 재료로 미리 연습을 했다. 동영상을 몇 번이나 돌려보았다. 어렵지 않을 것 같았는데 웬걸, 만만치 않았다. 소시지가 커서인지 문어 다리 모양은 너무 뭉툭해서 볼품없었다. 문어 눈이 될 검은깨 박기가 제일 어려웠다. 파스타면에 올리고당을 묻히면 쉽다는데, 면은 부러지고 깨는 튀어나온다. 입 모양으로는 치즈에 빨대로 도넛 모양 구멍을 내는데 자꾸 갈라진다. 아무리 연습해도 모양이 나질 않았다. 더 작은 소시지와 도구가 필요했다. 24시간 영업하는 식자재마트에 달려갔다. 다시 사온 소시지는 좀 나았다. 영상 속의 문어와 근사한 모양이 나온다. 소시지 두 봉지 중 연습용으로 한 봉지를 다 쓸 정도로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밥을 미리 안쳐두고 잠시 눈을 부쳤다. 서너 시간 잤나, 새벽 5시 알람에 눈을 떴다. 간밤의 연습대로 문어유부초밥 만들기에 돌입했다. 문어 다리 모양은 얼추 나왔는데, 눈이 될 검은 깨박기는 여전히 어려워 잘 박히지 않았다. 구멍이 작으면 들어가지 않고 더 크게 뚫으면 연방 튀어나오고야 만다. 이러다간 안되겠다 싶어 손톱으로 껍질을 뜯어 손가락으로 깨를 쑤셔박는다. 시간은 자꾸 흐르는데 영 진도가 나질 않는다. 초조한 맘에 손은 더 무디고 더뎌진다. 문어유부초밥만으로 도시락을 다 채우기엔 시간이 모자라겠다 싶었다. 집 부근 김밥집에 전화해 달걀꼬마김밥을 주문했다. 등교 시간 전에 맞춰 겨우 가져다줄 수 있었다. 며칠 후 만난 손자에게 도시락 맛있었냐고 물었다. 응 맛있었어. 그런데 도시락을 열었더니 문어 눈은 없어지고 입도 떨어지고 까만 김띠도 풀어졌어. 그래도 딱 한 개는 괜찮았어. 애들이 모두 보고 와~~ 했어. 헛수고는 아니었겠지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2024-11-27

흉추와 오장육부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인체의 신경계는 크게 중추신경계와 말초신경계로 나뉜다. 중추신경계는 뇌와 척수로 구성되어 있으며 우리 몸에서 느끼는 감각을 수용하고 조절하며 또 운동, 생체 기능을 조절한다. 우리 몸에서 가장 중요한 부위인 뇌는 머리뼈의 안쪽에 위치하고 척수는 척주관 안에서 안전하게 보호된다. 말초신경은 중추신경계에서 나와 온몸에 가지 모양으로 분포하는 신경계를 말한다. 말초신경계는 우리 몸으로부터 감각, 근육 자극과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는 반사에 필요한 모든 정보를 중추신경으로 전달하고, 중추신경의 운동자극을 다시 우리 몸으로 전달하는 통로 역할을 한다. 말초신경계는 다시 체성 신경계와 자율신경계로 나눈다. 우리 몸을 무의식적인 반사활동을 통해 조절하는 신경계가 자율신경계이고 이는 다시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으로 나눠진다. 교감신경은 흉추 1번에서 요추 2번까지 나오면서 교감신경절을 형성한다. 부교감신경은 3, 7, 9, 10번 뇌신경과 천추에서 나와서 교감신경과 함께 우리 몸의 상태를 조절한다. 이 두 신경의 균형이 깨지면 몸에 다양한 이상 증상이 생기고 이를 자율신경 실조증이라고 한다. 교감 신경은 우리 몸의 오장육부와 연결이 있다. 이에 자율신경 실조증과 같은 질환도 흉추를 잘 치료하면 치료가 가능하다. 흉추에서 나오는 교감 신경은 각 가지마다 기관지 폐 심장 췌장 위장 간 콩팥 등과 연결되어 있다. 한의학은 수천년부터 이 분지되는 곳을 배수혈이라 해서 치료의 중요한 포인트로 삼았을 정도로 흉추는 우리 몸의 건강과 관련 중요한 곳이다. 기침이 잦으면 기관지와 폐가 분지하는 흉추 1번과 3번 그리고 좌우 근육을 치료를 해주면 도움이 된다. 체끼가 있으면 보통 등을 두드리거나 밟아 달라는 것도 흉추 6번 7번이 위장 췌장 등과 연결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침을 맞고도 체끼가 남아 있는 경우 이곳에 부항으로 사혈을 해주면 더 빠른 효과가 난다. 이뿐만이 아니라 잠을 못자거나 속이 답답한 화병 갱년기 등의 증상도 이곳을 통해 치료를 할 수 있다. 흉추 신경절 깊은 곳의 신경을 자극을 해야 해서 가정에서는 쉽지 않고 초음파를 볼 수 있는 한의원에서 시술이 가능하다. 한약으로도 치료가 가능하다. 한약을 먹지 못하는 사람은 흉추 신경절의 시술을 통해 내장의 불편을 바로 잡을 수도 있는 것이다. 집에서 간단히 할 수 있는 건강관리 법으로는 부항을 구입해 흉추와 척추 기립근에 부항을 하는 것이다. 흉추와 좌우 근육을 눌러 아픈 곳에 부항을 떠주면 건강에 도움이 된다. 너무 오래 뜨면 피부자극으로 수포가 생길 수 있으니 10분 이상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마사지 기계나 지압이 가능한 도구로 직접적으로 등이 아픈 부분을 꾸욱 눌러 줘도 도움이 된다. 꾸준히 해야 효과가 나니 운동과 병행해서 하루 5분 정도 투자를 해보자. 척추가 바로 서면 오장육부가 건강해지고 오장육부가 건강해지면 정신이 건강해진다. 등을 굽히고 생활하면 흉추에서 나오는 신경들이 압박되어 소화기 문제와 기타 문제가 발생한다. 항상 바른 자세로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가슴을 펴고 턱을 당겨 앉고 걷는 습관을 기르자.

2024-11-27

흔적은 딛고 설 수 있는 단단한 땅이 되고

정미영 수필가 길을 걷다가 강아지가 단풍잎을 향해 뛰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단풍잎은 바람에 살랑거리며 강아지 주변을 맴돌았고, 강아지는 잎사귀가 장난감인 듯, 꼬리를 흔들며 뛰어올랐다. 그 작은 생명이 온 마음을 다해 순간을 살아가는 모습이 사랑스러워서 미소가 번졌다. 그것도 잠시, 얼마 전에 ‘무지개다리’를 건넌 지인이 키우던 개가 생각났다. 개의 이름은 나미로 11살이었는데 사람 나이로는 78세였다. 나미는 지인이 키우던 두 번째 개였다. 한 번 상실의 아픔을 겪고는 두 번 다시 개를 키우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그녀였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삶에 들어온, 작은 기적과도 같은 존재였다. 나미는 그녀의 친척이 키우던 개였다. 친척이 병에 걸려 더 이상 돌볼 수 없는 상황이 되어 그녀의 집으로 오게 되었다. 다시 반려견과 살게 되어 너무 좋았단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에는 나이가 많은 나미와 얼마 못 가서 이별하게 될까봐 두려웠다고 했다. 그녀는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생각을 긍정적으로 바꾸었다.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언젠가는 생을 마감할 것이므로, 자신의 품에 있을 때 많이 사랑해 주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정말로 나미를 정성껏 돌봐주고 후회하지 않을 만큼 사랑해 주었다. 나미도 진심을 느꼈는지, 그녀의 곁에서 한없이 위로가 되어 주었다. 그녀가 세상에 지쳐 돌아오면 조용히 다가와 손을 핥아 주었고, 그녀의 옆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런데 믿고 싶지 않은 가슴 아픈 일이 생겼다. 그녀 집에 온지 2년 하고 반년이 되었을 때쯤이었다. 나미를 데리고 병원에 가서 건강 검진을 했는데, 수의사 선생님께서 나미가 구강암에 걸렸다고 했단다. 친척도 몰랐던 이야기여서 그녀는 많이 놀라고 당황스럽고 슬펐다. 병원에서는 나미가 항암 주사를 주기적으로 맞으면 완치될 수 있다고 했다. 그녀는 기적을 바라며 항암 주사를 맞혔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다시 나미가 건강해지기를 간절히 기원했다. 안타깝게도 기대를 저버리는 일이 생겼다. 항암 주사를 맞는 개들에게는 2개에서 3개씩 부작용이 올 수 있단다. 그런데 나미에게는 개가 걸릴 수 있는 모든 부작용이 와버렸던 것이다. 나미는 점점 기운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잘 먹던 사료도 안 먹고 좋아하던 소시지도 먹지 못했다고 했다. 나미를 지켜보던 그녀의 시간은 외로움과 아픔의 순간들로 가득 차올랐다. 그 작은 몸이 항암 치료의 부작용에 힘겨워하던 모습은 그녀를 절망감에 물들게 했다. 나미의 삶이 점점 자신의 곁을 떠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면 그녀는 눈물로 하루를 적셨다. 나미가 마지막 숨을 몰아쉬던 그날, 그녀는 나지막이 속삭였단다. 이제 그만 고통 없는 곳으로 가라고, 먼저 가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으라고. 그 말을 마치자마자 나미는 눈을 감았다고 했다. 내가 그녀의 집을 방문했을 때 집 안 구석구석에는 나미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나미가 좋아하던 담요는 아직 소파 위에 있었고, 간식 그릇은 부엌에 그대로 있었다. 그녀는 쉽게 흔적을 지울 수가 없단다. 아니, 지우고 싶지 않다고 나에게 고백했다. 추억들이 햇살처럼 쏟아져 내릴 때가 있단다. 기뻤던 순간, 슬펐던 순간이 자신의 감정과는 무관하게, 선택할 여지가 없이, 무방비로 떠오르는 순간이 있기에 아직은 흔적을 간직하고 싶다고 했다. 그녀는 나미를 돌봤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미에게 의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단다. 흔적들은 그녀에게 단순한 기억 이상의 것이었다. 사랑이었다. 나는 그녀를 바라보며 내 나름대로 사랑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사랑이란 어떤 대상이 내 옆에 머무르는 시간이 아니라, 그 존재가 내 삶에 남긴 흔적과 기억 속에서 영원히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나미가 남긴 흔적들은 지금도 그녀의 삶을 감싸고 있다. 그녀의 인생길에 허방이 많을지라도 추억이 응축된 사랑의 흔적들은 디딤돌이 될 것이다. 그녀가 딛고 설 수 있는 단단한 땅이 되어 주리라.

2024-11-27

구미시 도시 브랜드 전략

우정구 논설위원 글로컬 시대를 맞으면서 세계의 많은 도시가 사람들에게 도시의 긍정적 이미지를 심어주고, 그것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각종 마케팅 전략을 구사한다. 도시 브랜드 자체가 관광객 유입 등 도시의 경쟁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특히 지방시대가 본격화되면서 우리나라 도시들도 지역의 특산물이나 축제, 캐릭터 등의 무형자산을 통해 호의적인 도시 이미지를 전달하는데 온 힘을 쏟고 있다. 안동 국제탈춤 페스티벌이나 경주 황리단길, 청송의 사과 등은 그 지역 도시 이미지와 동일시되면서 일종의 도시를 알리는 데 큰 도움을 준다. 대구시는 기존의 ‘컬러풀 대구’라는 도시 브랜드 슬로건을 홍준표 대구시장이 취임하면서 ‘파워풀 대구’로 바꾸었다. 국채보상운동과 2·28 민주운동의 정신을 계승하고 대구가 대한민국 근대화의 심장이던 자긍심을 바탕으로 대한민국 3대 도시 영광을 되찾겠다는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서울시도 브랜드 슬로건을 서울 마이 소울(Seoul My Soul)로 바꾸었다. 마음이 모이면 서울이 된다는 의미라 한다. 아이 러브 뉴욕(I Love New York)은 세계적으로 알려진 뉴욕시의 도시 슬로건이다. 1970년대 재정 파산위기와 높은 범죄율로 혼란과 위기에 빠졌던 뉴욕을 세계 최고의 관광지로 탈바꿈시킨 슬로건으로 유명하다. 최근 한국기업평판연구소가 전국 85개 도시를 대상으로 한달간 온라인 빅데이터를 조사한 결과, 구미시가 도시 브랜드 평판 1위를 차지했다. 구미가 1위를 차지하게 된 결정적 배경은 이달초 개최한 구미 라면축제라고 한다. 좋은 축제 하나가 도시 브랜드를 성공시킬 수 있다는 모범 선례라 할만하다. /우정구(논설위원)

2024-11-26

여권, 지금 ‘당원게시판’ 논란 벌일 때냐

심충택 논설위원 민주당 이재명 대표 위증교사 혐의 1심 무죄선고가 나온 25일, 여권은 ‘온라인 당원 게시판’ 논란으로 친윤(윤석열)계와 친한(한동훈)계가 정면으로 충돌했다. 윤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 후 가라앉았던 양측 갈등이 더 격화되는 모습이다. 국민의힘은 지난 주말 한 대표와 그의 가족 명의로 작성된 온라인 당원 게시판 글 전체(1068개)를 조사했다. 조사결과 윤 대통령 부부에 대한 수위 높은 욕설·비방은 12건 정도인 것으로 파악됐다고 한다. 한 대표 측은 이를 ‘동명이인’의 글이라고 해명한 바 있다. 한 대표 아내·딸·모친·장인·장모 등과 같은 이름으로 게시된 글 907건 중에는 ‘단순 정치적 견해 표명’으로 볼 글이 463건으로 가장 많았고, ‘언론사 사설·기사’가 250건, ‘격려성 글’이 194건이었다고 한다. 한 대표 가족과 같은 이름으로 작성된 글 대부분이 명예훼손이나 모욕 등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게 밝혀진 셈이다. 친윤계는 이 조사에 대해 “무의미한 변명”이라고 일축했다. 한 대표 측이 당 조직을 동원해 사안을 ‘마사지’하려는 의도라고 거칠게 비난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비난 대열에는 주로 대통령실 출신 정치인이 앞장서고 있다. 홍보수석을 지낸 김은혜 의원과 시민사회수석 출신인 강승규 의원을 비롯해 윤 대통령 지원으로 대표를 역임한 김기현 의원, 그저께는 나경원·김민전 의원이 한 대표 공격에 가세했다. 한 대표는 25일 그동안의 침묵을 깨며 논란에 직접 뛰어들었다. “익명 당원 게시판은 당이 익명으로 글을 쓰라고 연 공간이고, 거기에선 당연히 대통령이든 당 대표든 강도 높게 비판할 수 있다”고 전제하면서 “대통령을 비판한 글을 누가 썼는지 밝히라, 색출하라고 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 정당에서 할 수 없는 발상이고, 그 자체가 황당한 소리”라고 반박했다. 여권의 내분을 지켜보는 보수지지층의 마음은 착잡하다. 정국은 요동치고 있는데, 누구에게도 덕 될 것 없는 ‘자해 성’ 게시판 논란으로 마치 서로 원수처럼 충돌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가관이다. 앞으로 민주당은 윤 대통령 부부에 대한 공세를 더 강화할 것이다. 민주당은 지난 주말에는 서울 도심에서 내일(28일) 재표결이 이루어질 ‘김건희 여사 특검법’ 수용을 촉구하는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네 번째 주말 집회다. 민주당은 “특검을 또다시 거부한다면, 국민이 대통령을 해고할 것”이라며 공격수위를 높이고 있다. 최근에는 대학가에서 윤 대통령 퇴진과 김 여사에 대한 특별검사 수사를 요구하는 교수 시국선언문이 잇달아 나오고 있다. 대통령이 수여하는 훈장을 거부하는 교수도 있다. 심각한 위기 국면이다. 여권이 국면전환과 함께 국정동력 에너지를 얻으려면 이제 민심에 기댈 수밖에 없다. 민심을 수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여권이 더 잘 알 것이다. 지난 7일 윤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 때 국민에게 약속한 후속조치(대통령실과 정부 인적 쇄신, 김 여사 위험 해소 등)를 하루빨리 취해야 한다. 친한·친윤 갈등이 다시 불붙으면 양쪽 다 공멸한다.

2024-11-26

겨울의 따스함을 전하는 늙은 호박요리

겨울이 되면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음식들이 떠오른다. 팥죽, 설렁탕, 군밤, 군고구마와 함께 늙은호박 요리는 겨울철 우리의 몸과 마음을 든든하게 채워주었던 겨울철 별미들이다. 그중에서도 어린 시절 어머니가 만들어 주셨던 늙은 호박 요리는 특별한 추억을 떠오르게 한다. 밀가루 풀을 넣어 걸죽하게 만든 호박범벅, 그리고 호박국과 달달한 늙은 호박전의 맛은 추운 겨울을 견디게 해주었던 소박하면서도 깊은 맛의 상징이었다. △늙은 호박의 특징과 역사 늙은호박은 여름철에 수확하지 않고 그대로 두어 숙성시킨 호박으로, 겉이 단단하고 진한 주황빛을 띠는 것이 특징이다. 정식 명칭은 청둥호박으로도 불리는 이 호박은 15세기 남아프리카가 원산지로 유럽과 아시아로 전해졌다. 우리나라에는 조선시대에 일본을 통해 전해져 주요 식재료로 자리 잡았다. 특히 호박은 오랫동안 저장이 가능하고 단맛이 강해 다양한 요리와 저장 음식으로 활용되었으며, 이러한 이유로 조선시대와 그 이후 식량이 부족한 시기에 늙은 호박은 중요한 구황식품으로 사용되었다. △지역별 사랑받는 늙은 호박요리 늙은 호박은 우리나라 전역에서 고유한 지역 음식에 활용되어왔으며, 특히 각 지방에서는 독특하게 조리하여 지역 특유의 맛을 살리고 있다. 늙은 호박과 싱싱한 해산물을 배추, 무와 함께 버무린 서해안의 ‘호박게국지’나 늙은 호박을 소금에 절여 무청과 버무린 충청도의 ‘호박 섞박지’는 지역 김치와 절묘하게 어우러진 대표적인 예다. 그 외에도 제주도의 향토음식인 ‘갈치호박국’이 있으며, 경상도 지역에서는 전통적으로 늙은호박을 사용하여 ‘호박전’을 만들어 먹어왔다. △늙은 호박의 저장성과 영양가치 여름에 수확 하지 않고 추위를 거쳐 숙성된 늙은 호박은 식물의 자연 숙성 과정에서 장기 저장에 적합하게 변화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겉껍질은 단단해지고, 맛은 깊어진다. 특히 이맘때가 되면 단맛이 더욱 깊어져서 여러 요리에 두루 활용하기가 적합하다. 늙은호박은 베타카로틴, 비타민C, 식이섬유가 풍부하여 무엇보다 현대인의 식단에 알맞은 건강식품으로도 각광 받고 있다. 늙은 호박이 지닌 노란빛은 천연의 베타카로틴 성분에서 비롯된다. 이 베타카로틴은 우리 몸에 들어오면 비타민A로 전환되어 시력을 보호하고, 각종 눈 관련 질환 예방에 도움을 줄 수가 있다. △기름을 활용한 영양흡수 극대화 호박의 베타카로틴은 지방에 녹는 지용성 비타민으로 기름과 함께 섭취할 경우 카로틴의 흡수율을 더 높일 수가 있다. 기름과 함께 사용하면 영양소의 흡수율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늙은 호박을 활용한 요리 중 가장 적합한 것은 바로 호박전이다. 호박전은 늙은 호박의 고소함과 은은한 단맛을 살린 경상도의 전통적인 요리로 기름을 사용해 조리하기 때문에, 베타카로틴의 흡수율을 높여 맛과 건강을 모두 만족 시키 수 있는 요리법이다. △쫄깃하고 달콤한 늙은호박전 재료 늙은 호박 600g, 부침가루 3컵, 찹쌀가루 1컵, 물 3컵, 설탕 2큰술, 소금 1작은술, 감미료 2/1작은술 만드는 방법 1. 호박 채 썰기 : 손질된 호박의 절반은 곱게 채 썰어 주고, 나머지 반은 강판 또는 믹서기에 갈아준다. 2. 절이기 : 채 썬 호박에 설탕 2큰술과 소금 1작은술을 뿌려 10분 정도 절여준다. 절이는 동안 호박에서 수분이 나오며 자연스러운 단맛이 더해진다. 3. 반죽 준비 : 절여진 호박에 부침가루와 찹쌀가루를 넣고, 호박에서 나온 물과 추가 물을 사용해 반죽이 부드럽고 끈적하게 될 때 까지 섞어 준다. 4. 전 부치기 : 팬에 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중 약불로 예열한다. 반죽을 한 스푼씩 떠서 팬에 올리고, 양면이 노릇하게 익을 때까지 부쳐 낸다. 전의 크기는 한입 크기 또는 취향에 맞게 조절한다. 5. 양념장 만들기 : 간장 4큰술, 고춧가루 1큰술, 다진 파, 마늘, 참기름, 통깨 ※늙은호박 손질 요령 및 보관법 1. 호박 자르기 : 호박의 꼭지가 달려 있는 반대편 중앙 배꼽처럼 움푹 들어간 부분이 늙은 호박의 가장 부드러운 부분이므로, 그 부분을 기준점으로 삼아 칼집을 넣어 자르면 편리하다. 2. 반으로 자르기 : 1번에서 칼집을 넣은 부분을 기준으로, 골이 파인 부분으로 위에서 아래로 내리듯이 반으로 잘라준다. 박정남 전통음식칼럼니스트 3. 속 파내기 : 반으로 갈라진 부분의 호박씨와 속을 숟가락으로 긁어 낸다. 4. 네 등분 하기 : 반으로 잘라진 호박을 다시 반으로 잘라 네 등분 하거나, 더 작은 조각이 필요하면 용도에 맞게 잘라 준다. 5. 껍질 벗기기 : 잘린 호박은 필러(칼)를 사용해 껍질을 벗기거나, 껍질이 두꺼운 부분을 칼로 다듬어 준다. 6. 보관하기 : 손질한 호박은 적당한 크기로 잘라 냉동 보관하여 필요할 때 꺼내어 사용하면 편리하다. 박정남 전통음식칼럼니스트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외식산업학 박사 △안동 1호 조리기능장 △안동종가음식체험관 연구원장 △대구가톨릭대학교 산학겸임 교수 △(주)예미정별채 수석셰프 겸 대표

2024-11-26

겨울의 책읽기-마음을 든든하게 만드는 책 한 권

이번 겨울에는 그동안 도전해보지 못했던 조금 두툼한 책에 도전해보는 것은 어떨까. 예를 들어, 박경리의 ‘토지’나, 최명희의 ‘혼불’ 같은 것도 좋겠고, 황석영의 ‘장길산’이나, 조정래의 ‘태백산맥’도 좋겠다. 따뜻한 집안에서 그들과 함께 시간과 장소를 넘어서는 경험을 하다보면, 이번 겨울은 마음 든든히 지나갈 테다. 사진은 박경리의 ‘토지’ 1권(마로니에북스). 겨울이다. 뜨겁던 여름의 열기가 채 가시지도 않은 것 같은데, 순환하는 계절은 틀림없이 겨울로 옮겨간다. 여름이든, 겨울이든, 요즘에는 실내에만 있으면 계절의 변화를 특별히 느끼지 않도록 살아가게 된 세상이지만, 아침에 집을 나섰을 때 들이쉬는 숨 속에, 얼굴에 닿는 차가운 감촉에서 어김없는 겨울을 느낀다. 본디 인간의 편리한 생활을 위한 기술들은 모두 인간이 외부의 변화에 영향 받지 않고 항상성을 가지고 살아가도록 발전해왔다. 공간의 변화도, 시간의 변화도, 계절의 변화 같은 것도 모두 인간의 삶에 영향을 주는 자연의 요소들이지만, 더운 곳에서 더운 것을 줄이고, 추운 곳에서 추운 것을 줄이고, 시끄러운 곳에서 그 소음을 줄이고, 지나치게 조용한 곳에서 그 적막을 줄여 인간이 항상 그대로 머물도록 만드는 것이 지금 인간을 위한 테크놀로지의 핵심인 것만 같다. 하지만, 가끔 무언가 아쉬워지는 것은,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변화야 말로 인간이 아닌가 하는, 고리타분한 생각에서 비롯되는 감정일지도 모르겠다. 짧은 가을을 보내고, 성큼 겨울을 맞은, 더이상 흘러가는 계절에 아무 감상도 남길 여유가 없는 세상의 흐름을 보면, 어쩐지 쓸쓸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예전에는 책 읽기 좋은 계절은 가을이라고 했지만, 그것은 치열한 여름을 보내고 난 뒤에 이제 좀 살만해져서 책이라도 좀 읽을까 하는 계획을 세우려는 사람의 자기 변명 같은 합리화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가을이면 어느 산에나 붉고 누런 빛들이 가득한데, 그것을 구경하느라 바빴을 테지, 굳이 책을 읽을 여유가 있었겠는가. 가을은 책이 아니라 무엇을 해도 좋은 계절이지만, 모든 놀이 중에서도 책을 읽는 게 제일이라는 선생의 감각이 반영된 말이다. 겨울이면 바깥에서 불어닥치는 찬 겨울 바람을 속절없이 다 맞아야 했던 옛날집들과 달리, 요즘에는 딱 좋은 온도로 겨울을 지낼 수 있는 시대인 만큼, 요즘에는 책 읽기 가장 좋은 계절은 겨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외출해서 추위에 시달리고 난 뒤에, 따뜻한 국밥의 국물이 필요하듯, 동상에 걸릴 정도로 허전해진 마음을 든든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무엇보다도 책 한 권이다. 책보다 더 재미있는게 많은 시대니, 마음을 어지럽히는 컴퓨터와 TV는 잠시 꺼두고, 게임 같은 것은 잠시 치워두고, 뭣하면 음악을 들릴락 말락하게 켜두고, 평소에 두께 때문에 도전하지 못했던, 톨스토이나 도스토예프스키, 박경리나 조정래의 책들을 펴놓고 읽기 시작한다면, 그것으로 겨울날은 흘러간다. 따뜻한 차를 한 잔 마시거나, 이후에 아무 일도 없다면, 한 잔의 술을 마셔도 좋을 테다. 책이란 무엇을 읽을까 고르고, 그것을 읽기 시작하기만 해도 충분하다. 책 속의 글자들은 작가가 마침표를 찍은 이후에는, 인쇄소에서 찍어내고 제본한 이후에는 변화하지 않고 그 속에 그대로 들어있을 테니, 책 속의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거나, 영 마음속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그것은 내 마음이 다른 생각들로 지나치게 번잡스럽거나, 아직 그 글자들을 씹고 소화해서 내 몸을 흐르는 피와 살로 만들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포기하거나 무리해서 이해하려고 애쓰거나 하지 않고, 같은 페이지, 같은 줄을 몇 번이고 반복하고 읽어도 그 경험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 아쉬운 것은 아쉬운 대로, 뿌듯한 것은 뿌듯한 대로, 책을 읽는 경험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보고 또 보아도 허전하기만 한 OTT의 영화를 보는 경험과는 다르다. 차가운 겨울날 따뜻한 국밥의 국물을 들이켜는 것 같은 겨울의 책읽기다. /송민호 홍익대 교수

2024-11-26

‘꿈틀로’ 테마전시의 새로운 지향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곱게 물든 잎새들이 소슬한 바람 결에 이리저리 흩날리며 떨어져 길바닥이며 나무 둘레마다 ‘낙엽의 수채화’를 그리는 듯하다. 미련 없이 나뭇가지를 떠나는 잎사귀나 시들고 메말라가는 풀잎이 공허하거나 초췌해보이지 않는 것은, 조락으로 동장(冬藏)을 대비하며 자연의 흐름에 순응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도심의 가로수나 쉼터 같은 소공원의 군데군데 심겨진 나무들이 회색빛 도시거리의 칙칙함을 조금이나마 상쇄시켜서 다행스럽게 여겨진다. 노란 은행잎이 일제히 손 흔들며 행인을 반기는 것 같고, 길바닥에 뒹구는 낙엽들이 계절감을 상기시켜며 자신을 일깨우는 듯하다. 어쩌면 사소하고 하찮은 것 같지만, 자세히 보거나 관점을 달리하면 보여지고 다가오는 것들이 색다르고 다양한 일들이 주변에 의외로 많은 것 같다. 생활 속의 작은 발견이랄까, 사소함에 대한 관심이랄까, 눈여겨 주변을 살펴보면 익숙한 것도 새롭게 보이고 하찮은 것들도 대수롭게 다가오는 것들이 더러 있다. 이를테면 길거리 조형물이나 예술품, 작은 갤러리나 공방에 전시된 아기자기한 작품들 따위다. 무심코 지나치면서 눈길이 가는 간판의 디자인이 독특하게 여겨지고, 자주 다니는 길목에서 우연찮게 발견한 풀 한포기가 무언의 메시지를 전해줄 때가 있다. 이렇듯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익숙한 듯 낯선 풍경과 심미적인 감성을 부추기는 일들이 간혹 나타나게 됨은 당시의 상황과 분위기가 평소와는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현재 포항 육거리 일대 꿈틀로 예술거리 곳곳에서 열리고 있는 ‘포구다방 프로젝트’ 전시회는 일상에서 접하게 되는 공통의 문제를 저마다의 예술적인 감성으로 풀어내기에 충분한 테마 전시회로 여겨진다. 꿈틀로사회적협동조합이 주관, ‘2024 경북문화재단 예술거점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11월 20~30일까지 꿈틀로 일대 청포도다방, Space 298 등지에서 열리는 전시회는 경북도의 지역소멸 극복을 위한 테마별 시화, 그림, 사진, 도예 등의 예술작품을 스토리와 곁들여 특색 있고 다채롭게 선보여 한층 눈길을 끈다. 이러한 프로젝트는 경북 동해안 어촌마을이 처한 현실과 공통적으로 제기되는 퇴색과 지역소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문화예술적인 접근으로, 잊혀지거나 방치된 공간을 재발견하고 이를 역사와 지역성을 살린 문화예술의 거점으로 탈바꿈시켜 새로운 활로를 찾아 나간다는 기획의도를 담고 있다. 즉, 예술적 실천의 무대를 위한 장소의 재생, 협력과 공감을 기반으로 한 공동체의 문제해결, 지역민과 문화예술인들의 교류·소통을 위한 네트워크의 형성으로 체계화·담론화시켜서 문화예술활동의 지속가능성과 확장가능성을 담보하고 탐구해 나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원도심의 낙후성 극복과 포항지역 예술가들의 창작활동 구심점으로 2016년부터 자리잡은 포항문화예술창작지구 꿈틀로에 이와 같은 테마전시회가 열린다는 것은 도시에 숨결을 불어넣고 활기를 더해주는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뭇잎들의 채색으로 스산한 길거리가 조금은 아름다워지듯이, 가까이에서 예술작품을 보고 느끼며 문화생활을 누릴 수 있는 예술의 향기가 곳곳에서 피어난다면 한결 품격 있고 아름다운 문화도시가 될 것이다. 문화와 예술은 지속가능한 도시의 저력이자 선봉이다.

2024-11-26

타인경영과 긍정 조직문화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과 지위를 유지하기 위하여 자기계발에 힘쓴다면 삶의 위대한 목적을 잃어버린 것이다. 우리는 더불어 사는 사람들을 위하여 봉사의 마음을 아끼지 않을 때 삶의 진정한 의미를 발견 할 수 있다’ 인도의 큰 승려 달라이 라마의 말이다. 사람은 관계 속에 생을 영위하는 동물이고 인간관계 능력에 따라 삶은 성공하기도 실패하기도 한다. 미국 카네기 연구소의 조사에 의하면, 경제적으로 성공한 사람들 중 15퍼센트는 자신의 기술적 지식에 의한 것이며, 85퍼센트는 사람들과 좋은 인간관계를 맺는 능력으로 성공한다고 한다. 15퍼센트의 사람들은 남들보다 나은 능력, 전문 지식이 뛰어나서 성공할 수 있다. 85퍼센트는 타인들과 잘 지내는 능력, 자신의 생각을 잘 표현하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잘 받아들여 사람들과 함께 원만하게 지내는 기술이 있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라고 한다. 혼자서 일을 잘하는 사람을 전문가라고 한다. 리더는 여러 사람의 협력을 얻어 성과를 창출한다. 리더십은 여러 사람의 협력을 이끌어 내는 인간관계 능력이고 타인경영이라 할 수 있다. 타인경영 능력은 어떻게 증대시킬 수 있을까. 첫째, 상대방에게 관심을 표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미국의 필립스 아카데미와 필립스 엑서터 고등학교는 동문 35명 중 1명꼴로 미국의 명사 인명사전에 올라 있고 백만장자 되는 비율도 높고 200년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두 학교의 건학 이념은 ‘나 자신보다 상대방에 관심을 표하라’이다. 대화를 시작하는 효율적 방법은 상대방과 연관 있는 사항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다. 사무실 벽에 걸린 그림, 상대의 취미 도구, 방 한 켠에 놓여 있는 바둑판이 될 수 있다. 관심, 따뜻함이 들어 있는 말에 상대는 마음이 열리는 것이다. 둘째 다른 사람을 존중해주는 것이다. 모토롤라의 창시자인 밥 갤린은 공장의 부품 라인에서 일하고 있는 여성 근로자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저들은 모두 내 어머니 같아, 돌봐야 할 가정이 있고 그들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지’라며 그들에게 더 나은 삶을 주려고 애썼고 여성 근로자들은 애사심과 정성을 다해 일류 기업이 된 것이다. 상대를 귀하게 여기면 나도 귀한 사람이 되고 대접 받고 싶으면 그만큼 대접하면 되는 것이다. 셋째, 미소를 짓는 것이다. 미소 지을 수 있는 사람은 남의 마음을 끌며 유쾌하게 즐겁게 한다. 민주투사의 강한 이미지였던 DJ는 매일 아침 미소 짓는 연습을 하며 부드럽고 인자한 이미지로 개선해 나라님이 되었다. 감정이 있더라도 미소를 지으면 얼어붙은 상대의 마음도 열리는 것이다.‘안녕하십니까. 좋은 아침입니다’ 매일 아침을 여는 CEO는 ‘미소는 긍정 조직문화의 토양이고 성과 창출의 원동력이다’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고 했다. 사람은 관계 속에 살아가는 동물이다. 개인의 능력으로 성공하기도 하지만 사회나 기업에서는 좋은 인간관계 없이 성공하는 경우는 드물다. 사람 관계성을 중시하고 상사가 먼저 다가가는 타인 경영이 되면 긍정 조직문화가 형성되고 조직 성과가 창출되는 사회와 기업이 되는 것이다.

2024-11-26

도쿄 2박3일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 도쿄에 가자고, ‘K-Book 페스티벌’도 참관하고, 무라카미 하루키 도서관에도 간다고 했다. 외국여행 간다기보다 모처럼 사람들 만날 기회를 버리기 싫었다. 2박3일, 일정은 짧았다.‘새벽 출정’처럼 다섯 시 반에 집결했으니, 멀리 속초나 춘천에서 온 이들 가운데 공항에서 날밤을 새운 경우도 있었다. 일곱 시 반 출발 예정이었는데 여덟시 넘어 떠나는 연착 비행이었고, 나리타 공항에 내리자마자 마이크로 버스에 나누어 타고 한참을 달렸다. 예정보다 늦어 점심 밥을 먹고 또 버스를 타고 가 무사시노의 카도카와 문화박물관에 가 닿을 즈음 우리는 모두 기진맥진 상태였다. 갔다 와서 찾아보니, 이 박물관은 “아트, 문학, 박물 등의 장르를 뛰어넘어 모든 지식을 재편성한,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박물관”이라 했다. 8미터가 넘는 거대한 책장에 빛의 폭포가 쏟아져, 흘러내리고 있었다. 우리는 박물관의 위용보다 비로소 쉴 수 있음에 안도했고, 박물관 맞은편으로 지는 석양빛을 바라볼 수 있어 좋았다. 그러나 ‘시련’은 계속되었다. 숙소까지 우리는 거의 두 시간을 더 달렸던 것 같다. 저녁식사는 식은밥이었고, 호텔 방은 모든 것이 ‘축소지향형’의 나라에 온 것처럼 비좁았다. 다음날 아침 우리는 와세다대학으로 향했다. 그곳에 무라카미 하루키 도서관이 있다고 했는데, 나로 말하면 벌써 여러 번째 이 도서관의 존재에 관해 듣고 잔뜩 호기심에 차 있던 나였다. 와세다대학의 은행나무 단풍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양옆의 가로수 길을 따라가 드디어 무라카미 하루키 도서관을 찾아냈다. 생각보다 아담해서 좋았던 이 독특한 라이브러리의 1층과 지하층은 온전히 하루키 문학을 위한 것이었고, 윗층은 다른 작가들을 위한 전시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길디긴 하루키 문학 연표였다. 1979년에 그는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 군조 신인상을 받으며 창작을 시작했다. 그 사이에 그는 그야말로 혼신의 힘을 기울여 쓰고 또 썼다. 우리 작가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며 그는 이 상에서 몇 걸음 멀어졌지만 장인적인 작가로서 그는 어떤 부족함도 없어 보인다. 점심밥은 네 사람씩 짝을 지어 맛을 찾아냈고, 모처럼 배를 불린 우리는‘K-book 페스티벌’이 열리는 진보초의 출판그룹 빌딩으로 향했다. 과연, 페스티벌다웠다. 한국 작가 책을 낸 출판사들이 모여든 책 잔치는 좁지 않은 공간이 꽉 찰 정도로 찾아온 일본 독자들로 인해 잔칫집 분위기를 연출했다. 모르는 사이에 한국문학 작품들에 대해서도 일본 출판계는 결코 게으르지 않은 듯했다. 우리는 또 아동과 소년 책들을 내는 대표 출판사 쇼가쿠칸(小學館) 빌딩으로 가 일본 문학인들과 인사를 나누었고, 이분들의 안내를 받으며 헌책방들이 운집해 있는 간다 고서점가를 걸었다. 나는 기회를 엿보아 이경재 선생이 알려준 고양이책방(‘네코당’)으로 빠져나가기도 했다. 이날 하루가 그렇게 길게 느껴질 수 없었다. 본 것도, 재미있는 것도 많았다. 그러나 정작 다음날 귀국 여행길에 오르자, 새삼스럽게 귀하게 느껴진 것은, 함께 떠났다 돌아오는 열여섯, 일곱 한국의 작가, 시인들이었다. 한국에 있을 때 잘 모르다가 세상에 나가고서야 그네들이 그렇게 귀하게 보일 수 없었던 것이다.

2024-11-25

군대 안 가려고 살찌운 청년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병역 의무는 국민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적용되고, 입대에서 제대까지의 전 과정이 합리적일 때 뒷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는 쉽지 않다. 군대를 다녀온 한국 남성이라면 누구나 들어온 이야기가 있다. “내 친구는 돈 많은 아버지 덕택에 군대에 가지 않았다” “고위층에 있는 숙부가 보다 편안한 군대 내 보직을 얻게 해줬다” 등등. 이는 과거 병역 의무의 집행 과정이 투명하고 공평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세상은 빠른 속도로 바뀌었고, 앞에서 언급한 사례와 같은 불공정은 많은 부분 사라지고 있는 듯하다. 지극히 당연하고 바람직한 변화다. 그러나, ‘아까운 청춘의 한 시절을 군대에서 보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가진 청년들이 여전히 있는 모양이다. 요즘도 갖가지 방식으로 병역을 기피하려는 이들의 이야기가 드물지 않게 신문과 방송에 오르내린다. 최근 서울동부지법은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스물여섯 살 청년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를 방조한 같은 나이의 청년도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고 한다. 이들이 처벌 받은 이유는 뭘까? 한 명은 병역 의무를 피하려고 인위적으로 체중을 105kg까지 늘렸고, 다른 한 사람은 쉽게 체중이 증가하는 식단표를 제공했기 때문이었다. 체질량지수가 35를 넘길 경우 4등급 신체 판정을 받아 보충역 처분을 받을 수 있다는 규정을 악용한 것이다. 쉽게 살이 찌는 음식을 평소의 식사량보다 2배 이상 먹어 스스로의 건강을 해치면서까지 피하려 했던 병역 의무. 그 청년은 공평함을 어떤 가치로 받아들이고 있었을까? 보기 딱하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11-25

문학어와 방언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대한제국이 기울어지면서 신문명과 함께 서구 문학도 외세의 바람을 타고 한반도로 밀어닥쳤다. 문학 양식은 옛날 운문체 형식의 언어와 문자에서 벗어나 우리말과 우리 글자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되 새로운 서구의 문학 양식에 맞춘 문학 형식이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이 무렵 최남선, 이광수와 같은 문인들이 개화 문물을 도입하면서 새로운 문학 양식으로 시나 소설을 짓기 시작하였다. 일부에서는 우리의 글과 말을 갈고 닦으며 그 생명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조선어학회(한글학회의 전신)는 표준어 사정, 맞춤법의 정리, 외래어 표기 등 우리말과 글의 규범을 정립하는 일이 곧 나라를 수호하는 일이라며 우리말큰사전 편찬 작업에 힘을 모았다. 정확하게 1933년 맞춤법통일안이 만들어진 그 이전의 시공간 속에서 활동한 20~30년 사이의 문학 활동을 한 이들에게는 오늘날과 같은 맞춤법의 기준이 아주 희미했다. 우리 근대문학은 일제침탈이라는 정치적 역경 속에서 형성되고 전개되었다. 일제 식민지 체제에서 문학의 표현 매체인 우리말글을 마음대로 갈고 다듬을 자유가 허용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문학은 우리말을 세련되게 꾸며 보급시키려는 역할을 충실히 담당했다. 구어체가 문학작품 속에 잘 발달되지 않았던 상태였다. 곧 고전시가와 소설들은 대체로 문어체였는데 그것으로는 현대소설을 짓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지문과 대화체를 분리해서 구어의 속성을 반영하는 단계에서는 지역 방언이 고스란히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현대시 역시 음수율에서 벗어나 리듬과 운율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문어체보다 구어체가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밖에 없었다. 고전문학과 달라진 근대적 문학 언어의 사용 환경이 구어체와 문어체의 결합이라는 문학 언어로 탄생되었지만 표기 기준은 기껏 성경책 표기나 한글신문 기사나 잡지의 글쓰기 표기법을 흉내낼 정도였다. 근대문학 초창기에 우리 시인 작가들은 모두 글쓰기 방식에 대한 새로운 지향점을 모색해야 하는 과제를 인식하고 있었다. 김동인은 훗날 ‘약한 자의 슬픔’을 쓸 때 “나는 자라난 가정이 매우 엄격하여 집안의 하인배까지도 막말을 집안에서 못쓰게 하여 어려서 배운 말이 아주 부족한데다 열다섯 살에 외국에 건너가 공부한 만치 조선말의 기초 지식부터 부족하였고 게다가 표준어(경기말)의 지식은 예수교 성경에서 배운 것뿐이라 어휘에 막히면 그 난관을 뚫기는 아주 곤란하였다. 썩 뒤의 일이지만 그때 독신이던 나더러 경기도 마누라를 아내 삼으라 권한 일이 있다.”고 고백하고 있다. 정확한 조선어(표준어)를 좀 더 잘 사용할 수 있도록 경기도나 서울 출신의 아내를 얻으라는 충고를 들을 정도로 문인의 고뇌가 잘 드러난 내용이다. 최남선, 이광수, 김동인, 주요한, 김억, 이상화 등 20년대 이전 작가들의 작품 속에서 우리말의 표준어와 방언의 구별이 명확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동시대의 감각을 가지면서 여러 독자 또는 대중에게 신선하게 느껴질 말과 문장도 아직 분명하게 확립되지 않았던 시대였다. 그 당시 조선어학회의 표준어 맞춤법 제정을 위한 노력도 매우 중요했지만 ‘창조’, ‘장미촌’, ‘백조’, ‘폐허’ 등의 동인지 활동을 통해 당시 문인들이 표준어로 공식화할 수 있는 말을 골라 쓰고 문장을 만들어 대중에게 다가갔다. 근대 문학어의 탄생이라고 할 수 있는 우리 문인들의 시도가 우리 어문의 근대화와 표준화에 결정적인 힘이 되었다. 우리 사회에서 시와 소설은 아주 강한 전파력을 가지고 있었다. 나라를 잃은 슬픔의 시대에 문학 작품은 가장 큰 문화 교양을 알려주는 매체였고, 신지식을 습득하는 수단이었으며, 새로운 글쓰기와 글 읽기의 기풍을 확립해 준 셈이다. 1910년대 말에서 20년대 초에 걸친 시인과 작가들의 언어를 당대의 문학어라고 규정할 수 있다. 근대문학 초창기 우리 문인들은 아직 우리말글의 표준화가 이루어지기 전에 이미 서구의 양식에 발을 맞춘 문학작품 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그로부터 100년 후, 한강의 노벨상 수상이 발표되자, 한강은 많은 선배문학인이 있었던 덕분이라고 했다. 한강이 읽었던 선배문학인 또한 1920년대 현대문학 선구자들이 문학적 글쓰기의 힘든 길을 닦아낸 덕분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2024-11-25

어둠을 넘어 빛으로

2024년 10월 6일은 본격적인 제 75회 조선학회 발표가 있는 날이었습니다. 텐리역 앞에 새로 지은 비즈니스 호텔에서 간단히 조식을 먹은 저는, 동료 학자들과 함께 학회가 열리는 텐리(天理)대학으로 향했는데요. 텐리대학은 일본에서 가장 먼저 한국어 교육을 시작한 대학으로, 한국학 연구의 뿌리가 깊은 곳입니다. 이것은 텐리대학이 일본의 신흥종교인 텐리교의 해외 포교사를 양성하기 위해 설립된 텐리외국어학교의 후신인 것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텐리교는 1838년 가정주부였던 나카야마 미키(中山美伎, 1798∼1887)가 계시를 받아 일본 나라현 텐리시에서 창시한 일본의 대표적인 신흥종교입니다. 텐리교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인류가 즐겁게 사는 것이며, 그래서인지 기관지의 이름도 다름 아닌 ‘陽氣(양기)’입니다. 조금 과장하자면, 텐리는 도시 전체가 텐리교의 교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곳곳에 텐리교 시설이 있었습니다. 이 날은 총 3개 부분(문학분야, 어학분야, 역사학·고고학·문화인류학)에서 열일곱 명의 발표가 있었고, 제가 속한 문학분야에서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 30분까지 총 네 명의 발표가 있었는데요. 이 날 발표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텐리대 구마키 츠토무 교수의 ‘김동명의 시와 검열’이었습니다. 김동명은 ‘내 마음은 호수요 그대 노 저어 오오’로 시작되는 ‘내마음’(조광, 1937.6)이라는 시로 유명하죠. 구마키 츠토무 교수는 식민지 시대 여러 자료를 치밀하게 검토한 후에, 본래 김동명이 발표하려던 시의 많은 부분이 일제의 검열로 인해 삭제되었다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일제가 삭제한 부분은 민족의식이나 조선의 문화를 절절하게 표현한 것들이었는데요. 구마키 교수에 의하면, 김동명은 이에 좌절하지 않고, 비유(특히 은유) 등의 방법을 활용하여 검열된 부분을 새롭게 표현했다고 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오늘날 김동명 시의 특징으로 고평되는 부분은, 대부분 일제의 검열로 인해 탄생한 비유라는 것이었습니다. 외부의 탄압에도 굴하지 않는 김동명의 예술혼이 불후의 명작을 낳았다는 것인데요. 김동명이라는 시인의 숭고한 정신은 물론이고, 시대와 예술의 아이러니한 관계 등을 성찰해 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학회에서 준비한 도시락으로 간단히 점심을 해결한 우리 일행은, 교토에 있는 우토로 마을로 향했습니다. 우토로는 2차 대전 중 ‘교토 비행장’ 건설을 위해 모집된 조선인 노동자들이 살면서 생긴 마을입니다. 당시 ‘국책사업이라 징용에 안 가도 된다’, ‘살 곳도 있다’라는 소문을 듣 고 많은 조선인 노동자가 이곳에 모여들었다고 하는데요. 일본의 패전으로 교토 비행장 건설공사는 중단되었고, 조선인 마을이 된 우토로는 아무런 대책도 없이 일본국제항공공업의 후신인 닛산차체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우토로 마을의 조선인들은 거의 방치되다시피 하였으며, 심지어 이 곳에는 수돗물조차 공급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후 우토로 마을의 퇴거 재판은 역사적 배경을 무시한 채, 철저히 민간인 사이의 토지 소유권 분쟁 차원에서만 진행되었는데요. 그 결과 일본 대법원은 우토로 주민들에게 일방적으로 마을을 명도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반전은 이때부터 본격화되는데요. 이후 주민들과 지원자들은 더욱 열성적으로 노력하고, 여기에 한국 정부의 지원과 한일 양국 시민들의 모금이 더해지면서 우토로 마을의 토지 일부를 매입하게 됩니다. 이경재 숭실대 교수 반세기가 훨씬 넘는 동안 불안한 삶을 견뎌야 했던 우토로 주민들에게도 안주할 땅이 드디어 생기게 된 것이죠. 2015년 8월에는 한국의 인기 예능프로그램인 ‘무한도전’이 우토로 마을을 촬영하면서, 한국 사회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제가 우토로를 찾았을 때는, 제가 일본에 머문 날 중에 가장 화창한 날이었습니다. 지난 시절 재일 한인들이 겪은 아픔을 상징하는 우토로 마을이지만, 제가 방문했을 때는 2018년 1월부터 입주가 시작된 우토로 시영주택과 2022년 4월에 개관한 ‘우토로 평화기념관’이 말끔하게 단장한 모습으로 맞아주었습니다. ‘우토르 평화기념관’은 3층 건물인데요, 1층은 ‘교류를 위한 다목적 홀’, 2층은 ‘우토로 마을의 역사를 보여주는 상설 전시실’, 3층은 ‘기간별로 다양한 내용을 소개하는 기획 전시실’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이 평화기념관은 참으로 정성스럽게 꾸며져 있어, 누구라도 찬찬히 둘러보면 재일 한인의 어두웠던 역사와 그에 굴하지 않고 빛을 향해 나아갔던 뜨거운 발자취를 알 수 있을 정도였는데요. 애니메이션에나 나올 것 같은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우뚝 서 있는 ‘우토로 평화기념관’을 나서며, 저는 두손 모아 한일간의 밝은 미래와 재일 한인의 행복을 기원했습니다.

2024-11-25

낙엽 보도

강길수 수필가 저녁, 보도(步道)를 걷고 있다. 줄지어 선 아파트 단지 사이 이면도로의 보도다. 교육 출장으로 처음 온 낯선 곳이다. 사흘 지나면 11월 하순이 된다. 조명이 따뜻하게 내려앉은 보도엔 낙엽이 짙게 깔려있다. 커다란 플라타너스잎과 은행잎, 이름 모르는 잎들이 떨어져 함께 생을 마감하는 곳이다. 저쪽 놀이터엔 아이들의 깔깔대는 소리가 늦가을 저녁을 밝힌다. 나무들을 쳐다보니 아직도 단풍 든 잎들이 무성하다. 한데, 보도에 낙엽이 많은 건 일부러 치우지 않았다는 것이 된다. 주위에 낙엽처리용 큰 포대도 안 보인다. 2년 전 여름에 같은 목적으로 이 도시에 왔을 때는, 무궁화꽃 활짝 핀 이면도로 가로수가 애국지사를 만난 듯 반가웠었다. 나라꽃을 보려면, 무궁화가 있는 학교나 식물원에 가야 하는 슬픔을 걷어내기에 충분했었다. 교육 장소가 다른 구로 이사를 했다. 그래서 온 곳인데, 치우지 않은 낙엽이 내 마음을 따뜻하고도 슬프게 한다. 따뜻함은, 초저녁 낙엽 있는 놀이터에서 즐겁게 노는 아이들의 소리와 이따금 한두 명 낙엽 속을 걷는 사람들의 마음이 듣고, 보기만 해도 아지랑이처럼 다가오기 때문이다. 슬픔은, 시몬에게 ‘낙엽 밟는 소리가 좋으냐’고 묻는 시인 구르몽의 심사가 만추의 석양에 고목의 낙엽이 흩날리는 장면처럼 스미는 마음이다. 이곳 보도 관리인들은 따사한 분들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을에 낙엽을 음미할 수 있는 사람은 마음 따뜻할 테니까 말이다. 여러 가을을, 보도를 걸어 사무실에 오갔다. 그때마다, ‘보도 만이라도 낙엽을 다 지고 스러질 때까지 놔두면 얼마나 좋을까’란 바람을 가졌고, 글로 쓰기도 했었다. 그런데 이곳은 그런 바람이 이루어지고 있으니, 행복감이 마음을 촉촉이 적셨다. ‘그래. 이런 게 우리 민족의 정서야!’하는 생각과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묘한 어울림으로 가슴에 몰려왔다. 삶과 죽음이 손바닥과 손등처럼 가깝다는 사실을 아직도 신나게 노는 저 아이들은 알지 못하리라는 마음이 들자, 낙엽을 밟으며 걷는 어른들의 모습으로 눈길이 갔다. 두 장면이 겹치면서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현장이 지금, 여기에 실존하고 있었다. 지구촌은, 전쟁과 자국의 이해타산 챙기기로 황망하다. 소모전이 길어지며 전쟁 당사국은 물론, 다른 나라들도 고물가와 미래의 불확실성 증가로 어지럽다. 왜 권력자들은 인생도 자연처럼 계절이 있다는 사실을 망각할까. 삼라만상에 생명보다 귀한 것은 없다. 권력자가 생명 존중심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젊은 군인들과 힘없는 백성들을 자기 대신 전장에서 죽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북한군 침략국 파병과 전쟁터에서 귀한 생명들의 희생 소식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핵을 쓰겠다며, 세계 3차 대전을 들먹이는 침략국 권력자는 영생이라도 하는 걸까. 그가 보도의 낙엽과 그 길을 걷는 사람들 같은 인간이라면, 당장 전쟁을 멈춰야 하지 않을까. 처음 만난 낯선 저녁의 낙엽 보도를 걸으며, 하느님이라도 개입하여 지구촌에서 전쟁을 없애 주시기를 비는 마음 간절했다.

2024-11-25

일상의 페미니즘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우리 사회에 젠더 문제가 격화된 것은 2018년이었다. 미투(MeToo) 운동을 통해 현직 검사, 연극 연출가, 배우, 정치인 등 유명인의 성범죄에 대한 폭로가 이어졌으며, 2020년에는 유력 정치인의 자살이 사회적 충격을 주기도 했다. ‘페미니즘 리부트’로 명명되었던 2010년대 후반, 일련의 사건은 우리 사회의 성평등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음을 새삼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다. 일부 남성들의 혐오 발언이 있었지만, 자성과 변화의 목소리가 높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지만 이후 우리 사회는 젠더 갈등이 더욱 심해지고 혐오의 감정은 확산하였다. 2021년 도쿄올림픽 메달리스트에 대한 페미니즘 논쟁이나 지난 대선 당시 여성가족부 폐지를 내걸었던 정치인의 모습이 상징적으로 보여주듯 페미니즘에 대한 양가적 시선은 반복해서 재생산되었다. 특히 2020년 트랜스 젠더 학생의 모 여대 입학을 페미니즘 단체를 표방했던 집단이 반대하며 문제를 더욱 심화시켰다. 페미니즘은 생물학적 여성만을 위한 이념이라는 생각이 깊어졌기 때문이다. 정치적 지향을 둘러싸고 생겨난 ‘이대남/이대녀’라는 신조어도 우리 사회의 젠더 갈등을 보여주는 또 다른 증거이다. 이렇게 페미니즘은 여성만을 위한 이념으로 우리 사회에 각인된 듯하다. 최근 본부의 남녀공학 전환 논의에 대학 건물 점거와 수업 거부로 대응했던 모 여대 사건이 보도되며 다시 우리 사회의 젠더 갈등을 가시화했다. 뉴스를 통해 과격한 발언을 하는 여학생들의 모습이 보도되고, 관련 기사를 퍼오며 ‘남성/여성’은 서로를 향한 혐오 발언을 멈추지 않았다. 이 사태에 대한 내 주위 학생들의 입장도 성별에 따라 둘로 나뉘어 있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우선 여대의 남녀공학 전환이라는 대학의 정체성을 변경하는 중요한 문제를 학생들과 소통 없이 진행하려는 본부의 태도가 문제이다. 학령위기의 급격한 감소라는 위기 앞에 남녀공학 전환이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에는 공감하지만, 학교의 본질을 뒤바꾸는 사안을 학내 구성원과의 협의 없이 진행하려는 독단적 태도가 일을 키웠다. 대학의 의사결정과정이 내재한 위계적 시선이 새삼 드러난 것이다. 학교 발전이란 대의에 모두 공감한다면 각자의 각론을 열어놓고 지루하지만, 꼭 필요한 토의의 과정을 거칠 수는 없었을까. 다시 말해 페미니즘이란 우리 사회 전반의 의사결정에 내재한 위계성을 재고하는 시각일 수 있다. 일상의 페미니즘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러한 시각은 그간의 이분법적 구도를 넘어설 수 있다는 점에서 유용하다. 페미니즘 혹은 젠더적 시각에서 세상을 본다는 것은 남성/여성의 이분법을 포괄한 위계와 배제의 시선을 인식하고 넘어서는 일이다. 대학의 의사결정권자들이 학내의 중요한 의사결정 과정에서 학내 구성원을 배제하는 행위가 담고 있는 폭력성과 거기에 내재된 위계의 시선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게 더 나아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는 사회의 위계성을 파악하고 해결하고자 노력할 때 끝을 알 수 없는 젠더 갈등을 넘어설 수 있지 않을까.

2024-11-25

취향 실종의 시대

‘홍대병’이라는 말이 있다. 서울의 홍대 앞을 중심으로 한 비주류 문화를 향유하는 이들을 비꼬는 말이다. 항상 주류보다는 비주류를 선호하고 자신이 선호하던 비주류 문화가 주류문화로 떠오르면 가차없이 버리고 떠나곤 하는 이들, 주류 문화를 환멸하고 비주류를 선호하는 자기 자신에 대한 나르시시즘에 빠져 사는 사람들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 담겨 있다. 나도 오랫동안 이 홍대병에 빠져 살았다. 남들이 모르는 음악을 듣고, 남들이 모르는 영화를 보고, 남들이 입지 않는 옷을 입으며 자부심을 느끼곤 했다. 어쩌면 시인이 되고 인디뮤지션이 된 것도 남들이 흔히 택하지 않는 길을 택하려던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이십 대 내내 내가 앓고 있던 수준의 과도한 홍대병은 바람직하다고 보기 어렵다. 자신이 비주류 문화를 향유하는 것은 취향의 스펙트럼을 넓히는 바탕이 되곤 하지만 주류문화를 깔보는 것은 사회 전체가 좋은 것이라고 합의한 많은 것들을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차단하는 태도가 되기도 한다. 대중은 바보가 아니다. 오히려 대다수의 개인보다 대중이 옳은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세상에는 고평가된 것들이 수도 없이 존재하지만 그것들 중 대부분은 그럴 만 한 이유가 있어서 그렇게 된 것들이다. 이러한 사실들을 배워가는 것도 어른이 되는 과정 중 하나이다. 나도 이제는 흔히 ‘정답’이라고 말하는 주류적 선택을 하게 되는 일들이 많이 있다. 이를테면 내가 차는 시계가 딱 그렇다. 내가 매일 차는 시계는 당시 시계 구입을 위해 마련된 예산 안에서 가장 대중적이고 취향을 타지 않는 모델이었다. 시계에 대해 별다른 지식이 없었던 나는 주변에서 시계에 대해 가장 많은 지식을 가진 친구에게 가장 안전하고 무난한 선택지를 달라고 부탁했고, 친구는 주저 없이 지금 내가 차고 있는 시계의 브랜드와 모델명을 추천해 주었다. 휴대폰이나 컴퓨터 같은 전자제품들을 살 때도 나는 가장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제품을 선택하는 편이고, 다음에 구매하려고 눈여겨보고 있는 자동차도 나와 비슷한 여건에 놓인 사람들이 가장 많이 선택하는 것 중에 하나라고 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정답이라고 합의한 것을 선택하는 것은 편리하다. 그 선택에 대해 나무라는 사람도 없고 귀찮은 질문을 하는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경우 딱히 후회할 만 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도 좋은 점이고, 무엇보다 무언가를 고민할 때 소모되는 시간과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세상을 살아가며 우리가 해야 하는 선택이 얼마나 많은가. 일일이 자신만의 취향을 고집하는 것은 피곤하고 비효율적인 일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주류를 선택하는 행위가 가진 효율성이 점점 나를 개성 없는 인간으로 만들고 내 삶을 삭막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각종 음원 사이트에서 인플루언서들이 만들어 놓은 플레이리스트를 재생하며 더 이상 음악을 집중해서 듣지 않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그 옛날 음반가게에 가서 삼십 분이고 한 시간이고 씨디를 고르고, 한 트랙 한 트랙을 소중하게 듣던 시절에 비하면 음악 듣는 재미가 현저히 줄어들었다는 것을 느낀다. 플레이리스트는 수십 곡의 히트곡들을 들려주지만 기억에 남는 건 아무것도 없다. 강백수 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 멀티플렉스에 대기업이 걸어 둔 천편일률적인 흥행작을 아무런 고민 없이 예매하고, 서점에 들러 습관적으로 베스트셀러코너 최상단에 놓여 있는 책을 고른다. 심지어 식사 메뉴마저 내가 먹고 싶은 것을 고민하기보다는 인근에 별점 높은 식당의 주력 메뉴가 무엇인지를 우선순위에 놓고 선택한다. 내내 정답만을 선택하다보니 정작 내가 주도적으로 내린 결정이 하나도 없는데 그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매일 매일이 흘러간다. 편리함에 속아 자신의 취향은 실종되어버리고 그러는 사이에 나는 천편일률적인 인간군상 중 한 명이 되어있는 것이다. 섬뜩한 기분이 들지만 지금도 세상은 더욱 편리한 선택을 제시한다. 개개인의 취향과 의견이 하나하나 빅데이터로 대체되어버리고 만다. 우리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다. 취향의 실종은 곧 자아의 실종이다. 나의 자아가 사라져버리기 전에 나는 나의 취향을 회복해야 한다. 물론 모든 분야에 있어 능동적인 선택만을 할 수는 없다. 나는 여전히 시계나 전자제품, 자동차로까지 나의 개성을 드러내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적어도 나의 에너지가 허락하는 선 안에서는 스스로 고민하고 결정하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나는 무엇이 먹고 싶은가. 나는 무엇을 읽고 보고 듣고 싶은가.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고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또 무엇인가.

2024-11-25

도움받는 일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어시장 근처다. 어쩌다 그곳에 살게 되었어요? 나에 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은 의아하다는 듯 묻는데 구구절절 설명하기가 어려워 부모님 집이에요, 하고 얼버무린다. 장성한 청년이 부모님의 도움을 받고 있다고 말하기가 참 머쓱하지만 그것이 또 사실이기도 하여서 머리를 긁적이는 순간이 잦다. 온전히 자립하게 되었다는 감각은 대체 언제 느끼게 될까? 애초에 그런 것이 가능하기는 할까? 어쨌든 지금의 나로서는 이 동네를 떠나지 못하는 처지다. 이곳에 관해 말해 보자면, 펄떡거리는 생명력으로 가득한 공간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문밖을 나서면 관광객들의 흥성거림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고 주말에는 지하철역에서 파도처럼 밀려 나오는 인파를 마주하기 일쑤다. 여기서 살며 두드러지게 발달한 감각은 취객을 알아보는 능력이다. 적당히들 마시고 들어가세요, 하는 눈짓으로 맨정신이 아닌 사람들을 요령껏 피해 가는 재주가 꽤 뛰어나다고 자부한다. 이러한 동네의 분위기가 달갑지만은 않다. 내가 살고 싶은 동네는 느리고 조용한 곳이다. 인적이 드물수록 좋다. 모르는 사람과 어깨를 부딪치는 일은 내게 항상 큰 부담이었으니까. 그런 면에서 지금의 동네는 어딘지 모르게 나와 어긋나 있다. 언제부터일까. 나는 이곳에 묘한 친밀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어시장의 상인에게서 기인한 것이다. 작업실을 가기 위해선 시장을 꼭 지나쳐야 하는데, 자연스레 그들을 자세히 바라볼 기회가 생겼다. 거기에 더해서 내가 다니는 사우나에서도 자주 마주치는데, 그들이 서로 나누는 이야기를 듣다 보니 아주 가까운 사람을 마주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다. 요즘 그들의 입에서 자주 나오는 단어는 ‘김장’이다. 절인 배추가 얼마고 양념에 무엇을 넣으면 맛있다는 정보, 그럼 다음 주에 내가 언니네로 갈게, 하는 대화 같은 것을 사우나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훔쳐 들었다. 얼마 전, 시장을 지나면서 매대 뒤편에 커다란 대야를 놓고 네댓 명이 둘러앉아 김장을 하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었다. 혹시 사우나에서 본 사람이 이 사람인가 저 사람인가 하는데 “왜요? 뭐 줄까?”하고 여자 중 한 명이 말을 걸어왔다. 아니에요, 하는 내 등 뒤로 “우리 여기 집 도와주는 거야.”하며 누군가 큰 소리로 외쳤다. 내게 상황을 설명한다기보다 저들끼리 웃고 떠들기 위해 하는 말이었다. “도와주긴 뭘 도와줘, 염병!” 그 말이 끝나자마자 웃음이 와르르 쏟아졌다. 바지런히 손을 움직이는 이들을 뒤로한 채 시장을 빠져나왔다. 이곳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활기가 늘 부담스럽다고 생각했는데 또 막상 그렇지만은 않은 모양이었다. 나도 모르게 킥킥 웃었다. 이런 식의 우스갯소리를 목격하고 정색할 순 없는 노릇이다. 나는 여자들의 삿된 소리만큼 재미있는 것은 또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니까.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최근이다. 그 어느 때보다 집 안에 갇혀 혼자 있는 시간이 가장 편안하다. 누군가를 만나고 돌아오면 끙끙 앓으며 악몽까지 꿀 정도다. 내가 실수를 한 것이 아닐까. 거기서 그 말은 하지 말아야 했는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끝이 없다. 무엇보다 타인과 도움을 주고받는 일이 괴롭다. ‘나를 도와줄 수 있나요?’ 하는 이야기를 제대로 하지 못해서 일 처리를 못한 날도 있고 혼자 해결할 수 있다고 자신하다가 엉뚱한 결과를 낳은 적도 있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생각해 보면 용기를 그러모아 타인에게 도움을 요청하였을 때 명쾌하게 해결된 경우가 더 많았다. 그러나 나는 나의 무능을 들키고 싶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손을 내미는 일을 자꾸 꺼리게 된다. 타인에게 도움받는 일을 부끄러워하지 말자고 결심해 본다. 조금은 뻔뻔해져도 된다고. 사실 나는 이미 너무나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니 어떤 면에선 이미 뻔뻔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뻔뻔하고 무능한 사람. 그게 뭐 나쁜가 싶기도 하다. 인생이 관성의 법칙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말이 정말 사실이라면 생각보다 많은 일들이 단순하게 해결될 것이다. 슬픈 일이 있다면 곧 기쁜 일이 찾아올 것. 도움받는 일이 있으면 응당 도움을 주는 상황도 생길 것. 둘러앉아 빨갛게 김치를 버무리는 상인들을 떠올려 본다. 그들은 꽤 즐거워 보였고 덕분에 나는 이 동네가 한 뼘 더 좋아졌고 우리는 함께 살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는 사실이 실감 나곤 한다.

2024-11-25

정치가 간섭하면, 재판이 ‘아수라’ 된다

김진국 고문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애처롭다. 1심에서 당선 무효에 해당하는 징역형을 선고받고 초조한 기색이 역력하다. 2심, 3심이 남아 있다지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라는 1심 형량을 고려하면 불안하기 짝이 없다. 선거법 위반 사건은 벌금 100만 원 이상만 받아도 다음 선거에 나갈 수 없다. 아무리 감형 노력을 해도, 그 아래로 내려가기 쉽지 않아 보인다. 그게 끝이 아니다. 오늘(25일) 위증교사 혐의 1심 선고가 있다. 지난해 구속영장 실질심사에서 영장전담 판사는 위증교사 혐의가 소명됐다고 적시했다. 검찰 기소에서 유죄는 입증됐다는 말이다. 그 밖에도 3건의 재판을 더 치러야 한다. 갈수록 무거운 혐의들이다. ‘대장동·백현동·성남FC 특혜 의혹’을 묶은 재판과 대북 송금 혐의, 경기도 예산 1억여 원을 배임한 혐의도 있다. 며칠 전 부인 김혜경 씨가 유죄 판결을 받은 법인카드 유용 사건과 관련해 추가 기소됐다. 마지막 사건은 상대적으로 작아도 수치스러운 혐의다. 세금으로 이 대표 부부가 쇠고기·초밥·복요리 등을 시켜 먹고, 과일 등 제사용품, 샌드위치 등 아침식사, 세탁비까지 경기도 법인카드로 결재했다는 내용이다. 경기도 의전용이라고 산 차를 김 여사 개인용으로 썼다는 부분도 있다. 이 대표는 정치보복이라고 분개한다. 하지만 권력형 부패를 용납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 대표 대응도 바빠졌다. 이 대표는 수사를 담당한 검사들 탄핵을 추진했다. 헌법재판소가 기각하건 말건, 탄핵 소추된 검사는 일단 직무가 정지된다. 엄청난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지난 총선에서는 이 대표 사건을 변호한 변호사들이 대거 공천받았다. 민주당 텃밭에서 모두 당선됐다. 민주당이 이 대표 변호용 로펌처럼 움직인다. 국회 법사위가 법원과 검찰을 흔든다. 국정감사, 국정 조사는 물론 특별검사까지 동원한다. 입법과 예산으로 방탄막을 친다. 민주당이 절대다수 의석을 차지해 가능해졌다. 검사를 무고죄로 처벌하는 형법 조항을 새로 만든다고 한다. 수사기관이 증거를 조작하거나 위증을 강요하면 처벌한다는 내용이다. 이 대표는 자신에게 불리한 혐의가 모두 검찰의 무고요, 증거 조작이라고 주장해 왔다. 이 대표를 수사한 검사들을 향한 협박이다. 내년 예산에서 검찰의 특수활동비 80억 원, 특정업무경비 506억 원을 모두 깎아버렸다. 경찰청 특활비 32억 원·특경비·6481억 원과 감사원 특활비 15억원·특경비 45억 원도 민주당 단독으로 모두 삭감했다. 누가 봐도 비리 수사에 대한 보복이다. 민주당은 국회 전체 의석의 5분의 3 가까이 차지했다. 전무후무하게 강력한 힘을 가진 야당이다. 권리와 의무는 함께 간다. 거대한 의석을 차지했으면 국회 활동에 대해 책임도 져야 한다. 대한민국의 국회가 특정 개인의 불법행위를 두둔하기 위해 정책을 추진하고, 예산을 배정하고, 법을 만들어도 괜찮은가. 허위 사실 공표와 관련해 이 대표에게 징역형이 떨어지자, 민주당은 아예 선거법의 관련 조항을 지울 궁리까지 한다. 공직선거법에서 ‘허위사실공표죄’와 ‘후보자비방죄’를 삭제하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법원의 중형을 못 막을 거면 그 근거가 되는 조항을 아예 없애버리겠다는 것이다. 당선무효형 기준도 벌금 100만 원에서 1000만 원으로 올려 고치기로 했다. 여기에 오비이락(烏飛梨落)이느니, 오얏나무와 갓끈 얘기는 너무 진부하게 들린다. 노골적인 방탄 입법인데, 포장은 민주주의다. 개정 제안서를 보면 “자유로운 의사 표현과 활발한 토론이 보장되지 않고서는 민주주의가 존재할 수 없다”라면서 “선거 과정에서 자유로운 의사 표현과 활발한 토론은 사법 자제(自制)의 영역”이라고 주장한다. 유권자에게 거짓말 좀 하는 게 무슨 잘못이냐는 말이다. 그런 거짓말 정도는 허용해야 민주주의가 살아남는다고 한다. 살아남는 게 민주주의인지, 이 대표인지 헷갈린다. 공직 후보에게 거짓말을 허용하면 국민은 무슨 기준으로 표를 찍나. 민주당은 이재명 지키기에 올인한다. 정책도 예산도 거기에 맞춘다. 정의의 심판은 법정에서 가려야 한다. 정치가 끼어드는 순간 정의는 사라진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11-24

사람을 움직이는 힘

엄주선 포스텍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최근 정년퇴직하는 연령대는 60년대 초반에 태어난 사람들로 한국의 산업화와 경제 발전을 이끈 주역들이다. 이들이 입사할 당시는 급격한 산업화로 철강수요가 증가하여 많은 생산량을 필요로 하였기에 설비가 지속적으로 증설되면서 짧은 기간에 많은 인원이 한꺼번에 입사를 하였다. 이들은 설비를 처음 도입 단계부터 시운전을 거처 수십 년간 정상적으로 운영해왔기 때문에 경험과 실력을 모두 겸비하고 있은 세대이기도 하다. 이렇게 경험과 실력을 겸비한 인재들이 최근 대거 정년퇴직을 하면서 2030세대 직원들도 동시에 자연스럽게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개선에 대한 성공 체험을 한적이 없다 보니 현장 활동에 동참하는 것을 꺼리며 심한 경우는 왜 굳이 개선활동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반감을 나타내기도 한다. 이런 현상은 현재 대한민국의 인구의 변화로 볼 때 어느 현장에서도 동일한 문제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면서 젊은 세대를 움직이기 위해서는 다음의 5가지가 필요하다. 첫째는 개선을 왜 필요한지 무엇을 하기 위함 인지를 바르게 인식 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이다. 개선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본인의 일을 쉽고 안전하게 하는 것이며 이를 통해 본인의 성장은 물론 회사 이익에 기여 함으로써 일에 대한 성취감을 느끼고 나와 회사가 지속적으로 살아남기 위해서이다. 둘째는 목표의 설정이다. 생산 품질 원가 안전 환경 측면의 목표를 제시하고 현재 수준과 목표와의 차이를 문제로 도출하여 과제를 선정해야 한다. 목표는 스스로 설정 할 수도 있지만 회사의 지표와 연계하여 상사가 부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게 함으로써 서로 동일한 문제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게 되고 자연스럽게 개선이 소통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셋째는 개선 활동에 대한 인정과 격려이다. 개선이 얼마가 진행되었는지 진행과정에 어려움은 없는지 주기적으로 진도를 체크하고 그동안 진행된 부분에 대하여 인정과 격려를 해주면서 혼자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는 같이 도와주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서로 소통하게 되고 고마움을 느끼게 되므로 오히려 금전적인 보상 보다도 더 큰 효과가 있는 것이 인정과 격려이다. 넷째는 성장이다. 개인과 회사의 성장은 개선활동을 하는 궁극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생산과정의 낭비와 문제를 발굴하는 안목을 키우고 개선 역량을 높여 어려운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스스로가 보람과 성취감을 느끼도록 하는 것이다. 실제 보이는 것을 발견하는 것 보다는 보이지 않는 문제를 발굴하는 것이 어려우며 이는 그 공정과 설비에 대하여 깊이 있게 학습하지 않으면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는 것이다. 마지막 다섯 번째가 보상이다. 당초 목표로 한 개선 성과에 대하여 적절하게 보상하는 체계이다. 이는 지속적인 개선을 하게 하는 동력으로 동기부여가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이지 않는 인정과 성장 보이는 보상이 지속될 때 사람은 변화하고 움직인다.

2024-11-24

기록하라, 연결될 것이다

유영희 작가 지난 9월, 올해 박경리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프랑스의 실비 제르맹은 10월 말 대산문화재단과 교보문고가 주최한 ‘세계 작가와의 대화 초청 강연’에서 ‘써라, 그래야 존재할 것이다.’라는 강렬한 말을 남겼다. 이 이야기를 지난주 목요일. 사회적 독서 컨퍼런스에서 다시 확인하게 되었다. 사회적 독서 컨퍼런스는 6년째 매년 열리고 있는데, 올해 주제는 ‘돌봄과 함께 읽기’였다. 컨퍼런스에서는 읽기보다는 쓰기가 더 다루어졌지만, 읽기와 쓰기는 한 몸이니 문제는 없다. 돌봄은 평소 관심 있는 주제이기도 했고 ‘차가운 똥과 돌봄 위기’이라는 칼럼을 쓴 조기현 씨가 발표자로 나와서 더 관심 있게 보았다. 얼마 전 글쓰기 시간에 이 칼럼을 소개했는데, 정갈한 글솜씨와 시의성 있는 문제의식으로 수강생 모두 크게 감동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조기현 씨가 스무 살 때 아버지가 당뇨합병증으로 쓰러지고 나중에는 인지저하증까지 왔는데, 2인 가족이었던 터라 12년째 아버지를 돌보고 있는 청년이었다. 이날 컨퍼런스는 돌봄 관련 책을 출판하는 돌고래출판사 김희진 대표가 사회를 맡고, 김다은 예술기획자, 장하원 부산대 연구원이 같이 참여했는데, 이들 모두 이구동성으로 동의한 것은 읽기 쓰기로 고통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조기현 대표 역시 고립에서 오는 상실감을 수용하고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애도라고 정의하고 자신 역시 언어화를 통해 고통을 극복해오고 있다고 증언했다. 이날 발표에서 조기현 씨는 아버지를 전적으로 돌보면서 가장 힘든 것이 사회적 고립이었다고 한다. 그는 고립을 벗어나기 위해 글쓰기를 선택했고, 그렇게 아버지를 돌본 9년의 기록을 써서 ‘아빠의 아빠가 됐다’를 출간했다. 책을 몇 권 출간하면서 같은 처지에 있는 돌봄 청년들을 만나게 되고, 이른바 영 케어러들의 자조 모임 돌봄청년커뮤니티 ‘n인분’도 만들어 활동하면서 고립감이 해소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돌봄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으나 내게는 돌봄이 각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엄마가 파킨슨 병으로 13년간 집에서 투병하셨는데 엄마가 다른 사람의 손길은 완강히 거부하셔서 아버지가 엄마를 주로 돌보셨다. 그때 아버지가 힘들어했던 것이 육체적 고단함보다도 사회적 단절이었다. 엄마가 돌아가신 뒤 엄마의 부재에서 오는 상실감을 극복하기 위해 아버지도 글을 썼다. 엄마가 돌아가신 해 여름 자서전을 쓰면서 존재감도 느끼고 사회와 연결되고 있다는 느낌도 강렬하게 받았던 것 같다. 자서전을 집필하던 몇 달 동안은 아버지의 온몸에서 생기가 넘쳤다. 난치병에 걸린 사람들은 자신의 투병기를 글로 써서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혈액암에 걸렸던 지인은 혈액암 투병기를 올린 많은 블로거들에게서 희망을 발견했다고 한다. 실비 제르맹은 ‘읽어라, 그러면 발견할 것이다’라고 덧붙였는데, 읽기와 쓰기는 이렇게 한 몸이 된다. 전체 가구의 30%에 육박하는 1인 가구 시대에 자기돌봄은 점점 더 중요해진다. 기록하라, 그러면 연결될 것이다. 그것은 이제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말이다.

2024-11-24

울진군, K-원전의 중심으로 도약

손병복울진군수 정부는 K-원전 산업이 정상화를 넘어 세계 최강국으로 거듭나기 위한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울진이 있다. 지난 10월 30일 한국수력원자력 한울원자력본부에서 신한울 1·2호기 종합준공식 및 3·4호기 착공식이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해 산업부 장관, 한수원 사장과 국내 주요 인사들이 대거 참석해 그동안 성과를 축하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날 행사는 단순한 원전건설이 아니라 최근 체코 신규 원전 우선협상대상자에 한국이 선정된 것과 함께 원전 생태계의 완전한 정상화로 가는 디딤돌을 마련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또한 탈원전 정책으로 그동안 침체됐던 울진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 넣을 수 있는 계기도 마련했다. 신한울 3·4호기 건설은 2032년부터 2033년까지 경북 140만KW(킬로와트)급 원전 2기를 짓는 사업이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관계 부처와 지자체들의 철저한 준비를 통해 평균 30개월이 걸리는 인허가를 11개월 만에 신속하게 처리해 마침내 공사에 착수할 수 있게 됐다. 약 11조가 넘은 공사비가 투입되며 8년간 누적 기준 720만명의 고용 창출이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대규모 프로젝트이다. 건설 인력에게 지급되는 임금과 지역 업체의 직·간접적인 공사 참여 등을 통해 지역경제 활성화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울진군은 이번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로 K-원전 중심도시로 도약하는 것과 함께, 원전건설이 지역 발전에 도움이 되도록 총력을 다하고 있다. 지난 6월에는 신한울 3·4호기 사업시행자, 주 설비공사 시공사와 지역상행협약을 체결했다. 지역업체가 공사에 참여할 수 있도록 발주 예정 공종을 선별하고 상생협의체를 구성해 지역업체 참여 현황과 자재, 장비 및 인력 등의 사용 현황을 분기별로 점검할 계획이다. 또한 지난 9월에는 신한울 3·4호기 주설비 공사 시공사인 현대컨소시엄(현대건설(주), 두산에너빌리티(주), (주)포스코이앤씨)이 지역업체 참여방안 설명회를 개최하는 등 지역업체가 최대한 참여할 수 있는 방안을 지속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더불어 신한울 3·4호기 건설에 따른 특별지원금이 울진군에 교부돼 지역 발전을 위한 가용재원을 확보할 수 있다. 지역에 지원되는 지원금은 크게 단기와 장기로 구분된다, 단기적 지원으로 특별지원금이 있다. 건설비에서 부지 구입비를 제외한 금액의 1.5% 범위에서 책정되고 원전 9기 이상 0.5% 가산 지원금이 추가된다. 현재 기준 신한울 3·4호기 건설비 11조5000억 원의 2% 수준인 약 2300억 원 규모가 될 것으로 추산된다. 장기적 지원으로는 사업자지원비와 기본지원비, 지역자원시설세가 있다. 사업지지원비와 기본지원비는 각각 전전년도 발생량 1kwh 당 0.25원으로 책정한다. 건설 기간을 포함해 가동 기간 60년 동안 지원되며, 이용률 80% 기준 신한울 3·4호기 건설 및 가동을 전제로 약 6000억 원(사업자 3000억 원 + 기본지원 30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밖에도 원전가동기간(60년) 동안 납부되는 세금인 지역자원시설세는 당해발전량 1kwh당 1원으로 산정해 신한울 3·4호기 가동 시 60년간 약 1조 1700억 원이 납부될 것으로 예상된다. 울진군은 군민들의 노력과 희생으로 대규모의 자금이 지원되는 만큼 울진발전과 군민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철저하게 준비하고 계획을 세워 사용할 예정이다. 또한 눈에 보이는 단기적인 성과보다는 울진군의 백년대계를 준비할 수 있는 곳에 사용할 계획이다. 주민대표들이 참여하는 위원회를 구성해 효율적인 사용 방안 계획을 수립해 나갈 방침이다. 신한울 3·4호기가 준공되면 세계 최대 10기의 원전을 보유하게 되는 울진군은 원자력 전기를 이용해 수소를 생산하는 원자력수소 국가산업단지를 추진중에 있으며 현재 예타면제까지 확정된 상황이다. 신한울 3·4호기를 비롯한 울진의 원자력은 국가산단을 통한 수소생산으로도 이어져 대한민국의 에너지자립은 물론, 기후위기 탄소중립에도 기여할 수 있다. 원자력은 울진군의 지속 가능한 발전과 희망찬 미래를 여는 중요한 성장동력이다. 신한울 3·4호기 건설과 더불어 원자력수소 국가산단은 울진군 번영과 지방소멸 시대 극복의 기회가 될 것이다. 원전사업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수 있도록 울진군민들과 함께 최선을 다하겠다.

2024-11-24

금지곡

‘참을 수가 없도록 이 가슴이 아파도, 여자이기 때문에….’ 엄마가 싫어하는 노래가 하나 있었다. ‘여자의 일생’이라는 노래다. 엄마는 그 노래를 유독 싫어했다. 큰 소리로 가요를 따라 부르다가도 그 노래가 나오면 빠른 속도로 버튼을 눌러 껐다. 그 노래는 우리 집의 금지곡이었다. 그 노래 속에는 엄마 동생의 삶이 들어 있었다. 노래의 가사처럼 여자이기 때문에 말 한마디 못하고, 헤아릴 수 없는 설움 혼자 지닌 채, 떠나 버린 이모는 엄마의 아픈 노래였다. 이모는 어린 시절부터 우리와 함께 살았다. 아버지는 이모의 공부 뒷바라지를 하며 처가의 짐을 덜어 주었다. 이모는 우리 남매들에게 언니 같은, 누나 같은, 아버지에게는 자식 같은 그런 존재였다. 하지만 아버지의 이모 뒷바라지는 그리 길지 못했다. 이른 나이에 폐결핵으로 삶을 정리하며 집에서 요양을 했다. 젊은 엄마에게는 아버지의 병간호와 생계의 멍에가 너무 무거웠다. 엄마를 대신하여 이모는 학업을 포기 하고 우리를 돌보았고, 우리 남매들의 뜨신 밥을 맡으면서 우리 집의 살림도 떠맡게 되었다. 몸이 아픈 아버지는 예민해지고, 성격은 날로 불같이 변해갔다. 무슨 일이든 참지 못했고, 이모와 자주 싸웠다. 곰보였던 이모 얼굴은 비포장 길처럼 울퉁불퉁했다. 사춘기였던 우리 3남매는 그런 이모를 친구들 앞에서 늘 부끄러워했다. 어느 날, 집 마당이 소란스러워 나가보았다. 동네 사람들이 가득 모여 있었다. 건넛방 아저씨가 돈 3만원을 잃어 버렸다는 것이다. 마당을 쓸다가 3만원을 주운 이모는 도둑으로 의심을 받게 되었다. 이모는 자초지종을 말했지만 마을 사람들은 아무도 믿어 주지 않았다. 아버지는 동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이모의 옷을 구석구석을 뒤졌다. 눈물로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이모의 음성은 허공에 울리는 메아리가 되었다. 다음 날, 눈물 줄기 같은 비가 내렸다. 이모는 우리에게 말 한마디 없이 떠났다. 부엌의 도마 소리는 허공에서 자꾸만 들려왔다. 마당에 날아와서 먹이를 쪼아 먹던 까치도 외로워 보였다. 정답게 이야기 해 주던 이모가 사라진 자리에서. 모든 집안일은 아버지와 언니의 몫이 되었고 엄마는 더욱 바빠졌다. 이모는 점점 우리 모두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있었다. 세월이 흐르고 기억의 끈도 삭고 삭아졌다. 하지만 엄마는 우리와 달랐다. 텔레비전에서 ‘여자의 일생’ 노래가 나오면 채널을 돌렸다. 우리가 따라 부르는 것도 싫어했고 화를 내기도 했다. 잊히지 않는 이모를 떨쳐내고 있는 것이었을까. 창밖에 새끼 손톱만한 달이 까만 하늘에 노랗게 박혀있는 것을 보며 잠이 들었다. 어둠이 짙은 밤공기를 따라 흐르는 노래 소리는 구슬프게 들렸다. 엄마는 우리의 머리맡에 앉아 달을 보며 우리에게 금지시켰던 노래를 조용조용 부르고 있었다. ‘참을 수가 없도록, 이 가슴이 아파도 여자이기 때문에 말 한마디 못하고’ 내 볼에 닿는 엄마의 소매는 젖어 있었다. 김경아 작가 강산이 서너 번도 더 바뀌었다. 엄마는 10년 전부터 이모의 제사를 지냈다. 그런데 어느 날, 뜬금없이 엄마는 이모를 찾고 싶다고 했다. 우리는 엄마의 뜻을 받아들여 이모를 찾아보기로 했다. 이모를 찾기로 마음먹기까지 참으로 오랜 아픔을 그냥 넘기며 살아왔다. 이모는 살아 있었다. 35년 만에 이모를 만났다. 이모는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다. 큰언니였던 엄마는 허리가 다 꼬꾸라져 있었고 말썽쟁이였던 막내 동생은 백발이 무성했다. 이모의 곰보 자국 덕분에 우리가 이모를 알아보는 일은 그리 힘들지 않았다. 준비되지 않았던 이별과 만남의 대사는 눈물이 대신했다. 이모는 우리 집으로 가고 싶다고 했다. 그리도 모질게 대했던 아버지와 숙맥 같았던 이모의 만남이었다. 두 사람 모두 이가 숭숭 빠진 모습으로 끌어안고 우는 모습은 백일 된 아기 같았다. 눈물의 의미를 아무도 해석하지 않았지만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모는 아버지의 손을 맞잡았다. 모두가 손을 잡았다. 그때, 아버지가 ‘여자의 일생’ 노래를 갑자기 부르기 시작했다. 긴 세월 우리 집에서 금지 되었던 노래가 풀리는 순간이었다.

2024-11-24

태아성감별 금지법 역사속으로

우정구 논설위원 태아 성감별 행위에 대한 논란을 종식시킨 것은 법 제정후 37년만인 올해 2월이다. 헌법재판소는 위헌헌법소원 심판에서 남아선호 사상에 따라 성의 선별적 출산과 성비 불균형을 막기 위해 만든 의료법 제20조 제2항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일명 태아성감별 금지법에는 의료인은 임신 32주 이전에 태아나 임부를 진찰하면서 알게 된 태아의 성을 함부로 누구에게나 알릴 수 없도록 했다. 1980년부터 2000년 중반까지 우리사회는 남아선호 사상으로 여아낙태가 많아 심각한 남초현상이 빚어졌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1990년대 들어 국내 출생아의 성비(출생 여아 100명당 남아 수)는 남아선호 영향으로 남자가 압도적으로 많아 1993년에는 성비가 115.3명까지 기록했다. 이후 출산율이 줄고 사회 인식과 여성의 사회진출, 결혼관 등이 변하면서 우리 사회의 남녀성비는 차츰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상황이다. 올 2월 헌재의 결정도 이런 사회적 흐름을 반영한 결과다. 헌재는 판결을 통해 “부모가 태아의 성별을 알고자 하는 것은 본능적이고 자연스런 욕구이며 태아의 성별을 비롯 모든 정보에 방해받지 않을 권리는 부모로서 당연하다”고 판시했다. 지난주 국회 보건복지위는 태아성감별을 금지한 의료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본회의 통과라는 절차는 남았지만 태아성감별 금지법은 이젠 영원히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이는 부계 혈통사회라는 전통적 가족제도에 기인했던 남아선호 사상의 퇴조와 흐름을 같이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성비의 인위적인 왜곡은 더 이상 나오지 않을 전망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4-11-24

다시 ‘논어’와 만나며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지난 2월 20일 시작한 청도 인문학 첫 번째 주제 ‘문명과 인간’은 10월 22일 ‘동북아평화경제공동체구상’을 마지막으로 마무리됐다. 주 1회 90분으로 실행한 청도 인문학 강연은 이로써 27회로 하나의 매듭을 짓게 된 셈이다. 세계 4대 문명과 초원 문명으로 시작하여 칼 야스퍼스의 ‘축(軸)의 시대 Achsenzeit’를 거쳐 유라시아의 문명사를 두루 살핀 것이다. ‘문명과 인간’은 2020년 11월에 출간한 졸저(拙著) ‘유라시아 횡단 인문학’에 터를 둔 것이다. 언제부턴가 나는 유라시아의 과거와 현재를 하나의 기준으로 두고, 그것에 기초하여 동북아 세계의 미래상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현재는 과거와 미래의 분기점이지만, 과거의 축적이 현재로 드러난다는 점에서 과거는 현재만큼 중요하다 할 것이다. ‘유라시아 횡단 인문학’은 상당히 많은 분량을 20세기까지의 과거에 할당했고, 21세기 이른바 4차 산업혁명 시대와 미래진단은 소략한 감이 있다. ‘동북아평화경제공동체구상’은 대내외적인 정세변화가 극심했던 까닭에 자기검열에 걸려 빠지는 비운을 겪어야 했다. 하지만 청도 인문학 강연에서는 그것을 강조했기로 내겐 특별한 의미가 있다 하겠다. ‘문명과 인간’을 마칠 즈음에 수강자들에게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물었고, 그들은 스스럼없이 ‘논어’를 거론했다. 그리하여 10월 29일부터 ‘논어’ ‘학이편’ 제1장부터 읽기로 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2500년 전 공자와 그 제자들이 남긴 어록을 낯선 한문 문장과 해설, 각주(脚註)까지 참고해 읽어야 하니 수강생들은 쉽지 않은 모양이다. 나는 2006년 9월에 ‘논어’를 처음 만났다. 연구년 한 학기를 허송세월(虛送歲月)하다가 홀연 반성하는 생각이 들어 지인에게 어렵지 않은 번역본 ‘논어’를 추천받은 것이다. 그리하여 개강할 무렵까지 6개월 동안 6번을 읽고, 감명 깊게 다가온 문장을 A4 용지 6장 정도로 축약했다. 그리고 아침마다 1시간 남짓 그것을 한문으로 쓰는 습관을 만들었다. 나중에 독회 10번을 채우고 분량도 A4 용지 10장으로 늘렸다. 거리에서 광장에서 식당에서 잠자기 전에 아침에 일어나서 10장을 다 외우려고 무던히 애썼다. 좋은 문장이나 구절 혹은 단락은 통째로 기억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어서 그런지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논어’를 읽으면서 노자의 ‘도덕경’과 장자의 ‘장자’, 사마천의 ‘사기 열전’을 보태서 읽었다. 그런 독서 사이사이에 ‘논어’, ‘도덕경’, ‘장자’, ‘열전’ 관련 서적들을 대략 30권 남짓 통독했다. 좋은 서책은 당연히 서평(書評)을 써서 기억에 오래 남도록 ‘홈페이지’에 쟁여놓았다. 그런 결과로 2008년 가을부터 ‘동양고전’ 대중강연을 하기 시작해 오늘에 이르고 있는 형편이다. ‘논어’와 처음 만나려는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그것은 내 눈으로 읽고, 내 손으로 써보고, 내 머리로 먼저 생각해보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내가 노력한 만큼 독서의 결실이 나와 함께한다는 이치를 기억하시기 바란다. 하나의 문장이라도 기억하려 애쓰고, 기억한 문장을 실생활과 대화에 활용하면 더 유익할 것이다.

2024-11-24

울릉군, 독도의 날 지정 유감…칙령 제41호 제정 또는 공포기념일로 해야

김두한 기자 경북부 2005년 3월18일 일본 시마네현의회가 1905년 2월22일 소위 시마네현 고시 제40호로 독도를 편입한 100년을 기념해 매년 2월 22일을 다케시마의 날(독도의 날)을 제정했다.  그런데 올해 5월 24일 울릉군의회가 매년 10월 25일을 공식적인 독도의 날로 제정, 지난 10월 25일 울릉군이 첫 기념식을 했다. 민간단체들이 10월 25일을 독도의 날이라고 하지만, 공식적으로 지정된 것은 울릉군이 처음이다. 일본이 독도의 날을 제정해 기념식을 하는 데 대응해 독도의 날을 제정한 것은 일본을 뒤따른다는 느낌이 든다. 독도에 대해 기념일을 제정한다면 ‘칙령 제41호 공포 또는 제정기념일’로 하는 게 옳다. 문헌에 의해 독도가 공식적으로 대한민국의 땅이 된 것은 1900년 10월25일 고종이 ‘칙령 제41호’를 공포하면서 독도가 조선의 땅이라는 사실을 공식적 반포 했기 때문이다.  이 칙령은 “울도(鬱島)를 군으로 개칭하고, 관할구역은 울릉 전도(全島)와 죽도(竹島), 석도(石島)를 관할한다”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당시 울릉도 명칭은 ‘울도’로 단순 섬이었지만, 고종 칙령 제41호로 울도군으로 승격했다. 초대군수로 배계주를 임명하고 관할구역을 울릉도(본섬)와 죽도(댓섬), 석도(독도)를 관할토록 했다.  그런데 일본은 석도가 독도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울릉도 주변에는 독도외에 큰 섬인 관음도와 죽도가 있다. 따라서 일본학자들은 칙령은 이섬을 지칭한다며 석도는 독도가 아니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하지만, 이 주장은 허구다.  석도는 한문의 돌석(石)자 붙여 석도라고 했다. 나무가 자라지 않는 돌섬이라는 뜻이다. 독도는 나무가 자라지 않는다. .  관음도와 죽도는 소나무와 대나무, 후박나무 등 큰 나무와 울창한 숲이 우거져 석도(돌섬)라고 이름을 붙일 수 없다. 독도와 울릉도 접근이 어려운 일본학자들이 엉터리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 공식 문헌에 독도를 꼭 집어 관할하라는 것은 고종의 칙령 제41호가 공식적으로 대한민국의 땅으로 첫 인증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칙령 제41호에 따라 울릉군으로 승격한 날이 울릉군 기념일로 정해진 것이다. 따라서 독도는 울릉도 부속도서로 자연스럽게 울릉군민의 날과 함께 포함된다. 별도로 독도의 날을 정할 필요가 없다.  역설적으로 대한민국의 섬은 총 3348개로, 이 중 유인도는 430개다. 이러한 우리나라의 섬들은 다양한 특징을 갖고 있다. 중요한 섬에 대해 모두 기념일을 정할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  독도의 날 기념일은 일본인들이 억지로 자기 땅이라고 우기기 위한 느낌이 드는데 구태여 우리까지 독도의 날을 정한다는 것은 일본을 따라하는 느낌이다. 공식적으로 독도를 편입한 날을 기념해 울릉군 기념과 겹치지 않는 칙령 제41호 공포기념일 또는 제정 기념일로 하는 것이 기념일의 뜻과 이치에 맞는 듯싶다./김두한기자kimdh@kbmaeil.com

2024-11-24

“비트코인은 사기”라던 트럼프, 왜 달라졌을까

트럼프 美 대통령 당선인으로부터 촉발된 비트코인 랠리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비트코인 관련 뉴스가 공중파로 전해지는 모습이 더이상 낯설지 않다. 바야흐로 비트코인이 주류 경제의 한 복판에 들어섰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올해 초 미국에서 비트코인 현물 ETF가 승인되면서 비트코인의 제도권 진입이 가시화됐다. 하지만 해외 금융기관들은 오래 전부터 비트코인 거래를 하고 있었다. 해외 은행들은 선물사를 통해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을 유동성 공급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었고 나라별로 비트코인 선물 ETF를 상장한 곳도 있었다. 여전히 비트코인 ETF 상장에 인색한 국내 금융 환경과 비교하면 전혀 딴판이었다. 본래 비트코인은 주식시장의 흐름과 반대 방향으로 움직였다. 자산 헷징의 성격이 강했기 때문에 경제 위기나 국제정세 불안 등으로 시장이 불안정할 때마다 대체 자산으로서 가격이 뛰었다. 지금과는 정반대의 낯선 풍경이었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팬데믹 기간을 거치면서 비트코인과 주식시장은 커플링되기 시작했다. 블랙록과 같은 금융 자본들이 본격적으로 비트코인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도 이 즈음이다. 일찍이 미국의 금융기관들은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자산 시장을 새로운 먹거리로 점 찍은 듯 하다. 그리고 이번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에게 막대한 베팅을 한 것으로 보인다. 내년 출범할 트럼프 2기 행정부도 이 같은 요구에 부합하는 행보를 보일 것이다. 1기 때의 모습과는 180도 달라진 양상이다. 비트코인은 사기이고 일론 머스크를 ‘멍청이’라고 묘사했던 트럼프의 발언이 아직도 생생한데 말이다. 미국의 거대 기관들이 비트코인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뭘까. 여러가지 해석이 있을 수 있겠지만 단순화 하자면 돈이 될 것이란 판단 때문이다. 왜 그럴까. 비트코인이 기존 금융시장과 다른 가장 큰 차이점은 24시간 거래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기존 현물 및 선물시장이 국가별로 하루에 정해진 시간 동안만 거래할 수 있는 반면 비트코인은 국경이 없고 유일하게 시간 제한이 없는 시장이다. 기관들이 마다할 이유가 없고 그들에게 비트코인만큼 먹음직스러운 상품도 없을 것이다. 한 가지 걸림돌은 미국 정부의 규제였다. 자산운용사들은 수년 동안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비트코인 현물 ETF 상장을 요청했지만 번번히 거절당했다. 하지만 끈질긴 항소 끝에 법원이 자산운용사의 손을 들어주면서 상황이 바꼈다. 세계 최대 규모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을 필두로 11개사의 비트코인 현물 ETF가 일괄 승인됐다. 업계에서는 블랙록이 오랫 동안 치밀하게 상장 준비를 해온 것으로 보고 있다. 블랙록은 이제 비트코인 파생상품 시장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올해 3월 자산토큰화 펀드 ‘비들’(BUIDL)을 출시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비들’의 공식 명칭은 ‘블랙록 USD 기관 디지털 유동성 펀드’다. 자산토큰화란 한 마디로 다양한 실물자산을 담보로 토큰을 발행하는 것을 말한다. 부동산, 금, 은, 석유, 희토류 등과 같은 현실세계의 자산을 토큰으로 발행, 유통하는 사업을 지원하는 게 토큰화펀드다. 소위 RWA(Real World Asset)로 불리는 토큰을 육성, 지원하는 프로젝트인 셈이다. 목적은 간단하다. 전통적으로 선물시장에서 다뤄지고 있는 수많은 실물자산들을 토큰화 해서 24시간 거래하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토큰화된 자산들은 인터넷이 연결된 곳이라면 언제 어디서든 거래할 수 있게 된다. 투자자 입장에서도 토큰화된 자산은 실물자산이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에 리스크 관리에 유리하다. 즉 실물 기반 리스크 관리와 레버리지 수익을 동시에 꾀할 수 있는 현실적인 투자처가 될 수 있다. 앞으로 금융기관들은 비트코인을 넘어 전통 자산들마저 토큰화된 형태로 거래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펼칠 것이다. 시장을 예측하기란 어렵지만 한 가지는 확실해 보인다. 금융거래에 있어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토큰화된 자산 시장과 24시간 무한경쟁의 주도권을 누가 쥐느냐다. 트럼프 당선인이 미국을 비트코인 1위 보유국으로 만들겠다고 강조한 속내 역시 다르지 않다. 트럼프 당선인의 공언이 먼 나라 얘기만은 아닐 것이다. 몇 년 사이 그가 달라진 이유를 곱씹어 봐야 한다. 우리나라는 가상자산을 둘러싼 규제 불확실성 속에서 시장도 기업도 투자자도 하루하루 지쳐가고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국제 환경에 대처할 수 있는 총체적 대안 마련이 시급한 때다. /최진승 가상화폐 전문가 - (현)두코미디어 전략기획 이사 전 씨엘모빌리티 전략기획부 책임

2024-11-21